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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장 위대한 유산
부모의 말이 아이의 삶이 된다. 품 안의 자식은 아낌없이 내어 주어도 좋으나 이미 제 삶을 꾸려 갈 때가 되면 그때부터는 다르게 대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은 처음에는 고마움으로 받아들이지만 반복되면서 익숙해지고 점점 당연해져서 결국 의존성만 길러져서 자식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만약 거절한다면 부모는 자식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하고 자식은 자립심 없는 나약한 의존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부모의 재산을 어떻게 해서라도 고스란히 물려 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상속세율이 1,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승계, 재산상속 등 법적 규제를 피해 가려고, 즉 세금을 적게 내고 물려 주려는 속셈으로 온갖 방법을 시도하다 매스컴을 도배하지만 어찌하더라도 결국 자식에게로 가는 것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흙수저, 금수저의 의미가 참 마음이 편치 않다. ‘애써 모은 재산을 내 자식한테 주는 게 뭐가 잘못이고 이상한 것인가’라고 따진다면 ‘애써 모은 걸 왜 꼭 자식한테만 주는 게 진정한 자식 사랑인가’라고 되묻고 싶다.
부자가 3대를 안 간다는 옛말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피와 땀이 과연 그대로 유전이 될까. 부모의 피와 땀만큼 일할 수 있고 하려는 의지가 따른다면 부모만큼은 아니라도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시대가 다른 걸 계산하면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일군 재산이니 자식이 당연히 물려 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신뢰가 결국 자식을 제대로 보지 않고 내린 섣부른 판단이 된다는 걸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이 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이 될지 의문이 크다.
자식은 부모의 그림자를 따라가고, 교사의 몸짓으로 행동하며, 사회의 빛으로 빛날 수 있고, 국가의 힘으로 자란다. 즉 아이를 잘 키우고 물려 줘야 할 것이 무엇이며 사회 공동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표현한 말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에게 된장, 고추장, 김치를 손수 담가 주시는 것 보다 자식이 담가 온 것을 칭찬하고 격려가 더 소중한 사랑이라 여긴다. 매일 밤 논에 따로 쌓여 있는 노젓가리를 형은 아우에게, 아우는 형에게 옮겨다 두는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역할이 더 값진 유산이다. 이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로 자본주의의 장점마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눔과 배려는 부모에게 배운다. 사람이 금수저, 흙수저로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사랑으로 키운 자식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역시 부모의 몫이다. 이런 값진 유산을 꼭 물려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 혼자만 잘살려고 하는 이기심이 결국 자신도 못 지키게 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 가장 확실한 유산은 물질이 아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들이다.
마이클 센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이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도 없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흐름이다. 살면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그나마 셀 수 있고 쓸 수 있던 시대가 있었는데 눈만 뜨면 슬픈 정도가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는 게 셀 수조차 없이 쏟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내 아이가 살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부모의 재산을 아예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게 키워보는 반전을 시도해 보는 것을 건의하고 싶다. ‘하기야 나만 왜 그래야 하나’라고 반문하고 부정할 것이 뻔하지만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한마디 한마디는 절대 그냥 넘기지는 않는다. 다른 형제들도 있는 데서 너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은 몇 차례 반복하면 아이는 상처와 충격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다. 여기서 부모는 단순히 아이가 미워서 던진 말은 아닌 오히려 역설법이라는 걸 아이는 자라면서 알아가게 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미래에 나를 보장받기를 바라는 계산을 하면 안 되고 진정 아이를 위하는 순수함과 진정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2025-12-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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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함께 가야 오래 간다
부산사랑의열매 회장을 맡은 후 고민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잘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 다음엔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과 나눔을 전파하는 사랑의열매 회장으로서 어떻게 두 역할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였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매일같이 마음을 졸였다. 혹여나 사랑의열매가 상징하는 ‘사랑의온도’가 식을까, 그 온도가 낮아져 시민 여러분과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리는 건 아닐까, 늘 불안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수많은 기부자의 따뜻한 손길과 나눔의 용기로, 지난해 사랑의온도는 무려 130.5도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뜨겁고, 가장 벅찼던 기록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눔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가치임을, 부산 시민 여러분은 실천으로 증명해주셨다.
지난 겨울과 봄,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위기 속에 놓여 있었다. 특히 지난 3월,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 피해를 기록하며 수많은 생명과 터전을 앗아갔다. 사랑의열매는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특별모금 캠페인을 전개하며 이웃의 아픔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감 속에 13억 5300여 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 소중한 성금은 기부금협의회를 통해 피해 지역 주민들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전액 사용되고 있다. 한 분 한 분의 기부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였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부산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그 과정에서 기업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랑의열매 회장으로서의 역할의 균형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발전과 기술 진보를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소외된 이웃과 단절된 공동체, 그리고 깊어지는 사회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근간이 된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이익으로 실현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많은 기업인들은 기업의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 빈부격차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ESG경영 등이 강조되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성과가 일부에게만 집중될 때, 그 체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다. 이는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기업 활동의 핵심 축으로 삼자는 제안이다. 즉, 시장의 효율성과 기업의 창의력을 활용하여, 그 혜택이 사회적 약자와 취약한 공동체에도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자는 철학이다. 기업이 이윤추구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기업의 핵심 부서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성장의 속도를 자랑하기보다는, 성장의 방향과 함께 가는 이들을 돌아보게 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이 아프리카 속담은 창조적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빠르게 이윤을 창출하는 전략보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구조가 오래가는 경제의 해법이라는 뜻이다.
