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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네팔 빙하 붕괴가 보내는 경고
지구에는 수많은 산악빙하가 존재한다. 유네스코(UNESCO)에 따르면 전 세계 빙하는 약 27만 5000개, 총면적은 약 70㎢에 달하며, 20억 명 이상이 빙하와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에 의존해 살아간다. 빙하는 단순한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인류에게 수자원을 공급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거대한 자연자산이다.
그러나 이 얼음의 세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모든 빙하가 당장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빙하 후퇴가 진행되고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네스코와 세계기상기구(WMO)는 빙하 질량의 급격한 감소가 가져올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그 위험을 보여주는 일이 최근 네팔 히말라야에서 발생했다. 랑탕 리룽 인근의 빙하와 암석이 붕괴하면서 대규모 토석류와 돌발 홍수로 이어져 인명피해와 함께 하류 마을과 도로, 교량 등 기반시설에 큰 피해를 입혔다. 정확한 원인 조사가 필요한 만큼 이를 기후변화만의 결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줄고 고산지대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복합재난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빙하는 겨울 동안 물을 저장했다가 따뜻한 계절에 내보내는 거대한 ‘자연 저수지’다. 빙하가 지나치게 줄어들면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은 물론 생태계와 수력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녹아내린 빙하는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고산지역에서는 빙하호 붕괴 홍수와 산사태 같은 재난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거대한 빙하가 없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기후에는 국경이 없다. 해수면 상승은 부산과 같은 해안도시의 장기적인 침수 위험을 높이고 폭풍해일 피해를 키울 수 있다. 부산은 항만과 산업시설, 주거지역이 해안에 밀집해 있어 기후위기가 환경문제를 넘어 도시 안전과 산업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해외의 가뭄과 농업생산 감소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농산물과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우리의 식탁 물가와 기업의 생산비용으로 이어진다. 히말라야의 변화가 부산의 바다와 산업현장, 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효율 향상과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해수면 상승과 극한기상, 홍수와 산사태에 대비한 기후적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하는 것보다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는 예방투자가 중요하다.
시민의 역할도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일회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행동만으로 빙하를 지킬 수는 없지만 수많은 시민의 선택은 소비문화를 바꾸고 기업의 생산방식과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시민의 실천을 사회적 변화로 확장하는 것이 ESG시민운동의 역할이다.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ESG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빙하의 변화가 해수면과 수자원, 식량, 재난과 경제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려주고 배움을 생활 속 행동으로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빙하를 지키는 교육은 결국 미래세대의 삶과 안전을 지키는 교육이다.
빙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줄어드는 질량과 잇따르는 재난을 통해 인류에게 신호를 보낸다. 빙하가 녹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여파는 우리의 도시와 식탁, 경제에까지 이어진다.
빙하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얼음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 지구의 생태적 균형을 지키고 우리의 도시와 삶을 보호하며 미래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지구를 물려주는 일이다. 이제 빙하가 보내는 경고에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2026-09-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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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골든타임 임박한 해양바이오, 부산이 '주인'으로 나서야
‘바다의 반도체’라 불리는 해양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해양바이오를 미래 신해양산업의 핵심 축으로 지정하고, R&D 투자 확대, 규제 완화, 거점 인프라 구축 등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 역시 지역의 해양자원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의약품, 소재, 식품, 에너지 등을 개발하며 해양바이오 선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해양바이오 산업은 잠재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육상 생물자원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지구 생물종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바다는 미개발 바이오자원의 노다지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해양생물 특유의 생리활성 물질은 헬스케어, 신약 개발, 친환경 소재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확장성이 폭발적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부산은 전국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도시다.
우선 인프라 측면에서 해양수산 분야 국책 연구기관과 공공기관이 밀집해 있다. 여기에 대형 대학병원과 산학연 연계가 가능한 주요 대학들이 인접해 있어 기술 개발부터 임상, 제품화, 사업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완벽한 생태계적 잠재력을 지녔다. 물류와 입지적 이점까지 감안하면 부산은 대한민국 해양바이오 산업의 컨트롤타워이자 글로벌 허브가 되기에 최적의 요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거창한 수식어와 가능성만 논할 뿐, 산업 생태계를 하나로 묶어 구체적인 결실을 만들어내는 ‘엔진’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타 지자체들은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특화 지구를 지정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고 있다.
부산이 해양바이오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바이오산업 전체를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해양바이오를 단순한 전통 수산가공업의 연장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첨단 기술과 바이오 헬스케어가 융합된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에 걸맞은 투자와 지원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지자체와 지역 사회 전체가 해양바이오의 가치와 골든타임의 시급성을 명확히 인지해야 할 때다.
둘째, 산업 생태계를 총괄 집행할 ‘전담 부서(조직)’의 신설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뛰어난 원천 기술이 있어도 이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산·학·연·병·정을 하나로 묶어줄 책임 주체가 없으면 동력을 얻지 못한다. 연구기관의 기술과 대학병원의 임상 자원, 대학의 인재, 기업의 자본을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해수부 등 중앙정부의 정책을 신속하게 유치·집행할 수 있는 전담 기구가 반드시 설치되어야 한다.
해양바이오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국적인 주도권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린다면 부산은 천혜의 자원과 완벽한 인프라를 갖고도 타 지자체의 뒤를 쫓는 ‘만년 후발주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부산이 진정한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단 하나의 열쇠, 그것은 해양바이오 산업에 대한 확실한 정책적 결단과 이를 견인할 전담 조직의 신설이다. 더 늦기 전에, 부산이 가진 바다의 진짜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한다.
