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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바다미술제 작품의 후속 여정
부산의 대표적인 격년제 미술제 중 하나인 ‘바다미술제’는 전시가 끝나면 작품이 철거되거나 작가에게 반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품이 해변에 설치돼 바닷바람이나 염분 등 환경적 제약이 크고, 대부분이 기간 한정의 설치 미술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달 2일 37일간의 항해를 끝내고 막을 내린 올해 2025바다미술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17개국 23팀 38명의 작가가 총 46점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 중 4점이 작가에게 돌아갔고, 1점은 기증 의사를 밝혔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폐기됐다.
바다미술제 작품 기증 소식은 꽤 오랜만이어서 눈길이 갔다. 다대포해수욕장 서측에 설치돼 있던 김상돈 작가의 ‘알 그리고 등대’가 그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바깥에 오래 둘 수 없어 가급적 실내로 가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사하구는 기증 의사를 구두로 승인하고, 현재 적정한 설치 장소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설치가 완료되면 정식으로 서류 절차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설치 장소 물색이 다소 길어지고 있다. 바다미술제가 끝난 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이전 장소를 확정 짓지 못해 해수욕장에 그대로 있다. 급하게 서둘 일도 아니지만 차일피일 미룰 일도 아닌 것 같아서 결과를 지켜볼 뿐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영부영하다 언젠가처럼 다른 지역 미술관으로 기증 작품을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또 바다미술제 종료 후에도 두 곳에서 연장 전시가 열리며, 작품이 해변을 넘어 도시 전체의 공공 자산처럼 기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작품의 영구 설치나 소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미술제가 남긴 예술 경험을 도시 공간으로 확장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BNK부산은행은 다대포해수욕장역에 설치되었던 이진 작가의 ‘물결의 되울림’을 은행 본점 1층으로 옮겨 연장 전시해 직원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바다미술제 주요 협찬사가 전시 작품을 이어서 보여줌으로써, 기업 공간을 시민을 위한 문화 향유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스위스 출신 안나 안데렉이 부산에 와서 지역 여성들과 작업한 ‘실버 붐’을 퍼포먼스 중심으로 재편집해 광안역과 범내골역 도시철도 역사 내 LED 스크린으로 상영하고 있다. 공식 협찬사는 아니지만, 지역의 큰 예술 행사 작품을 시민과 공유함으로써 대중교통 공간을 문화 공공재의 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번 칼럼에서 논할 계제는 아니지만 폐기되는 작품이 많은 현실과 이를 줄이기 위한 논의도 언젠가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25-12-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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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건설사의 사회적 책임
부산도시공사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 에코델타시티 건립 등 민관 합동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에게 480억 원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이들 건설사는 원자잿값이 급등해 공사비가 물가 상승률보다 크게 올랐다며 비용 보전을 요구해 왔다. 480억 원이라는 금액은 건설사들이 요구한 공사비 보전액의 50% 수준이다. 여전히 일부 건설사들은 ‘보전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 중에서 굴리는 돈의 규모가 가장 큰 편인 부산도시공사 입장에서도 이 금액은 적지 않은 액수다. 당장 이 480억 원을 공사의 당기순이익에서 제해야 할 판이다. 당기순이익이 높은 편이었던 지난해가 830억 원 규모였으니, 한 해 당기순이익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건설사들에게 줘야하는 셈이다. 공사의 향후 투자 전략이나 주거 복지 사업, 직원들의 성과급 등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보기 힘들다.
게다가 계약서에는 공사가 건설사에 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다. 법적 다툼으로 넘어가면 보전을 해주지 않아도 도시공사의 손을 들어줄 확률이 높아진다. 다른 지방도시공사들이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부산의 사례에 관심을 쏟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쯤 되면 부산도시공사가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테다.
이제는 건설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다. 지역 건설사들이 앓는 소리를 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 있다. “경기가 나쁘면 죽겠다고 정부건 지자체건 손을 벌리는데, 호황이 돼서 돈을 쓸어 담을 땐 건설사들이 지역 사회를 위해 뭘 좀 내놓은 게 있느냐”는 것이다.
