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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소금밭이 있던 자리
소금밭의 자리다. 한때 조선의 소금을 구워냈던 모래펄, 부산의 가장 큰 염전이 수백 년 이상 버티고 있었던 곳, 바닷물을 담는 넓은 그릇 모양의 염전 갯벌이니 분개라 불렸던 땅이다. 분개의 ‘분(盆)’이 화분을 가리키니 소금을 굽는 가마라는 뜻이겠고 ‘개’는 갯가, 개펄, 갯바위, 갯낚시에서 알 수 있듯이 포구의 순우리말이므로 염전이 있는 갯벌이라는 의미를 담았겠다.
분개소금이 맛있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소금밭을 상상하려고 포구 주변을 어슬렁거려본다. 소금 마을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짭조름한 염전 바람 풍경까지 그려지는 곳이다. 염전마을 아낙들은 소금 광주리를 이고 동래장과 구포장으로 소금을 팔러 다녔고, 장정들은 하루 삯이 쌀 한 되 반 정도인 일급제 염전 일을 하였으며 판매가 부진할 때는 소금을 품삯 대신 받아 각자 팔아 생활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그러나 옛 염부들의 터전 너머 광안대교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반대편 아파트 군락지의 위상이 하늘을 찌른다.
부산 가장 큰 염전, 분개소금 마을
맛으로 유명, 동래·구포장서 판매
매립 후 아파트, 상가 등 번화가로
부산 소금밭 아는 이 드문 요즘
내가 수필집을 내었을 때, 신안이 고향인 문우가 친정에서 농사지었다던 천일염 한 포대를 선물로 부쳐왔다. 난생처음 소금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이 특별했고, 문우의 늙은 어머니 손길이 닿은 것이라 과분하였으며, 내가 평생 먹어도 남을 양에 깜짝 놀랐다. 간수를 뺀 소금은 달콤 짭조름하여 입에 착착 감겼다. 내 솜씨 없는 나물 맛도 이 소금만 넣으면 딱딱 간이 맞고, 생선을 구울 때도 뱃살에 칼집을 내어 툭툭 왕소금 몇 가닥 뿌리면 탱글하고 고소한 구이가 된다.
그러고 보니 소금 맛을 좀 아는 자들이 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김치와 젓갈과 장아찌류 등의 염장 식품은 제외하고라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한 카페에 가 보시라. 소금커피와 소금빵이 대세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아직도 감히 커피에 소금을 넣어? 라고 한다면 당신은 꼰대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한입 소금커피 맛을 본 사람은 커피와 소금이 찰떡궁합이라는 사실을 재빠르게 수긍하게 될 터이다. 소금빵 역시 빵의 표면에 소금을 발라 버터의 고소한 풍미를 간간짭짤하게 돋우었다. 아마 동남아 여행 중 수박이나 멜론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을 경험했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하지만 음식도 유행을 타듯 영원한 것은 없다. 깨금깨금 염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금이 온다”고 외치던 염부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인부 구하기도 어렵게 되고 여름 태풍까지 남녘의 소금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후 갯골은 매축이 되면서 넘실대던 바닷물과 반짝이던 소금밭을 밀어내고 말았다. 소금땅 위에 콘크리트가 뒤덮이고 매립 주택이 지어지고 학교와 아파트가 생겼으며 먼지 나던 황톳길 대신 반듯한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포구 끝 쪽 염전 자리에는 소금꽃 대신 밤마다 상가 불빛이 반짝인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 민가도 없는 바닷가 갯벌에 소금 굽는 동이만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옛 풍경을 상상해본다. 이스라엘의 사해 소금호수와 미국의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와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여행지로서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신안 소금밭과 곰소염전 등이 유명하지만, 부산의 분개소금 마을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하기야 어찌 처음부터 염전이었을까. 갯벌이었고 바다였고 섬이었고 또 아득한 옛날에는 무성한 원시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간이 만들고 또 인간이 무너뜨려 소멸되는 것을. 그때의 소금밭이 지금의 번화가가 되었듯이 먼 훗날 이곳 포구에 다시 소금 마을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법. 그러니 우뚝한 빌딩 숲을 올려다보다가도 인간이 허물어버린 소금밭도 종종 기억할 일이다.
2026-04-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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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아한 위선
얼마 전 TV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끝나고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광고나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다. 세계의 흐름을 진단하는 어느 출연자의 말이었다. ‘야만의 시대’는 요즘 뉴스를 보면 저절로 공감되는 말이다. 최근 강대국이 벌이는 전쟁이나,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무역 정책들도 그렇다. 심지어 강대국의 고위직이라는 사람은 대놓고 인터뷰한다.
세상은 원래 힘의 논리로 굴러가지 않았었나? 그러니 제발 약육강식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그는 현실을 외면하는 당신들이 오히려 어리석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이제 강대국들의 메시지는 간결해졌다.
“우리는 우리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메시지 끝에 모두가 알아듣는 문장이 풍선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너희가 어쩔 건데?”
생각해보면, 그간 강대국들은 ‘우아한 말’로 세계를 움직여 왔다.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 인간애와 지구환경 같은 명분들을 내세워서 결국 그들 이익에 부합하는 세계 질서를 구축했었다. 어떤 이는 그런 이익추구를 ‘우아한 위선’이라 하며 비꼬았다.
강대국은 이제 세계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다. 설득 대신 통보하고, 명분 대신 효율을 강조하고, 체면 대신 폭력을 선택한다. 위선이 우아함을 잃는 순간, 남는 것은 약탈이 난무하는 야만의 민낯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우아한 위선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다만, 이 위선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민족 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자원 수탈을 설계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위선이 아니라 그저 추악한 폭력이며 약탈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우아한 위선’은 숨겨진 나의 욕망을 위해 보편적 가치를 따라가는 척하는 거짓된 선량함을 말한다.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분쟁지역의 평화를 도모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재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식의, 그러니까 실제로는 다른 속내가 있는 행위였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고통을 덜게 되거나 혹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위선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위선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나의 욕망을 인정한다면 모든 사람의 욕망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그 욕망을 온전히 성취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엔 온갖 욕망이 들끓고 있었더라도, 그것을 평생 억누르고 살았다면, 우리는 그 삶을 위선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미워하면서도 거짓 웃음을 짓는다. 어떤 이는 손해 보기 싫어서 진실을 털어놓고, 어떤 이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려 선행을 한다. 그런 마음의 이중성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까.
