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내란죄 무기징역, 이제는 어두운 역사와 단절해야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비상계엄 선포 443일 만에 나온 이번 판결은 헌정 질서를 뒤흔든 국가적 위기에 대한 사법부의 단호한 응답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는 19일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곧바로 내란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 인정될 경우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를 사건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체포조 편성, 선관위 점거 시도 등을 폭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력은 없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행위가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국가 위기 상황을 내세운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서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논리라고 선을 그었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개시 권한 역시 인정하며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확인했다. 다만 장기 독재를 위한 사전 기획이라는 공소사실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른바 ‘노상원 수첩’의 신빙성도 부정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유·무죄 판단도 엇갈렸다. 법은 감정이 아닌 증거와 논리로 판단한다는 사법의 기본을 보여준 판결이었다. 12·3 사태는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전혀 없었음에도 대통령 개인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해 입법권과 사법권을 침탈하려 한 사건이다. 이는 국가 안전을 위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중대 범죄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정치권 또한 달라져야 한다. 계엄 사태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여야의 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민의힘은 뒤늦은 사과와 내부 갈등을 반복하며 과거와의 단절에 미온적이고, 위기 대응보다 진영 결집에 치우친 모습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전략과 권력기관 개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 변하지 않는 정치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우리는 12·12와 5·18을 거치며 전두환 등 내란의 주범들을 법정에 세워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한 경험이 있다. 이번 판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어떠한 권력도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으며 민주적 절차를 벗어난 국가 운영은 용인될 수 없다는 원칙의 재확인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누구도 내란을 획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권력 구조의 오만과 제도의 허점을 바로잡고 정치 문화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일이다. 오늘의 선고가 또 하나의 기록으로만 남을지, 아니면 어두운 역사와 단절하는 전환점이 될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설] 지선 앞두고도 반복되는 선거구 깜깜이, 근절 대책 없나
6월 3일 치르는 2026 지방선거가 3개월여밖에 안 남았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선거를 위한 기본적인 틀조차 여전히 불확실성에 놓였다. 민주당이 이달 중으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광역 행정통합 관련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기에 선거가 과연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어제까지 국회에서 개정했어야 하는 공직선거법이 끝내 개정되지 않아서다. 공직선거법 개정 무산은 전국의 모든 지방의회 선거구 자체가 법적 효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오늘부터 시작돼야 할 지방선거 관련 사무는 오리무중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공직선거법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지방의회 의원 선거구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 개정이 이뤄졌어야 했다. 인구 5만 명 미만 지자체에도 광역의원 1명을 보장해 농어촌 대표성을 기하려 한 기존 공직선거법이 ‘표의 등가성’을 침해했으므로 인구 편차를 줄여야 한다는 게 헌법 불합치 이유였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2026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 시작일인 오늘을 염두에 두고 어제(19일)로 법 개정 시한까지 지정했다. 하지만 해당 시한까지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기존 법에 따라 정해진 선거구는 무효가 됨으로써 예비후보 등록부터 극심한 혼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공직선거법이 기한 내 개정되지 못한 것은 주요 내용인 선거구 획정을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논의가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개특위는 지난달 13일 1차 전체회의를 열어 공식 가동에 들어갔으나 선관위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은 이후 활동 소식이 없다. 법 개정 무산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설 연휴 직전 선거구 현행 유지 잠정 결정을 한 상태일 뿐이다. 문제는 행정통합 등 선거구 획정에 미칠 수 있는 외부 변수와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당분간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을 전망이라는 데 있다. 오늘부터 등록하려는 예비후보는 속이 타고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바닥을 칠 노릇이다. 선거구는 대표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거의 틀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땜질식 행보를 일삼아 왔다. 이번처럼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통해 개정 시한까지 지정했음에도 법 개정을 무산시킨 것은 헌법 준수 의지 박약으로도 읽힌다. 이 같은 정치권의 태도는 언제 어디에서 누가 뛰는지 알기 어려운 깜깜이식 선거를 초래함으로써 현역과 거대정당에만 유리한 구조를 의도적으로 조성하려는 것이 아닌지도 의심케 한다. 차제에 이번 개정 선거법에는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 미준수 땐 엄격히 책임을 묻는 조항이라도 필히 넣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선정, 부산 디지털금융 도약 기회로
