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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올해도 롯데는 왜 안되노?
20경기가 남았다. 확률은 0.1%까지 떨어졌다. 여기서 0.1%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5위에 등극해 가을 야구에 진출할 확률을 의미한다.
“롯데는 왜 안 되노?”라는 질문을 롯데 자이언츠 담당 기자를 하며 가장 많이 받는다. “잘 못 치고, 잘 못 던지고, 잘 못 잡아서 아닐까요?”라는 말로 상황을 모면한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홈 경기를 직접 보며 여러 기사를 썼지만 사실 직관적으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막아야 할 상황에서 막지 못한 투수진, 점수를 내야 하는 기회에서 침묵하는 타선, 팽팽한 승부의 김을 확 빼는 엉성한 수비. 그 모든 것이 함축된 결과가 안타깝게도 지금 롯데의 현실이다.
‘올해는 다르다’는 희망이자 바람 같았던 구호는 올해도 틀렸다. 시즌 전 야구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롯데는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지난 겨울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은 없었고 전지훈련 불법 게임장 사태로 주전급 선수들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같은 예상을 깨기 위해선 ‘반전’이 필요했다. 신인급 선수의 활약, 예상치 못한 외국인 선수의 활약 같은 것 말이다.
반전은 정반대로 일어났다. 기대했던 베테랑과 지난해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이 동반 부진하면서 롯데는 시즌 내내 완전체 전력을 꾸리지 못했다. 그나마 선발 투수 김진욱, 포수 손성빈, 유격수 전민재가 올 시즌 자리를 잡은 건 소소한 위안거리다.
롯데는 2024년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혔던 김태형 감독을 3년 24억 원의 계약으로 모셔왔다. 9년 연속 두산 베어스를 이끌고 한국 시리즈를 갔던 최고의 감독이었다. 하지만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까지 김태형 감독은 가을 야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24년 ‘윤나고황’ 윤동희, 나승엽, 고승민, 황성빈)으로 불리는 신진급 야수들이 분전했지만 투수진이 아쉬웠다. 2025년에는 8월까지 3위를 달렸지만 8월 돌연 12연패 끝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올해는 5위 근처도 못 가보고 시즌이 끝나간다.
20경기를 남겨둔 지금, ‘롯데는 왜 안 되노?’라는 질문은 ‘롯데 감독은 어찌 되노?’라는 질문으로 꼬리를 문다. 2024년(66승 4무 74패), 2025년(66승 6무 72패), 2026년(14일 현재 53승 2무 69패) 3년간 승률 5할을 넘기지 못한 감독. 당연히 경질이 수순이지만 롯데 팬들이 이같은 질문을 하는 데는 ‘감독이 바뀐다고 롯데가 바뀌나’라는 아주 강한 그동안의 실망감이 묻어 있다.
변화를 해야 하는 건 자명하다. ‘다음 감독은 누구?’라는 논의보다 더 큰 논의가 필요하다. 공수주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고 어떤 선수를 영입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야구를 해야 할지 같은 야구단의 방향성 말이다.
방향을 잡은 뒤 그에 걸맞는 사령탑을 모셔야 한다. 2001년~2007년 암흑기를 끝냈던 건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였다. 감독 교체라는 하나의 방편을 넘어 야구단 전체의 변화를 해도 가을 야구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당대 최고라 불렸던 감독 한 명이 팀을 바꾸는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3년간 롯데 팬들은 확인했다.
롯데의 가장 큰 암흑기로 불리는 2001~2007년을 롯데 팬들은 ‘비밀번호 ‘8-8-8-8-9-7-7’로 부른다. 숫자는 정규 시즌 순위를 뜻한다. 최근 9년을 돌아보면 숫자는 더 참혹하다. 7-10-7-8-8-7-7-7-?이다. 내년마저 가을 야구에 실패하면 10년 연속 실패로 한국 야구 역사상 최장 기록이 된다.
2026-09-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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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사건 기록이 식는다" 수사청·기소청 사이 '31km 공백'
검찰청이 사라진다. 1948년 출범 이후 78년 만이다. 검사가 직접 수사해온 72년의 관행도 다음 달 2일로 끝난다. 새로 출범하는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유지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수사를 나눠 맡는다. 그런데 이렇게 큰 역사적 전환 앞에서, 정작 묻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새로 생기는 기관들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떻게 협력하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부산을 보면 그 질문의 무게가 실감난다. 전국 5개 지방중수청 중 유일하게 부산청은 연제구 법조타운과 뚝 떨어진 강서구 명지동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는 약 31km.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인원 대비 필요 면적을 산출해 사용할 층수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수청의 입지가 검사와의 거리가 아니라 확보 가능한 면적을 기준으로 정해진 셈이다. 압수수색영장은 검사의 신청으로만 법관이 발부하도록 헌법 제12조와 16조에 못 박혀 있다. 수사는 중수청이 하지만 영장 청구는 여전히 검사, 즉 공소청의 몫이다. 수사와 기소를 아무리 종이 위에서 갈라놓아도 영장이 필요한 순간엔 결국 검사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만큼은 이번 개혁으로도 손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새 수사기관의 위치를 정할 때 검사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빨리 오갈 수 있는지가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변수였을 것이다. 헌법이 정한 원칙조차 흔들지 못하는 절차를 정작 행정적 판단 하나가 무력화시킨 셈이다. 물론 서류 자체는 전자시스템으로 오갈 수 있지만, 물리적 증거 이송이나 구속영장 협의 등 현장 절차까지 대체할 수 는 없다.