기업과 개인, 그리고 지역사회가 이 정신을 바탕으로 손을 맞잡는다면, 부산은 단순한 경제 도시를 넘어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이윤과 나눔, 효율과 공감이 공존하는 미래형 모델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이다. ‘얼마나 더 벌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성장할 것인가’를 묻는 사회. 그곳에서 비로소 진정한 지속 가능성과 공동 번영이 시작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혼자 빨리 가는 길은 외롭고, 함께 오래 가는 길은 의미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창조적 자본주의의 실천자로서, 함께 오래 가는 길에 나서야 할 때이다. 아담 스미스도 기업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그 결과로 발생하는 사회이익으로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사랑의열매 회장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다. 우리 사회가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이 길에 부산시민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부산사랑의열매는 기부금액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는 사랑의온도탑을 세우고 ‘행복을 더하는 기부, 기부로 바꾸는 내일’이라는 슬로건으로 이달 1일부터 내해 1월 말까지 희망2026나눔캠페인을 시작한다. 함께 오래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함께 한다면, 사랑의온도는 100도를 넘어 펄펄 끓어 넘칠 것이다.
희망2026나눔캠페인을 통해 모여진 성금은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 교육, 주거, 안전 등 기본 생활 지원과 더불어 초고령 사회, 1인 가구 증가 등 지역사회 내 높아진 돌봄수요에 맞는 맞춤형 통합돌봄 서비스 제공, 사각지대 위기가구 및 각종 사회이슈에 긴급 대응,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 강화 등 다양한 사회 이슈와 지역현안을 해결하는데 사용된다. 사랑의열매는 앞으로도 더 많은 책임과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쉼 없이 나아갈 것이다.
2025-12-1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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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운대의 밤 바다
최근 미국 하와이에 가서 와이키키 해변을 구경했다. 그동안 주위에서 와이키키 해변과 우리나라 해운대의 해변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왔기에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와이키키 해변의 길이는 해운대 해변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였지만 백사장의 폭은 해운대 백사장 폭의 거의 절반 정도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와이키키 해변은 수심이 얕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꽤 먼바다까지 나가서 즐겁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바닷가의 수온이 일년 내내 수영하기에 적당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었고, 또한 백사장과 바로 인접한 이면 도로에는 세계적인 명품숍들과 화려한 호텔 및 리조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과연 하와이라는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키키 백사장의 한쪽 끝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차 한잔 마시면서 자연스레 와이키키 해변과 해운대 해변을 서로 비교해보았다. 해운대 해변은 백사장 폭도 와이키키보다 훨씬 더 넓으며 주위에는 송정 바다까지 이어지는 시원한 전경의 해안 산책로가 있고, 또한 반대쪽으로는 아름다운 동백섬이 바로 옆에 있는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느 곳의 해변과 비교하여도 결코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천혜의 자연을 오래도록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지난 여름, 낮에는 너무 더워서 저녁을 먹은 후 운동 삼아 해운대 바닷가 해변도로로 산책을 자주 나갔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외국인들도 꽤 많이 보였다. 처음 산책을 하는 날에 웨스틴조선부산 호텔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니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즈음 가끔 들을 수 있는 ‘버스킹’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걸어갔는데 얼마 안가서 또 다른 노래가 반주에 맞추어 들려왔다. 두 개의 노래가 섞여 들리면서 조금은 소란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계속 걸어갔는데 곧이어 또 다른 노랫소리가 반주에 맞추어 이제는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로 들려왔다.
그러한 상황은 해운대 바닷가의 거의 절반 정도 갔을 때까지 짜증스럽게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짜증을 조금씩 달래며 미포 입구까지 걸어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소란스러운 노랫소리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그날 이후 여러 번 해운대 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었지만 지난번과 거의 똑같은 상태의 반복이었다.
와이키키 해변의 밤 바다는 백사장에 불빛이 별로 없어서인지 어두움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해변에 인접한 이면 도로에는 거리 곳곳의 기둥에 설치된 조그만한 횃불들이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밤의 하와이를 즐기며 크게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거리에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지만 해운대 밤 바다처럼 그렇게 소란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두 해수욕장을 비교해보면서 해운대 밤 바다의 소란스러운 노랫소리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천혜의 해수욕장이 밤에는 왜 이렇게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로 되어가고 있는지, 더위를 피해 밤 바다에 조용히 산책하러 나온 많은 시민들은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해운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들은 해운대의 밤 바다를 거닐면서 과연 어떠한 인상을 받을 것이지.
비록 와이키키 해변의 인위적인 화려함에는 못 미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해운대 해변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소중히 잘 보살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해운대 밤 바다를 즐거운 마음으로 걸으면서 더위도 식혀보려는데 짜증스럽게 겹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버스킹이라는 좋은 이름에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2025-12-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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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금정산, 천년의 숨결로 세계 속 도심형 국립공원으로
부산의 영산(靈山) 금정산이 대한민국 최초의 도심형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명칭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의식이 바뀌는 상징이다. 금정산은 오랜 세월 동안 부산의 정신적 지주이자, 부산 시민의 마음이 머무는 산이었다. 그리고 천년 고찰 범어사의 품 안에서 수행의 숨결과 시민의 삶이 함께 호흡해온, 그야말로 ‘산과 사람이 공존해온 시간의 증언자’이다.
1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범어사는 금정산의 자락 아래에서 수많은 시대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전란과 산업화, 그리고 도시의 팽창 속에서도 이 산은 늘 변함없이 자비와 평화의 품을 내어주었다. 수행자들에게는 깨달음의 터전이 되었고, 시민들에게는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쉼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불자와 시민이 이곳을 오르내리며 자연과 마음을 함께 닦아온 시간, 그것이 바로 금정산이 품은 진정한 역사이다.
이번 국립공원 지정은 금정산이 가진 불교적 가르침과 현대적 생태 가치가 결합되는 전환점이다. 불교가 말하는 ‘공존’과 ‘화합’의 정신은 생태의 언어로 번역되어, 생명 존중과 환경 보전이라는 현대 문명사회의 화두와 만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천년의 숲이 숨 쉬고, 그 속에서 시민이 명상하고 어린이가 생명을 배우는 풍경, 이것이 바로 금정산이 지향해야 할 도심형 국립공원의 모습이다.
