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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식탁 위의 거대한 환상에서 비건으로
우리는 매일 마트에서 고기를 고르며 풍요로운 식탁을 준비한다. 가격, 원산지, 등급을 살피지만 고기 한 팩이 우리 손에 쥐어지기까지 지구가 어떤 비용을 치렀는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기후솔루션(SFOC)이 발간한 보고서 ‘고기, 농장에서 매장까지’는 가려져 있던 우리 식탁의 탄소 성적표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보고서의 수치는 무겁다. 국내산 쇠고기 1kg을 생산·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무려 58.15kg CO2-eq로, 닭고기보다 10.8배나 높다. 이를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김포와 제주를 비행기로 21회 편도 탑승할 때 나오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국가 전체로 넓히면 연간 육류 소비 배출량은 약 5694만t CO2-eq로, 국내 전체 석탄화력발전소 연간 배출량의 약 34%에 달하며 국내 최대 발전시설인 태안발전본부 배출량의 2.6배를 훌쩍 넘는다. 고기 식단이 거대한 화력발전소 수십 기를 가동하는 것과 다름없는 파괴력을 지닌 셈이다.
이에 축산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발전산업은 직접 배출량만 계산하면서 축산업은 사료 생산부터 유통까지 다 합산해 비교했으니 불공정하며, 가축의 탄소는 식물이 흡수한 탄소가 돌아가는 ‘순환 탄소’이므로 화석 연료와 다르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동물성 식단을 내려놓고 비건(Vegan)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반박의 모순 속에 있다.
축산 온실가스의 85~99%는 사료 재배와 공급 과정에서 발생한다. 축산업에 농장 안의 직접 배출 기준만 들이대면 전체 환경 부하의 90% 이상을 통계에서 지워버리는 왜곡이 일어난다. 진짜 환경 비용을 보려면 ‘요람에서 유통까지’ 전 과정을 훑는 전과정평가(LCA)가 지극히 정당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온전한 식물성 식단인 비건이 왜 유일한 대안인지를 과학적으로 깨닫게 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탄소 순환’이라는 달콤한 프레임에 있다. 가축의 배출이 자연적 순환 고리 안에 있다는 주장은 과거 농경 시대에나 어울리는 낭만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매년 도살되는 가축의 수는 무려 950억 마리에 육박해 생태적 흡수 한계치를 이미 초과했다. 이 대량 도살 관행은 결코 자연적인 순환이 아니며, 인간의 육식 욕구를 채우기 위해 복원력을 마비시킨 ‘공장식 잔혹 가공’에 불과하다. 이 인위적인 관행을 끊어내고 비건으로 전환하는 것은 왜곡된 생태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현대 축산은 외부에서 엄청난 화석 연료를 주입해야만 돌아가는 반생명적 구조다. 950억 마리를 먹이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불태워 사료 재배지로 만들고, 화석연료로 제조된 질소 비료를 투입해 치명적인 아산화질소를 발생시킨다. 가축이 뿜어내는 메탄 역시 단기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 높은 독한 가스로, 기후 임계점을 향한 폭주를 가속한다. 지구의 브레이크를 잡기 위해서는 메탄의 핵심 공급원인 축산물 소비를 완전히 중단하는 비건 지향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인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15kg으로 일본의 2.5배, 중국의 3.8배에 달한다. 이 수요를 위해 소비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며, 국경 너머에서 발생하는 연간 1252만t의 온실가스 역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실질적인 환경 부하다. 이제 데이터의 사각지대 뒤에 숨어 “순환되니 괜찮다”고 방어할 때는 지났다. 화력발전소 수십 기와 맞먹는 온실가스 폭주를 막아서는 가장 확실한 설루션은 바로 고기 대신 채소와 식물성 단백질을 장바구니에 담는 비건의 실천이다. 우리의 식탁이 100% 식물성인 비건으로 변할 때, 비로소 지구의 거대한 순환 고리도 제자리를 찾는다.
2026-07-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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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다의 불청객' 노무라입깃해파리, 미래 식량자원으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오랫동안 우리 바다의 불청객이었다. 어업 현장에서는 그물과 어구를 망가뜨리고, 조업을 방해하며, 해수욕장과 연안 생태에도 불편과 피해를 주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특히 부산을 비롯한 남해와 동해 연안에서 대형 해파리의 출현은 해마다 반복되는 해양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파리를 보면 먼저 제거와 폐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과연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끝까지 ‘골칫거리’로만 남아 있어야 하는가.
