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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너를 기다리는 동안
부산 중구 동광동에 ‘강나루’라는 간판을 단 주점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이상개(1941~2022) 시인 내외가 운영하던 식당이었지요. 주로 문화예술인들이 진을 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알 만한 분들은 아실 겁니다. 말수가 적은 시인은 그곳엘 드나드는 손님들과 자리를 옮겨가며 술잔을 기울이면서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시단의 원로였지만 일부러 자신을 내세우거나, 후배 문인들에게 핀잔을 준다거나 윽박지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그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는 숨겨진 힘을 지닌 어른이셨습니다. 그런 그의 성정이 한편으로 미적지근하다 해서 어떤 이들은 ‘우유부단 학파’의 우두머리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지요. 그는 한결같은 태도와 어조로 사람을 대했습니다. 모처럼 주점엘 들른 젊은 후배 시인에게는 예의 낮은 목소리로 “요새 별일 없제?” 묻곤 했습니다.
과묵한 말수와 함께 젖어 드는 그의 온화한 기품에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쏟아냈습니다. 그는 몇 마디 응수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뿐 굳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서 삼삼오오 찾아오는 손님들은 그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문학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있습니다. 늘 보아오던 사람이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더러 언쟁을 높이면서도 결국엔 손을 맞잡고 화해하면서 술잔을 부딪칩니다. 불콰해진 얼굴마다 자신의 예술과 삶의 태도가 각인되어 있는 예술가들은 하루의 피로를 안방처럼 온기가 번지는 주점에 모여 녹이곤 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한때처럼 느껴집니다. 정치나 경제 상황이 안 좋아도, 서리처럼 차가운 공기가 사회를 감돌아도, 우리는 자신이 견디고 지켜낸 하루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저마다 간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경제적, 신분적 차등 의식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각자 일구고 있는 삶의 모양과 각도를 서로 존중하면서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하루하루는 견디기 벅차면서도 어쨌든 내일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한 시간의 경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는 중에 사랑을 갈구하고, 친절을 내보이고, 정직을 바라고, 밝은 사회를 꿈꿉니다.
어제 지나쳤던 골목과 사람을 오늘도 만납니다. ‘하루’는 이 크나큰 우주를 떠올리면 아무렇지도 않고 사소한 시간의 범주이지만, 하루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한정된 일을 하거나 한정된 사람을 만납니다.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루를 쪼개어 마치 사나흘처럼 보내기도 합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은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벅차거나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중 나온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기지개를 켭니다. 여기에는 살아온 삶의 이력이 보여주는 호흡의 길이만큼만 차이가 날 뿐, 무의식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작동합니다. 이것이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이라는 사실을 별스럽게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세력이나 존재가 평온한 일상을 찢고 침투하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뿐만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는 타고난 감각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3일 밤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지만, 이내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과 국회를 에워싸면서 반헌법적인 계엄에 반대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습니다. 그 뒤 전국 각지에 몰려든 시민들의 요구와 함성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보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자신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친밀한 대화에 익숙하고 몸으로 느낍니다. 한국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이런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근거한 판단과 움직임으로 오늘을 이룩했습니다. 텅 빈 주점에 앉아 말없이 술잔을 비우던 시인, 하루를 보내고 또 다른 하루를 기다리며 지난 삶의 여정을 곱씹고 문학을 가늠했던 시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다리고 꿈꿔 온 시간을 조용하게 갈망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은 그러한 기다림을 두고 이렇게 읊조리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아니 우리가 질러가는 게 맞습니다.
2024-12-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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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철학의 위안’, 최악을 상상하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책 읽기에는 겨울이 더 좋다. 겨울은 날씨가 추워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밤의 길이가 길고, 나뭇잎이 떨어진 정원의 적막함은 독서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12월 중순부터는 새해를 계획하며 삶의 성찰이 일어나는 시기인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색적 저술을 찾게 된다. 그러나 전문적 철학은 너무 어려워 조금 읽다가 말아버리고, 대중적 저술은 너무 깊이가 얕거나 일방적 시각에 치우쳐 있다. 반면 알랭 드 보통은 철학과 심리학, 예술사를 섞는 독특한 방식으로 소설이나 에세이를 써서 독자의 이해를 도우면서도 더 깊은 사고를 자극한다. 대표적 저술은 1993년의 〈사랑의 에세이(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철학의 위안〉(2000), 〈불안〉(2004),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2012) 등인데, 오늘 소개할 책은 〈철학의 위안〉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위대한 철학자 6명의 지혜를 통하여 독자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제1장 ‘인기 없음의 위안’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활용하여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제2장 ‘가난의 위안’은 돈이 부족하면서도 만족하는 인생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는지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통해 설명한다. 제3장 ‘좌절의 위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여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을지 스토아주의 철학자 세네카의 지혜를 통하여 인도한다. 제4장 ‘부적합성의 위안’은 몽테뉴의 통찰을 통해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문제를 극복하도록 안내한다. 제5장 ‘실연의 위안’은 쇼펜하우어의 삶-의지 개념을 활용하여 연애 관계에서 거절당한 사람이 왜 가슴 아플 이유가 없는지를 설명한다. 제6장 ‘난관의 위안’은 니체의 사상을 도입하여 삶의 고통과 대결하는 자세를 안내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의 다수결 민주주의는 사실은 다수의 통치여서 다수의 국민과 소수의 국민은 늘 이익과 감정이 충돌한다. 선거나 탄핵과 같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다수의 승리자는 그들의 신념과 이익을 옹호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즐겁지만, 패배한 소수는 통치로부터 소외되어 좌절하고 그것이 불안과 분노를 일으킨다. 정치적 경쟁에는 승패가 반드시 따라오므로 어느 쪽이 이기든 다른 한편은 좌절의 시련과 싸워야 한다. 이런 시국에서는 제3장 좌절의 위안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는 1773년에 그린 ‘세네카의 죽음’에서 서기 65년 로마 황제 네로의 명령에 따라 자살하는 세네카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다. 세네카는 황제를 몰아내려는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화면의 중앙 왼편에 세네카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고, 의사는 세네카의 발목과 무릎 후면의 정맥을 절단한다. 그래도 피가 상처로부터 잘 나오지 않자 세네카는 왼손을 뻗어 의사에게 독약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다. 화면 중앙 오른쪽에는 아내 파울리나가 남편과 함께 죽기 위해 역시 칼로 정맥을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가는 세네카와 아내의 표정은 억울함이나 슬픔, 고통을 넘어서 당당하다. 이런 흔들림 없는 정신의 덕성을 도야하는 것이 스토아 철학의 이상이다.
