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골에서 농사 짓는
한국인 소믈리에
프랑스에서 직접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드는 한국인이 있다. ‘사부아(Savoie) 농부’ 하석환 씨다. 하 씨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잘나가는 소믈리에였다.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소믈리에라고 부르는 게 거북해서 이처럼 자신을 농부로 소개한다. 그가 만든 브랜드 ‘도멘 아쉬(Domaine H)’는 이미 국내외 애호가 사이에서 주목받는 와인이 되었다.지난달 28일 부산 해운대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 ‘율링’ 스페셜 디너에서 그를 만났다. 율링 측은 일찌감치 그의 와이너리에 다녀간 뒤, 사람들에게 도멘 아쉬 와인을 추천해 온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날은 2024년 빈티지 새 와인과 그의 와인 병 레이블에 작품을 올린 부산의 김무디 작가를 동시에 소개하는 자리였다.알고 보니 부산과의 인연은 오래되고 깊었다. 부산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하다 부산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프랑스 리옹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었다. 지금도 처가는 부산에 있다. 프랑스에서 직접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든 이와 이날 그 와인을 함께 마셨다. 마치 만화 ‘신의 물방울’처럼 눈앞에 드넓은 프랑스의 넓은 포도밭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포도 수확 중에 비가 와서 철수하기도 했고, 비가 예보되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속이 타기도 했다. 비를 한두 번 맞더니 포도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멘탈이 털린 적도 있었다. 와인을 만들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했다. 실수도 많았지만, 다행히 좋은 포도로 잘 자라줘서 뿌듯하다.” “처음 만든 와인을 들고 해산물로 유명한 프랑스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그곳 대표와 소믈리에가 나를 와인 생산자로서 진심을 다해 존중해 주는 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나는 이름 없는 지역에서 와인을 막 만들기 시작한 동양의 꼬마로 보였을 텐데…. 내가 소믈리에로 일할 때가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하 씨가 자신의 SNS에 일기처럼 올린 글에는 초보 농사꾼이자 신생 와인 생산자로서의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사부아는 알프스 산맥 서부에 자리잡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등 세계적인 와인 산지에 비하면 덜 알려졌지만 프랑스의 포도밭으로 유명하다. 에비앙 생수가 여기서 생산되니 물 맛 또한 짐작이 된다. 사부아(Savoie)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사보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있는 ‘사보이 호텔’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도멘 아쉬’ 와인을 만드는 하 씨의 포도밭 면적은 3만 3000평에 달한다. 국제 규격 축구장으로 따지면 15개에 달하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다. 하 씨는 평생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늘 정장 차림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빙만 하다가 대체 어쩌다 프랑스에서 농부가 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하 씨는 고교 시절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어린 나이에 다큐멘터리에 빠져,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막상 가 보니 프랑스에서는 가장 싼 술도 와인이었다.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프랑스어를 생각보다 빨리 익혀, 영화 학교 입학 전에 보르도에 있는 일 년짜리 소믈리에 과정에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현장 실습을 위해 와이너리에 갔다가 “당신은 소믈리에를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와이너리에서 일하면 어떻겠느냐”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와인 관련해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을 때였는데, 와인은 운명이었을까? 와인 공부는 소믈리에 일 년 과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다음 해에는 부르고뉴에 가서 소믈리에 과정에 다시 등록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자 운 좋게도(?) 와인의 길이 열렸고, 지금까지 와인 관련해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일하며 만났던 윤화영 셰프가 부산에 메르씨엘 레스토랑을 열면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한 덕분이었다.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2년 가까이 메르씨엘 소믈리에로 일하며 너무 좋은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부산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큰 소득을 거뒀다. 서울보다 더 좋았고, 언젠가 한국에 다시 들어가면 부산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부산에서 전문적인 소믈리에보다 지배인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다시 프랑스에서 소믈리에 생활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은 한국인 이영훈 셰프가 운영하는 ‘르 파스탕’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조그맣게 시작해 프랑스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는 처음으로 미슐랭 원 스타를 받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 누렸다. 대신 아이들을 비롯해 가족들이 힘들어 했다. 소믈리에 일의 특성상 맨날 집에 밤늦게 들어온 탓이었다. 