2026-09-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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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제분쟁해결 허브, 부산의 새로운 도시 경쟁력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항만·물류·금융과 같은 산업 기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적인 기업과 자본이 모이고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계약, 운송과 보험, 금융거래 등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함께 늘어난다. 중요한 것은 분쟁이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그 분쟁을 어디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이다. 국제도시의 경쟁력은 거래를 끌어들이는 힘뿐 아니라 분쟁을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최근 부산의 변화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으로 해양·수산 정책의 중심축이 부산으로 이동하고, 해운기업과 관련 기관의 집적도 본격화되고 있다. 북극항로를 비롯한 새로운 국제물류 환경도 부산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부산지부와 아시아·태평양해사중재센터 등 국제상사·해사분쟁을 처리할 기반이 마련되어 있으며, 해사국제상사법원의 개원도 예정되어 있다. 해수부 이전과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출범은 부산이 단순한 항만·물류도시를 넘어 국제해사·상사분쟁을 해결하는 법률서비스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부산의 해운·항만·조선·물류·금융 분야에서 발생하는 상당수의 대형 국제분쟁이 여전히 서울이나 해외에서 해결된다. 그 결과 법률서비스와 전문인력뿐 아니라 사건 처리 경험과 노하우도 지역 밖에 축적된다.
런던과 싱가포르 등 주요 국제도시는 금융·무역·항만 기능과 함께 법원, 국제중재기관, 전문 로펌과 법률가가 결합된 법률서비스 생태계를 발전시켜 왔다. 거래가 모이는 곳에 분쟁이 생기고, 신뢰할 수 있는 분쟁해결 시스템은 다시 새로운 거래와 투자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부산도 법원·중재·조정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종합적인 분쟁해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권위 있는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에는 법원이, 전문성과 신속성·비공개성이 중요한 사건에는 중재가 적합할 수 있다. 거래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경우에는 조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해사국제상사법원은 전문적인 국제분쟁을 부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법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중재·조정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에서 어떤 국제상사·해사분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왜 부산이 아닌 서울이나 해외의 기관을 선택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상운송, 선박금융, 해상보험, 국제물품매매 등 부산이 강점을 가진 분야의 전문성을 축적하고 장기적으로 국제금융과 디지털 거래 분야까지 확대해 나가야 한다.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 산업에서 발생하는 국제거래와 분쟁을 연구하고 해외 주요 도시의 법률 인프라를 비교해 부산에 적합한 제도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부산시와 사법기관, 중재·조정기관, 법조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역할도 맡을 수 있다. 부산대학교에 2027년 해사국제상사법무대학원이 개원하는 것도 전문 연구와 인력 양성의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제분쟁해결도시의 경쟁력은 어느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양수산부 이전을 통해 형성되는 해양정책과 산업의 집적,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 인프라, 중재·조정기관, 법조계, 산업계와 대학의 역량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부산에 분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산의 산업에서 발생한 분쟁이 부산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제 부산은 국제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넘어 그 거래에서 발생한 분쟁까지 신뢰받으며 해결할 수 있는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항만·물류·금융에 법률 인프라까지 더해진다면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전략은 더욱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다.
2026-08-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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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평화를 디자인하는 부산의 새로운 100년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양도시이자 해양디자인의 중심도시이다. 세계적인 항만과 아름다운 해안, 풍부한 해양문화는 물론 한국전쟁의 역사와 유엔의 정신을 함께 간직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도시이다. 이제 부산은 산업과 물류 중심의 도시를 넘어 역사와 문화, 평화와 디자인이 융합된 세계적인 해양문화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특히, 지난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부산을 찾은 지금이야말로 도시의 정체성을 역사와 문화, 디자인으로 확장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부산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3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앞으로도 세계인의 방문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제 부산은 시민뿐 아니라 세계인이 오래 기억하는 명품도시로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항 재개발은 단순한 항만개발이 아니라 향후 100년의 부산을 재해석하고 설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이 있으며, 국립부경대학교에는 유엔지상군사령부 부속 지휘소(현 워커하우스)가 남아 있다. 이곳은 1950년 9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18일 동안 미 제8군 사령부의 지휘본부로 사용되며 낙동강 방어선 작전과 반격을 준비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결단이 이루어진 현장이자, 오늘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설의 보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원형을 충실히 복원하고 당시의 공간 구조와 기록을 바탕으로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가치로 전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당시의 문서와 사진, 작전지도, 구술자료,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를 구축한다면 미래 세대는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자유와 국제협력의 의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공간의 재생은 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해양문화디자인 모델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갈등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은 평화가 결코 당연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전쟁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평화를 배우고 성찰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유엔지상군사령부 부속 지휘소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를 넘어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국제연대의 가치를 전하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도시의 경쟁력은 더 이상 초고층 건물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 디자인, 그리고 도시가 품고 있는 철학이 세계인의 기억을 결정한다. 부산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해양도시이다. 이제는 해양과 평화, 문화와 디자인을 하나의 도시 브랜드로 융합해 세계인이 다시 찾고 오래 기억하는 세계 해양디자인도시이자 세계 평화도시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2026-08-3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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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바다의 사막화 '갯녹음'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연안의 암초 지역은 해조류, 즉 우리가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김, 미역, 톳 등이 서식하고 있다. ‘바다숲’이라 불리는 모자반, 곰피, 감태, 대황 등의 다년생 해조류 군락도 있다. 바다숲은 육지의 산림과 같이 대형의 해조류가 번성해 이룬 군락으로 해양생태계에 먹이와 영양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제1차 생산자로서의 역할은 물론, 해양환경을 정화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 저감에도 기여한다. 또한 해양생물의 산란 보육장을 제공하는 등 건강한 바다 생태계를 유지하는 생명자원의 보고이다. 이러한 바다숲이 기후변화, 해양오염 등 여러 요인으로 사라지면서 바다숲에 살던 해양생물이 함께 사라지는 갯녹음 현상으로 위협받고 있다.
