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대 국회 마지막 회기, 정쟁 대신 협치 모습 보여라
2일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린다. 전날 여야가 이태원참사특별법 처리에 극적으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30일 시작된 21대 국회 마지막 임시국회 역시 여러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 간 이견으로 난항이 우려됐는데, 이로써 경색된 정국이 다소나마 풀릴 계기는 마련된 셈이다. 다행이긴 하나, 그렇다고 전망까지 밝은 건 아니다. 채상병특검법 등 야당이 통과를 요구하는 나머지 법안들에 여당의 반발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임시국회가 끝나는 오는 29일까지 산적한 민생과 정국 현안에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21대 국회의 이런 모습에 국민은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에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국회의 기본 책무라 할 법안 처리에서 우선 낙제점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2만 5700여 건인데 처리된 건 35%에 그친다. 현 국회의원 임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인지라 나머지 1만 6300여 법안의 대부분은 그대로 폐기될 운명이다. 여야가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며 스스로의 책무를 외면한 탓이다. 계류된 법안 중에는 민생에 직결된 법안이 적지 않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하세월이다. 국민은 불황과 고물가 등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직무유기라 할 21대 국회의 낯부끄러운 모습에 절로 탄식하게 된다. 현 국회의원들이 얼굴이라도 제대로 들고 다니려면 지금이라도 긴요한 법안 처리에 여야 없이 나서야 한다. 채상병특검법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쟁점 법안부터 조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여당은 정쟁 소지가 있다며 불응하고 있지만, 지난 총선에서의 민심은 사안의 진실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이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연금개혁이나 육아·돌봄 등 한시도 미뤄서는 안 되는 민생 입법 과제도 수북하다.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법 개정 등 지역 발전에 필수인 법안은 논의가 실종됐다. 21대 국회가 끝까지 이런 법안 처리를 외면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진정한 협치의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다. 여든 야든 모두 민심을 직시하는 것이다. 지난 총선은 민심에서 멀어진 정치에 어떤 심판이 내려지는지 분명히 보여줬다. 거대 야당은 여당을 논의에 적극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여당은 대국적 견지에서 응해야 한다. 민심은 21대 국회가 마지막 회기에서나마 제대로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요구한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여야가 마음먹고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 국민이 조속한 처리를 바라는 법안에 여야가 당리당략을 넘어서 서로 머리를 맞댄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것만이 21대 국회가 늦게나마 면목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설] ‘사회이동성 개선 방안’ 출산·계층이동 효과 거둬야
정부가 계층 간 이동 사다리 붕괴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든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안을 1일 내놨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사회이동성 개선 방안’에는 일자리, 교육, 자산 형성의 3대 정책 방향을 축으로 그 아래에 11개 핵심 과제를 담았다. 세대·계층 간 이동을 활성화하고 여성과 청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 우리나라 전체의 사회·경제적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처음 내놓은 종합 대책이다. 갈수록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정부 대응이 다소 늦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라도 종합 대책이 나왔으니 일단 다행스럽다. 정부가 올해 초에 이미 예고한 이번 개선 방안의 핵심은 여성과 청년의 일자리 제공을 통한 경제활동 참여 지원, 저소득층 초·중·고·대학생 지원 확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제도의 전면 개편과 국민연금 조기수급 등이다. 우선 경력단절 예방과 재취업 지원을 위해 배우자의 출산 휴가를 기존 10일에서 20일로 늘렸다. 여기엔 여성은 물론 남성도 포함된다. 또 꿈사다리 장학금 대상을 초등생까지 넓히고 고졸 전형을 통해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시 고졸 비중도 높이기로 했다. 자산 형성과 관련해선 그동안 유형별로 구분된 ISA를 통합하거나 1인 1계좌의 폐지를 검토하고 연금 조기수급 제도도 개선할 방침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는 이미 개인 노력만으로는 계층 간 이동이 어려운 시대가 됐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 학력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일자리, 소득 격차로 연결된다. 인생의 출발 시점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다면 전 생애에 걸쳐 이 같은 격차는 순환하면서 더 확대되고 견고해진다. 안타깝지만 국민 대다수는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세대·계층 간 단절에 이동의 통로를 내기 위한 대책은 더는 늦출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사회이동의 기회를 넓히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국민 간 화합에도 필수 요건이다. 양극화 심화로 사회 전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때에 나온 정부의 첫 번째 종합 대책인 만큼 국민이 정책 효과를 체감하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정책 시행의 핵심인 예산 확보와 부처 간 협업 체계 구축이 선결 요건이다. 정부 발표에 대해 일부에선 벌써 예산 문제를 지적하고 또 특정 사업엔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사항은 법률 개정도 필요해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경제·사회의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임을 고려할 때 정부의 로드맵이 초기부터 촘촘하게 짜여야 한다. 정부는 하반기 2차 개선 방안도 예고했는데 1차 방안의 순조로운 시행이 방향타가 될 것이다.
