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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낙원을 떠난 이유
어릴 적 만화방으로 향하던 길은 내게 작은 모험과도 같았다. 눅눅하고 어두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혼이 나곤 했지만, 주머니에 동전 몇 개만 생기면 나는 어김없이 골목 끝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율리시스의 모험〉은 신세계였다. 외눈박이 괴물과 세이렌의 매혹적인 노래, 끝을 알 수 없는 항해는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훗날 그 만화의 원작이 서양 문학의 시초로 불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최근 완역본으로 출간된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으며, 나는 유독 한 장면에 오래 머물렀다. 오디세우스는 귀향을 꿈꾸던 10년 중 무려 7년을 요정 칼립소의 오기기아섬에서 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긴 세월 동안 그의 행적이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생이 정지된 것처럼, 호메로스는 그저 “칼립소가 그를 붙들어 두었다”고만 서술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신탁을 전하러 온 헤르메스가 등장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묘사된다. 7년이라는 세월이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되어 버린 것이다.
안락한 현재 속에 정체되기보다
불안하지만 미래로 향하는 선택
두 갈래 길 사이 망설이는 우리
선택 순간 각자 앞에 놓여 있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생을 제안한다. “나와 함께 있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라는 매혹적인 약속이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그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왜 이 완벽한 낙원을 뒤로하고 다시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일까.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는 결핍도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그곳의 삶은 이미 완성되어 있어 선택의 고민도, 실패의 두려움도 없다. 이는 삶의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제된, 휴식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칼립소는 그저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뿐이다. “여기 머물러도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는 지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환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전함 속에서 그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는 늙지 않지만, 더 이상 변화하지도 않는다. 서사는 멈추고, 삶은 정박한다.
고통이 거세된 자리에서는 이야기 또한 멈춘다. 오디세우스는 생물학적으로 존재했으나, 실존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던 셈이다. 이를 칼립소의 악의라고 볼 수는 없다. 불멸의 존재에게 정체(停滯)는 비극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멸의 존재인 인간 오디세우스에게, 변화 없는 삶은 끝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가 돌아가려는 이타카는 안식처가 아니다. 다시 상처 입을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거친 세계다. 늙어버린 아내와 알아보지 못할 만큼 커버린 아들, 집안을 유린한 구혼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칼립소가 약속한 영원한 청춘에 비하면 이타카는 고단하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그가 뗏목을 엮은 이유는, 신의 곁에서 누리는 완벽한 안락함보다 늙고 병들더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부대끼며 책임을 감당하는 삶을 택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디세우스가 칼립소를 떠난 것은 인간이라는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실존적 선택이다. 안락한 현재 속에 박제되기보다, 비록 상처 입고 부서질지라도 내일이 존재하는 미래로 나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 오기기아섬은 먼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번아웃을 피해 무기한 휴식 뒤로 숨어버린 누군가의 모습으로, 혹은 안정적이지만 의미 없는 일상에 머물며 꿈을 유예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계의 피로를 피해 자신을 고립시키는 선택 역시 또 다른 오기기아다. 이러한 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휴식이 다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가 아니라,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될 때, 우리 삶은 흐르지 못하고 고인다.
〈오디세이아〉가 오늘날에도 우리를 흔드는 이유는, 우리 역시 매 순간 안락한 정체와 불안한 성장 사이에서 망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칼립소를 떠나 이타카를 향해 뗏목을 띄웠다. 그 선택의 순간은 지금도, 우리 각자 앞에 놓여 있다.
2026-02-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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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은색 등불 하나 켜고
커피를 내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빛난다. 아니, 오른손 검지를 덮은 커다란 은색 반지가 번득인다. 도대체 저 투탕카멘 마스크 문양 반지는 어디서 파는 것인가.
“만들었어요.”
마음을 읽었을까. 남자가 커피잔을 건네면서 잠시 두 손을 치켜들어 보여준다. 요즈음은 장신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공방이 유행이라고 한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법. 동네마다 반지 공방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연인과 부부와 동료와 친구들이 저마다의 문양으로 만든 기념 반지를 끼고 손을 포갠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내친김에 전화 예약을 하고 작업장을 찾았다. 나는 편편한 실버 링에다 수필가답게 에세이라는 영문을 새기기로 했다. 그러면 창작의 마음가짐이 단단해질 것만 같았다. 얇은 실버 막대 하나가 앞에 놓여졌다. 이것을 한 시간여 다듬으면 반지가 될 것이다. 좀 더 긴 것을 선택하면 팔찌가 만들어질 터이고 넓은 것을 두드리면 목걸이 펜던트도 가능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비단 이 작은 금속만 그러할까. 자식되기 친구되기 부모되기 어른되기 그리하여 점점 인간이 되어 가기…. 내 삶도 새로운 ‘되기’의 연속 과정이었지만 제대로 완성되지 못하고 늘 형태만 일그러졌다. 이 막대도 망치질과 사포질을 하고 불을 가하여 마침내 반지되기에 이를 것이다.
은 막대에 힘을 주니 약간 휘어진다. 이제 영문 펀치에서 단어 ‘ESSAY’를 순서대로 골라 도장 각인을 할 차례다. 망치로 두세 번 때려서 단번에 글자를 새겨야 한다. 그런데 기계 작업이 아니므로 간격과 높이를 맞추기 어렵고 의도대로 찍히지 않으니 쉽지만은 않겠다. 실전에서는 첫머리 글자부터 비뚤배뚤 튀어 오른다. 어찌하겠는가, 핸드메이드의 매력에 의미를 둘 수밖에.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도 어긋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당신이 틀렸다고 우긴 것도 모두 틀렸던가. 나도 틀릴 수 있고 당신도 맞을 수 있는데 그것을 깨닫는 데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글자도 새겼으니 둥글게 말아서 이음새를 붙여준다. 은가루를 녹여 틈을 메우고 토치로 용접한다. 파란 불꽃에서 점차 붉은 열꽃을 뿜어내니 끝과 끝이 만나 고리를 이루었다. 뜨거워도 조금만 참으면 연결되는 것. 세상일이 그럴진대 불꽃이 일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과욕을 부려서 시커멓게 그을리기도 했었다. 접합한 상처는 울퉁불퉁해도 사포로 다듬으면 매끈해질 수 있는 법. 천천히 순리대로 따르면 다 해결되었다.
