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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야구 시즌에 돌아온 선거의 계절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됐고, 선거의 계절도 돌아왔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북항 야구장이 최근 이슈로 떠올랐다. 시장 자리를 놓고 격돌하는 후보들은 야구장 건립과 북항 활용 방안을 두고 각기 다른 공약으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가 시범경기 1위에 오른 기세를 이어 개막 2연전 반짝 승리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구도 부산’과 관련한 표심 경쟁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전재수 의원은 ‘북항 돔 야구장’ 건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부산은 단연 야구의 도시이며, 시즌이 시작되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응원단이 된다”며 북항에 ‘바다가 보이는 돔 야구장’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이미 상당 부분 검토를 마쳤다”며 추진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야구뿐 아니라 비시즌에는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북항 전체의 활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 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든 이재성 전 부산시당위원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를 모델로 한 ‘개방형 오션 파크’를 내세우며 바다를 조망하는 낭만을 강조한다. 2024년 민주당 시당위원장 취임 때 북항야구장 건설을 강조했던 이 전 위원장은 “돔 형태보다는 바다 경관을 살리는 야구장이 바람직하다”며 “바다가 보이는 개방형 복합 야구장을 지어 야구와 e스포츠, 공연, 관광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주진우 의원은 사직야구장은 현재의 계획대로 재건축해 스포츠의 성지로 남기고, 북항에는 ‘부산 오션 돔’이라는 최첨단 개폐형 아레나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처럼 미디어 파사드를 적용해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랜드마크로 만드는 동시에, BTS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가 찾는 대한민국 대표 공연장으로 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직의 역사성과 북항의 미래 가치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후보들의 공약 경쟁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박형준 부산시장도 북항 논의에 가세했다. 당초 현실적인 장벽을 이유로 북항 야구장 건립에 부정적이었던 박 시장 측은 지난주 북항 재개발 2단계 부지를 활용해 제2 야구단 유치와 연계한 야구장 건립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사직야구장 재건축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박 시장 측은 북항 랜드마크 부지 활용과 관련해선 외자 유치를 통한 88층 랜드마크 타워 건립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AI·게임·디자인·해양 신산업을 집적하고 K콘텐츠와 지식재산(IP) 기반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부산의 백년대계라 불리는 북항 재개발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2단계 사업 추진은 눈에 띄게 늦어졌고, 1단계 랜드마크 부지 개발은 10년 넘게 진척이 없다. 마이스와 비즈니스, 쇼핑,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결합한 복합리조트 건설로 국제 컨벤션 도시로 도약한다는 서병수 전 부산시장 때 구상은 내국인 출입 카지노 논쟁에 막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항 야구장 건립은 예전부터 시민 지지 여론이 높았지만 이 역시 추진되지 못했다. 막대한 사업비와 이에 따른 재원 조달 문제, 사직야구장과의 중복 투자 논란, 기존 상권 반발 등 현실적 장벽에 부딪혔다. 이에 사직야구장 재건축은 이미 행정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올해 299억 원의 국비를 확보해 현재 설계 관련 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야구장 북항 이전 공약을 들고나오는 것은 정책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부산시장 후보들의 공약을 단순한 선거용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체 상태에 빠진 북항 재개발을 다시 움직이게 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북항 개발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 북항 야구장 논쟁은 단순한 시설 유치가 아니라, 부산의 미래 도시 전략을 둘러싼 선택의 문제다.
공약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원 조달 방안, 사직야구장과의 역할 정립, 지역 간 이해 조정이라는 현실적 과제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북항 야구장 이슈는 단순한 공약 대결을 넘어, 부산의 미래 도시 전략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설계다. 이번 선거가 북항 재개발을 더 이상 표류시키지 않고, 확실한 추진 궤도에 올려놓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himang@busan.com
2026-04-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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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역소멸 멈추는 지방선거를 바라며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는 팍팍한 일상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희망 고문’이라 냉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번 선택으로 내 생활이, 아이들의 삶이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희망을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절망이 깊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의 절망은 수도권 일극주의 폐해에서 비롯됐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으로 가장 고통받는 곳과 전국 최저의 출생율을 기록하는 곳이 서울이라는 사실은 수도권 일극주의가 국가 전체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이 절망을 돌파하기 위한 비전으로 제시한 대표적 어젠다는 글로벌특별법과 행정통합이다. 하지만 이들 어젠다가 겪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는 부산 시민은 착잡하다. 글로벌특별법은 부산이 대상이고, 행정통합은 부산·경남과 울산이 적용 대상이라 논의 범위가 다르지만, 지역의 역량을 극대화해 일자리를 늘리고 사람을 불러 모아 지역 발전은 물론 정체된 국가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거듭난다는 희망은 동일하다. 우울하게도 이들 부산의 비전이 수도권 중심의 정치 지형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같은 처지이다.
글로벌특별법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를 겨우 통과한 이 법안은 2024년 1월 25일 부산 전체 18명의 국회의원과 당시 여당 원내대표까지 가세해 최초 발의됐다. 부산을 싱가포르·상하이·홍콩과 같은 글로벌 해양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으로, 물류·금융 산업 발전 지원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2023년 11월 엑스포 유치 실패로 낙담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법안이지만, 부산의 미래를 견인할 방안이라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기에 당시 야당인 전재수 의원을 포함해 부산의 모든 의원이 법안 발의에 참여했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채택 했지만, 처리에 속도를 못 냈고 결국 넉 달 뒤 21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재발의 되긴 했지만, 2년 넘게 표류하다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이달 중순께 다시 주목받게 된다. 전북·강원·제주 관련 이른바 ‘3특법’이 먼저 처리되면서 글로벌특별법의 ‘찬밥 신세’가 더욱 도드라졌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삭발과 유력 부산시장 후보인 전재수 의원의 역할로 행안위 문턱을 가까스로 넘었다.
행정통합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의 ‘선착순 당근’으로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정부는 통합 지방정부에 대해 연간 5조 원, 4년간 최대 2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함께 차관급 부단체장 신설, 공공기관 이전 우선권 부여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일시적으로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는 행정통합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가 없다. 가까운 마산·창원·진해 통합의 사례를 통해 부산과 경남은 지역 주민의 동의 없는 행정통합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들 지역은 물리적 통합은 했지만, 통합의 시너지를 이끌 수 있는 설계가 엉성했다. 통합 이후 해당 지역 인구와 일자리 모두 줄어들었고, 세 지역의 갈등은 계속됐다. 정부의 지원마저 흐지부지되면서 통합 무용론이 나오는 실정이다.
지역민의 공감대와 통합 지역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치밀한 설계가 행정통합의 핵심이다. 실질적 권한 이양 없이 지원금만 내미는 방식으로는 지방분권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선거는 기존 정치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존 킹던이 말한 ‘정책의 창이 열리는 순간’의 조건 중 하나다. 그는 사회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문제의 흐름’과, 정치권이 움직이는 ‘정치의 흐름’, 그리고 대안이 준비된 ‘정책 대안의 흐름’이 서로 맞물릴 때 유효한 정책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역 소멸’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선거로 ‘정치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지금,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지역 소멸은 양대 정당인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기에도 가속화했다는 점에서, 상대방을 탓하는 분노의 정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전환시키고, 중앙의 정책 결정 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해 국가발전의 판을 바꾸는 리더십이다. 수도권 중심의 정치 지형이 바꿀 수 없는 ‘게임의 룰’이라면, 중앙 정치의 역학을 꿰뚫는 전략적 사고와 지역의 이해를 국가적 언어로 번역하는 소통 역량, 그리고 방향을 잃지 않는 철학적 일관성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지역의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로 지역소멸의 시계가 멈추길 기대한다.