[사설] 윤 대통령, 기자회견서 영수회담 무성과 대안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0일 취임 2주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데 따른 소식이다. 이 수석은 “(기자회견을) 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는 식으로 다소 애매하게 말했지만,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공개 발언인 만큼 빈말은 아닐 테다. 윤 대통령이 실제로 기자회견을 가진다면 2022년 8월 17일 가졌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무려 1년 9개월 만의 기자회견이 된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데 대한 실망과 아쉬움이 컸던 터라,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자못 크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행적에는 불통이라는 이미지가 늘 따라붙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 당시 약속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역대 대통령들이 통상적으로 해오던 신년 또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아무런 설명 없이 열지 않았다. 한때 관심을 모았던 출근길 ‘도어스테핑’도 2022년 11월 이후 중단했다. 윤 대통령의 말은 국무회의 모두발언 등을 통해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전달될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처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는다는 게 세간의 화제가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앞으로도 언론의 비판이나 제언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과 민심 사이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와의 지난 영수회담에서도 윤 대통령은 민심과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여 만에 열린 영수회담이라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지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민생과 국정 현안에 대한 의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대신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여러 제안에 난색을 표하거나 침묵했을 따름이었다. 2시간 넘은 대화에도 합의문 한 장 나오지 않았다. “영수회담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차담회에 불과했다”는 일각의 혹평에도 달리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이 가졌던 기대와 관심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영수회담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는 형편이다. 총선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국민이 윤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불신의 고리를 끊으려면 윤 대통령 스스로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취임 2주년에 즈음해 갖겠다는 기자회견은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진정한 민심을 접하는 최선의 통로가 기자회견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보여주지 못한 국정의 비전과 대안을 기자회견을 통해 충실히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다소 민감하더라도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으로서 민심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다.
[밀물썰물] 가마우지의 얄궂은 운명
가마우지라는 철새가 있다. 대부분 해안에서 생활하지만 큰 강이나 호수에서도 볼 수 있다. 큰 것은 몸길이가 70~90㎝에 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민물가마우지가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새는 헤엄을 치다가 잠수해 물고기를 잡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이 능력이 가마우지의 운명을 얄궂게 만들었다. 가마우지는 오래전부터 ‘물고기 사냥의 명수’로 불렸다. 타고난 사냥 실력을 보유한 가마우지를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가마우지를 길들여 물고기 사냥에 이용했다. 이른바 가마우지 낚시법이다.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목 아래에 끈을 묶고 사냥을 시킨 뒤 잡은 물고기는 빼앗았다. 일은 가마우지가 다 했지만 그 성과물은 사람의 차지였다. 636년에 발간된 수나라 역사책 〈수서(隋書)〉에 고대 일본의 전통 낚시법이라고 소개돼 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듯하다. 어로법이 독특했는지 이탈리아 선교사 오도릭(1265~1331)이 쓴 〈동방기행〉에도 실려 유럽 사람들에게 동양의 신기한 풍물로 알려졌다고 한다. 한때는 일본의 한 경제평론가가 일본에 핵심 부품이나 소재를 의존하는 한국 수출 구조의 취약성을 빗대 ‘가마우지 경제’라고 말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목줄(부품·소재)에 묶여 완제품 수출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 과실은 일본이 취한다는 점을 조롱한 것이다. 가마우지의 뛰어난 물고기 사냥 실력이 비꼼과 조롱의 소재가 된 셈이다. 최근 가마우지는 또 한 번 그 천부적인 능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달갑지 않은 처지에 놓였다. 원래 러시아 연해주나 사할린이 서식지였던 가마우지가 기후변화 탓인지 점점 우리나라의 텃새로 습성이 변해 강가 등에 그대로 눌러앉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텃새가 된 것까지는 괜찮은데 물고기 사냥 실력으로 가는 곳마다 민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 경남 산청의 경호강이나 덕천강, 경북 포항의 형산강 등 강 유역 주변 농어민들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호소다. 지자체의 호소에 가마우지는 결국 지난해 말 환경부에 의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이후 일부 지자체는 최근 아예 엽사까지 동원해 직접 사냥에 나섰다고 하니 가마우지로선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한때는 구경조차 쉽지 않았던 가마우지였건만 상황이 급변하니 이젠 인간의 총질만이 사나워진다. 이 모두 가마우지의 물고기 사냥 실력을 탓해야 하나.
