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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삼절사와 기억해야 할 역사
5월 가정의 달이 가고 맞이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엔 의병의 날(6월 1일)과 현충일(6월 6일), 한국전쟁(6월 25일) 등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 이어진다.
그중 6월 1일 의병의 날은 국난의 위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나라를 지킨 의병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의병의 날이 6월 1일로 지정된 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가 경남 의령에서 처음 거병한 날이기 때문이다.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6월 1일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초기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했다. 붉은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벼 ‘홍의장군’이라 불렸고, 왜군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그는 정암진 전투 등에서 왜군의 북상을 막아내며 조선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곽재우 부대와 함께 싸운 의병 가운데 양통한이란 인물이 있다. 부산 출신의 양통한은 왜군의 침략에 동래성이 무너지자 의병으로 나서 경주, 대구 등지에서 활약했고, 정유재란 때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했다. 이때 그의 두 아들 양의와 양숙 또한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 전사하는 비운을 당했다.
앞서 양통한의 형 양조한은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동래향교 유생이었던 양조한은 왜군이 동래성을 공격하자 향교의 성현 위패를 정원루로 옮겨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들 양홍 역시 아버지와 마지막을 함께했다. 한집안의 두 부자(父子)가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양조한과 양통한 형제는 남원 양 씨 가문이다. 이 가문의 일가인 양지는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삭녕(현 연천)군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 또한 북상하는 왜군에 맞서 성을 사수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양지는 후일 이조판서에 증직되며 충민공이란 시호를 받았고, 양조한은 호조정랑, 양통한은 호조좌랑에 봉해졌다.
남원 양 씨 가문 3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해운대구 반송동에 자리한 삼절사(三節祠)다. 삼절사는 1839년 동래부사 이명적이 세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반송동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삼절사는 약 400평(1320㎡) 규모의 대지 위에 세워져 다. 제향을 지내는 세한당과 모현관, 반송재 3개 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1986년엔 부산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세한당의 세한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같은 논어 구절에서 따왔다. ‘날이 추워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不彫)’란 뜻이다.
일본에 맞선 충신을 모신 사당인지라 삼절사는 일제강점기에 큰 수난을 겪는다. 당시 일제는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사우와 향사를 경계하며 탄압했다. 이에 후손들은 삼절사 위패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몰래 민가에 옮겨 봉안했고, 제향도 한밤중에 조용히 치렀다. 일제가 사당을 철거하려 하자 창고라고 둘러대며 가까스로 건물을 지켜냈다고도 한다. 현판과 문서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후손들은 끝까지 삼절사를 지켜냈다.
남원 양 씨 가문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조한의 손자이자 양홍의 아들인 양부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순국한 동래성 전투 현장에 함께 있었다. 당시 열두 살이던 그는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석 달 만에 일본어를 익힌 양부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이 됐고, 명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온 심유경과 공모해 독이 든 환약을 도요토미가 먹도록 해 그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조선 후기 문헌 〈연려실기술〉과 〈성호사설〉에 기록돼 있다.
‘병역 명문가’란 말이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국가에 헌신한 가문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의 국난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가가 목숨을 바친 남원 양 씨 가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호국 명문가’라 할 만하다.
반송동은 집단이주촌으로 알려져 있다. 1960~1970년대 부산 도심의 불량주택 철거에 따라 반송동에 대규모 정책이주가 이뤄진 탓이다. 하지만 정책이주 이전에 반송동엔 남원 양 씨 가문이 400여 년간 대대로 터를 잡고 있다. 후손들은 여전히 삼절사를 지키며 세 선조의 제향을 모시고 있다.
집단이주란 이미지를 한꺼풀 벗겨내면 반송은 달리 보인다. 숨은 역사가 숨쉬는 곳.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재조명된 엄흥도처럼 늦었지만 삼절사와 세 위인의 이름도 기억해야 할 역사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알려지지 않거나 잊힌 역사가 적지 않다.
정광용 독자여론팀장 kyjeong@busan.com
2026-06-0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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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 거친 입을 다물라
“우리는 지금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의 패’를 마치 자신이 타고난 ‘천재성’ 덕분인 양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워싱턴을 이끄는 지도층은 ‘공감하는 것’이 곧 ‘약한 것’이라고 믿는 듯합니다.”
지난달 28일 미국 유명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이 화제다. 코난 오브라이언은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로 30년 넘게 미국 심야 토크쇼를 지배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워싱턴을 이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공감 능력을 잃은 권력’으로 정의했다.
이날 하버드대 졸업생들과 시민들은 마가(MAGA)를 내세우며 관세 전쟁에서 동맹국을 무시하고, 이란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대학에 지원금을 끊은 트럼프에 대한 일갈에 환호했다. 20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은 폭소로 채워졌다. 그의 한마디에는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오브라이언의 진단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일부 권력자들이 내뱉는 거친 언어와 판단에 한국 국민들도 고통받고 있다. 6·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대한민국 정치가 바로 그 현장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한국 정치인들의 말실수는 너무 많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는 지난달 3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에서 유세 도중 한 초등 1학년 학생을 만난 자리에서 40대 후반인 하정우 후보에게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부르도록 유도해 비판을 받았다. 교육·여성 단체들은 아동학대 혐의로 정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정 대표와 하 후보는 “상처받았을 아이와 부모님께 송구하다”며 사건 당일 밤 SNS에 사과했다.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자 국회 의석을 3분의 2 가까이 가진 거대 정당의 대표의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터진 ‘5·18 탱크데이’ 사태에 대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발언 역시 공감 능력이 있는 발언으로 보기엔 어렵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부정하는 듯한 마케팅을 벌인 스타벅스에 항의했다. 국민들은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나서며 강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달랐다. 장 대표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적힌 붉은 앞치마를 하고 선거 운동에 나섰다. 그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이재명과 민주당을 심판하자”고 호소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인증샷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장 대표를 포함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언행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유가족과 시민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26일 3명이 숨진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마저 선거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 이들도 있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 마포구청장 후보는 “우리 마포는 4년 동안 단 한 건의 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고 내뱉었다. 한 가정의 가장 3명이 숨진 안타까운 사고조차 자신의 정치에 악용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절망해야만 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 지지자들이 ‘이번 사고는 선거에 호재다’라는 비정한 글을 올려 논란을 샀다.
오브라이언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착각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천재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착각이 공감 능력을 죽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감을 잃은 권력이 언어를 더욱 타락시킨다고 진단했다.
이 진단은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 국회, 지방정부·의회에서 권력을 갖는 과정에는 본인의 능력만큼이나 시대적 흐름과 상대의 실책 등 엄청난 운이 작용한다. 권력은 국민이 잠시 맡긴 것일 뿐, 전유물이 아니다. 그 권력에 취하는 순간 참사 앞에서 치적 자랑을 늘어놓고, 역사적 비극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들이밀고, 아이에게 부적절한 호칭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말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의 말은 법이 되고 예산이 되고 누군가의 삶이 된다. 그들의 말 한마디로 민심은 돌아선다. 공동체는 반쪽으로 갈라진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고들 하지만 그들의 입이 무거워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을 향한 정치인들의 언어에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성찰 없는 정치인의 말은 국민들에게 고통일 뿐이다. 선거 무대의 주인공은 함부로 말을 뱉는 정치인이 아니다. 시민들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이젠 그 거친 입을 다물라.
2026-06-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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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자본 탈출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생 A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응.” “아직 부산에 살고 있나 해서.” “당연하지. 부산일보 다니는데 어딜 가.”
