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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수도 부산,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챙겨 가는가
부산은 내 고향이다. 내가 지역순환경제 운동을 처음 시작한 곳도 부산이었다. 그래서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말은 내게 단순한 행정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부산이 자기 경제의 흐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부산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부산 시민의 삶으로 돌아오는가를 묻는 문제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해양도시였다. 항만이 있었고, 배가 드나들었고, 물류가 움직였고, 수많은 노동자가 바다와 항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 부산은 정말 해양수도였는가. 아니면 해양경제의 현장은 부산에 있었지만, 그 결정권과 이익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부산항은 움직인다. 그러나 움직이는 항만과 결정하는 도시는 다를 수 있다. 컨테이너는 부산을 지나가지만 계약은 서울에서 체결되고, 물류는 부산에서 처리되지만 금융은 서울에서 조달될 수 있다. 항만 노동은 부산에서 이루어지지만 고부가가치 기획·투자·법률·보험·데이터 기능은 수도권에 집중될 수 있다. 이 경우 부산은 해양경제의 무대일 뿐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해양수도 부산의 과제는 더 큰 항만, 더 넓은 배후단지, 더 화려한 개발계획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짜 해양수도는 해양경제의 가치사슬을 지역 안에 붙잡는 도시다. 선박이 드나드는 도시가 아니라 해양경제의 결정권·금융·연구개발·법률서비스·데이터·청년 일자리가 함께 뿌리내리는 도시다.
최근 HMM을 비롯한 해운 대기업의 부산 이전, 해양수산 공공기관 이전, 해사전문법원 설치, 동남투자공사 설립 논의는 중요한 계기다. 그러나 본사가 온다고 자동으로 지역순환경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의 숫자가 아니라 이전 이후의 구조다. 본사와 공공기관의 연구·조달·고용·투자가 부산의 대학, 기업, 금융, 청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핵심이다. 동남투자공사 역시 단순한 개발금융기관이 아니라 부산과 동남권의 부를 지역 안에서 다시 순환시키는 공공적 금융장치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지역순환경제의 문제로 본다. 지역순환경제는 지역경제 활성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지역으로 돌아오도록 경제의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부가 부산의 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기술혁신, 생활경제, 공공서비스, 지역금융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부산이 자기 경제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곧 경제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간경제는 대체로 반대로 작동해 왔다. 지역은 생산하고 수도권은 결정했다. 지역은 항만과 토지와 노동을 제공했지만, 본사·금융·법률·회계·컨설팅·데이터 기능은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부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해양수도론은 개발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항만은 확장되지만 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대기업은 들어오지만 지역 중소기업은 주변부에 머물 수 있다. 도시지대와 개발이익만 커지고 그 이익이 외부 자본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간다면 부산 시민에게 남는 것은 많지 않다.
부산은 이제 “무엇을 유치할 것인가”를 넘어 “유치한 것을 어떻게 지역의 부로 바꿀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해양수도는 기관과 건물의 목록이 아니라 가치의 흐름을 바꾸는 도시 전략이다. 항만·해운·물류·개발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부산 시민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해양수도 부산, 누가 결정하고 누가 가져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해양수도는 구호에 그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부산은 더 이상 물류가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가치가 머무르고 순환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부산은 이름뿐인 해양수도가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해양수도가 될 것이다. 부산의 바다가 부산 시민의 미래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부산에서 시작한 지역순환경제의 문제의식이다. 이제 그 길을 열어야 한다.
2026-08-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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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 ESG경영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한동안 ESG(Environment·Social responsibility·Governance)는 기업 경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는 주로 기업의 투자와 평판, 리스크 관리와 연결됐다. 그러나 이제 ESG는 공공기관, 언론, 대학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 조직은 지속가능한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미래세대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대학은 넓은 공공성을 지닌 기관이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청년을 붙잡고, 산업 전환을 돕고, 공공정책에 지식 기반을 제공한다. 따라서 대학의 ESG 경영은 친환경 캠페인이나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행정, 의사결정, 지역협력을 어떤 가치 위에서 운영할 것인가를 묻는 대학경영의 핵심 과제다.
현재 대학 ESG 경영에는 성과와 한계가 공존한다. 여러 대학이 ESG 보고서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탄소중립, 지역사회 기여를 강조한다. 그러나 ESG가 대학 운영의 중심 원리보다 특정 부서 사업, 일회성 캠페인, 외부 평가 대응에 머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의 언어가 되려면 선언보다 데이터, 보고서보다 실행체계, 홍보보다 구성원 참여가 필요하다.
학생도 ESG의 수혜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은 ESG 경영의 중요한 주체다. 학생들이 기후위기, 다양성, 인권, 지역문제와 공정한 거버넌스를 배우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ESG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된다. 대학이 ESG를 전공 교육, 현장실습, 창업,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와 연결해야 하는 이유다.
부산지역 대학들의 가능성도 특별하다. 부산은 해양·항만, 조선·물류, 관광·문화의 중심지이면서 고령화, 청년 유출, 원도심 쇠퇴와 기후위기라는 의제를 안고 있다. 해양환경은 환경(E), 청년 정주는 사회(S), 대학·지자체·기업·시민사회가 함께 의사결정하는 구조는 거버넌스(G)의 문제다. 부산의 도시문제 자체가 대학 ESG의 교육장이다.
부산형 앵커(Anchor) 사업도 지역성장 인재양성과 대학의 지역 정착 기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학 ESG 경영과 접점이 크다. 지역대학을 인재와 산업, 생활권과 초광역 협력을 지역에 결속시키는 거점으로 보는 관점은 대학 ESG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의 가치와 연결된다.
부산의 대학들은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다. 거점국립대학은 공공성과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ESG 제도화를 선도할 수 있다. 해양·수산·항만 분야 특화 대학들은 환경·산업 ESG에 유리하고, 문화·콘텐츠·글로벌 교류에 강한 대학들은 학생 참여형 ESG와 도시 브랜딩을, 전문대학들은 현장 밀착형 ESG를 실천할 수 있다. 과제는 이 강점들을 부산형 ESG 모델 속에서 연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부산 대학 ESG 연합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공동 지표와 연합 보고서, 공동 캠페인과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해양환경, 탄소중립 항만, 지역사회 돌봄, 청년 정주, 원도심 재생, 디지털 포용 같은 의제를 대학별 전공과 연결한다면 앵커 사업의 지역성장 인재양성 취지와도 맞닿을 수 있다.
