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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혐오의 시대, 윤리는 어디서 오는가
지난 7월 중순 무렵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주제탐구 수업을 진행했다. 1~2학년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관심 분야나 진로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해 탐구 활동을 수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이다. 인문·사회 분야에 관심을 둔 20여 명이 선정한 주제는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과 궁금증을 담고 있었다.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하나씩 읽어가는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사로잡는 글이 있었다. 바로, 윤리 수업을 통해 ‘혐오’를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지를 다룬 글이었다. 뜻밖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만나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혐오의 언어, 놀이처럼 소비 현상 지속
디지털 공간 통해 전파되며 일상 잠식
예전엔 특정 대상 조롱 용인되지 않아
금기시하는 윤리적 감각이 옅어진 탓
망각된 역사·개별적 삶의 기억 복원을
타인의 얼굴 마주하려는 용기 지녀야
수업이 이루어진 시기는 고교생 야구대회에서 불현듯 울려 퍼진 혐오의 목소리가 온 사회를 들끓게 만든 직후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혐오가 일상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공공연하게 발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혐오에 휩싸인 교실의 실태를 조명한 보도와 방송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놀이가 된 혐오는, 그것을 놀이‘쯤’으로 치부했던 우리 사회의 방만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주지하듯이, 교실 현장에서 혐오가 문제시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일베’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양산되는 혐오의 말들을 일종의 놀이처럼 소비하는 현상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주위에서 전해지는 현장의 실상은 매체가 전하는 소식보다 처참하다. 교실 책상마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대통령의 이름이 거칠게 새겨져 있고, ‘일베어’는 교사를 도발하고 희롱하는 말로 사용된다. 커뮤니티에 직접 접속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주요한 생활세계인 SNS와 게임 등의 디지털 공간은 혐오의 언어를 빠르게 전파하며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 접속하는 빈도와 시간이 증가하는 만큼, 혐오는 빠르고 광범하게 퍼져 나간다.
문득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누군가 일베어를 쓰는 것으로 의심만 되어도 다른 친구들로부터 숱한 눈총을 맞았다. 그것이 호기심이건, 놀이이건 특정 대상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것은 쉽사리 용인될 수 없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이 또래 집단 내에서 공유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인식은 타인에 대한 윤리적 감각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정은 다르다. 혐오를 금기시하는 윤리적 감각은 옅어질 대로 옅어졌다. 디지털 세계 속 밈과 숏폼 영상, 노래 등은 어느새 혐오를 놀이의 형태로 뒤바꿔 놓았다. 혐오가 유희적 놀이로 재배치되는 순간 윤리적 잣대는 힘을 잃는다.
이러한 혐오의 놀이화는 혐오의 대상을 실재 세계로부터 ‘탈맥락화’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대상을 그들이 속해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맥락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가 겪어 왔던 숱한 비극적 사건은 물론 그 속에 존재했던 개개인의 삶의 궤적들이 사라질 때, 혐오는 윤리적 잣대가 개입하기 힘든 놀이가 되고 만다. 예컨대, 1980년 5월 목숨을 내던지며 광주를 지켰던 수많은 시민의 삶과 희생이 비가시화될 때, 역사적 비극은 ‘탱크’라는 조롱 섞인 밈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인물, 지역, 젠더를 대상으로 한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논의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학교시민교육 국가기본원칙’ 토론회에서 차정인 위원장은 “정치 사회의 쟁점을 주제로 삼아 논쟁적으로 다루는 교과수업은 학생의 사고력과 자율적 판단력을 기를 것”이라 전망했다. 학교가 활발하고 건전한 토론의 장으로서 시민교육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도 강파르고 뒤틀린 오늘날 학교 현실을 점진적으로나마 뒤바꿀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관건은 윤리를 회복하는 데 있다. 놀이의 의장을 걸친 혐오가 대상으로부터 삶의 구체성을 지우는 탈맥락화를 통해 교실 깊숙이 침투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은폐되고 망각된 역사와 개별적 삶의 기억을 복원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데서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타인의 삶의 궤적과 맥락,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한 숱한 마음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탱크’라는 폭압적 기호의 자리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희생했던 이들의 기억이 오롯이 들어찰 때, 윤리는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혐오로 가득한 시대를 지나며, 타자를 향한 윤리를 기대하기는 요원할지 모른다. 불안함과 무력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우연히 마주한 고등학생의 보고서가 그토록 새삼스러웠던 까닭도 바로 거기 있었다. 그러나 그 작은 글에서 발견했던 것은 이토록이나 암울한 시대를 의연히 건너가려는 의지, 그리고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려는 용기였다.
2026-08-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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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관광데이터의 나아갈 길
연일 최고기온 기록이 갱신되고 있다.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바다를 찾고, 야간 관광지를 찾으며, 시원한 실내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알게 되는 것일까. 답은 데이터에 있다. 스마트폰을 누르는 손가락 하나, 검색창에 입력하는 단어 하나, 길을 걷는 발걸음 하나까지 모두 데이터가 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매일 데이터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관광 데이터는 관광객 수, 숙박객 수, 관광지 방문객 수처럼 관광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숫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데이터는 관광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지만, 관광객이 왜 그 장소를 선택했고 어떻게 이동했으며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필자는 이러한 데이터를 ‘평면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관광객 수로 나타난 평면 데이터
다른 정보 조합되면 입체 데이터
무연결 정보 남발 데이터 카오스
새로운 데이터의 중심 축은 시간
미래 세대가 복원할 관광 위해선
시점에 충실한 정보 연결이 중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위치정보와 소비기록, 검색기록, SNS, 사진과 영상, 교통정보, 날씨, 이동경로 등이 서로 연결되면서 한 명의 관광객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각각의 데이터는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그 조각들이 서로 연결되는 순간 하나의 관광 경험이 완성된다. 이 같은 데이터는 더 이상 숫자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 행동과 경험을 함께 설명하는 ‘입체 데이터’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입체 데이터는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데이터가 시간과 공간, 사람과 경험이라는 공통된 맥락 안에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관광객이 언제 어디를 방문했고, 무엇을 소비했으며, 어떤 감정을 남겼는지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관광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데이터의 미래는 누가 더 많은 양을 모았는지보다 누가 더 깊게 연결할 수 있느냐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입체 데이터의 시대가 곧바로 이상적인 미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너무 많은 데이터가 생성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데이터가 넘쳐날수록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서로 다른 데이터들이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데이터 카오스’의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미래에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것이 경쟁력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연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데이터 카오스를 무엇이 정리하게 될까. 필자는 그 중심축이 ‘시간(Time)’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데이터는 주로 공간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어디를 방문했고, 어디에서 소비했으며, 어디에서 사진을 찍었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간축을 따라 데이터가 연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점에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였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했는지가 하나의 이야기로 복원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순간 관광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한다. 우리는 더 이상 현재의 공간만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도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물론 물리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시간축을 따라 재구성할 수 있다면 미래의 사람들은 2026년 부산의 거리와 시장, 바다와 축제, 사람들의 일상까지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 속 타임머신은 아니지만 관광의 관점에서는 시간여행에 가장 가까운 경험이 될 수 있다.
관광은 원래 시간을 소비하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관광은 시간을 소비하는 산업을 넘어 시간을 복원하는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를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시점의 과거를 다시 체험하게 만드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는 결국 데이터가 있다.
