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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내 검색 자료로 AI 교육하는 빅테크
구글이 지난달 ‘검색 서비스 설정’ 관리 방식을 ‘업데이트’했다. 구글은 “검색 서비스 기록에 사용자의 설정에 따라 사용자의 상호작용에서 나온 미디어(이미지, 오디오 등)가 포함될 수 있다”면서 “서비스를 제공, 개발, 개선(예: 생성형 AI 모델 학습시키기)하고 인적 검토자의 도움을 받아 구글, 사용자, 일반 대중을 보호하는 용도로도 사용자의 기록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무슨 말일까.
전문가들은 “일반 사용자의 검색 내용이 구글의 AI를 학습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구글 렌즈로 이미지를 검색하거나 음성, 영상을 업로드해 구글 서비스를 사용하는 행동이 구글의 자사 AI 학습 자료로 사용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런 설정은 사용자가 직접 변경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구조여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구글의 개인 검색 정보 활용에 대해선 빅테크 기업의 AI 경쟁이 심화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온라인 자료나 출판 자료 등을 통해 AI를 학습시켰던 빅테크 기업은 AI 기술력의 차별화를 위해 자사 서비스 이용자가 생산하는 개인 데이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운영하는 메타도 개인 사용자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존의 음성 AI 서비스 알렉사의 경우 ‘음성 녹음 전송 안 함’ 옵션이 제외돼 개인정보 보호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AP는 아마존 알렉사가 지난해 3월부터 사용자의 음성 녹음을 클라우드에 전송하지 않는 옵션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의 이런 결정은 데이터의 무분별한 수집을 허용하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AI탭의 대화 내용을 AI 학습에 사용한다. 네이버는 ‘검색 고객센터’의 ‘AI탭 서비스 개인정보 처리 안내’를 통해 “회사는 이용자가 AI탭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입력하는 내용(질의, 문서 또는 이미지, 음성, 영상 파일 등)과 서비스에서 생성된 답변(검색 결과, 정보, 자료, 이미지, 음성, 영상 등)을 ‘대화 내용’으로 수집해 서비스 개발·제공 및 향상, 사용 경험과 관심사에 맞는 답변 제공, 인공지능 기술 적용 등에 이용한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AI탭 ‘대화에서 메모리 저장’ 설정이 활성화된 경우, 메모리에는 이용자가 대화를 통해 직접 입력한 가족구성, 기념일, 관심사, 선호도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반면 카카오톡은 대화내용을 AI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은 ‘카톡사용 설명서’ Q&A에서 ‘내(사용자) 대화를 저장해서 보고, 학습하는 데 활용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개인 디바이스에 있는 대화 내용만을 이용하며, 이용된 데이터는 기능 제공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저장이나 학습, 제3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빅테크 기업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부 사용자들은 개인정보 보호에 특화된 ‘대체 서비스’로 옮겨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미국 IT매체인 테크크런치는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 검색엔진 덕덕고(DuckDuckGo) 가입자가 구글의 검색서비스 설정 변경 이후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덕덕고는 검색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광고도 차단해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서비스다. 덕덕고는 자체 AI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 다른 서비스와 달리 계정을 만들지 않아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사용자와의 대화 내용도 30일 내에 자동 삭제된다고 강조한다.
사용자 데이터의 AI 학습에 대해 정부는 규제 완화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3일 발표한 ‘제3차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2027~2029년)에서 “AI 환경을 유연하게 반영하는 개인정보 규율체계로 전환”하겠다면서 “안전조치를 전제로 AI 학습에 불가피한 개인정보 원본 활용을 허용하는 AI 특례를 도입”하는 방침을 밝혔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에 대해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I 학습이 ‘과학적 연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별도의 AI 특례 도입 의도를 밝히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모습이다.
AI 무한 경쟁 시대에 사용자 데이터 활용을 모두 막을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개인이 내 정보 활용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산출된 가치를 정보주체에게 돌려주는 가치환원 체계 수립·확산”하겠다는 정부의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 취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데이터 통제권과 데이터 사용 보상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07-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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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토큰증권,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북항 돔구장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나 토큰증권(ST)을 시민, 야구팬들에게 발행하면 어떨까요. 국민참여형성장펀드 활용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금융권의 고위 인사가 북항 돔구장과 관련해 이런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그는 “사계절 복합시설로 개발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그 재원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자산 거래·결제 등 다양한 실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항 돔구장 복합개발이라는 지역 부흥 청사진을 내건 현 시점에서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을 활용한 시민 참여형 금융은 디지털금융 도시 부산의 강점을 활용하는 실현 가능한 재원 조달 모델이다.
토큰증권(ST)은 부동산, 건물, 미술품 등 실물자산의 소유권이나 수익권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증권으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상품이다. 투자자는 이를 소액 단위로 매입해 고가의 실물자산에도 부담 없이 투자하는 조각투자가 가능하다. 북항 돔구장 개발에 접목하면 사업 시행자는 돔구장과 함께 들어설 호텔, 쇼핑몰 등의 미래 임대·운영수익을 바탕으로 토큰증권을 발행해 투자금을 모을 수 있다. 투자자는 지분에 따라 수익을 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나 달러 등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돼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 디지털 화폐다. 이 역시 북항 돔구장에 적용해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경기 티켓과 공연 입장권, 식음료, 굿즈, 주차요금 등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다. 나아가 주변 호텔과 상업시설, 관광지까지 동일한 결제체계를 구축하면 지역 내 소비와 자금 순환을 촉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멤버십, 할인 혜택과 연계해 팬과 관광객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도 있다.
북항 돔구장 개발이 가능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 조달과 건립 이후 안정적인 수익 구조, 운영 기반이 필요하다. 토큰증권은 전자, 스테이블코인은 후자에 활용 가치가 큰 디지털금융이다. 건설 단계에서는 토큰증권을 통해 시민과 야구팬,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고, 완공 이후에는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해 돔구장과 북항 일대의 안정적인 소비 생태계와 운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때마침 국내 최초 조각투자 유통 전담 장외거래소가 부산에서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 BNK금융 등이 참여하는 플랫폼이 본인가를 받으면 북항 돔구장과 같은 대형 개발사업을 토큰증권으로 유동화하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현재 은행권이 제도화에 맞춰 원화 발행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블록체인 특구 부산이 스테이블코인 실증사업으로 서비스 모델을 선도할 수 있다.
북항 돔구장은 그동안 막대한 사업비 조달이 걸림돌로 꼽히며 실현 가능성이 낮게 평가됐다. 하지만 전재수 부산시장 취임과 함께 다시 동력을 얻으며 사업 범위가 복합개발로 확대됐고, 사업비도 기존 1조 3000억 원에서 약 3조 원 규모로 커졌다.
불어난 예산에도 시민들은 단순한 야구장 이상의 의미와 부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북항 돔구장에서 찾고 있다. 해양수산부 이전과 해양 관련 기관·기업의 집적은 부산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떠나는 청년들의 발길을 붙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다른 지역은 대규모 반도체 공장과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앞세워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부산에도 도시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상징적인 프로젝트가 절실한 이유다.