대학 ESG 경영은 세 방향으로 선순환한다. 학생은 지속 가능한 시민이자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대학은 신뢰받는 교육·연구기관으로 성장한다. 도시는 대학을 통해 혁신 인재와 지식, 기술과 소통의 기반을 얻는다.
부산의 미래를 논할 때 우리는 항만, 공항, 금융, 관광, 신산업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원동력은 결국 사람이고 지식이며 신뢰다. 대학 ESG 경영은 이 세 요소를 연결하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 전략이다. 부산의 대학들이 ESG를 통해 학생의 미래, 대학의 신뢰, 도시의 발전을 함께 설계할 때, 부산은 단순히 대학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대학과 함께 성장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2026-08-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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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흥란에 발목 잡힌 거제남부관광단지
경남 거제남부관광단지가 멈춰선 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다. 주민의 삶이 멈추고,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고, 지역소멸의 시계가 앞당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동·남부면 주민에게 이 사업은 개발이 아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 상권 붕괴를 막을 마지막 생존수단이다. 그래서 주민 모두가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 주민 전체가 한목소리로 생존권을 호소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런데도 일부 환경단체는 주민의 절박함은 외면한 채 반대 입장만 되풀이한다. 대안도 없고 타협도 없다.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다.
환경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환경보전이라는 명분으로 주민의 생존권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대안이 있고 보전 방안까지 마련된 사업을 통째로 멈춰 세운다면, 그것은 환경보호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가로막는 행위다. 대흥란은 2006년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처음 발견된 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2급 지정은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했거나 가까운 장래 멸종 우려가 있는 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당시로서는 타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그때와 판이하다. 부산 , 남해, 여수, 고흥 등 남해안 전역은 물론 지리산, 속리산, 강원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대규모 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보호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맞게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생태적 희소성이 달라졌다면 지정 등급도 달라져야 한다. 과학적 재조사를 토대로 관찰종 또는 관리종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현실은 바뀌었는데 제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법은 보호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영구화하는 장벽으로 전락한다. 남부관광단지는 바로 그 제도적 경직성이 지역 미래를 어떻게 가로막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다.
가덕신공항 건설 예정지에서도 대흥란 서식이 확인됐다. 여기에 구렁이, 수달, 나팔고둥 등 다수의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해양보호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지속적인 모니터링, 군락 이식 등 보전대책 등을 조건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동의했다. 보전대책을 마련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남부관광단지도 같은 원칙과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추진하면서 주민 생존과 거제 관광산업의 미래가 걸린 남부관광단지는 9년 동안 멈춰 세우는 것이 과연 공정한 환경 행정인가. 국책사업에는 가능한 해법이 지역 민간투자사업에는 불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환경 행정의 기준은 사업의 크기나 주체가 아니라 법과 과학, 일관성과 형평성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과 보전을 양자택일로 몰아가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환경을 지키고 산업을 살리는 현실적 결론이다. 과학과 기술, 책임 있는 관리가 함께 이루어질 때 자연을 지키면서 지역의 앞날도 열 수 있다. 주민은 9년을 기다렸다. 사업자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내했다. 지역 사회는 수없이 대화와 결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또다시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룬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책임의 포기다. 환경보호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대안과 주민 생존권을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행정이 아니다.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 거제시는 일부의 반대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법과 과학적 데이터, 주민의 생존권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놓고 결단해야 한다. 지금 거제에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조사도, 또 한 번의 검토도 아니다. 9년 동안 멈춰선 남부관광단지를 다시 움직일 책임 있는 결단이다. 행정이 결단하지 않으면 사업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가 멈춘다.
2026-08-0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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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금융 공공기관 이전에 여야 힘 합쳐야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관심은 온통 정부가 올 하반기에 발표하는 제2차 공공기관 이전에 쏠려 있다. 다른 지역에선 광역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산시도 지난 3일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희망하는 40개 기관의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했으나, 유치 열기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 듯하다. 특히 위기에 처한 부산 금융중심지 문제마저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이에 반해 금융중심지 지정을 추진 중인 전북은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듯이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광역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정부를 설득해 서울 부산에 이어 제3금융중심지로 반드시 지정을 받겠다며 힘을 모으고, 다음 달에는 국제금융센터 설립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겠다는 발표도 했다.
금융중심지 부산이 최우선적으로 유치를 희망하는 공공기관은 3대 국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대형 금융공기업들이다. 이들 금융공기업은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금융중심지가 아닌 지자체들도 모두 탐내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시와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 전체가 어느 때보다 힘을 하나로 합쳐서 전력을 쏟아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3대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의 노조가 지방 이전에 반대하는 공동 집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있는 등 유치 대상 공공기관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또 부산 이전설이 나오는 농협중앙회는 전남광주와 전북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금융공기업 이전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권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또 분산하지 않고 집적 이전해서 효과가 크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밝혀왔다. 금융 공공기관을 여러 곳에 나눠주거나,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지역에 주는 것보다는 이미 문현금융단지를 중심으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와 금융 관련 여러 공기업이 들어서 있고 인프라도 갖춰진 지방 유일의 금융중심지 부산에 오게 하면 이전 효과가 즉각 나타날 수 있다.