그렇다면 부산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제 중요한 것은 관광객 숫자를 하나 더 세는 일이 아니다. 미래 세대가 오늘의 부산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오늘의 부산을 얼마나 충실하게 기록하고 연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데이터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미래 관광을 위한 시간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부산의 관광데이터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필자의 답은 분명하다. 평면 데이터를 넘어 입체 데이터로, 입체 데이터를 넘어 시간축으로 연결되는 데이터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 관광의 경쟁력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때 비로소 부산의 관광은 공간을 넘어 시간을 여행하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26-08-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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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금융허브 전쟁, 부산의 시간 많지 않다
세계 금융중심지의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 금융허브 경쟁은 뉴욕·런던·홍콩 등 오랜 시장과 제도적 기반을 축적한 도시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와 아프리카의 신흥국까지 국가의 성장 전략을 걸고 국제금융센터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오늘날 금융중심지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를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다. 법률·감독·세제·외환·비자·분쟁 해결 제도와 전문 서비스를 얼마나 과감하고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치열한 제도 경쟁의 장이다. 후발국들은 금융 시장과 거래 기반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차별화된 법률 체계와 감독 기구, 파격적인 세제·외환 특례를 앞세워 국제 금융 거래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는 영미법 기반의 금융 구역과 독립 규제 기관, 별도 법원을 결합해 기존 금융 시장의 한계를 제도로 뛰어넘었고,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의 금융 관문으로 성장했다.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도 영미법 원칙과 독립 감독 기관, 국제 법원·중재센터·거래소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축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타슈켄트 국제금융센터 설립을 추진하며 국제상사법원, 별도 금융 감독, 외환과 자본 송금의 자유, 장기 세제 혜택과 외국 전문 인력 특례까지 검토하고 있다. 충분한 시장 기반을 갖추지 못한 후발국조차 시장이 성장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제도를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자본과 금융기관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베트남의 움직임은 부산에 더욱 직접적인 경고다. 베트남은 2045년 고소득 국가 진입 목표와 연계해 호찌민 국제금융센터와 다낭 역내 금융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 정부와 금융 산업 단체인 더시티UK(TheCityUK)의 지원 아래 금융 법규 개혁, 국제 중재, 외화 계좌, 녹색 금융, 전문 인력 비자와 금융·법률·회계 생태계를 함께 설계하고 있다. 제조업·수출·항만을 기반으로 성장한 호찌민이 무역 금융과 공급망 금융을 흡수하면 부산과 직접 경쟁할 수 있다.
이들 사례가 부산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시장의 깊이가 얕다는 사실은 금융허브 도전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할 이유다. 거래가 충분히 쌓일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거래를 끌어오기 위해 금융 법규와 감독 체계를 정비하고 외환·세제 특례, 국제 중재, 전문 인력 유치와 신속한 인허가를 하나의 패키지로 구축해야 한다. 시장의 깊이는 제도를 통해 만들어 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금융중심지 전략도 이 관점에서 재설계돼야 한다. 지금까지 부산은 금융 시장 규모와 민간 금융기관의 부족을 반복적으로 지적해 왔지만, 이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를 국가 차원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는 충분히 적극적이지 못했다. 개별 기관 유치나 공간 조성만으로 국제 거래는 움직이지 않는다. 법률·감독·외환·세제·분쟁 해결 체계를 한 묶음으로 바꾸는 것이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제도 개혁만으로 전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특례를 적용할 구체적인 시장과 거래가 분명하지 않으면 금융특구는 형식에 머문다. 반대로 부산의 산업적 강점만 강조하고 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관련 금융 거래는 계속 서울이나 해외에서 처리될 것이다. 따라서 부산의 제도 개혁과 해양금융 특화는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전략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 점에서 인도의 GIFT 국제금융서비스센터는 현실적인 이정표다. 인도는 뭄바이라는 기존 금융 중심지를 두고도 구자라트주에 별도의 국제금융특구를 조성했다. 자국 기업의 외화 차입, 국제 채권, 펀드, 재보험, 항공기·선박 리스가 해외에서 처리되면서 수수료와 전문 인력, 세수와 금융 정보가 유출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국내 금융 시장 전체를 개방하지 않고 특정 구역과 기능에 외화·비거주자 거래, 통합 감독과 세제 특례를 적용했다.
부산도 해외에서 처리되는 한국 관련 해양금융 거래를 부산으로 환류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인 조선·해운 산업과 항만·물류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선박 금융과 리스, 해상 보험과 재보험, 무역 금융, 항만 프로젝트 금융, 법률·회계 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해외 금융허브에서 이루어진다. 선박은 한국에서 건조하고 화물은 부산항을 통과하지만 금융 수익과 전문 서비스는 해외에 축적되는 구조다.
부산의 제도 개혁은 바로 이 해양금융 수요를 겨냥해야 한다. 비거주자와 외화 표시 선박 금융·리스, 해상 보험, 항만·물류 인프라 금융, 친환경 선박 전환 금융 등에 외환·세제·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부산형 해양금융특구가 필요하다. 범정부 원스톱 조정 체계와 함께 영문 계약, 국제 중재, 해사·국제상사 분쟁 해결, 금융·법률·회계 전문 인력 유입도 지원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국내 금융 질서와 다른 독립적 법률·감독·조세 체계를 전면 도입하기는 어렵다. 제도 이원화와 금융 안정, 조세 형평성, 지역 특혜와 규제 차익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에는 해양·외화 금융이라는 명확한 기능에 한정해 특례를 적용하되, 국제 금융의 개방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내 금융 시장과의 정합성과 금융 안정을 확보할 관리 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후 거래와 제도적 신뢰가 축적되면 적용 업무의 범위와 법률·감독상의 자율성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선택은 제도 개혁과 해양금융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해양 산업이라는 강점을 토대로 개혁의 대상과 범위를 정하고, 과감한 제도 개혁을 통해 그 산업에서 발생하는 국제 금융 거래를 부산으로 끌어오는 것이 핵심이다. 산업적 기반이 없는 금융 특구도,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해양금융 구상도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금융 도시들은 이미 시장의 부족함을 제도로 보완하며 움직이고 있다. 부산도 조선·해운·항만이라는 실물 경쟁력을 국제 금융 거래로 전환할 제도적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부산은 서울의 축소판이 아니라 아시아 해양금융의 독자적 허브로 발전할 수 있다. 금융허브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부산의 시간은 많지 않다.
2026-08-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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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피해자에게 뭘 더 하라고 하지 말라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자리에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해고노동자의 부인은 담담히 답했다.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김애란 작가는 이 대답을 듣고, 자신이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녀의 말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발견한다. 세상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서 철저히 혼자 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그 시간에 잠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라고 했다.
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고립감은 이와 비슷했다. 피해 자체가 세상이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일상의 회복과 세상과의 연결이 아닌, 더 큰 고립감 속으로 피해자를 던져놓는 것일 때가 있다. 젠더폭력처럼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때문에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 방식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피해자에게 더 노력하라는 말을 하면서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사건의 현장에서 고민되어야 할 보완수사권 존폐 문제가 국회로 넘어가 개혁의 언어가 된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논란 끝에 더불어민주당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대신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중수청에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피해자 측의 이의신청권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피해자의 이의제기권 신설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국 피해자가 더 애쓰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당연히 수긍할 수 있다. 검찰이 독점기소권을 악용해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설령 분리의 방향이 옳다 해도,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그간 법조계와 인권단체에서는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범죄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직접 나서서 보완수사권이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로서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인과 약자 변호에 힘써 온 김예원 변호사 역시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건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지금의 방침은 그 공백을 피해자 본인의 노력으로 메우라는 것에 가깝다.
이미 여성단체와 법조인들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진행된 지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과 부실 수사 문제가 더 심화했다고 본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이 경찰에 집중되었으나, 인력과 조직 정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고 수사 역량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경찰의 수사 역량 자체는 결코 낮지 않다. 문제는 수사 역량이 아니라 사법 시스템이며, 보완수사권은 그러한 맥락에서 범죄 피해 수사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제공하는 구조적 수단이 되어 왔다. 피해자의 접근권과 절차적 참여권 보장은 사법시스템 개혁의 핵심적인 사안이지만 이것이 수사 오류의 공백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가정폭력 피해자 중 0.8%, 성폭력 피해자 중 1.8%만이 신고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려한다. 피해자가 겨우 용기를 내 신고하는 것만으로 수사에 커다란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용기 다음에 또 다른 절차적 부담을 얹는 것이 지금의 개편안이다. 이의제기권을 신설하여 마치 권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원래 있어야 했던 보호를 피해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경찰 단계의 이의신청권조차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후의 수사에서도 이의를 제기해야 수사가 겨우 진척되는 구조라면 국가는 형사사법 피해를 구제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애초 형사사법 시스템은 무고하게 피해를 본 이들을 위한 것이다. 형사사법 개혁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거대한 원칙의 문제이기 이전에, 피해자 구제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하는 문제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은 결국 국가의 형사사법 체계가 피해자 구제에 얼마나 적절한지의 문제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니 제발 피해자보고 뭘 더 하라고 하지 마라. 피해자가 더 애쓰고 뭔가를 더 해야만 바뀌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그것에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말아야 한다.