부산은 서울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중심지다. 하지만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의 거래대금 점유율이 계속 상승하는 등 금융도시 부산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초의 조각투자 유통을 전담할 예비인가 사업자로 케이디엑스(KDX)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 컨소시엄에는 한국거래소(KRX),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 등 부산 소재 금융 기업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이 컨소시엄은 조각투자 거래를 전담할 장외거래소와 본사를 부산에 설립할 예정이다. 부산이 미래형 금융산업인 조각투자 증권 거래 중심도시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정례회의를 통해 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 예비인가 안건을 의결했다. 금융위의 이번 조치는 부동산·저작권·미술품 등 실물 기반 자산을 토큰증권(STO)으로 나눈 조각투자 상품의 원활한 유통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예비인가를 획득한 KDX 컨소시엄은 6개월 이내에 인가 조건을 이행한 뒤 본인가를 신청, 최종 승인을 받으면 공인된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을 통해 정식 영업에 돌입하게 된다. 이번 예비인가 사업자 선정에 이어 최종 승인까지 무난히 받을 수 있도록 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40여 개의 기관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 것을 당부한다. 부산은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를 운영 중이다. 부산은 그동안 디지털신분증, 디지털 바우처, 부동산 등에 대한 조각투자 실증사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해 블록체인과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조각투자 장외거래소를 사실상 부산에 유치한 것은 무척 큰 의미를 갖는다. 부산이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디지털 금융산업을 활짝 꽃피울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노하우를 착실히 구축한 부산 금융계가 조각투자 증권 유통·수탁·운영·금융지원 등 생태계 전반에 대한 철저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유치 효과를 극대화하길 기대한다. 조각투자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부산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선박과 항만, 자동차, 관광, 문화 등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다양한 상품 증권의 개발과 발행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에 필요한 디지털금융 관련 전문 인력과 산업의 부산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중심지 부산은 NXT의 잠식과 KRX 코스닥을 자회사로 분리하려는 여당의 움직임 등으로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유치를 계기로 부산은 서울과 한층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금융도시 부산의 미래는 디지털금융도시로의 도약 여부에 달렸기 때문이다.
올리브 가지 보였는데
영어에서 ‘올리브 가지(olive branch)’는 화해나 평화의 신호로 해석된다. 국제회의나 외교 기사에서 ‘올리브 가지를 내밀다’라는 표현은 분쟁을 멈추고 협상의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올리브 나무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버티는 특성 덕분에 오래전부터 시련을 견디는 존재로 여겨졌고 지중해 지역에서는 ‘영생과 부활’,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 됐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전쟁을 멈추고 협상을 청할 때 올리브 가지를 드는 전통도 그 상징성에서 비롯됐다. 성서 속 장면 역시 유명하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노아가 날린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오자 육지가 가까움을 알았다는 대목이다. 올리브 가지는 곧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였다.미국 독립사에도 올리브 가지가 등장한다. 1775년 북미 식민지 대표들은 영국 국왕 조지 3세에게 무력 충돌을 피하자는 ‘올리브 가지 청원’을 보냈지만 거절당했고 전쟁은 현실이 됐다. 미국 대문장(the Great Seal)에도 올리브 가지가 있다. 흰머리수리가 한쪽 발에 올리브 가지, 다른 쪽 발에 화살을 쥔 모습은 의회의 독점 권한인 평화와 전쟁을 상징한다. 오늘날 국제연합 깃발 역시 세계지도를 올리브 가지가 감싸안는다. 갈등을 넘어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2021년 미국 팝가수 레이디 가가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가를 부르며 올리브 가지를 문 금빛 비둘기 브로치를 착용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화합하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과거나 지금이나 이처럼 올리브 가지는 여전히 평화나 화합, 화해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진다.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무인기 비행과 관련해 북측에 유감을 표명하고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등 긴장 완화 조치를 언급했다. 북측에 ‘올리브 가지’를 내민 셈이다. 다음날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북한은 개량형 600㎜ 초대형 방사포 50문을 공개했다. 대화와 무력, 두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든 모습이다. 이런 북측 행보는 대화와 단절 사이에서 계산이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어쩌면 두 개의 카드로 우리 정부의 의도를 가늠하고 있을지 모른다.올리브 가지는 절대 나약함의 표식이 아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이며 상대의 응답을 기다리는 인내다. 내민 올리브 가지에 대한 북측의 응답이 긴장이 아닌 대화의 문을 여는 신호였으면 한다.
