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일 해저터널의 소환
1988년 3월 13일 일본 북부의 홋카이도와 혼슈를 잇는 세이칸 해저터널이 개통됐다. 일본의 주요 4개 섬인 규슈·시코쿠·혼슈·홋카이도를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해저터널은 현존 터널 중 가장 길다. 총길이가 53.85km이며 이 중 해저 구간은 23.3km이다. 두 번째로 긴 터널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채널터널)이다. 1994년 개통한 이 터널의 총길이는 50.5km이며 해저 구간은 37.9km다. 도버해협의 최단 거리인 프랑스 칼레와 영국 포크스턴 사이를 3개의 해저터널로 연결했다. 파리와 런던을 3시간 만에 연결하는 고속전철 ‘유로스타’와 EU 탄생에 역할을 했다. 한일 양국에서 해저터널 구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일본은 1930년대 시모노세키와 부산 사이를 해저터널로 관통시켜 중국 베이징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을 했다. 1941년 지질조사와 탐사가 시작됐으나 그해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중단됐다. 국내에서 한일 해저터널 구상을 처음 꺼낸 건 1981년 문선명 통일교 초대 총재다. 정치권에서는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해저터널을 처음 거론했다. 1999년 김대중, 2003년 노무현 대통령도 언급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2011년 국토해양부가 교통연구원 검토 결과를 토대로 해저터널의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한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검토는 중단됐다. 한일 해저터널은 부산에서 시작해 대한해협과 대마도를 건너 일본 규슈까지 200km를 해저터널로 연결한다는 구상의 사업이다. 부산 정치권에서는 꾸준히 검토됐다. 서병수·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추진 여부를 검토했고, 2021년에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약으로 사업 추진을 깜짝 발표했다. 지역에서는 해저터널 건설의 실제 추진 여부를 놓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동북아 경제통합 주도적 역할’과 ‘부산의 교통 경유지 전락’ 등 찬반이 엇갈린다.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한일 해저터널’이 최근 소환됐다. 통일교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이 지난 8월 특검 조사에서 통일교의 숙원 사업이던 해저터널 건설 청탁을 위해 2018~2019년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접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재수 전 장관은 2021년 부산시장 보선 때 김종인 위원장의 해저터널 구상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일 해저터널이 통일교 의혹과 관련해 정치권을 뒤흔들 판도라 상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소모적인 정치 이슈로 더는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5-12-14 [18:09]
[밀물썰물] “韓 전력 약점” 손정의 오판
‘ASI 시대, 한국의 약점은 에너지.’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 ‘초인공지능’(ASI) 시대의 전력 공급 능력을 지적했다. 한국이 가진 AI 국가로서의 비전과 잠재력에 비하면 계획 중인 데이터센터 규모가 너무 작고, 이를 키우는 데 전기 부족이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뼈아픈 지적’이라며 원전 확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논리라면 지방에 추가 원전을 지어 수도권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에 송전 채비를 갖춰야 한다. 이는 전기 생산(지방)과 소비(수도권)의 불균형을 더 악화시키는 나쁜 처방이다. 한국은 전력 부족 국가가 아니다. 11월 전국 기준 예비율은 44%로 발전 용량이 수요를 초과한다. 문제의 본질은 전기를 대량 사용하는 시설이 수도권 내륙에 쏠린 지리적 불일치다. 동·서·남해안의 원전·화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경기도가 끌어다 쓰는 구조는 막대한 송전 비용과 주민 수용성 저하로 한계에 이르렀다. 미국 사례를 보면 명확하다. 구글은 오리건주 컬럼비아강 주변과 아이오와주 카운슬블러프스에 데이터센터를 지었는데, 지척의 수력·풍력 발전소를 보고 찾아간 것이다. 아마존이 버지니아주 애쉬번에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구축한 이유도 가까이 원전·화전이 있어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워싱턴주 퀸시의 수력 발전소 주변에 데이터센터를 차렸다. 