소믈리에 일이 좋고, 잘했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2019년 10월 소믈리에를 그만뒀고, 그 이듬해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르고뉴에 있는 일 년짜리 와인 경영자 과정에 들어갔다. 실제로 와이너리를 하려는 사람들만 듣는 수업이었다. 와이너리는 농사만 지어서도 안 되고, 양조만 해서도 안 되었다. 와인병과 코르크 마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었다.사람들은 소믈리에로 일하다가 왜 갑자기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사실 와인 종주국 프랑스에서도 소믈리에 출신 생산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와인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은 쉽게 꾸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 씨 역시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걱정과 고민을 한다. 다른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내가 잃을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을 자주 되뇌는 것이다.집이 있는 리옹에서 사부아까지 차로 1시간 거리라 바쁘지 않을 때는 출퇴근을 한다. 요즘처럼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겨울철에는 와이너리에 매트리스를 깔아 두고 잔다. 수확 철에도 한두 달은 그렇게 지내니, 일 년에 절반은 와이너리에서 사는 셈이다. 포도 농사를 짓다 보니 기후 위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프랑스의 각 지역에서는 그 기후에 어울리는 포도 품종을 생산해 왔지만 너무 더워지면서 맞지 않아졌다. 프랑스 포도 농가마다 새롭게 품종을 바꾸기 위한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뒤늦게 농사를 시작한 그 역시 포도밭에 다른 종류의 나무와 식물을 함께 심어 균형 잡힌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도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자연을 유지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023년 첫 빈티지는 5개국에 수출했다. 2024년 두 번째 빈티지는 프랑스, 한국. 스페인, 중국 등 10개국에 나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멘 아쉬(Domaine H)라는 이름과 레이블을 보고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명품보다 편하게 즐기면서 더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얼마전에는 태국 방콕에 처음 갔다가 부산이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방콕에는 전 세계에서 좋다는 호텔은 다 들어와 있었고,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방콕이 그 정도로 외국인이 몰려들만한 곳일까? 방콕과 비교해 보니 부산은 훨씬 더 매력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방콕은 어딜 가도 예약 사이트가 영어로 잘 만들어져 있고, 매장에도 영어 하는 직원이 있다. 방콕의 타깃은 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다이닝하는 친구들은 부산 경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제는 눈을 돌려 K컬처 바람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에게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음식도 맛있어야 하지만 외국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편하게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산에 있는 레스토랑들은 아직 외국인에게 많이 친절한 것 같지 않다.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인이 부산에 오면 돼지국밥에 소주도 먹어 보고 싶지만, 하루쯤은 와인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매력적인 도시 부산이 그런 쪽에 더 신경 쓴다면 시장이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와인의 매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와인을 다 마셔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매년 새로운 가치를 들고 와인을 만드는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앞으로 새로운 땅에 포도밭을 일궈 와인을 만드는 한국인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상떼!
‘살과의 전쟁’ 중요한 건
큰 목표보다 작은 일상들
비만의 최대 적 ‘겨울’이 왔다. 기온이 떨어지면 몸은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축적하려고 한다. 따뜻한 음식과 고칼로리 간식이 당기는 이유다. 반면 외부 활동은 자연히 줄면서 에너지 소모량은 줄어든다. 남은 에너지는 고스란히 살로 옮겨간다. 비만 악순환의 계절이 온 것이다. 턱선이 무너지지 않고 내년 봄을 맞을 방법은 과연 없을까. 없지는 않다. 겨울을 ‘체중이 늘기 쉬운 계절’이 아닌 ‘생활 리듬이 가장 쉽게 무너지는 계절’로 이해한다면, 다이어트 성공의 첫걸음을 이미 내디딘 것이나 다름 없다. 이번 겨울, 살 빼기가 아닌 ‘생활 리듬 지키기’를 목표로 삼는 건 어떨까. ■몸무게 집착에서 벗어나야살을 더 보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비만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일반적으로 체중 증가는 ‘실패’로 간주되지만 실제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과도한 체지방과 대사 기능의 이상이다. 특히 복부에 지방이 집중된 내장 비만은 외형과 무관하게 혈압·혈당·지방간 위험을 빠르게 높인다.한국인에게 흔한 ‘마른 비만’도 문제다. 체중은 정상이지만 근육이 부족하고 지방이 많은 상태로,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대사질환이 진행되기 쉽다. 좋은강안병원 가정의학과 이가영 과장은 “체중만으로는 건강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체지방률과 근육량이 실제 건강 수준과 훨씬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비만을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대사 건강이 보내는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집에서도 체지방 상태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줄자로 갈비뼈 가장 아래와 골반 가장 높은 위치의 중간을 재면 되는데, 남성은 허리둘레 90cm, 여성은 85cm 이상이면 체지방률이 비만에 해당한다. 