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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건강할 결심' 도와주는 사회
“여윳돈으로 2억 5000만 원 정도 있습니까? 없으면 운동하셔야죠!”
연초에 만난 한 운동 전문가가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2023년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추정한 1인당 평생 의료비는 2억 4656만 원이며, 가장 의료비 지출이 많은 나이는 78세라는 것이다. 억대 의료비를 부담하지 않으려면 건강할 때 운동을 하라는 조언이었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공단이 발표한 1인당 평생 의료비는 건강보험 급여비와 본인부담금 등을 합산한 금액이었다.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병원비가 약 2억 원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됐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지인도 그 불안을 건드려 운동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는 ‘건강할 결심’을 미룰 수 없는 때라는 생각과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이 든다. 운동할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확보할까? 비용은 어느 정도 선이 적절할까?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25년 건강인식조사 보고서’에서 2000명의 응답자가 본인의 건강 상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요인 1순위로 ‘수입 및 사회적 수준’을 꼽았다.
실제 응답자의 수입에 따라 건강 정도가 달랐다.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22.4%가 건강하다고 답했지만, 800만 원 이상은 절반 넘게 (54.0%) 건강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건강하지 않다는 응답은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25.1%인 반면 800만 원 이상은 7.5%에 불과했다.
식단과 운동 등 건강에 투자하는 금액도 소득별로 달랐다.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월 9만 1000원을 사용했지만, 800만 원 이상은 20만 8000원을 사용했다.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주 5.3시간, 800만 원 이상은 7.9시간이었다.
건강 불평등의 지표는 각종 조사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헬스장 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에 살면, 굳이 시간을 내어 ‘산스장(산속 헬스장)’에 갈 필요 없다. 운동 기구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을 들여 전문가에게 자신의 몸에 맞는 사용법을 코칭 받는 것이 건강에 더 효과적이다. 관절에 부담 없는 수영이나 아쿠아로빅을 하려고해도 공공 체육시설에 자리 잡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사설 수영장을 이용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건강한 먹거리에도 경제적 장벽이 존재한다. 식재료가 건강하고 신선할수록 가격은 더 올라간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 인공 첨가물을 써서 대량으로 생산된 식재료는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거주 지역에 따라 신선한 식재료를 쉽게 구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물론 경제적 이유는 때론 운동을 미루거나 나쁜 식습관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된다. 비교적 건강한 상태라면 맨몸으로 하는 플랭크나 푸쉬업 등으로 근육 운동, 계단 오르기나 달리기로 유산소 운동, 맨손 체조로 유연성 운동을 할 수 있다.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도 되고 비용도 덜 들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인스턴트 음식이나 배달 음식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의지 정도가 동일하다면, 접근성 높은 운동 시설과 운동 전문가의 도움이 있을 때 운동을 지속하기 수월하다. 하루 노동 시간이나 건강 정도, 거주 지역에 따라 운동이나 한 끼 식사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달라진다.
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대목일 것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강 인프라를 구축해 개인들이 의지 박약과 시간 부족이라는 난관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 일 말이다.
부산일보는 올해 초 ‘함께 넘자, 80세 허들’ 기획 보도를 통해 수도권과 부산, 부산 내 생활권역별로 기대수명의 차이를 조명하고 있다. 부산은 전국 평균보다 기대수명이 1년이나 짧았으며, 부산 안에서도 생활권별로 기대수명이 최대 6년 차이가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권과 계층에 따라 수명 격차는 심화하고 있는 것을 수치로 확인했다.
‘수명’에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중첩되어 영향을 끼친다. 운동기구가 놓인 소규모 공원을 곳곳에 만드는 수준의 대응을 넘어 복지, 의료, 인구 고령화, 생활 체육 등 다방면의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과 연령, 생활 행태별로 건강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려면 포괄적인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운동이나 식단 관리 등 건강을 챙기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등의 핑계 대기가 민망할 정도로 지역의 건강 인프라가 향상되길 기대한다.
송지연 스포츠라이프부장 sjy@busan.com
2026-0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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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올해는 '천만 영화' 탄생할까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 영화 ‘국보’(2025)를 뒤늦게서야 관람한 이유다. 이미 멀티 플렉스에선 찾아보기 힘들어진 뒤라 리클라이너 상영관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175분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부키 분장을 한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 연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인간 국보’를 향한 이들의 광기에 가까운 예술 열정은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으로 넘어오기 전 영화관을 찾은 것은 역시 잘한 결정이었다. 물론 생소한 발성과 몸짓의 가부키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영화 ‘패왕별희’(1993)의 경극이나 드라마 ‘정년이’(2024)의 여성 국극이 그러했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 장르를 새롭게 접하는 즐거움이 오히려 더 컸다고 할까.
재일 교포 이상일 감독이 만든 이 영화가 일본 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지난 18일 기준 관객 1370만 명, 흥행 수입 193억 엔을 넘어섰다. 일본 실사 영화 흥행 수입 1위 기록을 이미 지난해에 갈아 치운 바 있다. ‘춤추는 대수사선 더 무비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2003·173억 엔)가 세운 기록을 22년 만에 뛰어넘어 화제가 됐다. 일본 현지에선 가부키 공연을 찾는 관객까지 늘고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파급효과가 크다고 한다.
반면 한국 영화의 최근 성적표는 처참하다. 지난해 1000만 관객 영화는 전무했고, 관객 5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좀비딸’(2025) 단 한 편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후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범죄도시2·3·4’(2022·2023·2024) ‘서울의 봄’(2023) ‘파묘’(2024) 등 ‘천만 영화’는 꾸준히 나왔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양상이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새 영화 ‘가능한 사랑’도 영화관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택해 영화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일부에선 이를 ‘극장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탈한 관객은 회복될 조짐이 없다. OTT 플랫폼이 급성장한 가운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객의 취향은 더욱 더 세분화되고 있다.
그러나 극장을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은 관객 감소에 따른 수익 감소, 투자 위축, 제작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개봉 편수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 관객이 즐길 만한 다양한 콘텐츠 공급 자체가 어려운 구조적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나마 새해엔 구교환·문가영 주연의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2025)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2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만약에 우리’는 전날까지 누적관객수 19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이 영화는 이미 개봉 12일 만에 손익분기점(110만 명)을 넘긴 바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관객 200만 명은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멜로 영화가 200만 관객을 넘긴 것은 2019년 ‘가장 보통의 연애’(292만 4000여 명)가 마지막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두 남녀의 연애와 성장 스토리가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정통 멜로 장르의 부활에 대한 희망마저 읽힌다.
영화계에선 특정 장르에 편중된 투자,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국 영화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과 실험이 이뤄질 수 있는 산업적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된 과감한 시도와 신인 감독들의 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높아진 극장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문화가 있는 날’ 제도를 매주 수요일로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OTT처럼 구독료를 내고 극장에서 일정 횟수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구독형 영화 패스’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는 거장 감독의 신작 개봉이 잇따라 기대를 모은다. 먼저 설 연휴를 앞두고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가 관객과 만난다. ‘곡성’(2016) 이후 10년 만에 신작을 선보이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도 7월 개봉을 예고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도 기대작이다. ‘천만 영화’로 상징되는 ‘대박 영화’에 대한 바람은 우리 영화산업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검증된 감독들의 대작을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관객의 허를 찌르는 의외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갈망도 크다. 소위 말하는 ‘대박’ ‘중박’ 영화가 골고루 나오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독립·예술영화도 더 풍성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6-01-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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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역 의료 공백 논의는 다시 시작된다
해가 바뀌고 희망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역에 반가운 소식을 꼽자면 단연 지역의사제 논의다.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에서 내년 이후 의대 증원분 전체를 지역의사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공의대 신설과 인력 양성 규모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가기로 했단다.