논설실장
강병균
논설위원
이병철
곽명섭
강윤경
김승일
김건수
임광명
정달식
[김건수의 지금 여기] 홍세화, 그리고 진보정당의 길
지난 부산 총선 현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역을 꼽을 때 연제구를 빼놓기 힘들다. 노정현 후보의 선전은 소수정당인 진보당의 기치 아래 거둔 결실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었다. 노 후보는 여론조사 때마다 오차범위 밖 우세로 1위를 달리면서 한때 2위 국민의힘 후보와의 격차를 20%P 가까이 벌리기도 했는데, 부산에서는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이변이라 할 만했다. 야권 단일화 경선 승리가 주효했다는 분석, 결국 개인의 역량이 일궈낸 성과라는 진단 등이 나왔다. 어쨌든 노 후보는 이를 동력 삼아 내처 당선의 문턱까지 내달렸던 것이다. 물론 총선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보수 표심의 막판 결집 때문인지 노 후보는 8.83%P(1만 1109표) 차이로 낙선했다. 부산에서 진보정당의 첫 국회 진출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낙담했다. 행정·사법 기관이 몰려 있고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연제구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보수정당이 승리한 지역이다. 기존 진보정당들이 기반으로 삼았던 곳과 정치 지형이 사뭇 다르다. 여기서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절반 가까운 표를 얻었으니 당락을 떠나 역사적 사건임에 분명하다. 이 장면은 이번 총선의 또 다른 안타까운 장면과 교차하면서 부딪친다. 진보정당 최초로 5선에 도전했던 심상정 의원의 총선 패배와 정계 은퇴 선언. 정의당은 녹색당과 합당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으나 단 1석도 얻지 못한 채 20년 만에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거대 양당의 거센 대립 구도를 감안한다 해도 충격적인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녹색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당의 몰락은 이번 총선 결과가 만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진보당이 지역구 1석을 획득한 것이 전부다. 얼마 전 타계한 홍세화 선생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념과 진영의 오른쪽은 물론이고 민주 세력 나아가 진보 좌파에 대해서도 엄정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의 생애가 겹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관용) 개념을 전했던 작가이자 언론인·사회운동가로서의 삶 자체가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여정이었다. 그는 나이·경력·권위 따위를 내세우지 않았고 학연·지연에서 자유로웠다. 2011년 진보신당 당대표에 출마할 때 진보정당을 상징하는 노회찬 의원 등 핵심 인물들의 탈당을 매섭게 질타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에게 똘레랑스는 무조건적 관용을 뜻하지 않는다. 똘레랑스 안에 기본적으로 비판적 정신이 내재돼 있다는 의미다. 살아생전 그가 귀히 여긴 또 하나의 덕목은 ‘실천’이다. 무수한 강연과 대화에서 그는 설파했다. “행동으로 증명되지 못한 도덕적 우월감은 위선이자 도덕의 개념을 타락시키는 죄악이다.” 입으로는 진보를 말하면서 소유와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586 세대’의 타락을 아프게 꼬집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이성과 계몽의 힘을 신뢰하면서도 이론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몸으로 직접 실행에 옮기는 실천가. 이게 그의 진면목이었다.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마지막 남긴 한 마디는 ‘겸허함’이었다고 한다. 냉철한 비판도 중요하고 철저한 실천도 소중하지만,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은 겸손이어야 한다는 것.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세상을 헤아렸던 고인의 삶이 바로 그랬다. ‘오늘날 좌우 진영이 공히 겸손을 모르는 오만함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면 그의 삶과 죽음이 온통 그런 경종으로 들린다. 대한민국의 진보정치가 소멸의 위기에 내몰렸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파다하다. 거대 양당의 완고한 대립 구도라는 외적 요인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구현해 내지 못한 내부적 요인도 크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가치를 의제로 만들어내야 하는 진보정치의 소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노조 바깥의 영세 기업 노동자들이 있고,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계층이 존재한다. 진보정당이 있어야 할 곳은 이런 자리다. 보다 낮은 곳에서 공동체의 그늘과 약자들의 아픔을 챙겨야 한다. 국회 의석을 못 얻었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건 잘못된 시각이다. 특정 계층과 이슈를 대변하는 정책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은 흔들림 없이 타진돼야 한다. 지금 거대 양당의 극단적 대립으로 인한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고착화하는 양당 독점 구도를 깨고 다양성이 대변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의 길은 다시 열려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통찰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생전에 홍세화 선생도 곧잘 언급했던 말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김은영의 문화시선] '옥토버 부산…'이 뭐길래
오는 10월 개최 예정인 부산형 융복합 전시컨벤션 스페셜 위크 ‘옥토버 부산페스티벌’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가칭이지만 ‘옥토버 부산페스티벌’이라고 해서 맥주 축제인 줄 알았다” “메가 이벤트 개념으로 보면 취지가 나쁜 것 같진 않다” “안 그래도 부산은 10월에 축제가 많은데 숙박·교통난이 벌써 걱정이다” 등이다. 부산시는 이번 행사를 치르기 위한 공동 주관사로 L컨벤션을 지난달 22일 결정, 고시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전시컨벤션 통합 운영 지원 예산은 최대 5억 원이다. 통합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콘퍼런스 개최, 홍보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매년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개최되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이 유력 모델이라고 한다. 시 담당 부서 관계자와 정무 진용, 시 출자출연기관 고위급 인사들은 지난 3월 SXSW 단체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SXSW는 음악과 영화 페스티벌, 콘퍼런스, 인터랙티브, 전시회 등이 함께 열리는 종합 예술 축제다. SXSW를 다녀온 A 씨는 “SXSW 참가자가 ‘내돈내산’ 유형이라면, 우리는 델리게이트 대부분을 초청하는 상황이고, 오스틴이 반경 2㎞ 남짓 구간에서 모든 행사를 치르는데 우리는 벡스코, 영화의전당, 해운대, 부산문화회관, 삼락공원으로 흩어져 있어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이 정한 통합 대상은 △플라이(FLY) 아시아창업엑스포(9월 30일~10월 2일) △부산디자인페스티벌(9월 30일~10월 2일) △부산월드크리에이티브페스티벌(10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10월 2~11일) △데이터 글로벌 해커톤(10월 4~6일)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10월 4~8일) △국제록페스티벌(10월 4~5일) △국제음식박람회&마리나셰프챌린지(10월 4~6일) △수제맥주페스티벌(10월 5~6일) 등이다. 