갯녹음 현상은 기후변화와 함께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의 전체 조사 암반 면적 428.4㎢ 중 약 37.1%에 해당하는 159.07㎢에서 갯녹음 현상이 확인되었다. 특히 동해안과 제주 지역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갯녹음은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우세해져 연안의 암반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으로 ‘백화 현상’으로도 불린다. 석회조류는 석회 성분(탄산칼슘)을 만들어 내는 조류인데, 해조류를 섭식하는 해양생물에게는 먹이로서의 가치가 낮으며, 이들이 암반 지역에 착생하면 바닥면이 강알칼리성으로 변해 다른 해조류들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 된다. 바다숲이 사라진 암반 지역에 무절석회조류가 무성해지면 사막처럼 황폐해지고 해양생물의 서식 환경이 파괴되어 ‘바다 사막화’가 발생한다.
갯녹음의 원인은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해조류를 먹이로 하는 초식동물의 과다한 섭식으로 알려져 있다. 수온이 상승하면 해조류의 성장이 둔해지는 반면 성게·소라와 같은 초식동물의 먹이 섭취가 늘어나 해조류 군락이 점점 줄어든다. 또한 무분별한 연안 개발과 산업·농업 폐수 등 오염물질의 유입은 연안 생태계 파괴, 부유물 침착 증가 등 해양 환경 변화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해조류의 서식지가 줄며 성장도 저해된다. 갯녹음이 발생하는 해역은 우리나라 연안을 지나는 따뜻한 해류인 쿠로시오 난류의 경로와 연관이 있다. 쿠로시오 난류는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전체 열량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앞으로 갯녹음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갯녹음 원인이 지역별로 다르고, 갯녹음 해역의 해저지형·수심·수온 등 물리적 요인 및 서식 생물상 또한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바다숲 조성방법도 지역별로 달라져야 한다. 갯녹음은 수온상승, 해양오염 및 연안개발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갯녹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해역별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원인규명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지역 특성에 적합한 대응과 생태복원·맞춤대책이 필요하다. 갯녹음으로 인한 연안해역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바다숲 조성지의 서식환경에 적합한 해조류의 이식과 해저지형, 수심, 연안생태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인공어초, 해중림초의 설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연안생태와 서식생물상 등 지역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획일적인 해중림초의 설계는 해조류 번식과 서식지 축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지 기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해중림초를 설계할 때는 해당 지역의 생물다양성과 서식지 기능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입지·공간·구조를 조정해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갯녹음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위적인 어린 해조류의 이식, 해중림초 투입을 통해 해조류의 포자 방출을 유도함으로써 바다숲을 조성하거나, 해조류가 부착할 수 있도록 바위에 붙어 있는 무절석회조류를 닦아내는 갯닦이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성게가 해조류를 과도하게 섭취해 갯녹음이 발생한 해역은 성게 제거 작업으로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갯녹음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해역별 원인 규명이 선행되어야 하며, 특히 무분별한 연안개발로 인한 콘크리트(탄산칼슘) 유입과 산업·농업 폐수 등의 육상 오염원을 줄일 수 있는 정책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2026-08-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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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센텀2지구, 해양수도 실증 국가프로젝트로 격상하자
해양산업의 규칙이 다시 쓰이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달 1일부터 자율운항선박(MASS) 코드 적용을 시작했고, 차세대 해상통신(VDES) 관련 국제협약 개정도 2028년 1월 발효를 앞두고 있다. 자율운항, 디지털 항만, 탈탄소 연료, 해상통신의 전환이 올해부터 2028년까지 한시기에 몰려 있다. 이 짧은 3년 안에 실증과 표준을 먼저 잡는 도시가 앞으로 30년 해양경제의 규칙을 쓴다. 부산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부산은 이미 강한 무대를 갖고 있다. 2025년 부산항은 컨테이너 2488만 TEU를 처리했으며, 이 가운데 환적 물동량은 1409만 7000TEU로 전체의 약 56.7%를 차지해 세계 2위 환적항의 위상을 유지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지정학적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 값지다. 자율운항과 항만물류 AI, 친환경 연료, 해양 데이터 서비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싼 땅이 아니다. 기술을 실제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무대다. 살아 있는 세계급 항만을 품은 도시는 많지 않다.
그 항만과 산업을 잇는 내륙 거점이 바로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다. 해운대구 반여·반송·석대동 일대 191만 ㎡, 사업비 2조 원, 9년의 준비 끝에 마침내 착공에 들어간 부산 최대의 산업 프로젝트다. 더 중요한 점은 센텀2지구의 공식 유치업종에 이미 ‘첨단신해양산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해양은 설계도에서 이미 시작됐다. 다만 아직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국가의 무게다. 지금의 틀대로라면 센텀2지구는 규모는 커도 성격은 평범한 산업단지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센텀2지구를 해양수도 실증 국가프로젝트로 격상해야 한다.
그렇게 바꾸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첫째는 글로벌 앵커기업이다. 항만에서 검증하고 센텀2지구에서 사업화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기업은 연구개발에서 시스템 통합, 운영과 서비스까지 전체 가치사슬을 따라 들어올 수 있다. 둘째는 센텀시티와의 시너지다. 벡스코, 영화의전당, 대형 상업·문화시설, 지식산업 기능이 이미 가까운 생활권에 모여 있다. 실증과 지원, 일과 정주가 한권역 안에서 이어질 수 있다. 새로 다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자산을 새 프로젝트에 맞게 다시 엮는 일이다.
성공의 관건은 거버넌스다. 국가가 규제 샌드박스와 인증 체계를 열고,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가 부지와 도시계획을 받치고, 지역 상공계가 산업 수요와 투자를 모아야 한다. 어느 한 축이라도 빠지면 실증은 곧 전시행사로 끝난다. 특히 자율운항처럼 안전 인증이 핵심인 분야는 해양수산부의 제도 설계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세 주체가 한 테이블에 앉아 역할을 나누는 구조, 그것이 국가프로젝트의 실제 모습이어야 한다.