세네카는 이전에도 재앙을 겪었다. 서기 41년 공주와 간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코르시카섬으로 유배되어 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그런 좌절 속에서도 그는 평정의 자세를 유지하였다.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윤리 서한〉의 ‘편지 91’에서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맞이하면 충격이 훨씬 강렬한데, 그 예상하지 못함이 불운의 무게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실제로 일어날 것처럼 미리 그려봄으로써 다가올 재앙으로부터 해악을 제거할 수 있다.”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나쁜 상황을 미리 상상하는 훈련이 바로 스토아주의의 ‘최악의 예상(premeditatio malorum)’ 개념이다. 이것은 염세적 사고나 단순한 부정적 사고가 아니라, 다가올지도 모를 불운한 사건들을 미리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대책을 준비하는 기회를 일으키거나, 죽음이나 노화처럼 대책이 없는 문제에서는 당당하게 재앙을 맞이하게 하는 용기를 준다. 최악의 예상은 비관적 사고가 아니라 건설적인 부정적 사고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자들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었으며 엄격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점은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그런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 책은 전통 철학에서 실천적 지혜를 추출하여 현대의 관심에 응용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2024-12-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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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럭키비키!
1년 전 오늘(2023년 12월 6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에는 국토부 장관과 부산시장을 비롯한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경제계에서도 삼성전자, SK, LG그룹, 한화그룹, HD현대, 한진그룹, 효성그룹 등 한국 재계의 회장 혹은 부회장과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그야말로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특별법 범정부 거버넌스’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올해 초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으로 1월 25일 발의됐다. 이 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되고, 22대 국회 개원 이후 부산지역 국회의원 18명 전원이 공동으로 참여해 여야 협치 1호 법안으로 재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정쟁으로 인해 입법 공청회도 열지 못한 상태에서 어쨌든 연내 통과를 목표로 사활을 걸고 있었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여파로 연내 처리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계엄 사태로 우선순위가 바뀌어 국회에서 지역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는 언제 가능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부산을 싱가포르나 중국 상하이 같은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으로, 제1조 목적을 보면 ‘이 법은 부산광역시를 물류, 금융 및 디지털·첨단산업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허브도시로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기반 조성 및 특례 등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남부권 혁신거점 구축을 통한 대한민국 균형발전 및 국가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지역 개발을 넘어 국가적 의미를 지닌다. 부산 전역에 규제 혁신과 특례를 부여해 물류, 관광, 금융, 첨단 산업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 자원을 분산하고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이 국가경쟁력을 보완하는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을 기회다.
대한민국은 저출생에다 오랫동안 수도권 일극화로 인해 지방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단순히 부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특히 가덕신공항 건설, 금융중심도시, 북항재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국제적 인재와 기업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전략적 경제 정책과 세제 혜택을 통해 금융, 물류, 첨단 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자리 잡았다. 경제 자유화 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이 성공의 핵심이었고, 두바이는 자유무역지대를 통해 외국 기업에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혜택을 제공하며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 발전했다. 중국은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개방 정책과 특혜를 부여, 글로벌 제조와 기술 허브로 성장시켰다. 이들 사례는 법적 지원과 정책적 요인이 지역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부산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은 부산시장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부산시민 모두가 한목소리로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통과를 외치게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 하루라도 빨리 통과됐으면 좋겠지만, ‘럭키비키’라 생각하자. ‘럭키비키’의 핵심은 초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아이돌 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에게서 유래한 말이다. 유명 빵집에서 빵을 사려고 줄을 섰다가 하필 자기 앞에서 빵이 떨어졌는데, 장원영은 실망하는 대신 “덕분에 갓 나온 따끈한 스콘을 살 수 있었다”며 “역시 난 럭키비키야”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럭키는 행운(Lucky), 비키는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Vicky)다. 그러니까 ‘럭키비키’는 ‘운 좋은 비키’다. 보통은 “왜 하필 내 앞에서 빵이 떨어졌냐”며 투덜거리며 돌아갈 상황이지만, 조금 기다린 덕에 갓 나온 빵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초긍정의 힘이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통과를 조금 더 기다린 덕에 부산시가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종합적인 방향 설정을 면밀히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단순히 법적 틀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때마침 11월 25일 우신구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가 부산시 제3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됐다. 우 교수는 부산 출생으로 부산의 대학 강단뿐 아니라 건축계에서 오랫동안 신뢰받아온 건축가라 더욱 기대가 크다. 지속가능성과 혁신, 공공성과 민간 협력을 바탕으로 도시 부산의 미래를 만드는 계획을 위해 총괄건축가 역할의 확대가 필요하다.
2024-12-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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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도자 예술의 새로운 활력
얼마 전 지역의 중견 도예가들과 함께 ‘2024 중국 징더전 타오시촨 도자 축제’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판매가 이전 같지 않은 한국 도자기 시장에 비해, 상당히 잘 팔리는 중국의 상황에 필자와 도예가들은 매우 놀라기도 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간 도예가들의 도자기 소품 판매 실적도 꽤 좋았다. 이는 일정 부분 중국인들이 차를 즐겨 마시고 도자기를 특별하게 선호하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역사-문화-산업-관광으로 연결되는 생태계 효과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필자는 그곳의 문화적 생태계의 강점을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다층성과 다양성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세계적인 도자기 수출국인 중국에서도 백자의 대표적 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은 이천·강진·남원·공주·양구·부안 등 도자기로 유명한 국내 여러 도시들과 국제교류 관계를 맺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도자기 도시이다. 징더전은 중국 한나라(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 때부터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송대에는 도자기 공물로 유명해졌다. 이후 명·청 시대를 거치며 기교와 조형 감각이 뛰어난 다양한 크기와 색채의 백자들이 크게 발달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유럽 지역 등과 활발한 자기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18세기 징더전 도자기 생산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공장제 대량생산 시스템과 플라스틱 소재 식기가 출현하면서 도자기 산업이 타격을 입고 판매와 유통이 줄어들었고, 많은 지역민들이 도자기 생산 관련 일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징더전은 도시 전체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랬던 그 도시가 십여 년 전부터 다시 활기를 되찾고 옛 명성을 회복해 가고 있다. 도시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역사-문화-산업-관광이 밀도 높게 융합됨으로써 문화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청 시대 황실 도자기 가마터 등의 유적과 함께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근대 도자기 공장 굴뚝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도시가 걸어 온 오랜 역사적 아우라를 내뿜는다. 원형 가마, 터널식 가마, 셔틀식 가마 등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공장 유적, 그리고 광석차·파쇄기 등의 전시품과 함께 근대 도자기 제조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징더전 도자기공업유산 박물관을 비롯한 풍부한 역사 콘텐츠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징더전에는 도자기 산업 관련 전 분야가 가동 중이다. 흙이나 유약 같은 도자기 재료·장비 등을 제작하는 공장과 재료상, 도자기를 판매하는 다양한 형태의 판매점, 도자기 관련 전문 분야 인력들을 배출하는 대학들이 여럿 있다. 특히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도자기 시장의 형태와 층위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매우 값비싼 도자기들이 거래되는 고급 쇼룸(상품 전시장)에서부터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을 만한 가격의 도자기들이 판매되는 주말 도자조각 시장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매년 5월과 10월 국제적인 대규모 축제가 도시 전체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도자·공예 관련 분야 예술가들과 애호가들이 찾는다. 이때도 다채로운 층위의 행사들이 함께 열리기 때문에 각자 개성에 따라 선택과 향유의 폭이 매우 넓다.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도자기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학술 행사, 징더전의 도자 산업에 관한 포럼, 학생들부터 기성 작가들까지 부스에서 작품을 판매하고 있어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작품도 구입할 수 있는 아트마켓, 또 세계적인 도자기 회사와 기관들이 참여하는 엑스포, 다양한 국가의 민속 공연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종합선물세트를 받아 든 기분이 들게 된다.
