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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너튜브B컷] 민주주의 먹은 '들쥐'
본인을 숨긴 채 살아가던 소설가 제문재.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을 한 채 재산은 물론이고 이름까지 앗아간 이가 등장하면서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전래동화 〈손톱 먹은 쥐〉를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물 '들쥐'의 플롯이다. 논리적 개연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들쥐'를 보다 보면, 최근 벌어진 이재명 정부 2기 개각 논란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의 민주주의 대전제이기도 한 헌법 제1조 2항은 선출직뿐 아니라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무위원 또한 국민의 권력을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주말을 거치며 일단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 2기 개각에 포함된 인사들의 행태는 그러지 못하다. 국민 10명 중 7명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장관 겸직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관례를 깨야 한다며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자리에서 버티다 여당 대표의 한마디에 자진 사퇴했다. 여기다 ‘가족 정당’이란 비판을 받은 기본소득당의 대표는 비례대표든 지역구든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며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이기까지 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가족 이야기까지 꺼내며 눈물을 보였지만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특히 청탁 의혹이 제기된 코로나19 치료제의 동물실험 자료가 조작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는 문과라 치료제 성능을 잘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국민으로서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각종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 바로 다음날 그를 적임자라고 치켜세웠고 이틀 차에는 단독으로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했다. 끝내 결국 그는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 못 미쳤다"고 시인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김 후보자 또한 자신의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기밀 유출 전모를 밝히겠다”는 복수를 예고하며 기본소득당의 길을 걸었다.
"가짜가 되면 안 돼. 아무리 X같은 인생이라도 진짜로 살아야 돼". 자신을 되찾는 과정 중 조력자인 노자가 제문재를 다그치며 한 말이다. 대한민국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에게 잠시 국민의 권한을 위임한다. 이 대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채 일부 극단 세력만을 대변하고 선동하는 '들쥐'를 방치한다면, 어느새 '들쥐'는 우리의 모습을 한 채 이름은 물론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다.
약 20일간 대한민국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던 이재명 정부 2기 개각 국면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끝은 씁쓸하다. 우리 모두 가짜가 아닌 진짜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2026-09-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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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의 취재海랑] 해양수도 부산 '딜레마'
“진정한 의미의 해양수도는 부산이 해양·항만 허브가 됨으로써 인천 등 다른 지역들까지 전에 없던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한 해양수산 인사의 이 말은 부산이 마주한 ‘해양수도’의 본질을 꿰뚫는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부산은 강력한 추진 동력을 얻었지만, 동시에 무거운 딜레마를 짊어지게 됐다. 부산만의 성장에 머무르지 않고, 부산에서 일으킨 해양산업의 혁신을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국가적 책무를 안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자원을 흡수하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라, 산업의 파이 자체를 키워 타 지역까지 낙수효과를 퍼트리는 상생 모델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선 셈이다.
이전에도 부산은 늘 해양도시를 지향해 왔다. 앞서 전국에 흩어져 있던 해양 관련 공공기관들이 대거 부산으로 둥지를 틀었지만, 그 효과가 산업 전반으로 폭발하지는 못했다. 업계는 그 원인으로 ‘지역에 갇힌 해양정책’을 꼽는다. 영도 동삼혁신지구가 대표적이다. 2007년 해양 R&D 거점으로 지정돼 굵직한 연구·공공기관들이 집적됐지만, 기관 간 유기적 협업은커녕 당장 주차장 같은 기초적인 공간조차 공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관 간 업무 영역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협력을 이끌어낼 혁신지구만의 뚜렷한 비전과 정책 모델도 부재하다. 각 기관의 역량을 하나로 엮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킬 ‘조율자’로서 부산시의 역할이 절실하지만, 정작 시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2차 공공기관 이전과 해운·물류 기업 유치에 다시 드라이브가 걸린 지금, 부산은 이 딜레마와 더 자주, 더 강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기관과 기업을 단순히 부산에 모아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산의 지역적 이익과 해양산업의 공공적 이익을 지혜롭게 조율하고, 그 시너지가 인천·광양·울산 등 전국의 항만과 해양수산 업계로 뻗어나가도록 판을 깔아야 한다. 더 많은 해양 기관과 기업을 품은 만큼 혁신의 확산 효과를 실증해야만, 기관 유치를 둘러싼 지자체 간 소모적 갈등도 넘어설 수 있다.
