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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산을 높이는 질문, 산을 내려오는 질문
브리아나 위스트는 그의 책 〈마운틴 이즈 유(The Mountain Is You)〉에서 서늘한 비유를 던진다. “산이 두 지각판의 충돌로 솟아오르듯, 당신의 산도 공존하면서 서로 충돌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구와 그 자리에 머물려는 욕구가 부딪칠 때, 사람은 스스로 제 발목을 잡는다. 위스트는 이 익숙한 자기 파괴(self-sabotage)야말로 우리가 매일 오르는 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유난히 많은 이들이 이 산을 오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무언가를 쌓느라 분주하다. 자격증, 영어 점수, 사이드 프로젝트, SNS 브랜딩까지. 한 줄의 스펙을 더하려 어제보다 오늘 더 부지런히 달린다. 외국계 기업에서 홀로 모니터를 마주하며 일하는 나 역시 오래 그 대열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위스트의 질문법으로 그 분주함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꽤 충격적인 답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안정감에 집착하고 있다.
이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어지러운 속도다. 어제의 필수 역량이 오늘은 한물 간 것이 되고, 새로 익힌 도구가 채 손에 익기도 전에 더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흐름 하나를 겨우 따라잡으면 세상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솔직히 이 숨 가쁜 추격전은 흥미로운 동시에 멀미가 난다. 무엇을 더 쌓아야 안전한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데, 모두가 멈추면 큰일 날 것처럼 무언가를 쌓고 있다. 그렇게 트렌드의 속도는 ‘뒤처지면 끝’이라는 공포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우리는 그 공포를 잠재우려 또 한 줄의 스펙을 보탠다.
오늘날 청년 세대를 움직이는 동력은 ‘끊임없이 증명하라’인 듯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목말라하는 것은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이다. 정반대를 원하는 두 욕구가 부딪치니, 아무리 결과로 확인받아도 산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 영어 점수도, 관리하는 몸도, 통장 잔고도, 취업도, 전문성에 대한 갈망도 실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다.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나는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한 가지 욕구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더 깊은 자리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더 커진 뒤 감당해야 할 책임과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웅크리고 있다.
증명 욕구는 의외의 곳에도 숨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정보를 좀처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좋은 글과 유용한 영상, 남들이 본다는 트렌드를 끊임없이 저장하고 갈무리하며 뿌듯해 한다. 그러나 그 부지런한 기록의 상당 부분은 배움이 아니라 ‘놓치면 뒤처진다’는 불안에서 나온다. 쉬는 일조차 편치 않은 이유도 같다. 게으름을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 자체를 낯설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깊이 살아내는 삶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 부쩍 자기 정의(self-definition)라는 말이 귀해졌다. 사람들은 ‘OO형 인간’이라는 신조어나 몇 개의 해시태그 키워드에 자신을 욱여 넣으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 빠르게 규정하고 안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이해가 아니라 자기 분류에 가깝다. 진짜 자기 정의란 그럴듯한 라벨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어떤 기준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만이, 트렌드가 아무리 바뀌어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불안이 솟을 때 묻는 질문을 바꾸면 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까’ 대신 ‘내가 왜 여기서 불안을 느끼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다. 전자는 끝없이 산을 높이는 질문이고, 후자는 비로소 산을 내려오게 하는 질문이다. 위스트는 책을 이렇게 끝맺는다. “결국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다만 산을 내려온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 증명 욕구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게으른 휴식이 아니라, 의외로 또렷한 방향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적은 사람과 깊이 연결되는 삶. 수만 명에게 끊임없이 나를 입증하기보다 단 몇백 명과 진짜로 가닿는 일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값지다는 감각이다. 자기 정의란 결국 ‘무엇을 그만 증명할지’를 고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넓이를 향한 욕망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깊이를 향한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상이 당신을 한 줄의 스펙으로 줄 세우려 할 때,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정의하는가. 더 정확히 묻고 싶다. 당신이 오늘도 넓히려 애쓰는 그것은 정말 당신이 닿고 싶은 깊이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한 번도 채워지지 못한 안도감을, 더 많은 사람의 인정으로 메우려는 먼 우회로인가.
2026-06-0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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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멈춰 선 블록체인 특구, 골목에서 답을 찾다
최근 부산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보도가 있었다. 국내 유일의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출발했던 부산 특구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였다는 내용이다. 6년간 416억 원이 투입됐지만 2022년 이후 신규 실증과제는 끊겼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실적은 없으며, 입주 기업 수도 4년째 17개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었다. 더 아픈 대목은 숫자가 아니라 존재감이다. 업계 사람들조차 “부산에 블록체인 특구가 있었느냐”고 되묻는 상황이라면, 성과를 따지기 이전에 특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 부산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64만 명을 넘었고, 관광 지출액도 1조 원을 돌파했다. 해운대와 광안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천문화마을, 전포카페거리, 깡통야시장, 골목 맛집과 축제 현장까지 외국인들은 부산 구석구석을 걷고, 먹고, 찍고, 공유한다. 한쪽에서는 수백억 원을 들인 기술 특구가 멈춰 섰고, 다른 한쪽에서는 돈 들이지 않은 도시의 매력이 세계인을 불러들이고 있다. 부산 블록체인이 풀어야 할 다음 과제는, 바로 이 대비 속에 있다.
관광객의 설렘은 의외로 사소한 장면에서 멈춘다. 버스에 오른 외국인이 해외 카드를 꺼내지만 단말기는 반응이 없다. 교통카드는 없고, 충전하려면 현금이 필요하다. 식당 예약 앱은 국내 휴대전화 번호를 요구하고, 공연 예매는 본인 인증 앞에서 막힌다. 택시도, 숙소도, 골목 가게도 사정은 비슷하다. 손님은 돈을 쓰고 싶어 찾아왔는데, 도시는 그 돈을 받는 절차에서 멈칫한다. 실패한 결제 하나는 포기한 커피 한 잔이 되고, 못 탄 택시 한 번이 되고, 취소된 공연 표 한 장으로 남는다. 작은 불편처럼 보이지만, 쌓이면 결국 도시가 흘려보낸 매출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부산은 6년간 블록체인 특구에 적지 않은 돈을 쏟고도, 정작 블록체인으로 풀 수 있는 이 작은 불편 하나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볼 만하다. “특구가 잘했나 못했나”가 아니라 “부산의 블록체인은 그동안 누구의 불편을 풀어줬는가”다. 전문가들이 가장 큰 패착으로 꼽는 건, 블록체인을 마치 공장 짓듯 다루려 했다는 점이다. 본래 여러 서비스와 연결되며 함께 자라는 기술을, 부산은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만 키우려 했다. 진짜 불편에서 출발하는 대신 ‘기술을 키울 공간’부터 그린 것이다. 지난 일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출발점을 바꿔보자는 이야기다.
다행히 그 작은 실험은 이미 부산에서 싹트고 있다. 부산의 한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들의 불편에 주목했다. 학생증 발급과 재학 증명,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학비를 보낼 때의 번거로움이었다. 송금 한 번에 수수료가 붙고 며칠씩 걸리는 일이 예사다. 이 대학은 블록체인 기반의 ‘캠퍼스 지갑’을 준비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 학생증과 디지털 증명서에서 시작해, 외국인 학생의 학비 납부, 나아가 지역 은행과 손잡은 교내 결제까지 한 걸음씩 넓혀가는 그림이다. 거대한 정부 사업이 아니라, 학생이 매일 부딪히는 불편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미 서울의 한 대학은 블록체인 학생증으로 건물 출입과 도서관, 전자 출결을 하나로 묶어 검증을 마쳤다. 부산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고, 외국인 비중이 높은 만큼 오히려 더 절실하다.