부산이 동북아 해양수도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것과 연관해서도 금융중심지의 역할은 훨씬 더 크고 넓어져야 한다. 해양수도특별법 제정에 이어 해양수산부가 이전됐고, 해운 대기업 이전, 해사전문법원 설치 등이 잇따르면서 지역 전체에 큰 활기가 돌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도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하나 둘은 아니지만 부산의 새로운 희망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전재수 부산시장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젖줄인 금융 육성 없이는 지역의 핵심 산업 발달과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긴 어렵다. 특히 해양수도를 완성하려면 해양금융 기능이 강화되어야 하고, 정책금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은 공공기관 유치를 치열하게 진행하는 한편으로 금융중심지를 추가 지정할 경우에 예상되는 여러 문제들을 거듭 강조하면서 정부와 관계 부처에 기존 금융중심지 우선 육성을 촉구해야 한다. 나눠먹기식 배분으로 기존 금융중심지 기능이 약화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부산은 2009년 서울과 함께 금융중심지로 지정됐고, 그 기반이 됐던 선물거래소는 1999년 유치했다. 금융은 약 30년의 긴 세월 동안 지역사회 전체가 매달려서 키워온 산업이다.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은 핵심 공공기관 유치에 한목소리를 내면서 적극 나서야 한다. 설사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의 의견이 부분적으로 다르다 해도 협의해서 풀고, 불협화음을 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공공기관들이 2차로 대거 이전해서 부산 금융중심지의 역량을 국제적 수준으로 강화시키고, 해양수도에 걸맞은 금융환경도 조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이 지역균형발전을 선도하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고급 일자리를 계속 창출하는 글로벌 해양허브 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6-08-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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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들불의 시간, 밀양아리랑
‘밀양아리랑’은 들판과 강바람이 빚어낸 노래다. 정선아리랑이 첩첩한 산맥의 깊은 울림이라면, 밀양아리랑은 넓은 들녘과 사람 사는 마을의 숨결 속에서 태어난 노래에 가깝다. 빠르고 경쾌한 가락은 밀양강 물길처럼 힘차게 흐르고, 흥을 돋우는 장단 속에는 삶의 고단함마저 웃음으로 견뎌내려 했던 영남 사람들의 기질이 스며 있다. 그래서 밀양아리랑은 단순히 흥겨운 민요가 아니다. 웃음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생활 철학이 담긴 노래다.
필자 역시 밀양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먼저 강과 들판의 풍경이 생각난다. 아침 안개가 밀양강 위로 천천히 번지고, 넓은 들녘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산골의 적막과는 다른, 사람의 온기가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장터로 향하는 발걸음과 논두렁 사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저녁 무렵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던 노랫가락은 삶이 힘겨워도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밀양의 삶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며 이어져 왔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사람과 살림살이를 모이게 했고, 장터와 마을에는 늘 사람 사는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흥겨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난과 이별, 긴 노동의 시간 또한 이 땅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존재했다. 밀양아리랑은 바로 그런 현실 위에서 태어난 노래다. 힘겨운 삶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불렀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함께 가락을 이어갔다.
우리는 흔히 밀양아리랑을 흥의 노래로 기억한다. 실제로 “날 좀 보소”로 시작되는 익숙한 가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정겨운 정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안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한 흥 이상의 감정이 스며 있다. 웃으며 노래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삶의 애환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담겨 있다. 흥은 슬픔의 반대가 아니라, 슬픔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특히 밀양아리랑은 혼자 부를 때보다 여럿이 함께 부를 때 더욱 살아난다. 장터와 마을 잔치, 들일과 놀이판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맞추며 가락을 이어갔다. 누군가 한 소절을 시작하면 다른 이들이 뒤따라 흥을 더하고, 개인의 외로움은 공동체의 웃음 속으로 스며든다. 함께 노래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견디게 했고, 노래는 공동체를 이어주는 힘이 되었다. 밀양의 골목과 장터마다 아리랑이 오래도록 이어져 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밀양의 풍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오래된 시장은 하나둘 사라지고, 사람 냄새 가득하던 골목과 마을의 정취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삶은 편리해졌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어울리던 공동체의 시간은 예전 같지 않다. 그럴수록 오래된 민요가 품고 있는 삶의 기억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밀양아리랑은 단순히 흥을 돋우는 노래가 아니다. 삶의 무게를 서로의 목소리로 견디게 만든 노래다. 밀양강 바람을 따라 오래도록 흘러온 그 익숙한 가락은 오늘도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다. 사람은 결국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함께 부르며 견뎌내는 존재라고.
2026-08-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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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년 토성' 기장고읍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매주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빗자루를 들고 집 앞 기장고읍성 맨발 걷기 길을 나선다. 주말에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 길을 쓸다 보면 이곳을 찾는 익숙한 등산객들과 이웃 주민들이 고마움의 인사를 건네고 정겨운 덕담을 나눈다.
기장향교를 부드럽게 감싸안은 채 이어진 이 옛 성곽길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쌓은, 장장 1100년의 역사를 품은 ‘천년 토성’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시공간의 벽을 초월하여 고대 기장 읍내에 살았던 선조들의 발길과 오늘날 우리의 발길이 물리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깊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기장고읍성은 부산지역 지방행정의 원초적 기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천년 이상의 상징적 유적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고려 이전 지방 읍치(邑治) 토성’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성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 시민은 그저 기장읍 동부리에 석성으로 축조된 ‘기장읍성’만을 유일한 역사적 유적으로 기억할 뿐이다. 현재 지자체에서는 기장읍성의 복원 사업에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적으로 쏟아붓느라, 미처 기장읍 교리의 고읍성까지는 세심하게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읍성 현장에는 그저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 사실상 방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행히 이 고대의 성벽이 순수한 황토로 축조된 덕분에 일부 구간이 자연스럽게 맨발 걷기 길로 애용되며 역사 속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다. 필자 역시 매일 이곳을 걸으며 오랜 풍화 속에 깨어진 채 흙 속에 파묻혀 있는 옛 기와나 토기 조각들을 발끝으로 마주할 때마다 선조들의 거친 숨결을 체감하곤 한다. 가벼운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에는 나에게 이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유산이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길을 걸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과연 우리 조상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는 소중한 역사 유적을 이렇게 함부로 밟고 지나가도 되는가라’는 도덕적 부채감 때문이다. 전면 복원은 당장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지만, 예산 타령만 하며 이 귀중한 현장을 언제까지나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이제 부산시와 기장군은 지금 당장 우리의 작은 의지와 세심한 행정력만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 해법은 맨발 걷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행인들의 무심한 발길에 치이고 깨어져 가는 옛 기와 조각과 토기 파편들을 정성스럽게 수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모인 역사의 흔적들을 길 한편에 정돈된 형태로 보존하고, 오가는 이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소박한 야외 전시대를 길옆에 마련하는 디테일한 행정이 시급하다.