몇 번의 문자가 더 오간 뒤, A는 해운대 마린시티 아파트를 팔고 서울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지금 안 갈아타면, 진짜 서울 집 못 살 거 같아서. 좀 서둘렀어.”
부산에 살고 있냐는 말이, 몸이 부산에 있느냐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몸과 영혼을 나누듯, 사는 집과 자본을 나눈다면 너의 자본이 부산에 아직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영혼과도 같은’ 자본을 ‘상급지’ 서울로 옮긴 분투기를 듣고서야, ‘아직’ 부산에 살고 있느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A는 주식에 ‘젬병’이었던 기자에게 미국 주식 시장이 꽤 괜찮은 투자처란 걸 처음 알려줄 때처럼, 최대한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돌려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A의 자본은 ‘유출’이 아니라 부산을 ‘탈출’했다.
‘돈깨나 있는’ 시니어층 사이에서도 건물을 팔고, 회사를 팔고 자식들 있는 서울에 집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수십 억 건물을 부산에 놔둬 봐야 오르지도 않고 공실과 임대 관리로 골치만 아픈데 서울 ‘똘똘한 한 채’를 사 눌러 앉으면 걱정도 사라지고, 자식 손주도 더 자주 볼 수 있으니 ‘돈 싸들고’ 서울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자리 잡은 자녀들이 가업을 승계할 마음이 없으니, 회사를 매각한 뒤 자금을 챙겨, 자산 가치가 보장되는 서울로 향한다고 했다. 지역에서 창출된 부는 더 이상 지역 재투자나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자본 시장으로, 무서운 속도로 탈출하고 있다.
‘청년’뿐 아니라 ‘자본’도 서울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역은행들은 지역에서 빌려줄 돈이 모자라 수도권에서 고리로 자금을 끌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곳곳에서 자본 탈출이 일상화되고 있고, 이를 다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지방의 자본 탈출은 지역 경기 침체와 투자 감소, 다시 인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탱한다.
자본이 스스로의 증식을 위해 더 넓고 비옥한 땅으로 떠나는 것이 자본주의 생리라지만, 자본이 떠난 지역의 경제는 쪼그라들고, 일자리는 더 사라지게 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을 앞설 때 자산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했다. 성장률이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소득보다 과거에 축적했던 부가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년 성실히 일해 번 근로 소득과 사업 소득은 서울에 사둔 아파트 한 채 가격 상승분을 절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 됐다. 부산의 산업 성장이 정체된 사이, 서울의 부동산과 주식 등 자본 자산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새로 생겨난 ‘반도체 계급’과 ‘돈 복사기’로 불리는 삼전닉스 등의 주식 호황은 수도권으로 자본을 더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A가 “지금 안 갈아타면 영영 못 갈 것 같다”고 서두른 이유도 바로 이 r과 g의 격차를 몸소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자본 수익률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것 같은 전문직 A의 소득으로도 r과 g의 격차를 체감하고 서두를 정도면, 다른 직업군은 말해 무엇하랴.
실제로 지난해 상위 20%의 순자산이 7.9% 늘어나는 동안 하위 20%는 오히려 4.9% 감소하며 자산 격차가 7.82배까지 벌어졌고,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역대 최악인 0.625를 기록했다. 한국은 OECD 주요 선진국 18개국 중 5번째로 불평등한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행 이슈노트에 따르면 지역 격차의 확대는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 자산 4분위(상위 25%)의 자녀는 1분위(하위 25%) 자녀에 비해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포인트 높고,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이주를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는 부모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들에게만 집중된다. 자본 탈출은 수도권에서의 자녀 계급 상승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가 결국 경제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교육 의욕, 노동 의욕이 떨어져 인적 자본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자본에 대고 애향심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제로 발을 묶어둘 수도 없다. 그보다 자본이 지역에 남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세금이 가볍고, 유동성이 좋으며, 가격 상승 기대가 클수록 자본은 부산에 남을 수밖에 없다. 6·3선거에서 부산시민의 선택을 받을 시장은 부산을 청년, 기업이 머물고 싶은 도시뿐 아니라 자본이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2026-05-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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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성과와 보상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보다 ‘삼전닉스’가 더 화제다. 두세 명만 모여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다. 주가 이야기를 할 때는 주식을 전혀 모르던 사람조차 텐배거(10배 이상 수익률)니 하는 말에 솔깃할 수 있었는데 이어나온 억대 성과급 뉴스에는 그만 허탈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비수도권 월급쟁이들에게는 로또 당첨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제 연봉보다 몇 배는 많은 반도체 대기업의 성과급은 박탈감조차 들먹이기 어려울 정도로 ‘딴 나라 이야기’다.
“마음이 무겁다.” 어렵게 노사협상이 타결되고 노조 투표 중인 삼성전자 성과급과 관련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낸 논평이 그나마 가까운 감상이다. 중기중앙회는 “삼성전자 노사협상을 지켜본 중소기업 근로자와 사업주는 마음이 무겁다”며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 논쟁에서 협력 중소기업에 정당한 대가와 보상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임금 격차는 그렇지 않아도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분석해보면 반도체 업종이 포함된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에서 300인 이상 상용근로자는 월 942만 원, 300인 미만 임시일용근로자는 월 176만 원을 받아 사업장 규모나 고용 형태에 따라 다섯 배 넘게 차이가 났다. 삼전닉스의 대규모 성과급 사태로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기존 양극화와 다른 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을 넘어 극소수 대기업에 이익이 쏠리는 구조다.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국내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의 60%를 넘겼다. 같은 기간 수출에서도 상위 10개 기업이 처음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전체 수출 기업 6만 7531개 중 단 0.015%가 국내 수출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군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박탈감을 호소한다. 삼성전자처럼 한 기업 내에서도 사업 부문에 따라 성과급이 갈리는 합의안에 노노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같은 명문대를 나와 삼성전자에 간 동기들을 보면서 씁쓸해하는 다른 대기업 직원, 메모리사업부의 성과는 산업 특성과 구조적 요인 덕분이지 직원들의 노력이 달랐던 건 아니라는 삼성전자 직원의 이야기도 보도됐다.
이와 같은 반응은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소위 ‘인국공’ 사태를 전후해 대두된 공정과 능력주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의 ‘공정’ 담론이 시험을 불변의 잣대로 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불공정이라고 비판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와 반도체 초호황이라는 구조적인 변수가 기존의 잣대를 뒤흔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극단적인 양극화와 산업 편중, 끝없는 비교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불행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노조 조합원의 합의안 투표는 27일까지다. 정부까지 중재에 나서고 글로벌 공급망이 숨죽인 논란은 기업 차원에서는 일단락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기업의 성과는 누구의 것이고, 투명한 보상 체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삼성전자 노사는 나름의 답을 찾았고, 협력업체 동반성장, 지역사회 공헌, 산업안전 등을 위한 재원 조성과 운영계획 등 상생방안도 내놓기로 합의했다.
다음은 국가의 차례다. AI 시대에 사회가 산업의 성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기준으로 보상 또는 배분할지 물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기업의 성과인 동시에 정부의 세액 공제와 지역사회 자원을 토대로 성장한 국가전략산업의 성과다.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이 반도체 기업의 역대급 이익으로 인해 발생할 초과 세수를 격차 완화와 미래 사회 안전망의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배경이다.
