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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만큼 두려운 게 온다[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난치병에 걸린 50대 초반의 가장이 있다. 치료하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는 병이어서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으나 다행히 최근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돼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문제는 이 치료법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계의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거액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이 가장은 과연 치료를 받으려 할 것인가. 이 사례는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자주 제기하는 딜레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 병자에겐 세계 최악의 지옥이라 불리는 이유로도 자주 꼽히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에서 출발한 논의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이 같은 구멍을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곧잘 발전한다. 국가가 담당하는 필수 서비스의 강화로 개인의 막대한 부담을 막아야 한다는 이 논리는 의료 민영화 시도도 곧잘 제동을 걸어 왔다. ■또 다른 민영화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구조적으로 평행을 이루는 존재가 있다. 바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된 형사소송법 개정 내용이다. 의료 민영화 비판의 핵심은 국가가 담당하던 필수 서비스를 개인이 시장에서 스스로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서 써야 하는 구조로 전환된다는 데 집중된다. 이런 논리를 이번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소법 개정에 적용해 보면 구조적 평행이 드러난다. 바뀐 형소법에 따라 종전에 검사로 대표되는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던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 작업을 이제는 피해자가 자비로 변호사를 고용해 해결해야 할 판이 됐다. 공적인 의료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던 병원 치료를 사보험과 자비 부담으로 넘기는 것이 의료 민영화라면 사법 시스템의 이 같은 변화도 ‘사법 민영화’ 혹은 ‘검찰 민영화’가 아니라 하기 어렵다. ■누가 비용을 치르나 의료 민영화에 빗댄 사법 민영화가 비유로서 성립하는 이유는 지불하는 비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앞서 난치병에 걸린 50대 가장의 사례에서는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만 살 수 있다면 과연 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지가 딜레마였다. 마찬가지로 거액의 변호사비를 부담해야만 제대로 된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면 피해자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가장 큰 문제는 비용 부담 능력이 없거나 모자란 계층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국가 몫이 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의료 민영화가 되어도 기존 의료보험으로 어느 정도는 치료비 감당이 가능하다. 경제적 약자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보호 제도 같은 것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법의 민영화 이후로도 공적 제공 영역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민주당 내 강경파들이 주장한 것처럼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이 그에 해당할 터이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 국선 변호사 선임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국선 변호사를 무한정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한다던 유럽 어느 나라에서 병자가 치료에 돈이 안 드는 대신 의사를 만나보려고 기다리다 죽었다는 우스개처럼 국선 변호사를 기다리다 사건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민영화가 아니라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조치를 사법의 민영화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그 조치가 의료 민영화처럼 민간시장으로 서비스를 완전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서 경찰로 국가 기관의 기능을 재배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남아있는 한 피해자의 자비 변호사 선임 시나리오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보완 설명'도 곁들여진다. 이 같은 주장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소법 개정이 사법의 민영화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으려면 논의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경찰을 사법 서비스의 공적인 대체 공급자로 인정할 경우 그동안 검사가 무상으로 제공하던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을 경찰이 균질하게 제공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 논의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한다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소법 개정을 향한 사법의 민영화라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시스템을 방치하는 대한민국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사설] 한은 연속 금리 인상, 침체에 빠진 지역 경제는 어쩌나