우리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일방적으로 사용해왔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해부대 위에 눕혀, 가장 어두운 장기만 꺼내 보여주면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확인’은 모든 가치의 독점물이 아니다. 인간이 욕망을 가졌다는 건 자연법칙이지만,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문명이다.
많은 사람이 욕망을 위해 선을 연습한다. 마음속에서 수없이 많은 문이 열리고 닫힌다. 누군가를 밀쳐내고 싶은 문, 거짓말로 빠져나가고 싶은 문, 내가 전부 가지고 싶다는 문. 그런데 우리는 그 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그 짧은 욕망의 위선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그래서 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힘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욕망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 애쓰는 우아한 위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못나고 사나운 욕망이라면 부디 본색을 드러내지 말자.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2026-04-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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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되돌아오는 이야기
봄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꽃들이 피고 지는 걸 보려면 넋을 놓고 지내서는 안 된다. 휑하던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연분홍 꽃잎들이 만개했다가 바람에 흩날린다. 꽃이 피어나는 순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문득 고개를 들어보고 나서야 ‘벌써 이렇게 가득 피었네’ 하고 놀랄 때가 많다. 하지만 개화라는 것이 그렇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나무 안에서 진행되고 있던 일이 그제야 내 눈에 보였을 뿐. 그러니까 봄은 없던 것들이 생겨나는 계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자취를 감췄던 색채들이 다시 나타나는 시간이고, 무언가가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온다는 증거이며, 그 풍성한 꽃잎들의 향연 속에서 내 정신의 나태함을 일깨우게 되는 계절이다.
이처럼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꽃들도 돌아오고,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와 기억들도 되돌아온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의 감각으로, 때로는 불현듯 스쳐 가는 어떤 냄새나 소리로, 때로는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예술 작품을 통해서. 그 이야기와 기억들은 내가 보거나 겪은 일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떤 일들은 직접 겪지 않았어도 내 눈앞에 되살아나 또 하나의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 4·3 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정규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배운 세대도 아니지만, 어떤 경로로든 그때의 이야기들이 내 앞에 당도해 있을 때가 있고 그런 순간마다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된다.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다시 피어나는 장면이 된다.
얼마 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주인공 경하와 인선은 제주의 비극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당도한 그날의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억들과 ‘작별하지 않’기로 한다.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정지영 감독의 신작 영화 ‘내 이름은’에서는 제주 4·3을 직접 겪어낸 인물이 등장하는데, 지우고 싶으면서도 끝내 지켜내야 할 기억을 아프게 소환한다. 예술 작품 속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허구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던 폭력의 트라우마가 독자와 관객들의 몸과 마음에 겹겹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김홍 작가의 소설 <말뚝들>에서는 사회적 참사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말뚝이 되어 도심지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말뚝을 마주한 이들은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울기 시작하자 국가는 이를 비상사태로 규정한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된다. 그래서 애도를 폄하하고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노란 리본에 담긴 작은 애도의 표시에도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불편한 시선을 쏘아대는 걸 보면 소설 속 상황이 결코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언젠가 되돌아온다. 지금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폭력, 고통과 죽음의 기억들도 그러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먼 곳의 사건들이기에 때때로 우리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꾸만 반복되는 상황이 빚어내는 피로감에 전부 다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하겠지만, 무관심과 침묵 속에 잠시 가려졌다 해도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4월, 한낮의 봄볕에 몸과 마음이 노곤히 풀어지기도 하고 온갖 꽃들의 향연에 도취하기도 하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참혹하고 잔인한 계절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매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순간순간 되살아나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시간 앞에 우리는 서 있다.
2026-04-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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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르상티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타인의 성공 앞에 서면 우리 안에서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질투라 부르지만, 질투와 시기는 다르다. 질투(jealousy)는 내가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시기(envy)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타인이 누린다는 자각이다. 시기에도 결이 있다. 상대를 보며 자신을 키우는 시기가 있고, 상대가 그것을 잃기 바라는 시기가 있다. 후자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때, 그것은 안으로 가라앉아 어느 순간 도덕의 얼굴로 나타난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저 사람, 부모 찬스 아니면 절대 못 갔을 자리인데 왜 다들 축하해줘?” 댓글 대부분은 공감이었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그 뿌리가 늘 정의인 것은 아니다. 페스팅거의 ‘사회비교이론’이 증명하듯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산다. 그 비교가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만날 때 시기는 자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쌓여 굳고, 굳은 것은 원한이 되어 도덕의 언어를 빌려 밖으로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불렀다. 그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를 노예도덕의 심리적 뿌리로 분석했다. 맞설 수 없는 자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 자신을 ‘선’에 세우는 것, 타자의 규정에 기대는 반응적 존재 방식이다. 억눌린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시기하는 대상의 가치 자체를 허무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저 사람의 성공은 어차피 편법의 결과”라는 식으로. 현대 심리학은 타인의 실패 앞에서 느끼는 은밀한 안도감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그 보상 구조임을 확인했다. 정의를 말하면서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찾는 것, 그것이 르상티망의 속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이 감정이 자라기 좋은 토양 위에 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통로는 좁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이 공존할 때 그 간극은 원한을 키운다. 노력은 미덕으로 강조되지만, 결과는 점점 세습을 닮아간다. SNS는 비교를 일상으로 만들고 알고리즘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비판이 혐오로 미끄러질 때 르상티망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의 언어가 된다.
르상티망은 변화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막는다. 상대를 끌어내리는 데 힘을 쓰는 동안 자신을 향한 힘은 빠져나간다. “어차피 안 된다”는 말은 소리 없이 행동을 멈춘다. 허무가 자리를 잡으면 대화는 사라지고 비난이 남는다. 그 자리에 냉소가 따라온다. 냉소는 때로 유효하다. 허위를 꿰뚫고 과장된 낙관을 경계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냉소는 세상을 비추는 데는 쓸모가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무력하다. 냉소가 깊어질수록 자기 삶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결국 르상티망이 앗아가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출구는 두 방향에서 함께 열려야 한다. 사회는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신뢰를 되살려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억눌렀던 욕망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결핍을 낳는 것과 달리, 어제와 오늘의 나를 견주는 일은 다른 긴장을 만든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시선이 깊어질 때, 니체가 르상티망의 반대편에 놓은 귀족도덕, 곧 능동적 자기 긍정의 길이 열린다. 그 긍정이 삶의 고통과 한계까지 기꺼이 껴안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에 닿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르상티망은 일상의 말과 표정 속에 드리운 그림자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스치는 안도감 속에서 자란다.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거기서 시작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과 자기 삶을 긍정하는 일이 함께 갈 때 그림자는 옅어진다. 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르상티망은 결국 힘을 잃는다.