손가락 사이즈를 재고 기다란 쇠봉에 줄을 긋는다. 한 짝만 끼는 것이 반지(半指)이고, 쌍으로 끼는 것을 가락지라 했던가. 반지의 원형이 둥근 이유는 테두리 밖으로 마음이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라지. 쇠봉을 돌려가면서 나무망치로 두들기고 사포질하니 반드르르해졌다. 뭐든지 깎고 다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눈파는 사이에 상처가 나고 출혈도 생긴다. 그래도 애벌레의 환골탈태처럼 고통 뒤의 환희경도 있지 않은가.
문득, 캐나다의 철근 반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퀘벡의 세인트 로렌스강 다리 붕괴 사고 때 많은 작업자의 희생이 있었다. 이후 토목기술자들은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무너진 구조물에서 뽑아낸 강철로 반지를 만들어 끼게 되었다. 그 의식은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상기하며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라는 무언의 충고였다. 쇠반지가 엔지니어의 소명 의식을 새기듯이 내가 만든 은반지 역시 작가정신을 받들도록 할 것이다. 드디어 반지의 광택 작업이 끝났다. 밋밋하던 손가락에 채워본다. 반짝! 은색 등불 하나, 온몸을 밝힌다.
2026-01-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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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겨울
새로 얻은 탁상 달력을 세워놓고 잠시 그림을 감상했다. 달력 첫 장에는 얼어붙은 개울가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수채화가 있다. 그 풍경을 넘기면 1월이다. 익숙하도록 규칙적인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한 해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었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끝나는 한 해가 아니었구나.
계절마다 제각각의 풍경이 있겠지만. 나에게 겨울은 뭔가 투명한 것이 반짝이는 계절이다. 물론, 겨울이 만만한 계절은 아니다. 이제 곧 낯설고 더 어려워진 도전과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춥다. 그래서 오히려 ‘따뜻함’이라는 것이 소중하게 드러나는 계절이다. 마치 무더운 여름에 ‘시원함’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기억이 있다.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는데 녹화된 영상처럼 간직된 기억들이다. 추운 겨울 아침, 나는 시골 외갓집 뒷산 너머의 저수지 앞에 서 있다. 길쭉한 갈댓잎엔 하얀 서리가 부풀어 앉았고, 땅을 디딜 때마다 잔뜩 성을 낸 서릿발에 뽀득뽀득 소리가 났었다. 다랑논에 물을 대기 위한 자그마한 저수지였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뿌옇게 살얼음이 껴있었다. 그랬던 저수지가 간밤의 추위로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운동장만큼 컸던 저수지는 그만한 크기의 매끈한 빙판으로 변해있었다. 사촌을 포함한 우리에겐 썰매를 탈만치 두껍게 얼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정말 탐스러운 빙판이었다.
사촌 형이 조심스레 저수지 가장자리에 발을 디뎠다. 앞으로 몇 발 더 나아가 발을 구르자, 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물러선 사촌 형이 고개를 젓자 우린 모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빙판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 작은 돌은 빙판에 부딪히며 물수제비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동시에 저수지에서 신기한 소리가 울렸다.
아래쪽 개울에서 썰매 타기엔 돌이 많다며 투덜거리던 우리의 재잘거림이 뚝 멈췄다. 작은 돌이 얇은 얼음판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이후로 다시 들을 수 없었고, 어떤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였다. 뾰롱, 뾰롱, 뾰로롱, 뾰로로로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작고 납작한 돌을 주워 저수지를 향해 던졌다. 물수제비뜨듯 비스듬히 던져진 돌은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통통거리며 저수지를 가로질러 미끄러졌다. 작은 돌과 얼음의 부딪힘으로 어떻게 저런 영롱한 소리가 날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거대한 저수지는 천연의 악기였다. 저수지를 둘러싼 언덕은 악기의 울림통이었고, 얇은 얼음판에서 울린 소리가 메아리쳐서 마치 얼음과 하늘이 주고받는 화음이 되어 펴졌다.
여기까지가 내 기억이다. 이다음에 썰매를 탔는지 어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기억을 떠올리면 늘 따뜻함을 느낀다. 그 당시엔 분명 입술이 얼어붙을 추위에 손과 발이 시리고, 귀도 떨어질 듯 아렸을 텐데 말이다.
왜 따듯하게 느껴질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명백하다. 지금 내가 따뜻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이 여전히 추위 속에 있다면 그 기억이 따뜻할 리가 없다. 아마도 대부분 감정과 기억의 체감이 그런 이치일 것이다.
겨울은 따뜻함을 선명하게 하는 계절이다. 그 선명함은 추위가 강할수록 더할 터이다. 다만, 그 추위를 감당할 마음의 아랫목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언제든 달려가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가족의 따스한 체온, 포켓 깊숙이 넣어둔 핫팩, 그도 아니면 내 차가운 손을 모아 후후, 불어주는 타인의 따스한 입김이 그렇다.
