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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투자의 시대, 금융투자 교육은 선택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금융투자 대중화 시대를 넘어 ‘금융투자 일상화 시대’에 들어섰다. 코스피가 꿈의 5000P를 넘어 한때 9000P까지 돌파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주식시장에 쏠렸고, 국내 주식투자자는 이미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출근길에는 “삼전 있어?”, “하닉으로 얼마나 벌었어?”라는 대화가 오가고 점심시간 투자 이야기도 일상이 되었다. 금융투자는 더 이상 일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한 부분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 ETF와 각종 파생상품이 확산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단기간의 높은 수익률을 좇는 투자문화는 ‘빨리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부추긴다.
여기에 퇴직연금(IRP)과 개인연금의 금융투자상품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저금리와 인플레이션 속에서 예금만으로 자산을 지키기 어려워지면서 금융투자는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 역량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변동성에 대응하는 ‘위험관리’이다. 올해 1월 2일 4300선이던 코스피는 6월 19일 9300선을 돌파하며 6개월 만에 100%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상승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7월 29일에는 장중 5300선마저 무너졌고, 7월 31일에는 다시 1000포인트가 급등하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이는 금융시장에서 탐욕과 공포가 얼마나 빠르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다. 성공적인 투자의 출발점은 높은 수익률을 좇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관리하는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 위험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장기투자를 위한 기본적인 투자전략이다.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와 단기매매는 성공투자의 지름길이 아니다. 레버리지는 수익뿐 아니라 손실까지 확대하고,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음(-)의 복리효과로 예상보다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레버리지는 지렛대이지 사다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투자기법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는 ‘정석투자’이다. 기업의 본질가치를 보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장기투자가 결국 가장 안정적인 투자전략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레버리지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 빚을 내거나 과도한 레버리지 상품에 의존하는 투자는 투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
둘째, 포트폴리오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시간·종목·지역분산은 수익률을 포기하는 전략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기본 원칙이다.
셋째, 금융투자교육을 앞당겨야 한다. 초·중·고교는 물론 2030세대까지 생애주기별 금융투자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는 한 번의 투자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자산은 현재의 종잣돈보다 앞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단기 고수익보다 장기적인 복리의 힘을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투자자 보호 역시 문제가 발생한 뒤의 사후 대응보다 올바른 금융교육을 통한 사전 예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금융투자교육은 돈 버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위험을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평생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금융 시대, 우리 사회는 투자 권유보다 투자 교육을, 단기 수익보다 장기 자산 형성을, 투기보다 금융문해력을 우선해야 한다. 더 많은 투자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더 현명한 투자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 출발점은 금융투자 교육이다.
2026-10-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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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글로벌 시각 키운 핀란드 '포스트 디자인 씽킹'
하나의 콘텐츠는 이야기와 인물,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다양한 감동과 즐거움을 전한다. 그렇다면 굿즈도 그 풍부한 경험을 여러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영화와 문화 콘텐츠를 상품으로 구현하는 굿즈 디자이너로서 줄곧 품어온 질문이다.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고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얻을수록, 콘텐츠에 담긴 더 많은 가능성을 전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취향에 따라 소비되는 굿즈의 생산과 폐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재사용의 가능성도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이 깊어지던 때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의 ‘부산 미래 디자이너 양성 지원 사업’을 알게 됐다. 익숙한 작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실마리를 찾고자 핀란드 알토대학교로 디자인 연수를 떠났다.
알토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배움은 ‘포스트 디자인 씽킹’이었다. 주어진 과제에서 해답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 방식에 익숙했던 나에게, 문제를 둘러싼 관계부터 살피는 접근은 새로웠다. 물질과 환경, 제도와 지역사회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니 제품 하나를 만드는 일에도 생각보다 많은 주체와 과정이 얽혀 있었다.
이 관점은 굿즈의 환경적 영향을 고민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재활용 소재를 고르는 데 집중했던 시선이 생산 수량과 포장, 사용 기간과 폐기 이후로 넓어졌다. 앞으로는 콘텐츠의 맥락, 디자인 결과물, 사용자의 경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네 가지 기준을 함께 검토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 작품의 매력을 어떻게 표현할지와 함께, 사용자가 왜 이 물건을 곁에 두고 오래 사용할지도 기획의 출발점에 놓으려는 것이다.
알토대에서의 배움은 현지 전시에서 본 장면들과도 맞닿아 있었다. ‘헬싱키 디자인위크’의 케이블 팩토리 디자인 마켓에는 핸드메이드 생활용품과 업사이클링 제품 등 작은 브랜드들의 작업이 모여 있었다. 규모는 작아도 재료를 다루는 방식과 제작자의 개성은 뚜렷했다. 각자의 손에서 출발한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취향과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비타레 빌드 랩에서는 재료가 공간과 경험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목재와 점토 페인트, 천연석, 재활용 금속 등이 실제 공간에 적용된 형태로 전시돼 질감과 색상, 마감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었다. 하비타레의 브랜드 부스들도 제품과 그래픽, 공간을 일관되게 구성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지가 함께 브랜드의 개성이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부산의 영화와 해양, 관광도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상품과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씨네핀하우스는 K콘텐츠의 확산과 함께 굿즈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연수는 그 가능성을 제품과 경험의 연결에서 찾게 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상품에 담고, 그 정서를 오프라인 공간과 관람객의 참여, 디지털 콘텐츠로 이어가는 식이다.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일상에서도 떠올릴 수 있도록 상품과 행사를 함께 기획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이와 같은 도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역 디자이너의 실무 역량으로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추진하는 글로벌 디자인 교육 연수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확대되기를 바란다. 공공의 지속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배움이 후속 실험과 교류로 이어질 때, 개인의 성장은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나아가 지역의 소중한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8 세계디자인수도를 준비하는 부산에서도 창작자와 작은 브랜드가 꾸준히 성장할 토양이 중요하다. 부산의 영화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바다 건너 누군가의 일상에 오래 머무는 장면, 핀란드 디자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굿즈 하나의 가능성을 그만큼 넓게 바라보게 됐다.