‘국민배당금’이라는 표현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올해 국가 전체의 법인세수 목표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만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세수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김 실장은 구체적으로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노령연금 강화, 예술인 지원, 인공지능 시대 전환 교육 계좌 등을 들면서 “백가쟁명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교화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지역 격차 완화는 재정투자의 주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역 격차는 여러 구조적인 불평등의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일자리와 임금이 달라지고, AI 활용과 생산성까지 차이가 난다면 정부는 그 격차를 메우는 데 재정을 투입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해 실업을 당할 기회조차”(국립부경대 홍장표 명예교수, 〈한겨레〉 인터뷰) 없는 청년들도 자부심을 갖고 성과를 내고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6-05-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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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재논의할 개헌이라면 재정 분권부터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통합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부울경을 집어삼킬 듯 달아올랐던 행정통합이란 화두가 정작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논의 자체가 묻혀버린 것이다. 통합의 시기와 절차를 놓고 여야가 벌인 날 선 공방이 그저 샅바싸움에 불과했다는 허탈감만 감돈다.
행정통합 논의는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던져진 질문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방분권, 특히나 재정분권은 대체 왜 이뤄지지 않으며 대체 언제쯤 실현되는가. 이 문제를 유권자가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점은 분명한 성과다.
행정 서비스가 고도화되면서 지방정부가 떠맡아야 하는 부담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할 재정권은 중앙부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당장 지방세 비중은 국세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2024년 기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75%대 25%이다. 지난 1월부터 국무조정실 주도로 범정부 재정분권 TF가 가동 중이다. 연내 70% 대 30%까지 지방세 비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역 관가에서는 여전히 멀었다는 평가다. 국가 예산의 60% 이상이 지방에서 최종적으로 지출되는 까닭이다. 행정 서비스와 국가사업의 절반 이상이 지방에서 이뤄지지만 돈줄은 중앙부처에서 쥐고 놓아줄 뜻을 보이지 않는다. 이 기형적인 구조는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중앙부처는 사업성을 앞세워 지역을 옥죄어올 것이 자명하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격차는 날로 벌어진다. 예산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놓고 봤을 때 수도권을 이겨낼 수 있는 지방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수도권에서는 자다깨면 새로 추진되는 게 GTX 노선이다. 중앙부처 구성원이 수혜를 직접 누리는 GTX 노선은 수도권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이제는 수도권의 범주를 충청권까지 확장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 권한 이양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앙부처가 권한을 틀어쥔 구조로는 지방 경쟁력을 키우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지방정부는 임의로 세금을 만들거나 세율을 정할 수 없다. 지방정부는 중앙부처가 정해준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부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노다지 같은 이 흐름을 공공 인프라를 위한 세원으로 끌어들일 방안이 전무하다.
관광세나 숙박세 등으로 공공 재원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된 세계 주요 도시들과는 큰 차이점이다. 독자적인 과세권이 없는 지방은 뻔히 물 들어오는 게 눈에 보이는 데도 노를 젓지 못하는 셈이다.
중앙부처가 움켜쥔 재정권은 세입에만 그치지 않고 세출까지 이어진다. 중앙부처에서 지원받은 예산 상당 수에는 딱지처럼 용처가 세세히 지정되어 있다. 지역 실정에 맞게 유연하게 집행하기 힘든 이른바 '경직성 예산'이다.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에서 포괄보조금을 확대해 달라고 애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정부를 중앙정부 산하 기관 정도로 여기는 인식을 바꾸고 진정한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해 재정분권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권한과 조직보다 중요한 건 돈이다.
사실 행정통합 논의와 더불어 재정분권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공직 사회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늘 지방분권은 중앙 정치권의 수사였다. 섣부른 기대는 배신감만 낳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광주를 찾아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며 개헌 재추진 의사를 밝혔단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추진하려던 개헌 논의가 무산되자 선거 이후 이를 다시 정국 의제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가 다시 시작된다면 지방분권은 그 어떤 의제보다 무게감 있게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재정분권이 있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세입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상황에 맞게 재정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시기가 됐다.
지방이 살아야 국가 경쟁력도 살아난다는 말은 이제 지겹다. 비대해진 수도권이 버겁다면서도 재정과 권한을 절대 놓지 않는 그 모순을 중앙 부처는 돌아봐야 한다.
재추진될 개헌이 진정 국가 시스템의 미래를 고민하는 논의라면 답은 분명하다. 지방분권, 그 가운데서도 재정분권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상국 사회부 차장 ksk@busan.com
2026-05-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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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뜨거운 재보선 냉담한 지선의 결과
세 사람이 얼마 전 tvN ‘유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이덕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덕화는 칠십 대인데도 여전히 멋이 있었다. 다들 한 번씩 따라 했던 ‘트라이’ 광고에 나왔을 때와 비교해도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덕화는 자신을 젊게 보이게 만드는 한 제품의 광고 모델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때가 선거철인 만큼 이야기가 갑자기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동훈으로 튀었다. 한 사람이 “한동훈이 부산에 뼈를 묻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부산을 알리는 광고 모델이라도 해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한동훈과 맞붙는 후보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국민의힘 후보는 결정되기 전이어서 하정우라고 말해줬다. “영화배우 하정우?”라고 다시 묻기에 ‘하GPT’라고 답하니 그제야 알아듣는가 싶었다. 그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동네(동래구)에도 이번에 선거해?”라고 묻는 게 아닌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가 심하게 주객전도되었다고 깨우쳐 주는 스승이었다.
고작 2년짜리 국회의원 재보선에 가려 지방선거 의제와 후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평택을 국회의원을 뽑는 재선거가 이번 전국 선거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민주당 김용남·국민의힘 유의동·조국혁신당 조국·진보당 김재연·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가 출마해 그야말로 용쟁호투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니 평택 국회의원 후보는 훤히 꿰고 있어도 평택 시장에 누가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400만 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경기도지사 선거조차 평택을에 가려 별 관심을 못 받고 있다.
뜨거운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문에 부산시장이나 교육감 선거까지도 시들하게 비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선 지역이 모두 5곳이나 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축제인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전국 14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은 주인공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심한 ‘민폐 하객’인 셈이다.
지난달 전남 순천 송광사에 갔다가 삼청교 중심에서 여의주를 문 용머리 돌을 만났는데 이름이 ‘공복’이었다. ‘용생구자(龍生九子)’, 용의 아홉 자식 중에 물을 좋아하는 ‘공복’이 다리가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 버리면 용만 좋지, 개천은 뭐가 좋나 싶다. ‘용꿈’이 나쁘다기보다 지역에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공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서울 집중 때문에 생겨났다. 모든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되면 지역이 무시되기 쉽다. 지방선거는 중앙 권력을 지방으로 나누어 지역 스스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치른다.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지난 4년간의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지방이다. 지금처럼 국회의원 재보선이 지방선거의 이슈를 잡아먹으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흔들리게 된다. 유권자들이 국회의원 재보선에만 관심이 쏠려 우리 동네 구청장·시의원·구의원 후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후보는 후보대로 답답해서 아우성이다. 힘들게 쌓아 올린 한국 민주주의가 개인의 정치적 체급 올리기 때문에 흔들려서야 안 될 일이다.
걱정되는 지점이 또 하나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구청장이나 광역의원들이 중간에 사퇴하고 2028년에 치러질 총선에 나설 때 말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구청장은 지역 조직·생활 민원·예산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국회의원 후보로 성장하기 좋은 자리다. 총선에 한번 나왔던 사람이 구청장이 되어 인지도가 높아지면 다시 국회의원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쉽다. 이번 재보선처럼 국회의원 사퇴하고 광역단체장 나가는 건 놔두면서 기초단체장들이 총선 못 나가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선출직 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직할 권리가 인정된다. 하지만 법적으로 자유롭다고 해도 정치적으로는 유권자와의 약속 위반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임기 도중에 그만두면 추진하던 사업이나 정책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중도 사퇴로 인해 발생하는 재보궐선거 비용도 전액 세금으로 충당된다.
