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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해외에서 느낀 자부심, 국내에서 느낀 허탈감
해외에서 우연히 태극기를 마주하면 잠시 잊고 지냈던 애국심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럴 때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순간은 단연 재외국민 투표라고 말하고 싶다. 기자 역시 미국 연수 중이던 2024년 3월,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며 이를 실감했다.
그해 4월 10일에 치러진 22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애리조나주의 마리코파 카운티에도 재외국민 투표소가 설치됐다. 모든 한국인들은 3월 29일부터 3월 31일까지 한 한인 마트에서 투표할 수 있었다. 기자가 살고 있던 피닉스 도심에서 투표소까지는 차량으로 20분 거리였다. 투표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 미주 지역 다른 재외국민들과 비교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마트 한 구석에 차려진 투표소 내부는 한산했으나 겉모습은 국내와 다를 게 없었다. 여권을 제시해 본인 확인을 완료한 뒤 한국 주소지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 이름이 기재된 투표용지를 출력받았다. 이어 기표소로 들어가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투입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완료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매일 투표가 종료되면 모든 봉투를 수거해 별도의 주머니에 담아 지정된 장소에 보관한 뒤 한국으로 이송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태평양을 건너 1만km 이상 떨어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그래서 재외국민 투표소의 투표 절차를 간단한 영상으로 담아 수업 과제로 제출했다. 담당 교수도 외국에 체류 중인 유권자까지 신경쓰는 ‘K민주주의’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기자의 어깨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불과 2년여 만에 그 자부심은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때문이다. 선거 당일인 지난 3일,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에서도 투표용지가 추가 공급된 투표소가 모두 9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선관위의 해명이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본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유권자 수 대비 50% 수준으로 낮췄다. 사전투표율 상승에 따른 수요 예측의 어려움과 투표용지 보관 부담, 미사용 용지가 과도하게 남을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부정선거 논란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예산 절감을 위한 관행과 내부 지침 변경이 맞물리면서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해외 곳곳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적지 않은 비용과 행정력을 투입하는 나라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 부족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투표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며칠째 선관위를 규탄하는 시위대의 마음 깊은 곳에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라는 충격이 자리잡고 있으리라.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상처받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선관위 인력 등을 점검하고 제도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은 한 사람의 투표권을 끝까지 지켜내는 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2026-06-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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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한화오션, 대한민국 잠수함 수출 새 역사 쓸까
대한민국 방산업계의 시선이 캐나다로 향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CPSP는 1998년 도입한 2400t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할 3000t급 잠수함 12척을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건조 비용만 20조 원, 향후 30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 사업을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는 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방산기업이 도전장을 던졌고, 한화오션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가 막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초’ ‘최고’ ‘유일’ 기록을 모두 보유한 명가다. 잠수함 기술 원조인 독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1993년 국내 최초 전투 잠수함을 완성한 이후 최근까지 한국 해군 전투잠수함 모든 선종을 건조했다. 2006년과 2017년, 2021년에는 △해외 잠수함 창정비 △세계 5번째 잠수함 수출 △세계 8번째 잠수함 원천기술 확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여기에 3000t급 이상 중형잠수함도 독자 개발했다. 자체 기술력으로 중형잠수함을 개발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러시아,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로 최근까지 2000t급 미만 소형잠수함 제작만 가능했던 탓에 아직 중형잠수함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한화오션은 CPSP 납품 모델로 현존 디젤 추진 잠수함 중 최상의 작전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3600t급 ‘KSS-III’를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빠른 납기와 검증된 기술력 그리고 장기 산업 동맹이 강점으로 꼽힌다. 한화오션은 노후 잠수함 퇴역 전인 2032년 1번 함을 시작으로 2035년까지 4척 인도를 목표로 제시했다.
애초 2034년까지 최소 2척 인도를 제안했던 TKMS는 뒤늦게 자국 물량을 캐나다에 조기 양도하는 방식으로 2036년까지 4척을 인도하겠다며 견제에 나섰다. 건조 경험과 역량도 한화오션이 월등하다. KSS-III는 이미 진수돼 운용 중인 모델이다. 지난달엔 한국-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에 투입돼 1만 4000km 무결점 대양 기동력까지 입증했다. 반면, TKMS의 ‘212CD’는 설계도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모델’이다. 212CD는 TKMS와 노르웨이 콩스버그가 공동 설계한 2500t급(수중 2800t급) 모델로 아직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화오션이 수주에 성공하면 세계 방산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보이는 독일을 상대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의 잠수함 설계·건조·운용 기술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부산과 경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조선 생태계에도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본함 건조와 후속 지원함을 고려할 때 향후 약 60년간 안정적 물량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조에 참여할 300여 중소 협력사는 글로벌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편입될 기회까지 잡을 수 있다. 이를 통한 국내 생산유발효과는 40조 원, 일자리 창출은 2만 4000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기업 간 경쟁을 넘어 한국과 독일 간 국가대항전이 돼버렸고 우리 정부도 막판 총력 지원에 나섰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번 수주전 성패가 동남권 조선업 벨트 부활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의 관심도 뜨겁다 . 이달 말, 대한민국 잠수함 수출의 새역사가 또 한번 쓰여지길 기대해 본다.