이 밖에 부산소공연장연합회가 주관하는 ‘2024부산원먼스페스티벌’도 시책에 동참하는 의미로 7월에 이어 10월 개최를 확정했다. 그런데 문화예술계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불만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월엔 민간 공연 자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숙박, 교통에 이어 공연장 수급이 걱정돼서다. 록페스티벌 팬들 커뮤니티에선 “BIFF 기간과 겹친 지난해도 숙박이 골치였는데 올해는 경전철을 이용해 김해 쪽에 숙소를 잡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통합 브랜드 전략도 좋고, 도시 홍보도 좋은데, 이미 잘하고 있는 행사를 한데 모아서 그럴듯하게 포장만 하는 일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일단 첫해 성과를 보고 후속을 논의하겠지만, 시너지만큼이나 개별 콘텐츠가 가진 정체성도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
[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봄, 꽃, 두드러기
한 달 전부터 이마 양쪽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맞다. 꽃가루, 알레르기, 두드러기. 봄이면 매년 반복되는 일임에도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 눈을 뿌려놓은 듯 환상적인 벚꽃길, 그리고 개나리·진달래에 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철쭉·이팝나무 꽃길, 그 덕분에 아무런 이유 없이 한 달 내내 출근길이 행복해진다. 꽃 피는 이 봄이 마치 올해의 시작인 듯, 1월 1일에도 무덤덤했던 마음이 한 해의 희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뭐라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 그러나 그러기도 잠시, 두드러기 올라온 곳이 가려워 긁다가 이내 피가 맺힌다. 미적 감각이 남달랐던 내 어머니는 집에 항상 화초를 키우고 멋진 꽃꽂이를 해 두고, 특별한 때에는 늘 꽃다발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장미, 튤립, 백합, 그런 꽃들이 내겐 조금 징그럽게 보였다. 다들 꽃이 아름답다고 좋아하는데 내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대학생 시절,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원예학과 친구는 꽃이 식물의 생식기니까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과하게 화려한 색깔과 형태가 내겐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이렇게 꽃은 모순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미와 순수’ 혹은 ‘죽음과 허무’ 등 상징 꽃의 양면성은 예술 작품 소재 되기도 삶과 죽음 등 다층적 의미 사색할 기회 미술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꽃이다. 그려진 꽃은 현실의 꽃과 달리 알레르기, 공포심을 유발할 일도 없으니 내게 안전하다고 해야 할까. 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꽃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고 흥미롭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 기독교 종교화에서 꽃은 성서와 연관하여 각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리스와 백합은 마리아와 함께 자주 그려지는데, 백합은 순수를 상징하고 아이리스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고통과 슬픔을 뜻한다. 데이지꽃은 어린 예수의 순수함, 민들레는 그리스도의 고난, 아네모네는 슬픔과 죽음을 상징한다. 한국화에서도 꽃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극락세계와 다산을 상징하는 연꽃, 장수를 상징하는 국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 등과 같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서양 고전 회화에서 오랫동안 어떤 상징적 의미를 담은 부수적 소재로 등장해 오던 꽃이 작품의 본격적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네덜란드 정물화에서였다. ‘성상 금지’의 원칙에 따라 종교화를 선호하지 않는 신교도였던 네덜란드인들은 정물화를 선호했고, 정물들에 종교적 상징들을 담았다. 그런데 네덜란드 정물화에 반짝이는 은식기, 유리잔, 음식, 해골 등과 함께 등장하는 꽃은 인생무상(Vanitas) 즉,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경고를 담고 있다. 화려한 꽃, 반짝이는 값비싼 식기들은 언젠가 사라질 존재들로서 인생의 덧없음, 시간의 무상함,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을 상징한다. 거대하게 확대된 백합이나 칸나꽃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꽃 그림을 그린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도 있다. 그녀의 꽃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중요한 특징이 강조되면서 형태가 단순화된 추상의 특징,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꽃은 생명의 신비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많은 평론가들은 여성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페미니즘 예술을 주도했던 오키프의 꽃을 여성의 생식기와 연관시키기도 했다. 오키프가 회화로 거대한 꽃을 표현했다면, 한국의 최정화(1961~) 작가는 플라스틱 소재의 거대한 꽃 조각을 야외에 설치하여 주변을 이색적인 풍경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지속적으로 꽃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그의 꽃은 생과 사의 순환과 그것의 어김없는 이치를 인간이 거스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하게 죽음과 인생무상 등의 의미를 담은 꽃 작품을 선보인 것은 바로 앤디 워홀(1928∼1987)이다. 워홀의 ‘꽃(Flowers)’은 사진 잡지 〈모던 포토그래피〉에 실린 히비스커스꽃 사진을 편집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낸 것이다. 대량 인쇄가 가능한 판화 기술로 제작한 워홀의 꽃은 밝고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그 안에는 어떤 존재든 언젠가 시들고 죽는다는 무상함의 정서가 담겨 있다. 1964년 첫선을 보인 꽃 시리즈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워홀의 주요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4년 후 워홀이 총에 맞고 난 뒤에는 이전 같은 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작품에는 점차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등장했다. 지금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 방문하면 워홀의 꽃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흘러가는 만개(滿開)의 계절, 아름다움과 인생무상, 생과 사의 양면적인 의미를 미술 작품을 통해 사색해 보시기를 권한다.