이미 2012년 국립수산과학원은 노무라입깃해파리를 일반 가정과 영업장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염장 해파리 가공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수산과학원은 우리 연근해에서 잡은 노무라입깃해파리를 신선한 원료 상태에서 가공해 해파리 특유의 담백함과 쫄깃한 식감을 살린 염장 해파리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음식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자와 함께 냉채, 장조림, 해물볶음, 파스타, 양갱 등 5종의 요리를 개발해 시식회도 열었다.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유해 생물이나 폐기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식재료로 전환 가능한 자원이라는 점을 보여 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해파리라고 하면 냉채 정도만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조림, 볶음, 전채요리, 퓨전요리, 디저트성 응용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단지 몇 가지 요리를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해양문제를 지역 식문화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상상력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염장 해파리는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에서 주로 잡힌 해파리를 가공 처리한 것이 많았고, 수입·유통 과정에서 품질이 저하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 해 수입된 염장 해파리만 약 6000t, 금액으로는 1385만 달러 규모에 달했다. 다시 말해 우리 바다에서 대량 발생하는 해파리는 문제 생물로 버려지고 있는데, 정작 시장에서는 수입산 염장 해파리가 상당량 소비되고 있었던 셈이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식재료로서의 잠재력도 작지 않다. 염장 가공을 거치면 독특한 식감이 살아나고, 저칼로리 식재료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콜라겐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건강식과 기능성 식품, 나아가 화장품·의약품 소재로도 확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로 당시 국립수산과학원도 식재료뿐 아니라 건강기능성 제품, 화장품, 의약품 소재 개발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은 해양도시다. 해양도시의 경쟁력은 단지 항만과 조선, 수산물 유통에만 있지 않다. 바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자원으로 바꾸느냐에 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미래 식량자원으로 보는 관점은 바로 그런 전환의 시작이다. 바다에서 발생한 문제를 다시 바다에 묻어 버릴 것이 아니라, 부산의 식문화와 외식산업, 식품 가공산업, 해양바이오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
부산시는 노무라입깃해파리를 활용한 ‘부산형 미래 식량자원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대학, 외식업계, 조리 전문가, 식품기업, 해양바이오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리고, 가공 표준화와 안전성 검증, 저장·유통 체계·메뉴 개발, 상품화 전략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연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산업으로, 어업인 소득과도 연결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해파리가 잡히면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수매와 가공, 상품화 체계가 갖춰지면 어업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 수 있다.
해파리 냉채·보양식·중화요리·파스타·양갱 같은 메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관광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새로운 해양 식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부산국제음식박람회, 수산식품 박람회, 해양축제와 연계한다면 시민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식탁과 시장, 관광 현장과 축제 속으로 들어온다면 해파리는 미래의 자원이 될 것이다.
2026-07-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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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산 제조업의 다음 도약, AI 전환에서 길을 찾다
부산 제조업의 경쟁력은 이제 숙련기술에 더해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AI는 이미 품질관리, 설비점검, 납기관리처럼 제조현장의 구체적인 업무로 들어오고 있다. 이른바 AX(AI 전환)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제조 중소기업도 이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부산은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 기계금속 등 전통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도시다. 오랜 현장 경험과 숙련기술이 축적되어 있고, 스마트공장 보급을 통해 디지털 전환의 토대도 갖춰가고 있다. 이 기반 위에 AI가 결합된다면 품질 고도화, 납기 대응력 강화, 원가 절감, 수출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스마트공장이 설비와 공정을 디지털로 연결하는 기반을 다졌다면, AX는 그 위에 쌓인 데이터를 기업의 판단력과 생산성으로 연결하는 다음 단계다.
중소기업의 AI 전환은 처음부터 대규모 투자나 전면적인 시스템 구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불량 패턴 분석을 통한 공정 개선, 납기·재고 데이터를 활용한 발주 관리 효율화, 설비 상태 모니터링을 통한 유지보수 부담 경감처럼 현장에서 바로 체감할 수 있는 과제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핵심은 최신 기술의 도입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달라졌음을 느끼는 경험이다.
다만 업종마다 접근은 달라야 한다. 조선기자재 기업이 마주하는 납기와 품질관리의 문제, 자동차부품 기업의 공정 안정화와 원가 절감의 과제, 기계금속 기업의 숙련기술 표준화와 설비관리의 필요는 저마다 다른 해법을 요구한다. AI 전환도 일률적인 방식보다 기업의 여건과 업종 특성을 반영한 단계적 접근이 현실에 맞다.
부산 제조업의 AI 전환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제기되는 구체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숙련인력 감소, 생산공정의 복잡화, 납기 단축 요구, 품질관리 부담은 많은 제조 중소기업이 공통적으로 체감하는 문제다. 숙련자의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여기에 데이터 기반 판단이 더해질 때 현장의 대응력은 더 높아진다.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현장의 판단을 보완하고, 반복 업무를 줄이며, 공정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AX가 지향해야 할 현실적인 방향이다.
이제 필요한 일은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과제를 꾸준히 발굴하고,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를 하나씩 쌓아가는 일이다. 부산 제조기업이 보유한 설비와 공정 데이터가 실제 경영 성과로 이어지려면 업종별 특성과 기업 규모에 맞는 적용 경험이 필요하다. 작은 품질 개선, 납기 단축, 재고 효율화 같은 변화가 지역 안에서 공유될수록 더 많은 기업이 AI 전환을 현실적인 선택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과가 확인된 사례는 업종이 비슷한 기업에 실질적인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이 부담 없이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AI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작은 공정 하나, 반복 업무 하나, 관리 지표 하나부터 개선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결국 AI 전환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사람이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기업이 더 안정적으로 생산하도록 돕는 현장 혁신이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부산중기청은 최근 부산지역 스마트제조 AX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협의체에는 부산테크노파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 유관기관과 스마트제조 공급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AX 협의체는 기업의 현장 과제와 공급기업의 기술, 지원기관의 정책수단이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협력 기반이다. 기업이 기술 선택이나 지원사업 활용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고, 자사 여건에 맞는 적용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결 창구 역할을 해나가고자 한다.
부산 제조업의 강점은 현장에 있다. 이제 그 현장에 데이터와 AI를 더해 더 정밀하게 판단하고, 더 안정적으로 생산하며,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중기청도 기업과 지원기관, 공급기업을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며, 부산 제조 중소기업이 AX를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가도록 뒷받침하겠다.