새해의 이 겨울, 모두가 따스한 옷을 입고, 장롱 속에 넣어둔 목도리를 꺼내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 이 추위가 따뜻한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6-01-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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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빛과 어둠
새해의 분위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요즘 ‘어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빛이 사라진 시간에 대해서, 혹은 의도적으로 빛을 제거한 상황에 대해서. 그 생각은 여행 중에 경험했던 체험형 전시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빛을 낼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입구 사물함에 맡겨둔 채 지팡이 하나에만 의존해 완전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공간 어디라도 미량의 빛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간이 지나면 공간의 형태나 사물의 모습이 대략 분간되기 마련인데, 그곳은 내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완벽한 암흑 속이었다. 길을 안내해주는 가이드가 있었지만 그의 설명만 듣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도 막막해서 발걸음이 자꾸 멈칫거렸다.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니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나에게 익숙했던 빛의 세계가 해체되고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그런데 그 상황에 조금씩 적응이 되자 두려움과 막막함이 점차 사라지고 다른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가며,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손가락 끝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낯선 사물의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도 여행지의 풍경을 충분히 누리고 기억할 수 있음을, 오히려 더 집중하고 깊이 느낄 수 있음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100분 동안의 전시 체험이 끝날 무렵 가이드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그곳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각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던 내가 오히려 문제였다. 그곳은 빛이 없는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 그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었다. 다양한 감각들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세계를 지각할 줄 아는 유능한 사람이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최근에 김숨 작가의 〈무지개 눈〉이라는 연작소설집을 읽다보니, 어둠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리고 모든 감각과 온 마음을 다해 대상에 다가갈 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무지개 눈〉은 시각장애인 다섯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선천성 전맹, 후천적 시력 상실, 저시력 장애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세계를 체험하는 방식을 다양한 문학적 형식으로 보여준다. 파도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서 인식하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사람, 저시력 장애로 인해 한 번에 한 글자밖에 읽지 못하고 읽는 속도가 무척 더디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문장을 읽을 때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 사람.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결핍이라 규정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보편적이라고 믿어온 인식의 체계는 그저 편파적인 하나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와 단편적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이미지와 정보들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쉽게 판단하고 모든 것을 너무도 빠르게 확신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것처럼 ‘윤리는 확실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전시장의 암흑 속에서 나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모호함과 막막함과 불확실성을 견디며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감각하려는 태도야말로 인간을 윤리적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는 어둠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자주 생각하며,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구석구석 만져보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겠다. 그 무엇도 섣불리 확신하지 않고, 느리게 걷고 천천히 감각하며, 오래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2026-01-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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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파레시아, 내 안의 아이를 마주할 용기
인상 깊은 영화와 드라마를 반복해 감상하곤 한다. 영화 ‘굿 윌 헌팅’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삶 전반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과거의 상처로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윌’과 세상에 대한 냉소로 자신을 무장한 ‘지안’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다행히 그들 곁에는 얼어붙은 상처를 녹여 줄 심리학 교수 ‘숀’과, 삶의 무게를 말없이 함께 견뎌 줄 ‘나의 아저씨’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은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채, 성인이 된 우리 삶을 끊임없이 흔든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요동치고, 별것 아닌 일에도 깊은 우울에 잠기는 이면에는 대개 돌보지 못한 ‘내면아이’가 있다.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 인정받고 싶은 갈망으로 자신을 소진하는 행동,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는 모습 역시, 어쩌면 돌보지 못한 내면아이가 보내는 신호일지 모른다.
프로이트는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이 아이를 내버려두고 산다는 것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외면하고 유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아이를 마주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치유의 여정에서 중요한 태도가 바로 푸코가 말한 ‘파레시아’(parrhesia)다. 파레시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모든 것을 말하다’라는 뜻이지만, 푸코는 이를 단순한 솔직함을 넘어선 용기 있는 진실 말하기로 재해석했다. 자신의 상처와 수치심, 취약함을 두려움 없이 인정하고 발화하는 용기, 그것이 파레시아다. ‘굿 윌 헌팅’에서 윌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앞에서 무너지며 학대의 기억을 고백한 순간,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이 침묵을 깨고 아저씨에게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삶을 드러낸 순간이 바로 그러하다.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상처가 규정한 대로 반응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현재의 선택으로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상처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느냐가 아니라, 현재의 성인 자아가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태도다. 과거가 오늘의 나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과거가 지금의 나를 규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파레시아는 바로 그 지점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거리를 두는 용기 있는 결단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의 아이는 무의식의 한편에서 울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고, 왜 우는지 물어야 할 때다. 우리를 길러낸 부모 역시 서툴렀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외면하거나 억지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상처를 정직하게 응시하는 용기다.
만약 우리 곁에 숀 교수나 ‘나의 아저씨’ 같은 존재가 없다면, 우리는 ‘글쓰기’라는 파레시아를 시작할 수 있다. 글쓰기는 가장 안전하고도 정직한 고백의 공간이다. 독서치료나 문학치료, 이야기치료에서 글쓰기를 중요하게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때 어린 나는 무엇을 원했는가?”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검열 없이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된다. 과거의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현재의 성인 자아가 바라보고 기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로부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푸코가 말한 ‘자기 돌봄’(care of the self)의 핵심이다. 내면의 진실을 글로 기록하는 행위는 나를 가둔 과거의 감옥에서 자신을 스스로 구출하는 치유의 의식이다. 파레시아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울고 있는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당당히 현재의 삶으로 걸어 나올 수 있게 된다.
2026-01-0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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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람이 온다는 것은
온다. 오는 것이 많은 계절이다. 이슬이 오고 바람이 오고 짧은 햇살이 긴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색을 품은 잎사귀도 제 몫의 시간을 다해 땅으로 내려오고 지난 기억도 잠시 마음에 눌러앉는다. 조용히 혹은 격렬하게 밀려오는 운명과 맞닥뜨리기도 하지만, 예고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온다. 적막 같은 빈집에 백년손님이 오는 것이다. 어느 시구에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는데 진짜 놀라운 일이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은 도대체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가족이 한 명 더 생긴다는 것은 모래바람이나 바다 태풍보다도 더 거센 강풍을 동반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바람은 무너뜨리기보다는 무언가를 세우는 바람이다. 인연의 벽돌을 쌓고 신뢰의 기둥을 세우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붕을 덧얹는다.
새 식구가 온다.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새 식구 맞이 준비를 한다. 청탁 원고도 작품집 교정도 강의 준비도 모두 차순으로 밀려났다. 답바지 음식을 들고 첫 방문했을 때는 주문한 생선회로 잠시 대접을 하였지만, 이번에는 직접 음식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시장 가는 걸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호숩다’라는 남도 지방 탯말을 빌려와 지금의 내 감정에 실어도 될까. 오랜만에 재래시장의 인파에 실려 다니는 일이 이렇게도 신명 날 줄이야. 예전 같으면 동네 마트를 한번 휘돌아 몇 가지 먹거리만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나도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진짜 주부가 되었다. 갈비도 사고 강정도 떡국도 더덕도 나물거리까지 넘쳐나도록 산다. 일전에 다쳤던 허리가 뜨끔뜨끔하고 의사 선생님이 무거운 것을 절대 들지 말라던 말이 떠오르는데도 그냥 실실 웃음이 난다.
