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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결과물이 닮아가는 시대
“작곡가의 90퍼센트가 AI를 쓰는 것 같아요.” 작곡가 김형석이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한 체감이다. 창작 현장에서 AI가 얼마나 널리 쓰이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키사스’ 캠프에서도 아이들은 AI로 음악을 만든다. 다만 곧바로 AI에 음악을 주문하지는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같은 주제를 놓고 읽고 토론하며 에세이를 쓴다. 그 에세이를 가사로 옮긴 다음에야 AI 도구를 쓴다. 김 작곡가는 AI를 쓰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와 기본 구상은 사람이 먼저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성형 AI는 서툰 생각을 그럴듯한 결과물로 바꾸는 문턱을 낮췄다. 단 몇 줄의 주문으로 글과 음악, 그림을 얻을 수 있다. 표현 기술이 부족해서 이런 것들을 시도하기조차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변화다. 그런데 결과물이 좋아졌다고 해서 만든 사람의 생각도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2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연구가 눈길을 끈다. 연구진은 짧은 소설을 쓰는 참가자들을 AI의 도움 없이 쓰는 집단과 AI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집단으로 나눴다. AI의 도움을 받은 작품은 창의성과 완성도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원래 창의성 수준이 낮았던 참가자에게는 효과가 더 컸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들을 놓고 비교해 보니 AI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들이 AI의 도움 없이 쓴 이야기들보다 서로 더 비슷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2025년 발표한 연구도 있다. 생성형 AI를 업무에 쓰는 지식노동자들이 보고한 활용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AI에 대한 확신이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덜 하는 경향이, 본인 능력에 대한 확신이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더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이런 연구를 음악이나 아동 교육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AI가 사고력을 떨어뜨린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만든 사람이 깊이 생각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은 알게 한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유창한 글을 써낸 학생이 그 내용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글만으로는 알 수 없다. AI가 완성도를 높여줄수록 왜 그 주제를 골랐는지, 자신의 어떤 경험을 반영했는지, 어떤 이유로 결과를 고쳤는지가 중요해진다. 가르치고 평가하는 쪽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져야 한다.
남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남의 표현을 따라 배우는 과정도 필요하고, 비슷하더라도 자기 생각일 수 있다. AI를 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AI의 제안을 보고 난 후 자신의 생각이 더 분명해지기도 하고, AI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원하는 방향을 찾기도 한다. 다만 결과물만으로는 그 과정들을 거쳤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키사스 캠프의 활동 순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들이 먼저 썼던 글은 AI가 내놓는 음악을 고를 때 기준이 될 수 있다. 듣기 좋은 곡인지를 넘어서 내가 원래 하려던 이야기에 어울리는 곡인지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닮아가는 시대, 잘 만든 결과물만으로 잘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2026-10-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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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부산은 청년에게 야망을 심어줄 수 있나?
부산지역 대학들은 2027학년도 대학 수시모집에서 꽤나 고무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거점 국립대인 부산대가 11.55대 1의 높은 경쟁률로 굳건한 선호도를 증명했고, 국립부경대와 국립한국해양대 역시 각각 8.48대 1, 7.95대 1을 기록하며 돋보이는 선방을 해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흉흉한 위기감 속에서 만들어낸 값진 성과다. 이들 대학이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산대의 1000억 원 규모의 패키지 지원 대학 선정, 지역 국립대의 등록금 0원 정책,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굵직한 이슈가 자리하고 있다.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수험생들에게 미래를 향한 일말의 희망을 심어준 셈이다.
이러한 희망의 연장선상에서, 정부의 대학 지원 사업도 방향을 틀었다. 기존 ‘라이즈(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이 최근 ‘앵커(ANCHOR·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정책명을 재정립한 것이다. 이름 그대로 대학을 지역 발전과 혁신의 ‘앵커(구심점)’로 굳게 내리겠다는 의지다.
지자체에 대학 지원 권한과 예산을 대폭 넘겨 대학이 지역 산업과 밀착 연계하도록 돕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청년들의 ‘정주’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지역에서 배우고 자란 인재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앵커(닻)를 지역에 단단히 내릴 수 있는 분위기를 대학을 중심으로 완성해 보겠다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대학 문을 나서는 다음부터다. 대학을 지역의 앵커로 삼아 정주 여건을 조성하고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든다 한들, 가장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 있다면 그 닻은 넓은 바다가 아니라 모래밭에 내린 것에 불과하다.
결국 앵커 산업의 단단한 토대는 바로 ‘일자리’다.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다. 지금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문화 시설이나 캠퍼스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당장 내일을 담보할 밥벌이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내내 혁신적인 교육을 받고 풍족한 지원을 누렸더라도, 졸업 후 일할 곳이 없다면 그들은 결국 일자리를 찾아 익숙한 고향을 등지고 짐을 싸서 서울행 기차에 올라야만 한다.
그래서 많은 야망을 가진 청년들이 서울로 간다. 슬프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냉혹한 현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부산의 넘버원’은 안타깝게도 ‘전국의 넘버원’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낯선 환경에 부딪히고 바닥부터 다시 적응해야 한다면, 애당초 기회와 자본이 풍족한 수도권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지역 청년들에게 어찌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등록금 0원’은 순간 매력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닐 수 있는 셈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가 블랙홀처럼 모든 인재를 빨아들이는 동안, 지역의 딜레마는 치명적으로 깊어진다.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구조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미안하지만 야망이 작은 자만 남게 될지 모른다.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하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그들이 꿈을 펼칠 무대인 기업과 산업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대학에 지원만 늘린다면 그것은 거대한 희망 고문 혹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는 곧 지역 사회가 청년들에게 ‘소년들이여, 야망을 갖지 말라(Boys, don‘t be ambitious)’고 강요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26-10-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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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사건 빨리 끝내야만 유능한 경찰?