2026-07-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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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해상풍력, 선택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기후 위기가 피부로 와 닿는 계절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 변동 속에서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 기후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이 부른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는 지금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무역 규범으로 자리 잡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이 있다. 오는 2050년까지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이 흐름은 단순한 환경보호 운동의 차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공급망 전체에 이를 요구하면서, 이제는 국제무역의 무서운 진입장벽이자 새로운 경제 질서로 군림하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으로서는 이 흐름을 맞추지 못할 경우 국제적인 상품 유통과 경쟁력 확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러한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은 단연 ‘해상풍력’이다. 해상풍력은 다른 재생에너지에 비해 발전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강력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으로 가동 중인 단지가 손에 꼽을 정도로 국내 해상풍력의 발걸음은 매우 더디다. 반면 세계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누적 설비용량은 이미 92.5GW를 넘어섰으며, 현재 인허가 단계나 개발 계획 중인 물량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추세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의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35년까지 세계 해상풍력 설비용량은 현재의 4.5배 수준인 420GW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첨단 제조업 전력화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주요국들이 해상풍력 선점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각광을 받으며 급속히 늘어나는 해상풍력이 유독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암초는 ‘주민 수용성’ 문제와 이에 따른 격렬한 반대다. 이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나 님비(NIMBY) 현상으로 치부하며 지역민의 애향심을 폄훼해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평온하던 삶의 터전 앞바다에 낯선 거대 구조물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우려와 걱정을 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다. 소음이나 전자파, 경관 훼손에 대한 불안감은 사업 초기 단계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행정적 절차가 부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과학적 사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해안가에서 1km 이상만 떨어져도 발전기 소음은 바다의 파도 소리에 묻혀 체감하기 어려우며, 풍력발전기와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역시 일상에서 흔히 쓰는 헤어드라이어 발생량의 1.2% 수준에 불과해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제주 탐라해상풍력단지의 사례는 훌륭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야간 조명이 빚어내는 이색적인 풍광이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되어 방문객을 이끌고, 바닷속 해양 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해 어족 자원을 오히려 늘리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행히 최근 시행령이 마련된 ‘해상풍력보급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갈등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민간 주도의 난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계획적인 입지 발굴과 인허가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이 명시한 민관협의회 구성과 ‘이익공유 의무화’는 주민 수용성을 높일 핵심 열쇠다. 여기에 REC 가중치 부여를 통한 수익성 보장, 고정가격 입찰시장 운영, 주민 참여형 사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 등 정책적 뒷받침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사업 주체와 관할 지자체의 전향적인 발상 전환과 실행력이 선행돼야 할 때다. 주민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인허가 등 행정절차 초기 단계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실질적인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 막연한 보상안을 제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 참여형 이익공유 모델을 명문화하는 상생 조례를 선제적으로 제정하고 구속력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발전 수익이 지역 사회의 복지와 일자리 창출로 선순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온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탄소중립의 여정 속에서, 실질적인 주민 상생에 기반을 둔 해상풍력은 이제 선택의 문항이 아니라 대한민국 번영과 생존을 향해 돛을 올려야 할 필수과제다.
2026-07-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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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교육의 '벡터'를 탈환하라
최근 과학 탐구 수업 시간, 기괴한 풍경을 목격했다. 주제 발표를 준비한 두 팀의 논리 구조와 문장, 심지어 오타의 위치까지 판박이었다. 생성형 A(인공지능)I가 뱉어낸 결괏값을 여과 없이 옮겨 적은 탓이다. 앞 조의 발표가 끝나자 뒷 조 아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알고리즘이 제조한 ‘쌍둥이 정답’ 앞에서 개별 사유는 질식했고, 교실은 무력감에 점령당했다.
학교 현장에는 사유(思惟)의 통제권을 헌납하는 ‘인지적 파산’의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IT 비평가 ‘니콜라스 카’가 경고했듯, 디지털 기기는 지성의 확장이 아닌 ‘지적 외주화’를 통해 사유 근육을 퇴화시킨다. 편리함이라는 독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클릭 한 번에 정지되는 데이터 파편으로 전락시켰다.
필자는 수업을 멈추고 스마트 패드를 가방에 넣게 했다. 빈 종이에 투박한 자기 문장을 채우는 ‘아날로그적 응전’을 선택한 것이다. 알고리즘의 앵무새를 더는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8년 AI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앞두고 수조 원을 투입한다지만, 시급한 것은 기계에 저당 잡힌 생각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일이다. 특히 서울 중심의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표준이 된다면, 부산의 아이들은 고유한 서사를 잃고 획일화된 사고 체계에 강제 정렬될 위험이 크다. 이는 지역 정체성과 인적 자산이 증발하는 문명사적 위기다.
이러한 사유의 힘은 오직 인간적 관계라는 정서적 토대 위에서만 길러진다. 물리학적으로 외부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은 고립계(Isolated System)의 엔트로피는 필연적으로 파국적 무질서를 향한다. 공감과 지지라는 인간적 에너지가 사라진 디지털 교실에서 아이들의 내면이 붕괴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계가 교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술 만능주의적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정작 필요한 투자는 기기 보급이 아니라,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내면의 무질서를 정돈할 ‘공감의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교육 패러다임 역시 숫자만 나타내는 ‘스칼라(Scalar)’적 성취에서, 방향이 살아있는 ‘벡터(Vector)’적 지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단순히 속력(스칼라)만 높이는 줄서기는 AI 시대에 가장 비효율적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항로를 개척해 온 부산의 생존력은 알고리즘에 갇힐 수 없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역동성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독보적인 벡터다. 부산의 인재들이 서울을 향한 ‘지적 해바라기’를 넘어 세계로 자기 궤적을 그리게 하는 것이 지역 소멸 시대의 본질적 전략이다.