부산의 달라진 관광 경쟁력은 북항 복합개발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글로벌 관광도시로서 위상도 강화되면서 호텔과 공연, 문화·상업시설을 결합한 복합개발의 사업성 역시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투자를 타진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내 유수의 호텔·리조트 기업과 대기업, 세계적인 공연 기획사 등이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형 투자 물꼬가 트인다면 토큰증권과 스테이블코인이 부족한 사업비를 보완하고,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국민참여형성장펀드도 힘을 보탤 수 있다. 현 제도상 지역 개발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부산시와 정치권이 나서 북항 돔구장을 국가 차원의 핵심 성장 프로젝트로 인정받아 투자 대상에 포함시킨다면 정부 재정과 민간 자본을 보완하는 새로운 재원 조달 방안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컨트롤타워와 실행력이다. 부산시는 투자 의향을 보이는 기업들이 실제 투자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금융을 활용한 재원 조달과 운영 기반 구축 등 흩어진 아이디어를 하나의 전략으로 엮어내는 것도 부산시의 몫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대성 경제부 차장 nmaker@busan.com
2026-07-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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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다시 등장한 '명백한 운명'론의 광풍
지난 4일 85만 발의 화려한 불꽃이 미국 워싱턴DC 밤하늘을 뒤덮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보라. 이란을 보라. 우리는 그들의 군대를 궤멸시켰다”며 특유의 자화자찬을 쏟아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한 자축 행사의 풍경이다. 85만 발의 폭죽은 기네스북에 오를 양이다.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이란의 테헤란에서는 미국·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숨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수천만 이란인은 눈물을 흘리며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이 극과 극의 장면에 세계 각국의 시선이 모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사에서 “미국은 다시 영토를 확장할 것이며, 우리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명백한 운명’은 18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번이 제시한 개념이다. 미국인이 북미 대륙을 개척하고 자유와 문명을 확장할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주장이다. 백인 문명과 영토 확장이 하나님이 부여한 성스러운 권리라는 것이다.
명백한 운명은 미 팽창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아전인수식 이론을 근거로 미국은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 나갔다. 특히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이 명백한 운명론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인디언 이주법’을 통과시킨 뒤 원주민 부족들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몰아냈다. 원주민들은 8000km가 넘는 추방길에 내몰리며 허기와 질병으로 쓰러져 갔다. 이 지옥 같은 행군 여정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 일컫는데, 당시 1만 5000명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잭슨 대통령은 문제적 인물이다.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열세 살의 나이에 미국 독립전쟁의 연락병 역할을 수행하다 영국군에 붙잡히기도 했다.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법률사무소에서 보조생활을 하며 익힌 지식으로 변호사가 됐다. 부동산 투자로 거부가 돼 300여 명에 달하는 노예도 부렸다. 아내의 명예를 지킨다며 ‘결투’를 신청해 상대를 죽이기도 했다.
비엘리트이면서 거칠고 감정적인 인물이 잭슨이다. 또한 백인우월주의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서 그런지, 트럼프가 가장 존경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잭슨의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그를 흠모한다.
또 한 명의 대통령, 윌링엄 매킨리도 트럼프가 롤모델로 삼는 대통령이다. 그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점령하며 미국을 제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최고봉을 ‘매킨리산’으로 되돌려 놓은 것은 매킨리의 팽창주의에 대한 계승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매킨리산을 원주민의 명칭 ‘디날리산’으로 바꿨으나 다시 뒤집어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잭슨과 매킨리를 추종하며 명백한 운명론을 꺼내든 것은 제국주의시대 팽창주의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그는 그린란드 병합 의사를 공공연히 밝혔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삼겠다고 호언했다.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회복하겠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올해 벽두엔 기어코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정권을 붕괴시키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했다. 지난 2월엔 이란과 협상 도중에 난데없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선제 타격하며 중동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얼마 전 부산일보CEO아카데미 강의에서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현 세계를 ‘강대국 국제 정치’란 말로 정의했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이던 미국의 패권이 저물어가고 당분간 미국, 중국, 러시아 세 나라의 입맛에 맞게 세계 질서가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 교수의 말대로 유일 패권국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트럼프의 좌충우돌 행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국제법 존중, 평화적 분쟁 해결, 식민주의 종식이라는 보편적 세계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건국 250주년 기념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이란 전쟁 승리를 외쳤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여전히 포탄이 오가고 있다. 철 지난 제국주의 시대의 낡은 이론을 꺼내 들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소리쳐 봐도 상처뿐인 ‘피로스의 승리’만 남을 지 모른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종전이 확정돼도 트럼프 대통령이 또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알 수 없고, 예전만 못하다 해도 여전히 세계 경제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2026-07-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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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역건설에 안부를 묻는다
“요즘 지역 건설업계 어떻습니까? 많이 어렵지요.”
최근 건설·부동산을 담당하는 경제부 기자를 만난 이들이 하나같이 던지는 질문이다. 최근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계획 인가를 받아 가까스로 경영 정상화 단계로 들어선 지역 중견 건설업체 경영진은 “지역의 상당수 건설사들이 저희 회사가 기업회생을 신청할 그 당시만큼 힘들다. 그만큼 어렵다”고 답을 대신했다.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 주택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빠르게 쌓이면서 지역 주택 건설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부산에 쌓인 미분양 주택이 8000세대를 넘어섰고 이 중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3000세대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0년 전 산 집값이 3배, 5배, 10배로 뛰는 일이 서울에선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부산에서는 10년 전 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내놔도 팔리지를 않는다. 그러니 미분양은 더 쌓이고 주택 시장 불균형은 매달, 매년 더 심화된다.
이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곳이 지역 건설사다. 지역 건설 경기 침체에 더해 금리 부담, 정부 대출 규제까지 겹치며 지역업체의 유동성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건설공사비 지수는 지난 5년여간 30%P(포인트) 이상 치솟았는데, 그만한 공사비 보정을 해주질 않으니 본업인 건설에 손을 대기도 겁이 난다.
실제 지역 건설사들은 공사 물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최근 3년간 부산지역 종합건설업체 기성액을 살펴보면, 2023년 6조 2166억 원이던 것이 2024년에는 5조 629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45%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4조 9256억 원으로 여기서 또 12.5%가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부산 종합건설업체 중 자진 폐업한 건설사 수는 2년 전에 비해 1.5배나 늘었다. 올해 상반기 들어서만 폐업한 업체 수가 28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곳) 대비 40%가 또 증가했다.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셈이다.
지역 건설사 몇 곳 더 사라진다고 호들갑 떨 일이냐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설업은 해당 분야에만 영향을 주는 산업이 아니다. 투자 대비 생산·고용 유발 효과가 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업의 생산유발계수는 1.970으로 서비스업 1.697보다 훨씬 높고, 제조업 1.945보다도 높다. 특히 부산 지역 건설업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전국 시·도 가운데 1위로 건설 부문의 생산활동이 지역 내 전 산업에 미치는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매우 크다. 건설이 무너지면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는 얘기가 괜한 너스레가 아닌 것이다. 지역의 많은 경제 주체들이 건설사 안부부터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은행도 “뭘 해줄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심사가 더 까다로워지면서 지역은행이 할 수 있는 일도 더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건설사들이 그나마 기댈 곳이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 공사다. 업계에서는 이 ‘보릿고개’를 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가덕신공항이나 서부산행정복합타운, 벡스코 제3전시장 건립, 북항 재개발과 같은 대형 공공 공사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동전쟁 발발 후 급등한 공사비를 보정해주지 않아 지역의 참여 업체들이 각각 수십억 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기술형 입찰의 경우 입찰공고일로부터 실제 계약까지 장시간이 소요되지만 그 사이 급격한 물가 상승분을 총사업비에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 인프라의 안정적 완공을 위해서라도 공사비 현실화는 필수 조건이다.