지난해 의대 증원을 빌미 삼아 촉발된 의료계의 태업은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으로 갈수록 더 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의사를 못 구해 동네마다 겨우 돌아가던 24시간 응급실이 문을 닫았고, 응급실 뺑뺑이에 어린 목숨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뒀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일련의 사태는 정주 환경에 대한 지역 주민의 기본적인 믿음을 흔들어 댔다. ‘진짜 여기서 나와 내 가족이 안심하고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국민의 입장에서도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심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균형발전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가는 와중이었다. 그러나 의료계의 태업은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균형발전은 허상에 불과하며, 역시나 수도권을 벗어나 살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라는 조롱만 남겼다.
사실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논의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다들 막연한 거부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도시를 벗어나 도농복합지역으로만 가도 그 거부감보다 의료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지난해 의료계의 태업을 직시하며 여론은 그렇게 싸늘하게 바뀌었다.
김해와 양산은 문을 닫았던 거점 병원 두 곳이 올해 긴 침묵을 깨고 재가동을 준비하자 주민 기대감이 상당하다. 경영난으로 폐업했던 김해중앙병원과 웅상중앙병원이 운영 재개를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 하고 있다. 여전히 복잡한 채무 관계와 의료진 확보가 숙제로 남아 있지만 이들 병원의 폐업 이후 오랫동안 원거리 진료와 응급의료 공백으로 큰 불편을 겪어온 탓에 주민들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경남도가 지난해 시범운영에 들어간 지역의사제도 반년도 되지 않아 긍정적인 시그널이 나온다. 영입이 쉽지 않은 과목에서도 채용이 이뤄지고 있고, 계약 만료 후 수도권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기간만큼은 진료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까닭이다. ‘내일부터 근무 못 해요’ ‘공고를 띄워 새 의사 구해봐요’라는 식의 철부지 수련의들의 처신에 지역 병원들이 더는 휘둘리지 않게 됐다는 게 고무적이다.
그러나 벌써 의료계는 의사 수급 시점과 인원을 놓고 불만을 드러내며 재차 태업 기미를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물리적 대응까지 운운하는 모양이다.
지난해 ‘의대 증원이 어떠한 기준도 없이 이뤄졌고 오류투성이’라며 1년을 드러누운 이들이다. 올해 바뀐 정권에서 추계위를 새로 꾸려 재차 증원 수치를 산출했지만 이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며 어깃장을 부린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의 주장이 비합리적인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연초 쏟아지는 메시지와 이슈의 홍수 사이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지역 의료는 벼랑 끝 위기감 속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이슈의 주무대에서 사라진 의대 증원 논의는 장기간 이어진 피로감에 졸속 처리되거나 여론과 동떨어진 수준의 야합으로 결론 날 가능성 역시 높다.
2024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 당 의료인은 서울이 4.7명인 데 반해 경남은 그 절반 수준인 2.6명에 불과했다. 의대 증원 논의가 수도권 의료기관 종사자 수만 늘리는 방향으로 악수를 두지 않도록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가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교육과 의료는 최소한의 정주 환경을 만드는 기본 조건이다. 그리고 그 기본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이 확장될수록 균형발전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모두 천문학적 비용도 불사하고 ‘사람 붙들기’에 나서고 있다. 기본소득에 집과 일자리까지 지역에 살아만 준다면 뭐든 제공하겠다며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당국의 노력과 시간과 자본도 ‘우리 동네도 응급실 뺑뺑이 발생’ 기사 한 번에 무위로 돌아간다. 일상을 흔들어 정주 환경을 악화시키는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균형발전의 적이다. 병오년의 여론은 더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 눈을 치켜떠야 한다.
2026-01-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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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CES 2026이 국내 제조업에 던진 숙제
‘CES 2026’도 눈부신 첨단 기술의 향연을 풀어냈다. 빅테크들이 제시한 일상으로 깊숙히 들어온 인공지능(AI) 기술에 감탄하는 한편으론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약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제조업과 AI 간에 산업 경계를 넘어 진행되는 결합 시도들이었다.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혁신 기업인이 한국 조선기업의 변화를 언급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번 CES 기조연설을 맡은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한국 HD현대의 디지털 트윈 기반 조선소를 호평한 것이다. 전통 제조업이자 동남권 산업 주축인 조선업이 AI 기술 기반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엔비디아와 여러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사례 가운데 HD현대를 콕 집어 “우리가 협력해 온 디지털 트윈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기술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로 피지컬 AI 사업 청사진을 제시하는 ‘변신’을 선보였다. 키 190cm, 몸무게 90kg의 아틀라스가 56개 관절을 360도 회전하며 부품을 옮기고 자연스럽게 작업대 사이를 오가는 장면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숙련공을 뛰어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대차는 그 시점을 2년 후라고 못박았다.
AI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 시점에 한국 제조업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세계인이 글로벌 빅테크들이 선보이는 첨단 AI 기술에 홀려 있는 사이 그들은 실험실 속 AI를 구현할 현장이자 학습의 최적지로 한국 제조업을 지목한 것이다. 한때 국가 위기의 대상으로 지목되던 우리 제조업이 화려한 부활 기회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 중심인 부산·울산·경남 기업에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CES는 AI 혁신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국내 제조 기업들이 고민해 온 결과물을 풀어놓은 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구, 뷰티, 장난감, 주방기기 등 그동안 AI와 거리가 멀 것 같던 소비재 기업들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됐다. AI 기반 분석 기술을 중심으로 맞춤형 케어 설루션을 선보인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이나 전자 피부(e-skin) 기반 기술로 단순 미용을 넘어 새로운 영역 확장에 나선 한국콜마 같은 기업의 행보는 이른바 ‘B뷰티’ 산업을 꿈꾸는 지역 화장품 업계도 눈여겨봐야할 움직임이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예고된 상황에서 다시 우리 제조업, 특히 부울경은 어떤 준비를 해왔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부울경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CES에도 지역 혁신기업들과 손잡고 별도 전시관을 마련했다. 부산은 전년보다 확대된 30개 전시부스를 갖춘 통합부산관을 갖추고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참여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했다. 부울경의 여러 기업이 올해의 최고혁신상 또는 혁신상을 수상하는 성과도 냈다.
문제는 CES의 화려한 쇼 뒤에 가려진 부울경 제조기업들의 곤궁한 처지다. 국내 대·중견기업은 인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연합이나 새로운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에 AI 전환은 ‘필요는 알지만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간혹 운이 좋아 대기업 낙점을 받은 경우에만 AI 전환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참에 몇몇 기업 지원기관과 단체에 지역 기업 AI 전환 상황을 문의했더니 개별 기업의 AI 도입 여부는 통계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국내 중소기업의 스마트 공장 도입은 적극적인 정부 지원으로 가속화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고도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경남과 부산은 스마트 공장 구축이 빠른 편이지만 AI를 실행할 ‘고도화 단계’에 이른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와 전문 인력,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만이 가진 자산인 다양한 제조 기업 현장을 찾아 먼저 다가서는 이때, 산업 현장에서의 부족함을 채울 주체는 국가 말고는 없어 보인다. 제조업 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제조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기업이 확보한 AI 노하우가 중소기업으로 흐르는 통로를 내는 일들이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일상과 전 영역의 산업 현장에서 AI 기술을 얼마나 빨리 수용하고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결국 현장의 작은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현실이 된다.
2026-01-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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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치적 불쾌감에 얼룩진 한일해저터널
지난해는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조차 버겁게 느껴질 만큼 격랑의 시간이었다. 정치판은 더욱 그랬다. 불법 계엄의 후유증과 어수선함으로 한 해를 시작해 1년 내내 대통령 탄핵 등으로 시끌벅적하더니, 연말에는 통일교 의혹이 다시 정국을 흔들었다.