상상을 한 뼘만 넓혀보자. 학생의 지갑이 도시의 지갑이 된다면 어떨까. 외국인 관광객의 결제와 교통, 예약, 관광 패스, 세금 환급, 안전 인증까지 하나로 묶는 ‘부산월렛’ 말이다. 국적과 상관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바로 만들고, 카드 없이도 골목 가게에서 결제되는 지갑. 부산이 그토록 바라던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쓰게 하기’는 결국 이런 작은 마찰을 지우는 데서 시작된다.
이 흐름은 머지않은 미래와도 맞닿는다. 곧 AI 비서가 사람을 대신해 식당을 예약하고, 택시를 부르고, 입장권을 사주는 시대가 온다. 그런데 AI에게 내 신용카드 번호를 통째로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까지, 언제, 어디에만 쓸 수 있다’고 미리 한도를 걸어둔 지갑이 필요해진다. 세계적 기업들이 올해 잇따라 선보인 AI 결제 기술이 하나같이 블록체인 지갑 위에 세워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부산이 데이터센터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면, 그 위에서 돈이 오갈 통로 역시 지금부터 그려둬야 한다.
부산은 지난 6년간 블록체인 도시의 토대를 다지는 데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다만 그 위에 무엇을 올릴지에 대한 답은, 이제 현실의 불편에서 찾을 때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골목에서 지갑을 열다 멈칫하는 순간, 유학생이 학비 송금과 구내식당 결제 앞에서 헤매는 순간. 이런 생활 속 작은 불편을 푸는 데서 다시 출발하면 된다. 멈춰 선 특구라는 평가도, 부산이라면 충분히 다른 이야기로 바꿔 쓸 수 있다.
2026-06-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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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선거의 바로미터, 여론조사와 그 규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낮은 응답률과 표본의 대표성 문제 등 다양한 지적이 일고 있다. 여론조사는 단순한 통계자료를 넘어 유권자의 판단과 선거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적지 않다. 이에 공직선거법은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두고 있으나, 여전히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유권자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휴대전화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공직선거법상 허용된 ‘가상번호 제도’에 따른 것이다. 가상번호는 실제 휴대전화 번호를 직접 제공하지 않고 비식별화된 번호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론조사기관 간 다층적 전달체계를 전제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의2는 선거여론조사기관이 공표 또는 보도를 목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여론조사기관은 관할 심의위원회를 거쳐 이동통신사에 가상번호를 요청할 수 있다. 이렇게 가상번호 제공의 법적 근거는 공직선거법에 마련되어 있으나, 개인정보보호법과의 관계나 정보관리 범위에 대한 세부 기준은 미비한 실정이다. 또한 공직선거법에 선거 목적 외 사용 금지, 제3자 제공 금지, 조사 종료 후 즉시 폐기, 제공거부권 고지 등의 보호장치가 존재하지만, 향후 정보제공 절차와 관리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는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크게는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기준 마련과 심의, 시정명령 등의 감독 체계이다. 둘째,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에 대한 등록 및 신고 제도이다. 셋째,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 금지와 선거 직전 공표 제한 등 조사 내용과 공표 방식에 관한 규제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여론조사를 수행한 기관의 적법성과 공표 방식을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3항은 여론조사기관이나 방송사·정당이 아닌 자가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려는 경우 조사 개시일 전 2일까지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과 관련하여 자주 문제되는 사례로는 인터넷 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정치 성향 설문조사가 있다. 단순한 의견조사처럼 보이더라도,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로 판단될 경우 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96조는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여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또한 방송사나 신문사는 객관적 자료 없이 선거 결과를 단정적으로 예측하는 보도를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선거 직전에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라 불리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제도가 적용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투표 마감 시각까지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
이 제도는 막판 여론조사가 부동층의 판단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실제로 여론조사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승패 프레임을 형성한다. 이는 우세한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열세 후보에게 동정·응원 심리가 작동하는 ‘언더독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여론조사는 단순한 통계자료가 아니라 유권자의 심리와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수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의 실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해당 기간동안 유권자의 알권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거나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에 대한 폐지 의견을 낸 바 있다.
현행법은 여론조사에 대하여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규제를 마련하고 있으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많은 사례에 대한 조사 및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법에서 형식적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유권자가 체감하는 정보 환경은 아직 혼란스럽다. 선거의 공정성, 정보의 왜곡 방지와 함께 유권자의 알권리 및 개인정보보호, 나아가 여론조사에 노출되지 않을 의사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여론조사의 기능과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권자의 권리를 보다 균형있게 보장할 수 있는 세심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2026-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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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될 때까지’ 투자해 부산형 유니콘으로 키웁니다
부산에서 만난 한 창업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투자를 받으려면 결국 서울로 가야 하더라고요.” 좋은 기술과 시장, 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다리가 부족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것은 한 기업의 하소연이 아니라 지역 창업 생태계가 마주한 질문이다. 우리는 창업가를 잘 키우고 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묻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린아이에게는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서 언젠가 사회로 나가야 한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예비 창업자와 초기 기업 보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려면 보육을 넘어서야 한다. 넘어선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성장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그동안 지역 창업 정책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다. 창업 교육을 하고, 사무실을 제공하고, 시제품 제작을 도왔다. 그러나 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보육은 출발선에서 끝난다. 창업 기업도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큰 시장과 인재, 과감한 자본을 만나야 한다. 나는 창업 보육의 끝판왕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투자는 “시장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신호”다. 창업가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다리다.
부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좋은 기술과 창업가는 있지만, 성장의 순간마다 서울을 바라보게 된다. 투자자와 고객, 멘토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창업가가 부산에 남아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부산에서 창업하고, 투자받고, 글로벌로 진출하는 길을 충분히 열고 있는가.
저수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지듯, 지역 창업 생태계에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좋은 창업자·멘토·투자사가 부산에서 만나야 한다. 멘토는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어야 하고,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이 아닌, 기업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만남이 많아질수록 창업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는다.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하려는 일도 바로 그 물결을 만드는 일이다. 창업-스케일업-글로벌 진출까지 끊김이 없는 성장 사다리를 놓고, 창업가가 필요한 순간에 사람과 자본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부기테크’ 같은 IR 채널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부산에 좋은 스타트업이 많다고만 해서는 부족하다. 보여줘야 한다. 보여야 연결되고, 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왜 스케일업하는 스타트업을 키워야 할까? 답은 일자리에 있다. 피지컬 로봇 자동화가 확산하면 AI, 대기업의 정형화된 일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은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이 드물다. 한 사람이 기획·영업·기술을 함께 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고객이 늘수록 다양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성장 자체가 일자리다.
그렇다면 지역은 일자리를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스스로 만들어낼 것인가? 일본 구마모토가 TSMC 유치를 계기로 지역 산업과 인재 흐름을 바꾸고 있듯, 지역 혁신에는 강한 앵커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산의 앵커를 외부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부산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을 키워 대기업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부산의 미래 혁신 전략이다.