한국은행이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달에 이은 ‘백투백(연속) 인상’으로, 2023년 1월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연속 인상 자체는 2007년 7~8월, 2021년 11월~2022년 1월, 2022년 4월~2023년 1월 등에 이어 역대 네 번째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통상 금리를 한 번 인상한 뒤 일단 파급효과를 지켜보며 다음 조정 시점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지난해 2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가 3.3%로 상향 조정되고 물가를 자극할 것을 우려해 한은이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한 배경에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물가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로 6월 3.2%보다는 낮아졌지만, 한은 목표 수준인 2%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특히 가격 변동이 일시적인 유가·농산물 영향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7월 2.6% 상승률을 기록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지난달 금리 인상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은 점도 연속 인상을 뒷받침했다. 7월 말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5조 4000억 원 증가한 1194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신현송 한은 총재가 밝혔듯이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유지돼 금융시장 안정을 고려한 측면도 크다. 그러나 이번 금리 인상이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제에 가져올 후폭풍을 생각하면 우려가 앞선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 효과로 수도권 집값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부동산 영끌 대출로 인한 가계 빚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반면 지역은 부동산 경기가 위축돼 있고, 수도권과 달리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다.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는 지역의 부동산 경기 침체 가속화, 자영업자의 폐업·연체율 증가, 지역 기업의 투자 축소로 직결된다. 수도권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한 통화 정책이 가뜩이나 경색된 지역 경제를 더 옥죄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은이 선제적으로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긴축에 나선 상황에서 어려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부의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 정부는 100조 원 이상의 미래대응기금에 이어 역대 최대 규모인 800조 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여당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중점 프로젝트에 지방주도 성장 지원을 집중 투자 분야 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경기 양극화의 그늘에서 어려움을 겪는 지역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지역의 경제 현실이 수도권과는 판이하다는 인식 아래 금리 인상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
[사설] 재정 쏟아붓고도 수송분담률은 떨어지는 부산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시내버스 적자를 부산시 예산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승객이 적은 노선과 낮은 요금제를 유지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혈세로 충당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 하지만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도 되레 버스 서비스가 후퇴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부산에서 발생하고 있다. 26일 열린 부산대중교통미래포럼에서는 첨두 시간(교통량 급증 시간) 평균 배차 간격이 2012년 7.73분에서 2024년 10.74분으로 3분 이상 늘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같은 기간 수송분담률은 21.6%에서 18.8%로 2.8%포인트 떨어졌다. ‘시민의 발’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이용률마저 낮아졌다면 제도가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배차 간격이 길어진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도심 차고지의 외곽 이전으로 노선이 연장되고, 버스 1대당 하루 운행 횟수도 2012년 7.35회에서 2024년 5.49회로 25%나 줄었다. 여기에 운전 인력 부족과 주 52시간 근무제까지 겹쳤다. 문제는 그 결과가 시민 불편과 혈세 부담으로 오롯이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버스가 제때 오지 않으면 이용객이 승용차나 택시, 도시철도로 옮겨 간다. 이는 버스 수입 감소와 보조금 증액 요인이 된다. 서비스 저하와 승객 감소, 적자 확대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도록 방치한 것이 문제다. 버스 운행의 구조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부산시가 대중교통 중심 도시를 내걸고 2007년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지 올해로 20년째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적자 보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부산시는 은행 대출로 이를 메우는 기형적 방식에 급급했다. 그 결과 연간 3000억 원대로 늘어난 적자 보전 규모는 부산시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게다가 시민이 체감하는 서비스 수준까지 후퇴하는 상황에서는 과감한 대안 모색이 불가피하다. 도시철도와 트램 신설, KTX 정차 같은 광역 교통망 확충도 필요하다. 하지만 산복도로와 원도심, 고령층 밀집 지역에 사는 교통 약자의 불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산시 교통당국은 시민이 매일 겪는 버스 불편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부산시가 시내버스·마을버스 운영 구조와 재정 지원 체계를 종합 진단하는 용역에 착수한 것은 시의적절하지만 비용 절감에만 매몰되거나 기존 정책 답습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준공영제의 성과와 한계를 원점에서 따져 노선과 차고지, 차량, 운전 인력, 재정 지원 구조를 시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재정 지원 방식과 표준운송원가 산정 체계 역시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손봐야 한다. 준공영제의 존재 이유는 버스 업체의 적자를 보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교통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승객의 편의를 중심에 두고 재정 건전성과 노동 조건, 지역 간 교통 형평성을 함께 살피는 종합 개편안이 필요하다.