2026-03-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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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민의힘, 부산 없이 선거 치르겠단 건가
6·3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부산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을 향한 근본적인 의문이 커지고 있다. 선거 승리를 준비하는 정당이라기보다, 패배 이후를 염두에 둔 조직처럼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박형준 부산시장 경선 컷오프 논란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한차례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당 지도부로부터 공천 관련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선언과 함께 복귀했고, 곧바로 현역 시장 컷오프라는 초강수를 밀어붙였다.
이 장면이 보여준 것은 후보 간 유불리를 떠나 명분과 상식의 붕괴였다. 후보 난립으로 사전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사법 리스크나 중대한 도덕성 논란이 제기된 것도 아니다. 박 시장의 시정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산업은행 이전과 부산 글로벌허브 특별법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듯 민주당의 반대와 의도적 처리 지연이 그의 시정 구상 실현 동력을 꺾어 놨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전략적으로도 패착이라는 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현재 판세는 국민의힘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에게 밀리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일수록 당내 경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경선은 단순한 후보 선출 절차가 아니라 조직을 재정비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컨벤션 효과’를 만들어낼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두 후보의 정치적 조건을 고려하면 그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박 시장은 두 차례 시장 선거를 거치며 행정 경험과 선거 검증을 동시에 통과한 인물이다. 반복된 선거 과정에서 여러 논란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고, 중도 확장성 측면에서도 비교적 경쟁력을 인정받아 왔다. 반면 주진우 의원은 초선으로 행정 경험과 대형 선거 경험이 적고 조직 기반 역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강성 지지층 결집에는 강점이 있을지 몰라도 행정가로서의 역량이나 외연 확장이라는 과제에서는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경선은 특정 후보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시민들이 후보의 행정 철학과 리더십, 도덕성을 검증할 최소한의 장치다. 동시에 패배 분위기를 반전시킬 마지막 동력일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단수 공천을 밀어붙이겠다는 발상은 선거 전략 차원에서도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 공천 방향이 당 전체 선거 전략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이 위원장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당 지도부와 일정 수준의 교감이나 공감대 없이 이런 결정을 독자적으로 추진했겠느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으로 합동수사본부 수사를 받고 있는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전 의원이 유력 후보라는 점을 앞세워 단일대오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선거 경험과 조직력 등을 고려할 때 본선 상대는 박 시장보다 주 의원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 전략과 승리를 향한 절박함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의힘이 이미 지고 들어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심각한 생채기만 남긴 채 경선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장동혁 지도부의 노선 문제는 선거 전망을 한층 암울하게 만든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에서 분명한 절연 대신 모호한 기조를 유지하고, 극단적 성향 유튜버의 목소리가 내부의 절박한 자성과 쇄신 요구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은 부산 보수의 역사적 정체성과도 거리가 있다. 부산 보수의 뿌리는 권위주의 권력과 결별하며 군부 정치의 잔재를 척결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강성 지지층이 추구하는 ‘윤 어게인’과는 결이 다르다. 이대로라면 부산의 중도층은 물론 합리적 보수 성향의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등을 돌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당 지도부가 선거 승리보다 이후 당내 권력 재편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이는 현장에서 뛰는 후보와 지지자들에게 치명적인 신호가 된다.
TK(대구·경북)가 보수 지지의 중심이라면, PK(부산·경남)는 그 세력을 둘러싸며 변화와 혁신으로 외연을 넓혀온 지반에 가깝다. 이 지반이 무너지면 중심 역시 버틸 수 없다. 부산에서의 균열은 단순한 지역 선거 패배를 넘어서 보수 정치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쇄신은 구호가 아니라 결단에서 시작된다. 부산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국민의힘은 부산과 함께 선거를 치를 것인가, 아니면 부산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인가.
2026-03-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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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전쟁이 뒤흔든 세계 경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유가가 급등한 영향이 크다. 국제유가는 전쟁 후 배럴당 120달러 선을 위협 중이다. 지난달 27일 배럴당 72달러에 거래됐던 브렌트유는 지난 9일(현지 시간) 장중 한때 아시아 시장에서 119.50달러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기 종전 발언 직후엔 84달러까지 떨어지며, 일간 사상 최대 변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에 국제유가도, 글로벌 증시도 출렁이는 모양새다.
특히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이번 전쟁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나섰다. 필리핀 등에서는 석유 배급제까지 실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번 전쟁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른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해상 통로다. 미국 현지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사전에 보고받고도 이란 공격을 승인했다. 이란이 먼저 굴복하거나 미군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상황을 오판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한중일 등 5개국에 군함 파견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란이 에너지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데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지난 13일 이란의 석유 허브인 하르그섬 공습까지 강행했다. 하르그섬은 이란 석유 수출 물량의 90%가 거쳐 가는 곳으로, 미국이 이란의 '역린'을 건드렸단 말도 나온다. 이란은 UAE(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항을 드론으로 공격하며 맞섰다. 이곳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원유와 석유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항구다.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장기화 우려도 제기된다. 중동 리스크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다시 1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선 올해 우리 증시가 쌓은 ‘5000피’(코스피 5000포인트)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나온다.
해상 운임도 상승세다. 글로벌 운송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운 시장도 충격을 받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환율, 비용 증가, 물류 차질 등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물가 상승, 성장률 하락, 소비 심리 위축 등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화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번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라는 웃지 못할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러시아의 석유 수출에 따른 초과 세입이 하루 1억 5000만 달러(약 2248억 원)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FT는 전쟁 발발 이래 러시아 정부가 챙기게 될 추가 세입 총액이 이달 말까지 33억∼49억 달러(4조 9467억∼7조 3451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명분 없는 전쟁은 하루빨리 종식돼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 목표와 일정에 대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형국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번 전쟁이 “현대적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미국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 없이 시작한 첫 전쟁”이라고 꼬집었다. 개전 직후 긴급 시행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27%에 그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유가 인하를 공약한 바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관리의 필요성이 그 누구보다 절실한 이유다. 미국 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60달러로, 한 달 전(2.95달러)에 비해 20% 이상 상승했다. 현지 정유사가 챙기는 수익과 마진은 큰 폭으로 뛰어 전쟁이 이들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취약계층에게 더 큰 부담을 안긴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27일 국내에 소개된 책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부제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에 따르면, 미국은 해외 전쟁에서 2001년 이후 약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 중 민간인 사망자만 40만 명에 달한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 추구는 미국을 덜 안전하게 만들고, 결국 미국의 힘과 영향력 쇠퇴를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에 대한 과도한 지출은 대형 방산업체와 그 동맹 세력을 부유하게 만드는 반면, 민주주의와 안전, 번영의 토대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15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중동 전역에서 숨진 각국 군인과 민간인은 벌써 3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자영 경제부장 2young@busan.com
2026-03-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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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본말전도된 행정통합, 속도전을 경계한다
지난해 국제 정세를 관통한 단어는 단연 ‘관세’였다. 자유진영의 리더를 자임하는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 투하를 선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유진영의 맹주답게, 최후의 선택은 각국의 자유에 맡겼다. 미국의 뜻을 따르거나, 온몸으로 관세 폭탄을 맞거나. 세상은 잠시 술렁였지만 이내 기묘한 냉정 속으로 가라앉았다. 처음엔 미국의 억지를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허나 그 목소리는 곧 ‘현실 감각이 부족한 이상주의자의 넋두리’로 치부돼 스러졌다. 대신 각국은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는 답안지 마련에 골몰했다. 사람들은 이 기형적 풍경을 ‘뉴노멀’이라 불렀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해 관세 소동이 겹쳐 떠오른다. 정부가 당차게 밀어붙이는 ‘행정통합’이다. 정부는 통합에 응한 지자체에 4년간 20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돈 내놔라’ 협박하는 미국과 ‘돈 주겠다’ 꼬드기는 우리 정부가 어찌 닮았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두 경우 모두 의사(意思)가 결정되는 방식은 판에 박은 듯 같다. 형식의 자유 뒤로 ‘돈’을 무기로 한 강제가 숨어 있다.