공공 공사에서 지역업체 참여를 더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현재 부산 지역 100억 원 이상 공공 공사에서 지역업체 참여 비율은 20%대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공공기관 발주 시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등의 적용을 받기 때문인데, 정부 발주 공사 88억 원, 국가기관의 경우 265억 원 이상 공사는 지역의무공동도급을 적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공공 공사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사례를 참고해, 지역의무공동도급과 지역제한경쟁입찰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동도급으로 참여하는 지역건설업체에는 일정 비율 이상 직접 시공을 의무화해 현장에서 기술 노하우를 축적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할 필요도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될 때 허용될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과 지역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벌어진 격차를 좁히는 일은 시혜가 아닌 정의의 문제다.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6-07-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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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지막 기회
부산 경제를 말할 때 결정적인 두 가지 장면이 있다. 1982년 정부의 대도시 성장억제정책과 1990년대 말 시작된 디지털 대전환이다. 처음에는 도시 성장의 흐름이 꺾였고, 두 번째는 악순환에 빠져 침체가 심화됐다.
부산은 박정희 시대에 수출 주도형 산업화 전략에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러다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서울과 함께 성장관리도시로 지정됐다. 많은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이고 신규 공장이나 창업 기업에는 중과세가 부과됐다. 제조업 기업들이 부산을 떠나 역외로 이전했다. 대기업 없는 부산의 시작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정보화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등장했고, 정부 정책 방향과 민간 투자 모두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중심에서 디지털과 벤처산업 육성으로 이동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서울 개발을 억제하는 정책은 고삐가 풀린 상태였다. IT 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자본을 따라 수도권에 쏠렸다. 부산은 첨단산업을 키우지도 데려오지도 못했다.
두 장면 모두 중앙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제대로 계획하고 이행하지 못한 책임이 크지만, 지방정부도 산업과 정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기업 생태계와 인재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투자나 연구개발보다 전통 서비스업에만 의존했고, 기존 제조업을 혁신하고 사업을 재편하는 데도 더뎠다. 그 결과 부산은 경제 성장의 주도권을 놓쳤고, 기업과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 세 번째 장면이 펼쳐질 참이다.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정부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의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국가 발전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방 주도 성장이라는 방법론도 함께 내놓고 호남권, 충청권, 영남권에서 보고회도 열었다. 권역별로 주력 분야에서 대기업 투자와 정부 집중 지원을 결합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권역별로 투자 규모를 줄세우는 건 의미 없지만, 영남권은 기존 사업을 재탕하는 수준이고 구체성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당장 원전 추가 건설을 말하는 건 우려스럽다. 이미 원전 10기가 운영 또는 계획 중인 동남권에 원전을 더 지을 수 있다는 당국자 발언이 어떤 논의나 합의 과정도 없이 흘러나온다. 이미 위험을 감수하면서 원전을 이고 사는 지역 주민들은 아랑곳없다.
그럼에도 세 번째 장면을 부산 경제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지방정부가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하고 실행을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영남권 312조 원, 도합 1600조 원이라는 선뜻 와닿지 않는 목표가 아니라 부산시의 치밀한 전략과 적극적인 노력이 ‘3대 메가 프로젝트’와 ‘지방 주도 성장’의 과실을 결정한다.
부산시는 대규모 투자를 마중물 삼아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기존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과 다양한 분야의 부품·기자재산업, 그리고 숙련된 현장 인력들의 암묵지는 AI가 디지털 공간을 넘어 물리적 환경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구현하는 데 최적의 자산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첨단사업 전략과 도시공간 전략은 함께 가야 한다. 국토의 균형발전만큼이나 부산의 균형발전도 시급하다. 핵심 공약에 포함된 권역별 AI 전략은 기대할 만하다. 북항과 원도심은 글로벌 AI 혁신 거점, 서부산과 에코델타시티는 제조업 AX와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거점, 센텀지구를 포함한 동부산은 문화콘텐츠 AI 거점으로 조성하는 구상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동남권 공동 대응은 필수다. 동남권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성장축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부산과 울산, 경남이 서로 경쟁해서는 답이 없다. 부·울·경은 조선과 우주항공 분야는 물론이고, 국가전략기술 지정이 유력한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도 이미 산업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부터 힘을 모아야 같이 강해질 수 있다.
부산은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앞서 이미 해양수산부와 HMM 이전이라는 상징적인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부산시장’ 전재수의 시정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시는 중앙정부의 ‘지방 주도 성장’이 기득권을 가진 수도권의 반발과 재정을 가진 정부 부처의 어깃장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더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고 때로는 맞서야 한다.
세 번째 장면은 부산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고, 청년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디지털 대전환이 그랬듯 AI 대전환의 흐름은 가차가 없고, 그 파급력은 더욱 클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최혜규 경제부 부장 iwill@busan.com
2026-07-0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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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친절은 강자의 덕목이다
〈초한지〉와 〈삼국지〉는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고전이다.
그러나 마니아라면 두 작품이 주는 울림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안다. 〈삼국지〉가 영웅호걸들이 펼치는 무용담을 담았다면 〈초한지〉는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는 처세를 담았다. 전란 속에서 인간군상이 선택하고, 배신하고, 인내하고, 결단하는 생존의 기록인 셈이다.
〈초한지〉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은 단연 한고조 유방과 서초패왕 항우다. ‘힘으로 산을 뽑고, 기운이 세상을 덮었다’는 천하의 명장이 바로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 7번을 싸워 7번을 내리 이겼다.
그때마다 유방은 질그릇처럼 깨지며 도망치기를 바빴다. 달아나는 수레의 무게를 줄이려 자식마저 내던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니 그 궁색함이야 오죽했을까. 누가 봐도 천하의 주인은 항우였다.
그러나 항우를 무너뜨린 것은 유방의 칼도 아니고 하늘의 뜻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항우는 충신 범증의 조언을 고깝게 여기고, 피붙이가 아닌 장수를 믿지 않았다. 공을 세운 신하에게 봉지 내려주기를 아까워 해 ‘도장 모서리가 닳도록 만지작 거렸다’고 했다. 뛰어난 신하는 하나둘 곁을 떠난 것은 당연지사. ‘한삼걸’ 중 하나인 한신도 벼슬은 항우 밑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유방의 품에 안겼다.
유방의 사람 씀씀이가 그사이 빛을 발했다. 전쟁은 한신을 믿었고, 행정은 소하에게 일임했으며, 외교는 장량에게 의지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은 함께 나누고, 사람은 끝까지 붙잡았다. 유방이 일곱 번을 내리 지고도 결국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전재수 부산시장이 꺼낸 ‘친절’이란 화두가 관가에서 화제다. 전 시장은 자리마다 “친절한 직원을 추천해 달라” “친절은 여유에서 나오고, 유능함에서 나온다”며 거듭 친절을 강조하고 있다.
오거돈 전 시장은 2018년까지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 부산시장 선거 전 민주당에 입당했다. 따지고 보면 사실상 부산의 첫 민주당 시장은 전 시장이다. 그랬던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파격’이나 ‘쇄신’ ‘구습 타파’가 아니었다. 뜻밖의 ‘친절’이었다. 공무원 조직의 경계심을 달래고 오 전 시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영리한 처신이라는 반응이 부산시 안팎에서 나온다.
물론 초나라 귀족 출신 항우도 아픈 부하를 만나면 눈물을 흘릴 만큼 정이 깊었다고 한다. 개인에게는 크나큰 장점일 수 있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성정이다.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리더에게 친절함이란 다른 문제다. 사람 하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조직 전체를 살리는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의 정과 공적인 결단은 자주 충돌한다.
