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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AI 가짜의사 광고
요즘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사람과 인공지능(AI)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면서 ‘AI 가짜 의사’ 등 전문가를 활용한 부당광고(허위·과장광고) 상술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규제 공백을 틈타 AI로 생성한 ‘가짜 의사’를 내세운 영상 광고가 유튜브, SNS, 쇼츠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급속히 확산하면서 소비자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온라인에서 AI로 생성한 의사 등 전문가가 식품을 광고하거나 일반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혼동하게 하는 광고를 집중 점검한 결과,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식품판매업체 16개소를 적발해 관할 기관에 행정처분 요청, 수사의뢰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식약처는 AI생성 의심 광고 63건, 의약품 모방 식품 부당광고 129건 등 게시물은 접속 차단 조치했다.
‘방광염 완치’, ‘전립선 비대증 회복 가능’ 등 질병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표현한 광고, 일반식품을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같은 작용 기전’ 등 의약품 또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혼동하도록 한 광고가 대표적이다.
AI 기술로 생성된 인물은 흰 가운을 입고 실제 의사처럼 등장해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서 특정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을 추천한다. “단기간 체중 감량 가능”, “면역력 강화에 탁월한 효과” 등 검증되지 않은 문구까지 내세우며 소비자를 현혹한다. AI는 의료인의 외형, 말투, 표정, 설명 방식까지 정교하게 모사할 수 있어 소비자가 화면 속 인물을 실제 의료인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판별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일수록 ‘AI 가짜 의사’로 인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현재 법률상으로는 AI로 제작된 콘텐츠에 ‘AI 생성물’임을 표시해야 할 명확한 의무 규정이 없다. 식약처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단속을 하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 제재가 어렵다.
AI가 생성한 의사나 전문가 등이 등장하는 부당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현재 국회에는 AI로 제작된 영상·음향·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할 경우 ‘AI 생성물’임을 명확히 표시토록 의무화하는 한편, 플랫폼 사업자에게 위반 광고 삭제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일명 ‘AI 가짜 의사 광고 방지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가짜 AI 광고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입법·행정이 절실하다.
송현수 선임기자 songh@busan.com
2025-12-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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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환빠' 논란 너머
단군조선 이후 고대사를 기록했다는 ‘환단고기’가 때아닌 화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업무보고에서 ‘환빠’ 논쟁을 아느냐고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물으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기존에 전해오던 각각의 책,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로 묶어 펴낸 책이다. 강단 사학계는 일찌감치 위서 판명을 내렸다. 고대에 어울리지 않는 근대적 단어 사용, 환인 시대의 비현실적 집권 기간과 수명 등을 근거로 든다. 이 책을 옹호하는 쪽은 사료가 지극히 부족한 우리 고대사에 일부라도 살펴볼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인 관점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로부터 전해진 사실을 엮을 당시 표현이 반영됐을 뿐이고, 집권 기간과 수명은 1인이 아니라 왕조의 집권기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1979년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수십 부를 영인했고, 1982년 일본인 가시마가 이를 일역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을 계기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유립과 함께 1975년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했던 임승국이 1986년 ‘환단고기’를 국내에 출판하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공개됐다. 해방 이후 32년 만에 성공한 민주화 바람에,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고대사 기록 ‘환단고기’는 좋은 불쏘시개였다.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의 역사관에 대한 문제 의식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 ‘환빠’ 논란의 배경이란 분석도 있다. 영국사 전공자인 박 이사장은 지난해 “2023년 한국 국민 수준이 1940년대 영국 시민보다 못하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주변국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재단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 사관과의 관계를 지적 받기도 했다.
영국 역사학자 E.H.카의 명언이 떠오른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사료와 유물·유적 같은 객관적 근거, 이를 연구하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관점. 즉 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결과가 역사라는 얘기다. 연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역사를 대하는 평범한 시민의 자세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 역사에 대한 어떤 주장을 펼칠 때는 사실과 해석을 정직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계는 베일에 쌓인 우리 상고사를 밝히는 데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주변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누구나 동의할 역사의 최대공약수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이호진 선임기자 jiny@
2025-12-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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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샘터 무기한 휴간
잡지는 특정한 주제를 둘러싼 사상과 경험, 기록과 창작을 한 호 한 호 엮어내며 시대의 호흡을 저장한다. 이에 잡지 발행인은 경영자이면서 시대를 기록하고 사유의 방향을 선택하며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존재였다. 특히 어떤 기사를 싣고 어떤 필자를 전면에 세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곧 독자의 사유 지형을 형성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이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창간했다. 작지만 단단한 잡지였다. 가난했던 시절, 글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건넸다. 병원과 관공서, 군대의 한켠에서,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의 무료한 시간을 견디게 해준 매체가 바로 〈샘터〉였다. 어렵고 힘들었던 1970년대, 마른 땅의 샘물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샘터〉의 지면에는 피천득, 최인호,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과 명사의 글이 실렸다. 단정한 문장과 고요한 사유가 이 잡지를 거쳐 독자에게 닿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이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글의 근육을 다졌고, 장욱진과 천경자 같은 거장들은 기꺼이 표지와 삽화를 그려주었다. 한때 월 50만 부까지 팔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종이를 통해 오간 위로와 공감의 밀도였다.
그 〈샘터〉가 2026년 1월호(통간 671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마지막 호는 이달 24일 발간된다. 안타까운 휴간은 2019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에는 독자의 자발적 기부와 기업 후원 등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읽는 매체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옮겨가면서 독자는 급감하고, 종잇값과 인쇄비 등 제작비는 치솟아 잡지 발행이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 그럼에도 신문, 잡지, 단행본 등 물성을 지닌 매체들이 하나둘 설 자리를 잃어가는 풍경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샘터〉의 휴간 소식은 더욱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우리가 잃는 것은 한 권의 잡지가 아니다. 느리게 읽는 시간,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는 태도, 문장이 남기는 잔향 또한 함께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샘터〉의 휴간이 부디 끝맺음이 아니라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길 바란다. 50년, 100년…. 오래된 것은 결국 보석이 된다고 했다. 종이가 밀려나는 시대에도 잡지는 여전히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이는 날을 기다린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5-12-15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