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 강풀 작가 “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
강풀 작가의 인기 웹툰 ‘조명가게’가 배우 김희원의 손에서 드라마로 다시 태어나 전세계 시청자를 만난다. 다음 달 4일 공개되는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 얘기다. 이 작품은 20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에서 열린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 APAC 2024’에서 첫 편 시사를 진행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언론 관계자 500여 명이 모인 이번 행사에서 시사를 진행한 건 이 작품이 유일하다. K콘텐츠에 대한 디즈니의 관심과 기대를 보여준다.강풀 작가는 이날 열린 ‘조명가게’ 시사 후 간담회에서 “원작보다 훨씬 깊고 풍성해졌다”며 시리즈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강 작가는 전작 ‘무빙’에 이어 이번 작품의 각본을 맡았다. 그는 “13년 전 (제가) 만화로 그린 작품인데, 만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를 감독님과 배우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줬다”며 “마음에 든다”고 했다.이 작품은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조명가게에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희원의 첫 연출 도전작이다. 주지훈과 박보영, 엄태구, 김설현, 이정은, 배성우 등이 연기 합을 맞췄다. 강 작가는 “20년 동안 만화를 그리다가 드라마 극본 작가를 하게 될 줄 몰랐다”며 “어떻게 보면 같은 창작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강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에 ‘사람’을 두고, 곁가지를 그려 작품을 완성해간다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움직이고, 행동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가장 중점을 둔다”면서 “그걸 중심으로 전체 이야기를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무빙’과 ‘조명가게’는 결이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어서 장르물이지만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이 작품으로 첫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 김희원은 연기할 때 몰랐던 점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일단 겸손을 배웠다”며 “배우를 할 땐 제 잘난 맛에 연기했는데, 연출자의 위치에서 보니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존경스럽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분이 도와준 덕분에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떨리고 재미있고 꿈만 같고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즈니 작품엔 사람의 정서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며 “강 작가의 작품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서 작품에 그런 점을 녹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배우들은 작품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주지훈은 “개인적으로 촬영 전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너무 잘 되어 있더라”며 “결과물도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봐서 기분 좋게 시청자에게 추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보영은 “강 작가님 특유의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이 작품에 담겼다”면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싱가포르=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잠깐 읽기] 인도에서 인간의 속성에 빛을 들이대다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를 그동안 인도 역사학자로만 알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것은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모르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사진 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카메라는 칼이다: 한국 현대사진가 열둘의 작가론> 등을 낸 사진비평가이자 사진가였다. 그가 15년 동안 인도 사회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회적 이미지들을 모아 이번에 사진집을 냈다. 하지만 이 사진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도의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델리에서 찍었다고 해서 델리를 말하는 게 아니고, 힌두사원에서 찍었다고 해서 힌두교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따마스>는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인류가 증거한 행위의 뿌리가 결국 악 그 자체라는 속성을 말하고자 한다. 인간은 도를 닦고 열심히 노력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또 노력하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 궁극의 해탈에 이르게 된단다. 이 책은 현생에 떨어져 따마스(악)로 뭉친 인간이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다음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빛의 예술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화려한 색이 펼쳐지는데 왠지 어둡고 처연하면서도 신산한 맛이 난다. 본래 인생살이란 그런 것인가? 야심한 밤에 책을 펼쳐서 그런지 내가 사진을 보는데, 사진 속 인물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캡션도 붙어 있지 않고 철저하게 사진 언어로만 쓰였다. 첫 장 ‘태초의 바다’에서 시작해 마지막 장의 ‘따마스: 인간은 악이다' 사이의 열 개의 장 제목을 힌트로 해서 각자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옳고 그른 것도 없으며, 쉽고 어려운 것도 없다. 느낌은 오는데 뭐라고 표현하기가 막막해진다. 아무튼 그렇게 물 흐르듯이 사진이 흘러 인도의 속살과 인간 속성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광수 지음/눈빛/240쪽/4만 원.