새 시정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전임 시장의 주요 공약을 전담했던 부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주요 부서장의 교체 역시 어쩔 수 없는 인사의 과정이다. 그러나 전 시장은 지난 3일 첫 고위 간부 인사에서 박형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파격적으로 승진자 명단에 넣었다. 당사자의 평판과 능력을 감안한 조처라고 했다. 적지 않은 상징성을 갖는 인선이다.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함이 필부의 친절함뿐 아니라 리더의 친절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장이 바뀌면 사람부터 갈아치우는 게 일상화된 관가의 풍경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전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출신과 과거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두루 품고 일하겠다는 메시지는 강자의 친절함이라 할만하다.
특히나 민선 9기로 넘어오며 부산시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개편의 강도나 방향을 놓고 조직 내 술렁임이 상당하다. 첫 인사에서 보인 그 친절한 리더십이 이 술렁임을 잠재우고 보다 안정감 있게 시정을 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전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시대가 달라져도 그 울림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과 조직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을 얻고 마음을 얻는 자가 성공한다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항우의 실패도, 유방의 성공도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민선 9기의 성패가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에 달린 이유도 여기 있다. 친절이 구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시장의 태도가 되고 인사의 원칙이 돼야 한다.
친절함이 부산시의 운영 철학이 된다면, 그래서 그 첫 마음가짐이 내내 이어진다면 그건 속된 이미지 관리가 아니다. 사람을 얻는 시정이다.
권상국 사회부 부장 ksk@busan.com
2026-07-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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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왜 모두 모자를 썼을까
일본의 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한 쪽 벽면을 세계 각국의 지폐로 장식해 두었다. 한국 지폐도 여러 장이 붙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와 두드러진 차이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천 원 퇴계 이황, 오천 원 율곡 이이, 일만 원 세종대왕, 오만 원 신사임당. 지폐 속 인물 모두 모자를 쓰거나 가체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서양을 비롯한 외국 화폐에서는 모자 쓴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찾아보니 조선에서 ‘의관정제’는 기본이었다. 모자 없는 상투 차림은 무례하고 격식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는 조선과 반대로 격식을 차리거나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할 때는 모자를 벗는 게 에티켓이었다.
문득 조선에도 탈모 환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시대라 고민은 더했을 것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앞머리와 정수리 탈모가 진행되더라도 옆머리와 뒷머리는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남은 주변 머리카락을 최대한 길러 정수리 쪽으로 끌어모아 어떻게든 묶어 올렸다. 묶은 부위가 너무 작으면 천 조각이나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 뭉치를 집어넣어 상투를 억지로 부풀리는 방법도 썼다. 묶을 수도 없을 때는 인조 상투, 가발을 썼다. 조선 시대 남성들은 실내에서도 늘 정자관 같은 모자를 써서 민머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이들에게 다행이었다.
조선의 왕 중에 영조는 앞머리가 다 빠졌는데, 75세가 되던 해에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났다. 영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온 나라에 자랑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내 머리가 다 희어지고 털이 빠져 노인처럼 되었다”라고 한탄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의 권력을 다 가진 왕들도 머리 빠지는 스트레스는 피해 갈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볼 때 왕들의 머리 상태는 비교적 괜찮았다. 어의들이 왕의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뭘 먹이고, 또 약재로 감겨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영조나 83세까지 천수를 누렸지, 조선의 왕들은 평균 수명이 겨우 40대 중반이었다. 단명한 그들에게는 머리 빠질 시간이 별로 없었다.
4일로 예정됐던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주제로 한 보건복지부 주최 토론회가 개최 불과 며칠을 앞두고 무산됐다. 지금까지 그게 아쉬워서 찾아본 조선의 탈모 관련 이야기다. 탈모치료제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고, 모르긴 해도 이런 토론회도 세계 최초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회적 갈등을 숙의로 해결하려던 공론화 취지 자체가 무색하게 돼버렸다.
청년들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을 지지한다. 죽는 병은 아니지만 실업자 100만 시대에 탈모는 구직 활동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심각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달 적지 않은 돈이 ‘평생’ 들어가는 약값을 국가가 일부 덜어준다면,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복지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에 시달리면서도 용기 있게 토론회에 나선 청년들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의료계와 중증·희귀질환 환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는 입장이다. 암과 희귀 난치성 질환 신약조차 재정 부족을 이유로 건보 적용이 안 돼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문제를 놔두고 유전성 탈모에 재정을 쓰는 것은 건보의 근간을 흔드는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이다. 혹시 탈모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기자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에 찬성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오랜 개인 임상 실험 끝에 내린 결론은 유전성 탈모의 경우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그보다 ‘긴급 도입된 희귀·필수 의약품 중에서 70% 이상이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토론회가 이런 문제가 더 알려지고 시급하게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여당은 건선, 아토피, 소아 근시 등도 향후 건보 적용 논의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탈모약 급여가 아니라 건강보험이 앞으로 삶의 질과 정신건강 영역까지 확대하는 문제를 묻는 큰 화두를 던졌어야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의 새로운 기준을 정하는 논의를 지금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한 마디. 탈모는 진보와 보수, 친명과 반명을 가리지 않는다. 탈모는 사고처럼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이번에 제대로 탈모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재정 부담과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 중증도 등 기준에 따른 단계적 접근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26-07-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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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약을 끊어 내는 사회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 세계보건기구가 ‘마약류’를 정의할 때 포함되는 개념이다. 약물에 대한 욕구가 강제에 이를 정도로 강하고, 사용 약물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용 중단 시 온몸에 견디기 힘든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에 ‘개인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약물’로 누군가의 삶을 수렁에 빠트리고 벗어나지 못하게 옭아매는 것이 바로 마약이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최근 1년 이내에 마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가 약 3억 1600만 명에 달한다. 2022년 세계 마약 남용 인구에서 2400만 명이 늘어, 3억 명을 돌파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도 마약류 사범이 급증해, 2023년 2만 7611명으로 ‘한국 마약 사범 2만 명 시대’가 열렸다. 결코 반갑지 않은 동반 상승이다.
마약이 먼 나라 이야기 같았던 때가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고, 마약 거래나 마약 범죄는 영화에서나 보는 거였다. 그러다 마약 관련 뉴스가 점점 늘어났고, 2010년대 중반 이후 마약 범죄가 급증했다. 마약 유통이 대면 거래에서 비대면 온라인 거래 방식으로 바뀌며 마약 유통 속도는 더 빨라졌다. 과거에는 마약 사범끼리 주로 거래했다면, 이제는 마약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 공급자와 연결되고 있다. 마약 범죄는 어린 학생부터 평범한 보통 시민까지 세력을 점점 넓혀가며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필로폰·대마를 밀반입해 유통하려던 한국인·외국인 검거,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마약에 취해 쓰러져 있던 20대 2명 긴급체포, 의료용 마약류 프로포폴이 든 쇼핑백을 들고 길에 쓰러진 병원 직원,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피부과 원장 적발,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받은 필로폰을 투약한 미성년자. 이 모든 뉴스가 6월 한 달 동안 나왔다. 수치로만 접하던 마약류 범죄가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정부는 지난해 각 부처 합동 특별단속 등을 실시해 마약류 사범 2만 3403명을 검거했다. 이 중 10대 674명, 20대 6913명, 30대 6986명으로 청소년과 청년층이 전체의 62.3%를 차지한다. 젊은 세대의 마약류 중독과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클럽에서 ‘마약 파티’를 열고 13개 대학 연합동아리에서 마약이 유통됐다. 공부방을 ‘마약 아지트’로 삼은 고등학생들까지 드라마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6일은 제40회 세계 마약퇴치의 날이었다. 기념일 전후로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행사와 마약류 범죄 대책을 고민하는 논의의 자리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국회에서는 마약 범죄에 장소나 시설을 제공한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영업정지나 영업폐쇄 등 행정처분을 할 수 있는 ‘마약 클린존 4법’과 일반 의약품을 과다복용하는 ‘OD’ 문제 해결을 위해 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를 의무화하고 미성년자의 대량 구매를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법원이 형사소송의 모든 과정에서 약물 중독 사범에게 의존증 치료를 제공하고 이를 관리 감독하는 ‘약물법원’ 도입 관련 정책 토론회도 열렸다. 정부는 마약 범죄의 지능화·초국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터폴 마약 대응센터 국내 유치를 추진해 국제 공조의 컨트롤타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학생 대상 예방교육에 앞장선 이들부터 중독자 재활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까지, 시민 곁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예방교육 강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마약은 강한 중독성으로 인해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고 재범률도 높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아이들이 마약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이나 대학생, 2030세대 등 예방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교육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약 전쟁〉의 저자 요한 하리는 “중독의 반대는 깨어 있는 맑은 정신 상태가 아니라 연결”이라고 했다. 고립과 단절에서 중독이 시작되기도 하고, 고립과 단절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마약류 중독자 재활 교육에서 심리 상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예방교육에서도 정서 교육이 중요하다. 스트레스와 충동을 관리하고, 자기 존중감과 자기 통제력을 향상하는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을 더할 때 마약류·약물 예방교육의 효과는 더 높아질 수 있다.