드디어 그날이 왔다. 경찰이 수사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그 결과까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 수많은 논란 끝에 마련된 새 형사소송법은 지난 2일부터 현실이 됐다. 한 번도 가본 길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전망도 난무했다. 심지어 “10월 2일부터 범죄자 천국이 되는 세상”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튀어나왔다. 이 같은 우려의 중심에는 1차 수사를 책임져야 할 경찰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사건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피해자를 도우려는 경찰 수사관들이 다수라고 믿는다. 지난달 ‘새 형사사법체계 대혼란’ 보도(부산일보 지난달 22일 자 1면 등 보도)를 위해 취재진이 만나 인터뷰했던 복수의 수사관들이 그랬다. 한 수사관은 말했다. “지금 제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는 사건이 25개 찍혀 있어요. 토요일마다 나와서 일하고 있죠.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사건에 매달리면 ‘번아웃’이 옵니다.”
이 수사관은 기자에게 거의 하소연에 가까운 속내를 계속 털어놨다. “힘들어도 재미와 보람이 있어 그동안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제도 변화와 조직 대응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가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다른 수사관들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력은 부족했고, 숙련된 수사관들은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 여기에 새 제도가 몰고 올 업무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현장의 불안은 한층 커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경찰 수사 불신을 거론하기에 앞서, 그들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수사해왔는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부족한 일손에 더해 수사관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사건 기한·처리율 중심의 업무평가다. 복수의 수사관 증언에 따르면 현장에는 사건의 실체를 파고드는 것보다 사건을 빨리 종결하는 수사관이 유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공개된 감사원의 ‘경찰청 및 서울·부산경찰청 정기감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는 한 팀장급 경찰관의 발언을 이렇게 전한다. “사건을 대충대충 끝내야 우수한 팀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오히려 수사 완결성을 높이려 계속 수사지휘를 하다 사건 처리가 늦어지면 무능력한 팀장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또 다른 팀장급 수사관도 “수사부서 팀장 지휘역량 평가지표를 보면 개별 사건을 꼼꼼히 살펴볼 이유가 없다. 하위 20%가 되지 않으려면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고 독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가지표에는 수사처리기간과 6개월 이상 장기사건 비율 등이 포함된다. 새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이제 보완수사마저 기존 3개월에서 원칙적으로 1개월 안에 마쳐야 한다. 수사관의 숙련도와 사건의 난이도는 제각각인데, 시간표는 갈수록 촘촘해지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과연 충실한 수사가 지속될 수 있을까.
새 형사소송법 시대에 불거진 문제를 풀기 위해 백가쟁명식 처방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경찰 내부에서 당장 손댈 수 있는 것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인력과 예산 확충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경찰 스스로 손볼 수 있는 것은 ‘빨리 끝낸 수사’를 좋은 수사로 여기는 평가방식이다. 전문가들 또한 사건 난이도와 성격에 따른 가중치, 정성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범죄 피해자가 원하는 지점도 결국 같다.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과 피해를 끝까지 들여다보고 제대로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좋은 수사는 빨리 끝낸 수사가 아니라, 끝까지 제대로 들여다본 수사여야 한다.
2026-10-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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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삼성중공업이 쏘아올린 'N% 성과급'
삼성중공업이 조선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제’를 도입한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3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올해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58.78%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핵심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재원을 기존 경제적부가가치(EVA)의 20%에서, 영업이익의 10%로 변경하는 것이다. 새 성과급은 올해 OPI부터 적용해 내년 초 지급한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이른바 ‘N% 성과급’이 인공지능(AI) 열풍을 등에 업고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도체 업계를 넘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요즘 잘 나가는 조선 업계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뉴노멀’에 연관 업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친환경 고부가 선박 수요 증가와 마스가(MASGA, 한미 조선산업 협력 프로젝트) 시너지 등으로 모처럼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지금, 너도나도 ‘우리는?’ 이라는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업계 맏형 격인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영업이익 30%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조선 빅3로 손꼽히는 한화오션 노조 역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핵심 의제로 ‘성과급 제도 개선’을 내세웠다.
하지만 역대급 성과급을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려면 이자 비용이나 법인세를 내기 전부터 직원 몫을 만들어 둬야 한다. 영업이익은 흑자지만 만약 예상치 못한 비용으로 순손실이 발생해도 성과급을 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규모 투자를 고려하는 현행 EVA와 달리 영업이익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전문가들은 절대 이익 규모를 키우려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는 무관심한 인센티브 구조가 확립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갈등과 비용 역시 상당하다. 실제 조선 업계의 경우 성과급 논쟁이 파업과 핵심 생산설비 가동 중단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1일부터 전 조합원 대상 부분 파업을 계속하며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화오션 노조는 4~7시간 부분 파업에 이어 핵심 생산설비인 골리앗 크레인까지 멈춰 세웠다. 이를 두고 합법을 내세운 노조의 쟁의행위가 생산 현장을 넘어 기업 경영과 협력사, 지역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조선업은 수많은 공정과 협력사가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산업이다. 이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기업과 협력사 그리고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이는 향후 추가 수주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데다, 조만간 본격화 할 마스가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까지 나서 ‘기업이익의 일정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것은 의무적 교섭 대상이나 조정·쟁의행위 대상이 아니다’고 선 그은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성과를 낸 임직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과실을 어디까지,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사회적 인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삼성전자 파업 사태에서 보듯 요구의 수준이 상식선을 넘어서고 기업의 미래를 볼모로 잡는다면 안팎의 시선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라는 지역 사회 목소리 역시 외면해선 안 된다.