굳이 지역사회 공헌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도외시했다는 질타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평생 번 돈을 아파트 분양에 쏟아부었지만 부실 시공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수분양자,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외벽을 오르내리는 건설 노동자, 부도를 내고 잠적해버린 건설사 탓에 가슴을 치는 협력업체 사장 등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우리가 보내는 일상의 대부분은 건설사들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이뤄진다. 도시의 품격은 지역 건설사의 수준과 직결된다. 지역 건설사들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중추라면, 이제는 ‘법은 지켰다’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될 일이다. 사회적 책임에서 비롯된 지역사회의 신뢰 없이는 건설사의 지속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사회적 책임은 기본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2025-12-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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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국내여행 관심 적은 젊은 층
최근 여행관광산업 연구기관 야놀자 리서치에서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젊은 층은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이 폭등해서 여행비용이 부담이 늘어나는 데도 해외로 나가는 걸 선호한다. 20대 이하 젊은 층의 해외여행 선호 비율은 48.3%로 국내여행(28.6%)의 1.7배에 달했다. 30대도 45.9%로 국내여행(33.8%)보다 높았다.
젊은 층이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새롭고 이색적인 경험’(39.1%), ‘다양한 볼거리’(28.1%)가 가장 많았다. 해외여행을 할 때 선택 기준은 ‘일상탈출의 느낌’(5.5점), ‘새로운 문화 접촉’(5.4점)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국내여행에 대한 불만족 이유 1위는 ‘가성비’였다. 여기에 특색 있는 관광 콘텐츠 부족도 주요 이유로 거론됐다. 이에 관련된 기사 댓글에서 한 네티즌이 ‘국내에는 어디로 여행을 가도 출렁다리, 케이블카, 집라인, 레일바이크뿐’이라고 지적한 내용은 왜 젊은 층이 국내여행을 꺼리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젊은이들은 새롭고 이색적인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보면서 일상탈출을 하고 싶은데 국내여행은 어디에 가나 똑같은 콘텐츠, 똑같은 음식뿐이어서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데 그런 관광지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 볼 만한 곳이라고는 부산, 제주도, 경주시밖에 없으며, 게다가 숙박비는 물론 식음료 가격은 비싸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그들에게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기자도 6년 가까이 여행 취재를 다니면서 매번 행선지 결정을 두고 고민했다. 한마디로 갈 만한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여행지에 가면 어디나 비슷비슷해서 독창적인 면모를 찾기 어려웠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하트나 액자 모양 포토존, 거의 유사한 유형의 벽화마을 그리고 창의적 콘텐츠라고는 하나 없는 전통 테마파크, 이곳이나 저곳이나 똑같은 음식뿐이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식을 찾으려면 헤매고 또 헤매야 했다.
야놀자리서치는 젊은 층의 해외여행 쏠림 현상을 매우 걱정했다. 현재 국내 관광시장은 장년층에 의존해 유지되고 미래시장 주역인 MZ 세대의 선호는 이미 해외 시장으로 이동한 상태인데,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관광의 미래 수요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같은 유럽 안에서도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음식이 달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배낭 하나 메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여행지의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같은 상황으로는 젊은 층의 마음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
2025-11-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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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사과가 부재한 시대
정치인에게 구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본인은 물론 가족 관련 비위 의혹으로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 의혹이 사실과 달라 억울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정사의 주요 지도자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먼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변명이나 정당화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대중에게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서거 10주년을 맞은 고 김영삼(YS) 대통령이 그러했다. 1997년, 퇴임을 1년여 앞둔 시점에 차남 현철 씨가 한보 특혜대출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YS는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 김대중(DJ)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2002년 차남 김홍업 씨와 3남 김홍걸 씨가 비리 의혹에 휩싸였을 때, DJ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렬하게 느껴왔으며,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두 사례는 어찌 보면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이런 ‘당연함’을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 버렸다.