2026-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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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화예술 행정 대전환, 부산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문화예술 행정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 지난 7월 국회에서는 ‘문화예술진흥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됐고, 정부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의 대규모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법률 개편과 기관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향후 국가 문화예술 정책의 구조와 예산, 중앙과 지역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주목할 것은 예술을 바라보는 정책 관점의 변화다. 지금까지 창작활동에 대한 공적 지원이 정책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창작·제작·유통·시장·기술·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는 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공공 재원 역시 단순한 지원에 머물지 않고 창작-제작-유통-향유-재투자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기관 통폐합이 또 다른 중앙집중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 기관에 흩어진 권한과 예산을 하나의 거대한 중앙기관이 다시 통제한다면 ‘분산된 중앙집권’이 ‘통합된 중앙집권’으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 지역이 물어야 할 것은 “어떤 기관을 합칠 것인가”가 아니다. “중앙기관이 가진 사업과 예산, 권한 가운데 무엇을 지역으로 이양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기관 통합과 문화 분권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진정한 문화행정 혁신이 될 수 있다.
부산도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이 발표된 뒤 국비 확보에 나서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문화,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예술인 지원 등 지역이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을 선별해 권한과 예산의 포괄적 이양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부산문화재단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지원금을 배분하고 중앙정부와 부산시의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을 넘어 부산 문화예술 생태계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광역 문화정책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술인과 기획자, 문화공간, 대학, 문화기업, 관광·콘텐츠산업, 기초문화재단을 연결해 새로운 협력사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예술 현장 역시 정책의 수혜자에서 정책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예술산업 확대 속에서 기초예술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AI 시대 창작자의 권리와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청년 예술인이 부산에서 창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현장이 먼저 논의하고 제안해야 한다.
부산에는 영화·영상, 공연, 미술, 음악, 축제 등 오랫동안 축적된 문화 자산이 있다. 여기에 해양도시라는 정체성과 관광·콘텐츠산업을 결합할 수 있는 잠재력도 크다. 이제 개별 장르와 지원사업에 흩어진 자산을 하나의 지역문화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이번 변화는 향후 10년의 문화예술 행정 구조를 결정할 중요한 전환점이다. 중앙이 기관을 통합할 때 부산은 문화 생태계를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중앙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 부산은 새로운 문화 분권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중앙의 결정을 기다리는 ‘관망’이 아니다. 변화에 앞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선제적 대응’이다. 문화행정 대전환의 시대, 부산이 문화 분권의 새로운 모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2026-10-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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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항의 시간에도 책임이 필요하다
첫 직장이 부산이고 아이들이 모두 부산에서 성장해, 지금도 부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스포츠경영을 공부하고 도시와 스포츠시설을 연구하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는 부산이 있었다. 그래서 15년 전부터 북항에 새로운 야구장과 돔구장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꿈꾼 것은 거대한 야구장 하나가 아니다. 사람이 찾아오고, 머물고, 소비하고, 다시 찾는 부산의 새로운 도시공간이었다. 부산은 지금 도시의 방향을 다시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지난 수십 년, 도시 발전축이 해운대·센텀·동부산으로 이동하면서 남포동·광복동·중앙동·초량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활력을 잃었다.
나는 북항이 이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부산의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부산역에서 북항으로, 다시 초량과 중앙동, 남포동과 광복동, 자갈치와 영도로 사람들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철도와 항만, 바다와 원도심을 하나의 생활·문화·관광권으로 연결해야 한다. 북항 돔아레나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장 하나가 아니라 북항과 원도심을 다시 움직일 엔진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산의 꿈에 비해 북항의 시계는 너무 느리다. 그동안 계획이 없었던 것도, 검토가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부산시가 확보한 자료를 기준으로 BPA가 추진한 북항 개발·활성화 관련 용역 가운데 계약액이 확인된 3건만 33억5660만 원에 달하고, 올해에도 9억 8500만 원 규모의 사업성 검토가 예정돼 있다.
물론 수조 원이 투입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철저한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시민의 입장에서 물어야 한다. 그 많은 검토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결정했는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에 있다. 북항은 부산에 있지만 부산시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항만재개발의 관리청은 해양수산부이고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는 BPA다. 주요 토지 활용에도 BPA의 판단이 중요하다. 반면 개발의 결과로 나타날 교통·관광·상권·원도심 활성화와 시민생활은 부산이 감당한다. 정책의 권한과 토지의 이해관계, 도시의 책임이 서로 다른 기관에 나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해수부와 BPA에 요청하고 싶다. BPA가 재무건전성과 토지가치를 관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북항의 가치를 토지가격으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개발이 늦어지면서 사라지는 관광과 소비, 일자리와 민간투자의 기회도 비용이다. 원도심이 잃어가는 시간 역시 비용이다. 땅의 가격을 지키는 것이 공기업의 책임이라면, 그 땅이 도시와 국가의 가치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 또한 공기업의 책임이어야 한다. 해수부가 부산에 자리 잡은 의미도 중앙부처의 주소 이전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산의 현장과 시민의 요구가 국가 항만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부산의 바다와 항만, 도시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정책 당사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부산시도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 토지 활용과 공공재원, 민간투자, 개발이익 공유, 교통대책을 묶은 현실적인 협상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해수부·BPA·부산시가 한 테이블에 앉아 “왜 어려운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면 가능한가”에 답하고 역할과 결정 시한까지 정해야 한다. 은퇴하면, 다시 내려가고 싶은 내가 꿈꾸는 부산은 거창하지 않다. 부산역에서 내린 젊은이가 북항에서 야구나 공연을 보고, 남포동에서 저녁을 먹고, 자갈치와 영도를 걷고, 북항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하루 더 머무는 도시다. 그 발걸음이 원도심의 식당과 시장, 호텔과 상점의 매출이 되고 다시 일자리가 되는 도시다. 2026년 이번 가을 정부의 돔아레나 유치도시 모집 공고가 예정돼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해수부와 BPA에 호소하고 싶다. 부산이 잃고 있는 시간까지 함께 계산해 달라. 그리고 이제 결단해 달라. 북항의 땅은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원도심도, 부산의 경쟁력도, 도시의 기회도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북항의 시간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2026-10-1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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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형 정신응급 대응체계, 유기적 연대가 답이다
매년 10월 10일은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제정된 ‘정신건강의 날’이다.
