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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필공’과 부산대병원
오는 20일 국립대학병원 소관 부처가 기존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변경된다. 그동안 국립대병원의 관리·감독은 교육부가, 지역·필수의료 정책은 복지부가 맡았다. 11일 국무회의에서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시행령과 국립대학치과병원 설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의결됐다. 소관 부처 이관으로 복지부는 국립대병원과 보건의료 정책의 연계성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역 국립대병원이 교육기관으로서 자율성은 유지하면서 지역·필수·공공의료 핵심 거점병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정과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립대병원 종합적 육성방향을 지난 6월 밝힌 바 있다. 국립대병원을 지역 내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으로 육성해 위기에 빠진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찾아가는 지역 환자들의 ‘상경진료’ 비용이 연 4.6조 원에 달한다. 수도권 의료 쏠림과 지역 의료 인프라 약화가 맞물려 돌아가며 지역의료의 위기는 더 심화한다.
지역의료 중심축 역할을 하는 국립대병원도 마찬가지다. 정부 발표 자료를 보면 지역 국립대병원은 전문의 수·첨단의료기기·연구실적 등에서 수도권 대형병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국립대병원 임상·연구·교육·시설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결과이다. 복지부는 지역 국립대병원이 시설·장비 노후화, R&D 인프라·인력 부족, 만성적 인력난과 필수의료 인력 단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이 주도하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와 지역 의료 안전망을 구축해 지역 주도 성장을 이끌겠다고 공언했다. 우수한 의료 인력이 국립대병원에 정착할 수 있도록 총인건비와 채용제도를 개편하고, 중증·고난도 진료역량 강화를 위한 시설·장비의 첨단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응급·모자·심뇌·외상·어린이 등 필수의료센터를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지역 의료 인재 양성을 위해 국립대병원 교육·수련 인프라를 확충하고, 권역단위 수련거점 기능 강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부산에서는 부산대학교병원이 국립대병원 육성 정책의 시행 대상이 된다. 부산대병원은 1956년 부산대학교 의대 부속병원으로 개원했다. 1979년 본관 개관을 기준으로 잡아도 50년 가까이 되어 시설 노후화가 심각하다. 과거에는 청진기만 있으면 환자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수 영상장비부터 최첨단 로봇수술·암 치료 장비까지 도입하려면 공간 확보는 필수다. 전문진료센터를 건립하려 해도 현재 상태로는 지을 공간이 없다는 것이 현장의 이야기다. 실제 부산대병원을 이용해 보면 영상 촬영을 위해 건물 이곳저곳을 복잡하게 이동하고 병동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에 부산대병원은 2023년부터 ‘지역완결형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권역책임의료기관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심각한 공간 협소·인프라 노후화 문제 해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현재 행정·사무공간으로 사용하는 S동을 재건축하는 1단계, 본관 지하와 도시철도 토성역을 바로 연결하고 외래연결동을 증축하는 2단계, 나머지 병동을 현대화하는 3단계로 진행된다. 지난 3일 예비타당성조사 재정투자평가 분과위원회 종합평가가 완료돼, 부산대병원은 이달 말로 예정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기존 재활의학센터·통합암케어센터·융복합연구센터·국제진료센터 강화에 더해, 24시간 소아응급 진료가 가능한 어린이 통합진료센터·고령화 시대에 맞춘 노인전문질환센터·최첨단 시뮬레이션센터까지 새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시뮬레이션센터는 의사·간호사 등 지역 의료인 육성의 장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공공보건의료와 중·소형 의료기관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 중환자와 보호자들이 입퇴원마다 치르는 주차장 전쟁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지역·필수·공공의료 살리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만큼 ‘지필공’ 의료 위기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지난달 부산 상급종합병원 필수의료과 의사 인력 부족을 취재하며 마주한 지역·필수의료 현장은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지역완결형 의료 체계 구축의 시작점은 의사와 환자가 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 사업은 지역 국립대병원 육성이라는 정부 정책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단순히 한 병원을 위한 사업으로 치부하거나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한 첫 단추로 생각해야 한다. 국민이 어디에 살든 골든타임 안에 수준 높은 진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지역에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2026-08-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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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레일에 T를 더하면
‘50TH WEDDING ANNIVERSARY, JUNE 8 1996’(50번째 결혼기념일, 1996년 6월 8일).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소도시 컬럼비아의 한 벤치에 적힌 문구다. 사연의 주인공은 마을의 토박이 리드(Reid) 할아버지·할머니 부부. 해외연수 중이던 지난해 어느 봄날, 낡은 나무 벤치 등받이에 쓰인 글귀를 만났다. 그 아래엔 더 선명한 한 줄이 추가돼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70주년, 2016년 6월 8일’. 미국판 백년해로 사연만큼이나 눈길을 끈 건 벤치가 설치된 장소 ‘MKT 트레일’이다. 컬럼비아 주민들이 매일같이 이용하는 이 산책로는 원래 같은 이름의 철도회사가 운영하던 기찻길이었다.
컬럼비아의 자랑 MKT 트레일은 미국에서 폐선 철로를 산책로와 자전거길로 전환하는 정책, 이른바 ‘레일스 투 트레일스(Rails to Trails)’의 선도 프로젝트로 추진됐다. 이름과 달리 이 프로젝트는 ‘레일(Rail)’에 알파벳 ‘T’ 하나 더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1978년 MKT 철로가 폐선하자 컬럼비아시는 토지 소유주를 상대로 지난한 협상과 법적 분쟁을 이어가며 철도 길을 조금씩 사들였다. 1982년 우선 일부 구간만 산책로를 개통했고, 이후 10년이 흘러 지금의 MKT 트레일이 완성됐다. 지구 반대편 미국의 산책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 고장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다. 부산에는 한 세기 넘도록 도시 한가운데를 단절시킨 철길이 있다. 1905년 개통한 ‘경부선’이다. 최근 닻을 올린 민선 9기 전재수호는 인수위 백서에 93개 추진과제 중 하나로 ‘경부선 지하화 및 지상부 그린웨이 조성’ 공약을 담았다. 기존 철로를 지하화하고 상부를 공원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과연 100년 묵은 잿빛 기찻길이 녹색 산책길로 변신할 수 있을까.
경부선 지하화 공약은 8년 전, 민선 7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거돈 당선인 인수위는 일명 ‘철도재생 뉴딜사업’라는 이름으로 부산진역부터 구포역까지 경부선 13.1km 구간을 땅속으로 집어넣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철도 지하화로 생긴 지상 공간은 공원으로 조성하고, 철길 주변 낙후 지역은 광범위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다는 복안이었다. 2027년까지 사업을 완공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이후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몇 차례 수정을 거쳤다. 그러다 박형준 시장 시절인 지난해, 부산역과 부산진역 사이 2.8km 구간이 국토부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선도사업’에 선정되며 비로소 추진 동력이 생겼다. 하지만 계획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하화’라 부르기 힘든 수준이다. 기존 철도 위에 인공지반을 조성해 지붕처럼 덮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민선 9기 인수위는 ‘무늬만 지하화’인 인공지반 방식이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며 사업 방향 재검토를 제안했다. 아울러 부산진역부터 가야역까지 4.6km 구간에 대한 지하화 계획을 추가로 담았다.
전재수 시장은 8년 전 밑그림에 그쳤던 계획의 첫 삽을 뜰 수 있을까.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사업비다. 철도 지하화를 통한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서울 ‘경의선 숲길’의 경우 가좌역과 용산역 사이 6.3km 구간을 지하화하는 데만 국비 4500억 원이 들어갔다. 주머니 사정이 훨씬 열악한 부산으로선 국가 지원 없이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비 확보를 위해 지금부터 시민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내고, 면밀한 실행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수 km에 달하는 철로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은 일견 북항 돔구장보다 더 먼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디서나 살기 좋은 균형성장 도시’ ‘모두가 건강한 시민행복 도시’ ‘미래를 열어가는 혁신경제 도시’ 등 민선 9기의 도시 목표를 고려하면 최우선 순위로 놓아 마땅한 과제다.
