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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밤이 켜졌다
보름달 떴다고
나가서 보름달 보라고
남쪽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 들고 밖으로 나갔더니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 밤하늘
샛노란 밤의 눈동자
보름달 보이지?
그래, 보여!
그렇구나, 우리 눈빛이
지금 저 달에서 만나는 거로구나
푹푹 찌는 열대야 심야
밤이 켜졌다, 밤이 꺼졌다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2026)
같은 대상,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한 시공간에 있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아무리 멀리 있다 할지라도 거기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달을 같이 보자고 전화하는 친구와, 바라보고 있는 달에서 친구를 만나는 시인과, 이 시를 읽고 있는 사람이 밤의 눈동자 속에서 함께 만나고 있다는 것, 열대야보다 힘 있는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이 깨달음은 점점 소원해지고 있는 정서적 합일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달이 있어 어둡지 않은 밤, 마음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인 것입니다. 오늘 밤하늘 같이 바라보자 전화하는 친구가 되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
2026-08-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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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기차에 대하여
달리는 기차를 본다 멈추지 않는 기차를
멈추지 않아 아무나 탈 수 없는 기차
그만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도 없는 기차
기차의 속도로 달려야만 탈 수 있다
내리고 싶을 때 내리는 자는 치명상을 입는다
세워주지 않는 저 기차에 우리 모두가 이미 타고 있다
탈 수 없는 기차를 이미 타고 있는 것은 악몽이다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몸을 던져 연료가 되는 자들이 따로 있을 뿐이다
기차를 세울 수 없는 것은
기차의 목적지는 기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은 기차를 탈 권리가 없다
기차의 목적지는 달리는 속도에 있다
저 기차가 왜 우리에게 있을까
아무도 목적지를 묻지 않을 만큼
우리는 내릴 수 없는 기차를 타고 있다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2025)
이 시를 읽으면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납니다.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결코 평등하지 않은 열차 안의 세상이 끝없이 궤도를 달리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린 내리고 싶을 때 내릴 수 없는 기차를 타고 있는지 모릅니다. 멈추지 않는 기차의 연료가 되어야만 하는 자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린 주어진 현실 극복 의지를 가져봅니다. 내 생의 기차는 내가 운전자라는 것, 기차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달린다는 것, 인간적 가치보다 성장과 경쟁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목적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 가끔 멈춰 서서 달려온 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달리는 데만 뜻을 두고 있진 않는지도 함께 자문해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8-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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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방에 들어온 음악
흰 고양이보다 어린
소녀가 피아노를 친다
음정을 고치고 소리의 간격을 조정한다
옆집은 창을 닫아도
나는 귀를 열어둔다
어린 너는 소리를 배우는 중
더 만져보아라 높낮이가 너를 두드리도록
주저앉아 우는 것이 사랑이다
너는 건반 위를 뛰어다녀라
누르는 곳마다 소리 나는 노래가 된다
서투른 곡이라도 따라 부르자
내 방에 들어온 음악이 나가지 못하도록
나는 너의 노래에 갇히고 싶을 뿐
기다리는 날마다 점점 늘어난 귀
노래는 나에게 와 사그라들고
나는 이제 불협화음에 익숙해진다
-시집 〈비가 시를 고치니 좋아라〉 (2026) 중에서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공감이며 존중입니다.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듣는다는 건 나의 생각과 편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는다는 건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리듬에 합류한다는 것. 그러다 사랑의 노래에 함께하고 싶다는 것. 그러다 불협화음에 익숙해질 줄 아는 마음을 마련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방에 들어온 것들. 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전언에 닿기도 합니다.
단순히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것 말고 상대방의 감정, 표정, 숨소리에까지 집중하여 내면을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 너의 존재와 이야기는 나에게 중요합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7-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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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서른
삶을 밀려 쓴 것 같다
답지가 아닌 타인을
계속 들춰보고 싶다
맞아, 삶엔 답이 없다
알아, 그래도 있지 않을까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
더는 이해받을 수 없다
그 온도에 물이 끓는단다
그전에 멈추면 안 되는 거란다
멈춰도 오래 따뜻할 수 있다
뜨겁지 않은 체온으로
사람을 데울 수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삶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2025) 중에서
서른은 스물과 마흔 사이에 있는 애매한 나이입니다. 어른이 된 것 같지만 아직 배우고 채워가야 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 공자는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세상의 유혹이나 흔들림에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가치관과 기초를 확립하는 나이인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했습니다.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시기이지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수많은 기대로 힘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출산과 육아를 시작하기도 하는 서른은 삶에 와닿는 사회적 문제들을 직접 느끼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빌려 쓴 것 같다고 토로합니다.
