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권력의 칼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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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 말과 정책은 칼과 같아
국민 삶 흔들 만큼 파급효과 커
레버리지 ETF·부동산 정책 참사
끝까지 책임지는 시스템 절실

대통령, 고위 공직자, 정치인 등 권력의 말과 정책은 칼이다. 그 칼은 국민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국민의 삶을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권력의 칼은 무거워야 한다. 칼집에서 쉽게 나온 칼은 국민의 삶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 권력층의 칼은 가볍다. 그들은 칼을 쉽게 꺼낼 줄만 알지, 부작용이 생겼을 때 성숙하게 거두거나 책임지는 법은 모른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처럼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발 빼기 일쑤다. 늘 그런 식이다.

최근 불거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사태가 대표적이다. 칼의 가벼움이 불러온 ‘참사’다. 레버리지 ETF는 하루 수익률, 하루 변동률의 2배를 추정하는 상품으로 매매 변동성 확대 등 각종 부작용이 예견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검증 없이 속도전으로 고위험 상품을 허용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불과 한 달 반 만에 8조 원이 넘는 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수익률도 암담했다. 한 상품은 4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막대한 손실을 떠안은 건 대다수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해외 언론마저 “정부의 대표적 정책 실패”라며 조명했다.

그러나 정작 속전속결 출시를 주도했던 고위 공직자는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장도 “그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후회한다”라고 면피성 발언만 내놨다. 레버리지 ETF로 인해 국내 증시가 ‘투기판’으로 전락하고 피해액만 수조 원에 이른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국내 증시에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투자자 처지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며 태도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글을 연일 개인 SNS에 올렸다. 언론이나 비판론자들과 거침없이 설전을 벌였다. 무겁고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정책적 메시지를 가볍게 다뤄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부동산 정상화는 코스피 5000피, 계곡 정비보다 쉽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겠다”며 거침없이 공언했다.

그 칼들은 오만이었을까? 가벼움이었을까? 아니 자신감이었을까?

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공언대로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서울 집값은 급등했고 신고가를 경신했다. 풍선 효과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전월세 부담 등으로 실수요자 주거 불안으로 이어졌으며 무엇보다 이 대통령 자택 매각 과정에서의 ‘17억 근저당 설정’ 논란으로 정책 신뢰도 하락 문제도 제기됐다. 이 대통령이 가벼운 태도로 시장을 상대하다, 과거 문재인 정권의 실책을 되풀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사법 개혁을 내건 보완수사권 폐지 사태는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권력의 칼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거대 여당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해 ‘검수완박’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경찰의 부실·은폐 수사 의혹이 드러난 ‘장윤기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은 견제 없는 경찰의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 특히 보완수사권이라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왜 필요한지 증명했다.

그럼에도 거대 여당은 ‘보완수사권 유지’라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며 강성 지지층의 압력에 갇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강행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권력이 강성 당원들 눈치를 보느라 엉뚱한 곳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제2, 3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한국 권력층의 말과 정책이 가벼운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와 행정 시스템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실패를 평가하고 책임지게 만드는 시스템이 권력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공직자들은 정책의 장점만 부각하고 성공만 귀가 아프도록 홍보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고 책임자를 가려내는 과정은 늘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다. 이런 정책 실패의 후폭풍과 막대한 비용은 오롯이 국민이 감당한다. 국민은 공직자의 가벼운 칼에 피 같은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공직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책임 윤리’를 꼽았다. 자신이 내린 정책 결정이 가져올 부작용과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태도다. 그것이 최소한의 염치이다. 칼을 칼집에서 꺼낸 자, 그 칼이 가져온 결과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맡긴 권력의 무거운 무게다.

김형 편집부 차장 moon@busan.com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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