이러한 분절을 꿰매고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궁극적인 책임은 부산시에 있다. 해수부 부산 이전 논의 당시 한 직원은 “주거지를 옮기는 불편보다, 해양수도를 완성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무에 더 큰 짓눌림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부담을 안고 내려온 만큼 더 뚜렷한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묻어났다. 결국 부산시가 이전 기관과 기업에 어떤 토양을 만들어주느냐에 따라 이들의 부담감은 고립된 피로가 될 수도, 국가적 도약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부산시가 대한민국 바다 전체를 설계하는 포용적 리더십으로 그릇을 넓힐 때, 해양수도 도약이라는 값진 결실로 보답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6-09-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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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원의 유행 너머] 돌아온 매직홀
2~3년 전만 해도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바지를 올여름 새로 샀다. 무릎 아래 종아리에서 뚝 끊기는 딱 붙는 6부 바지, ‘카프리 팬츠’다. 한 벌 사고 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요즘 꽤 잘 입고 다닌다.
2000년대를 소환한 ‘Y2K’ 열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복고의 시계는 벌써 2010년대로 넘어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2026 이즈 더 뉴 2016’이라는 문구가 유행하고, 10년 전 사진과 스냅챗 필터, 초커, 매트 립, 포켓몬고와 마네킹 챌린지가 다시 소환됐다.
걸그룹의 콘셉트도 빨라진 복고 유행 주기를 보여준다. 키키의 신곡 ‘팝 오프 팝 오프’에서는 2010년대 초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셔플댄스를 추고, 앨범에는 아예 ‘캔디 핑크 매직홀 플립 폰’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실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매직홀’은 2010년을 전후해 인기를 끈 삼성전자 폴더폰이다. 키키가 노래와 프로모션에 매직홀을 등장시키자 중고 사이트에서도 오래된 매직홀 휴대폰이 매물로 등장해 거래되고 있다.
패션계에서는 유행이 약 20년을 주기로 되풀이된다는 ‘20년 법칙’이 있다. 그런데 2026년에 2016년을 그리워하는 지금은 20년도 길어 보인다. 스마트폰과 SNS에는 불과 몇 년 전 사진과 음악, 유행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알고리즘은 이를 끊임없이 다시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과거를 찾아갈 필요 없이 과거가 먼저 현재로 찾아오는 시대다.
효율에 익숙해진 시대에게 비효율은 낭만이다. 요즘은 무엇이든 가장 짧고 빠른 길을 찾는다. 소개팅조차 한 사람과 긴 시간을 보내기보다 한 번에 여러 명을 10~20분씩 만나보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인기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골라주고, AI는 몇 초 만에 답을 내놓는다.
과거에는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았다. 불편한 2G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수련회 장기자랑 하나를 위해 친구들과 며칠씩 모여 밤늦게 춤을 맞췄다. 그저 재미있어서 시간과 마음을 썼다.
요즘 세대가 그리워하는 것은 폴더폰이나 카프리 팬츠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효율을 따지지 않고 무언가에 시간을 쏟을 수 있었던 태도, 조금 촌스럽고 서툴러도 개성이 있었던 시절의 감각이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그의 장미가 소중한 까닭을 알려준다. 장미를 위해 들인 시간이 그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들었다고. 가장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으려는 시대, 역설적으로 우리는 다시 쓸데없이 그저 좋아서 시간을 들이던 때에 끌리고 있다.
2026-08-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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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정가 뒷담화] 분열의 정치
국민의힘 윤리위가 결국 현역 의원 4명의 당원권을 정지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당원권이 정지되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징계 대상자 4명 중 3명은 2년 뒤 총선에서 배제된다. 징계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모두 평소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해 왔던 ‘비당권파’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물론 같은 당 소속 국회부의장 후보의 낙선을 종용하거나 원내대표 멱살을 잡는 등 비상식적 행동을 두둔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징계의 형평성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을 자초한 의원이나 대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를 도왔던 이들에 대한 징계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모호하달 것도 없는 이분법적 징계의 기준은 장 대표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테다.
대의와 명분을 상실한 채 징계의 칼날만 휘두르는 정당은 분열할 수밖에 없다. 징계에 더해 당 지도부는 당원 투표를 통해 전국의 당협위원장을 물갈이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분열을 한층 부추긴다. 당협위원장 대부분이 현역 의원인 부산의 경우 당원 투표가 진행되더라도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장 대표에겐 눈엣가시 같을 친한동훈계 의원들도 뜻대로 물갈이가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원들끼리 서로 생채기를 내고 지역 조직이 쪼개진다면 내부 분열만 부추기는 꼴이 된다.