[밀물썰물] 약물 올림픽의 말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불교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열매가 생기고, 악한 짓을 하면 악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모든 일의 결과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좋은 결과는 좋은 원인이 있었기에 나오고, 나쁜 결과는 나쁜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 아주 간단한 논리이고 이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섭리를 외면한다.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안하무인이 된다.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대표적 사례가 스포츠계에서 나왔다. 약물 올림픽이 그것이다. 이른바 도핑을 합법화해 각종 경기 대회를 치르는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이 처참한 말로를 보였다. 흥행 참패는 물론이고,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본 것이다. 스포츠 전문 매체인 ‘인사이드 더 게임즈’는 지난 5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첫선을 보인 인핸스드 게임이 6190만 달러(약 855억 원)의 적자를 냈다고 최근 보도했다. 대회를 주관한 인핸스드 그룹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억만장자 피터 틸 등 거물급 투자자의 후원을 등에 업고 지난 5월 기업가치 12억 달러를 인정받으며 뉴욕증시에 우회 상장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상장 당시와 비교하면 80% 넘게 빠졌다. 경기 결과의 참담함이 결정적이었다. 주최 측은 첨단 과학과 약물의 힘을 빌려 인간 생물학의 한계를 뛰어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성과는 초라했다. 대회에 참가한 42명의 선수 중 91%가 테스토스테론, 79%가 인간성장호르몬(HGH), 62%가 흥분제를 사용했지만, 세계 기록을 넘어선 선수는 수영 남자 자유형 50m에 출전한 크리스티안 골로메예프(20초 81) 단 1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육상 남자 100m에서는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프레드 커리가 9초97로 우승하며 약물을 투입한 선수들을 여유롭게 따돌리기도 했다. 우리는 늘 인과의 법칙 안에서 살고 있다. 불매인과(不昧因果)-인과를 부정하지 않고 그 흐름을 또렷이 보고 깨어 있어야지, 불락인과(不落因果)-인과를 초월한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통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영한
[천영철의 사리 분별] 낙동강 녹조 독소와 로봇물고기
올해 부산 폭염은 유별났다. 지난달 29일 낮 최고기온이 38.8도를 기록,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4년 이후 122년 만에 지역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부산 시민들의 관심은 온열질환 위험성뿐만 아니라 낙동강 녹조 발생 여부에도 집중됐다. 부산 시민의 상수원인 낙동강에서 여름마다 ‘녹조라테’ 현상이 발생해 시민들을 불안케 했기 때문이다. ‘녹조라테’는 수온 상승으로 유해 남조류가 빠르게 증식, 물 색깔이 녹차라테처럼 녹색으로 변한 상태를 일컫는다. 올해도 낙동강 하류 곳곳에서는 녹조 현상이 이어졌다. 지난 6월 8일 낙동강 양산 물금·매리 지점에서 올해 첫 조류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됐다. 이어 같은 달 22일 경계 단계가 발령된 데 이어 7월 23일엔 관심 단계로 다시 하향됐다가 8월 10일 다시 경계 단계로 격상됐다. 관심 단계는 유해 남조류 세포 수가 mL당 1000개 이상, 경계 단계는 mL당 1만 개 이상인 상태가 2회 연속 확인될 때 내려진다. 부산은 물금·매리에서 취수된 표류수를 정수한 수돗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한다. 올해 무더위 기간엔 수도에서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먹는 물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엔 부산·경남 등 낙동강권 주민들의 소변에서 녹조 독소가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낙동강네트워크 등 환경단체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부산 등 낙동강 유역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 93명의 소변 시료 150건을 수집해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시료 19.3%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시스틴은 녹조 원인인 남세균이 생성하는 독소 종류다. 특히 가장 많이 검출된 마이크로시스틴 유형은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가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한 대표적인 간독성 마이크로시스틴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마이크로시스틴이 어떤 경로로 체내에 유입됐는지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의 소변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된 것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를 계기로 정부가 독성물질의 유입 경로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대대적인 규명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녹조는 이제 단순한 상수원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 보건 차원에서 물과 건강을 통합 관리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는 녹조 독소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미국 플로리다 오키초비호와 세인트루시강 일대 주민 소변과 호흡기 등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이 조사에서는 호흡을 통해 녹조 독소가 인체에 흡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14년 미국 오하이오에서는 녹조가 상수원 취수구까지 확산되면서 수돗물에서 기준을 초과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당시 당국은 수돗물을 마시지 말라는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때 당국이 권고한 내용은 끓여도 안전하지 않으므로 음용하지 말 것, 음식 조리와 양치 등에도 사용하지 말 것 등이었다. 당국은 당시 정수 공정에 투입하는 분말활성탄과 응집제 등을 늘려 음용수 안전성을 확인한 뒤에야 경보를 해제했다. 이런 사례들은 녹조가 인체에 해를 끼칠 우려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산의 경우 정수 과정을 마친 수돗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공식적으로 검출된 적은 없다. 하지만 지난 2022년 환경단체 등은 영남권 수돗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당국은 자체 검사를 토대로 환경단체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이크로시스틴 변종은 200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부 유형에 국한한 느슨한 검사와 대처가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낙동강 ‘녹조라테’의 근본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지목하고 있다. 2009년 부산에서 열린 ‘WHO 국제 콘퍼런스’에서 만난 당시 환경부장관은 낙동강 수질 악화 우려에 대해 “수질 감시용 첨단 로봇물고기를 투입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로봇물고기는 4대강 사업 정당성을 높이고 수질 악화 우려를 잠재운 ‘만병통치약’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후 로봇물고기는 사실상 대국민 사기극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대로 가면 낙동강 ‘녹조라테’ 사태는 내년에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녹조 독소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위험성을 갖고 있다. 안일함은 거의 모든 재난의 원인이다. 정부가 녹조 피해 우려를 없앨 수 있도록 정밀 조사와 4대강 재자연화 등 종합 대응 대책을 서둘러 추진하길 당부한다.