2026-04-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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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소리를 듣다
‘작은 거인’으로 불려온 대중가수가 최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텔레비전에 등장한 건 반세기 전이었다. 더벅머리 청년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쌀자루만 한 기타를 들고나와 무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의 텔레비전 무대는 대체로 단정했다. 가수들은 마이크 앞에 서서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은 채 목청을 돋우며, 멜로디 중심의 발라드나 사색적인 포크송 같은 노래로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 무대 위로 불꽃 튀듯 작은 체구가 자꾸만 위로 솟구치면서 샤먼의 몸짓 같은 야생의 춤을 추었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서 막 건너온 사람처럼 보였다. 관중들은 그 낯선 광경이 어리둥절했으나 곧 묘한 흥미에 사로잡혀 환호를 질렀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던 대중가수
최근 첫 개인전 '소리그림' 열어
소리의 파동을 그림으로 표현
미처 알지 못했던 소리 찾는 재미
물론 그를 자세히 본 것은 음악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다. 내 청춘의 인생 영화인 시대로부터의 탈출극 ‘고래사냥’에서였다. 짝사랑에 실패하여 가출한 소심한 철학과생 병태라는 인물로 요즈음 젊은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찰떡 캐스팅’이었다. 감독이 원하는 ‘키 작고 어리바리한 청년’에 딱 당첨(?)되어서 캐스팅됐다는 웃픈 일화가 있지만 참으로 반가웠다. 화면 속의 병태는 주변에도 한둘씩 존재하던 우리의 친애하는 동무로서 가엾고 측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그 어리바리한 청년이 실제로 전통 소리인 국악 공부를 하고 있었고, 출연한 영화의 음악까지 맡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 ‘작은 거장’이 될 한 예술가의 시작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음악과 병행하여 삼십 년 동안 천여 점의 그림을 그려 왔었다. 생애 처음 연 전시회에는 ‘소리그림’이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이 붙었다. 소제목으로도 ‘소리 탄생’, ‘소리 너머 소리’, 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수철소리’ 등으로 표현했다. 화폭에서 푸른 물결이 번져 나가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보이고, 붉은빛은 들끓는 용암처럼 비집고 솟구치며, 회색 덩어리들은 느리게 흘러내리거나 부딪치고 갈라진다.
작가는 그것을 소리의 파동이라 말했다. 캔버스라는 음표 위에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고도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세상의 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생각은 해 보았으나 만물의 소리가 그림이 된다는 발상은 한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굽이치고 튀어 오르고 돌진하는 그 선들은 음악의 리듬처럼 흔들리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어느 선은 알레그로처럼 빠르고 활기차게 화면을 가로지르고, 어느 덩어리는 아다지오가 되어 느리고 깊은 음처럼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그때였다. 인터뷰를 듣다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사람의 소리, 지구촌의 소리를 넘어 우주의 소리, 행성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아니, 별들의 소리가 들린다고? 그동안 많은 시인과 수필가가 숲이 흔들리는 기척을 느낀다거나, 저녁 종이 울리면 하루가 접히는 소리가 난다고도 했다. 때로는 나도 그들을 흉내 내어 우리 동네 제뢰등대가 등불을 끄고 입을 닫았다고도 했으며, 빗방울 화석지를 찾아가서는 석종 소리가 들린다고 떠들었고, 내 몸속의 뼈를 두고 골관 악기 소리가 난다며 과장법을 많이도 썼었다.
어쩔 것인가, 행성의 소리가 들린다는데. 놀란 것은 그의 광대무변한 세계관과 상상력의 스케일과 예술적 직관의 깊이였다. 현실의 틀 안에서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예술의 세계로 건너가면 비로소 형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소리가 참 많다. 그러니 이 봄날,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글을 쓰지 않더라도 세상의 소리를 찾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2026-03-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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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내 곁에 있어 줘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꽤 많은 동물을 길렀던 것 같다. 첫 경험은 병아리였다. 아마 내 또래 유년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초봄의 하굣길, 학교 앞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에서 삐악거리는 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기어코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왔었다.
병아리가 담긴 종이상자는 따뜻한 아랫목에 자리 잡는다. 경험상 병아리는 무조건 따뜻하게 해주면 되었다. 배추 잎을 연필 칼로 잘게 썰어주고, 파리채로 파리를 잡아줬다. 벌레를 잡아 톡톡 신호를 주면 저만치서 놀다가도 솜털 날개를 파닥이며 달려왔다. 보름쯤 지나면 솜털 끝에 하얀 깃털이 나온다. 이제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화단 흙을 헤집어 지렁이를 잡아내고, 장에 가두려 쫓으면 쏜살같이 도망친다. 병아리는 어느새 벼슬이 늠름한 닭이 되어 있다.
하굣길 문방구에서 뽑기를 하고 돌아온 어느 날, 마당 어디에도 닭이 없음을 알게 된다. 할머니께 닭의 행방을 물으면 대뜸 이런 지청구가 나온다. “꽃이고 이파리고 다 쪼아대서 화초가 남아나길 하나. 온 마당에 똥은 싸놓지.”
그렇다고 저녁 밥상에 닭고기가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는 어느 맘씨 좋은 할아버지께 닭을 줬다고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다른 집으로 간 닭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보다 한참 뒤였다.
토끼도 키웠었다. 털이 부드러워 소위 밍크 토끼라 불리던 렉스 토끼 한 쌍을 삼촌께 얻었다. 나는 틈만 나면 시장에 가서 배추 겉잎이나 자투리 푸성귀를 잔뜩 주워왔다. 토끼 사료도 있었지만, 배추 잎을 입에 물고 아삭아삭 갉아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었다.