체지방률은 남자 25%, 여자 32% 이상이 비만에 해당한다. ■첫걸음은 생활 리듬 정상화관점을 바꿨다면 특별한 식단이 아닌 ‘식사 리듬의 정상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겨울철일수록 아침을 거르고 배고픔이 밀려올 때 몰아 먹는 패턴을 반복하기 쉬운데 이 과정에서 혈당 변동이 커지고 체지방 축적이 더 활발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식사 속도 역시 다소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 20분 이상 천천히 먹으면 포만감이 제때 형성되어 과식을 막아준다.단 음료와 고당식품은 겨울철 간식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혈당을 급격히 올리고 남은 에너지를 지방으로 변환하는 ‘가장 빠른 경로’다. 싱겁게 먹고 인스턴트 음식은 피하며, 술은 아예 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생활 리듬도 정상화해야 한다. 특히 운동은 체중 감량을 위한 단기 전략이 아니라 ‘근육을 지키는 생활 습관’으로 봐야 한다. 근육을 유지하는 것이 체중을 지키는 데 훨씬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실외 활동 감소로 근육 손실이 쉽게 진행되는데, 근육량이 줄면 같은 양을 먹어도 체중이 더 쉽게 느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내에서 스쿼트·런지·팔굽혀펴기 같은 간단한 대근육 운동을 꾸준히 반복하면 체지방 감소와 혈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추천되는 실내운동은 연령대별로 다양하다. 20~30대는 근력 유지를 위해 테니스, 복싱, 필라테스 등 적극적인 운동을 해볼 만하다. 40대는 근력이 줄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스쿼트나 플랭크, 덤벨 운동이 권장된다. 50대는 심혈관계 건강을 위해 수영·요가·실내 자전거를 하는 것이 좋다. 60대 이상은 낙상을 피하고 관절을 보호할 수 있는 맨손 체조, 균형 운동이 필요하다. 주 5회 이상, 하루 30~60분을 하되 바쁘면 20분씩 나눠 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된다. ■약물, 해결책 아닌 보조수단병원에서 비만 치료를 위한 약물을 권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위고비를 비롯한 삭센다, 마운자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기반의 약물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로, 뇌 시상하부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유지시켜 음식 섭취량을 줄게 해 체중 감량을 유도한다.이들 치료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일(현지시간) 처음으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와 관련된 공식 치료지침을 내놓고 장기 치료의 일부로 조건부 권장하면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WHO는 임신부를 제외한 성인들의 비만 치료를 위해 GLP-1 요법을 6개월 이상 장기간 사용할 수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체중감량 효과가 가장 큰 것은 GLP-1/GIP 이중작용제인 마운자로로, 최대 20%다. GLP-1 단일 작용제인 위고비와 삭센다는 각각 15%, 10% 정도의 감량 효과를 보인다. 삭센다는 매일 주사하는 반면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주 1회 주사한다. 치료 대상은 BMI(신체질량지수) 30 이상 또는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고지혈증·당뇨·수면무호흡증 등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다. 특히 당뇨나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마운자로를 더 추천한다.하지만 약물은 살을 대신 빼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생활 습관을 바로잡을 시간을 확보해주는 ‘보조 수단’일 뿐임을 인지해야 한다.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면 약을 끊는 순간 체중은 제자리로 쉽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WHO 역시 이번 치료 지침 발표를 통해 의약품과 함께 건강한 식단, 신체 활동과 같은 개입을 제공하도록 권고했다. ■영양제로 건강 지키기살과의 전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영양 보충이다. 비타민 D는 우리나라 인구의 약 90%가 부족한 상태다. 실내생활, 자외선 차단제 사용, 겨울 일조량 감소로 인해 충분한 햇빛을 받기 어려운 데다 식품만으로 하루 권장량을 채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 800IU 이상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지용성이기 때문에 식사 직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다만 여러 영양제에 비타민 D가 포함되어 있어 과다 섭취는 피해야 한다. 비타민C와 B군은 겨울철 독감·폐렴 등 호흡기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며, 에너지 대사 촉진과 피로회복을 지원한다. 수용성 비타민이므로 식사와 관계없이 일정한 시간, 주로 오전에 섭취하는 것을 권고한다.오메가3는 겨울 혈관 수축으로 높아진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춘다. 혈중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고 내장비만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지용성이므로 식사 중이나 직후 복용할 때 흡수율이 높아진다.제일 중요한 것은 일상의 선택이 내일의 건강을 만든다는 인식이다. 소소한 생활 패턴의 반복은 몸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비만은 의지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 생활과 환경이 만들어낸 복합적 현상이기 때문에 치료 또한 지금의 몸을 탓하기보다 흔들린 생활의 균형을 천천히 되돌리는 과정이 돼야 한다.이 과장은 “비만 관리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체중을 빼느냐가 아니라 내일의 몸이 조금 더 건강해지는 방향으로 생활 리듬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며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건강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살피는 일이 체중계 숫자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돼지국밥집 차린 이유는?
