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대통령 파면… 분열·혼란 딛고 국가 위기 극복을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사상 두 번째로 탄핵되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하게 됐다. 어제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령의 위헌·위법성을 이유로 제기된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8인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인용해 파면을 선고했다. 계엄 선포 이후 122일,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직선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 중 쫓겨나는 건 국가적 비극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확인시킨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안팎의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하는 과제가 남겨졌다. 헌재의 선고 요지는 명쾌했다.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는데도 윤 대통령이 헌법상 요건을 어겨 불법으로 계엄을 선포해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인 국회가 제시한 탄핵소추 사유 5개가 모두 인용됐고,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이 있었다”는 데 재판관 전원이 동의했다. 헌법상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는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하기는커녕 헌법 위에 군림해 초법적인 일탈을 하는 경우 사법적 심사에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공화국의 원리가 확인된 것이다. 헌재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 측의 주장과 논리는 대부분 배척됐다. 12·3 계엄이 경고성·호소용이라거나 부정선거 탓이라는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고, 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려 국회의원을 끌어내려 했다거나 주요 정치인의 위치 추적을 시도한 의혹은 사실로 인정됐다. 내란죄 철회, 국회 일사부재의 위반을 따진 각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리 적용에 빈틈이 없는데다 전원 일치로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서 논란의 불씨는 원천 차단된 것으로 평가된다.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헌재 선고 직후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윤 전 대통령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냈다. 대국민 사과나 승복 의사를 굳이 밝히지 않던 과거 모습과 달라졌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광훈 목사가 주축인 자유통일당은 “부당한 결정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며 시민 불복종 투쟁을 예고했다. 윤 전 대통령과 여당은 헌재 선고 불복 세력과 단절해야 하고, 나아가 이들이 법치주의의 틀 속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야당도 대통령 파면 사태에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헌재는 선고문에서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회는 정부와의 관계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무력으로 국회를 침탈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사태를 그 지경으로 만든 데에 야당이 완전히 면책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 파면이 헌정사의 비극”이라며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야권도 대화와 타협이 있는 정치 복원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안팎으로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국정 리더십 공백이 초래됐다. 미국발 관세 폭탄의 직격탄이 국가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민생도 힘겹다. 지금 이 순간 경제와 민생의 위기보다 중요한 국가 현안은 없다.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내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 광장의 분열과 적대는 이제 끝내고 국민 통합의 시대를 열자. 대한민국 특유의 전화위복의 저력을 발휘할 때다.
[사설] 대선 국면 안정적 국정 운영 중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퇴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원수의 공백 상태를 뜻한다. 자칫 국정이 마비될 위험도 높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다음 정부의 원활한 출범을 위해 대선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 대행의 말처럼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에 돌입하는 만큼, 정부는 대선 전까지 혼란을 방지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은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 기간 여야 정치권과 국민이 찬반으로 갈려 격렬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탄핵 결정 이전과 이후의 시민 의식은 달라져야 한다. 불복은 또 다른 불복을 낳을 뿐이다. 정치권과 국민은 헌재의 결정에 냉정하고 겸허히 승복해야 한다. 다행히도 국민의힘은 헌재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이나 국민은 이제 대결과 갈등을 끝내야 한다. 한 대행은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치안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갈등 봉합과 대선 관리다. 한 대행의 책임이 막중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는 백척간두에 있다. 고환율은 지속되며 내수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미국의 25% 상호 관세에 직면했다. 안보 상황도 불안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 핵 동결 또는 군축 수준의 ‘스몰딜’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다. 