불교가 전하는 공존의 의미는 단순히 함께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산은 인간에게 쉼과 깨달음을 주고, 인간은 산을 돌보며 그 생명을 이어준다. 한 그루의 나무, 한 줄기의 물, 한 줌의 흙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것, 그 깨달음이 바로 불교적 공존의 실천이다. 범어사는 이러한 철학을 시민과 나누어 도시 속의 명상길, 마음의 쉼터를 조성하고자 한다. 이는 금정산이 지닌 자비와 생명의 숨결을 현대 사회 속에 되살리는 일이다. 금정산은 단지 부산의 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산이며,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자연유산이다.
국립공원 지정은 부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도시로 도약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금정산이 품은 생태계는 단순한 녹지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자연이 다시 만나 서로의 존재를 회복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범어사는 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시민과 불자, 그리고 환경단체와 손잡고 금정산의 생태계 보전과 문화유산의 전승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산사와 도시가 함께 이어지는 새로운 공존의 모델, 그것이 바로 금정산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명상 숲길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마음을 고요히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청소년과 외국인을 위한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배우게 할 것이다. 또한 국제적 환경 교류를 통해 금정산의 사례를 세계와 공유하며,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기후 위기와 환경 붕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은 단순히 지역의 경사에 머무를 일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를 다시 묻는 문명적 성찰의 기회이다. 우리는 금정산을 통해 ‘산이 사람을 품고, 사람이 산을 지키는’ 새로운 윤리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가 전해온 자비의 정신이 오늘의 언어로 구현되는 길이며, 동시에 부산이 세계 속에서 보여줄 새로운 생태문명의 모델이다.
금정산은 오래된 산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의 산이다. 그 품 안에서 수많은 생명이 깃들고, 인간의 마음 또한 다시 숨을 쉰다. 천년의 도량 범어사는 앞으로도 이 산이 지닌 자비의 숨결을 지켜낼 것이다. 이번 국립공원 지정은 그 첫걸음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약속이다. 금정산이 부산의 시민은 물론 세계인 모두에게 평화와 깨달음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범어사는 그 뜻을 이어갈 것이다.
2025-12-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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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적십자 회비에 담긴 '부산의 연대'
2025년 세계 적십자의 날 슬로건은 ‘On the Side of Humanity’(인류의 편에서)이다. 이 슬로건은 인종, 국적, 종교, 정치적 배경을 넘어 모든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고통받는 사람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다가가고, 위기 상황이 길어질수록 더 오래 곁을 지키겠다는 인류 공동의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메시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끝까지 남겠다는 적십자의 변하지 않는 사명을 다시 일깨운다. 적십자 운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부산지사 역시 이러한 가치 아래 지난 76년 동안 지역사회와 함께해 왔다.
적십자 운동은 1863년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차별 없이 보호하려는 열망에서 시작됐고,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고종 황제의 칙령에 따라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창립돼 올해로 120년을 맞았다. 부산에서는 1949년 부산지사가 발족된 이래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화재구호 등 인도주의 활동을 이어오다 6·25전쟁 당시 수영강변에서 피 묻은 군복을 손수 빨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1953년 황폐한 국토를 되살리기 위해 서구 천마산에서 나무를 심으며 시작된 대한민국 청소년적십자 활동, 베트남 난민 수용 등 재난과 혼란의 시대마다 생명을 살리고 위기를 극복하며 희망을 전하는 데 힘을 보태 왔다.
적십자 회비는 이렇듯 오래된 역사 속에서 쌓아온 책임감으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 사용된다. 올해 역시 부산지사는 다양한 현장에서 적십자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무안국제공항 제주 항공기 추락 사고와 경북 산불 피해 발생 당시 긴급 모금을 전개했으며,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한 경북 영덕에 긴급구호박스, 쉘터, 급식차량을 즉시 전달했다. 동시에 재난 심리 지원을 실시해 피해 주민의 빠른 일상 복귀를 도왔다. 평시에는 부산 내 1930여 결연가구에 밑반찬 지원, 맞춤형 물품 지원, 정서 돌봄을 이어 왔고, 범죄 피해자 지원과 김장 나눔, 캠코와 함께한 소외계층 가족 힐링 여행(희망 리플레이 제주 가족여행) 등 다양한 복지 활동도 펼쳤다.
재난 대응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전국 25개 기관이 함께하는 대규모 재난대응 역량 강화 훈련인 ‘레디코리아’에 참여해 실전형 훈련을 수행하고, 11월에는 200여 명의 직원과 봉사원이 참여한 전국 재난구호 종합훈련을 개최해 이재민 구호 절차와 현장 대응 능력을 높였고, 전국학생심폐소생술 경연대회를 주관해 시민의 생명 구조 역량 향상에도 기여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 20여 명과 적십자 봉사원의 결연을 통해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고 부산 특화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부산지사는 2026년도 적십자 회비 모금 62억 원을 목표로 12월부터 본격적인 희망나눔 성금 모금 운동에 들어간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일정 금액을 매월 후원하며 지속적으로 취약계층을 돕는 정기후원 프로그램(희망 나눔 사업장(매월 3만 원 이상), 씀씀이가 바른기업(매월 20만 원 이상), ESG실천기업(매월 50만 원 이상) 등)이 있다. 또한 연말 지로 용지와 함께 개인이나 사업장이 의미 있는 날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특별성금 형태의 일시적 후원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인도주의 가치를 함께 확산하고자 하는 이들이 1억 원 이상 후원을 약정하는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상황에 따라 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
‘On the Side of Humanity’라는 슬로건처럼 부산적십자는 앞으로도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일에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자 한다. 부산 시민의 참여가 늘어날수록 우리 지역의 안전망은 더 단단해지고, 위기에 놓인 이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생길 것이다. 희망을 잇는 이 나눔에 함께 해주시길, 뜻깊은 참여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
2025-12-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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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8년 부산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의 과제
지난 7월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열린 제34회 세계 디자인 총회에서 부산이 인구 1300만 명의 중국 대도시 항저우를 제치고 2028년 세계 디자인 수도(WDC)에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부산은 토리노, 서울, 헬싱키, 케이프타운, 멕시코시티, 발렌시아 등에 이어 전 세계 11번째 WDC가 되었다. 당시 부산시는 “WDC 지정은 도시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새롭게 설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곧 디자인을 통해 도시재생은 물론 사회 통합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선 부산의 도시환경에 대한 점검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도시 정비 차원에서 그동안 쌓여 왔던 도시환경을 저해해 온 문제부터 풀어 나아가야할 것이다. 결국 쉽게 생각하면 큰 덩어리 중 하나는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들과 있어야만 하는 것들을 잘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마도 전자에 해당하는 것들은 원도심에 산재해 있는데, 중형 도시 건물들 안에 텅 빈 사무실을 생기 있는 도시환경을 위해 주어진 여건 하에서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게 잘 포장해 내느냐이며, 동시에 보기에도 흉칙스런 골목마다 반파되거나 완파된 옛집들을 정비하는 일이다. 어차피 처분해야 할 조건이라면 이번 기회가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정비가 구축되고 나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반세기 이상 쌓여왔던 산업 시대의 갖가지 산물들은 이 기회에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큰 의미에서 본다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세워진 각종 선전 광고들이라던지 누더기처럼 보기 흉하게 들죽날죽 크기의 간판 등 모두가 정비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부산의 고유 경관이나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잘 살려내고 결국 도시 캐릭터를 잘 살려 도시의 얼굴부터 바꿔야 한다.
