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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공자가 목욕탕에 가셨다면
어느 날 공자는 몇몇 제자에게 자기 포부를 말하도록 했고, 그중에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싶다는 증석의 말에 공감하였다. 기수는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에 있는 강이다. 맑은 물에 목욕하고 산마루에서 옷자락을 날리며 노래를 부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초연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율곡 이이도 “나도 벗들과 함께 저 기수를 보러 가리니, 내 옷 벗어 맑은 물에 목욕하고, 내 갓 벗어 맑은 바람에 털어 쓰리라”라고 노래했지 싶다.
그런데 공자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목욕탕에 들른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집집이 욕실과 샤워 시설이 있어 동네 목욕탕이 귀한 시절이 되었지만, 살아남은 목욕탕은 그 규모를 키우고 각종 설비를 갖췄다. 미온·고온·저온·냉·급냉탕은 물론이고 습식·건식 사우나에 반신욕·폭포·복부안마탕까지 갖춘 곳도 있다. 바닷물을 제공하는 해수온천도 있다. 시설은 기수보다 몇 배 뛰어난 게 틀림없지만, 무우의 여유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 축소판 같은 목욕탕 문화
타인 배려 없는 이기적인 행위 만연
현재의 대학 강단 역시 다르지 않아
기성세대의 일탈 행위 그대로 답습
공자가 강조한 진심 어린 마음·공감
편안한 삶 위해선 모두가 되새겨야
샤워기로 몸을 씻으면서 주변에 물을 튀기는 건 예사고, 온몸에 폭포탕의 강한 물줄기를 맞으면서 그 물줄기가 어디로 튀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옆 사람이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사우나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나와 그대로 냉탕으로 뛰어드는가 하면, 욕탕 가에 온몸을 드러내 놓고 자는 사람도 있다. 샤워를 마치면 수도꼭지를 잠그라는 안내문이 있는데도 샤워 뒤 그대로 자리를 뜨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드라이기 옆에는 머리 외에 다른 부위는 말리지 말라는 정중한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공자가 이런 사람을 본다면 분명히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처럼 목욕탕은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이지만 그리 편안하거나 상쾌한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이런 목욕탕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목욕탕에 가면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연령층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몸집, 몸매도 각양각색이다.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도 있고, 팔뚝에 작게 한 사람도 있고, 전혀 없는 사람도 있다. 소지품도 목욕용품부터 음료수까지 꼼꼼하게 챙겨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만 덜렁 와서 면도기부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역시 다양한 사람으로 이뤄진 우리 사회에서 사는 것도 그다지 편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문제일까.
공자가 우리 목욕탕에 와봤다면 반드시 이렇게 말했을 법하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누구나 목욕탕에서 신중하게 면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남의 샤워기나 폭포탕의 물줄기를 뒤집어쓰는 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땀이 흐르는 몸으로 그대로 찬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자신은 결코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는 마구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결코 사기를 당하고 싶지 않지만, 남을 등치는 전세사기엔 가담하기도 한다. 나는 절대로 주식 투자로 손해를 입고 싶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주가조작에는 가담해서 차익을 실현한다. 나는 위층의 소음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는 너무 흐뭇하다. 나는 남의 담배 연기는 싫지만, 나의 흡연 욕구는 결코 참을 수 없다. 거론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일반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 사회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일부 학생이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에 태블릿이나 노트북만 앞에 둔 채 채팅을 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를 지적하면 화를 내면서 강의실을 나가버린다. 출석을 부르고 나면 슬그머니 자리를 뜬 다음, 강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혹 전화가 오면 강의실을 나가 몇십 분이 지나서야 돌아온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 나가서 그대로 써먹을 것이다.
학생들의 행위는 사기나 기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의실에 앉아 있어도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자기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출석 체크를 했으니 이제 수업은 듣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일부 기성세대들의 일탈 행위를 그대로 강의실에서 따라 하는 셈이다. 이들이 사회로 나가면 더욱 불편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공자가 자신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고 하자, 증자는 그것은 충(忠)과 서(恕)일 뿐이라고 하였다. 충은 진심을 다하는 것(中心)이고, 서는 남과 공감하는 것(如心)이다. 내 진심을 다하고, 남과 공감할 수 있어야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나의 냉담함과 무관심이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24-12-1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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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등록 동거혼' 어때요?
나는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의 세대를 살았다. 어른들의 아들·딸 차별도 은연중 받아들이며 자랐고, 적당한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아이도 낳고. 그렇게 세상이 정해준 제도와 틀에서 사는 삶을 ‘정상적’ 삶이라 여기는 세상 속에 살았다. 한때 우리에게 먹먹한 체증을 남겼던 그 소설이 나온 지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얼마 전 모델 문가비가 결혼 여부나 친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서 출산 사실을 고백했고, 뒤이어 그 친부가 배우 정우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상은 떠들썩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문가비,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결혼은 하지 않고, 자녀 양육만 책임지겠다는 정우성에 대하여,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지 않는다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도 서로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마당에, 함께 아이를 낳았다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불문하고 혼인을 해야 하고 부부로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세상의 이런 시선 때문인지, 이혼소송을 하다 보면 ‘사랑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했다는 커플’, ‘헤어졌지만, 나중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 다시 만나 혼인신고를 했다는 커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경우를 보면서, 아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법이 꼭 전통적인 가족과 결혼 제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많다.
1년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동거하는 남녀에게도 가족 지위를 인정하여 법적·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의 ‘등록 동거혼’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법안 발의로 이어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는데, 모델 문가비와 배우 정우성의 ‘비혼 출산’은 다시금 비혼 출생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조명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혼인 외 출생아는 1만 9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4.7%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20~29세 청년층의 42.8%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지만, 아이를 출산할 세대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겼던 그 ‘정상적 가족’의 기준이 의미가 모호해졌다면 법과 제도도 그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등록 동거혼’이나 ‘생활동반자법’ ‘동반가정등록제’ 등 비혼 출산의 지원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 제도 도입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도 재점화해야 한다. 1990년대 말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이 도입한 ‘등록 동거혼’은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시청에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기존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복지 혜택 등을 제공하는 제도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은 세금, 사회보장, 주거 계약 등에서 결혼한 커플과 유사한 권리를 누리면서도 재산은 각자 관리하고, 동거혼의 해소는 커플 중 한 명이 시청에 ‘해지 요청’을 하면 소송 없이도 가능하다. 결혼과 달리 등록 동거혼은 배우자 가족과 인척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데, ‘시월드’ ‘처월드’와의 갈등으로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 제도가 출산율을 높인다는 통계는 없지만, 프랑스 합계 출산율이 1.82명으로 높은 편이고, 비혼 출산율이 60%에 이르는 것을 보면, 결혼에 대한 부담감으로 출산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해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러한 제도 도입이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고, ‘동거’의 정의와 요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또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주요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결혼율과 출산율로 국가 존립의 위기까지 온 상황에서,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미 태어난 수많은 비혼 출산 아이들이 부모의 결혼 여부에 따라 ‘혼외자’라는 사회의 비판적 시선에 상처받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태어난 귀한 아이들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함께 양부모의 실질적 양육 참여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얼마 전 방영된 ‘조립식 가족’ 드라마는 가족의 정의와 형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주인공은 “서류상 가족이 뭐가 중요해요? 서로 가족이라 생각하면 가족이지. 그걸 뭐 꼭 종이 쪼가리로 확인받아야 해요”라며 세상의 편견에 맞선다. ‘정상’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지 않도록 동거 커플, 비혼 부모,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 법적·사회적 논의를 통해 ‘등록 동거혼’ 제도를 신중하게 설계한다면,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24-12-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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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탄핵 부결 유감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었다. ‘탄핵 트라우마’를 운운하며 투표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단체로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들에겐 국민들의 ‘계엄 트라우마’는 안중에도 없고 정권 유지에만 눈이 멀었나 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야당의 폭거를 알리려는 불가피하고 적법한 판단이었기에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변호만 늘어놓은 채 두문불출했고, 계엄을 건의한 인물로 알려진 국방장관은 해임 대신 면직되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위원 중 계엄 반대를 분명히 표명한 사람이 두어 명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와중에 영문도 모른 채 불려 간 군 장병들은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지난 역사에서 반국가세력이라는 구호와 계엄이 동반했던 폭력, 학살, 피 흘린 투쟁의 시간들을 한국인은 기억하고 있다. 탄핵을 부결시킨 여당 의원들도, 계엄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관료들도, 대다수가 민주화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어떻게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과 나라 살림을 운영한다는 사람들이 소신과 용기, 책임감 대신에 권력에 맹종하고 자기 안위 챙기기에만 급급한지 진심으로 개탄스럽고 국민으로서 수치스럽다.