나아가 이 길을 전국에서 가장 특색 있고 매력적인 ‘천년 토성 위를 걷는 역사문화 맨발 길’로 브랜드화하여 정식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대로 천년 기왓장을 디디며 걸어가는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과거의 소중한 역사적 파편들을 수집하여 길옆에 단정하게 전시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작은 실천, 그것이야말로 예산의 한계만을 핑계 대며 뒷짐 지고 있는 관행에서 벗어나 세심한 행정의 디테일로 지역 문화유산을 대하는 로컬의 진정한 품격이다. 거창한 토목 복원보다, 발밑에 흩어진 역사적 흔적들을 귀하게 모아 시민의 일상 및 건강 생활 속으로 고읍성을 온전히 복원해 내는 작은 정성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정한 역사 보존의 첫걸음이다.
2026-08-0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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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4개 항만공사 통합,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자는 옛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시절 부산항 신항과 광양항 개발 현장을 직접 두 발로 밟았고, 항만공사 설립 당시엔 한국항만공사 통합을 주장하며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는 전국 컨테이너 항만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시급한 시기였고, 갓 출범한 항만공사들은 전문 인력뿐만 아니라 재정 자립도도 취약해 경쟁보다 조율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물두 해 전의 논리를 오늘 다시 꺼내는 것은 2005년 처방전으로 2026년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것과 같다.
4개 항만공사는 설립 이후 저마다의 전문성을 쌓아 왔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 거점항, 인천항은 대중국 교역의 핵심 창구, 울산항은 에너지·액체벌크 특화항, 여수광양항은 철강·원자재 물류 중심이다. 부산항만공사의 지난해 매출은 4049억 원, 자산은 8조 4598억 원에 이른다. 이 결실이 통합본사의 ‘균형 배분’ 논리에 따라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하는가.
세계 항만 경쟁의 문법은 분명하다. 싱가포르 PSA, 두바이 DP World, 로테르담 항만청은 단일 항만의 전문성을 살려 글로벌 물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반면 오사카·고베·한신항을 통합한 일본은 반면교사다. 한때 세계 4위였던 고베항은 통합 이후 7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조직을 합친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웃나라 항만이 값비싼 수업료로 증명했다.
통합론의 근거는 결국 중복투자 등 업무 비효율 해소다. 그러나 이는 조직을 통째로 합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문제다. 항만공사법 제36조의 2에 명시된 항만공사운영협의회가 유명무실하게 방치돼 왔을 뿐이다. 각 항만공사 사장이 협의회에서 투자·개발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해양수산부가 항만기본계획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효율은 충분히 해결된다.
게다가 통합 본부를 세워도 항만별 관리 조직은 별도로 남아 본사만 비대해지고 현장 조정력은 쪼그라드는 ‘옥상옥’ 구조가 된다. 항만공사법이 각 공사를 독립채산제 책임경영 주체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 권한은 통합 본사로, 책임은 현장에 남는 구조는 이러한 책임경영의 기본 원리를 위반한다. 더 근본적으로, 항만공사 통합은 지방분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부산항만공사는 지역과 항만이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로 설립됐고 북항 재개발사업도 그 토대 위에서 진행된다. 정부가 내건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충돌하는 통합안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지난 6월 4개 항만공사 노조가 공동으로 통합 철회를 요구했고, 7월엔 부산·인천·울산·경남·여수광양 5개 지역 300여 시민사회단체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한목소리로 통합 중단을 촉구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조차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의 목소리가 한 방향을 가리키는데도 정책설계자들은 왜 귀를 막는가.
필자도 과거에는 통합을 주장한 바 있지만, 정책의 타당성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 주장을 거두는 것은 일관성의 포기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개항 이후 150년간 쌓아온 부산항의 브랜드 가치를 비용 절감의 계산기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법에 보장된 운영협의회를 실질화해 각 항만공사가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저마다의 전문성으로 치열해져 가는 글로벌 항만 경쟁에 맞서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다시 묻는다. 이 통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2026-08-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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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내 고향 부산, 안녕하십니까
요즘 나라의 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뉴스 속에서 부산을 찾아보곤 한다. 반도체가 어디로 가고 큰 공장이 어디에 선다는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그 안에 부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청년들을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요즘 자주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부산은 지금 안녕한가.
특히 부산의 부모들께 여쭙고 싶다.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십 년 뒤에도 이 도시에 남아 있겠는가.
어릴 적 아이는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에 갈 나이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에게 대학이 꼭 집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 나은 배움이 있는 곳, 그 배움이 더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곳을 찾아 아이는 길을 나선다.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나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이 도시에 머물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붙잡아 두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부산의 대학이 그만한 배움을 주고, 그 배움이 부산 안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떠나는 것은 고향이 싫어서가 아니라, 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지난 6월,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 나라의 명운을 걸겠다며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기업이 쏟아붓겠다는 돈만 1500조 원, 나라 한 해 살림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서남권과 충청권이 저마다 거대한 반도체 단지를 품는 동안, 부산은 대구·경북과 한데 묶여 ‘소재·부품 거점’이라는 이름 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부산에 새로 무엇이 들어온다는 약속은 없었다.
이것이 왜 우리 아이의 일인가. 이 새로운 산업이 곧 우리 시대의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일자리가 다른 도시에만 들어선다면, 부산에서 자란 청년은 배운 기술을 펼칠 자리를 찾아 끝내 짐을 꾸린다. 한 청년이 떠나 자리가 비면, 그 빈자리를 본 다음 청년은 조금 더 쉽게 떠날 결심을 한다. 부산이 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 도시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먼 훗날의 걱정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현실임을 말해 준다.
이 흐름을 어디서부터 되돌릴 수 있을까. 나는 그 실마리가 지역의 전문대학에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다가올 산업은 어느 한 전공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 현장을 아는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람을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땀 흘리는 실습으로 길러 온 곳이 바로 전문대학이며, 조선과 자동차와 기계로 반세기를 버텨 온 부산에는 그 바탕이 이미 넉넉하다. 전문대학은 이 땅의 청년을 이 땅의 산업에 이어주는, 부산에 깊이 뿌리내린 마지막 통로다. 이 대학들이 무너지면 청년을 고향에 붙드는 마지막 끈이 끊어지고 만다.