정부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돼 위기 극복에 힘을 합쳐야 한다. 대선 국면을 맞이한 한국 사회는 이처럼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이 불확실성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호는 자칫 더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치권은 국가의 미래를 고려해 당리당략을 버리고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안정과 정부의 연속적인 국정 운영이다. 그래야 다음 정권이 잘 이어받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엄중한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사설] 국정 혼란·국론 분열 종지부 찍고 대한민국 새출발하자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역사의 무대 위에 섰다. 헌재는 오늘 오전 11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를 내린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한 지 111일 만이자 지난 2월 25일 최종변론이 마무리된 지 38일 만이다. 재판관 2명의 임기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 온갖 억측까지 난무하는 악조건을 뚫고 역사적 선고 시점에 이른 헌재는 ‘1987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고 평가하고 싶다. 향후 시대적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현행 헌법을 놓고 개헌 논의가 본격화한다면 헌재의 이번 선고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현 정권 수립 이후 현행 헌법의 한계를 온몸으로 겪어왔다. 다수의 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처럼 현행 헌법은 대통령 권력의 남용과 입법 권력의 남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쉬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행위와 국회 절대 다수 의석을 지닌 민주당의 줄탄핵은 현행 헌법이 가진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할 것이다. 미국의 관세전쟁 선포 등 세계 정세 급변에 따른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국정 혼란과 갈등을 심화하는 이 같은 헌법적 한계의 모든 짐이 이번 정권 들어 헌재의 어깨 위에 고스란히 얹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재 재판관 임명 하나를 놓고도 첨예한 대립을 일삼아 온 정치권의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럼에도 헌재는 묵묵히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추천과 임명을 맡은 헌법기관에 따라 나뉘는 재판관의 성향조차 헌법이 정해 놓은 테두리 안의 일이었기에 헌재의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헌재의 선고를 앞두고 벌어지는 최근의 모든 예단과 엄포, 협박 따위는 헌재를 향한 것이 아니라 헌재가 기대고 선 헌법을 향한 일탈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란죄’는 헌재를 향한 이 같은 행위에 더 합당하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이 같은 행위가 소위 진영을 이끄는 지도자급에서 행해지면서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선동으로 이어진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헌재의 선고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오늘은 대한민국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될 것이다. 선동과 폭력을 잠재우고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헌재의 소중한 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대한민국의 견고한 시스템을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반면 헌재의 선고가 선동과 폭력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오늘은 대한민국 브랜드가 침몰하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 역사의 갈림길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토양 수분과 산불
기온이 오르면 지표면의 수분은 대기 중으로 날아간다. 증발한 수분을 머금은 구름은 어느 순간 눈과 비를 뿌려 메마른 대지와 뭇 생명을 적신다. 자연은 그렇게 돌고 돈다. 이런 섭리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은 자연의 경이로운 순환 체계도 망가뜨린 것으로 나타났다.서기원 서울대 교수와 류동열 호주 멜버른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지난 25년간 이어진 온난화로 지구 토양 수분이 급감했으며,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지표면 수분함량이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00~2002년 지구 전체 토양에서 1614Gt의 물이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이는 2002∼2006년 그린란드 빙하 손실량인 900Gt보다 1.8배 많다. 2002~2016년엔 1009Gt의 물이 유출됐고, 2021년까지도 토양 수분함량은 회복되지 못했다고 한다. 요지는 지표면에서 대기 중으로 증발한 수증기량이 급증, 강수량이 늘어도 토양 수분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자연의 섭리를 깬 직접적 원인은 무엇일까. 연구팀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온난화로 대기와 해양의 온도가 상승하고 강수량과 증발 수증기 총량마저 변화시켜 토양 수분을 감소시켰다는 설명이다. 결국 땅속이 건조해졌다는 의미다.인간이 토양 수분 감소를 자세하게 감지할 순 없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은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토양이 건조해지면 나무와 낙엽의 수분 함량이 크게 줄고 대기 중 습도도 낮아져 산불이 확산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급변한 토양 수분 환경 때문에 미국 등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영남권 ‘괴물 산불’ 때문에 31명이 숨지고 피해 면적도 4만 8000여ha에 달한다. 이번 산불은 동시다발적이면서도 초대형이었다는 점에서 이전 산불과 확연히 달랐다.이번 산불 원인이 입산자 등의 실화라는 점과 당국의 허술한 대처가 피해를 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지구온난화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우리의 안일함일 것이다. 토양이 건조해지면서 이런 재난 상황은 예견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온난화에 따른 부작용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을 위한 한층 적극적 노력이 없다면 초대형 산불, 가뭄 등은 일상화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망가진 자연의 순환 체계를 되살려야 한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대기자