연말에 만난 한 국회의원은 평소 즐겨 마시던 이른바 ‘보리콜라’조차 마시려니 눈치가 보여 손이 가질 않는다고 했다. 제조사가 통일교 산하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한 정치적 오해를 살까 두렵다는 것. 물론 농(弄)으로 한 말이었지만, 마냥 농으로만 웃어넘기기엔 이 시절이 하수상하다. 통일교로부터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은 것도 아닌데(일단 다들 아니라고 주장하시니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그렇다고 치고), 그저 통일교 행사에 얼굴을 내민 것만으로도 뭇매를 맞는 세상이다. 그러니 통일교 기업이 만든 음료 사랑을 숨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게 ‘통일교’는 낙인이 됐고, 해가 바뀌었어도 그 ‘주홍글씨’는 여전히 선명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보리콜라’를 양껏 마시지 못한다는 모 의원의 사정도 딱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공포가 개인의 기호를 넘어 지역의 백년대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입을 막은 그 음료처럼, 부산의 미래를 논할 때 더 이상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가 생겼다. 바로 통일교단이 그토록 원한다는 ‘한일해저터널’이다.
통일교가 이슈의 중심에 서기 전에도 한일해저터널은 ‘뜨거운 감자’였다. 부산과 규슈를 잇는 이 거대한 구상은 부산 선거판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저터널이 필요한가’라는 논의는 없고 ‘누가 해저터널 이야기를 꺼냈는가’라는 질문만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누가 통일교와 연관되어 있는가’라는 사상 검증과 다르지 않다. 정치적 불쾌감이 정책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셈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전제하자면, 나는 통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한일해저터널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선 바다 건너 부산과 근접한 일본 규슈와 손잡고 새로운 경제권역을 창출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는 지난 20년간 ‘부산-후쿠오카 포럼’을 지켜온 두 도시의 학계·경제계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물론 한일해저터널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일해저터널은 부산과 규슈가 만들 새로운 경제권역의 혈맥을 잇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터널이 뚫리면 부산의 부품·조선기자재 산업은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닿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직·서비스직·연구개발직 등의 일자리도 늘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단기 부산 방문이 늘면서 의료, 뷰티 산업의 시장이 확대될 수도 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핵심은 ‘부산 패싱’이다. 일본의 자본과 사람이 부산을 건너뛰고 서울로 직행할 것이라는 우려다. 물류가 부산항을 거치지 않고 철도로 빠져나가고, 부산 시민들은 접근성이 좋아진 일본에서의 소비가 잦아지면서 부산 상권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패싱’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 후쿠오카나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울은 지척이다. 부산과 비교해 비행시간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울행 항공편이 더 많아 오히려 부산보다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해저터널 유무와 상관없이, 서울로 갈 사람은 이미 가고 있다. 그나마 육로(정확하게는 육로가 아니라 바다 밑길이지만)가 생기면 오히려 부산이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터널 그 자체가 아니라, 터널이 뚫렸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리의 패배주의다. 더욱 답답한 점은 대개
지난해는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조차 버겁게 느껴질 만큼 격랑의 시간이었다. 정치판은 더욱 그랬다. 불법 계엄의 후유증과 어수선함으로 한 해를 시작해 1년 내내 대통령 탄핵 등으로 시끌벅적하더니, 연말에는 통일교 의혹이 다시 정국을 흔들었다.
연말에 만난 한 국회의원은 평소 즐겨 마시던 이른바 ‘보리콜라’조차 마시려니 눈치가 보여 손이 가질 않는다고 했다. 제조사가 통일교 산하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한 정치적 오해를 살까 두렵다는 것. 물론 농(弄)으로 한 말이었지만, 마냥 농으로만 웃어넘기기엔 이 시절이 하수상하다. 통일교로부터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은 것도 아닌데(일단 다들 아니라고 주장하시니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그렇다고 치고), 그저 통일교 행사에 얼굴을 내민 것만으로도 뭇매를 맞는 세상이다. 그러니 통일교 기업이 만든 음료 사랑을 숨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게 ‘통일교’는 낙인이 됐고, 해가 바뀌었어도 그 ‘주홍글씨’는 여전히 선명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보리콜라’를 양껏 마시지 못한다는 모 의원의 사정도 딱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공포가 개인의 기호를 넘어 지역의 백년대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입을 막은 그 음료처럼, 부산의 미래를 논할 때 더 이상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가 생겼다. 바로 통일교단이 그토록 원한다는 ‘한일해저터널’이다.
통일교가 이슈의 중심에 서기 전에도 한일해저터널은 ‘뜨거운 감자’였다. 부산과 규슈를 잇는 이 거대한 구상은 부산 선거판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저터널이 필요한가’라는 논의는 없고 ‘누가 해저터널 이야기를 꺼냈는가’라는 질문만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누가 통일교와 연관되어 있는가’라는 사상 검증과 다르지 않다. 정치적 불쾌감이 정책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셈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전제하자면, 나는 통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한일해저터널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선 바다 건너 부산과 근접한 일본 규슈와 손잡고 새로운 경제권역을 창출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는 지난 20년간 ‘부산-후쿠오카 포럼’을 지켜온 두 도시의 학계·경제계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물론 한일해저터널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일해저터널은 부산과 규슈가 만들 새로운 경제권역의 혈맥을 잇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터널이 뚫리면 부산의 부품·조선기자재 산업은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닿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직·서비스직·연구개발직 등의 일자리도 늘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단기 부산 방문이 늘면서 의료, 뷰티 산업의 시장이 확대될 수도 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핵심은 ‘부산 패싱’이다. 일본의 자본과 사람이 부산을 건너뛰고 서울로 직행할 것이라는 우려다. 물류가 부산항을 거치지 않고 철도로 빠져나가고, 부산 시민들은 접근성이 좋아진 일본에서의 소비가 잦아지면서 부산 상권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패싱’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 후쿠오카나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울은 지척이다. 부산과 비교해 비행시간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울행 항공편이 더 많아 오히려 부산보다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해저터널 유무와 상관없이, 서울로 갈 사람은 이미 가고 있다. 그나마 육로(정확하게는 육로가 아니라 바다 밑길이지만)가 생기면 오히려 부산이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터널 그 자체가 아니라, 터널이 뚫렸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리의 패배주의다. 더욱 답답한 점은 대개 그것이 부산이 아닌 중앙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언제 연결될지도 모를 ‘유라시아 교통망의 종착지’라는 개념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다. 대륙의 종착지 역시 그 이후로 뻗어나갈 수 없다면 그저 변방의 막다른 골목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종착지’가 아니라 ‘허브’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성과가 없지 않았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있다. 부산은 지금 북극항로의 기점을 꿈꾸고, ‘글로벌 허브 도시’를 지향한다. 그러면서 고작 해저터널 하나에 경쟁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의 선박이 일본 화물까지 가득 싣고 북극을 지나려면, 오히려 해저터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글이 반드시 터널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부산에는 반전이 필요하고, 혹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카드를 단순히 ‘누가 추진했느냐’라는 꼬리표 때문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폐기해선 안 된다는 거다. ‘실사구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비용과 경제적 기대 효과에 대해,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변화한 현재와 미래의 비전에 맞춰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2026-01-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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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왜 면박을 주면 안 되나
지난 23일 해양수산부 업무보고를 끝으로 3주에 걸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가 마무리됐다.
역대 정부 최초로 생중계가 됐던 부처 업무보고는 분명 이전과 달랐다. 국민 앞에 공개됐고, 생중계됐으며, 대통령은 장관과 공공기관장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업무보고는 더 이상 책상 위 문서가 아니라, 국민이 지켜보는 현장이 됐다.
그동안은 무엇을 결정하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국민은 알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년 업무보고는 최소한 권력이 숨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업무보고 현장 벽면에 붙어 있는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라는 문구는 이번 정부의 소통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았다.
공개와 질문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개가 곧 개혁은 아니라는 점이다. 카메라가 켜졌다고 해서 국정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뒤에 숨은 사람들이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장면은 대통령의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기관장들, 원론적 답변으로 시간을 끄는 고위 관료들, 책임 대신 ‘검토 중’이라는 말로 빠져나가는 행태였다.