[배학수의 문화풍경] 영화 오디세이 너머, 귀향이라는 오래된 질문
이번 달 부산의 극장가를 집어삼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장엄한 화면으로 관객들을 신화의 세계로 몰입시키고 있다. IMAX 카메라로 담아낸 압도적인 스케일과 재치 있는 연출력은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숨 막히는 스펙터클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영화가 선사하는 시각적 경이로움 너머에는 호메로스의 원전에서만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철학적 세계가 있다.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짜릿함을 넘어, 작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지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모두는 바로 노스토스(nostos), 즉 귀향이라는 개념에 엮여 있다. 첫째, 노스토스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본모습을 시험하는 존재론적 탐구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노스토스는 단순히 지도상의 특정 장소에 물리적으로 도달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정체성의 여정이었다. 만약 어떤 신이 오디세우스를 트로이에서 이타카의 침실로 첫날에 공간 이동시켜 주었다면, 그는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겠지만, 자신의 왕국을 되찾을 역량을 갖춘 인물로 돌아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통은 노스토스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시험대이다.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이 로토스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고통 없는 편안함을 얻었지만 고향을 잊고 자아를 상실했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제안을 받아들여 비밀스러운 섬에서 영생과 고통 없는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기로 했다면, 그는 목숨은 건졌을지언정 이타카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왕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했을 것이다. 텔레마코스 역시 필로스와 스파르타로 향하는 거친 여정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고, 그 시련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노스토스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여행자가 스스로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둘째, 메티스(mētis), 즉 지략은 노스토스를 완성하기 위해 갈고닦아야 하는 도구이다. 노스토스가 목표이고 고통이 시험이라면, 메티스는 그 여정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 능력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메티스는 비에(biē), 즉 물리적인 힘과 대비된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가 정면 승부에서 상대를 짓밟기 위해 비에에 의존했던 반면, 오디세우스는 순수한 힘만으로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파악했다. 메티스는 예지력과 자제력, 그리고 탁월한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압도할 수 있게 해준다. 메티스는 고정된 힘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을 읽고 그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실천적 지혜이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오디세우스는 “내 이름은 ‘아무도 아닌 것(Outis)’이라고 속인다. 압도적인 거인의 신체적 힘에 비에로 맞서는 대신, 그는 전사로서의 혈기를 누르고 유연한 지략을 발휘해 괴물의 동굴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위기는 바로 그다음에 찾아온다. 안전하게 탈출한 오디세우스는 자존심을 이기지 못하고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외친다. 결국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를 저주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의 귀향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메티스가 그를 구했지만 자만심은 다시 그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지혜란 영리한 머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충동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셋째, 노스토스는 운명과의 능동적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순전한 숙명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흔한 오해다. 모이라(운명)는 정해진 대본이 아니라 역동적인 협상의 대상이며, 오디세우스는 이 협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수행한다. 하나는 저승까지 내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조언을 구하는 적극적 접근이다. 다른 하나는 그 반대편에 있다. 파도에 휩쓸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가 마법의 베일을 건네지만, 그는 “혹시 신이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스스로 판단을 유보한다. 신에게 다가갈 때도, 신이 다가올 때도 그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세계의 위대한 힘들과 이렇게 소통함으로써,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운명이 테두리를 설정할지언정 그 안에서 집으로 돌아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임을 증명해 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영화적 쾌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영화의 스펙터클이 사라진 뒤에 우리의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귀향은 지도 위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귀향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지략을 벼리며,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일이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콜로라도 로키산맥의 두 음악축제, 애스펀과 베일