삶에 답은 없지만 타인을 안아주는 사람의 온도만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신정민 시인
2026-07-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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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비 오는 날
마당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말입니다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미꾸라지가 바둥거리면서 떨어지지 말입니다 미꾸라지 주둥이가 뾰족한 것은 물에 얼굴을 갈면서 거꾸로 기어오르기 때문이지 말입니다 구름의 벼랑에서 꽃이 피는 줄 알아 냇가에서 힘껏 솟구치지 말입니다 수염으로 물길을 읽다가 제 몸무게 때문에 떨어져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지 말입니다 빗방울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장대하게 떨어지지 말입니다 빗방울들은 미꾸라지에게 왕관을 씌워주며 엎드려 흘러가지 말입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으면 빗방울들이 온통 미꾸라지 같지 말입니다
시집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2025)
강한 회오리바람이나 용오름이 물고기들을 상공으로 들어올렸다가 바람이 약해지면 땅으로 떨어뜨리는 ‘물고기 비’라는 기상 현상이 있습니다. 시인은 소나기 속에서 왕관을 쓴 미꾸라지들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봅니다. 구름의 벼랑에 피는 꽃을 보려고 힘껏 솟구치는, 수염으로 물길을 읽는 미꾸라지들. 잉어목 미꾸리과 미꾸리속에 속하며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는 미꾸라지들은 환경 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동물이기도 합니다. 생태계에서 송사리와 더불어 모기 유충을 잡아먹음으로써 여름 불청객인 모기의 수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 미꾸라지는 물을 맑게 하는 이로운 생물입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미꾸라지들을 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긴 더위를 해결해줄 비가 좀 왔으면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
2026-07-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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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옥수수가 익어가는 여름
방학을 맞아 서울서 내려온 아들과 함께 읍내에 간다
도로변의 밭에선 옥수수가 한창 익어간다 도시인의 휴가철에 맞춰 딸 수 있게 비닐하우스에서 일찍 모종을 길러심은 녀석들이다
달콤한 과자와 빵이 넘쳐나는데도 사람들은 옥수수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옥수수에서 사람의 이나 하모니카를 보기도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읍내로 들어서니 옥수수를 삶아 파는 가게가 판을 벌였다 가게 앞에 내놓은 솥에서 달큼한 냄새가 풍겨온다
어린 시절 텃밭에 가득했던 그 옥수수다 흐름 속에도 흐르지 않는 것이 있음을 본다
시집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 (2026)
한여름 어느 날엔가. 이제 막 살이 차오르기 시작한 옥수수를 위하여 햇살들은 맹렬하고, 비는 쏟아지고, 바람은 또 그렇게 지나가는 거겠지요. 알알이 들어찬 옥수수의 저 단물은 어디서 온 걸까요. 익어가는 옥수수 냄새가 불러오는 향수. 사람의 마음에 둥근 여백을 만들어주는 자연과 소박한 일상이 평화를 허락하는 일이라는 시인의 여름을 읽으며 올여름 휴가를 미리 그려봅니다.