국정의 병목은 대부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정책 의지는 위에 있지만, 실행은 아래에서 멈춘다. 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 자리는 차지하되 결과에는 무관심한 기관장들. 생중계가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순간, 그동안의 무능과 안일함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업무보고는 기관장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춰냈다.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는 ‘면박 주기’ ‘공직사회 압박’ ‘전 정부 인사 찍어내기’ 등 여러 이름으로 이번 업무보고에 비판을 쏟아냈다.
물어보자. 면박을 주면 왜 안 되나. 공직사회에 압박을 주면 왜 안 되나.
민간 기업에서는 어찌 보면 그 정도의 면박은 허다하다. 일을 못 하면 그보다도 더한 면박을 넘어 질책을 받는다. 직장인들은 그걸 묵묵히 감수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가고, 그런 효율성을 바탕으로 기업은 발전한다.
공직사회를 예외로 두면 안 된다. 그냥 대충 월급이나 받고 시간을 때우자고 장관이나 공공기관장을 해선 안 된다. 기관장 정도 하려면 전문성을 갖추고 어떠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선거 때 캠프에 있었다는 이유로, 고위층에 줄을 댔다는 이유 등으로 얼떨결에 된 ‘낙하산 기관장’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으레 대통령 업무보고 때는 밑에 직원들이 만들어준 보고서를 보면서 읽어 나가고, 대통령은 듣기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풍경. 이런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약간의 격노와 공격적인 질문은 다소 낯선 광경일 수 있지만, 행정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공직사회의 긴장도를 높이는 건 필수불가결하다.
대통령실에서 기획된 생중계 신년 업무보고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공직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이상, 이젠 이번 정부의 공직사회 개혁은 하나의 당면 과제가 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생중계하고, 아무리 강한 질책을 해도 현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해수부를 마지막으로 신년 업무보고는 끝났지만, 시즌2가 예고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6개월 뒤 새로운 방식으로 업무보고를 해보자고 제안함으로써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통해 소통을 강화해야 공직사회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평가가 있다”며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했지만, 대통령의 자성과 준비도 더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정책이 된다. 그래서 즉흥은 위험하고, 준비되지 않은 발언은 혼란을 낳는다. ‘환단고기’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촉법 소년 연령 하향 검토’ 등 평소 잘 알고 자신 있는 분야라고 해서 즉흥적으로 지시를 쏟아내며 국정에 혼선을 초래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언어가 반드시 절제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괜히 지엽적인 것이 논란으로 부각되면서 꼬투리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강한 리더십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한 번 던진 방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이번 업무보고가 ‘소통의 출발점’으로 기록될지, ‘정치적 장면’으로 소비될지는 대통령의 실행 의지에 달렸다. 시즌1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이에 자만한 채 시즌1을 답습하는 시즌2를 국민은 원치 않는다.
시즌2에서는 대통령이든 공직사회든, 좀 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한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cornie@busan.com
2025-12-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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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어서오세요, 해양수산부
내일이다. 해양수산부가 23일 개청식을 열고 ‘부산 시대’를 시작한다. 해수부는 1876년 부산항이 열린 지 150주년이자, 개청 30주년인 2026년의 첫 태양을 부산에서 맞이한다.
해수부 부산청사 개청을 앞둔 지난 주말 저녁, 부산 동구 산복도로의 야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산복도로에서는 해양수산부 부산청사의 간판이 환하게 켜진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해수부 청사 옆으로는 부산 북항과 부산역, 부산항대교가 펼쳐졌다. 이어 부산을 지켜온 부산 앞바다가, 그리고 하늘의 별빛이 땅에 내려온 듯한 산복도로 주택가의 불빛이 켜져 있었다. 산복도로는 150년 전 부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듯 했다.
부산은 지난 2일 ‘대한민국 해양수도’가 됐다.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1876년 개항 이후 대한민국을 세계로 잇는 관문이 된 부산이 149년 만에 해양수도로서의 지위를 얻은 순간이었다.
해수부 이전은 부산에 긍정적인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800명이 넘는 해수부 직원들이 부산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청사 인근 상권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임대 팻말이 나부끼던 상가에는 한곳 한곳 불이 켜지고 있다. 청사 인근 한 단골식당 주인은 “계절은 겨울인데, 마음은 봄이다”며 “해수부 손님들에게 뜨끈하고 맛있는 밥으로 대접할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해수부 부산 이전이 일으킨 파동은 더 커져야 한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수도권에 집중된 해양·수산·해운물류 산업의 중추를 ‘현장’으로 옮기는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이다. 다양한 분야의 현장 목소리가 해수부의 정책에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것이다.
정책과 현장은 결합돼야 시너지가 발생한다. 이미 세계 주요 해양 강국들은 정책 결정과 현장이 결합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들 국가의 체제는 우연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얻은 결과물이다. 덴마크는 수도인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블루 덴마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덴마크는 해운, 항만, 조선, 해양 기자재, 해양 금융 등 모든 해양 산업군을 묶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코펜하겐에는 해양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와 세계 최대 해운 선사인 머스크의 본사가 한 곳에 있다. 해운 분야 금융 기관도 함께 한다.
프랑스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 마르세유는 지중해의 관문 항만으로, 프랑스 대표 해운사의 본사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정책과 금융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역시 항만, 해운사, 해운 금융, 해사 서비스를 한데 모아 도시의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 도시의 항만은 단순한 하역 공간이 아니라 산업과 도시를 움직이는 엔진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부산은 이들 나라를 뛰어넘은 항구 도시다. 부산항은 이미 환적화물 처리량 세계 2위, 컨테이너 처리량 세계 7위, 항만 경쟁력 순위 4위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 해운사의 본사와 공공기관, 선박 금융기관은 서울과 세종에 있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오고 일부 해운사가 부산으로 본사를 옮겼지만, 여전히 주요 해운 기능은 서울이 중심이다.
해수부가 부산에 온 만큼 부산은 이제 ‘정책 실행 도시’에서 ‘정책 설계 도시’로서 진화해야 한다. 해수부의 해운·항만·물류·수산 정책이 여러 공공기관, 해양금융 기관·기업에 의해 직접 집행되는 체제를 부산에 정착시켜야 한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서의 기능을 갖추려면, ‘모든 해운 관련 의사결정은 부산에서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덴마크의 ‘블루 덴마크’를 뛰어넘는 ‘블루 부산’ 프로젝트가 추진돼야 한다.
‘블루 부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1위 해운기업인 HMM을 비롯한 대형 업체들의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 국내 1위부터 10위 해운기업 중 부산에 본사를 둔 업체는 단 두 곳뿐이다. 해운사의 이전은 선박금융, 해상보험, 해사법률 등 수많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해운 강국인 덴마크와 싱가포르 등은 모두 해운사의 집적화에 성공했다.
대형 해운사들의 부산 이전은 곧 해양 전문 인재 양성의 근간이 된다. 부산은 부산대, 국립부경대, 국립한국해양대 등 인재 양성을 위한 좋은 터전을 갖추고 있다. 지역 인재들이 해운사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이들이 부산의 해양 비즈니스를 키우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해양금융도 ‘블루 부산’에 날개를 달아줄 분야다. 매년 글로벌 선박 금융 거래액이 수백조 원에 이른다. 해양금융은 세계 금융중심지를 노리는 부산이 도전해야 할 미래 먹거리다.
10년 뒤, 부산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한다. 부산항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길 기대한다.
김한수 편집부장 hangang@busan.com
2025-12-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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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논란
정쟁이 끊이질 않는 정치권에 최근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이 헌정질서를 위협한 중대 범죄인 만큼 기존 사법 시스템만으로는 국민적 의혹과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내란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에 반발하는 진영과 법조계 일각은 “사법부를 특정 사건에 맞춰 재편하는 위험한 선례”라며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당은 사법 불신 해소와 신속한 정의를 내세운다. 내란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전복하려 한 범죄로 현재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전담재판부를 두면 내란 관련 사건을 한 재판부가 집중 심리하고, 쟁점 정리와 증거 판단을 일관되게 하며 불필요한 지연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민의힘 등 반대 진영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의 독립성과 법관의 자연적 배당 원칙은 사법 신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파급력이 극도로 큰 사건을 위한 별도의 재판부를 설치하는 순간, 사법부는 정치적 요구에 따라 구조를 바꾸는 기관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내란이라는 단어 자체가 강한 정치성을 띠는 만큼, 전담재판부는 출범과 동시에 공정성 논란과 결과 예단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세운다.