2026-06-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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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
최근 나홍진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선보인 신작 ‘호프’(HOPE)가 던진 화두는 묵직하다. 바로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이다. 나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나온 이야기”라며, 전작 ‘곡성’이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틀 안에서 폭력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외계인과 우주라는 미지의 존재를 통해 그 근원을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 세계와 인문학적 시선을 교차해 보면, 그 답은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불안’과 연결되지 않을까?
인간은 늘 불완전하다. 거대한 자연과 알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미르차 엘리아데는 그의 저서 ‘신화와 현실’에서 인간은 초자연적인 존재 앞에서 느끼는 근원적 공포와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종교적 절대성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나 감독의 전작 ‘곡성’은 이러한 인간의 취약성을 노골적으로 파고든다. 마을 사람들은 산속에 사는 외지인이라는 ‘불확실한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원시적인 무속 신앙을 끌어들이고, 자신들만의 편협한 잣대로 상대를 악마화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결국 폭력으로 폭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도 닮아 있다.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이웃 ‘부 래들리’의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주민들은 스스로 불안해하고 억측을 키우며, 끝내 뜬금없는 괴담과 거짓을 만들어내 상대를 고립시킨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이해의 손을 내밀기보다 먼저 방어기제로서의 폭력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철학자 한병철이 저서 ‘폭력의 위상학’에서 밝힌 통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폭력이란 본질적으로 ‘이질성’(나와 완전히 다른 성질이나 존재)과 ‘타자성’(나와 구별되는 외부의 힘)에 대한 거부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 혹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극심한 내면적 불안을 겪는다. 그리고 그 불안과 걱정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때,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자를 파괴하려는 공격성을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이 폭력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무기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비극은 우리의 현실과 일상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사회 구조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 원인을 직시하고 연대하여 해결하려 하기보다, 내 불안을 촉발한 ‘만만한 타자’를 찾아내 분노를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소외된 이웃, 이주민, 직장 동료, 가족, 자신과 신념이 다른 상대방 등을 향한 혐오와 묻지마 폭력은 결국 내면의 불안이 임계점을 넘어 터져 나온 일그러진 방어기제다.
결국 폭력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 그리고 미지의 것을 통제하려는 과도한 불안에서 싹튼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 안의 불안을 응시하는 용기, 그리고 내가 모르는 타자를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성숙함이다.
2026-06-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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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혐오 표현을 혐오한다
‘노무한 박수’, ‘5·18 탱크 데이’.
혐오 표현이 세상을 강타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는 얼마 전만 해도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시민이 찾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프로 스포츠 구단 유튜브 채널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음지에서 극단의 성향을 가진 누리꾼들끼리 주고받던 혐오가 양지로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롯데 자이언츠 유튜브 ‘자이언츠TV’에는 ‘[HOTDUG] 박세웅의 호투에 응답하는 득점’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는 지난 10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모습이 담겼다.
문제의 장면은 덕아웃에서 롯데 노진혁 선수가 윤동희 선수의 안타 장면에서 박수를 치는 장면에서 나왔다. 박수를 치고 있는 노 선수의 유니폼 뒷면 이름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이 삽입됐다. 이름 중 ‘진혁’을 가리고 자막이 달려 ‘노무한 박수’로 읽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8일을 ‘탱크 데이’라고 프로모션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지, 무시, 폄훼가 담긴 프로모션이었다. 원래 있던 '탱크 텀블러'라지만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시민들은 스타벅스를 불매하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까지 나서 사과했지만 ‘탈벅’ 행렬이 이어지고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혐오 사건에서 심각한 점은 위장된 혐오와 조롱이라는 점이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은 명확성이 덜하기 때문에 제재가 쉽지 않다. ‘노무한 박수’라는 표현 속 노무의 온라인 쓰임새를 아는 사람은 혐오를 즉각 인지한다. 하지만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인지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기 때문에 명백한 혐오 표현이지만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각 기업들의 사과는 법적 제재를 우려해서라기보다는 기업 이미지를 우려한 사과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 사회의 대응도 비슷하다. 법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지금처럼 스타벅스 불매 운동이 전부다. 분명히 혐오라는 가해를 했지만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일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을 이번 기회에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에는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징벌 배상, 과징금 공론화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표현을 막는 방식이 돼서는 안된다. 다만 핵심은 혐오는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곧 혐오 콘텐츠들은 연성화를 거쳐 지금보다 ‘세련된’ 모습을 갖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혐오는 지금보다 더 공적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더 자유롭게 유통될 것이다. 그때는 누구도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혐오를 혐오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다.