최근 정신질환이나 극단적 선택 위기 등 정신응급 상황으로 인한 112신고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어 이 날이 갖는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최일선 현장의 경찰관들은 흉기를 소지한 정신질환자, 극단적 위기 상황에 놓인 시민 그리고 가족조차 감당하기 힘든 긴박한 순간들을 매일같이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역할만으로는 물리적 안전 확보와 긴급 구조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야간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응급 신고 속에서, 특히 외상이나 기저질환을 동반한 위기 대상자를 전문적으로 수용할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의 부재는 긴급 구호가 필요한 시민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응급 병상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동안 현장 경찰관이 장시간 환자 곁을 지켜야 하고, 이는 치안 공백과 골든타임 상실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신응급 상황은 경찰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치안 이슈가 아니다. 현장 대응부터 응급입원, 전문 치료, 그리고 퇴원 후 상담과 사례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슈의 근본 원인을 고민하고, 현장 업무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 원인 치유적 재발 방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제는 시야를 넓혀 사안 전체를 조명하면서 선제적이고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한다. 그 핵심 열쇠는 ‘24시간 수용 가능한 병상 확보’와 ‘현장밀착형 기관간 공조’에 있다.
우선, 부산시와 관내 의료기관이 협력해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기존 의료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연계해 병상 부재로 인한 이송 지연을 막는 것이 모든 대응의 출발점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해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을 통해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2030년까지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부산경찰청과 부산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원스톱으로 움직이는 ‘부산형 정신응급합동대응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현장 출동부터 입원조치까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확고히 자리잡을 때, 경찰의 현장 통제력과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위기 개입 능력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정신응급 위기대응은 어느 한 기관의 독자적 책임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기관 간의 경계가 있을 수 없다. 경찰·지자체·의료기관은 물론 유관기관 및 시민단체와의 횡적 협업을 고도화해 촘촘하게 대비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미 부산의 관계기관들은 여러 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이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이제는 공감을 넘어 과감한 ‘실행’으로 답해야 할 때다.
경찰과 자치단체, 유관기관, 그리고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전공동체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 330만 부산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안전도시 부산’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6-10-1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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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근해 어업을 살려야 해양 경제가 살아난다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만도시다. 세계적인 컨테이너 항만과 첨단 물류시스템은 부산 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부산을 오늘의 해양도시로 성장시킨 출발점은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아니라 새벽마다 바다로 나가는 어선이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연근해 어업의 발상지이자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다.
부산의 해양 경제는 항만이 아닌 바다에서 시작됐다. 연근해에서 생산된 수산물이 있었기에 공동어시장이 형성되었고, 수산 가공산업과 냉동·냉장 물류가 성장했으며, 항만은 이를 국내외로 연결하는 관문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수산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다. 어선 한 척이 출항하기 위해 조선, 기자재, 금융, 인력이 움직이고, 어획물이 도착하면 위판·유통을 거쳐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가공된 뒤 세계시장으로 수출된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해양 가치사슬(Value Chain)의 출발점이 바로 연근해 어업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첫 번째 고리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한때 연간 150만t을 웃돌았지만, 최근에는 80만t 안팎까지 감소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 자원 감소와 고유가, 어업인 고령화 및 인력 부족이 겹치며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는 이 위기가 어업인만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원료 공급이 줄어들면 수산 가공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냉동 물류와 위판장 가동률도 떨어진다. 결국 지역경제와 고용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된다.
부산은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도시다. 부산에는 국내 최대 공동어시장과 국제 수산물도매시장, 감천항 일원을 중심으로 집적된 냉동·냉장창고 등 대한민국 최고의 수산 인프라가 집적되어 있다. 이 산업생태계는 연근해 수산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항만은 미래산업, 수산은 전통산업으로 분리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부산 해양 경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본 결과다. 항만은 스스로 화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물동량은 산업이 만든다. 수산물과 수산가공품은 부산항을 통해 수출되는 고부가가치 화물이며, 신선식품 특성상 일반 화물보다 더 높은 물류 가치와 고용효과를 창출한다. 결국 수산이 살아야 항만도 성장하고, 항만이 발전해야 수산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공생 관계다.
이제 부산의 해양 정책도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연근해 어업, 수산 가공, 콜드체인 물류, 스마트 위판, 항만물류를 하나의 통합된 해양산업 생태계로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과학 기반의 수산자원 회복과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노후 어선 현대화와 스마트 어업 전환을 추진하고, 셋째, 청년들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과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친환경·저탄소 어업 기술을 확대하며, 다섯째, K수산식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위판과 디지털 유통 체계를 구축해 부산을 세계적인 수산 유통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
부산은 항만도시이면서 대한민국 최대의 수산 도시다. 이제는 바다를 중심으로 생산, 가공, 물류, 금융이 하나로 연결되는 진정한 해양 경제 수도를 만들어야 한다. 새벽 바다로 출항하는 어선 한 척은 단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부산의 가공공장을 움직이고 항만을 살리며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가치사슬의 첫걸음이다.
부산의 미래는 풍요로운 바다에서 시작된다. 연근해 어업이 살아야 수산업이 살고, 수산업이 살아야 부산항도 경쟁력을 갖는다.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 경제 수도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첫 번째 산업은 바로 연근해 어업이다.
