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침묵을 깨는 여행자들, 그들의 귀환을 위하여
오픈 스페이스 배 대표
부산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정체
민간은 한계… 공공과 행정이 역할을
예술가 환영하는 살아 있는 도시 돼야
예술가는 끊임없는 생산과 창작을 통해 자신의 어법을 증명한다. 멈추면 예술가가 아니다. 침묵은 예술가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는 침묵하는 세계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여행자들이다.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구석구석 세계를 누빌 때, 비로소 우리는 풍요롭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이 없는 사회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다. 죽어가는 사회다.
예술가는 있는 세계를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다. 변형하고 변주하여 다른 세계를 생성시키는 존재다. 현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눈앞에 들이민다. 그것이 창작이며 예술의 본질이다. 이 위치는 권력이나 제도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산하는 자만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여행은 일상의 바깥이면서 동시에 일상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그 왕복의 경험이 삶과 또 다른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주시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은 여행과 다를 바 없다. 예술가는 언제나 낯선 경계, 탐험을 갈구한다.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자. 실질적으로 회귀할 목적지가 예술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여행에서 돌아올 집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그 집은 모호하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실제적인 여행의 경험이 필요하다. 몸이 움직이는 여행, 낯선 땅을 밟는 여행, 이방인으로 서보는 경험. 그것이 예술가를 다시 예술가이게 만드는 힘이다.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예술가들에게 이 질문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그것이 예술가 자의식의 지표이고 작업이 지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보면, 그 작업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보인다. 귀환의 지점이 작품이다. 그 되돌아오는 표현이 어디인지를 살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속악한 현실을 만져볼 수 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여행길에 올라 그들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침묵들이 도처에서 신음을 내지르고 있는지를 상상해 보라. 무의미하게 소멸하거나 자리를 잃고 낡아지기만 하는 사물들이 제 존재감을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이름조차 잊힌 것들, 시대의 변두리로 밀려난 것들이 매일 사라져간다. 여행자이자 예술가들은 이 침묵의 몸을 매만지기 위해 쉴 틈이 없다. 그들의 작업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최후의 증언이고, 잊히는 것들에 대한 가장 집요한 저항이다.
예술가들의 수다스러운 세계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들의 작업이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보다 앞서 있고, 대중은 언제나 한발 늦게 도착한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예술가들은 귀환(歸還)하지 못한다. 돌아올 자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사회는 예술을 소비하면서도 예술가를 홀대한다. 작품 앞에서 감동하면서도 작가의 생존에는 무관심하다. 지역 예술가들의 사정은 더욱 가혹하다. 지역이라는 지리적 변두리와 주류 미술시장이라는 제도적 변두리, 그 이중의 소외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떠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세계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이 아픈 간격을 메우기 위한 귀중한 시도다. 예술가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이방인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보게 하는 장치다. 국경을 넘어 다른 문화권의 예술가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서로의 침묵을 들여다보는 경험, 그것이 부산다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확실한 방법이다. 외부에서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예술가들이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짜 문화 행정이고, 도시를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다.
부산을 보라.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지되고 있는지 꼽아보아도 한 손안이다. 도시 곳곳에 공가와 유휴시설은 늘어만 가는데, 십수 년째 활성화만 명분으로 내세울 뿐 실천이 없다. 민간 예술단체들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공공과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그들을 환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예술가의 집에서 머물고 예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이 그 해답일 수 있다. 퐁피두 간판이 아니라 예술가의 숨결과 낡은 골목, 비린내 나는 새벽 항구의 향기가 부산의 본질일 것이다.
일단은, 그들이 비록 왕은 아니지만 귀환하고 있으니 최소한 환영이라도 해주는 작은 관심을 보이자. 손뼉을 치자마자 그들은 곧 떠나겠지만, 우선은 가볍게 포옹해 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예술가를 환영하는 도시가 살아 있는 도시다. 예술가를 외면하는 도시는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침묵을 소란으로 만드는 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