논설주간/이사
강윤경
논설위원
김승일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편집국에서] 헌법 정신을 생각하다
지난 주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이 일단 멈춰 섰다. 지난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나라에 부과한 상호 관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어져 온 ‘관세 전쟁’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은 트럼프의 결정이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고 봤다. 관세는 곧 세금이며,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 1조는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권한은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은 헌법상 고유한 과세권을 갖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동시에 트럼프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세금을 걷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트럼프가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라는 구호와 함께 미국 경제 발전을 위한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결정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국의 사법부 최고기관을 즉각 공격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대한 수치”라고 대법원의 결정을 비난하며 대법원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무역법을 동원해 상호 관세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트럼프에게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미국의 사법부와 헌법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헌법이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은 한국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9일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인정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이 벌인 비상계엄은 “국헌 문란의 목적이 인정되는 폭동”이라고 판단했다. 비상계엄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켰다고도 판시했다. 이에 대한 한국 제1 야당 대표의 발언에서 ‘헌법 존중’은 없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아직 1심 판결일 뿐이다”며 선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판결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허점들은 지귀연 판사가 남겨놓은 마지막 양심의 흔적”이라며 사법부의 판단을 비꼬았다. 대한민국 사법부 판사로, 오랜 기간 헌법에 근거해 자신의 경력을 쌓고, 삶을 이어온 그에게서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하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사법부의 12·3 계엄에 대한 첫 판결은 어떠한 정치적 목적과 명분을 앞세우더라도, 국가의 존립과 국가기관의 권능을 흔드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판결이다. 처벌의 수위에 대한 개인별, 정치 집단별 의견 차이는 있다. 미국 사법부가 내린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판결 역시 행정부의 긴급권한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며 헌법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을 국가 권력의 ‘사용 설명서’이자 ‘사슬’로 비유한다. 헌법은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대한민국 입법·행정·사법의 권력자들이 그들의 선서에서 각각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라고 비슷한 내용의 선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한 헌법학자는 ‘헌법은 최악의 세상을 막는 숭고한 힘이자, 최선의 삶을 향한 절대적 상식’이라고 정의한다. 헌법은 언제나 존중 받아야 하며, 헌법은 하늘에 둥둥 다니는 조문이 아닌 국민의 생활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는 헌법 질서를 위기에 몰아넣는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헌법이 무너지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시민들을 거리로 나섰고, 법원은 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때론 법원이 무너질 때는 국회가 법원을 견제했다. 행정이 입법부의 권한을 잠식할 때는 사법부가 나서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헌법이 설계해 놓은 ‘구조적 엄벌’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 관세 부과에 제동을 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제적 파장이 아무리 크더라도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권한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한다. 헌법을 뒤흔드는 행위는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세운 나라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일인 것이다. 헌법은 정치적 유혹이 클수록, 경제적 이해관계가 클수록 더욱 단단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법부와 미국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 hangang@busan.com
[김진호의 금융포커스] 시험대 오른 코스닥
정부가 코스닥 시장에 대한 강도 높은 개편을 예고했다. 부실·좀비기업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퇴출하고, 혁신기업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상장은 쉬운 반면 퇴출은 어려운 구조 속에서 사실상 방치돼 온 시장 환경을 이제는 바로 잡겠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이 최근 발표한 주가 1000원 미만 이른바 ‘동전주 퇴출’이 대표적 사례다. 시장 체질 개선을 위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려내겠다는 조치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썩은 상품’ 지적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 대통령은 코스닥 시장을 백화점에 비유하며 “상품 가치가 없는 썩은 상품, 가짜 상품이 많으면 누가 가겠느냐”고 지적했다. 동전주 요건 신설 등 상장폐지 요건 강화로 올해 코스닥 상장폐지 대상 기업 수는 기존 예상 50개 내외에서 약 150개, 최대 220여 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코스닥 상장사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코스닥은 본래 혁신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성장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그 성과를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로 설계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신규 상장은 늘었지만 투자자의 수익과 신뢰는 오히려 후퇴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남발로 버티는 기업, 테마와 루머로 주가를 부풀린 종목, 작전 세력의 놀이터로 변질된 사례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동전주는 그 결과물이다. 기업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건전한 시장이 아니라, 방치된 시장이 만들어 낸 가격표인 셈이다. 신뢰를 잃은 시장에서 혁신기업과 투자자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부 정책의 초점이 코스닥 정상화에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증시가 글로벌 시장 대비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만큼 구조개혁에 따른 충격도 상대적으로 흡수할 여지가 있다. 시장 신뢰 회복이 성공한다면 코스피에 이어 이제는 코스닥 상승장의 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물론 상장 문턱을 높이고 퇴출 기준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실제적인 부실·좀비기업의 정리다. 금융당국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올해 상장폐지 대상 기업은 최대 220개, 전체의 약 13% 수준에 달한다. 그만큼 코스닥이 문제 기업을 오래 방치해 왔다는 방증이다. 코스닥이 과거처럼 투기장에 머물지, 혁신의 시장으로 돌아갈지는 이번 개편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늦었지만 방향은 맞다. 이제 필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정책 집행이다.