국민의힘처럼 사분오열하는 지리멸렬함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더불어민주당 역시 분열의 정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베, 붕어 IQ, 박쥐, 배신자, 신천지 같은 혐오 발언들은 모두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후보들이 공식석상에서 사용한 언어들이다.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서로에게 험한 단어들을 뱉어댔고, 당 대표 후보들을 중심으로 한 편 가르기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을 남겼다.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오늘도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지만, 분열을 조장하며 내부 권력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은 여야가 엇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당심은 민심을 밀어낸다. 정당이 분열하며 내부 투쟁에 매몰될수록 민생에 직결된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당권파와 친한계의 대립, 명청대전 같은 건 국민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정치는 갈라서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 존재한다. 다름을 견디고 상대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품격을 기대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분열의 정치로 인해 국민들이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2026-08-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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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타임 아웃] 독이 든 성배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에게는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부임할 때는 위기에 처한 한국 축구를 구할 ‘구원 투수’라는 단어가 감독에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자리에서 물러날 때는 예외 없이 ‘독이 든 성배를 마셨다’는 말로 불명예 퇴진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24년이 지났다. 그 사이 13명의 감독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가장 길게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았던 파울루 벤투(2018~2022년) 감독을 제외하면 대부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2002년 이후 임기를 채운 감독은 딕 아드보카트, 허정무, 최강희 감독 뿐이었다. 모두 경질되거나 중도 퇴진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32강 진출에 실패하며 홍명보 감독은 자진 사퇴했다. 사퇴라기보다는 무너진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여론에 따른 경질에 가까웠다.
한국 축구는 다시 감독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 선임되는 감독은 얼마나 한국 축구를 이끌 수 있을까. 감독이 바뀌면 새로운 기대가 피어오른다. 새로운 선수가 국가 대표에 선발되고 감독의 색깔이 팀에 덧입혀진다. 하지만 몇 경기 부진한 성적을 보이면 다시 감독의 이름이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다. 경질론으로 대표팀은 흔들리고 그는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다. 수 십년째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공식이자 병폐다.
감독 교체의 목표는 월드컵, 아시안컵 등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한국 축구’의 색깔을 보여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대표팀의 경기력은 감독 한 사람만의 역량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건 이제 축구팬들도 안다. 선수 육성, 대표팀 운영, 감독 선임 절차, 협회의 행정력 등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다.
홍명보 감독의 문제점은 단순히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가 아니었다.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을 월드컵에서 선발 출전시키지 않아서도 아니다. 돌이켜보면 문제의 시작은 감독을 어떻게 뽑았는지부터였다.
되묻고 다시 되짚을 때다. 홍명보 감독이 잘했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감독을 제대로 뽑았는지 말이다. 감독 선임 과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했는지, 감독에게 충분한 권한이 있었는지, 감독에게 어떤 축구를 기대하고 운영을 지지했는지 같은 밑그림부터 다시 그릴 때다.
이제는 축구 팬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결말을 보고 싶다.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감독은 그만 보고 싶다. 성배에 처음부터 독이 들었던 것이 아니라 성배의 주인을 찾는 과정, 성배를 마시는 과정에서 독이 피어나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살펴봐야 한다.
2026-08-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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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투자 부적합' 자초한 증시
“한국이 투자 부적합 국가가 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전문매체 블룸버그가 한국 금융시장을 두고 내놓은 평가다. 국내 증시가 유례없는 급등락을 반복하자 정부 정책과 시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칼럼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당국은 이례적으로 공식 반박에 나섰다.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견고하고 기업 실적도 양호한 만큼 ‘투자 부적격 국가’로 평가할 근거가 없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히 불편하고 편파적인 평가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금융시장이 보여준 모습이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증시는 코스피 월간 하락률 역대 1위인 -33%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외환위기인 1997년 당시 월간 하락률 -27%마저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적을 자랑했던 한국 증시가 한 달 만에 추락한 것이다.
블룸버그 역시 코스피가 불과 27거래일 만에 40% 가까이 폭락했다며 이를 2015년 중국 증시 폭락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당시 중국 증시 폭락은 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책 속에 급등했던 주가가 한순간에 무너진 ‘버블’이다.
가파르게 급등했던 증시가 조정을 받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변동성’이다. 최근 10년간 코스피 시장에서 55차례 발동된 사이드카 가운데 43차례가 올해 발생했다. 같은 기간 서킷브레이커 역시 12차례 가운데 9차례가 올해 집중됐다. 두 장치는 급격한 가격 변동을 완화하기 위해 거래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시장 안정핀이다. 시장 변동성이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확대된 것이다.
