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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24시간 규제의 함정
심야 시간대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가 있다. 심야 시간대에도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작동하지만 인적조차 끊긴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와도 멈춰 서는 자동차는 드물다. 잠시 멈춰서는 자동차들도 좌우를 대충 살피다 그냥 지나가는 일이 흔하다.
반면 해외의 어느 나라에서는 심야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신호등이 황색으로 점멸한다. 차량들은 점멸 신호를 보고는 멈추는 일 없이 편안하게 도로를 다닌다. 하지만 간혹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오고 차량 진행 방향으로 빨간불이 들어오면 그 나라 자동차는 망설임 없이 멈춘다. 좌우를 살피는 일도 없다. 횡단보도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행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자동차는 그렇게 멈춰 서 있다.
이 해외의 어느 나라는 호주다. 호주에서는 야간에 차량 진행 방향으로 빨간불이 들어오면 그것은 반드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도로에 보행자를 위한 횡단신호용 버튼이 있기 때문이다. 보행자가 그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횡단보도에는 초록불이, 차량 진행 방향에는 빨간불이 들어온다. 그렇기에 호주의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밤에 정지 신호가 들어오면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간다는 뜻으로 알고 차량을 멈춘다.
이 같은 방식은 규제에 있어서의 효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24시간 자동으로 작동하는 신호 체계가 운전자에게 보내는 의미와, 필요할 때 수동으로 작동하는 신호 체계가 운전자에게 보내는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강화하려 할 때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물음에 닿아 있다.
최근 경찰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차량 운행 속도를 하루 종일 시속 30km로 규제하는 현행 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건 유사한 맥락이다.
스쿨존 차량 속도 시속 30km 제한은 2011년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비판에 직면해 왔다. 어린이 통행이 거의 없는 심야 시간대나 공휴일까지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다시 호주의 예를 들면 호주는 스쿨존에 시간제 가변 속도를 적용하고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시간은 다르지만 대부분 학교 운영일의 등하교 시간 위주로 속도를 제한하고 위반 때 일반 과속보다 가중 처벌한다. 어느 쪽이 실질적으로 규제 효과가 있을까.
2026-05-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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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지역 예산 시민거부권'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가 세종대왕·이순신 장군 동상을 모신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감사의 정원’을 놓고 여야 서울시장 후보 간 공방과 함께 시민 간에도 갑론을박이 뜨겁다. ‘감사의 정원’은 6·25 참전 22개국을 기리고 참전 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집총경례(받들어 총) 모양의 높이 6.25m 석재 조형물(23개로 구성)이다.
부산에서는 ‘퐁피두 미술관 분관 건립’(사업비 약 2000억 원)과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초청공연’을 놓고, 인천에서는 ‘F1(포뮬러 원, 사업비 약 2300억 원) 인천 그랑프리’ 유치 계획을 놓고 여야 시장 후보가 충돌하기도 했다. 이들 사업 외에도 서울의 한강버스 및 세운상가 공원화 사업(종묘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강원 레고랜드 사업, 마산 및 인천 로봇랜드 사업이 혈세 낭비 논란을 빚었다.
지선을 앞두고 정책·입법연구센터 ‘공익허브’가 정책제안서를 통해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공약과 지자체장의 예산 독주 등 실태를 지적하고 ‘지역 예산 시민거부권’ 프로젝트를 제안해 화제다. 이는 지방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된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의 지자체 사업에 대해 주민이 직접 찬반 투표로 사업의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물론 지금도 총사업비 300억 원 이상 지자체 사업은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위원회 검토를 거쳐야 하고, 투자심사 통과 후에도 지방의회 예산심의를 거친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의회의 재정 감시 기능은 취약한 실정이다. 2025년 17개 광역시도의 예산안 심의결과를 보면, 지자체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감액 조정을 한 곳은 광주·세종·경남 단 3곳에 불과했다.
전국 시도 예산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5년 234조 원 규모이던 전국 17개 광역시도 예산은 올해 247조 원으로 늘었다. 2026년 기준 유권자 1인당 광역단체장 한 명에게 4년간 위임하는 예산액은 평균 2179만 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17개 광역시도 예산 총액에서 국세 이전액(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51.7%에 이른다. 지방 예산의 절반 이상이 결국 국민 혈세에서 나오는 셈이다.
지자체 예산에 대한 건전재정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공약과 지자체장의 예산 독주를 막을 실질적 장치가 없다면 수백억, 수천억 원의 시민 혈세가 낭비될 수밖에 없다.
송현수 선임기자 songh@
2026-05-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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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만세와 천세
만세(萬歲)는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뜻이다. 만수(萬壽)도 마찬가지. 둘 다 윗사람이나 귀한 손님에게 올리는 축원의 말이었으나, 이후 쓰임이 갈라졌다. 만세가 황제 숭배와 국가 질서를 상징하는 말로 굳어진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는 ‘오래 사세요’가 아니라 ‘황제의 통치 질서가 영원하라’는 정치 구호다. 송나라 때 술자리에서 함부로 만세를 외쳤다가 불경죄로 곤장을 맞고 죽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사용이 엄격했다.
만세의 위계질서는 중국 밖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명나라 사신이 세종대왕에 올린 인사를 보면 수직적 세계관이 뚜렷하다. ‘황제는 만만세하고, 전하(세종)는 천천세, 세자(문종)는 천세 하소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즉위식과 왕실 경사 때 신하들이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를 함께 외쳤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조선에서도 만세는 금기어였던 것이다.
중국 황제의 전유물이었던 만세는 근대에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3·1운동 때의 ‘대한독립 만세’는 획기적인 구호였다. 황제가 독점하던 상징 체계를 민중이 무너뜨리고 스스로 역사의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독립 선언문에 없는 만세삼창이 방방곡곡을 뒤덮은 것은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민중의 집단적 열망의 분출, 오늘날 표현으로 하면 ‘집단 지성’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역사 왜곡 논란이 만세, 천세를 소환했다. 21세기 입헌군주제 한국을 배경으로 한 국왕 즉위식에서 신하들이 천세를 연호한 것이다. 주권 국가 시대에는 맞지 않는 오류다. 디즈니+에서 방영돼 세계적인 팬덤을 얻었기에 자칫 중국의 역사 가로채기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빌미를 줄 우려도 나온다.
만세와 천세는 영어 자막에서 똑같이 ‘Long live~’로 번역된다. 군주제에서 비롯된 이 표현은 3·1운동 이후 완전히 다른 정서를 획득한 ‘K만세’의 느낌과 동떨어져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촛불 집회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 모두가 함께 외치는 기쁨과 연대의 감탄사이기 때문이다. 외국어로 오롯이 전달되지 않는 ‘한(恨)’과 ‘정(情)’처럼, 만세는 한국인의 기억과 감정이 응축된 고유 명사로 봐야 한다. 드라마 제작진은 문제의 장면을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장면을 만세로 바꿀 때 번역 없이 만세(Manse) 그대로 두면 어떨까. K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에 힘입어 ‘K만세’의 정신이 전 세계에 각인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6-05-20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