‘관세 협상’이나 ‘행정통합’이나, 어디까지나 선택은 각국 혹은 각 지자체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형식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관세 폭탄을 감수하고 홀로서기를 택한 나라는 손에 꼽히고, 또한 20조 원이라는 미끼를 뿌리치고 행정통합을 거부하는 것 역시 예사 결단이 아니다. 결국 돈으로 의지를 구부린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닮았다. 더욱이 그 선택의 압박 속에서 미국의 부당함에 대한 비판이 스러지듯, 행정통합의 당위성을 묻는 공론 또한 사라지고 있다. 이 또한 닮았고, 이게 더 치명적이다.
정부가 넉넉지 않은 곳간에서 수십 조를 털 만큼 행정통합은 절실한가. 지역 소멸의 위기감이 짙은 현재 △규모의 경제 실현 △광역 인프라 구축에 대한 신속한 결정 △중복 행정의 혁파 등 행정통합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분명 적지 않다. 그러나 동전의 뒷면에는 지역 내 불균형 심화와 주민 갈등이라는 우려 또한 숨어 있다. 창원·마산·진해 통합의 진통은 우리가 이미 몸으로 겪은 전례다. 숙의와 공감 없이는 그 어떤 통합도 온전히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교훈을 그 경험은 남겼다. 그런데 지금 그 당연해야 할 숙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에게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하나다. “우리(부산·경남)만 20조 원을 놓칠 거냐.”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지원금으로 이를 촉진한다는 논리가 되레 뒤집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통합이 필요해지는 기묘한 전도(顚倒)가 일어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통합의 본질을 묻는 물음은 자취를 감춘 채 ‘선거 전 통합하느냐 마느냐’를 묻는 목소리만 더욱 커질 거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여부의 기준조차 지역민의 삶에 대한 성찰보다 선거판의 유불리라는 정치공학적 저울질에 더 크게 기울 것이다.
지난 1일,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누군가는 출발선을 넘었고, 아직 출발선 뒤에 서있는 다른 누군가는 앞선 주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삭이기 어렵다. 그렇게 행정통합의 속도전은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가속도를 더해간다.
정부는 “통합이 늦은 지자체도 차별 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속도는 중요해 보인다. 2027년으로 예정된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 과정에서 통합 지자체에 우선권을 부여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이번 지방선거 전 행정통합을 이루지 못할 경우 서둘러도 2028년에야 통합이 가능하다. 이 경우 앞서 시작될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다.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여당의 예비후보들도 노골적으로 “우리만 손해볼 수 없다”며 빠른 행정통합 추진을 강조한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도 내 세금이 나랏돈이라는 이름으로 타 지역 행정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쓰여진다고 생각하면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 뒤틀린 심사만으로 ‘우리도 빨리 통합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다시 ‘왜’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경남 어느 산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지는 소도시 젊은이에게,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한다. 당신들이 거액의 미끼까지 내걸고 추진하려는 행정통합이 이뤄지면 할머니 집 앞까지 오는 마을버스가 더 자주 오는지, 아플 때 달려갈 병원이 가까이 생기는지,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까닭이 마련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20조 원을 행정통합 여부와 관계 없이 그것들을 위해 쓸 순 없는지도.
2026-03-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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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역의사제의 한계
정부가 지역의사제 지원 자격을 내년부터 해당 지역 중학교 출신으로 제한하면서 의대를 노리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또 한바탕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양성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재입법 예고를 하면서 당초 2033학년도부터 적용하려던 중학교 소재지 요건 적용 시점을 2027학년도로 앞당겼다. 또 비수도권이었던 중학교 소재지 요건은 진학하려는 의대 소재 지역 및 인접 지역인 광역권으로 변경했다. 이는 중학생의 지방 유학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지역의사제는 지난달 10일 정부가 의대 증원분을 전부 지역의사제로 뽑는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제7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0일 2027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 정원을 총 3342명, 연평균 668명 늘리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기존 의대 정원 3058명(2024년 기준)을 초과해 증원하는 인원은 모두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한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등록금 등 정부 지원을 받고 졸업 후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복무하는 정책이다.
이로써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정책 방향은 일단락된 셈이다. 의료계의 반발로 중단됐던 의대 증원이 결정된 점,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의사제 도입 등은 정부의 결단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 지역의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갈 길이 멀다.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사실 개선 효과가 전무하다는 냉혹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의료 인력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부산과 울산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번 지역의사제의 혜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부산대, 동아대, 인제대, 고신대, 울산대 등 부산과 울산지역 의대를 졸업한 이들은 경남의 의료취약지역에 배치된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지역의사법 시행령안에 따르면 부울경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경우 의무복무지는 창원권(창원, 의령, 함안, 창녕), 김해권(김해, 밀양, 양산), 진주권(진주, 사천, 남해, 하동, 산청), 통영권(통영, 거제, 고성), 거창권(함양, 거창, 합천) 등이다.
경남지역에서는 직접적인 인력 공급 효과가 나타나 도움이 되겠지만, 문제는 10년간 의무복무를 마친 이후다. 경남 내에서도 창원, 김해, 진주 등 일부 대도시에만 의사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군·농어촌 등 최말단 지역은 여전히 의료취약지역으로, 의료 공백이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필수 의료의 개선 정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산과 경남은 소아과 진료 대란, 산부인과 분만 대란, 응급실 뺑뺑이 등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과 의료 인력 부족이 항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지역의사제 혜택을 받는 경남지역조차도 지역의사제 도입만으로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
현재처럼 지역의사제가 지역 의무복무 10~12년을 유지하는 한, 즉 전공 선택을 강제하지 않는 한 인기 과목 쏠림은 계속될 것이고 필수과 의료 공백은 그대로일 수 있다.
지역의사제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단기적 인력 공급 대책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이들이 의사면허를 취득하기까지 통상 10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한데, 당장의 의료 공백 해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의료 공백의 본질은 의사 수의 부족과 필수 의료 인력의 부족이다.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일정 부분 의사 수의 부족을 메운다 해도, 그 절대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인기과의 포화로 인해 필수과로 넘어가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적다. 특히 지역의사제가 필수 의료과로의 강제 선택을 요하지 않는 이상 필수 의료의 공백도 메우기 힘들다.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의사 수의 대폭 확대와 필수의료의 수가 인상인데, 의사 수의 확대는 의료계의 반발을 부르고, 의료수가 인상은 국민건강보험기금의 고갈을 불러온다. 하지만 의사 수가 대폭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면, 필수과로의 낙수효과는 커질 것이며 지금 같은 고소득을 보장할 수 없게 돼 장기적으로 인재가 의대에만 쏠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지역의사제의 성공을 위해서 정부는 하위법령 개정 등을 통해 좀 더 촘촘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하고, 나아가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한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의료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의료계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미봉책으로 때웠다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이 진행되는 지금, 지금이야말로 의료 개혁의 출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cornie@busan.com
2026-03-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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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뚫린 지하, 열린 과제
부산의 동서를 잇는 대동맥 ‘만덕~센텀 도시고속화도로’가 10일 개통된다. 부산의 대표적인 상습 교통 정체 구간을 지하터널로 연결하겠다는 부산시의 첫 발표가 나온 2011년 이후 15년 만이다. 2019년 하반기 첫 삽을 뜬 뒤로는 6년여 만의 결실이다. 지하 40m 아래에 뚫린 총연장 9.62km의 이 지하 자동차 전용도로는 만덕에서 센텀까지 기존 30~40분 이상 소요되던 이동 시간을 단 10분 남짓으로 단축한다.