여기에 인력과 공간 문제까지 겹친다. 세무서와 상가가 함께 들어선 민간 건물 9개 층을 빌려 쓰다 보니 압수물 관리와 동선 분리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산지검 내부에선 ‘입지 때문에 중수청 지원이 꺼려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모든 게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던 중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수사와 기소 기관이 서면으로만 소통하게 되는 상황을 ‘사건 기록이 식는다’고 표현했다. 수사는 증거가 뜨거울 때 쏟아져야 하는데, 서류가 기관 사이를 오가는 시간만큼 진술의 신선도도, 수사기관의 의지도 식는다는 것이다. 그가 다뤘던 한 강력사건에서 피해자가 뒤늦게 의식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진술이 나왔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사건 기록이 다시 여러 관문을 거쳐야 했다. 그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책임 소재를 꼽았다. 훗날 무죄가 나거나 국가배상이 문제될 때 “수사가 부실했다”와 “공소유지를 못 했다”는 책임 떠넘기기만 남고, 정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는 사람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설계된 조직표는 완결돼 보인다. 그 표가 지역에 내려오는 순간 거리와 건물, 사람이라는 현실과 부딪힌다는 것을 이 표를 만든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법무부가 지난 4일 발표한 공소청 직제안에 따르면, ‘중대범죄전담부’ 29개 중 5개 부서가 지방중수청 합동수사과와 짝을 지어 영장 신청 단계의 법률 판단과 증거수집 의견을 전담한다. 하지만 부산처럼 입지부터 멀어지면 이러한 전담부서의 존재도 무색해진다.
개청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31km의 거리를 메울 대책은 여전히 부재하다. 조직표를 다듬기보다 현장의 간극을 좁히는 조치가 시급하다. 기록이 식고 책임이 흩어지기 전에 실질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2026-09-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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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하명'이라는 프레임의 수명
2016년 3월 울산 남구의 한 낡은 치안센터. 한국의 FBI라 불리던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임시 사무실을 차리자 지역 정·관계가 술렁였다. 기초단체장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청와대발 첩보가 하달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당시 대통령과 울산 단체장들이 같은 당이어서 파장은 크지 않았다. 얼마 뒤 특수수사과가 조용히 철수하며 소문도 사그라졌다.
돌이켜보면 그 봄에 울산을 얼어붙게 한 건 사건의 실체보다 기관의 ‘특수’한 간판이었다. 수사기관이 내려오면 실체보다 소문이 먼저 자라고, 거기에 ‘청와대’가 얹히면 이야기의 몸집이 달라진다.
정권이 바뀐 2017년 말, 울산 관련 문건이 또 경찰청에 전달됐다.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담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첩보였다. 훗날 정국을 흔든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출발점이다. 같은 재료라도 정권이 바뀌면 소문이 아니라 프레임이 된다.
지난 8월 14일 법무부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가 이 사건을 진상 규명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법원의 무죄 확정 1년 만에 검찰권 남용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이 시점에서 짚어 볼 대목은 이 사건을 소비해 온 우리의 방식이다. 정치권에서 쓰던 ‘하명’이라는 단어는 검찰의 공소장을 거치며 사건의 공식 프레임으로 자리 잡았다. 언론과 여론이 확성기가 됐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은 송철호 전 시장과 황운하 의원 등 핵심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8월 이를 확정했다. 수사 청탁을 뒷받침할 핵심 증인의 진술이 신빙성을 잃은 데다 공모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무죄는 아니었다. 송병기 전 울산시 부시장은 자료 유출과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재판부가 ‘하명수사’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근거는 여럿이다. 먼저 ‘속도’다. 청와대 ‘하명’이라면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데, 첩보는 경찰청을 거쳐 울산경찰청에 이첩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절차’도 하명 논리와 어긋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들은 청와대 관여 없이 독자적 판단으로 수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진술했다. 울산경찰청 실무진 상당수도 첩보 출처가 청와대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했다. ‘순서’도 맞지 않았다. 청와대 첩보가 울산에 닿기 넉 달 전 이미 관련 고발장이 접수된 상태였다. 청와대 문건이 수사의 방아쇠였다는 밑그림이 흔들린 대목이다. 청와대 개입의 정황으로 지목된 행정관들의 울산행도, 재판부는 당시 울산 고래고기 사건을 둘러싼 검경 갈등의 실태 파악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는 여전히 이 사건을 ‘하명수사 의혹’으로 기억한다. 무죄 확정 기사는 순식간에 소비된 반면, 6년간 반복된 ‘하명수사’ 네 글자는 강한 인식으로 굳었다. 검찰권 남용을 따져 묻겠다는 이번 조사조차, 공식 사건명이 ‘문재인 정부 울산시장 선거개입 하명수사 사건’이다. 프레임의 수명이 판결의 수명보다 길고 질기다.
그래서 이번 진상 조사에 눈길이 간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는 반드시 복기해야 할 과제다. 다만 이번 조사는 황 의원이 직접 진상규명을 요청해 선정된 사안이다. ‘하명’이 그랬듯 그 검증 역시 ‘보복기소’라는 또 다른 작명으로 답을 정해두어서는 안 된다. 이름 짓기는 쉽고, 안개를 걷어내는 일은 늘 더디기 때문이다.
2026-08-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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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햄버거집도 "아침식사 됩니다"
최근 부산 강서구 대저동을 지나는데 현수막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 큰 글씨로 ‘아침식사 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현수막만 보면 영락없는 백반집이다. 밥과 국에 김치, 달걀말이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현수막이 달린 곳은 뜻밖에도 ‘버거킹’이었다.