2026-07-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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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AI 청사진에 재난 복원력을 함께 그려야
인공지능(AI)은 도시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항만은 물류를 최적화하고, 공장은 생산을 예측하며, 행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AI가 만드는 편리함 뒤에는 간과하기 쉬운 질문이 있다. ‘AI가 멈추면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이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오늘날 재난을 여러 시스템을 타고 번지는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로 설명한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한 장애가 다른 시스템으로 전이되며 새로운 위험을 낳는다. 에너지, 원자력, 정보기술, 통신, 금융, 교통, 의료, 식량, 방위산업 등 기반시설은 촘촘히 연결돼 있다.
AI가 멈추면 물류·행정·금융도 멈춰
초연결 사회에서 장애 전이되면 위험
위기 발생 때 핵심 기능 지속이 중요
부산시 AI 산업도시 전략도 마찬가지
원전·송전망 타격 땐 항만·공장 '스톱'
기획·설계 단계부터 보안·안전 고려를
지난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 화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무정전 전원 장치의 배터리 화재가 장비 보호를 위한 선제적 전원 차단으로 이어졌고, 정부 업무시스템 수백 개가 영향을 받았다. 민원 서비스는 중단됐고, 우체국 금융과 택배 업무에 차질이 생겼으며, 모바일 신분증 역시 사용할 수 없었다. 단 하나의 시설 장애가 행정과 금융, 물류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대표적인 연쇄 재난이었다.
더 아쉬운 점은 이 위험이 예견됐다는 사실이다.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대전과 공주 센터 간 이중화 네트워크 구축 예산이 요구액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됐다. 평상시에는 매몰 비용처럼 보였던 백업과 네트워크 이중화가 막상 위기에서는 가장 중요한 복원력이었던 셈이다. 당장의 효율을 앞세워 연결망의 안전장치를 줄이는 순간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앞으로 이러한 위험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것이 연결된 AI 기반 사회에서는 데이터센터와 통신망, 클라우드, 전력망이 동시에 작동해야 인공지능도 기능한다. 네트워크가 멈추면 AI가 멈추고, AI가 멈추면 물류와 생산, 행정과 금융의 의사결정까지 함께 멈춘다. 이제 안전은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을 넘어, 위기가 발생해도 핵심 기능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가를 묻는 재난 복원력(disaster resilience)과 연속성(continuity)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현재 부산시가 추진하는 AI 산업도시 전략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AI 기반 스마트 항만과 제조업 인공지능 전환(AX), 동부산 미디어 AI 특구, 서부산 AI산업 운영센터 조성 등을 제시했다. 부산의 경쟁력을 높일 적절한 방향이다. 다만 AI 항만과 스마트 공장, 데이터센터도 결국 전기와 네트워크 위에서만 돌아간다. 부산의 전력은 상당 부분 인접한 고리 원전과 송전망에 기댄다. 더구나 이런 시설은 사이버 공격만이 아니라 방화, 테러,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된 드론 위협 같은 물리적 공격에도 노출된다. 도시가 의존하는 ‘소수의 급소’는 노리기 쉬운 표적이며, 그 한 곳이 무너지면 항만과 공장, 특구가 한꺼번에 멈춰 선다. 여기에 핵심 기술 유출을 막는 산업 보안까지 더해진다. 물리적 보호와 대(對)드론 방호가 더 이상 국방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기반시설의 기본 요건이 된 까닭이다.
그래서 이제는 제도를 꼼꼼히 연결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재해영향평가, 정보보호 사전점검,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 취약점 분석 및 평가, 국가중요시설 방호 계획 등 다양한 사전평가 제도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각각이 개별 법령과 기관 안에서 분절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와 기반 시설에는 재난 위험과 사이버 위협, 물리적 공격, 산업보안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 제도를 연계해 ‘초연결 복합 위협에 대비한 생애주기 통합 영향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현재의 위험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5년, 10년 뒤 예상되는 복합 위협과 연쇄 효과까지 검토해야 한다.
안전은 시설 완공 뒤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다. 기획과 설계 단계부터 보안과 안전을 고려하는 ‘처음부터 안전과 보안을 고려한 설계’가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 대드론 방호와 물리적 보호, 사이버 및 산업보안 역시 AI 도시 청사진에 밑그림부터 함께 담겨야 한다. 부산시와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남부발전, 부산항만공사 등 공공기관, 통신기관, 민간, 국정원, 경찰 등이 동일한 위험지도를 공유해야 한다. 특정 시설이 멈출 때의 연쇄 파급력을 함께 분석하고 개선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첨단 도시는 기술의 나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음 위기는 우리가 가장 약하게 연결해 둔 고리에서 시작될 것이다. 위험은 사고 뒤에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전에 준비하는 것이야 한다. AI 산업도시를 꿈꾸는 부산의 청사진에는 눈부신 혁신만큼이나 치밀한 재난 복원력이 함께 그려져야 한다.
2026-07-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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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말하지 않는 마음의 번역가
같은 문장을 두고도 사람마다 읽는 방식이 다르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도 이해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드러낸다. 어떤 문화는 말한 그대로를 듣고, 어떤 문화는 말하지 않은 행간까지 읽어낸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전자를 저맥락(low-context) 소통, 후자를 고맥락(high-context) 소통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건 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서로의 방식을 모른 채 마주 앉을 때, 한쪽은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고 다른 쪽은 왜 거기서 멈추느냐고 묻는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팀을 이끄는 나는, 매일 이 두 문법 사이에 서 있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오피스에서, 그것도 재택으로 일한다는 건 하루에 두 개의 시계를 동시에 봐야 하는 일이다. 아침에 메신저를 열면 북미 팀원이 남기고 간 문장들이 잔뜩 쌓여 있다. 우리의 아침과 그들의 오후가 포개지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 서머타임이 끝나야 그 시간은 두 시간으로 늘어난다. 겨우 한 시간 늘었을 뿐인데도 체감은 크다. 그 짧은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남은 하루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서로가 편히 저녁을 보낼 수 있도록 바통을 넘기며 일한다.
북미의 동료들은 더없이 친절하다.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내 문장이 더듬거려도 끝까지 기다려주고, 실수를 말할 때조차 상대가 다치지 않을 표현을 고르는 기미가 역력하다. 다만 그 친절에는 또렷한 경계가 있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메신저에는 답장이 없다. 자기 몫이 아닌 일 앞에서는 담당자를 정확히 짚어 일을 넘긴다. 처음엔 조금 서운했지만 이내 알았다. 그것은 무심함이나 냉정함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예의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약속만 하겠다는 정직함이기도 했다. 저맥락의 세계에서는 말한 만큼이 곧 책임의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팀원들과 일할 때 나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낀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한 번 더 확인해 봤습니다”하는 메시지. 담당이 애매한 일을 맡게 됐을 때 “저한테 주시면 해보겠습니다”라며 먼저 손드는 사람. 요청받은 항목만 채우면 그만인데도 다음 단계에 필요할 자료까지 정리해 보내는 팀원. 정해진 몫의 경계를 넘어, 결국 이 일이 잘 되게 만드는 데까지 마음을 쓰는 태도다. 말하지 않은 행간을 읽어내는 고맥락의 문법이, 일의 세계에서는 끝까지 책임지는 얼굴로 나타나는 셈이다.