[잠깐 읽기]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떻게 성공했나
“조선비치에서 미포에 이르는 해변에는 포장마차가 길게 있었고, (그곳은)국내외 영화인들이 밤을 지새우며 담소하는 명소였다. 나는 일정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포장마차를 차례로 순방하면서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부산을 찾은 게스트들을 만났다. 매일 소주 100잔에서 150잔을 마신 셈이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만든 핵심 인물인 김동호 전 BIFF 이사장은 업계에서 ‘주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문화 불모지’였던 부산에 세계적인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비공식 음주 국가대표를 자처했다. 일명 ‘소주 외교’다. 중국의 왕가위 감독과 일본의 키타노 다케시 감독은 “일 년간 마실 술을 하룻밤 만에 마셨다”고 그와의 술자리를 추억했다.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탄생해 어느덧 30주년을 앞둔 BIFF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BIFF의 출범 계기가 된 1992년 페사로 영화제와 1995년 ‘프라자 회동’을 시작으로 영화제 창설과 15년간의 여정이 담겼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국제영화제 개최를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부은 이야기를 포함해 영화의전당 건립 과정, ‘다이빙 벨 사태’ 등에 대한 뒷이야기도 수록됐다. 김 전 이사장은 영화제를 거쳐 간 영화인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그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록했다. BIFF를 향한 열정과 그의 꼼꼼한 성격이 글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늘날 BIFF는 단순히 하나의 영화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영화는 BIFF를 통해 전 세계에 진출했고, BIFF는 한국 영화계와 해외 영화계의 장벽을 허물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BIFF의 태동에는 김동호 전 이사장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노력과 고민의 흔적을 되짚다 보면 ‘서른 살’ BIFF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동호 지음/글마당 앤 아이디얼북스/224쪽/1만 8000원.
“‘사랑’과 한 끗 차이인 ‘사람’, 이래서 한글이 좋아요”
언젠가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사람이 많은 광장 어디선가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귀에 쏙 들어와 꽂혔다. 멀리서 엄마라는 단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음을 비집고 들어왔는지 하도 신기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우리말은 이런 것이었다. <어말아글>은 ‘어머니의 말, 아버지의 글’의 줄임말이다. 어린 시절 체화하는 언어의 뿌리와 첫인상을 의미한다. 부산대 교수로 정년 퇴임을 한 저자는 라트비아 대학에서 2018년부터 동아시아 문화와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를 향한 학생들의 관심이 일본어나 중국어보다 훨씬 뜨거웠다고 한다. 매년 전공을 선택하는 비중도 한국어가 가장 높았다. 짐작하듯이 K컬처의 힘이다. 이 책은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글과 한국어의 첫인상이 어떠한지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2부 ‘가장 아름답거나 인상에 남는 한글은 무엇일까?’에는 라트비아 대학생이 직접 쓴 한국어에 대한 인상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말로는 예상대로 ‘사랑’을 많이 꼽았다. 한국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단어를 라트비아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해서 놀랐다고 한다. ‘사랑’이란 단어를 철자 차이가 단 한 글자에 불과한 ‘사람’과 엮어서 생각하는 학생도 꽤 있었다. ‘사랑’과 ‘사람’이 너무 비슷해서 좋다. 사람들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사람과 사랑은 서로 옆에 있어야 마땅하다. 의외의 한글 대표선수가 ‘눈치’다. “눈치는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될 수 없다. 이 단어는 한국 문화의 일부다”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비언어적 맥락을 고려하여 주변 현실을 빠르게 스캔하고 사회적 지위, 연령 및 일반 등 다양한 추가 요소를 고려하여 반응하는 능력이다’는 예리한 정의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국에서 눈치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의외로 이 단어에 호감을 느끼는 이들도 꽤 있었다. “눈치는 제일 좋아하는 한국말이다. 들을 때마다, 완전 귀여운 애교 표정 같다”는 것이다.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이 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꽃과 길을 합쳐 만든 ‘꽃길’도 아름다운 한글로 자주 꼽혔다. 꽃길은 문자 그대로 꽃길일 뿐만 아니라,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길과 삶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끼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기에 좋은 말인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이들이 꽃길까지 알까 싶었는데 BTS의 노래 ‘둘!셋!’에서 ‘꽃길만 걷자’라는 표현이 나온단다. K팝의 위대한 영향력이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니 새삼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들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라트비아의 한 학생은 이 말을 ‘손님에게 문을 여는 것처럼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좋아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미안하게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매혹적인 말이었다. ‘고양이’를 두고 참 좋은 이름이라는 말도 새삼스러웠다. 