징더전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게 된 중요한 계기는 국제교류였다. 5월과 10월 행사에 수년 전부터 다양한 국가의 유명 작가와 도예가들을 초청하여 축제가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러자 중국 안에서도 더 많은 내국인들이 그곳을 방문하는 연쇄효과로 이어졌다. 한두 번 초청되어 종합선물세트같은 징더전 축제를 경험한 해외 도예가들은 이제 자비를 들여서라도 매년 이 축제에 방문한다고 한다. 해외 도예 작가들은 징더전 공방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해외 작가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징더전 공방의 뛰어난 전문적 기술이 융합되어 전례 없는 멋진 작품들이 탄생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12월 개소 예정인 김해공예창작지원센터도 역사-문화-산업-관광을 연결, 융합하는 생태계를 잘 조성해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4-11-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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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힘
시월은 참으로 좋은 달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비가 내리는 날도 적으며 습도까지 적당해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선 후기에 농업 기술 보급을 위해 우리말 노래로 쓴 〈농가월령가〉는 절후에 따라 12개월 동안 매달 농가에서 해야 할 일과 풍속을 소개했다. 음력 9월에는 가을 추수의 풍요와 이웃 간의 온정을 노래한다. 추분이 지나고 한로가 되면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오곡백과를 열심히 수확하고, 상강이 되면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꽃이 활짝 피어나는 절기가 된다. 그야말로 일 년 중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달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 부산은 올해 ‘페스티벌 시월’이라는 이름으로 국제 행사와 지역 축제 17개를 함께 묶었다.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집중적으로 개최해 개별 이벤트의 정체성과 강점을 유지하고 자연스러운 네트워킹까지 유도하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10월 10일 자 〈부산일보〉에 따르면 행사 전체 관람객은 작년보다 33%나 늘어났다 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이벤트가 겹치는 바람에 부산 시민의 문화적 일상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홍보까지 부족한 수많은 공연 중에 좋은 것을 골라서 즐기는 것은 전적으로 ‘안목’에 달렸다. 공연을 즐기는 방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더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라이브 공연은 매체나 음반을 통해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안긴다. 그 작품에 대한 기본 구성 요소를 알고 간다면 이해도가 높아져 훨씬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어로 안목은 두 글자 모두 눈을 뜻하는 글자다. 목(目)이 단순한 눈의 모양만을 나타낸다면, 안(眼)에는 어떤 목적을 가진 능력이란 뜻이 포함된다. 물리적으로 제한된 것에서 사물의 가치를 변별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안목은 보고 아는 견식 또는 식별력이다. 특히 예술에서 안목이란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하며, 단순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작품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이해와 그 작품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재료와 기술과 양식을 파악하는 능력, 그리고 아름다움이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능력, 그 작품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능력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예술적 안목을 기르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는 횟수와 정확히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긴 호흡으로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우연히 읽은 어느 철학자의 글에서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 지식은 없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면서 획득하게 된다’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라 했다. 조선 시대에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던 문장가인 유한준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쌓이게 되니 그것은 헛되게 쌓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요컨대 자신이 아끼고 보면 그것이 쌓여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둘 다 같은 맥락인 것 같지만 분명 차이는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내용은 애정을 가지고 보는 만큼 안목이 생긴다는 뜻이다.
부산이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까다로운 감상자나 숨은 고수들이 꽤 많다. 문화예술에 관한 인플루언서들을 부르고, 그들의 평에 공감한 관객까지 불러 모으는 일은 예술가의 끊임없는 노력과 기획자가 잘 준비한 좋은 프로그램에서 출발한다. 시대를 통틀어 최고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는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며, 사흘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관객이 안다”고 했다.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연습하지 않는 예술가나 공부하지 않는 기획자가 많은 관객을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술의 계절에 부산에서 펼쳐진 ‘페스티벌 시월’에는 좋은 기획도 있었다. 올해로 2년 차를 맞은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빈 객석만큼이나 마음이 허전했다. 음악 공연 부분에서 참신한 기획을 기대했지만 프로그램 구성이나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시아 대표 공연예술마켓’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계 시장에 내놓을 새로운 월드뮤직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장이 될 수는 없을까? 몇몇 초이스 공연(무대 중 으뜸으로 꼽는 공연)에서는 때때로 해외 델리게이트(공연산업 전문가)들의 한숨도 들렸다.
명성에 빠지지 말고 보다 넓고 깊은 시야로 미래 가치를 지닌 매력적인 예술 상품을 알아보고 관객에게 내놓는 안목은 지속 가능한 예술 시장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2024-11-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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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서울 중심적 흑백요리사’
지난달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종영했다. 쇼는 끝났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요리사와 심사위원의 어록은 밈(meme)이 되어 유행처럼 퍼지고 있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요리사들이 있는 식당은 예약 플랫폼에서 몇 초 만에 예약이 마감된다고 한다. 또 요리사들이 프로그램에서 조리했던 음식들은 상품화되어 편의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쯤 되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흑백요리사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여 만든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지닌 출연진, 치열한 과정 끝에 조리된 예술 작품 같은 요리, 전문성과 인지도를 갖춘 심사위원의 평가 등 많은 요소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수저와 흑수저’라는 계급을 설정하고 계급 간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 형식이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 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곳곳에는 불공정이 만연하다. 올해만 하더라도 음대 입시 비리, 선관위 채용 세습 논란 등 불공정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 즉 계급장 떼고 오직 ‘맛’이라는 실력 하나만으로 승부를 가리겠다는 선언은 공정한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프로그램 초반 일대일 미션에서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는 프로그램의 백미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프로그램 후반으로 갈수록 애초 지향했던 공정이 점차 우리 사회의 현실과 같이 불공정으로 흐르면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먼저 요리사들이 팀을 이루어 레스토랑 미션을 진행하였는데, 팀 간 대결이라는 조건 때문에 요리사 개개인이 제대로 된 요리 하나 만들지 못한 채 팀의 승패에 따라 탈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이 과연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 것인지 논란이 일었다.