AI 시대, 교육의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들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지 않도록, 결정론적 알고리즘의 틈새에서 창의적인 불확정성의 질문을 던지는 주체로 키우는 것이다. 생각의 주인으로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 수익률(ROI)이다. 비에 젖지 않는 거대한 바다처럼, 기계의 예속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궤적을 그려내는 ‘사유의 주인’들, 이들이 개척할 당당한 항로야말로 부산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최후의 문법이다.
2026-07-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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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항의 국가적 평가와 글로벌 리더십 정립 시급하다
부산항 150년 역사는 언제나 국가 경제의 전환점과 함께 움직였다. 개항은 근대 경제의 시작이었고, 전쟁은 생존의 통로였으며, 산업화는 국가성장의 엔진이었고,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됐다.
이제 부산항은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단순한 물류 거점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해운·물류·금융·기술·비즈니스가 결합된 세계적 종합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인가. 150년 전 열린 바다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문이 향할 다음 방향은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부산 해양 이니셔티브의 변곡점인 부산항 개항 150주년은 단순한 기념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음 100년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계 해운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친환경 연료와 디지털 항만, 새로운 항로까지 변화의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부산항 역시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세계 해양항만질서 재편의 시대, 새로운 실천 방안 제시가 시급하다. 북극항로와의 연계, 수출입 물류기지와 글로벌 해양수산허브를 지향하는 부산항만의 체질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은 역사적으로 흐름을 통과시킨 도시였다. 이제는 그 흐름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부산항이 대한민국 남단에 있는 하나의 항만이 아닌 전 세계의 공급망과 세계 해양산업을 이끌 수 있는 중심 역할을 하는 항만, 국가 항만을 넘어 세계 해상공급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동북아 물류의 교차점에 있는 지리적 이점과 축적된 항만 운영 경험은 부산항의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다. 부산항은 단순한 물류항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고도성장을 견인한 역사적 항만이다. 흔히 ‘한강의 기적’을 말하지만 그 뒤엔 ‘부산항의 기적’이 있었다. 1960~1980년대 한국 수출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해 이뤄졌고 한때 전체 수출의 약 80%가 이곳에서 처리됐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부산항이 사실상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국가적 평가와 정책적 위상은 충분히 정립되지 못했다.
근대의 문턱에서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던 조선이 세계 10대 교역국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한 것은 기적이다. 근대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조선에서 출발해 근대 국가의 총아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하는 과정, 그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군 기적이다. 치열했고 드라마틱했던 그 역사를 탐구하면서 이 기적을 이어나갈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개항 150주년을 맞는 우리의 도리이자 역사적 사명이다.
싱가포르항이 지리적 이점만으로 지금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이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싱가포르항은 단순한 물류 시설이 아니라 해양산업의 중심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항만 주변에는 금융선박관리 해사법률 해양보험 등 다양한 해양서비스산업이 집적하고, 글로벌 선사와 해양 관련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항만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부산항도 싱가포르 같이 항만·산업·금융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며, 항만 개발과 산업 육성, 인재 양성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장기 전략이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산업 생태계와의 정책통합성이 중요하다.
부산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 싱가포르항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항만 경쟁은 더 이상 단순한 물류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부산항의 글로벌 리더십 정립이 시급하다. 부산항의 지난 150년이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 고도성장 견인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부산항은 신해양질서를 선도하는 세계전략항만으로 발전해야 한다.
2026-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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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피지컬 인터넷 시대, 부산 해양물류의 대전환 전략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산업 전반을 재편하면서 물류의 패러다임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물류가 단순히 화물을 운송하고 보관하는 ‘지원 산업’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물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사물인터넷(IoT)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글로벌 물류계를 이끄는 핵심 개념이 바로 피지컬 인터넷(Physical Internet)이다.
피지컬 인터넷은 디지털 인터넷의 작동 원리를 현실 물류 체계에 적용한 혁신 모델이다. 인터넷이 데이터를 패킷 단위로 표준화해 최적의 경로로 전송하듯, 화물 또한 표준 모듈 단위로 분해·공유·재조합해 전 세계 운송망을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기업이나 운송수단이 각각 따로 운영되던 기존 ‘폐쇄형 물류’에서 벗어나, 창고·트럭·철도·선박·항공 등 모든 물류 자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동 활용하는 ‘개방형 공유 물류’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구현되면 공차 운행과 중복 투자, 불필요한 대기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물류비 절감은 물론, 배송 시간 단축과 탄소 배출 감소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경제성과 친환경성,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해결하는 차세대 물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연합(EU)은 ‘PI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 물류 네트워크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며, 미국은 스마트 풀필먼트센터와 자율주행 트럭을 연계한 통합 물류 플랫폼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또한 자동화 항만과 무인 물류단지를 기반으로 초대형 디지털 공급망을 구축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물류 경쟁력은 더 이상 항만 규모나 물동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스마트하게 운영되는가가 국가와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산이 갖는 전략적 의미는 매우 크다. 부산항은 대한민국 수출입 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이자, 동북아 환적 중심항만이다. 지리적 조건과 항만 인프라 측면에서는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은 ‘하드웨어 확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혁신’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피지컬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물류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항만 자동화 터미널 확대, AI 기반 선석 배정 시스템, 무인 야드트랙터, 로봇 피킹 스마트창고, 디지털 트윈 항만 운영, 실시간 통합 관제 플랫폼 등 전 과정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항만·철도·공항·도심 물류센터가 하나의 데이터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비로소 ‘끊김 없는 물류’가 실현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 양성이다. 앞으로 물류 현장은 단순 작업 인력이 아닌 기술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물류 자동화 엔지니어, 로봇 운영 매니저, 스마트창고 관리자, AI 물류 데이터 분석가 등 이른바 ‘피지컬 AI 인력’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지역 대학과 직업교육기관이 산업 수요에 맞춘 실습 중심 교육과 자격 체계를 구축하고, 기업과 연계한 현장형 인턴십과 산학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 부산은 해양수도권 조성과 북극항로 개척 본격화, 항만과 대학·연구기관·기업이 밀집한 도시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스마트 해양물류 인재 특화 도시’ ‘글로벌 물류 테스트베드 도시’로 발전시킨다면, 단순한 항만 도시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물류 혁신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육성,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제 물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후방 산업이 아니다. 도시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성장 동력이다. 피지컬 인터넷은 부산이 물동량 경쟁을 넘어 기술 경쟁, 시스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해답이다.