증시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최근의 움직임만 보면 기업의 가치보다 단기적인 방향을 맞히는 ‘도박장’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주된 원인으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꼽힌다. 블룸버그 역시 이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지수 영향력이 막대한 종목에 레버리지 상품까지 붙으면서 시장 쏠림을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당국도 뒤늦게 규제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책에 따라 증시가 출렁이고 자금이 과도하게 몰리는 구조 자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투자 부적합’이라는 비판에 반박문을 내놓기 보다 시장의 폭락과 폭등이 반복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투자자가 안심하고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의 후속 대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2026-08-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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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맛있는 여행] 무더위 여행
정말 덥다. 차원이 다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만 넘어도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 등 온갖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했는데, 이제는 그런 표현들조차 무의미해졌다. 체감 온도가 40도 이상이 된 게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낮 최고 기온이 40도가 넘는 경우도 빈번하다. 특히 경남 양산은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날이 5일이나 지속되더니 2일에는 42.5도까지 올랐다. 122년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기온이다. 양산뿐 아니다. 1일 부산은 40.5도, 창원 40.4도, 김해 40.2도를 기록했다. 한밤에도 30도를 육박한다. 강원도 강릉은 30도를 넘는 초열대야 현상이 이틀째 계속됐다. 요즘 더위의 기세가 정말 무섭다.
이럴 땐 여행 담당 기자도 난감하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많은 독자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멋진 곳을 소개해야 하는데, 살인적인 무더위로 엄두가 나지 않는다. 뙤약볕에 잠시라도 나서면 머리속은 물론 피부가 타들어갈 것 같은 무더위에 여행을 다니시라 권하는 자체가 죄송스러울 정도다.
살인적인 무더위에도 지자체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경남도는 8월 휴가철을 맞아 함양 용추계곡, 밀양 수퍼 페스티벌, 통영 다찌, 진주 미디어아트 진주성, 김해 낙동강레일파크, 산청 경호강 은어낚시, 거제 전국해양스포츠제전 등 모두 7곳을 선정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자연과 먹을 거리, 축제와 체험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여름 대표 콘텐츠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경북은 한 달 전부터 날씨와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경북 대표 실내 관광지 3곳을 추천했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지난달 ‘경주 황룡사역사문화관, 상주 낙동강역사이야기관,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을 선정했다. “무더위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는 만큼 역사와 문화, 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실내 관광지가 새로운 여행 대안”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올해 무더위를 예상이라도 한 듯하다.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인 바다와 각종 축제 참가를 통해 한여름 무더위를 정면으로 이기는 것도 좋지만, 시원한 실내 관광지도 고려해 볼만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부산은 대표적 실내 관광지가 제법 있다. 해양의 역사와 문화·생물·예술 등 한국 해양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영도), 과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는 동남권 대표 과학관인 국립부산과학관(기장), 부산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부산시립박물관 등 다양하다. 특히 부산박물관에서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조선왕조실록〉 4대 사고본이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미술관도 좋은 실내 여행지 중 하나다. 우리 주변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더위에 갈 만한 실내 여행지가 제법 있다.
2026-08-0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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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너튜브B컷] 정부 생중계 너머 그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 조치가 시행 중입니다. 상담원 모두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고등학생은 인터넷·휴대전화 계약 해지를 방어하는 세이브팀, 쉽게 말해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뒤 이 학생은 한 저수지에서 삶을 내려놓았다. 수화기 너머로 쏟아진 폭언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이가 감당하기엔 턱없이 버거웠다. 이듬해인 2018년 국회는 부랴부랴 ‘감정노동자 보호법’인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마련에 나섰다.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한 콜센터 안내 음성의 시작이다.
출범 한 달도 채 안 된 민선 9기 지방정부들은 앞다퉈 유튜브를 통해 주요 회의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 생중계가 모델이 된 듯하다. 단체장들의 이러한 결정을 두고 엇갈린 시선이 존재한다. 시민들의 알권리, 그리고 행정의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찬성파가 있다. 반면에 한정된 공간 속의 반응을 마치 전체의 의사로 받아들여 자기 정당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맞선다. 생중계는 장단점이 뚜렷한 정책 홍보 방식인 까닭에, 진영에 따른 시각 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화면 너머에 있는 공무원들에게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한정된 회의 시간 내에 단체장의 지적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직에 몸담은 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고’에 할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 앞에 서서 발언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이같은 애로사항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랏밥을 먹는다면 응당히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단체장이 쓴소리를 내뱉기라도 하면, 해당 공무원을 향한 필터링 없는 비난이 예사로 쏟아진다. 당장 이들이 행정 중계로 받는 고통은 아랑곳없이, ‘능력 없으면 욕을 듣든지, 그게 싫으면 그만두든지’ ‘무능이 소문날까 봐 아주 난리네’ 등의 반응까지 나온다.