2026-10-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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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민 생명과 직결된 '물 안전'
“시민과 적극 소통하고 민생을 즉시 살피겠다”던 전재수 부산시장의 약속. 그 첫 시험대는 바로 부산 시민의 밥상과 일상을 위협하는 ‘안전한 먹는 물 확보’가 되어야 한다.
날씨가 더워질 때쯤 시민들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낙동강의 ‘녹조’ 때문이다. 창밖에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보다, 우리 집 싱크대와 욕실로 흘러드는 수돗물이 더 두렵고 걱정스러운 것이 오늘날 부산시민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문제는 당장 식탁 위의 생존 문제와 다름없다. 아이에게, 가족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고 싶은 것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가장 소박하고도 간절한 바람이다. 녹조가 창궐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수 과정에서 모두 걸러지니 안심하고 마시라”는 정부와 지자체의 상투적인 답변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한다. 발암물질과 간 독성을 유발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만, 낙동강 상류의 수많은 공장 폐수에서 흘러나오는 미량유해화학물질과 과불화화합물(PFAS)은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의 몸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감시해 온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이 번창하고 경제가 부강해진들 무엇하겠는가? 부산 시민의 기대수명이 전국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매번 불안감을 안고 생수를 사 나르거나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야 하는 일상을 우리는 언제까지 감내해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에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가?
낙동강 표류수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재의 급수 체계는 기후위기 시대에 이미 그 한계를 드러냈다. 매년 반복되는 사후약방문식의 고도정수처리나 임시방편적인 대책만으로는 이 거대한 환경 재앙을 막을 수 없다.
녹조 독성과 미량유해물질에 대한 공포는 단순한 환경오염을 넘어 시민의 건강과 생존권을 직접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 단계에 이르렀다. 한여름 폭염이 녹조를 부른다면, 장마와 폭우는 전 국토의 오염물질을 쓸어내리며 낙동강 표류수의 탁도를 악화시킨다. 그런데도 부산 시민은 여전히 그 물을 정수해서 마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근본적이고 과감한 결단과 실천이다. 부산시장 그리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첫째,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정부의 정책적 결단으로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 안전한 물 공급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권이자 기본권이다. 언제 어디서나 안심할 수 있는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식수 전용 댐이 마땅히 있어야겠으나, 차선책은 갈등 해소와 제도 개선을 통해 깨끗한 원수를 관계 지자체와 공유하는 것이다. 부산시 공무원들이 취수 영향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며 설득에 공을 들여온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노력이 없다면 지역 간 협의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둘째, 정부는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 시민들은 1991년 낙동강 페놀사태 이후 무려 40여 년 가까이 물 불안을 감내해 오고 있다. 만약 수도권 주민들이 마시는 팔당댐과 한강 표류수의 COD(화학적산소요구량) 기준이 여름 내내 5~6ppm에 달했다면 정부가 이토록 수수방관했겠는가. 이제 정부는 부산시와 협력하여 시민의 안전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시민들이 짙은 녹색으로 물든 낙동강을 바라보며 불안에 떨어야 하나.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물려줄 수 있도록, 그동안 부산시와 시민단체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새 시장이 앞장서 주길 바란다.
2026-10-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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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가 본 정명훈의 '오텔로'
오페라의 대명사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리골레토’(1851)와 ‘라 트라비아타’(1853), ‘일 트로바토레’(1853)를 꼽는다. 그러나 이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들이고, 베르디의 기법이 무르익은 최고 걸작으로는 ‘돈 카를로’(1884)와 ‘오텔로’(1887)를 친다. 여기에 종교성악곡으로 ‘레퀴엠’(1874)을 추가하면 베르디 걸작 빅3가 완성된다. 베르디의 가장 파퓰러한 빅3와 위대한 빅3는 이렇게 나뉜다.
공교롭게도 전자의 세 작품은 중기작이고, 후자의 세 작품은 후기작이다. 그만큼 베르디는 환갑을 넘긴 후기로 갈수록 관현악법에 심오함과 밀도를 더했다. 그러한 밀도가 극대화된 작품이 ‘오텔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원작으로 70대의 베르디가 작곡한 ‘오텔로’는 바그너풍의 두터운 화성을 베르디가 독자적으로 소화한 명작이다. 연주의 난도가 높아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는 손에 꼽을 만큼 희소하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툴리오 세라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카를로스 클라이버 같은 옛 거장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해석자로 평가되어 왔다. 이들이 사라진 지금 정명훈은 현존 최고의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1993년과 2013년 파리와 베네치아에서 두 번 ‘오텔로’ 전막을 녹음했고, ‘레퀴엠’ 또한 1998년과 2001년 도쿄와 서울에서 두 차례 녹음했다. 현존 지휘자 누구도 베르디 만년의 최고 걸작 두 편에서 이 같은 업적을 남긴 이는 없다.
필자는 2001년 4월 1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정명훈 지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의 연주로 ‘오텔로’를 관람한 적이 있다. 다니엘레 아바도의 공간연출(Mise en espace)이 가세한 무대는 가히 초절적인 명연이었다. 테너 호세 쿠라의 오텔로와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의 데스데모나, 바리톤 앤서니 마이클 무어의 이아고, 테너 체사레 카타니의 카시오 등 캐스팅도 특급 일색이었다.
이들의 가창과 연기도 훌륭했지만 수훈갑은 단연 정명훈이었다. 당시 48세의 정명훈은 천지개벽할 천둥과도 같은 사운드를 1막 도입부의 폭풍우 장면에서부터 이끌어냈다. 오케스트라의 노도와도 같은 포효는 2막 말미 오텔로와 이아고가 의기투합하는 2중창과 3막 베네치아 총독의 특사 로도비코의 등장 장면에서도 이어졌다. 21세기 최고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다운 정명훈의 명지휘였다. 2006년 6월 9일 파리 근교 생드니 대성당에서의 ‘레퀴엠’ 연주도 같은 맥락의 명연이었다.