최근 부산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한 전직 A 구청장이 각종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 심지어 주요 인사가 불참할 경우, 그 자리에 대신 앉는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구정 공백을 초래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상대 진영 인사를 ‘포용한다’는 명목으로 직원을 채용한 B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도 뜨겁다. B 정치인은 관련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아무런 불만도 듣지 못했다”, “누가 문제를 제기하느냐”며 긴 시간을 따져 물었다. 그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특정 인사 C 씨를 지원하기 위해 C 씨의 친형과 가까운 인물을 영입했다는 소문을 그 또한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A의 경우는 법적 사안이고 B의 경우는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당사자가 당당히 행동한다는 점에서 두 경우는 닮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정도는 일상다반사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인사(人事)의 문제로 시비를 거는 일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이미 그 대가를 치렀으니 뭐가 문제냐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치인이라면 떳떳함을 내세우기에 앞서 우선 고개를 숙여야 한다. 정치인이 응당 가져야 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의 무게가 법적 책임 이상으로 무겁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들에게 바라는 정치적 혹은 도덕적 기준이 범부의 그것에 비해 다소 높다고 해서 “억울하다”는 소리부터 나온다면, 단언컨대 그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2025-11-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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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신용의 의미가 사라진 금융
고신용자의 대출금리가 낮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금융상식이다. 최근 은행 창구 현실은 정반대 분위기다. 고신용자에게 높은 금리가, 저신용자에게는 오히려 낮은 금리가 적용되는 기형적 금리 구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명확하다. 정부가 ‘포용·상생금융’을 강조하며 은행권에 취약계층 대출 확대를 압박했고, 은행들은 저신용·저소득층 대상의 정책금융 상품과 보증부 대출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고신용자엔 낮은 이자로 고액을 장기로 빌려주지만, 저신용자에는 높은 금리로 소액을 단기로 빌려줘 죽을 지경일 것”이라고 발언하며 상생금융 확대를 주문했다. 이후 은행들은 정책금융 취급을 대폭 늘렸다.
이 대통령 발언 직후 고신용자 일반 신용대출보다 저신용자 보증부 대출의 금리가 더 낮아지는 ‘평균금리 역전’이 단기간에 발생했다. 은행연합회 자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드러난다. NH농협은행의 경우 9월 신규 가계대출 기준, 신용점수 601~650점 차주의 평균 금리는 연 6.19%였지만, 600점 이하 차주는 5.98%로 더 낮았다. 8월까지만 해도 600점 이하 차주의 평균 금리가 7.1%였는데 한 달 만에 1%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이런 금리 구조는 금융시스템의 ‘가격 신호’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신용이 높을수록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다는 기본 원칙은 금융시장의 핵심 규율인데, 원칙이 흔들리면 신용평가 체계의 신뢰와 대출 심사 기준도 함께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대출을 관리해 온 고신용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은행권 내부 불만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산정 기준이 객관적 위험도나 시장금리가 아닌 정치적 신호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부실 위험은 결국 은행뿐 아니라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책임이 가장 크다. 금리는 시장 위험과 신용도를 반영해야 하는데 정책 목표를 무리하게 금리 체계에 주입하면서 금융정책 일관성 자체를 흔들었다는 비판이다.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목적이 타당해도, 이를 ‘인위적 금리 인하’ 중심으로 설계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시장 기능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금리 왜곡이 지속될 경우 금융질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연체율 상승과 부실채권 확대, 나아가 금융권 전체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정치적 구호보다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원칙을 우선해야만 한다. 은행도 눈치 보기보다 본연의 역할을 지켜야 한다. 기본 질서가 무너지면 피해는 모든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2025-11-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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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
미국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LA)FC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LAFC를 단숨에 MLS컵 우승 후보로 올려 놓은 손흥민이 왜? 어떻게? 유럽에서 뛴다는 건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MLS에는 ‘베컴룰’이란 게 있습니다. 2007년 7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LA갤럭시에 입단한 ‘잉글랜드 축구 영웅’ 데이비드 베컴은 이듬해 시즌을 마친 뒤 소속팀에 AC밀란(이탈리아)의 단기 임대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MLS 휴식기이자 팀 훈련 기간인 1~3월 사이에 유럽에서 뛰길 원했던 것입니다. AC밀란이 베컴에게 관심을 보였고, LA갤럭시는 베컴의 단기 임대를 허용했습니다. 이후에도 베컴은 한 차례 추가 임대로 AC밀란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손흥민도 베컴 사례처럼 MLS 휴식기 동안 유럽에서 뛸 수 있습니다. LAFC 이적 당시 계약서상에 유럽 임대 허용을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이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현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손흥민의 유럽 복귀설은 유럽의 리그 운영 특수성과도 연결됩니다. 한국의 K리그를 비롯해 일본 J리그 등 동아시아권과 미국 등은 봄에서 시작해 늦가을에 리그를 마치는 ‘춘추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추춘제’입니다. 가을에 리그를 개막해 이듬해 봄에 종료합니다. 정확히는 8월에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끝납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시즌 타이틀도 해를 넘기기 때문에 ‘2025-2026시즌’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상해 보이지만 유럽인들에겐 자연스럽습니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모든 학교가 3월에 개학해 한 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9월에 학기를 시작합니다. 유럽인들 삶에 있어서는 한 해의 시작이 9월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맹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경기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유럽 리그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주로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2~3주간의 겨울 휴식기를 갖습니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등 일부 리그에서는 FA컵 경기를 치러야 해서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휴가도 한몫합니다. 한국의 여름 휴가는 길어야 1주일 정도지만, 유럽의 여름 휴가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진행됩니다. 여름 휴가 때 축구 경기를 한다면 관중수가 줄어들겠지요. 당연히 수익구조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유럽이라고 모두 겨울에 축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한겨울 그라운드가 얼어 붙어 한국처럼 봄~가을에 리그를 진행합니다.