앞서 소개한 MKT 트레일은 반세기 가까이 도시의 핏줄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트레일 양쪽, 모세혈관처럼 뻗은 샛길을 통해 시민들은 앞마당처럼 산책로를 오간다. 걷는 이, 뛰는 이, 페달을 밟는 이가 뿜은 땀과 노폐물을 떠안고, 신선한 산소와 에너지를 불어 넣는 ‘정맥’이다. 공교롭게도 부산역에서 구포역까지 경부선 길이가 MKT 트레일과 비슷하다. 고작 인구 13만 도시의 산책로를 300만 부산 시민이 못 가질 이유가 없다. 철로를 걷어낸 자리에 얼마를 들여 무엇으로 채울지는 시민과 함께 고민하면 된다. MKT 트레일처럼 자연의 흙길로 비워둔 채, 간간이 쉬어갈 의자와 음수대 정도면 족하다. 리드 할아버지·할머니 같은 시민 기부금으로 시설물을 갖추면 예산 절감과 참여 행정이란 ‘왕복 티켓’을 잡을 수 있다. 단절에서 연결의 길로 거듭나는 경부선. 그 길 위를 걸으며 백년해로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BTS 지민·정국의 인사말이 담긴 벤치를 보고 싶다.
2026-08-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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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인디언식 기우제'라도 지내라고?
부울경은 현재 용광로다. 오죽하면 슈퍼급 태풍을 고대할까. 우리나라 122년 기상 관측 사상 하루 최고 기온이 3회나 갱신됐다. 양산시 상황이다. 양산시 일 최고기온은 지난달 31일 41.4도로 122년 만에 일 최고기온 기록을 세운 뒤, 지난 1일에는 41.6도로 그 기록을 갈아치웠고, 다음날인 2일은 42.5도로 신기록을 세웠다. 전국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면 ‘자랑’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라야 정상이다. 하지만, 양산시는 울상이다.
기상청과 양산시는 혹시나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고장났을까 봐 긴급 점검을 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양산시에서 관측된 역대 최고기온 기록이 신뢰할 만한 기록인지 확인하고, 관측자료의 정확성과 장비의 정상 작동 여부를 최근 확인한 것이다. 아쉽게도 기계는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었다.
점검 결과 장비의 설치 기준인 지면에서 1.2~2m 높이를 잘 지키고 있었고, 운영 기준도 준수해 관측자료의 신뢰성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도로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살수차가 동원됐다. 양산시가 도로 살수를 시작하자, 인근 밀양시 주민들도 마음이 급했다. “우리도 더운데, 왜 없냐”란 주민들의 원성에 밀양시도 살수차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사실 경남 무더위의 대명사는 밀양이었다. 영화 ‘밀양’으로 전국에 알려진 밀양은 한때 경남에서도 기온이 높기로 소문이 나 한자어 그대로 ‘볕이 빽빽한 고장’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 더위의 대명사를 이번에 ‘양프리카’(양산이 덥다고 아프리카에 빗댄 표현)에 뺏긴 밀양의 마음이 시원할지 섭섭할지 궁금하다.
더위가 특정 고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울경 대부분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18개 시군 가운데 14개 시군이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뜨겁다. 폭염중대경보는 하필 올해부터 기상청이 도입한 폭염특보의 최상위 경고 단계이다. 기상청은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폭염에 대응하여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이 제도를 적용했다. 기존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태에서 일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이거나, 일 최고기온이 39도 이상이 되는 조건 중 하나라도 하루 이상 예상될 때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다.
폭염경보는 일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지속할 때 발령하는데 그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폭염중대경보에 밀양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일 어르신들의 외출 자제를 당부하는 동장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시골집 오래된 에어컨이 고장 났다. 찬 바람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상태라고 했다. 노모는 혹 실외기가 폭염에 뜨거워서 그런지 모르겠다며 마대로 그늘까지 만들어 주었으나 상태는 영 시원찮았다. 이대로 여름을 나겠다고 교체를 마다했지만, 신형 에어컨을 잽싸게 온라인 구매했다. 이틀 만에 설치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는데 설치가 하루 미뤄졌다. 처음엔 이대로 여름을 지내겠다고 고집했지만, 배송이 하루 늦어지자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이 완전 이해됐다.
폭염의 지속에는 가뭄이 한몫하고 있다. 대지의 열기는 비로 식혀야 하는데 비가 도무지 오지 않는 것이다. 가물어도 너무 가물다. 통계도 가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올해 경남의 누적 강수량은 최근 6개월 동안 556mm였다. 최근 5년간 같은 기간 평년 강수량은 853.8mm여서 평년의 65.1%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옛사람의 방식이라도 따라야 했던 모양이다. 지자체 곳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시작은 창녕군에서 했다. 지난달 28일 창녕사직단에서 성낙인 창녕군수가 초헌관, 창녕군의회 박재홍 의장이 아헌관으로 하늘에 비를 구하는 기우제를 지냈다. 폭염 대명사가 된 양산시도 이에 질세라 지난달 30일 가야진사에서 나동연 양산시장이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 이후 양산은 단 10분간이지만, 비가 왔다고 한다. 조금만 더 주시지. 지난 3일 차석호 함안군수도 함안 충의공원 당산유적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그래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라도 지내자 ‘인디언식 기우제’는 비가 내릴 때까지 지낸다고 하니.
다행인 것은 경남의 상수도 상황은 아직은 건재하다.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자원이 있고, 도서 지방도 수차례의 가뭄에 대비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산간 지방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물차가 출동하고, 연일 폭염과 가뭄 대책 회의가 진행되지만, 하늘은 좀체 비를 내려 주지 않는다. 오존경보, 녹조경보도 일상화 됐다.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현상이다. 지난 지방선거 기간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다양한 기후공약을 제안했지만, 지차제장 후보의 기후공약 제시 비율은 30%에 불과했다. 낙제점이다. 탄소다배출 지역인 경남의 획기적인 기후 대응 정책은 토건성 개발 공약에 밀렸다. 하늘은 이 사실을 다 안다. 폭염에 따른 이 고통은 그래서 우리 탓이다.
2026-08-0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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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가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이 아이들이 크면, 뭘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AI 때문에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10년 혹은 20년 뒤의 미래가 상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격증이 있는 직업을 구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다. 미래 세상에선 의사나 법조인도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세상에선 어떤 직업을 가져야 잘 살 수 있을까. AI의 파급력을 예측할 수 없기에, 아무도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벌어졌다. 인류는 알파고의 위력에 충격을 받았지만, 당장의 큰 변화는 없었다. 대중들도 AI가 대단한 기술이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일상은 그대로였다. 그러다 챗GPT가 나오면서 AI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늘고, AI를 응용한 각종 서비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0년 뒤 2026년 지금은 세상의 중심에 AI가 있다. 여름 휴가 스케줄을 짤 때도 AI와 의논하는 게 일상이다. AI 때문에 전력 부족 우려, 메모리 쇼티지 등이 발생하고 주식시장과 관련 산업이 요동친다.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확인되듯 AI는 타깃을 추적하고, 침투 계획을 세우는 등 전쟁의 일부가 됐다. AI와 무관한 산업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돌아보면 특정 기간 AI가 가져온 변화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AI는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AI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 2일 경남 양산 낮 최고기온이 2일 42.5도까지 치솟았다. 기상 관측 122년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이라고 한다. 숨을 쉬기 힘든 더위다. 영남 지방은 장마도 사라져, 무더위가 더 치명적인 것 같다. 가뭄에 무더위에 농작물 피해도 심각하다.