‘아침식사 됩니다’는 한국 식당에서 익숙하게 보던 말이다. 이른 아침 문을 여는 국밥집이나 기사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메뉴 사진도 긴 설명도 없지만, 아침밥 먹을 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문구만 보고도 식당을 정할 수 있다.
이 업체가 이런 현수막을 내건 것은 최근 아침 메뉴를 강화하면서다. 아침 메뉴 판매 매장을 두 배로 늘리고, 크루아상 사이에 달걀과 햄, 치즈 등을 넣은 ‘크루아상위치’를 내놨다. 크루아상과 샌드위치를 합친 이름이다.
1983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뒤 해외 매장에서 오랫동안 팔린 아침 메뉴라고 한다. 그런 음식을 한국에 내놓으면서 고른 말이 ‘아침식사 됩니다’였다. 매장 앞에는 ‘신속’ ‘빨라요 맛있어요’ 같은 문구를 적은 입간판도 세웠다.
다른 햄버거 업체들도 아침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맥도날드는 지난 6월 닭가슴살 패티를 넣은 새 아침 메뉴를 출시했다. 롯데리아도 올해 들어 아침 메뉴 판매 매장을 두 배가량 늘렸다.
그런데 통계는 정반대다. 질병관리청의 ‘2024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아침식사 결식률은 35.3%로, 2015년 26.2%보다 9.1%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19~29세는 62.1%가 아침을 거른다.
아침밥을 안 먹는 사람이 이렇게 늘었는데 외식업체들은 왜 아침 메뉴를 늘릴까. 외식업계는 1~2인 가구 증가와 간편한 아침식사 선호를 이유로 꼽는다. 집에서 차려 먹을 여건이 안 되거나 시간이 없어서 거르던 것이지, 출근이나 등굣길에 몇 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집밥의 빈자리’를 ‘간편식의 자리’로 바꾸는 셈이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파고들 때 햄버거를 아침밥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다. 글로벌 햄버거 업체는 여기서 새 메뉴보다 익숙한 말을 앞세웠다. 그동안 외국 음식의 현지화라고 하면 맛과 재료를 먼저 떠올렸다. 불고기버거와 고구마피자처럼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더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 자체는 그대로 두고, 그 음식을 부르는 언어와 맥락만 한국 식당의 것을 빌려왔다.
글로벌 기업이 현지의 말을 가져다 쓴 사례는 일본에도 있다. 웨하스에 초콜릿을 입힌 과자 ‘킷캣’은 일본에서 수험생에게 주는 합격 기원 선물로 통한다. ‘꼭 이길 거야’라는 뜻의 규슈 사투리 ‘킷토 카츠토’와 발음이 비슷해서다. 소비자가 발견한 말장난을 네슬레가 마케팅으로 키웠다면, 이번에는 기업이 먼저 현지의 화법을 들고나왔다는 차이가 있다.
이 햄버거 업체의 전략도 일단은 통한 것 같다. 메뉴 확대 뒤 일주일간 아침 메뉴 매출은 이전보다 약 다섯 배 늘었다. 글로벌 브랜드도 한국에서 아침 장사를 하려면 국밥집 말투가 더 잘 통하는 모양이다. 다만 익숙한 문구에 이끌려 들어간 손님이 받아 드는 것은 백반이 아니라 햄버거다. 우리 아침 식탁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2026-08-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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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리센느 원이와 고교학점제
요즘 많은 이들의 알고리즘을 걸그룹 ‘리센느’가 장악 중이다. 엄청난 역주행 신화로 인기 음원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에 3곡이나 이름을 올리고 있다. 리센느 열풍의 시작은 리센느 리더 ‘원이’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경상도 사투리로 팀 동료 미나미와 “거제~야호” “오이쉬이!(맛있다라는 뜻의 일본어 오이시를 경상도 사투리처럼 발음하는 것)”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그는 경남 거제 출신이다.
원이가 데뷔 전 아이돌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수시로 부산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고군분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전문 보컬 트레이닝이나 댄스 학원 등 꿈을 향한 도전에 필수적인 핵심 인프라가 그가 나고 자란 거제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는 원이의 매력 포인트가 됐지만 화려한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 지역 인프라 격차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은 비단 연예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 현장의 가장 뜨거운 현안인 ‘고교학점제’를 마주한 지역 소규모 고교들의 현실 역시 이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올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의 취지 자체는 대단히 이상적이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듣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규모 학교 학생들에게 완벽한 ‘선택의 자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다양한 심화 과목을 가르칠 전문 교원도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최소 수강 인원조차 채우기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이나 일부 학군지에 위치한 학생 수 300명 이상의 대규모 일반고가 30여 개의 다채로운 선택 과목을 마련할 때, 중소규모 학교는 10여 개 남짓한 기본 과목을 간신히 열고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대학 입시에서 어떤 심화 과목을 이수했는지가 정성 평가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과목 개설 풀 자체가 좁은 지역 소규모 학교 학생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이미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올해 고1부터 적용된 ‘내신 5등급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상위 10%까지 1등급이 주어지는 새로운 평가 체제에서는 전체 인원이 많아 1등급 방어선이 두터운 대형 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필연적이다. 실제로 최근 고입 통계를 보면 대규모 학교 진학자는 급증한 반면 중소규모 학교 진학자는 크게 감소했다. 부산만 하더라도 300명 이상 대규모 일반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원하는 과목을 듣기 위해서라도, 대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살던 동네를 떠나 소수의 대형 고교로 쏠리게 되는 양극화가 빠르게 고착화되고 있다.
꿈을 좇는 거제 소녀가 어쩔 수 없이 매주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던 것처럼, 우리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대형 학교로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돌아볼 때다. 고교학점제가 오히려 지역 교육의 격차를 벌리는 고교양극화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촘촘한 핀셋 지원과 새로운 접근이 시급하다.