2025-11-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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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소원을 말해 봐
지니가 말한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이선미 작가의 <진짜 내 소원>(글로연)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난 주인공은 신나서 소원을 말한다. 1번은 ‘공부를 잘하는 것’, 2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아이가 원하는 소원이었을까? 실제로 두 개의 소원이 이뤄진 뒤 행복해진 사람은 아이의 부모였다. 지니가 묻는다. “진짜 네 소원이 뭔지 잘 생각해 봐.” ‘내 소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등 나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소원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전금자 작가의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비룡소)는 소원의 경중을 질문한다. 주인공 훈이는 학교 가는 길에 두꺼비를 구해준다. 두꺼비는 보답으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중요한 소원을 들어줄 힘은 없으니 꼭 ‘사소한 소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다. 훈이가 소원을 빌 때마다 두꺼비는 '나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거절한다. 결국 두꺼비가 들어준 소원은 지우개 하나 구해주기에 그친다. 그런데 이 지우개로 인해 훈이가 제일 처음 바랐던 소원 성취로 가는 길이 열린다. 어떤 사소한 소원이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안녕달 작가의 <쓰레기통 요정>(책읽는곰)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원 요정이 등장한다. 골목 쓰레기통에서 태어난 요정은 사람을 볼 때마다 “소원을 들어드려요”를 외친다. 대부분 사람은 쓰레기통 속 요정을 보고 기겁하거나 무시한다. 그래도 쓰레기통 요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도움으로 소중한 물건을 되찾은 아이의 웃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쓰레기통 요정은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할아버지의 소원을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내놓는다. 그 모습을 보며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지니·두꺼비·쓰레기통 요정 모두 인간의 소원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들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소원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쉬이 답하기 어렵다. 현실 속에 소원을 이뤄줄 지니는 없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소원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그것을 위해 나아갈 길을 안내할 램프에 ‘반짝’ 불이 들어오지 않을까?
2025-11-0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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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예술가와 홍보 마인드
‘이번 주에 뭐 볼까?’라는 부산 전시 콘텐츠를 온라인 〈부산닷컴〉에 정기적으로 연재한 지 7개월째이다. 지난 3월 시각예술 분야로 취재 파트를 옮기면서 다시 시작했고, 게재 건수나 분량을 대폭 늘리면서 제작에 상당한 품을 들이고 있다. 처음 이 코너를 재개할 때만 해도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50장 안팎이던 원고는 최근 150장으로 늘었다. 부산에도 많은 전시 공간이 생겼고, 전시 건수가 늘면서 〈부산일보〉 지면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이를 보충할 심산이기도 했다. 세태 변화에 따라 종이 신문과 함께 온라인 독자도 껴안아야 하는 필요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부산 전시’ 소식을 취합하면 할수록 고민이 커졌다. 매번 2~3일씩 걸려서 원고를 작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과 예술가들의 ‘홍보 마인드’는 천차만별이구나 하는 점 때문이다. 앞서 2년 넘게 진행한 ‘부산 공연’ 소식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쏟는 열정 못지않게 대중과 접점을 찾는 홍보에도 적극성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아서다. 전시 기간은 겨우 1주일 남짓인데 개막 후에야 부랴부랴 자료를 보내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가 하면 전시 리플렛이나 팸플릿을 온통 캡처해서 보도자료라고 보내기도 하고, 복사도 안 되는 PDF 파일 하나 달랑 보내 놓고 기사를 기다리는 경우엔 정말이지 대략난감이다.
물론, ‘부산 전시’에 실린 내용을 보고 전시장을 찾는 이들도 상당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단독 기사로 실리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일목요연한 전시 소식 모음이어서 꽤 유용한 정보라고 반기는 이들도 있다. 특히 신생 전시 공간이나 신진 예술인의 경우는 SNS와 언론 보도 양쪽으로 노출될 수 있어서 좋아하는 편이다.