세월은 빠르고, 때론 잔인하며, 돌이킬 수 없지만, 그 세월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자연의 순리 속 사람 사는 일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켜온 마음과 사랑과 우정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것들이고,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어설픈 시도들을 잠시 멈추고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을 헤아려 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7-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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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그 생에도 보리똥나무가 있을까(장철문 1966~)
그날 아침, 그와 나는
한쪽 어깨에 햇살을 받으며
보리똥을 따 먹고 있었다
그 아침에
그가 한 말도
입었던 옷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스포츠머리와
흰 치아를 드러낸 미소와
말소리만은
아직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생을
그와 함께했다는 것은
이것으로 명백하다
내가 이생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에 실패한다면
또 어느 생에서
그와 함께 보리똥을 따 먹을 수 있을까
한쪽 뺨과 어깨가 따습던
그 아침에
보리똥나무 가지를 흔들던
자디잔 웃음소리를
아껴 먹는 생의 식량으로 삼을 수 있을까
시집 〈식당 칸은 없다〉 (2025)
내가 아껴 먹는 생의 식량은 무엇일까. 시인의 말처럼 아무 것도 아닐 거라 여겼던 그러니까 그저 그런 평범한 삶의 순간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을 함께 하는 사람의 미소와 웃음소리, 따스한 햇살과 어깨 따듯한 아침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응원이자 성장이며 교감일 것입니다. 유대의 순간들, 그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생의 허기와 결핍이 그러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향해 오고 있는 무수한 떨림들.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있는 명백한 것들, 나의 존재들이 떨림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 주어진다면 다음 어느 생에선가 지금과 같은 순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짚어보게 됩니다. 신정민 시인
2026-06-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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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힘
땀 뻘뻘 쏟으며 트럭 한 대가 섰다
트럭에서 내린 반바지 중년 사내가
맥주 세 박스를 등에 지는데
나 서 있는 오 층 베란다까지
끄응!
소리가 다 들렸다
부들부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단란주점 계단을 올라가서는
그리고
끄응!
하고 내려놓으리
세상을 한번 들었다 내려놓는 일
저렇게 죽을힘을 다 쓰는 일이다
너도 한번 죽을힘을 다 써봐라
비로소,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시집 〈달나라 청소〉 (2025)
죽을 힘을 다해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것. 피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살아낸다는 것.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건 아마도 한 번뿐인 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처한 상황의 무게, 자신에게 주어진 그것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존재하고 끝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삶에는 저렇듯 죽음을 각오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우린 삶의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빛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배달하는 중년 사내의 힘도 후회 없는 노력이며 용기일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건 곧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죽을 힘을 다해보란 말이 채찍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에 힘 내보자는 응원으로 받아들여 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최선은 우리의 꿈을 이끌어줄 것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6-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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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감자 캤다
묵정밭 감자 캤다
약도 안 하고 비료도 안 쓰고
퇴비만 넣었더니
감자가 고르지 않다
그래도 첨 농사치고는 솔찬하다
앞집과 옆집, 또랑 건너 최씨 아재
산 밑 할머니, 주말에나 왔다 가는 이층집 나눠주고
대전 해숙이, 형님네, 명희네
한 봉지씩 보내고 나니
잔챙이만 남았다
괜찮다 잘 짓든 못 짓든
나누는 것도 농사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언제나 앞줄에 섰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잘 살았다
큰놈은 원래 잔챙이가 키운다
-시집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2025) 중에서
24절기 중 태양이 가장 높게 뜨고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에 생산된 하지감자를 맛볼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요즘은 야채나 과일에 ‘제철’이랄 게 없지만 3, 4월에 파종해서 6월에 수확하는 하지 감자. 도시에서 살다가 나이 들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시인.
묵정밭에서 키운 감자를 여기저기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누는 것이 농사’라는 시인의 말에 덩달아 넉넉해집니다. 마음이 모락모락해집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나눠 먹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오래 버려두었던 밭, 오래 버려두었던 마음을 다시 일궈 키워낸 그 감자, 그 마음 잔챙이여도 맛있었을 겁니다. 나눠주고도 남은 잔챙이들. 지지리 못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잔챙이가 큰놈을 키운다는 문장도 자꾸 곱씹게 됩니다. 신정민 시인
2026-06-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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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흰머리파
염색을 하지 않기로 한 지 일곱 달
80 넘은 이웃 할머님도 새까맣게 머리를 물들이는 세상에서
나는 할머니 취급을 받긴 하지만
때로 거리에서 누군가의 눈길을 받을 때가 있어
돌아보면
나처럼 머리가 하얗고
별로 늙지 않은 사내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거야
무한 호감이 느껴지는 눈길로 말이야
그러면 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과 눈을 마주치는 기분이야
머리가 하얗게 된 이후로 비로소
남친이 생길지 모른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나처럼 나이 들었지만
나이가 자연스러운 남자와
다시 두근두근
-시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2025)중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인생의 시기마다 삶이 주는 각별한 의미들이 있을텐데요.