21세기의 디자인 문화란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현대 디자인의 가치와 존재 이유는 몇몇 전문가 집단이나 소수의 의도로만 이루어지는 게 절대 아니다. 도시의 주인공인 주민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때로는 공론화를 반드시 거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미 세워져 있는 대형 건물이나 고정된 조형물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소프트웨어적인 안목으로 얼마든지 감각적인 ‘리디자인’이 가능할 것이고 이에 따라 타 도시에 비해서 시민 쉼터 공간이나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점 역시 부산의 취약점이 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부문이다.
타 도시에 비해 부산시 당국의 공공 부지가 절대 부족한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시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환경 부문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분야는 역시 대기 환경 개선과 수질 오염 개선 문제로 이번 기회에 과거 어느 때보다 부산시 당국과 기업체(산업 및 제조업)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고 이외에도 시민들 삶의 질 문제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초점을 맞추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선진화된 국가의 도시 디자인 체계나 흐름의 시스템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도시 환경을 정화해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시 당국이나 몇몇 전문가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가능한 시간을 두고 범시민 운동으로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청소년층에서부터 청장년 시니어들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모니터 요원으로 참여하게 유도하고 정기적 또는 수시적 확인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서 도시의 얼굴을 바꾸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디자인 수도의 면목도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시그널이 될 것이다.
2025-12-0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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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물원의 종말, 생명존중 공간의 시작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 ‘삼정더파크’가 운영사와 부산시 간의 장기 소송으로 남겨진 동물들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지곡동물원 시절부터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공간의 소멸은 단순히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동물을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날 전국의 많은 동물원들은 만성적인 적자와 시설 노후화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 반면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눈높이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낡은 철창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갇힌 동물들의 정형행동은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묻어나는 깊은 고통과 외로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거기에 더해 지자체의 재정부담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도시의 또 다른 그늘, 바로 유기동물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거리로 내몰리고 지자체 보호소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넘쳐나는 동물을 감당하지 못해 반복되는 안락사와 그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가 떠안고 있는 무거운 고통이다. 이제는 이 두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법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그 해답은 바로 동물원을 생명존중 공원(Animal Welfare Park)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동물과 사람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생명존중 공원의 핵심은 유기동물을 위한 전문 입양 및 교육센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바로 동물복지 선진국 독일의 티어하임(Tierheim)이다. 티어하임은 단순히 유기동물을 임시 수용하는 장소를 넘어 ‘안락사 없는 보호’를 대원칙으로 삼는 거대한 생명존중의 요람이다. 이곳에서는 수의사와 훈련사, 행동교정 전문가 등 동물전문가가 상주하며 상처받은 동물들의 신체적, 정신적 재활을 체계적으로 돕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원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투명한 참여로 운영되는 이 시스템은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만약 부산에 생명존중 공원이 조성된다면 바로 이 티어하임 모델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구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존의 좁고 열악한 보호소를 넘어 동물이 존엄을 지키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희망의 공간이자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교감하는 열린 교육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양을 희망하는 시민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행해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책임있는 반려문화를 확산시키는 중심축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기존 동물원 동물들을 위한 배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이들을 위한 생츄어리(Sanctuary) 공간 역시 필요하다. 더 이상 전시와 오락의 대상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생명으로 존중받으며 평온한 여생을 누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동물을 희생시켜온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며 동시에 성숙한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이러한 전환에는 비용과 노력이 뒤따른다. 그러나 외면받는 낡은 시설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철학을 실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투자인지는 분명하다. 동물원이 사라진 자리는 단순한 공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험대이다. 부산시의 결단과 시민들의 공감이 더해진다면 동물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공간은 머지않아 도시 전체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동물의 눈물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길을 함께 열 것인가. 역사는 우리가 내리는 이 선택을 기억할 것이다. 생명의 존엄을 존중하는 길만이 인간다움으로 가는 길이다.
2025-11-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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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실버 라운드’, 스마트 스윙으로 시작하자
부산은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해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약 23%다. 거의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특히 영도구와 서구 등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돼 도시 활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노년층 건강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전략적 복지 설계가 시급하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어르신 건강을 지키면서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스마트 복지 모델을 구축하면 부산은 전국이 주목하는 고령친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핵심은 파크골프다.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생활체육인 파크골프는 60대 이상이 주로 즐기며 건강 복지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부산은 지형과 날씨 때문에 야외 운동시설 접근성이 낮다. 이를 해결할 전천후 실내 스포츠, 스크린 파크골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휴 공간을 활용해 설치가 경제적이고, 세대 간 교류와 디지털 학습까지 가능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부산시는 올해 사회복지시설 유휴 공간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몰운대·해운대 종합사회복지관과 남구장애인복지관 3곳을 선정했다. 이들 시설은 이미 스크린파크골프장을 열고 주민 대상 교육·동아리, 건강관리 프로그램, 장애인 친화형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해운대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달 21일 '해운대 스크린파크골프센터'(3타석)를, 남구장애인복지관은 지난달 17일 장애인 친화형 골프장(2타석)을 열었다.