이제는 창업 숫자보다 성장의 깊이를 물어야 한다. 지역 펀드를 키우고 투자사가 부산에 머물게 하고, 대학과 병원, 항만, 공공기관이 스타트업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도 창업을 도시의 미래로 받아들여야 한다. 창업은 일부만의 도전이 아니라, 지역 일자리와 산업을 바꾸는 도시의 과제다.
어린아이를 보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고등학생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부산 창업 정책은 보호에서 성장으로, 지원에서 투자로, 행사에서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혼자 가면 길이 되고, 같이 가면 역사가 된다”라고 했다. 창업가 혼자서는 길을 만들 수 없다. 멘토와 투자자, 대학·기업·시민이 응원할 때 그 길은 도시의 역사가 된다. 창업가가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 부산에서 자라고, 투자받고, 세계로 나가는 도시. 부산은 “될 때까지” 키우는 도시가 되겠다.
2026-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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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당신의 한 표는 부산의 '생존 매뉴얼'이다
오는 6월 3일, 부산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라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한다. 새 정부 출범 1년을 지나는 시점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소멸의 임계선 앞에 선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누가 돼도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흐른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손에 쥔 ‘선거권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을 때, 그 냉소의 비용은 고스란히 내 일상과 지역 사회로 배달된다.
가전제품 하나를 살 때도 우리는 설명서를 정독한다. 잘못 다루면 고장이 나고, 사람이 다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향후 4년간 부산의 해묵은 숙제를 풀어갈 ‘일상의 경영자’를 뽑는 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부산의 자화상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에 압축돼 있다. 부산은 2021년 특·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5%를 넘어섰다. 광역시 최초로 ‘소멸위험지역’ 단계에도 들어섰다.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난 빈자리는 적막이 채우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노인이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도 결국 뼈만 남긴 채 항구로 돌아왔듯, 부산이 추억의 잔해만 부둥켜안은 도시로 남는 일은 막아야 한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정주 여건의 양극화도 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이 부산의 상징인 바다 조망권을 사유화하는 사이, 원도심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의 덫에 걸려 공동화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연안 침식, 폭염과 폭우의 일상화는 ‘바다를 품은 도시’ 부산의 안전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기후 위기는 자연현상이지만, 도시의 대비와 적응 수준은 정책의 영역이다.
이번에 선출될 시장과 구청장, 국회의원은 이 난제를 풀 실질적 권한을 위임받는다. 예산 편성과 인사, 입법과 조례 제정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모두 이들의 손끝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노인 복지 예산의 효율적 배분, 산업은행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의 완수, 북항 재개발과 가덕도신공항 적기 개항, 북극항로 환적 거점화, 부산형 급행철도(BuTX) 구축, 그리고 난개발을 막는 도시계획 수립이 모두 이들의 결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부산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지역주의 정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한 복국집에서 시작된 이 구호는 지금도 선거철이면 부산 시민의 합리적 선택지를 좁히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남아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순한 연결고리만으로 특정 후보를 칭찬하거나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그들이 쥐는 권한은 모든 통치 행위의 향방을 가르고, 한 개인의 강점과 약점이 그대로 시정과 국정의 역량과 한계로 옮겨와 내 삶과 지역 공동체 전체를 한꺼번에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같은 학교 동문도, 같은 고향 향우도, 같은 정당 지지자도 아니다. 신공항이 늦어지면 함께 손해 보는 시민이고, 청년이 떠나면 함께 늙어가는 부모이며, 바다가 병들면 함께 위협받는 이웃이 진짜 ‘우리’다. 이 매뉴얼의 첫 경고문은 그래서 분명하다. 단순한 연고와 정서적 일체감만으로 결정 버튼을 누를 때, 오작동의 책임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
매뉴얼의 본문에는 세 가지 검증 항목이 담겨야 한다. 첫째, 후보의 과거 행적이다.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으며, 무엇을 어겼는지를 사실에 근거해 살펴야 한다. 둘째, 현재 행보의 정합성이다. 내건 공약이 부산의 현안과 맞물리는지, 재원 조달 방안은 구체적인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셋째, 미래의 직무 수행 역량이다. 위기 앞에서 권한을 사익이 아닌 공익에 쓸 인물인지, 그의 강점과 약점이 부산의 과제와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상과 분위기라는 신기루가 아닌, 사실과 검증이라는 견고한 언어가 매뉴얼의 본문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권한의 오작동을 막고 부산의 4년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권력의 진짜 주인은 투표하는 시민이다. 향우회나 동호회의 회장직조차 결국 한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이 모임의 향방을 가른다. 하물며 시민의 일상을 4년간 좌우할 자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6월 3일,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후보는 ‘노인’을 예우하며 ‘청년’의 미래를 열 혜안이 있는가. ‘바다’를 공존의 자산으로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아파트’ 숲에 가려진 시민의 권리를 회복할 역량이 있는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권력을 올바르게 작동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주권자의 준엄한 한 표뿐이다. ‘진짜 일꾼’을 가려내는 수고로움이야말로 향후 부산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생존 매뉴얼이다.
2026-05-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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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격전지 변수는 2030 투표율
선거 결과는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모른다. 6·3 지방선거가 딱 그렇다. 두어 달 전만 하더라도 이번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수도권·충청은 물론 부산·경남·울산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크게 앞섰다. 심지어 ‘보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에서도 여권 후보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여럿 나왔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부겸 전 총리가 다시 등판한 건 그래서였다. 많은 여권 인사가 ‘김부겸이라면’ 대구에서도 민주당 깃발을 꽂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북 빼고 다 이긴다”며 ‘15대 1 압승론’을 꺼냈다. 겨우 두 달 전 이야기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격차는 좁혀지는 양상이다. ‘가족 오락관’처럼 ‘몇 대 몇’으로 표현한다면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격전지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시장 선거는 전재수·박형준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붙기 시작했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11일~19일 공개된 6건의 여론조사 중 3건이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안에 드는 걸로 나왔다.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선거인 만큼, 북갑 선거는 전체 판세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압승이냐 신승이냐, 참패냐 석패냐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여 압승 예상 뒤집고 격차 점점 좁혀져
부산시장·북갑 선거도 오차범위 접전
청년층 적극 참여 등 변수가 승패 좌우
2030 남성 40%가 보수 성향 무당층
또래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도 낮아져
투표율 상승 전략 적중 땐 국힘 유리해
격전지에선 작은 변수가 승패를 가른다. 청년층 투표율도 그 변수 중 하나다. 청년들은 2020년대 들어 상황에 따라 정당 지지를 달리하는 스윙 보터 역할을 해왔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50세대와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60대 이상이 팽팽하게 맞붙는 상황에서, 2030 표심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됐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그랬다. 이번엔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다. 2030이 행사하는 표는 승패를 가름하는 캐스팅보트가 되기보다, 여권을 견제하는 표가 될 공산이 크다. 달리 말하면 청년층 투표율이 높을수록 국민의힘이 유리할 거라는 의미다.