강병균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리더십 부재 속 날아든 관세 청구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탄핵의 강’을 건너야 했던 국민들은 동시에 미국발 무역 질서 재편을 불안한 심경으로 지켜봐야 했다. 리더십 공백이 커진 사이 정부가 어쩔 줄 모른 채 허둥대자, 기업들은 저마다 도생을 꾀해야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필품과 서비스 가격도 뛰기 시작하면서 서민 지갑도 닫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혔다고는 하나, 한국 경제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수출’이 ‘국가 생존’과 동의어인 한국에 미국이 던진 관세 폭탄의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둔 중국이나 침체 속 30년을 버틴 ‘저력’을 지닌 일본과는 압박의 강도 자체가 다르다. 몇몇 장면만 추려도 정부와 기업 모두에서 대응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법이나 자국법 조문 등에 전혀 개의치 않고 속전속결로 관세 부과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위기는 아니지만 협상 상대국에 대응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태세인데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경제부처가 머리를 맞댔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실무진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와 물밑 협상을 벌였다고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과 지난달, 두 차례 방미길에 올랐다. 하지만 탄핵 사태로 대통령 직무 정지가 된 탓에 정부는 트럼프와 전화통화 한 통 못한 채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최종적으로 지난 3일(한국 시간) 미국 정부는 한국에 25%라는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율을 매겼다. 앞으로 미국과의 개별 협상에 따라 결과는 바뀔 수 있다고 해도 정부의 ‘물밑 노력’은 얻어낸 것이 없다는 평가가 따른다. 정부 인사들은 “계엄으로 인한 리더십 공백” 탓을 했다. 기업들도 허둥대긴 마찬가지였다. 현대자동차는 선제적으로 미국 현지에 31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선 회장을 백악관까지 불러 ‘모범 사례’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한동안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가는 현대차 차량들은 25% 관세를 물고 미국차와 경쟁해야 한다. 미국에 모든 협조를 한 현대차가 미국 측으로부터 모종의 ‘감사 표시’를 받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상당한 관세 부과가 확정적인 반도체 부문 대표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시기 중국과 일본에 다가섰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곽노정SK하이닉스 사장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BMW, 메르세데스-벤츠, 퀄컴, 페덱스, 화이자 등 글로벌 CEO들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 자리였다. 시 주석이 “중국은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외국 기업인들에게 이상적이고 안전하며 유망한 투자처”라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두 기업은 미중 양국 눈치를 부지런히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대기업의 경우 ‘관세 25%를 무느냐’ ‘미국의 높은 생산 비용을 감당하느냐’ 사이에 선택지라도 있다. 대기업에 기대는 하청 중소·중견기업 처지는 더 암울하다. 해외 생산기지를 갖출 여력이 없어 기업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곳이 대다수다. 낮은 인건비를 찾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국에 있느니만 못하게 됐다. 가계 부문에는 머지 않아 인플레이션 폭탄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소비 여력마저 줄었는데, 물가상승 압박이 더해지는 형국이다. 조기 대선으로 두 달 후 새로운 리더십이 탄생하지만 그동안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정을 책임지는 불완전한 혼란기를 보내야 한다. 준비 안 된 대선이다 보니 새 대통령은 인선, 정부 조직 개편, 국가 전략 수립 등을 마치고 완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늦어지면 올해 하반기까지 우리 경제는 외부 위기에 노출된 채로 견디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관세 전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횡포’만이 아닌, 장기간 세계 무역을 이끌 새로운 질서가 정해지는 주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최강국 미국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첫발을 뗐지만 각국은 앞으로 자국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보호무역 전쟁에 속속 가세할 것이 틀림없다. 대응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미국의 ‘품’에 안길 자세고, 중국은 ‘마이 웨이’ 외에 방법이 없다. 한국 경제는 막대한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고 그에 따른 경제 침체를 감내해야 할 처지다. 서두른다고 능사는 아니니 차분히, 무엇보다 세심하게 우리의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마지막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차기 리더십이 들어서기까지 두 달간 온 지혜와 역량을 모아 가능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 경제 전쟁을 수행할 역량을 지닌 지도자를 뽑는 국민 지혜가 더 중요해진 시기다.