이번 내란을 통해 윤 대통령이 정치적 판단력과 합리적 사고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탄핵 표결을 앞둔 몇 시간 전 2분짜리 대국민 담화에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며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계엄 사태는 결코 사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미 수차례나 뒤통수를 맞아서인지 이제 그의 발언엔 일말의 신뢰도 생기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하루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무능했고 참담했던 그의 리더십을 반추해 보는 것은 미래를 위한 과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파시즘 이론의 기초가 된 칼 슈미트 사상에 심취한 것처럼 들리는 발언들을 왕왕 해왔다. 슈미트에게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며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체다. 윤 대통령에게 자신과 이념이 다른 사람은 곧 적으로 간주되었다. 계엄을 통해서는 자신이 바로 대한민국 주권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로 여긴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극과 극이 통하듯 극우사상은 독재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편 윤 대통령의 실패는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그해 7월 30일 국민의 힘에 입당하여 이듬해 3월 9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바꿈에 단 1년이 걸렸고 정계에 첫 발을 내디딘 지 고작 7개월 만에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쯤에서 갑자기 억울해진다. 예컨대 청년들은 취직을 위해 인턴 경험을 쌓는 것이 필수가 되었고 다수의 기업들은 검증된 인재만을 뽑겠다고 경력직만 채용하는 시대다. 어째서 정치는 예외일 수 있겠는가. 검사 경력만 있고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그를 대통령에 앉힌 건 마치 신입사원을 최고경영자로 임명하는 도박과도 같은 일이었다.
모르면 열심히 배우기라도 해야 할 텐데 윤 대통령은 독단에 빠져 정치의 문법을 익힐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검사 시절의 신념을 고집하며 점점 더 몰상식해져 갔다. 보통 신입사원은 선배들의 업무 과정을 따라 하고 비교하며 기본을 갖추는 일부터 시작한다. 비교는 배움의 출발이고 사리분별의 기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친 비교의 폐단 때문에 그 가치를 경시하곤 하지만 뭐든지 적당함이 중요할 것이다. 정책 지지율이나 여론 비교 등 국정의 길잡이를 모두 묵살하고 마이웨이 독선에 빠졌을 때 과신과 만용으로 탄생하는 괴물을 보았다.
국가적으로 정치인을 길러낼 체계적인 리더 양성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문제는 더 심각해 보인다. 국회의원 자리는 보신주의자가 늘어가며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은 공천권을 가진 정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당 눈치를 보느라 국민 눈치는 까먹고 있다. 또 대통령 당선인을 배출해 여당만 되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대통령 후보자는 정책 능력이 아니라 이미지로 승부하는 떠들썩하고 허세 있는 한 편의 쇼가 국가의 리더 선발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소국의 스트롱맨 그릇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한국이 경제 대국인 건 맞지만 동시에 영토가 작은 나라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과 같은 강대국 스트롱맨들의 출현 속에 덩달아 한국도 마초맨을 뽑았는지 모르겠으나 그 그릇이 골목대장보다도 작았다. 한국 정세에 맞는 리더상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발 최소한 양심과 염치는 챙기는 인물 중에서 리더를 찾기로 하자.
2024-12-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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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대러 적대 정책 고수, 우리만 손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취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군 파병 논란을 뒤로하고, 쿠르스크와 돈바스에서 서구와 러시아의 진영 싸움이 한층 거세졌다. 겉으로 보면 세계가 파국을 향해 달리는 듯하다. 러시아 본토를 장거리 미사일로 공격하겠다는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구를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이 끝내 수용하였고, ‘한반도 밖 금지 정책’에서 벗어나 얼마 전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인지뢰 봉인까지 풀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을 겨우내 타격하겠다고 나오고 있고,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새 중거리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서부까지 부수어댄다. ‘3차 세계대전 위협론’까지 나도는 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양측이 조금의 영토라도 더 확보해서 앞으로 벌어질 종전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협상 카드’일 수 있다.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이 난항을 겪던 1952년 10월의 철원 ‘백마고지’에서도 이랬다. 우크라이나의 전투가 거칠어지는 와중에서도 각국은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서로 물밑 대화에 나서고 있고, 새 상황에 대처할 대응팀을 가동 중이다.
종전 치닫는 ‘우크라 전쟁’
각국은 이익 극대화 위해
물밑 대화 등 대응책 부심
한국 정부 “파병” 운운하며
위기 고조 정책 놓지 않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그런데 한국 정부만 우직하다. 우리 정부의 태도는 2년 10개월 전의 전쟁 발발 초기나 종전협상안이 난무하는 지금이나 시종일관 같다. ‘대러 적대 정책’, 그것 하나뿐이다. “약한 나라가 침략을 당하면 돕는 게 인지상정”이라거나 “러시아만이 악의 축”이라는 게 우리 대통령의 거듭되는 국제 인식 수준이고, 이를 말리는 외교·안보 참모진도 없다. 이러니 외교·안보 측면에서 국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한민국은 당사자도, 유럽 국가도, 나토 회원국도, 그 무엇도 아니다. 우리가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무슨 ‘게임 체인저’도 아니다. 그런데도 복합적인 전쟁 배경과 수시로 달라지는 상황과 관계없이 줄곧 한쪽을 악마화하여 배척한다면,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과연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계속하여 담보할 수 있을까. 워싱턴마저도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며 크렘린과 ‘휴전선’ 대화에 나선 마당에 우리만 ‘러북 야합 단계를 봐가며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직접 공급 검토’ ‘파병 용의’ 등 으름장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면 결국 어쩌자는 걸까. 이럴수록 우리만 손해가 난다. 국가, 국민, 미래 세대가 고루 피해를 본다.
2022년 3월 7일 러시아로부터 ‘비우호 국가’로 지정된 대한민국은 계속된 대러 강경책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현대자동차 공장을 지난해 말 1만 루블(약 14만 원)에 빼앗겼다. 대한항공도 지난 10월에 2년간의 소송 끝에 1800억 원대의 과징금 폭탄을 부과받았다. 이유는 2021년 독일로 가던 KE259 편이 경유지인 모스크바에서 공항 세관의 날인을 받지 않고 이륙했다는 것, 그것 하나다.