앞으로는 외국처럼 ‘중도 사퇴 시 일정 기간 출마 제한’이나 ‘사퇴 시 선거비용 부담’ 같은 예방 장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이번 지선에서도 후보들은 임기를 끝까지 채운다고 약속하고, 늦었지만 공약에도 집어넣어야 한다. 유권자에 대해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지방이다.
2026-05-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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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 아이 괜찮은가요
어린이날 광안리해수욕장 근처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보았다. 중2 또는 중3 정도로 보이는 또래끼리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공부는 잠시 내려놓고 친구와 함께 보낸 하루가 어떠했을까. 어린이가 아니지만 어린이날을 즐기는 그들의 얼굴에서 답을 읽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조카를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 와글와글 떠드는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쫓아낸 담임 선생님 덕분에 신나게 축구를 즐겼다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다. 많은 학교에서 점심시간 축구는 금지됐고, 잠깐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아이들은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다.
최근 한 통계는 방과 후 아이들이 희망하는 활동과 실제 활동의 차이를 보여줬다. 친구와 놀고 싶지만 현실은 학원에 가고 과외를 받아야 한다. 성장 과정에 공부도 꼭 필요하지만, 마음이 향하는 것과 반대되는 상황을 ‘매일 견뎌내고 있다는 것’은 어른이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뉴스를 통해 한국 아이들에 대한 우울한 보고서가 전해졌다. 유니세프 이노첸티 연구소가 발간한 ‘불평등한 기회: 아동과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제목의 리포트 카드이다.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아동 웰빙 수준을 측정했는데 대한민국은 신체건강 30위, 마음건강 34위, 역량 3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역량은 학업 성취와 사회적 역량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하면 학업적 성취는 우수하지만 몸과 마음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마음건강의 경우 4개 국가가 핵심 지표 누락으로 순위 산정에서 제외돼 ‘34위’라는 수치는 바닥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아동 웰빙 국가 순위표에서 대한민국은 종합순위 27위에 머물렀다. 1~3위를 차지한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가 3대 영역 모두에서 ‘상위 3분의 1’에 포함된 것과 달리 우리는 영역별 격차가 컸다. 특히 각 영역을 측정하는 기준을 보면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신체건강은 아동 사망률과 과체중 비율, 마음건강은 삶의 만족도와 청소년 자살률을 지표로 삼는다. 삶에 만족하는 15세 아동의 비율은 65%로 하위 6위를 차지했다. 15~19세 청소년 10만 명당 자살률은 10.9명으로, 자살률이 높은 국가 5위에 올라 위기에 처한 마음건강의 현실을 보여줬다.
우리 사회 청소년 자살 문제의 심각성은 여러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23년 국가손상종합통계를 보면 소아·청소년의 사망원인 중 자해·자살이 53.9%로 가장 많았다. 2024년에는 10~19세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8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77.8%나 증가했다. 유니세프 보고서의 청소년 자살률을 10세까지 확대하면 더 충격적인 수치가 나올 것이다.
13일 발표된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를 보면 전국 초중고 학생 8764명 중 27%가 최근 1년 동안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하는 아이가 23%, 자주 하는 아이가 4%이며 10명 중 1명은 실제 자해를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를 보면 학업 문제가 가장 크고 미래·진로에 대한 불안이 다음을 차지한다. 성적과 성공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을 얼마나 압박하는지를 보여준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무기력증과 번아웃을 호소하는 아이도 많다. 입시의 부담이 큰 만큼 고등학생의 35%가 학업 중단을 생각했다.
이렇게 정신적 위기에 내몰려 있지만 막상 아이들은 고민을 털어놓을 대화 상대가 없다고 말한다. 위기 상황이 와도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답하는 비율도 9%에 달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초중고 학생 자살 사망자 수는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 2025년 242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벼랑 끝에 선 듯한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나 위태롭다. 아이들의 마음건강에 들어온 빨간불은 긴박하게 깜빡이는 비상 경고이다.
아동·청소년의 마음건강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2024년 국내 정신질환 진료비 중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비가 1조를 넘었다. 젊은 층의 중독이나 자살이 증가하는 등 정신건강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위험 요인에 대한 지원 등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약속했다. 학교 전문상담인력 확보, 긴급지원팀 확충 등 지원책과 함께 내년부터는 성인 중심으로 진행하던 자살 심리부검을 청소년에도 시행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 아이들의 마음건강 문제는 가정, 학교, 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문제이다. 어른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살 위기 개입을 주제로 연구하는 성진 스님이 〈법보신문〉에 기고한 글 속 한 문장을 인용한다. “세상에는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2026-05-1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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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6·3 이후가 더 걱정인 이 대통령
6·3 지방선거는 전국 동시 선거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면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친다.
개별 후보들에겐 자신의 ‘당락’이 생존과 직결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15 대 1’이냐 ‘13대 3’이냐에 따라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것이다.(여기서 3이 어느 지역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북을 상수로 놓고 서울·부산·대구 등을 변수로 보면 될 듯하다)
문제는 대한민국 국정 전체를 큰 그림으로 놓고 보는 이재명 대통령이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잠시 좋고 나쁠 순 있지만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당이 바라는 최선의 지방선거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공 들였던 영남, 그것도 TK(대구·경북)까지 차지한다면 일단 이 대통령의 취임 1년 간 국정 운영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직후 벌어질 더불어민주당의 8월 전당대회는 선거승리의 공과를 어떻게 나눠먹는가에 대한 치열한 권력투쟁의 장이 될 것이다. 과거 여당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으로서도 통제가 힘든 각축장이 펼쳐진다.
‘명-청(이재명-정청래) 대전’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스개소리로 넘어가려는 필자의 귀를 붙들어둔 것은 한 여당 의원과의 사담이었다. ‘친명’으로 분류되는 수도권 의원이었다.
그는 친문(친문재인) 출신 정청래계 모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최소 3번은 우리를 죽이려 했다’고 분을 감추지 않았다. 202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불거진 대장동 문제, 이 대통령의 대표 시절 국회에서의 체포동의안 가결, ‘비명횡사-친명횡재’ 공천 때의 앙금 등이 그것이었다.
최근에도 양측의 갈등은 표면화됐다. ‘조국혁신당 합당 밀약설’과 ‘공소 취소 거래설’은 명청 대전의 큰 흐름에서 발발한 국지전이었다.
정청래 대표는 8월 전대에서 다시 대표 자리를 노릴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서울만 패하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정 대표의 공을 깎아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의 부산 북갑 보궐선거 차출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이 대통령은 AI 수석의 공백으로 국가 미래전략의 큰 틀을 짜는 데 차질이 불가피하다. 하 전 수석을 대체할 만한 후임 인선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하 전 수석이 당선되면 여당을 위해 인재를 내줬다는 이 대통령의 희생보다는, 정 대표가 하 수석을 ‘삼고초려’한 과정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라는 말들이 벌써부터 나온다.
정 대표가 전대에서 다시 대표가 되면 양측은 지금보다 강하게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 대통령이 갖고 있던 국정의 구심력을 여당 대표의 강력한 원심력이 나눠 갖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전대의 영향력은 다음 선거인 2028년 총선으로 이어진다. 친명이든 친청이든 자신의 공천 문제를 생각하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던 ‘조작기소 특검’을 이 대통령이 일단 멈춰 세웠다. 선거에 역풍이 만만치 않다고 본 것이다. 여당이 추진했지만 ‘공소 취소’가 가능하다는 조항 때문에 여론의 비판은 이 대통령이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은 이슈였다.