이 사업은 논의가 시작된 이후 막대한 사업비와 경제성 논란으로 좌초 위기를 겪었다. 교통량 예측의 불확실성, 민자사업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쟁, 환경·안전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만덕고개 일대의 극심한 교통 혼잡이 도시 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사업 추진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결국 2010년대 후반 민간투자 방식으로 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온천동 구간 터널 붕괴 사고 등 난관을 거치며 장기간 공사 끝에 개통을 앞두게 됐다.
만덕고개를 넘는 출퇴근길에 수십 분씩 허비해온 시민들에게 대심도 도로는 획기적인 대안이다. 지상 도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동서 간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한다는 점에서 부산 교통망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대심도 개통은 부산 내부순환도로망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신평동 66호 광장을 출발해 덕천나들목·만덕·센텀·부산항대교·남항대교·천마산터널·장평지하차도·신평동으로 이어지는 내부순환도로망 가운데, 2023년 장평지하차도 완공 이후 유일하게 남아 있던 단절 구간이 바로 이 구간이었다.
남해고속도로와 해운대를 직결함으로써 만덕대로와 충렬대로의 만성적인 정체를 완화하고, 물류 이동 효율을 높여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할 수 있다. ‘출퇴근이 고역’이라는 시민들의 체감이 완화된다면, 정주 여건 개선과 도시 이미지 제고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더 나아가 지상 도로 확충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대심도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부산 교통 정책의 방향 전환을 상징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도로의 진정한 의미는 개통 이후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부산 교통의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남긴 논쟁적 시설로 기록될지는 개통 초기 부산시의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 진·출입부 교통 혼잡, 안전 관리, 통행료 수준에 대한 시민 수용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30분 단축’이라는 장밋빛 전망 뒤에는 터널 끝에서 마주할 교통 혼잡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도 공존한다. 진출입로 부근에서 발생할 병목 현상이다. 만덕IC 진출입로 일대는 이미 만덕터널과 남해고속도로에서 유입되는 차량으로 포화 상태다. 개통 초기 대심도 도로를 빠져나온 차량이 지상 도로의 기존 흐름과 뒤엉킬 경우, 극심한 정체는 물론 사고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센텀IC 역시 수영강변대로와의 합류 지점에서 상당한 혼잡이 예고된다. 낯선 도로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통 초기에는 보다 세밀하고 탄력적인 교통 관리가 요구된다. 사상~기장 구간을 잇는 지하화 고속도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향후 대심도 도로 건설 과정에서는 진출입로 설계와 주변 도로 연계에 대한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남긴다.
또 다른 과제는 안전이다. 사고 발생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하 40m의 특수한 환경은 화재나 사고 발생 시 심리적 공포를 배가시킨다. 부산시는 방재 1등급의 재난 방지 설비와 통합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했고, 대형 지하도로 특성을 고려한 고도화된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하 긴 터널에서의 화재나 연쇄 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큰 만큼, 반복적인 점검과 실효성 있는 대응 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행료는 도로 운영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다. 승용차 기준 출퇴근 시간대 2500원으로 책정된 통행료는 부산 지역 유료도로 가운데 가장 비싼 수준이다. 물론 거리 또한 가장 길기는 하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실제 공사비가 1조 원에 육박하면서 건설사의 적자 폭이 커져 향후 통행료 추가 인상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미 많은 유료도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만큼, 시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도로 이용을 활성화할 수 있는 부산시의 세심한 정책적 판단이 요구된다. 개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민이 실제로 체감되는 편의와 안전, 합리적인 비용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이 대심도 도로는 ‘부산의 미래 인프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강희경 사회부장 himang@busan.com
2026-02-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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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건강할 결심' 도와주는 사회
“여윳돈으로 2억 5000만 원 정도 있습니까? 없으면 운동하셔야죠!”
연초에 만난 한 운동 전문가가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2023년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추정한 1인당 평생 의료비는 2억 4656만 원이며, 가장 의료비 지출이 많은 나이는 78세라는 것이다. 억대 의료비를 부담하지 않으려면 건강할 때 운동을 하라는 조언이었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공단이 발표한 1인당 평생 의료비는 건강보험 급여비와 본인부담금 등을 합산한 금액이었다.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병원비가 약 2억 원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됐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지인도 그 불안을 건드려 운동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는 ‘건강할 결심’을 미룰 수 없는 때라는 생각과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이 든다. 운동할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확보할까? 비용은 어느 정도 선이 적절할까?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25년 건강인식조사 보고서’에서 2000명의 응답자가 본인의 건강 상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요인 1순위로 ‘수입 및 사회적 수준’을 꼽았다.
실제 응답자의 수입에 따라 건강 정도가 달랐다.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22.4%가 건강하다고 답했지만, 800만 원 이상은 절반 넘게 (54.0%) 건강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건강하지 않다는 응답은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25.1%인 반면 800만 원 이상은 7.5%에 불과했다.
식단과 운동 등 건강에 투자하는 금액도 소득별로 달랐다.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월 9만 1000원을 사용했지만, 800만 원 이상은 20만 8000원을 사용했다.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주 5.3시간, 800만 원 이상은 7.9시간이었다.
건강 불평등의 지표는 각종 조사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헬스장 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에 살면, 굳이 시간을 내어 ‘산스장(산속 헬스장)’에 갈 필요 없다. 운동 기구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보다, 비용을 들여 전문가에게 자신의 몸에 맞는 사용법을 코칭 받는 것이 건강에 더 효과적이다. 관절에 부담 없는 수영이나 아쿠아로빅을 하려고해도 공공 체육시설에 자리 잡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사설 수영장을 이용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건강한 먹거리에도 경제적 장벽이 존재한다. 식재료가 건강하고 신선할수록 가격은 더 올라간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 인공 첨가물을 써서 대량으로 생산된 식재료는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거주 지역에 따라 신선한 식재료를 쉽게 구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물론 경제적 이유는 때론 운동을 미루거나 나쁜 식습관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된다. 비교적 건강한 상태라면 맨몸으로 하는 플랭크나 푸쉬업 등으로 근육 운동, 계단 오르기나 달리기로 유산소 운동, 맨손 체조로 유연성 운동을 할 수 있다.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도 되고 비용도 덜 들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인스턴트 음식이나 배달 음식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의지 정도가 동일하다면, 접근성 높은 운동 시설과 운동 전문가의 도움이 있을 때 운동을 지속하기 수월하다. 하루 노동 시간이나 건강 정도, 거주 지역에 따라 운동이나 한 끼 식사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달라진다.
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대목일 것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강 인프라를 구축해 개인들이 의지 박약과 시간 부족이라는 난관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 일 말이다.
부산일보는 올해 초 ‘함께 넘자, 80세 허들’ 기획 보도를 통해 수도권과 부산, 부산 내 생활권역별로 기대수명의 차이를 조명하고 있다. 부산은 전국 평균보다 기대수명이 1년이나 짧았으며, 부산 안에서도 생활권별로 기대수명이 최대 6년 차이가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권과 계층에 따라 수명 격차는 심화하고 있는 것을 수치로 확인했다.