차에 장거리를 옮겨놓고 다시 마트로 이동한다. 냉장고 속 오래된 반찬통을 바꿔야 하고 실내화도 폭신한 것으로 준비하며 욕실 슬리퍼도 새뜻한 것을 고른다. 거실용 향초를 사고 펌프식 손 비누를 구입하며 달걀도 난각번호를 살펴 가며 담고 생수 역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 든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반찬 가지 수를 세어보고, 갈비찜과 떡국은 시뮬레이션하여 미리 맛을 가늠한다. 손님께서 보리차를 드신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했으므로 햇보리를 덖은 물을 끓이면서 물 간을 맞추느라 몇 번이나 뜨거운 차를 홀깍거리며 마셔본다. 그러는 동안 지긋하던 허리통도 말쑥이 가라앉았다.
쪼꼬맣던 딸아이가 어른이 되고 아들 같은 듬직한 사위가 생겼다. 그 인연을 둘러싼 사돈 내외를 만나고 또 사돈의 가족들과도 연결되었다. 바깥사돈 고향이 무척산 근처라는 것과, 안사돈의 자매들이 유난히 의가 좋아 주말마다 백수 노모 댁에 모인다는 사실과, 바이올린을 켜는 ‘시우’라는 아홉 살 예쁜 꼬마 아가씨가 내 사위의 조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사위가 온다. 까칠하던 딸을 단박에 야들하게 만든 그 신비한 남자가 오는 것이다. 서른 몇 해 동안 설거지 한 번 하지 않았고 세탁기 근처에도 가지 않던 딸이었다. 그뿐인가. 요리 젬병 아가씨가 애호박전도 부치고 고등어도 굽고 소고기뭇국도 끓이며 ‘지옥에 빠진 계란’의 뜻을 가진 ‘에그인헬’이라는 중동 요리까지 만든다. 이 불가사의한 힘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인간의 가능성은 뜻밖에도 사랑이라는 자극 앞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온다는 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일이다. 그의 말과 그의 웃음과 그의 시간이 함께 오는 일이다. 그리하여 삶이란 오는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연습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그 연습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조금씩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2025-12-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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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나의 선택
요즘 뉴스나 인터넷을 보다 보면 ‘양자컴퓨터’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래를 완전히 바꿀 차세대 컴퓨터” “상상할 수 없는 계산 능력”. 그런데 대체 양자컴퓨터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기에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 걸까.
그런 궁금함에 양자컴퓨터에 관해 살펴봤지만, 솔직히 너무 어렵다. 그저 기본 원리 이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는 0 아니면 1, 둘 중 하나로만 정보를 표현한다. 즉, 전기가 통하는 상태와 끊긴 상태. 이 0과 1을 조합해서 만든 신호 단위를 ‘비트’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에 하나의 상태만 가질 수 있었다.
반면에 양자컴퓨터에서는 0이면서 동시에 1인, 애매한 상태를 품고 있다고 한다. 공중에 던져진 동전이 앞면도 뒷면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가능성만 품고 있는 것을 중첩상태라고 하고, 이 가능성 묶음을 ‘큐비트’라는 단위로 표시한다.
한데 이 중첩상태라는 것이 참 희한하다. 네 개의 열쇠가 달린 꾸러미를 가지고 금고를 연다고 가정해보자. 지금까지의 컴퓨터에선 열쇠를 하나씩 차례로 꽂아 넣어 정답을 찾는 것과 같았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중첩상태를 이용해 네 개의 열쇠를 한꺼번에 쥐고 문 앞에 서는 것과 비슷하다. 즉, ‘어느 열쇠가 맞는지 판별해 주는 규칙’을 통째로 이 열쇠꾸러미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파동이 겹칠 때 어떤 부분은 서로 상쇄되고, 어떤 부분은 증폭되는 것처럼, 조건에 맞지 않는 열쇠는 상쇄되고 조건에 맞는 열쇠만 또렷해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 큐비트를 ‘측정’하는 바로 그 순간, 가능성 중 하나가 현실로 결정되어 열쇠 하나가 짠! 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이론상 그렇게 된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으론 이 ‘중첩상태’라는 것의 특별한 쓸모를 발견한 과학자의 지혜 또한 감탄스럽다. 우리 인간에게 볼 수 있는 중첩상태는 대부분 좀스럽거나 대범하지 못한 모습인데 말이다. 멀리 살펴볼 것도 없이 바로 내가 그렇다.
몇 주 전에 나는 러닝머신을 한 대 사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3개의 후보를 골라놓고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집이 그리 넓지 않다. 짧고 작은 발판의 모델을 선택해야 하나? 층간소음도 걱정이다. 아무리 쿠션을 놓는다 해도 진동이 아래층으로 전해질 것 같다. 차라리 그 돈으로 헬스장에 등록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한데, 우리 동네 헬스장이 너무 멀다.
나는 완벽한 중첩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중첩상태에 머무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세 개의 후보 중의 하나를 고르든지, 아니면 ‘에러’가 되어 구매계획을 취소할 수도 있다.
사람의 중첩상태는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쓸모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한데, 그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찾아낸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돌연한 결심, 나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의 전향, 마음이 갑자기 기울어지는 순간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미 인간의 머릿속에 작은 양자컴퓨터가 심겨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가 망설이고, 주저하고, 여러 가능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결함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무한히 많은 미래를 품고 있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기능일지도 모른다. 0과 1로 나뉘지 않는 이 현실에서, 불확실을 끌어안는 태도야말로 미래를 모르는 우리의 가장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그리고 그 끝에 드러난 하나의 결정을 우리는 ‘나의 선택’이라고 부른다.
2025-12-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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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겨울은
빈손으로 터덜터덜 걷는 사람에게 겨울은 냉담하다. 가난한 밥상 앞에서 우는 사람에게 겨울은 비정하다. 차가운 방에서 잠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겨울은 혹독하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무언가의 부재를 더욱 뼈저리게 체감하는 계절. 잃어버린 것들의 빈자리에 칼날 같은 바람이 통과하는 계절. 크리스마스트리의 조명이 빛날수록, 거리에 캐럴송이 신나게 울려 퍼질수록, 세상이 화려하고 소란해질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는 더욱 외롭고 쓸쓸해지기도 하는 계절.