올해만 이런 것이 아니다. 지난해도, 그전 해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무더위는 심했다. “올여름이 남은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도 생겼다. 장마다운 장마가 사라진 것도 오래전 일이다. 아열대성 스콜이 일상이 됐다. 극단적인 추위가 오기도 한다. 겨울엔 북극이 따뜻해지며 기류 변화가 생긴다. 이때 북쪽의 찬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와 이상 한파가 발생하는 날들이 잦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이 아니다. 유럽은 여름마다 거대한 찜통이 되는데, 매년 찜통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심각한 산불이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나고 있다. 원인은 분명하다.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이상해졌다. 온난화의 영향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이상한 기후가 더 자주 더 격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헝가리 유일의 팍스 원자력 발전소가 멈췄다. 가뭄과 폭염으로 다뉴브강의 수위가 떨어져, 원전을 식힐 냉각수 흡입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전들도 해수면 기온 상승으로 냉각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란이 있다. 태양광도 너무 더우면 발전 효율이 떨어진다. 이상기후로 바람이 줄면, 풍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등은 탄소 배출이 없다는 게 장점인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대안 에너지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돌아보면 온난화는 산업화 때부터 매년 기후의 안전성에 ‘실금’을 추가하고 있다. 처음엔 금이 가는 줄 몰랐고, 금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겼다. 이상기후도 때를 넘기면 다시 살 만한 계절이 돌아오니, 문제의 심각성을 금세 잊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장마는 사라졌고, 양산은 42.5도를 찍고, 낙동강은 녹조로 뒤덮이는 세상이 왔다. 계속 실금이 더해지면 그릇이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든다.
AI가 그러했던 것처럼, 특정 시점만 놓고 보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없다. 작은 변화가 누적돼 체감이 가능해질 때, 그제야 세상이 뒤집혔다는 걸 알게 되는 듯하다. 기후위기, 지구온난화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인류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기 시작할 때, 그제야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걸 실감할지 모른다. 늦지 않기를 바란다.
분명한 건 이 추세라면, 10년 뒤 혹은 20년 뒤 지구온난화는 AI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AI는 삶의 질과 관련됐지만, 지구온난화는 생존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상기후가 극단화되면, AI도 없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종종 해본다. “이 아이들이 컸을 때, 지구와 인류는 안녕할까?”
2026-08-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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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동남권 순환철도, 또 전철 밟나
“지방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시민들이 서명운동에 나서고 정치권은 정부를 찾아다니며 사업 필요성을 읍소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입니까?”
최근 경남 양산의 한 기업가에게서 들은 푸념이다. 그는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이하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통과를 위해 직원들에게 서명지를 나눠주며 참여를 독려했다고 한다. 회사 경영에 전념해야 할 기업인마저 국가사업의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서명운동에 나서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양산을 시작으로 울산과 김해, 창원까지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통과를 촉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지자체와 정치권, 경제계도 한목소리로 예타 통과를 촉구한다. 정치권은 정부 여러 부처를 찾아 사업 필요성을 설명하고, 시민들은 서명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지방의회도 가세했다. 최근 경남도의회는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통과와 적기 개통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지난해에 이어 다시 발의했다. 예타의 조속한 통과는 물론 기본계획 수립과 안정적인 재원 확보까지 정부에 요구했다. 지방의회마저 같은 사업을 두고 거듭 정부에 건의해야 하는 현실은 국가균형발전 추진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불과 1년 전 부울경 광역철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당시 부울경 지역 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한국개발연구원을 잇달아 찾아 사업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경제계와 지역 언론도 힘을 보탰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사전타당성조사(사타)에서 사업성을 인정받았지만, 예타 과정에서 사업비가 크게 늘면서 경제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 발표도 1년 넘게 미뤄졌고, 노선 축소와 사업 무산설까지 나돌았다. 결국 경제성뿐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적 가치(?)가 반영되면서 예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부울경 광역철도에 이어 동남권 광역철도도 예타 문턱에 서 있다. 동남권 광역철도는 울산 KTX역과 양산 북정, 김해 진영을 연결하는 총연장 54.6km, 사업비 3조 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이다. 부산~양산 웅상~울산 광역철도와 부전~마산 복선전철, 양산도시철도를 잇는 마지막 순환축으로 ‘부울경 1시간 생활권’을 완성할 핵심 교통망이다.
특히 양산에는 의미가 크다. 오는 12월 양산도시철도가 개통하고, 앞으로 부울경 광역철도와 동남권 광역철도까지 연결되면 부산과 울산, 김해를 연결하는 동남권 광역 교통의 중심축으로 도약하게 된다. 산업과 물류, 관광은 물론 정주 여건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부울경은 하나의 생활권으로 재편되고 있다. 시민들은 도시 경계를 넘어 출퇴근하고 기업들은 행정구역이 아닌 교통 접근성을 기준으로 투자와 입지를 결정한다. 반면 철도망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광역철도는 주민 편의를 넘어 지역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 기반 시설이다.
그러나 상황은 또다시 부울경 광역철도를 떠올리게 한다. 동남권 광역철도 역시 사타에서 부울경 광역철도보다 높은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사비 상승 등으로 예타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반기로 예정됐던 결과 발표도 연말로 미뤄졌다. 결국 시민들은 서명에 나서고 지자체는 캠페인을 벌인다. 지방의회는 거듭 정부에 건의하고 정치권은 또다시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부울경 광역철도가 겪었던 과정이 동남권 광역철도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타 제도다. 경제성만으로 국가 기반 시설을 평가한다면 수도권은 더 성장하고 지방은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세운 ‘5극 3특’ 국가균형발전도 이를 뒷받침할 광역 교통망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동남권 광역철도는 단순히 철도를 놓는 사업이 아니다. 부울경 800만 시도민을 하나의 생활권과 경제권으로 연결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드는 국가 기간 교통망이다.
예타는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과제는 부울경 광역철도 때처럼 시민들이 나서고 지방의회가 건의하고, 정치권이 정부를 설득해야만 국가사업이 추진되는 구조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역 발전은 정부의 ‘배려’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정부는 답해야 한다. 동남권 광역철도 역시 부울경 광역철도의 전철을 밟게 할 것인가. 국가균형발전은 지역의 절박한 호소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 있는 결정으로 완성된다.
2026-07-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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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권력의 칼
대통령, 고위 공직자, 정치인 등 권력의 말과 정책은 칼이다. 그 칼은 국민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국민의 삶을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권력의 칼은 무거워야 한다. 칼집에서 쉽게 나온 칼은 국민의 삶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 권력층의 칼은 가볍다. 그들은 칼을 쉽게 꺼낼 줄만 알지, 부작용이 생겼을 때 성숙하게 거두거나 책임지는 법은 모른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처럼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발 빼기 일쑤다. 늘 그런 식이다.
최근 불거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사태가 대표적이다. 칼의 가벼움이 불러온 ‘참사’다. 레버리지 ETF는 하루 수익률, 하루 변동률의 2배를 추정하는 상품으로 매매 변동성 확대 등 각종 부작용이 예견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검증 없이 속도전으로 고위험 상품을 허용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불과 한 달 반 만에 8조 원이 넘는 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수익률도 암담했다. 한 상품은 4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막대한 손실을 떠안은 건 대다수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해외 언론마저 “정부의 대표적 정책 실패”라며 조명했다.