과거엔 청년들이 투표를 많이 할수록 보수 정당이 불리했다. 청년층의 민주·진보 정당 지지세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항상 2030세대의 투표를 독려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투표율이 77%를 넘으면 말춤을 추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제는 반대가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의 민주당 지지율은 70대 이상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게 나타난다. 고령층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2030에서 민주당 지지율 평균을 끌어내리는 건 남성들이다. 한국갤럽은 월별 통합 여론조사에서 연령대에 더해 성별로도 구분된 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지난 1일 공개된 4월 통합 여론조사에서 18~29세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17%, 30대 남성은 30%를 기록했다. 70대 이상 남성(38%)보다도 낮다. 4050 남성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물론 2030 남성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무당층이다. 40%쯤 된다. 중요한 건 이 무당층이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가까운 무당층이라는 점이다. 최근엔 2030 여성도 또래 남성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들의 민주당 지지율 역시 6070세대 보다 낮다. 무당층 비율도 비슷하다. 남성들만큼 보수화한 건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2030 여성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청년층의 진보 이탈 배경에는 세대 간 이해 충돌이 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 여부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빚어졌던 게 대표적이다. 정년 연장, 민생 지원금, 건강보험 보장 범위 확대 등에 관한 시각도 엇갈린다. 청년들은 ‘미래의 자원을 당겨서 현재에 투입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40대~60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이 세대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청년 세대 여론 지형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청년들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의힘에 표를 줄 거란 보장은 없다. 사실 그동안 국민의힘이 2030세대로부터 얻었던 지지는 반민주당·반이재명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청년층 국정 지지율이 매우 낮았음에도 지난 대선에서 범보수 후보들이 상당한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건 그런 맥락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건 국민의힘에 잠재적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청년층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보수 정당을 지지해 준 전통 지지층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민의힘이 정치적 효능감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청년들은 투표장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선거 격전지 결과를 2030이 결정지을 거라고 보는 이유다.
2026-05-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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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약점을 품어 가능성으로
바쁜 도시에 살다 보면 절로 몸에 배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 서기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좌측을 비워두는 것은 어느새 도시의 공중도덕으로 자리 잡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에서 일을 시작한 후, 나도 그 속도에 물들었다. 하지만 안전을 고려할 때 한 줄 서기는 권장되는 행동은 아니다. 지하철 역사에도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마시오.”
부산으로 돌아와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그 옆에 커다랗게 놓인 현수막을 발견하고는 미소가 지어졌다. “눈치 보지 말고 두 줄로 서세요.” 에스컬레이터 양쪽으로는 발자국이 두 개씩 그려져 있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한 줄로 비켜서기 어렵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도 에스컬레이터 한쪽을 비워두려면 오히려 더 불편한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하철에 올라타니 이번에는 각 전동차의 맨 앞과 뒤에 있는 교통약자석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탄 부산 지하철 1호선에는 교통약자석이 4개씩 마주 보게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넉넉한 규모였다. 고령 인구가 많은 부산의 형편을 고려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5월 가정의달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할머니를 모시고 동네의 유명 카페를 찾은 날이었다. 1층에서 함께 빵을 고르고 2층 카페에 오르려던 찰나,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난간을,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꽉 잡고 2층까지 올라야 했다. 체구도 작고 몸도 가벼운 분인데, 계단을 오르는 내내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나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 2층은 연휴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여럿 보였다. “서울과 달리 부산에는 멋진 곳에도 어르신들이 많아서 보기 좋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지만, 이내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르내렸을 계단이 떠올랐다. 고층도 아니고 고작 2층뿐이지만, 휠체어는 물론 노인 보행기는 계단 한 칸도 오르지 못한다. 고령 인구가 유독 많은 동네에서 새 단장을 한 카페에 엘리베이터 하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도시는 늘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모한다. 부산시 또한 여러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미 맞이한 초고령사회인 부산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4%를 넘어 광역시 중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가 됐다. 이와 맞물려 청년인구는 꾸준히 유출되고 있다.
원래부터 관광도시였지만, 최근에는 더 많은 여행자의 사랑을 받으며 외국인 여행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이룬 이웃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현상들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도시의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나믹 부산’에서 ‘Busan is good’이 된 지금, 이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을 품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까? 고령화는 그 질문의 출발점이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는 방식이 곧 다양성을 수용하는 첫 번째 연습이 되는 이유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는 말한다, “사람은 모두 무언가의 약자이며, 소수자다.” 모든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기본 사용자가 있다. 빠르고, 젊고, 디지털에 익숙하고 몸이 건강한 사람. 계단은 그 사람을 기준으로, 키오스크는 그 손가락에 맞게 설계되곤 한다.
하지만 건장한 청년의 이동권에서 벗어나 보면 시각이 달라진다. 기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는 이미 충분히 좁다. 어르신,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 무거운 짐을 든 여행자. 설계가 그들을 처음부터 상상하지 않았을 때, 그 좁음은 벽이 된다. 이들 역시 도시가 당연히 품어야 할 사용자인데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고, 청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 먼 훗날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이를 개인의 서툶으로 넘길 일은 아니다. 도시의 효율이 누군가에게는 긴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편함을 도시의 과제로 읽어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정책으로 옮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일이 남았다. 가장 느린 사람까지 상상하는 도시가 가장 다양한 사람을 품고, 결국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눈앞의 작은 것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부산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2026-05-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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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의 심성사(心性史), 그리고 앞으로의 50년
심성사(History of Mentalities)라는 개념이 있다. 1930년대 프랑스 아날학파 사학자들이 제시한 역사 연구 방법론으로, 전쟁·정변·조약과 같은 ‘표면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탐구하는 접근이다. 로마사를 심성사적 관점에서 연구한 모토무라 료지 일본 도쿄대 교수는 “심성사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나 제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동력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로마 제국의 장기 지속을 ‘심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시민적 명예와 법 질서에 대한 신뢰, 그리고 피정복민을 포용하는 실용적 태도가 사회 전반에 공유되면서 제국의 안정성을 떠받쳤다는 것이다. 결국 심성사란 한 공동체의 ‘집단적 무의식’을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분석의 틀을 부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부산 사람들은 어떤 정서 속에서 살아왔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자기상(自己像)을 형성해 왔는가.
먼저 주목할 것은 ‘변경의 심성’이다. 조선시대 왜관이 자리했던 부산은 늘 ‘바깥과 마주 선 도시’였다. 이질적인 문화와 문물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었기에 부산은 자연스럽게 개방성을 내면화한 도시로 형성되었다. 그 결과 항구·무역·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고, 외국 문화에 대한 높은 수용성과 새로운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유연성 또한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심으로부터의 거리감이 누적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소외의식과 피해의식, 나아가 중앙 의존적 사고가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다음은 ‘환대와 포용의 심성’이다. 약 1000일에 걸친 임시수도 시기 동안 부산은 정부와 유엔,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을 동시에 품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부산을 가장 역동적인 ‘생존형 도시’로 만들어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형성된 사회는 생존과 기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낳았고, 이는 창업과 서비스 산업의 활력,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하는 도시의 탄력성으로 이어졌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다 보니 공동체 결속의 약화와 단기 생존 중심 사고라는 한계도 함께 남겼다.
또 하나는 ‘제2도시의 심성’이다. 산업화 시기 국가 경제를 견인했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심의 국가 구조 속에서 부산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중앙의 지원과 시혜를 기다리는 도시’로 인식해 왔다. 정치인들이 시내 곳곳에 내거는 ‘중앙 예산 확보’ 현수막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다. ‘만년 2등’이라는 자기 인식은 어느새 체념처럼 굳어졌다. 이러한 인식은 도전보다는 안정, 주도보다는 추종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이어지며 도시의 기개와 상상력을 제약해 왔다.