“살아 있으니 밥을 먹을 수 있다. 밥 먹는 일 자체가 복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우리가 나쁜 감정을 표현할 때 ‘밥맛이 없다’라고 하지 않나. 밥맛이 없으면 인생 조지는 거다. 밥을 맛있게 먹는 순간이 인생 최고의 클라이맥스다.”밥을 연구한 ‘밥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 구정회 회장은 소문대로 달변이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오만 데 관심이 많다”라고 자인할 정도로 관심사 또한 다양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직원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즐긴다고 했다. 부산지식서비스융합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알고 보니 부산대 학보사 기자 출신에 부대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서 소설로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24일에는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제32대 회장에 취임하는 액티브 시니어다.기자가 구 회장을 만난 이유는 뜬금없게도 돼지국밥 때문이었다. 좋은문화병원을 비롯한 5개의 종합병원과 7개의 요양병원 등 12개의 네트워크 병원을 운영하는 그가 돼지국밥집을 차렸다는 소문이 퍼져서였다. 지난 9월 말에 문을 연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돼지국밥집 ‘식복(대표 이정근)’에서 만난 구 회장은 수육과 돼지국밥을 앞에 두고 그 사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내가 원래부터 식당 주인입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구 회장이 운영하는 병원 12곳의 환자를 합치면 3000명가량이 된다. 삼시세끼씩 해서 매일 1만 그릇씩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병원 밥이라 재료 기준이 엄격하고, 위생 기준은 높고, 일제 배식으로 효율은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 식당을 한다는 이야기였다.소문의 주인공이 앞에 놓인 수육을 한 점 집어 들었다. 구 회장은 “수육은 식감이 중요하다. 집에서 수육을 하면 이런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숙성을 안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숙성 냉장고에 사흘간 둔 다음에 만들어 쫄깃쫄깃한 맛이 살아난다. 한정식집에서 먹는 돼지고기가 퍼석퍼석한 이유도 전처리를 안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음식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인상적이었다. 가게 비법까지 거침없이 털어놓는 화법에선 성격이 드러났다.평생 의술만 펼치던 그가 돼지국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수육이었다. 병원 장례식장은 수육을 많이 소비한다. 그동안 수육을 납품받았는데 그 품질이 처음 들어올 때와 자꾸 달라지는 문제가 도저히 고쳐지지 않았다. 수육의 품질이 변하면 병원의 신뢰 또한 손상이 된다고 생각해, 아예 수육을 직접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육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좋은 고기, 좀 비싼 고기를 쓰니 문제가 바로 해결됐다.부산 대표 음식 돼지국밥은 이제는 외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상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식복의 개업에는 이 돼지국밥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의사이자 경영자인 그가 보기에 위생상 불결하고, 서비스 철학이 없고, 인공 조미료를 퍼넣는 역전 식당 수준의 돼지국밥집이 너무 많았다. 부산시도 모범적인 돼지국밥집을 가려서 격려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가 수육 다음으로 육수 만들기에 들어갔다. 사골을 고아 뻑뻑하게 만든 뒤 인공 조미료를 퍼넣는 기존 돼지국밥 방식은 처음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다. 조리 실무자가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고 맛을 내려면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반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시원해야 하니까 무, 끈적하고 달아야 하니 대파, 잡내를 없애는 생강, 인공 조미료 대신 마늘을 넣으면 그 맛이 난다”라며 밀어붙였다.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사골은 하루 전에 물에서 우려내 잡내를 제거하고, 끓이면서 떠오르는 기름을 떠내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수육 되고 육수 되니, 대중들한테 우리가 양질의 돼지국밥을 선보이자고 의견이 모였다.‘부산의 정을 담은, 식복 돼지국밥’이라고 쓴 가게 간판에는 부산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급 돼지국밥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실제로 식복의 돼지국밥은 국내산 암퇘지 사골을 12시간 우려 진한 풍미가 나고, 일체의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세제나 이물질을 흡수하지 않는 ‘무흡수 뚝배기’를 사용하는 이유도 건강을 생각해서다. 