그러나 정작 속전속결 출시를 주도했던 고위 공직자는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장도 “그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후회한다”라고 면피성 발언만 내놨다. 레버리지 ETF로 인해 국내 증시가 ‘투기판’으로 전락하고 피해액만 수조 원에 이른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국내 증시에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투자자 처지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며 태도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글을 연일 개인 SNS에 올렸다. 언론이나 비판론자들과 거침없이 설전을 벌였다. 무겁고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정책적 메시지를 가볍게 다뤄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부동산 정상화는 코스피 5000피, 계곡 정비보다 쉽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겠다”며 거침없이 공언했다.
그 칼들은 오만이었을까? 가벼움이었을까? 아니 자신감이었을까?
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공언대로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서울 집값은 급등했고 신고가를 경신했다. 풍선 효과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전월세 부담 등으로 실수요자 주거 불안으로 이어졌으며 무엇보다 이 대통령 자택 매각 과정에서의 ‘17억 근저당 설정’ 논란으로 정책 신뢰도 하락 문제도 제기됐다. 이 대통령이 가벼운 태도로 시장을 상대하다, 과거 문재인 정권의 실책을 되풀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사법 개혁을 내건 보완수사권 폐지 사태는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권력의 칼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거대 여당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해 ‘검수완박’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경찰의 부실·은폐 수사 의혹이 드러난 ‘장윤기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은 견제 없는 경찰의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 특히 보완수사권이라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왜 필요한지 증명했다.
그럼에도 거대 여당은 ‘보완수사권 유지’라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며 강성 지지층의 압력에 갇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강행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권력이 강성 당원들 눈치를 보느라 엉뚱한 곳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제2, 3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한국 권력층의 말과 정책이 가벼운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와 행정 시스템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실패를 평가하고 책임지게 만드는 시스템이 권력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공직자들은 정책의 장점만 부각하고 성공만 귀가 아프도록 홍보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고 책임자를 가려내는 과정은 늘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다. 이런 정책 실패의 후폭풍과 막대한 비용은 오롯이 국민이 감당한다. 국민은 공직자의 가벼운 칼에 피 같은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공직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책임 윤리’를 꼽았다. 자신이 내린 정책 결정이 가져올 부작용과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태도다. 그것이 최소한의 염치이다. 칼을 칼집에서 꺼낸 자, 그 칼이 가져온 결과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맡긴 권력의 무거운 무게다.
김형 편집부 차장 moon@busan.com
2026-07-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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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내 검색 자료로 AI 교육하는 빅테크
구글이 지난달 ‘검색 서비스 설정’ 관리 방식을 ‘업데이트’했다. 구글은 “검색 서비스 기록에 사용자의 설정에 따라 사용자의 상호작용에서 나온 미디어(이미지, 오디오 등)가 포함될 수 있다”면서 “서비스를 제공, 개발, 개선(예: 생성형 AI 모델 학습시키기)하고 인적 검토자의 도움을 받아 구글, 사용자, 일반 대중을 보호하는 용도로도 사용자의 기록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무슨 말일까.
전문가들은 “일반 사용자의 검색 내용이 구글의 AI를 학습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구글 렌즈로 이미지를 검색하거나 음성, 영상을 업로드해 구글 서비스를 사용하는 행동이 구글의 자사 AI 학습 자료로 사용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런 설정은 사용자가 직접 변경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구조여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구글의 개인 검색 정보 활용에 대해선 빅테크 기업의 AI 경쟁이 심화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온라인 자료나 출판 자료 등을 통해 AI를 학습시켰던 빅테크 기업은 AI 기술력의 차별화를 위해 자사 서비스 이용자가 생산하는 개인 데이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운영하는 메타도 개인 사용자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존의 음성 AI 서비스 알렉사의 경우 ‘음성 녹음 전송 안 함’ 옵션이 제외돼 개인정보 보호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AP는 아마존 알렉사가 지난해 3월부터 사용자의 음성 녹음을 클라우드에 전송하지 않는 옵션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의 이런 결정은 데이터의 무분별한 수집을 허용하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AI탭의 대화 내용을 AI 학습에 사용한다. 네이버는 ‘검색 고객센터’의 ‘AI탭 서비스 개인정보 처리 안내’를 통해 “회사는 이용자가 AI탭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입력하는 내용(질의, 문서 또는 이미지, 음성, 영상 파일 등)과 서비스에서 생성된 답변(검색 결과, 정보, 자료, 이미지, 음성, 영상 등)을 ‘대화 내용’으로 수집해 서비스 개발·제공 및 향상, 사용 경험과 관심사에 맞는 답변 제공, 인공지능 기술 적용 등에 이용한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AI탭 ‘대화에서 메모리 저장’ 설정이 활성화된 경우, 메모리에는 이용자가 대화를 통해 직접 입력한 가족구성, 기념일, 관심사, 선호도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반면 카카오톡은 대화내용을 AI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은 ‘카톡사용 설명서’ Q&A에서 ‘내(사용자) 대화를 저장해서 보고, 학습하는 데 활용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개인 디바이스에 있는 대화 내용만을 이용하며, 이용된 데이터는 기능 제공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저장이나 학습, 제3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빅테크 기업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부 사용자들은 개인정보 보호에 특화된 ‘대체 서비스’로 옮겨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미국 IT매체인 테크크런치는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 검색엔진 덕덕고(DuckDuckGo) 가입자가 구글의 검색서비스 설정 변경 이후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덕덕고는 검색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광고도 차단해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서비스다. 덕덕고는 자체 AI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 다른 서비스와 달리 계정을 만들지 않아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사용자와의 대화 내용도 30일 내에 자동 삭제된다고 강조한다.
사용자 데이터의 AI 학습에 대해 정부는 규제 완화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3일 발표한 ‘제3차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2027~2029년)에서 “AI 환경을 유연하게 반영하는 개인정보 규율체계로 전환”하겠다면서 “안전조치를 전제로 AI 학습에 불가피한 개인정보 원본 활용을 허용하는 AI 특례를 도입”하는 방침을 밝혔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에 대해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I 학습이 ‘과학적 연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별도의 AI 특례 도입 의도를 밝히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모습이다.
AI 무한 경쟁 시대에 사용자 데이터 활용을 모두 막을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개인이 내 정보 활용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산출된 가치를 정보주체에게 돌려주는 가치환원 체계 수립·확산”하겠다는 정부의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 취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데이터 통제권과 데이터 사용 보상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07-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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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토큰증권,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북항 돔구장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나 토큰증권(ST)을 시민, 야구팬들에게 발행하면 어떨까요. 국민참여형성장펀드 활용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금융권의 고위 인사가 북항 돔구장과 관련해 이런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그는 “사계절 복합시설로 개발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그 재원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자산 거래·결제 등 다양한 실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항 돔구장 복합개발이라는 지역 부흥 청사진을 내건 현 시점에서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을 활용한 시민 참여형 금융은 디지털금융 도시 부산의 강점을 활용하는 실현 가능한 재원 조달 모델이다.
토큰증권(ST)은 부동산, 건물, 미술품 등 실물자산의 소유권이나 수익권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증권으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상품이다. 투자자는 이를 소액 단위로 매입해 고가의 실물자산에도 부담 없이 투자하는 조각투자가 가능하다. 북항 돔구장 개발에 접목하면 사업 시행자는 돔구장과 함께 들어설 호텔, 쇼핑몰 등의 미래 임대·운영수익을 바탕으로 토큰증권을 발행해 투자금을 모을 수 있다. 투자자는 지분에 따라 수익을 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나 달러 등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돼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 디지털 화폐다. 이 역시 북항 돔구장에 적용해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경기 티켓과 공연 입장권, 식음료, 굿즈, 주차요금 등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다. 나아가 주변 호텔과 상업시설, 관광지까지 동일한 결제체계를 구축하면 지역 내 소비와 자금 순환을 촉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멤버십, 할인 혜택과 연계해 팬과 관광객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도 있다.