‘수명’에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중첩되어 영향을 끼친다. 운동기구가 놓인 소규모 공원을 곳곳에 만드는 수준의 대응을 넘어 복지, 의료, 인구 고령화, 생활 체육 등 다방면의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과 연령, 생활 행태별로 건강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려면 포괄적인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운동이나 식단 관리 등 건강을 챙기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등의 핑계 대기가 민망할 정도로 지역의 건강 인프라가 향상되길 기대한다.
송지연 스포츠라이프부장 sjy@busan.com
2026-0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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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올해는 '천만 영화' 탄생할까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 영화 ‘국보’(2025)를 뒤늦게서야 관람한 이유다. 이미 멀티 플렉스에선 찾아보기 힘들어진 뒤라 리클라이너 상영관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175분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부키 분장을 한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 연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인간 국보’를 향한 이들의 광기에 가까운 예술 열정은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으로 넘어오기 전 영화관을 찾은 것은 역시 잘한 결정이었다. 물론 생소한 발성과 몸짓의 가부키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영화 ‘패왕별희’(1993)의 경극이나 드라마 ‘정년이’(2024)의 여성 국극이 그러했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 장르를 새롭게 접하는 즐거움이 오히려 더 컸다고 할까.
재일 교포 이상일 감독이 만든 이 영화가 일본 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지난 18일 기준 관객 1370만 명, 흥행 수입 193억 엔을 넘어섰다. 일본 실사 영화 흥행 수입 1위 기록을 이미 지난해에 갈아 치운 바 있다. ‘춤추는 대수사선 더 무비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2003·173억 엔)가 세운 기록을 22년 만에 뛰어넘어 화제가 됐다. 일본 현지에선 가부키 공연을 찾는 관객까지 늘고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파급효과가 크다고 한다.
반면 한국 영화의 최근 성적표는 처참하다. 지난해 1000만 관객 영화는 전무했고, 관객 5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좀비딸’(2025) 단 한 편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이후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범죄도시2·3·4’(2022·2023·2024) ‘서울의 봄’(2023) ‘파묘’(2024) 등 ‘천만 영화’는 꾸준히 나왔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양상이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새 영화 ‘가능한 사랑’도 영화관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택해 영화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일부에선 이를 ‘극장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탈한 관객은 회복될 조짐이 없다. OTT 플랫폼이 급성장한 가운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객의 취향은 더욱 더 세분화되고 있다.
그러나 극장을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은 관객 감소에 따른 수익 감소, 투자 위축, 제작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개봉 편수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 관객이 즐길 만한 다양한 콘텐츠 공급 자체가 어려운 구조적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나마 새해엔 구교환·문가영 주연의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2025)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2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만약에 우리’는 전날까지 누적관객수 19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이 영화는 이미 개봉 12일 만에 손익분기점(110만 명)을 넘긴 바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관객 200만 명은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멜로 영화가 200만 관객을 넘긴 것은 2019년 ‘가장 보통의 연애’(292만 4000여 명)가 마지막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두 남녀의 연애와 성장 스토리가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정통 멜로 장르의 부활에 대한 희망마저 읽힌다.
영화계에선 특정 장르에 편중된 투자,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국 영화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과 실험이 이뤄질 수 있는 산업적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된 과감한 시도와 신인 감독들의 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높아진 극장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문화가 있는 날’ 제도를 매주 수요일로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OTT처럼 구독료를 내고 극장에서 일정 횟수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구독형 영화 패스’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는 거장 감독의 신작 개봉이 잇따라 기대를 모은다. 먼저 설 연휴를 앞두고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가 관객과 만난다. ‘곡성’(2016) 이후 10년 만에 신작을 선보이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도 7월 개봉을 예고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도 기대작이다. ‘천만 영화’로 상징되는 ‘대박 영화’에 대한 바람은 우리 영화산업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검증된 감독들의 대작을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관객의 허를 찌르는 의외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갈망도 크다. 소위 말하는 ‘대박’ ‘중박’ 영화가 골고루 나오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독립·예술영화도 더 풍성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2026-01-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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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역 의료 공백 논의는 다시 시작된다
해가 바뀌고 희망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역에 반가운 소식을 꼽자면 단연 지역의사제 논의다.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에서 내년 이후 의대 증원분 전체를 지역의사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공의대 신설과 인력 양성 규모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가기로 했단다.
지난해 의대 증원을 빌미 삼아 촉발된 의료계의 태업은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으로 갈수록 더 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의사를 못 구해 동네마다 겨우 돌아가던 24시간 응급실이 문을 닫았고, 응급실 뺑뺑이에 어린 목숨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뒀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일련의 사태는 정주 환경에 대한 지역 주민의 기본적인 믿음을 흔들어 댔다. ‘진짜 여기서 나와 내 가족이 안심하고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국민의 입장에서도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심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균형발전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가는 와중이었다. 그러나 의료계의 태업은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균형발전은 허상에 불과하며, 역시나 수도권을 벗어나 살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라는 조롱만 남겼다.
사실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논의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다들 막연한 거부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도시를 벗어나 도농복합지역으로만 가도 그 거부감보다 의료 공백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지난해 의료계의 태업을 직시하며 여론은 그렇게 싸늘하게 바뀌었다.
김해와 양산은 문을 닫았던 거점 병원 두 곳이 올해 긴 침묵을 깨고 재가동을 준비하자 주민 기대감이 상당하다. 경영난으로 폐업했던 김해중앙병원과 웅상중앙병원이 운영 재개를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 하고 있다. 여전히 복잡한 채무 관계와 의료진 확보가 숙제로 남아 있지만 이들 병원의 폐업 이후 오랫동안 원거리 진료와 응급의료 공백으로 큰 불편을 겪어온 탓에 주민들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경남도가 지난해 시범운영에 들어간 지역의사제도 반년도 되지 않아 긍정적인 시그널이 나온다. 영입이 쉽지 않은 과목에서도 채용이 이뤄지고 있고, 계약 만료 후 수도권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기간만큼은 진료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까닭이다. ‘내일부터 근무 못 해요’ ‘공고를 띄워 새 의사 구해봐요’라는 식의 철부지 수련의들의 처신에 지역 병원들이 더는 휘둘리지 않게 됐다는 게 고무적이다.
그러나 벌써 의료계는 의사 수급 시점과 인원을 놓고 불만을 드러내며 재차 태업 기미를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물리적 대응까지 운운하는 모양이다.
지난해 ‘의대 증원이 어떠한 기준도 없이 이뤄졌고 오류투성이’라며 1년을 드러누운 이들이다. 올해 바뀐 정권에서 추계위를 새로 꾸려 재차 증원 수치를 산출했지만 이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며 어깃장을 부린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의 주장이 비합리적인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연초 쏟아지는 메시지와 이슈의 홍수 사이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지역 의료는 벼랑 끝 위기감 속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이슈의 주무대에서 사라진 의대 증원 논의는 장기간 이어진 피로감에 졸속 처리되거나 여론과 동떨어진 수준의 야합으로 결론 날 가능성 역시 높다.
2024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 당 의료인은 서울이 4.7명인 데 반해 경남은 그 절반 수준인 2.6명에 불과했다. 의대 증원 논의가 수도권 의료기관 종사자 수만 늘리는 방향으로 악수를 두지 않도록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가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교육과 의료는 최소한의 정주 환경을 만드는 기본 조건이다. 그리고 그 기본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이 확장될수록 균형발전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모두 천문학적 비용도 불사하고 ‘사람 붙들기’에 나서고 있다. 기본소득에 집과 일자리까지 지역에 살아만 준다면 뭐든 제공하겠다며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당국의 노력과 시간과 자본도 ‘우리 동네도 응급실 뺑뺑이 발생’ 기사 한 번에 무위로 돌아간다. 일상을 흔들어 정주 환경을 악화시키는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균형발전의 적이다. 병오년의 여론은 더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 눈을 치켜떠야 한다.