순서는 이미 여러 번 증명됐다. 앵커가 먼저 오고, 생태계는 그 뒤를 따른다. 판교가 그랬고, 송도가 그랬다. 정부는 센텀2지구를 5대 광역시에 판교형 혁신거점을 조성하는 도심융합특구로 2021년 선도사업지에 선정했고, 2024년에는 최종 지정과 기본계획 승인까지 마쳤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판교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성공의 핵심이었던 앵커 유치의 순서를 그대로 가져오는 일이다.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누구를 먼저 데려올 것인가가 중요하다. 글로벌 해양기업과 연구기관, 시험·인증 기능을 먼저 붙잡아야 기업과 인재, 서비스가 뒤따른다.
시간은 길지 않다. 2028년이 되면 해양산업의 규칙은 이미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센텀2지구의 첫 삽은 토목공사보다 국가프로젝트 지정과 앵커 유치 협상에 꽂아야 한다. 부산상공회의소도 산업 수요를 모으고 민관을 잇는 조정자로서 그 일을 함께할 것이다. 센텀2지구는 땅이 아니라 전략이어야 하고, 부지가 아니라 실증이어야 하며, 단지가 아니라 국가프로젝트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분양계획이 아니라 더 높은 설계다. 그 설계 위에서만 해양수도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2026-08-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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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공병원 설립,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최근 지역 의료현장의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방의료원뿐 아니라 민간 중소병원과 종합병원들까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 병원은 진료과 축소와 병상 감축을 고민하고 있다. 고령화로 의료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질 의료기관의 경영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의료인력 수급 문제다.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전문인력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병원에 따라서는 의사 인건비만 전체 지출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의 확보에 실패하면 진료과 유지가 어렵고, 확보하더라도 높은 인건비 부담으로 적자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병원의 어려움을 단순히 수가 인상이나 인건비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과 연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권에서는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고 있다. 중증환자 치료와 고난도 수술은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술 이후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들까지 장기간 병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역 병원들은 병상이 남아 있음에도 적절한 환자 연계가 이뤄지지 않아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제는 병원을 개별 기관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 전체 의료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 중심에 공공병원이 있어야 한다.
새롭게 설립되는 공공병원은 대학병원과 경쟁하는 병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고난도 수술을 담당한다면 공공병원은 수술 후 회복기 치료와 재활, 만성질환 관리, 공공간병, 재택의료를 담당하는 지역의 허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가 급성기 치료를 마친 뒤 공공병원으로 전원되어 집중 재활과 회복기 치료를 받는다. 이후 건강상태가 안정되면 방문진료와 방문간호, 재택의료로 연결되어 익숙한 지역사회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른바 ‘상급종합병원-공공병원-재택의료’로 이어지는 지역완결형 진료협력체계다. 이 체계가 구축되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고, 공공병원은 안정적인 환자 공급을 통해 병상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환자는 집과 가까운 곳에서 회복기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보호자의 돌봄 부담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의료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지역사회 전체의 의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부산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병상 수 확대 경쟁이 아니라 지역에서 치료와 돌봄이 선순환하는 체계다. 특히 경남의 365안심병동과 같은 공공간병 모델을 접목한다면 환자와 가족의 간병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회복기 병동과 재택의료를 연계한 새로운 의료모델은 초고령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공공병원은 적자를 감수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건강안전망이다. 응급의료와 소아의료, 재활의료, 공공간병, 재택의료를 연결하고 의료기관 간 기능을 조정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제 공공병원의 역할은 단순한 진료 제공을 넘어 지역 의료를 연결하는 데 있다.
부산에도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 누구나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고, 회복 이후에도 지역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이다.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공공병원 설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이 그 논의를 시작할 적기다.
2026-08-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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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수도 부산,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챙겨 가는가
부산은 내 고향이다. 내가 지역순환경제 운동을 처음 시작한 곳도 부산이었다. 그래서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말은 내게 단순한 행정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부산이 자기 경제의 흐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부산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부산 시민의 삶으로 돌아오는가를 묻는 문제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해양도시였다. 항만이 있었고, 배가 드나들었고, 물류가 움직였고, 수많은 노동자가 바다와 항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 부산은 정말 해양수도였는가. 아니면 해양경제의 현장은 부산에 있었지만, 그 결정권과 이익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부산항은 움직인다. 그러나 움직이는 항만과 결정하는 도시는 다를 수 있다. 컨테이너는 부산을 지나가지만 계약은 서울에서 체결되고, 물류는 부산에서 처리되지만 금융은 서울에서 조달될 수 있다. 항만 노동은 부산에서 이루어지지만 고부가가치 기획·투자·법률·보험·데이터 기능은 수도권에 집중될 수 있다. 이 경우 부산은 해양경제의 무대일 뿐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해양수도 부산의 과제는 더 큰 항만, 더 넓은 배후단지, 더 화려한 개발계획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짜 해양수도는 해양경제의 가치사슬을 지역 안에 붙잡는 도시다. 선박이 드나드는 도시가 아니라 해양경제의 결정권·금융·연구개발·법률서비스·데이터·청년 일자리가 함께 뿌리내리는 도시다.
최근 HMM을 비롯한 해운 대기업의 부산 이전, 해양수산 공공기관 이전, 해사전문법원 설치, 동남투자공사 설립 논의는 중요한 계기다. 그러나 본사가 온다고 자동으로 지역순환경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의 숫자가 아니라 이전 이후의 구조다. 본사와 공공기관의 연구·조달·고용·투자가 부산의 대학, 기업, 금융, 청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핵심이다. 동남투자공사 역시 단순한 개발금융기관이 아니라 부산과 동남권의 부를 지역 안에서 다시 순환시키는 공공적 금융장치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지역순환경제의 문제로 본다. 지역순환경제는 지역경제 활성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지역으로 돌아오도록 경제의 흐름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부가 부산의 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기술혁신, 생활경제, 공공서비스, 지역금융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부산이 자기 경제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곧 경제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간경제는 대체로 반대로 작동해 왔다. 지역은 생산하고 수도권은 결정했다. 지역은 항만과 토지와 노동을 제공했지만, 본사·금융·법률·회계·컨설팅·데이터 기능은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부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해양수도론은 개발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항만은 확장되지만 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대기업은 들어오지만 지역 중소기업은 주변부에 머물 수 있다. 도시지대와 개발이익만 커지고 그 이익이 외부 자본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간다면 부산 시민에게 남는 것은 많지 않다.