북극만 해도 지구 환경 변화로 얼음이 녹아 종전의 5개월에서 7개월로 항로 이용 기간이 늘었다. 온난화로 인한 지구적 재앙의 현장인 북극항로가 ‘엉뚱하게도’ 부산엔 지금까지의 컨테이너 환적항 정도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창출 항으로 도약할 기회를 주고 있다. 그렇지만 북극의 55%를 차지하고 8개국 북극이사회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러시아를 계속 적대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기회가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
1990년대 북방정책 시행 이후 부산 중앙동 근처에 많은 대러 무역회사, 선박 대리점, 해운용품 공급사들이 생겨났고, 러시아학과를 졸업한 적지 않은 인재들이 그곳에서 회사를 운영하거나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정부의 불균형 외교로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된다. 한국 기업은 중앙아시아의 가스전 개발 등 국책 프로젝트에 러시아의 ‘가스프롬’ 등 국영 기업을 끼지 않고선 협력업체로 참여하기 힘들다. 영원히 계속되는 전쟁이라는 건 없으니까 언젠가 포화가 멎으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우리 기업이 들어가서 복구사업도 해야 한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이 모든 장밋빛 기회를 전부 포기할 것인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적의 무리를 소탕하여 지구를 지키겠다”라는 ‘태권 브이’와 ‘마징가 제트’식 접근만으로는, 적색 공포증을 벗지 못한 냉전적 사고와 극우적 시각만으론, 21세기를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 성숙한 접근이 이제부터라도 필요하다. 미국도 일본도 그리고 나토의 서유럽도 자기 밥그릇은 챙겨가면서 처신한다. 이탈리아의 통일과 번영을 꿈꾸며 1532년에 새로운 정치사상서 〈군주론〉을 펴낸 마키아벨리는 “국가 지도자는 나라를 곧이곧대로 끌고 가선 안 된다. 나라에는 ‘더 큰 도덕’이 있고, 때론 ‘부도덕’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지켜낸다”라고 설파했다.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는 천진난만한 대러 적대 정책은 빨리 버려야 한다.
2024-12-0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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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블록체인 혁신은 인식 전환에서부터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혁신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 중에는 현재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데 굳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필자가 블록체인 특구에 본사를 둔 공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을 발행·유통해 새로운 금융 혁신을 일으키자고 설득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열린 부산 소재 대학 교수들의 토큰증권 관련 연구 토론회에서도 우리나라에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아 새로운 금융 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드는 것은 헛수고에 그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하는 공기업 사람들도 만났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금융 관련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에 대한 성토로 끝날 일이라며 토론회 자체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든 혁신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의 몫이었지 정부 기관이 주도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규제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보다 늦게 나타났고, 인프라는 점진적으로 갖춰지고 발전해 나갔을 뿐 인프라가 갖춰지고 나서 혁신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기술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선택받은 끝에 자연스럽게 인프라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외국에서는 가상화폐의 일종인 스테이블 코인을 블록체인 기술이 불러올 혁신의 하나로 꼽는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를 기초 자산으로 해 1달러를 맡기면 1코인을 주는 식인 USD코인(USDC)과 테더(USDT)다. USDC를 가진 투자자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다른 코인을 사들이거나 상품 값을 치르는 데 이용할 수 있다. 더는 해당 코인이 쓸모가 없어지면 도로 맡기고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 상품권을 사서 물건을 사는 행위나 충전식 선불카드를 쓰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거래 내용이 블록체인 체계에서 뚜렷하게 기록·관리되며 결제가 곧바로 이뤄지는 부분이 다르다. PG(전자지급결제대행)와 같은 중간 업체가 필요 없어 중간에 떼이는 수수료가 없고 실시간으로 돈을 받을 수 있어 대금 수령이 빨라진다. 이는 국제 교역에도 적용할 만하다. 서울 동대문 의류업자들이 외국에 옷을 팔고 받은 돈으로 USDC나 USDT 같은 스테이블 코인을 쓴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처럼 시장은 벌써 그 효용을 알아챈 상태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은 기존의 지급결제 체계에 혁신을 불러온다. 만약 티몬-위메프 사태 때 스테이블 코인을 썼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이미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위한 규제가 마련돼 있으며 은행이나 신탁회사를 통해 엔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유통되고 있다. 부산이 경쟁 도시로 주목하고 있는 홍콩에서도 이미 여러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유통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에서도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서는 사실상 금기시될 정도로 시도조차 안 되고 있다. 이는 한국만 스테이블 코인의 효용에 대해 알지 못해서도 아니고 기술이나 인프라가 없어서도 아니다. 블록체인을 코인 사기와 연결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혁신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스테이블 코인은 그동안 코인과 토큰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온 끝에 현실에서 적합한 사용처를 찾게 되었다. 그렇듯이 스테이블 코인을 비롯해 토큰증권, 각종 실물자산토큰(RWA) 등을 모두 블록체인 기술의 결과물로 보고 민간 영역에서 자유롭게 시도하고 경쟁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자리매김하려면 이런 시도와 경쟁이 활발히 이뤄지는 장(場)이 돼야 한다.
인프라나 규제 탓만 하는 건 변명일 뿐이다. 경연대회·콘퍼런스·토론회 등 어떤 형태든 상관없이 블록체인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고 논의할 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쟁과 발전의 정반합이 생겨나고, 기업이 직면하는 장애물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부산시가 직접 나서거나 부산 소재 유관기관, 정치 인사들을 적극 활용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 지역 금융기관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예대 마진을 통해 지역민들로부터 얻은 이익은 결국 부산이라는 지역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이 소멸하면 결국 지역의 금융기관도 쇠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관련 행사나 기업 투자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 기업을 규제라는 핑계로 절벽에 밀어놓고 살아 돌아오는 자만 키우겠다는 방식으로는 부산이 ‘노인과 바다’ 신세를 면할 길은 없다.
2024-12-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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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서른 살이 되니 보이는 부모님 얼굴
10년 전 드라마 하나를 소환하고 싶다. 2013년 SBS에서 방영했던 ‘상속자들’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상속자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차은상(박신혜 분)이 부유층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사건사고를 겪으며 사랑과 우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최근에 우연히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19살이던 주인공들이 10년 뒤 29살은 어떨까 상상하는 장면이었는데, 주인공들은 이뤄놓은 것도 많고, 회사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올랐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완전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19살에 딱 생각했던 29살의 모습이다.
생각보다 서른은 더 빨리 찾아왔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그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해가 바뀌면 곧 서른이지만, 아직 뭔가를 이뤄가는지는 잘 모르겠고, 여전히 진로는 고민되고, 외면만 훌쩍 컸지만 내면은 어린아이의 모습 같다. 그렇지만 세월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보다는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가 아닐까 싶다. 하얗게 센 아빠의 흰머리, 함께 여행 갔을 때 느껴지는 엄마의 줄어든 체력, 괜히 키가 줄어든 것 같은 엄마·아빠의 뒷모습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에 부모님이 내가 크는 것을 보면서 세월을 체감했다면, 이제는 내가 부모님이 늙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세월을 느껴야 하는 순서인가 보다.