2026-05-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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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판결문,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첫 문장
“결코 여러분이 부족해서 이런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2024년 1월 피해자 229명을 양산한 부산의 180억 원대 전세사기 사건 선고 직후.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준비해 온 종이를 꺼내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검찰 구형량인 징역 13년보다 더 무거운 징역 15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이후 그해 말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지난달 부산에서는 또 다른 전세사기 사건에서 중형 선고가 나왔다. 부산지법은 무자본으로 빌라를 지어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로 기소된 건축설계사무소 대표 A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피해자 2명에게 4억 원에 가까운 배상을 명령했다. A 씨는 지난 2018년 연제구에 18가구 규모의 빌라를 준공한 후,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5개월 동안 12건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며 총 11억 원의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전세사기는 단순한 재산 범죄를 넘어선다. 특히 사회 초년생과 청년층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삶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몇 년 전 부동산 가격 폭등 속에서 확산한 무리한 갭투자와 부실한 임대시장 관리, 허술한 제도는 전국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정작 법정에 선 피해자들이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의외로 ‘소외감’이다. 재판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판결문은 법리 중심으로 작성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때로 ‘피해 금액’과 ‘양형 사유’ 몇 줄로 압축된다. 법정은 공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건조해지기 쉽다.
이유가 있다. 실제 법조 기자가 접하는 다수의 판결문은 정형화된 문장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판사 개인의 고민이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사건이 과도하게 몰린 현실 속에서 형사재판 역시 점점 처리 중심으로 흘러간다. 법관들 또한 수십 건의 사건을 소화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기계적인 판단으로 기울기 쉬운 구조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박 부장판사의 판결이 주목받았던 것은 단순히 형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해자들을 향해 “여러분 잘못이 아니다”라고 직접 말한 장면은, 사법부가 피해자의 삶과 감정을 어디까지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특정 판사 개인의 ‘따뜻함’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왜 피해자의 고통을 언급하는 판결문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지, 왜 인간적 언어가 담긴 재판이 드물게 느껴지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과거 박 부장판사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건 의외로 그의 경계심이었다. 그는 “따뜻한 법관처럼만 비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형사사법절차는 어디까지나 엄격하고 공정해야 하며, 판사는 감정보다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 말은 오히려 중요한 균형점을 보여준다. 사법부의 역할은 무조건적인 공감이나 감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법정은 냉정해야 하고 판결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다만 전세사기처럼 삶의 존엄마저 무너뜨리는 구조적 재난 앞에서는, 피해자를 단순한 사건 기록 속 객체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사법부의 고민 역시 필요하다. 사법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단지 엄한 형벌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판결문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무너진 삶을 다시 붙잡기 시작하는 첫 문장일 수도 있다.
2026-05-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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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생명지킴이도 소모품인 나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합니까?”
역설적이다. 삶의 끈을 놓으려는 이에게 버팀목이 될 정신건강복지센터 위기개입팀 요원에게서 이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현장을 외면한 우리나라 자살예방체계의 실상이 이 울분 섞인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노동은 가혹하다. 밤샘은 일상이고, 극심한 감정 노동이 뒤따른다. 자살 소동 현장의 날 선 눈빛, 고함을 감내하며 응급 입원을 결정하고, 수화기 너머 출구 없는 절박한 호소와 때로 들릴 듯 말 듯 무기력한 목소리에 온 신경의 가닥을 잇는다. 정작 자신들의 마음은 다치고 지쳐 있지만, 이들을 보듬을 치유 시스템은 효과적이지 않다. 위기개입 요원 4명 중 1명이 반년 만에 짐을 싸는 악순환이 현장의 붕괴와 한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치권의 관심에서도 이들은 소외돼 있다. 선거 국면에서 득표에 도움되지 않는 ‘철저한 소수’여서다. 울산 10여 명, 부산 10여 명, 경남 약 20명 등 전국 광역센터를 다 합쳐도 위기개입 요원은 200명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위기를 모른 척하는 것은 한 해 1만 4000명에 달하는 자살자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 연 평균 2000여 명인 산재 사망자의 7배에 달한다. 국가적 재난 수준의 수치임에도 최전선의 보초병들은 소모품처럼 쓰이다 잊힌다.
현장의 폐쇄성은 침묵을 강요한다. 관련 기사에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것조차 겁난다는 요원의 고백은 그냥 흘려듣기 힘들다. 얼마 전 계약해지된 지방의 한 요원은 취재 요청에 응하지 못해 되레 미안하다고 했다. 기관의 눈 밖에 나 업계에서 퇴출당할까 봐 스스로 입을 닫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유는 하나, 막다른 길에 내몰린 생명을 부여잡는다는 소명감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은 높은 자살률을 두고 “전 세계적 망신”이라며 각별한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행정은 여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1년도 못 버티고 사람이 빠져나가는데 국가는 그 숫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왜 떠났는지 추적하는 기초 자료가 부족하니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없다. 낙제점 수준의 안전망에 ‘전문성 만점’ 등의 가짜 성적표를 매기기 바쁘다.
지방 요원들은 박봉으로 버티다 현장을 떠나고, 그 공백을 채울 전문 인력을 키우는 기관조차 수도권에 쏠려 있다. 몇 번 출동했는지, 몇 통의 전화를 받았는지 세는 동안, 정작 몇 명을 살렸는지 묻지 않는다. 내부 인력조차 관리 못 하는 행정이 위기 개입 이후 대상자가 안정적인 치료 체계에 안착했는지 살필 리 만무하다. 관리 감독이 복잡하게 얽힌 위탁 체계 어딘가로 책임의 주체마저 희석된다. 이러한 구조 위에서 여론 무마용으로 팀을 급조하는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는 한, 비극의 고리는 끊기지 않는다.