[공감] 늙은 댄서
나는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고, 나이 많은 여자는 옆 소파에 앉았다. 나는 이 여자와의 대화에서, 이 여자의 손녀를 이 여자에게 보호감호위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를 찾아내어야만 했다. 이 늙은 여자의 손녀는, 환각물질이 든 본드를 흡입하고, 또래의 남학생이 훔쳐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에 동승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이 고목 같이 늙은 여자가 구속된 소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늙은 여자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담배를 낀 손이 파르르 떨고 있었는데, 바짝 마른 손가락 끝의 손톱에는 엷은 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고, 윤기 없이 마른 머리카락에는 바랜 갈색 염색이 묻어 있었다. 길게 그려진 눈썹 밑에는 크고, 어둡고, 깊은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움푹 패인 볼과, 깊은 우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처럼 깊게 느껴지는 눈빛 때문에, 마치 영원의 세상을 바라보는 악령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댄서였어요….” 늙은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어느 봄날 봄바람에 실리어 도회로 흘러들었지요. 그때 누구는 공장으로, 누구는 술을 따르는 술집으로 갔지요. 그런데 나는 고운 음악이 흐르고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무도장이 좋았어요. 그래서 댄서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춤추는 호스티스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춤을 좋아하는 댄서였어요. 처음엔 멋모르고 춤을 추었지만, 나중엔 너무 외로웠어요. 매일 밤 남자들을 바꾸어 가며 춤을 추었지만, 그럴수록 댄서들은 더 외로워지지요. 환락(歡樂)은 화려한 껍데기만 사랑할 뿐 아픈 속살은 모르는 체하거든요. 진정 필요한 것은 아픈 속살을 만져 주는 사람인데….” “서른 살 때쯤인가, 몸이 아파 혼자 유명한 사찰이 있는 마을 여관에서 요양할 때, 내 큰 눈을 좋아하는, 몇 살 위로 보이는 남자를 만났지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랑을 했어요. 내일 같은 것은 없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댄서에게 무슨 심장(深長)한 내일 같은 것이 있겠어요? 그때 나는, 천대받는 내 직업이나 짧은 가방끈, 출생이나 집안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이란 것을 했어요. 마치 미지의 나라 여왕처럼요! 내일이 없으면 사람이 그렇게 무조건적이 되고,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그 남자에게 처음으로 몸을 허락한 장소도 기억합니다. 헤어지고 난 뒤 임신 사실을 알았지요. 댄서가 임신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렇지만 나는 아이를 낳아 키웠어요, 왜 그랬냐고요? 아무 조건 없이 살면, 내일이 없이 살면, 그러면 모든 생명이 환희(歡喜)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거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었지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사는 것이 이 모양이겠지요.” “아비도 없이 댄서가 키운 자식은 저 손녀만 남기고 죽었는데, 이 어미를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저주하면서 그 짧은 일생을 살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후회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사람이 받은 생명을 사랑하고, 내일 같은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면, 껍데기 같은 것들에는 연연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삶이 있을까요? 보세요! 세상 전부가 화려한 생명으로 가득한데,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그런 것을 못 봐요!” “이 늙은 여자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 아이는 불쌍하지요. 어미조차 가버리고 없으니…. 소년원에서 생명의 환희 같은 걸 가르칠까요? 나는 그런 걸 가르칠 겁니다. 그 아이는…, 내 유골을 내가 처음 몸을 허락한 그 한적한 개울가에 뿌려야 할 아이거든요.” 나는 난감했다. 이 종달새처럼 방종해 보이는 늙은 여자에게 그 손녀의 보호감호를 위탁해야 한다고, 법원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이우환
문화적으로 역량이 있는 대도시 미술관은 한두 개로는 역할을 다하기 어려워 분담한다. 장르로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기로 나뉜다. 프랑스 파리의 주요 미술관이 그러하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1848년을 기점으로, 또 다른 퐁피두 미술관은 1914년을 기점으로 오르세 미술관과 시대를 구분해서 전시된다. 독일 베를린도 마찬가지이다.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과 구 국립미술관은 시대별로 나뉘고,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세분된다. 함부르거 현대미술관(Hamburger Bhanhof)에서 반호프(Bahnhof 줄여서 Bhf.)는 기차역을 의미하는데,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884년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1906년 교통-건축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단장하였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본격적인 복원은 베를린 도시 탄생 750주년을 맞아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 1996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차역을 복원해서 전시장 외관도 내부도 독특하다. 열차 플랫폼이었던 큰 홀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여러 개의 전시관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을 찾았던 이유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이어진 이우환 선생의 전시가 있어서다.