항만을 더 많이 짓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더 똑똑하게 연결하는 도시가 살아남는다. 데이터처럼 흐르는 물류, 그 중심에 부산이 설 때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될 것이다.
2026-07-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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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3 금융중심지 추진,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정부는 최근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와 금융시장 선진화를 통한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주를 제3 금융중심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이 과연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중심지법)의 본래 취지인 국제금융 기능 강화와 글로벌 금융허브 육성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금융중심지법에 따라 서울과 부산이 각각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이미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선진 금융중심지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파생금융 특화라는 방향을 설정한 부산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금융 클러스터로 성장했다고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글로벌 금융기관의 집적이나 자본시장 경쟁력 등 주요 지표에서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금융중심지를 추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고찰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본질은 정보와 인재, 자본이 집중될수록 효율성이 강화되는 ‘집적’에 있으며, 뉴욕이나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금융도시들은 모두 강력한 집적 효과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정책은 집적보다는 분산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미 서울과 부산으로 나뉘어진 구조 속에서도 충분한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주까지 추가하는 것은 자원의 분산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과 전문인력, 정책적 지원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질 때 어느 한 곳도 경쟁력 있는 금융허브로 성장하기 어려워지며, 이는 결국 ‘모두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추진되는 전주의 제3 금융중심지 논의는 금융산업 발전 논리보다는 사실상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융공기업 이전과 공공기관 재배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의 취지에 가깝다. 즉, 명칭은 금융중심지이지만 실제 성격은 ‘지역개발 정책’인 셈이다.
금융중심지법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함이고, 균형발전 특별법은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함이기에 목적이 다른 두 정책을 혼용하면 설계의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 발전을 목표로 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집중 육성해야 하고, 균형발전이 목표라면 산업 분산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맞다.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려 할 때 정책은 애매해지고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다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논의는 목적과 수단이 뒤섞여 있어 정책 자체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산은 금융중심지 지정 이후 10년이 넘도록 글로벌 금융기관 유치와 생태계 구축이라는 거의 불가능한 난제 앞에서 무기력했고, 정책적 일관성과 집중성이 부족해 관심이 분산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부산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경쟁력을 약화하는 정책적 자기부정과 다름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정이 아니라 정책 목표의 명확한 재정립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금융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국제금융 경쟁력 강화인지,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인지를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전자라면 서울과 부산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며, 후자라면 금융중심지법이 아닌 균형발전 정책의 틀 안에서 접근해야 개념적 혼선을 막을 수 있다. 명확한 기준 없는 추진은 불필요한 지역 갈등을 유발하고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한다. 정부는 더 이상 두 목표를 혼합한 모호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되며, 법의 목적에 충실할 것인지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그 명확한 선택 위에서 법과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할 때 비로소 지역 갈등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국민경제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2026-06-2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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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트남 '슈퍼시티'의 경고… 부울경 통합, 지체 안 돼
최근 필자는 2025년 한 해 동안 베트남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 등 주요 경제권을 일곱 차례 방문했다. 비즈니스 현장과 NGO 활동, 그리고 KCS 포럼 콘퍼런스를 통해 마주한 베트남의 기세는 단순한 발전을 넘어 ‘국가적 구조 개편’에 가까웠다. 대한민국이 1%대 저성장의 늪에서 신음할 때, 베트남은 전년도 8% 성장에 이어 올해 두 자릿수(10%) 성장이라는 경이로운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그 폭발적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만난 정부 고위 관료와 기업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비결은 바로 ‘행정구역 대통합’이라는 결단이었다. 베트남은 2025년 기존 63개 성·시를 34개로 과감히 통폐합했다. 특히 경제 수도 호찌민과 인접 산업 거점인 빈즈엉성, 물류 허브인 바리아붕따우시를 하나로 묶어 구축한 ‘남부 슈퍼시티’는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를 던진다.
우리가 추진하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 행정 통합은 베트남의 이 모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금융·서비스의 중심 부산, 세계적 제조 역량의 경남, 산업의 심장 울산의 결합은 호찌민권이 통합 시너지를 내는 방식과 판박이다. 과거 베트남 역시 성(省) 간 행정 장벽으로 인한 물류 지체와 중복 투자가 고질적 문제였다. 하지만 통합 이후 칸막이가 사라진 자리에 효율성과 속도가 들어찼다. 우리가 행정 경계에 막혀 예산을 낭비하고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는 사이, 베트남은 거대 광역 경제권을 앞세워 글로벌 자본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다.