굳이 고향을 떠나는 버스에 오르지 않아도, 모든 아이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마음껏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학교의 교실에서도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듣게 된 학생들이 원이처럼 해맑게 “학교~ 오이쉬이!”라고 외칠 수 있기를.
2026-08-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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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기후 불평등'의 끝은 '평등한 재앙'
기자의 지인 A는 독서광이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취미(?)가 있다. 기자 역시 A로부터 책 몇 권을 선물 받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A가 선물한 책만 모아 둔 별도의 공간, 이른바 ‘A 컬렉션’을 만들었다.
얼마 전 이 A 컬렉션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미국의 기후·환경 전문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이 2023년 7월 출간한 〈폭염 살인〉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부울경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기 전부터 기후변화로 지구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내용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인 ‘폭염이 당신을 먼저 살해할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한 살배기 아기와 반려견을 데리고 하이킹하던 멀쩡한 가족이 폭염으로 모두 숨졌다. 당시 지면 부근 기온은 43도에 육박했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에는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프랑스에서 평년 예상보다 1만 5000명 가까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한 여성이 집에 돌아왔더니 위층에서 홀로 숨진 노인의 시신이 부패하면서 체액이 아래층까지 스며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잠시 책에서 눈을 뗐다.
문득 지난 2일 경남 양산의 기온이 42.5도를 기록하며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사실이 떠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기 중·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과 상층의 티베트고기압이 겹쳐 뜨거운 공기를 가둔 ‘열돔 현상’에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나타난 ‘푄 현상’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열돔 현상이 기후변화와 결합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열돔 현상이라는 작은 톱니바퀴를 굴리는 더 큰 톱니바퀴가 기후변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호기심에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산 폭염과 기후변화는 연관이 있어요.”
국립부경대 문우석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문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북극과 저위도 지역의 온도 차이가 줄었다. 그 영향으로 중위도 상공을 흐르는 서풍과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되면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 같은 거대한 기압계의 세력이 강해지고 한반도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크게 확장했고, 과거 한반도까지 잘 뻗어오지 않던 티베트고기압도 상당히 팽창했다. 열돔은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이지만, 기후변화라는 배경 속에서 그 위력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자는 그제야 〈폭염 살인〉이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염은 우선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쓰러뜨린다. 언론은 이미 매년 여름이면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되는 야외 노동자나 쪽방촌 어르신 등의 현실을 보여주며 ‘기후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폭염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한다면 그 위험은 취약계층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종국에는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평등한 재앙’으로 진화할 수 있다. 구델이 책에서 보여주듯 건강한 사람조차 어느 날 평범한 야외활동을 하다 갑자기 쓰러질 수 있는 세상 말이다.
2026-08-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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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 실패가 남긴 유산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CPSP) 수주전이 아쉬움 속에 막 내렸다. 비록 최종 승자가 되진 못했지만, 한화오션이 써 내려간 지난 3년의 서사는 단순히 실패라는 단어로 마무리할 수 없는 진한 여운과 희망을 남겼다.
CPSP는 캐나다 해군이 1998년 도입한 노후 잠수함 4척을 대체할 3000t급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건조 비용만 20조 원, 향후 30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 사업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방산기업 각축전 속에 한화오션이 당당히 결승전에 진출했다. 최종전 상대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 한화오션은 현존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강의 작전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KSS-III Batch-II’를 내세웠다.
KSS-III는 세계 최초로 공기불요추진체계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동시 탑재해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잠항 능력과 은밀성을 갖췄다. 한국 해군에 이미 배치돼 실정 성능 검증까지 마쳤다. 월등한 성능과 상품성, 빠른 납기 그리고 장기 산업 동맹을 강점으로 내세운 한화오션은 노후 잠수함 퇴역 전인 2032년 1번 함을 시작으로 2035년까지 4척 인도를 목표로 제시하며 TKMS를 압박했다. 반면 TKMS가 제안한 ‘212CD’는 설계도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모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로 최근까지 2000t급 미만 소형잠수함 제작만 가능했던 탓에 아직 중형잠수함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행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는 40조 원, 2만 40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되는 탓에 기업 간 경쟁을 넘어 한국과 독일 간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됐다. 이 와중에 캐나다 정부가 EU 집행위원회와 1500억 유로(우리 돈 256조 원) 규모 ‘EU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SAFE)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TKMS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SAFE는 EU가 무기를 공동구매하는 회원국에 낮은 금리로 대출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우리 정부도 막판 총력 지원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앞세운 대통령 특사단이 국내 주요 기업인과 함께 캐나다를 방문해 자동차, 수소, 에너지, AI를 총망라한 산업 협력 패키지를 제안한 데 이어 주요 부처 장관들도 연거푸 캐나다를 찾아 경제 협력을 제안했다. 하지만 캐나다 선택은 TKMS였다. 서방권 방산 시장에 깊숙이 뿌리내린 나토 동맹 카르텔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의 전통 해양 방산 강호들을 제치고 한국 잠수함 산업의 저력을 전 세계에 입증한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군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며 방산 수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산업협력과 경제외교, 군사협력, 현지 공급망 구축을 아우르는 경험은 앞으로 한국 방산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잔치는 끝났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어제의 실패를 딛고 K잠수함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내일을 고대한다.
