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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총을 든 정부
이란은 ‘정규군’과 ‘혁명수비대’의 2중 군사 체계를 지닌 나라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1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왕정 시절의 기존 정규군을 견제하고,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창설했다. 해외 테러 지원, 핵 개발, 민병대 조직화, 사이버 전쟁 등 실질적 작전을 주도한다. 이란 군사력의 핵심인 탄도미사일 체계를 독점하고 호르무즈 해협도 관할한다. 이란 헌법은 혁명수비대의 역할을 ‘쿠데타 및 외국 간섭을 방어해 이슬람 체제를 수호한다’고 규정한다. 신정일치 국가에서 ‘이슬람 수호’는 초법적 권한을 의미한다. 선거로 선출된 행정 수반인 대통령조차 혁명수비대를 통제할 수 없다. 반면 국방부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정규군(42만 명)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영토 방어와 전통적인 군사 임무에만 집중한다.
19만 명에 이르는 혁명수비대는 지상군·해군·항공우주군과 정예 특수부대 쿠드스군으로 구성된다. 특히 쿠드스군은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등 중동 지역 친이란 무장 단체들을 후원·지휘해 왔다. 혁명수비대는 휘하에 30만~50만 명 규모의 바시즈 민병대를 통솔하며, 최대 1100만 명에 이르는 예비군 조직을 통해 지역사회를 통제한다. 혁명수비대가 국가 권력 핵심으로 부상한 계기는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거치며 장기전 수행 능력을 키웠다. 혁명수비대 출신들은 대통령·국회의장·장관·국회의원 등 요직을 도맡았다. 혁명수비대에서 활동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집권기(2005~2013)엔 내각 절반 이상이 혁명수비대 출신이었다. 이들은 석유·가스, 건설, 통신, 금융 등 핵심 산업 분야 기업으로도 진출해 있으며, 경제 활동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40%에 달한다. 혁명수비대가 ‘총을 든 정부’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이유다.
이번 중동 전쟁에서 미국의 승패는 혁명수비대와의 싸움에 달렸다는 시각이 많다. 혁명수비대는 ‘세계 경제의 목줄’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뒤 광범위한 미사일·드론 보복 공습을 통해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기득권과 현 체제를 보장해 줄 인물로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내세워 ‘국가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미국과 이란 모두 휴전 협상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 전쟁 장기화 우려가 크다. 미국과 혁명수비대의 ‘강 대 강’ 대치가 어떻게 끝을 맺을까. 전 세계는 ‘호르무즈 블랙홀’에서 언제 빠져나올 수 있을까.
2026-03-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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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석유 파동, K조선의 기회
일본이 70년대 1·2차 석유 파동을 겪고도 고도 성장한 데에는 LNG(액화천연가스)라는 대체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남아·호주로 수입국이 다변화되면서 중동 석유 의존도가 낮아진 것이다. 일본은 영하 163도를 유지한 탱크를 싣고 대양을 건너는 일은 무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LNG 운반선 시장을 개척한 데 이어 장기간 독점했다.
LNG는 600배 압축되기 때문에 폭발 위험이 크다. 자연기화율(BOR)에 따라 탱크에 가스가 차오르기 때문이다. 팽창 압력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초기엔 증발한 가스를 태우며 바다를 건너다가 일본이 스팀터빈을 돌리는 연료로 활용하는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해양 수송이 본격화했다.
한국은 90년대 LNG선 건조가 시작된 뒤 획기적인 기술 혁신이 잇따르면서 일본을 추월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이 원형 탱크를 적재한 모스 운반선으로 선두를 차지했고, 이어 대우조선해양이 공간 효율을 높여 적재량을 늘린 각진 멤브레인 화물창을 개발해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 삼성중공업은 스팀터빈을 버리고 DFDE(이중연료 디젤전기) 추진 방식을 개발해 운송비를 낮췄다. 저장 용량이 3만 5000㎥에서 21만~27만㎥급으로 초대형화되고, 기화되면 재액화시키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LNG 생산 대국 카타르가 지중해와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까지 가는 장거리 선박을 발주하면서 한일 간 우위가 역전된다. 일본 업계는 담합 구조여서 시장 변화에 둔감했다. 한국은 수요자 요구에 맞춰 처절한 기술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장거리·대용량·저비용으로 진화한 한국이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2004년부터 카타르가 발주한 53척 전량을 한국 3사가 가져갔다. 미국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한국의 참여를 압박하는 배경에 K조선의 저력이 있다.
이란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안정적 에너지 확보에 전 세계가 명운을 걸고 있다. 중동 뱃길이 대서양·태평양 분산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수송 기간. 중동에서 오면 25일인데 미국·서아프리카에서 출발하면 최대 60일 걸린다. 장기 수송에 따른 운임 증가와 선박 수요 확대로 세계적인 신조 발주가 예상된다. 원유·LNG 운반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K조선이 새 기회를 맞고 있다. 에너지 지도가 흔들리는 지금, LNG와 해상 운송 기술은 국가 경쟁력이다. LNG 활용과 해상 운송 경쟁력을 동시에 키우는 국가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
2026-03-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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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축복과 그늘, 석유
2020년 4월 20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 인도분 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하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사상 처음이었다.
코로나19가 터져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원유 수요가 급감했고 재고는 넘쳐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매수세가 실종됐다. 물론 마이너스라고 해서 돈을 받고 원유를 수입한 것은 아니었고, 선물거래의 특성과 국제 원유시장 구조 때문에 나타난 단기적 현상이었다. 당시 6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20달러였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가격 변동이 발생하자 국내에서는 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에 대해 거래를 중단시키는 등 시장이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4월 21일 부산지역 주유소 경유가격은 L당 974원까지 떨어졌다.
당시 상황은 원유를 100%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되레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며 불안감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동 사태로 WTI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가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가격이 뚝 떨어지는 등 원유 가격이 2020년 못지 않게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더구나 호르무즈해협에 이란이 기뢰를 풀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면서 전망 자체가 무의미하게 됐다.
석유는 지구온난화 주범이라는 시선이 있다.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탄소를 뿜어내면서 기후변화를 촉발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태양광 풍력 등 대체에너지 시장도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 ‘월드 에너지 아웃룩’ 보고서에는 원유 수요는 2050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제품 원료인 나프타 수요가 견고해 원유의 지위는 매우 공고하다.
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로 제작된 옷은 지구상에 판매되는 의류의 70%다. 반도체를 깎고 씻고 보호하는 데 쓰는 포토레지스트와 각종 용제도 모두 석유화학 제품이다. 석유 없이는 스마트폰도 없다는 설명이다. 항공, 농업, 자동차 등 경제를 떠받치는 많은 산업이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인구 82억 명 지탱이 가능한 것도 사실상 석유 때문이다.
인류는 상당 기간 석유에 의존해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석유시대의 종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2026-03-12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