추운 겨울밤, 토끼는 새끼를 5마리 낳았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차갑게 굳은 5마리 새끼를 발견했다. 털 하나 없는 벌거숭이였다. 아기 손가락 같은 것을 편지봉투에 담아 사철나무 아래에 묻었다. 나는 어미 토끼가 새끼를 밴지도 몰랐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뭔가 예쁘고 귀엽다면 내 곁에 두려는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잉꼬, 십자매 같은 애완조류를 길렀고, 수족관을 마련해 열대어를 길렀다.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돌봄의 노동,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자책이 요구되었지만, 그들과 함께함으로 행복을 느꼈다. 함께하는 기쁨이란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먹이를 먹는 모습, 조금씩 자라는 모습, 그리고 새끼를 낳아 생명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는 것. 어쩌면 어린 마음이 가장 먼저 접한 생명에 대한 순수한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책 안의 개념이 아니라, 눈앞에서 숨 쉬고, 자라나며, 어느 날 예고 없이 아파지는 존재였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것은 사실, 바라보고 기다리고 아파하는 행위라는 것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은 사랑한다는 자체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애정이 얼마나 평화로운지도 안다. 그래서 그저 내 곁에 있어 달라고만 한다.
하지만, 내가 기르던 동물의 죽음은 단지 자연의 이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들의 죽음은 늘 나의 책임과 죄책감을 일깨운다. 설사 내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애초부터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이유로 자유로웠어야 했을 생명을 소유했으니 말이다.
한때, 애완동물이라 불리던 존재가 반려동물이라 불리고, 더 나아가 가족의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이것은 생명을 소유물로 여기던 시대에서 벗어나는 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동물에게 사람의 결핍까지 대신 메워주기를 기대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동물이라는 존재를 인간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를 그 존재답게 사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2026-03-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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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도 밖으로
타고난 길치이지만 스마트폰 길찾기 앱을 이용하면서부터는 길을 잃을 일이 거의 없다. 종이 지도와는 달리 실시간 나의 위치와 최단 경로까지 알려주니 스마트폰 화면상의 화살표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에는 “저기요, 혹시…”하고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도(道)에 대해 묻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경계하거나 도망치듯 가버리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목적지를 바로 근처에 두고도 한참을 헤맨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헤맨다는 건 그 나름대로의 좋은 점도 있다. 낯선 길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주변을 관찰하다보면 평범한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비범한 장면들을 종종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시간 감각이 혼란스러워질 만큼 기묘한 분위기를 지닌 예스러운 건물이라든지, 시멘트 틈 사이로 솟아난 작은 꽃 한 송이라든지, 벽에 해놓은 낙서나 경고문들의 개성어린 문체라든지.
목적지까지 최단 경로의 길을 알려주는 앱,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 유튜브와 SNS의 알고리즘들. 요즘은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필요한 사항과 내 관심사를 알아서 파악하고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인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세상이지만, 때때로 나는 그 탈선의 여지없는 세계가 마냥 지루하다. 유튜브도 릴스도, 사용 초반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때가 있었는데, 내 관심사에 따라 알고리즘이 생성되고 늘 비슷비슷한 영상들만 피드에 올라오니 어느 순간 질려버렸다. 그러니 간혹 화면을 열었다가도 결국 어느 것도 클릭하지 않은 채 스크롤만 무의미하게 내리다가 꺼버리곤 한다. 스마트폰 덕분에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것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지만, 실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경로에 따라 점점 더 비슷한 것만 보게 되고 취향도 시각도 편향될 가능성이 커져버린 것이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우리를 익숙한 생각과 익숙한 세계 안에 머물게 한다.
익숙함 속에 머문다는 것은 편안하고 안전한 일이지만, 나는 때때로 그 알고리즘을 깨고 정해진 경로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지도 밖으로,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이라는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어느 소도시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갑작스런 폭설을 맞이하고, 찾아가는 숙소마다 만실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낙담한 그녀는 길을 걷다 만난 동네 주민에게 지도를 내밀며 어디로 가면 숙박할 곳이 있을지 묻는다. 동네 주민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서 그녀가 내민 지도의 바깥쪽으로 손가락을 쭉 이동하며 대답한다. 이 지도에 보이지 않는 저쪽 산으로 올라가면 작은 여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아마 방이 있을 거라고. 그 말대로 지도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녀는 묘한 분위기의 작은 산장에 묵게 되며 현실과 꿈의 경계와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지도에 표기된 장소들, 혹은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방향만을 따라 가면 세계는 늘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행과 나날〉의 주인공처럼 지도 밖으로 걸어 나갔을 때, 혹은 지도에 그려져 있는 않는 것들을 탐색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낯설고 기묘한 세계가 있다. 일상이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반드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존 듀이가 말한 것처럼 예술은 특별한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풍경도 시선을 멈추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려보는 일이다. 피드에 뜬 영상이 아니라 직접 고른 영화를 보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활자에 시선을 멈춰보는 일, 그리고 길을 잃더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낯선 풍경들을 설레며 마주하는 일.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여행이 되고 예술이 된다.
2026-03-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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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마음이라는 텍스트, 사랑이라는 읽기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첫 구절이다. 가끔 이 곡을 클래식 기타로 편곡해 연주하곤 하는데, 가사만큼이나 선율의 결이 곱다. 이 노랫말은 사랑을 ‘책 읽기’에 비유한다. 독서가 언어로 형상화된 저자의 마음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상대라는 미지의 세계를 읽고 받아들이는 고유한 여정일 것이다.
이 가사를 문학 이론의 언어로 옮기면, “나는 당신의 텍스트(text)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 된다. 텍스트의 어원은 라틴어 ‘텍스투스(Textus)’로, ‘짜인 것’ 혹은 ‘직물’을 뜻한다.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짜듯, 언어의 실을 엮어 촘촘한 의미의 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텍스트다. 오늘날 텍스트는 종이 위의 글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림과 영화, 건축물은 물론 사회 현상이나 타인의 마음까지도 읽고자 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상징체계가 된다. 내가 진심으로 읽고자 하는 모든 대상은 곧 나의 텍스트가 된다.
읽고자 하는 대상이 '텍스트'
텍스트 읽기, 내면으로 진입
의미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
독서·사랑, 타인 이해하는 노력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작품’과 ‘텍스트’를 구분한다. 서재에 꽂힌 책이 고정된 결과물인 작품이라면, 독자가 읽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열린 공간이 텍스트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노래했듯,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존재를 향한 첫 인식이라면, 텍스트를 읽는 일은 그 존재의 내면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는 사랑법이다. 결국 텍스트란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세계이며, 잔나비의 노랫말은 나라는 세계를 기꺼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수줍은 초대장이다.