부울경 통합은 단순히 영남권만의 생존 전략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고질병인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국토 균형 발전을 이룰 실천적 해법이다. 부울경 통합의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수도권 과밀화 해소의 유일한 대안이다. 서울에 필적하는 제2의 경제권이 남부에 형성된다면, 비정상적인 집값 폭등과 출퇴근 지옥에 시달리는 수도권의 과밀 압력은 자연스럽게 분산될 것이다.
둘째, 국가적 재앙인 저출산 문제의 돌파구다. 좁은 수도권에서 극한의 생존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부울경 메가시티는 새로운 ‘성장의 사다리’이자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부울경만의 지리적 특성을 살린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시급하다. 언제까지 대기업 유치에만 목을 멜 것인가. 부산을 ‘홍가포르(홍콩+싱가포르)’를 능가하는 글로벌 허브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나온 지 오래다.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를 동남권 발전의 중추로 적극 활용하여, 수도권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해양·물류·금융 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베트남은 우리를 벤치마킹하던 나라”라는 안일한 인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평균 연령 32세의 젊은 1억 인구가 행정 구조까지 날렵하게 개편하며 우리를 추월하고 있다. 멈춰버린 대한민국 경제 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부울경 시·도민은 물론 정치권의 대결단이 절실하다.
베트남이 증명했듯, 행정의 벽을 허물어야 자원이 집중되고 시너지가 폭발한다. 성장의 사다리를 다시 세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부울경 통합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숙명적 과제다.
2026-06-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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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설렘과 긴장 사이, 부산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
부산의 푸른 바다는 많은 이들에게 설렘을 안겨준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환자들에게 이 도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기대와 긴장이 공존하는 낯선 공간이다. 병원의 긴 복도를 걸으며 마주하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환경, 진료를 마친 뒤 병원 밖으로 나섰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은 이방인으로서의 현실을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환자들은 부산의 의료 수준과 의료진의 전문성에 대해 높은 만족과 신뢰를 표현한다. 실제로 부산은 첨단 의료기술과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의료관광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은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언어 지원이나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치료 그 자체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치료 이후의 체류와 일상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치료’를 넘어 ‘머무름’이 즐거운 도시로 의료관광의 진정한 완성은 병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환자가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 즉 ‘머무름’의 경험 속에서 비로소 의료관광의 가치는 완성된다. 부산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커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가족이 이 도시에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과 편안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병원과 관광지를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선 접근이 필요하다.
환자와 가족이 언어에 대한 부담 없이 식당을 이용하고, 해변을 산책하며, 도시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 의료통역사의 세심한 안내와 신뢰할 수 있는 다국어 정보 제공, 그리고 외국인 환자의 동선을 고려한 통합적인 지원 체계는 의료서비스의 연장선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다.
부산이 이러한 기반을 갖추게 된다면, 이 도시는 단순히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하는 목적지를 넘어, 몸과 마음이 함께 회복되는 ‘체류형 의료관광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한 의료기관이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의료관광은 의료서비스를 넘어 관광, 교통, 통역, 숙박 등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복합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민간과 공공이 긴밀히 협력하고, 현장의 경험과 정책적 지원이 조화를 이루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질적인 협력 구조다. 외국인 환자를 직접 응대하는 의료진과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통역사 등 실무자들이 중심이 된 협의체를 통해 작은 불편함과 개선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해결해 나가는 ‘살아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협력은 형식적인 제도를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격려 역시 중요하다. 안정적인 통역 인력 지원, 행정 절차의 간소화, 그리고 국제 환자 진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면, 의료기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글로벌 환자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부산 의료관광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부산이라는 커다란 병동, 그리고 치유와 머무름의 공간 의료관광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언어의 장벽을 낮추고, 환자의 동선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낯선 도시에서의 시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노력은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정성이 쌓일 때, 부산은 치료를 위해 찾는 도시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의료관광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서는 외국인 환자들을 맞이하는 수많은 실무자들의 헌신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노력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함께 모일 때, 부산은 환자들에게 단순히 치료를 받은 도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따뜻한 보살핌으로 머무는 ‘치유의 도시’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6-06-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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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언제부터 유아교사는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나
“아침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때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유치원에 갔다. 아침밥을 먹고, 이를 닦고,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하루는 단순한 등원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유치원은 친구를 만나고, 함께 웃고, 기다리고, 다투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부모의 품을 잠시 떠난 아이가 처음으로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하는 공간, 그곳에는 늘 아이들을 기다리는 교사가 있었다.
교사는 아이가 울면 등을 토닥여 주고, 혼자 남은 아이의 손을 먼저 잡아 주며, 서툰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고, 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웃고 놀며 하루를 보냈다.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 유치원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묻게 된다. 언제부터 유아교사는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학부모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얼마 전 희극배우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이 큰 화제를 모았다. 영상 속 ‘이민지 선생님’은 아이의 식사량과 낮잠 시간, 친구와의 다툼, 작은 얼룩 하나까지 세심하게 설명하며 연신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를 반복한다. 과장된 코미디였지만 많은 유아교사들은 “웃다가 울었다”, “현실이라 더 불편했다”고 말했다.