최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드러났다. 여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 도입에 대해 전국 법관 대표들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사법개혁 논의에 법관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 다수는 “사건의 중대성만으로 재판부 신설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미 현행 사법체계 안에는 합의부, 전문재판부, 대법원 전원합의체 등 중대하고 복잡한 사건을 다룰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최근 열린 대법원 공청회에서도 이런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1일 대법원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났는데 내란 재판이 한 사건도 선고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별법이) 처분적 법률(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라고 곧바로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배당에 관해서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 특별법 제정의 계기를 없애는 것이 왕도”라고 말했다.
내란 전담재판부가 예외적으로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낸 참석자들도 있었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내란 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사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정 위원장은 “특정 정치적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입맛에 맞는 특정 성향의 판사들로 구성된 전담 재판부를 만든다면, 그 재판부에서 내려진 판결을 과연 국민들이 공정한 법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패소한 쪽에서는 정치적 판결이라면서 불복할 것”이라며 “사법 불신을 넘어서 국론 분열의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이라 지적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만약에 내가 재판 당사자가 됐을 때, 사건 배당에 어떤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오는 어떤 특정 판사가 담당한다면 그것에 승복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란 전담재판부 안은) 구체적인 시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현 재판부에 대한 압박용, 경고용 이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내란 재판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과 정해진 절차에 사법이 이루어진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제도는 한 번 정치의 언어에 포획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 이번엔 내란 사건이지만, 다음엔 또 다른 ‘중대 사건’에 대해 같은 논리로 특별한 재판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선례는 결국 사법의 일반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정의는 속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절차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내란전담재판부 논의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당위가 아니라 헌법적 기준에서, 지금의 욕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사법 신뢰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2025-12-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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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 아이는 학폭 피해자다!
오늘 칼럼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연팔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의도치 않게 지난 2년여 동안 소수자(?)의 삶을 경험했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의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폭 피해를 당했고, 결국 2학년이 시작되며 자퇴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개근할 정도로 학교를 좋아했던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하며 결석이 잦아졌다. 억지로 교복을 입혀 학교에 보내려던 순간, 아이는 과호흡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아이는 어렵게 말을 시작했다. 학교에 심하게 놀리며 몸을 부딪치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가해 학생들은 모두 상위권 성적으로, 공부 면에서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기대주였다. 담임은 가해 학생의 자술서를 받고 적당히 화해시키는 걸로 사건을 끝냈다. 학교와 가해 학생에 대한 분노가 컸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아무것도 못했다. 학폭위를 열고자 했지만 “빨리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아이의 호소에, 피해자인 우리가 되레 도망치듯 그 학교를 나왔다.
병원에서 받은 아이의 병명은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환청·환시) 조현병’ ‘대인기피증’이었다. 그 후 1년간 아이는 스스로를 방에 가두고 자책과 자해를 반복했다. 힘든 시간을 견딘 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청소년의 삶은 쉽지 않았다. 다수, 주류가 아닌 소수자로 산다는 건 또래 친구가 받는 복지와 정보에서 외면돼 뭐든 혼자 해결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10대 후반 모든 청소년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평일 낮 학교가 아닌 곳에 있는 아이는 자주 의뭉스러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일반 고3들은 지역 교육청, 학력평가원의 모의고사로 수능 전까지 성적을 점검하고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담임과 수시·정시 전략을 준비하지만, 아이는 그 모든 것에서 제외된다. 당장 학교 밖 청소년은 모의고사 응시조차 고난이다. 학평 모의고사만 응시할 수 있고, 그마저 남은 자리를 찾기 위해 학원마다 전화를 돌려야 한다. 어렵게 자리를 찾으면 마감될까 싶어 당장 돈을 들고 뛰어야 했다.
물론 모의고사도 수능시험도 모두 비용을 내야 한다. 또래의 친구들이 무료로 급식을 먹고 예고된 날에 모의고사를 응시하는 게 당연하다지만, 학교 밖 아이에겐 당연한 게 없다. 청소년 센터에 등록하면 식사 쿠폰을 받을 수 있다기에 찾아가니 예산 부족으로 이번 달은 식사 지원이 힘들다는 답을 들었다. 예산 문제로 학교가 급식을 주지 않았다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현역 지원자의 특권이라고 불리는 수시 모집은 생기부가 없는 우리 아이에겐 논술 빼고는 가능한 선택이 없었다. 100점의 검정고시 성적표를 받았지만, 아이가 희망하는 서울의 대학들엔 쓸모없었다. 자퇴 소식을 들은 주변에선 “의대에 가기 위한 전략이네”라며 속 모르는 소리로 마음을 찔렀고, 그야말로 ‘할많하않’이었다. 코로나로 중학교 수학여행이 취소됐고, 자퇴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조차 가지 못한 아이에게 “수학여행은 어디로 갔냐”라는 질문들이 아프게 꽂혔다.
차별과 편견으로 힘든 삶을 산 소수자에 비해 배부른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 나조차 생각하지 못했고, 대부분 자신은 그저 보통의 다수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장소 어떤 상황이 닥치면 순식간에 외로운 약자가 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모른 체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지난 겨울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친구가 갑자기 다리를 다쳐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약자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집회를 연 친구였는데, 윤석열 탄핵 집회 후 이어진 거리 행진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다른 이의 보폭을 맞출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때 처음으로 가쁜 숨을 쉬며 자신처럼 낙오된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배리어프리 관점에서 장애인도, 몸이 아픈 사람도 시위에 참여하는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몸소 경험한 것이다.
언론사를 비롯해 정부 기관들이 젠더데스크, 인권데스크, 다양성데스크를 운영하는 것도 소수자가 느낄 수 있는 차별을 지적하고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데 노력하겠다는 의미이다. 부산일보는 국내 언론사로선 두 번째로 젠더데스크를 설치해 지난 5년간 운영했고, 현재 여러 기자가 참여하는 젠더위원회로 확대 운영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 윤리와 인권, 다양성 존중은 기자와 ‘기레기’를 구분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지 않을까 싶다.
2025-12-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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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2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핸드폰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목적이 있었다. LAFC 손흥민의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다시 보는 것.
2025 MLS컵 PO 서부 준결승 경기에서 손흥민의 동점 프리킥 골은 너무나 마법 같았다. 요즘 표현대로 도파민이 제대로 터지는 장면이었다. 공식 중계 쇼츠부터 시작해 ‘야유를 경악으로 바꾼 손흥민골’ ‘동료들 찐 반응’ ‘키퍼 시점 기적의 골’ 등 골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유튜브 쇼츠 수십 개를 반복해서 보다가, 어느 순간 알고리즘을 타고 뉴욕 추수감사절 ‘케데헌’ 퍼레이드에 누리호 4호 발사, 고 이순재 배우 별세 등을 거쳐 토트넘 팬들 반응, 청룡영화제 시상식 퍼포먼스 관련 영상까지 보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동영상을 여러 개 봤을 뿐인데, 시간이 ‘순삭(순간 삭제)’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핸드폰을 들었는지 애초 목적이 언뜻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뇌 썩음, 브레인 랏(brain rot) 현상이었다. 브레인 랏은 온라인 콘텐츠의 과도한 소비로 정신이나 지적 상태의 악화를 일컫는 말로, 2024년 옥스퍼드가 선정한 그해의 단어이기도 했다.
올해는 AI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콘텐츠의 ‘도파민 개미지옥’은 더욱 견고해졌다. AI 기술을 이용해 영상 제작이 이전보다 수월해지면서 디지털 콘텐츠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제작 속도도 빨라졌다.