팀을 맡고 나서 알게 된 애환이 하나 있다. 이 마음이 저쪽의 문법으로는 자동 번역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밤새 고쳐낸 결과물을 앞에 두고도 우리 팀원들은 “아직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바다 건너 저편에서는 정말 미완성인 작업으로 읽힌다. 그래서 팀장의 일 가운데 절반은 번역이다. 겸손을 성과로, 묵묵함을 기여로 옮겨 적는 일. 북미 팀원이 자기 작업을 또렷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동안, 한국 팀원들은 이미 다음 수정본을 따로 저장해두기까지 한다. 팀장이 된 지 오래지 않은 나는, 아직 이 번역이 서툴다. 어떤 날은 팀원의 “괜찮아요”가 진짜 괜찮은 건지 몰라 두세 번을 되묻는다. 다만 분명한 건,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 노력을 지켜보는 일이 팀장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미덕에는 그늘도 있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늘 정해져 있으면, 그 책임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 한 사람을 갉아먹는다. 배려로 시작한 일이 소진으로 끝나는 장면을 나는 너무 많이 봤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도와달라는 말을 가장 늦게 꺼낸다. 그래서 북미식 경계 역시 배워야 할 지혜다. 자기 몫을 분명히 하는 일은 무책임이 아니라 오래 일하기 위한 설계이며, 잘 쉬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문법은 어느 하나를 버리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문제다.
요즘처럼 각자의 몫만 정확히 해내면 된다고 말하는 시대에, 정해진 선 너머까지 마음을 쓰는 사람은 점점 귀해지고 있다. 효율의 언어는 역할과 경계를 중시한다. 하지만 조직을 끝까지 굴러가게 하는 건 그 경계 바깥을 메우는 마음이다. 계약서에도 직무 기술서에도 적히지 않는 이 성실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계산 없이 고마움을 적어두고 싶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한 번 더 확인해준 사람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먼저 손을 든 사람들에게.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그들이 조용히 메워둔 빈틈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어떤 문법에도 적히지 않지만, 함께 일해본 사람만이 아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저편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 서툰 팀장인 내 몫이라면, 앞으로 더 잘 번역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이 고마운 마음을 기록해둔다.
2026-07-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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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블록체인 특구, '지역 생태계'가 먼저다
부산에 본사를 둔 블록체인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왜 지사도 아니고 본사까지 부산에 두셨어요?” “특구니까요” 하고 답하면 상대는 대개 고개를 갸웃한다. 지사만 둬도 혜택은 같은데 왜 본사까지 옮기느냐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과 돈이 몰린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부산엔 지사만 두는 편이 기업으로선 합리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올해 지원사업도 본사든 지사든 부산에 주소만 있으면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과 고용을 실제로 옮긴 기업과 서류상 지사만 둔 기업을 같은 줄에 세우면, 부산에 뿌리내릴 이유는 오히려 사라진다. 기업을 붙잡는 힘은 사무 공간이 아니라 여기 남을 이유에서 나온다.
최근 공개된 자료는 고민을 더한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416억여 원이 투입됐지만, 2022년 이후 새 실증과제가 없었고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도 잡히지 않았다. 이를 모두 부산시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가상자산을 배제한 초기 설계와 중앙 부처 규제, 더딘 법제화 등 지방정부 혼자 넘기 어려운 벽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기업을 발굴하고 무엇을 성과로 부르며 어떻게 부산에 눌러앉게 할지는 부산시가 바꿀 수 있다. 시는 지난달 블록체인 특화 클러스터 사업으로 19개 기업에 55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잘하는 기업에 힘을 싣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짚어야 할 불편한 사실이 있다.
시, 특화 클러스터 19개 기업 지원
잘하는 기업에 힘을 싣는 일은 필요
평가 방식, 행사 횟수·해외 수상 위주
수도권·대학 연구실 출발 기업 유리
부산 잔존율·지역 고용 등 공개해야
청년 창업가·초기 기업 육성 설계를
지금의 평가 방식은 ‘얼마나 잘하나’를 기준으로 기업을 뽑는 데 가깝다. 특허와 실적으로 줄을 세우면 앞자리는 인력과 자본을 갖춘 수도권 기업, 그리고 대학 연구실에서 출발한 소수 기업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공정한 심사라는 이름으로 스펙 순위를 매길수록, 이제 막 시작한 부산 청년 창업가는 정작 명단에 오르지 못한다. 그렇게 예산은 준비된 소수에게 쏠리고 부산 기업은 수도권에 밀린다. 평가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설계가 낳은 결과다.
부산에 필요한 것은 대표기업 몇 곳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다. 새 기업이 끊임없이 나오고, 넘어진 창업가가 다시 뛰며, 먼저 자란 기업이 후배에 투자하는 순환이다. 화려한 국제행사와 해외 수상은 목표가 아니라 생태계로 가는 수단일 뿐이다. 수상 소식 한 줄보다 값진 것은, 그 기업이 부산 청년을 몇 명 뽑고 부산에서 실증을 몇 건 쌓았는가다. 그러니 조금 부족해도 부산에 뿌리내리려는 기업의 애로를 먼저 듣고, 제 발로 서도록 키워야 한다.
참고할 만한 모델이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TIPS)다. 민간 운영사가 유망 기업을 먼저 발굴해 자기 돈을 투자하고 보육·추천하면, 정부가 평가를 거쳐 연구개발·사업화 자금을 얹어주는 구조다. 핵심은 민간의 평가가 아니라 민간의 돈이다. 외부 평가위원은 기업이 망해도 손실을 함께 지지 않지만, 제 돈을 먼저 넣은 운영사는 선발 뒤에도 후속 투자와 판로, 인재까지 챙길 이유가 생긴다. 고르는 권한과 실패의 책임을 한 줄로 묶은 것, 이것이 팁스가 작동하는 힘이다. 부산이 새 기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민간이 먼저 투자한 기업을 지원하는 B-TIPS가 있고,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민간 연계와 지역 펀드를 맡고 있다. 기존 블록체인 예산 일부를 이 구조에 연결해 ‘블록체인 B-TIPS’ 트랙으로 키우면 된다. 운영사는 공개경쟁으로 복수 선정하고 반드시 자기 자금을 먼저 투자하게 하되, 추천 한도와 이해관계 회피 기준으로 쏠림을 막으면 된다. 시는 기업을 직접 고르기보다 규칙을 설계하고 감독하는 편이 낫다.
부산의 예산이 BIFC에 간판만 건 외지 기업의 손쉬운 재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초기 사무 공간과 실증은 지사에도 열되, 대규모 사업화 자금은 본사 이전, 부산 연구개발 조직, 지역 고용 같은 실질 기여에 연동해야 한다. 청년팀과 초기 기업에는 작은 실증 기회를 따로 열어, 스펙 경쟁에 밀린다는 이유로 부산 청년이 출발선조차 밟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성적표도 바꿔야 한다. 입주 기업 수와 행사 횟수, 해외 전시·수상 건수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원 종료 2년 뒤의 부산 잔존율, 지역 고용, 민간 후속 투자, 유료 매출, 실증의 상용 계약 전환율을 공개해야 한다. 재는 자를 바꾸면 행정이 향하는 곳도 바뀐다. 지난 1일 출범한 전재수 시정은 이 판을 다시 짤 기회를 얻었다. 바꿔야 할 것은 예산이 흐르는 길과 성과를 재는 잣대다. 정책의 연속성은 특정 인사가 아니라 공개된 규칙에서 나와야 한다.