그렇다면 지방선거가 끝나면 여당은 특검법안을 재추진할까. 특검법 처리는 중도층의 민심 이반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정 대표가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 총대를 멜지 두고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에서는 특검의 ‘공소 취소’ 권한 삭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부 의원들은 “국정 과제에 집중해 그 성과로 국민들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괜한 정치적 부담을 뒤집어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친명 쪽에서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깎아내린다.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더라도 수많은 전직 대통령들이 자신의 후계자로부터 냉정한 비판(심할 경우엔 사법처리)을 받은 전례가 있다. 야당으로 정권교체라도 되면 말 할 것도 없다.
정 대표는 조작 기소 특검이 과연 자신의 전대 득표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최고권력자인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에 있을 여당의 전대와 조작기소 특검을 어떻게 다룰지가 벌써부터 흥미로워진다.
박석호 정치부 선임기자 psh21@busan.com
2026-05-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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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리는 그들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최근 방영 중인 한 드라마에 ‘감정 워치’라는 가상의 장치가 등장한다. 심박수 등 사용자의 신체 신호를 측정해 현재의 감정 상태를 기쁨·불안 등의 단어로(혹은 색깔로) 치환해 보여주는 기계다. 얼마 전 경남 진주에서 50대 화물 노동자가 2.5t 화물차를 맨몸으로 막아서다 치어 사망한 소식을 접했을 때 왜 하필 드라마 속 감정 워치 따위가 떠올랐던 걸까.
사고는 지난달 20일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의 집회 과정에서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대체 수송을 위해 물류센터를 빠져나오는 화물차를 정면으로 막아섰다. 이들 중 일부는 움직이는 차량에 매달렸고, 떨어졌다. 육중한 바퀴가 한 노동자를 삼킨 후에야 비로소 차는 멈췄고, 한 노동자의 삶도 멈췄다.
일부 호사가들은 달리는 차량 앞을 가로막고 나선 그들의 무모함을 탓하기도 했다. 그 무모함 속에 어떤 심정이 숨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이었길래 달리는 거대한 쇳덩이 앞을 맨몸뚱이 하나로 막아섰던 걸까. 만약 감정 워치가 실재한다면, 고인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면, 당시 그의 감정은 어떤 단어로 정의되었을까. 그들의 요구 사항을 검색했다. 고유가에 따른 운송료 인상, 과도한 업무 강도 개선…. 어느 단체교섭에서든 나올 법한,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다.
그들은 CU를 운영하는 BGF로지스 진주센터 내 협력 운송사 12곳과 계약해 일하는 ‘특고’(특수고용직)다. 사실상 고용돼 일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고용의 형태가 아니다. 겉으론 사업자 간의 계약 형태를 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대신 사회는 그들을 ‘사장님’이라 부른다. 기름값과 차량 수리비를 제 주머니에서 꺼내니 겉으로는 번듯한 자영업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교묘한 언어적 위장이다. 기름값도, 차량 수리비도 본인이 부담하지만 배차는 원청이 결정하고 운임도 원청이 정한다. 고용 계약서가 없으니 해고가 아니라 ‘계약 종료’라는 매정한 단어로 잘려 나간다.
기업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퇴직금이 사라지고, 4대 보험이 사라지고, 단체교섭 의무가 사라진다. 노동자는 남되 사용자는 증발한다.
법조차 그들을 보호하는 데 무기력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에 엄격한 칼금을 긋는다. 그들은 그 칼금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경제적으로는 종속되지만 형식상으로는 독립적이다. 법원은 개별 사건마다 실질적 종속성을 따지지만, 그 판단이 나오기까지의 소송 비용과 시간은 노동자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약자에게 그 싸움의 비용을 온전히 지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행 법 체계가 특고에게 부과하는 가장 가혹한 조건이다.
정부는 어떠한가. 사태 초기 고용노동부는 “특고는 노란봉투법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 만의 정부 입장이다. 특고와의 교섭을 회피해 온 원청의 무책임한 행태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장관이 나와 재빠르게 말을 바꿨다. 원청 기업 역시 뒤늦게 지난달 30일 화물연대와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노란봉투법을 추진했던 진영에선 법 시행 이후 특고와 원청 간 첫 단체교섭 타결이라며 저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법 제도의 성과가 아니다. 한 노동자의 생명과 맞바꾼 ‘목숨값’일 뿐이다. 법과 제도를 보완하지 않는 한,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사업장에서도 언제나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
때문에 요구는 계속돼야 한다. 특고의 법적 지위를 명문화해야 한다. 실질적 종속 관계가 인정된다면 긴 소송을 거치지 않더라도 우선 노동자로 추정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영국은 ‘워커’(worker)라는 중간 범주를 법제화했고, 스페인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추정 규정을 도입했다.
드라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6화에서 주인공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자 감정 워치는 그의 감정을 끝내 정의하지 못한다. ‘알 수 없음’이라는 결과값에 이를 모니터링하던 워치 제조사는 며칠 후 주인공을 불러 묻는다. “이걸 무슨 감정이라고 해야 될까요?” ‘분노’와 ‘좌절’, 거기에 ‘간절함’까지 뒤엉킨 복잡한 감정이었다. 주인공은 당시를 회상하며 뭔가를 깨달은 듯 울먹인다. “도와줘, 도와달라는 거예요.”
고인이 맨몸으로 막아서려 했던 것은 달리는 트럭만이 아니다. 고인이 온몸으로 버티려 했던 것은 2.5t짜리 쇳덩이 이상으로 가파르고 단단한 이 사회의 편견이었을 테다. 그가 달려오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느꼈을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참을 수 없는 분노? 혹은 좌절감? 어쩌면 그것은 이 사회를 향해 ‘도와달라’고 외치는 간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2026-05-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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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은쪽이 남매
후배들을 보며 기자 초년병 때를 떠올린다. 몸도 마음도 혹독하게 담금질했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건 이른 새벽 출근도, 비리 사건 취재도, 어려운 기사 쓰기도 아니었다. 바로 ‘땟거리’라 부르는 기삿거리 찾기였다. 걱정을 덜어준 건 ‘현장’이다. 동행취재 혹은 현장르포 형식을 빌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체험하며 기사로 풀어냈다. 2009년 봄, 택시 기본요금 인상으로 수입이 반토막 난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조수석에 동승해 기사님과 손님들 얘기를 들었다. 장마철에는 아파트 수해 현장을 찾아 진흙투성이 지하주차장 복구 작업에 동참했다. 그해 여름 끝자락엔 119구조대의 24시를 동행취재한 기획기사도 기억에 남는다. 주변에서 “고생했다”며 칭찬을 건넸지만, 고백건대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다. 기회만 된다면 ‘현장체험 전문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장은 흥미진진했고, 보람도 컸다.
기자라면 현장 취재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변명, 아니 해명하자면 요즘 후배들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현장을 찾지 못한다. 하루를 오전 오후로 쪼개, 여러 건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에게 현장 취재는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경찰과 소방의 보고서를 참고해 전화로 추가 취재를 하다 보면 기사 마감이 코앞이다. 방송 기자는 정반대 고충이 있다. ‘그림’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는 반면, 모자란 취재는 타 언론사 기사를 참고하곤 한다. 신문쟁이로서 방송계를 언급할 수 있는 건 방송뉴스를 제작해 본 경험이 있어서다. 종편채널에 부산지역 뉴스를 공급하는 역할을 1년 동안 맡아, 여느 방송 기자처럼 다양한 사건사고 현장을 다녔다. 변사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시신 부패 흔적, 북극곰 축제를 취재하며 겨울 바다에 뛰어들었던 경험 등은 현장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우는 기억으로 각인돼 있다.