다소 극단적 표현일 수 있지만 반문해 본다. 온라인상에서 익명의 필자들 주장대로 능력이 부족하다 해서 광장에 효시(梟示)되는 것은 정당한가. ‘국민의 봉사자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 이들에게 인민재판식 맹목적 비난을 쏟아내는 게 2026년에 가당한가.
정부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민선 9기 단체장들의 선택은 응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공무원은 당신의 직원인 동시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인격에 대한 힐난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26-07-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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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의 취재海랑] 참전용사 후원 '떡상', 한성기업의 또다른 비밀
‘착한 기업’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부실 상장기업의 퇴출 기준(시가총액)이 상향되면서, 벼랑 끝에 몰렸던 몇몇 기업들이 뜻밖의 선행으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에 본사를 둔 수산물 가공회사 ‘한성기업’이다.
이들이 17년간 참전용사를 위한 음악회를 후원해 왔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재조명되면서 주가가 그야말로 폭발했다. 지난 6일을 기점으로 무려 8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더니, 보름도 안 돼 주가가 213%나 급등한 것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급락 우려를 제기하며 일명 ‘애국주’ 투자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의 평가는 좀 더 지켜봐야겠으나, 단순히 ‘애국 행보’만으로는 롱런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번 애국주 이미지에 비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성기업의 또다른 비밀이 있다. 바로 ‘MSC(해양관리협의회·Marine Stewardship Council) 인증’이다. 한성기업은 지난 2013년, 국내 식품 제조업계 최초로 이 까다로운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MSC 인증은 남획으로 인한 어자원 고갈을 막고,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으로 생산된 원재료를 사용하는 기업에만 부여되며, 인증을 통과한 제품에는 파란색 ‘에코라벨’이 붙는다.
인증 조건은 혹독할 만큼 까다롭다. 지속 가능한 어법을 준수한 어장에서 잡아야 하고, 남획을 방지하는 조업선에서 생산된 원물이어야 하며, 가공 과정에서 비인증 수산물과 섞이지 않도록 철저히 분리된 인증 공장을 거쳐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매년 엄격한 재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 행정에 드는 비용만 해도 수억 원에 달한다.
이처럼 필연적으로 높은 원가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에, 특히나 유럽과 달리 MSC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가 낮은 국내선 기업들이 인증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한성기업은 MSC 한국사무소가 2018년 문을 열기도 전인 2013년에 이미 이 길을 택했다. 소시지 제품 론칭을 위해 유럽 출장길에 올랐던 임원진들이 현지 매장에 파란색 에코라벨이 붙은 수산물이 가득한 풍경을 목격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한국 수산업계가 위생 관리를 위해 HACCP(해썹) 도입 등에 머물러 있을 때, 유럽은 이미 ‘지속 가능한 수산물’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해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우리 바다에서도 명태가 고갈되는 위기를 겪고 있었으니, 수산 전문기업인 한성기업에게 ‘지속 가능성’은 큰 가치로 다가왔다.
이후 한성기업 직원들의 행보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MSC 영국 런던 본사 홈페이지를 뒤져 직접 문의를 남겼고, 본사 담당자들의 한국 출장비까지 자처해 부담하며 초청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자사 공장 3곳을 모두 실사대에 올린 끝에 인증을 받아냈고, 이 인증을 현재도 유지 중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한성기업의 대표 제품 ‘크래미’에는 원가가 저렴한 베트남, 인도산 대신 MSC 인증을 받은 알래스카 베링해산 명태 연육이 고집스럽게 들어가고 있다.
한성기업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제품의 숨은 가치로 옮겨갈 때, 착한 기업의 지속 가능성도 비로소 담보될 수 있다. 아직 대한민국 수산업의 MSC 인증 성적표는 걸음마 단계다. 이번 애국주 열풍을 계기로, 더 많은 소비자가 이들이 지켜온 제품 가치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MSC 인증 수산물을 장바구니에 담는 것은, 단순히 착한 기업을 살리는 소비를 넘어 우리 바다와 지구를 살리는 위대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2026-07-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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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 ‘카르멘’이 남긴 과제 [김은영의 문화시선]
11~12일 부산 북항 랜드마크 부지에서 열린 야외 오페라 ‘카르멘’(작곡 조르주 비제)은 도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별빛과 바다를 배경으로 약 5000명의 시민이 함께한 공연은, 북항이라는 공간이 문화 무대로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북항을 떠나는 크루즈선의 뱃고동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공연과 도시의 풍경이 맞물린 이날의 경험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같은 변화는 3년 전 부산시민공원에서 시작된 ‘클래식 파크 콘서트’에서 출발했다. 당시 이틀간 1만 4000여 명이 모인 야외 음악회는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후, 이 프로그램은 매년 이어지며 부산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야외 공연으로 자리 잡았고, 시민들이 일상에서 클래식을 접하는 통로가 됐다. 지난해 부산콘서트홀 개관 이후에는 콘서트 오페라가 시도되며 레퍼토리가 확장됐고, 이번에는 야외 전막 오페라로까지 이어지며 공연 형식과 규모 모두에서 한 단계 진전을 이뤘다.