영상 콘텐츠에는 영상 관련 제품의 구매 링크가 자동으로 노출되면서 온라인 쇼핑과 영상 사이를 무한반복으로 오갈 수 있는 환경도 구축되었다. 이제 물건을 사기 위해 검색이라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올 연초 발표한 ‘2025 콘텐츠 소비 전망’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당 평균 유튜브 동영상 콘텐츠 소비 시간은 6.88시간으로 전년(6.54시간)보다 늘 것으로 전망됐다. 일활성이용자수(DAU)와 사용 시간을 분석한 한 통계에서는 한국인 5명 중 3명이 하루 2시간 넘게 쇼츠 등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하며, 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인 ‘릴스’는 1인당 하루 평균 50분을 사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과도한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의한 ‘도파민 중독’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최근 AI 기술의 발달은 그 폐해의 속도와 규모를 짐작하게 어렵게 만든다. 이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를 술이나 담배와 비슷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소한 아동과 청소년은 보호하자는 조치들이다.
호주에서는 이번 달 세계에서 처음으로 16세 미만은 부모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SNS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이 시행된다. 이 법의 특징은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것으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엑스(X)·유튜브 등 SNS 및 스트리밍 플랫폼은 16세 미만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하고, 위반 시 최대 약 5000만 호주 달러(약 48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덴마크 정부는 15살 미만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해 의회 상정을 앞두고 있고, 유럽의회도 지난달 말 13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 차단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술과 담배가 과하면 어른에게도 좋을 리 없듯이, 디지털 콘텐츠에 중독된 성인들의 부작용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극단적인 정치 편향성이다. 편향적 디지털 콘텐츠에 과몰입한 나머지 ‘내가 옳다’는 신념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우월감의 세계에 빠져 상식에 대한 감각마저 마비된 이들을 인터넷 댓글 창에서 수시로 목격한다.
역으로 디지털 콘텐츠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한다. 모든 앱의 푸시 알림을 끈다거나 스마트폰과 특정 어플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식이다.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을 피하기 위해 시청 기록을 주기적으로 삭제하는 방법도 있다.
달력을 한 장 남겨 놓은 12월. 2025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본다. 힘겹게 버틴 날들 속에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각종 디지털 콘텐츠는 일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맥주 한 잔으로 시작했다가 소맥 폭탄주 십여 잔을 들이킨 날처럼, 잠깐만 봐야지 했다가 어느새 정신을 놓은 날도 부지기수다. 정보 습득과 여가 활용 그리고 제어하기 어려운 몰입 사이를 오가며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 중인 셈이다. 폭식과 술을 줄이고, 운동과 식단 관리를 하겠다는 내년 새해 다짐에 디지털 디톡스도 추가해 본다.
2025-11-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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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해머' '김 부장' 그리고 '태풍' 속 우리
무용수가 객석으로 난입한다. 의자 위까지 점령한 29명의 다국적 무용수들은 관객들에게 스마트폰을 켜고 자신을 촬영하라며 포즈를 취해 준다. 합법적으로 공연을 촬영할 수 있게 된 관객들이 신이 나서 동영상을 찍고 ‘셀카’를 찍어 대던 것도 잠시. 자아도취에 빠진 무용수들은 다른 사람 말고 오로지 자신만 찍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광기 어린 그들의 몸짓에 넋이 나갈 때쯤 1막의 무대는 정신 없는 카메라 플래시 조명과 함께 막을 내린다.
지난 21일과 22일 부산문화회관과 부산일보 주최로 열린 무용극 ‘해머’ 공연은 무엇이 진실이고,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은 그리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해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젊은 관광객 1명이 스마트폰을 꺼내 친구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모두들 카메라와 상관 없이 행동하는 듯 보였지만 안무가의 눈에 비친 모습은 달랐다. 무리의 머릿속엔 온통 카메라 생각밖에 없다는 게 에크만의 눈엔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SNS에 전시할 멋진 나의 모습과 일상을 포착하는 데 혈안이 된 현대인들은 점점 더 ‘나, 나, 나’를 외친다. 다른 사람의 처지나 의견, 어려움, 감정 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근사해 보일까가 가장 큰 관심사다. 이기와 기만, 가식이 지배하는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묵직한 한 방. ‘해머’는 진짜를 향한 여정, 진짜 나를 찾기 위한 망치질을 의미한다.
요즘 화제가 되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외우기도 힘들 만큼 긴 제목은 그 자체가 허울이다.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부장쯤 되면 사는 게 만만하고 여유로울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인생 내리막길에 접어든 50대 김낙수의 삶은 찌질하고 비루하고 짠하기만 하다. 그나마 그런 그의 노고를 이해해 주고, 처지를 헤아려 주는 가족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퇴직금을 상가 사기로 날릴 처지가 된 그에게 찾아온 것은 공황 증상. 그러나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의사에게 그는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한다며 되레 화를 내며 현실을 부정하기 바쁘다.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중에도 일부는 반감을 드러낸다. 애초에 상위 5% 인생인데 힘겹다는 서사를 씌우는 게 억지스럽다는 반응도 있고, 대부분의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날로 치열해지는 취업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들 입장에선 ‘김 부장 이야기’가 누릴 것 다 누린 기성세대의 넋두리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 주고자 한 진짜 현실은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 발버둥의 연속이라는 점일 것이다.
현실이 힘들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가 커진다고 했던가. 불황과 단짝이라는 복고 트렌드가 최근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 상사맨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태풍상사’의 인기가 그 예다. 이에 앞서 막을 내린 드라마 ‘백번의 추억’은 198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바 있다. 그때 그 시절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잠시라도 가슴 따뜻해지는 이유는 ‘그래도 사람 사이의 정이 살아 있었구나’ 느낄 수 있는 장면들 덕분이다. ‘태풍상사’ 속 남자 주인공 ‘태풍’의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 ‘미선’의 집에 얹혀 살며 초등학생 막내 ‘범이’를 자식처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어느새 한 지붕 아래 한 가족이 돼 버린 그들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다시 ‘해머’로 돌아가 보자. 카메라에 비친 근사한 나의 모습에 도취해 성형과 꾸밈에 중독된 현대인을 비꼰 이 무용극은 관객들에게 쓴웃음을 남겼다. 객석까지 쳐들어와 나를 봐 달라고 소리치는 무용수들의 과장된 몸짓에 몸서리치다가 가족과 사람의 중요성을 말하는 주말 드라마에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다. 스마트폰에 고정된 우리의 시선이 화면 속 반짝이는 나와 누군가가 아니라 내 주변의 너, 그리고 현실에 발을 디딘 동료와 이웃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셀카’를 찍던 렌즈의 방향을 공동체로 돌려 보는 건 어떨까. 가령 본보가 매주 금요일 연재 중인 ‘사랑의 징검다리’ QR코드에 카메라를 갖다 대 보자. 번거롭더라도 댓글 한 줄만 남기면, 나를 대신해 부산은행이 1000원을 기부해 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연말이 다가온다. 태풍 같은 험난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허세’라는 보호막으로 위장하고 치열하게 달려 왔을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이제는 진짜 나 그리고 우리와 마주할 때다.
2025-11-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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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죽음의 외주화, 수사의 외주화
6일 오후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에서 63m 높이의 낡은 보일러 타워가 무너졌다. 타워 내부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9명이 순식간에 잔해 속으로 사라졌다.
무분별한 하청 남발이 불러온 참담한 사고다. 노후 산단이 많은 울산에서는 위험한 해체 작업은 곧장 하청 업체로 향하는 게 하나의 관행이 됐다. 일감을 따낸 업체는 더 영세한 업체에 그 일을 던진다. 결국 ‘죽음마저 외주 줬다’라는 게 현장 기자의 보고다.