그런데 정작 그런 인재를 길러 내야 할 대학에는, 그 일을 감당할 살림의 밑천이 없다.
돌이켜보면 1971년, 나라는 가난한 살림에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만들어 초중등 교육에 재원을 법으로 약속했고, 그렇게 길러 낸 사람들이 이 나라를 세계 열 손가락 안의 경제로 일으켰다. 그러나 이제 열에 일곱이 대학에 가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고등교육에는 아직 그런 법이 없다. 지역 대학의 살림은 해마다 심사를 받아 겨우 이어져 왔고, 그마저 2030년이면 끊긴다. 살림이 넉넉지 못한 대학은 좋은 교육을 베풀지 못하고, 좋은 교육을 베풀지 못하는 도시는 끝내 아이를 붙들지 못한다.
길은 분명하다. 초중등 교육이 법으로 뒷받침되듯, 고등교육에도 그 재정을 법으로 떠받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만들어야 한다. 초중등의 몫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올라설 다음 계단을 나라가 함께 놓아 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에는 직업교육의 몫이 분명히 담겨야 한다. 그래야 부산의 전문대학이 부산의 청년을, 부산의 내일로 이어 줄 수 있다.
이것은 대학을 위한 청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청이다. 글 첫머리에 나는 물었다. 부산은 안녕한가. 이제 답할 때다. 부산을 안녕하게 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아이들을 이 땅에 머물게 할 법 하나를 지금 세우는 일이다. 그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이 하나둘 고향을 등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2026-07-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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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화는 철학을 먹고 자란다
문화예술행정에서 ‘합리’와 ‘실용’만큼 반박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누가 비합리를 옹호하겠으며, 누가 비실용을 주장하겠는가. 이 두 단어는 종종 내용과 무관하게 스스로 정당성을 획득한다. 부산의 새 시장이 퐁피두 분관과 라 스칼라 초청 공연에 대해 ‘재검토’를 언급했을 때도, 이는 일견 합리와 실용의 언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합리와 실용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 묻지 않는 순간, 이 말들은 판단의 원칙이 아니라 판단을 유예하는 술책이 된다.
재검토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퐁피두 분관의 부산 유치는 애초에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고 보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투자심사와 타당성 검토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고,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도 계속 제기돼 왔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생략되었던 공적 판단을 이제라도 시작하는 일은 필요하다.
기준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절차적 정당성이 문제였다면 갈등의 크기가 아니라 적법성을 따지면 될 일이다. 시민의 세금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정치적 부담이 아니라 시민이 떠안게 될 비용부터 계산하는 것이 합리이자 실용이다. 문화정책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기조차 민망하지만, 외부 브랜드의 명성보다 그것이 지역의 문화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또한 검토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누구의 책임으로, 어떤 근거에 따라 결론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시민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미적대는 시간 속에서 엉뚱한 사업이 기정사실화되고, 시민이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 모든 논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문화행정은 개별 사업을 하나씩 저울질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어떤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검토든 유예든 이러한 철학 없이 문화예술사업을 온전히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산, 그리고 부산시민은 문화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관광객을 불러오는 산업인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수단인가. 아니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공공의 언어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부산의 문화정책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문화를 산업으로만 이해한다면 세계적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를 시민의 삶을 깊게 만드는 공공재로 본다면 우선순위는 달라진다. 지역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토대, 시민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학교와 도서관, 공연장과 생활문화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는 일은 훨씬 더 절실한 과제가 된다.
세계적인 이름을 들여올 수는 있지만, 시민의 감수성과 도시의 품격까지 돈으로 살 수는 없다. 퐁피두와 라 스칼라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미술관 하나, 공연 하나의 성사 여부에 그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부산이 외부의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문화적 힘으로 자신을 증명할 것인지를 묻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해양수도 역시 마찬가지다. 항만과 기관을 이전한다고 해양수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격은 인프라의 규모가 아니라 스스로를 설명하는 서사의 깊이에서 나온다. 바다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바다 위에서 어떤 문화와 예술을 키우며, 어떤 삶을 시민에게 제안하는가. 그 철학이 없다면 해양수도는 그저 거대한 시설의 집합일 뿐이다.
합리와 실용은 버려야 할 가치가 아니다. 행정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합리는 철학 위에서 방향을 얻고, 실용은 가치 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새 시정이 이제라도 시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어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다. 지금 부산시가 가장 먼저 재검토해야 할 것은 퐁피두나 라 스칼라를 넘어, 부산은 어떤 도시가 되고자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다.
2026-07-2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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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식탁 위의 거대한 환상에서 비건으로
우리는 매일 마트에서 고기를 고르며 풍요로운 식탁을 준비한다. 가격, 원산지, 등급을 살피지만 고기 한 팩이 우리 손에 쥐어지기까지 지구가 어떤 비용을 치렀는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기후솔루션(SFOC)이 발간한 보고서 ‘고기, 농장에서 매장까지’는 가려져 있던 우리 식탁의 탄소 성적표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보고서의 수치는 무겁다. 국내산 쇠고기 1kg을 생산·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무려 58.15kg CO2-eq로, 닭고기보다 10.8배나 높다. 이를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김포와 제주를 비행기로 21회 편도 탑승할 때 나오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국가 전체로 넓히면 연간 육류 소비 배출량은 약 5694만t CO2-eq로, 국내 전체 석탄화력발전소 연간 배출량의 약 34%에 달하며 국내 최대 발전시설인 태안발전본부 배출량의 2.6배를 훌쩍 넘는다. 고기 식단이 거대한 화력발전소 수십 기를 가동하는 것과 다름없는 파괴력을 지닌 셈이다.
이에 축산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발전산업은 직접 배출량만 계산하면서 축산업은 사료 생산부터 유통까지 다 합산해 비교했으니 불공정하며, 가축의 탄소는 식물이 흡수한 탄소가 돌아가는 ‘순환 탄소’이므로 화석 연료와 다르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동물성 식단을 내려놓고 비건(Vegan)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반박의 모순 속에 있다.