그런 정명훈이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무대를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음악감독 신분으로 지휘해 베르디의 ‘오텔로’와 ‘레퀴엠’을 공연하는 협의가 한창이다. 라 스칼라는 두 걸작을 초연한 단체다. 부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부산오페라하우스가 74세의 노장 정명훈의 지휘로 역사적인 개막을 알리기를 소망한다. 다음달 개관하는 상하이 그랜드 오페라하우스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을 통째로 초청해 화려한 개막을 준비 중이다. 부산이 상하이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아시아 유일의 세계적 거장 정명훈만이 그의 고향 부산이 잉태한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막을 알릴 권한과 의무가 있다.
2026-09-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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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각지대 메우는 부산형 현장 안전망
부산은 조선·기자재, 뿌리산업, 항만·물류 등 다양한 산업이 도시의 성장과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규모와 여건은 제각각이다. 자체 안전관리 인력과 체계를 갖춘 기업이 있는 반면, 인력과 비용의 한계로 위험요인을 알면서도 적절한 개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장도 적지 않다. 중대재해 예방정책의 성패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넘어, 예방의 손길이 이러한 현장까지 실제로 닿는지에 달려 있다.
산업재해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전에는 대부분 여러 위험 신호가 반복된다. 낡은 설비, 정리되지 않은 작업 동선, 익숙함 때문에 소홀했던 보호구 착용, 언어 차이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안전수칙 등이 겹치며 사고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무엇을 먼저 개선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기존 지원사업의 정보를 제때 접하지 못하거나 복잡한 신청 절차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현장에 직접 찾아가 위험요인을 함께 확인하고, 진단에서 교육과 개선까지 이어주는 촘촘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부산테크노파크는 고용노동부와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지역 중대재해 예방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이를 ‘고위험 산업 사각지대 집중관리사업’, 줄여서 ‘지중해 사업’으로 운영한다. 이 사업은 단발성 점검에 그치지 않고, 고위험 사업장을 발굴한 뒤 안전 전문가의 현장 진단과 기술지도, 안전시설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 근로자 보호구 지원, 내·외국인 맞춤형 안전교육 등을 현장 여건에 맞게 연계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생산 일정과 비용, 인력 부족 때문에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위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실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면 기업은 무엇부터 바꾸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시설과 보호구, 교육을 연계함으로써 진단이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지중해 사업의 핵심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는 산업현장의 변화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로자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위험한 순간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부산은 외국인 근로자 대상 교육과 안전표지 지원, 현장 내 안전리더 양성 등을 통해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공백을 줄이고자 한다. 안전은 국적이나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지원이 끝난 뒤에도 현장의 변화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개별 사업장의 지원 경험을 일회성으로 남기지 않고 지역 전체의 예방 역량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대재해 예방은 한 기관이나 기업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안전 전문기관, 기업과 근로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긴밀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현장의 변화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기업이 지원을 부담스러운 점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테크노파크는 산업과 기업을 지원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정책과 산업현장을 잇는 가교가 되고자 한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안전에서 소외되는 일터가 없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겠다. 안전 사각지대를 하나씩 메우는 꾸준한 노력이 부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하는 시민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 될 것이다.
2026-09-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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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 부산의 위대한 꿈을 노래하자
부산 북항에 새로운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연다. 바다를 향해 열린 이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부산이 걸어온 시간을 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향해 문을 여는 새로운 문화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그 첫 무대에서는 무엇을 노래해야 할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를 초청해 화려한 개관 공연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부산의 첫 무대에서 세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부산이 걸어온 위대한 이야기를 세계의 예술언어인 오페라로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북항 오페라하우스의 첫 작품으로 ‘부산, 위대한 꿈’을 제안하고 싶다. 부산의 현대사는 한 편의 거대한 오페라와 닮았다.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꿈꾼 사람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 불타버린 부산역과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심에 윤상은과 윤인구 부자의 꿈을 놓을 수 있다. 아버지 윤상은이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부를 일구었다면, 아들 윤인구는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 15일, 부산대학교는 지역민들의 헌금과 교육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국립대학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학의 미래를 위해 뛰었던 윤인구 초대 총장 앞에 위트컴 장군이 있었다. 윤인구가 대학의 꿈을 설명하자 위트컴 장군은 그 꿈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현재의 장전동 약 50만 평에 이르는 캠퍼스 부지 확보와 공사 지원에 힘을 보탰고, 미 공병부대를 동원해 온천동과 부산대 사이를 잇는 도로까지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대학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위트컴 장군의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때 군수창고를 열어 이재민을 도왔고, 의료기관과 전쟁고아 지원에도 힘을 보탰다. 특히 부산대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집은 오늘을 살게 하지만 교육은 내일을 살게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한 사람을 구하지만, 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그가 살아갈 수많은 내일을 바꾼다. 부산은 그렇게 다시 일어섰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씨앗을 심었고, 누군가는 그 씨앗에 물을 주었으며, 누군가는 폭풍 속에서도 나무를 지켰다. 오늘의 부산은 이름 없이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어제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북항 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는 특별해야 한다. 세계의 유명 작품을 부산에서 공연하는 것은 세계를 부산으로 불러오는 일이다. 그러나 부산의 이야기를 세계적인 오페라로 만들어 세계에 들려주는 것은 부산을 세계로 보내는 일이다. 진정한 문화도시는 세계의 작품을 소비하는 도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 세계에 들려주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은 전쟁을 경험한 도시다. 그러기에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가난을 경험한 도시이기에 나눔을 말할 수 있다. 폐허에서 일어난 도시이기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북항은 과거의 부산항과 미래의 부산이 만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첫 노래 역시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해야 한다. 한 사람의 꿈이 한 도시의 꿈이 되고, 한 도시의 꿈이 한 나라의 꿈이 되며, 마침내 인류의 꿈이 될 수 있다. 부산은 이미 그것을 보여주었다. 폐허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북항 오페라하우스에서 부산은 다시 세계를 향해 꿈꾸어야 한다. ‘부산, 위대한 꿈’. 그것은 지나간 부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첫 무대의 마지막 합창은 아마 이렇게 끝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부산의 꿈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2026-09-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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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과 넬슨을 생각하다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조선 수군은 부산포를 공격했다. 전라도 해남에 주둔하던 전라우수군까지 먼 바닷길을 거쳐 참전했다. 조선 수군이 본거지를 멀리 떠나 남해안을 따라 일본군의 핵심 거점인 부산포까지 진격했다는 점에서, 부산포해전은 매우 담대하고 전략적인 대규모 원정작전이었다.
