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물썰물] AI 글라스 커닝
지난달 중국 광둥성의 대학에서 한 학생이 스마트 기능을 갖춘 AI(인공지능) 글라스를 끼고 시험을 치다가 감독관에게 적발됐다. 이 글라스는 착용자가 내장된 초소형 렌즈를 이용해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전해 받는 기능을 갖고 있다. 착용자가 안경테를 건드려 시험지 사진을 찍으면 AI가 시험 문제를 분석해 검색한 추천 정답을 안경에 프롬프터처럼 띄워주는 방식이다. AI 글라스 커닝 사태가 발생한 이 대학은 감독관들이 휴대용 금속 탐지기로 검사키로 한 데 이어 안경 종류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등 시험장 보안을 대폭 강화한 상태다.
기존 AI 커닝 방지책은 학생들이 각종 제출 과제를 직접 작성하지 않고 생성형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이제는 정교한 기능을 갖춘 AI 글라스 등 최첨단 스마트 기기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고사장에서 직접 실시간으로 커닝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5~6월 토익 시험에서 AI 글라스를 이용한 부정행위 시도가 있었고, 산업기사 컴퓨터기반시험에서도 수험생들이 적발되는 일이 발생했다. 특히 이동통신 3사는 최근 메타의 AI 글라스 ‘레이밴 메타’와 ‘오클리 메타’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이전에도 해외 직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들 제품은 사진·영상 촬영과 통화, 음악 재생, 음성 AI 등의 서비스를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다.
AI 글라스를 사용한 커닝 등 시험 부정행위 우려가 높아지면서 대학 등 교육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교육부는 AI 글라스를 반입 금지 물품에 포함하고, 수험생들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라는 공문을 시도 교육청에 보냈다. 인사혁신처도 안경 착용 수험생 전원을 대상으로 AI 글라스 여부를 확인토록 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법무부도 내년 변호사시험부터 AI 글라스 소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하지만 AI 글라스 최신 모델은 일반 안경과 거의 흡사해 육안만으로 구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AI 글라스에 이어 스마트 콘택트렌즈 등 초소형 AI 기기도 개발 단계에 있는 만큼 시험 부정행위 감시 방식에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시험장 녹화는 물론 탐지기 상시 도입 등으로 향후 끊임없이 등장할 새로운 최첨단 커닝 수법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이 초래한 다양한 AI 커닝 소식이 씁쓸하기만 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2026-08-05 [18:04]
-
[밀물썰물] 스크린셀러
2026년 국내 출판가에 ‘스크린셀러’ 현상이 뚜렷하다. 과거엔 스크린셀러라 하면 영화가 제작되거나 개봉할 때 관련 서적 판매량이 뛰는 현상 정도로 이해됐지만 최근엔 그 의미가 한층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경로가 다양해졌는데, 유튜브 등 SNS에 작가나 평론가가 출연해 직접 책을 언급하거나 TV 프로그램이 방송 콘텐츠로 다룬 후 관련 서적 판매가 치솟기도 한다. 주로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OTT 드라마도 소설 인기 역주행의 주요 경로다.
2021년 나온 엔디 위어의 SF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유사한 방식을 거쳐 올해 상반기에 한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라라랜드’의 그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가 지난 3월 개봉한 뒤로 흥행을 이어간 덕분이다.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난 3월부터 여러 차례 월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찍더니 결국 상반기 최고 판매 도서 자리를 차지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는 올해 상반기 도서 시장 핵심 키워드로 ‘역주행’을 꼽기도 했다. 이 플랫폼에서는 국내외 소설들이 판매 순위 상위권에 대거 이름을 올렸는데, 작가나 평론가가 유튜브나 방송 등에 출연하거나 추천한 게 인기 비결이었다고 분석했다.
스크린셀러 효과가 불후의 명작들에 유효하다는 점도 상당히 고무적으로 보인다. ‘언젠가 꼭 읽고 싶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 리스트에서 빠지면 서러울 법한 고전 대서사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관련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일이 대표적이다. 5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관련 서적 출간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점가도 호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 온라인서점은 고정 검색어로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오디세이 원작’을 떡 하니 걸어놨고, 또 다른 온라인서점에서는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가 ‘오디세이아’다.
독자 호응도 뜨겁다. 지난달 〈오디세이아〉 관련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600% 가까이 급증했다. ‘영화의 힘’이 세상에 나온 지 2800여 년이 지났고, 전 24권, 1만 2000행의 방대한 분량과 운문 서사시 형식 등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고전 앞에까지 독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가 대중 서적과 고전을 소환하고, 책은 다시 독자의 삶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일이다. 극한 더위로 야외 활동이 힘든 올여름, 영상이 불러낸 문장들에 빠지는 것도 훌륭한 피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2026-08-04 [17:58]
-
[밀물썰물] '김해신공항' 유감
박근혜 정부 시절 밀양과 가덕도의 치열한 유치 공방 끝에 동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을 확장해 건설하는 김해신공항으로 결론이 났다. 그게 딱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 김해신공항은 2021년에 본 공사에 들어가 2026년에는 개항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설정한 김해신공항 연간 이용객 목표는 3800만 명. 정부 일각에서는 과도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김해공항의 국제선 이용객이 2018년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그런 목소리는 수그러들었다. 국제선 이용객 1000만 명 돌파 시점이 정부 예측보다 7년이나 빨랐기 때문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립은 이처럼 한적한 공항을 미래 수요에 대비해 미리 키우자는 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공항 시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시급히 새로운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린 문제였다.
당초 예정대로 김해신공항이 올해 개항을 했다면 지금쯤이면 국제선 장거리 노선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로 대형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현실화했을 터이다. 소음 피해로 인한 주민들의 민원이 전무하고 더 긴 활주로를 갖춘 완벽한 신공항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인천국제공항에 버금가는 신공항이 수도권과 대척 지점인 동남권에서 현실화하는 장면은 지역 균형발전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됐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민주당이 2021년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가덕신공항 건립으로 방향을 튼 뒤 특별법 제정 전후로 9년 세월이 흘러 버렸다. 엑스포 유치를 지렛대로 2029년에라도 가덕신공항을 조기 개항하려 했던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 윤석열 정권 몰락 이후 조기 개항조차 건설업체의 몽니로 무산된 게 지난해의 일이었다.
현 시점에서 김해신공항과 가덕신공항 중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입지를 놓고 그동안 벌일 수 있는 논쟁은 다 벌였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신공항을 얼마나 빨리 개항할 수 있느냐는 문제 뿐이다.
때마침 최근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부산에만 외국인 관광객 400만 명 돌파가 올해 확실해 보일 정도다. 이 지역 외국인 관광 흥행 롱런을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올해 개항할 수도 있었던 신공항의 건설 지연이 아쉬운 건 솔직한 심정이다.
2026-08-03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