이제 관심은 내년 7월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로 향한다. 대형 공연장의 등장은 도시 문화 인프라 측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항 일대 재개발과 맞물려 새로운 문화 거점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개관 자체의 상징성에 머물지 않으려면 이후 운영을 어떻게 설계할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추진 중인 ‘라 스칼라’ 극장 초청 공연은 상징성과 화제성이 높지만, 100억 원대에 이르는 비용은 재정적 부담 또한 적지 않다. 개관의 주목도를 높이는 전략과 장기적 운영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접근이 필요하다.
운영 기반에 대한 점검도 필수적이다. 지역 민간 오페라단의 규모와 여건을 고려할 때, 외부 유명 단체 초청만으로 연중 일정을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다른 지역 공연장들이 공통으로 겪은 문제다. 국립오페라단 등과의 협력을 통해 부산에서 제작·초연한 작품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구조도 생각해봄 직하다. 나아가 지역 오페라단과의 협업으로 제작 경험을 축적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도 병행돼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공연 유치를 넘어 지역 공연예술 생태계를 키우는 길이다.
북항 야외 오페라는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그 성과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개관 이후를 내다보는 체계적인 운영 전략과 단계적 실행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부산은 이미 관객과 공간이라는 기반을 확보했다. 이제 그 위에 어떤 콘텐츠와 시스템을 쌓아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발전시킬지 고민할 시점이다. 북항의 밤이 보여준 가능성이 부산 공연예술의 일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7-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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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원의 유행 너머] 콰자작!
“콰자작!”
손안에서 왁스가 부서진다. 왁스를 깨뜨리면 알록달록한 비즈나 점토가 쏟아지고,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는 소리까지 더해진다. 별것 아닌 영상인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된다.
5000원 안팎의 작은 장난감이 올여름 가장 뜨거운 소비가 됐다. ‘왁뿌볼’은 왁스로 만든 공을 깨뜨리는 장난감이다. ‘말랑이’는 말 그대로 손으로 계속 주무르고 싶은 폭신한 촉감의 제품이다. ‘슬랑이’는 슬라임+말랑이로, 비즈를 넣은 슬라임을 고무로 감싸 완성한다. 모두 소리와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매력 요소다.
30초짜리 왁뿌볼 영상을 보고, 퇴근길 문구점에서 말랑이 하나를 사고, 손으로 몇 번 주무르며 기분을 푼다.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돈으로 잠깐의 재미를 살 수 있다. 마음에 쏙 드는 말랑이를 찾아 문구 시장을 방문하는 ‘말랑이 사냥’도 유행이다. 신상품이 많이 들어오는 시장은 어느새 새로운 핫플이 됐다. 서울에선 동묘 창신동 완구 거리로, 부산에선 국제시장의 문구사로 사냥을 떠난다.
비슷한 흐름은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영미권에서는 최근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인 ‘피젯 토이’ 열풍이 거세다. 손으로 반복해 만지고 누르며 긴장을 푸는 장난감으로, 성인 소비자들까지 가세하며 품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완구 브랜드 ‘니도’의 말랑이는 블랙핑크 로제가 애용하는 모습이 알려진 뒤 오픈런과 품귀 현상을 빚었고, 일부 제품은 중고 거래 가격이 정가의 수십 배까지 뛰었다. 랜덤 색상의 만두 모양 말랑이를 뽑는 ‘랜덤 만두 스퀴시’는 틱톡에서 수천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니도 헌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비싼 취미보다 손안에 쉽게 잡히는 촉감과 소리, 짧지만 확실한 만족을 소비하는 문화가 국경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랜덤 뽑기나 가챠 등 안에 든 내용물보다 열어보는 순간의 설렘과 짧은 행복을 소비하는 문화도 일상이 됐다. 오래 쓰는 제품이 아닌 순간 기분을 전환해 주는 작은 자극에 투자를 망설이지 않는 게 요즘 소비 공식이다.
유행은 늘 시대를 닮는다. 거창한 취미를 시작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여행 한 번 가려면 수십만 원이 들고, 공연 티켓도 만만치 않다. 치솟는 물가에 작은 소비조차 계산하게 되는 시대다. 하지만 얇아진 지갑, 바쁜 하루, 길어진 불황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행복의 물리적 크기가 조금 작아졌을 뿐이다.