[오션 뷰] 해양에 부는 거센 AI 바람
1950년대부터 태동되었으니, 인공지능(AI)의 나이는 70대 중반이다. 하지만 AI는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이야기됐다. 그것도 실현 불가능한 기술 정도로. 그러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2016년 한 사건에서였다. 당시 세계 최정상급 프로기사 이세돌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1승 4패. 예상과 달랐다. 바둑을 잘 알지 못하지만, 승패를 흥미롭게 지켜봤던 내겐 이세돌의 패배와 AI 위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알파고 신드롬이 일었고, AI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젠 AI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게 됐다. 성능과 적용 범위가 대폭 확장된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기술이 연일 세상을 놀라게 한다. 우리 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은 AI. AI 위력은 해양에서도 거세게 일고 있다. 공간적, 기술적 한계로 인해 해양에서 해 왔던 우리들의 접근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작업 의존이 많았고, 경험과 직관을 중요시했다. 육지에 발을 디디고 사는 인간에게 해양은 여전히 모험과 도전, 기회의 영역이다. 특히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도 미지의 영역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AI 시대엔 기존 방식이나 기술, 시스템을 고집하긴 힘들게 됐다. 시대적 변화 물결을 타지 못하면 개인이나 기업이든 국가든 ‘물 먹기’ 딱 좋은 상황이다. 해양에서 AI 활용은 기존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양 분야에서 AI 활용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인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도 해 볼 만하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최근 내놓은 ‘해양수산 분야 AI 이슈와 과제’에 해양 분야 AI 기술 도입 사례가 몇 가지 언급된다. 부산시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포어시스는 AI 기반 하천 부유 쓰레기 통합 수거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국립해양조사원은 AI 학습 모델을 통해 해양환경 정보(수온, 염분, 해상풍, 파랑, 해수유동 등)의 시공간 단절·결절 없는 연속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외부 요건에 영향을 크게 받는 수산 분야 역시 AI가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스마트 양식, 스마트 어업 관리, 원산지 판별 등이 좋은 예이다. 해운 분야는 선박 운항 효율성을 높이고, 유지 보수 시스템에 AI가 탑재된다. 세계 2위 글로벌 환적항만인 부산항의 AI 활용은 늘고 있다. 현재는 자동화 중심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이 이뤄지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AI 기반 지능화 컨테이너 터미널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디 이뿐이랴. 해양산업의 전통 분야인 해양과 수산, 항만 외에도 부산이 강점 가질 수 있는 분야는 의료·바이오산업이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 해양 생명 자원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미래 먹거리’를 개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준다. AI 개발과 활용 전략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이다. 동시에 지역 산업에도 필수적이다. 부산은 지난 수십 년간 항만과 수산, 조선 등 해양산업이 지역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최근 4차 산업혁명 격변 속 고민에 빠졌다. 혁신을 통한 첨단 기술 확보라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부산시와 해양 연구기관 등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부산은 세계적 수준의 해양 인프라를 보유한 도시이다. 영도구 ‘동삼혁신지구 해양클러스터’와 남구 ‘부산항 해양산업클러스터’가 대표적이다.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구역에도 해양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수십 개의 ‘해양 싱크탱크’가 이렇게 밀집된 지역은 드물다. AI 기반 생태계 확장에 나선 부산시는 해양 연구기관과 정책 방향을 함께 토론하고 협력 분야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시와 부산일보사가 최근 개최한 ‘글로벌 해양수산 비전 세미나’에서 흥미로운 제안들이 관심을 모았다. △정부·지자체·산학연 거버넌스 구축 △해양 수도 정책 담당 전담 부서 신설 △범 클러스터 혁신 인큐베이터 설립 △‘해양 AI 대학원’ 설립 등이다. 부산이 보유한 해양수산 분야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됐다. 부산시의 행정적 뒷받침과 투자, 해양기관과 산업체의 유기적인 연결이 해양산업의 AI 기반 첨단산업화를 앞당길 것이다.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해양산업 AI 선도 도시가 되길 기대한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고물가 ‘노 마크 찬스’ 때문?