부산포에는 일본 함선 약 470척이 정박해 있었다. 조선 수군은 함선과 육상에서 저항하는 일본군을 뚫고 적선 100여 척을 깨뜨리고 불태웠다. 전라좌·우수군이 주력을 이뤘고 경상우수사 원균도 남은 함선을 이끌고 참전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사실상 지휘하여 대승을 이끌었다.
부산포해전을 되돌아보면, 자연스럽게 이순신이 7년 전쟁에서 남긴 전공과 군사적 혁신을 생각하게 된다. 임진왜란 7년 동안 이순신은 자신이 참전한 해전에서 적선 700여 척을 격파하는 세계 해전사에서도 보기 드문 전공을 세웠다.
필자의 사료 고증과 군사공학적 분석에 따르면, 부산포해전에도 투입된 거북선은 적진으로 돌진해 대형을 교란하고, 견고한 덮개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초근접 함포 사격의 명중률을 극대화한 장갑형 돌격함이었다. 세계 해전사에서도 주목할 군사혁신이자 16세기 해전의 ‘게임체인저’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전공과 군사혁신을 세계 해전사의 시야에서 바라보면 200여 년 뒤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떠오른다. 시대와 전쟁의 조건이 달라 두 사람의 우열을 단순히 가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순신이 서방 세계에 알려지던 일제강점기, 일부 해외 군사사가와 해군 인사들은 그의 전공과 지휘 능력을 넬슨에 비견하거나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오늘날 해외에서도 이순신은 만화와 짧은 영상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되지만, 주로 영웅적 일화나 신화적 서사에 머물러 있다. 영미권 주류 해전사 학계에는 사료 고증과 과학적 검증에 기초한 영문 전문서와 연구가 부족하고, 국내 연구 성과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다. 이러한 학술적 공백으로 인해 이순신은 그 역사적 성취에 걸맞은 조명과 평가를 아직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와 학문적 평가는 다르다. 역사적 인물의 세계사적 위상은 명성이 아니라 검증된 연구의 축적과 학계의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세워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학술적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K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이순신과 거북선도 세계 해전사의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순신의 세계화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료 고증과 과학적 검증에 기초한 연구 성과를 세계 학계와 공유하고, 그 역사적 성취에 걸맞은 자리에 올려놓는 일이다.
부산포해전 승전일, 세계 해전사에서 이순신이 차지해야 할 진정한 자리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순신을 흔히 ‘한국의 넬슨’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언젠가 세계인이 넬슨을 ‘영국의 이순신’이라 부르는 날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2026-09-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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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산에서 닻 올린 ‘유산 오디세이’ …존엄과 평화를 향해
지난 7월 부산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성황리에 끝난 지 한 달여 지났지만, 그 여운은 깊다. 문화유산과 인간의 존엄성을 연구하는 필자는 부대행사에서 ‘평화의 수호: 존엄과 정의를 향한 우리의 영원한 유산 여정(Defenses of Peace: Our Enduring Heritage Odyssey Toward Justice and Dignity)’을 주제로 발표했다. 인류의 숨결이 깃든 세계유산을 돌아보며 평화와 존엄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전 세계 유산 전문가들과 공유한 값진 시간이었다.
도쿄대 소속이자 이코모스(ICOMOS) 한국위원회 정회원으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10년 가까이 연구해 온 필자에게 이번 행사는 더욱 각별했다. 유엔묘지를 집중 연구하며 미국 유엔본부에서 1000여 장의 사료를 발굴한 열의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품에 안겨 피란길 언덕을 구르며 목숨을 건졌다던 아버지의 고투와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나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부산 유산 연구를 통해 평화와 인류애를 전파하는 작업은 피란민 후손으로서 나의 뿌리를 찾고, 그들의 희생에 연대하려는 작은 헌신이자 사명이다.
발표에서는 부산 유산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쉽게 전하고자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캐릭터인 ‘금순이’와 ‘금동이’가 떠나는 가상의 유산 여정을 구성했다. 1776년 선포된 미국 독립기념관의 ‘법적 권리와 인간 존엄’,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추모 유적지의 ‘초국가적 기억과 연대’, 남아공 넬슨 만델라 유산의 ‘공동체적 화해 정신 우분투(Ubuntu)’. 이 세 보물은 한국전쟁 당시 인류애와 피란민 구호가 실천된 부산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임시수도중앙청과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은 대한민국의 법적 주권과 국제협력의 거점으로서 미국 독립기념관의 이념과 맞닿아 있다.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는 유엔 깃발 아래 스러져 간 병사들을 기억하는 초국가적 연대의 장소로, 서부전선 추모 유적의 메시지와 공명한다. 또한 피란민의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던 영도다리와 피란주거지는 만델라의 우분투 정신처럼, 삶의 질곡 속에서 피어난 공동체적 포용과 회복력을 전한다. 부산은 포화 속 인류애의 기억을 70여 년에 걸쳐 자유민주주의로 승화시켜 온 ‘살아있는 평화의 실천 수도’다.