특히 영상 속 교사는 아이보다 보호자의 감정을 먼저 살핀다. 교육보다 민원에 긴장하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 알림과 부모의 요구에 반응한다. 웃음을 위한 풍자였지만 많은 교사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보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 영상에 웃으면서도 씁쓸함을 느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몇몇 예민한 학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유치원을 교육의 공간보다 ‘실시간 돌봄 서비스’처럼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기사와 댓글에는 “트라우마처럼 심장이 뛴다”, “교사도 보호받고 싶다”는 현직·전직 교사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예비유아교사를 길러내는 교수로서, 나는 그 반응들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놀이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며,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교사의 역할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현장은 교사에게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교육적 전문성보다 설명과 기록, 민원 대응과 감정 관리 능력이 더 중요한 역량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불안에도 이유는 있다. 맞벌이와 돌봄 공백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하루를 더 세밀하게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유치원이 아이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공간이 아니라, 부모 만족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하는 서비스 공간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변화 속에서 가장 조용히 무너지는 것은 유아교사의 전문성이다. 교사는 아이를 관찰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부모의 불안을 먼저 관리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은 관계의 과정이어야 하는데, 점점 설명과 증명의 노동으로 바뀌고 있다.
교권의 흔들림은 더 이상 일부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유아교사에서 초중등 교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사들이 교육보다 설명과 방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는 없다.”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피로와 자괴감이 스며 있다. 교권의 추락은 단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자체의 흔들림이다. 교권은 권위가 아니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사회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촘촘한 확인 시스템이 아니다. 교사를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드는 문화가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을 신뢰하려는 사회적 회복이다. 유아교사를 ‘부모 만족 서비스 제공자’로 바라보는 순간, 교육은 돌봄의 이름을 한 감정노동으로 변질된다.
아이는 교사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아이들에게도 신뢰를 가르칠 수 없다.
2026-06-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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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수도 부산, '노인과 바다'를 넘어
올해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이제 부산이 진짜 해양수도가 되는 것”처럼 말한다. 항만 물동량은 세계 상위권이고, 조선과 수산 산업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숫자로만 보면 부산은 이미 해양 강국의 전초기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말도 들린다. “부산은 노인만 남고, 젊은 층은 떠나고, 바다만 있는 도시 아니냐.” 누군가는 이를 빗대어 ‘노인과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조 섞인 농담이지만, 그 안에는 씁쓸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는 과연 바다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부산 사람들은 바다를 매일 본다. 광안대교를 건너고, 영도를 지나고, 북항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바다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보라 하면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배가 많이 다닌다”, “수출입이 활발하다”는 정도의 상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바다는 자원이고, 관할권이며, 안보이고, 생존의 통로다. 동해와 남해의 질서가 흔들리면 물류가 흔들리고, 물류가 흔들리면 일자리가 흔들린다. 우리가 먹는 수산물,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우리가 일하는 산업의 상당 부분이 바다와 직결되어 있다. 부산이 동북아 관문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누가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일본과의 해상 경계, 북항을 통과하는 국제 항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조건은 부산이 떠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양 전략을 논하는 목소리는 종종 수도권에서 먼저 나온다. 서울의 전문가가 해운대 바닷가에 발을 한 번 담그면 해양법 전문가가 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은 현장이면서도 주변부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는 책상 위 지도로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항로의 흐름, 파도의 방향, 물류의 시간표는 현장의 감각과 결합될 때 비로소 전략이 된다.
“그건 정부가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요?”, “우리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요”.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당장의 삶이 급한 시민에게 해양 관할권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거리감이 도시의 약점이 된다. 바다를 산업의 통계로만 이해하면, 시민의 미래와 연결되지 못한다.
해양수도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자신의 삶의 언어로 이해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미래와 바다’로 나아갈 것인지는 시민의 인식에 달려 있다. 젊은 세대가 떠나는 이유가 단지 일자리 부족만은 아니다. 도시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다를 전략과 산업의 문제로만 둘 것이 아니라, 청년의 기회와 연결된 공간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거창한 정책보다 작은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왜 부산은 바다와 함께 살아야 할까?”, “동북아 항로의 중심이라는 말이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설명하려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바다는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정책은 선거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조직도 바뀌고, 구호도 바뀐다. 그러나 시민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 번 이해하면 오래 남는다. 부산이 가진 지정학적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바다는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바다를 남의 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다.
해양수도 부산은 행정적 지위가 아니라 생활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광안의 저녁 바람 속에서, 북항의 컨테이너 불빛 속에서, 우리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 서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문은 하나다. “이 바다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민이 늘어날 때, 부산은 더 이상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미래와 함께 서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2026-06-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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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흐름 위에 선 동남권
지난 3월 경남 김해시 구산동 고인돌 유적지를 특별 허가를 받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HiBA(Hidden Busan Adventures) 회원 34명이 함께 현장을 찾았다. 당시 유적은 일반 공개를 앞두고 정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걸 어떻게 옮겼죠?” “이 시대에 이런 사회가 있었나요?” 외국인 참가자들은 3000년 전 거대한 상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단순히 유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부강하고 조직된 고대 사회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중요한 질문이 떠올랐다. 이 유산을 부산과 동남권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세계에 보여줄 것인가. 350t에 달하는 상석은 청동기 시대 높은 수준의 조직력과 권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특정 지역을 넘어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김해는 가야 건국 이후 약 500년 동안 동아시아 해양교류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약 7000년 전 선사인들의 삶과 바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암각화를 넘어 해양 문명의 기록으로 읽힌다. 김해의 고인돌이 조직과 권력을 보여준다면, 반구대 암각화는 삶과 교류, 그리고 확장을 보여준다.