개인과 사회는 연결되어 있다. 건강한 개인이 모여 건강한 사회가 된다. 마약 문제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오금아 사회부 선임기자 chris@busan.com
2026-06-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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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전재수TV' 생중계가 보고 싶다
2026년 6월은 8년 전과 묘하게 닮았다. 부산시청 2진 출입기자 시절 지방선거가 펼쳐졌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선거 직후 오거돈 당시 당선인의 인수위가 출범했다. 사무실은 지금과 같은 부산상수도사업본부 건물에 차려졌다. 1995년 민선 도입 이후 첫 지방 권력 교체에 너도나도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있다. 팩트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인수위 앞을 서성였지만, 별 수확은 없었다. 사무실 칸막이는 높기만 했고, 기자들은 ‘입구 컷’ 당하기 일쑤였다. 폐쇄적으로 운영된 인수위, 그리고 이후 펼쳐진 시정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초장부터 측근 실세가 시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오 시장은 그와는 무관하게 부산 전체를 부끄럽게 만든 범죄로 낙마했다.
오 전 시장은 부산시 정무부시장과 행정부시장을 거쳐 해양수산부 장관과 대학 총장까지 두루 역임한 자타공인 행정 전문가였다. 하지만 정작 300만 시민의 염원을 받든 시장이 되고서는 일 잘한다고 평가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임기를 다 채웠다 한들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 전 시장에 비춰, 지방행정 경험이 전무한 전재수 당선인이 부산시를 잘 이끌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4개월 남짓 해수부 장관직을 수행하며 이뤄낸 굵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정과 시정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때론 중앙정부를 상대로, 때론 지역사회 안에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를 ‘머리 굵은’ 관료들 손바닥에 놀아나지 않고 무탈하게 조율해 나갈 수 있을까.
전 당선인은 최근 시청 기자실을 찾아 “역대 부산시장 중 가장 자주 기자들과 만나겠다. 일 잘하는 공무원을 추천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민 목소리를 대변하고, 시민을 대표해 질문하는 기자와 소통 기회를 늘리겠다는 생각은 훌륭하다. 그러나 너무 신뢰하지는 마시라. 기자도 사람인지라 순수한 의도로만 인재를 추천하리란 보장은 없다.
행정 초보로서 빠르게 시정을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해, 당면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책은 뭘까. 시민을 대신해 시청과 구청 행정을 십수 년간 살펴본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 드린다. 부산시 업무보고와 주요 회의를 생중계하시라. 시민들은 이미 이재명 대통령 사례를 통해 그 효과를 알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에서 시작해 마지막 순서로 갓 부산 이전을 마친 해양수산부를 찾아 생중계로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수석보좌관 회의, 타운홀 미팅 등 다양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공개해 국민과의 접점을 늘렸다. 생중계 장면은 수많은 뉴스거리와 파생 동영상을 만들어 내며, 멀게만 느꼈던 국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통령의 질의에 진땀 흘리는 기관장, 막힘없이 답변하는 실무자 등을 지켜보며 ‘국민주권정부’의 효능감을 생생하게 맛봤다.
국정과 마찬가지로, 시정도 생중계 장점이 많다. 우선, 시민들의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 둘째, 공무원의 실력을 가늠하는 자리가 된다. 셋째, 자연스럽게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넷째, 행정 투명성과 시민 소통 강화라는 대의명분도 챙길 수 있다. 이미 라이브 효과를 알아채고 앞서나간 당선인이 여럿 있다. 가까이는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인이 대표적이다. 김 당선인은 선거 직후 ‘시내버스 개선 간담회’를 시작으로 울산시민과의 대화, 인수위 출범 이후 업무보고까지 꾸준히 생중계로 진행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의 비공개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재수 당선인은 공직사회의 친절함을 강조한다. 유능함과 겸손함을 겸비했을 때 친절이 나온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만의 철학이다. 유사하게,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경험칙이 생겼다. ‘기자에게 너무 잘해주는 사람을 경계하라’, 반대로 ‘기자를 너무 기피하는 이들도 의심하라’는 것이다. 전자는 ‘불가근불가원’이란 저널리즘 원칙과 맞닿아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헌법기관이란 이유로 언론 감시마저 회피해 온 선거관리위원회이다. 부산시장이 기자를 만나 여론을 듣고 사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자주 가질수록, 친절의 철학과 시정 비전에 공감하는 채널이 늘어날 것이다. 이에 더해 ‘대시민 보고회’로서 시정 생중계를 적극 활용한다면, 300만 시민의 눈과 귀를 등에 업을 수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추진한 이기대 퐁피두센터 분관, 100억짜리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등 전임자의 폐쇄적인 행정을 시민들은 기억한다. 반면교사 나침반을 달고 닻을 올릴 ‘전재수호’의 순항을 기원한다.
2026-06-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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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박완수 도정 2기에 거는 기대와 우려
선거가 끝났다. ‘경남대도약’을 내건 박완수 경남지사가 ‘경남대전환’을 내세운 상대 후보를 이기고 귀환했다. 이제 경남도정은 지난 4년의 기반을 바탕으로 도정 9기 출항을 앞두고 있다.
양측의 깃발은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여야 후보 누가 당선됐더라도 지난 4년의 기반을 무시하거나 버릴 수는 없다. 이것은 도정의 연속성 때문이다. 박 지사는 '대도약'을 내걸었지만, 대도약은 '대전환'을 내포하고 있다.
박 지사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지난 4일 도청에서 주요 간부들과 티타임을 갖고 두 가지를 강조했다. 건전 재정 기반의 민생 행정이 그 첫째다. 미래 신산업 육성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행정혁신도 강조됐다. 박 지사는 고물가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든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민생 안정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달라고 간부 공무원에게 주문했다.
박 지사의 ‘애민 정책’으로 맛난 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밀양 시골에 있는 어머니는 박 지사가 8기 임기 막판에 지급을 결정한 ‘도민 생활지원금’과 정부의 고유가지원금을 합해 무려 25만 원이나 갖고 있었다. 어머니의 ‘턱’으로 염치없는 아들은 고기를 구웠다.