재미난 것은, 대형 기획사나 갤러리, 유명 작가나 연주자가 레거시 미디어를 더 잘 활용하는 편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관련 자료나 이미지 전송은 물론이고, 작가 인터뷰나 취재 일정까지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하는 준비성을 보인다. 부산에 지점을 둔 대형 갤러리의 경우엔, 전시 오프닝 때마다 어떻게든 서울 언론인을 ‘모셔 오기’ 위해 애쓰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하물며 지역의 갤러리나 예술단체가 더 느슨하다는 게 안타깝다. SNS에 전시·공연 소식을 올리고, 우편 초대장 발송으로 홍보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서 다해야 하는, 영세한 규모 탓으로 돌리면 할 말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홍보 마인드 부족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예술가도 본인 전시와 공연 홍보는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2025-10-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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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똘똘한 한 채' 이제는 끝낼 때
부산의 한 이전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A 씨는 부동산 매매를 고민하고 있다. 경기도에 있던 집을 팔아 부산으로 가족들을 옮기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청산할지, 아니면 서울 외곽에 집을 사고 부산에서는 전세를 구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런 고민을 A 씨만 해본 건 아닐 테다. 여러 직장 선배들의 조언은 ‘무조건 서울에 입성하라’는 후자였다고 한다. 어떤 정책 속에서도 언제나 우상향하는 서울 집값을 믿으라는 거였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다. ‘영끌’을 통해 가치가 높은 집 한 채만 보유해 세금 부담을 최대한 줄이며 향후 차익 실현을 노리는 투자 방식이다. 여기서 ‘똘똘한’이라는 단어를 ‘서울’이라는 지명으로 대체해도 별 무리가 없다. 34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강남3구나 한강벨트면 금상첨화다. 서울 아파트는 주거용이 아닌 전 국민이 눈독 들이는 투자처가 된 지 오래다.
다주택자를 억지로 때려 잡기 위해 만든 세제 체계가 이를 부추긴다. 실제로 같은 금액의 아파트를 보유하더라도 서울에 한 채를 보유한 사람이 지방에 여러 채를 보유한 사람보다 많게는 수억 원의 양도소득세를 아낄 수 있다. 지금처럼 지방이 침체된 상황이라면 서울의 한 채가 수억 원의 매매 차익을 더 챙길 수 있음에도 말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고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초강력’ 대책을 내놨다. 앞선 두 차례의 부동산 대책에도 강남3구나 한강벨트의 집값이 잡히지 않고 서울 외곽으로 상승세가 확산되면서 실시한 조처다. 똘똘한 한 채를 정조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력한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똘똘한 한 채 현상과 부동산 초양극화는 기울어진 과세 구조에서 촉발됐다. 하지만 세금은 건드리지 않고 규제지역과 대출로만 때려 잡으니 ‘반짝’ 효과 외에는 별다른 파급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 없이 수십억 원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강남으로 더 쏠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연말까지 부동산 양극화 해소 효과를 지켜본 뒤 다음 부동산 정책 발표 때는 지방에 대한 부양책도 함께 나와야 한다. 지방에 한시적으로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는 등 지방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이 죽는다고 지방이 살아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시적인 세제 완화 혜택으로 지방 부동산이 급등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는다. 부동산 양극화는 지역균형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방에 있는 우리 집도 ‘똘똘한’ 한 채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2025-10-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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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과잉관광 부작용 없는 프랑스
2025년 세계 관광의 가장 큰 화두는 오버투어리즘, 즉 과잉관광이다.
세계관광여행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지난해 세계관광 경제 규모는 11조 10000억 달러로 역사상 최대’라고 밝혔다.
또 유엔관광기구(UNWTO)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주요 관광대국의 여행객은 크게 늘었다. 프랑스는 지난해 1억 200만 명으로 2년 연속 1억 명을 기록하면서 ‘국가별 방문객 순위’ 30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스페인은 9376만 명으로 1억 명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세계관광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 회복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상황이 되자 여러 나라에서 과잉관광 부작용이 심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는 과잉광광에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수시로 벌어지고, 그리스에서는 스프레이로 항의 문구를 새기는 그라피티가 확산했다.
