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개 항만공사 통합,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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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석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부 교수


필자는 옛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시절 부산항 신항과 광양항 개발 현장을 직접 두 발로 밟았고, 항만공사 설립 당시엔 한국항만공사 통합을 주장하며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는 전국 컨테이너 항만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시급한 시기였고, 갓 출범한 항만공사들은 전문 인력뿐만 아니라 재정 자립도도 취약해 경쟁보다 조율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물두 해 전의 논리를 오늘 다시 꺼내는 것은 2005년 처방전으로 2026년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것과 같다.

4개 항만공사는 설립 이후 저마다의 전문성을 쌓아 왔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 거점항, 인천항은 대중국 교역의 핵심 창구, 울산항은 에너지·액체벌크 특화항, 여수광양항은 철강·원자재 물류 중심이다. 부산항만공사의 지난해 매출은 4049억 원, 자산은 8조 4598억 원에 이른다. 이 결실이 통합본사의 ‘균형 배분’ 논리에 따라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하는가.

세계 항만 경쟁의 문법은 분명하다. 싱가포르 PSA, 두바이 DP World, 로테르담 항만청은 단일 항만의 전문성을 살려 글로벌 물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반면 오사카·고베·한신항을 통합한 일본은 반면교사다. 한때 세계 4위였던 고베항은 통합 이후 7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조직을 합친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웃나라 항만이 값비싼 수업료로 증명했다.

통합론의 근거는 결국 중복투자 등 업무 비효율 해소다. 그러나 이는 조직을 통째로 합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문제다. 항만공사법 제36조의 2에 명시된 항만공사운영협의회가 유명무실하게 방치돼 왔을 뿐이다. 각 항만공사 사장이 협의회에서 투자·개발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해양수산부가 항만기본계획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효율은 충분히 해결된다.

게다가 통합 본부를 세워도 항만별 관리 조직은 별도로 남아 본사만 비대해지고 현장 조정력은 쪼그라드는 ‘옥상옥’ 구조가 된다. 항만공사법이 각 공사를 독립채산제 책임경영 주체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 권한은 통합 본사로, 책임은 현장에 남는 구조는 이러한 책임경영의 기본 원리를 위반한다. 더 근본적으로, 항만공사 통합은 지방분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부산항만공사는 지역과 항만이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로 설립됐고 북항 재개발사업도 그 토대 위에서 진행된다. 정부가 내건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충돌하는 통합안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지난 6월 4개 항만공사 노조가 공동으로 통합 철회를 요구했고, 7월엔 부산·인천·울산·경남·여수광양 5개 지역 300여 시민사회단체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한목소리로 통합 중단을 촉구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조차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의 목소리가 한 방향을 가리키는데도 정책설계자들은 왜 귀를 막는가.

필자도 과거에는 통합을 주장한 바 있지만, 정책의 타당성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 주장을 거두는 것은 일관성의 포기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개항 이후 150년간 쌓아온 부산항의 브랜드 가치를 비용 절감의 계산기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법에 보장된 운영협의회를 실질화해 각 항만공사가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저마다의 전문성으로 치열해져 가는 글로벌 항만 경쟁에 맞서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다시 묻는다. 이 통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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