이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미션을 진행하는 도중 예고 없이 팀별로 한 명의 요리사를 방출하게 하고 방출된 요리사끼리 팀을 만들어 레스토랑 미션을 진행하게 하였다. 문제는 방출된 팀의 경우 다른 팀보다 인원이 적고 경연 준비 시간도 부족했다는 점이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대결은 진행되었고 예상대로 방출팀은 패배하여 모두 탈락했다.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절차적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하였다.
여기까지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부터 많은 사람에게 비판받은 내용이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이 미션에는 더 큰 불공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에서 촬영되었다. 따라서 서울에 거주하는 요리사들은 전화 몇 통으로 자신들의 거래처를 통해 싸고 품질 좋은 재료를 구할 수가 있었던 반면 해외나 지방에서 참가한 요리사들은 근처 마트에서 재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요리사의 말대로 ‘요리사보다 높은 것이 재료’인데 서울에 살고 안 살고의 여부가 승패를 좌우할 만큼 큰 차이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불공정하다는 점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즉 ‘서울 중심적’ 사고와 규칙이 사회에 고착화돼, 그것이 불공정한 것인지도 모르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당연한 듯이 자리 잡은 서울 중심적 사고와 규칙은 불공정을 인식조차 못 하게 하여 더 큰 불공정과 불행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좋은 인프라가 들어서는 일은 당연한 반면 지방에 인프라가 구축되는 일은 예산 낭비라고 보는 인식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서울 중심적 사고는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황폐화와 소멸을 초래하고 부추기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었다.
다시 흑백요리사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방법은 요리 프로그램 경연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가자 모두에게 동일한 재료를 일괄 제공하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으로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첫째는 서울 중심적 정책을 지방 중심적 정책으로 바꾸는 일이고, 다음은 서울에 투입되는 재원만큼 각 지방에도 똑같이 재원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만을 내세운 방법은 경제성과 같은 다른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하여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성의 실현 방법을 찾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2024-11-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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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할 때
지난 10월 30일,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제27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 행사 가운데 하나인 요산 김정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요산 김정한 문학과 공공성’이라는 주제 아래 요산 정신의 현재성을 지금의 한국문학(문단)과 연결해 논구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공공성 확보와 저변 확대를 위한 나름의 방안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따른 들뜬 분위기에도 그간의 한국 문단과 작가가 처한 현실을 짚어볼 때 절로 나오는 한숨과 걱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심포지엄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자리를 메운 30명 남짓한 문인들 표정 역시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의 문학정신은 푯대처럼 부산의 작가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진영’을 떠나서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선생의 일갈은 작가들에게 굳건하고 든든한 창작의 지렛대가 되어야 하며, 또한 그런 정신으로 창작에 임하는 작가들이 많은 줄 안다.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을 올해도 성황리에 치렀지만, 부산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부산시와 부산 문인 단체 사이의 해결할 길 묘연한 갈등을 생각하면 답답한 심정을 가누기 힘들다. 부산문학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는 이 지면에서 길게 말할 처지가 못 된다. 다만 20년 가까이 공전하고 있는 문학관 건립이 부산 문인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이에 걸맞고 합당한 예산 및 부지 확보를 위한 행정 노력으로 뒷받침되어야 마땅하지만, 최근 부산시가 보이고 있는 행보를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문학관 건립을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선심 쓰듯 바라보는 시와 일선 공무원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문학관 건립 논의가 시작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난항을 겪는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최근 부산시청 후문 광장에서 진행된 부산지역 문학 단체의 부산문학관 건립 정상화 기자회견과 문학인들의 성난 목소리로부터 그 뜻을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건물’ 하나를 짓는 의미와 다른 특별한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문학은 분명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의 일종이지만, 그 가치를 단지 경제적인 이익이나 수익 창출과는 별개의 영역에서 산출되는 ‘정신’의 역동성으로 바라보아야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부산시가 웬일인지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는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를 떠올려 보자. 용역 결과 예산과 면적이 절반가량 줄어든 부산문학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지 면적과 예산을 높게 책정한 이 사업 과정의 투명성 여부와 ‘공공 가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부산시가 그렇게 용을 쓰면서 들여오려 하는 퐁피두센터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면 자연히 우리 형편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복합예술단지인 퐁피두센터 내에 있는 퐁피두 현대미술관은 현대 예술의 거장인 피카소, 샤갈, 마티스의 작품을 비롯한 현대미술 컬렉션 등 약 5만 3000점을 소장해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부르는 세계적인 명소다. 이 센터의 운영은 관장을 포함하여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는데, 위원회 산하 행정 책임, 각 국장, 연합 기관장, 정부에서 파견한 정책심의 대의원, 재정 후원 단체 등이 협의하여 퐁피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 말고도 20~30명의 자문위원회를 두어 퐁피두센터의 전체 경영, 전시 기획 진행, 시설 관리, 예산 수립과 심의 등 포괄적인 분야의 의사 결정에 관계하고 있다. 이렇게 자문위원회는 입법부, 행정부, 파리시, 민간위원 등 다양한 곳에서 선출된 위원회 멤버들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자유로운 의사 진행과 협의를 통해 미술관 운영에 참여한다. 형식적인 구성과 조직 체계만으로 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운영 및 경영 상태를 부러워하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늘을 숨길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현대 예술의 여건과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미술관 측의 의지와 노력이 세계적인 예술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부산시의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 계획이 저런 행정적인 안목과 예술가에 대한 격조 높은 인식 및 대우를 감안한 것이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부산문학관 건립 문제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그래서 소극적인 시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의 주제는 ‘새로운 진로를 찾는 것이다’였다. 공공성 심포지엄의 분위기도 결국 작가의 창작 의지에 족쇄처럼 작용하는 배타주의적 공동체 의식에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다. 어느 때보다도 심란한 때, 또다시 새롭게 나아가야 할 ‘진로’를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 시점이다.
2024-1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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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보는 것만큼 안다
왜 영화를 보러 가는지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은 다르다. 재미도 없는데 전시회는 왜 가야 할까?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을 어슬렁거리며 필자에게 이런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은 “교양을 쌓기 위해서”라고 응답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넘어서서 미술관 방문은 우리 삶 자체에 몇 가지 특별한 혜택을 준다.
첫째, 미술 전시회를 통해 감상자는 새로운 시각에 노출된다.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종종 사회나 개인적 경험에 대해 독특한 견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하고 있었던 이해 방식에 도전하여 문제를 더욱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 중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에사이아스 보스의 ‘소박한 식사’는 대중의 일상적 삶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이다. 아내와 남편(또는 아들과 아버지)은 장식이나 눈에 띄는 사물도 없는 소박한 방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화가는 두 사람을 화면의 중앙에서 좌우로 약간 벗어나게 배치하여 방 전체의 단순성에 감상자가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식사는 중산층 가정에서 매일 여러 번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포착하여 가족의 식사 같은 일상적 사건이 어떤 정치적, 종교적 사건만큼 위대한 일이라는 점을 감상자에게 알려 준다. 세상 사람은 대개 소중한 진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 망각된 진실은 특정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나는데, 그것을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발현 사건(Ereignis)’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는 발현 사건을 창조하여 감상자에게 삶의 진실을 회상할 기회를 준다.