2026-09-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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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말
먼저 답을 내놓았다. 비교적 기다렸던 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헌법상 불가능하다”며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 18일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질문도 받기 전에 밝힌 입장이었다. 뒤늦은 감이 있어도 예전보다 말이 선명했다. 큰 논란 하나가 어느 정도 정리된 순간이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논란을 자초했다. 모호한 입장이 문제였다. 국민은 해석이 필요 없는 말을 원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경고등이 켜진 시점이었다. 이 대통령이 ‘연임 개헌’에 욕심을 낸 게 맞다면, 미련을 버릴 때란 예상이 많았다.
어차피 ‘개헌 후 연임’은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 버려도 문제없는 카드란 뜻이다. 현직 대통령은 헌법에 도전해야 한다. 헌법 제128조는 대통령 임기와 관련한 헌법 개정을 다루는데,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일각에선 개헌을 두 번 하면 연임이 가능하단 주장도 있는데, 국민 투표가 필요한 개헌은 국민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개헌 의결 정족수인 국회의원 200명 확보도 험난한 과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1명. 개혁진보 4당 소속 18명과 진보 성향 무소속 7명을 모두 설득해도 역부족이다. 국민의힘 109명, 개혁신당 3명, 무소속 한동훈 의원 중 최소 14명이 이탈해야 한다. 이 대통령 연임 길을 열어줄 개헌이 이들에게 통할까. 그럴듯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진보 진영 186명을 하나로 만드는 것부터 솔직히 회의적이다.
개헌에 성공해 ‘4년 중임제’를 도입해도 변수는 있다. 당장 여당이 차기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계파 갈등이 첨예한 만큼 다른 인물이 대권 주자가 될지도 모른다. 개헌은 ‘바늘구멍에 낙타 밀어 넣기’인데, 위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연임 전혀 생각 없다’고 말한 건 희생이 아니다. 크게 잃을 게 없는 선택이었다.
대통령은 ‘연임 개헌’에 꽤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반전을 노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잃을 게 있는 듯한 ‘공소 취소’ 관련 답변에선 달랐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사건들 공소 취소 추진 논란을 두고 “특검 권한 중 기소 사건들에 대한 이송·처분에 관한 조항들은 삭제하고, 진상 규명에만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이 대통령은 논란의 불씨를 다시 키웠다. 공소 취소권을 없애 달라면서도 진상 규명 필요성을 부각했다. 곧장 화답한 여당은 ‘조작기소 특검법’ 제정에 다시 의지를 보였다. 대통령이 임명할 특별검사가 대통령 사건들이 ‘조작 기소’된 게 아닌지 수사할 길을 열려고 한다. 답을 정해놓은 특검이 온다면 ‘셀프 면죄부’를 위한 기반을 닦을 수도 있다.
특검법 제정부터 도입까지 정국은 혼란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야권 반발과 사회적 혼란은 심화하고, 국정 동력은 급속히 떨어질 수 있다. 조작 기소로 결론이 나오고, 공소 취소까지 밀어붙이면 나라는 반쪽이 되기 쉽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이 좀 더 확실한 입장을 밝혔으면 했다. 기자회견에서 기대한 건 최소한 ‘특검 수사 대상에 내 사건들은 빼달라’는 말이었다. 적어도 자기 사건에서 손을 떼고, 발목을 잡히지 않길 바랐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의를 밝혔다. 다시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석인 법무부 장관부터 공소 취소가 연상되지 않는 인선을 보여줄 때다. 공소 취소에 한발 더 나아간 입장을 밝힐 시간도 아직 남았다. 확실히 내려놓을 때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2026-09-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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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올해도 롯데는 왜 안되노?
20경기가 남았다. 확률은 0.1%까지 떨어졌다. 여기서 0.1%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5위에 등극해 가을 야구에 진출할 확률을 의미한다.
“롯데는 왜 안 되노?”라는 질문을 롯데 자이언츠 담당 기자를 하며 가장 많이 받는다. “잘 못 치고, 잘 못 던지고, 잘 못 잡아서 아닐까요?”라는 말로 상황을 모면한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홈 경기를 직접 보며 여러 기사를 썼지만 사실 직관적으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막아야 할 상황에서 막지 못한 투수진, 점수를 내야 하는 기회에서 침묵하는 타선, 팽팽한 승부의 김을 확 빼는 엉성한 수비. 그 모든 것이 함축된 결과가 안타깝게도 지금 롯데의 현실이다.
‘올해는 다르다’는 희망이자 바람 같았던 구호는 올해도 틀렸다. 시즌 전 야구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롯데는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지난 겨울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은 없었고 전지훈련 불법 게임장 사태로 주전급 선수들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같은 예상을 깨기 위해선 ‘반전’이 필요했다. 신인급 선수의 활약, 예상치 못한 외국인 선수의 활약 같은 것 말이다.
반전은 정반대로 일어났다. 기대했던 베테랑과 지난해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이 동반 부진하면서 롯데는 시즌 내내 완전체 전력을 꾸리지 못했다. 그나마 선발 투수 김진욱, 포수 손성빈, 유격수 전민재가 올 시즌 자리를 잡은 건 소소한 위안거리다.
롯데는 2024년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혔던 김태형 감독을 3년 24억 원의 계약으로 모셔왔다. 9년 연속 두산 베어스를 이끌고 한국 시리즈를 갔던 최고의 감독이었다. 하지만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까지 김태형 감독은 가을 야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24년 ‘윤나고황’ 윤동희, 나승엽, 고승민, 황성빈)으로 불리는 신진급 야수들이 분전했지만 투수진이 아쉬웠다. 2025년에는 8월까지 3위를 달렸지만 8월 돌연 12연패 끝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올해는 5위 근처도 못 가보고 시즌이 끝나간다.
20경기를 남겨둔 지금, ‘롯데는 왜 안 되노?’라는 질문은 ‘롯데 감독은 어찌 되노?’라는 질문으로 꼬리를 문다. 2024년(66승 4무 74패), 2025년(66승 6무 72패), 2026년(14일 현재 53승 2무 69패) 3년간 승률 5할을 넘기지 못한 감독. 당연히 경질이 수순이지만 롯데 팬들이 이같은 질문을 하는 데는 ‘감독이 바뀐다고 롯데가 바뀌나’라는 아주 강한 그동안의 실망감이 묻어 있다.