유럽만 그런 게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과잉관광 부작용에 시달린다.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 때문에 지역 주민이 일상생활 영위에 어려움을 겪고 물가가 상승한 게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일본은 2022년 383만 명으로 ‘국가별 방문객 순위’에서 43위에 그쳤지만 엔저 덕분에 2023년 2507만 명으로 15위로 뛰어오르더니 지난해에는 3680만 명으로 7위를 기록해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30년 동안 관광객 순위 1위를 차지한 프랑스에서는 일본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과잉관광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관광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상황을 두고 다양한 이유를 손꼽는다. 각 지역 관광 인프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튼튼한 데다 관광객 방문이 파리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프랑스 전역으로 분산되는 게 이유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국가별 방문객 순위’에서 2023년 1103만 명으로 26위였지만 K팝을 필두로 한 문화 수출에 힘입어 지난해 1637만 명을 기록하며 18위로 뛰어올랐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 방문객은 2024년 1212만 명이었다. 한국 전체 방문객 4명 중 3명이 서울에 갔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서울도 머지않아 과잉관광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청년, 저소득층이 임대해야 할 주택이 외국인 관광객용 숙박시설로 바뀌어 심각한 주택난, 주택가격 상승, 생활고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잉관광 부작용이 조금씩 떠오르는 지금이야말로 프랑스에서 배울 때다. 관광객을 파리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지역 도시로 분산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후유증을 최소화시켰다는 분석을 눈여겨볼 때다.
2025-10-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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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BIFF와 한국 정치 ‘그들만의 리그’
1996년 대한민국 최초 국제영화제로 시작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26일 막을 내렸다. BIFF가 올해 서른 돌을 맞이하기까지는 부산시민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국민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BIFF가 첫발을 뗄 때만 하더라도 감독, 배우 등 영화인들만의 행사가 아닌 영화 자체를 사랑하고, 배우를 응원하는 전국에서 몰려온 일반 시민들도 뒤섞여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축제였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해가 진 후 거리에는 쏟아진 시민들과 영화인들이 함께 가까운 거리에서 인사를 주고 받았으며, 때로는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며 취기가 오른 때에는 영화 업계 관계자나 배우 그리고 팬이 함께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제는 부산을 찾은 감독, 배우들은 공식 행사가 아니면 길거리에서 자연스레 만나긴 어렵다. 더 이상 영화제 기간 중 해운대의 밤에서 과거의 낭만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OO의 밤' 등 공식 영화제 행사 이후 밤에 진행되는 BIFF의 '진짜 영화제'는 대관한 장소에서 관계자들만 모인 형태로 이뤄진다.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출입조차 어렵고, 경호원 제지를 받기 십상이다. 과거 영화제 성공의 기틀이 된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할 공간은 드물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된 셈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거대 양당의 정치 행태도 BIFF 못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 양당 모두 일반 국민이 모여있는 광장이 아닌 자기들만의 공간으로 더욱 깊게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3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여당은 ‘개혁’이란 두 글자를 앞세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삼권분립을 뒤흔들고 있다. 정확하게는 강성 지지층 ‘개딸’들만 바라보며 내부의 공개적인 우려의 목소리에도 입법, 행정 권력에 이어 이제는 사법 권력까지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바닥을 찍고 있는 제1야당 국민의힘에도 평범한 일반 국민이 기댈 여지는 없다. 2019년 황교안 체제 이후 5년여 만에 거리로 뛰쳐나갔지만 정작 선행돼야 할 쇄신은 없다. 여기다 각 당협별로 할당된 동원 인원수, 그리고 이들로부터 명목상의 회비는 받지만 이걸로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은 내부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 당에서 추산하고 있는 권리·책임당원(민주당 약 110만 명, 국민의힘 약 74만 명)이 아닌 대한민국의 5000만 일반 국민이 그들이 주장하는 ‘선출된 권력’의 근간이다.
2025-09-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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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금융포커스] 금융사 해킹 본질은 신뢰 위기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잇따른 해킹으로 온 나라가 술렁이고 있다. 보안이 생명인 금융사들까지 해커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면서 우리 사회 핵심 인프라의 허술한 보안 체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쉬쉬하다 사태를 키우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대응에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롯데카드다. 회원만 960만 명에 달하는 이 회사는 지난달 14일 해킹을 당했지만, 2주가 지나서야 사태를 인지했다. 처음에는 약 1.7GB의 데이터 유출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 피해 규모는 무려 200GB. 카드번호·유효기간·CVC번호까지 유출된 고객만 28만 명에 달했고, 단순 정보까지 포함하면 고객 세 명 중 한 명이 피해를 입었다.
늑장 대응은 롯데카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7월 SGI서울보증에 침투한 랜섬웨어는 전산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전 이미 내부에 잠복해 있었다. 특히 서버 보안의 핵심인 VPN 비밀번호를 기본 값인 ‘0000’으로 방치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더했다.