미국 콜로라도의 여름은 음악으로 깊어진다. 해발 2000m가 넘는 로키산맥의 휴양도시 애스펀과 베일에서는 매년 여름 미국을 대표하는 두 클래식 음악축제가 열린다. ‘애스펀 뮤직 페스티벌’과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이다.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두 도시는 비슷한 산악 풍경을 품고 있지만 축제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1949년 시작된 애스펀 뮤직 페스티벌 앤드 스쿨(Aspen Music Festival and School)은 이름 그대로 ‘축제’이면서 ‘학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카고의 기업가 월터와 엘리자베스 페프케가 괴테 탄생 200주년 행사를 애스펀에서 개최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음악가들이 학생들과 함께 다시 찾아오면서 세계적인 여름 음악학교로 발전했다. 2026년에는 8주 동안 세계 각국에서 모인 450명 이상의 젊은 음악가들이 거장들과 함께 배우며 무대에 오른다. 축제의 중심은 2050석 규모의 마이클 클라인 뮤직 텐트(Michael Klein Music Tent)다. 2000년 문을 연 측면이 열린 반개방형 공연장으로, 객석에서는 무대 위 오케스트라와 함께 로키산맥의 바람과 빛까지 공연의 일부가 된다. 올여름 이곳에서 본 공연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콘서트 버전이었다. 클래식 전용 축제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오케스트라와 브로드웨이 배우, 무용수들이 한 무대에 섰다. 세계적인 연주자와 전문 음악가의 길에 들어선 학생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애스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애스펀에서 산맥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면 또 하나의 음악도시 베일을 만난다. 1987년 시작된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Bravo! Vail Music Festival)은 2026년 39회를 맞았다. 애스펀이 젊은 음악가를 길러내는 교육 중심의 축제라면, ‘브라보! 베일’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로키산맥으로 불러들이는 공연 중심의 축제에 가깝다. 올해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댈러스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등 네 악단이 축제를 채웠다. 축제의 메인 공연장은 로키산맥에 둘러싸인 야외 공연장 제럴드 R. 포드 앰피시어터(Gerald R. Ford Amphitheater)다. 지붕 아래 객석과 그 뒤로 펼쳐진 잔디밭이 하나의 공연장을 이루며, 관객들은 산과 숲을 가까이 두고 음악을 즐긴다. 내가 찾은 날에는 야닉 네제 세겐이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졌다. 로키산맥을 배경으로 듣는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환희의 송가는 일반적인 콘서트홀과는 또 다른 감동을 만들었다. 애스펀과 베일의 공통점은 음악을 건물 안에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스펀이 교육과 세대의 계승을 통해 음악의 미래를 만든다면, 베일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자연을 한 무대에서 만나게 한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두 축제 모두 로키산맥의 여름을 음악으로 완성한다.
[데스크 칼럼]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 오직 서울의 과열된 집값을 잡겠다며 처방한 해열제를, 미분양이 속출하는 지방 저체온 환자에게도 똑같이 투여하고 있으니. 숨 넘어가기 직전이라고, 이 약을 먹으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정부의 시선은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그래프로만 향해 있다. 지방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수도권 과열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규제 일변도의 조치들은 자생력이 약한 지방 부동산 시장의 사슬부터 끊어내고 있다.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은 지금껏 반복돼 왔고, 지방민은 학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 부동산 대책이 거듭되면 될수록, 자금력 있는 지방민은 너도나도 서울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자본 탈출’을 시도한다. 지난달 23일 열린 대통령 주재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와 뒤이어 나온 8·3 부동산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수도권 편향적 국정 프레임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토론회에서는 지방에선 넘볼 수조차 없는 30억 원대 주택을 두고 초고가 주택이 맞냐 아니냐 의견이 분분했는데,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고개를 갸웃하며 “지방과 수도권의 초고가 주택 기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서울 사람 편에 섰다. 토론회 내내 국민 절반에 해당하는 지방민은 초대되지 않은 ‘그들만의 세상’에 온 것 같은 불편함과 소외감,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지역 전문가의 발제나 발언 기회도 전혀 없었다. 토론회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세제 개편안에서 ‘지방 무시’는 더욱 노골화됐다. (대개) 서울에 있는 20억 원짜리 거주 1주택자에게는 종합부동산세를 아예 면제해주기로 하고 30억 원까지도 종부세를 줄여주기로 했지만, (대개) 지방에선 주택 3채를 다 합쳐 13억 원만 넘으면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됐다. 관련 정부 브리핑에선 한 기자가 지방과의 과세 형평성에 대해 묻자 정부 관계자가 “지방에는 종부세 많이 내는 분이 많이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부산에서만 주택분 종부세를 낸 다주택자가 1만 2205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정부는 지방의 적체된 미분양 물량을 흡수해 임대 시장에 공급할 유동성의 주체가, 그나마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대상이 다주택자라는 점을 간과했다. 결국 지방 주택을 처분하고 서울의 똘똘한 한 채, 안 되면 서울 사람들 눈엔 ‘덜 똘똘한 한 채’라도 갈아타라는 정책적 신호는 지방 부동산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부 발표나 대통령 말 한마디만 나와도 은행 대출 심사가 하루 아침에 뒤바뀌기도 하니 지역 건설업계는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미 부산의 경우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이 역대 최고 수준임은 물론, 악성 미분양 비율이 전체 미분양의 40%를 돌파하는 등 지방 시장은 이미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져 있다. 