4년 뒤 부산이 내밀어야 할 것은 몇몇 기업이 해외에서 받아 온 상패가 아니다. 부산에서 창업한 청년이 얼마나 남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용했으며, 외부 자본이 얼마나 들어왔고, 부산에서 만든 서비스가 얼마나 팔렸는가다. 수상 실적도 값지다. 그러나 그것은 부산의 생태계가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는 소수 정예를 겨루게 하는 대회장을 넘어, 지역 기업이 함께 자라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2026-07-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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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명예훼손죄 개정의 과제
이번 달 7일부터 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개정법은 불법성이 확인된 허위·조작정보의 반복적인 유통과 수익화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규정했다. 허위·조작정보임을 알면서도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유포하여 타인의 인격권·재산권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한 경우 유통을 금지하고, 징벌적 성격의 손해배상도 가능하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규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 보호의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명예훼손 처벌 체계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를 나누어 처벌한다. 또한 형법 제309조는 신문·잡지 등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개적으로 명예를 훼손한 경우를 별도로 처벌하면서, 비방할 목적이 있는 경우 사실적시와 허위사실적시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우리 법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구분하여 명예훼손을 규정하고 있는데, 온라인 영역에서 별도의 가중 규제를 두는 것이 타당한지, 또한 진실한 사실의 적시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개정 논의가 있었다. 최근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었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를 둘러싼 개정 논의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거짓이 아닌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표현의 경우 성립한다. 모든 사실적시 행위가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310조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규정하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역시 비방 목적이 인정되어야 처벌할 수 있다. 이러한 예외 인정 조항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한 행위 자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국제적으로도 비교적 드문 입법례에 속한다. 영국은 2010년 명예훼손에 관한 형사처벌을 폐지했고, 미국 역시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명예훼손 문제를 민사적 구제의 영역에서 해결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도 명예훼손죄 자체는 유지하고 있으나 공익성 판단과 위법성 조각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유엔 인권위원회는 2011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이 있었지만 여전히 폐지론과 존치론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지난 2021년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 속도와 파급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고, 훼손된 명예는 사후적으로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수단만으로는 예방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며, 진실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개인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위헌의견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실한 사실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정보 공유가 핵심적 가치라고 보았다.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행위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내부고발, 소비자 후기, 공익적 목적의 폭로와 같은 표현 활동이 형사처벌의 위험 때문에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찬반 대립을 절충하려는 입법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 산하 형사법개정특별위원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전면 폐지하거나 현행대로 유지하는 대신, 처벌 대상을 사생활에 관한 비밀 침해에 한정하는 방향의 개정을 권고할 예정이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적시 행위 중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로 인정되는 내용인 경우 처벌하고, 그 외의 경우는 처벌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취지이다.
명예훼손죄 개정 논의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 보호라는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에 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정보의 확산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일단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익적 문제 제기와 정보 공유를 위한 표현은 보장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명예훼손죄 개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사생활 침해에 대해서는 실효적인 구제 수단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양립이 어려운 가치 사이의 균형을 위한 정교한 법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2026-07-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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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의 과학기술 혁신, 누가 설계할 것인가
7월 1일, 민선 9기 전재수 부산시정이 공식 출범했다. 새 시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해양수도 부산’과 ‘인공지능(AI) 대전환 선도 도시’를 시정의 두 축으로 제시했다. 반갑고 고무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비전과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부산의 과학기술 미래는 지금 누가, 어떤 구조로 설계하고 있는가.
올해 4월 국회는 숙원이었던 ‘지역 주도 과학기술 혁신 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2027년 1월 시행 예정인 이 법은 시도지사가 5년 단위 과학기술 혁신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지역이 직접 R&D 사업을 기획·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민선 9기 부산시는 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임기를 시작한다. 출발 조건은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지역의 혁신 역량까지 함께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법은 출발선일 뿐, 실제 성패는 이를 설계하고 실행할 역량에 달려 있다.
부산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정부의 지역 과학기술 혁신 역량 평가를 보면 R&D 투자액, 연구 인력, 대학 경쟁력 등 주요 지표에서 부산은 수도권과 대전에 크게 뒤처져 있다. 이러한 취약성은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국 국가 연구개발 예산 중 부산의 몫은 고작 4.2%에 불과하다. 그나마 해양수산부 R&D 예산의 44.6%를 부산이 유치하며 해양 분야에서만큼은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해양수도를 표방하는 도시로서 당연한 결과지만, 동시에 해양을 제외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부산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처럼 부산의 과학기술 기반이 취약한 이유는 단순히 연구개발 자원의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를 장기적으로 기획하고 조정할 정책 추진 체계마저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부산의 과학기술 전담 싱크탱크인 BISTEP(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은 시장이 바뀔 때마다 통합·구조조정 논란에 흔들리며 일관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시정의 잦은 개입과 구조적 불안정이 되풀이되는 사이 전문 인력은 떠났고, 도시의 과학기술을 설계할 두뇌가 싹을 틔우기도 전에 뿌리째 흔들린 결과다. 과학기술 행정 체계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 기획은 이쪽, 균형발전은 저쪽, 산학협력은 또 다른 부서가 맡는 식으로 여러 실·국에 나뉘어 각자의 논리로 움직여 왔다. 결국 그동안 부산의 과학기술 혁신을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했던 것이다. 전략은 분산되고 책임은 흐려졌으며, 장기적인 혁신 역량도 축적되지 못했다.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지역이 스스로 기술 전략을 기획하도록 장기 재정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은 런던 중심의 연구개발 투자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일본 역시 지자체를 단순한 정책 집행자가 아니라 혁신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격상시켰다. 지역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면 혁신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이 설계하고 지방이 따르는 하향식 구조로는 더 이상 도시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민선 9기 새 시정이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대전시는 이미 정무경제과학부시장 직제를 도입해 과학기술과 산업, 경제 행정을 하나의 라인에서 총괄하고 있다. 부산에도 미래혁신부시장 직제가 있지만, 과학기술 혁신까지 총괄하는 라인으로 작동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해양수도와 AI 대전환을 지향하는 부산이 대전의 모델을 참고할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해양수도의 완성은 항만과 물류의 확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양 환경, 해양 에너지, 해양 모빌리티는 물론 AI 기반 해양 디지털 전환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세계가 인정하는 해양 중심 도시가 될 수 있다. 해양과 과학기술, 산업과 균형 발전으로 흩어진 행정 체계를 한 지붕 아래로 모아야 한다. 동시에 부산의 여러 대학에 축적된 공학, 해양과학, 정보기술 분야의 연구 역량과 인재들이 중앙 공모 사업의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부산 혁신의 실질적 파트너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정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2027년 새 법률이 본격 시행되기 전, 부산시는 그에 걸맞은 지역 과학기술 혁신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한다. 그러나 법은 이미 마련되었어도 부산의 준비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기존 계획과의 위계 정리도, 혁신 계획이 담아야 할 범위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 주체와 실행 구조를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새 시장의 임기가 시작된 지금이 그 출발점이다. 민선 9기 부산의 과학기술 혁신이, 그 설계에서 첫 단추를 꿰기를 기대한다.
2026-07-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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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유럽의 폭염은 어째서 조롱거리가 되었나
이렇게 시원한 여름이 있었나 싶다. 7월이 됐는데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한낮에도 그늘에 있으면 그리 덥지 않다. 기상청은 지난달 전국 폭염일수가 0.6일로, 평년(0.7일)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몇 년 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6월 열대야는 자취를 감췄다.
유럽은 정반대다. 대륙 전체가 북부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에 갇히며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스페인과 프랑스에선 폭염으로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폴란드와 체코는 기후가 서늘한 지역에 있음에도 최고기온이 한때 40도를 넘겼다. 북유럽 국가 덴마크도 일부 지역이 37도를 기록했다고 하니, 유럽을 데우고 있는 ‘오메가 열돔’의 위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여름 날씨 선선해 에어컨 보급 낮고
지구온난화 등 기후 위기 의제 주도
에너지 사용량 많은 제조업 국가 비판
최근 기록적 폭염에 냉방기기 구입 붐
AI 데이터센터 건립 위해 탈원전 철회
일방적 잣대 강요하는 오만 경계해야
기후 위기는 지구적 재앙이다. 유럽에 닥친 폭염은 다른 대륙 사람들에게도 위기감을 줄 법 하다. 그런데 폭염에 속수무책인 유럽의 현 상황은 조롱거리가 된 듯 보인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에어컨이다. 유럽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이 매우 낮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가 24% 수준이고, 독일과 영국은 10% 이하인 걸로 전해진다. 몽골 정도 되는 높은 위도에 서안 해양성 기후까지 더해지며 여름엔 선선하고 겨울엔 온화한 날씨가 지속됐던 덕분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폭염이 계속되면서 에어컨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한 마트에서 사람들이 냉방기기를 사기 위해 오픈런을 벌이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선 언론인·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낮은 에어컨 보급률을 비웃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에 오드리 풀바 파리 부시장은 “유럽 폭염은 미국의 에어컨 사용 탓”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폭염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우리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선 “에어컨 설치 기사도 없을 텐데 설치는 할 수 있겠냐”거나 “에어컨 파는 회사 주식 사자”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론은 한 단어로 압축된다. 업보라는 것이다.