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다. 2010년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합작으로 일본 나오시마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고, 2015년에는 부산시립미술관 내 이우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상설 공간이 마련됐다. 2022년은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Lee Ufan Arles)이 열렸다. 그리고 세계 미술계의 중심이 된 도시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회고전은 선생의 경력에 정점을 찍는 중요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2000년까지는 독일에서 자주 전시했으니, 독일이 선생을 세계로 나가게 뒷받침한 셈이다. 함부르거 반호프 초청 특별 회고전은 이우환 창작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57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망라했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동풍, 조응, 관계항, 모놀로그 등 그의 작품은 사물이 배치된 공간과 나의 관계를 세워 주고, 이를 통해 세계를 열어 준다. 사물 그 자체보다는 전시된 사물이 외부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데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에도 많은 베를린 시민이 걸음 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전시 말미인 지난달 18~20일은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화제가 되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도시 베를린에서 음악과 미술, 우리 K예술이 활약하는 장면들에 가슴 뛰었던 시간이다.
[기고] 국내 최초 완전자동화 부두 개장의 의의
부산항만공사가 직접 개발하고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이 운영하는 신항 7부두(서컨 2-5단계)가 지난달 5일 개장했다. 2012년부터 이어진 장장 12년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지난해 10월 기반 시설이 준공된 이후 약 6개월간 시운전을 거쳐 국내 최초 완전자동화 부두로서 역사적 첫발을 내디뎠다. 완전자동화 부두는 컨테이너의 하역에서 장치장 이송까지 무인 자동화로 이루어지는 부두를 말하며, 자동화·정보화·지능화를 표방하는 스마트항만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완전자동화 부두는 기존 부두와 비교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경제적이다. 무인 작업으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작고 전기, 배터리 기반의 하역·이송장비 사용으로 친환경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건비, 동력비를 절감할 수 있어 경제성도 높다. 1993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ETC 터미널이 부분 자동화를 시작한 이래로 독일 함부르크항, 싱가포르 투아스항, 중국 상하이항·칭다오항 등이 이미 완전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와 비교할 때 부산항의 자동화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는 자동화 항만의 하역생산성에 대한 신뢰 문제, 투자비 증대, 일자리 상실 우려에 따른 하역근로자 반대 등에 기인했다. 이번에 개장한 신항 7부두 3선석도 애초 선석·장치 구간만 무인자동화하고 두 구간을 이어주는 이송구간은 유인장비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송구간에도 무인장비를 운영하고자 하는 DPCT(북항 신감만부두 운영사, 현 DGT)가 신항 7부두 운영사로 선정되면서, 2026년 신항 7부두 2개 잔여선석부터 적용할 예정이던 완전자동화 시스템을 2년여 앞당겨 도입하게 된 것이다. 당초 계획과 달리 완전자동화 부두 도입이 빨라지면서 각종 문제도 불거졌다. 기존 DPCT 근로자의 대량 실직을 우려한 항운노조의 강한 반대와 저항, 그리고 기존 유인장비로 설계된 이송구간에 대한 대대적인 설계·공정 변경을 해결해야 했다. 또한 국내 제작이나 운영 경험이 전무했던 무인이송장비(AGV)에 대한 기종 결정, 장비 간 연계 가동, 부대 설비 결정 등 넘어야 할 문제가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해당사자 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국내 최초 완전자동화 부두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신항 7부두는 국내 최초 완전자동화 부두 의미 외에도 기존 부두와 달리 내연기관 장비가 없는 100% 탄소중립 항만이라는 점, 국산 기술 중심의 항만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 이전까지는 외산 장비가 신항 주요 장비의 85% 이상을 차지했지만, 신항 7부두 개장 이후 국산화 비율이 32%까지 올랐다. 동시에 자동화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근로자의 일자리 상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사·정(항운노조, DGT, 부산항만공사)의 상호 협조와 양보, 조율을 통해 일자리 감소 없이 터미널을 개장하게 된 점 등도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 항만 근로자를 완전히 승계한 신항 7부두는 향후 구축될 스마트항만의 선진 사례가 될 전망이다. 신항 7부두의 완전자동화는 물류흐름의 최적화를 위한 스마트항만 도약의 첫 단계다. 이제는 완전자동화를 넘어 스마트항만의 완성을 위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해운, 항만, 내륙운송과 관련된 모든 물류망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상호 양방향 정보교환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가능한 자율형 항만을 조성해야 한다. 이번 완전자동화 부두 개장을 시작으로 진해신항까지 완성되는 2040년에는 부산항이 스마트항만의 완결체가 되길 기대한다. 국내 항만 스마트화를 선도할 것은 물론, 기존 동북아 허브항의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스마트항만으로서 입지를 다져갈 것이다. 세계 항만물류를 선도하는 항만으로 부상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될 것이다.