변화를 해야 하는 건 자명하다. ‘다음 감독은 누구?’라는 논의보다 더 큰 논의가 필요하다. 공수주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고 어떤 선수를 영입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야구를 해야 할지 같은 야구단의 방향성 말이다.
방향을 잡은 뒤 그에 걸맞는 사령탑을 모셔야 한다. 2001년~2007년 암흑기를 끝냈던 건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였다. 감독 교체라는 하나의 방편을 넘어 야구단 전체의 변화를 해도 가을 야구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당대 최고라 불렸던 감독 한 명이 팀을 바꾸는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3년간 롯데 팬들은 확인했다.
롯데의 가장 큰 암흑기로 불리는 2001~2007년을 롯데 팬들은 ‘비밀번호 ‘8-8-8-8-9-7-7’로 부른다. 숫자는 정규 시즌 순위를 뜻한다. 최근 9년을 돌아보면 숫자는 더 참혹하다. 7-10-7-8-8-7-7-7-?이다. 내년마저 가을 야구에 실패하면 10년 연속 실패로 한국 야구 역사상 최장 기록이 된다.
2026-09-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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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사건 기록이 식는다" 수사청·기소청 사이 '31km 공백'
검찰청이 사라진다. 1948년 출범 이후 78년 만이다. 검사가 직접 수사해온 72년의 관행도 다음 달 2일로 끝난다. 새로 출범하는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유지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수사를 나눠 맡는다. 그런데 이렇게 큰 역사적 전환 앞에서, 정작 묻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새로 생기는 기관들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떻게 협력하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부산을 보면 그 질문의 무게가 실감난다. 전국 5개 지방중수청 중 유일하게 부산청은 연제구 법조타운과 뚝 떨어진 강서구 명지동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는 약 31km.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인원 대비 필요 면적을 산출해 사용할 층수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수청의 입지가 검사와의 거리가 아니라 확보 가능한 면적을 기준으로 정해진 셈이다. 압수수색영장은 검사의 신청으로만 법관이 발부하도록 헌법 제12조와 16조에 못 박혀 있다. 수사는 중수청이 하지만 영장 청구는 여전히 검사, 즉 공소청의 몫이다. 수사와 기소를 아무리 종이 위에서 갈라놓아도 영장이 필요한 순간엔 결국 검사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만큼은 이번 개혁으로도 손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새 수사기관의 위치를 정할 때 검사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빨리 오갈 수 있는지가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변수였을 것이다. 헌법이 정한 원칙조차 흔들지 못하는 절차를 정작 행정적 판단 하나가 무력화시킨 셈이다. 물론 서류 자체는 전자시스템으로 오갈 수 있지만, 물리적 증거 이송이나 구속영장 협의 등 현장 절차까지 대체할 수 는 없다.
여기에 인력과 공간 문제까지 겹친다. 세무서와 상가가 함께 들어선 민간 건물 9개 층을 빌려 쓰다 보니 압수물 관리와 동선 분리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산지검 내부에선 ‘입지 때문에 중수청 지원이 꺼려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모든 게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던 중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수사와 기소 기관이 서면으로만 소통하게 되는 상황을 ‘사건 기록이 식는다’고 표현했다. 수사는 증거가 뜨거울 때 쏟아져야 하는데, 서류가 기관 사이를 오가는 시간만큼 진술의 신선도도, 수사기관의 의지도 식는다는 것이다. 그가 다뤘던 한 강력사건에서 피해자가 뒤늦게 의식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진술이 나왔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사건 기록이 다시 여러 관문을 거쳐야 했다. 그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책임 소재를 꼽았다. 훗날 무죄가 나거나 국가배상이 문제될 때 “수사가 부실했다”와 “공소유지를 못 했다”는 책임 떠넘기기만 남고, 정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는 사람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설계된 조직표는 완결돼 보인다. 그 표가 지역에 내려오는 순간 거리와 건물, 사람이라는 현실과 부딪힌다는 것을 이 표를 만든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법무부가 지난 4일 발표한 공소청 직제안에 따르면, ‘중대범죄전담부’ 29개 중 5개 부서가 지방중수청 합동수사과와 짝을 지어 영장 신청 단계의 법률 판단과 증거수집 의견을 전담한다. 하지만 부산처럼 입지부터 멀어지면 이러한 전담부서의 존재도 무색해진다.
개청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31km의 거리를 메울 대책은 여전히 부재하다. 조직표를 다듬기보다 현장의 간극을 좁히는 조치가 시급하다. 기록이 식고 책임이 흩어지기 전에 실질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2026-09-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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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하명'이라는 프레임의 수명
2016년 3월 울산 남구의 한 낡은 치안센터. 한국의 FBI라 불리던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임시 사무실을 차리자 지역 정·관계가 술렁였다. 기초단체장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청와대발 첩보가 하달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당시 대통령과 울산 단체장들이 같은 당이어서 파장은 크지 않았다. 얼마 뒤 특수수사과가 조용히 철수하며 소문도 사그라졌다.
돌이켜보면 그 봄에 울산을 얼어붙게 한 건 사건의 실체보다 기관의 ‘특수’한 간판이었다. 수사기관이 내려오면 실체보다 소문이 먼저 자라고, 거기에 ‘청와대’가 얹히면 이야기의 몸집이 달라진다.
정권이 바뀐 2017년 말, 울산 관련 문건이 또 경찰청에 전달됐다.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담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첩보였다. 훗날 정국을 흔든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출발점이다. 같은 재료라도 정권이 바뀌면 소문이 아니라 프레임이 된다.