고양이는 매우 귀여운 단어이고, 고양이처럼 정말 부드럽게 들린단다. 가운데 음절 ‘양’은 고양이가 말할 때 나는 소리와 약간 비슷하다니, 듣고 보니 그렇다. 한국어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한국어는 소리가 좋아서 듣기는 물론 말하기에 푹 빠진다고 말한다. 한글은 소리의 표현을 대략 8800개 정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본어는 300개, 한자는 400개 정도라니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한글이지만 챗지피티 같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꿔 가는 시대에 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AI 언어가 세계인의 규범이 되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글이 계속 성장하려면 한국어에 대한 연구가 국내뿐만 아니라, 이제는 외국인의 시각, 외국어로서의 새로움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인식을 전혀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글의 체질을 바꾸고 면역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보물 한글을 남이 더 잘 알아본다. 이상금 지음/두두/224쪽/1만 7000원.
러시아는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나
‘(독일)정치권은 경제 협력을 통한 대 러시아 관계 개선이 평화로 이어진다는 단꿈에 빠져있었다. 강경파 환경론자들의 압력에 원전의 위험성은 과대평가됐고, 러시아산 에너지 종속의 위험성은 무시했다. 독일은 그렇게 푸틴의 덫에 빠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난 2022년 6월,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실린 표지 기사의 내용이다. 기사는 당시 독일의 상황을 ‘러시아 천연가스에 중독됐다’고 표현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천연가스 악마’로 묘사했다. 2021년말 기준 독일은 전체 에너지의 13.5%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 대부분이 천연가스였다. 당시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자국의 천연가스를 독일로 ‘직배송’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의 천연가스 공급을 담당했던 이 가스관은 러시아에 적대적인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발트해를 통과해 러시아~독일을 연결한다. 건설 당시 반대 목소리도 컸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심화돼 푸틴이 에너지를 전략 무기로 휘두를 수 있고, 가스관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배제되는 동유럽 및 발트해 국가들이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마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는 독일에 공급하던 천연가스량을 기존의 40% 수준으로 줄였다.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해 8월에는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을 일정 기간 중단하겠다는 협박까지 일삼았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가 패닉에 빠졌다. 전화(戰禍)는 크림반도에 한했지만, 에너지 대란의 먹구름은 유럽 전역을 뒤덮었다. 그리고 9월, 노르트스트림은 갑작스런 폭발 사고로 10년 간의 짧은 역할에 종지부를 찍었고, 언론들은 사고를 두고 ‘서방의 공작’이라는 폭로성 기사를 쏟아냈다. 프랑스 베테랑 기자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그의 책 <노르트스트림의 덫>에서 노르트스트림의 탄생과 소멸(폭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노르트스트림을 ‘푸틴이 잃어버린 소련의 위대함을 되찾기 위해 유럽 전역에 깔아놓은 덫이자, 유럽 한복판에 던져놓은 현대판 트로이 목마’라고 표현한다. 그런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푸틴의 제국주의 야욕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여기에 유럽 경제 대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어떻게 공모했는지를 살핀다. 그 과정에서 유럽과 러시아, 미국의 국가적 이해관계와 각 개인의 욕망, 그에 따른 오판들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책의 주요 무대는 유럽이지만 결코 유럽만의 이야기로 그칠 것은 아니다. 국제정세는 세계 전역을 걸쳐 복잡하게 얽혀있고,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강렬하다. 푸틴은 오래전부터 에너지 제국주의를 꿈꿨지만, 오히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계기는 아시아에서 일어났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그것이 유럽 각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자국의 원전 발전을 줄이는 대신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에 더욱 의존하게 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국내 상황도 오버랩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대한민국 역시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또한 여러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원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부풀리거나 혹은 축소하는 일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상황이 유럽과 똑같진 않겠지만, 비교해 읽으며 더욱 흥미롭다. 마리움 반 렌테르겜 지음/권지현 옮김/롤러코스터/312쪽/1만 8700원.