북항 돔구장 개발이 가능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 조달과 건립 이후 안정적인 수익 구조, 운영 기반이 필요하다. 토큰증권은 전자, 스테이블코인은 후자에 활용 가치가 큰 디지털금융이다. 건설 단계에서는 토큰증권을 통해 시민과 야구팬,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고, 완공 이후에는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해 돔구장과 북항 일대의 안정적인 소비 생태계와 운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때마침 국내 최초 조각투자 유통 전담 장외거래소가 부산에서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 BNK금융 등이 참여하는 플랫폼이 본인가를 받으면 북항 돔구장과 같은 대형 개발사업을 토큰증권으로 유동화하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현재 은행권이 제도화에 맞춰 원화 발행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블록체인 특구 부산이 스테이블코인 실증사업으로 서비스 모델을 선도할 수 있다.
북항 돔구장은 그동안 막대한 사업비 조달이 걸림돌로 꼽히며 실현 가능성이 낮게 평가됐다. 하지만 전재수 부산시장 취임과 함께 다시 동력을 얻으며 사업 범위가 복합개발로 확대됐고, 사업비도 기존 1조 3000억 원에서 약 3조 원 규모로 커졌다.
불어난 예산에도 시민들은 단순한 야구장 이상의 의미와 부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북항 돔구장에서 찾고 있다.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양 관련 기관·기업의 집적은 부산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떠나는 청년들의 발길을 붙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다른 지역은 대규모 반도체 공장과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앞세워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부산에도 도시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상징적인 프로젝트가 절실한 이유다.
부산의 달라진 관광 경쟁력은 북항 복합개발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글로벌 관광도시로서 위상도 강화되면서 호텔과 공연, 문화·상업시설을 결합한 복합개발의 사업성 역시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투자를 타진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내 유수의 호텔·리조트 기업과 대기업, 세계적인 공연 기획사 등이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형 투자 물꼬가 트인다면 토큰증권과 스테이블코인이 부족한 사업비를 보완하고,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국민참여형성장펀드도 힘을 보탤 수 있다. 현 제도상 지역 개발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부산시와 정치권이 나서 북항 돔구장을 국가 차원의 핵심 성장 프로젝트로 인정받아 투자 대상에 포함시킨다면 정부 재정과 민간 자본을 보완하는 새로운 재원 조달 방안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컨트롤타워와 실행력이다. 부산시는 투자 의향을 보이는 기업들이 실제 투자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금융을 활용한 재원 조달과 운영 기반 구축 등 흩어진 아이디어를 하나의 전략으로 엮어내는 것도 부산시의 몫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대성 경제부 차장 nmaker@busan.com
2026-07-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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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다시 등장한 '명백한 운명'론의 광풍
지난 4일 85만 발의 화려한 불꽃이 미국 워싱턴DC 밤하늘을 뒤덮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보라. 이란을 보라. 우리는 그들의 군대를 궤멸시켰다”며 특유의 자화자찬을 쏟아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한 자축 행사의 풍경이다. 85만 발의 폭죽은 기네스북에 오를 양이다.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이란의 테헤란에서는 미국·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숨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수천만 이란인은 눈물을 흘리며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이 극과 극의 장면에 세계 각국의 시선이 모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사에서 “미국은 다시 영토를 확장할 것이며, 우리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명백한 운명’은 18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번이 제시한 개념이다. 미국인이 북미 대륙을 개척하고 자유와 문명을 확장할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주장이다. 백인 문명과 영토 확장이 하나님이 부여한 성스러운 권리라는 것이다.
명백한 운명은 미 팽창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아전인수식 이론을 근거로 미국은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 나갔다. 특히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이 명백한 운명론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인디언 이주법’을 통과시킨 뒤 원주민 부족들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몰아냈다. 원주민들은 8000km가 넘는 추방길에 내몰리며 허기와 질병으로 쓰러져 갔다. 이 지옥 같은 행군 여정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 일컫는데, 당시 1만 5000명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잭슨 대통령은 문제적 인물이다.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열세 살의 나이에 미국 독립전쟁의 연락병 역할을 수행하다 영국군에 붙잡히기도 했다.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법률사무소에서 보조생활을 하며 익힌 지식으로 변호사가 됐다. 부동산 투자로 거부가 돼 300여 명에 달하는 노예도 부렸다. 아내의 명예를 지킨다며 ‘결투’를 신청해 상대를 죽이기도 했다.
비엘리트이면서 거칠고 감정적인 인물이 잭슨이다. 또한 백인우월주의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서 그런지, 트럼프가 가장 존경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잭슨의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그를 흠모한다.
또 한 명의 대통령, 윌링엄 매킨리도 트럼프가 롤모델로 삼는 대통령이다. 그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점령하며 미국을 제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최고봉을 ‘매킨리산’으로 되돌려 놓은 것은 매킨리의 팽창주의에 대한 계승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매킨리산을 원주민의 명칭 ‘디날리산’으로 바꿨으나 다시 뒤집어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잭슨과 매킨리를 추종하며 명백한 운명론을 꺼내든 것은 제국주의시대 팽창주의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그는 그린란드 병합 의사를 공공연히 밝혔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삼겠다고 호언했다.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올해 벽두엔 기어코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정권을 붕괴시키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했다. 지난 2월엔 이란과 협상 도중에 난데없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선제 타격하며 중동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얼마 전 부산일보CEO아카데미 강의에서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현 세계를 ‘강대국 국제 정치’란 말로 정의했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이던 미국의 패권이 저물어가고 당분간 미국, 중국, 러시아 세 나라의 입맛에 맞게 세계 질서가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 교수의 말대로 유일 패권국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트럼프의 좌충우돌 행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국제법 존중, 평화적 분쟁 해결, 식민주의 종식이라는 보편적 세계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건국 250주년 기념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이란 전쟁 승리를 외쳤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여전히 포탄이 오가고 있다. 철 지난 제국주의 시대의 낡은 이론을 꺼내 들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소리쳐 봐도 상처뿐인 ‘피로스의 승리’만 남을 지 모른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종전이 확정돼도 트럼프 대통령이 또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알 수 없고, 예전만 못하다 해도 여전히 세계 경제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2026-07-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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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역건설에 안부를 묻는다
“요즘 지역 건설업계 어떻습니까? 많이 어렵지요.”
최근 건설·부동산을 담당하는 경제부 기자를 만난 이들이 하나같이 던지는 질문이다. 최근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계획 인가를 받아 가까스로 경영 정상화 단계로 들어선 지역 중견 건설업체 경영진은 “지역의 상당수 건설사들이 저희 회사가 기업회생을 신청할 그 당시만큼 힘들다. 그만큼 어렵다”고 답을 대신했다.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 주택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빠르게 쌓이면서 지역 주택 건설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부산에 쌓인 미분양 주택이 8000세대를 넘어섰고 이 중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3000세대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0년 전 산 집값이 3배, 5배, 10배로 뛰는 일이 서울에선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부산에서는 10년 전 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내놔도 팔리지를 않는다. 그러니 미분양은 더 쌓이고 주택 시장 불균형은 매달, 매년 더 심화된다.
이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곳이 지역 건설사다. 지역 건설 경기 침체에 더해 금리 부담, 정부 대출 규제까지 겹치며 지역업체의 유동성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건설공사비 지수는 지난 5년여간 30%P(포인트) 이상 치솟았는데, 그만한 공사비 보정을 해주질 않으니 본업인 건설에 손을 대기도 겁이 난다.