지난 8월 14일 법무부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가 이 사건을 진상 규명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법원의 무죄 확정 1년 만에 검찰권 남용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이 시점에서 짚어 볼 대목은 이 사건을 소비해 온 우리의 방식이다. 정치권에서 쓰던 ‘하명’이라는 단어는 검찰의 공소장을 거치며 사건의 공식 프레임으로 자리 잡았다. 언론과 여론이 확성기가 됐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은 송철호 전 시장과 황운하 의원 등 핵심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8월 이를 확정했다. 수사 청탁을 뒷받침할 핵심 증인의 진술이 신빙성을 잃은 데다 공모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무죄는 아니었다. 송병기 전 울산시 부시장은 자료 유출과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재판부가 ‘하명수사’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근거는 여럿이다. 먼저 ‘속도’다. 청와대 ‘하명’이라면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데, 첩보는 경찰청을 거쳐 울산경찰청에 이첩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절차’도 하명 논리와 어긋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들은 청와대 관여 없이 독자적 판단으로 수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진술했다. 울산경찰청 실무진 상당수도 첩보 출처가 청와대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했다. ‘순서’도 맞지 않았다. 청와대 첩보가 울산에 닿기 넉 달 전 이미 관련 고발장이 접수된 상태였다. 청와대 문건이 수사의 방아쇠였다는 밑그림이 흔들린 대목이다. 청와대 개입의 정황으로 지목된 행정관들의 울산행도, 재판부는 당시 울산 고래고기 사건을 둘러싼 검경 갈등의 실태 파악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는 여전히 이 사건을 ‘하명수사 의혹’으로 기억한다. 무죄 확정 기사는 순식간에 소비된 반면, 6년간 반복된 ‘하명수사’ 네 글자는 강한 인식으로 굳었다. 검찰권 남용을 따져 묻겠다는 이번 조사조차, 공식 사건명이 ‘문재인 정부 울산시장 선거개입 하명수사 사건’이다. 프레임의 수명이 판결의 수명보다 길고 질기다.
그래서 이번 진상 조사에 눈길이 간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는 반드시 복기해야 할 과제다. 다만 이번 조사는 황 의원이 직접 진상규명을 요청해 선정된 사안이다. ‘하명’이 그랬듯 그 검증 역시 ‘보복기소’라는 또 다른 작명으로 답을 정해두어서는 안 된다. 이름 짓기는 쉽고, 안개를 걷어내는 일은 늘 더디기 때문이다.
2026-08-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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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햄버거집도 "아침식사 됩니다"
최근 부산 강서구 대저동을 지나는데 현수막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 큰 글씨로 ‘아침식사 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현수막만 보면 영락없는 백반집이다. 밥과 국에 김치, 달걀말이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현수막이 달린 곳은 뜻밖에도 ‘버거킹’이었다.
‘아침식사 됩니다’는 한국 식당에서 익숙하게 보던 말이다. 이른 아침 문을 여는 국밥집이나 기사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메뉴 사진도 긴 설명도 없지만, 아침밥 먹을 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문구만 보고도 식당을 정할 수 있다.
이 업체가 이런 현수막을 내건 것은 최근 아침 메뉴를 강화하면서다. 아침 메뉴 판매 매장을 두 배로 늘리고, 크루아상 사이에 달걀과 햄, 치즈 등을 넣은 ‘크루아상위치’를 내놨다. 크루아상과 샌드위치를 합친 이름이다.
1983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뒤 해외 매장에서 오랫동안 팔린 아침 메뉴라고 한다. 그런 음식을 한국에 내놓으면서 고른 말이 ‘아침식사 됩니다’였다. 매장 앞에는 ‘신속’ ‘빨라요 맛있어요’ 같은 문구를 적은 입간판도 세웠다.
다른 햄버거 업체들도 아침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맥도날드는 지난 6월 닭가슴살 패티를 넣은 새 아침 메뉴를 출시했다. 롯데리아도 올해 들어 아침 메뉴 판매 매장을 두 배가량 늘렸다.
그런데 통계는 정반대다. 질병관리청의 ‘2024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아침식사 결식률은 35.3%로, 2015년 26.2%보다 9.1%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19~29세는 62.1%가 아침을 거른다.
아침밥을 안 먹는 사람이 이렇게 늘었는데 외식업체들은 왜 아침 메뉴를 늘릴까. 외식업계는 1~2인 가구 증가와 간편한 아침식사 선호를 이유로 꼽는다. 집에서 차려 먹을 여건이 안 되거나 시간이 없어서 거르던 것이지, 출근이나 등굣길에 몇 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집밥의 빈자리’를 ‘간편식의 자리’로 바꾸는 셈이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파고들 때 햄버거를 아침밥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다. 글로벌 햄버거 업체는 여기서 새 메뉴보다 익숙한 말을 앞세웠다. 그동안 외국 음식의 현지화라고 하면 맛과 재료를 먼저 떠올렸다. 불고기버거와 고구마피자처럼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더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 자체는 그대로 두고, 그 음식을 부르는 언어와 맥락만 한국 식당의 것을 빌려왔다.
글로벌 기업이 현지의 말을 가져다 쓴 사례는 일본에도 있다. 웨하스에 초콜릿을 입힌 과자 ‘킷캣’은 일본에서 수험생에게 주는 합격 기원 선물로 통한다. ‘꼭 이길 거야’라는 뜻의 규슈 사투리 ‘킷토 카츠토’와 발음이 비슷해서다. 소비자가 발견한 말장난을 네슬레가 마케팅으로 키웠다면, 이번에는 기업이 먼저 현지의 화법을 들고나왔다는 차이가 있다.