기자로 활동하며 ‘베르테르 효과’ 등을 이유로 자살 관련 보도를 금기시했다. 그 사이 보도 윤리와 상관없는 현장의 모순마저 방관한 책임이 있음을 느낀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란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살률 OECD 1위라는 불명예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너진 정신응급 대응체계 위에서는 누구의 생명도 온전히 구할 수 없다. 벼랑 끝 현장을 사수하는 ‘생명 지킴이’를 지키는 것이 국가 자살 예방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2026-05-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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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가정의 달, 닿지 않는 삶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말이 닿지 않는 삶도 있다. 이를 테면 관계가 끊긴 채 고립된 삶이다.
고독사는 늘 숫자로 먼저 접하게 된다. 부산에서는 2024년 367명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는 식이다. 최근에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고립된 채 발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실제로 생활고 속에 가족 전체가 숨지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울산에서는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들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고, 전북 임실·군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공통점은 ‘신청하지 못한 복지’였다. 제도가 있었지만,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같은 사건이 잇따르자 정부도 미성년자 등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위기가구 구성원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당사자 동의 없이도 생계급여를 직권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고립가구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주변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1인 가구의 경우, 이웃이 이상함을 느끼기 전까지는 아무도 상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제도는 있지만, 그 사람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반대로 조금 일찍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웃이 먼저 찾아가면서 끊겼던 관계가 이어진 사례다. 끼니를 거르고 사람을 피하던 시간이 길었지만, 누군가가 말을 걸고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다시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먼저 움직인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부산의 사회복지 공무원 신아현 작가는 에세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에서 자신들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원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제도와 법은 결국 사람을 통해 전달된다. 욕설이나 위협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그 사람의 사정을 먼저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게 관계를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6%를 넘는다. 연령대도 청년부터 노년층까지 퍼져 있다. 이제 혼자 사는 삶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상황일 때다. 1인가구의 절반 가까이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아플 때나 돈이 필요할 때, 혹은 우울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전체보다 낮았다. 연락할 사람이 없고,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찾아가는 방식’을 강조한다. 이웃이 직접 살피고 먼저 말을 거는 방식이다. 그래야 관계가 생기고 그다음 제도도 움직인다.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안부를 한 번 묻는 것, 평소와 다른 기척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등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차이를 만든다.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이런 신호를 놓치면서 쌓여간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었던 작은 신호들이 아닐까. 5월, 우리가 떠올려야 할 가족은 꼭 가까이 있는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제도에 닿지 않은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려보자.
2026-05-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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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진짜 '1억짜리' 프리미엄 소음입니다
부동산 커뮤니티나 임장 카페를 둘러 보기 전 원소기호처럼 외워야 하는 말이 있다. 이름하여 ‘브역대신평초’다. 이는 부동산에서 투자 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고를 때 자주 쓰는 6가지 핵심 요소를 줄인 말로 브랜드·역세권·대단지·신축·평지·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뜻한다.
이 공식에서 주목할 점은 ‘초’의 위상이다. 당당히 육각형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품아 아파트들은 안전한 등하굣길이 보장되고, 학교를 중심으로 학원가와 상권이 형성돼 주변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초품아는 인근 단지보다 상당한 수준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자산 가치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인 셈이다.
하지만 프리미엄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균열은 학교가 가장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일 때 발생한다. 바로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운동회날이다.
요즘의 초등학교 운동회는 풍경부터가 예전과 다르다. 호루라기를 입에 문 선생님 대신, 마이크를 잡은 전문 사회자들이 운동장을 진두지휘한다. 아이들의 문화를 꿰고 있는 이들은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을 틀고 ‘랜덤플레이 댄스’로 흥을 돋운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비트와 사회자의 재치 있는 입담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몇 옥타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운동회의 백미인 계주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절정에 달한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치고,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 역시 자식의 질주 앞에선 목소리 톤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활기찬 소동은 담장 너머 아파트 단지에 닿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소음으로 변질된다. 즐거운 비명 소리가 커질수록 학교 교무실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애들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 좀 조용히 시켜라”는 민원 때문이다. 축제가 한창인 운동장이지만 선생님 한 명은 교무실을 지키며 이 날 선 항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대응이 미흡하면 더 날카로운 항의로 돌아오거나 교육청, 국민신문고로 민원이 옮겨가기 때문이란다.
민원을 의식한 사회자는 결국 흥이 오른 아이들에게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니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흥을 올리기 위해 섭외된 사회자가 힘들게 끌어올린 흥을 가라앉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된다.
물론 평온한 일상을 방해받는 주민들의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휴식 시간일 것이고, 소음에 예민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회는 1년에 단 하루다. 과거처럼 한 달가량 ‘칼각’을 맞추던 연습 기간도 없다. 많아야 운동회를 앞두고 간단한 연습 1~2회와 당일의 소동이 전부다. 게다가 점심 시간 전에 행사는 종료된다.