이 교훈을 미래세대에 전승하기 위해 유산을 통한 세대 간 교류, 교육·미디어 확산, 박물관·아카이브 협업, 언어 다원성 존중이라는 4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캐릭터를 등장시킨 까닭은 분쟁 속에서도 아이들이 유산을 통해 배움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핵심 가치인 ‘교육’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금동이의 모습에서 70여 년 전 피란길에 올랐던 한 어린 소년, 나의 아버지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이번 부산 선언에는 세계유산협약의 기존 5개 전략목표를 관통하는 원칙으로 ‘협력(Collaboration)’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협력의 정신에 지속가능발전목표의 글로벌 파트너십(SDG 17), 대한민국 보은 정신, 그리고 부산의 상징색인 자주와 파란색이 뜻하는 ‘포용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재외동포 연구자 시각에서 볼 때, 부산 선언이 터를 닦은 ‘K협력’의 시대에 대한민국의 역할은 막중하다.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고도화,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산을 매개로 공존의 다리를 놓을 때 비로소 평화는 일상의 실재가 된다.
비극의 상흔을 ‘평화의 수호’로 승화시킨 부산 유산은 반목으로 얼룩진 세계를 향해 새 이정표를 제시한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지로서 부산의 역할은 막을 내렸지만, 2030년 세계유산 등재를 향해 나아갈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인류애를 입증할 또 다른 위대한 오디세이의 닻을 올렸다.
2026-09-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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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로컬 브랜드가 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
부산에는 좋은 로컬 브랜드가 많다. 바다와 항만, 관광, 금융, 청년 문화가 만나는 도시답게 독특한 감각을 가진 가게와 기업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좋은 브랜드가 곧 전국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사랑받는 것과 다른 도시에서도 반복적으로 선택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부산다운 개성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확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로컬 브랜드가 전국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화려한 홍보가 아니라 운영표준이다. 특히 F&B 브랜드는 메뉴가 맛있다는 말만으로 확장할 수 없다. 같은 맛을 유지하는 제조 기준, 원가율 관리, 발주 방식, 직원 교육, 피크타임 대응, 고객 불만 처리, 재고 관리가 반복 가능해야 한다. 첫 매장의 성공이 대표의 감각과 노동에만 기대고 있다면, 두 번째 매장은 곧 리스크가 된다. 확장은 간판을 하나 더 다는 일이 아니라, 성공한 운영 방식을 다른 사람이 다시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많은 브랜드가 확장 단계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과 광고를 고민한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매장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기준이다. 컵 한 잔을 내는 시간, 재료 보관 위치, 주문 오류 대응, 신입 직원이 혼자 근무할 수 있는 시점까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이 없으면 브랜드가 커질수록 품질은 흔들리고, 고객은 빠르게 떠난다.
필자 역시 부산 BIFC 오피스 상권에서 매장을 운영하며 같은 문제를 확인하고 있다. 같은 메뉴라도 출근 전, 점심 직후, 오후 시간대 고객의 반응은 다르다. 유동인구가 많아 보여도 실제 결제로 이어지는 시간과 동선은 따로 있다. 따라서 출점 판단은 ‘사람이 많다’가 아니라 ‘누가, 언제, 왜, 얼마나 반복해서 구매하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매출이 높아 보이는 시간대와 수익이 남는 시간대가 항상 같은 것도 아니다.
대형 저가 커피 브랜드와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가격만으로 오래 버티기 어렵다. 낮은 가격은 금방 모방되고, 임대료와 인건비가 오르면 가장 먼저 무너진다. 결국 로컬 브랜드의 경쟁력은 낮은 가격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 안에서 일정한 경험을 제공하는 능력이다. 지역의 감각과 운영의 안정성이 함께 갈 때 고객은 다시 찾는다.
이 지점에서 데이터와 AI 상권분석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상권의 업종 분포, 경쟁 밀도, 배후 수요, 임대료 수준, 시간대별 흐름을 함께 보면 창업자의 직감이 어디에서 과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데이터가 현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매장 앞 동선, 건물 출입구 방향, 점심시간 줄의 흐름, 주변 직장인의 소비 습관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데이터는 결정을 대신하는 답이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줄이는 질문이어야 한다.
부산 로컬 브랜드의 전국 확장은 ‘부산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부산에서 검증한 경험을 다른 도시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일이다. 지역성은 브랜드의 얼굴이지만, 표준화와 숫자는 브랜드의 체력이다. 이 체력이 부족하면 좋은 이야기와 멋진 간판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반대로 운영 기준이 분명하면 지역의 색깔은 더 멀리 갈 수 있다.
지역 기관의 지원도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단순한 홍보 행사나 일회성 지원보다 초기 브랜드가 운영 데이터를 쌓고, 테스트 매장을 검증하고, 다른 상권으로 확장할 때 필요한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해야 한다. 부산의 청년기업과 소상공인이 전국으로 나가려면 감성적인 응원보다 냉정한 진단과 실험의 기회가 더 중요하다. 지원의 목표도 ‘행사 참여 기업 수’가 아니라 ‘재현 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든 기업 수’로 바뀌어야 한다.
전국 브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지역에서 축적한 고객 경험을 숫자로 정리하고, 매장 운영을 표준화하고, 다른 상권에서도 반복 가능한 구조로 바꿀 때 가능성이 생긴다. 부산 로컬 브랜드가 더 크게 성장하려면 이제 ‘부산다운 감성’을 넘어 ‘부산에서 검증된 시스템’을 보여줘야 한다.
2026-09-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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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났다, 부산은 이제 시작이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막을 내린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우리나라가 세계유산협약 가입 이후 처음 개최한 이 회의에 세계 160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제 행사의 열기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그 성과가 부산의 미래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되짚어 볼 때다.
‘한국의 갯벌’ 확장 등재와 함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의 채택이었다. 부산 선언은 기존 5대 전략목표에 ‘협력’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AI 기술 활용과 그 책임을 공식 의제로 제시했다. 베니스 헌장과 리우 선언처럼 도시 이름을 담은 국제 문서는 그 도시를 하나의 가치와 정신으로 기억하게 한다. 이로써 부산의 이름도 세계유산의 역사에 오래 남게 되었다.