주방은 조리기능장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팀 전속 요리사였던 이동석 총괄 셰프에게 맡겼다. 이렇게 정성이 든 돼지국밥은 때깔부터가 다르다. 만 원짜리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난 손님들은 대접받고 가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구 회장은 돼지국밥과 병원을 연관시켜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돼지국밥집에서는 만 원을 위해서 돼지고기를 삶고, 썰고, 서빙한다. 병원은 이제 너무 독점적인 권한, 지위, 습관, 정서를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서민들이 만 원을 벌기 위해서 어떤 수고를 하는지 알면 병원에서 환자한테 비싼 MRI 비용을 받을 때도 좀 겸허한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돼지국밥집은 나한테는 인생의 실험적인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선택에 대해 누군가 입을 댈지도 모르지만, 자영업에 대한 생각도 명확하게 밝혔다.그는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할 게 없어 음식점 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할 일이 없어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편해지려고 개업하면 일이 안 된다. 의사의 개업은 자기 인생 최후이자 최선의 선택이어야 한다. 하다가 안 되면 복귀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식복에는 ‘배가 고파서, 밥을 맛있게 먹고 싶어서 밥집에 오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는 그의 철학이 들어 있다. 식복의 대표가 아니라, 컨설턴트를 자임한 그는 낮은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들에 대해 오늘도 고민 중이다.구 회장의 식복(食福)은 어릴 적 성장 환경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경남 함안 군북 출신으로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 정착했다. 부모는 부산으로 공부하러 오는 친척 아이들을 다 받아들였다고 한다. 많은 친척과 한집에서 어울려 살아 아침이면 도시락이 열몇 개가 될 정도였다. 우리 식구끼리만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어려서는 원망스러웠지만, 커서 보니 그게 너무나 고맙게 여겨졌단다. 일찍 철이 들고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꾸라지가 든 어항에 천적인 메기를 한 마리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며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고 한다. 어쩌면 ‘식복’이 부산 돼지국밥계의 메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박종호 기자
첫눈에 황홀지경 신라 금관 여섯 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겨울방학이 눈앞이다. 신나게 방학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그래서 당일치기로 경북 경주시에 다녀왔다. 이번 행선지는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 인기 높은 야외 명소가 아니라 어린 자녀들과 함께 따뜻한 실내에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신라 금관전’이 열리고 월지관이 재개관한 국립경주박물관, 최근 신라를 주제로 문을 연 ‘플래시백 계림’ 그리고 겨울에 꼭 가볼 만한 동궁원 버드파크가 바로 그곳이다.■국립경주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은 두 가지를 기념하기 위해 신라역사관 3a실에서 특별전시회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을 열고 있다. ‘APEC 2025 정상회의’와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이 그것이다. 신라 금관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 104년 만에 교동, 황남대총 북분,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여섯 점이 사상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여서 큰 기대를 모았다. 초기 양식의 교동 금관부터 완성형이라는 천마총 금관까지 제작 시기에 따른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그야말로 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황금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국립경주박물관은 이달까지만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일반 관람객이 쇄도하자 전시 기간을 내년 2월 22일까지로 연장했다. 