이 시를 읽다보니 착각일지도 모를 시선을 긍정적으로 상상해보는 것도 유쾌하고, 나이듦의 징후를 잘 다루고 있는 것 같아 살풋 기분이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인생의 후반부인 나이듦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리모델링 해보는 것 같아 좋습니다.
사람들은 흰머리가 노화의 상징이자 자기 관리 소홀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검은 머리 염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의 색소인 멜라닌을 만들어내는 세포가 점점 약해져서 흰 머리가 되는 것이라는데요. 멋내기용 염색도 있지만 스트레스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콤플렉스로 작용하기도 하는 흰머리도 자연스러울 때 아름다울 수 있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6-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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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오늘 하루만
딱 오늘 하루만 살자
아침 해에 실눈으로 잠시
간밤의 꿈을 되새기고
오늘 하루만 살자
어제는 이제 그림자가 되었다
돈을 벌고 번 돈을 다 쓰고
빚을 내서 어제의 빚을 갚고
오늘 하루만 살자
일렁이는 가슴을 숨기지 말고
저물녘에 슬픔이 밀려온대도
오늘 하루만 살자
걸으면서 꿈을 다시 꾸고
씨 뿌리듯 노래를 듣고
보리를 한 줌 넣은 쌀을 안치고
흩어진 일을 조금 더 간추려놓고
오늘 하루만 살자
가난과 기도와 투쟁과 함께
오늘 하루만, 더도 말고
떠나야 할 시간 앞에서
아픈 손가락을 한 번 더 만져주고
햇볕에 빨래를 널고 쓰레기를 버리고
오늘 하루도 애를 태우며
오늘 하루 더 땀을 흘리며
-시집 〈뒤로 걷는 길〉 (2025) 중에서
우린 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중이고,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오직 ‘지금 여기’뿐입니다. 세월의 바퀴가 생에 닿는 순간도 한 점이듯,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절박하고도 단단한 시인의 다짐은 새삼 비장해집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보자는 각오이자 주문.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듯 오늘 하루만 살자는 마음일 때 사소한 일상들은 더 소중해지고 특별해질 것입니다. 오지 않은 미래의 목표 대신 오늘 해놔야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 내가 이룰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생활을 살아내는 것. 하루만 버텨보자는 짧은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긍정적인 태도로 삶에 진정한 힘을 불어넣어보자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6-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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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여름은 어떻게 오는가
말갛던 앵두알에 핑 도는 붉은빛과
연두에서 보라나 연분홍빛의 수국 숭어리들과
빨강에서 검정 보라로 익어가는 오디들과
오디를 감춘 뽕잎에 미끄러지는 바람과
시시덕대며 깨금발 치며
굴렁쇠 들고 채집망도 들고
징검다리 건너오는 아이들 같이
더러는 징검돌 하나쯤은 건너뛰어 달려오는
뒤에 강아지도 한 마리 안고 오는 아이도 있고
동생을 업은 언니도 웃으면서
여러 빛깔을 건너 뛰어오는
감나무 이파리를 타고 감꽃 하나씩 던지며
오는 저 초여름 별 좀 봐
두 볼이 바알갛게 상기된 채
숨이 차 말도 못하는
저 발간 오월 볕 좀 봐
시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2025) 중에서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 자연의 정기와 사람의 온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시절이 성큼성큼 오가는 것만 알았지, 이미 온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여름이 어떻게 오고 있는지 시인의 시선을 따라 가봅니다. 바쁘게만 살다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새삼 반성해봅니다.
