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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토양 수분과 산불
기온이 오르면 지표면의 수분은 대기 중으로 날아간다. 증발한 수분을 머금은 구름은 어느 순간 눈과 비를 뿌려 메마른 대지와 뭇 생명을 적신다. 자연은 그렇게 돌고 돈다. 이런 섭리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은 자연의 경이로운 순환 체계도 망가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서기원 서울대 교수와 류동열 호주 멜버른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지난 25년간 이어진 온난화로 지구 토양 수분이 급감했으며,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지표면 수분함량이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00~2002년 지구 전체 토양에서 1614Gt의 물이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이는 2002∼2006년 그린란드 빙하 손실량인 900Gt보다 1.8배 많다. 2002~2016년엔 1009Gt의 물이 유출됐고, 2021년까지도 토양 수분함량은 회복되지 못했다고 한다. 요지는 지표면에서 대기 중으로 증발한 수증기량이 급증, 강수량이 늘어도 토양 수분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깬 직접적 원인은 무엇일까. 연구팀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온난화로 대기와 해양의 온도가 상승하고 강수량과 증발 수증기 총량마저 변화시켜 토양 수분을 감소시켰다는 설명이다. 결국 땅속이 건조해졌다는 의미다.
인간이 토양 수분 감소를 자세하게 감지할 순 없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은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토양이 건조해지면 나무와 낙엽의 수분 함량이 크게 줄고 대기 중 습도도 낮아져 산불이 확산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급변한 토양 수분 환경 때문에 미국 등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영남권 ‘괴물 산불’ 때문에 31명이 숨지고 피해 면적도 4만 8000여ha에 달한다. 이번 산불은 동시다발적이면서도 초대형이었다는 점에서 이전 산불과 확연히 달랐다.
이번 산불 원인이 입산자 등의 실화라는 점과 당국의 허술한 대처가 피해를 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지구온난화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우리의 안일함일 것이다. 토양이 건조해지면서 이런 재난 상황은 예견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온난화에 따른 부작용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을 위한 한층 적극적 노력이 없다면 초대형 산불, 가뭄 등은 일상화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망가진 자연의 순환 체계를 되살려야 한다.
2025-04-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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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신개념 유물창고
아라가야의 비밀을 간직한 경남 함안에 ‘신개념 유물창고’인 영남권역 예담고가 최근 들어섰다. 대전의 충청권역 예담고, 전주의 호남권역 예담고, 목포 해양권역 예담고에 이어 전국 네 번째로 개관했다.
옛것을 담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닌 예담고는 현행 규정상 국가에 귀속되지는 않지만 교육이나 학술 연구가 필요한 비귀속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됐다. 기존엔 유물을 수장고 등 밀폐된 장소에 보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박물관 등에 전시하는 국가 귀속 유물이 아닌 비귀속 유물은 일단 수장고에 들어가면 다시 빛을 볼 가능성이 적었다.
예담고의 가장 큰 특징은 방문객들이 유물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유물을 보존하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국민들에게 문화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관람과 체험도 무료로 진행한다.
함안 예담고도 이런 건립 취지에 따라 수장고, 유물정리실 이외에 관람객을 위한 전시실, 교육실 등을 갖췄다. 이곳에 보관 중인 유물은 주로 토기와 철기류 등이다. 청동기와 가야·삼국시대, 조선시대의 유물을 망라한다. 부산 등 영남권에서 개발 목적으로 실시된 각종 건설공사 등을 계기로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이 모여있다. 전시실에서는 유물 발굴조사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유물 그리기, 흑백 사진 인화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특히 개방형 수장고를 방문하면 누구나 박스에 담긴 유물을 접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 담긴 역사와 선조들의 문화를 한층 가깝게 느껴보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영남권역 예담고가 사용하지 않고 폐쇄된 길이 187m 모곡터널을 활용해 개관한 점도 흥미롭다. 이 터널은 2011년 전주~마산 철도 구간에 건설됐다. 이후 마산~진주 복선전철 개통으로 사용되지 못하게 됐으나 이번에 예담고로 재탄생했다.
특히 함안 예담고는 다른 예담고와 달리 가야권 비귀속 유물을 다수 보관 중이다. 함안 아라가야, 김해 금관가야, 고성 소가야, 창녕 비화가야 등 영남권 가야 연맹 국가들은 탁월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가야인들은 수많은 고분 유적을 남겼지만 가야사 복원은 이 순간까지도 미진하다. 그런 점에서 가야권 비귀속 유물을 다수 보관 중인 함안 영남권역 예담고는 ‘잊힌 제국’ 가야의 진면목을 일반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5-04-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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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지브리 스타일
둥글둥글 마냥 푸근해 보이는 얼굴. 단순하지만 초롱초롱하면서도 순해 보이는 눈. 아이들은 5등신에도 못 미칠 것 같은 깜찍함으로, 어른은 유럽 스타일의 8등신으로. 서정적이고 수채화 같은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터치….
난리다. 휴대폰으로 SNS를 펼쳐 들자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들이 온통 그림으로 바뀌고 있다. 평소 익히 알고 있던 사진과 닮아 있으면서도 분위기가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곧 이어지는 메시지. “너도 ‘지브리 스타일’로 사진 바꿔 봐.”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SNS가 소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오픈AI가 지난달 25일부터 챗GPT에 사진을 리터치할 수 있는 기능을 넣으면서부터다. 기능 추가 때부터 사진의 변형으로 인한 오남용 등 부작용이 우려됐으나 예상과는 달리 상당수의 이용자들은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바꾸는 데 열중했다. 오픈AI 측 엄살(?)에 따르면 지브리 스타일 그림 변환 시도 폭주로 챗GPT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녹아내릴 지경이라니 대단한 인기다.
지브리 스타일에서 말하는 지브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이름이다. 애니메이션의 신으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끌었던 회사다. 비행기 마니아인 그가 이탈리아 정찰기 이름을 따서 지은 회사명이 지브리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대표작.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든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미래소년 코난〉 등 그의 초기 작품부터 이어지는 지브리 작품들의 주제는 대부분 가족, 사랑, 환경, 반전 등으로 선명하다. 반면 화풍은 화면 속으로 손을 넣어 어루만지고 싶을 만큼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으로 일관해 왔다. 아날로그 스타일의 작화를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범람할 정도로 기술 첨단화가 대세인 요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바꾸려고 지구촌이 요란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첨단 디지털 물결 속에서도 서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찾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제는 챗GPT만으로 손쉽게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사진 변환을 할 수 있다 보니 챗GPT가 학습한 그림 화풍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향후 추이가 궁금해진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5-04-02 [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