무료입장권은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거나 박물관 정문에서 나눠 받으면 된다. 물론 입장권 구하기가 쉬운일은 아니다. 다행히 홈페이지 예약에 성공해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하루에 총 17차례, 30분마다 매회 150명이 특별전에 입장할 수 있다. 사실 특별전 전시실은 ‘신의 금관’이라는 주제에 비해서는 매우 좁다. 그래서 전시실 내부는 매우 붐비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도 모든 입장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대감에 들뜬 모습이다. 언제 다시 신라 금관 여섯 점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 않은가.전시실은 중앙에 ‘신성한 나무와 새 그리고 황금빛 세상’이라는 독특한 사각형 구조물이 서 있고, 구조물 뒤에 금관총 금관 그리고 주변 벽을 따라 다른 금관들이 전시된 형태로 구성됐다. 곳곳에 신라 금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어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을 미리 관람하면 여섯 금관을 직접 볼 때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사전 지식을 갖고 신라 금관 여섯 점을 한꺼번에 살펴보니 모두 다른 형태에 다른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장 원초적 형태를 가진 교동금관에는 사슴뿔 장식이 없는 반면 서봉총 금관에는 새 모양 장식이 있다.‘신라 금관’ 특별전 외에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장기간 보수를 거쳐 지난 10월 재개관한 월지관이다. 통일신라 왕실의 별궁이자 연못이었던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 중 1100여 점이 전시된 곳이다. 무엇보다 널찍하게 펼쳐진 박물관 내부 구성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박물관 한가운데에는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배 한 척이 놓여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느낌을 준다. 배를 중심으로 왕의 연회와 음악, 꽃과 새가 어우러진 정원 문화, 수중 장식물 등 통일신라의 생활 미학이 전시품으로 펼쳐진다. 주사위인 상아 주령구와 금박무늬 뼈 장식, 연꽃 문양 도자편 등은 처음 공개되는 희귀 유물이라고 한다.물론 ‘신라의 금관’ 특별전을 둘러본 뒤 같은 건물인 신라역사관도 빼먹을 수 없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당연히 벽에 걸린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전시품이다. 그 앞에 서서 한동안 넋 빠진 표정을 하고 있으면 수막새가 정말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착각을 가질지도 모른다.불교미술을 볼 수 있는 신라미술관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그곳의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못지 않게 환상적이다. 금강역사, 사천왕, 팔부중 등 다양한 신장상의 강력한 표정과 역동적 자세는 잊지 못할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불교 조각 3실’에서 만난 약사여래는 무더위와 일상에 지친 관람객에게 위로와 안식을 준다.■플래시백 계림요즘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 개인 시설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아트, 즉 특수 영상이 인기다. 빛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장치다. 경주에는 최근 신라 시대 계림을 주제로 만든 히스토리텔링 미디어아트 시설인 ‘플래시백 계림’이 문을 열었다.전시 공간은 총 13개의 주제로 이뤄진다. 신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시작점부터 신라 건국 설화, 신화 속 신, 고대 유물, 신라 왕국의 대서사시가 차례로 펼쳐진다.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이색적인 주제인 데다 화려한 영상을 보면서 독특한 사진을 찍기에도 좋아 경주에 간다면 한번쯤 둘러볼 만한 시설이다.플래시백 계림의 시작은 홍살문을 표현한 ‘붉은 문’이다. 거울에 끝없이 비친 홍살문은 여행의 시작을 의미한다. 신라를 지킨 수호신인 골화, 계신 등을 표현한 ‘수호자’가 이어진다. 벽에 붙은 거대한 부조처럼 표현된 신들의 모습은 무섭기도 하면서 재미있기도 하다. 부조를 보고 서면 뒤쪽에서 나온 빛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데 특이하게도 도깨비, 귀신 등의 형상을 연출한다. 움직임에 따라 빛은 계속 모양을 바꾸는 게 상당히 이색적이고 재미있다.플래시백 계림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사진 찍기에 훌륭한 공간은 ‘신단수’다.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나무 신단수를 주제로 한 넓은 공간인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상과 색채가 화려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문무왕의 대왕을 주제로 삼은 ‘용이 지키는 바다’는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표현했다. 