2026-08-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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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전남광주와 부산
전남광주 원도심을 서울 성수동보다 좋아한다. 한옥과 서양식 건축물이 공존하는 남구 양림동엔 고즈넉한 카페와 미술관 등이 꽤 많다. 선교사 사택이 보이는 한 카페는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여기에 인접한 동구 동명동도 색깔이 뚜렷하다. 젊은 감각이 묻어난 식당과 술집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도심에 멋이 가득한 전남광주지만, 수도권보다 부족한 부분은 명확하다. 기업은 턱없이 적고, 산업 생태계는 열악하고, 젊은 세대는 떠난다. 통합특별시로 거듭나도 당장 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동차 공장에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봐도 쇠퇴하는 도시에서 탈피하긴 역부족이었다. ‘제2의 도시’ 부산 등 여타 비수도권 지역처럼 소멸에 대비할 처지에 놓인 게 현실이다.
지난달 정부와 대기업이 제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지역의 암울한 현실에 큰 희망을 던졌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산업 육성을 위해 비수도권에 수천조 원대 투자를 예고했다. 특히 전남광주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80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 4기를 짓기로 했다. 실현만 되면 지역 경제와 인프라 강화로 일자리는 늘고 청년 유출은 줄어들 테다. 특색 있는 원도심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질 거라 확신한다.
정부는 이번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호남권 등 특정 지역에 ‘장밋빛 청사진’을 내밀었다. 망국적 ‘수도권 일극주의’에 균열을 내고, 실질적 ‘지역 균형 발전’ 의지를 담은 듯하다. 정부가 ‘5극 3특’ 중 호남권에 힘을 주려는 뜻이라면 어떻게든 확실히 성장 궤도에 올리는 게 필요하다. 다극 체제로 나아가려면 한 권역에 특정 산업을 집중 투자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부산·울산·경남(PK) 등 다른 지역에도 그만큼 신경을 쏟을진 미지수다. 5극 중 수도권을 제외한 동남권·중부권·대경권과 3특인 제주·강원·전북에도 호남권만큼 대전환을 이끌 획기적 방안을 제시할진 의문이다. 당장 ‘3대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PK 등에선 기존 정책을 재탕하거나 지원 규모만 늘렸단 비판이 나오곤 했다. 호남권 신규 지원을 발표하며 다른 지역은 ‘구색 갖추기’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PK는 제대로 된 투자를 받는다면 지역 균형 발전을 선도할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인구가 320만여 명인 부산을 중심으로 PK가 체계적으로 성장하면 그나마 수도권에 대응할 축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특히 “마지막 가능성이 남은 지역”이란 진단도 있다. 조선·자동차 등 기존 산업을 기반으로 울산·경남과 부산이 시너지를 내면 ‘서울-경기도’가 빨아들인 자본과 인재를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단 기대가 크다.
부산은 그동안 추진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마저 단번에 동력을 상실한 실정이다. 6·3 지방선거 전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위한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언급한 직후였다. 특별법을 재설계한다던 여당은 발을 뺀 듯한 모습이다. 글로벌법에 ‘할 수 있다’는 문구로나마 새 길을 개척하려던 부산의 꿈은 멈춘 상태다.
정부·여당은 일단 전남광주가 중심인 메가프로젝트라도 차질없이 수행하는 모습을 증명해야 할 테다. 무엇보다 PK 등 다른 지역에 ‘5극 3특’ 시대에 걸맞은 가시적 대안을 내놓는지도 지켜보려 한다. 각종 선거와 수도권 저항 등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지역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면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26-07-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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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답은 경기장 밖에 있다
지난달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선수 일부가 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해당 구호가 ‘스타벅스 5·18 탱크 데이 이벤트’를 연상시키면서 경기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경기 뒤에는 지역 비하 응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배재고 선수 전원은 전국 대회 6개월 출전 금지를 당했고 배재고 선수 징계의 적절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도 일었다.
지난달 국내 스포츠의 논란은 배재고뿐만이 아니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32강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 홍명보 감독의 선수 기용은 32강 탈락이라는 충격적 성적 이상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2년 전 홍명보 전 감독의 선임 과정을 두고 축구협회 고위직에서 절차를 이기고 부당 개입이 있었는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국회에서 월드컵 전반에 대한 청문회도 예정돼 있다.
경기장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사실 경기장 밖에서 시작된 일들이다. 경기장 밖부터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배재고 선수들의 입으로 혐오 표현이 나오기까지 현장에서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훈계나 훈육, 처벌을 했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상대 선수들을 향해 조롱이나 비하를 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시민 의식 교육이 이뤄졌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에는 ‘그라운드 위 시민’을 가르치는 규정들이 있다. 그라운드에 침을 뱉어서는 안되고 인종, 성별, 민족적 배경으로 조롱 비하 발언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행동 강령에 담겨 있다. 행동 강령을 어기면 심판이 경기 중 주의를 주고 지속되면 퇴장 조치도 가능하다. 어른들이 만든 강령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심판의 엄벌 이전에 문화로 학생다운 건전한 ‘덕아웃 문화’가 정착됐다.
축구 국가 대표팀 문제도 경기장 밖에 답이 있다. 월드컵이면 우리 국민들은 한국 대표팀 경기만큼 일본 대표팀 경기를 챙겨본다. 일본은 브라질에 져 32강에서 졌지만 세계 강호를 위협할 만한 실력을 뽐냈다. 이제는 한일전을 하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의 축구는 짜임새 있고 위협적이었다.
이번에는 더 일본을 살펴봤으면 한다. 일본은 2005년부터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다듬어왔고 일관된 철학과 방향성으로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11명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일본식 축구’를 월드컵 경기 내내 과시했다. 일본의 성장과 성과는 경기장 밖의 시스템을 세밀히 다듬고 키워낸 것의 결과물이다.
