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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의 회화는 숲길을 따라 느리게 걷는 경험이다

김춘자의 회화는 숲길을 따라 느리게 걷는 경험이다

“여러 가지가 다 섞여 있어요”라는 서양화가 김춘자의 말은 이번 전시의 매체 구성을 설명하는 문장이자, 그의 작업 세계를 압축하는 한 줄이다. 이번 전시는 회화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유화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바느질 작품과 도자, 드로잉, 수채화가 함께 배치되며, 작가가 오랜 시간 확장해 온 생명 감각과 손의 언어를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부산 금정구 스페이스 비브이(space bv, 금정구 체육공원로 595)에서 열리는 김춘자 개인전 ‘레버리(Reverie): 꿈꾸는 숲에서 느리게 만나다’는 바로 이 복합적인 생태가 어떻게 한 작가의 오랜 작업 안에서 축적됐는가를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보여준다.지난 12일 시작된 전시는 8월 9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제목 ‘Reverie’는 ‘몽상’, ‘꿈결 같은 사유’를 뜻한다. 부산을 기반으로 수십 년간 작업해 온 원로 작가 김춘자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을 재현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연을 관계의 장으로, 그리고 인간이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조건으로 제시한다. “제 그림을 통해서 정말 파괴되어 가는 우리 인간성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전시에는 최근 2~3년 사이 작업한 작품 약 40점이 소개된다. 작가는 손주의 낙서에서 출발한 드로잉, 사막과 섬에서 받은 인상, 여름 숲의 빛과 바람, 그리고 도시 개발로 사라진 자연의 기억까지 여러 층위의 경험을 화면에 포개왔다. 그는 “자연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장 가까운 시간, 아이의 시간과 닿아 있다”고 말한다. 그의 회화가 자주 다정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감각과 무관하지 않다.그의 회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기 채색법’이다. 화면 전체를 감싸는 미세한 붓질과 색의 층위(Layer)를 통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밀도와 생명의 기운이 은은하게 번지고 스며드는 듯한 효과를 낸다. 멀리서 보면 파스텔처럼 부드럽지만, 가까이서 보면 유화의 층위와 물성이 살아 있다. “선을 여러 번 칠하고 지우는 과정을 통해 이렇게 나왔습니다”라고 작가는 설명한다.작업은 그가 품어온 자연 인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삯바느질로 아들 하나를 키웠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남은 무명천을 보고 ‘뭘 해야 하나’ 싶었고, 그렇게 바느질을 시작했다”라며 “바느질은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는 것, 결국 나와 시어머니를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썩 좋지 않았던 고부 관계도 바느질을 통해 화해한 셈이다.그 윤리는 자연을 대하는 방식으로도 확장된다. “자연이라는 것은 가볍고 약해서 보호를 해야 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도시 개발로 사라진 집 뒤편 산과, 새들이 다시 찾아 울던 밤을 기억하며 “새가 와서 막 울어요. 소리가 다른 새가 와서 울고 또 울고…. 그렇게 새를 그리게 됐어요”라고 전했다. 자연을 향한 감정은 낭만적 동경이 아니라, 사라짐을 목격한 애도에 가깝다.수채화는 단 두 점이지만 중요하다. 표제작 ‘The Forest’가 포함됐다. “유화로 해도 돼요. 그런데 숲과 가지 사이, 나무 사이의 시간과 빛이 하나의 색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느꼈어요. 물은 유연하잖아요. 그래서 수채화로 했어요”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숲이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죠. 하나의 식물이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것을 관찰했어요. 너무 귀한 시간이었어요”라고 숲 관찰 경험을 털어놓는다.‘그리니’(Greeny)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니는 인간과 자연의 중간 지점에 있는 존재예요. 자연의 내용을 전달하고, 일깨움을 주는 역할을 해요”라고 작가는 말한다. “약간 외계인 같기도 하고, 완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식물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어요. 뿔 같은 게 안테나 역할을 해요”라고 덧붙인다. 그리니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능동적 생명체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전시장에는 작가가 채집한 새소리를 바탕으로 국악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안정아가 작곡한 ‘숲길에서’가 흐르는 박스 세트가 설치돼 있다. “숲에서 녹음한 새소리를 넣었고, 세트 안에 들어가면 소리가 나요”라고 space bv 이정윤 대표는 설명한다. 리셉션은 20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씨씨킴(CECE KIM)과 재즈 기타리스트 로버트 코츠(Robert Coates)의 공연, 그리고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진다.김춘자의 작업은 하나의 태도를 남긴다. 환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해석하거나 점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작가가 조심스럽게 내어놓은 이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라는 기획자의 말은 전시가 지향하는 느린 감각을 확인한다. 전시 관람은 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일·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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