유럽은 에어컨 사용에 부정적이었다. 에어컨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자 미국식 과소비의 상징이라는 이유다. 사실 유럽은 에어컨 사용뿐 아니라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한 의제들을 생산하고 주도해 왔다. 탈탄소 재생에너지 확대 기준을 정립하고 때론 강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토론 당시 언급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지게 된 RE100이 대표적이다. 2014년 영국에서 시작된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2050년까지 전량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캠페인이다. RE100 자체는 강제성이 없지만 하나의 지표로서 수출·공급 계약 등에 영향을 끼친다. 원전은 RE100 에너지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럽은 전체 산업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로 산업에 필요한 전기를 충당하는 게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재생에너지만 가지고는 산업을 돌릴 수 없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제조업 생산기지는 아시아 국가들에 떠넘겨놓고, 원자력·화력 발전 이용을 빌미로 무역장벽을 세우는 건 사다리 걷어차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마다 놓여 있는 기후 환경이 다르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하나의 규범적 기준을 세운다는 건 오만이자 위선이다. 자전거는 선이고 자동차는 악인가. 절대적인 건 없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의 높은 자전거 수송 분담률을 들어 우리나 미국의 자동차 이용을 비판한다. 네덜란드 기온은 연평균 10~11도로, 더워도 25도를 넘는 일이 별로 없고 추워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처럼 봄가을이 계속되는 날씨라면 우리도 자전거 타는 인구가 늘고 그만큼 인프라도 갖춰졌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오늘날 폭염으로 신음하는 유럽에 조소를 보내는 건 이러한 반발심이 누적된 결과다.
유럽이 주도한 기후 질서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유럽은 대대적인 탈원전에 나섰다. 부족분은 러시아에서 싼값에 천연가스를 들여와 메웠다. 그러던 중 러·우 전쟁이 발발하며 차질이 빚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EU는 2022년 7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친환경 가이드라인(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했다. 최근엔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벨기에·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 등 탈원전을 천명했던 국가들이 ‘탈탈원전’으로 돌아서는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4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에어컨 설치 확대가 주요 화두로 부상했다고 한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강요하는 게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2026-07-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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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축제, 환대의 자리
어느 때보다 선선했던 6월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祝祭, festival)는 축하와 제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과 시간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삶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있어 함께 축하하고 때로는 슬퍼할 기회를 준다. 인생에 그런 축제가 있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끈끈하게 붙들어 매는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축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이다. 지금은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며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 뒤로도 여러 축제를 만났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축제의 자리는 몇 안 된다.
크고 작은 축제들이 개인과 사회 연결
경계 허물고 연대 희망 주면 오래 남아
축제 단순 여흥 아닌 삶에 필요한 것
가벼움만 남고 환대 없는 축제 적잖아
부산 여름 축제 환대의 내력 되살려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는 힘 돼야
몇 해째 참가하는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이 있다. 하와이 전통 춤 훌라를 가르치는 커뮤니티가 여는 축제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은 수백 명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이 축제의 바탕은 알로하(Aloha) 정신이다. 알로하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는 하와이의 인사말이다. 그래서인지 서툴고 어리숙한 몸짓도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어떤 모습이든 받아지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곁의 사람들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낀다. 낯선 이들과 눈빛과 몸짓을 나누다 보면 편안함까지도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재작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탄핵 집회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구호를 외치던 그 밤을 나는 일종의 축제로 기억한다. 그 겨울 광장에는 슬픔과 분노만 있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함께 그려 보는 묘한 활기가 흘렀다. 그 축제 같은 집회의 동력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힘을 넘겨주어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 밤의 결속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세 축제가 나에게 남긴 것을 환대라고 부르고 싶다.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는 뿌리가 같다. 둘 다 낯선 이를 가리키는 옛말에서 갈라져 나왔다.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들일 것인가, 위협으로 밀어낼 것인가. 축제란 그 갈림길에서 환대를 택하는 자리다. 훌라에 흐르는 알로하의 정신이 그러하듯, 좋은 축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너와 나 사이의 벽을 낮춘다. 그렇게 축제는 사람을 사람에게, 나와 사회를 잇는 오래된 방식이 된다.
축제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여흥은 아니다. 가볍기보다 무거운 것,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빈곤한 시대에도 사람들이 축제를 멈추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무게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리가 죽음의 자리다. 옛사람들은 장례조차 잔치로 감쌌다. 떠나는 이의 곁에서 산 사람들의 웃음과 음식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누군가 세상을 등지는 동안에도 세상의 소리는 멈추지 않고 남은 이들이 서로의 곁을 지킨다는 신호와 같았다. 축제는 혼자 삼키는 침묵이 아닌 기쁨과 슬픔까지 함께 끌어안아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만나는 축제는 그 무게를 자주 잃는다. 잠시 체험하고 발을 담갔다가 빼는 소비의 자리, 재미있는 경험 하나와 사진 한 장을 얻어 돌아가는 자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가벼움만 남고 의미와 환대가 빠질 때 축제는 시든다. 그래서 어설프게 차려진 지역 축제 앞에서 느끼는 실망은 한 개인의 투정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축제가 본래 우리를 서로에게 이어 주던 자리인 만큼, 그 자리가 헐거워질 때 아쉬움은 지역 공동체와 사회의 몫이 된다.
여름을 기점으로 부산에도 여러 축제가 열린다. 8월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의 바다축제, 가을 삼락생태공원의 록 페스티벌, 10월 전 세계 영화인이 모여드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 화려한 볼거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축제도 반갑지만, 나는 그 축제들이 조금 더 환대의 자리이기를, 그 가치를 잘 보존하기를 바란다. 잘 차려진 환대는 그 자체로 가장 오래가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환대받은 사람은 그 도시를 마음에 담아 간다.
부산은 오래 사람을 맞아들이던 도시다. 피란의 시절 낯선 이들을 품었고,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건을 오가게 했다. 그 환대의 내력이 올여름 축제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어떨까. 함께 울고 웃으며 경계를 허문 기억은 몸에 남아,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이번 여름 부산의 축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스쳐 가는 눈요기와 사진 몇 장일까, 아니면 낯선 이의 어깨에 스스럼없이 손을 얹게 하고 이 도시를 오래 아끼게 만드는 환대일까.
2026-07-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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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의 '관계인구'를 늘리자
최근 일본을 방문하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청년이 수도권 대학 재학 중 오키나와의 지방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고, 졸업 후 그 지역에 정착했다는 이야기였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 학점 교류 프로그램 덕분에 기숙사에 머물며 공부하고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그 경험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러한 사례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26년도 예산에 ‘도시와 지방의 연계를 통한 국내유학 촉진 사업’ 예산 10억 엔을 새로 편성했다. 수도권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지방대학에서 공부하고 지역 기업과 연계한 인턴십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예산을 배정한 것이다. 단순한 학점교류 차원에서 만든 사업은 아니었다. 청년들에게 “지방에 살아보니 괜찮다”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국가 전략이다.
최근 일본의 지방소멸 대응 정책에서 가장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이러한 ‘관계인구’(關係人口)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자리 잡고 있는 ‘생활인구’와 유사한 개념으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배우고 일하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주하지 않는다. 먼저 경험하고 애정을 갖게 된 뒤 정착을 고민한다. 정주인구는 관계인구의 결과물인 셈이다.