[오션 뷰] 해기인력, 국가전략이다
우리가 먹고, 만들고, 수출하며 성장해 온 방식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바다를 통해 연결되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원유·가스·곡물 같은 필수 자원, 반도체·자동차·철강 같은 주력 제품, 그리고 국가 비상 상황에서의 군수·구호 물자 등 이 모든 것이 해상 물류망 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해운산업은 단순한 ‘운송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떠받치는 기간산업이다. 그런데 이 동맥이 원활히 흐르려면 배만 있어서는 안 된다. 배를 움직일 사람, 즉 해기인력이 있어야 한다. 선박의 안전 운항, 화물의 안정적 수송, 항해·기관·전자·통신·안전관리 등 고도의 전문성이 결합된 해기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친환경 연료 전환, 디지털·자율운항, 사이버 보안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해운 현장에 빠르게 들어오면서, 해기인력은 이제 ‘부족한 직군’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격차를 만드는 직군’이 되고 있다. 미국은 다시 바다를 국가 전략의 한가운데로 불러왔다. 2026년 2월 발표된 ‘America’s Maritime Action Plan(MAP)’은 단순한 조선·해운 정책이 아니다. 이는 산업정책·안보정책·공급망 전략을 하나로 묶은 ‘해양 국가전략’ 선언에 가깝다. 미국이 문제를 인식한 지점은 명확하다. 연간 상선 건조량은 세계의 1%에도 못 미치고, 대형 조선소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군수 물자, 에너지, 식량 수송까지 외국 선박과 외국 조선에 의존하는 구조는 단순한 산업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취약성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숙련 인력의 고령화와 기술 단절까지 겹치며, 미국은 ‘해양 역량의 구조적 붕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해운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고 있는가. 해기인력 양성을 단기 인력 수급 문제가 아니라 장기 국가 역량 구축 과제로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기반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가. 그 기반의 이름이 바로 국립한국해양대학교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지난 80년 동안 대한민국 해운산업의 성장 곡선과 함께 걸어왔다. 전후(戰後) 폐허 속에서 해상 운송의 복원이 곧 국가 재건의 출발점이던 시절부터, 고도성장기 수출입 물동량이 폭증하던 시기, 세계 조선·해운 강국으로 도약하던 과정,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현장에 투입될 해기사와 해운 전문인력을 꾸준히 길러내며 산업의 ‘사람 기반’을 만든 기관이었다. 해운산업은 ‘설비 산업’이면서 동시에 ‘인력 산업’이다. 선박은 자본으로 살 수 있지만, 해기역량은 시간과 축적이 필요하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바로 그 축적의 장이었다. 항해사와 기관사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해기인력 양성은 물론, 해운, 항만, 물류, 선박금융, 해사법, 조선, 조선기자재, 해양디지털 분야로 교육과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혀오며 산업 변화에 대응해 왔다. 산업의 파고가 높아질 때마다 현장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숙련과 신뢰가 축적된 인력이 부족한 것”이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그 숙련과 신뢰를 제도적으로 길러내는 대표 거점이었다. 오늘날 해운산업은 또 다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국제 환경규제 강화로 인한 친환경 연료 전환, 디지털 전환과 자율운항 기술의 도입,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경쟁, 그리고 해상 사이버 위협의 증대까지 현장은 기존의 ‘항해·기관’ 역량에 더해 데이터·AI·보안·신연료 안전관리까지 요구하고 있다. 즉 해기인력은 줄어드는 직업이 아니라, 더 복합적이고 고도화되는 직업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인력 확대가 아니라 한국형 해양행동계획이다. 해운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재정의하고, 해기인력 양성을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바꾸는 계획이다. 그 중심에서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교육기관’을 넘어 국가 해양인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해기사 교육을 강화하되, 친환경 연료·해양 AI·자율운항·디지털 선박·해상 안전·해양 사이버 보안까지 아우르는 통합 역량 체계를 구축하고, 산업·군·공공부문과 연계한 경력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나아가 실습선과 교육 인프라를 ‘현장 실증 플랫폼’으로 확장해 기술 전환을 교육과 동시에 달성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바다는 국가의 동맥이다. 그리고 해기인력은 그 동맥을 뛰게 하는 심장이다. 대한민국이 해운산업으로 성장해 왔다면, 앞으로도 해양으로 미래를 열어야 한다. 지난 80년 동안 국립한국해양대학교가 해기사 양성과 해운산업 발전에 기여해 온 역사는, 앞으로의 80년을 준비할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이제 그 자산을 ‘과거의 성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바다는 다시 국가의 일이 되었고, 사람은 그 전략의 출발점이다.