“몇 분만이라도 내 감각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아무 생각 없이 편하고 싶다.” 복잡한 세상 속 젊은 세대가 소비하는 작고 확실한 즐거움 뒤에 숨은 이면이다.
2026-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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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정가 뒷담화] 젊은 정치인의 자작극 의혹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말아달라. 지금은 저라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지만, 시민들이 저를 바위로 키워주실 것이라 믿는다.”
정이한 전 개혁신당 부산시장 후보가 6·3 지방선거 마지막 날 유세 차량에서 쏟아낸 말이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끝까지 완주하려는 젊은 정치인의 ‘도전’을 응원하기로 한 시민들은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정 전 후보가 공언한 변화를 믿었던 2만 7418명의 부산시민은 한 표로 응답했지만, 그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자작극 의혹의 당사자로 전락했다.
음료 피습 자작극 의혹 직후 정 전 후보는 목 보호대를 두르고 “이번 일로 제 또래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이해하게 됐다”며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선처 탄원서’까지 냈다. 그러나 학생부 허위 기재 논란에다 부친 병원 관계자들의 선거 개입 의혹 등 날마다 터지는 논란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같은 또래라도 그들이 처한 삶의 위치가 얼마나 다른지 새삼 느끼고야 만다.
정 전 후보는 선거 전부터 이해하기 힘든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잠수’를 탔다. 이튿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공지해놓고는 언론사 기자는 물론 당직자들의 연락마저 무시한 채 두문불출했다. 당선 확률이 희박하다고는 하지만, 320만 부산시민을 대표하겠다고 나선 공당의 후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단일화 무산 등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정 전 후보는 잠행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고 끝까지 선거를 치렀다.
이번 사태로 개혁신당 부산시당은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고, 책임론은 중앙당까지 번지며 개혁신당은 존립 위기까지 내몰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부산이라는 보수적인 정치 지형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젊은 정치인들에게 유사한 낙인 효과가 찍히지는 않을까 우려된다는 지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은 물론 광역의회 문턱을 넘은 젊은 부산 정치인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자작극 의혹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난다면 지역의 청년 정치인들은 자신의 도덕성과 진정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져야만 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인들보다 더 구태스러운 정치를 한다며 도매금 취급하려는 목소리까지 곳곳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청년 후보 공천이나 정치 신인 발굴에 소극적인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오늘도 바위를 부수기 위한 계란을 자처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의 진정성과 책임 정신이 이번 자작극 의혹에 흔들려서는 안될 일이다.
2026-06-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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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타임 아웃] 승부차기 가장 약한 나라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조별리그가 각국마다 2경기째를 치르며 반환점을 돌고 있다. 조별리그가 끝나면 월드컵의 묘미인 승부차기의 시즌이 돌아온다. 이번 월드컵에서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32강전부터 정규시간 90분, 연장전 30분 동안 승패를 가리지 못하면 승부차기가 펼쳐진다.
승부차기의 시작점인 페널티킥 지점은 골 라인의 정중앙으로부터 11m 떨어져 있다. 키커가 찬 공이 골라인을 넘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0.4초, 골키퍼가 반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0.5∼0.7초다. 승부차기는 이론상으로 보면 키커가 이기는 승부다. 키커가 구석으로만 잘 차면 거의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역대 월드컵에서 실제 승부차기 성공률은 70% 안팎이다. 가장 큰 이유는 심리적인 요인이다. 골키퍼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여러 차례 슈팅을 막을 기회가 있고 승부차기 특성상 막지 못하더라도 비난을 덜 받는다. 반면 키커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중압감 면에서 골키퍼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월드컵 역사상 첫 승부차기는 1982년 스페인 대회 준결승 때였다. 서독이 프랑스를 5-4로 꺾고 승부차기 첫 승리 기록을 남겼다. 이후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4-2로 꺾은 2022 카타르 대회 결승전까지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는 총 35번 나왔다.
승부차기에 가장 약했던 나라는 어디일까.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를 총 5번 치러 4번을 패했다. 2002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아일랜드를 3-2로 물리친 게 유일한 승리다. 그러나 8강전에서 한국에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하면서 승부차기 징크스를 끊지 못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를 7번 치르는 동안 6번 이겼다. 2006 독일 대회 8강에서 안방 팀에 2-4로 패한 게 유일한 패배 기록이다. 독일(옛 서독 시절 포함)과 크로아티아는 승부차기 4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승부차기를 가장 많이 성공시킨 선수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다. 두 선수 모두 3번 시도해 3번 모두 성공했다. 골키퍼가 한 경기에서 기록한 승부차기 최다 선방 기록도 3번이다. 히카르두(포르투갈), 다니옐 수바시치, 도미니크 리바코비치(이상 크로아티아)가 공동 1위 기록 보유자다.