결국 오늘의 부산은 이 세 가지 심성이 결합해 형성된 도시라 할 수 있다. 개방성과 수용성, 회복력이라는 강점 위에, 중앙 의존적 성향이 함께 얽혀 있는 복합적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따라서 이 모두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강점은 전략으로, 한계는 의식의 전환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50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심성으로 살아가야 할까. 첫째는 아시아를 ‘리드하겠다’는 글로벌 심성이다. 부산은 더 이상 한반도 동남쪽 끝에 자리한 ‘변경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태평양과 광활한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이다. 이제 부산은 단순히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관적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아시아의 의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 중심에 서겠다는 담대한 기상이 지금의 부산에 요구되고 있다.
둘째는 ‘환대와 포용’의 심성을 자연으로 확장한 ‘친환경의 심성’이다. 산과 바다, 강이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숨 쉬는 곳, 그 자체가 이미 세계적 자산이다. 이제 부산은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가치 위에서 부족한 공동체 정신을 다시 세우고, 세계인이 너도나도 살고 싶어 하는 멋진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는 중앙에 기대지 않는 ‘독립의 심성’이다. ‘제2도시’라는 말은 더 이상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한정짓는 언어다. 이제 부산은 그 이름을 내려놓아야 한다. 스스로 길을 정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중앙의 결정과 지원만을 기다리는 도시가 아니라, 스스로 의제를 만들고 미래를 주도하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부산은 ‘의존의 역사’를 과감히 청산하고, 자립과 주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
지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부산의 다음 50년을 결정짓는 것은 세세한 공약이 아니라, 그 공약을 고르고 밀어붙일 이 도시의 ‘심성’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심성사를 쓸 각오로 이번 선거를 바라보고 있는가.
2026-05-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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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북극 안보포럼에 다녀와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에서 열린 북극 안보포럼에 최근 다녀왔다.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북극항로 참여 문제를 포함하여, 북극을 둘러싼 여러 지정학적 변동에 따른 주요 국가들의 북극 전략을 살펴보고 대비책을 생각하는 자리였다. “완성된 해법보다는 문제 설정과 방향성 논의를 위한 탐색” “문제의식과 질문을 공유하는 큰 틀에서의 재논의”라는 행사 취지에 공감하여 아침 일찍 수서행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사실, 북극항로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된 갑작스러운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의 대응은 많이 늦었다. 북극 빙하가 녹은 지 언젠데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지난해 6월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느닷없이’ 선거 이슈로 불거졌고, 이런저런 기관이나 단체에서 포럼을 연다, 대책반을 꾸린다며 법석이다. 국가 안보보다는 정권 안보 차원의 관점이 우세한 것 아닌가 그런 의심도 들고, 무엇보다 차분하고 근본적이며 묵직하고 두꺼운 대응 방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던 상태였다.
부산~동해~북동항로 현실화 위해선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 빨리 개선하고
국가 이익 우선 물밑 교섭 실익 챙겨야
신항 배후단지 선진화 등 준비도 부족
전체적으로 지휘·조율 관제탑 만들어
대한민국 살릴 북극항로 시대 열어야
군사 전문가들이 발제와 토론에 절반가량 참여한 이번 INSS 북극 안보포럼에서는 새로운 정보가 많았다. 냉전의 부활로 미국·러시아·중국의 지역 전략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모두 지나가는 북극 해역으로 옮겨오는 추세라든가, 나토(NATO)의 북극사령부 창설 움직임과 북극 방어전략, 러시아의 ‘2035 북극개발 및 국가안보전략’의 단계별 내용 등이 소개되었다.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시나리오별 도전 요인과 기회 요인, 사이버·우주·인공지능기술 융합 중심의 킬 체인 등 3축 체계의 보완 필요성 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의 질서를 바꾸고 조절하는 패권국이나 초강대국이 아닌 바에야, 변화무쌍한 강대국의 북극 군사전략과 안보 전략 등을 면밀하게 주시는 하되, 대한민국의 북극 안보 논의는 부산에서 동해를 지나 러시아 북쪽 연안으로 올라가는 부산~북동항로 현실화에 초점이 모여야 한다고 본다. 나머지는 부차적이며 구조화, 체계화, 효율화의 대상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첫 번째 문제 상황은 균형 외교의 상실이다. 러시아는 북동항로의 ‘대주주’다. 1996년 오타와 선언으로 8개국으로 구성된 북극이사회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인 1916년부터 백 년간 그곳을 지배해왔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이후에 러시아와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가서 러시아를 비난하는 연설을 대놓고 하거나, 유럽 순방 중에 우크라이나를 비밀리에 국빈 방문하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수출통제 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심지어는 유명 발레리나의 내한 공연마저 막았다. 크렘린에서는 직항로를 계속 열라는데, 현 정부도 한-러 항공 재개를 계속 주저하고 있다. 1991년 이후 30여 년간 쌓아온 ‘북방 자산’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런 편향 외교로는 북동항로 문제가 잘 풀릴 여지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국익 차원의 ‘물밑’ 협력 작업의 미흡이다. 한미 동맹은 동맹이고, 국가 실익은 실익이다. 우리와 다르게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친미 친서방 행보 속에서도 러시아와 물밑 교섭을 벌여 자국 액화가스(LNG) 수입의 8.8%를 차지하는 ‘러시아 사할린 2 프로젝트’에서 일본 회사들의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 번째는 진정성과 준비 작업의 부족이다. 부산~북동항로에 진심이라면 화물 옮겨싣기를 넘어 부산 신항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항만 배후단지의 선진화, ‘글로벌허브 도시 특별법’의 통과 등에도 진심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들과 연동 없이 북극항로가 따로 별개로 추진될 수 있을까? 네 번째는 추진체계의 난맥상이다. “북극항로, 북극항로” 목소리는 높은데 이를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조율할 관제탑이 없다. 관·산·학을 크게 아우르는 유기적인 협력도 약하다. 그저 기관이나 단체마다 제각각으로 움직이며 ‘물 들어올 때 우리도 노를 젓자’라는 식이다. 관심의 범위도 항만·물류·해양 관련한 경제 산업적·기술적 영역에 국한되고 있다. 최근 부산 중구 국제화센터에서 8주 과정의 ‘북극권 인문학 특강’이 처음으로 열리긴 했지만, 북극 지역 민속 조사나 학술교류, 시민특강 등 한반도와 북극 지역과의 친밀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심리적 접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를 상대한다면서 현지 지역 전문가가 정부나 지자체의 북극 논의 기구에 들어가는 법도 드물고, ‘북극 수도’ 무르만스크와 러시아 북극권의 5대 도시 혹은 10대 도시에 대한 평소의 관리와 네트워크 유지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호르무즈 위기 발생으로 북극항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요즘, 우리는 과연 북극항로가 대한민국을 살리고 해양수도 부산을 살릴 미래의 성장동력이라고 합의하고 있는 것일까?