물가가 끝없이 치솟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과 원재료 비용 상승 등의 여파로 최근 가공식품을 비롯한 여러 제품의 가격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올해 가격을 인상했거나 인상 예정인 식품 및 외식업체는 40개가 넘는다. 커피, 빵, 라면, 햄버거 등 서민들이 자주 소비하는 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물가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른바 ‘물가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속에서 정부가 물가 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사이, 기업들이 이런 ‘노 마크 찬스’(no mark chance)를 활용해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어떤 게 올랐나? 가격 인상은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시기와 관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안 오르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농심은 지난달 17일부터 신라면을 1000원으로 올리는 등 14개 라면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오뚜기도 지난 1일부터 27개 라면 중 16개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5% 인상했다. 빵, 과자, 빙과류 등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는 2년 만에 빵 96종과 케이크 25종의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으며 뚜레쥬르 역시 이달부터 빵과 케이크 110여 종의 가격을 평균 5% 올렸다. 매일유업도 이달부터 컵커피, 치즈, 두유 등 51종의 제품 가격을 평균 8.9% 인상했다. 주요 아이스크림 역시 가격표를 높여 붙였다. 최근에는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햄버거, 맥주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커피 가격도 예외가 아니다. 스타벅스가 1월 원두 가격과 환율 급등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하자 다른 커피 브랜드들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이와 같은 가격 인상 흐름은 정부의 공식 통계에도 반영될 정도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1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1~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2.1%)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김치 15.3%, 커피 8.3%, 빵 6.3% 상승하며 가공식품 물가 전체를 끌어올렸다. 지난해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1%대에 그쳤다. ■물가 상승 이유는 물가 상승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이 원재료 비용 상승, 원·달러 환율 급등,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한 비용 증가만으로 대규모 가격 인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실제로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올릴 때 그 근거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탄핵 정국이라는 혼란 속에서 일부 기업들이 이를 기회로 가격 인상을 단행한 측면도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몇 달간 정부가 물가 관리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는 사이, 기업들이 소비자의 부담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 중순 주요 식품업체들과 간담회를 열어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업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 정부의 ‘호소’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가격 인상이 경쟁보다는 가격 담합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 3.6%라는 숫자는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단순히 통계상 보고된 숫자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식품 가격 상승은 가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내수 경기의 부진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지금이라도 물가 상승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소비 위축과 경기 둔화 현상은 불 보듯 뻔하단 얘기다. ■저소득층 부담 가중 문제는 이러한 가격 인상이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서민이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이 가속화되면서 그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특히 저소득층은 물가 상승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다. 500원, 1000원의 차이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는 필수 소비재인 식료품비 상승이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소득분위별 체감물가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23.2%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위 20%인 소득 5분위(20.6%)보다 2.6%포인트 높은 수치다. 소득이 낮을수록 물가 상승의 압박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저소득층의 부담을 가중하는 주요 원인은 식료품비와 난방비 등 생존과 직결된 필수 비용이다. 저소득층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식비와 주거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득 1분위 가구는 식료품·비주류음료(20.9%), 주택·수도·광열(20%), 보건(12.6%) 순으로 지출 비중이 높았지만, 소득 5분위 가구는 교통(13%), 교육(10.5%), 오락·문화(9%) 순으로 지출이 많았다. 이처럼 식료품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에게 치명타가 된다는 얘기다. 고물가가 무서운 이유는 빈곤층을 비롯한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물가가 급등하면 생계비는 늘어나지만, 소비 여력은 줄어들어 사실상 실질소득이 감소하게 된다. 고물가를 ‘소리 없는 도둑’이라 부르는 이유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지역 농가도 큰 피해를 보면서 향후 농산물 수급 불안정에 따른 가격 인상 가능성도 커졌다. 게다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외식 물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다. 자칫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대로 두면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지금, 정부가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탄핵 정국보다 더 큰 경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고물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은 결국 행정이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소리 없는 도둑’이 내수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정부는 기업들의 가격 인상에 대해 단순한 요청이나 협조·당부를 넘어 보다 강력한 주문과 함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과도한 가격 인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도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가격 인상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그 근거를 명확히 공개하고 불필요한 가격 인상은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제대로 된 물가 안정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노 마크 찬스'를 악용한 과도한 가격 인상이 서민들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지금도 벼랑 끝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다. 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날뛰는 물가부터 잡아야 할 때다.