정부 지방 무시를 비판하는 본보 보도가 나간 뒤 부산은 물론 경남 창원, 경북 등에서도 본보로 응원과 정부 성토 메일, 전화가 쏟아졌다. 부산의 한 기관 수장은 “부동산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 서울과 지역의 초양극화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면서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이번 토론회 사례에서 보듯, 서울 사람 눈에는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연일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고, 2차 공공기관 이전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던져주는 것만 먹어” 식의 시혜적 관점으로만 지방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경고했듯, 시장 실패보다 무서운 건 잘못된 제도 설계로 인한 ‘정부 실패’다. 서울과 수도권 시장이 규제 속에서도 글로벌 자본과 풍부한 대기 수요로 하방 압력을 견뎌내는 사이, 지방은 즉각적인 거래 절벽과 가격 폭락이라는 치명상을 입고 있다. 특히 거래 절벽은 단순 자산 가치 하락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뿌리째 뒤흔든다. 취업이나 이직, 자녀 교육 등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아 자신이 살던 지역에 묶여버린다. 평생을 모아 힘겹게 일군 집이라는 자산이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돕는 사다리가 아니라, 발목을 잡는 주거 락인(housing lock-in)의 사슬이 되어버린다. 열이 많이 나 링거를 맞아야 하는 서울보다 더 급한 환자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지방 시장이다. 국민 절반이 사는 서울 공급 대책이 나올 때, 나머지 국민 절반이 사는 지방 수요 대책도 같이 나와야 한다. 둘은 전혀 다른 시장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또 최저치를 찍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마저 오로지 부동산 관련 ‘서울 민심’에서만 찾고 있으니,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우리가 본 것은 전쟁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뇌는 충격이 클수록 그 순간을 붙잡아두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날의 진실은 과연 누가 말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같은 기억을 나눠 가졌던 이들이 증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워페어’의 연출을 맡은 레이 멘도사는 2006년 11월 이라크 라마디에서 네이비실 대원으로 복무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 복무했던 엘리엇은 폭발 사고로 크게 다쳐 정작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멘도사는 그가 평생 궁금해할 그 날의 시간을, 함께 있었던 자신과 동료들의 기억을 그러모아 되돌려준다. 그렇게 알렉스 가랜드와 공동연출한 ‘워페어’는 상상이나 취재가 아닌, 실제 참전 당사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날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알파원 소대가 라마디의 2층짜리 민가를 관측기지로 점거하는 데서 시작한다. 1층과 2층에는 잠들어 있던 현지 가족들이 있고, 대원들은 이들을 방 한구석으로 몰아넣은 채 통역관에게 진정시키는 일을 맡긴다. 그러나 평온한 정찰은 오래가지 못한다. 수류탄 하나가 저격수의 방으로 날아들면서 알파원은 삽시간에 무장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고, 뒤이은 폭발로 저격수 엘리엇과 부사관 샘이 다친다. 이제 남은 대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다. 중상을 입은 두 사람을 무사히 후송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임무가 된다. 영화는 전쟁의 명분이나 급박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어떤 사연으로 군복을 입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감정을 부추기는 음악도 거의 없다. 좁은 공간 속에서 대원들의 거친 숨소리를 바짝 따라갈 뿐이다. 침묵과 비명, 굉음이 예고 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관객은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보다 인물들과 함께 그 시간을 견딘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생각할 틈조차 없이 그저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다만 이 기억이 공정한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카메라가 오래 머무는 곳은 대원들의 경직된 얼굴과 다친 몸이다. 정작 한밤중에 군인들에게 집을 내주고 겁에 질린 가족들, 그리고 두 언어 사이에서 가족을 다독여야 했던 통역관의 두려움은 가장자리에 머문다. 기억은 언제나 그것을 붙든 사람의 자리에 있다. 이러한 영화의 시선에는 두 감독의 서로 다른 경험이 겹쳐 있다. 실제 전쟁을 겪은 레이 멘도사는 전역 후 군사자문으로 전쟁영화의 현장을 경험했고, 알렉스 가랜드는 전쟁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사람은 실제 전장을 통과했고, 다른 사람은 전쟁을 상상했다. ‘워페어’는 그 두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이들의 기억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카메라는 처음으로 방향을 바꾼다. 대원들이 떠나고 난 뒤, 집의 진짜 주인이 폐허가 된 거실을 걸어 나온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유령처럼 존재하던 반군들도 마침내 실루엣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야 화면 한가운데 선다. 그 짧은 장면 앞에서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가 절박하게 숨죽이며 함께 견뎠던 그 90여 분은, 그날의 전부가 아니라 수많은 기억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그 집에는 원래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연기 속에는 우리가 끝내 이름조차 알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워페어’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 장면으로,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심이야말로,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기는 것이다.