계산서가 두 자릿수 금액을 기록하자 식당 사장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생활지원금의 선순환 효과는 분명했다. 박 지사가 선거 직전 이른바 ‘표’를 노리고 이런 정책을 펴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생활지원금 지급 결정의 파급력은 경남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어쩌면 그것은 8기 도정의 성과 덕분이었다. 박 지사의 건전 재정이 도의 곳간을 채웠고, 그 여유로움으로 차입 없이 2800억 원이 넘는 쓰임을 있게 했다. 그리고, 박 지사는 이제 다시 9기 도정을 책임지게 됐다.
그의 1호 공약이 ‘행복UP’으로 명명한 5대 복지 공약이다. 우선 도민 멤버십 카드 도입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18세 이상의 도민이 카드를 발급받아 교통, 문화, 의료 등 소비에서 할인과 포인트 적립 등이 가능하다. 4050세대를 위한 전용 복지포인트와 장애인 이동권 보장 확대 등 복지, 도민연금의 강화 등이다. 여기에 이 계획을 뒷받침하는 도민행복기금 조성까지 해서 5대 복지 공약이다.
민생과 권역별 경제 공약도 중요하게 발표했다. 골목상권 활성화 등 내수 경기 진작 시책과 광역버스(G버스) 도입 등 광역 교통망 확충, 피지컬 인공지능(AI),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 남해안권 발전 위한 특별법 제정 등도 박 지사의 도정 9기 주요 과제이다.
공무원부터 통합 창원시장,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을 역임하고 도지사직을 무난하게 수행하는 박 지사를 흔히 ‘행정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공직사회에서 잔뼈를 굵힌 박 지사의 관록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인에게 나름의 한계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집권 여당과 당적이 다른 것을 꼽을 수 있다.
박 지사는 사실 행정 전문가답게 야당의 고유 정치색을 극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차별 없는 전 도민 생활지원금 지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전 국민 민생지원금 정책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동안 야당은 급식, 복지 분야 등에서 ‘선별·차등 지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박 지사는 야당의 관성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지방선거 출정식을 민주화의 성지 국립3·15민주묘지에서 했으며, 재선 출마선언 직후 첫 행보로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하고 선거운동에 나섰다. 선거 기간이던 서거 17주기 추모식에는 혼자 아침 일찍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묘역을 참배하는 열린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야당 출신 박 지사’가 제시한 굵직굵직한 사업은 정부와의 협조나 이해가 필수적이다. 당장 남해안특별법도 그렇고, 광양만경제자유구역의 하동 지분을 별도로 분리하는 하동경제자유구역청 신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또한 속좁게 야당 출신 도지사를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엇박자가 없어야 박 지사가 정한 길이 원활하게 펼쳐진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부울경 행정통합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경남 대도약을 위해서는 행정통합이 우선돼야 한다. 여당 출신의 부산시장과 울산시장은 메가시티 건설이 공약이었고, 박 지사 또한 자치권이 충분히 주어지는 행정통합을 법 제정을 통해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월 발의한 ‘경남부산특별시 설치 특별법’이 국회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박 지사의 계획대로라면 2028년 4월 총선 시기에 통합 단체장을 선출해야 한다. ‘행정의 달인’ 박 지사의 부울경 행정통합 행보가 궁금하다.
이재희 사회2부 선임기자 jaehee@busan.com
2026-06-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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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0년 EU 떠난 영국과 지금의 부울경
딱 10년 전이다. 2016년 6월 24일 오전 7시 20분경 영국발 뉴스에 세계가 경악했다. EU(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가 공식적으로 확정됐다. 탈퇴 51.9%, 잔류 48.1%. 설마가 현실이 된 결과였다. 3.8% 차이로 영국은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했다.
투표를 강행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그날 바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원래 EU 잔류파였다. 탈퇴 논란을 아예 털고 가기 위해 국민투표를 밀어붙였는데, 결국 브렉시트 1등 공신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만큼 투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후임 총리는 탈퇴 지지자인 테리사 메이였다.
당시 EU는 회원국들의 더욱 강한 결속을 다지고 있었다. 미국에 이어 중국이 경제 패권 국가로 부상하고 있었다. 금융 통합을 강화해 유럽 내 경제 효율성을 높여야 했다. 유럽을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묶어, 외부 협상력을 높일 필요도 있었다. 대체로 유럽 안에선 지지를 받는 논리였다. 영국의 다수 경제학자들도 영국이 EU에서 빠지면 매우 곤란해질 것이라고 꾸준히 경고했다.
하지만 영국 안에선 EU에 법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에 불만이 커졌다. 나라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게 핵심 주장이었다. 한때 세계 최강 국가였던 영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메시지였다. 경제보다 자존심을 선택한 투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10년이 지나면서, 영국의 경제는 더 추락했다. EU 탈퇴 시 제기됐던 여러 우려가 적잖게 현실이 됐다. 지금 영국에선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어지고 있고, EU 재가입 논쟁도 불거졌다. 노동당 안에선 EU 재가입을 공약으로 내걸자는 주장도 공식적으로 나왔다. 2016년 6월의 3.8% 차이 대가는 꽤 무거웠다.
‘규모의 경제’는 규모가 커져야 경제적 효율성이 좋다는 의미로 쓰인다. 많이 만들어야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줄고, 이익은 커진다. 시장이 커야 투자가 몰리고, 또 그 덕에 시장은 더 커지고, 성장의 선순환에 올라탈 수 있다. 영국은 큰 시장의 일부가 아닌 자신만의 시장을 만든 셈이다.
시장의 논리만으로 경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살펴야 한다. 경제 활동은 정책과 행정의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주변 EU 회원국들과 비교해, 영국만 관세와 행정 시스템이 다르면 영국의 경제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등으로 시장 통합, 행정 통합, 경제 블록화 등이 불경기 타개책으로 자주 언급된다.
80년대, 90년대 명절이면 부산에서 조부모가 있는 경남 고성으로 갔다. 부산의 지근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매번 지겨워서 힘들었다. 차가 막히면 4~5시간도 걸렸다. 지금은 우회도로가 많고, 길도 좋아져, 경상남도 저 멀리 구석구석까지 웬만하면 2시간 남짓이다. 교통 인프라 덕에 부울경은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다.
나머지는 제자리다. 부울경이 정서적으로 딱히 가까워지고 멀어질 일도 없었다. NC다이노스의 탄생으로 롯데자이언츠 팬이라는 공통분모가 오히려 줄었다. 경제 교류도 마찬가지다. 부울경은 서로 붙어 있어 자연스레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딱 그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협업하며 함께 성장하는 사이는 아니다.
유럽의 나라들이 EU를 강화하면서 했던 고민은 부울경에도 유효하다. EU는 미국, 중국 등으로부터 유럽의 경제를 지켜야 했다. 어떤 면에서 대한민국 수도권은 미국과 중국보다 더 위협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서울공화국은 돈과 사람을 끌어당겼다. 이런 극단적인 불균형을 극복하려 나온 아이디어가 지역 통합이다.
부울경 경제 블록화, 부울경 행정통합, 부울경 메가시티 등 부울경이 뭉치자는 아이디어는 여러 이름으로 나왔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정부 지원과 맞물려 꽤 큰 쟁점이 됐다. 안타깝게도 부울경 통합에 대한 관심은 금세 또 식고 있다. 부울경 단체장 당선인들의 정당이 달라, 통합 동력이 떨어졌다는 전망도 있다. 민주당은 메가시티, 국민의힘은 행정통합을 원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브렉시티가 결정될 때, 이미 영국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건 자명했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은 경제보다 자존심을 우선시했다. 부울경이 경제 블록화를 달성해 시장을 키우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면, 결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도 자명하다. 다만 단체장의 당이 서로 달라 뭉치기 쉽지 않다는 게 서글프다. 당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면, 당선인들은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k103@busan.com
2026-06-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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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나동연 양산시장 4선 성공, 이제는 실천
6·3 지방선거는 낙동강 벨트 민심의 변화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부울경 곳곳에서 정권 심판론과 지역 발전론이 맞부딪힌 가운데 경남 양산에서는 개표 초반 열세였던 국민의힘 나동연 시장이 막판 역전 드라마를 쓰며 4선 시장에 성공했다.