[김상훈의 포커스온] 지역문화사를 축적하자
“부산 문화예술계의 사표로 기릴 만한 예술인을 선정해 그들이 남긴 방대한 예술 작업의 결과를 집대성하고 문화사적 위치를 재정립하겠다.” 부산문화재단이 2020년 7월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사업’인 ‘부산의 삶, 예술로 기억하다’를 시작하면서 밝힌 취지다. 아카이빙은 ‘영구적인 가치를 위해 보존하는 인간 활동의 기록물’(아카이브)을 수집, 평가, 선별, 분류, 정리, 기술, 보존하는 과정을 말한다. 재단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사업’을 통해 해마다 작고 예술인과 원로 예술인을 2~3명씩 선정해 순차적으로 집중 조명해 왔다. 윤정규 소설가, 허영길 연극 연출가, 황무봉 전통 무용가, 이상근 작곡가, 김석출 동해안별신굿 보유자, 송혜수 화가, 최민식 사진가, 이규정 소설가, 오태균 지휘자, 김종식 화가, 김한순 민속예술인 등 작고 예술인과 제갈삼 피아니스트, 허만하 시인, 조숙자 무용가 등 원로 예술인이 대상이었다. 당시 부산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예술인 상당수가 포함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아카이빙 연구팀들은 해당 예술인의 저서, 악보, 공연 팸플릿, 언론보도 기사, 사진, 동영상, 평론, 증언 자료 등을 폭넓게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선정된 예술인들의 생애와 작품세계 등을 담은 책자가 연차적으로 나왔다. 재단은 시민이나 연구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전자아카이빙을 통해 전자책(e-book) 형태로도 등록했다. 또 연구 결과물은 전시, 학술 세미나, 축제 형태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이러한 아카이빙의 결과물은 부산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의 치열한 예술혼을 복원하고 지역의 역사·사회·문화 연구의 기초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사를 발전적으로 계승·축적할 수 있다. 재단은 올해부터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관련 2차 사업에 착수해 앞으로 5년간 예술인 10여 명에 대한 조명 작업에 나선다. 이번에도 예술인 선정 기준에 대한 객관성 확보가 중요하다. 지역 문화사에서 빼어난 업적을 남기고, 지역 문화예술의 고유성과 문화적 가치를 드높인 예술인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재단은 책자 형태보다는 예술인 영상 채록을 통해 생애와 작품 세계 등을 담아 재단 유튜브 채널인 ‘컬쳐튜브’에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부산 지역 박물관과 미술관 등 일부 문화기관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기록물의 활용과 확산을 위해 아카이빙 사업을 펼치고 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유물 수집 외에도 기록물을 활용해 전시, 도록 발간,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아카이브 홈페이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도 소장품에 대한 해제, 도록 발간, 디지털화 작업 등을 통해 체계적인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한다. 부산문화재단도 2009년 출범 초기부터 온라인 아카이브를 운영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각 기관이 수행하는 문화예술 아카이빙 성과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열람하거나 확인할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 서울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이 국립국악원, 국립극단, 국립무형유산원, 국립극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공연예술 관련 국립기관과 연계해 아카이빙 결과를 통합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도 여러 기관의 아카이빙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가공해 제공하는 ‘온라인 아카이빙 종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문화예술 아카이빙 관련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문학 장르의 경우, 2028년 개관 예정인 부산문학관이 부산문학사의 체계적 아카이빙을 수행할 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공연예술 등 타 장르는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 관리, 전시,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가칭 ‘부산예술기록관’을 설립해 지역 예술 사료의 유실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부산예술기록관이 지역 예술 자원들의 체계적인 수립, 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전시, 교육,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관별로 추진하는 아카이빙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용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문화예술 아카이빙 총괄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대구시의 경우, 문화체육관광국 문화유산과에 문화예술기록팀을 설치해 문화예술 아카이빙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은 비용 대비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사업은 아니다. 꾸준하고 묵묵히 실행해야 하는 사업이다. 지역 문화예술 자원 기록 활성화를 통해 지역문화사를 복원하고 축적한다는 점에서 이 사업은 지속돼야 한다.