어떤 말이나 행동은
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공간의 온도와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의 추운 도시에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살고 있다. 그의 집은 도시 외곽의 주택가 초입이다. 작고 허름한 그의 단층 주택에는 담벼락이나 울타리가 없어서 집의 창문과 외부 벽면이 행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는 어느 날 하얀 벽면에 스케치를 하고 물감과 붓을 주문해 여러 날에 걸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 거주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들이 그곳을 오갈 때 잠깐이나마 웃음을 지었으면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벽화를 그리는 한 달여 동안 그 집 앞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사진을 찍거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되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대화가 되었다. 12월이 되자 그는 창문 바깥쪽에 자그마한 트리 장식을 하고 전구를 달았다. 그가 집에 있든 없든 해 질 녘이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다음 날 동이 트면 불이 꺼지도록 자동 온오프 장치를 만들었다. 노인 거주자가 대부분인 그 마을에 유일하게 여섯 남매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있는데, 그 집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트리라고, 아버지는 작업을 마무리한 후 내게 벽화와 창문 사진을 찍어 보내고는 그렇게 말했다. 도심과 시내 중심지 곳곳에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고 소박했지만, 해가 지면 금세 어둡고 스산해지는 그 마을의 입구를 매일 밤 고요하게 밝히는 작은 불빛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유년의 어떤 순간들도 다시금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마을의 여섯 남매를 위한 트리라고는 했지만,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차갑고 혹독했던 지난날들, 과거 우리의 겨울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나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없더라도 그런 시간대에는 누구나 고단해지고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무거운 가방을 멘 채 흔들거리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한참 동안 서서 가야 하는 일도, 낯선 타인과 몸을 부딪치며 각자에게 배인 생활의 체취를 좁은 공간 안에서 나누게 되는 일도, 하루치의 고단함에 덤벨 하나를 더 얹는 것만 같다. 그렇게 어깨는 점점 더 아래로 처지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빵처럼 느껴질 무렵, 버스 기사님이 마이크에 대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하루도 애쓰셨습니다.” 그 순간, 시끌시끌하고 복작거리던 만원 버스 안이 숭고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기사님은 그 뒤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는데, 그랬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 애쓰셨습니다”라는 말이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각자의 무게로 다가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가볍게 미소 지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눈물이 났을 것이고, 어떤 이는 하루를 더 버틸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한마디에,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날들을 위로받았다. 시간은 선형적으로만 흐르지 않고 어느 순간 과거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은 그처럼 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공간의 온도와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겨울은 냉담하고 비정하고 혹독한 계절이지만, 그렇기에 서로의 미약한 온기마저 소중히 껴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다.
2025-12-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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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자식은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일까
자식이 부모에게 행복을 준다는 믿음은 어느 나라든 강력한 힘을 지닌다. 진화의 관점에서 인류에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멸종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소득이 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은 낮아진다. 내가 결혼한 이후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면, 우리 부모는 물론이고 일가친지까지 초읽기 하듯 아이는 언제 낳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진저리 치던 아내는 딸에게 굳이 결혼과 출산을 의무로 강요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진화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고, 행복마저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는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먹는 것과 섹스가 인간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이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개체는 행복해야 이 두 행위를 지속할 것이고, 그 덕분에 집단은 생존하고 번식한다.
부모에게 자녀의 유아기는 얼마나 가혹한가.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누워 있는 순간을 시작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며 뛰어다니면, 부모는 위기를 맞는다. 대부분 여성은 양육보다 백화점에서 쇼핑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모임에 나가면, 자녀 양육이 얼마나 멋진 일이며,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며 입을 모은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여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지만, 첼시 코나보이가 〈부모됨의 뇌과학〉에서 밝힌 ‘돌봄 회로’(caregiving circuitry)가 우리 안에 강력히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녀 돌봄 회로는 간호사가 되었다, 요리사가 되었다, 운전사가 되었다가 결국 입시 전문가가 되는 초인적인 노력을 요구하며, 나아가 부모의 인생 자체를 바꾼다. 좋은 부모가 되고자 평소 읽지 않던 책을 읽고, 도서관이나 미술관도 가본다. “자식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 말투를 신경 쓰고, 거친 행동은 순화한다. 아이들은 가끔 부모를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갈 만큼 힘들게 하지만, 덕분에 우울해할 시간도 앗아간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부모는, 달려와 품에 안기는 자녀를 보며 느끼는 행복이 승진이나 적금을 털어 마련한 자동차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승진, 자동차나 명품 구매 등이 주는 행복은, 매우 강력하지만 자주 일어날 수 없다. 행복한 감정은 아무리 강해도 금세 사라지도록, 그렇게 초기화되도록 우리 유전자에 설계되어 있다. 그래야만 인간은 다음 행복을 위해 노력하며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행복심리학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승진이나 자동차 구매는 매일 할 수 없지만,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가 달려와 품에 안기는 소소한 행복은 매일 찾아온다.
유대인의 언어 ‘이디시어’에서 유래된 ‘나케스’(naches)라는 말이 있다. 자녀의 성취에서 비롯된 부모의 자부심과 기쁨을 이르는 단어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행복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기던 아이가 걷기만 해도 그 성취에 행복을 느끼며 주위에 자랑하는 것이 부모다. “우리 아이가 드디어 걸었어요!” 명문대 합격이나 대기업 입사가 아니라도, 꼭 의사나 변호사가 되지 않더라도, 자식의 모든 성취는 부모에게 나케스다.
이디시어는 ‘마메 로슨’(mame-loshn)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전하는 ‘어머니의 언어’라는 뜻이다. 엄마는 아이를 가슴에 품고 토닥이며 나케스의 의미를 전한다. “너는 내게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란다.” 기던 아이가 걸을 것이고, 걷던 아이가 뛸 것이다. 어느 날 말을 배워 ‘엄마’라 부르고, 훗날 인생의 여러 관문을 힘겹게 통과할 것이다. 그러다 먼 훗날, 지팡이 짚은 부모를 부축해 병원에 데려다 줄 것이다.
2025-12-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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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한때 뜨거웠던 기억
푸른 트럭이 굽은 오르막을 달린다. 용달차 한쪽에 상호도 없이 휴대전화 번호만 큼직하게 적혀 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기우뚱거리는 삼륜차는 아니지만 시커먼 숯검정을 묻힌 낡은 트럭이 낯설지 않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다. 산자락 철거민 동네에서 한파를 견디는 노인들과 비싼 기름값을 감당 못 해 다시 연탄보일러를 놓았다는 독거 어르신의 슬픈 소식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에 부산 유일의 연탄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곳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어느 방송국의 극한 직업 세계에도 소개되었지만, 경영난에 결국 폐업 절차를 밟고 말았다. 이제 전국의 연탄 공장도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 다음 세대들에게 연탄 같은 것은 옛이야기와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겠다.