연애 기간을 합쳐 나는 아내와 40년을 함께 살아왔다. 그 시간을 지나고 보니, 그것은 한 사람이라는 세계를 쉬지 않고 읽어온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니 그 사람의 속내도 다 읽었다고 믿었지만, 결국 내가 읽은 것은 아내의 진심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었던 문장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읽는다는 일은 서둘러 결론에 밑줄을 긋지 않는 인내이며, 상대를 오독(誤讀)하지 않기 위해 텍스트의 행간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정성이었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호를 해독하는 일을 넘어, 나름의 형상으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이 여정에서 분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인지심리학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텍스트를 읽는 능력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작동한다. 결국 문해력을 기르는 과정은 타인의 마음이라는 정교한 직물을 온전하게 읽어내기 위해 ‘공감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며, 문학적 읽기는 타인의 세계에 조심스레 가닿기 위한 가장 좋은 연습이다.
이제 우리는 독서의 외연을 조금 더 넓혀볼 필요가 있다. 사람 또한 하나의 깊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행간의 숨은 의미를 찾듯, 사람이라는 텍스트 앞에서도 그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만 사랑에서의 읽기는 언제나 서로를 향해 열려 있다. 나는 상대를 읽는 동시에 상대에게 읽히고, 상대는 나를 읽으며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이렇게 주고받는 읽기 속에서 관계는 깊어지고, 이해는 조금씩 풍성해진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 지극히 내밀한 대화이며, 정서가 포개지는 공유의 장이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 남몰래 펼쳐보아요” 이 노랫말처럼,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갈피를 꽂고 잊지 않기 위해 다시 펼쳐보는 정성. 타인이라는 세계를 끝까지 읽어내려는 그 다정한 노력이 있다면, 어찌 독서와 사랑이 다르다 할 수 있을까.
2026-03-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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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숨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
거품을 친다. 스팀 노즐 끝이 우유 표면에 닿자 치지직 소리와 함께 고요한 잔에 파문이 인다. 투명하던 액체가 요동치니 빛을 머금은 기운이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른다. 공기가 머물 자리를 얻자 우유가 천천히 숨을 쉰다. 닿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잠기는 것도 아닌, 그 얇은 경계에서 새로운 숨이 태어난다. 손목의 각도를 낮추어 공기의 경계를 붙든다. 소리는 부드럽게 흐르고 잔물결 같은 떨림은 순한 리듬을 탄다. 작은 방울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촘촘하게 엮인다. 이제 노즐을 조금 더 깊이 담근다. 잔 속의 숨이 흩어지지 않도록 안으로 모으는 시간이다. 소리는 잦아들고 느린 회전이 중심을 잡는다.
나는 요즈음 바리스타 공부를 한다. 수년 전부터 버킷리스트 속에서 나를 밀어 올리고 있던 기포 같던 바람이었다. 드립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에는 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쌉싸름함 뒤에 남는 은근한 단맛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침묵의 시간을 더 즐긴다는 것을 알았다. 커피콩을 가는 과정의 깊은 집중,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사이의 팽팽한 긴장, 가루가 물을 머금으며 부풀어 오를 때의 움트는 기척,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이 모여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되고 있다는 확신. 그때 이미 향은 피어나고 있었고 맛은 자리를 넓혀 갔다.
그런데 바리스타 시험에 거품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을 줄 미처 몰랐다. 물과 가루는 기다리면 응답했지만 거품은 기다린다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피처를 잡은 손목의 높이가 조금만 어긋나도 숨은 거칠게 터졌고, 노즐이 깊어지면 답답한 숨은 그 자리에서 덜컥 멎어 버렸다. 닿는 것과 잠기는 것 사이를 정확히 짚어야만 거품의 결이 만들어졌다.
거품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국 위의 거품은 걷어내기 바빴고, 김빠진 맥주 거품은 식어버린 기대처럼 외면했으며, 입술에 묻은 치약 거품은 서둘러 헹궈내었다. 말끝에 부푼 허세의 거품과 한때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던 분노의 거품은 저절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어릴 때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거품을 버캐라 불렀다. 오줌 거품도 버캐라 하고 그것이 요강 속에 굳어 허옇게 껴 있으면 오줌버캐라고 했다. 그뿐인가. 아이들의 입가에 비누 거품 같은 침방울이 삐져나오는 것도 침버캐라 불렀다. 그러니 거품이나 버캐는 언제나 걷어내야만 하는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진종일 거품을 붙들고 달래며 다독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에스프레소 위의 황금색 크레마는 말할 것도 없고, 우유 거품을 잘 흔들어 그 위에 보름달 같은 하트를 멋지게 그려내야만 카푸치노 실기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거품의 세계가 낯설지만도 않다. 된장 콩의 발효 거품 덕에 좋아하는 청국장도 먹을 수 있고, 오늘 산 호밀빵도 반죽 속 거품이 없었다면 그저 밀가루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매일 주방과 욕실에서 만나는 풍성한 거품까지 일상 곳곳에서 무시로 거품이 탄생하고 또 깨어진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은빛 거품이 돋아난다. 소용돌이 속에서 흩어졌던 거친 기포들이 스스로를 풀어 매끄러운 광택을 얻는다. 드디어 우유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공기가 없었다면 저렇게 부풀지도 못했을 터. 삶에도 그럴 때가 있었다.
애써 밀어 올리려 할 때는 꿈쩍도 않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솟구쳐 오르던 기적의 순간들. 우유 거품처럼 늘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봉긋한 숨을 기억할 일이다.
2026-03-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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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피지컬 AI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ChatGPT, 제미나이 같은 챗봇이 등장해 사람처럼 답하고 대화하더니, 휴대폰에도 앱으로 탑재되어 언제든 질문하고 답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했었다.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고, 우리는 그 공상 과학의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곤 했었다. 그 이야기가 유토피아든, 인류의 종말을 그렸든 간에 그저 재미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나와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패배한 직후에도 반신반의했었다. ‘알파고’는 오직 바둑을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특별한 컴퓨터였을 뿐, 인간의 복잡한 지능과 판단력에는 비교조차 불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두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습한다는 이 ‘딥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은 앞으로 전개될 급변의 시작이었다.
불과 몇 년이 지난 후, AI가 영상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시를 쓰고, 그 시를 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읽어주고, 심지어는 복잡한 프로그래밍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특별한 누군가에게 획기적인 편리함을 주는 소프트웨어라는 인식이 더 컸다.