사고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금융사들 태도다. 해킹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답변은 “개인정보 유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안일한 변명 뿐이다. 침해 사실을 늦게 인지하고, 피해 규모를 축소해 발표하려는 모습은 공통된 행태다.
문제의 본질은 신뢰다. 금융업은 소비자가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 단순 시스템 마비에도 생활에 불편이 큰 시대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불안은 치명적이다. 한두 기업의 문제가 아닌 만큼, 금융권 전체의 신뢰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사들은 최근 수년간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AI) 투자에는 열을 올리면서 보안 예산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국내 금융권의 보안 예산 평균 비중은 9.6%로, 미국(13.2%)에 크게 못 미친다. 롯데카드 역시 2021년 12%에서 2023년 8%로 하락했다. 혁신의 속도는 강조하면서 보안은 뒷전으로 밀어낸 결과가 이번 사태다.
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다. 사고가 터지고 뒤늦게 땜질하는 방식은 고객 불안만 키운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안 사고를 반복하는 기업에 대해 징벌적 과징금을 포함한 강력한 대처”를 지시한 것도 결국 금융권의 신뢰 위기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자 장사’라는 비판에 시달리는 금융사들이 보안마저 등한시한다면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신뢰를 잃은 금융사는 시장에서 존재할 수 없다. 해킹에 뚫린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와 소비자 신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5-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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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타임 아웃] 11명의 축구 선수
‘캡틴’ 손흥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FC(LAFC)로 이적한 손흥민의 열풍은 상상 이상입니다. 손흥민의 경기가 열리는 입장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티셔츠 판매량이 급증해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입니다. MLS 3경기 만에 환상적인 데뷔골을 터트린 손흥민은 14일 세너제이와의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52초 만에 리그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월드클라스급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손흥민이 MLS의 인기마저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세너제이 원정경기에서도 한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는군요.
지난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치른 미국과 멕시코의 평가전에서도 손흥민은 2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습니다. 당시 중계를 하던 TV 캐스터의 말이 생각납니다. “대한민국은 손흥민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멋진 말입니다.
딸과 함께 A매치 평가전을 보다 문뜩 옛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딸은 초등학교 때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서포터즈를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경기 직전 선수들과 함께 입장하는 ‘에스코트 키즈’ 경험도 있지요. 당시 딸은 “아빠! 축구는 왜 11명이서 해?”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축구 담당기자가 축구 한 팀 선수가 왜 11명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축구 한 팀은 왜 11명일까요. 축구의 기원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중세 유럽에까지 다양하게 존재했습니다. BC 200년쯤 이미 축구와 비슷한 경기가 중국에서 행해졌고, 고대 그리스에서도 축구와 유사한 특징을 갖는 경기가 열렸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인원 제한이 없어 수십 명이 함께 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63년 영국축구협회가 설립되면서 현대 축구의 규칙이 정립되기 시작하는데요. 당시 한 팀의 축구 인원을 11명으로 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당시는 왜 11명을 기준으로 했을까요. 영국 사립학교 기숙사의 방 정원이 10명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당시 각 방에는 10명의 학생 외에 방장 또는 사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 단위로 축구 경기를 하다 보니 팀 정원이 11명이 됐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과 필드하키도 한 팀이 11명이라는 점도 이러한 설을 뒷받침합니다.
축구장의 크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축구장은 길이 100~110m, 폭 64~75m의 크기로 돼 있습니다. 이 규격에서 이상적인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 필드플레이어 10명과 골키퍼 1명이라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현재 11명의 선수로 다양한 전술이 나오면서 재미를 더하고 있으니 축구는 흥미진진한 경기입니다.
2025-09-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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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특별한 돌멩이
발부리에 툭 걸린 돌멩이. 그저 그런 평범한 돌 하나로 생각의 집을 짓는 작가들이 있다.
돌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오소리 작가의 그림책 <돌머리들>(이야기꽃)을 펼친다. ‘돌머리’ ‘쓸모없는 돌멩이’ 같은 부정적 표현은 돌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다. 돌은 많은 창조의 시작점이다. 인간의 삶을 바꾼 수많은 도구가 돌에서 나왔다. 돌은 안식처를 만드는 건축 자재로,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의 재료로 사용됐다. 돌은 지구 생명체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간절한 믿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쓸모가 넘치는 돌이 그 속에 어떤 보물을 품고 있을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네가 의미와 이유를 찾으면 모든 돌은 중요한 돌이 돼.’