여름을 불러오는 저 작고 여린 생명들의 에너지를 하나씩 음미해봅니다. 삶의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존재들이 계절이라는 궤도를 이끄는 수레였음을 알겠습니다. 우리가 스쳐 지나친 것들에게 보내는 안부 같기도 합니다. 사람과 자연과 뭇 생명이 교감하는 시원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여름. 당신의 여름은 어떻게 오고 있는지요.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시인의 여름을 따라가며 나의 여름은 어떻게 오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몹시 더울 거라 예상되는 올여름도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5-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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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사인용 식탁
어느 날처럼 침묵을 두르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외로움은 일 인분의 식사가 아니라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
보며 그린 소묘를
또다시 베끼는 일이다
그걸 베끼고 또 베끼다 보면
언젠가는
추상적인 동그라미 몇 개만 남게 될 것이다
식기를 치우면
책상이 되기도 하는
식탁 앞에 앉아
닫힌 창문을 보며 창밖을 그렸다
그릇을 씻고 덜 마른 손에
동그라미가 번져서
무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시집 〈자꾸만 꿈만 꾸자〉 (2025) 중에서
최근 우리나라 1인 가구 수가 8백만이나 되고, 그중 약 70%가 ‘혼밥’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었습니다. ‘혼밥’은 균형 잡힌 식사가 어려워 건강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서 4명의 테이블을 차지하기도 한다 해서 혼밥하는 사람을 반기지 않는 식당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혼자 음식 해 먹기 싫거나 인스턴트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 밥을 같이 먹는 ‘소셜 다이닝’이란 모임도 있다 합니다.
우리에겐 편안히 밥을 먹고 싶은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식사에 공감하면서도 ‘혼밥’이 나를 돌보는 식사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정성스럽게 식탁에 올린 밥을 수고한 자신에게 선물하는 시간, 혼자여서 더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보는 것. 가끔은 고립감을 느끼겠지만 내면에 집중하는 홀로서기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신정민 시인
2026-05-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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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엄마가 있다
여자는 방금 장례식장에서 어린 딸을 고이 보냈다 묵주만 자꾸 굴리면서 입성이고 뭐고 추레해져서 여자는 누군가를 간신히 부른다 딸의 이름은 아니지만, 귀 기울이며 여자는 엄마 엄마를 되풀이한다 바짝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가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엄마를 부른다 딸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엄마 엄마, 입찬소리를 되풀이한다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 붙잡거나 저미거나 어루만지며 사무치던 엄마가 오롯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시집 <습이거나 스페인> (2025) 중에서
슬픔은 어디까지 가서 엄마를 불러오는 걸까요. 딸을 떠나보낸 엄마가 부르는 엄마. 딸의 이름이 아닌 엄마를 부르는 딸. 누군가 간절히 필요할 때 터져 나오는 이름. 엄마의 딸이었고 딸이 있는 엄마가 되어보니 슬픔을 붙잡고 있는 저 울부짖음이 무언지 알 것만 같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비유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어린 딸이 되어버린 엄마.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는 문장이 마음을 사무치게 합니다. 엄마가 되어서도 딸인 엄마.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가는 또 하나의 모정이 시리도록 아픕니다. 딸이 불러주었고 그래서 엄마였던 엄마가 자신을 대신 불러보는 것.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합니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불렀던 엄마, 셀 수 없이 불렀던 엄마를 처음인 듯 불러봅니다.
2026-05-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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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어린이날에
일본에서 크는 어린 손녀를 생각하며
일력(日曆)에다
이렇게 써넣었습니다
-시연이가 행복한 날이길
느낌표를 찍으려다 말고 손녀 이름 곁에
끼움 표시를 하고
몇 자 더 적었습니다
-시연이와 그의 친구들
모두!
내 손녀가 행복하려면
내 손녀와 함께 살아갈
지구 위의
어린이가
전부 다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습니다.
시집 〈스물다섯살을 반성함〉 (2025) 중에서
‘4세 고시’란 말이 있습니다. 만 4세 전후의 아이들이 영어유치원에 가기 위해 치른다는 시험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일상의 행복을 경험하지만 이 시대의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어떤 사랑은 때로 폭력이기도 합니다.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우리의 미래. 어린이의 첫 번째 행복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사랑받을 때 가장 크게 성장한다는 아이들. 시인의 마음처럼 모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일 때 내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행복해서 부모도 행복하고, 부모가 행복해서 아이도 행복한 세상을 바라봅니다. 사랑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아이들. 지구 위의 모든 어린이가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에 제 마음도 보태어봅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이 거리에 더 많아졌음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
2026-05-05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