발트해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이 개념을 국가 차원에서 실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에스토니아는 2014년 세계 최초로 전자거주권(e-Residency)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시민권이나 영주권은 아니지만 전 세계 누구나 디지털 신분증을 부여받아 에스토니아의 행정·금융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디지털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은 기업 설립과 운영, 세무 처리 등을 온라인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유럽연합(EU) 시장에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전 세계 기업가와 디지털 노마드들이 에스토니아와 연결되기 시작했고, 뒤이어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현재 180여 개국에서 수십만 명이 전자거주권을 취득했고, 이를 통해 수만 개 기업이 설립됐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 제도가 수억 유로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람을 물리적으로 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부산 역시 관계인구 확대라는 관점에서 미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집중을 단순히 막아야 할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부산과 연결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있는 대학 학생들이 졸업 전에 지방대학에서 한 학기 이상 생활할 경우 국가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떨까. 학생들은 학업은 차질없이 이어가면서도 관광객이 아닌 주민의 시선으로 지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울산·경남과 일본 규슈를 연결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부울경과 규슈 지역 대학들이 연합해 학생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의 도시에서 한 학기씩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럽의 에라스무스(Erasmus) 프로그램처럼 ‘부울경-규슈판 에라스무스’를 만든다면 두 나라 젊은 세대의 이동과 교류는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활발해질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87년 시작된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유럽 각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도록 지원하며 국가 간 관계인구를 확대하고 유럽 통합의 토대를 다진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은 또 에스토니아 사례를 참고해 외국인과 외지인 창업가들이 부산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부산형 디지털 거주제도’를 검토해 볼 수도 있다. 부산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법적 제약이 있겠지만, 중앙정부의 제도 틀 안에서도 창업·금융·행정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모델은 충분히 가능한다는 판단이다. 더 나아가 부산만의 특례를 과감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 지원에 나선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오는 10월 말 부산에서 ‘제19회 부산-후쿠오카 포럼’이 개최된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하자는 취지로 출범한 이 포럼은 이번에 ‘관계인구 확대’를 핵심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도시는 사람을 붙잡는 것만으로 더는 성장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과 자본, 아이디어를 끌어들이는 도시가 경쟁력을 갖는 시대다. 앞으로 부산은 수도권과 일본 규슈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경(地境)을 넓혀야 부산의 미래도 넓어진다.
2026-07-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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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중구에서 생각해보는 BTS·나운규·부산
방탄소년단 BTS가 일본, 미국, 멕시코에 이어 부산 공연을 마치고 유럽에 머물고 있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유럽을 휘저은 후에는 다시 중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공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유랑할 때 김구 선생은 일찍이 〈백범일지〉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랬는데, 광복 70년 만에 실제로 청년 일곱 명이 세계 대중문화를 장악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세계 인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믿기지 않는 일이 우리 앞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2~13일 부산 공연 때만 해도 우리 도시를 찾은 BTS 팬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만물에 뿌리가 있듯이, 자랑스러운 ‘아리랑’ 세계 공연에도 뿌리가 있다. 그런데 BTS의 ‘아리랑’은 딱 100년 전인 1926년 춘사 나운규(1902~1937)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다. 본조아리랑 혹은 경기 아리랑이라고 불리는 이 노래는, 그러니까 까마득한 옛날부터 우리가 불러오던 곡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풍운아 나운규가 단성사 합주단과 협력하여 만든 창작곡이다. 노랫말도 물론 나운규의 작품이다. 식민지 시기의 민족적 울분을 통쾌히 달래준 영화 ‘아리랑’은 서울 유학 후 실성해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영진이 동네 악덕 지주의 하수인에게 시달리는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보며 겪는 수난과 핍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끝부분에서 영진이 일본 순사에게 살인범으로 붙들려 손을 묶인 채 끌려갈 때, 마을 사람 모두가 아리랑 고개까지 따라 나와 눈물과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가 BTS의 ‘아리랑’이다.
김구 선생 열망한 '높은 문화의 힘'
BTS 아리랑 세계 공연으로 현실화
뿌리는 100년 전 나운규 동명 영화
민족적 울분 창작 주제가로 녹여내
당시 부산 중구서 곡 다듬었을 듯
관련 이야기 발굴, 도시 가치 높여야
나운규가 ‘문예영화’라는 잡지에 남긴 ‘나의 러시아 방랑기’라는 자서전을 보면, 함경도 회령 출신인 그는 1919년 3월 만주의 명동 중학교 재학 중에 3·1운동에 가담하여 일경에 쫓기는 바람에 ‘장발장처럼’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를 2년간 떠돈다. 이후 비밀결사조직 ‘도판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서울에서 체포되어 청진 감옥에 2년간 갇혀있다가, 1924년 초에 “영화나 해보자”라며 책과 이부자리를 팔아 부산으로 내려온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인 자본가와 영화 기술자, 조선인 연출자와 배우들이 모여 한국 최초의 영화사인 ‘조선키네마 주식회사’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운규는 부산에서 ‘해의 비곡’ ‘운영전’ ‘심청전’ ‘농중조’ 등 네 개의 작품에 출연하여 단역을 맡거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 영화인으로서의 새로운 꿈을 키웠다. 그리곤 2년 만인 1926년 초에 서울로 상경, 바로 그 해에 위대한 영화 ‘아리랑’과 그 주제곡 ‘아리랑’을 민족 앞에 터뜨렸다. 나는 그가 어릴 적 고향의 철도 공사장에서 처음 들었다는, 남쪽 출신의 어느 인부가 불렀다는 그 아리랑 가락을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청진 감옥에서도 계속 품고 있다가, 부산에서 그 씨앗을 개화했다고 본다. 중구의 40계단문화관에서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주)조선키네마가 있던 자리로 가본다. 원래는 러시아 외무부가 부산주재 러시아 부 영사관 건축용지로 사두었던 곳인데, 조선키네마의 영화 작업이 주로 이 터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당시를 알리는 벽화와 동판만 남아있지만, 나운규 선생도 밤낮없이 여기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내려가서, 매립지의 일본인 거리를 돌아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는 관부연락선 부두까지 수시로 오가면서 BTS의 아리랑 곡조와 가사를 속으로 다듬고 다듬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연결이 안 된다. 아무리 나운규이고 아무리 천재라도, 부산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바로 그해 10월 1일에 단성사에서 곧바로 ‘아리랑’ 폭탄을 터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연속적이고,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뿌리가 있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BTS의 아리랑 세계 투어와 세계 인민의 아리랑 합창 깊은 곳에 청년 나운규의 방랑과 고뇌,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부산 중구의 담벼락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약속이 있어 연산동에서 수영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지민의 사진이 도배된 BTS 열차에 우연히 앉았다. 아리랑~나운규~(주)조선키네마 연결선 위에서 계속 곱씹다 보면, 지민과 정국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것,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불리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과제는 우리가 몰랐던 숨은 이야기를 더 발굴하고 얽고 접속하여 ‘아리랑의 도시’ ‘BTS 성지순례 도시’로서의 부산의 문화지도를 새롭게 더 보충하는 일일 것이다. 나운규와 아리랑과 BTS를 원본으로 새 형태의 창조적인 데칼코마니를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형성하여, 우리의 도시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작업일 것이다.
2026-06-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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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클래리티 법안,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
6월 1일, 미국 상원 본회의 의사일정에 ‘디지털 자산 시장구조법’(CLARITY Act)이 정식 등재됐다. 지난달 14일 상원 은행위원회를 초당적 표결로 통과한 데 이은 후속 절차다. 의회가 8월 휴회에 들어가기 전 본회의 표결이 이뤄진다면, 미국은 2025년 7월 시행에 들어간 스테이블코인 규율법(GENIUS Act)에 이어 두 번째 디지털 자산 입법을 완성하게 된다. 시장구조법과 스테이블코인법을 분리해 단계적으로 통과시키는 미국의 입법 전략은, 십수 년간 모호한 권한 다툼 속에 갇혀 있던 디지털 자산 시장을 마침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결정타로 평가받는다.