다른 지방 사례도 찾을 수 있다. 경남 하동군은 전통시장 빈 점포를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바꿔 방문객을 30% 이상 늘렸고, 충북 제천시는 공실을 생활체육 거점으로 전환해 하루 100명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강원 화천군은 파크골프 인프라 하나로 연간 30만 명 방문객을 유치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 복지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다.
부산 원도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공실 점포, 복지관과 주민센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어르신 건강, 지역 상권 회복, 커뮤니티 재생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일석삼조 효과다. 부산시는 '언제나 편안하고 활기찬 노인 행복도시 부산'을 비전으로 설정했다. 민·관 협력을 통해 세대 통합형 고령친화 도시 조성에 나섰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노인 인식 개선과 세대 간 화합을 위해 민·관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스크린 파크골프와 같은 스마트 체육 인프라를 결합하면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어르신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부산이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체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가 교차하며 활력을 나누는 부산형 실버 라운드가 필요하다. 유휴 공간을 활용한 스크린 파크골프 보급은 그 출발점이며, 부산이 준비해야 할 스마트 스윙, 미래 복지의 첫 티샷이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 이 문장은 어르신의 행복한 한 번의 스윙에서 완성될 것이다.
2025-11-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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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 세계의 해양수산부로 가는 길
정부 부처 이전이 끝이 아니다. 해양수산부의 물리적 이동만으로 부산은 진정한 해양수도가 될 수 없다. 그리스 ‘피레우스’의 70년 역사는 1954년 해양도서정책부의 이전은 출발점이었을 뿐, 진정한 성공은 행정·산업·금융·법률·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완결형 해양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부산의 선택이 국가 해양의 미래를 결정한다. 부산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올해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선포 25년, 내년이 해수부 설립 30년, 부산항 개항 150년을 앞두고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HMM본사 이전 등 오랜만에 부산이 기대와 희망에 가득차 있다. 새 정부 새 부산시대의 개막인 동시에 부산 지혜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구호뿐인 ‘해양수도’를 진짜로 만드는 기회다.
해수부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때 만들고 폐지된 해수부를 부산 시민의 주도로 2013년 어렵게 부활시켰다. 그러나 시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부산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해양수산부 및 직원 이주가 차질없이 연내 부산 연착륙이 먼저다. 그들이 만족하여야 한다. 해양 관련 공공기관도 빠른시일에 부산 이전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 특히 해수부 2차관제와 이번 기회에 해양산업의 강력한 국가육성지원정책이 발표되어야 한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공약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실천의지와 국회에서의 법적조치가 시급하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한다. 내년 지자체 선거를 위한 단순한 정치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해수부 기능 확대와 역할 통합’과 관련한 조항은 특별법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특히 해수부 이전 등 공약을 약속했던 대통령의 해양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없이는 해수부 부산 이전 효과가 반감이 되거나 시민의 실망으로 변할 수 있다.
둘째, 서울, 수도권 집중에 의한 제일 큰 피해지역이 부산, 남부권이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부산의 수도권으로의 청년, 자원, 기업이 유출 되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구호성 정책으로는 막을 수 없다. 부산해양특별시 지정과 논의되었던 정부의 ‘균형발전부 설치’ 등 파격적인 지방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셋째, 현재 1%(국가예산 대비)의 해수부로는 일할 수가 없다. 예산이 대폭 증액되어야 한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타 부처에 있는 해양 분야 즉 해양플랜트, 조선·선박수리 분야, 해양물류, 해양레져 관광 분야, 도서(섬) 분야(현재 무인도만 해수부), 해양기후 분야 등이 해수부가 관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이 바다국가, 해양강국인데 해양수산부의 현재 약체 소부처로서는 해양강국 건설은 물론 부산 이전의 정당성이 없다.
넷째, 미국 등 선진해양국가들은 해양전략이 국가전략으로 치밀히 대응하고 있다. 국가의 다양한 해양정책을 통할하며 조율할 힘있는 조직인 대통령 직속 국가해양위원회(가칭) 신설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수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종 정책 간 엇박자를 방지하려면 국가의 모든 해양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 설립이 시급하다.
다섯째, 이재명 정부의 지상과제로 떠오른 북극항로 개척은 정책이 일관돼야만 하는 데다 전 부처의 적극적인 공조가 절실한 사안이 아닌가. 러시아를 비롯한 북극해 연안국들과의 협력, 북극 기후 데이터 축적, 국제 해양법 검토 같은 북극항로 준비에는 해양산업은 물론 외교·안보·법무·과학기술·환경 분야까지 총력전이 요구된다. 부산을 ‘극지관문도시’로, 부산항을 ‘북극거점항만’으로 지정이 시급하다. 또한 부산에 제2극지연구소 설치, 아라온호 부산항 취항 등도 필요하다.
여섯째, HMM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톤세 등 HMM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본사 부산 이전은 단순히 본사 주소지 변경을 넘어, 세계 2위의 환적항(세계 7위의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이 물류현장성 뿐만 아니라 해운경영과 해운비즈니스의 중심이 되는 가장 실효적인 해양수도 정책 과제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부산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혜가 필요하다. 부산시, 시의회, 부산 정치권, 부산 상공계, 학·연구계, 시민단체 등의 상호 협력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양수산부도 지역사회와 함께 교류하는 열린 자세로 변해야 한다.
2025-11-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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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속의 재난, 현실이 되지 않도록”
2026년 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과 다름없이 후보들은 도시계획, 교통, 지역개발 등을 주요 의제로 삼겠지만, 필자는 오늘 ‘재난안전’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미래지향적인 공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왜 재난인가.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부산을 강타했을 때 기장군 정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해운대의 일부 해안도로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해 가을,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 인근에서는 낙석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그 이전에도 산사태와 도로 침하, 지하주차장 침수는 해마다 반복되었다.