축산 온실가스의 85~99%는 사료 재배와 공급 과정에서 발생한다. 축산업에 농장 안의 직접 배출 기준만 들이대면 전체 환경 부하의 90% 이상을 통계에서 지워버리는 왜곡이 일어난다. 진짜 환경 비용을 보려면 ‘요람에서 유통까지’ 전 과정을 훑는 전과정평가(LCA)가 지극히 정당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온전한 식물성 식단인 비건이 왜 유일한 대안인지를 과학적으로 깨닫게 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탄소 순환’이라는 달콤한 프레임에 있다. 가축의 배출이 자연적 순환 고리 안에 있다는 주장은 과거 농경 시대에나 어울리는 낭만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매년 도살되는 가축의 수는 무려 950억 마리에 육박해 생태적 흡수 한계치를 이미 초과했다. 이 대량 도살 관행은 결코 자연적인 순환이 아니며, 인간의 육식 욕구를 채우기 위해 복원력을 마비시킨 ‘공장식 잔혹 가공’에 불과하다. 이 인위적인 관행을 끊어내고 비건으로 전환하는 것은 왜곡된 생태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현대 축산은 외부에서 엄청난 화석 연료를 주입해야만 돌아가는 반생명적 구조다. 950억 마리를 먹이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불태워 사료 재배지로 만들고, 화석연료로 제조된 질소 비료를 투입해 치명적인 아산화질소를 발생시킨다. 가축이 뿜어내는 메탄 역시 단기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 높은 독한 가스로, 기후 임계점을 향한 폭주를 가속한다. 지구의 브레이크를 잡기 위해서는 메탄의 핵심 공급원인 축산물 소비를 완전히 중단하는 비건 지향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15kg으로 일본의 2.5배, 중국의 3.8배에 달한다. 이 수요를 위해 소비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며, 국경 너머에서 발생하는 연간 1252만t의 온실가스 역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실질적인 환경 부하다. 이제 데이터의 사각지대 뒤에 숨어 “순환되니 괜찮다”고 방어할 때는 지났다. 화력발전소 수십 기와 맞먹는 온실가스 폭주를 막아서는 가장 확실한 설루션은 바로 고기 대신 채소와 식물성 단백질을 장바구니에 담는 비건의 실천이다. 우리의 식탁이 100% 식물성인 비건으로 변할 때, 비로소 지구의 거대한 순환 고리도 제자리를 찾는다.
2026-07-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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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다의 불청객' 노무라입깃해파리, 미래 식량자원으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오랫동안 우리 바다의 불청객이었다. 어업 현장에서는 그물과 어구를 망가뜨리고, 조업을 방해하며, 해수욕장과 연안 생태에도 불편과 피해를 주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특히 부산을 비롯한 남해와 동해 연안에서 대형 해파리의 출현은 해마다 반복되는 해양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파리를 보면 먼저 제거와 폐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과연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끝까지 ‘골칫거리’로만 남아 있어야 하는가.
이미 2012년 국립수산과학원은 노무라입깃해파리를 일반 가정과 영업장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염장 해파리 가공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수산과학원은 우리 연근해에서 잡은 노무라입깃해파리를 신선한 원료 상태에서 가공해 해파리 특유의 담백함과 쫄깃한 식감을 살린 염장 해파리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음식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자와 함께 냉채, 장조림, 해물볶음, 파스타, 양갱 등 5종의 요리를 개발해 시식회도 열었다.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유해 생물이나 폐기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식재료로 전환 가능한 자원이라는 점을 보여 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해파리라고 하면 냉채 정도만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조림, 볶음, 전채요리, 퓨전요리, 디저트성 응용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단지 몇 가지 요리를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해양문제를 지역 식문화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상상력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염장 해파리는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에서 주로 잡힌 해파리를 가공 처리한 것이 많았고, 수입·유통 과정에서 품질이 저하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 해 수입된 염장 해파리만 약 6000t, 금액으로는 1385만 달러 규모에 달했다. 다시 말해 우리 바다에서 대량 발생하는 해파리는 문제 생물로 버려지고 있는데, 정작 시장에서는 수입산 염장 해파리가 상당량 소비되고 있었던 셈이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식재료로서의 잠재력도 작지 않다. 염장 가공을 거치면 독특한 식감이 살아나고, 저칼로리 식재료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콜라겐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건강식과 기능성 식품, 나아가 화장품·의약품 소재로도 확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로 당시 국립수산과학원도 식재료뿐 아니라 건강기능성 제품, 화장품, 의약품 소재 개발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은 해양도시다. 해양도시의 경쟁력은 단지 항만과 조선, 수산물 유통에만 있지 않다. 바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자원으로 바꾸느냐에 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미래 식량자원으로 보는 관점은 바로 그런 전환의 시작이다. 바다에서 발생한 문제를 다시 바다에 묻어 버릴 것이 아니라, 부산의 식문화와 외식산업, 식품 가공산업, 해양바이오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
부산시는 노무라입깃해파리를 활용한 ‘부산형 미래 식량자원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대학, 외식업계, 조리 전문가, 식품기업, 해양바이오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리고, 가공 표준화와 안전성 검증, 저장·유통 체계·메뉴 개발, 상품화 전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연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산업으로, 어업인 소득과도 연결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해파리가 잡히면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수매와 가공, 상품화 체계가 갖춰지면 어업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 수 있다.
해파리 냉채·보양식·중화요리·파스타·양갱 같은 메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관광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새로운 해양 식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부산국제음식박람회, 수산식품 박람회, 해양축제와 연계한다면 시민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식탁과 시장, 관광 현장과 축제 속으로 들어온다면 해파리는 미래의 자원이 될 것이다.
2026-07-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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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산 제조업의 다음 도약, AI 전환에서 길을 찾다
부산 제조업의 경쟁력은 이제 숙련기술에 더해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AI는 이미 품질관리, 설비점검, 납기관리처럼 제조현장의 구체적인 업무로 들어오고 있다. 이른바 AX(AI 전환)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제조 중소기업도 이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부산은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 기계금속 등 전통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도시다. 오랜 현장 경험과 숙련기술이 축적되어 있고, 스마트공장 보급을 통해 디지털 전환의 토대도 갖춰가고 있다. 이 기반 위에 AI가 결합된다면 품질 고도화, 납기 대응력 강화, 원가 절감, 수출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스마트공장이 설비와 공정을 디지털로 연결하는 기반을 다졌다면, AX는 그 위에 쌓인 데이터를 기업의 판단력과 생산성으로 연결하는 다음 단계다.