두 법안의 의미는 분명하다. GENIUS법이 ‘디지털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관한 연방 차원의 통일된 규칙을 세웠다면, CLARITY법은 디지털 자산을 디지털 상품과 투자 계약 자산으로 나누어 각각 CFTC와 SEC의 관할로 분명히 정리한다. 그동안 발행 기업과 거래소, 투자자 모두를 괴롭히던 ‘이것이 증권인가 상품인가’의 회색지대가 해소되는 것이다. 코인베이스, 서클, 리플 같은 산업계는 물론, 그동안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월가의 자산운용사들까지 이 법안 통과를 일제히 기다리는 이유다. 규칙이 분명해지면 자본은 빠르게 들어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지난해 출범한 새 정부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시장구조를 함께 다루겠다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1년 가까이 국회에 머물러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치 일정이 다소 정리됐지만, 입법의 동력은 여전히 약하다. 한 번에 모든 쟁점을 풀려는 ‘통합 입법’ 방식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이 이 어려운 작업을 ‘분리 입법’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인프라, 시장구조는 자본시장 질서라는 서로 다른 성격을 인정하고, 합의가 가능한 영역부터 차례로 매듭지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모든 쟁점을 하나의 법안에 담으려다 보니, 어느 한 쟁점에 합의가 늦어지면 전체가 멈춰 서는 구조다. 입법의 속도가 곧 산업의 속도이고, 그 속도의 격차가 결국 시장의 격차로 굳어진다.
지체의 비용은 이미 눈에 보인다. 한 블록체인 보안 업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최근 1년간 640억 달러에 달했다. 거래의 대부분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한 해외 자산 진입이다. 한국 투자자의 자본이, 한국의 결제·송금 인프라가, 한국이 만들지 못한 디지털 화폐를 통해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 번 자리 잡은 결제 표준은 규제가 정비된 뒤에도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의 CLARITY법이 통과되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연방 인증’이라는 법적 옷까지 입게 되면, 그 흐름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입법이 아니라 ‘우선 가능한 입법’이다. 첫째, 원화 스테이블코인부터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 발행 주체에 대한 이견은 시행령과 인가 심사 단계의 유연성으로도 풀 수 있다. 큰 틀의 법적 정의와 준비자산 요건, 이용자 보호 장치만 갖춰진다면 시장은 그 위에서 자라난다. 둘째, 시장구조법은 디지털 자산의 분류와 감독 권한의 분배에 집중해 별도 트랙으로 추진해야 한다. 자본시장법과의 정합성이라는 무거운 숙제는 분리해서 다뤄야 일정을 지킬 수 있다. 셋째, 커스터디·청산·결제 같은 인프라 영역의 인허가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 법안 통과와 동시에 시장이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특히 이 변화는 부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양수산부와 HMM의 부산 이전으로 ‘해양 금융 도시’로의 도약 기반이 마련됐지만, 그 위에 얹힐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없다면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미국의 CLARITY 체제가 자리 잡으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자본은 빠르게 재편될 것이고, 그 흐름을 부산이라는 도시가 받아내기 위해서는 중앙의 입법과 별개로 지역 단위의 규제 샌드박스, 시범 사업, 인재 양성 채널이 동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다른 도시가 아닌 부산이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준비된 도시’만이 그 자본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디지털 자산 시장구조법을 본회의에 올린 이 시점은, 한국에도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미국이 입법을 마치고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다듬는 데 들어가는 1~2년의 공백기야말로, 한국이 따라잡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디지털 화폐 시대의 결제·자본 흐름은 우리 손에 닿지 않는 곳에서 굳어질 것이고, 그때 가서 만들어 낸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선택지’가 아니라 ‘대안’으로 남게 된다. 입법은 정치이지만, 동시에 산업이고 또 시간의 문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만들어진 표준’을 받아쓰는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2026-06-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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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SF와 시대유감
이번 1학기 뉴미디어 문화 관련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SF(Science Fiction) 장르를 공부했다. 다양한 장르 가운데 SF에 주목한 까닭은 오늘날 뉴미디어에서 생산, 유통되는 콘텐츠 대부분이 SF적 상상력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키 17’과 ‘원더랜드’,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아이돌 그룹 에스파(aespa)의 가상 아바타 ‘ae-aespa’에 이르기까지 SF적 상상력의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낯선 미래에 대한 상상이 가장 익숙한 문화적 형식이 된 셈이다.
SF 장르에서는 광활한 우주 전경이나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기술 같은 스펙터클적 요소가 주요하게 활용된다. 그런 만큼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시각 매체에서의 강세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요사이 한국문학에서도 SF가 눈에 띄게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적잖이 흥미롭다. 아마 전통적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SF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비주류적 장르로 인식되기도 할 것이다. 일본식 번역어인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SF는 허무맹랑한 공상(空想)으로 가득 찬 대중 오락물 정도로 여겨졌다. 한낙원의 〈금성탐험대〉를 위시한 소년 과학소설에서부터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이르는 SF 문학의 흐름이 있었지만, 일부 마니아층이 즐기는 주변부적 하위문화에 머물러 있었다.
영화·웹소설 등 뉴미디어 콘텐츠 기반
낯선 미래 상상이 익숙한 문화적 형식
2020년 전후 한국문학 주요 장르 부상
청년 작가 잇따라 등장 독자 관심 증가
계층 불평등·미래 불확실성·기후 위기
인간의 공존 방식과 대안적 미래 제시
2020년을 전후로 SF는 한국문학의 주요 장르로 급부상했다. 변방에 위치하던 장르가 중심부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큰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한가운데 김초엽, 천선란과 같은 1990년대생 청년 작가들이 있었다. 2019년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발간은 한국 SF 문학의 파급력을 극적으로 보여준 계기였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이 잇따라 출간되며 SF의 확산을 이끌었다. 이와 더불어, SF 소설에 대한 청년 세대의 관심도 빠르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오늘날 청년 작가와 독자들은 이토록 SF에 주목하는 것일까?
근대소설에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리얼리즘적 경향이 우세했다. 현실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판단 위에서 미래의 전망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리얼리즘적 전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재와 가상이 마구 뒤섞인 ‘매트릭스’ 같은 세계 속에서 미래는커녕 발붙인 현실조차도 쉽게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의 감각이 SF 장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SF는 현실이 아닌 낯선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그 낯선 세계는 계층적 불평등 심화와 미래의 불확실성 증대, 기후 위기를 비롯한 전 지구적 위기 상황 등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즉, SF 소설은 청년 세대의 무의식에 자리한 불안감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 SF 소설이 그러한 무의식적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전통적 SF 문법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전통적 SF가 기술 문명의 스펙터클이나 종말론적 세계의 실상을 전면화했다면, 최근 SF 소설은 그러한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 혹은 비인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둔다. 예컨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개척이 활발히 진행된 미래를 배경으로 가닿을 수 없는 행성으로 떠난 가족을 100년도 넘게 그리워하는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가 100년을 훌쩍 넘겨 살 수 있었던 것은 냉동 수면 기술 덕택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족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까닭 역시 새로운 웜홀 통로가 발견되면서 기존 항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관계의 단절, 그리고 기술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관계성의 가치를 다룬다. 이처럼 한국 SF는 인간의 상실과 고독, 돌봄과 연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는지, 그리고 관계의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드러낸다.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기성세대의 낡은 문화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감행하던 서태지는 ‘시대유감(時代遺憾)’에서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다며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라고 부르짖었다. 모두가 광기에 사로잡히는 미래가 세기말의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2024년 에스파는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시대에 대한 유감은 여전한 것이다. 지금의 청년 작가와 독자들은 유감스러운 시대를 향해 직설적 비판을 가하는 대신, SF를 통해 또 다른 대안적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렇기에 SF 소설의 흥행은 유감스러운 시대를 건너가는 청년 세대의 대응인지도 모른다.
2026-06-22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