[이 주의 새 책] 잊혀지지 않을 권리 外
■잊혀지지 않을 권리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행위자의 86%는 부모, 학대가 발생한 장소는 대부분이 가정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44명의 아동이 아동학대로 사망했다. 이 책은 12년 동안 아동학대 사건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저자가 재판정에서 보고 들은 자료들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아동학대 사건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기록이다. 공혜정 지음/느린서재/376쪽/1만 8500원. ■K-배터리 30년 전쟁 한국은 이차전지를 처음 개발한 나라도 아니지만 30여 년 만에 배터리 최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 증시를 한동안 뜨겁게 달구던 이차전지 주식들은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모습이다.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변수를 맞이한 한국 이차전지 산업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전망한다. ‘배터리는 화재가 나는 위험한 물건이지만, 거기에 K–배터리의 기회가 있다’니…. 이지훈 지음/리더스북/504쪽/2만 3000원. ■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 도연명, 이백, 두보, 소식, 왕유, 백거이 등이 읊은 주시(酒詩) 100여 수를 통해 술과 인간이 맺은 여러 곡절을 헤아린다. 이규보는 “술 없으면 시 짓는 일 멈춰야 한다”고, 이백은 ”저 강물 변해서 모두 술이 된다면”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이색, 이규보, 이인로, 이숭인, 노수신, 박은 등의 시도 함께한다. 유병례,윤현숙 지음/뿌리와이파리/336쪽/1만 8000원.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전쟁사 영장류의 싸움에서부터 시작해 세계 1, 2차 대전까지 인류가 겪어 온 전쟁 역사를 훑어 나간다. 전쟁이라는 난감한 제도를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죽이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도 조명하고 있다. 인간은 드론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목표를 제거한 뒤에도 충격을 겪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윈 다이어 지음/김상조 옮김/진성북스/312쪽/2만 3000원. ■음악으로 가득한 음악가이자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명’ 중 한 사람인 다카기 마사카쓰의 산문집이다. 저자는 ‘마지널리아’라는 이름으로 단 한 번뿐인 자연의 소리에 즉흥 연주 형태의 멜로디를 더한 곡을 꾸준히 공개하고 있다. 음악은 주변의 존재들에 귀 기울이며 이미 몸에 새겨진 경험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카기 마사카쓰 지음/오하나 옮김/열매하나/286쪽/1만 7000원. ■마마마, 부산 부산 소설가 배길남 씨가 부산의 ‘잊힌’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발랄함과 맛깔스러운 사투리가 들어간 구어체 문장 덕분에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내용도 술술 읽힌다. 1부는 공간적 여행기, 2부는 시간적 여행기, 3부는정취적 여행기, 4부는 유희적 여행기로 구성되어 있다. 잃어버리고 전에 그 소중함을 알자는 바람을 담았다. 배길남 지음/호밀밭/312쪽/1만 9000원. ■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주인공 카토는 자신이 태어난 날 세상을 떠난 엄마를 만나기 위해 시간 여행에 빠져든다. 한 편의 성장 영화 같은 이 책을 읽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를 잘 살아가야 멋진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 요릭 홀데베이크 지음/최진영 옮김/시금치/288쪽/1만 8900원.