부산은 이제 “무엇을 유치할 것인가”를 넘어 “유치한 것을 어떻게 지역의 부로 바꿀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해양수도는 기관과 건물의 목록이 아니라 가치의 흐름을 바꾸는 도시 전략이다. 항만·해운·물류·개발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부산 시민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해양수도 부산, 누가 결정하고 누가 가져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해양수도는 구호에 그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부산은 더 이상 물류가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가치가 머무르고 순환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부산은 이름뿐인 해양수도가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해양수도가 될 것이다. 부산의 바다가 부산 시민의 미래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부산에서 시작한 지역순환경제의 문제의식이다. 이제 그 길을 열어야 한다.
2026-08-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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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 ESG경영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한동안 ESG(Environment·Social responsibility·Governance)는 기업 경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는 주로 기업의 투자와 평판, 리스크 관리와 연결됐다. 그러나 이제 ESG는 공공기관, 언론, 대학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 조직은 지속가능한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미래세대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대학은 넓은 공공성을 지닌 기관이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청년을 붙잡고, 산업 전환을 돕고, 공공정책에 지식 기반을 제공한다. 따라서 대학의 ESG 경영은 친환경 캠페인이나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행정, 의사결정, 지역협력을 어떤 가치 위에서 운영할 것인가를 묻는 대학경영의 핵심 과제다.
현재 대학 ESG 경영에는 성과와 한계가 공존한다. 여러 대학이 ESG 보고서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탄소중립, 지역사회 기여를 강조한다. 그러나 ESG가 대학 운영의 중심 원리보다 특정 부서 사업, 일회성 캠페인, 외부 평가 대응에 머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의 언어가 되려면 선언보다 데이터, 보고서보다 실행체계, 홍보보다 구성원 참여가 필요하다.
학생도 ESG의 수혜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은 ESG 경영의 중요한 주체다. 학생들이 기후위기, 다양성, 인권, 지역문제와 공정한 거버넌스를 배우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ESG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된다. 대학이 ESG를 전공 교육, 현장실습, 창업,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와 연결해야 하는 이유다.
부산지역 대학들의 가능성도 특별하다. 부산은 해양·항만, 조선·물류, 관광·문화의 중심지이면서 고령화, 청년 유출, 원도심 쇠퇴와 기후위기라는 의제를 안고 있다. 해양환경은 환경(E), 청년 정주는 사회(S), 대학·지자체·기업·시민사회가 함께 의사결정하는 구조는 거버넌스(G)의 문제다. 부산의 도시문제 자체가 대학 ESG의 교육장이다.
부산형 앵커(Anchor) 사업도 지역성장 인재양성과 대학의 지역 정착 기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학 ESG 경영과 접점이 크다. 지역대학을 인재와 산업, 생활권과 초광역 협력을 지역에 결속시키는 거점으로 보는 관점은 대학 ESG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의 가치와 연결된다.
부산의 대학들은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다. 거점국립대학은 공공성과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ESG 제도화를 선도할 수 있다. 해양·수산·항만 분야 특화 대학들은 환경·산업 ESG에 유리하고, 문화·콘텐츠·글로벌 교류에 강한 대학들은 학생 참여형 ESG와 도시 브랜딩을, 전문대학들은 현장 밀착형 ESG를 실천할 수 있다. 과제는 이 강점들을 부산형 ESG 모델 속에서 연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부산 대학 ESG 연합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공동 지표와 연합 보고서, 공동 캠페인과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해양환경, 탄소중립 항만, 지역사회 돌봄, 청년 정주, 원도심 재생, 디지털 포용 같은 의제를 대학별 전공과 연결한다면 앵커 사업의 지역성장 인재양성 취지와도 맞닿을 수 있다.
대학 ESG 경영은 세 방향으로 선순환한다. 학생은 지속 가능한 시민이자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대학은 신뢰받는 교육·연구기관으로 성장한다. 도시는 대학을 통해 혁신 인재와 지식, 기술과 소통의 기반을 얻는다.
부산의 미래를 논할 때 우리는 항만, 공항, 금융, 관광, 신산업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원동력은 결국 사람이고 지식이며 신뢰다. 대학 ESG 경영은 이 세 요소를 연결하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 전략이다. 부산의 대학들이 ESG를 통해 학생의 미래, 대학의 신뢰, 도시의 발전을 함께 설계할 때, 부산은 단순히 대학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대학과 함께 성장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2026-08-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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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흥란에 발목 잡힌 거제남부관광단지
경남 거제남부관광단지가 멈춰선 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다. 주민의 삶이 멈추고,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고, 지역소멸의 시계가 앞당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동·남부면 주민에게 이 사업은 개발이 아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 상권 붕괴를 막을 마지막 생존수단이다. 그래서 주민 모두가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 주민 전체가 한목소리로 생존권을 호소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런데도 일부 환경단체는 주민의 절박함은 외면한 채 반대 입장만 되풀이한다. 대안도 없고 타협도 없다.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다.
환경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환경보전이라는 명분으로 주민의 생존권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대안이 있고 보전 방안까지 마련된 사업을 통째로 멈춰 세운다면, 그것은 환경보호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가로막는 행위다. 대흥란은 2006년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처음 발견된 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2급 지정은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했거나 가까운 장래 멸종 우려가 있는 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당시로서는 타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그때와 판이하다. 부산 , 남해, 여수, 고흥 등 남해안 전역은 물론 지리산, 속리산, 강원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대규모 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보호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맞게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생태적 희소성이 달라졌다면 지정 등급도 달라져야 한다. 과학적 재조사를 토대로 관찰종 또는 관리종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현실은 바뀌었는데 제도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법은 보호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영구화하는 장벽으로 전락한다. 남부관광단지는 바로 그 제도적 경직성이 지역 미래를 어떻게 가로막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다.