이처럼 부산, 특히 해운대와 기장은 도시의 브랜드와는 달리 재난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다와 산이 인접하고 고층 건물과 밀집 주거지가 혼재하며 관광객까지 집중되는 이 지역은 자연재해와 도시재난이 한꺼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의 재난 대응은 아직도 사고 후 복구 중심이다. 더 늦기 전에, 예방 중심의 정책과 기술로 ‘프레임 전환’을 해야 한다.
첫째, 부산형 재난관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매뉴얼을 벗어나 지역 지형에 맞는 재난지도와 생활권 중심의 대응계획이 필요하다. 예컨대 침수 위험지역(좌동천, 온천천), 산사태 위험지역(반송, 일광), 해일 위험지역(송정, 연화리) 등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재난관리 생활권 구역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재난관리 시민협의체(가칭 ‘위기 설계단’)를 만들어 주민, 소방, 경찰, 전문가가 함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재난은 공무원이 혼자 막을 수 없다.
둘째, AI 기반 예측·경보 시스템을 지역 현장에 시범 적용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지 산업에만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장 정관 하천이나 해운대 좌동천에 AI 기반 침수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면, 실시간 기상·하수관거·해수면 정보를 분석해 자동 경보를 울릴 수 있다. 드론, CCTV, IoT 센서를 연결하면 낙석, 균열, 산사태 징후까지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자 위치 기반 AI 경보 앱까지 더하면, 고령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도 즉시 알림과 대피 유도가 가능하다.
셋째, 재난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부서마다 따로 관리되던 정보를 통합하고,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부산시와 해운대구·기장군의 모든 위험요소와 사고 이력, 예방시설 상태, 기상자료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AI 대시보드를 도입하고, 이를 웹 기반 플랫폼으로 연동시켜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단지 예보와 경보만이 아니라, 선거 이후 실행력 있는 재난 행정 평가 도구로도 작동할 것이다.
넷째, 시민참여형 예방 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상징적 대피 훈련만으로는 실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시민이 직접 앱 경보를 받고, 상황을 판단하고, 이웃을 구조해 보는 시나리오 기반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동(洞) 단위로 재난 자율대 조직을 꾸리고, 이들을 AI 안전통신망과 연계하면 대피명령 전달, 고령자 확인, 구조 요청까지 연결될 수 있다.
다섯째, ‘회복도시 해운대·기장’이라는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만들자.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해운대가 단지 영화의 도시를 넘어, 재난을 이겨내는 도시로 세계에 알려질 수 있다. ‘재난·기후위기 대응영화 특별전’을 개최하고, UN재난위험경감국(UNDRR)이나 록펠러 재난 회복도시 네트워크 등과 협력해 국제도시와 교류한다면, 부산은 아시아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첫 번째 선거가 되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 영화 속 해운대처럼 ‘뒤늦은 후회’로 기억될 수 없다. 정치가 진심을 갖고, 시민과 기술이 함께 설계할 때, 우리는 재난을 이기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2025-11-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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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가덕신공항과 비전
2000년, 뉴밀레니엄으로 들어섰을 때, 부산은 ‘부산의 꿈’이라는 이름 아래 두 가지 큰 비전을 품었다. 첫째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가덕신공항 건설의 꿈이었고, 둘째는 산업 기반을 넘어 문화·창조의 도시로 성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미래상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약속이 어떤 현실로 다가왔는지 돌아보는 시간 앞에 서있다. 올해 APEC의 장면들은 이러한 성찰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번 APEC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세계 AI 혁신의 아이콘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치맥을 나누며 '깐부'를 외친 자리였다. 그는 한국을 ‘기술 동맹의 중심’이라 치켜세웠고, 치열한 세계 정치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지닌 가능성과 신뢰를 재확인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의 미래뿐 아니라 부산이 걸어가야 할 길도 다시 떠올렸다. 바로 협력·연대·상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건설 사업이 아니다. 그 자체가 연대의 도시 철학을 담은 상징적 공간이다. 부산·울산·경남이 각각의 이해를 넘어 하나로 연결되는 초광역 협력의 중심이며, 항만·물류·도시·관광이 한 흐름으로 움직이는 미래 행정의 ‘통합 플랫폼’이다. 지금 부산이 해야 할 일은 가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협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문화·환경·관광이 함께 움직이는 연결의 행정 패러다임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가덕신공항이 완공되는 날, 부산은 단지 하늘길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꿈꾸는 힘을 되돌려주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부산은 오랫동안 제조·항만 중심 산업구조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이미 AI·디지털·친환경 산업 중심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이번 APEC에서 강조된 '기술을 통한 국가 간 협력' 흐름은 부산 경제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가덕신공항과 북항 재개발 사업은 AI 기반 스마트 물류, 자율 운항 선박, 디지털 해양 산업 등 부산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미래 산업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이 글로벌 기술 기업, 연구기관, 스타트업과 연대하여 ‘연결 기반 경제도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부산은 더 이상 제조업 중심 도시의 정체성에 머물 수 없다. 청년 인재·창업 생태계·국제 기업 네트워크를 품을 수 있는 도시형 첨단 경제 허브가 되어야 한다. 도시의 품격은 문화에서 완성된다. 부산은 국제영화제, 바다·도시의 독특한 경관, 다층적 역사 등을 갖춘 가장 문화 잠재력이 큰 도시 중 하나다. 이런 지점에서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건립 논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부에서는 예산 문제나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관계를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논의가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부산 예술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퐁피두는 부산 예술을 대체하는 기관이 아니라 부산 예술을 세계와 연결하는 문화 확장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연착륙 후 부산 작가들이 참여하는 공동 기획전, 청년 예술가 국제 교류 프로그램, 부산 작가 해외 연계 등의 '상생 구조'를 함께 설계해 나가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단순히 시설과 예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철학이다. 그 철학은 지금 부산이 직면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모여야 한다.