실제 지역 건설사들은 공사 물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3년간 부산지역 종합건설업체 기성액을 살펴보면, 2023년 6조 2166억 원이던 것이 2024년에는 5조 629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45%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4조 9256억 원으로 여기서 또 12.5%가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부산 종합건설업체 중 자진 폐업한 건설사 수는 2년 전에 비해 1.5배나 늘었다. 올해 상반기 들어서만 폐업한 업체 수가 28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곳) 대비 40%가 또 증가했다.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셈이다.
지역 건설사 몇 곳 더 사라진다고 호들갑 떨 일이냐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설업은 해당 분야에만 영향을 주는 산업이 아니다. 투자 대비 생산·고용 유발 효과가 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업의 생산유발계수는 1.970으로 서비스업 1.697보다 훨씬 높고, 제조업 1.945보다도 높다. 특히 부산 지역 건설업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전국 시·도 가운데 1위로 건설 부문의 생산활동이 지역 내 전 산업에 미치는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매우 크다. 건설이 무너지면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는 얘기가 괜한 너스레가 아닌 것이다. 지역의 많은 경제 주체들이 건설사 안부부터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은행도 “뭘 해줄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심사가 더 까다로워지면서 지역은행이 할 수 있는 일도 더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건설사들이 그나마 기댈 곳이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 공사다. 업계에서는 이 ‘보릿고개’를 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가덕신공항이나 서부산행정복합타운, 벡스코 제3전시장 건립, 북항 재개발과 같은 대형 공공 공사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동전쟁 발발 후 급등한 공사비를 보정해주지 않아 지역의 참여 업체들이 각각 수십억 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기술형 입찰의 경우 입찰공고일로부터 실제 계약까지 장시간이 소요되지만 그 사이 급격한 물가 상승분을 총사업비에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 인프라의 안정적 완공을 위해서라도 공사비 현실화는 필수 조건이다.
공공 공사에서 지역업체 참여를 더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현재 부산 지역 100억 원 이상 공공 공사에서 지역업체 참여 비율은 20%대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공공기관 발주 시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등의 적용을 받기 때문인데, 정부 발주 공사 88억 원, 국가기관의 경우 265억 원 이상 공사는 지역의무공동도급을 적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공공 공사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사례를 참고해, 지역의무공동도급과 지역제한경쟁입찰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동도급으로 참여하는 지역건설업체에는 일정 비율 이상 직접 시공을 의무화해 현장에서 기술 노하우를 축적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할 필요도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될 때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과 지역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벌어진 격차를 좁히는 일은 시혜가 아닌 정의의 문제다.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6-07-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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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지막 기회
부산 경제를 말할 때 결정적인 두 가지 장면이 있다. 1982년 정부의 대도시 성장억제정책과 1990년대 말 시작된 디지털 대전환이다. 처음에는 도시 성장의 흐름이 꺾였고, 두 번째는 악순환에 빠져 침체가 심화됐다.
부산은 박정희 시대에 수출 주도형 산업화 전략에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러다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서울과 함께 성장관리도시로 지정됐다. 많은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이고 신규 공장이나 창업 기업에는 중과세가 부과됐다. 제조업 기업들이 부산을 떠나 역외로 이전했다. 대기업 없는 부산의 시작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정보화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등장했고, 정부 정책 방향과 민간 투자 모두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중심에서 디지털과 벤처산업 육성으로 이동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서울 개발을 억제하는 정책은 고삐가 풀린 상태였다. IT 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자본을 따라 수도권에 쏠렸다. 부산은 첨단산업을 키우지도 데려오지도 못했다.
두 장면 모두 중앙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제대로 계획하고 이행하지 못한 책임이 크지만, 지방정부도 산업과 정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기업 생태계와 인재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투자나 연구개발보다 전통 서비스업에만 의존했고, 기존 제조업을 혁신하고 사업을 재편하는 데도 더뎠다. 그 결과 부산은 경제 성장의 주도권을 놓쳤고, 기업과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 세 번째 장면이 펼쳐질 참이다.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정부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의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국가 발전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방 주도 성장이라는 방법론도 함께 내놓고 호남권, 충청권, 영남권에서 보고회도 열었다. 권역별로 주력 분야에서 대기업 투자와 정부 집중 지원을 결합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권역별로 투자 규모를 줄세우는 건 의미 없지만, 영남권은 기존 사업을 재탕하는 수준이고 구체성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당장 원전 추가 건설을 말하는 건 우려스럽다. 이미 원전 10기가 운영 또는 계획 중인 동남권에 원전을 더 지을 수 있다는 당국자 발언이 어떤 논의나 합의 과정도 없이 흘러나온다. 이미 위험을 감수하면서 원전을 이고 사는 지역 주민들은 아랑곳없다.
그럼에도 세 번째 장면을 부산 경제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지방정부가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하고 실행을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영남권 312조 원, 도합 1600조 원이라는 선뜻 와닿지 않는 목표가 아니라 부산시의 치밀한 전략과 적극적인 노력이 ‘3대 메가 프로젝트’와 ‘지방 주도 성장’의 과실을 결정한다.
부산시는 대규모 투자를 마중물 삼아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기존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과 다양한 분야의 부품·기자재산업, 그리고 숙련된 현장 인력들의 암묵지는 AI가 디지털 공간을 넘어 물리적 환경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구현하는 데 최적의 자산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첨단사업 전략과 도시공간 전략은 함께 가야 한다. 국토의 균형발전만큼이나 부산의 균형발전도 시급하다. 핵심 공약에 포함된 권역별 AI 전략은 기대할 만하다. 북항과 원도심은 글로벌 AI 혁신 거점, 서부산과 에코델타시티는 제조업 AX와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거점, 센텀지구를 포함한 동부산은 문화콘텐츠 AI 거점으로 조성하는 구상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동남권 공동 대응은 필수다. 동남권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성장축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부산과 울산, 경남이 서로 경쟁해서는 답이 없다. 부·울·경은 조선과 우주항공 분야는 물론이고, 국가전략기술 지정이 유력한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도 이미 산업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부터 힘을 모아야 같이 강해질 수 있다.
부산은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앞서 이미 해양수산부와 HMM 이전이라는 상징적인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부산시장’ 전재수의 시정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시는 중앙정부의 ‘지방 주도 성장’이 기득권을 가진 수도권의 반발과 재정을 가진 정부 부처의 어깃장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더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고 때로는 맞서야 한다.
세 번째 장면은 부산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고, 청년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디지털 대전환이 그랬듯 AI 대전환의 흐름은 가차가 없고, 그 파급력은 더욱 클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최혜규 경제부 부장 iwill@busan.com
2026-07-0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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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친절은 강자의 덕목이다
〈초한지〉와 〈삼국지〉는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고전이다.
그러나 마니아라면 두 작품이 주는 울림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안다. 〈삼국지〉가 영웅호걸들이 펼치는 무용담을 담았다면 〈초한지〉는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는 처세를 담았다. 전란 속에서 인간군상이 선택하고, 배신하고, 인내하고, 결단하는 생존의 기록인 셈이다.
〈초한지〉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은 단연 한고조 유방과 서초패왕 항우다. ‘힘으로 산을 뽑고, 기운이 세상을 덮었다’는 천하의 명장이 바로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 7번을 싸워 7번을 내리 이겼다.
그때마다 유방은 질그릇처럼 깨지며 도망치기를 바빴다. 달아나는 수레의 무게를 줄이려 자식마저 내던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니 그 궁색함이야 오죽했을까. 누가 봐도 천하의 주인은 항우였다.
그러나 항우를 무너뜨린 것은 유방의 칼도 아니고 하늘의 뜻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항우는 충신 범증의 조언을 고깝게 여기고, 피붙이가 아닌 장수를 믿지 않았다. 공을 세운 신하에게 봉지 내려주기를 아까워 해 ‘도장 모서리가 닳도록 만지작 거렸다’고 했다. 뛰어난 신하는 하나둘 곁을 떠난 것은 당연지사. ‘한삼걸’ 중 하나인 한신도 벼슬은 항우 밑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유방의 품에 안겼다.