미술품 감상은 우리 삶의 특별한 혜택
아름다움과 세상에 대해 사색할 기회
아는 만큼 보인다? 보는 만큼 알게 돼!
둘째, 작품을 보며 감상자는 자기 자신의 주변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다. ‘미(美)’란 무엇인지는 오랜 세월 동안 철학적 토론의 주제였다. 플라톤은 미가 인간의 관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라고 보았고, 근대 영국의 철학자들은 미가 개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의 특징이라고 여겼으며, 칸트는 대상이 어떤 목적에 기여한다는 판단에서 미의 기초를 찾았다. 미의 본질에 관한 철학자의 주장이 어떠하든, 우리가 대상에서 미를 경험하는 것은 사실이다.
뤼시앵 피사로의 ‘아침 햇살’은 평범한 시골 풍경을 묘사한다. 화면에는 그냥 나무와 들판, 농가가 있을 뿐 관광객이 찾아올 만한 어떤 특별한 아름다움은 없다. 그런데 작품은 세상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른 아침의 풍경을 구성하여 평범한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상자가 깨닫도록 만들어 준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농가를 구경하러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 날아가지만,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에도 아름다운 것들은 많다. 이번 전시회는 다수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20세기 현대미술 작품을 모아 놓은 방에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지는 못한다’는 문장이 벽에 걸려 있다. 예술 작품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주변 세상의 미를 발견할 기회를 준다.
셋째, 감상자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넓은 세상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작품은 특정 시대와 집단의 문화, 가치, 역사를 반영한다. 그래서 전시회는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 역사적 사건, 사회적 문제를 감상자가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적 현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예술의 전시회는 15세기의 종교적, 정치적, 과학적 발전에 대한 통찰력을 감상자에게 제공하며, 현대미술 전시회는 가치의 혼란, 불평등, 기후 변화와 같은 현대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자료가 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품도 전시되었다. 이르마 스턴의 ‘바후투 연주자들’은 아프리카의 문화 이해를 확대한다. 음악은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작곡자나 연주자의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연주를 통해 공동체가 집단적 경험을 형성하고 공유한다. 작품은 바후투를 부는 실제의 연주 장면을 묘사하지 않고 연주자들을 빽빽하게 화면에 가득 채워 음악을 만드는 행위가 아프리카 문화에서 차지하는 풍부한 역할을 감상자에게 알려 준다.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 창의성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드러낸다는 관점에서, 미술 전시는 세계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의 지식은 없으며,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면서 획득하게 된다. 그냥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면 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다.
2024-10-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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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K건축 시대를 기다리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때면 “한국어 작품은 번역이 어려워 노벨상은 받기 힘들다”며 한국 문학의 대가들 이름만 몇몇 거론될 뿐이었다. 책은 사람들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출판사는 종이책을 만들어 종잇값도 못 건지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가 문화 예산에서 문학, 출판 관련 예산은 대부분 없어졌거나 삭감된 상황이다. 그런 형편에서 들려온 소식이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미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데다 노벨문학상이라는 무게가 더해졌다. K문화의 정점이 왔음을 실감한다. 마침 방송에서는 ‘흑백요리사’ 열풍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화제를 모았다. K팝, K영화·드라마, K푸드에 이은 K문학의 성과는 한국 문화의 저변은 인문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 건축은 어디까지 왔을까. 인문과 공학의 결합으로 한 나라의 문화를 구현하는 건축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은 그 사회의 문화 수준 척도
“한국은 온갖 규제에 묶여 있어”
우리 건축 우리가 먼저 존중해야
노벨상에 건축 분야는 빠져 있다. 대신, 건축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있다. 이 상은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이 매년 3월, 살아있는 건축가 중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1979년 첫 시상 이후 대부분 미주와 유럽 출신, 그리고 일본의 건축가가 수상했다. 그들의 건축물은 현대의 대표적 건축물로 불릴 만큼 모던하거나 아름답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져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거나 공동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동시대의 인문과 철학을 담아 건축이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3월 46번째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이로써 일본은 9번째 수상으로 최다 수상국이 되었다. 이는 건축가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일본 건축의 저력을 보여준다. “일본은 건축을 국가를 설계하는 싱크탱크로 여긴다”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 전 한양대 건축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일본 건축가를 알리는 전시회의 해외 개최를 지원하는 등 일본인 건축가들이 국제 건축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 해외 진출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동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 중 아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물론 상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 건축은 어디까지 와있는지 곰곰이 챙겨봐야 할 시점이다.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는 2010년 우리나라에서 타운하우스 ‘판교하우징’을 설계했다. 총 100가구의 공동 주거시설로 9~11가구를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가운데를 마당처럼 공유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현관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 집안이 훤히 보이는 탓에 초기 분양 당시에는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미분양이 났지만, 2020년에는 주민들이 야마모토 리켄을 초청해 감사를 전할 만큼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그를 선정한 이유로 “사회성이 높은 건축물로 사람들의 커뮤니티(공동체)를 재정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한 명도 안 나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건축 문화가 한국보다 나아서 수상자가 많은 게 아니다. 일본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설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온갖 제약과 규제에 묶여 있다.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하다. 자유도가 전혀 없다. 그러면서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인 건축가의 작품이다. 요지는 외국인에겐 자유로운 건축물을 지을 기회를 주면서 한국 건축가에겐 안 준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다른 나라 건축가도 아는 사실을 우리가 모를 리 없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와 건축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건축가로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외국 유명 건축가들 위주로 주어지고 우리 건축가는 소외된다면, K건축 시대는 요원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아야 예술가로 건축가로 대우받을 수 있다면, 예술과 건축은 대한민국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K문화의 세계적인 위상과 국민의 문화적 수준,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비해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더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2024-10-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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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술과 그림에 취한 신선, 장승업
조선 후기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작품 가운데 그간 러시아에 보관된 까닭에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사인물도’ 4점이 일반에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조러수호통상조약 140주년을 기념해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과 러시아, 140년 전 맺어진 우정’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전시는 애초에 8월 말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었지만 전시 기간이 11월 30일까지로 연장된 덕분에 필자도 작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이 같은 해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보냈던 선물의 일부다. 고사인물도는 후세에 귀감과 본보기가 될 만한 중국 역사 속 인물과 일화를 그린 것으로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 4점이다. 앞의 두 작품은 작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에서 127년 만에 처음 공개되었고, 뒤의 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128년 만에 첫선을 보였다. 원본이 아닌 영인본 전시이기는 하지만 원본과 거의 다름없는 고해상도에 높이 174cm 크기의 대작이어서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노자출관도’는 소를 타고 오는 노자에게 국경 검문소 관리 윤희가 지혜의 말을 청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때 노자가 쓴 것이 〈도덕경〉이라 전해진다. ‘취태백도’는 술을 마시고 나서야 시를 썼다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을 묘사한 그림이다. ‘왕희지관아도’는 서예가 왕희지가 유연하게 변하는 거위의 긴 목에서 서체의 영감을 얻었다는 고사를 담고 있으며, ‘고사세동도’는 오동나무를 사랑했던 화가 예찬이 친구가 나무에 무심코 뱉은 침을 씻어 내게 했다는 일화를 통해 자연에 대한 사랑과 청렴하고 고결한 정신을 상징한다.