가덕은 공항이자 협력의 상징이다. 북항은 혁신경제의 시작점이며, 퐁피두는 부산 예술의 확장 플랫폼이다. APEC에서 확인된 대한민국의 가능성처럼 부산의 미래도 연대·협력·상생의 철학에서 더욱 크게 펼쳐져야 하며 부산이 지향하고 있는 도시 철학과 닮아 있다. 부산의 꿈은 과거를 기념하는 꿈이 아니라, 미래세대에서 건네는 희망의 꿈이 돼야 하며, 부산다움과 세계를 연결해 도시문화가 생동감이 넘쳐나는 부산으로 만들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2025-11-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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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교의 맛과 향, 황남빵과 오감차가 빚은 K브랜드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북 경주와 부산을 세계 외교의 무대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행사였다. 그 기간 세계의 시선은 영남권으로 향했고, 예상치 못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경주의 ‘황남빵’과 부산의 ‘비비비당 오감차’다. 하나는 맛으로, 하나는 향으로 외교의 순간을 완성한 ‘두 개의 K브랜드’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을 받은 뒤 ‘맛있다’라고 언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남빵은 순식간에 외교의 상징이 되었다. 짧은 한마디가 지역의 전통빵을 세계적 브랜드로 바꿔 놓았다. 그 이후 황남빵 본점엔 긴 줄이 이어졌고, SNS에서는 ‘정상빵’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전통의 맛이 외교의 언어가 된 순간이었다.
또 부산의 대표 찻집 브랜드 비비비당은 지난 7월 경주 힐튼호텔에 입점하며 APEC 정상회의의 향기를 더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달 29일, 미국 대통령의 객실에는 비비비당 경주 힐튼점이 준비한 오감차(五感茶)가 웰컴 티로 올랐다. 그는 “향이 깊고 부드럽다”고 평했다. 짧은 멘트 하나가 다시 한 번 한국의 다도 문화를 세계의 뉴스로 만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브랜드가 경주 무대에서 한국의 향을 전한 것이다. 비비비당은 이후 ‘트럼프 찻상 세트’를 출시해, 그 외교의 순간을 관광 상품으로 확장했다. 외교의 찻잔이 관광의 체험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관광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외교의 장면은 사라지지만, 그 기억은 관광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황리단길과 불국사, 경주엑스포공원에 이어 부산의 누리마루 APEC하우스, 김해공항 내 미·중 정상회담장 ‘나래마루’까지. 영남권 전체가 ‘외교의 기억을 품은 관광지도’가 되고 있다. 이 공간들을 하나의 APEC 외교 루트로 연계한다면 ‘기억의 회의장’은 ‘체험의 관광길’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행사 기간 약 2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통역·교통·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했다. 그들의 참여와 시민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이번 APEC은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경북과 부산이 함께 만든 문화외교의 장’이 될 수 있었다.
외교의 순간이 시민의 손끝에서 완성되었고, 그 경험은 앞으로 지역 관광의 품격을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남빵과 오감차, 맛과 향으로 전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전통의 현대화’다. 두 브랜드 모두 지역의 문화와 미학, 환대를 담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했다. 이는 부산과 경북이 함께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관광 협력의 모델이기도 하다.
‘APEC맛과 향 시리즈’ 같은 공동 브랜딩을 추진한다면 영남권은 ‘외교의 도시이자, 미각의 도시’로 세계에 각인될 것이다. 2025년 APEC은 경북의 외교 무대이자 부산의 환대 무대였다. 황남빵의 맛과 오감차의 향이 만난 이 여정은 이제 ‘영남 관광의 이야기’로 다시 쓰이고 있다. 기억을 유산으로, 유산을 미래로, 그 여정의 시작은 여전히 따뜻한 황남빵의 달콤함과 비비비당 오감차의 향기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2025-11-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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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복된 수산업 홀대, 더 이상은 안 된다
지난 6월 3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가 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취임 후 6월 5일 첫 국무회의에서는 해양수산부를 신속히 이전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부산 3선 국회의원인 전재수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대한민국의 해운과 물류, 수산업 거점도시인 부산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해양수산부와 함께 산하 공공기관도 동반 이전한다는 계획으로 일부 지자체와의 지역 갈등과 정치적 논란이 불거졌지만, 대한민국의 글로벌 해양강국과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해서는 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압도적으로 커서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40여 년간 수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에서 계획하고 홍보하고 있는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개척, 해운산업 위기대응 펀드 확대 등 해운 관련 정책이 대부분이어서 수산업과 관련된 정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수산인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전달했지만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해운업에 집중되어 있는 정책으로 수산업이 홀대받고 있다는 것은 해양수산부가 존폐를 반복하는 기간 내내 나왔던 전국 100만 수산인들의 하나된 목소리였지만, 이재명 정부의 조직 개편을 살펴보면 수산업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수산업은 1차 산업으로써 농업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의 식량을 책임지는 풀뿌리 산업이며 30억 달러 이상의 수출로 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수산인들은 수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래전부터 수산 전담 차관 신설을 요청하였고,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도 청문회에서 수산 전담 차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25일 부경대학교에서 개최된 이재명 대통령과 전재수 장관이 참석한 타운홀 미팅에서조차도 수산업 발전과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없었으며, 필자 역시도 시간 관계상이라는 이유로 미팅이 형식적으로 끝이 나며 준비한 건의사항을 직접 전달하지 못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수산업은 현재 유례없는 위기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어족 자원이 급감하였고 동해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이제는 서해에서, 흑산도에서 잡히던 홍어가 이제는 군산에서, 제주도에서 잡히던 방어가 이제는 동해에서 어획되는 등 어종들의 서식지가 바뀌자 어선들의 조업지 역시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끝없이 상승하는 어업 경비와 현실과 맞지 않는 수산 정책들은 어업인들이 더 이상은 업무에 종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현실에 맞는 법 개정 등으로 수산업의 활성화를 지원해야 하는 정부이지만, 1953년 제정된, 70년도 넘은 수산업법은 오히려 규제에 규제를 더해 가면서 지금은 우리 수산인들을 옥죄고 있다. 현재 수산업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어선의 조업구역, 선박 톤수 제한 등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든 규제를 그대로 수산업법에 적용시킨 아주 낡은 법이기에 하루빨리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지금 수산업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이다.