2026-01-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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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CES 2026이 국내 제조업에 던진 숙제
‘CES 2026’도 눈부신 첨단 기술의 향연을 풀어냈다. 빅테크들이 제시한 일상으로 깊숙히 들어온 인공지능(AI) 기술에 감탄하는 한편으론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약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제조업과 AI 간에 산업 경계를 넘어 진행되는 결합 시도들이었다.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혁신 기업인이 한국 조선기업의 변화를 언급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번 CES 기조연설을 맡은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한국 HD현대의 디지털 트윈 기반 조선소를 호평한 것이다. 전통 제조업이자 동남권 산업 주축인 조선업이 AI 기술 기반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엔비디아와 여러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사례 가운데 HD현대를 콕 집어 “우리가 협력해 온 디지털 트윈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기술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로 피지컬 AI 사업 청사진을 제시하는 ‘변신’을 선보였다. 키 190cm, 몸무게 90kg의 아틀라스가 56개 관절을 360도 회전하며 부품을 옮기고 자연스럽게 작업대 사이를 오가는 장면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숙련공을 뛰어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대차는 그 시점을 2년 후라고 못박았다.
AI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 시점에 한국 제조업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세계인이 글로벌 빅테크들이 선보이는 첨단 AI 기술에 홀려 있는 사이 그들은 실험실 속 AI를 구현할 현장이자 학습의 최적지로 한국 제조업을 지목한 것이다. 한때 국가 위기의 대상으로 지목되던 우리 제조업이 화려한 부활 기회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 중심인 부산·울산·경남 기업에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CES는 AI 혁신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국내 제조 기업들이 고민해 온 결과물을 풀어놓은 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구, 뷰티, 장난감, 주방기기 등 그동안 AI와 거리가 멀 것 같던 소비재 기업들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됐다. AI 기반 분석 기술을 중심으로 맞춤형 케어 설루션을 선보인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이나 전자 피부(e-skin) 기반 기술로 단순 미용을 넘어 새로운 영역 확장에 나선 한국콜마 같은 기업의 행보는 이른바 ‘B뷰티’ 산업을 꿈꾸는 지역 화장품 업계도 눈여겨봐야할 움직임이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예고된 상황에서 다시 우리 제조업, 특히 부울경은 어떤 준비를 해왔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부울경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CES에도 지역 혁신기업들과 손잡고 별도 전시관을 마련했다. 부산은 전년보다 확대된 30개 전시부스를 갖춘 통합부산관을 갖추고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참여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했다. 부울경의 여러 기업이 올해의 최고혁신상 또는 혁신상을 수상하는 성과도 냈다.
문제는 CES의 화려한 쇼 뒤에 가려진 부울경 제조기업들의 곤궁한 처지다. 국내 대·중견기업은 인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연합이나 새로운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에 AI 전환은 ‘필요는 알지만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간혹 운이 좋아 대기업 낙점을 받은 경우에만 AI 전환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참에 몇몇 기업 지원기관과 단체에 지역 기업 AI 전환 상황을 문의했더니 개별 기업의 AI 도입 여부는 통계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국내 중소기업의 스마트 공장 도입은 적극적인 정부 지원으로 가속화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고도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경남과 부산은 스마트 공장 구축이 빠른 편이지만 AI를 실행할 ‘고도화 단계’에 이른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와 전문 인력,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만이 가진 자산인 다양한 제조 기업 현장을 찾아 먼저 다가서는 이때, 산업 현장에서의 부족함을 채울 주체는 국가 말고는 없어 보인다. 제조업 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제조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기업이 확보한 AI 노하우가 중소기업으로 흐르는 통로를 내는 일들이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일상과 전 영역의 산업 현장에서 AI 기술을 얼마나 빨리 수용하고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결국 현장의 작은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현실이 된다.
2026-01-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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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치적 불쾌감에 얼룩진 한일해저터널
지난해는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조차 버겁게 느껴질 만큼 격랑의 시간이었다. 정치판은 더욱 그랬다. 불법 계엄의 후유증과 어수선함으로 한 해를 시작해 1년 내내 대통령 탄핵 등으로 시끌벅적하더니, 연말에는 통일교 의혹이 다시 정국을 흔들었다.
연말에 만난 한 국회의원은 평소 즐겨 마시던 이른바 ‘보리콜라’조차 마시려니 눈치가 보여 손이 가질 않는다고 했다. 제조사가 통일교 산하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한 정치적 오해를 살까 두렵다는 것. 물론 농(弄)으로 한 말이었지만, 마냥 농으로만 웃어넘기기엔 이 시절이 하수상하다. 통일교로부터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은 것도 아닌데(일단 다들 아니라고 주장하시니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그렇다고 치고), 그저 통일교 행사에 얼굴을 내민 것만으로도 뭇매를 맞는 세상이다. 그러니 통일교 기업이 만든 음료 사랑을 숨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게 ‘통일교’는 낙인이 됐고, 해가 바뀌었어도 그 ‘주홍글씨’는 여전히 선명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보리콜라’를 양껏 마시지 못한다는 모 의원의 사정도 딱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공포가 개인의 기호를 넘어 지역의 백년대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입을 막은 그 음료처럼, 부산의 미래를 논할 때 더 이상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가 생겼다. 바로 통일교단이 그토록 원한다는 ‘한일해저터널’이다.
통일교가 이슈의 중심에 서기 전에도 한일해저터널은 ‘뜨거운 감자’였다. 부산과 규슈를 잇는 이 거대한 구상은 부산 선거판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저터널이 필요한가’라는 논의는 없고 ‘누가 해저터널 이야기를 꺼냈는가’라는 질문만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누가 통일교와 연관되어 있는가’라는 사상 검증과 다르지 않다. 정치적 불쾌감이 정책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셈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전제하자면, 나는 통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한일해저터널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선 바다 건너 부산과 근접한 일본 규슈와 손잡고 새로운 경제권역을 창출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는 지난 20년간 ‘부산-후쿠오카 포럼’을 지켜온 두 도시의 학계·경제계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물론 한일해저터널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일해저터널은 부산과 규슈가 만들 새로운 경제권역의 혈맥을 잇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터널이 뚫리면 부산의 부품·조선기자재 산업은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닿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직·서비스직·연구개발직 등의 일자리도 늘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단기 부산 방문이 늘면서 의료, 뷰티 산업의 시장이 확대될 수도 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핵심은 ‘부산 패싱’이다. 일본의 자본과 사람이 부산을 건너뛰고 서울로 직행할 것이라는 우려다. 물류가 부산항을 거치지 않고 철도로 빠져나가고, 부산 시민들은 접근성이 좋아진 일본에서의 소비가 잦아지면서 부산 상권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패싱’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 후쿠오카나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울은 지척이다. 부산과 비교해 비행시간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울행 항공편이 더 많아 오히려 부산보다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해저터널 유무와 상관없이, 서울로 갈 사람은 이미 가고 있다. 그나마 육로(정확하게는 육로가 아니라 바다 밑길이지만)가 생기면 오히려 부산이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터널 그 자체가 아니라, 터널이 뚫렸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리의 패배주의다. 더욱 답답한 점은 대개
지난해는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조차 버겁게 느껴질 만큼 격랑의 시간이었다. 정치판은 더욱 그랬다. 불법 계엄의 후유증과 어수선함으로 한 해를 시작해 1년 내내 대통령 탄핵 등으로 시끌벅적하더니, 연말에는 통일교 의혹이 다시 정국을 흔들었다.