이 햄버거 업체의 전략도 일단은 통한 것 같다. 메뉴 확대 뒤 일주일간 아침 메뉴 매출은 이전보다 약 다섯 배 늘었다. 글로벌 브랜드도 한국에서 아침 장사를 하려면 국밥집 말투가 더 잘 통하는 모양이다. 다만 익숙한 문구에 이끌려 들어간 손님이 받아 드는 것은 백반이 아니라 햄버거다. 우리 아침 식탁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26-08-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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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리센느 원이와 고교학점제
요즘 많은 이들의 알고리즘을 걸그룹 ‘리센느’가 장악 중이다. 엄청난 역주행 신화로 인기 음원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에 3곡이나 이름을 올리고 있다. 리센느 열풍의 시작은 리센느 리더 ‘원이’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경상도 사투리로 팀 동료 미나미와 “거제~야호” “오이쉬이!(맛있다라는 뜻의 일본어 오이시를 경상도 사투리처럼 발음하는 것)”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그는 경남 거제 출신이다.
원이가 데뷔 전 아이돌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수시로 부산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고군분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전문 보컬 트레이닝이나 댄스 학원 등 꿈을 향한 도전에 필수적인 핵심 인프라가 그가 나고 자란 거제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는 원이의 매력 포인트가 됐지만 화려한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 지역 인프라 격차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은 비단 연예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 현장의 가장 뜨거운 현안인 ‘고교학점제’를 마주한 지역 소규모 고교들의 현실 역시 이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올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의 취지 자체는 대단히 이상적이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듣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규모 학교 학생들에게 완벽한 ‘선택의 자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다양한 심화 과목을 가르칠 전문 교원도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최소 수강 인원조차 채우기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이나 일부 학군지에 위치한 학생 수 300명 이상의 대규모 일반고가 30여 개의 다채로운 선택 과목을 마련할 때, 중소규모 학교는 10여 개 남짓한 기본 과목을 간신히 열고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대학 입시에서 어떤 심화 과목을 이수했는지가 정성 평가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과목 개설 풀 자체가 좁은 지역 소규모 학교 학생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이미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올해 고1부터 적용된 ‘내신 5등급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상위 10%까지 1등급이 주어지는 새로운 평가 체제에서는 전체 인원이 많아 1등급 방어선이 두터운 대형 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필연적이다. 실제로 최근 고입 통계를 보면 대규모 학교 진학자는 급증한 반면 중소규모 학교 진학자는 크게 감소했다. 부산만 하더라도 300명 이상 대규모 일반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원하는 과목을 듣기 위해서라도, 대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살던 동네를 떠나 소수의 대형 고교로 쏠리게 되는 양극화가 빠르게 고착화되고 있다.
꿈을 좇는 거제 소녀가 어쩔 수 없이 매주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던 것처럼, 우리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대형 학교로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돌아볼 때다. 고교학점제가 오히려 지역 교육의 격차를 벌리는 고교양극화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촘촘한 핀셋 지원과 새로운 접근이 시급하다.
굳이 고향을 떠나는 버스에 오르지 않아도, 모든 아이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마음껏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학교의 교실에서도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듣게 된 학생들이 원이처럼 해맑게 “학교~ 오이쉬이!”라고 외칠 수 있기를.
2026-08-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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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기후 불평등'의 끝은 '평등한 재앙'
기자의 지인 A는 독서광이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취미(?)가 있다. 기자 역시 A로부터 책 몇 권을 선물 받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A가 선물한 책만 모아 둔 별도의 공간, 이른바 ‘A 컬렉션’을 만들었다.
얼마 전 이 A 컬렉션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미국의 기후·환경 전문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이 2023년 7월 출간한 〈폭염 살인〉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부울경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기 전부터 기후변화로 지구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내용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인 ‘폭염이 당신을 먼저 살해할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한 살배기 아기와 반려견을 데리고 하이킹하던 멀쩡한 가족이 폭염으로 모두 숨졌다. 당시 지면 부근 기온은 43도에 육박했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에는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프랑스에서 평년 예상보다 1만 5000명 가까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한 여성이 집에 돌아왔더니 위층에서 홀로 숨진 노인의 시신이 부패하면서 체액이 아래층까지 스며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잠시 책에서 눈을 뗐다.
문득 지난 2일 경남 양산의 기온이 42.5도를 기록하며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사실이 떠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기 중·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과 상층의 티베트고기압이 겹쳐 뜨거운 공기를 가둔 ‘열돔 현상’에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나타난 ‘푄 현상’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열돔 현상이 기후변화와 결합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열돔 현상이라는 작은 톱니바퀴를 굴리는 더 큰 톱니바퀴가 기후변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호기심에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산 폭염과 기후변화는 연관이 있어요.”
국립부경대 문우석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문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북극과 저위도 지역의 온도 차이가 줄었다. 그 영향으로 중위도 상공을 흐르는 서풍과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되면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 같은 거대한 기압계의 세력이 강해지고 한반도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크게 확장했고, 과거 한반도까지 잘 뻗어오지 않던 티베트고기압도 상당히 팽창했다. 열돔은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이지만, 기후변화라는 배경 속에서 그 위력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자는 그제야 〈폭염 살인〉이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염은 우선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쓰러뜨린다. 언론은 이미 매년 여름이면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되는 야외 노동자나 쪽방촌 어르신 등의 현실을 보여주며 ‘기후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폭염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한다면 그 위험은 취약계층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종국에는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평등한 재앙’으로 진화할 수 있다. 구델이 책에서 보여주듯 건강한 사람조차 어느 날 평범한 야외활동을 하다 갑자기 쓰러질 수 있는 세상 말이다.
2026-08-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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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 실패가 남긴 유산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CPSP) 수주전이 아쉬움 속에 막 내렸다. 비록 최종 승자가 되진 못했지만, 한화오션이 써 내려간 지난 3년의 서사는 단순히 실패라는 단어로 마무리할 수 없는 진한 여운과 희망을 남겼다.