누구도 저 혼자 자라지 않았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나이
젊은 층이 세월을 실감하는 순간은
나 아닌 부모의 나이 듦이 보일 때
받은 사랑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경제적 부양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나의 나이 듦과 부모의 나이 듦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 이유가 있다. 무릇 서른이 되었다면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그렸던 서른은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통계청의 가족 실태조사 결과, 20~29세는 부모를 경제적으로 모셔야 한다는 질문에 32.4%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고, 30~39세는 36.9%가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물론 부모님 부양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과거의 인식 조사와 비교했을 때는 적은 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모님을 직접 모셔야 한다는 질문에 20%만이 긍정 답변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데에는 더 많은 수가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체감되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벌써 노후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2030 세대의 노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부모님 노후는 젊은 층의 관심 대상이다. 함께 동거하면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많이 없지만, 부모님의 은퇴와 본인의 커리어를 함께 생각하면서 미래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나이 서른을 곧 앞두었거나, 서른을 조금 지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제서야 곧 서른을 맞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체감되었다. 내 나이가 드는 만큼 늙어가는 부모님 나이 말이다.
과거에 비해서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은 부모님이 늘었다는 인식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부모의 나이가 어릴수록 노후 준비에 자녀가 필요하다는 응답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70대 이상 부모의 64.6%는 자신들의 노후에 자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60세 이상~70세 미만에서는 53.7%로 떨어지고 50대 이상~60대 미만에서는 48.5%로 50%를 밑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 부모님 중에서도 자녀들과 함께 사는 미래를 그리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부모님들은 많이 없다. 기대 수명이 점점 늘어가는 만큼 본인들의 힘으로 노후를 꾸리기 위해 더 도전하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우리 부모님도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고, 친구들 부모님도 노후를 위해 기술을 배우거나 새롭게 대학 공부를 시작한 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에 부모님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20대를 지나면서, 어른이란 지키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강해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지키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조부모, 반려자, 반려동물 등 사랑하는 존재들 앞에서는 이런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을까.
한없이 어리고만 싶은 마음과, 강한 어른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스물아홉 살을 떠나보낸다. 10년 전, 드라마 속 차은상이 떠올렸던 것처럼 화려하고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내가 혼자선 이만큼 자랐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부모님의 주름살을 처음 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을 지킬 수 있는 용기 말이다.
2024-11-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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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에서 시작하는 통일 관광
올해 11월 부산에서는 평화통일에 대한 행사가 두 건이나 열렸다. 인류가 직면한 현안의 협력 방안과 비전 공유를 위한 ‘2024 부산 세계평화 포럼’과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이 제시하는 자유·인권·통일의 꿈’이라는 세미나였다. 둘 다 글로벌 통일 담론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주제였다. 포럼을 준비하면서 도시 부산이 전쟁으로 치닫는 세계적인 흐름을 되돌려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관광이 주요한 해결책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것도 여기 부산에서.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도약을 멈추지 않는 부산은 통일과 평화를 향한 여정을 열 가능성을 품고 있다. 관광이라는 도구를 통해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될 수 있다면, 그 첫걸음은 부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부산은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마지막으로 모여든 곳이었다. 국제시장이나 자갈치시장을 거닐다 보면 그 흔적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전쟁의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가 깃든 공간이다. 이런 장소는 통일을 위한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며,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는 곳. 부산은 그런 이야기가 있다. 부산항에서 출발해 동해를 따라 북한의 원산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상상해 보자. 남북의 사람들과 문화가 배에서 만나 교류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특별할까? 바다는 국경을 초월하는 공간이다. DMZ라는 땅 위의 경계선이 아니라, 바다라는 열린 공간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한층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관광은 단순히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바닷길을 통한 관광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남북 화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바다 여행 말고도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개성, 그리고 평양까지 이어지는 여정도 상상할 수 있다. 열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남북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교류할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며 부산역은 KTX의 종착역이 아니라, 통일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새로운 출발지가 될 수 있다. 특히 유라시아 철도망과 연결된다면 부산은 동북아의 관광 허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여정이 평양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진다면, 한반도가 세계로 향하는 출발점, 새로운 유럽 여행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K-move의 엄청난 영향력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요즘, 부산도 이미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도시 중 하나이다. 해운대의 푸른 바다, 광안리의 야경,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부산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런 부산의 매력에 남북 관광이 더해진다면, 부산은 남북통일을 상징하는 글로벌 허브가 될 수 있다. DMZ와 연결된 관광 패키지, 부산에서 시작해 북한의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의 숨겨진 자연과 문화가 부산의 국제적 인프라와 연결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 남북통일은 부산에는 분단의 종결이 아닌 대한민국 글로벌 관광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분단과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인 부산은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삶이 녹아든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은 전쟁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면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장소는 관광을 통해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북이 함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장이 되어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세계인을 끌어들여 한반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철도와 바닷길, 그리고 부산의 국제적 자원을 활용한 통일 관광은 작은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바꿀 큰 힘이 될 것이다. 부산이 그 여정의 시작점이 된다면, 이 도시는 단순히 대한민국의 끝이 아니라, 세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시작점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요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을 비롯해 시리아, 예멘, 수단, 미얀마 등 여러 국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무력 충돌로 인해 우리마저도 마음이 편치 않다. 더욱이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했다는 소식은 세상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기에 개최된 부산 평화 포럼을 준비하며 부산에서 시작되는 이 통일과 평화의 이야기가 남북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날을 꿈꾼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자연스럽게 입안에서 흥얼거려진다. 지금은 꿈이지만 여행이 우리를 연결하고, 관광이 평화를 열어줄 그날이 멀지 않았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2024-11-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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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칼럼] 대양적 전환과 부산
대양적 전환은 칼 슈미트의 용어이다. 유럽이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나온 일을 말한다. 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인도양에 이르러 향신료 무역을 하던 일이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발견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공간 혁명이 시작되었다. 대양(ocean)은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남극해, 북극해 등 다섯 개다. 서구인은 대양과 바다를 아주 선명하게 구별해 사용한다. 바다(sea)는 뭍(land)의 단순한 대응 개념에 불과하다. 육지 속의 바다인 강을 아울러 지구의 7할 이상이 바다이다. 그러므로 대양은 먼 바다이다. 그게 얼마나 먼가를 알려면 육지 사이에 놓인 지중해를 생각하면 된다. 가령 동해에서 동중국해에 이르는 바다는 동아시아 지중해이고 남중국해 아래 동남아 해역을 포함하면 아시아 지중해이다. 이러한 지중해를 모두 연안(coast)으로 규정하는데 대양적 전환은 이러한 연안을 넘어서는 일에 다를 바 없다.
15세기 말에 서구의 대양적 전환이 시작돼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그 주도권이 바뀌어 왔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서둘러 해양을 지향했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북방 대륙은 물론 남방 해역으로 제국의 영역을 넓혔다. 주지하듯이 대한제국은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는데 해역 혹은 대양의 세계와 접촉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 일제가 지배하던 시기에 한국은 대양으로 나아갈 방도가 없었다. 제국의 바다에 갇힌 형국이었으니 그저 해협을 오가는 데 그쳤다. 소설가 이병주가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왕래하던 관부연락선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가 소설에서 말했듯이 영광과 굴욕이 함께 하는 자리였다.