유방의 사람 씀씀이가 그사이 빛을 발했다. 전쟁은 한신을 믿었고, 행정은 소하에게 일임했으며, 외교는 장량에게 의지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은 함께 나누고, 사람은 끝까지 붙잡았다. 유방이 일곱 번을 내리 지고도 결국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전재수 부산시장이 꺼낸 ‘친절’이란 화두가 관가에서 화제다. 전 시장은 자리마다 “친절한 직원을 추천해 달라” “친절은 여유에서 나오고, 유능함에서 나온다”며 거듭 친절을 강조하고 있다.
오거돈 전 시장은 2018년까지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 부산시장 선거 전 민주당에 입당했다. 따지고 보면 사실상 부산의 첫 민주당 시장은 전 시장이다. 그랬던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파격’이나 ‘쇄신’ ‘구습 타파’가 아니었다. 뜻밖의 ‘친절’이었다. 공무원 조직의 경계심을 달래고 오 전 시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영리한 처신이라는 반응이 부산시 안팎에서 나온다.
물론 초나라 귀족 출신 항우도 아픈 부하를 만나면 눈물을 흘릴 만큼 정이 깊었다고 한다. 개인에게는 크나큰 장점일 수 있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성정이다.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리더에게 친절함이란 다른 문제다. 사람 하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조직 전체를 살리는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의 정과 공적인 결단은 자주 충돌한다.
새 시정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전임 시장의 주요 공약을 전담했던 부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주요 부서장의 교체 역시 어쩔 수 없는 인사의 과정이다. 그러나 전 시장은 지난 3일 첫 고위 간부 인사에서 박형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파격적으로 승진자 명단에 넣었다. 당사자의 평판과 능력을 감안한 조처라고 했다. 적지 않은 상징성을 갖는 인선이다.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함이 필부의 친절함뿐 아니라 리더의 친절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장이 바뀌면 사람부터 갈아치우는 게 일상화된 관가의 풍경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전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출신과 과거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두루 품고 일하겠다는 메시지는 강자의 친절함이라 할만하다.
특히나 민선 9기로 넘어오며 부산시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개편의 강도나 방향을 놓고 조직 내 술렁임이 상당하다. 첫 인사에서 보인 그 친절한 리더십이 이 술렁임을 잠재우고 보다 안정감 있게 시정을 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전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시대가 달라져도 그 울림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과 조직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을 얻고 마음을 얻는 자가 성공한다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항우의 실패도, 유방의 성공도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민선 9기의 성패가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에 달린 이유도 여기 있다. 친절이 구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시장의 태도가 되고 인사의 원칙이 돼야 한다.
친절함이 부산시의 운영 철학이 된다면, 그래서 그 첫 마음가짐이 내내 이어진다면 그건 속된 이미지 관리가 아니다. 사람을 얻는 시정이다.
권상국 사회부 부장 ksk@busan.com
2026-07-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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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왜 모두 모자를 썼을까
일본의 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한 쪽 벽면을 세계 각국의 지폐로 장식해 두었다. 한국 지폐도 여러 장이 붙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와 두드러진 차이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천 원 퇴계 이황, 오천 원 율곡 이이, 일만 원 세종대왕, 오만 원 신사임당. 지폐 속 인물 모두 모자를 쓰거나 가체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서양을 비롯한 외국 화폐에서는 모자 쓴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찾아보니 조선에서 ‘의관정제’는 기본이었다. 모자 없는 상투 차림은 무례하고 격식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는 조선과 반대로 격식을 차리거나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할 때는 모자를 벗는 게 에티켓이었다.
문득 조선에도 탈모 환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시대라 고민은 더했을 것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앞머리와 정수리 탈모가 진행되더라도 옆머리와 뒷머리는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남은 주변 머리카락을 최대한 길러 정수리 쪽으로 끌어모아 어떻게든 묶어 올렸다. 묶은 부위가 너무 작으면 천 조각이나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 뭉치를 집어넣어 상투를 억지로 부풀리는 방법도 썼다. 묶을 수도 없을 때는 인조 상투, 가발을 썼다. 조선 시대 남성들은 실내에서도 늘 정자관 같은 모자를 써서 민머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이들에게 다행이었다.
조선의 왕 중에 영조는 앞머리가 다 빠졌는데, 75세가 되던 해에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났다. 영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온 나라에 자랑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내 머리가 다 희어지고 털이 빠져 노인처럼 되었다”라고 한탄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의 권력을 다 가진 왕들도 머리 빠지는 스트레스는 피해 갈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볼 때 왕들의 머리 상태는 비교적 괜찮았다. 어의들이 왕의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뭘 먹이고, 또 약재로 감겨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영조나 83세까지 천수를 누렸지, 조선의 왕들은 평균 수명이 겨우 40대 중반이었다. 단명한 그들에게는 머리 빠질 시간이 별로 없었다.
4일로 예정됐던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주제로 한 보건복지부 주최 토론회가 개최 불과 며칠을 앞두고 무산됐다. 지금까지 그게 아쉬워서 찾아본 조선의 탈모 관련 이야기다. 탈모치료제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고, 모르긴 해도 이런 토론회도 세계 최초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회적 갈등을 숙의로 해결하려던 공론화 취지 자체가 무색하게 돼버렸다.
청년들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을 지지한다. 죽는 병은 아니지만 실업자 100만 시대에 탈모는 구직 활동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심각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달 적지 않은 돈이 ‘평생’ 들어가는 약값을 국가가 일부 덜어준다면,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복지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에 시달리면서도 용기 있게 토론회에 나선 청년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의료계와 중증·희귀질환 환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는 입장이다. 암과 희귀 난치성 질환 신약조차 재정 부족을 이유로 건보 적용이 안 돼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문제를 놔두고 유전성 탈모에 재정을 쓰는 것은 건보의 근간을 흔드는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이다. 혹시 탈모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기자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에 찬성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오랜 개인 임상 실험 끝에 내린 결론은 유전성 탈모의 경우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그보다 ‘긴급 도입된 희귀·필수 의약품 중에서 70% 이상이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토론회가 이런 문제가 더 알려지고 시급하게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여당은 건선, 아토피, 소아 근시 등도 향후 건보 적용 논의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탈모약 급여가 아니라 건강보험이 앞으로 삶의 질과 정신건강 영역까지 확대하는 문제를 묻는 큰 화두를 던졌어야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의 새로운 기준을 정하는 논의를 지금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한 마디. 탈모는 진보와 보수, 친명과 반명을 가리지 않는다. 탈모는 사고처럼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이번에 제대로 탈모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재정 부담과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 중증도 등 기준에 따른 단계적 접근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26-07-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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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약을 끊어 내는 사회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 세계보건기구가 ‘마약류’를 정의할 때 포함되는 개념이다. 약물에 대한 욕구가 강제에 이를 정도로 강하고, 사용 약물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용 중단 시 온몸에 견디기 힘든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에 ‘개인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약물’로 누군가의 삶을 수렁에 빠트리고 벗어나지 못하게 옭아매는 것이 바로 마약이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최근 1년 이내에 마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가 약 3억 1600만 명에 달한다. 2022년 세계 마약 남용 인구에서 2400만 명이 늘어, 3억 명을 돌파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도 마약류 사범이 급증해, 2023년 2만 7611명으로 ‘한국 마약 사범 2만 명 시대’가 열렸다. 결코 반갑지 않은 동반 상승이다.