[2030 칼럼] 새로운 집을 위한 실험
“안녕하세요? 이번 주 603호에서 독서 모임을 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대신에 화분에 물도 주고 환기도 부탁드려요.” 이번 주 토요일 우리 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지인의 문자다. 우리 집을 이웃에게 열어둔 지 반년, 달력에는 매달 크고 작은 예약이 적힌다. 우리 가족은 엄마와 나, 둘이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줄곧 타지에서 지냈고 부산 본가에는 엄마가 혼자 살았다. 가족 구성원이 떠난 자리에 엄마는 가끔 독서 모임을 열고, 외국인 여행자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던 올해 초, 엄마가 갑작스럽게 해외에서 일하게 되면서 집이 아예 비게 되었다. 예정된 근무 기간은 2년, 마냥 현관문을 잠가 두기에는 꽤 긴 시간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집을 지인들과 공유해 보기로 했다. 소식을 알리자, 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이들과 함께 ‘603호 관리위원회’라는 이름의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집 사용 일정을 공유하고 집안일을 나눴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규칙은 간단했다. 집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음 사용자를 위해 집을 돌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집은 다른 이름을 얻었다. 우리 집을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은 엄마의 독서 모임 회원들이다. 예전부터 우리 집에 익숙한 이들은, 창문을 열고 화분에 물을 준 뒤 모임을 연다. 그날의 거실은 동네의 작은 서재가 되었다. 부산 공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재일교포 극단의 배우와 스태프도 우리 집 단골손님이다. 작은 극단이 타지에서 공연을 준비하려면 숙소를 마련하는 일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부산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면 배우와 스태프는 우리 집에 머물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이번 광복절에는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삶을 그린 일인극 ‘고픈이’를 부산의 한 소극장에 올렸다. 집 안에 붙여둔 공연 포스터를 본 독서 모임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지인도 몇 년 전 우리 집을 방문한 뒤로, 한국에 올 때면 우리 집에 머문다. 그녀의 할머니가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데, 연세가 든 할머니는 집에 누군가와 계속 함께 머무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지내며 아침이면 할머니 댁에 가서 식사하고, 오후에는 돌아와 자신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은 할머니와 손녀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지낼 수 있도록 이어주는 동네의 곁방이 되었다. 우리 집을 오가는 사람들은 집을 매개로 서로에게, 그리고 동네에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공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시도는 호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멜버른 브런즈윅의 ‘나이팅게일 하우징’은 1인 가구도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도록 만든 공동주택 프로젝트다. 산업 쇠퇴로 활력을 잃은 동네에서 집을 투자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되돌리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입주자는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이웃과 만나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시드니 인근 혼즈비의 ‘빌리지 허브’는 새 시설을 짓는 대신 기존 카페와 주민의 경험을 연결해 모임을 만든다. 하나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처음부터 설계한 집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던 사람과 장소가 만날 방법을 설계한 모임이다. 두 사례는 방식은 다르지만, 개인의 독립을 지키면서도 이웃과 연결될 선택지를 열어둔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에 견주면 우리 집의 변화는 소박하다. 코하우징도 지역 공동체 시설도 아니며, 집의 구조나 소유 방식이 달라진 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대신 집의 빈 시간을 나눈다. 때때로 집은 동네의 서재가 되다가 공연을 준비하는 숙소가 되고, 다시 할머니와 손녀를 이어주는 곁방이 되기도 한다. 가족의 모습은 계속 달라지는데, 집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족의 규모는 작아지고 1인 가구는 늘어나지만, 많은 집은 과거의 가족 형태를 품은 채 남아 있다. 부산에서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7%를 넘어섰으니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혼자 사는 집이다. 우리 동네에도 1인 시니어 가구가 부쩍 많아졌다. 우리 집 아랫집도, 그 아랫집도 그렇다. 혼자 사는 집이라도 언제나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미래의 집은 더 편리한 기술과 새로운 구조만큼이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미 있는 집의 쓰임을 새롭게 상상하는 일도 미래의 주거를 준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 우리 집은 그 실험을 먼저 해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머지않아 엄마가 돌아오면 우리 집 역시 1인 가구가 된다. 그때 우리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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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나인우·남주혁…안방극장 꿰찬 'MZ세대' 남배우들
이상순, 재력家 집안의 정체는…'해운대 유명한 소갈비 식당이었어?'