우선, 나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작곡하거나, 영상을 만들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여전히 출근하고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업무를 매일 수행하고 있으며, 퇴근 후 집에서의 일상도 변화가 없다. 어쩌다가 인공지능 활용법을 배워볼까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시도해봐도 그다지 신통치가 않다. 명령 프롬프트를 입력해야 했고, 서툰 명령어로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에이전트 AI라는 통합 모델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멋진 로맨스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다고 명령하면, 에이전트 AI는 일단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줄거리에 따라 어떤 기능을 가진 AI가 필요한지 스스로 판단해서 음악에 특화된 AI, 이미지 전문 AI, 목소리 더빙 AI를 각각 불러들여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뭐든 말만 하면 나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내 능력 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여 물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피지컬 AI도 등장했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로봇이 등장했다는 말이다. 외국의 빅테크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우리나라의 어느 대기업도 그 기술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부턴 대단하다는 것을 넘어 좀 심각해진다.
먼 미래의, 상상에 가깝다고 여겼던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솔직히, 데이터센터에 축적된 자료와 연결된 AI 지능은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거기에다 정교하게 작동되는 로봇 몸체까지 더해진다면 인간의 능력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AI 로봇은 인간을 위해 사용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처음엔 간단한 반복작업이나 위험한 현장에 투입될 것이다. 로봇 성능은 점차 개선될 것이고, 그럴수록 빠르게 사람의 업무를 대체할 것이다. 좋게 말하면 수천 년간 이어온 노동에의 해방이고, 다르게 이야기하면 생계를 위해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의 도래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엄청난 지능과 육체 능력을 지닌 로봇보다 사람이 더 가치 있고 쓸모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그 쓸모를 활용한 직업이 무엇인지 필사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게 아니라면, 노동하는 로봇 덕분에 시간이 남아돌게 된 인간이 무엇으로 하루하루를 보낼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2026-02-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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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환상에서 걸어 나오기
처음으로 열대 휴양지 여행을 다녀왔다. ‘바다 보면서 쉬는 거라면 부산에서 해도 되지 않아?’ 그런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제껏 여행 장소를 고를 때 휴양지는 옵션에 넣지도 않았었다. 경치 좋은 숙소에서 그저 쉬기만 하는 여행이란 아무래도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왕에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난다면 낯선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도 싶었고, 리조트 내의 뻔한 서양식 레스토랑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로컬 식당에서 낯선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다 보니 나로서는 딱히 끌리지 않는 장소로 여행지가 정해졌고, 이왕 그렇게 된 거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니까, 모처럼 푹 쉬면서 맛있는 열대 과일이나 실컷 먹고 오자고.
스스로 고쳐먹은 마음 덕분인지, 본래 열대 휴양지라는 곳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건지, 막상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 도착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날씨는 땀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더웠고, 얼음 컵에 담긴 맥주는 시원했으며, 노란 망고는 입 안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녹아 사라졌다. 흥겨운 음악 소리와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밝게 웃어주는 직원들.
전용 비치를 비롯한 모든 부대시설이 리조트 안에 다 있었고, 해양 체험 등의 일일투어는 업체에서 픽업 차량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리조트 밖으로 걸어 나갈 일은 없었다. 그래도 동네 구경은 좀 해보고 싶어서 하루는 아침 일찍 리조트 정문 밖으로 나서보았다. 울퉁불퉁한 도로변을 천천히 걷다가, 어린 아기를 안고 집 앞에 서 있는 노인과 눈인사도 나누고, 늙은 나무 위에 동상처럼 서 있는 어린 염소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태풍에 쓰러진 채 오래 방치된 것 같은 나무들도 보였고, 작은 성당의 이국적인 성모상도 보였다. 낡아가는 것들과 새롭게 생성되는 것들, 파괴된 것들과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이 길 위에 공존했다. 그 길은 리조트 내부의 화려한 시설들과는 대조적이었고, 리조트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프라이빗 비치’와도 달랐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또 죽어가는 공간. 산책하는 이를 배제하지 않는 공간. 때때로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진짜인 공간.
그 차이를 체감하면서, 자본주의가 낳은 수많은 ‘프라이빗’ 공간들이 얼마나 배타적이며 지루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바닷가의 선베드에서 칵테일 한 잔을 들고 찍는 사진들. 그러나 자연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막아놓고서 비용을 지불한 이들에게만 그 길을 열어주겠다는 태도는 얼마나 잔인한가.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그 ‘프라이빗’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환상에 빠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움을 독점하는 시간 동안 삶의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것 같다는 환상. 그 환상의 밑바닥에는 고단한 타인의 삶과 노동의 흔적이 은폐되어 있다.
휴양지의 ‘프라이빗 비치’뿐만이 아니다. ‘프리미엄 병동’ ‘초품아’ ‘패스트트랙’… 마치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세련된 언어로 포장되었을 뿐 그 말에 담긴 잔인함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깊다. 비용을 더 지불한 이에게 우선권이나 독점권을 줄 때, 그럴 수 없는 이들은 이 세계에서 밀려나고 투명해진다. 조용하고 정돈된 ‘프라이빗 비치’에서의 몽글몽글한 기분도 물론 즐겁기야 하겠지만, 자본으로 누리는 환상에만 빠져 있기보다는 광장과 골목길을 두루 다니며 타인들과 관계 맺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좌충우돌 감각할 때 비로소 우리의 유한한 삶은 촘촘하게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2026-02-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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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낙원을 떠난 이유
어릴 적 만화방으로 향하던 길은 내게 작은 모험과도 같았다. 눅눅하고 어두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혼이 나곤 했지만, 주머니에 동전 몇 개만 생기면 나는 어김없이 골목 끝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율리시스의 모험〉은 신세계였다. 외눈박이 괴물과 세이렌의 매혹적인 노래, 끝을 알 수 없는 항해는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훗날 그 만화의 원작이 서양 문학의 시초로 불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최근 완역본으로 출간된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으며, 나는 유독 한 장면에 오래 머물렀다. 오디세우스는 귀향을 꿈꾸던 10년 중 무려 7년을 요정 칼립소의 오기기아섬에서 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긴 세월 동안 그의 행적이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생이 정지된 것처럼, 호메로스는 그저 “칼립소가 그를 붙들어 두었다”고만 서술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신탁을 전하러 온 헤르메스가 등장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묘사된다. 7년이라는 세월이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되어 버린 것이다.