연탄 싣고 오르막 달리는 트럭
연탄이 필수재였던 시절 떠올라
자신을 태워 온기 나누는 연탄
목숨 걸고 하면 실패 두렵지 않아
저 트럭은 어디서 연탄을 싣고 오는 것일까. 트럭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해보니 뜻밖에도 인근 화훼단지 옆에 연탄 하치장이 있단다. 고물상 한 귀퉁이 땅에 비닐을 덮은 연탄 상자들이 즐빗이 늘어섰다. 배달용 연탄을 옮기는 남자의 손등에 숯검정이 범벅이다. 오전에 한바탕 출고 작업을 했다는 표시다. 번듯한 창고를 얻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으니 임대료가 싼 야적장에 부려놓을 수밖에.
연탄의 시절이 있었다. 들판 깡시골 부엌에도 검정 구멍탄 위로 검붉은 불길이 솟구쳤다. 아궁이 속으로 추수가 끝난 짚 더미나 말린 북데기와 삭정이 같은 것을 때서 밥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매운 불꽃 앞에서 불쏘시개를 계속 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 연탄불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 알싸한 불향이 밴 하얀 쌀밥과 벌겋게 달궈진 석쇠에 노릇하게 구워진 갈치구이 맛을 잊지 못한다.
연탄값이야 들었겠지만, 창고나 부엌 귀퉁이나 재래식 화장실 한쪽에 컴컴한 검은 성을 쌓아 올린 어른들은 포만감에 든든했고, 산으로 들로 겨울 땔감을 구해와야 했던 아이들도 걱정을 덜게 되었다. 무쇠 연탄 덮개와 커다란 고무 물통을 호수로 연결하면 물이 따뜻해졌으니 쇠죽솥에 물을 데우는 번거로움도 줄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네 집 아무개가 연탄가스를 마셔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타버린 연탄재는 길 웅덩이나 얼음 언 마당에 던져 미끄럼을 막았는데, 개구진 사내아이들은 눈 뭉치를 던지듯 연탄재 싸움을 하며 놀이를 대신했다. 어느 시인은 ‘소신공양한 부처 몇 분이 골목 어귀에 나앉아 있다’라고 했으니 물상을 읽는 힘이 놀랍기만 하다. 온몸을 깡그리 태우는 일, 그렇게 소신공양한다면 불(佛)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한때 뜨거웠던, 심장에 피돌기를 일으키던 그 무엇을 기억한다. 뜨거워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가를 세월이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광부들의 목숨이 담겨 있는 연탄 한 장으로 냉골이 데워지고, 괄하게 불을 지핀 장작이 언 손을 녹이듯, 내가 뜨거워지지 않고서는 온기를 나눌 수가 없다. 하루해가 불덩이를 안고 스러져야 별들도 빛을 내고, 겨울나무가 혹한의 계절을 껴안아야 화르르 봄꽃을 피워올릴 것이며,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오체투지의 글쓰기가 걸작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자신을 데운다는 것, 그리고 뜨거워진다는 것, 마침내 태워버린다는 것은 희생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 목숨 걸고 해보리라는 집념을 가지면 실패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기적거리는 일이 있다면 매운 연기만 내지 말고 결단과 용기의 불꽃을 댕겨볼 일이다.
2025-11-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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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야생의 본능
초등학교 시절에 〈로빈슨 크루소〉를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상상에 잠기곤 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나뭇가지를 비벼 불 피우고, 나뭇잎 집을 짓고, 해변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는 상상. 그 모든 것이 신나고 짜릿했었다. 그런 모험에 열광했던 아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분별없는 꼬맹이들이라 그런 모험을 동경했을까? 과학자 말을 빌리자면 오래된 야생 본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의 뇌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세월 다듬어졌다 했다. 낯선 영역 탐색에 성공하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로운 먹거리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못지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낯선 길을 선택하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발걸음이 결국 인간이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삶은 야생과는 거리가 멀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은 길을 찾아주고, 음식은 몇 번의 배달 앱 클릭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우린 정해진 시간에 학교, 회사와 집을 왕복한다. 맨손으로 식물 뿌리를 파헤칠 일도, 밤하늘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을 일도 없다.
그렇다고 수렵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렵은 어느새 ‘성과’와 ‘실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더 많은 매출, 더 높은 고과점수,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우리는 경쟁의 숲을 누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깨알 같은 숫자를 노려보는 누군가는, 사실 눈앞의 차트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오늘날의 사냥꾼이다.
채취 역시 남아있다. 이제는 열매 대신 정보와 기회를 모은다. 세일 정보, 부동산 시세, 투자 종목, 자기계발의 팁들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열매를 따 모은다. 광주리 대신 하드디스크와 클라우드가 무거워진다.
탐색도 이뤄지고 있다. 해변이나 정글을 뒤지는 대신에 손바닥만 한 작은 화면으로 새로운 맛집과 멋진 카페를 찾아 꼼꼼히 후기를 읽는다. 낯선 나라의 동영상과 브이로그를 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속속들이 안다고 느낀다.
실제로 문명을 떠나 야생으로 들어가는 모험은 극히 어려운 선택이다. 직장, 가족, 대출, 계약서 같은 것들이 우리를 이 도시와 단단히 묶는다. ‘다 버리고 자연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전기요금 고지서 한 장에 우리는 다시 현실로 끌려 나온다.
머릿속엔 야생의 회로가 남아있지만, 우린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에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이유 없이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고, 도시를 벗어나고 싶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것은 오래된 본능이 “너,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서 있지 않았냐”고, 속삭이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시대의 야생은 정글이나 무인도가 아니다. 우리의 야생은 우리가 수없이 구획해놓은 영역 너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익숙함 너머의 그곳.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걸음 내디딘 그곳이 바로 문명 속 야생이 아닐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새벽 시간, 책을 펼쳐놓고 낯선 생각의 숲을 헤매는 것. 혹은, 정답이 없는 선을 그어 넣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색을 올리는 순간, 우린 잠시 체계의 공허에서 벗어난다.