참가자들은 해양경관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국가 기능을 유지하고 피란민을 받아들이며 국제사회의 연대 속에서 도시와 공동체를 지켜 낸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인류애와 포용, 국제연대와 평화를 증언하는 부산의 가치가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세계유산위원회 이후 부산은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기억만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성과는 후속 사업의 지속성과 실행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지난달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북동항로 컨테이너선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신항을 출발했다. 북극항로 시대가 구호를 넘어 실제 항해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이 글로벌 해양도시로 도약할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글로벌 해양도시는 항만과 물류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해 온 역사와 문화, 전쟁과 피란의 위기를 국제연대로 견뎌 낸 경험이 함께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부산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길이라면, 세계유산은 그 길에 부산만의 정체성과 품격을 더하는 힘이다. 항로 개척 또한 북극 환경과 해양생태계,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바다를 이용하는 도시를 넘어 바다를 이해하고 지키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번 위원회를 통해 항구와 원도심, 산과 바다, 피란수도의 기억이 어우러진 ‘부산다움’이 세계인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그 관심을 부산항과 원도심으로 이어 지역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유산은 도시를 멈춰 세우는 보존제도가 아니다. 유산을 문화관광·교육·연구·첨단기술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미래 자산이다. 다만 그 출발점은 유산의 진정성과 장소성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 보존 없는 활용도, 시민과 지역공동체가 빠진 세계화도 오래갈 수 없다.
부산시는 국제유산포럼의 정례화와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 유치를 후속사업으로 제시했다. 이제 누가, 어떤 조직과 예산으로, 언제부터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보존과 활용,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통합관리, 부산의 해양·산업·근현대유산 연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장기적인 유산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났지만 부산의 세계유산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 선언은 회의장의 문서에 머물지 않고 도시정책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산이 바다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이자 인류애와 평화, 자연과 유산에 대한 책임을 세계와 나누는 도시가 되도록 이제 다시 힘껏 노를 저어야 한다.
2026-09-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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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노후도시를 움직일 법, 운영기준이 문턱이 되어선 안 된다
부산의 정비사업 현장에서 시공사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동래 복산1구역은 시공사 선정 11년 만에 시공단과 결별했고, 해운대 우동1구역과 동래 명장3구역은 경쟁 입찰이 잇따라 유찰됐다. 남구 문현6구역은 1500세대가 넘는 대단지임에도 입찰 참여 건설사가 전무했다. 공사비와 PF금융비용은 전국적으로 급등했으나,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분양가와 수요 회복세가 더뎌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긴 인허가 기간과 맞물려 늘어나는 이자 부담은 지역 건설사의 경영기반마저 흔들고 있다.
2024년 기준 부산의 30년 이상 노후주택은 43만 2913호(전체의 32.1%)에 달하며, 원도심 일대는 저층 주거지와 소규모 공동주택이 혼재돼 단독 개발로는 채산성이 나오지 않는다. 대규모 신도시를 겨냥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2023년 12월 26일 제정, 2024년 4월 27일 시행)의 적용 범위에서도 벗어난 사각지대가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등장한 제도가 바로 ‘도심 복합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 (2024년 2월 6일 제정, 2025년 2월 7일 시행)이다. 역세권과 준공업지역에 용적률 상향 등 파격적인 특례를 부여하고, 신탁사·리츠 등 전문기관의 참여를 열어 도심 정비의 숨통을 틔우자는 취지다.
이에 발맞춰 부산시도 도심복합개발사업 운영 기준을 마련했으나, 실제 작동 가능한 현실적 기준인지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비주거시설 의무비율(원칙 15%, 예외 10%)’이다. 상권 침체가 장기화된 지방에서 상업·업무시설을 강제하면 대규모 미분양과 공실 대란으로 이어져 사업 자체가 좌초된다. 또한, 운영기준이 주택법상 준주택을 비주거 인정 범위에서 배제하고 있는 점도 개선이 시급하다. 청년 기숙사나 고령자 복지주택,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추가 공급하는 임대주택 등을 비주거 의무비율로 인정해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기여량의 50%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일률 강제하는 방식 역시, 법정 용적률 특례에 따른 의무 임대주택과 중복돼 사업성을 떨어뜨린다. 공공기여는 획일적 주택 공급을 넘어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주차장, 공원, 문화·체육 생활SOC 등으로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도심복합개발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시장에서 작동하려면, 지역 건설사와 건축주(토지등소유자), 시민의 3대 주체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적 유인책이 결합되어야 한다.
먼저, 지역 건설사 관점에서 수주 리스크 해소와 사업 지속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 획일적인 상업시설 대신 청년임대와 노인복지주택, 공공기여시설로 대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 건설사가 시공사 또는 공동시행자로 참여할 경우 용적률 가산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지자체 차원의 정비펀드 보증 우대를 연계해, 고사 위기에 처한 지역 건설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 또한, 통합심의를 통해 시공 기간 장기화에 따른 금융비용 및 추가 공사비 리스크를 줄여주어야 한다.
건축주 관점에서는 분담금 예측가능성을 제시하고 자산가치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도심복합개발은 토지등소유자가 사업 위험을 분담하는 구조다. 비주거비율 완화 기준과 공공기여 산정 산식을 사업 초기부터 투명하게 제시해 분담금 증가 우려를 불식시키고 동의율을 신속히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률상 상한용적률 초과에 따른 공공주택 의무 공급과 지자체 운영기준상의 토지 가치 상승 기여분이 이중으로 부과되지 않도록 해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신탁사 등 전문개발기관이 공정하게 사업을 대행·관리할 수 있는 행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 관점에서도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체감형 생활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비주거 공간에 노인복지 인프라 및 청년 지원시설을 만들어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도록 하고, 재개발에서 소외된 노후 주거지를 신속히 재생해 도시 균형 발전과 주거 안전망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법은 노후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을 열었다. 지자체 운영기준은 그 문 앞에 새로운 문턱을 쌓는 규제가 아니라, 지역 건설사가 짓고, 건축주가 동의하며, 시민이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2026-09-09 [1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