장승업 작품 관람과 함께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취화선’(2002)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영화는 기인 장승업의 어린 시절부터 구한말 격동기를 거쳐 화가로 대성했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기까지 생애 전 과정을 다룬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뛰어난 영상미를 감상할 수 있다. ‘술과 그림에 취한 신선’이란 의미의 영화 제목 ‘취화선(醉畵仙)’은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던 장승업의 생애와 그의 성격을 잘 담고 있다. 그는 돈·명예·권력 같은 세속적 성공에 관심이 없었고, 그에게는 오로지 그림과 예술적 영감을 북돋아 주는 술뿐이었다. 영화가 묘사하고 있듯이, 그는 그림의 대가로 받은 돈도 술 마시는 데 모두 탕진했고, 가정도 제대로 꾸릴 수 없었으며, 평생 그림을 원하는 후원자들의 사랑방이나 술집을 떠도는 방랑자로 살았다. 고종이 그에게 벼슬을 내려 궁중에서 작업하게 했지만, 그마저도 그는 구속이라 여기고 자유를 찾아 궁에서 탈출했다.
장승업은 조선 초기 안견,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화가로 손꼽힌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장승업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산수화·인물화·화조화·동물화·기명절지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는데 전통 화법과 외래 화법을 종합·절충해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가 뛰어난 기량으로 당대의 화단에서 이름을 떨치자 고관대작과 일본인들까지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애호가층이 폭넓게 형성되었다. 당시 화단에서는 호방하고도 과감한 생략을 특징으로 하는 필묵법의 인물화와 화조화·영모화가 유행했는데, 이것은 장승업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의 산수화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산수화풍의 근원이 되었고, 유려한 필치로 그린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인물 그림도 근현대 회화로 계승되고 있다.
조선 후기까지도 글씨와 그림은 그 근원이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만 권의 책을 읽은 기운이 우러나야 한다는 의미의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를 주장한 추사 김정희 등의 조선 문인화 전통이 지배적이었다. 문인화 전통은 대상에서 느껴지는 내면세계와 정신적 의미를 그려내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도 시대적 변화와 함께 점차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장승업의 그림이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변화하던 시대가 요구하던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림 수요자도 왕실·양반층에서 상인·평민들로 확대되었고, 근대 화풍이 도입되면서 팔기 좋은 형식 위주의 감각적 그림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직업 화가였던 그는 이러한 요구에 들어맞는 기운생동의 화풍을 선보였다. 그래서 장승업은 불우한 천재라기보다는 지식인 화가 시대가 가고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화가 시대를 선도한 화가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성큼 다가온 낙엽의 계절, 오원 장승업의 작품과 영화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2024-10-1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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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창의성은 관객을 부른다
어느 나라든 음악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으며,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며 변화했다. 음악은 인간의 본연이다. 최초의 한자 사전으로 꼽히는 〈설문해자〉에서 ‘음은 소리인데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 음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인간성 말살의 시기에도, 노예로 끌려갔던 비참한 시기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기를 견뎌내며 인간의 삶과 고뇌를 음악에 담았고, 인간의 사고를 더 풍요롭게 하며 삶의 본질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음악은 문화와 마찬가지로 물 흐르듯이 흘러 다닌다. K클래식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피케팅’(피를 튀기는 티케팅)을 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예매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몇몇 인기 있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객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이 시대 살아있는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와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부산 공연(6월 29일)도 객석의 반을 조금 넘긴 정도였으니 말이다.
2026년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예정
클래식 분야는 전용 극장의 역할 막중
숨은 인재들 모아 획기적 공연 준비를
클래식 음악은 음반을 사용해서 듣던 시기를 넘어,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고급 취향의 대명사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정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생활 장르는 영화로 52.4%였고 서양 음악(클래식)은 1.9%에 그쳤다. 클래식 음악 티켓 판매액 비중은 서울이 73.7%, 대구 6.8%, 부산 6.5%, 인천 5.1%, 대전 2.8%, 울산 1.2%였다. 음악 소비도 어김없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지역 클래식 전용 극장들의 개관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16년에 시작된 ‘부산오페라위크’는 부산 지역의 오페라 축제다. 2026년 예정된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앞서 시민들에게 오페라의 매력을 알리려고 만들었다. 2022년부터 오페라 자체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산오페라시즌’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부산시는 오페라 전문 관련 청년 일자리와 무대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취지로 매년 오디션을 통해 ‘오페라시즌 오케스트라·합창단’을 공모했다.
‘2024 부산오페라시즌’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사랑의 묘약’을 무대에 올렸다. 여느 해보다 깊어진 관심으로 극장이 가득 찼다. 특히 금정문화회관의 ‘사랑의 묘약’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출이 돋보였다. 작품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위트 넘치는 자막과 가수들의 적절한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경성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 26명이 합창단 의상을 만드는 협업은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방법 모색과 오페라 관심의 증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도라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날 공연에서 ‘2024 부산오페라시즌 합창단’은 첫 공연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다. 1976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초연 당시 전통의 규칙을 벗어던진 새로운 구성과 로버트 윌슨의 혁신적 연출이 화제였다. 이후에 국제 투어를 위해 재구성되었고, 2012년 프랑스 몽펠리에의 르 코룸 오페라 베를리오즈 극장에서 시작해 2015년 한국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마무리되었다. 잘 팔리는 공연 상품이 된 것이다. 미술비평가 존 록펠러는 〈뉴욕타임스〉에서 ‘보고 또 보고 음미해야 하는, 평생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경험’이라 격찬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공연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때 극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연을 고르는 기획력과 창의력, 즉 상상력이다. 상상력이란 앉은 자리나 직위 때문에 저절로 만들어지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끊임없이 공부한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예술적 안목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야 공연 예술이 살아난다.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진정한 상상력은 튼튼한 지식의 기초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단지 상상력만 있다면 그것은 우연한 일과성에 머무르고 만다. 새로 생기는 부산의 클래식 전용 극장에는 안목과 전문성을 겸비하고 상상력 가득한 이들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하지 않던가. 곳곳에 숨은 고수들은 많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수많은 문화 소비자를 공연장으로 부르는 원동력이다.