중소기업의 AI 전환은 처음부터 대규모 투자나 전면적인 시스템 구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불량 패턴 분석을 통한 공정 개선, 납기·재고 데이터를 활용한 발주 관리 효율화, 설비 상태 모니터링을 통한 유지보수 부담 경감처럼 현장에서 바로 체감할 수 있는 과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핵심은 최신 기술의 도입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달라졌음을 느끼는 경험이다.
다만 업종마다 접근은 달라야 한다. 조선기자재 기업이 마주하는 납기와 품질관리의 문제, 자동차부품 기업의 공정 안정화와 원가 절감의 과제, 기계금속 기업의 숙련기술 표준화와 설비관리의 필요는 저마다 다른 해법을 요구한다. AI 전환도 일률적인 방식보다 기업의 여건과 업종 특성을 반영한 단계적 접근이 현실에 맞다.
부산 제조업의 AI 전환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제기되는 구체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숙련인력 감소, 생산공정의 복잡화, 납기 단축 요구, 품질관리 부담은 많은 제조 중소기업이 공통적으로 체감하는 문제다. 숙련자의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여기에 데이터 기반 판단이 더해질 때 현장의 대응력은 더 높아진다.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현장의 판단을 보완하고, 반복 업무를 줄이며, 공정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AX가 지향해야 할 현실적인 방향이다.
이제 필요한 일은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과제를 꾸준히 발굴하고,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를 하나씩 쌓아가는 일이다. 부산 제조기업이 보유한 설비와 공정 데이터가 실제 경영 성과로 이어지려면 업종별 특성과 기업 규모에 맞는 적용 경험이 필요하다. 작은 품질 개선, 납기 단축, 재고 효율화 같은 변화가 지역 안에서 공유될수록 더 많은 기업이 AI 전환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과가 확인된 사례는 업종이 비슷한 기업에 실질적인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이 부담 없이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AI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작은 공정 하나, 반복 업무 하나, 관리 지표 하나부터 개선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결국 AI 전환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사람이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기업이 더 안정적으로 생산하도록 돕는 현장 혁신이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부산중기청은 최근 부산지역 스마트제조 AX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협의체에는 부산테크노파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 유관기관과 스마트제조 공급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AX 협의체는 기업의 현장 과제와 공급기업의 기술, 지원기관의 정책수단이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협력 기반이다. 기업이 기술 선택이나 지원사업 활용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고, 자사 여건에 맞는 적용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결 창구 역할을 해나가고자 한다.
부산 제조업의 강점은 현장에 있다. 이제 그 현장에 데이터와 AI를 더해 더 정밀하게 판단하고, 더 안정적으로 생산하며,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중기청도 기업과 지원기관, 공급기업을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며, 부산 제조 중소기업이 AX를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가도록 뒷받침하겠다.
2026-07-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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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해상풍력, 선택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기후 위기가 피부로 와 닿는 계절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 변동 속에서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 기후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이 부른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는 지금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무역 규범으로 자리 잡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이 있다. 오는 2050년까지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이 흐름은 단순한 환경보호 운동의 차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공급망 전체에 이를 요구하면서, 이제는 국제무역의 무서운 진입장벽이자 새로운 경제 질서로 군림하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으로서는 이 흐름을 맞추지 못할 경우 국제적인 상품 유통과 경쟁력 확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러한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은 단연 ‘해상풍력’이다. 해상풍력은 다른 재생에너지에 비해 발전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강력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으로 가동 중인 단지가 손에 꼽을 정도로 국내 해상풍력의 발걸음은 매우 더디다. 반면 세계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누적 설비용량은 이미 92.5GW를 넘어섰으며, 현재 인허가 단계나 개발 계획 중인 물량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추세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의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35년까지 세계 해상풍력 설비용량은 현재의 4.5배 수준인 420GW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첨단 제조업 전력화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주요국들이 해상풍력 선점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각광을 받으며 급속히 늘어나는 해상풍력이 유독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암초는 ‘주민 수용성’ 문제와 이에 따른 격렬한 반대다. 이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나 님비(NIMBY) 현상으로 치부하며 지역민의 애향심을 폄훼해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평온하던 삶의 터전 앞바다에 낯선 거대 구조물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우려와 걱정을 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다. 소음이나 전자파, 경관 훼손에 대한 불안감은 사업 초기 단계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행정적 절차가 부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과학적 사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해안가에서 1km 이상만 떨어져도 발전기 소음은 바다의 파도 소리에 묻혀 체감하기 어려우며, 풍력발전기와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역시 일상에서 흔히 쓰는 헤어드라이어 발생량의 1.2% 수준에 불과해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제주 탐라해상풍력단지의 사례는 훌륭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야간 조명이 빚어내는 이색적인 풍광이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되어 방문객을 이끌고, 바닷속 해양 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해 어족 자원을 오히려 늘리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행히 최근 시행령이 마련된 ‘해상풍력보급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갈등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민간 주도의 난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계획적인 입지 발굴과 인허가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이 명시한 민관협의회 구성과 ‘이익공유 의무화’는 주민 수용성을 높일 핵심 열쇠다. 여기에 REC 가중치 부여를 통한 수익성 보장, 고정가격 입찰시장 운영, 주민 참여형 사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 등 정책적 뒷받침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사업 주체와 관할 지자체의 전향적인 발상 전환과 실행력이 선행돼야 할 때다. 주민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인허가 등 행정절차 초기 단계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실질적인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 막연한 보상안을 제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 참여형 이익공유 모델을 명문화하는 상생 조례를 선제적으로 제정하고 구속력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발전 수익이 지역 사회의 복지와 일자리 창출로 선순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온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탄소중립의 여정 속에서, 실질적인 주민 상생에 기반을 둔 해상풍력은 이제 선택의 문항이 아니라 대한민국 번영과 생존을 향해 돛을 올려야 할 필수과제다.