우리가 ‘초품아’라는 이름표에 지불한 그 프리미엄 안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활기, 그리고 학교라는 공동체가 주는 유무형의 혜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루 반나절만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저 시끄러운 함성을 ‘1억짜리 소음’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겨 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동네야말로, 당신의 재테크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값비싼 신호다.
2026-04-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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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김기철, 잊히지 말아야 할 이름
김기철 씨는 1980년 3월 14일 부산 안창마을의 두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43세. 그는 임종 직전까지 제대로 된 진찰 한 번 받지 못했다. 황달과 폐질환 증세를 보였지만, 병의 근원은 고문 후유증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부산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언론인 조갑제 씨의 논픽션 〈김기철 씨는 왜 요절했나?〉는 ‘김근하 군 피살 사건’을 둘러싼 수사와 재판 과정을 추적한 기록이다. 경찰과 검찰, 법원, 언론이 고문과 조작, 오판, 오보로 얼룩진 사건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보여준다.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967년 10월 17일, 화랑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5학년 김근하(11) 군은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 있는 학교를 나와 과외를 마치고 귀가했다. 근하 군은 그날 밤 늦게 부산시청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집으로 돌아가던 근하 군이 유괴·납치된 뒤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경찰은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고문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지만, 이들이 모두 풀려나면서 수사는 결국 헛발질로 마감됐다.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김기철 씨는 이듬해 5월 5일 검찰에 구속됐다. 수년 전 범천공원에서 라디오를 빼앗았다는 혐의였다. 단순 절도 혐의로 시작된 사건은 곧 근하 군 살해 혐의로 확대됐다. 검찰은 김 씨 지인 김금식 씨의 허위 자백을 토대로 사건을 엮었다. 말 그대로 ‘생사람 잡는’ 수사를 벌였다.
김 씨에게 가해진 가혹행위 부분은 차마 눈으로 읽기 힘들 정도다. 그는 검사실로 불려가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두꺼운 가죽 수갑을 채워 세수조차 못 하게 했다. 검찰은 김 씨가 잠이 들면 감방 재소자들이 발길질하도록 유도했다. 한편으로는 김 씨에게 불고기가 놓인 술상을 차려놓고 자백을 회유했다. 그럼에도 김 씨는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법원과 언론의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부산지법은 1968년 11월 22일 검찰의 엉터리 공소장을 토대로 김 씨 등 4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수사 검사를 치켜세우는 데 급급했다.
항소심은 달랐다. 1969년 3월 21일 김 씨 등은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같은 해 7월 25일 대법원이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육체와 정신이 무너진 김 씨는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다. 아들의 누명을 벗기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던 김 씨의 부모 또한 차례로 세상을 등졌다. 근하 군 사건은 1982년 10월 17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가 됐다.
1960년대 군사독재 시대 벌어진 일이지만,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무겁다. 이제는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피의자를 둘러싼 검찰의 회유, 이른바 '연어 술파티'와 같은 사건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김 씨에게 제공했던 '불고기 술상'과 묘한 기시감을 느꼈던 이유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수사권 조정과 보완수사, 공소청 설치, 헌법소원 등의 쟁점이 충돌 중이다. 정파적 유불리를 떠나 단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인권을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기철이라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6-04-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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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황금어장과 해상풍력 공존의 길
지난 2일 오전 11시 경남 통영시립박물관 1층 세미나실. 모처럼 비린내 나는 작업복을 벗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민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통영해상풍력어업인대책위원회가 한 민간 해상풍력사업자와 상생 협약을 체결하려 마련한 자리다. 대책위는 해상풍력을 둘러싼 사업자와 어민 간 갈등 속에서 지역 어업인 권익을 보호하려 통영 연안어선 종사자 700여 명이 뭉쳐 작년 9월 공식 출범한 단체다. 이후 어민들을 대표해 사업자와 협의를 진행해 왔고 꼬박 반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사업 추진 전 과정 지속적 정보 공유·협의 △어업인 참여 기반 상생·보상·이익공유 방안 검토 △실무협의체 구성·운영에 상호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민들 입장에 해상풍력은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건설과 가동이 유발할 소음과 진동, 전자파 등으로 바다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돼 어장도 초토화될 게 뻔하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하필 그 중심에 통영 욕지도가 있었다. 통상 해상풍력은 수심 20~50m에 평균 풍속이 초속 6m를 넘어야 사업성이 확보되는데, 동·서·남해안을 통틀어 이런 환경적 요건을 충족하는 몇 안 되는 해역 중 하나가 바로 욕지도 주변인 탓이다. 현재 욕지도를 중심으로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거나 추진 중인 대형 프로젝트만 4건이다. 총계획 면적은 146㎢, 축구장 2만 3000여 개를 합친 크기다. 이곳에 에펠탑 높이 구조물 130기 이상을 세운다.