위험한 작업이라면 감리를 둬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힘든 작업이라면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게 근로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그러나 이 예의와 상식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게 하청의 악순환이다. 위험천만한 일터에 헐값으로 밀어 넣을 일용직이 존재하는 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근로 환경을 개선할 날은 오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 희생된 이들은 하도급 업체 직원 1명과 일용직 8명이다. 해체 작업에 능한 기능공은 없었다. 인력사무소 소개로 출근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젊은 가장이 가장 먼저 시신으로 발견됐다. 힘들게 구직에 성공해 출근할 날만 기다리던 이다. 정식 출근 전 몇 푼이라도 더 벌 요량으로 그가 찾아간 새벽 알바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발파 현장이었다.
울산에서 보일러 타워의 잔해에 파묻힌 매몰자를 구해낸다고 정신없는 사이 서울에서는 검란의 불길이 번졌다. 대선 정국을 뒤흔든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검찰 수뇌부가 포기했다. 내부 반발은 당연지사다.
이번 항소 포기로 허공에 뜬 범죄수익만 7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범죄 수익으로 추징하는 길이 사실상 막혔다. 성남시는 민간사업자를 가장한 도둑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민사 소송을 벌여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형사 재판이 저 지경이 됐는데 민사라고 순탄하게 흘러갈까. 당장 자신의 몫 500억 원을 보전 당한 민간업자 남욱 씨는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에서는 절박한 가장들이 일당 35만 원짜리 기능공 대신 15만 원짜리 ‘핫바리’가 되어 돌아올 수 없는 철골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면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은 송사만 마치고 나오면 돈방석에 앉을 판이다.
법무부 장관은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보고에 수 차례 ‘신중한 판단’을 권했다. 정권 초기 그 말의 무게를 장관씩이나 되는 인사가 과연 몰랐을까. 붕괴 사고의 발주처가 동서발전이듯 검란의 발주처는 명백히 대통령실이다.
발주처와 원청이 불화를 겪는 사이 하청이 난립하며 대목을 맞았다. 온갖 타이틀이 붙은 시국 사건은 줄줄이 특검의 몫이다. 특검이라는 단어가 공정함과 준엄함을 상징하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 이 특검이 저 특검인지, 저 특검이 이 특검인지 헛갈리는 사이 이력 모를 율사가 나타나 수사권의 칼을 쥐고 망나니 춤을 춘다.
급기야 부도 위기의 하청 업체인 공수처는 후발 업체인 해병대 특검으로부터 외압 의혹까지 제기당하는 굴욕도 맛봤다. 양산된 특검을 정권의 손쉬운 수사 하청이라며 다들 혀를 차는 이유다.
전인미답의 코스피 4000시대를 열고 한미 무역협상에서 핵추진 잠수함까지 얻어낸 여권이다. 정치적 호재는 봄바람처럼 이어진다.
부산에서도 바닥을 치던 여당의 지지세는 해양수산부 이전 급물살에 꿈틀댄다.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자리마다 ‘내년 지방 선거는 그야말로 다이내믹’이라며 다들 장자방 행세를 하기 바쁘다. 본청에 이어 산하기관과 HMM의 구체적인 이전안까지 꺼내 놓는다면 지금의 기세는 우스울 정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화한 검란을 무사히 수습한다는 전제조건 하의 이야기다. 잘 나가다도 검찰 이슈만 터지면 발작 버튼이라도 누른 듯 역선택에 역선택을 거듭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모습에 부울경 유권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수습되지 않은 대장동의 잔해가 여권 입장에서는 두려울 법도 하다. 재판 과정에서 그 속에서 무엇이 더 튀어나올지는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특검의 수사는 난립하고 있는데 정작 검찰의 대장동 수사는 올스톱된 이 상황이 결코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청 놀음이 존재하는 한 근로 환경이 개선되지 않듯 검찰은 배제하고 특검만 줄줄이 출범하는 행태가 계속되면 여당의 법치주의에 대한 지역의 색안경도 벗겨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만이 대통령실과 여당의 집권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내 편의 수사 결과가 절대 그럴 리 없다’라는 지극히 유아적이고 비이성적인 아우성은 혐오만 더 깊게 할 뿐이다.
권상국 지역사회부장 ksk@busan.com
2025-11-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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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설령 '오천피 시대'가 된다고 해도
#1.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행복한 고민을 얘기했다. 그는 한 은행에서 투자를 받아 생산 캐파를 늘리게 됐다고 자랑했다. 투자 권유는 은행이 먼저 했고, 은행 담당자가 수시로 찾아와 준비 사항을 꼼곰히 체크하고 조언을 한다고 했다. 투자가 성공하면 기업공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2.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고민 끝에 대출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주가가 뛰는 걸 보고 여러 달 여윳돈으로 실전 투자를 연습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투자금을 늘리기로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중소기업 직장인에게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이용해 저렴한 금리로 돈을 마련했단다.
최근 통계나 발표를 보면 이런 사례가 예외적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중소기업 대출은 올해 하반기에 빠르게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675조 8371억 원에 달했다. 8월에 전달보다 3조 2763억 원, 9월엔 2조 1254억 원이 늘더니 지난달에는 4조 7494 억 원 늘어났다. 올 들어 최대폭이다. 은행들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덩달아 최근 1.3%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2010년 3분기 이후 최대 수준이다.
증시 주변에서는 ‘빚투 열풍’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5일 기준 88조 2708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놓은 자금이다. 석달 전과 비교하면 21조 2628억 원가량 늘어났다. 이 시기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47조 8564억 원으로 전달에 비해 21조 8647억 원 줄었다. 예금을 찾아 주식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대통령실에서 공공연히 ‘머니 무브’를 강조할 정도로 이재명 정부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부동산시장, 정확히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면서 생산 부문으로 돈이 흘러들도록 유도해 경제를 부양시키겠다는 거다.
대출부터 바싹 죘다. 정부는 출범 후 서울과 경기 12개 지역까지 ‘삼중 규제’ 지역으로 지정한 ‘10·15 대책’을 비롯한 부동산 대책을 세 차례 내놨다. 대통령실은 공급 대책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금융권도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 대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생산적·포용 금융 확대에 발맞춰 5대 금융지주들이 투자 계획을 일제히 내놨다. 전체 투자 금액은 5년간 500조 원이 넘는다. 이 돈은 국민성장펀드, 모험자본 공급, 민간펀드 결성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은행들이 ‘이자 놀이’가 가능하던 부동산 시장을 자발적으로 떠나지는 않았을 터이다. 더구나 산업 부문에 전대미문의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리스크까지 져야 하는 일이다.
부동산 투자가 막히니 개인들도 문턱 낮은 증시로 향한다. 자산이 부족한 젊은 층은 대출까지 내고 있다. 코스피도 얼마 전까지 ‘꿈의 지수’라던 ‘사천피’를 넘나들며 ‘오천피’도 가시권에 둘 정도로 강한 상승장을 연출하는 상황이다.
금융·부동산 시장을 압박해 인위적 ‘머니 무브’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일단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통제 불가능한 대내외 여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물 경제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한국 경제는 올해 잘해야 1%대 초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 안팎에 머물고 향후 5년간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걸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 침체기에 기업 외형을 키우는 투자가 옳으냐 하는 점은 의문이 따른다. 오히려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기업 내재 가치를 튼튼히 해야 할 시기다. 은행들도 실탄이 넉넉해도 투자처를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잘나가는 일부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거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
치솟는 주가에 혹해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뛰어드는 투자자에도 우려가 커진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경기와 따로 움직이는 사례는 빈번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흐름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증시를 이끌던 AI 분야에는 거품론이 제기되고, 글로벌 증시에 흘러드는 유동성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해외에서 전해지는 경고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와 증시엔 통화 불안정성까지 내재돼 있다.
뒤늦게 주식시장에 올라탄 개인 투자자들이 두고두고 눈물을 흘릴 가능성도 있다. 견조한 성장이 예상되는 건실한 기업이 과도한 투자에 부실을 키우지나 않을지 걱정도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부 정책의 목표가 오천피 달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를 필두로 각 경제 주체가 한국 경제를 상승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한국 경제에 무엇이 중요한가’ 질문을 다시 던질 때다.