그렇다면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찾아온 해방이 한국의 대양적 전환을 가능하게 했을까?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다급한 처지에서 그 외부를 제대로 살필 겨를이 충분하지 않았다. 형식 논리에서 해방이 해양의 해방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실제에서 대양으로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태평양의 지배권을 가진 미국의 군정(GHQ)이 제약한 해양 한계선 안에 있던 한국이 대양을 접속할 여력은 없었으며 그나마 일제가 남긴 선박을 수습해 정부가 해운을 통합, 1949년 대한해운공사를 설립한 일이 다행스럽다. 극동해운 소속의 고려호가 고철을 싣고 1952년 10월 21일 부산항을 출항해 태평양을 건넌 일이 대양 항해의 시초이며 대한해운공사에 의한 대미 정기항로 개설은 1953년 동해호와 서해호를 미주항로에 취항한 데서 비롯한다. 이로부터 부산호, 마산호, 동해호, 서해호, 남해호, 천지호를 도입한 대한해운공사가 동남아와 미국 간 항로를 확대했으니 늦었으나 힘겨운 대양적 전환의 시동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대양적 전환은 한국전쟁이 만든 시공간에 하나의 역설로 가능했다. 임시수도 부산의 역사에서 대양적 전환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이 중요한 사건이다. 물론 외부로부터 UN군이 들어오고 전쟁 물자가 수송되는 등의 과정으로 이뤄진 대양의 접속이라는 측면이 있다. 정부 수립 이후에 해사 행정 체계를 어느 정도 수립했으나 외항선의 현실이 거의 무질서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은 부산항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전쟁으로 인한 해운 부문의 파괴가 광범한 가운데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일 항로를 통해 후방 운송 활동을 전개했으니 다른 한편으로 해방 이전 항로의 복원에 상응한다. 한동안 일본 선박이 부산항을 휘젓는 사태가 있었는데 1954년이 돼 모두 철수하는 형세였다. 그만큼 우리의 자주적인 대양 항해는 지체됐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자유 대양의 중요성을 외쳤으나 식민 지배로 좌절된 일이 1950년대에 와서 실현됐다. 임시수도, 전시수도, 피란수도 등으로 불리는 말은 한국전쟁 시기 부산의 지위를 지시하는바, 그 의미의 많은 부분을 부산항에 돌려야 한다. 단지 천일 동안 수도 역할을 했다는 한시적 영광을 기념하는 일에 그치지 않아야 하는데, 부산항을 통해 한국이 대양적 전환을 이루었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세계와 동행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산항은 부산의 핵심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중추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진행한 원양어선의 출항과 더불어 무수한 상선이 오가면서 근대화가 성취됐다. 그러므로 보상받아 얻을 해양의 수도라는 수사에 그칠 일이 아니라 부산은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인 서울 중심주의의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아시아 지중해와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미래 한국의 대안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시아 해역의 여러 나라 도시와 교류하고 다른 한편으로 환태평양의 국가와 연결하면서 세계와 함께하며 다문화주의를 실현하는 세계도시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네트워크 도시 부산이 되어야 한다.
2024-11-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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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나무위키 규제에 반대하는 이유
전자사전은 학창 시절 인기 아이템 중 하나였다. 스마트폰은 개념조차 없던 시절, 형편이 괜찮은 친구들은 전자사전과 인터넷 강의를 넣은 PMP를 들고 다니며 공부에 참고했고 나머지 친구들도 종종 그것들을 빌려 쓰곤 했다. 전자사전엔 으레 메모장 기능이 탑재돼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남의 전자사전에 메모를 남긴다는 것은 마치 도서관 책에 밑줄을 긋는 것과 같아서 누구도 그 기능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기계든 사람이든 버그(오류)는 생기게 마련. 누군가가 한 친구를 놀린다고 메모장에 그의 별명과 유래를 적어놓은 것이다. 유행의 시작을 알리는 한 줄이었다. 수능 공부로 지쳤던 우리는 수업 때마다 전자사전을 만지며 킥킥댔다. 메모장에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별명, 유행어, 심지어 체육대회 결과까지 온갖 내용들이 담겼다.
어느덧 그 전자사전은 3학년 4반의 역사와 밈을 담은 하나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A4 용지로 몇 페이지를 넘어설 만큼 방대한 분량이었다. 고3 시절 참여형 백과사전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면 지금쯤 엄청난 부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위키피디아 창립자 지미 웨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제작과 편집이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되는 오픈 소스 백과사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2001년 위키피디아를 만들었다. 내용상의 오류는 집단지성에 의해 바로잡힐 거라 믿었다. 사전 내용 채운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미 웨일스는 지식을 나눔으로써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위키피디아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나무위키가 있다. 세계적으론 위키피디아가 대세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나무위키 접속량이 7배는 더 많다. 웹사이트 접속자 순위도 지난달 1일 기준 5위를 기록했다(시밀러웹). 구글·유튜브·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많은 접속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최대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인 나무위키의 기원은 특이하게도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이다. 2007년 한 건담 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위키피디아를 본뜬 백과사전을 운영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정보나 인터넷 가십 등을 사전에 담았는데, 기존 백과사전은 외면하는 정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사전은 이후 정치·경제·역사 등 기존 백과사전이 다루는 영역까지 확장했다. 그게 오늘날의 나무위키가 됐다.
나무위키의 최대 장점은 일상성이다. 나무위키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등재된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등장인물과 그들로부터 파생된 각종 유행어는 물론, 부산불꽃축제 감상 가능 지역 리스트까지 온갖 정보를 망라한다. 제22대 총선을 다루더라도 선거의 개요나 결과만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나 논란의 전개 과정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별도의 사실 확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신변잡기적인 정보까지 모두 기록되는 나무위키는 정치인들에게 불편한 존재다. 자신들의 과거 막말과 의혹 등이 고스란히 ‘박제’되는 이유에서다. 언론 보도는 금세 흘러가지만 나무위키에 등재된 정보는 두고두고 남는다. 허위 사실이 아니라면 지우기도 쉽지 않다. 정부 여당이 나무위키 규제를 추진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나무위키가 파라과이에 소재를 두고 있어 국내법을 무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개인정보 침해, 허위 사실 유포 등이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경고 이후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전체 차단도 고려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표면적으론 법적 문제 때문인 듯하나 실상은 정치적 이유가 크다. 나무위키는 구조적으로 보수 정당에 불리하다. 이용자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서다. 나무위키는 논쟁적인 팩트(fact)에 관해선 이용자들의 토론을 거쳐 합의된 내용을 등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고지전’이라고 부른다. 청년층 지지가 낮은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 토론에서 이겨 지식의 깃발을 꽂는 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어떤 사이트를 차단하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기 이전에 개인이 남기고 싶은 지식을 기록하는 메모와 일기의 총합이다. 어떠한 권위도 부여된 적 없지만 많은 사람이 쓰면서 절로 권위가 실렸다. 나무위키 접속을 차단해도 자신이 가진 지식을 기록하고, 알리고 싶은 개인의 욕구마저 막을 순 없다. 그 거대한 욕구 자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면, 나무위키 접속을 차단해도 새로운 나무위키들은 다시 등장할 것이다.