[데스크 칼럼] '실험실 고양이' 된 용산 참모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한다면서 독특한 ‘사고(思考) 실험’을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인 알베트 아인슈타인도 이 문제로 슈뢰딩거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당시에도 반향이 대단했다. 실험은 단순하다. △고양이 한 마리 △미량의 방사성 원소 △방사성이 붕괴되면 깨지는 독극물병을 동시에 밀폐된 금속상자에 넣어둔다. 방사선 원소의 양은 아주 적어서 1시간 동안에 붕괴할 확률과 붕괴하지 않을 확률이 각각 50%이다. 1시간이 지난 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현실에서라면 고양이의 상태는 죽었거나 아니면 살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죽은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상태’로 계산된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아 보여서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다음 날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이상 참모진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정책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 등이다. 그 후 20일이 지났는데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 새로 임명됐을 뿐, 나머지 인사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참모들에게 “사의 반려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표를 돌려받지 못했다면 해임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열심히 보좌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임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이렇게 해석했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을 계속 신뢰하면서도, 언제든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중의적’(重義的)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라고. 그럼으로써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또다른 전언으로는 윤 대통령이 “내 책상 안에 있으면 반려지, 굳이 반려해야 하느냐”고 말했다고도 한다. 사의를 밝혔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으니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유임을 언질받은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처지인 것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됐다고나 할까. 이들이 모두 ‘정무직’이기 때문에 행정 절차상의 사표 수리 또는 반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평소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위 참모들이 일괄 사의라는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국정 쇄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결론을 낼지 겉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어느 수석이 유임되고, 어느 참모가 그만두느냐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국정쇄신을 한다면서 고위직들이 모두 사의를 밝혔으면 그 인적개편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소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쇄신한다고 했으니 모조리 사표를 수리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결과를 공유할 때 대통령과 국민들의 진정한 소통이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며 사표를 반려하든지, 아니면 사람을 바꿔 분위기를 일신하든지 분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다. 대통령실은 사의를 표명한 참모들의 거취에는 입을 닫으면서 전임 비서실장의 퇴임식 모습은 조목조목 알렸다. 대변인실은 “대통령은 떠나는 비서실장을 청사 밖 차량까지 배웅했다. 비서실장이 타는 차량의 문을 직접 열고 닫아주며 차가 멀어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서면브리핑까지 했다. 고생한 참모를 마지막까지 배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따뜻한 마음이 국민들에게 아름답게 비쳐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는게 소통이다. 자랑하고 싶은 걸 떠벌리는 건 그냥 홍보다. 국민들이 진짜 알고 싶은 건 국정쇄신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는지, 쇄신의 일부분인 인적개편은 어떻게 매듭짓는지이다. 출입기자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는 것보다는 이런 궁금증 해소가 우선이다.