[김은영의 문화시선] 지역에도 국립 예술단체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6일 중장기 문화 비전인 ‘문화한국 2035’을 공개했다. 핵심 전략으로 ‘지역 문화 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첫 번째 추진 과제로 ‘국립 예술단체·기관의 지역 이전 및 협력 모델 재구축’을 제시했다. 문화예술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한 것이어서 기대가 크다. 이전에도 국립 예술단체를 지역으로 이전하자는 이야기는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의견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기득권의 반발이 거셌다. 예술단체 지역 이전이 단체 자체를 와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단원들이 오랫동안 서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든 기반이 서울 중심이라 당장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광주 이전을 발표한 서울예술단 외에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전용극장도 없이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에 입주해 사무실만 운영한다. 심지어 대관이 안 될 때도 있다. 그 외 2개 국립 예술단체는 국립정동극장과 국립극단이다. 그에 비해 지역엔 음악 전용홀, 오페라하우스 등 좋은 공연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반대급부로 양질의 콘텐츠가 고민이다. 국립 예술단체 역할은 국가 문화의 중추 역할을 하며, 예술의 수준을 높이고, 예술을 통한 사회적 공감과 소통을 끌어내는 데 있다. 그렇다고 꼭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인적자원 등 지역 여건이 열악한 것도 맞지만, 과도기를 거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을 보더라도 대표 예술단이 모두 수도에 있는 건 아니다. 프랑스는 1980년대 초 실질적으로 진행된 지방분권화 정책의 결과로 지방에 국립 문화기관이 속속 설립됐다. 리옹, 마르세유, 몽펠리에, 스트라스부르 등 지역 기반에서 성장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국립 예술단체가 상당하다. 연방제 국가 독일은 일찌감치 문화 중심을 분산했다. 베를린을 비롯,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뮌헨, 함부르크 등 각 도시가 독자적 예술 기관으로 성장했다. 이들 도시의 교향악단과 오페라하우스는 수준급이며, 제작극장 시스템도 활성화돼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최근 5년간 8개 국립 예술단체 공연 10건 중 8.6건은 서울에서 열렸다. 지역에도 사람이 산다. 지역에 사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역에서도 국립이란 최고 예술단체가 만드는 작품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 예술단체의 지역 이전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서 문화예술 생산의 근본을 재설계하는 전략이 되면 좋겠다. 부산시도 이런 기반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공감] 개미의 숙제
어릴 적에 오래된 기와집에 살았었다. 마당이 있고, 화초가 밀림처럼 우거진 정원도 있었다. 어린 내 눈으론 그렇게 보였었다. 밀림 속엔 개미가 많았다. 옆집 담벼락에 붙은 사철나무 아래엔 꽁무니가 길쭉한 개미가, 대청마루 앞의 천리향 나무 아래엔 엉덩이가 반짝이는 개미가 살았다. 그 외에도 모양이 조금씩 다른 개미가 저마다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흥거리가 없던 그 시절엔 개미가 만만한 구경거리였다. 개미는 제 덩치보다 큰 과자 조각을 옮기고, 하얀 알을 물고 줄지어 이사하기도 했다. 가끔은 전쟁도 벌였다. 나는 쪼그려 앉아 새카맣게 동원된 두 왕국의 전투를 구경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개미라는 곤충이 나름 친숙하다. 