CPSP는 캐나다 해군이 1998년 도입한 노후 잠수함 4척을 대체할 3000t급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건조 비용만 20조 원, 향후 30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 사업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방산기업 각축전 속에 한화오션이 당당히 결승전에 진출했다. 최종전 상대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 한화오션은 현존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강의 작전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KSS-III Batch-II’를 내세웠다.
KSS-III는 세계 최초로 공기불요추진체계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동시 탑재해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잠항 능력과 은밀성을 갖췄다. 한국 해군에 이미 배치돼 실정 성능 검증까지 마쳤다. 월등한 성능과 상품성, 빠른 납기 그리고 장기 산업 동맹을 강점으로 내세운 한화오션은 노후 잠수함 퇴역 전인 2032년 1번 함을 시작으로 2035년까지 4척 인도를 목표로 제시하며 TKMS를 압박했다. 반면 TKMS가 제안한 ‘212CD’는 설계도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모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로 최근까지 2000t급 미만 소형잠수함 제작만 가능했던 탓에 아직 중형잠수함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행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는 40조 원, 2만 40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되는 탓에 기업 간 경쟁을 넘어 한국과 독일 간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됐다. 이 와중에 캐나다 정부가 EU 집행위원회와 1500억 유로(우리 돈 256조 원) 규모 ‘EU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SAFE)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TKMS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SAFE는 EU가 무기를 공동구매하는 회원국에 낮은 금리로 대출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우리 정부도 막판 총력 지원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앞세운 대통령 특사단이 국내 주요 기업인과 함께 캐나다를 방문해 자동차, 수소, 에너지, AI를 총망라한 산업 협력 패키지를 제안한 데 이어 주요 부처 장관들도 연거푸 캐나다를 찾아 경제 협력을 제안했다. 하지만 캐나다 선택은 TKMS였다. 서방권 방산 시장에 깊숙이 뿌리내린 나토 동맹 카르텔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의 전통 해양 방산 강호들을 제치고 한국 잠수함 산업의 저력을 전 세계에 입증한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군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며 방산 수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산업협력과 경제외교, 군사협력, 현지 공급망 구축을 아우르는 경험은 앞으로 한국 방산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잔치는 끝났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어제의 실패를 딛고 K잠수함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내일을 고대한다.
2026-08-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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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전남광주와 부산
전남광주 원도심을 서울 성수동보다 좋아한다. 한옥과 서양식 건축물이 공존하는 남구 양림동엔 고즈넉한 카페와 미술관 등이 꽤 많다. 선교사 사택이 보이는 한 카페는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여기에 인접한 동구 동명동도 색깔이 뚜렷하다. 젊은 감각이 묻어난 식당과 술집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도심에 멋이 가득한 전남광주지만, 수도권보다 부족한 부분은 명확하다. 기업은 턱없이 적고, 산업 생태계는 열악하고, 젊은 세대는 떠난다. 통합특별시로 거듭나도 당장 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동차 공장에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봐도 쇠퇴하는 도시에서 탈피하긴 역부족이었다. ‘제2의 도시’ 부산 등 여타 비수도권 지역처럼 소멸에 대비할 처지에 놓인 게 현실이다.
지난달 정부와 대기업이 제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지역의 암울한 현실에 큰 희망을 던졌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산업 육성을 위해 비수도권에 수천조 원대 투자를 예고했다. 특히 전남광주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80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 4기를 짓기로 했다. 실현만 되면 지역 경제와 인프라 강화로 일자리는 늘고 청년 유출은 줄어들 테다. 특색 있는 원도심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질 거라 확신한다.
정부는 이번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호남권 등 특정 지역에 ‘장밋빛 청사진’을 내밀었다. 망국적 ‘수도권 일극주의’에 균열을 내고, 실질적 ‘지역 균형 발전’ 의지를 담은 듯하다. 정부가 ‘5극 3특’ 중 호남권에 힘을 주려는 뜻이라면 어떻게든 확실히 성장 궤도에 올리는 게 필요하다. 다극 체제로 나아가려면 한 권역에 특정 산업을 집중 투자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부산·울산·경남(PK) 등 다른 지역에도 그만큼 신경을 쏟을진 미지수다. 5극 중 수도권을 제외한 동남권·중부권·대경권과 3특인 제주·강원·전북에도 호남권만큼 대전환을 이끌 획기적 방안을 제시할진 의문이다. 당장 ‘3대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PK 등에선 기존 정책을 재탕하거나 지원 규모만 늘렸단 비판이 나오곤 했다. 호남권 신규 지원을 발표하며 다른 지역은 ‘구색 갖추기’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PK는 제대로 된 투자를 받는다면 지역 균형 발전을 선도할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인구가 320만여 명인 부산을 중심으로 PK가 체계적으로 성장하면 그나마 수도권에 대응할 축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특히 “마지막 가능성이 남은 지역”이란 진단도 있다. 조선·자동차 등 기존 산업을 기반으로 울산·경남과 부산이 시너지를 내면 ‘서울-경기도’가 빨아들인 자본과 인재를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단 기대가 크다.
부산은 그동안 추진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마저 단번에 동력을 상실한 실정이다. 6·3 지방선거 전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위한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언급한 직후였다. 특별법을 재설계한다던 여당은 발을 뺀 듯한 모습이다. 글로벌법에 ‘할 수 있다’는 문구로나마 새 길을 개척하려던 부산의 꿈은 멈춘 상태다.
정부·여당은 일단 전남광주가 중심인 메가프로젝트라도 차질없이 수행하는 모습을 증명해야 할 테다. 무엇보다 PK 등 다른 지역에 ‘5극 3특’ 시대에 걸맞은 가시적 대안을 내놓는지도 지켜보려 한다. 각종 선거와 수도권 저항 등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지역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면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26-07-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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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답은 경기장 밖에 있다
지난달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선수 일부가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해당 구호가 ‘스타벅스 5·18 탱크 데이 이벤트’를 연상시키면서 경기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경기 뒤에는 지역 비하 응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배재고 선수 전원은 전국 대회 6개월 출전 금지를 당했고 배재고 선수 징계의 적절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도 일었다.