[논설위원의 시선] 한국 사회 중독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27일 만에 쓴 자전적 소설이 〈노름꾼〉이다. 도박중독자인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을 황폐화하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설 〈노름꾼〉에서는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눈앞에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도박이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이유가 눈앞의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중독될까? 인간은 쾌감을 느끼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쾌감을 맛본 인간의 뇌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중독이 시작된다. 인간이 느끼는 쾌락의 정도는 초콜릿(55%), 게임(75%), SNS(85%), 성관계(100%), 니코틴(150%), 코카인(225%), 필로폰(1000%) 순이며 단계가 높을수록 중독의 강도가 세진다. 도박과 마약 등의 중독을 피하는 방법은 애초부터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범람으로 이런 중독에 접근이 너무나 쉬운 현실이다. 노력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중독이 한국 사회를 물들이고 있다. 인간을 황폐화하는 중독의 폐해가 청소년까지 확대되는 점은 심각하다. 1. 집단 도박으로 부산교육청 진상 조사까지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온라인 도박 중독 청소년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도박을 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도박장을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도박이 가능해졌다. 국내에 도박 중독에 빠진 숫자만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해 9월 25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6개월간 ‘청소년 대상 사이버 도박 특별 단속’을 벌여 청소년 1035명을 검거했다. 연령별로는 고등학생이 798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228명, 초등학생도 2명 포함됐다. 최저 연령은 9세였다. 청소년들이 도박을 처음 경험하는 평균 나이는 11.3세로 집계되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청소년 대상 사이버 도박 서버를 운영한 중학생 등 114명을 붙잡아 이 중 도박 서버 운영자 20대 A 씨를 도박 공간 개설 혐의로 구속 송치하고, 도박 서버 운영 총책 중학생 B 군 등 1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중학생인 B군은 ‘바카라’와 ‘룰렛’ 등 21개의 도박게임을 개설한 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게임머니 충전 및 환전 명목으로 돈을 받아 도박 게임을 진행하고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생과 여중생 2명을 포함한 중·고등학생 등 총 98명의 청소년이 돈을 걸고 바카라와 룰렛 등의 도박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한 중학생은 도박 중독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집단으로 온라인 불법 도박인 스포츠 토토를 하면서 부산시교육청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도박 중독으로 상담받는 청소년도 매해 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부산·울산센터에서 지난해 진행한 청소년 도박 중독 상담은 450여 건으로 1년 전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도박 중독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부산지역 청소년도 2019년까지 연간 한 자릿수에 머물다 2022년에는 16명까지 늘어났다. 도박은 결국 돈과 관련되어 있다. 친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친구들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도박에 참여하게 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행위가 중독이 되고,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고리대금, 금품 갈취, 특수 협박 등 범죄로 이어진다. 학업, 가족 및 교우 관계 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게임적 요소의 강렬한 재미와 쾌감, 돈벌이 등이 도박에 중독되는 원인이다. 부산울산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김정은 센터장은 “친구가 하니깐 따라서 한다는 호기심에서 온라인 불법 도박에 입문하다가 점점 몰입돼 중간 관리자의 역할까지 맡는 등 과거 n번방처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태생적으로 온라인 미디어 세대인 청소년 문화도 이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에서 도박 정보 습득과 공유, 향유까지 부모나 교사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심의와 통제를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가볍게 규제를 넘어서면서 자기들만의 문화로 만들고 있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나만 억울하게 걸렸다’라고 생각하는 문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 도박을 끊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김 센터장은 “도박 중독에 빠진 학생 본인과 학부모, 전문가들의 인식에 큰 차이가 난다”면서 “학부모도 ‘우리 아이는 괜찮겠지’라는 안이함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행동과 통장 계좌 등을 유심히 살펴야 하며 불법 도박에 가담하거나 중독 증상이 보이면 법적인 처벌까지 가는 부분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 청소년 100명 중 2~3명 “마약 해봤다” 현대의 삶이 쉽고, 빠르고, 편리하게 얻는 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은 생략돼 버린다. 도박이 돈을 버는 과정보다 얼마 벌었느냐가 중요시되는 세태의 상징적인 단면이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와 외로움, 고독감에서 스스로 극복하기보다는 손쉽게 외적 약물에 의존해 인스턴트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마약 중독으로 이어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성인과 청소년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약류를 사용하는 이유로는 즐거움·쾌락 추구 등의 목적보단 우울과 스트레스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또한, 청소년 응답자 100명 중에서 2~3명은 “마약을 해봤다”고 답했다. 중독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약물은 쾌락을 극대화하는 데 그 효능이 있다. 약물에 의해 강하게 유발되는 기쁨은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없는 느낌이다. 한 번 맛 들이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마약은 재범률이 50%에 육박하고, 국내에서도 잠정적으로 1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될 정도이다.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김상진 상임이사는 “마약은 시작 한 번이 곧 중독의 길로 접어드는 길”이라고 경고한다. 어떤 환경에서 시작됐든 한 번의 즐거움으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김 상임이사는 “최근 마약 범죄에서 주요한 경향은 연령의 하향화”라면서 “조금이라도 일찍 예방 교육을 받아서 마약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제 ‘청소년 마약’까지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로 30대 이하 마약류 사범이 전체의 59.7%를 차지한다. 2012년 30대 이하 마약사범 비율은 35.5%였으며, 5년 후인 2017년은 42%로 6.3%포인트 증가한 반면, 최근 5년간은 18%포인트 증가하였다. 2022년 19세 이하 마약류사범은 전체 마약사범의 2.6%, 481명으로, 2012년 38명 대비 12배, 2017년 119명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20대 마약류 사범은 2000년 1658명에서 2023년 8368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10~20대 마약류 사범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성장기 청소년 마약류 범죄는 정신적·육체적·사회적 손실을 불러온다. 마약도 도박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흐름과 깊은 연관이 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중독학과 학과장인 홍성민 신부는 “중독은 쾌감의 보상이 빨리 나는 특징이 있다”면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은 기다리기보다는 편리하게 즉각적으로 쾌락을 얻는 것에 매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신부는 “중독에 빠지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삶 전체의 변화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면서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다른 데서 쾌감이나 혹은 만족감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래 걸리는 것은 중독되지 않습니다!” 중독 문제를 연구해 온 홍 신부의 작심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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