가덕신공항 건설 예정지에서도 대흥란 서식이 확인됐다. 여기에 구렁이, 수달, 나팔고둥 등 다수의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해양보호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지속적인 모니터링, 군락 이식 등 보전대책 등을 조건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동의했다. 보전대책을 마련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남부관광단지도 같은 원칙과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추진하면서 주민 생존과 거제 관광산업의 미래가 걸린 남부관광단지는 9년 동안 멈춰 세우는 것이 과연 공정한 환경 행정인가. 국책사업에는 가능한 해법이 지역 민간투자사업에는 불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환경 행정의 기준은 사업의 크기나 주체가 아니라 법과 과학, 일관성과 형평성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과 보전을 양자택일로 몰아가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환경을 지키고 산업을 살리는 현실적 결론이다. 과학과 기술, 책임 있는 관리가 함께 이루어질 때 자연을 지키면서 지역의 앞날도 열 수 있다. 주민은 9년을 기다렸다. 사업자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내했다. 지역 사회는 수없이 대화와 결단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또다시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룬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책임의 포기다. 환경보호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대안과 주민 생존권을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행정이 아니다.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 거제시는 일부의 반대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법과 과학적 데이터, 주민의 생존권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놓고 결단해야 한다. 지금 거제에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조사도, 또 한 번의 검토도 아니다. 9년 동안 멈춰선 남부관광단지를 다시 움직일 책임 있는 결단이다. 행정이 결단하지 않으면 사업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가 멈춘다.
2026-08-0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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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금융 공공기관 이전에 여야 힘 합쳐야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관심은 온통 정부가 올 하반기에 발표하는 제2차 공공기관 이전에 쏠려 있다. 다른 지역에선 광역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산시도 지난 3일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희망하는 40개 기관의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했으나, 유치 열기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 듯하다. 특히 위기에 처한 부산 금융중심지 문제마저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이에 반해 금융중심지 지정을 추진 중인 전북은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듯이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광역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정부를 설득해 서울 부산에 이어 제3금융중심지로 반드시 지정을 받겠다며 힘을 모으고, 다음 달에는 국제금융센터 설립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겠다는 발표도 했다.
금융중심지 부산이 최우선적으로 유치를 희망하는 공공기관은 3대 국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대형 금융공기업들이다. 이들 금융공기업은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금융중심지가 아닌 지자체들도 모두 탐내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시와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 전체가 어느 때보다 힘을 하나로 합쳐서 전력을 쏟아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3대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의 노조가 지방 이전에 반대하는 공동 집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있는 등 유치 대상 공공기관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또 부산 이전설이 나오는 농협중앙회는 전남광주와 전북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금융공기업 이전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권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또 분산하지 않고 집적 이전해서 효과가 크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밝혀왔다. 금융 공공기관을 여러 곳에 나눠주거나,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지역에 주는 것보다는 이미 문현금융단지를 중심으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와 금융 관련 여러 공기업이 들어서 있고 인프라도 갖춰진 지방 유일의 금융중심지 부산에 오게 하면 이전 효과가 즉각 나타날 수 있다.
부산이 동북아 해양수도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것과 연관해서도 금융중심지의 역할은 훨씬 더 크고 넓어져야 한다. 해양수도특별법 제정에 이어 해양수산부가 이전됐고, 해운 대기업 이전, 해사전문법원 설치 등이 잇따르면서 지역 전체에 큰 활기가 돌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도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하나 둘은 아니지만 부산의 새로운 희망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전재수 부산시장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젖줄인 금융 육성 없이는 지역의 핵심 산업 발달과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긴 어렵다. 특히 해양수도를 완성하려면 해양금융 기능이 강화되어야 하고, 정책금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은 공공기관 유치를 치열하게 진행하는 한편으로 금융중심지를 추가 지정할 경우에 예상되는 여러 문제들을 거듭 강조하면서 정부와 관계 부처에 기존 금융중심지 우선 육성을 촉구해야 한다. 나눠먹기식 배분으로 기존 금융중심지 기능이 약화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부산은 2009년 서울과 함께 금융중심지로 지정됐고, 그 기반이 됐던 선물거래소는 1999년 유치했다. 금융은 약 30년의 긴 세월 동안 지역사회 전체가 매달려서 키워온 산업이다.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은 핵심 공공기관 유치에 한목소리를 내면서 적극 나서야 한다. 설사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의 의견이 부분적으로 다르다 해도 협의해서 풀고, 불협화음을 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공공기관들이 2차로 대거 이전해서 부산 금융중심지의 역량을 국제적 수준으로 강화시키고, 해양수도에 걸맞은 금융환경도 조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이 지역균형발전을 선도하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고급 일자리를 계속 창출하는 글로벌 해양허브 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6-08-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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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들불의 시간, 밀양아리랑
‘밀양아리랑’은 들판과 강바람이 빚어낸 노래다. 정선아리랑이 첩첩한 산맥의 깊은 울림이라면, 밀양아리랑은 넓은 들녘과 사람 사는 마을의 숨결 속에서 태어난 노래에 가깝다. 빠르고 경쾌한 가락은 밀양강 물길처럼 힘차게 흐르고, 흥을 돋우는 장단 속에는 삶의 고단함마저 웃음으로 견뎌내려 했던 영남 사람들의 기질이 스며 있다. 그래서 밀양아리랑은 단순히 흥겨운 민요가 아니다. 웃음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생활 철학이 담긴 노래다.
필자 역시 밀양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먼저 강과 들판의 풍경이 생각난다. 아침 안개가 밀양강 위로 천천히 번지고, 넓은 들녘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산골의 적막과는 다른, 사람의 온기가 살아 있는 풍경이었다. 장터로 향하는 발걸음과 논두렁 사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저녁 무렵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던 노랫가락은 삶이 힘겨워도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밀양의 삶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며 이어져 왔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사람과 살림살이를 모이게 했고, 장터와 마을에는 늘 사람 사는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흥겨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난과 이별, 긴 노동의 시간 또한 이 땅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존재했다. 밀양아리랑은 바로 그런 현실 위에서 태어난 노래다. 힘겨운 삶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불렀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함께 가락을 이어갔다.