제21대 정부에서는 위기에 처해있는 수산업을 반드시 살려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수산인들의 협조도 필수라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언제라도 적극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해운과 수산업의 균형있고 공정한 정책으로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온 수산업 홀대론을 이제는 꼭 종식시켜서 대한민국 수산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모습을 기대한다.
2025-11-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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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덕신공항 건설과 국가계약제도
가덕신공항은 부산 가덕도에 새로 조성되는 국제공항으로 기존 김해공항의 용량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 및 주변 지역의 교통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건설이 준비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 현황을 보면 2023년 648만 명, 2024년 895만 명, 국제선 화물은 출발 기준으로 2022년(6784t) 대비 2024년(5만 98t)에 약 7배 증가해 여객 이용은 물론 항공 화물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가덕신공항 입지 결정 시 많이 비교 검토된 간사이국제공항도 기존의 오사카 이타미공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확장해야 했으나 시가지 내에 위치하여 소음 민원, 주변 산악 지형으로 인한 비행안전문제, 토지 취득의 어려움 등으로 오사카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조성하여 20m의 연약지반을 개량하고 30m 높이의 상부토를 매립하여 해상 공항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준공 후 50년간 8m 침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건설하였으나 개항 당시 이미 8m가 침하하였고 현재도 매년 7cm씩 침하하고 있다. 2018년 9월에는 태풍 제비로 인해 공항 전체가 침수되며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87년 1단계 공사를 착공하여 1994년 개항할 때까지 8년의 공사기간 동안 30조 원 공사비가 40조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 공사 입찰 방식은 종합평가낙찰제, 일반경쟁입찰, 우선 협상에 의한 계약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가격, 일정, 품질 등의 계약조건 확정방식으로 계약되기에 단기간에 계획된 미흡한 기본계획이나 기본설계를 기초로 건설사가 실시설계하여 계약한다는 것은 건설사가 많은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전-마산간 복선 전철 건설사인 A사는 턴키방식계약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낙동강 연약지반 통과 구간에서 연약지반 파괴 현상이 나타나 복구공사에 1조 원 이상의 추가공사비를 부담하고 5년 이상의 준공기한이 미루어져 국민 불편과 함께 기업의 손실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종합평가낙찰제는 참여 시공사가 짧은 시간에 조사 설계하여 소수의 평가위원들이 밀실에서 평가하여 낙찰자를 선정함으로 설계 도면의 적정성, 공법의 타당성, 시공성이 기술자문회의를 통하여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계약조건이 확정되기에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여러 가지 사유로 계약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간사이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 대부분 해상공항은 설계기간 제외하고 7~8년간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연약지반 공사의 현실은 시공 중에 현장사고 발생 또는 공사 후 하자발생이 다반사적으로 일어나 설계자, 시행자, 도급자 간의 분쟁과 공사사고, 부실공사, 국고낭비, 노동력낭비, 하자분쟁, 민원 발생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첫째, 연약지반 공사에 따른 설계 품질의 불량, 둘째, 현장지반 조사 시험자료의 불비, 셋째, 비전문가의 설계 수행, 넷째, 설계심의위원의 검토 불비, 다섯째, 계획시행자의 소홀한 계획 추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공사 계약 전에 실시설계를 충분히 검증하고 부산신항 건설, 거가대교 건설 과정에서 연약지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다수의 지역 전문가 자문을 거치는 것이 사업비와 공사기간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제언한다.
2025-11-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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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원 조세체계, 실질적 조세형평 실현해야
요즘 내항 선원들 사이에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현재 외항 선원은 월 500만 원까지 근로소득이 비과세되지만, 내항 선원은 월 20만 원의 승선 수당만 비과세되어 무려 25배의 차이가 난다. 바다 위에서, 선박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며 동종 동질의 일을 하지만 세금은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세법은 법률주의와 평등원칙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내항 선원은 단지 ‘항로의 구분’이라는 행정적 기준에 따라 외항 선원과 다른 세제 적용을 받고 있다. 이는 조세 법률주의가 보장해야 할 실질적 형평을 훼손하는 것이다.
외항 선원에 대한 비과세 확대는 과거 수출입 중심 해운정책의 산물로,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항에 세제 혜택을 집중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내항 해운은 더 이상 부차적인 산업이 아니라 전국 480여 유인 도서를 연결하며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국가 해상 교통체계의 마지막 연결 고리이자 생명선이다.
내항 선박들은 ‘비상 대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비상사태 시 전략물자 수송의 핵심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는 국가 해상물류와 안보를 지탱하는 최후의 인프라라는 뜻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공성과 국가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세제 형평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정책의 역진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항 해운 현장의 현실은 심각하다. 내항 선원 중 60세 이상이 60%를 넘어섰고, 젊은 인력은 불공정한 처우와 낮은 실수령액 탓에 바다를 떠나고 있다. 결국 내항 해운은 노후 선박과 고령 인력에 의존하며, 이 악순환의 근저에는 바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제도적 차별이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한도를 월 300만 원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헌법적 형평 회복의 문제이며, 산업정책 측면에서는 인력 유입과 세대 교체를 유도하는 구조개선 장치다. 공정한 조세제도 없이는 해운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국가 해양력의 기반도 유지되기 어렵다.
여야는 이미 제21대 대선 당시 ‘선원 소득 비과세 범위 확대’를 공약했고,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국회 청문회에서 그 약속을 재확인했다. 물론 조세 당국에서 볼 때는 외항선원의 경우 국외 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고 내항 선원의 경우 국내 근로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원이라는 명목만으로는 내항 선원에게 동일한 비과세 혜택을 주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선원 근로에 대한 이해와 실질적 조세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종 동질의 근로에 대해서 비과세 혜택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은 균형과 형평을 지향할 의무가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확대는 공정을 바로 세우는 법의 책무이며, 내항의 바다를 다시 움직이게 할 정의의 출발점이다. 공정한 세제 개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항 해운이 다시 숨을 쉬기를 바란다.
2025-11-09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