‘중국 교류’ 초점 맞춘 제4회 부산국제현대음악제
올해로 4회를 맞는 ‘부산국제현대음악제(BICMF) 2024’가 22~23일 4개의 콘서트로 영화의전당 라이브러리 3층에서 열린다. 예술감독은 오세일 인제대 교수가 맡았다. 올해 음악제는 중국과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 난닝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현대음악제인 ‘중국-아세안 음악 페스티벌(China-ASEAN Music Festival)’과 연계해 ʻ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주제를 정했다. 총 6개 프로그램 중 2개는 난닝에서, 4개는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참여 작곡가 중에는 미국 인디아나음대 교수 P.Q.판, 중국 절강음악원 교수 안승필,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기용총,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 김택수 등이 있으며, 이들 작품은 ‘광시 체임버 앙상블’, 절강음악원 현악 중주단 및 부산현대음악앙상블(BCME)에 의해 연주된다. 이규봉(영남대 교수) 집행위원장은 “무엇보다 이번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 작품과 연주자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천개의 찬란한 태양’ 프로그램을 구성했고, 한국의 대표적 연주자들도 참여한 부산국제현대음악제는 현대음악이라는 틀 안에서 각자 어떠한 고유의 음악어법을 구사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난닝에서 두 번의 한국 작곡가 작품 연주를 통해 우리의 현대음악을 중국에 소개하는 의미 있는 기회도 갖게 돼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주 일정과 주제는 다음과 같다. △콘서트1(22일 오후 5시)=천 개의 찬란한 태양-오디오 비주얼 작품(한국 중국의 작곡가들 작품과 5명의 비주얼 작가들이 함께 작업한 오디오 비주얼 작품 공연. 참여 작곡가와 비디오 아티스트는 유은선-한경담, 권유미-배윤경, 정현수-조수진, 임재경-김영희, 주린-이주헌) △콘서트2(22일 오후 7시 30분)=천 개의 찬란한 태양-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시리즈 (이강규, P.Q. 판, 구오 위안, 기용총, 이규봉, 김택수, 장잉, 안승필) △콘서트3(23일 오후 2시)=유삼지(Liu Sanjie)의 이야기(중국 광시 지역에 내려오는 유삼지의 이야기와 중국의 전통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 △콘서트4(23일 오후 7시 30분)=중국 난닝의 작곡가들(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하이라이트 연주회로 소수민족의 음악적인 이야기가 부산에서 펼쳐진다). 관람 신청과 자세한 내용은 부산국제현대음악제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으로 만나는 ‘실내악 페스티벌’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5곡이다. 베토벤은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위한 좋은 작품도 많이 남겼지만 언제나 그의 인생에 중심이 되는 악기는 피아노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복합문화공간 F1963 내 금난새 뮤직센터(GMC)에서 23~24일 펼치는 가을 실내악 페스티벌 ‘2024 노멤버 체임버 위크’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으로 개최한다. 올해로 3회를 맞는 이 페스티벌은 금난새 지휘자가 예술감독을 맡고, 문화재단1963이 주최한다. 두 대의 피아노(정은혜 & 강한솔 피아노 듀오)와 현악 앙상블(뉴월드 현악사중주)이라는 독특하면서 다소 실험적인 형태의 반주와 함께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가 참여해 무대를 장식한다. 큰 편성의 관현악 반주 협주곡을 마치 실내악처럼 감상해 보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총 4회로 진행되는 연주 일정과 연주곡, 연주자는 다음과 같다. △23일 1회 공연(오후 3시)=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1번(피아노 오연택),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피아노 김상영), 2회 공연(오후 7시 30분)=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피아노 노예진). △24일 1회 공연(오후 3시)=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피아노 임효선), 2회 공연(오후 7시 30분)=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피아노 아비람 라이케르트). 한편 피아니스트 오연택은 서울예고와 서울대를 마치고,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프랑스 파리에콜노르말 음악원,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석사와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치고 올해 맨해튼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피아니스트 김상영은 2008년 미국 리조나 뵈젠도르퍼 국제 콩쿠르 1등 및 2013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입상과 함께 미국 전역, 유럽, 이스라엘, 아시아 등지의 각종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년부터 계명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피아니스트 노예진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최고 연주자 과정을 이수했으며, 2019년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피아니스트 임효선은 2003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 2, 3위 없는 1위와 특별상 그리고 청중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2007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의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해 세계 무대에 임효선을 각인시켰다.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는 1997년 세계 최고의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음악계에 그 이름을 알렸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생인 그는 텔아비브 루빈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일찍이 쾰른 국제 콩쿠르와 일본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고 에피날 국제 콩쿠르, 동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입장 가능 연령 만 7세 이상. 전석 무료(네이버 사전 예약 필수, 현재 매진 상태 취소·반환표만 예매 가능).