혐오 발언을 한 선수들을 징계하고, 감독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기장 밖을 촘촘히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아마추어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됐다면 경기장 안에서 비하 구호는 없었을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감독 선임 체계를 만들었다면 경기장 안의 괴로웠던 결과도 어쩌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경기장 밖이 무너졌는데 경기장 안이 견고할 것이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민낯을 보인 아마추어 학생 야구의 윤리와 도덕, 무너진 축구 국가 대표팀 모두 경기장 밖에서 재건을 시작해야 한다.
2026-07-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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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서울-부산 로펌 양극화 심화… 해사법원이 마지막 기회될까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변호사 직종 매출(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은 10조 3749억 원으로, 2022년 8조 원 고지를 넘은 지 3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 전년보다는 8.1% 늘었고, 2015년(4조 6373억 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부동의 1위 김앤장(1조 6000억 원대)을 제외하고 2~5위 로펌인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 이른바 ‘태·세·광·율’은 지난해 연 매출이 모두 동시에 4000억 원대로 진입했다. 이처럼 서울 대형 로펌은 ‘돈 잔치’를 벌이지만, 부산은 조용하다. 부산 로펌들은 매출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한때 연매출 100억 원을 넘겼다고 알려진 부산의 한 대형 로펌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떠돌 뿐이다. 실제로 최근 만난 변호사들 대부분은 영업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숫자가 없다고 현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부산지법의 1심 민사소송 접수 건수는 최근 10년간 약 20% 줄었다. 반면 부산 변호사 수는 2015년 648명에서 지난해 1219명으로 10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사건은 줄고 변호사는 늘었으니, 변호사 한 명이 나누어 가지는 사건의 몫은 그만큼 얇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법조계는 소위 ‘돈이 되는 사건’은 수도권으로 몰리는 추세다. 기업 인수합병, 대규모 국제중재, 가상자산처럼 자문료가 큰 사건은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서울에 몰린다. 부산에 본사를 둔 국내 상장사 중 매출 10조 원을 넘는 곳은 최근 HMM 본사 이전이 확정되기 전까지 단 한 곳도 없었다. 2024년 기준 매출 부산 1위 기업인 BNK부산은행(매출 4조 4707억 원)조차 전국 순위 119위에 그쳤다. 매출이 줄면서 2023년(111위)보다 8계단 하락해, 전국 100대 기업 진입에는 끝내 실패했다. 대기업이 없으니 기업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그 분쟁을 대리할 로펌의 성장 동력도 원천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여기에 지역 로펌의 안일함도 짚을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인맥으로 사건을 수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변호사를 찾는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수년 전부터 이미 네트워크 로펌이나 수도권 대형 로펌이 인터넷 광고를 물량전으로 장악한 상태인데, 지역은 이에 대한 대비가 안일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8년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 개원이 1년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개원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내 8위권 대형 로펌인 ‘지평’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최근 벡스코에서 ‘해양수도 부산’을 전면에 내건 세미나를 열고, 부산경영자총협회·인제대 RISE사업단과 손잡고 부울경센터까지 출범시켰다.
부산변호사회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해만 두 차례 해사 관련 특강을 마련하며 실무 역량을 다지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해상사고, 선박금융, 국제상사 분쟁처럼 자문료가 큰 사건들에 대해 수도권 대형 로펌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선점해 나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해마다 벌어지는 서울과 부산 로펌 간의 격차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준비를 마친 쪽이 먼저 웃을 것이다.
그래서 해사법원 개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서울 대형 로펌에 안방까지 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부산 법조계가 다시 일어설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2026-07-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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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시장 부탁도 거절하라'는 주문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울산시 싱크탱크인 울산연구원의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상욱 울산시장이 꺼낸 이 한마디는 여러 발언 가운데 가장 도드라졌다.
원론적 발언이지만 맥락을 짚어보면 뼈가 있다. 울산연구원은 그간 부울경 메가시티 같은 현안을 놓고 단체장 입맛에 맞춰 용역 결과를 내놓으며 시정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원장 스스로 “박사 위에 주사(6급 공무원의 옛 호칭) 있다”며 자조할 만큼 공무원 눈치를 보는 연구기관에 단체장이 먼저 독립성을 약속한 것이다.
“저를 포함해 누가 특정인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하더라도 무시하십시오.” 상시 채용 탓에 잡음이 잦았던 울산시설공단 보고에서도 비슷한 주문이 이어졌다. 산하·출연기관 채용 의혹이 수사로 이어진 전례가 숱하고, 온정주의로 포장된 청탁은 관가의 고질병이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채용 공고를 봐도 ‘어차피 내정자가 있을 것’이라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인사권의 정점에 선 단체장이 공개 석상에서 먼저 선을 그은 셈이다.
2028 국제정원박람회 추진단을 향한 쓴소리도 같은 결이다. “이 박람회의 핵심이 무엇인지 시민에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0억 원대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상당수 시민은 행사의 실체를 체감하지 못한다. 옛 쓰레기매립장인 박람회장 예정지를 찾은 김 시장이 “꽃을 아무리 심어도 악취가 나면 망신”이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하는 것은 기획이 그만큼 설익었다는 방증이다.