2024-11-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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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트럼프와 비트코인이 열 부산의 새로운 기회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대통령 당선 직후의 시장 반응이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당선 후 비트코인은 급등했고,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주가는 30% 이상 상승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에 이어 미 의회 지형도 가상화폐에 우호적으로 바뀌면서 업계에서는 '가상화폐 르네상스', '가상화폐 황금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초로 8만 달러를 넘어서는 등 가상화폐 가격이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연말까지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마라', '허트8' 등 비트코인 관련 기업의 주가도 가파르게 올랐다. 이는 시장이 트럼프의 비트코인 정책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신호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 운동 과정에서 "미국을 세계 디지털자산의 중심지로 만들겠다"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 등의 발언을 내놨고 가상화폐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친(親)비트코인 대통령', '가상화폐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 완화와 'Made in USA 비트코인' 정책으로 자국 내 채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왜 트럼프는 비트코인에 주목하는 걸까? 그 해답은 미국의 재정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지속적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그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 덕분에 아직 버티고 있지만,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디지털자산은 이러한 상황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이후 관광 수입이 크게 증가했고, 몇몇 개발도상국도 디지털자산을 활용한 경제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의 비트코인 정책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국가 경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한민국 유일의 블록체인 특구인 부산은 이 새로운 물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첫째, 규제 샌드박스의 과감한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부산 블록체인 특구의 정책은 공간 제공과 인건비 지원 등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명확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디지털자산 기업에게 사업 인가를 신속하게 처리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주요 글로벌 기업이 싱가포르를 아시아 거점으로 선택하고 있다.
둘째, 친환경 에너지와 연계한 채굴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 부산은 해상 풍력 발전의 최적지로 꼽힌다. 미국 텍사스주는 잉여 풍력에너지를 채굴 기업에게 공급하며 새로운 채굴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채굴 인프라가 AI(인공지능) 산업 인프라와 높은 호환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글로벌 채굴 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인프라를 AI 연산에도 활용하며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셋째, 디지털자산 기술 개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두바이는 적극적인 기술 개발 지원 정책을 통해 많은 암호화폐 기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다수 기업이 실제 사업을 개시하며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넷째,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종합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홍콩은 최근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책을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HSBC, 스탠다드차타드 등 대형 은행의 참여로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의 융합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다섯째, 국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다. 홍콩, 두바이, 싱가포르는 디지털자산 허브를 목표로 정책을 공조하고 기술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도 이러한 국제 협력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국이 트럼프의 리더십 아래 디지털자산의 새로운 중심지로 도약하려는 이때야말로, 부산이 아시아의 디지털자산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부산항이 한때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관문이었듯이, 이제 부산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관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을 담은 ‘부산 디지털자산 허브’ 정책이 시급하다. 블록체인 기업에 대한 기초적인 지원을 넘어, 규제 샌드박스 확대와 에너지 정책 지원을 통해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키워나가야 한다. 싱가포르처럼 전통 금융기관과 디지털자산 기업의 협력을 촉진하고, 두바이처럼 실질적인 기술 개발 지원을 제공한다면 양질의 일자리도 자연스럽게 창출될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디지털자산 혁명에서 부산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부산시의 과감한 정책 전환과 대한민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4-11-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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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우리의 상식은 건강한가
한글은 참으로 축복과도 같은 문자다.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쉽다. 과학적인 원리도 숨어 있다. 창제자가 분명하다는 사실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물론 의문스러운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글이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글의 표음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영어 표기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과일에 붙는 ‘berry’와 ‘아주’라는 뜻을 가진 ‘very’는 한글로 모두 ‘베리’라고 표기되고, ‘디스’라고 했을 때도 남을 깎아내린다는 뜻인지 ‘이것’이라는 뜻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일본어의 경우도 같은 글자를 ‘카’나 ‘까’로 초성에 올 때는 모두 ‘가’로 표기한다. 중국어의 경우도 권설음처럼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소리가 있다. 한글이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훈민정음〉 서문에서는 분명히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현재 우리가 쓰는 한글 자모의 순서가 세종대왕이 편찬하신 〈훈민정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그냥 넘길 수 없다. 〈훈민정음〉에서는 자음을 ㄱ, ㄲ, ㅋ, ㆁ, ㄷ·ㄸ, ㅌ, ㄴ 등의 순서로 배열하였고 모음은 ·,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로 배열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배열 순서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훈민정음〉에서 하늘을 뜻하는 아래 아(·)는 다른 모음을 만드는 기본 글자이고 땅(ㅡ)과 사람(ㅣ)에 붙여 ㅗ나 ㅏ 등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글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 한글과 〈훈민정음〉의 배열 순서는 이렇게 전혀 다른가.
한편 한글의 자음에는 기역, 니은, 디귿 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왜 기윽, 디읃, 시읏이 아니고 기역, 디귿, 시옷일까. 더군다나 이 이름은 〈훈민정음〉과 다르다. 〈훈민정음〉 언해본을 보면 ‘ㄱ난’이라고 되어 있고, 이름이 ‘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한글 자모의 이름은 〈훈몽자회〉라는 책의 범례에 붙어 있는 ‘언문 자모’라는 자료에서 한자로 기역(其役), 디귿(池末), 시옷(時衣)이라고 나타낸 것을 따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런 문제의 발단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사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서는 세종께서 언문을 친제하셨고, 언문으로 한자와 우리말을 모두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말미에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1443년). ‘훈민정음’은 그로부터 3년 뒤에 완성되었다(1446년). 우리가 알고 있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가지고 물 흐르듯이 통할 수 없다”는 서문은 〈훈민정음〉의 서문이다. 그 사이에 최만리가 언문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1444년). 그런데 우리의 상식은 다르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는데, 사대주의에 골몰한 양반 사대부들이 이를 폄하하여 언문이라고 불렀다고 여기고 있다.
언문이라는 말은 우리글이 생긴 이래로 계속 사용되어 왔고, 심지어 세종 자신도 최만리가 상소한 내용에 대해서 나무랄 때 자신이 창제한 글을 언문이라고 하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다. 언문은 우리말을 나타내는 글이라는 뜻이 들어있지만, 훈민정음은 ‘바른 소리’라는 뜻인데 무엇이 바른 소리라는 것인가.
거기다가 ‘훈민(訓民)’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지금까지 없던 우리글을 만들어 백성에 가르치고자 하였다면 당연히 ‘교민(敎民)’이라고 해야 한다. 훈육(訓育)과 교육(敎育)이 다른 말인 것처럼 훈민정음의 함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훈’은 이미 배웠는데 잘하지 못하거나, 잘할 때까지 반복훈련을 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한편 교민은 성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왜 세종대왕은 ‘교민’이라는 유교적인 덕목을 버리고 굳이 훈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나아가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60쪽에 이르는 순전한 한문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백성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방대한 책을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은 한자를 아는 양반들이 배워서 백성에게 가르치려고 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최만리 혼자서 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한자 식자층의 한결같은 심정임이 분명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명한 책이지만, 그 책을 직접 읽어보거나 펼쳐 본 시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직접 해례본을 펼쳐 들고 읽어보려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식이 굳건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늘 검증되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상식이 오래 통용되면 그 사회는 결국 편견에 빠지게 될 것이고 건강함을 유지할 수 없다.