돌이켜 보면 현장에 대한 관심은 기자로 첫발을 내딛기 한참 전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학창 시절 기사를 읽거나 방송뉴스를 볼 때면 현장감 있는 소식에 더 눈길이 갔다. 각종 보고서나 통계자료가 나열된 기사를 접하면, 숫자 너머 현장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AI 시대에 레거시 미디어, 신문·방송의 미래는 있을까. 있다면 기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자문 끝에 찾은 한가지 해답 역시 ‘현장’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직접 얼굴을 맞대 묻고 답하며, 생생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일만큼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 기자의 몫이다.
올 들어 유튜브 채널 운영을 다시 맡게 되면서 이 해답을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부산일보TV〉를 눈여겨본 구독자라면 최근 변화를 눈치챘을 것이다. 생방송·생중계를 비롯해 현장르포 성격의 콘텐츠가 늘었다. 최근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르포’라는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주요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입을 통해 지역 민심을 들어보자는 취지다. 지방선거와 함께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치르는 부산 북구 구포시장 일대는 전국구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시장 구석구석을 돌며 진행된 전재수 전 의원의 감사 인사와 하정우 전 AI수석의 첫 방문을 비롯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민식 전 장관이 마주친 구포초등학교 현장도 찾아 민심을 들었다. 관련 콘텐츠 조회수를 다 합하면 100만 회가 훌쩍 넘는다. 이에 더해 한 전 대표의 단독인터뷰는 일부러 만덕2동 전셋집이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야외 생중계로 진행했다. 현장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역시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 같은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사람 기자 덕분이다. 지난봄 TV방송국으로 발령 난 이은철·변은샘 두 기자가 일당백으로 뛰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똑같아, 금쪽이 못지않게 소중한 ‘은쪽이’라 여기고 있다. 기자실 책상과 전화 취재가 익숙했을 후배들이 요즘 현장의 중요성을 자주 입에 올린다. 의견을 반영해 애초 4부작으로 기획한 ‘민심르포’를 확대 편성했다. 부산시장 후보들의 선거운동 무대 뒤편도 궁금한 세계다. 가능하다면 전재수·박형준 후보의 하루 일정을 따라다니며 생생한 장면을 전해보려 한다. 얼마나 날것의 현장이 담길지는 ‘은쪽이 남매’의 활약에 달렸다.
민주주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어디서 땟거리를 찾아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기에, 결국 ‘기승전현장’이라 믿는다. 부산과 부울경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이 되는 현안, 전국에 울림을 주는 지역 이슈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닐 것이다. 지역민의 눈과 귀, 독자의 입과 손발이 되겠다는 다짐을 담은 〈부산일보TV〉를 한번 믿고 지켜봐 주시라. 그러니 부디... ‘좋댓구알’!
2026-05-0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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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림자 무사와 진짜 일꾼
오는 21일부터 6·3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그러나 선거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전국 곳곳은 공천 잡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당의 밀실 공천, 특정 인맥에 기대는 사천 논란, 모호한 경선 기준은 지방자치의 본령을 훼손하며 유권자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1980년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영화 ‘카게무샤’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보고서다. 다케다 신겐이라는 전설적인 맹장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투입된 도둑 출신의 그림자 무사. 그는 주군의 목소리와 걸음걸이, 심지어 내밀한 버릇까지 복제하며 적들을 기만한다. 영화 속에서 그림자 무사는 잠시나마 다케다 가문의 영광을 연장하는 데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승리는 철저히 ‘타인의 권위’를 빌려온 연극에 불과했다.
이 서사가 오늘날 한국 정치,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는 서늘하다. 영화 속 카게무샤는 주군의 존재가 지워지는 순간, 혹은 그를 지탱하던 갑옷이 벗겨지는 순간 한낱 미천한 존재로 돌아간다. 지금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선거 공천 과정은 어떠한가. 우리는 지역을 위해 헌신할 ‘진짜 인물’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거대 정당이라는 붉고 푸른 갑옷을 입은 ‘그림자 무사’들의 행렬을 보고 있는가. 한국 정치사에서 ‘그림자’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군사정권 시절, 최고 권력자 눈에 들어 발탁된 이들은 스스로의 정책적 비전이나 철학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확성기 역할에 충실했다. 그들은 독자적인 대중 기반 없이 주군의 권위에 기생하며 권력을 누렸으나, 주군이 퇴장하는 순간 그들의 정치적 생명도 함께 증발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계파 정치’는 수많은 카게무샤를 양산했다. 특정 계파 수장의 사진을 명함에 박고,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지역구를 누비는 정치인들에게 독자적 비전은 사치였다. 그들에게 정치란 주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수장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공천장이라는 ‘대리 허가증’을 받아내는 기술에 가까웠다. 이러한 후광 정치는 정치인의 자생력을 앗아갔고, 한국 정치를 인물 중심의 대결이 아닌, 세력 간 진영 논리로 퇴행시켰다.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칼자루를 쥔 중앙 정치권 앞에서 지방선거 후보들은 한 명의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정당의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로 전락한다. 현재의 공천 시스템은 후보자들에게 ‘지역사회와 소통’보다 ‘공천권자와 친분’을 강요한다. 지역 현안을 해결할 혁신적인 정책을 고민하기보다, 당내 파벌 싸움에서 어느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먼저 계산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 후보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정당의 기호와 당색만 남는다. 유권자들은 후보 얼굴을 보기 전에 정당 로고를 먼저 보게 되며, 이는 결국 ‘사람’이 아닌 ‘그림자’를 선택하는 기형적인 투표로 이어진다.
영화 ‘카게무샤’의 클라이맥스는 그림자 무사가 전장에 나섰을 때다. 그는 주군의 위엄으로 군사들을 통솔하려 하지만, 실질적인 전술 역량이 요구되는 긴박한 순간에 그의 허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지방자치 현장도 마찬가지다. 정당 공천이라는 갑옷을 입고 당선된 후보들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한계에 부딪힌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고령화 문제, 교육 격차, 지방 소멸 위기 등은 정당 구호나 중앙 정치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스스로의 철학과 정책 비전 없이 당선된 ‘그림자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중앙 정치 바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 그들의 지지 기반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중앙당 지지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당 인기가 떨어지면 그들은 방어 기제도 없이 몰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 된다.
정당이라는 외피를 벗었을 때, 과연 지역을 이끌어갈 실질적인 역량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권력을 좇는 텅 빈 갑옷에 불과한지 판별해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주군의 죽음이 탄로 나고 쫓겨난 그림자 무사는 다케다 가문의 깃발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목격하며 절규한다.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주군이었을까, 아니면 주군을 연기하며 누렸던 잠시의 권력이었을까.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의 외피만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달은 태양이 나타나는 순간 사라진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그림자들 연극’이 아니라 ‘실체의 경연’이 돼야 한다. 이제 무대 위 가짜 주역들을 내려오게 하고, 진짜 일꾼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지방자치 주인공인 유권자의 참여와 심판만이 그 열쇠다.
2026-05-0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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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동훈·하정우는 왜 북구를 선택했을까
외지인들이 부산을 생각할 때 북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해운대 광안리만큼 화려하지도, 중구나 영도처럼 먹거리, 볼거리가 많지도 않다. YS(김영삼) 시절 부산 정치 1번지 대접을 받던 서구처럼 상징성이 있는 곳도 아니다. 400년 전통의 구포시장을 빼고 나면 북구를 소재로 뭔가 얘깃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북구가 6·3 지방선거의 최고 ‘핫플레이스’가 떠올랐다. 수도권 언론들이 연일 구포시장을 찾고, 북구 민심을 가늠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북갑 보궐선거는 각 후보들의 미래를 넘어 선거 이후 여야 정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승부처가 됐다. 북구 주민들조차 의아해 할 이 신드롬은 우연에 우연을 더한 결과일까?