2024-10-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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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글로컬 시대의 부산 지역어 보전
며칠 있으면 한글날이다. 어버이날에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고마운 마음을 부모님께 전하는 것처럼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이 증가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을 소홀히 대하고 있으니 깊이 반성할 일이다. 특히 2022년 ‘영어 상용도시’ 논란에 이어 올해에는 법정동 명칭에 외국어를 포함한 ‘에코델타동’ 사태까지 벌어져 우리말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부산시가 오히려 우리말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항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시는 국어 사용 조례에서 정한 우리말 및 지역어의 보전과 육성을 위한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시는 특히 지역어 보전과 육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산의 지역어, 즉 부산말은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다양한 부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부산만의 정서가 한데 모인 문화의 총체, 곧 부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에서도 지역어 보전과 육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우선 지역어 실태 조사 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산말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약 2500단어 정도의 소규모 사전으로 편찬된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 1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제주어대사전〉을 만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사전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지역어 보전 사업의 방향성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달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사회이기 때문에 ‘종이’ 사전에서 벗어나 지역어 자료를 ‘디지털’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의 장점인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종이 사전에 담지 못하는 음성과 영상, 다양한 이미지 자료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즉, 종이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사전에서 아카이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어 아카이브는 매년 부산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제를 정해 관련 지역어 및 문화를 취재·조사하여 구축할 수 있다. 가령 ‘기장의 미역업’, ‘부산의 해녀’와 같이 주제를 정한 후 해당 지역 사람들과 면담을 통하여 주제 관련 지역어를 수집·정리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져 가는 문화를 영상과 사진 자료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제에 따라 통합된 일련의 지역어 자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산학이자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편 부산시는 외국인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7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영어하기 편한 도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허브도시로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부산에 정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가장 걸림돌이 되니 시민들의 영어 실력을 높여 외국인들의 생활 여건을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목표는 실현 가능한 것일까. 외국인이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산다면 부산 시민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어, 부산 지역어를 배워야 한다. 정주한 곳에서 그 지역어로 소통할 때 비로소 서로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어 교육을 강화해 외국인의 조기 정주를 도운 후쿠오카를 글로벌 허브도시의 본보기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 등 특성에 따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학습자의 학습 목적과 배경에 따른 수준별 맞춤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외국인을 위한 부산 지역어 교재를 만들어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면 외국인의 부산 정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비즈니스, 관광 등 단기간 부산을 찾는 외국인을 위해 인공지능 기반 부산 지역어 통·번역 앱을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다. 현재 많은 통·번역 앱이 있지만 부산 지역어를 인식하는 데 심각한 오류가 보인다. 따라서 부산 지역어를 대규모로 수집해 인공지능 학습이 가능하게 가공한 후 이를 기반으로 부산 지역어 특화 인공지능 통·번역 앱을 만든다면 정확도와 실제 활용도 향상이라는 두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과거 우리는 세계화만을 강조하느라 우리말과 지역어를 소홀히 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지역화, 지역의 세계화가 함께 강조되는 글로컬(glocal) 시대다. 우리말과 지역어를 잘 보전하고 육성하는 것이 곧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기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4-10-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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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이 시대의 '막걸리 긴급조치'
요즘 “반국가 세력”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은 상당히 위험한 세력이다. 그야말로 국가에 반(反)하는 의식으로 언제라도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할 우려가 상존하는 이들이다. 쉽게 말해 ‘간첩’이나 ‘이적 행위’를 떠올리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니, 기후 위기니, AI(인공지능)니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기에도 모자랄 판국인 오늘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생각해 본다. 정말 반국가 세력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빠뜨리게 하는가?
최근 들어 대통령의 입에서 갑자기 나오기 시작한 ‘반국가 세력’은 사실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던 무렵부터 6·25 전쟁을 거쳐 박정희 유신 정권까지 겪어야 했던 극심한 좌우 대립의 소산이다. 이념과 사상이란 이름으로 동족을 가두고 죽여야 했던 비극의 한국 현대사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 바로 반국가 세력이다. 실제로 한국전쟁과 여수·순천 사건 및 제주 4·3 항쟁 등의 슬픈 역사는 서로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짓고 단죄하려 했던 집단 간의 목숨을 건 싸움으로 얼룩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념과 사상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죽어나갔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서도 여전히 반국가 세력이란 이름은 우리 무의식 깊숙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마치 유전병처럼 멀쩡하다가도 잊을 만하면 존재를 드러내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기도 따지기도 전에, 권력의 최상부에서 제시되었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으려고 혈안이 된 정국을 지켜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과 정부 내각의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 사방에서 흘러나오던 참에 절묘하게도 반국가 세력은 호출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국가 세력이 누구이며, 어디에 암약해서 어떤 말과 행동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간첩처럼 이적 행위를 하려고 눈을 부라리거나(혹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눈을 내리깔거나) 선량한 시민을 선동해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낌새를 보이는 자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고개를 돌리니 한숨 섞인 푸념만이 들린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 먹고 살아가는 데 족하거나, 하루라도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남들만큼이라도 살아보려고 정신이 없다.
그러니 반국가 세력이란 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눈 뜨고 찾으려야 찾기 요원한 그 세력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중에 간악한 반국가 세력이 누구인지 절로 안다. 경남 마산에서 활동하는 우무석 시인의 ‘70년대-막걸리 긴급조치’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심사 틀려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도/ 술 취해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도/ 박통과 긴조 시대에 대해/ 꽥꽥 오리울음 같은 객기 내뱉지 마라/…/ 그랬으므로 말하는 것 자체가/ 되레 운동이었던/ 코미디의 시대였으니.’(시집 〈10월의 구름들〉)
다가오는 10월 16일은 이곳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의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통치 체제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헌법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날이다. 부산에는 계엄령, 마산에는 위수령이 내려져 수많은 사람이 경찰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었다. 걸핏하면 ‘긴급조치 9호 위반’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었던 이 사건은 훗날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4대 민주화운동으로 정립되었으며 2019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부마민주항쟁 45돌을 맞는 이즈음에 다시 듣게 되는 반국가 세력을 생각한다. 당시 항쟁의 와중에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제 총기가 발견되었고 시위는 불순 세력이 음모한 폭동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조작임이 밝혀졌다. 4·19 혁명을 촉발한 마산 3·15 의거 당시에도 이승만 정권은 시위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고 발표했다. 지금 횡행하는 “반국가 세력”은 마산 3·15 의거와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결국 정권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말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두 시위로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막을 내렸고, 잠시나마 민주주의의 봄볕이 찾아왔다. 그 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2024-09-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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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호기심이 사라지는 나라, 대한민국
“왜 선배님은 수학을 연구하십니까?” 미국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출신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후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호기심 때문이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선배는 짤막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응답했다. 당시 2학년이던 필자를 포함하여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수학 공부를 통하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여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기 위해서” 같은 거창한 말을 우리는 예상했던 것이다.