연말에 만난 한 국회의원은 평소 즐겨 마시던 이른바 ‘보리콜라’조차 마시려니 눈치가 보여 손이 가질 않는다고 했다. 제조사가 통일교 산하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한 정치적 오해를 살까 두렵다는 것. 물론 농(弄)으로 한 말이었지만, 마냥 농으로만 웃어넘기기엔 이 시절이 하수상하다. 통일교로부터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은 것도 아닌데(일단 다들 아니라고 주장하시니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그렇다고 치고), 그저 통일교 행사에 얼굴을 내민 것만으로도 뭇매를 맞는 세상이다. 그러니 통일교 기업이 만든 음료 사랑을 숨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게 ‘통일교’는 낙인이 됐고, 해가 바뀌었어도 그 ‘주홍글씨’는 여전히 선명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보리콜라’를 양껏 마시지 못한다는 모 의원의 사정도 딱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공포가 개인의 기호를 넘어 지역의 백년대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입을 막은 그 음료처럼, 부산의 미래를 논할 때 더 이상 언급해서는 안 될 단어가 생겼다. 바로 통일교단이 그토록 원한다는 ‘한일해저터널’이다.
통일교가 이슈의 중심에 서기 전에도 한일해저터널은 ‘뜨거운 감자’였다. 부산과 규슈를 잇는 이 거대한 구상은 부산 선거판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저터널이 필요한가’라는 논의는 없고 ‘누가 해저터널 이야기를 꺼냈는가’라는 질문만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누가 통일교와 연관되어 있는가’라는 사상 검증과 다르지 않다. 정치적 불쾌감이 정책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셈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전제하자면, 나는 통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한일해저터널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선 바다 건너 부산과 근접한 일본 규슈와 손잡고 새로운 경제권역을 창출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는 지난 20년간 ‘부산-후쿠오카 포럼’을 지켜온 두 도시의 학계·경제계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물론 한일해저터널을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일해저터널은 부산과 규슈가 만들 새로운 경제권역의 혈맥을 잇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터널이 뚫리면 부산의 부품·조선기자재 산업은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닿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직·서비스직·연구개발직 등의 일자리도 늘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단기 부산 방문이 늘면서 의료, 뷰티 산업의 시장이 확대될 수도 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핵심은 ‘부산 패싱’이다. 일본의 자본과 사람이 부산을 건너뛰고 서울로 직행할 것이라는 우려다. 물류가 부산항을 거치지 않고 철도로 빠져나가고, 부산 시민들은 접근성이 좋아진 일본에서의 소비가 잦아지면서 부산 상권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패싱’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 후쿠오카나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울은 지척이다. 부산과 비교해 비행시간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서울행 항공편이 더 많아 오히려 부산보다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해저터널 유무와 상관없이, 서울로 갈 사람은 이미 가고 있다. 그나마 육로(정확하게는 육로가 아니라 바다 밑길이지만)가 생기면 오히려 부산이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터널 그 자체가 아니라, 터널이 뚫렸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리의 패배주의다. 더욱 답답한 점은 대개 그것이 부산이 아닌 중앙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언제 연결될지도 모를 ‘유라시아 교통망의 종착지’라는 개념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다. 대륙의 종착지 역시 그 이후로 뻗어나갈 수 없다면 그저 변방의 막다른 골목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종착지’가 아니라 ‘허브’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성과가 없지 않았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있다. 부산은 지금 북극항로의 기점을 꿈꾸고, ‘글로벌 허브 도시’를 지향한다. 그러면서 고작 해저터널 하나에 경쟁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의 선박이 일본 화물까지 가득 싣고 북극을 지나려면, 오히려 해저터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글이 반드시 터널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부산에는 반전이 필요하고, 혹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카드를 단순히 ‘누가 추진했느냐’라는 꼬리표 때문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폐기해선 안 된다는 거다. ‘실사구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비용과 경제적 기대 효과에 대해,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변화한 현재와 미래의 비전에 맞춰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2026-01-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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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왜 면박을 주면 안 되나
지난 23일 해양수산부 업무보고를 끝으로 3주에 걸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가 마무리됐다.
역대 정부 최초로 생중계가 됐던 부처 업무보고는 분명 이전과 달랐다. 국민 앞에 공개됐고, 생중계됐으며, 대통령은 장관과 공공기관장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업무보고는 더 이상 책상 위 문서가 아니라, 국민이 지켜보는 현장이 됐다.
그동안은 무엇을 결정하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국민은 알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년 업무보고는 최소한 권력이 숨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업무보고 현장 벽면에 붙어 있는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라는 문구는 이번 정부의 소통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았다.
공개와 질문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개가 곧 개혁은 아니라는 점이다. 카메라가 켜졌다고 해서 국정이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뒤에 숨은 사람들이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장면은 대통령의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기관장들, 원론적 답변으로 시간을 끄는 고위 관료들, 책임 대신 ‘검토 중’이라는 말로 빠져나가는 행태였다.
국정의 병목은 대부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정책 의지는 위에 있지만, 실행은 아래에서 멈춘다. 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 자리는 차지하되 결과에는 무관심한 기관장들. 생중계가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순간, 그동안의 무능과 안일함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업무보고는 기관장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춰냈다.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는 ‘면박 주기’ ‘공직사회 압박’ ‘전 정부 인사 찍어내기’ 등 여러 이름으로 이번 업무보고에 비판을 쏟아냈다.
물어보자. 면박을 주면 왜 안 되나. 공직사회에 압박을 주면 왜 안 되나.
민간 기업에서는 어찌 보면 그 정도의 면박은 허다하다. 일을 못 하면 그보다도 더한 면박을 넘어 질책을 받는다. 직장인들은 그걸 묵묵히 감수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가고, 그런 효율성을 바탕으로 기업은 발전한다.
공직사회를 예외로 두면 안 된다. 그냥 대충 월급이나 받고 시간을 때우자고 장관이나 공공기관장을 해선 안 된다. 기관장 정도 하려면 전문성을 갖추고 어떠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선거 때 캠프에 있었다는 이유로, 고위층에 줄을 댔다는 이유 등으로 얼떨결에 된 ‘낙하산 기관장’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으레 대통령 업무보고 때는 밑에 직원들이 만들어준 보고서를 보면서 읽어 나가고, 대통령은 듣기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풍경. 이런 모습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약간의 격노와 공격적인 질문은 다소 낯선 광경일 수 있지만, 행정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공직사회의 긴장도를 높이는 건 필수불가결하다.
대통령실에서 기획된 생중계 신년 업무보고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공직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이상, 이젠 이번 정부의 공직사회 개혁은 하나의 당면 과제가 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생중계하고, 아무리 강한 질책을 해도 현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해수부를 마지막으로 신년 업무보고는 끝났지만, 시즌2가 예고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6개월 뒤 새로운 방식으로 업무보고를 해보자고 제안함으로써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통해 소통을 강화해야 공직사회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평가가 있다”며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했지만, 대통령의 자성과 준비도 더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정책이 된다. 그래서 즉흥은 위험하고, 준비되지 않은 발언은 혼란을 낳는다. ‘환단고기’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촉법 소년 연령 하향 검토’ 등 평소 잘 알고 자신 있는 분야라고 해서 즉흥적으로 지시를 쏟아내며 국정에 혼선을 초래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언어가 반드시 절제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괜히 지엽적인 것이 논란으로 부각되면서 꼬투리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강한 리더십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한 번 던진 방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이번 업무보고가 ‘소통의 출발점’으로 기록될지, ‘정치적 장면’으로 소비될지는 대통령의 실행 의지에 달렸다. 시즌1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이에 자만한 채 시즌1을 답습하는 시즌2를 국민은 원치 않는다.