안락한 현재 속에 정체되기보다
불안하지만 미래로 향하는 선택
두 갈래 길 사이 망설이는 우리
선택 순간 각자 앞에 놓여 있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생을 제안한다. “나와 함께 있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라는 매혹적인 약속이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그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왜 이 완벽한 낙원을 뒤로하고 다시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일까.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는 결핍도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그곳의 삶은 이미 완성되어 있어 선택의 고민도, 실패의 두려움도 없다. 이는 삶의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제된, 휴식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칼립소는 그저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뿐이다. “여기 머물러도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는 지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환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전함 속에서 그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는 늙지 않지만, 더 이상 변화하지도 않는다. 서사는 멈추고, 삶은 정박한다.
고통이 거세된 자리에서는 이야기 또한 멈춘다. 오디세우스는 생물학적으로 존재했으나, 실존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던 셈이다. 이를 칼립소의 악의라고 볼 수는 없다. 불멸의 존재에게 정체(停滯)는 비극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멸의 존재인 인간 오디세우스에게, 변화 없는 삶은 끝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가 돌아가려는 이타카는 안식처가 아니다. 다시 상처 입을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거친 세계다. 늙어버린 아내와 알아보지 못할 만큼 커버린 아들, 집안을 유린한 구혼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칼립소가 약속한 영원한 청춘에 비하면 이타카는 고단하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그가 뗏목을 엮은 이유는, 신의 곁에서 누리는 완벽한 안락함보다 늙고 병들더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부대끼며 책임을 감당하는 삶을 택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디세우스가 칼립소를 떠난 것은 인간이라는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실존적 선택이다. 안락한 현재 속에 박제되기보다, 비록 상처 입고 부서질지라도 내일이 존재하는 미래로 나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 오기기아섬은 먼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번아웃을 피해 무기한 휴식 뒤로 숨어버린 누군가의 모습으로, 혹은 안정적이지만 의미 없는 일상에 머물며 꿈을 유예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계의 피로를 피해 자신을 고립시키는 선택 역시 또 다른 오기기아다. 이러한 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휴식이 다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가 아니라,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될 때, 우리 삶은 흐르지 못하고 고인다.
〈오디세이아〉가 오늘날에도 우리를 흔드는 이유는, 우리 역시 매 순간 안락한 정체와 불안한 성장 사이에서 망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칼립소를 떠나 이타카를 향해 뗏목을 띄웠다. 그 선택의 순간은 지금도, 우리 각자 앞에 놓여 있다.
2026-02-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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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은색 등불 하나 켜고
커피를 내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빛난다. 아니, 오른손 검지를 덮은 커다란 은색 반지가 번득인다. 도대체 저 투탕카멘 마스크 문양 반지는 어디서 파는 것인가.
“만들었어요.”
마음을 읽었을까. 남자가 커피잔을 건네면서 잠시 두 손을 치켜들어 보여준다. 요즈음은 장신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공방이 유행이라고 한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법. 동네마다 반지 공방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연인과 부부와 동료와 친구들이 저마다의 문양으로 만든 기념 반지를 끼고 손을 포갠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내친김에 전화 예약을 하고 작업장을 찾았다. 나는 편편한 실버 링에다 수필가답게 에세이라는 영문을 새기기로 했다. 그러면 창작의 마음가짐이 단단해질 것만 같았다. 얇은 실버 막대 하나가 앞에 놓여졌다. 이것을 한 시간여 다듬으면 반지가 될 것이다. 좀 더 긴 것을 선택하면 팔찌가 만들어질 터이고 넓은 것을 두드리면 목걸이 펜던트도 가능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비단 이 작은 금속만 그러할까. 자식되기 친구되기 부모되기 어른되기 그리하여 점점 인간이 되어 가기…. 내 삶도 새로운 ‘되기’의 연속 과정이었지만 제대로 완성되지 못하고 늘 형태만 일그러졌다. 이 막대도 망치질과 사포질을 하고 불을 가하여 마침내 반지되기에 이를 것이다.
은 막대에 힘을 주니 약간 휘어진다. 이제 영문 펀치에서 단어 ‘ESSAY’를 순서대로 골라 도장 각인을 할 차례다. 망치로 두세 번 때려서 단번에 글자를 새겨야 한다. 그런데 기계 작업이 아니므로 간격과 높이를 맞추기 어렵고 의도대로 찍히지 않으니 쉽지만은 않겠다. 실전에서는 첫머리 글자부터 비뚤배뚤 튀어 오른다. 어찌하겠는가, 핸드메이드의 매력에 의미를 둘 수밖에.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도 어긋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당신이 틀렸다고 우긴 것도 모두 틀렸던가. 나도 틀릴 수 있고 당신도 맞을 수 있는데 그것을 깨닫는 데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글자도 새겼으니 둥글게 말아서 이음새를 붙여준다. 은가루를 녹여 틈을 메우고 토치로 용접한다. 파란 불꽃에서 점차 붉은 열꽃을 뿜어내니 끝과 끝이 만나 고리를 이루었다. 뜨거워도 조금만 참으면 연결되는 것. 세상일이 그럴진대 불꽃이 일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과욕을 부려서 시커멓게 그을리기도 했었다. 접합한 상처는 울퉁불퉁해도 사포로 다듬으면 매끈해질 수 있는 법. 천천히 순리대로 따르면 다 해결되었다.
손가락 사이즈를 재고 기다란 쇠봉에 줄을 긋는다. 한 짝만 끼는 것이 반지(半指)이고, 쌍으로 끼는 것을 가락지라 했던가. 반지의 원형이 둥근 이유는 테두리 밖으로 마음이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라지. 쇠봉을 돌려가면서 나무망치로 두들기고 사포질하니 반드르르해졌다. 뭐든지 깎고 다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눈파는 사이에 상처가 나고 출혈도 생긴다. 그래도 애벌레의 환골탈태처럼 고통 뒤의 환희경도 있지 않은가.
문득, 캐나다의 철근 반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퀘벡의 세인트 로렌스강 다리 붕괴 사고 때 많은 작업자의 희생이 있었다. 이후 토목기술자들은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무너진 구조물에서 뽑아낸 강철로 반지를 만들어 끼게 되었다. 그 의식은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상기하며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라는 무언의 충고였다. 쇠반지가 엔지니어의 소명 의식을 새기듯이 내가 만든 은반지 역시 작가정신을 받들도록 할 것이다. 드디어 반지의 광택 작업이 끝났다. 밋밋하던 손가락에 채워본다. 반짝! 은색 등불 하나, 온몸을 밝힌다.