희미하게 남은 야생의 본능은 사실, 우리 안에서 조용히 다음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사냥이 아니라, 더 깊은 삶을 위한 모험으로, 어쩌면 효율과 편리함만 추구하는 인공시스템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 장치일지도 모른다.
2025-11-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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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충만하게 존재하기
지금 나는 공유 오피스의 커다랗고 단단한 책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창밖으로는 투명하게 푸른 가을 하늘과 그 사이를 돛단배처럼 느리게 유영하는 흰 구름이 보이고, 천장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은 경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낯선 이들의 키보드 소리가 듣기 좋다. 공간의 호사스러움과 창작의 결과물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공공도서관에서 글쓰기 적당한 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집의 어수선한 식탁도 흔들거리는 좌식 테이블도 일시적으로나마 안녕이다. 공유란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다가, 세상의 좋은 모든 것들을 다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공유’란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뜻인데, 사실 근래의 공유 경제 관점에서 쓰이는 ‘공유’라는 말은 공동 소유의 개념에서 많이 멀어진 것 같다. 공유 숙소, 공유 차량, 공유 자전거, 공유 오피스…. 대체로 개인이 소유한 자원을 불특정 다수에게 단기간 빌려주는 대여업이라고 해야 할까. 공급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 좋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개개인이 구매하거나 장기간 계약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자원을 일시적으로 빌려 쓸 수 있으니 좋은 일 같다. 게다가 기존의 자원을 돌려쓰는 일이니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용자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저렴하지는 않다. 단어의 의미를 늘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의 ‘공유’라는 말은 좀 기만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결국은 자본을 가진 사람이 그 자본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거 아닌지, 정말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무료로 나누거나 혹은 최소한의 관리비만 받아야 되는 거 아닌지, 다소 삐딱한 생각.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정당한 방법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일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후로 이용자 수가 급격히 줄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활성화되었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다.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서로의 집을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사이트인데, 여기에서의 공유는 꽤 순수한 의미에서의 나눔이었다. 내 집의 작은 여유 공간을 여행객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서로의 문화과 경험을 교류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공간을 청하는 여행자는 자신이 왜 그 집에 머물고 싶은지, 어떤 교류를 하고 싶은지 정성껏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그 메시지와 자기소개 글, 그리고 과거 교류했던 이들 간의 댓글 등을 보고 신뢰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그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부산에 여행 온 외국인에게 누추하나마 잠자리를 제공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했다. 내가 속한 풍물패 연습에도 데려가고 범어사나 동래읍성에도 같이 가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산낙지에 소주를 함께 먹기도 했다.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없고 오히려 내 시간과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일인데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명확한 이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물질이 아닌 감정과 경험을 나눈다는 것, 그 시간 자체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타국에 여행을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움으로 현지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대단한 물적 자본은 없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어떤 물질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심이 있고, 그 진심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짧고도 아름다운 이 계절, 매 순간 흘러가는 가을의 시간을 붙들어 둘 수도 소유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충만함으로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2025-11-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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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문학을 사랑한 작가였다. 그는 1964년 문학에 등급을 매기고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출처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읽었다. 웹툰, 드라마 등 동명 제목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 말은 마치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애초 사르트르가 전하려는 뜻과 다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사르트르의 유년 시절부터 살펴야 한다.
사르트르는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작은 키에 야윈 몸피로, 허약한 데다 눈은 사시였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 받던 사르트르의 도피처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된 〈말〉은 사르트르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으로, 그가 처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감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외할아버지 서재에 가득한 책을 ‘영원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그를 구원했고, 외할아버지의 기대는 그를 속박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어린 시절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결국 외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연극이었음을 고백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교양을 중시했던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어 어휘와 어투까지 연출했던 손주의 유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어린 사르트르에게 외할아버지의 시선과 평가는 너무 가혹했다.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창도 문도 없는 그곳에 안내된 세 명의 인물은 서로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갇힌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세 인물 중 한 명인 가르생은 비명처럼 외친다.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두 명뿐인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감당하는 것만으로 지옥 같은 상황이 되는 까닭은, 그곳이 숨거나 피할 데가 없는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닫힌 방’에는 무엇보다 책이 없었다. 이를 두고 〈닫힌 방〉의 번역자는 각주에서 “지옥에는 책이 없다. 책이란 타자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눈앞에 전시된 타인의 삶을 볼 수밖에 없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닫힌 세계가 바로 지옥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숨을 곳이 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 책이 그러했듯,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피난처가 필요하다.
업무 용도로만 사용하던 휴대전화 문자 앱이 어느 날부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이 전시되었고, 타인의 전시는 곧 나를 향한 시선이 되었다. 액자에 담겨 전시된 타인의 일상을 관람하며, 전시하는 이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전시를 보는 이는 타인의 삶을 엿보다 자기 시선에 갇힌다.
레바논 속담에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 〈단순한 기쁨〉의 저자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행복이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행복 관련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만,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며 접촉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결국 접속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며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지 않은지.
타인의 칭찬과 비판, 동경과 비하, 선망과 멸시, 호의와 적의, 그 어느 시선과 평가에도 동요하지 않는 삶, 타인의 인정에 안도하기보다 다정한 무관심을 벗 삼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자유 의지를 지닌 이들이 모인 공동체라면, 타인은 지옥이 될 수 없다.
2025-11-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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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생존과 돌봄의 무게
나는 작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여기서 ‘작다’는 말은 단순히 제작 규모를 뜻하지 않는다. 제작비도 관객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들을 뜻한다. 10월 말부터 부산에서는 작은 영화들로 채워진 영화 축제들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부산평화영화제와 부산여성영화제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루는 주제의 깊이와 절실함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인파가 덜 붐비는 곳에서 오롯이 영화의 메시지와 마주하는 내밀하고 소중한 발견의 기회를 선사한다.
부산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홍이’ 역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영화이나 진정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모두에게 선한 미소를 건네지만, 그 미소 뒤편에 불안과 빚의 그림자를 숨긴 채 살아가는 ‘이홍’. 서른을 훌쩍 넘긴 그녀는 불안정한 노동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치매 초기 증세를 앓는 엄마 ‘서희’를 집으로 모셔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서희를 데려오는 동기는 따뜻한 혈육의 정이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위기를 해소해 줄 금전 때문이었다. 간병을 쉽게 여겼던 홍이는 아픈 이를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곧 깨닫는다. 게다가 서희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본래 평탄하지 않았던 모녀의 관계는 더욱 냉랭해진다.