이번 결과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시민들은 지역 발전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무게를 실었다. 민선 8기 동안 추진해 온 사업들을 마무리하고, 양산의 미래를 책임질 프로젝트를 완성해 달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나 시장은 당선 직후 “양산의 미래를 만들어갈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시민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민선 9기 성패는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비전과 공약을 얼마나 현실로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양산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경남의 대표 도시로 성장했지만, 도시 인프라는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부울경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4년은 양산이 동남권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중요한 시기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과는 양산 발전에 긍정적 여건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다행히 민선 8기 사업들은 이미 본궤도에 올라 있다. 증산신도시 개발은 ‘도시와 자연, 사람이 공존하는 자족 복합도시’ 조성으로 서부양산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고 있다.
부산대 양산캠퍼스 유휴부지 활성화 사업도 정부의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 선정을 계기로 속도를 낼 전망이다. 부산대와 양산시, 경남도, 정치권이 협력해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한다면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회야강 르네상스 사업은 관광과 문화, 친수공간을 결합한 것으로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종합장사시설 건립과 자원회수시설 현대화 사업은 주민 수용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사업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역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산 간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광역교통망을 확충하는 천성산 터널 개설 사업도 지역 균형 발전과 도시 경쟁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선 9기 공약 사업도 관심을 모은다. 부울경 광역철도 조기 착공과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의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는 양산의 미래를 좌우할 교통 분야 핵심 과제다. 부울경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광역교통망 구축은 양산 발전의 필수 조건이다.
웅상출장소의 동부청사 승격 역시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다. 인구 10만 명을 가진 동부양산의 행정 수요를 감안하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만 20세 청년들에게 5000만 원 규모의 출발 자본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주목된다. 지방소멸 위기 시대에 청년 정착 유도와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정치적 여건도 나쁘지 않다. 박완수 경남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양산시와 경남도의 정책 공조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현재 국정 운영 주체는 더불어민주당이지만, 양산의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윤영석·김태호 의원은 나란히 4선 중진이다. 국회와 중앙부처를 상대로 한 국비 예산 확보와 현안 해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여야를 떠나 지역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 체계를 구축하다면 양산의 핵심 사업 추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변수도 있다. 낙동강협의회다. 지방선거 전까지 참여 단체장(7개 자치단체) 모두가 국민의힘 소속이어서 비교적 일사불란한 대응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이후 부산지역 4개 자치단체와 김해시가 민주당으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존 협력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낙동강 문제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치 논리를 넘어선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
나동연 시장의 4선 성공은 선거 승리 자체보다 민선 8기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민선 9기 새로운 비전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는 데 있다.
나 시장은 “모든 문제의 답은 시민들의 이야기에 속에 있었고, 현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앞으로 4년의 과제다.
양산의 미래를 좌우할 과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적·행정적 여건은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민선 9기 성공 여부는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초심을 얼마나 끝까지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시민들이 나 시장에게 부여한 4년은 ‘양산의 미래를 완성하라’는 엄중한 책임의 시간이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6-06-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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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외국인 관광객, 국제선 공급만큼 늘었다
최근 부산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 해운대, 광안리 등 관광지는 어디라도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체감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얼마나 늘어난 걸까.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부산의 인기가 올라간 걸까.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통계는 기관별로 차이가 난다. 집계 방식이 달라서다. 부산시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부산을 찾은 외국 관광객은 147만 588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9% 늘어난 수치다. 부산시는 부산항과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에 '타지역 경유자'를 더해 통계를 낸다.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올해 1~4월 부산 방문 외국인 수는 534만 200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72만 6065명)에 비해 43% 늘어났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렙은 SK텔레콤 가입자 정보를 이용해 하루 2시간 이상 부산에 체류한 외국인 방문자를 집계한다. 하루 방문자에 체류일이 곱해져 부산시 통계보다 수치가 크다.
두 기관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부산 외국인 관광객 40% 증가는 이례적인 수치다. 한국을 찾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1~4월 한국 전체의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부산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도 1~4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이 24% 늘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부산 외국인 관광객 증가 폭이 절반 정도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산을 방문하는 비율도 독보적인 상승세를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 지난 1~4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부산 방문자 비율은 9.5%였다.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P) 늘어난 수치다. 부산 방문 비율 증가는 전국 최고로 서울(1%P 증가)보다 높다.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관광객의 지역 방문 비율이 늘어난 광역지자체는 부산, 서울, 제주(0.7%P 증가), 인천(0.1%P 증가)뿐이다. 경기도는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비율이 1.2%P 줄었다.
부산시 통계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은 늘었다. 지난 1~4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22%가 부산을 방문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9%만 부산을 찾아 3%P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산의 인기가 올라간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다.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과 관련해 주목할 사실은 항공 이용객 비율 증가다. 부산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김해공항을 이용한 비율은 40%였다. 올해는 공항 이용 비율이 42%로 2%P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이 약 2%P 오른 것과 일치한다. 반면 타지를 경유해 KTX 등으로 부산을 찾은 비율은 44%로 지난해와 같았다. 항만을 이용한 비율은 2%P 줄었다(16%→14%).
묘하게 일치하는 수치가 하나 더 있다. 지난 1~4월 우리나라 국제선 좌석 공급량 가운데 김해공항 국제선 좌석이 차지하는 비율은 12.1%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0.7%였다. 김해공항 국제선이 전체 국제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P 증가한 셈이다. 이는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 지난 1~4월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 증가폭(1.4%P)과 정확히 일치한다. 2년 전과 비교해도 수치는 마찬가지다. 1~4월 한국의 국제선 공급에서 김해공항 비율은 2년 전에 비해 2.5%P 늘었다. 이 기간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은 2.4%P 늘었다.
이 수치만으로 김해공항 국제선 확대가 외국인의 부산 방문 비율 확대를 이끈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원인과 결과를 바꿔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해공항 국제선 확대가 외국인 방문객 비율 확대에 선행한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인천공항 일원화' 영향으로 국제선 운항이 크게 줄었던 김해공항은 2022년부터 국제선 좌석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22년 우리나라 전체 국제선 항공 공급량(좌석)의 5.9% 수준이던 김해공항 국제선은 2023년 9.2% 2024년 9.9% 2025년 11.2%로 늘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 기준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은 2022년 6.1%에서 2023년 7.3% 2024년 7.7% 2025년 8.6%로 서서히 늘었다. 국제선 공급 비율이 먼저 늘어나고 외국인 방문 비율이 뒤따라 늘면서 두 수치의 간격이 줄어드는 모습이다. 내국인 해외 관광을 위해 확대한 국제선 노선이 외국인 국내 관광을 이끈 셈이다. 국제선 노선 등 항공 서비스 확대는 지역의 관광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2026-06-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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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열일곱 살' 금융 중심지 부산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당이 대체로 승리했다는 평가 속에 지방 권력까지 상당수 움켜쥐면서 여권은 그동안 지방 정부와 국민 눈치를 살피며 미뤄왔던 각종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부산과 관련이 깊은 금융 정책도 그렇다.