우리는 흔히 밀양아리랑을 흥의 노래로 기억한다. 실제로 “날 좀 보소”로 시작되는 익숙한 가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정겨운 정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안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한 흥 이상의 감정이 스며 있다. 웃으며 노래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삶의 애환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담겨 있다. 흥은 슬픔의 반대가 아니라, 슬픔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특히 밀양아리랑은 혼자 부를 때보다 여럿이 함께 부를 때 더욱 살아난다. 장터와 마을 잔치, 들일과 놀이판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맞추며 가락을 이어갔다. 누군가 한 소절을 시작하면 다른 이들이 뒤따라 흥을 더하고, 개인의 외로움은 공동체의 웃음 속으로 스며든다. 함께 노래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견디게 했고, 노래는 공동체를 이어주는 힘이 되었다. 밀양의 골목과 장터마다 아리랑이 오래도록 이어져 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밀양의 풍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오래된 시장은 하나둘 사라지고, 사람 냄새 가득하던 골목과 마을의 정취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삶은 편리해졌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어울리던 공동체의 시간은 예전 같지 않다. 그럴수록 오래된 민요가 품고 있는 삶의 기억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밀양아리랑은 단순히 흥을 돋우는 노래가 아니다. 삶의 무게를 서로의 목소리로 견디게 만든 노래다. 밀양강 바람을 따라 오래도록 흘러온 그 익숙한 가락은 오늘도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다. 사람은 결국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함께 부르며 견뎌내는 존재라고.
2026-08-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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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년 토성' 기장고읍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매주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빗자루를 들고 집 앞 기장고읍성 맨발 걷기 길을 나선다. 주말에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 길을 쓸다 보면 이곳을 찾는 익숙한 등산객들과 이웃 주민들이 고마움의 인사를 건네고 정겨운 덕담을 나눈다.
기장향교를 부드럽게 감싸안은 채 이어진 이 옛 성곽길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쌓은, 장장 1100년의 역사를 품은 ‘천년 토성’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시공간의 벽을 초월하여 고대 기장 읍내에 살았던 선조들의 발길과 오늘날 우리의 발길이 물리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깊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기장고읍성은 부산지역 지방행정의 원초적 기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천년 이상의 상징적 유적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고려 이전 지방 읍치(邑治) 토성’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성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 시민은 그저 기장읍 동부리에 석성으로 축조된 ‘기장읍성’만을 유일한 역사적 유적으로 기억할 뿐이다. 현재 지자체에서는 기장읍성의 복원 사업에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적으로 쏟아붓느라, 미처 기장읍 교리의 고읍성까지는 세심하게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읍성 현장에는 그저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 사실상 방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행히 이 고대의 성벽이 순수한 황토로 축조된 덕분에 일부 구간이 자연스럽게 맨발 걷기 길로 애용되며 역사 속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다. 필자 역시 매일 이곳을 걸으며 오랜 풍화 속에 깨어진 채 흙 속에 파묻혀 있는 옛 기와나 토기 조각들을 발끝으로 마주할 때마다 선조들의 거친 숨결을 체감하곤 한다. 가벼운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에는 나에게 이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유산이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길을 걸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과연 우리 조상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는 소중한 역사 유적을 이렇게 함부로 밟고 지나가도 되는가라’는 도덕적 부채감 때문이다. 전면 복원은 당장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지만, 예산 타령만 하며 이 귀중한 현장을 언제까지나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이제 부산시와 기장군은 지금 당장 우리의 작은 의지와 세심한 행정력만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 해법은 맨발 걷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행인들의 무심한 발길에 치이고 깨어져 가는 옛 기와 조각과 토기 파편들을 정성스럽게 수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모인 역사의 흔적들을 길 한편에 정돈된 형태로 보존하고, 오가는 이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소박한 야외 전시대를 길옆에 마련하는 디테일한 행정이 시급하다.
나아가 이 길을 전국에서 가장 특색 있고 매력적인 ‘천년 토성 위를 걷는 역사문화 맨발 길’로 브랜드화하여 정식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대로 천년 기왓장을 디디며 걸어가는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과거의 소중한 역사적 파편들을 수집하여 길옆에 단정하게 전시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작은 실천, 그것이야말로 예산의 한계만을 핑계 대며 뒷짐 지고 있는 관행에서 벗어나 세심한 행정의 디테일로 지역 문화유산을 대하는 로컬의 진정한 품격이다. 거창한 토목 복원보다, 발밑에 흩어진 역사적 흔적들을 귀하게 모아 시민의 일상 및 건강 생활 속으로 고읍성을 온전히 복원해 내는 작은 정성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정한 역사 보존의 첫걸음이다.
2026-08-0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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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4개 항만공사 통합,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자는 옛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시절 부산항 신항과 광양항 개발 현장을 직접 두 발로 밟았고, 항만공사 설립 당시엔 한국항만공사 통합을 주장하며 실제로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는 전국 컨테이너 항만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시급한 시기였고, 갓 출범한 항만공사들은 전문 인력뿐만 아니라 재정 자립도도 취약해 경쟁보다 조율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물두 해 전의 논리를 오늘 다시 꺼내는 것은 2005년 처방전으로 2026년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것과 같다.
4개 항만공사는 설립 이후 저마다의 전문성을 쌓아 왔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 거점항, 인천항은 대중국 교역의 핵심 창구, 울산항은 에너지·액체벌크 특화항, 여수광양항은 철강·원자재 물류 중심이다. 부산항만공사의 지난해 매출은 4049억 원, 자산은 8조 4598억 원에 이른다. 이 결실이 통합본사의 ‘균형 배분’ 논리에 따라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하는가.