황슬기 감독의 ‘홍이’는 생존과 돌봄의 문제를 홍이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때 감독은 홍이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으며, 한국 사회 여성들이 짊어진 무게를 서늘하게 새겨 넣는다. 결국 영화는 미혼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과연 간병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한글을 가르치는 강사 일과 거친 건설 현장 노동을 오가는 홍이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여유가 생기면 이력서를 쓰며 불안을 지우고자 애쓰고, 또 남들처럼 연애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서희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사치가 되었다.
홍이는 일과 연애, 간병을 함께 꾸려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서희가 집으로 온 뒤 홍이의 삶은 막다른 길에 이른다. 그녀는 분명 엄마를 보살피려 했다. 하지만 간병의 책임은 이내 그녀의 삶을 짓누르는 압력으로 바뀐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오늘을 살아내는 절박함뿐이다. 엄마의 돈을 훔치고 썸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홍이의 행동은 분명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궁지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는 핏줄만으로는 돌봄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진실을 고한다. 전통적인 가족 서사처럼 고난 끝에 사랑과 희생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신파는 없다. 물론 엄마와 홍이가 한강에서 치킨을 나누고, 복잡한 애증 속에서도 서툰 이해를 나누던 찰나의 따스한 순간은 있다. 이는 모녀에게 잠재되어 있던 서로를 향한 연민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서자 연민은 끝내 힘을 쓰지 못한다. 서희의 치매는 멈추지 않고, 홍이의 빚과 불안 역시 그대로 남아있다. 마침내 홍이는 서희와 자신을 위해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린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설픈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너의 고립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감독의 서늘하지만 다정한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홍이의 삶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짊어져야 할 빚 또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의 자신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홍이는 엄마가 그토록 바르고 싶어 했던 붉은색 페디큐어를 자신의 발톱에 칠해 본다. 엄마를 다시 시설로 보낸 후의 죄책감과 자유로움이 뒤섞인 붉은 발톱은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했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 작은 영화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홍이들’에게 짙고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2025-1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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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포구, 그리고 부네치아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 이유가 없더라도 하루쯤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을 느껴 보았는가. 이러한 심리를 꿰뚫은 듯 토요일 딱 하루의 짧은 여행기를 다룬 드라마도 있었다. 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낯선 곳을 걷고 쉬며 예상치 못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고 또 헤어져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서사다. 그것이 휴식이고 치유며 유랑이고 충전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
포구가 등장하는 책을 끼고 다녔던 적이 있다. 저자가 찾아간 불빛 깜박이는 작은 포구 마을들을 잊지 못한다. 소의 눈빛을 닮은 갈매기가 있는 구룡포, 푸른빛의 어족들이 모여 사는 어청도, 등대의 몸에 사랑의 낙서가 새겨진 늑도, 싱싱한 사투리가 출렁이는 상족포구, 변산반도 왕포, 고창의 구시포 등을 읽고 또 그곳을 찾아 걸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말에 가슴 저미던 날들이었다.
문득 떠난 여행은 휴식이자 충전
부산 내 해안 걷는 것도 좋은 힐링
특유의 색 가진 장림포구 매력적
포구 저마다 색과 역사 있어
하지만 멀리 떠나야 여행인가. 대문을 박차고 바깥바람을 맞는다면 모두 여행이 되는 것을. 무엇보다 나는 바다의 도시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해안선을 따라 걷노라면 머릿속에 생쪽같이 묶여 있던 매듭 몇 가닥쯤은 저절로 해풍 속에 녹게 된다. 집 근처만 하더라도 오륙도 바다가 보이는 백운포가 버티고 있으며, 좀 더 내려가면 부산 최초의 제뢰등대가 있는 감만동 부두도 볼 수 있다. 물론 해운대나 기장을 잇는 미포와 청사포 그리고 송정을 지나 공수마을 포구와 기장 대변항을 거슬러 월전과 일광과 칠암 등이 발길을 잡지만 오늘은 남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펄펄 생선이 뛰는 자갈치를 휘둘러보고 송도와 다대포를 거쳐 장림포구에 가 보기로 한다.
장림포구는 낙동강과 다대포의 두 갈래 바다가 만나는 아우라지 물목이다. 원래의 명칭은 장림항이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섬을 베껴 놓았다. 평범한 포구 풍경에 색을 입혀 어디에서도 멋진 사진을 남기기 좋은 그런 곳. 파란색, 핫핑크,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민트 등의 작은 가게들이 배경이 되어준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색들이 이국적이라기보다 왠지 낯이 익다. 어릴 때 입은 때때옷과 절과 궁궐과 전통 한옥의 단청, 민화와 불화, 심지어 김밥이나 비빔밥 또는 면 위의 고명에도 올려진 한국의 전통색 오방색 풍경으로 되비친다.
지금은 부네치아라고 불리는 장림포도 한때는 부산 최고의 어장이었다. 강 하구를 둑으로 가로막기 전까지 김 생산지였고, 시도 때도 없이 걸망으로 숭어를 건져 올렸으며, 만조가 빠지는 급물살에는 밤새도록 멸치를 잡았다. 펄펄 끓인 소금물에 급히 삶아 건조하던 멸치 염포는 하룻밤에 십수 포가량씩 어시장 경매에 넘겼으며, 물살이 약할 때는 물밑 끌망으로 도다리와 홍대라 불리던 큰 새우도 쉽게 잡은 곳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전,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장림포해전이라는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충무공 일기에 “장림포 해전에서 어선 6척을 침몰시켰다”라는 기록이 생생히 새겨졌다. 포구가 저마다의 색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다의 역사가 켜켜이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터.
육지가 끝나는 곳. 그러므로 모든 포구는 땅끝에 닿아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물과 뭍이 연결되고 해풍과 뭍바람이 섞이며 사람과 파도와 물고기가 드나드는 곳, 끝이라고 절망하는 자들을 시퍼런 물너울이 일으켜 세워주는 곳, 밀려서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여겼다가 어느새 땅과 바다의 중심에 서 있음을 깨치게 하는 곳이다. 그러니 이 계절에 포구를 걸어보시라. 걸음을 옮기면 다시 길이 열리고 길을 따라 걸으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니까.
2025-11-02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