바다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 사진을 찍으면 정말 동해 겨울바다에 다녀온 것처럼 훌륭한 한 컷이 된다.‘용이 지키는 바다’에 이어 신라인들의 문양인 ‘보상화’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인 ‘빛의 회랑’가 나온다. 햇빛이 잘 비치는 쪽에 마련된 시설이어서 정말 밝아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다. 마지막 공간은 금관, 상감유리 목걸이 등 신라의 각종 보물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영상이다.■동궁원 버드파크<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 동궁과 월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다고 한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2013년 보문단지에 동궁원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시설은 버드파크다. 다양한 새를 살펴보거나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시설이다. 물론 새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버드바크 안에 들어가자마자 다양한 새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뱀과 거북이 잠을 자는 시설을 지나면 수생플라이트장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데, 새 소리는 이곳에서 흘러나온다. 태양황금앵무, 흰올빼미 등이 소리를 지르는 ‘범인’들이다. 어린이 두 명이 태양황금앵무 두 마리를 손바닥에 앉혀 모이를 준다. 새들은 익숙한 듯 얌전하게 먹이만 골라 먹는다.새로운 관람객이 들어오자 새들은 더 소란스러워진다. 먹이를 달라면서 주변을 맴돌며 소리를 지른다. 사람 머리에 앉은 새가 있는가 하면 바닥에 앉아 사람 얼굴만 쳐다보는 새도 있다.수생플라이트를 나오면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청금강앵무를 만날 수 있는 새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안전을 고려해 직원이 안내한다. 청금강앵무는 부리가 날카로운 탓인지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제2관에는 사랑앵무장이 있다. 잉꼬앵무새들의 재촉을 들으며 먹이를 주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잉꼬앵무새가 여러 마리가 바로 날아온다. 머리에 앉아 재롱을 떠는 새도 있다. 손바닥을 펼치자 여러 마리가 날아와 앉더니 먹이를 달라면서 짹짹거린다. 새들은 노래하고 사람들은 신나게 웃으면서 그야말로 합창을 한다.
책과 사람과 바다가
어울려 빛을 나누는 공간
지난달 30일 늦은 오후 부산항 북항 앞바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부산역과 북항친수공원 사이에 있는 쌍둥이 주상복합빌딩 ‘협성마리나G7’ 1층 어딘가에서 감미로운 선율의 재즈음악이 흘러나왔다. 100여 명의 관객은 5인조 재즈 밴드 ‘리치파이’의 반주에 맞춰 마이클 잭슨의 노래 ‘Love never felt so good’을 흥얼거렸다. 소극장이나 카페가 있는 건 아닐까 살짝 안을 들여다 보자 놀랄만한 공간이 펼쳐졌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둥근 책장에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이곳은 도서관이다.□관광객도 즐겨 찾는 도서관‘북두칠성 도서관’은 부산에 사는 사람들이나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에겐 특별한 도서관이다. 밤하늘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큰곰자리’ 처럼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껴안아 준다. ‘책이 사람을 만나 빛이 되고 길이 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북항 재개발 사업과 함께 세워진 이 주상복합빌딩의 시공사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부산역에서 북항으로 이어진 보행덱을 통해 G7 빌딩으로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 정문이 보인다. 얼마 전 개장해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북항친수공원에서는 횡단보도를 이용해 이순신대로를 건너면 바로 만날 수 있다.입구부터 펼쳐진 원형의 서가는 일반적인 일자(ㅡ) 형 서가와는 다르다. 북두칠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자리 모양을 모티브로 설계된 이 서가들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담고 있는 독특한 구조다. 책 분류도 십진법을 따르지 않았다. △문학 △예술·기술과학 △테마 서가 △언어·자연과학 △유아·아동 △철학·사회과학 △역사·여행 등 7개 분야로 분류됐다.장서는 대략 1만 6000여권. 열람만 가능하고 대출은 되지 않는다. 유료 멤버십인 폴라리스 멤버십에 가입하면 오리지널 굿즈 제공과 함께 도서 대출이 가능하다. 음식물 반입과 반려동물 출입은 금지돼 있다.□테마 서가·관광 기념품 판매도북두칠성 도서관의 가장 핵심공간은 테마 서가이다. 