세계 항만 경쟁의 문법은 분명하다. 싱가포르 PSA, 두바이 DP World, 로테르담 항만청은 단일 항만의 전문성을 살려 글로벌 물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반면 오사카·고베·한신항을 통합한 일본은 반면교사다. 한때 세계 4위였던 고베항은 통합 이후 7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조직을 합친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웃나라 항만이 값비싼 수업료로 증명했다.
통합론의 근거는 결국 중복투자 등 업무 비효율 해소다. 그러나 이는 조직을 통째로 합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문제다. 항만공사법 제36조의 2에 명시된 항만공사운영협의회가 유명무실하게 방치돼 왔을 뿐이다. 각 항만공사 사장이 협의회에서 투자·개발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해양수산부가 항만기본계획으로 방향을 잡으면 비효율은 충분히 해결된다.
게다가 통합 본부를 세워도 항만별 관리 조직은 별도로 남아 본사만 비대해지고 현장 조정력은 쪼그라드는 ‘옥상옥’ 구조가 된다. 항만공사법이 각 공사를 독립채산제 책임경영 주체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 권한은 통합 본사로, 책임은 현장에 남는 구조는 이러한 책임경영의 기본 원리를 위반한다. 더 근본적으로, 항만공사 통합은 지방분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부산항만공사는 지역과 항만이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로 설립됐고 북항 재개발사업도 그 토대 위에서 진행된다. 정부가 내건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충돌하는 통합안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지난 6월 4개 항만공사 노조가 공동으로 통합 철회를 요구했고, 7월엔 부산·인천·울산·경남·여수광양 5개 지역 300여 시민사회단체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한목소리로 통합 중단을 촉구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조차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의 목소리가 한 방향을 가리키는데도 정책설계자들은 왜 귀를 막는가.
필자도 과거에는 통합을 주장한 바 있지만, 정책의 타당성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 주장을 거두는 것은 일관성의 포기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개항 이후 150년간 쌓아온 부산항의 브랜드 가치를 비용 절감의 계산기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법에 보장된 운영협의회를 실질화해 각 항만공사가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저마다의 전문성으로 치열해져 가는 글로벌 항만 경쟁에 맞서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다시 묻는다. 이 통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2026-08-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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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내 고향 부산, 안녕하십니까
요즘 나라의 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뉴스 속에서 부산을 찾아보곤 한다. 반도체가 어디로 가고 큰 공장이 어디에 선다는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그 안에 부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청년들을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요즘 자주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부산은 지금 안녕한가.
특히 부산의 부모들께 여쭙고 싶다.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십 년 뒤에도 이 도시에 남아 있겠는가.
어릴 적 아이는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에 갈 나이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에게 대학이 꼭 집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 나은 배움이 있는 곳, 그 배움이 더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곳을 찾아 아이는 길을 나선다.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나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이 도시에 머물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붙잡아 두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부산의 대학이 그만한 배움을 주고, 그 배움이 부산 안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떠나는 것은 고향이 싫어서가 아니라, 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지난 6월,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 나라의 명운을 걸겠다며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기업이 쏟아붓겠다는 돈만 1500조 원, 나라 한 해 살림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서남권과 충청권이 저마다 거대한 반도체 단지를 품는 동안, 부산은 대구·경북과 한데 묶여 ‘소재·부품 거점’이라는 이름 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부산에 새로 무엇이 들어온다는 약속은 없었다.
이것이 왜 우리 아이의 일인가. 이 새로운 산업이 곧 우리 시대의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일자리가 다른 도시에만 들어선다면, 부산에서 자란 청년은 배운 기술을 펼칠 자리를 찾아 끝내 짐을 꾸린다. 한 청년이 떠나 자리가 비면, 그 빈자리를 본 다음 청년은 조금 더 쉽게 떠날 결심을 한다. 부산이 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 도시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먼 훗날의 걱정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현실임을 말해 준다.
이 흐름을 어디서부터 되돌릴 수 있을까. 나는 그 실마리가 지역의 전문대학에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다가올 산업은 어느 한 전공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 현장을 아는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람을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땀 흘리는 실습으로 길러 온 곳이 바로 전문대학이며, 조선과 자동차와 기계로 반세기를 버텨 온 부산에는 그 바탕이 이미 넉넉하다. 전문대학은 이 땅의 청년을 이 땅의 산업에 이어주는, 부산에 깊이 뿌리내린 마지막 통로다. 이 대학들이 무너지면 청년을 고향에 붙드는 마지막 끈이 끊어지고 만다.
그런데 정작 그런 인재를 길러 내야 할 대학에는, 그 일을 감당할 살림의 밑천이 없다.
돌이켜보면 1971년, 나라는 가난한 살림에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만들어 초중등 교육에 재원을 법으로 약속했고, 그렇게 길러 낸 사람들이 이 나라를 세계 열 손가락 안의 경제로 일으켰다. 그러나 이제 열에 일곱이 대학에 가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고등교육에는 아직 그런 법이 없다. 지역 대학의 살림은 해마다 심사를 받아 겨우 이어져 왔고, 그마저 2030년이면 끊긴다. 살림이 넉넉지 못한 대학은 좋은 교육을 베풀지 못하고, 좋은 교육을 베풀지 못하는 도시는 끝내 아이를 붙들지 못한다.
길은 분명하다. 초중등 교육이 법으로 뒷받침되듯, 고등교육에도 그 재정을 법으로 떠받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만들어야 한다. 초중등의 몫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올라설 다음 계단을 나라가 함께 놓아 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에는 직업교육의 몫이 분명히 담겨야 한다. 그래야 부산의 전문대학이 부산의 청년을, 부산의 내일로 이어 줄 수 있다.
이것은 대학을 위한 청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청이다. 글 첫머리에 나는 물었다. 부산은 안녕한가. 이제 답할 때다. 부산을 안녕하게 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아이들을 이 땅에 머물게 할 법 하나를 지금 세우는 일이다. 그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이 하나둘 고향을 등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2026-07-29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