우리나라는 역대 월드컵에서 한 번 승부차기를 했다. 애국가의 한 장면으로도 기억되는 2002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이다. 당시 5번째 키커로 홍명보가 나서 스페인의 오른쪽 골대 상단을 갈랐다. 그로부터 24년 뒤 그가 한국 대표팀을 이끈다. 24년 전 홍명보의 환한 미소를 이번 월드컵에서도 볼 수 있기를.
2026-06-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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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긴축의 시대가 온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며 ‘긴축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취임 한 달여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늦지 않게 인상해야 한다”며 7월 인상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전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장과 물가, 그리고 금융 관련 지표가 모두 인상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호황에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인 상황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6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특히 중동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에 생활물가 체감은 이를 웃돌고 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과 1500원대가 뉴노멀로 자리잡은 원달러 환율까지 감안하면 통화정책은 인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긴축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금리를 인상했고, 일본은행(BOJ) 역시 다음 주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크게 후퇴한 상황이다.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생계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또 자산시장 과열과 투기 심리 자극으로 경제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이 가져올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다. 2000조 원에 가까운 가계부채는 물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상당수는 코로나19와 이후 경기 침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가계 차주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평균 16만 3000원이 늘어나는데, 전체 차주로 보면 3조 2000억 원 규모다. 또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 역시 조정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취약계층이다. 영세 자영업자 등 저신용 차주의 경우 이미 대부분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이자 부담은 64만 원으로 일반 가계대출 차주의 약 4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취약 차주에 대한 채무조정과 금융지원 체계를 점검하고,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시장 불안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은 역시 시장과 충분히 소통하며 예측 가능한 정책 경로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물가를 감안할 때 기준금리 인상은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처방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상 여부가 아닌 충격 관리에 맞춰져야 한다. 정부와 한은의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2026-06-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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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맛있는 여행] 핫 플레이스의 함정
여행지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검색하다 보면 ‘여행 핫 플레이스’라는 곳을 종종 보게 된다. 여행 블로거들이 올린 글에서부터 지역 공공기관에서 위탁을 받아 올린 글, 개인들이 직접 다녀와서 쓴 후기 형태의 글 등 다양하다. 이런 글을 보면서 여행지 선택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핫 플레이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SNS에서 더욱 그렇다. ‘핫 플레이스’라고 해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보면 별 것 없는 경우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는 ‘핫 플레이스’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기사 마감이 다가오면 급한 마음에 또다시 헛걸음을 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보고 여행에 나서는 분들 상당수가 이런 경험이 한 두번씩은 있을 것이다.
별 것도 없는데 왜 핫 플레이스라고 할까.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낚시인가? 아니면 도대체 뭐지?
조회수를 올리거나 과다한 홍보를 위해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낚시 글은 금방 들통이 나서 효과를 거둘 수 없고, 실체를 아는 사람들에게 악플 수준의 ‘역풍’을 맞기도 한다.
결국 인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가 발달되고 개인 미디어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욕구와 인식이 마치 대중적인 양 포장돼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내가 어떤 곳을 다녀와서 좋고,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 같아 ‘핫 플레이스’로 SNS 등에 올리는 것인데, 이를 탓할 수는 없다. 여행지를 고르는 선택자들의 몫일 수도 있다.
여행지에 대한 인식 변화도 무분별한 ‘핫 플레이스’ 현상에 한몫한다. 기존의 여행지는 여기저기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관광 명소여야 했다. 관광버스들이 줄 지어 가는 곳, 한 번 가면 여러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 한마디로 국내에서도 이름 난 곳들이 여행지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도 내가 가서 즐겁고, 편하면 된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 나오는 곳이면 금상첨화다. 볼거리가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유명 포토존 한 곳만 있으면 그곳이 여행지가 되고 ‘핫 플레이스’가 된다. SNS와 개인 미디어 확산에 따른 풍경이다.
스토리텔링도 여행지 선택에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엔 그냥 보고 사진 몇 장 찍는 유명 여행지라면 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곳의 이야기들, 숨은 맛집이 여행객들을 끌어 당긴다.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내가 그곳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겐 ‘핫 플레이스’가 되는 것이다.
여행지를 고르려면 ‘핫 플레이스’를 찾을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먼저 찾는 게 중요하다.
2026-06-07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