역시 7개의 공간(별 하나~별 일곱)으로 책이 비치됐다. △별 하나, 지식을 넓히는 인문교양 △별 둘, 감수성을 키우는 문학 △별 셋, 사람을 키우는 교육 △별 넷,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 △별 다섯, 지구를 살리는 에코 △별 여섯, 세상을 바꾸는 젠더수업 △별 일곱, 인생을 배우는 모험 등으로 구성됐다. 이곳의 북큐레이팅에는 김미향 작가(인문교양), 김경집 교수(교육), 정선영 교수(심리), 이윤숙 에코페미니스트(에코), 정희진 박사(젠더수업), 이다혜 작가(모험) 등이 참여하고 있다.‘달빛 서가’는 달의 모양이 조금씩 변하듯 매월 주제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달 주제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얼굴'이다. 이제는 멀어져 버린 친구에 대한 기억을 통해 마음을 위로받고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또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해 판타지부터 포근한 일상 힐링 만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이들을 만화 속 세계로 초대한다.열람실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아니 도서관 전체가 열람실이라고 해야 할까. 도서관 구석구석에 놓인 커다란 방석에 몸을 묻거나 반쯤 기대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자연스럽다.계단형 서가인 ‘책오름 광장’에서 책을 읽는 모습도 눈에 띈다. 계단과 아담한 광장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강연과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평소에는 편하게 독서할 수 있는 장소이다.‘글길학당’과 ‘글고운학당’은 독서 소모임과 토론·세미나가 열리는 소통과 배움의 공간이다. ‘아트 홀’은 연주회나 전시 등의 소규모 문화 이벤트가 열린다. 행사가 없을 때는 캠핑 의자에 앉아 독서를 즐기면 된다.‘꿈틀이방’은 책과 함께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이 자라나는 성장의 공간이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를 위한 개인 사물함과 모유 수유실도 마련돼 있다.도서관 입구 쪽에 마련된 탁자에는 북두칠성 도서관 굿즈를 볼 수 있다. 책과 함께 한 특별한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굿즈가 준비돼 있다. 그 옆에는 부산 지역 작가와 청년작가, 마을주민, 관광객들이 함께 개발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오랜지 바다’라는 공간도 있다. 오랜지 바다는 이런 일을 하는 마을기업의 이름이기도 하다.□4년 동안 18만 명 다녀가2021년 5월 개관한 이후 꾸준히 방문객들이 늘어 올해 11월 기준으로 연인원 18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평일에는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고, 주말에는 절반 가량이 관광객이라고 한다. 부산역이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기 시간을 이용해 찾기도 하고, SNS 등에서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방문하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로도 입소문이 났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담도담 아카데미’에는 지금까지 1만 4500여 명이 찾았다. ‘찐영어 잘하는 언니와 동화·게임 속으로 풍덩’, ‘북두칠성도서관으로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모두 841회에 걸쳐 진행됐다.‘해질녘 콘서트’도 인기 있는 이벤트이다. 매월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에 열린 해질녘 콘서트에선 재즈 밴드 ‘리치파이’가 정통 재즈곡과 함께 팝 음악을 편곡해 들려줘 갈채를 받았다.해질녘 콘서트는 싱어송라이터, 밴드, 클래식, 성악, 국악 등 다앙한 장르의 음악가들이 초청돼 매달 한 차례 열렸다. 지금까지 53차례의 콘서트가 열려 6200여 명이 찾았다.독서클럽 ‘싱글남녀 연애이야기’는 ‘솔로’인 남녀 각 6~7인으로 꾸린다. 한 달에 네 번 열린다. 지금까지 40기, 560명의 미혼남녀가 참여했다. 20~30대의 독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독서토론 뿐만 아니라 심리상담, 성격검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끈다. 독서클럽을 통해 사귀거나 약혼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엔 결혼에 골인했다고 자진신고한 커플도 나왔다.지난해부터 시작한 ‘성인 클래스’에는 퍼스널컬러, 미술심리, 와인, 명리학, 조향, 메이크업, 체형진단 등 다양한 주제로 92개의 프로그램이 개설돼 1130여 명이 수강했다. 이번 달에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말차’에 대해 공부하는 클래스(17일 오후 7시 30분)를 준비했다. 차 전문가인 이영희 뷰티풀차문예당 대표가 강연자로 나선다.개관 때부터 사서로 일하고 있는 이혜민 씨는 “북항 재개발 지역에 세워진 빌딩이 단순한 상업적 공간을 넘어서 문화와 지식의 가교 역할을 하고,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문화와 여가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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