문제는 이 일대가 경남 어민에게 마지막 남은 황금어장이라는 점이다. 각종 어류 서식·산란장이자 난류를 따라 회유하는 멸치 떼와 이를 먹이로 하는 각종 포식 어류가 유입되는 길목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조업 밀도를 보인다. 이 때문에 2021년 12월 고시된 ‘경남해양공간 관리계획’에선 ‘어업활동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성난 어민들은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궐기대회와 해상 시위로 맞섰다. 어민들 반발에 대다수 프로젝트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장려 정책 기조와 어수선한 정치 상황 등으로 어민들 요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고 판단한 어민들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여 타협에 나섰다. 2024년 4월 ‘남해군해상풍력발전대책위원회’가 처음 민간사업자와 손잡은 이후 꼬박 2년 만에 통영대책위도 협상테이블에 앉기로 한 것이다.
10년 넘게 갈등을 겪어온 양 측이 손을 맞잡을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책위는 실질적인 협력 구조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 나가는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적지 않다. 해상풍력에 대한 반감 역시 여전한 데다, 사업 추진에 따른 생태계 교란과 어업 피해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섣부른 속도전은 또 다른 어민 간 갈등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이번 협약이 난개발을 부추기는 수단이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대책위 김종찬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협약을 장애물 걷어내는 수단으로 삼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갈등을 넘어 공존을 택한 어민들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6-04-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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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촉법소년'에 던지는 질문
남자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멈칫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당혹 그 자체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화장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자 화장실 줄이 길다는 이유로 ‘금지된 선(?)’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날 본 여성들은 왁자지껄한 웃음부터 터뜨렸다. “우리 나이 돼봐, 다 괜찮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남자인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면 분명 성 범죄 용의자로 경찰 신고를 당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날 보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난리도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유별해야 한다’ 즉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기준이 무너진 경우 누군가에는 범죄 행위로, 또 다른 누군가에는 유쾌한 일로 소비될 수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믿어왔던 ‘당연함’은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상대적이며 허술하다. 문제는 이 같은 당연함이 규칙, 관행, 고정관념 등으로 고착화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이 나이쯤 되면 이래야 해”, “서울 강남에 살면 다를 거야”, “여성은 당연히 약할 거야” “어리니까 아는 게 별로 없어”. 이 같은 기준이 때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론 고정관념과 편견을 낳고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들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주는 부작용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를 ‘해체’의 개념으로 짚어낸 바 있다. 그는 수많은 경계선(남/여, 중심/주변, 성인/아이)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허술한지를 경고했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러한 경계선이나 규칙은 타인을 배제하고 규정하는 ‘권력의 장치’의 일환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셸 푸코는 이러한 선들이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라, 대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기득권이 설계한 ‘통치 기술’이자 ‘규율의 장치’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이 그어진 배경은 생략한 채, 오직 그 선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타인을 재단하며 살고 있다.
이 모순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촉법소년’ 논란이다. 현행법은 만 14세 미만을 ‘아이’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에서 제외한다. 촉법소년의 기준은 나이라는 잣대인데, 이 ‘14세 미만’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왔는지 무척 궁금하다. 대략적으로 이 나이 정도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사리 분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우리 사회의 ‘당연함’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최근 촉법소년의 범죄를 보면 나이라는 선에 기대 발행하는 면죄부가 현실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로 촉법소년 범죄는 성인 범죄 못지않게 잔인하고 치밀하다. 해당 사건은 2022년 1만 6435건에서 2024년 2만 814건, 2025년 2만 2598건으로 해마다 증가한다. 특히 성폭행, 강도, 살인 등 범죄 수위도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촉법소년 제도의 한계로 인해 73년 만에 연령 하향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라는 단 하나의 선을 적용할 경우 또 ‘하나마나한’ 법 개정이 될 게 확실하다. 나이라는 잣대가 인격이나 법치 의식의 척도가 되기엔 너무나 상대적이고 허술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황과 피해자의 고통, 그리고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2026-04-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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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올해는 달랐다'를 기대하며
부산 야구 팬들이 ‘올해는 다르다’를 속는 셈 치고 다시 외치는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서운 기세로 시범경기 단독 1위에 오르고 여세를 이어 정규시즌 개막 2연전을 모두 이긴 롯데 자이언츠. 기대감은 다시 한번 커지고 있다.
올해는 정말 다를까. 야구 전문가들은 롯데를 올해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하위권으로 분류한다.
지난 겨울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은 없었고 전지훈련 불법 게임장 사태로 주전급 선수들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다른 팀들이 내실 있게 전력을 보강한 것과 비교하면 어쩌면 당연한 예상이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는 야구의 오랜 격언이 정답임을 외치듯 롯데는 올해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고 있다. 거의 매년 시즌 초반 승률이 좋아 ‘봄데’라고 부르긴 하지만, 올 시즌 초반의 팀 분위기는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개막 시리즈 2경기에서 홈런 7개가 터지며 우승 후보 삼성 라이온즈를 완파했다. 지난해 팀홈런의 10%가 개막 2연전에서 나왔다. 9회말 위기에서 삼진을 연거푸 잡아내는 신인 투수도 등장했다. 2경기 만에 롯데의 상승세에 야구팬들과 전문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시즌 초반 돌풍과는 다르다는 구체적인 분석들이 나온다.