마약이 먼 나라 이야기 같았던 때가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고, 마약 거래나 마약 범죄는 영화에서나 보는 거였다. 그러다 마약 관련 뉴스가 점점 늘어났고, 2010년대 중반 이후 마약 범죄가 급증했다. 마약 유통이 대면 거래에서 비대면 온라인 거래 방식으로 바뀌며 마약 유통 속도는 더 빨라졌다. 과거에는 마약 사범끼리 주로 거래했다면, 이제는 마약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 공급자와 연결되고 있다. 마약 범죄는 어린 학생부터 평범한 보통 시민까지 세력을 점점 넓혀가며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필로폰·대마를 밀반입해 유통하려던 한국인·외국인 검거,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마약에 취해 쓰러져 있던 20대 2명 긴급체포, 의료용 마약류 프로포폴이 든 쇼핑백을 들고 길에 쓰러진 병원 직원,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피부과 원장 적발,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받은 필로폰을 투약한 미성년자. 이 모든 뉴스가 6월 한 달 동안 나왔다. 수치로만 접하던 마약류 범죄가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정부는 지난해 각 부처 합동 특별단속 등을 실시해 마약류 사범 2만 3403명을 검거했다. 이 중 10대 674명, 20대 6913명, 30대 6986명으로 청소년과 청년층이 전체의 62.3%를 차지한다. 젊은 세대의 마약류 중독과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클럽에서 ‘마약 파티’를 열고 13개 대학 연합동아리에서 마약이 유통됐다. 공부방을 ‘마약 아지트’로 삼은 고등학생들까지 드라마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6일은 제40회 세계 마약퇴치의 날이었다. 기념일 전후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행사와 마약류 범죄 대책을 고민하는 논의의 자리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국회에서는 마약 범죄에 장소나 시설을 제공한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영업정지나 영업폐쇄 등 행정처분을 할 수 있는 ‘마약 클린존 4법’과 일반 의약품을 과다복용하는 ‘OD’ 문제 해결을 위해 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를 의무화하고 미성년자의 대량 구매를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법원이 형사소송의 모든 과정에서 약물 중독 사범에게 의존증 치료를 제공하고 이를 관리 감독하는 ‘약물법원’ 도입 관련 정책 토론회도 열렸다. 정부는 마약 범죄의 지능화·초국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터폴 마약 대응센터 국내 유치를 추진해 국제 공조의 컨트롤타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학생 대상 예방교육에 앞장선 이들부터 중독자 재활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까지, 시민 곁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예방교육 강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마약은 강한 중독성으로 인해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고 재범률도 높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아이들이 마약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이나 대학생, 2030세대 등 예방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교육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약 전쟁〉의 저자 요한 하리는 “중독의 반대는 깨어 있는 맑은 정신 상태가 아니라 연결”이라고 했다. 고립과 단절에서 중독이 시작되기도 하고, 고립과 단절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마약류 중독자 재활 교육에서 심리 상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예방교육에서도 정서 교육이 중요하다. 스트레스와 충동을 관리하고, 자기 존중감과 자기 통제력을 향상하는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을 더할 때 마약류·약물 예방교육의 효과는 더 높아질 수 있다.
개인과 사회는 연결되어 있다. 건강한 개인이 모여 건강한 사회가 된다. 마약 문제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오금아 사회부 선임기자 chris@busan.com
2026-06-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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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전재수TV' 생중계가 보고 싶다
2026년 6월은 8년 전과 묘하게 닮았다. 부산시청 2진 출입기자 시절 지방선거가 펼쳐졌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선거 직후 오거돈 당시 당선인의 인수위가 출범했다. 사무실은 지금과 같은 부산상수도사업본부 건물에 차려졌다. 1995년 민선 도입 이후 첫 지방 권력 교체에 너도나도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있다. 팩트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인수위 앞을 서성였지만, 별 수확은 없었다. 사무실 칸막이는 높기만 했고, 기자들은 ‘입구 컷’ 당하기 일쑤였다. 폐쇄적으로 운영된 인수위, 그리고 이후 펼쳐진 시정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초장부터 측근 실세가 시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오 시장은 그와는 무관하게 부산 전체를 부끄럽게 만든 범죄로 낙마했다.
오 전 시장은 부산시 정무부시장과 행정부시장을 거쳐 해양수산부 장관과 대학 총장까지 두루 역임한 자타공인 행정 전문가였다. 하지만 정작 300만 시민의 염원을 받든 시장이 되고서는 일 잘한다고 평가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임기를 다 채웠다 한들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 전 시장에 비춰, 지방행정 경험이 전무한 전재수 당선인이 부산시를 잘 이끌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4개월 남짓 해수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이뤄낸 굵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정과 시정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때론 중앙정부를 상대로, 때론 지역사회 안에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를 ‘머리 굵은’ 관료들 손바닥에 놀아나지 않고 무탈하게 조율해 나갈 수 있을까.
전 당선인은 최근 시청 기자실을 찾아 “역대 부산시장 중 가장 자주 기자들과 만나겠다. 일 잘하는 공무원을 추천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민 목소리를 대변하고, 시민을 대표해 질문하는 기자와 소통 기회를 늘리겠다는 생각은 훌륭하다. 그러나 너무 신뢰하지는 마시라. 기자도 사람인지라 순수한 의도로만 인재를 추천하리란 보장은 없다.
행정 초보로서 빠르게 시정을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해, 당면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책은 뭘까. 시민을 대신해 시청과 구청 행정을 십수 년간 살펴본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 드린다. 부산시 업무보고와 주요 회의를 생중계하시라. 시민들은 이미 이재명 대통령 사례를 통해 그 효과를 알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에서 시작해 마지막 순서로 갓 부산 이전을 마친 해양수산부를 찾아 생중계로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수석보좌관 회의, 타운홀 미팅 등 다양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공개해 국민과의 접점을 늘렸다. 생중계 장면은 수많은 뉴스거리와 파생 동영상을 만들어 내며, 멀게만 느꼈던 국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통령의 질의에 진땀 흘리는 기관장, 막힘없이 답변하는 실무자 등을 지켜보며 ‘국민주권정부’의 효능감을 생생하게 맛봤다.
국정과 마찬가지로, 시정도 생중계 장점이 많다. 우선, 시민들의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 둘째, 공무원의 실력을 가늠하는 자리가 된다. 셋째, 자연스럽게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넷째, 행정 투명성과 시민 소통 강화라는 대의명분도 챙길 수 있다. 이미 라이브 효과를 알아채고 앞서나간 당선인이 여럿 있다. 가까이는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인이 대표적이다. 김 당선인은 선거 직후 ‘시내버스 개선 간담회’를 시작으로 울산시민과의 대화, 인수위 출범 이후 업무보고까지 꾸준히 생중계로 진행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의 비공개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재수 당선인은 공직사회의 친절함을 강조한다. 유능함과 겸손함을 겸비했을 때 친절이 나온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만의 철학이다. 유사하게,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경험칙이 생겼다. ‘기자에게 너무 잘해주는 사람을 경계하라’, 반대로 ‘기자를 너무 기피하는 이들도 의심하라’는 것이다. 전자는 ‘불가근불가원’이란 저널리즘 원칙과 맞닿아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헌법기관이란 이유로 언론 감시마저 회피해 온 선거관리위원회이다. 부산시장이 기자를 만나 여론을 듣고 사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자주 가질수록, 친절의 철학과 시정 비전에 공감하는 채널이 늘어날 것이다. 이에 더해 ‘대시민 보고회’로서 시정 생중계를 적극 활용한다면, 300만 시민의 눈과 귀를 등에 업을 수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추진한 이기대 퐁피두센터 분관, 100억짜리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등 전임자의 폐쇄적인 행정을 시민들은 기억한다. 반면교사 나침반을 달고 닻을 올릴 ‘전재수호’의 순항을 기원한다.
2026-06-24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