부산은 지금도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도시다. 고인돌의 선사 문명, 반구대 암각화의 해양 문명, 가야의 국제성과 해양 교류, 그리고 오늘 부산이 가진 글로벌 도시의 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부산·울산·경남은 선사 문명에서 글로벌 도시로 이어지는 독특한 서사를 갖춘 셈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반구천의 암각화’는 2025년 7월 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되었다. 이는 동남권의 선사·해양 문명 자산이 세계적 보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오는 7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동남권의 역사·문화 자산을 세계와 연결할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유산보다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힘이다. 김해는 출발점이고, 울산은 확장의 증거이며, 부산은 현재의 플랫폼이다. 이 세 축이 연결될 때 동남권은 단순한 지역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제 부산은 단순히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도시를 넘어, 세계유산과 문명 서사를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 관광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상상하는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산과 동남권은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이미 세계의 흐름 위에 서 있는 공간이다. 김해의 돌과 울산의 바위는 수천 년 전부터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제 그 의미를 읽고, 연결하고, 확장하는 일만 남았다.
2026-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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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제 유가 상승, 대중교통 출퇴근으로 극복해야
최근 국제 유가가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 산유국 감산 정책 등이 겹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단순한 기름값 인상을 넘어 물가 상승, 물류비 증가, 기업 부담 확대, 서민경제 악화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원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국가 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부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 반복되는 교통 정체는 연료비 증가뿐 아니라 시간 손실과 환경오염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제는 국제 유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생활문화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 확대다.
대중교통은 승용차보다 훨씬 에너지 효율이 높다. 승용차 한 대가 한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는 것보다 도시철도 한 편성이 수백 명을 동시에 수송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 특히 부산 도시철도는 하루 평균 약 89만 명이 이용하는 부산시민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승용차 대신 도시철도와 버스를 이용한다면 교통 혼잡 완화는 물론 연료 소비 절감과 탄소배출 감소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교통정책이 아니다. 국가 에너지 위기 대응 전략이자 ESG 실천이다.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은 시민 누구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탄소중립 실천 방법이다. 필자 역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시철도와 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주유해도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가 에너지 절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의 K-패스와 부산시 동백패스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교통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도시는 승용차 이용 감소와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서민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매우 실효성 높은 정책이다.
부산은 전국 최초로 ESG시민운동 조례를 제정한 도시다. 가까운 거리 걷기, 텀블러 사용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와 같은 생활 속 실천이 ESG시민운동의 출발점이다. 출퇴근 시간 승용차 한 대를 줄이는 일은 국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실천이자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행동이다.
다만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 문제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이동권 보장과 복지 향상을 위한 국가 정책이다. 그럼에도 비용 부담은 지방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떠안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매년 막대한 무임수송 손실을 부담하고 있으며,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결정한 복지정책의 비용을 지방 공기업에만 부담시키는 현재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에 대한 국비 지원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시민 이동권 보장, 도시철도 지속 가능성 확보,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필수 정책이다.
국제 유가 상승 시대에는 에너지 절약형 교통체계 구축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시민은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통해 에너지 절약과 탄소중립에 동참하고, 정부는 무임수송 국비 지원을 통해 도시철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제 유가 상승 위기를 생활 속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통해 극복해 나갈 때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2026-06-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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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절반의 시간, 함께 뛰는 이유
오는 11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이 열린다. 월드컵은 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명승부는 경기 막판에 만들어졌다. 전반전을 끌려가던 팀이 후반전에 흐름을 바꾸며 역전하기도 하고, 종료 직전 터진 한 골이 한 나라의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기억도 여전히 선명할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힘겨운 시간을 지나던 시절, 거리마다 붉은 물결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이들과도 함께 응원하며 하나가 됐다. 함께 뛰고 함께 응원할 때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축구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후반전 45분이 진짜 축구다.” 체력이 떨어지고 변수가 많아지는 후반전에 결국 팀의 조직력과 방향, 서로에 대한 신뢰가 승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 연결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변화와 성장도 가능해진다.
다음 달이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취임한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 임기의 절반을 지나게 된다. 최근 들어 유난히 ‘후반전’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역시 임기 반환점을 맞아 조직 체계를 다시 정비했다. 이달부터 시행된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2본부 4부 12과 체제를 2본부 1실 4부 14과 체제로 확대하고, 정원도 102명에서 110명으로 늘렸다. 특히 ‘혁신성장부’ 신설과 기업지원 체계 개편을 통해 기업의 투자 결정부터 성장, 후속 투자까지 보다 유기적으로 지원하는 현장 중심 행정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실행력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 시간은 현장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기업들의 이야기를 듣고 산업 현장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지금 지역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불확실성’을 이야기한다. 글로벌 공급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산업 환경 역시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이제 기업들은 단순히 공장 부지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물류와 인재, 정주환경, 행정 대응 속도까지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함께 본다.
세계는 이미 새로운 경쟁에 들어섰다.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 모두 첨단산업과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 경쟁은 더 이상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다. 물류와 기술, 인재, 행정이 함께 움직이는 종합 경쟁의 시대다.
지금 동남권 역시 중요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과 진해신항 조성, 북극항로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동북아 물류 환경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을 얼마나 먼저 읽고 준비하느냐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개발률은 이미 98%를 넘어섰다. 이제는 얼마나 넓게 개발하느냐보다 어떤 산업을 유치하고 어떤 기업과 함께 성장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 시점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역시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산업과 물류, 기술과 사람이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 자체보다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환경과 실행력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살아왔다. 많은 청년들이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났고, 지역은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지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개발 논리가 아니라 산업과 일자리, 사람과 도시가 함께 연결되는 새로운 성장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축구가 전반전 점수만으로 끝나지 않듯 행정 역시 지금까지의 성과보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남은 시간 동안 기업과 산업, 청년과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뛰고자 한다.
2026-06-07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