위기는 누군가에게 기회가 됐다. 주전들이 빠졌고 새로운 선수가 기회를 포착했다. 지난해 고승민과 2루 경쟁을 했던 백업 내야수 한태양이 주전 자리를 꿰찼다. FA 계약 이후 부진한 모습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것 같았던 노진혁도 1루 글러브를 끼고 이를 갈고 있다. 신인 이서준과 2년차 이호준은 “미래 주전급 선수다”라는 감독의 칭찬을 발판 삼아 라인업 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경쟁이 자연스럽게 팀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는다”며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김 감독은 “요즘 애들은 잘할 때는 잘하는데 잘 안될 때 버티는 힘이 약해”라며 롯데의 지난 시즌 아픔을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해 3위를 달리던 롯데는 8월 12연패를 당하며 무너져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올해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다만, 지난해의 경험은 큰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분명 위기는 찾아올 것이다.
잘 안되더라도 팽팽한 경쟁 구도 속에 ‘내가 잘못해서 지면 어떡하지’하는 물러섬이 아닌 ‘내가 잘해서 위기를 넘자’는 시즌 초반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위기는 길지 않을 것이다. 그 위기를 넘는다면 가을야구는 더 이상 남의 집 잔치가 아닌 ‘사직 잔치’가 될 수 있다.
야구는 7번 실패하고 3번만 잘해도 박수를 받는 스포츠다. 3할 타자는 잘 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투수도 9회 중에서 3실점을 해도 좋은 투수다.
실패해도 된다.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위기를 넘어가는 힘. 올해도 안되겠네 하며 ‘하이고’ 하지 않는 한 해.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슬로건 ‘GO HIGH!’(높게 올라가다)를 팬들이 사직에서 크게 외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소식을 기사로 전하며 첫 문장으로 ‘올해는 달랐다’라고 쓸 수 있기를.
2026-03-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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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뭐 하고 놀아야 해?” 부모에게 묻는 아이들
지난해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딸이 입학했다. 자기 덩치보다 큰 가방을 멘 자녀의 등하굣길을 함께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보람이었다. 종이 울리면 운동장은 인조잔디 위를 뛰어다니며 깔깔대는 아이들로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약 30년 전 초등학교에 다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도 ‘동심’은 여전하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하교 풍경이 달라졌다. 아이들 손에 입학 선물로 받은 스마트폰이 하나둘 쥐어지기 시작하면서 운동장 한쪽이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친구의 얼굴을 마주 보기보다 각자 화면을 들여다본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서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스마트폰만 보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의 동선과 학원 출석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주는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연락 수단을 넘어 가장 중독적인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친구를 기다리는 빈틈, 학원이나 집으로 가는 잠깐의 시간까지 작은 화면이 차지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선 ‘과잉보호’, 온라인 세계에선 ‘과소보호’로 요약된다. 놀이터에 나온 7~8세쯤 돼 보이는 아이가 엄마에게 “뭐 하고 놀아야 해?”라고 묻는 장면은 낯설고도 충격적이었다. 부모가 빽빽한 학원 일정으로 아이를 빈틈없이 관리하면서도, 정작 아이가 들여다보는 화면 속 위험에는 너무나 무지하다. 국민을 경악하게 한 조주빈의 ‘n번방’ 사건 당시, 디지털 성착취 피해자 중 최연소는 만 11세 초등학생이었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온라인에서는 사실상 무방비로 내몰린 셈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불안 세대’에서 스마트폰이 청소년 정신건강을 구조적으로 악화시킨다고 경고한다. 특히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후 10대 여자 청소년의 우울증과 자살 충동 등 정신 건강 지표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다. 과거 전쟁과 국가적 위기를 겪은 세대조차 오늘날 청소년에게서 나타나는 수준의 우울과 불안, 자해 충동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아가 형성되기 전 무분별한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위태로운 청소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현실은 학교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0년 만에 학교 일과 중 휴대전화 수거·보관을 인권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을 바꿨다. 2014년 이후 관련 진정을 모두 인권침해로 인정했지만, 2024년 10월 전원위원회에서 8대 2로 이를 기각한 것이다. 사이버 폭력과 성 착취물 노출 등 휴대전화 부작용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조차 강력한 규율이 필요해진 현실이라면, 무방비 상태인 학교 밖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역시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 SNS 금지법’을 시행한 호주에 이어 영국, 덴마크 등 유럽 일부 국가들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거나 검토 중이다.
하굣길 운동장에서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이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선택이, 정작 아이가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할 세상을 작은 화면 속에 가둬버린 것은 아닌지.
2026-03-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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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53억 혈세 매몰, 누가 책임지나
울산 태화강변에 때아닌 53억 5000만 원짜리 노면 주차장이 들어섰다. 고작 10대 남짓 주차하는 이곳은 원래 ‘태화 고지배수터널’ 공사 현장이었다. 수해를 막겠다며 5년 넘게 땅만 파더니 민원만 양산한 채 끝내 다시 메워버렸다. 부실 행정과 세금 낭비의 압축판으로 지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다.