시계를 되돌려보면 여권이 10여 년 전부터 ‘낙동강 벨트’를 전략지역화하면서 서부산 전역이 여야 접전지로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북구는 정치적 균형점을 향해 달려가는 부산 정치의 역동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19대 총선부터 국민의힘 소속인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인 전재수 전 의원이 네 번 맞붙어 첫 두 번은 박 전 장관이, 이후 두 번은 전 전 의원이 승리했다. 서부산 지역 지지층 분포가 ‘보수 6, 진보 4’ 정도라면, 때때로 달라지는 구도나 인물 경쟁력에 따라 정반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부산 내 ‘스윙 스테이트’인 셈이다.
나는 북구의 이런 토양이 이번 역대급 대결의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한 전 대표의 북갑행을 강력히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조갑제 씨는 1979년 부마항쟁과 1985년 ‘신민당 바람’을 일으킨 부산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대의명분으로 연고주의를 극복, 역사를 바꾸는 화끈한 행동력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권력의 무도함이 임계점에 이를 때, 학연·지연 등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부산 사람들의 기질에 기대를 건 셈이다.
하 전 수석도 그냥 ‘배지’만 생각했다면 2년 뒤 총선에서 비례대표 상위권은 너끈히 받아냈을 것이다. 그의 도전은 험지이긴 하지만 구덕고 출신으로 강력한 지역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고향에서 ‘전국구’인 한 전 대표와 붙어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급격한 정치적 체급 상승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든 하 전 수석이든 ‘리스크 대비 리턴’에서 북구는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셈이다.
북구의 이런 정치 지형은 소위 말하는 강경파 대신 중도 소구력이 좋은 후보에게 유리하다. 전 전 의원부터 그랬다. 그가 10년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정파적 어젠더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 전 장관만 해도 검찰 선배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워지기 전만 해도 당파성이 옅은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전 대표는 강성 지지층이나 당 주류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받지만, 적어도 비상계엄과 ‘윤 어게인’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는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하 전 수석 역시 보수 쪽과도 폭넓게 교류한 걸 보면 진영 색채가 강한 정치를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전 전 의원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박형준 시장도 자타가 공인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산 선거에 지역을 넘어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다. 얼마 전 미국의 벤 세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숏폼 정치’에 매몰된 미국 의회를 향해 “거의 모든 정치인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확실히 옳고, 저들은 확실히 틀렸다는 파벌주의는 우리를 꽤 어리석게 만든다”고도 했다. 췌장암 말기로 곧 다가올 죽음 앞에 선 정치인의 마지막 고언이라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정치에도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극단적 진영 논리 속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감각마저 무뎌졌다. 민주당이 기어이 추진하는 ‘조작기소 특검법’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법언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진보 법조인들조차 이번 사태가 우리 법치주의에 미칠 심대한 폐해를 걱정한다. 계엄에 사과하고 ‘윤’과 단절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길을 거부한 채 퇴행을 일삼던 국민의힘은 최후 기반인 영남마저 붕괴될 지경임에도 정적 제거에 더 목을 매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선거만 이기면 이런 행태가 다 용인될 것 같은 지금의 분위기가 못내 절망적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말하지 않는 정치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많이 망가졌고, 어리석어졌다.
전국의 시선이 쏠린 ‘부산 대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그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리더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상식적인 정치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만, 가냘픈 희망을 품어본다.
2026-05-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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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인공지능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당신에게
후배 기자들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불현듯 20세기 말, 세상의 변화에 당황하던 그 당시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20세기 말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였다. 1997년 IMF 사태(외환위기)가 터졌고, 국내 첫 정권교체도 있었다. 정치와 경제 상황이 요동치는 동안, 일상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다음이 한메일넷이라는 웹메일 서비스를 내놓은 게 1997년이다. 1998년엔 케이블망을 통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이 시작됐고, 1999년 네이버가 설립됐다. 인터넷 바다가 일상을 삼키기 시작했다.
당시 10·20대였던 일명 ‘엑스세대’까지는 비교적 빠르게 변화에 적응했다. 만날 필요 없이 이메일로 자료를 주고받고, 도서관에 가지 않고 검색으로 자료를 찾았다. 다음 카페,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등의 게시판에서 일상과 정보를 공유했다. PC방에서 세계인을 상대로 스타크래프트 대전을 벌였다. 인터넷 덕에 시간도 아끼고, 일상의 스케일도 커졌다.
아버지 세대들은 우리와 달랐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종종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그들은 스타크래프트보다는 무조건 족구를 해야 하는 세대였다. 자료만 오가는 소통이 익숙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억지로 인터넷을 배워야 했다. 외환위기 뒤 정년보장이 무너졌다. 인터넷을 다룰 줄 아는 것은, 상당한 경쟁력이었다. 당시 어른들은 책을 사서 읽으며 인터넷을 공부했다. 안쓰러웠다. 인터넷에 접속해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을, 굳이 저런 식으로 공부까지 해야 할까. 나이가 들면 뇌가 굳는 것인가라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후배 기자들의 발표 주제는 ‘AI(인공지능) 활용법’이었다. AI와 각종 어플을 연동하니, 취재원과 주고받은 메일과 전화 통화 내용이 자동으로 데이터 처리가 됐다. 주요 기관장의 스케줄이 본인의 일정표와 연동되는 기술도 있었다. 국내외 주요 기사와 이슈를 AI가 개인별로 최적화해 분류하고 압축해 줬다. 후배 기자들은 AI로 취재 시간도 줄이고 취재 영역도 확장하고 있었다.
저런 작업을 시도할 생각도 못했다.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니까. 그제서야 AI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며, ‘AI 바다’에서 가라앉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세기 말, 인터넷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아저씨들이 생각났다. 다시 보니 2026년의 나였다.
AI 폭풍이 가장 먼저 덮친 분야가 프로 바둑의 세계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전 뒤, AI의 바둑은 정답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많은 프로들이 바둑에서 인간미가 사라졌다며 낙담했다. 하지만 젊은 프로들은 AI에게 바둑을 배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바둑의 재미를 잃은 이세돌은 떠났고, AI를 스승으로 삼은 신진서는 바둑의 황제가 됐다. 한때 엑스세대라고 불렸던 지금의 40·50대는 대부분 신진서보다 이세돌에게 감정이입이 될 것이다.
유료 AI에게 물었다. “AI 같은 기술 혁신에 뒤처지고 있다.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AI는 원리 파악보다 용도에 집중하라는 식의 조언을 했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적당히 남들만큼 따라 하라는 거다.
어느새 처음 접한 인터넷에 당황하던 그 시절 아저씨들도 이제 60, 70대가 됐다. 주변을 보면 웬만한 어르신들도 온라인을 충분히 활용한다. 유튜브, SNS 등이 없으면 못 버티는 이들도 있다. AI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20여 년 뒤 미래엔 결국 나이와 상관 없이 누구나 필요한 만큼 AI를 비서처럼 활용하고 있을 듯하다. 적당히 시대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AI 활용법을 익힐 터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AI의 진단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후배들보다 AI를 잘 모른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인터넷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그 시절 40·50대들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호기심이 사라진 게 진짜 문제일 수 있다. 10대, 20대들은 호기심 때문에 인터넷과 AI를 익혔다. 그들에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반면 열정과 호기심이 옅어진 기성세대에겐 같은 일이 과제 같은 것이 돼버렸다.