2024-11-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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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녹취록, 지금도 우리의 대화는 녹음되고 있다
재판은 증거 싸움이다. 민사, 형사, 이혼 등 모든 소송에서 당사자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은 결정적 증거가 되다 보니, 의뢰인에게도 통화 녹음 기능을 이용해서 증거를 확보하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당사자가 계약서, 확인서 등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서명 날인을 받아두었다면 좋겠지만, 사실을 입증할 그 어떤 처분 문서도 없을 때는 의뢰인이 현재 쓰고 있는 휴대폰은 물론 예전에 썼던 휴대폰까지 뒤져가며 통화 녹음 파일을 찾기도 하고, 그것마저 없을 때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서 예전에 했던 대화를 유도해서 녹음을 시도하라고 한다. 그러면 간혹 상대방 몰래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닌, 대화 당사자로서 그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국내법 규정과 달리 해외에서는 대화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상대방 동의가 없는 녹음을 금지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프랑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통화 녹음을 규제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 공익 차원의 녹음 및 보도에 활용하는 경우 외에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 뿐아니라 녹음 파일 소지만으로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통화 녹음 파일, 재판 결정적 증거
‘억울한 일 안 당하려면 녹음 필수’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소송에 활용
당사자 간 대화 녹음 얼마든지 가능
대통령 대화 녹취록 공개로 일파만파
내 편 네 편 관계없이 대화 신중해야
독일도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동의를 받을 때 ‘계약 관련 사항을 녹음하겠다’라고 하는 등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미국은 50개 주 중 37개 주에서는 합법이지만, 캘리포니아 등 13개 주에서는 대화·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나 영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은 합법이지만, 제3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대화 당사자 간의 대화가 불법인 경우가 있다 보니, 통신 IT업계에서도 휴대폰에 통화 녹음 기능을 탑재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동안 통화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던 일부 제조사에서는 최근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하면서 통화 녹음 기능을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상대방에게 ‘이 통화는 녹음됩니다’라는 음성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대화 당사자들이 대화를 시작할 때 흠칫하게 만드는 불편함이 있다고는 하는데,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당사자 간 통화 녹음이 불법인 만큼, 녹음을 허용하되 사전 고지를 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통화 녹음을 넘어서 통화 녹음 공유로 인해 명예훼손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 통신사에서는 그 대응책으로 통화 녹음 공유 기능 절차를 다소 복잡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거는 움직임도 보인다.
2년 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자, 거센 반발 여론이 불거졌고 여론이 악화되자 윤상현 의원은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면서 해당 법안을 철회하기도 했다.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및 각종 무고 등 다양한 사건에서 대화·통화 녹음을 증거로 제출해서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벗은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억울한 일 안 당하려면 녹음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이제는 시대를 거슬러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을 불법으로 다스려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말들은 녹음되고 있고,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이 대화를 전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나 공직자, 정치인 그리고 어떤 일에 막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더더욱 대화 상대방이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 대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 연예인들이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유출되어서 하루아침에 방송 업계에서 퇴출당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고, 각종 대기업 일가의 갑질 사건도 녹취록 공개로 세상에 드러났었다. 우리는 최순실의 대화 녹취록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다. 일반인들은 물론 법조인들은 특히 대화 녹취록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대화 녹취록이 또 얼마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맥락을 알 수 없는 일부 녹취가 세상에 돌고, 녹음 파일 공유로 인한 음성권 침해와 사생활 침해가 되는 세상, 녹음이 녹음을 낳는 불신사회가 조성되는 것에 경종도 필요하다. 유용하게 쓰고 있는 대화 녹음 기능이 언젠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고, 대화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2024-11-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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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책 사러 서점에 ‘오픈런’
서점 ‘오픈런’을 보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픈런은 물건을 구매하려는 유효수요가 과다할 때 상점이 문을 열기 전 아침 일찍부터 수요자들이 물건을 사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젊은 세대에게 오픈런은 생소하지 않다. 예컨대 인기 브랜드의 한정판이 출시되는 날이면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은 유행에 앞서가는 ‘트렌드 세터’의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과거 백화점에서 근무했던 필자에게도 오픈런은 전혀 생소하지 않다. 백화점의 일부 명품매장은 높은 수요로 상시 물량 부족을 겪는 탓에 오픈런을 해야만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아마도 누가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달려가는 오픈런을 상상해 본 적이 있겠는가!
사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오픈런이 매우 반가운 일이다. 오픈런 줄을 선 사람들은 대다수가 구매를 확정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살지 말지 모르겠는데 일단 구경만 하려고 새벽부터 매장에 줄을 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준비하고 나온 마음가짐에는 기필코 내 손에 넣겠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오픈런으로 이뤄지는 판매는 매장의 분위기나 직원들의 응대 서비스보다도 일단 고객이 원하는 물건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일부 대형서점들은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영업시작 전부터 길게 줄지어 선 오픈런을 마주했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 종로점 문학파트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입사 이래 오픈런은 처음”이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개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 재고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서점들은 ‘품귀’ 현상에 추가 재고를 퀵으로 긴급배송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 주 주말 파주출판단지의 인쇄소들은 평소보다 50배 넘는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해 철야 근무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근래 출판업계에 이렇게 활기가 돌던 때가 있었던가. 매년 독서인구는 감소세를 겪어왔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이며 성인 10명 중 6명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 올해만큼은 노벨상을 계기로 적어도 한강 작가의 작품은 몇 편이라도 읽게 될 것 같아 평균이 수직 상승할 듯하다. 오랜 불황으로 침체했던 도서 시장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동시에 영상매체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오랜만에 활자를 읽는 새삼스러운 시간이 독서활동을 기억하고 환기하는 의미로서도 무엇보다 소중할 것 같다.
이미 젊은 세대에게는 지난해부터 독서와 관련한 트렌드가 불어오고 있었다. 글자(Text)와 ‘힙하다’(Hip)의 합성어인 ‘텍스트힙’은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트렌드로 SNS를 통해 자신이 읽는 책을 소개하거나 좋았던 책의 일부 구절을 필사하거나 독서모임에 참여한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들로 이뤄진다. 또한 손에 든 책으로 패션을 완성하는, 책(Book)과 ‘세련된’(Chic)의 합성어인 ‘북시크’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었다. 자극적인 쾌락의 도파민을 추구하는 대신에 독서를 통해 즐거움을 찾는, 독서와 도파민을 합친 ‘독(讀)파민’ 트렌드까지 더해져 제대로 독서 붐이 일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오픈런을 보고 유난스럽다고 혹은 청년들의 허세 부림이라고 가볍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보여주려는 욕구만 너무 앞선다면 문제겠지만 개인적으로 냉소보다는 이러한 문화를 오히려 포용하고 옹호하고 싶다. 지적 허영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다. 실속이 없고 필요 이상의 호사라는 뜻을 지닌 ‘허영’은 단번에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허영은 무지했던 혹은 변화하는 다양한 가치와 문화, 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기에 배움의 열정을 갖게 한다. 화학분석이 공부하는 마음에도 가능하다면 지적 허영심을 조금씩은 검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영예로운 노벨상 수상작이 궁금해서 책장을 펼쳐보고 자신만의 감상을 가져보는 것과 무관심한 채로 지나치는 것 사이에는 문화적 경험의 폭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태도의 누적은 곧 개인의 인문학적 교양으로 나타난다. 교양은 허영보다는 품위에 가까워 보인다. 사회생활과 문화 전반에 걸친 취향과 소양을 갖추는 과정이다. 이는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기준과 기대를 통해 우리를 성장하는 존재로 이끌며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지적 허영을 채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름 아닌 독서다. 감사하게도 이번 가을 한국은 한껏 높아진 자부심과 함께 지적 낭만을 만끽하는 아름다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학작품을 원서로 읽는 축복의 여운이 서점가에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2024-10-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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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제1회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의 의미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시인 김소월의 시를 낭독하고 기리는 국제대회가 11월 1일 부산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며 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4년 작고 문인 선양사업’ 대상 문인으로 시 부문에 김소월을, 소설 부문에 염상섭을 지정하고 올해 7월 전국 5개 기관을 선양사업 추진기관으로 선정했다. 시는 부산의 국제소월협회와 서울의 (사)한국작가회의가 맡았다.