부산의 거장, 서상환 신작을 만나다
1940년생으로 8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거장의 붓놀림은 여전히 거침없었다. 몇 년째 폐암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전시장의 반 이상을 올해 그린 신작들로 채웠다. 현장을 찾은 이들은 또 한 번 감탄하며, 이 전시가 제발 거장의 마지막 개인전이 되지 않기를 한목소리로 기도한다. 전시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하곤 젊은 작가들조차 전시장을 지키지 않고, 갤러리 대표와 큐레이터에게 전시를 맡기지만 80대 거장은 늘 그렇듯 이번에도 매일 전시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천재로 불리는 부산 작가, 서상환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부산 수영구 미광화랑에서 27일까지 열리는 서상환 ‘신의 가면’전은 서 화백이 오랜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서 화백은 평생 기독교와 한국적인 느낌이 혼재하는 성상화(聖象畵, ICON)를 독창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서 화백을 두고, 모 평론가는 “철학, 종료, 예술을 하나의 텍스트로 녹여내는 연금술적 정신과 역량을 지닌 미술가”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연금술은 대립하는 이중적인 것을 혼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쓰였다. 서 화백은 종교적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인간에 대한 구원 의식을 그린다. 기도하는 손, 인간, 촛불, 십자가, 눈동자, 나무 등 성상과 관련한 기호와 도상을 결합해 오늘날의 민중과 소외당하는 인간 군상에 대한 구원 의식이 캔버스에 담긴다. 그래서 서 화백의 그림은 상징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서 화백의 주요 그림 시리즈에 만다라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만다라는 일반적으로 불교의 승려들이 명상 수행의 일환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다라의 본질은 중심과 질서에 의한 평온과 깨달음이고 성상화처럼 만다라에는 불교적 성상을 그린다. 서 화백에게 기독교 성상화이든 불교 만다라든 평온과 깨달음, 인간에 대한 구원은 하나로 통하는 듯하다. 분명한 형태를 알 수 없는 비구상적 작품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지만, 서 화백 그림의 경우 메시지나 형태가 명료하고 단순하다. 철학적, 종교적 세계관이 모두 들어있지만,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이란다. 그림 형태 또한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고, 강렬한 디자인 작품 같기도 해, 보는 재미도 있다. 1970년대부터 줄곧 이어지는 서 화백의 성상화는 정작 2024년 트렌디한 젊은 작가들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만의 독창적인 실험성은 몇십 년의 세월을 앞섰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번 전시에선 화백의 대표 매체인 대형 판화를 비롯해 드로잉, 채색화, 판각화를 모두 만날 수 있다. 2024년 신작은 대부분 아크릴과 수채 물감을 사용한 채색화들이다. 병마로 쇠약해져 더 이상 작가의 대형 판화 작업이 힘들다는 건 안타깝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여전히 수십 점의 신작 채색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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