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세상은 딱 두 가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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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필가

조산아 출생 인큐베이터에서 키워
엄마 되기 전과 후 완전 다른 세상
살아내려는 작은 생명 사투 감동

구급차 한 대가 출근길을 가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요동친다. 분명 남경 씨도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를 태운 구급차 속에 있을 시간이다. 출산한 종합병원에서 이십여 일 만에 다른 대학병원으로 작은 생명을 옮긴단다. 빌딩 숲을 헤쳐 나간 구급차는 어느새 기차역 쪽으로 머리를 틀었으니, 아마도 저 차 역시 터널을 거쳐 지금 남경 씨가 가고 있다는 병원과 같은 방향인 듯하다. 환자도 가족도 모두 컴컴한 터널 속에서 숨죽인 채 출구를 더듬고 있을 것이다.


남경 씨의 임신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해 단풍 고운 계절이었다. 요즈음 혼사가 그렇듯이 서른 중반의 신부에게 자연임신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결혼 3년 만에 시험관시술이 성공했다는 낭보는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기에 충분했다. 남경 씨도 여느 임산부들처럼 분홍색 키링을 가방에 걸고 다녔으며 성별이 나온 날은 저희 부부끼리 푸른 풍선을 걸어두고 세리머니를 한 동영상도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 올려두었다. 태명을 짓고 젊은 부부들의 유행이라는 태교 여행도 다녀오고 몇 달간 직장생활도 씩씩하게 잘 견뎌 냈다. 이후 남들이 다 찍는다는, 중장년 세대에게는 여전히 낯간지러운 만삭 사진도 당당히 보내왔다.

그즈음이었을까. 다니던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전원을 통보했다. 태아가 크지 않는단다. 심장도 뛰고 발가락도 꼼지락거리지만 병원 모니터상의 숫자는 쉽게 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신생아 평균 몸무게의 절반이 되지 않은 채로 남들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사내아이는 신체 장기 곳곳이 미성숙한 상태이다. 그동안 기계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여러 이유로 또 병원을 옮긴다.

남경 씨가 초보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단 애달픈 엄마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엄마들의 세상은 딱 두 가지뿐이다. 엄마가 되기 전의 세상과 엄마가 되고 난 후의 세상만 존재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한 아이의 탄생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따뜻하면서도 누구보다 강인한 전사가 된다. 아이의 고통을 제 몸으로 옮겨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는 자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큐베이터의 투명한 벽 하나가 아이와 엄마를 갈라놓았다. 안고 싶은 것은 고사하고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만지지 못한다. 초보 산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유를 유축하여 부지런히 병원에 갖다주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남경 씨는 울 시간이 없다. 삼시세끼 열심히 먹고 부지런히 모유를 모은다. 반면 그것을 지켜보는 남경 씨의 늙은 어미는 잘 먹지 못하고 몰래몰래 숨어서 운다.

극한 상황에서도 핸드폰을 켜는 세대답게 구급차 안의 상황을 짧은 동영상으로 보내온다. 흔들리는 영상 속의 급한 사이렌 소리가 귀를 메우는데, 인큐베이터 속 아이를 호위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 사이로 남경 씨의 중얼거림이 반복된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아무렴. 세상에 돋은 생명들은 너무 귀엽고 너무 예쁜 것. 하물며 자신의 품에서 숨을 틔운 새끼니 오죽하랴. 최근 인기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힘 있는 엄마’가 될 거라는 비장한 대사를 읊었듯이, 남경 씨 또한 어떤 난관 앞에서도 중심을 잡는 든든한 어미가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요즈음,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다리로 거실 벽을 오르는 실거미도, 베란다 커피나무 화분에 꼬물거리는 공벌레 한 마리도, 심지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작은 날벌레 하나까지 함부로 쫓아내지 못한다. 그 작은 생명들이 제 몫의 생을 살아내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저 기적이라는 숭고한 단어가 가장 연약한 생명들 앞에서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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