김영한 경제부장 kim01@busan.com
2025-11-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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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금 최민희에게 필요한 것이야말로 양자역학
한때 그는 언론 자유의 최전선에 서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맞서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싸웠다. 그가 기자로 일했던 월간 ‘말’은 1990년대 언론 학도들에게 어떤 레거시 매체보다 믿음직한 언론이었다. 이후 수차례 이름을 바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상임대표까지 지내며 민언련의 ‘대모’로까지 불리었다.
그의 현재 직업은 국회의원이다. 또한 과거의 이력을 바탕으로 현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권력으로부터 언론을 지켜야 하는, 실제로는 언론을 감독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언론의 자유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렸다.
지난달 20일 국정감사장에서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켰다. 자신의 발언이 포함된 리포트를 문제 삼으며,“이게 중립적이냐”라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MBC 보도본부장은 “개별 보도 사안에 대한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답했지만, 돌아온 건 ‘퇴장’이었다.
과방위원장은 신문과 방송, 통신 등을 감독하는 자리다. 하지만 감독이 간섭이나 통제가 되어선 안 된다.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다. 그런 언론이 권력의 통제 대상이 되는 순간, 눈과 귀라는 본질의 역할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MBC에 ‘친(親) 국민의힘 언론’이라는 딱지를 씌웠다.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MBC는 누구보다 계엄 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 관점을 지켜왔다. 게다가,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친 국민의힘 언론’이라고해서 국감장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는 또한 뭔가. 그렇다면 반대로‘친 민주당 언론’에게는 도대체 어떤 VIP 대접을 해줄 셈인가.
사실 그의 이런 왜곡된 태도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 그의 행적이나 발언에서 ‘나만 옳다’는 식의 확증편향을 느끼고 불편해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당장 지난해 당내 온건파 의원들을 향해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는 극단적 발언을 쏟아낸 것도 그였다.
오히려 놀라운 장면은 따로 있었다. 함께 불거진 딸 결혼식 논란이다. 이는 그가 공직자로서의 기본적 경계조차 지키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정감사 기간 중 치러진 결혼식에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화환과 축의금을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직윤리 위반 논란이 일었다.
카드 결제된 축의금은 없었다, 큰 금액은 다시 되돌려줬다…, 최 위원장의 여러 해명에도 논란은 식지 않았다. 정작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금전의 흐름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상임위원장이 피감기관과 사적인 행사를 공유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 위원장은 국민들에게 해선 안될 거짓말을 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 날짜도 몰랐다는 취지의 황당한 해명으로, 온 국민에게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딸 결혼식 날짜도 모를 정도로 양자역학 열공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에 유튜브 방송에 나가 딸 결혼식에 입을 한복 이야기를 주고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확증편향에 빠진 정치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특정 진영의 확증편향에 빠진 정치인의 말은 해당 진영의 의견으로 가려 들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내뱉는 정치인은 다르다. 더이상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다했다고 봐야 한다.
기자 출신에서 언론 운동가, 시민사회 활동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거듭난 그의 이력을 떠올려 본다. 이제는 퇴색되어버린 그의 초심을 떠올린다. 정치인으로서 위기에 빠진 지금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그래서 그가 과방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신뢰가 사라진 권력의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 초심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의 돌파구는 후자에 있다.
그리고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못 다한(?) 양자역학에 대해 제대로 다시 공부해보길 권한다.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가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파악하면 위치는 미지수가 된다.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양자역학의 원리 속에 최 위원장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도 함께 담겨 있을 듯 하다. 양자역학의 핵심이 정답이 없다는 데 있다면, 양자역학을 통해 최 위원장 역시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김종열 정치부장 bell10@busan.com
2025-11-0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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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나노 바나나 그리고 캄보디아
두 달 전만 해도 ‘나노 바나나(Nano Banana)’라는 이름은 세상에 없었다. 무슨 새로 나온 바나나 품종인가 싶겠지만, 실은 구글의 AI 이미지 서비스 코드명이다. 단순히 이미지를 생성하는 차원이 아니다. 명령만 하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편집해 준다. 배경은 물론이고 강아지를 고양이로, 남자를 여자로 뚝딱 바꾼다. 옷도 갈아 입히고 헤어스타일도 바꿔주니 놀라울 따름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AI 서비스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뭐가 뭔지 헷갈려도 AI를 잘만 활용하면 혼자서도 거뜬히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한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전자상거래’ 수업에서 “앞으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모두가 인터넷으로 거래하고, 모르는 것을 검색하면 알려주는 세상이 곧 온다”는 교수님 말씀이 그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 몰랐다. 전화선 모뎀을 넘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화려한 단어가 당연한 일이 됐을 때가 밀레니엄 2000년을 넘어서였다.
인터넷 세상에 적응이 됐다 싶으니, 2007년 별안간 ‘아이폰’이 나왔다. 첫 대면은 미국 출장 때였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미국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모든 걸 빨아들일 겁니다. 세상을 바꿀 겁니다.” 충격적이게도, 폰 하나로 사진 촬영은 물론 일기 예보와 음악, 인터넷까지 모든 게 가능했다.
스마트폰이 생활 필수품이 되자, 다시 AI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인터넷, 스마트폰 정도겠거니 하던 것이 자세를 바로잡게 됐다. 이용자와 성능의 증가 속도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자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했다면, 2022년 11월 30일 챗GPT가 등장한 이후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전 세계 8억 명 이상이 다양한 AI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하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힘든 현실과 미래가 이어질 것 같다. AI 앞에서 두 눈 부릅뜨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인기가 높았다. 이제는 ‘컴공’이라 불리는 컴퓨터공학과 지원자부터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다. AI가 웬만한 코딩을 모두 해치워 버리는 탓이다. AI 관련 최상위 인재 수요만 여전하다.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을 잘 하지 않는다. 스타트업마저 경력자 채용이 70%에 달할 정도로 소수 정예를 선호한다. 시니어 경력자 몇몇이 있으면 AI가 신입사원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지난 추석 연휴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당장 경영 실적만 생각해 신입을 키우지 않으니 세월이 지나 경력자들이 퇴직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청년 고용률은 45.1%에 불과했다. 17개월 연속 하락세로, 경력직 위주 채용이 고착되었음을 의미한다.
불과 2~3년 사이에 AI와 데이터센터가 세계 주가에다 일자리까지 좌지우지하게 됐으니,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로서는 난감하기만 하다. 과거와 달리 부모 세대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어 자녀에게 어떤 공부를 하고, 어느 길로 나아가라고 조언할지 막막하다.
더구나 지역에 사는 부모들은 최근 불거진 캄보디아 사태를 보며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피해자 다수가 지역 청년들이어서다. 캄보디아 사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최악의 구직난 속에 그들을 단순히 돈을 쫓아 스스로 찾아간 범죄자들로 치부하기에 힘든 지점이 많다. 수도권 일극화로 저임금에도 불나방처럼 서울로 몰려드는 청년들,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지역의 청년들, 살기가 팍팍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한 청년들…. 지역 소멸이 국가 소멸을 부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모두 지역균형 발전에 실패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AI 임팩트’는 이번 캄보디아 사태보다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부를 것이 분명하다. 서울로 가도, 고향에 돌아와도 일자리가 없다면 청년들에게 남는 건 절망 뿐이다. 청년들을 그저 ‘시장의 원리’에 내맡겨서 안 되는 이유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주식으로 돈을 버는 일도, 중국의 약진을 따라잡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금 가장 확실한 건 지역균형 발전을 방치하면 대한민국 청년의 삶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의 삶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최우선이다. 감당 못할 쓰나미 속에 고립된 청년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줄 실질적인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여야를 떠나, 정부와 정치권이 당장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나서기에도 이미 한참 늦은 국가 최대의 난제다.
박세익 디지털영상센터장 run@busan.com
2025-10-26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