'사랑의 콜센타' 민우혁에 패한 이찬원 '정말 잘한다' 감탄
'조선구마사' 장동윤 '선택 우매했다…부끄럽고 창피해' 사과
이나은 지우기 나선 방송·광고계
'찬열, 3년간 걸그룹·유튜버 등 10명 넘게 바람'… 전 여친 주장 폭로
양홍원의 황당 기행…SNS에 엉덩이 노출사진 공개
김호중, 이번엔 前 연인 폭행 의혹…스폰서 논란·소속사 분쟁 이어 ‘구설’
옥택연, 반려견 에디와 장난기 가득한 근황 '훈훈'
있지 류진·채령부터 유선호·CIX·스트레이키즈…“첫 투표 했어요”
[속보] 공항서 발길 돌린 구윤철 부총리, 美G20 회의 일정 돌연 취소
[속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지명
이 대통령, 재경 이형일·법무 김승원·국방 강신철·국토 홍지선·중기 이소영·성평등부 용혜인 발탁
[속보] 중기벤처부 장관 후보자에 與 이소영 발탁
김민석 “2년 뒤 총선, 부산·서울은 당대표 직할로 치를 것”
“윤석열 정부 때 ‘통계·서해 감사’ 불법 확인” 감사원 발표 두고 여야 공방
부산시 정무직 견제 조례 보류…‘강 대 강’ 대치 예고
靑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 국힘 “명백한 위헌, 국회 권한도 막아”
與 ‘지역 주도 성장’ 등 결의… 김민석·정청래 ‘마이크 독재’ 신경전
국힘 “법치 훼손 단호히 맞설 것”… 박근혜 “내부 분열, 무서운 적”
김민석, '정청래 실명 언급은 부적절' 지적에 '회의도 생중계하는데 왜 안돼'
검찰, '뇌물수수 의혹' 노웅래 前의원 상고 포기…무죄 확정
삼전닉스 상반기 법인세 11조원…올해 실적 담은 법인세 100조 전망도
저출산·고령화 예산 88조인데…책임부처 없이 24개 정부부처 산재
29CM 고객 개인정보 15만 9000건 유출
남아시아 수력발전 뛰어든 국내 공기업, 자연재해 ‘비상’
G마켓, 트레이더스 당일배송 서비스 오픈
이마트, 자연주의 친환경 선물세트 사전예약
압류 명품 공매 ‘샤넬백’ 최고 인기…흠집에도 1000만원 넘기도
“복합환승센터 사업자, 단차 해소 의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네팔 돌발홍수·산사태’ 한국도 안심할 상황 아냐…비슷한 재난 대비해야”
메르세데스-벤츠, 부산 청소년 복합문화공간 조성에 5억 원 지원
'문손잡이 도어 스토퍼' 발명한 울산 초등생, 과학발명품경진대회 대통령상
하나은행·CJ올리브네트웍스 맞손…‘최고 연 5%’ 적금 출시
부산 F1963에 핀 황금 연꽃…장-미셸 오토니엘의 '사랑 안의 미로'
경남 18곳 장애인 안심 의료기관 추가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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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오늘의 운세]8월 30일(음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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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늬 호박' 日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별세…향년 97세
1970년대 '공순이'들의 치열하고 평범한 삶 조명
일본 속 조선인 강제 동원 흔적들 잊지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