2026-05-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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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지방선거, 부산 디지털 금융의 청사진을 묻다
얼마 전 세계 8위 해운사 HMM이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이어 한국 해운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민간 기업까지 부산에 둥지를 트는 셈이다. 정부 부처와 대형 민간 기업이 차례로 내려오면서, 부산은 단순한 항만 도시를 넘어 ‘해양 금융의 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그러나 이 발판이 진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항만과 해운이라는 실물 자산을 ‘디지털 금융의 언어’로 다시 짜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필자는 지난 3월 본 지면을 통해 부산이 가진 해운·물류 인프라가 RWA(실물자산 토큰화)와 결합할 때 만들어 낼 새로운 금융 모델을 제안한 바 있다. 선박의 소유권과 용선료 수익권을 토큰화해 일반 투자자에게 개방하는 ‘선박 RWA’, 가덕신공항의 운영권 일부를 시민 참여형 디지털 펀드로 조달하는 ‘인프라 RWA’가 그 골자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해수부와 HMM의 부산 이전이라는 거대한 모멘텀이 만들어지면서, 그 제안은 더 이상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책 의제로 바라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부산의 정책 시계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되는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부동산·교통·복지 등 전통적인 의제는 빼곡히 채워져 있지만, ‘디지털 금융 도시 부산’을 어떻게 구체화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청사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지 수년이 지났고, 디지털 자산 시장은 이미 제도권 금융의 본류로 진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부산은 여전히 이 변화의 무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 차원의 입법 또한 사정이 녹록지 않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규율할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발행 주체와 지분율을 둘러싼 이견 속에 표류를 거듭하고 있고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그 우선순위는 더욱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송금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중앙의 입법이 늦어진다고 해서 지방이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부산이 ‘제도의 실험장’을 자처하며 한 걸음 앞서 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미 글로벌 해양·금융 도시들은 디지털 자산을 도시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삼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통화청(MAS) 주도의 ‘프로젝트 가디언(Project Guardian)’을 통해 채권·펀드·외환의 토큰화 실증을 정부 보증 아래 진행 중이고, 두바이는 별도의 가상자산규제청(VARA)을 설립해 토큰화 자산의 발행과 유통을 일원화된 체계로 관리하고 있다. 홍콩 또한 디지털 자산 ETF와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제도를 정비하며 아시아 디지털 자산 허브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도시 단위에서 명확한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자산 토큰화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 부산에서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검토해 보기를 희망한다. 첫째, 부산 차원의 ‘디지털 자산 규제 샌드박스 2.0’이다. 기존 블록체인 특구가 기술 실증에 초점을 맞췄다면, 새 단계는 금융과 자산의 실증으로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 선박·항만·물류 자산을 기초로 한 RWA 발행과 유통, 원화 스테이블코인 결제 실험,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인프라 구축이 부산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빠르게 검증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중앙 부처와의 가교 역할을 적극적으로 자임해야 한다. 둘째, ‘부산형 시민 참여 인프라 펀드’의 제도화다. 가덕신공항, 북항 재개발, 항만 배후 단지와 같은 대형 사업의 일부 지분을 토큰화해 부산 시민이 소액으로 보유하고 운영 수익을 배당받는 구조다. 자본 조달과 시민 참여,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부산만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금융 인재 생태계의 본격적인 구축이다. 디지털 금융 혹은 블록체인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정규 과정에 편입시키고, 지역 대학·연구기관·기업·금융권을 잇는 상설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한다. 사람이 모이지 않는 도시에 자본은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금융은 부산이 오래 짊어져 온 구조적 과제, 즉 수도권 자본 의존, 청년 인구 유출, 산업 고도화 지연 등을 정면으로 풀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항만과 조선이 20세기 부산을 만들었다면, 그 위에 얹히는 디지털 금융이 21세기 부산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다만 이는 시장과 의회가 의지를 갖고 일관되게 끌어가야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금융 도시 부산의 청사진을 분명히 제시하는 후보, 그리고 그 청사진을 끝까지 검증하는 시민. 이 두 주체가 만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부산의 다음 10년이 시작될 것이다.
2026-05-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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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노인과 바다’에서 청년의 자리를 묻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52년 생전 마지막 소설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다.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여든 날이 지나도록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 그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의 처절한 싸움은 순식간에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작가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그다음 해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54년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을 “물질적 이득이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 정신과 패배 가운데서 이룩하는 도덕적 승리를 향한 찬가”라고 평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라는 널리 알려진 구절처럼 어떠한 외적 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한 노인의 위대한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시장 후보들 청년 정책 발표
박형준,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
전재수, 해양수도 통해 일자리 창출
‘평생교육 거점·해양 인력 양성 기반’
지역대학 구조적 문제 해결엔 역부족
배우고 성장하는 탄탄한 토대 마련을
그런데 이 소설에는 독자의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노인을 돌보는 어린 소년 어부 마놀린이다. 소년은 부질없어 보이는 노인의 항해를 변함없이 동경하며 응원한다. 산티아고는 소년의 지지에 힘입어 하루도 쉬지 않고 바다로 나설 수 있었다. 청새치와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에서도 소년은 그의 내면적 힘이 되었다. 결국, 노인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소년의 존재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노인과 바다’라는 말이 부산의 현실을 일컫는 풍자적 은유로 심심찮게 쓰인다. 청년층이 이탈하면서 인구 구조가 가파르게 고령화되고, 확고한 경제적 기반 없이 망망한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만을 가진 데 대한 자조적 목소리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부산의 현실이 너무도 적실히 표현되어 있다.
6·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노인과 바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청년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형준 후보는 청년을 전면화하며 부산의 미래 전략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청년들의 세대적 특성에 주목하며, 산업화 시대의 논리로 구축된 사회·경제적 질서를 청년 세대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안은 ‘복합소득사회’로의 전환이다. AI 시대에 이르러 개인의 소득이 다원화됨에 따라 과세와 복지 등 국가의 정책 시스템 역시 직장 단위의 모델로부터 개인 단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AI 혁명이 초래할 수 있는 청년층의 자산 양극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자산 형성을 보장하는 ‘청년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한편, 전재수 후보는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을 내세운다.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이자 ‘글로벌 물류의 환승 센터’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해사전문법원과 동남투자공사의 설립, 해운 대기업의 부산 유치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청년 문제의 해법 역시 해양수도의 구상에 기반한다. 해수부와 각종 산하 기관, 연구소, 민간 기업들이 모여 형성한 ‘해양 특화 클러스터’를 통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과 취·창업 기회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지역 고등학교 및 대학들과 연계한 항만 분야 전문 인력 양성 계획과 스마트 항만으로의 전환을 통한 직업적 접근성 확보 방안을 밝혔다.