10대 말 PC방에서 처음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더블 클릭할 때가 있었다. 인터넷 세계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들뜬 기분이었다. 오늘부터 호기심 가득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AI를 알아가려 한다. 벌써 AI가 무섭다기보다, 재미있어지는 기분이다. AI를 켜고 프롬프트에 첫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넌 누구냐?
2026-04-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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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양산선, 부울경을 연결하는 미래의 길
오는 11월, 경남 양산 시민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양산도시철도(이하 양산선)가 마침내 개통한다. 애초 계획보다 6년이나 늦어졌다. 예비타당성 조사와 주민 공청회 등의 행정절차까지 포함하면 무려 16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각종 인허가와 설계 변경, 예산 확보 등 복잡한 행정절차가 반복되면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갖는 구조적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기대도 크다.
현재 양산선은 개통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종합 시운전과 시설물 점검, 비상 대응 훈련, 운영 인력 교육 등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말 그대로 ‘개통 초읽기’에 돌입했다.
양산선은 부산 금정구 노포동 부산도시철도 1호선 종점역에서 양산 북정동을 잇는 노선이다. 부산과 양산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핵심 교통축이다. 특히 부산도시철도 1·2호선이 양산선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환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양산 시민의 일상 이동 반경이 넓어지고, 부산 도심과의 시간적 거리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는 도로 중심 교통체계에서 벗어나 철도 중심의 정시성과 안정성을 갖춘 구조로 전환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번 개통은 양산 교통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다. 그동안 양산은 고속도로와 국도 등 도로망 중심 구조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양산선이 본격 가동하면 철도·버스·도로가 입체적으로 연결되는 복합 교통체계가 구축된다. 향후 광역철도망까지 갖춰지면, 양산은 부울경을 잇는 동남권 교통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
철도가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지 양산 시민들은 이미 경험했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양산 연장선은 양산신도시 분양 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통 접근성 개선은 곧 주거 선호도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인구 유입과 도시 확장을 견인했다. 양산선 역시 사송신도시의 가치 상승과 정주 여건 개선에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반 시설이다. 따라서 양산시는 개통에 맞춰 연계 교통망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각 역을 중심으로 환승 체계를 촘촘히 구축해 접근성을 높이고, 도시 전역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철도와 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사통팔달’ 교통망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단선 구조다. 양산선은 복선이 아닌 단선으로 건설됐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향후 수송 능력과 운행 효율성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경제성을 고려한 선택이지만, 장기적인 도시 성장과 교통 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장기적으로 복선화를 고려해 최소한 터널 구간만이라도 복선화에 대비하는 설계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역세권 인프라도 과제로 남아 있다. 각 역마다 주차장 확보를 위한 용역까지 진행됐지만, 일부 역은 부지 문제 등으로 충분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철도 이용의 출발점인 ‘접근성’이 흔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환승 편의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이용자가 체감할 기반 시설이 부족하다면 이용률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양산선은 하나의 노선에 그치지 않는다. 향후 부울경 광역철도와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 구축과 연계되며 동남권 교통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부울경을 하나로 잇는 광역철도망이 완성되면 양산은 단순한 경유지를 넘어 중심 거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본격화하는 부울경 행정 통합 논의와 맞물려 보면, 양산선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진다. 행정 통합은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과 물류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양산선은 부울경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마중물’을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통팔달 교통망이 곧 광역 경제권 형성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개통 이후다.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려면 운영의 완성도는 높여야 한다. 단선 구조의 한계를 보완할 운행 전략과 부족한 주차시설 확충, 연계 버스망의 효율적인 재편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분명하다. 개통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얼마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다. 양산선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 16년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개통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냉정한 점검과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이번 개통이 양산 교통망을 사통팔달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를 넘어 부울경 지역 전체를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2026-04-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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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내 데이터로 돈 버는 기업, 데이터 배당 어떤가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 메타가 새로운 AI 모델 ‘뮤즈 스파크’를 발표했다. 메타는 뮤즈 스파크가 ‘개인 맞춤형 AI’를 지향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용자의 사용 경험을 AI가 학습해 ‘개인화 경험’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메타가 수집한 방대한 양의 사용자 정보가 AI 서비스에서도 수익화의 핵심 요소가 되는 셈이다.
메타는 올해 광고 수익이 처음으로 구글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AI 기반 맞춤형 추천 시스템으로 광고 효율을 높인 결과다. AI 추천 기능으로 메타의 숏폼 서비스인 릴스 시청시간도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광고 노출 확대와 수익 증가로 이어졌다. 메타는 35억 명 이상의 1일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공유’ ‘댓글’에서 가입자 위치정보, 기기 정보 등은 메타의 ‘초정밀 개인 데이터’로 변한다. 메타는 이를 기반으로 ‘타깃 광고’를 판매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구글도 가입자의 검색어, 유튜브 사용 행태, 지도 사용 행태 등을 분석해 타깃 광고를 판매한다. 아마존도 가입자의 구매 이력, 검색 기록, 장바구니 데이터, 배송 주소, 동영상 서비스(아마존 프라임) 시청 이력 등으로 구매 의도를 분석해 수익으로 전환한다. 아마존의 경우 실제 구매 행동 데이터라는 점에서 더 높은 광고 단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플랫폼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검색어, 쇼핑, 지도, 블로그, 카페 등의 이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 검색·디스플레이 광고를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빅테크 기업들이 수익화에 열을 올리는 개인 데이터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시장 가치가 있을까. 사이버보안 기업 프로톤(Proton)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 거주자의 개인 데이터는 구글과 메타(페이스북)에서만 연간 최소 700달러의 수익을 만든다.
빅테크 수익의 원천인 개인 데이터는 ‘브로커’를 통해 대규모로 거래되고 있다. 시장분석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 브로커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2704억 달러로 평가됐다. 전 세계적으로 최대 5000개의 데이터 브로커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데이터 브로커 시장에서 68%는 소비자 데이터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데이터 거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데이터산업협회의 ‘2025 데이터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 판매 및 중개 서비스업’ 시장규모는 2024년 기준 3조 3818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개인 데이터가 빅테크의 수익화 원천으로 활용되고 대규모로 거래되는 상황에서도 데이터의 주인인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은 개인 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대가로 자신들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SNS 등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개인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팔아서 빅테크의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들이 자기 데이터의 시장 가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비스 대가로 공짜로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직접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현행 제도에서 불가능하다. 현재 정부 주도로 ‘마이데이터’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개인이 본인 정보 열람에 대한 권한을 일정 부분 행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와 관련, 해외에선 개인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직접 지불하는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데이터 배당’(data dividend) 제도가 제안됐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이 제안한 데이터 배당은 개인 데이터로 창출된 부를 기여자인 개인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데이터 의존성에 따라 기업에 세금을 부과, 이를 재원으로 공공재에 투자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영국에서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 거래 플랫폼에 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개인이 자신의 금융, 의료, 신체활동, SNS 활동 등 정보를 직접 저장, 관리할 수 있고 데이터 수요처에 이런 데이터 사용을 허락하는 대신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개인 데이터 수익화에 대한 개인 보상은 규제 방식으로 시행될 경우 자국 기업의 부담만 커지는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개인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민간 시장 육성이 중요하다. 이 경우 기업도 데이터 수집과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부가 태양광 산업에서 추진하는 ‘햇빛연금’처럼 개인 데이터 사용 대가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데이터 배당도 현실화될 수 있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2026-04-22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