2026-01-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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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겨울
새로 얻은 탁상 달력을 세워놓고 잠시 그림을 감상했다. 달력 첫 장에는 얼어붙은 개울가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수채화가 있다. 그 풍경을 넘기면 1월이다. 익숙하도록 규칙적인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한 해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었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끝나는 한 해가 아니었구나.
계절마다 제각각의 풍경이 있겠지만. 나에게 겨울은 뭔가 투명한 것이 반짝이는 계절이다. 물론, 겨울이 만만한 계절은 아니다. 이제 곧 낯설고 더 어려워진 도전과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춥다. 그래서 오히려 ‘따뜻함’이라는 것이 소중하게 드러나는 계절이다. 마치 무더운 여름에 ‘시원함’이 두드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된 기억이 있다.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는데 녹화된 영상처럼 간직된 기억들이다. 추운 겨울 아침, 나는 시골 외갓집 뒷산 너머의 저수지 앞에 서 있다. 길쭉한 갈댓잎엔 하얀 서리가 부풀어 앉았고, 땅을 디딜 때마다 잔뜩 성을 낸 서릿발에 뽀득뽀득 소리가 났었다. 다랑논에 물을 대기 위한 자그마한 저수지였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뿌옇게 살얼음이 껴있었다. 그랬던 저수지가 간밤의 추위로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운동장만큼 컸던 저수지는 그만한 크기의 매끈한 빙판으로 변해있었다. 사촌을 포함한 우리에겐 썰매를 탈만치 두껍게 얼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정말 탐스러운 빙판이었다.
사촌 형이 조심스레 저수지 가장자리에 발을 디뎠다. 앞으로 몇 발 더 나아가 발을 구르자, 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물러선 사촌 형이 고개를 젓자 우린 모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빙판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 작은 돌은 빙판에 부딪히며 물수제비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동시에 저수지에서 신기한 소리가 울렸다.
아래쪽 개울에서 썰매 타기엔 돌이 많다며 투덜거리던 우리의 재잘거림이 뚝 멈췄다. 작은 돌이 얇은 얼음판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이후로 다시 들을 수 없었고, 어떤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였다. 뾰롱, 뾰롱, 뾰로롱, 뾰로로로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작고 납작한 돌을 주워 저수지를 향해 던졌다. 물수제비뜨듯 비스듬히 던져진 돌은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통통거리며 저수지를 가로질러 미끄러졌다. 작은 돌과 얼음의 부딪힘으로 어떻게 저런 영롱한 소리가 날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거대한 저수지는 천연의 악기였다. 저수지를 둘러싼 언덕은 악기의 울림통이었고, 얇은 얼음판에서 울린 소리가 메아리쳐서 마치 얼음과 하늘이 주고받는 화음이 되어 펴졌다.
여기까지가 내 기억이다. 이다음에 썰매를 탔는지 어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기억을 떠올리면 늘 따뜻함을 느낀다. 그 당시엔 분명 입술이 얼어붙을 추위에 손과 발이 시리고, 귀도 떨어질 듯 아렸을 텐데 말이다.
왜 따듯하게 느껴질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명백하다. 지금 내가 따뜻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이 여전히 추위 속에 있다면 그 기억이 따뜻할 리가 없다. 아마도 대부분 감정과 기억의 체감이 그런 이치일 것이다.
겨울은 따뜻함을 선명하게 하는 계절이다. 그 선명함은 추위가 강할수록 더할 터이다. 다만, 그 추위를 감당할 마음의 아랫목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언제든 달려가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가족의 따스한 체온, 포켓 깊숙이 넣어둔 핫팩, 그도 아니면 내 차가운 손을 모아 후후, 불어주는 타인의 따스한 입김이 그렇다.
새해의 이 겨울, 모두가 따스한 옷을 입고, 장롱 속에 넣어둔 목도리를 꺼내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 이 추위가 따뜻한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6-01-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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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빛과 어둠
새해의 분위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요즘 ‘어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빛이 사라진 시간에 대해서, 혹은 의도적으로 빛을 제거한 상황에 대해서. 그 생각은 여행 중에 경험했던 체험형 전시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빛을 낼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입구 사물함에 맡겨둔 채 지팡이 하나에만 의존해 완전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공간 어디라도 미량의 빛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간이 지나면 공간의 형태나 사물의 모습이 대략 분간되기 마련인데, 그곳은 내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완벽한 암흑 속이었다. 길을 안내해주는 가이드가 있었지만 그의 설명만 듣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도 막막해서 발걸음이 자꾸 멈칫거렸다.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니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나에게 익숙했던 빛의 세계가 해체되고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그런데 그 상황에 조금씩 적응이 되자 두려움과 막막함이 점차 사라지고 다른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가며,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손가락 끝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낯선 사물의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도 여행지의 풍경을 충분히 누리고 기억할 수 있음을, 오히려 더 집중하고 깊이 느낄 수 있음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100분 동안의 전시 체험이 끝날 무렵 가이드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그곳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각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던 내가 오히려 문제였다. 그곳은 빛이 없는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 그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었다. 다양한 감각들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세계를 지각할 줄 아는 유능한 사람이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최근에 김숨 작가의 〈무지개 눈〉이라는 연작소설집을 읽다보니, 어둠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리고 모든 감각과 온 마음을 다해 대상에 다가갈 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무지개 눈〉은 시각장애인 다섯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선천성 전맹, 후천적 시력 상실, 저시력 장애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세계를 체험하는 방식을 다양한 문학적 형식으로 보여준다. 파도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서 인식하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사람, 저시력 장애로 인해 한 번에 한 글자밖에 읽지 못하고 읽는 속도가 무척 더디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문장을 읽을 때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 사람.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결핍이라 규정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보편적이라고 믿어온 인식의 체계는 그저 편파적인 하나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와 단편적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이미지와 정보들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쉽게 판단하고 모든 것을 너무도 빠르게 확신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것처럼 ‘윤리는 확실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전시장의 암흑 속에서 나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모호함과 막막함과 불확실성을 견디며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감각하려는 태도야말로 인간을 윤리적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는 어둠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자주 생각하며,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구석구석 만져보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겠다. 그 무엇도 섣불리 확신하지 않고, 느리게 걷고 천천히 감각하며, 오래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2026-01-11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