‘시의 날’에 맞추어 11월 1일 오후 1시에 부산역 유라시아플랫폼에서 열리는 ‘외국인 및 다문화 가정 대상의 제1회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는 소월 시인의 시와 정신을 세계에 널리 알려 한류의 고급화와 세계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다중문화 사회에 잘 적응하여 지역공동체의 문화 간 소통능력을 높여 보자는 의도도 담고 있다. 이번 대회는 낭송자가 무대에 직접 서는 ‘직접 참여형’과 영상으로 지원하는 ‘영상 공모형’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짧은 홍보 기간과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튀르키예, 가나, 시리아, 중국 등 지구촌 각처에서 참가신청서를 냈다. 응모자가 19개국 104명이나 된다. 본선에서는 이 가운데 15명이 참가하여 각자의 솜씨를 겨룬다. 부대 행사도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소월의 시에 인공지능과 챗GPT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작곡하는 ‘AI 소월 전시회’를 비롯하여 소월 전문 앙상블의 연주와 가곡 공연, 오카리나 합주단의 소월곡 연주로 구성된 ‘작은 음악회’, 소월의 시로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써보는 ‘손글씨 체험’, 소월 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내는 ‘하늘 편지 코너’ 등이 그것이다.
부산이 국내 유일의 정부 지정 ‘국제 관광도시’인 만큼, 이런 열기가 내년과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져서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대회를 이어가길 희망한다. 혹자는 “소월이 부산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활동한 지역 문인이 아닌데 왜 부산에서 그의 문학을 기리느냐”고 반문한다. 한마디로, 너무 좁은 의견이다. 한강이든 백석이든 윤동주든, 아니면 우리 동네 가게의 아주머니나 아저씨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소월 시인에게 나름의 빚을 지고 있다. 전국에 120여 개 문학관이 있지만, 제대로 된 소월 문학관은 한 군데도 없고 줄곧 소월을 소홀히 대해 왔으니 말이다.
굳이 따진다면 소월도 부산과 연고가 아예 없지는 않다. 3·1 운동으로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가 폐교되어 서울의 배재학교로 편입한 소월은 1923년 3월 부산을 거쳐 일본 도쿄상과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6개월 만에 관동대지진을 만나 할아버지의 독촉으로 귀국했다. 당시는 도일 증명서를 끊고 관부연락선에 오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제1 부두와 초량 근처에는 아마도 여기저기 싼 숙소를 기웃거리며 남긴 그의 발자취가 수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소월은 달의 시인이지만 바다의 시인이기도 하다. 평안북도 곽산의 진달래봉 아래에서 태어난 소월은 높다란 계단 위의 자기 집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해를 유별나게 사랑하였다. 소월에게 바다는 자유의 거친 물결, 해방의 피안이었다. 그 바다 사랑의 끝에서 ‘바다’ ‘어인(어부)’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바닷가의 밤’ 등 10여 편의 시가 탄생하였다. 그는 바다를 메워 농지간척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작은 에피소드가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한반도의 대시인 소월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소월은 그런 작은 틀, 좁은 지역성에 가둘 수 없는 민족의 대시인이다. 그는 모든 남북한 인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며, 우리의 정신이고 혼이다. 한국 근대문학을 열어간 개창자를 넘어 인류 보편의 선한 감정을 노래한 세계의 대시인이며,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발원지다. 그러니까 단 며칠 사이에 19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세계인이 소월의 시를 달달 외워서 음성 파일과 영상을 앞다투어 보내오지 않았을까.
소월 사랑에서 부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쪼록 이번에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에 시민과 언론의 관심이 많이 쏠렸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너무 대중문화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류 콘텐츠가 소월 문학으로 질적으로 보완되길, 부산에서 출발하는 대륙 기차가 언젠가 소월의 시를 싣고 소월의 고향을 지나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평원으로 달리길 기대한다.
2024-10-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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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한국과 일본의 노벨상 수상이 던지는 메시지
올해는 한국과 일본에서 나란히 노벨상을 받게 됐다.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을 받게 된 것은 뜻깊고 기쁜 일이다. 노벨위원회는 10월 10일 한국의 소설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다음 날인 11일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 전국 시민단체인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노벨상 수상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4년 전인 2000년 10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평가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일본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50년 전인 1974년 ‘비핵 3원칙’(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외교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사토 총리가 평화 실현에 공헌한 점을 평가받았다고 한다면, 이번의 한강과 피단협은 위협받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격려라고 하겠다.
국가폭력·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한강, 그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요구
피단협, 핵무기 위험 지속적으로 알려
평화 지키려는 노력에 대한 격려의 상
북한 등 국가 공공연히 “핵 사용” 언급
더는 인간의 생명 위협받는 일 없어야
먼저, 노벨위원회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광주상고 1학년 문재학 열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 평했다. 또 소설가 한강에 대해서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설의 내용이 난해하고 잔혹하며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가는 지구촌 상황’을 이유로 축하연 개최를 거절했다. 한마디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세계 곳곳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노벨위원회는 피단협이 노벨평화상 수상 단체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핵무기 없는 세상 실현과 핵무기가 두 번 다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목격자 증언을 통해 끊임없이 제시해 왔기 때문”이라며 “(원폭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비참한 기억을 평화를 위한 희망과 실현을 위해 사용해 온 모든 생존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나아가 “역사를 목격한 피해자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세대가 메시지를 계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단협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를 중심으로 1956년 결성된 이래 70년 가까이 원폭 피해를 고발하고 반핵 평화운동을 해 왔다. 하지만 피단협이 전쟁 발발의 책임을 일본 측에는 묻지 않으며, 일본인 피폭자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 소식을 접한 다나카 테루미(92) 피단협 대표위원의 “핵무기가 어떤 무기이며, 어떠한 피해를 초래하는지를 새삼스럽게 많은 사람에게 알리게 돼 매우 기쁘다”는 발언이 상징하듯 피단협은 확산일로에 있는 핵무기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지금부터 약 80년 전인 1945년 8월 6일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사흘 뒤인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제2차 세계대전 주축국인 이탈리아가 1943년 9월, 독일이 1945년 5월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억 옥쇄’를 외치며 결사적으로 항전하던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 미국이 원자폭탄을 인류 최초로 사용한 것이다. 약 1주일 뒤인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그러나 원자폭탄으로 인해 21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15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피폭자가 되었다(사망자 중 4만 명이, 피폭자 중 3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물론 일본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죄가 있으며 전쟁이 장기화했다면 더 많은 미군과 일본군 그리고 민간인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자폭탄 사용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법 위반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후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제조되고, 기술 향상에 의해 파괴력도 증대됐다. 현재 핵보유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된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에 실질적 핵보유국인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북한을 더한 총 9개국이다. 이들 국가 중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은 이란, 그리고 북한은 한국에 대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핵무기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한강과 피단협의 노벨상 수상은 단지 국가안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위협받고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호소인 것이다.
2024-10-23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