나만의 돌을 찾는 이에겐 메리 린 레이가 쓰고 펠리치타 살라가 그린 <딱 맞는 돌을 찾으면>(피카주니어)을 추천한다. 어린 시절 많은 아이가 돌을 갖고 놀았다. 바위에 기어오르고 돌탑을 쌓고 물수제비를 떴다. 조약돌을 주워 보관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저 놀이처럼 보이는 순간마다 ‘발견’이 있다. 유달리 반짝이는 돌을 발견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 나름의 특별함을 찾는다. ‘너의 손에 꼭 맞는 딱 좋은 돌’이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위로로 다가온다. 그렇게 딱 좋은 돌을 찾기 위해 ‘마주치는 모든 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 보라’는 이야기도 도움이 된다.
돌멩이에 이름을 붙이고 노는 아이가 있다면, 힐데 헤이더크-후트 작가의 <돌멩이도 춤을 추어요>(바람의아이들)를 읽어주자. 동그란 돌멩이처럼 혼자가 된 날. 아이의 놀이에 여러 돌멩이가 등장한다. 돌멩이들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엄마·아빠와 함께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나란히 서기도 한다. 혼자 떨어져 보기도 하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다 돌멩이들이 둥글게 모인다. ‘모두들 둥글게 둘러앉아 있어요. 아무도 안 울어요. 다들 웃어요.’(그림)
돌멩이들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온다.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과 감정이 투영된 ‘돌멩이 놀이’의 끝이 쓸쓸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혼자 남은 동그란 돌멩이 앞에 마법 돌멩이가 환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돌 하나에서 얻은 생각이 삶에 깊이를 더한다. 발부리에 걸린 돌멩이도 참 특별하다.
2025-09-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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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35년 만의 귀환, 홍성담 판화
사진 한 장마저도 겁에 질려서 내놓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엄혹했던 그때 그 시절, 민중미술가 홍성담(1955년생) 작가의 ‘오월 판화 연작’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과 시민 항쟁 의지를 국내외에 생생하게 알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판화 연작은 〈새벽〉이라는 제목의 연작 판화집으로도 나왔으며, “항쟁 당시의 분노, 슬픔, 희망 등 다양한 감정과 진실을 담아내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홍 작가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수배와 1989년 투옥을 거치는 동안 그의 초기 작품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이때 그를 여러모로 후원한 것이 한국 가톨릭이었고, ‘오월 판화 연작’ 첫 작품 공개나 ‘오월 판화 연작’ 첫 전시도 가톨릭을 통해 이뤄졌다. 또한 일부는 홍 작가 구명 운동과 후원 목적으로 독일로 작품이 반출돼 한국의 비민주적인 현실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이번에 독일에 있던 판화 초기작 50여 점과 각종 자료 등 100여 점이 35년 만에 작가 품으로 돌아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것도 1989년 ‘오월 판화 연작’ 첫 전시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홍성담 독일 유배 작품 35년 귀환 기념 전시’(가제)가 추진돼 성사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돌아오는 작품 대부분은 홍 작가가 1980년대에 제작한 판화들로, 광주민주화운동뿐 아니라 우리나라 탈춤과 농악 등을 표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작가 자신도 어떤 작품이 ‘반출’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다. 수배 중 제작한 것들이어서, 홍 작가 주요 판화(고무판화, 목판화)의 초기 희귀작일 가능성이 크다.
1990년 독일 순회전은 홍 작가가 1989년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작업에 참여했다가 3년간 옥고를 치른 것이 계기였다. 독일에는 이미 홍 작가가 전시했던 작품 중 일부가 있었고, 그가 결성한 시각매체연구회가 찍은 판화를 더해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1992년 8월 석방된 이후에야 독일 전시 존재를 알게 된다. 당시 유럽 전시는 큰 반향을 일으켜 국제사회의 석방 촉구가 잇따랐다.
홍 작가의 판화는 과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자 역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또한 홍 작가는 독일 유배 한국 미공개 작품 순회 첫 전시를 부산가톨릭센터에서 개최함으로써 종교와 사회, 종교와 예술의 동행을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작품은 독일에서 봉인된 채로 9월 1일 홍 작가 안산 작업실에 도착한다. 작가는 이 상자를 개봉하지 않고 부산가톨릭센터로 가져와 현장에서 봉인 해제한 뒤, 이를 공개할 예정이다.
2025-08-31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