2026-07-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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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교육의 '벡터'를 탈환하라
최근 과학 탐구 수업 시간, 기괴한 풍경을 목격했다. 주제 발표를 준비한 두 팀의 논리 구조와 문장, 심지어 오타의 위치까지 판박이었다. 생성형 A(인공지능)I가 뱉어낸 결괏값을 여과 없이 옮겨 적은 탓이다. 앞 조의 발표가 끝나자 뒷 조 아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알고리즘이 제조한 ‘쌍둥이 정답’ 앞에서 개별 사유는 질식했고, 교실은 무력감에 점령당했다.
학교 현장에는 사유(思惟)의 통제권을 헌납하는 ‘인지적 파산’의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IT 비평가 ‘니콜라스 카’가 경고했듯, 디지털 기기는 지성의 확장이 아닌 ‘지적 외주화’를 통해 사유 근육을 퇴화시킨다. 편리함이라는 독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클릭 한 번에 정지되는 데이터 파편으로 전락시켰다.
필자는 수업을 멈추고 스마트 패드를 가방에 넣게 했다. 빈 종이에 투박한 자기 문장을 채우는 ‘아날로그적 응전’을 선택한 것이다. 알고리즘의 앵무새를 더는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8년 AI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앞두고 수조 원을 투입한다지만, 시급한 것은 기계에 저당 잡힌 생각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일이다. 특히 서울 중심의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표준이 된다면, 부산의 아이들은 고유한 서사를 잃고 획일화된 사고 체계에 강제 정렬될 위험이 크다. 이는 지역 정체성과 인적 자산이 증발하는 문명사적 위기다.
이러한 사유의 힘은 오직 인간적 관계라는 정서적 토대 위에서만 길러진다. 물리학적으로 외부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은 고립계(Isolated System)의 엔트로피는 필연적으로 파국적 무질서를 향한다. 공감과 지지라는 인간적 에너지가 사라진 디지털 교실에서 아이들의 내면이 붕괴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계가 교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술 만능주의적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정작 필요한 투자는 기기 보급이 아니라,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내면의 무질서를 정돈할 ‘공감의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교육 패러다임 역시 숫자만 나타내는 ‘스칼라(Scalar)’적 성취에서, 방향이 살아있는 ‘벡터(Vector)’적 지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단순히 속력(스칼라)만 높이는 줄서기는 AI 시대에 가장 비효율적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항로를 개척해 온 부산의 생존력은 알고리즘에 갇힐 수 없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역동성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독보적인 벡터다. 부산의 인재들이 서울을 향한 ‘지적 해바라기’를 넘어 세계로 자기 궤적을 그리게 하는 것이 지역 소멸 시대의 본질적 전략이다.
AI 시대, 교육의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들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지 않도록, 결정론적 알고리즘의 틈새에서 창의적인 불확정성의 질문을 던지는 주체로 키우는 것이다. 생각의 주인으로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 수익률(ROI)이다. 비에 젖지 않는 거대한 바다처럼, 기계의 예속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궤적을 그려내는 ‘사유의 주인’들, 이들이 개척할 당당한 항로야말로 부산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최후의 문법이다.
2026-07-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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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항의 국가적 평가와 글로벌 리더십 정립 시급하다
부산항 150년 역사는 언제나 국가 경제의 전환점과 함께 움직였다. 개항은 근대 경제의 시작이었고, 전쟁은 생존의 통로였으며, 산업화는 국가성장의 엔진이었고,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됐다.
이제 부산항은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단순한 물류 거점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해운·물류·금융·기술·비즈니스가 결합된 세계적 종합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인가. 150년 전 열린 바다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문이 향할 다음 방향은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부산 해양 이니셔티브의 변곡점인 부산항 개항 150주년은 단순한 기념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음 100년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계 해운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친환경 연료와 디지털 항만, 새로운 항로까지 변화의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부산항 역시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세계 해양항만질서 재편의 시대, 새로운 실천 방안 제시가 시급하다. 북극항로와의 연계, 수출입 물류기지와 글로벌 해양수산허브를 지향하는 부산항만의 체질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은 역사적으로 흐름을 통과시킨 도시였다. 이제는 그 흐름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부산항이 대한민국 남단에 있는 하나의 항만이 아닌 전 세계의 공급망과 세계 해양산업을 이끌 수 있는 중심 역할을 하는 항만, 국가 항만을 넘어 세계 해상공급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동북아 물류의 교차점에 있는 지리적 이점과 축적된 항만 운영 경험은 부산항의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다. 부산항은 단순한 물류항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고도성장을 견인한 역사적 항만이다. 흔히 ‘한강의 기적’을 말하지만 그 뒤엔 ‘부산항의 기적’이 있었다. 1960~1980년대 한국 수출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해 이뤄졌고 한때 전체 수출의 약 80%가 이곳에서 처리됐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부산항이 사실상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국가적 평가와 정책적 위상은 충분히 정립되지 못했다.
근대의 문턱에서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던 조선이 세계 10대 교역국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한 것은 기적이다. 근대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조선에서 출발해 근대 국가의 총아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하는 과정, 그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군 기적이다. 치열했고 드라마틱했던 그 역사를 탐구하면서 이 기적을 이어나갈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개항 150주년을 맞는 우리의 도리이자 역사적 사명이다.
싱가포르항이 지리적 이점만으로 지금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이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싱가포르항은 단순한 물류 시설이 아니라 해양산업의 중심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항만 주변에는 금융선박관리 해사법률 해양보험 등 다양한 해양서비스산업이 집적하고, 글로벌 선사와 해양 관련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항만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부산항도 싱가포르 같이 항만·산업·금융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며, 항만 개발과 산업 육성, 인재 양성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장기 전략이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산업 생태계와의 정책통합성이 중요하다.
부산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 싱가포르항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항만 경쟁은 더 이상 단순한 물류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부산항의 글로벌 리더십 정립이 시급하다. 부산항의 지난 150년이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 고도성장 견인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부산항은 신해양질서를 선도하는 세계전략항만으로 발전해야 한다.
2026-07-05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