시즌2에서는 대통령이든 공직사회든, 좀 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한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cornie@busan.com
2025-12-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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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어서오세요, 해양수산부
내일이다. 해양수산부가 23일 개청식을 열고 ‘부산 시대’를 시작한다. 해수부는 1876년 부산항이 열린 지 150주년이자, 개청 30주년인 2026년의 첫 태양을 부산에서 맞이한다.
해수부 부산청사 개청을 앞둔 지난 주말 저녁, 부산 동구 산복도로의 야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산복도로에서는 해양수산부 부산청사의 간판이 환하게 켜진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해수부 청사 옆으로는 부산 북항과 부산역, 부산항대교가 펼쳐졌다. 이어 부산을 지켜온 부산 앞바다가, 그리고 하늘의 별빛이 땅에 내려온 듯한 산복도로 주택가의 불빛이 켜져 있었다. 산복도로는 150년 전 부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듯 했다.
부산은 지난 2일 ‘대한민국 해양수도’가 됐다.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1876년 개항 이후 대한민국을 세계로 잇는 관문이 된 부산이 149년 만에 해양수도로서의 지위를 얻은 순간이었다.
해수부 이전은 부산에 긍정적인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800명이 넘는 해수부 직원들이 부산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청사 인근 상권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임대 팻말이 나부끼던 상가에는 한곳 한곳 불이 켜지고 있다. 청사 인근 한 단골식당 주인은 “계절은 겨울인데, 마음은 봄이다”며 “해수부 손님들에게 뜨끈하고 맛있는 밥으로 대접할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해수부 부산 이전이 일으킨 파동은 더 커져야 한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수도권에 집중된 해양·수산·해운물류 산업의 중추를 ‘현장’으로 옮기는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이다. 다양한 분야의 현장 목소리가 해수부의 정책에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것이다.
정책과 현장은 결합돼야 시너지가 발생한다. 이미 세계 주요 해양 강국들은 정책 결정과 현장이 결합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들 국가의 체제는 우연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얻은 결과물이다. 덴마크는 수도인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블루 덴마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덴마크는 해운, 항만, 조선, 해양 기자재, 해양 금융 등 모든 해양 산업군을 묶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코펜하겐에는 해양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와 세계 최대 해운 선사인 머스크의 본사가 한 곳에 있다. 해운 분야 금융 기관도 함께 한다.
프랑스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 마르세유는 지중해의 관문 항만으로, 프랑스 대표 해운사의 본사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정책과 금융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역시 항만, 해운사, 해운 금융, 해사 서비스를 한데 모아 도시의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 도시의 항만은 단순한 하역 공간이 아니라 산업과 도시를 움직이는 엔진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부산은 이들 나라를 뛰어넘은 항구 도시다. 부산항은 이미 환적화물 처리량 세계 2위, 컨테이너 처리량 세계 7위, 항만 경쟁력 순위 4위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 해운사의 본사와 공공기관, 선박 금융기관은 서울과 세종에 있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오고 일부 해운사가 부산으로 본사를 옮겼지만, 여전히 주요 해운 기능은 서울이 중심이다.
해수부가 부산에 온 만큼 부산은 이제 ‘정책 실행 도시’에서 ‘정책 설계 도시’로서 진화해야 한다. 해수부의 해운·항만·물류·수산 정책이 여러 공공기관, 해양금융 기관·기업에 의해 직접 집행되는 체제를 부산에 정착시켜야 한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서의 기능을 갖추려면, ‘모든 해운 관련 의사결정은 부산에서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덴마크의 ‘블루 덴마크’를 뛰어넘는 ‘블루 부산’ 프로젝트가 추진돼야 한다.
‘블루 부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1위 해운기업인 HMM을 비롯한 대형 업체들의 부산 이전이 필요하다. 국내 1위부터 10위 해운기업 중 부산에 본사를 둔 업체는 단 두 곳뿐이다. 해운사의 이전은 선박금융, 해상보험, 해사법률 등 수많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해운 강국인 덴마크와 싱가포르 등은 모두 해운사의 집적화에 성공했다.
대형 해운사들의 부산 이전은 곧 해양 전문 인재 양성의 근간이 된다. 부산은 부산대, 국립부경대, 국립한국해양대 등 인재 양성을 위한 좋은 터전을 갖추고 있다. 지역 인재들이 해운사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이들이 부산의 해양 비즈니스를 키우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해양금융도 ‘블루 부산’에 날개를 달아줄 분야다. 매년 글로벌 선박 금융 거래액이 수백조 원에 이른다. 해양금융은 세계 금융중심지를 노리는 부산이 도전해야 할 미래 먹거리다.
10년 뒤, 부산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한다. 부산항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길 기대한다.
김한수 편집부장 hangang@busan.com
2025-12-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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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논란
정쟁이 끊이질 않는 정치권에 최근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이 헌정질서를 위협한 중대 범죄인 만큼 기존 사법 시스템만으로는 국민적 의혹과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내란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에 반발하는 진영과 법조계 일각은 “사법부를 특정 사건에 맞춰 재편하는 위험한 선례”라며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당은 사법 불신 해소와 신속한 정의를 내세운다. 내란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전복하려 한 범죄로 현재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전담재판부를 두면 내란 관련 사건을 한 재판부가 집중 심리하고, 쟁점 정리와 증거 판단을 일관되게 하며 불필요한 지연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민의힘 등 반대 진영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의 독립성과 법관의 자연적 배당 원칙은 사법 신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파급력이 극도로 큰 사건을 위한 별도의 재판부를 설치하는 순간, 사법부는 정치적 요구에 따라 구조를 바꾸는 기관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내란이라는 단어 자체가 강한 정치성을 띠는 만큼, 전담재판부는 출범과 동시에 공정성 논란과 결과 예단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세운다.
최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드러났다. 여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 도입에 대해 전국 법관 대표들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사법개혁 논의에 법관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 다수는 “사건의 중대성만으로 재판부 신설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미 현행 사법체계 안에는 합의부, 전문재판부, 대법원 전원합의체 등 중대하고 복잡한 사건을 다룰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최근 열린 대법원 공청회에서도 이런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11일 대법원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났는데 내란 재판이 한 사건도 선고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별법이) 처분적 법률(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라고 곧바로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배당에 관해서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 특별법 제정의 계기를 없애는 것이 왕도”라고 말했다.
내란 전담재판부가 예외적으로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낸 참석자들도 있었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내란 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사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정 위원장은 “특정 정치적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입맛에 맞는 특정 성향의 판사들로 구성된 전담 재판부를 만든다면, 그 재판부에서 내려진 판결을 과연 국민들이 공정한 법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패소한 쪽에서는 정치적 판결이라면서 불복할 것”이라며 “사법 불신을 넘어서 국론 분열의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이라 지적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만약에 내가 재판 당사자가 됐을 때, 사건 배당에 어떤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오는 어떤 특정 판사가 담당한다면 그것에 승복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란 전담재판부 안은) 구체적인 시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현 재판부에 대한 압박용, 경고용 이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내란 재판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과 정해진 절차에 사법이 이루어진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제도는 한 번 정치의 언어에 포획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 이번엔 내란 사건이지만, 다음엔 또 다른 ‘중대 사건’에 대해 같은 논리로 특별한 재판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선례는 결국 사법의 일반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정의는 속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절차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내란전담재판부 논의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당위가 아니라 헌법적 기준에서, 지금의 욕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사법 신뢰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2025-12-14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