이 세 발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앞선 두 발언이 권력 절제라는 ‘원칙’이라면, 마지막은 행정의 본질을 묻는 ‘실용’이다. 물론 취임 초 공정과 소신을 앞세우지 않은 시정은 여태 없었다. 결국 차이는 실천에서 갈린다. 울산연구원이 시장 뜻과 어긋난 결론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감내하는지, 선거 직후 밀려들 논공행상의 압력 앞에서 다짐을 지키는지, '한 문장 요약'의 잣대를 재검토에 착수한 공연장·트램 사업에도 예외 없이 들이대는지가 그 시금석이다. 시민은 화려한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기억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 시장에게 전체 22석 중 15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한 울산시의회와의 협치는 피할 수 없는 험난한 과제다. 야당 시의원 상당수의 취임식 불참은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한 협치의 기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공직사회 역시 시장의 표정이 아니라 원칙에 공감해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말로는 소신을 강조한 채 공약과 결이 다른 보고에 불쾌감부터 드러낸다면, 주변은 금세 ‘예스맨’으로 채워지고 시정의 사각지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민선 9기 김상욱호의 성패는 거창한 비전에 있지 않다. 쓴소리에 귀를 열고, 내 사람을 심지 않으며, 시민이 단번에 고개를 끄덕일 정책의 본질을 내놓는 것. 김 시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시민 주권’의 실체도 결국 거기에서 드러날 것이다.
2026-07-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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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우리 딸 기사 좀 써주면 안 될까요"
어머니는 자신의 딸 이야기를 기사로 써 줄 수 없냐며 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딸은 호텔 관련 전공자가 아닌데도 호텔리어인 아버지의 뒤를 따라 호텔에서 일한 지 3년째라고 했다. 어머니 목소리에는 딸을 대견해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전화의 요지는 “딸을 응원해주고 싶은데 신문에 한 번 실리면 힘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개인의 직업 생활을 응원하는 사연만으로 기사를 쓰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전화는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취업이나 성공, 합격 같은 결과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과정에서 묵묵히 버티는 시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도, 첫 직장에서 적응하는 시간도,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시간도 대부분 개인의 몫으로 남겨 둔다. 사회는 “왜 아직도?”라고 묻는 데는 익숙하지만 “잘하고 있다”는 말에는 인색하다.
최근 만난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장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누군가는 자기 편이라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경제적 결핍을 겪는 아이보다 “어차피 저는 안 될 것 같아요”라며 시작도 하기 전에 가능성을 접어버리는 아이들이 더 많다고 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비교는 일상이 됐지만, 실패했을 때 기댈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내 편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다시 도전할 용기도 생긴다는 그의 말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쉬었음’ 인구는 71만 7000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쉬었음’은 일자리를 찾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배경은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안에는 취업 준비와 진로 탐색, 재충전 등 서로 다른 사정이 담겨 있다. 물론 모든 ‘쉬었음’ 청년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을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더 나은 진로를 찾기 위해 잠시 멈췄을 것이고, 누군가는 반복된 실패를 견디다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무조건 ‘나태함’으로 해석하는 순간 이들은 더 깊은 고립으로 내몰릴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역시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아예 포기했다기보다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시점이 전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대 초반 일에서 멀어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세의 취업 비중은 최근 15년 사이 크게 줄었지만,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취업 비중은 높아졌다. 사회는 이 공백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돌리지만, 사실 사회적 연대와 제도적 지지가 필요한 구간이다.
우리 사회는 ‘멈춤’을 너무 쉽게 ‘실패’로 오해한다. 취업이 늦어지면 능력을 의심받고, 잠시 쉬어가면 의지마저 의심받는다. 성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묵묵히 버티는 이들은 갈 곳을 잃고 쉽게 소외된다. 응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전화를 걸어 왔던 어머니가 원했던 것은 기사 한 편이 아니라 딸을 향한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3년째 호텔리어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그의 딸에게, 그리고 아직 과정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6-06-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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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폭력물이 된 학원물, 반올림을 다시 보고 싶다
최근 학교와 교실이 다시금 대중의 뜨거운 관심 한가운데 섰다. 그 중심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있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특수부대 요원이 교권보호국 소속으로 직접 나선다는 도발적인 설정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선을 넘은 비행 청소년과 안하무인 학부모를 향한 거침없는 공격 등 소위 ‘사이다 전개’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작품은 단숨에 화제성 1위에 올랐다. 무법지대가 된 교실을 압도적인 힘과 폭력으로 제압한다는 설정에 대중이 이토록 열광하는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현재 교권 추락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느새부터인가 안방극장과 OTT 플랫폼에서 ‘학원물’은 곧 ‘폭력물’ 혹은 ‘스릴러’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른으로서 서늘한 감정마저 든다.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은 상위 1% 모범생이 학교 안팎의 끔찍한 폭력에 맞서 두뇌와 주변의 도구를 활용해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학원 액션물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은 단순한 학교폭력을 넘어 미성년자 조건만남, 범죄 알선 등 가장 어두운 청소년 범죄의 민낯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일선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단 이 같은 학교의 어두움이 중고등학교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머지않아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 역시 폭력물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과거의 학원물들을 떠올려본다. ‘라떼의’ 청소년 드라마의 주류는 ‘성장 드라마’였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반올림’이었다. 평범한 중학생인 주인공 이옥림(고아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던 드라마 속 교실에도 친구들 간의 다툼은 있었고, 선생님과의 크고 작은 갈등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파괴적인 싸움이 아니라,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훌륭한 어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거쳐야 할 성장통이었다.
성장 드라마들은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을 법한 친근한 인물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민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이들의 풋풋한 우정과 사랑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안겼다. 물론 과거의 기억이 다소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래도 그 때의 학교는 위험한 곳이 아닌 서로를 반올림해주는 곳이었다고 믿고 싶다.