그들 왕국에 관해 알면 알수록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담흑부전나비’라는 나비가 있다. 이놈은 일본왕개미가 다니는 길목에 알을 놓는다. 길목이라 해봐야 진딧물이 많은 나무줄기다. 알다시피 개미는 진딧물이 내는 단물을 좋아한다. 담흑부전나비 알이 부화하고 애벌레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놈도 배에서 단물을 낸다. 우연히 애벌레와 마주친 일본왕개미는 이 달콤함에 흠뻑 빠진다. 적당히 즐기면 될 터인데 더 욕심을 부린다. 집안에 두고 언제든 단맛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애벌레를 집으로 물고 간다. 그런 개미가 한 둘이 아니다. 단맛에 중독된 일개미들은 자신의 애벌레처럼 그들을 돌봐준다. 이제 애벌레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개미 집안을 활보하며 고치와 알들을 잡아먹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개미는 담흑부전나비 애벌레에게 정성껏 영양분을 먹인다. 대신에 달콤한 분비물을 얻어먹는다. 결국, 개미 알들로 살을 찌운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우화를 준비한다. 더 극적인 사례도 있다. 가시개미는 독자적으로 왕국을 만들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일본왕개미 둥지로 침입한다. 그녀는 먼저 정찰 나온 일개미 하나를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일개미의 페로몬을 몸에 묻힌다. 감쪽같이 변장한 가시개미는 일본왕개미 집으로 침투하고, 이번엔 일본왕개미 여왕을 노린다. 기회를 노려 여왕을 덮친다. 목덜미를 물린 여왕개미는 서서히 죽어가고 그동안 페로몬을 복제한 가시개미는 드디어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한다. 일개미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익숙한 페로몬을 풍기는 새 여왕을 핥고 양분을 먹여준다. 한 계절이 지나, 일본왕개미 굴속엔 가시개미 일족으로 가득 찬다. 몇 남지 않은 일본왕개미 일개미는 노예처럼 가시개미의 애벌레를 돌본다. 모든 독립 생물은 기생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이로 인해 진화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각종 기생 생물은 차치하고, 분명 인간이지만 기생 생물의 삶을 답습하는 부류도 있다. 어찌 보면 숙명적 현상인지도 모른다. 인간도 독립적으로 양분을 얻지 못해, 남의 살과 땀을 섭취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보는 부류가 다수를 차지한다.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은 일본왕개미처럼 기생체에 점령당했어도 정작 본인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원하는 단물만 있으면 주변 상황엔 눈길을 두지 않는다. 냄새만 맡고도 자기편이라 믿어버리는 판단은 또 얼마나 위태로운가. 그렇기에 나 자신이 얼마나 편취당하는지, 혹은 일방적으로 얻어내고 있는지 모르고 오히려 기생체를 두둔하고 있을까 싶어 두려운 것이다. 누구를 탓하는 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기생 본능을 가진 이는 그에 관한 어떤 자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걸 자연의 섭리라 한다면, 기생 당하지 않기 위한 삶의 지혜 또한 섭리다. 본질을 보는 눈, 이것은 독립 생물의 영원한 숙제이다.
이제 대선 앞으로… 숨가쁜 60일 레이스 돌입
분담금 폭탄 시름 깊은 삼익비치 결국 99층 ‘특별건축구역’ 포기
“차등 전기요금, 전력 자립률 반영을” 부산·인천 포함 5개 시도 손잡았다
늘어난 분담금·공사비·공사기간… 조합원 마음 바꿨다
탄핵 정국에 막힌 부산 현안, 조기 대선이 골든타임 되나
박형준 부산시장 조기 대선 출마 막판 고심
불안에 떠는 산청군 "장마 다가오는데 나무는 다 타버렸고..."
‘장미 대선’에 6월 모의평가 일정도 바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