일본은 정반대다. 첨단 인프라는 도쿄 주변에 몰린 반면, 발전소는 수도권과 먼 지방의 해안가에 있다. 오사카와 도쿄의 전력 계통 차이 등으로 장거리 송전이 어려워 수도권은 전력 공급이 벅차지만, 규슈에서는 전기가 버려지는 모순까지 발생한다. 손정의 회장의 조언은 ‘수도권의 약점은 에너지’라고 고쳐서 이해해야 유용하다. ASI 시대의 최대 위험 요인은 전기 부족이 아니라 수도권 일극 체제다. 발전소가 있는 지방에 반도체와 AI 시설이 들어서는 게 옳다. 마침, 10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첨단산업 특화단지는 비수도권에 한해 신규 지정하는 방침이 발표됐다. 지방시대위원회가 한미 관세 협정 이후 대기업이 약속한 국내 투자 1400조 원이 지역 성장에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기업 투자로 지방에 AI·반도체 혁신 벨트가 형성되면 지역 대학과 산업 생태계 혁신,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면서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다. ‘전기 부자’ 지방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2025-12-11 [18:12]
[밀물썰물] 레이더 조사
1996년은 미국과 영국 해군 주관 아래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국제 해군 훈련인 림팩 훈련이 있던 해였다. 림팩 훈련의 지휘는 미국 하와이 근처에 있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주로 맡는다. 당시 림팩 훈련에는 일본 해상자위대도 참가했는데 훈련 과정에서 큰일이 터지고 말았다. 미국 해군 항공기가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의 근접 사격을 받고 격추돼 버린 것이다. 당시 미국 해군 A-6E 공격기는 표적지를 예인하던 중이었다. 일본 구축함 유우기리호는 항공기를 표적지로 오인해 사격용 레이더를 조사(겨냥해 비춤)한 뒤 곧바로 근접방어무기(CIWS) 사격을 개시해 A-6E 공격기를 격추시키고 말았다. 이 사고는 일본의 즉각 사과로 미국이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아 조용히 마무리됐으나 전시가 아닌 때에 사격용 레이더 조사가 항공기 격추라는 실제 무력 사용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고 이후 미국과 일본은 교전 규칙과 항공기 식별 및 사격 통제 절차를 새로 마련하고 레이더 운용 규정까지 뜯어고치는 등 사고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2013년엔 동중국해에서 중국 해군 호위함이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유다치호에 사격용 레이더를 조사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일본 측 주장도 있다. 당시엔 즉각적인 사격이나 격침이 없었지만 일본은 중국 호위함의 행위를 ‘발포 직전 행위’로 규정하고 항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과 일본도 레이더 조사 논란으로 양국 여론이 들끓었던 적이 있었다. 2018년 12월 동해에서 북한 선박의 구조 신호를 받고 출동한 광개토대왕함에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대잠초계기가 근접 비행을 하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본 측은 한국 함정으로부터 사격용 레이더 조사를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국방부는 일관되게 사격용 레이더 조사는 없었다고 맞섰다. 이후 논란은 묻힌 모양새지만 한동안 양국 사이의 앙금으로 남았다. 지난 6일 중국 랴오닝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J-15 전투기가 오키나와 섬 남동쪽 공해 상공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F-15 전투기에 사격용 레이더를 조사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으로 레이더 조사를 둘러싼 국제적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다행히 실탄 발사 행위나 충돌은 없었지만 언제라도 국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는 점이 불안하다. 특히나 바닷길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중국과 바닷길을 막고 선 모양새인 일본은 일촉즉발의 관계라 더욱 그렇다.
2025-12-10 [18:05]
전재수 '입건'·김석준 '상실형’… 부산 지방선거 격랑
이 대통령, 지방대 정부 예산 강화 지시…"최대한 늘려라"
사립대 등록금 규제 18년 만에 완화… “내후년 국가장학금Ⅱ 폐지"
부전역발 서울행 열차 3배 증편 ‘복합환승센터 건립’ 탄력
경찰, 강제수사 초읽기… 윤영호 '진술 번복' 최대 난관 [통일교 게이트 파장]
‘강경 노선’ 장동혁 지도부 향해… 국힘 부산 의원들 ‘쓴소리’
해운대·화명금곡 7318세대 노후계획도시 선도지구로
남구 용호농장마을 30년 운영한 ‘구유지 주차장’ 결국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