지난달 국내 스포츠의 논란은 배재고뿐만이 아니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32강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 홍명보 감독의 선수 기용은 32강 탈락이라는 충격적 성적 이상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2년 전 홍명보 전 감독의 선임 과정을 두고 축구협회 고위직에서 절차를 이기고 부당 개입이 있었는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국회에서 월드컵 전반에 대한 청문회도 예정돼 있다.
경기장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사실 경기장 밖에서 시작된 일들이다. 경기장 밖부터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배재고 선수들의 입으로 혐오 표현이 나오기까지 현장에서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훈계나 훈육, 처벌을 했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상대 선수들을 향해 조롱이나 비하를 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시민 의식 교육이 이뤄졌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에는 ‘그라운드 위 시민’을 가르치는 규정들이 있다. 그라운드에 침을 뱉어서는 안되고 인종, 성별, 민족적 배경으로 조롱 비하 발언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행동 강령에 담겨 있다. 행동 강령을 어기면 심판이 경기 중 주의를 주고 지속되면 퇴장 조치도 가능하다. 어른들이 만든 강령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심판의 엄벌 이전에 문화로 학생다운 건전한 ‘덕아웃 문화’가 정착됐다.
축구 국가 대표팀 문제도 경기장 밖에 답이 있다. 월드컵이면 우리 국민들은 한국 대표팀 경기만큼 일본 대표팀 경기를 챙겨본다. 일본은 브라질에 져 32강에서 졌지만 세계 강호를 위협할 만한 실력을 뽐냈다. 이제는 한일전을 하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의 축구는 짜임새 있고 위협적이었다.
이번에는 더 일본을 살펴봤으면 한다. 일본은 2005년부터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다듬어왔고 일관된 철학과 방향성으로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11명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일본식 축구’를 월드컵 경기 내내 과시했다. 일본의 성장과 성과는 경기장 밖의 시스템을 세밀히 다듬고 키워낸 것의 결과물이다.
혐오 발언을 한 선수들을 징계하고, 감독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기장 밖을 촘촘히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아마추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됐다면 경기장 안에서 비하 구호는 없었을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감독 선임 체계를 만들었다면 경기장 안의 괴로웠던 결과도 어쩌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경기장 밖이 무너졌는데 경기장 안이 견고할 것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민낯을 보인 아마추어 학생 야구의 윤리와 도덕, 무너진 축구 국가 대표팀 모두 경기장 밖에서 재건을 시작해야 한다.
2026-07-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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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서울-부산 로펌 양극화 심화… 해사법원이 마지막 기회될까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변호사 직종 매출(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은 10조 3749억 원으로, 2022년 8조 원 고지를 넘은 지 3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 전년보다는 8.1% 늘었고, 2015년(4조 6373억 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부동의 1위 김앤장(1조 6000억 원대)을 제외하고 2~5위 로펌인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 이른바 ‘태·세·광·율’은 지난해 연 매출이 모두 동시에 4000억 원대로 진입했다. 이처럼 서울 대형 로펌은 ‘돈 잔치’를 벌이지만, 부산은 조용하다. 부산 로펌들은 매출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한때 연매출 100억 원을 넘겼다고 알려진 부산의 한 대형 로펌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떠돌 뿐이다. 실제로 최근 만난 변호사들 대부분은 영업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숫자가 없다고 현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부산지법의 1심 민사소송 접수 건수는 최근 10년간 약 20% 줄었다. 반면 부산 변호사 수는 2015년 648명에서 지난해 1219명으로 10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사건은 줄고 변호사는 늘었으니, 변호사 한 명이 나누어 가지는 사건의 몫은 그만큼 얇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법조계는 소위 ‘돈이 되는 사건’은 수도권으로 몰리는 추세다. 기업 인수합병, 대규모 국제중재, 가상자산처럼 자문료가 큰 사건은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서울에 몰린다. 부산에 본사를 둔 국내 상장사 중 매출 10조 원을 넘는 곳은 최근 HMM 본사 이전이 확정되기 전까지 단 한 곳도 없었다. 2024년 기준 매출 부산 1위 기업인 BNK부산은행(매출 4조 4707억 원)조차 전국 순위 119위에 그쳤다. 매출이 줄면서 2023년(111위)보다 8계단 하락해, 전국 100대 기업 진입에는 끝내 실패했다. 대기업이 없으니 기업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그 분쟁을 대리할 로펌의 성장 동력도 원천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여기에 지역 로펌의 안일함도 짚을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인맥으로 사건을 수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변호사를 찾는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수년 전부터 이미 네트워크 로펌이나 수도권 대형 로펌이 인터넷 광고를 물량전으로 장악한 상태인데, 지역은 이에 대한 대비가 안일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8년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 개원이 1년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개원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내 8위권 대형 로펌인 ‘지평’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최근 벡스코에서 ‘해양수도 부산’을 전면에 내건 세미나를 열고, 부산경영자총협회·인제대 RISE사업단과 손잡고 부울경센터까지 출범시켰다.
부산변호사회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해만 두 차례 해사 관련 특강을 마련하며 실무 역량을 다지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해상사고, 선박금융, 국제상사 분쟁처럼 자문료가 큰 사건들에 대해 수도권 대형 로펌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선점해 나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해마다 벌어지는 서울과 부산 로펌 간의 격차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준비를 마친 쪽이 먼저 웃을 것이다.
그래서 해사법원 개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서울 대형 로펌에 안방까지 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부산 법조계가 다시 일어설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2026-07-13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