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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탄소 중립 발걸음
지난 8월 네팔에서 벌어진 대홍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물과 섞인 토석류가 수십m 높이로 들이닥쳐 사람과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모습에 경악했다. 이번 대참사로 중국과 네팔에서 8000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됐다. 네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9명도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이번 대참사는 네팔 중북부 국경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대규모 토석류와 홍수가 발생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기후 변화가 이번 대홍수의 핵심이다. 물론 네팔 대홍수의 직접적 원인이 기후변화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유형의 재난이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한다.
네팔 정부는 대참사 이후 국제사회에 복구 재건 비용으로 50억 달러 무상 지원을 요청했다. 이번 사태를 기후변화에 따른 대참사로 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0.1%에 불과한 네팔 입장에선 기후변화의 원인 제공을 한 국제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네팔과 중국이 이번 사태의 공동조사단을 꾸려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조만간 구체적인 원인이 나오겠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대참사’가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이달 초 부산 온천천에서 지구를 살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세계생활체육연맹 한국위원회(TAFISA Korea·위원장 홍완식)가 부산대역 인근 온천천 문화광장에서 TAFISA 세계걷기의 날을 기념하는 ‘넷제로워크(탄소 중립 걷기) 부산 챌린지’를 개최했다. 건강을 위한 걷기를 일상 속 탄소 중립 기후행동으로 확산하자는 취지다. 이날 행사에 시민 수백 명이 참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부산대역 인근 문화광장을 출발해 온천천, 동래역을 지나 폭포수 지점에서 돌아오는 왕복 약 7km코스를 걸었다.
걷는 게 지구를 살리는 데 무슨 연관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가까운 거리를 자동차 대신 걷는 생활습관은 개인의 건강 향상은 물론 탄소배출 저감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건강을 위해 걷고, 지구를 위해 걷자’이다. 한 사람의 한 걸음이 지구를 위한 한 걸음이 되고, 시민 모두의 발걸음이 탄소중립을 향한 큰 변화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나 자신을 비롯해 수천, 수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발걸음이 될 수 있다.
2026-10-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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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다 때가 있다'는 목욕탕
‘다 때가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대중목욕탕 ‘금샘탕’ 입구에 호기심을 끄는 간판이 걸려 있다. 동네 마트에 다녀오던 중 궁금증을 못 참고 입장하려 했더니 웬걸, 여성 전용이다. 게다가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평범한 직장인에겐 문턱이 높다. 그런데도 문전성시다. SNS에는 재밌는 공간이라는 찬사 일색의 후기가 넘쳐 난다.
〈부산일보〉는 고색창연하게 느껴질 법한 목욕탕에 Z세대가 몰리는 기현상을 19일 보도했다. 자체 굿즈와 제휴 밀크티를 판매하고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젊은 충성 고객이 늘었다는 게 금샘탕의 성공 스토리다. 기성세대라면 목욕탕이 ‘힙’한 공간으로 변했다는 데 고개를 갸웃할 테다. 개성과 희소성을 중시해서 복고풍이나 촌티까지 재해석해 내는 Z세대 특유의 감성일 것이다. 여기에 색다른 경험을 찾는 심리까지 살펴야 이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UX(사용자 경험)가 관건이다. UX는 웹과 앱을 이용할 때 편리함과 유용성뿐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는 즐거움까지 아우른다. 어떤 경험을 남길 것인가는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을 좌우해서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UX의 영향력은 오프라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Z세대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 진심이다. 반면 시간과 감정을 들여야 하는 대인 관계가 취약해졌다. 정성을 다한 만큼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거절당할까 두려워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응답이 56%다. 친구가 가장 적은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향에 맞는 체험을 하면 정해진 시간과 비용으로 즐거움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관계의 불확실성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경험 소비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이유다.
풍요의 시대에 ‘소유’로는 타인과 차별화할 수 없게 됐다. 무엇을 경험했는지로 나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라는 의미로 ‘경험 수집가’라는 명명도 등장했다. 지난해 영화를 관람하면서 뜨개질하는 CGV ‘뜨개상영회’가 인기를 얻어 정례화된 것도 남다른 경험을 찾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K팝의 글로벌 인기도 참여하고 교류하는 쌍방향 팬덤 경험의 확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존중과 공정, 선택의 자유와 취향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Z세대가 조용히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관계를 위해 개인의 시간과 감정을 희생하는 일을 당연시했던 과거의 잣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 지금의 청춘에게는 그들의 문법이 있다. 그들의 때가 오고 있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6-10-2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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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에어컨 없는 교실
에어컨은 에어 컨디셔너(Air Conditioner)의 줄임말이다. 이름만 보면, 에어컨은 찬바람이 아닌 쾌적한 공기를 만드는 기계다. 1902년 미국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는 인쇄소의 습도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고심 끝에 수증기를 이슬로 바꾸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슬이 만들어지는 만큼, 공기 중의 습도는 낮아졌다. 공기가 차가워지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였다.
캐리어의 발명품 덕분에 인쇄소는 습기로 종이가 변형되거나 잉크가 번지는 문제를 해결했다. 습도와 온도가 통제되자 제약사나 방직 공장 등의 불량률이 떨어졌다. 백화점, 극장 등에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더위를 날리는 기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살린 생명은 셀 수가 없다. 가정용 에어컨이 널리 보급된 1960년대를 기점으로 폭염 사망률이 80% 이상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습도와 온도가 통제된 수술실에선 박테리아 증식과 2차 감염률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신생아 생존율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습하고 더운 환경에선 버티지 못했을 아기들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캐리어는 노벨 의학상을 받았어야 했다”는 오래된 농담이 나온다.
정작 에어컨은 지구를 덥게 한다. 선풍기에 비해 약 20~30배 많은 전력을 써, 상당한 탄소 배출을 유발할 수 있다. 에어컨 속 냉매가스도 문제다. 이산화탄소보다 수백 배 이상의 온실효과가 있어, 조금만 누출되어도 문제가 된다. 냉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숨은 주범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17일 프랑스에선 55만 명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한 달 전 시작된 학생 시위가 커져 버린 것이다. 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 속 에어컨 없는 교실에서 더는 못 버티겠다며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한 학생들의 단체 행동이 시작이었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지구온난화가 촉발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유럽 안에서도 유독 에어컨 보급률이 낮다.
지구가 너무 더워졌다. 유럽이든 우리나라든, 에어컨 없이 여름을 버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전력 소모가 심하니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자”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차라리 탄소 배출이 없는 발전을 늘리고, 냉매 수거율을 올리거나 친환경 냉매를 확산하는 등의 대안으로 온난화 걱정 없이 마음껏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현명해 보인다.
2026-10-20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