그런데 두 후보의 청년 정책에서 지역대학 활성화를 전면에 둔 구체적 계획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박형준 후보는 AI 시대에 요구되는 평생교육의 거점으로의 기능 전환을, 전재수 후보는 해양 전문 인력 양성 기반으로의 특수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각각의 후보가 제안하는 정책적 방향성 속에서는 일정한 설득력을 얻지만, 지역대학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역 청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지역대학이라는 의제는 핵심적이다. 대학은 단순히 진학의 문제가 아닌,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삶의 항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일자리의 확보 못지않게,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서울대와 유사한 수준의 교육 지원을 통해 쇠퇴와 소멸에 직면한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대학의 약화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의 마음속에 소년 마놀린이 없었더라면 노쇠할 대로 노쇠한 그는 지난한 항해와 험난한 사투에서 결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언어 속에 감추어진 마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마놀린이 떠나는 순간, 노인도 바다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2026-05-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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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관광의 미래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28일,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부산 관광·컨벤션·해양·크루즈·문화·축제,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부산관광미래네트워크를 비롯한 6개의 주요 관광·문화 산업 단체들이 참여했고, 두 부산시장 후보가 같은 질문에 각각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반부는 전재수 후보, 후반부는 박형준 후보의 시간이었다. 이번 간담회는 단순한 정책 설명 자리가 아니었다. 같은 질문이 던져졌지만, 두 후보의 답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두 후보의 차이는 정책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관광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전재수 후보의 접근은 비교적 익숙한 방향에 가까웠다. 해양수도 부산을 중심으로 관광을 산업과 연계해 확장하려는 구상은 그동안 부산이 지속적으로 제시해 온 전략과 맞닿아 있다. 관광을 해양산업과 크루즈, 지역 기업 육성과 연결된 경제 생태계로 확대하려는 시도는 부산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정책 실행 과정에서 상당한 재정비와 조정이 요구될 가능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방향성에 대한 공감과 함께 실제 실행 단계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지켜보려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지역 기업 육성과 산업 구조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 역할을 강조한 점은 인상적이었지만, 그만큼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부담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지점은 두 후보가 상정하고 있는 외부 협력의 축이다. 전재수 후보의 구상에는 여당 후보로서 중앙정부와의 연계 가능성이 비교적 뚜렷하게 읽힌다. 대규모 인프라와 해양 관련 정책은 중앙과의 협업 없이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다만 정책의 지속성과 실효성은 결국 지방정부의 실행 역량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중앙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사업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대한 고민 역시 함께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박형준 후보는 관광을 도시 전략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글로벌 허브도시라는 틀 안에서 관광을 도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바라보는 접근이다. 최근 관련 특별법 국회 통과가 무산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글로벌 허브도시의 틀을 관광에서도 적용한 듯한 인상이었다. 그의 답변에서 눈에 띄는 점은 행정 실행 방식의 변화였다. 올해부터 실시간 현황판을 중심으로 관광 및 관련 산업 정책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선언적 정책을 넘어 실제 작동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는 데이터 기반 행정의 방향을 보여준다. 또한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지역이 삽니다, 지역이 합니다’ 정책은 관광이 외부 유입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 내부로 순환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관광객의 소비가 지역 상권과 기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관광의 성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기업 유치와 국제행사, 도시 콘텐츠 경쟁력 강화 등은 단기간에 드러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에서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요구되므로 중앙 정부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박 후보는 관광을 바라보는 시각 차원에서 전 후보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특히 기존 부산지역 축제들이 축제조직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일부에서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지역 민간기업과의 협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관광이 지역 경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운영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비판적 스탠스로 읽혔다.
결국 두 후보의 접근은 분명히 갈린다. 한 후보가 관광을 산업 구조 속으로 확장하려 한다면, 다른 후보는 관광을 움직이는 작동 방식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두 방향 모두 부산의 현실 속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간담회를 마친 뒤 업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단순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부산을 글로벌 도시로 키워야 한다는 점도, 부산의 특색을 살린 해양 중심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도 모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부산 관광의 방향도 결정하는 과정이다. 관광은 더 이상 부수적인 산업이 아니다. 도시의 경제, 일자리, 이미지, 그리고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 핵심 영역이다. 그만큼 선택의 무게도 가볍지 않다. 부산은 오랫동안 ‘2위 도시’라는 인식 속에 머물러 왔다. 이제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기반으로 세계 속의 해양수도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기존 구조 속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선택할 것인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은 어디로 갈 것인가.
2026-04-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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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흔들리는 국제 질서와 부산 금융의 기회
최근 국제 정세의 불안은 더 이상 외교·안보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이동과 금융기관의 입지를 바꾸는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전쟁의 장기화, 제재의 상시화, 공급망 불안, 통화 질서의 긴장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단지 위기의 시기만은 아니다. 글로벌 자본과 금융 기능이 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곳으로 옮겨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산에는 이 흐름을 금융중심지 도약의 기회로 살릴 여지가 있다.
평상시 금융중심지는 효율과 편리의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안의 시기에는 그 본질이 드러난다. 자본이 먼저 보는 것은 수익률만이 아니다. 자산이 안전하게 보호되는지, 계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결제와 청산이 멈추지 않는지, 정책과 규제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지를 본다. 결국 금융중심지는 위기 속에서도 거래 질서를 지켜낼 수 있는 도시다.
역사도 이를 보여 준다. 국제 질서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은 이동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금융 중심이 베네치아와 제노바에서 앤트워프, 암스테르담, 런던으로 옮겨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크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더 안정된 제도와 더 예측 가능한 질서를 갖춘 도시가 중심 기능을 끌어들였다. 반대로 정치적 갈등과 제도 혼란을 겪은 도시는 금융 기능을 지켜내지 못했다. 금융은 결국 가장 큰 도시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도시를 선택한다.
이제 부산 금융중심지 논의도 국내 다른 도시와의 경쟁 틀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 시야를 국제 질서 재편과 글로벌 금융 기능 이동이라는 더 큰 흐름으로 넓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도시를 이기는 일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부산이 어떤 대안이 되는 금융도시, 어떤 믿을 만한 보완 도시가 될 수 있느냐이다.
금융허브의 불안정성이 커질수록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보완 도시의 가치는 더 커진다. 부산도 세계 금융 질서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금융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금융도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 곳으로 간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부산이 그 기회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이다.
금융중심지의 경쟁력은 결국 세 가지다. 첫째, 안전성이다. 외부 충격 속에서도 거래와 자산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예측 가능성이다. 규제와 세제, 감독과 정책의 방향이 일관돼야 한다. 셋째, 개방성이다. 외부 자본과 기관, 인력이 실제로 들어와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힘을 갖는다.
부산의 현실적 강점은 분명하다. 해양·항만·물류는 물론 부울경 동남권 제조업과 연결된 실물 기반이 두텁다. 공급망과 해상 물류가 국제 정세와 지정학의 영향을 직접 받는 지금, 실물 금융, 해양 금융, 무역 금융, 물류 연계 금융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부산이 이 기반을 금융 기능과 정교하게 연결해 나간다면, 단순한 지역 금융도시를 넘어 차별화된 금융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금융중심지는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제 산업, 실제 거래, 실제 서비스의 축적 위에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이는 부산이 가진 가장 현실적이고도 강한 자산이다.
다만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부산 금융중심지 전략의 가장 큰 위험은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 사업 이름이 바뀌고, 우선순위가 뒤집히고, 선거 때마다 정책의 틀이 흔들리면 어느 금융기관도 장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은 단기적 열정보다 장기적 일관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부산이 먼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중앙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금융 규제, 외환, 세제, 감독의 핵심 권한은 대부분 중앙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의 지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두바이와 아스타나의 사례가 보여주듯, 제도 실험과 신속한 집행이 가능한 자율적 운영 기반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현장 중심의 자율성과 실행력이 있어야 금융중심지 전략도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 부산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세계의 불안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다가 기회를 놓치는 길, 그리고 금융 기능 이동의 흐름을 읽고 부산을 새로운 대안으로 키우는 길이다. 금융의 역사는 반복해서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중심은 영원하지 않다. 더 믿을 수 있는 곳,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갈 뿐이다.