애초 사업의 본질은 ‘물길의 분산’이었다. 중구는 2016년 태풍 ‘차바’로 생업의 터전을 잃었던 태화시장 일대의 침수를 막아보자며 ‘자연재해 위험지구 정비사업’이란 명칭 아래 두 갈래 계획을 세웠다.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빗물의 55%는 터널을 통해 강으로 바로 빼내고, 나머지 45%는 배수펌프장을 지어 처리한다는 복안이었다. 한데 배수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고지배수로가 공정률 10~20% 상태에서 통째 무산(부산일보 1월 30일 자 10면 보도)된 것이다.
터널이 막히자 방재 설계의 근본적인 허점이 남았다. ‘터널이 감당하기로 한 빗물 55%는 이제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설계대로라면 지난 2월 준공한 배수펌프장은 빗물의 절반도 처리하기 어려운 ‘반쪽짜리’ 시설에 불과하다. 총 6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붓고도 태화시장은 여전히 침수 위협 앞에 위태롭다는 얘기다.
중구청의 후속 대응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터널 공사를 ‘잠정 보류’(?)하는 대신, 행정안전부 공모로 103억 원을 확보해 함월산 계곡 상류(무주골·유곡천)에 우수저류시설을 짓겠다고 한다. 이 사업을 준공하면 지방비를 확보해 200억 원대 고지배수터널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의문이 꼬리를 문다.
먼저, 우수저류시설이 터널 몫이었던 빗물 55%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만약 55% 유량을 처리할 수 있다면 애초 큰돈 들여 민원이 불보듯 뻔한 도심지 터널 공사는 왜 추진했나. 터널을 다시 추진한다는 대목에선 103억 원짜리 저류시설이 결국 임시방편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계획대로 고지배수터널을 마무리한다 해도 자가당착이다. 현재 추진 중인 우수저류시설의 실효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두 시설 모두 필요하다면 ‘터널과 배수펌프장으로 100% 유량 처리가 가능하다’던 종전 설계가 잘못됐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물론, 행안부 공모도, 지방비 확보도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재추진 시기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한 구상에 가깝다. 갈팡질팡하는 중구의 행정 난맥상이 주민 혼란만 부추길까 걱정이 앞선다.
중구가 터널 실패를 ‘잠정 보류’로 규정하며 현실을 호도하는 것도 문제다. 보류란 어떤 일을 잠시 멈추어 두는 것이지,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공사 현장을 원상복구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행정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 2월 11일 태화시장 인근 배수펌프장에서 정치인들과 주민들이 참석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입구 현수막에는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 준공식’이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무색한 광경이다. 흙더미로 터널은 메울수 있어도 주민 불안과 냉소는 가리기 어렵다. 방재의 한 축이 무너진 상태에서 절반의 준공을 전체의 성공으로 포장하는 작태는 110만 시민에 대한 기만이나 다름 없다.
2026-03-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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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단상] 숫자 뒤의 얼굴
“숫자를 안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업은 수치로 평가받으니까요.”
최근 만난 한 고용서비스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취업률과 매출, 성과 지표가 늘 따라다니는 업종이다 보니 숫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사람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숫자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취업률이라는 숫자 뒤에는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근무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부모가 있고, 집과 일터 사이 왕복 두 시간을 고민하다 지원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일을 배우기 위해 다시 교육장에 앉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을 들으며 숫자와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난 1년간 주로 숫자를 다뤘다. 매출 증감률, 방문객 수, 가동률, 점유율. 기사에는 근거가 필요했고 숫자는 가장 분명한 언어였다. 설명이 쉬웠고 반박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명확했고 간결했고 제목으로 뽑기에도 적당했다.
그래서 수치를 여러 번 확인했다. 숫자가 맞는지 두 번, 세 번 점검했다. 돌이켜보면 숫자에 대해서는 집요했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전시장 가동률을 물으면서도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의 하루를 묻지 않았다. 외국인 매출 비중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면서도 매장에서 하루 종일 서 있을 직원들의 표정을 보지 않았다. ‘역대 최대’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지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장의 언어에 익숙했다. 얼마나 늘었는지, 얼마나 회복했는지, 얼마나 확장했는지, 기사 역시 그 흐름을 따라왔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숫자는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좌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최근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성장보다 생존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그냥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크게 바라는 건 없고 지난해만큼만 되면 좋겠습니다.” 확장보다 버팀을 말하는 문장이 많아졌다.
기사 속 숫자들은 분명히 변화를 보여주지만, 사람들의 체감은 그 속도와 꼭 같지는 않았다. 경제는 회복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버티는 하루를 말한다. 성장의 숫자와 삶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숫자는 평균을 말하지만 삶은 평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수치는 중요하지만, 그 수치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월세와 인건비를 계산하며 다음 달을 고민하는 일상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얼마나 늘었는지를 묻는 대신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 몇 퍼센트 상승했는지 대신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 끝에 서 있는 사람을 함께 보겠다는 마음이다. 성장의 속도만이 아니라 생존의 온도를 적어보려 한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률을 확인한다.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무사했는지도 묻기 시작했다. 성장의 숫자만으로는 지금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숫자 뒤에 있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려고 한다.
2026-03-09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