드라마의 제목인 ‘참교육’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곱씹어 본다. 악을 더 큰 힘으로 응징하는 통쾌함은 분명 속시원함을 준다. 하지만 붕괴된 공교육을 살려낼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까? 드라마 속 물리적 사이다 전개에 대리만족하며 씁쓸하게 웃어넘기는 현실을 넘어, 이제는 진짜 참교육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와 교육계 전체가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이번 드라마 열풍이 단순히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소비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잘못된 학생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것이 아닌 진정한 소통과 제대로 된 제도를 통해 교실을 치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참교육’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 치열한 고민 끝에 우리의 교육 현장이 다시금 풋풋하고 따뜻한 성장의 이야기로 ‘반올림’ 될 수 있는 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6-06-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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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해외에서 느낀 자부심, 국내에서 느낀 허탈감
해외에서 우연히 태극기를 마주하면 잠시 잊고 지냈던 애국심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럴 때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순간은 단연 재외국민 투표라고 말하고 싶다. 기자 역시 미국 연수 중이던 2024년 3월,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며 이를 실감했다.
그해 4월 10일에 치러진 22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애리조나주의 마리코파 카운티에도 재외국민 투표소가 설치됐다. 모든 한국인들은 3월 29일부터 3월 31일까지 한 한인 마트에서 투표할 수 있었다. 기자가 살고 있던 피닉스 도심에서 투표소까지는 차량으로 20분 거리였다. 투표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 미주 지역 다른 재외국민들과 비교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마트 한 구석에 차려진 투표소 내부는 한산했으나 겉모습은 국내와 다를 게 없었다. 여권을 제시해 본인 확인을 완료한 뒤 한국 주소지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 이름이 기재된 투표용지를 출력받았다. 이어 기표소로 들어가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투입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완료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매일 투표가 종료되면 모든 봉투를 수거해 별도의 주머니에 담아 지정된 장소에 보관한 뒤 한국으로 이송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태평양을 건너 1만km 이상 떨어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그래서 재외국민 투표소의 투표 절차를 간단한 영상으로 담아 수업 과제로 제출했다. 담당 교수도 외국에 체류 중인 유권자까지 신경쓰는 ‘K민주주의’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기자의 어깨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불과 2년여 만에 그 자부심은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때문이다. 선거 당일인 지난 3일,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에서도 투표용지가 추가 공급된 투표소가 모두 9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선관위의 해명이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본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유권자 수 대비 50% 수준으로 낮췄다. 사전투표율 상승에 따른 수요 예측의 어려움과 투표용지 보관 부담, 미사용 용지가 과도하게 남을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부정선거 논란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예산 절감을 위한 관행과 내부 지침 변경이 맞물리면서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해외 곳곳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적지 않은 비용과 행정력을 투입하는 나라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 부족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투표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며칠째 선관위를 규탄하는 시위대의 마음 깊은 곳에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라는 충격이 자리잡고 있으리라.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상처받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선관위 인력 등을 점검하고 제도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은 한 사람의 투표권을 끝까지 지켜내는 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2026-06-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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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한화오션, 대한민국 잠수함 수출 새 역사 쓸까
대한민국 방산업계의 시선이 캐나다로 향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CPSP는 1998년 도입한 2400t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할 3000t급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건조 비용만 20조 원, 향후 30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 사업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방산기업이 도전장을 던졌고, 한화오션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가 막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초’ ‘최고’ ‘유일’ 기록을 모두 보유한 명가다. 잠수함 기술 원조인 독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1993년 국내 최초 전투 잠수함을 완성한 이후 최근까지 한국 해군 전투잠수함 모든 선종을 건조했다. 2006년과 2017년, 2021년에는 △해외 잠수함 창정비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 △세계 8번째 잠수함 원천기술 확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여기에 3000t급 이상 중형잠수함도 독자 개발했다. 자체 기술력으로 중형잠수함을 개발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러시아,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로 최근까지 2000t급 미만 소형잠수함 제작만 가능했던 탓에 아직 중형잠수함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한화오션은 CPSP 납품 모델로 현존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상의 작전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3600t급 ‘KSS-III’를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빠른 납기와 검증된 기술력 그리고 장기 산업 동맹이 강점으로 꼽힌다. 한화오션은 노후 잠수함 퇴역 전인 2032년 1번 함을 시작으로 2035년까지 4척 인도를 목표로 제시했다.
애초 2034년까지 최소 2척 인도를 제안했던 TKMS는 뒤늦게 자국 물량을 캐나다에 조기 양도하는 방식으로 2036년까지 4척을 인도하겠다며 견제에 나섰다. 건조 경험과 역량도 한화오션이 월등하다. KSS-III는 이미 진수돼 운용 중인 모델이다. 지난달엔 한국-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에 투입돼 1만 4000km 무결점 대양 기동력까지 입증했다. 반면, TKMS의 ‘212CD’는 설계도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모델’이다. 212CD는 TKMS와 노르웨이 콩스버그가 공동 설계한 2500t급(수중 2800t급) 모델로 아직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화오션이 수주에 성공하면 세계 방산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보이는 독일을 상대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의 잠수함 설계·건조·운용 기술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부산과 경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조선 생태계에도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본함 건조와 후속 지원함을 고려할 때 향후 약 60년간 안정적 물량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조에 참여할 300여 중소 협력사는 글로벌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편입될 기회까지 잡을 수 있다. 이를 통한 국내 생산유발효과는 40조 원, 일자리 창출은 2만 4000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기업 간 경쟁을 넘어 한국과 독일 간 국가대항전이 돼버렸고 우리 정부도 막판 총력 지원에 나섰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번 수주전 성패가 동남권 조선업 벨트 부활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의 관심도 뜨겁다 . 이달 말, 대한민국 잠수함 수출의 새역사가 또 한번 쓰여지길 기대해 본다.
2026-06-08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