우선 한국거래소의 지주사 전환과 코스닥 분리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회의에서 이를 언급하며 추진 의지가 확인됐다. 부산에 본사를 둔 거래소의 코스닥 시장 관련 기능이 서울로 더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부산 남구 금융 자율형사립고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가 수행한 용역이 거의 마무리됐지만 선거 이후 지방 권력과 협의가 필요한 만큼 미뤄뒀던 논의의 빗장이 곧 풀릴 듯하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금융 중심지 부산의 위상에 영향을 끼칠 금융 정책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제3 금융 중심지 지정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시 활황에 전북 전주에 본사를 둔 국민연금공단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올랐고, 이에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잇따라 전주로 몰려들면서 제3 금융 중심지 논의가 재점화됐다. 대통령은 전주의 사례를 성과로 추켜세웠다. 지난 대선에선 제3 금융 중심지 지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전주 지역에서도 지금이 적기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의 지방 균형발전 전략인 ‘5극 3특’ 기조에 관련 논의가 더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부산시와 부산 시민단체는 ‘나눠 먹기식’ 금융 중심지 정책은 그간 어려운 상황에서 축적해 온 부산의 인프라와 기능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전주 지역 상공계 등은 부산이 금융 중심지 추가 지정을 지역 간 제로섬 게임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산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반하고 있다며 ‘실망’과 ‘분노’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지방 소멸의 시대, 팽창하는 수도권에 맞선 전주의 외침이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국토 면적과 금융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금융 중심지를 세 곳까지 분산 지정하는 것이 과연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바람직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금융 중심지 부산의 초라한 현실까지 새겨본다면, 추가 지정 논의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부산이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건 2009년 1월이다. 17년이 넘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부산은 지정 초기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유아기 수준의 금융 중심지에 머물러 있다. 금융산업 주요 인프라 기관들만 집중돼 자본시장을 지탱하는 골격만 갖췄을 뿐, 피와 살이 되는 민간 자본과 인력은 서울에 몰려 있다. 부산을 파생금융 중심지로 특화하려고 했던 정부 계획도 절반의 실패다. 실제 운용·트레이딩 인력과 의사 결정 기능은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전 공공기관의 수장들과 주요 임직원들은 여전히 일주일에 3~4일 서울에 머문다. 서울이 본사인지 부산이 본사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직원들 역시 많은 인원이 서울에 배치돼 있다. 서울에 60% 가까운 조직과 인력이 남아 있는 기관도 있다. 부산 금융 중심지는 서울 금융 중심지 ‘블랙홀’에 그 기능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용을 쓰며 명맥만 유지하는 꼴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금융 중심지 추가 지정 타당성 검토 용역에 착수했다. 용역은 오는 10월 마무리된다고 한다. 연내 추가 지정 여부가 가려지는 수순이다. 앞서 전주는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 금융 중심지 지정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용역에서는 전주가 금융 거점지로는 적합하지만 국제금융 중심지로는 맞지 않고, 추가 지정은 기존 금융 중심지 두 곳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기존 금융 중심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실화 노력에 지속적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주가 금융 중심지로서 위상을 가질 만한 금융회사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유일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정부의 부산 금융 중심지 내실화 노력은 부족했다. 그 사이 서울의 금융 기능은 철옹성처럼 더 굳건해졌다. 전주 역시 국민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금융 구조를 예나 지금이나 한계로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증시 활황에 돈과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증시 침체 시 지속 가능한 금융 중심지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 부호가 남는다.
정부는 금융 중심지 추가 지정 논의를 기회로 금융 중심지 정책을 다시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여당 출신 새 부산시장도 정부 정책에 맞서 부산 금융 중심지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지켜내고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과 대응이 필요하다. nmaker@busan.com
2026-06-0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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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삼절사와 기억해야 할 역사
5월 가정의 달이 가고 맞이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엔 의병의 날(6월 1일)과 현충일(6월 6일), 한국전쟁(6월 25일) 등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 이어진다.
그중 6월 1일 의병의 날은 국난의 위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나라를 지킨 의병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의병의 날이 6월 1일로 지정된 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가 경남 의령에서 처음 거병한 날이기 때문이다.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6월 1일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초기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했다. 붉은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벼 ‘홍의장군’이라 불렸고, 왜군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그는 정암진 전투 등에서 왜군의 북상을 막아내며 조선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곽재우 부대와 함께 싸운 의병 가운데 양통한이란 인물이 있다. 부산 출신의 양통한은 왜군의 침략에 동래성이 무너지자 의병으로 나서 경주, 대구 등지에서 활약했고, 정유재란 때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했다. 이때 그의 두 아들 양의와 양숙 또한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 전사하는 비운을 당했다.
앞서 양통한의 형 양조한은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동래향교 유생이었던 양조한은 왜군이 동래성을 공격하자 향교의 성현 위패를 정원루로 옮겨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들 양홍 역시 아버지와 마지막을 함께했다. 한집안의 두 부자(父子)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양조한과 양통한 형제는 남원 양 씨 가문이다. 이 가문의 일가인 양지는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삭녕(현 연천)군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 또한 북상하는 왜군에 맞서 성을 사수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양지는 후일 이조판서에 증직되며 충민공이란 시호를 받았고, 양조한은 호조정랑, 양통한은 호조좌랑에 봉해졌다.
남원 양 씨 가문 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해운대구 반송동에 자리한 삼절사(三節祠)다. 삼절사는 1839년 동래부사 이명적이 세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반송동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삼절사는 약 400평(1320㎡) 규모의 대지 위에 세워져 다. 제향을 지내는 세한당과 모현관, 반송재 3개 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1986년엔 부산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세한당의 세한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같은 논어 구절에서 따왔다. ‘날이 추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不彫)’란 뜻이다.
일본에 맞선 충신을 모신 사당인지라 삼절사는 일제강점기에 큰 수난을 겪는다. 당시 일제는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사우와 향사를 경계하며 탄압했다. 이에 후손들은 삼절사 위패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몰래 민가에 옮겨 봉안했고, 제향도 한밤중에 조용히 치렀다. 일제가 사당을 철거하려 하자 창고라고 둘러대며 가까스로 건물을 지켜냈다고도 한다. 현판과 문서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후손들은 끝까지 삼절사를 지켜냈다.
남원 양 씨 가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조한의 손자이자 양홍의 아들인 양부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순국한 동래성 전투 현장에 함께 있었다. 당시 열두 살이던 그는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석 달 만에 일본어를 익힌 양부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이 됐고, 명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온 심유경과 공모해 독이 든 환약을 도요토미가 먹도록 해 그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조선 후기 문헌 〈연려실기술〉과 〈성호사설〉에 기록돼 있다.
‘병역 명문가’란 말이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국가에 헌신한 가문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의 국난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가가 목숨을 바친 남원 양 씨 가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호국 명문가’라 할 만하다.
반송동은 집단이주촌으로 알려져 있다. 1960~1970년대 부산 도심의 불량주택 철거에 따라 반송동에 대규모 정책이주가 이뤄진 탓이다. 하지만 정책이주 이전에 반송동엔 남원 양 씨 가문이 400여 년간 대대로 터를 잡고 있다. 후손들은 여전히 삼절사를 지키며 세 선조의 제향을 모시고 있다.
집단이주란 이미지를 한꺼풀 벗겨내면 반송은 달리 보인다. 숨은 역사가 숨쉬는 곳.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재조명된 엄흥도처럼 늦었지만 삼절사와 세 위인의 이름도 기억해야 할 역사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알려지지 않거나 잊힌 역사가 적지 않다.
정광용 독자여론팀장 kyjeong@busan.com
2026-06-04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