호기심은 순수한 탐구 열정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실용적 목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반면 배를 만들기 위해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은 실용적 탐구이다. 이 경우 탐구의 동력은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 같은 실용성이지 호기심은 아니다. 그냥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순수 탐구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철저하게 근원을 향해 질문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는데, 동네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산맥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주위 어른에게 산을 넘어도 들판이 있다는 답을 듣지만, 아이는 그것을 넘어가면 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마침내 아이에게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인간은 쓸데없는 것이라도 묻고 싶은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제1권은 “원래 모든 사람은 알고 싶어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안다(eidenai)’는 말은 아이의 호기심처럼 실용적 고려 없이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의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인식 활동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경험이며, 그 위 단계는 신발이나 국가를 만들고 운용할 줄 아는 기술적 인식과 인생을 잘 영위하기 위한 삶의 지혜이며, 가장 높은 단계는 호기심에서 일어나는 순수 탐구이다. 이 최고 단계의 인식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아(sophia)’라고 불렀는데, 그의 선배들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라고 하였다. 필로소피아는 그리스 말로 ‘최고 인식’을 의미하는 ‘소피아(sophia)’와 ‘사랑하다’를 의미하는 ‘필로스(philos)’의 합성어이다. 필로소피아는 영어로 ‘필로소피(philosophy)’이며, 이것을 일본 학자 니시 아마네(西周)가 1874년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하였다. 철학은 순수 탐구에 대한 번역어인 것이다.
필로소피아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탈레스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는 세계가 원래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물으면서, 세계의 시초는 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답변은 틀렸지만 순수하게 그냥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발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주의 시초가 무엇인지 묻는 이런 탐구는 실용성이 없다. 세계의 시초가 물이든, 불이든, 공기이든, 원자이든, 그걸 안다고 해서 당시의 현실 생활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필로소피아 즉 철학은 실용성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으며 실용성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필로소피아는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현대의 순수 과학은 필로소피아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학문은 지구 온난화나 질병의 퇴치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에서 시작하지 않고, 최초의 근원을 그냥 알고 싶어서 탐구한다. 부산대 물리학과 유인권 교수는 우주의 최초 물질 상태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탈레스의 후계자인 것이다. 유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매우 당혹스럽다고 신문 칼럼에서 밝혔다. 사실 이런 질문은 남자보고 언제 출산할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빗나간 것이다.
탈레스에 대한 일화가 전해 온다. 그는 별을 관찰하면서 걷다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철학자가 천상의 별은 보면서 발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면서 그를 조롱하였다. 이 이야기는 주로 철학이 실용성이 없음을 지적할 때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다른 관점으로 일화를 이해한다. “사람들은 철학자를 비웃을 것이나, 그들은 철학자가 대중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대중은 구덩이에 빠질 수 없다. 그들은 더 높은 세계를 보지 못하므로 이미 구덩이에 늘 빠져 있다.” 하늘, 즉 높은 세계는 최고의 진리를 가리킨다. 대중은 그런 것을 탐구하지 않기에 실용성의 구덩이에 빠져 살면서도 본인은 그 점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호기심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실용적 학과만 지원하고, 교육 당국도 필로소피아를 학교에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실용 연구만으로 인간은 잘 살아가지 못한다. 본성상 인간은 호기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4-09-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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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구덕운동장 재개발에 대한 단상
지난 7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의 22층 빌딩 허츠 타워가 폭파됐다. 수리비 2200억 원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1983년에 지어진 허츠 타워는 40년간 이 지역 대표적인 마천루로 꼽혔으나 2020년 허리케인의 여파로 심각하게 파손됐고 건물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4년간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매각은 되지 않고 소유주인 허츠 그룹이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 건물 폭파 비용만도 93억 원에 달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남의 나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이상기후는 농산물 가격을 흔들었고, 1년 중 절반이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기후위기 앞에서 부산이라고 비켜갈 수 있을까.
부산에는 허츠 타워보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다. 태풍만 와도 비상인데, 해일이나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앞에서 도시 부산의 미래는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지금 부산은 가덕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양질의 일자리 부족, 수도권과 교육·문화의 격차로 인한 청년 유출, 거기다 저출생 및 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과 맞물려 늘어나는 빈집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듯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중·단기 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급속하게 팽창한 도시다. 대한민국 재건 당시 교육, 문화, 경제의 주요 동력이었고, 한편으로는 전국의 피란민을 껴안으며 성장했다. 도시 개발 이전에 정착한 피란민들은 마을을 만들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주택개량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1980년 이후부터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재개발·재건축과 함께 이룬 아파트 숲은 골목을 없애고 이웃을 단절시켰다. 이 시기 교육, 문화, 산업은 빠른 속도로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남은 아파트들은 재건축,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 혹은 도시재생으로 결을 달리 했다. 재건축된 아파트는 용적률을 높여 점점 더 높아졌고, 타산이 맞지 않은 노후지역은 도시재생을 진행했음에도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활력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빈집이 늘어나는 마을에 근원적 대책 없이 제한된 예산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은 정체가 모호해진 상태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규정하듯, 집은 점점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에서 최종 탈락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사업만 해도 그렇다. 구덕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들어섰다. 1940년 ‘노다이 사건’이라 불리는 항일학생운동도 여기서 벌어졌다. 해방 이후 ‘부산공설운동장’이라고 이름을 정했고, 1985년 사직야구장과 사직실내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구덕운동장’으로 명칭을 바꿨다. 구덕운동장은 사직야구장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부산 지역 스포츠의 메카였다. 부산의 미래유산 목록에도 들어있는, 말 그대로 부산 지역 운동장의 역사 그 자체다.
2023년 12월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대상지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됐다. 공모에서 최종 확정됐다면 부산시는 국비 최대 250억 원과 시비 250억 원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을 테지만, 결국 무산됐다. 축구 전용구장과 문화·생활체육시설, 상업·업무시설 등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었으나, 80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설립 계획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주민들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공공의 성격보다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했다. 만약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 계획에 고층 아파트 대신 지식산업센터를 포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덕운동장이 소재한 부산 서구는 주요 대형병원이 모여 있어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동아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이 있고 메리놀병원도 10분 거리다. 구덕터널만 지나면 지척에 백병원이 있다. 지식산업센터에 특화된 의료 관련 산업을 유치하여 주변 병원들과 연결한다면 서구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더한 경제, 산업,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원도심 경제 활성화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변화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인구절벽을 맞은 지금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 재생과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변화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2024-09-12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