부산이 놓쳐서는 안 될 것도 바로 그 변화다. 변화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흔들림 없는 전략과 지속적인 실행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세계적 불확실성은 분명 부담이다. 그러나 준비된 도시에 그것은 위기가 아니라 재편의 기회가 된다.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느냐는 외부 환경보다 먼저, 그 기회를 끝까지 붙들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2026-04-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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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이것이 왜 산업재해가 아닌가
지난 2월, 경찰행정학을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19세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하던 직장에서 고용주인 40대 남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겪고, 즉시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전후 CCTV에서 피해자가 웃고 대화하고 보행하는 모습이 확인된다는 점, 가해자가 ‘합의한 관계였다’고 진술했다는 점과 주변 진술을 근거로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며 가해자에 대하여 무혐의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이 이뤄진 지 3일 만에, 피해자는 “(성관계) 동의 의사를 보인 적이 없으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피해자의 죽음으로 사건이 공론화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이 참담하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최선을 다해 용기를 냈고, 적극적으로 국가에 구조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유언이나 다름 없었던 이의신청에 따라 재수사가 이루어졌지만, 경찰은 수사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반복했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가 모여 꾸린 공대위에서는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 시스템은 40대 사장과 10대 알바생의 권력 격차를 완전히 무시했다“며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 노동자라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권력의 사법적 사살”이라고 분노했다. 공대위의 이와 같은 지적은 이 사건이 형사사법 시스템과 노동 보호 시스템이 동시에 실패한 사건이라는 점을 짚고 있다.
고용주가 성폭행한 10대 알바생
사법과 노동 보호 시스템 실패에
항의유서 남기고 스스로 삶 마감
단시간 노동자 인권 침해 사안이
남녀 관계 문제로 돌변했던 현실
산업재해 본질 되묻게 하는 죽음
먼저 형사사법의 실패부터 보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명서를 통해 준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건 정황을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면 심신 상실과 항거 불능이 아니었다고 하고,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진술이 부족하다며 범죄 성립을 부정하는 수사기관의 전형성을 비판한다. 고용주와 단시간 노동자 간의 권력 관계를 이용한 가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수사라는 것이다. 경찰이 아직도 현행 강간죄와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에 갇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다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라는 입법적 해결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강간죄를 ‘부동의 성교죄’로 바꾼 일본 역시 4건의 성폭력 무죄 판결로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사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촉매가 되어 입법 활동을 이끌었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해자의 ‘합의’ 주장은 근거도 없이 수용하면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수사 관행은 국민 눈높이와도 맞지 않는 뒤떨어진 인식으로 분노만 자아낼 뿐이다.
노동 보호의 실패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무원 사이에는 간이며 쓸개를 집에 걸어두고 출근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다. 비단 공무원 사회뿐만이 아니다. 직장생활에서 마음속 진의와 상관없는 사회적 미소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짓도록 요구받는다. 거기다 직장에서 갖는 회식 자리는 엄연히 업무의 연속이다. 경찰은 CCTV 속 피해자의 미소를 성관계 합의의 증거로 읽었지만, 그것은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 자리에서 10대 아르바이트생이 40대 고용주 앞에서 지어야 했던 노동 현장의 언어였다. 그러나 수사 시스템은 그 권력 관계를 사적인 남녀 간의 문제로 환원해버렸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는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단시간 노동자로서 직장에서 가장 악질적인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 혹은 성희롱 피해로 인권을 침해받은 사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막아서고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근로기준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안전보건법은 이 사건에서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통해 단시간 노동자가 인권을 침해받고 안전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책임을 느끼고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던 김지은 씨는 “내가 지키고 싶은 나의 전부인 ‘노동자 김지은’으로서의 삶을 걸고 미투를 해야만 했다. 그 분야에서 쌓아온 저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만 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갑의 위치에 선 고용주의 성폭력은 노동자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다. 단시간 노동자가 고용주의 갑질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는 충격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가해자를 처벌하고 일상을 회복하고자 했으나 수사기관은 사적인 남녀 관계의 문제로 사안을 보았음은 물론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비동의 강간죄가 부재하고, 근로기준법과 고용평등법이 침묵하고, 경찰이 성인지 감수성을 망각한 바로 그 사각지대에서 한 10대 청년 여성 단시간 노동자가 죽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산업재해 혹은 중대재해가 아닌가.
2026-04-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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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청년이 떠나면 해양수도도 없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정책 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해양 관련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 논의가 본격화하고, 북극항로 추진본부 출범과 수산진흥공사 설립 추진, 국내 최대 국적 선사인 HMM 본사 이전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부산의 해양 정책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 부산은 글로벌 해양 경제 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정책 구상과 인프라 확충의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짚어 봐야 할 불편한 현실이 있다. 바로 이 해양 산업 생태계를 실제로 운영하고 혁신을 이끌어갈 청년 인재를 충분히 길러내고 있느냐의 문제다. 과연 부산은 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해양 정책과 연구의 핵심 거점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국립수산과학원,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국가 해양 정책과 연구를 이끄는 주요 기관들이 부산에 집적돼 있고, 이들 기관은 매년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전문 인력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물류 인프라까지 더하면, 부산은 명실상부한 해양 산업 중심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산업 기반을 뒷받침할 인재는 충분한가. 현재 부산의 해양수산 전문 교육은 국립부경대와 한국해양대, 부산대 등 일부 국립대에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은 해양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수산 분야는 국립부경대를 제외하면 체계적인 인력 양성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해양 금융, 해양 로봇, 해양 바이오와 같은 신산업뿐 아니라 스마트 양식, 해양 식품 산업, 항만, 해양물류 등 해양 산업 전반에서 전문 인력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대학들은 여전히 기존 학과 체계에 머무른 채 급변하는 산업 현장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청년들은 해양 산업에서 미래를 그리지 못한 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더욱이 수산 분야 인력의 고령화는 이미 위험 수준이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수산 산업은 물론 부산 해양 산업 전체의 인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는 미국 텍사스의 오스틴이다. 오스틴이 ‘실리콘 힐즈’라는 이름의 세계적 기술 도시로 성장한 배경은 단순한 세제 혜택만이 아니었다. 지역 대학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강력한 교육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먼저 와서 인재를 찾은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가 있었기에 기업이 자연스럽게 몰려든 것이다.
부산 역시 같은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HMM과 같은 대형 해운기업과 공공기관이 인력 걱정 없이 부산행을 선택하게 하려면, 부산이 전문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도시라는 믿음을 먼저 심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대학들의 역할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립대 몇 곳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지적되는 특정 대학 출신 쏠림으로 인한 인력 풀의 경직성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들은 각자의 강점과 해양 산업을 연결하는 융합 교육 모델을 과감히 확대하고, 해양수산 특성화 학과 신설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IT·AI, 공학, 인문학,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이 해양 산업과 연결될 때 수도권 대학과 차별화된 부산만의 독보적인 인재 생태계가 완성된다.
동시에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대학 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첨단 연구 장비를 학생들과 공유하고, 기업과 기관이 교육 과정 설계에 참여하고 졸업생 채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적 인재 양성 생태계가 구축되면 교육과 산업 현장의 미스매치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대학과 기업, 연구 기관이 인프라를 공동 활용하며 현장 중심 교육을 운영하면 지역 인재와 산업 경쟁력은 동시에 강화된다.
부산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해양 인프라, 다양한 정책 거버넌스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수도의 경쟁력은 건물이나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 인재의 역량과 열정에서 나온다.
지역 대학들이 수동적 대응에서 벗어나 인재 공급의 전진 기지로 거듭나고, 부산시가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과감히 펼칠 때 부산은 기업과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해양도시가 될 수 있다. 기관과 기업의 이전만으로는 해양수도가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이며,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통한 인재 생태계 구축이야말로 우리가 완성해야 할 최고의 해양수도 전략이다.
2026-04-20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