[공감] 피지컬 AI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ChatGPT, 제미나이 같은 챗봇이 등장해 사람처럼 답하고 대화하더니, 휴대폰에도 앱으로 탑재되어 언제든 질문하고 답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했었다.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고, 우리는 그 공상 과학의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곤 했었다. 그 이야기가 유토피아든, 인류의 종말을 그렸든 간에 그저 재미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나와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패배한 직후에도 반신반의했었다. ‘알파고’는 오직 바둑을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특별한 컴퓨터였을 뿐, 인간의 복잡한 지능과 판단력에는 비교조차 불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두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습한다는 이 ‘딥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은 앞으로 전개될 급변의 시작이었다. 불과 몇 년이 지난 후, AI가 영상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시를 쓰고, 그 시를 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읽어주고, 심지어는 복잡한 프로그래밍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특별한 누군가에게 획기적인 편리함을 주는 소프트웨어라는 인식이 더 컸다. 우선, 나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작곡하거나, 영상을 만들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여전히 출근하고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업무를 매일 수행하고 있으며, 퇴근 후 집에서의 일상도 변화가 없다. 어쩌다가 인공지능 활용법을 배워볼까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시도해봐도 그다지 신통치가 않다. 명령 프롬프트를 입력해야 했고, 서툰 명령어로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에이전트 AI라는 통합 모델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멋진 로맨스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다고 명령하면, 에이전트 AI는 일단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줄거리에 따라 어떤 기능을 가진 AI가 필요한지 스스로 판단해서 음악에 특화된 AI, 이미지 전문 AI, 목소리 더빙 AI를 각각 불러들여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뭐든 말만 하면 나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내 능력 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여 물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피지컬 AI도 등장했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로봇이 등장했다는 말이다. 외국의 빅테크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우리나라의 어느 대기업도 그 기술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부턴 대단하다는 것을 넘어 좀 심각해진다. 먼 미래의, 상상에 가깝다고 여겼던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솔직히, 데이터센터에 축적된 자료와 연결된 AI 지능은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거기에다 정교하게 작동되는 로봇 몸체까지 더해진다면 인간의 능력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AI 로봇은 인간을 위해 사용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처음엔 간단한 반복작업이나 위험한 현장에 투입될 것이다. 로봇 성능은 점차 개선될 것이고, 그럴수록 빠르게 사람의 업무를 대체할 것이다. 좋게 말하면 수천 년간 이어온 노동에의 해방이고, 다르게 이야기하면 생계를 위해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의 도래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엄청난 지능과 육체 능력을 지닌 로봇보다 사람이 더 가치 있고 쓸모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그 쓸모를 활용한 직업이 무엇인지 필사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게 아니라면, 노동하는 로봇 덕분에 시간이 남아돌게 된 인간이 무엇으로 하루하루를 보낼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기고] 오시리아는 신도시인가, 관광단지인가
필자는 부산 기장군의 오시리아(Osiria)를 지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든다. 관광인의 시각에서 보면 관광지와 신도시 기능이 뒤섞여 있어, 지금의 오시리아가 무엇을 지향하는 곳인지 명확히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광진흥법 제2조는 관광단지를 ‘관광객의 다양한 관광·휴양을 위해 시설을 종합적으로 개발한 관광 거점’이라고 규정한다. 오시리아는 이 기준을 충족하는 부산 유일의 법정 관광단지다. ‘동부산관광단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부산시는 2003년부터 2023년까지 9144억 원을 투입해 약 100만 평 규모의 도심형 해양 복합 리조트를 조성하였다. 현재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 이케아, 아난티 코브, 힐튼호텔 등 글로벌 브랜드가 들어서 국내 최고 수준의 외형을 갖추었다. 입주 시설이 더 남아 있다지만, 관광단지임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IMF 시절인 1997년 부산을 떠나 2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 그래서인지 부산 바다가 가진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인근 중국 상하이는 연간 3억 명이 방문하는 국제도시이지만 바다 전망 카페를 즐길 수 없다. 양자강·황푸강은 늘 누런 강물이고,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려면 입장료를 내고 톨게이트를 통과해야 한다. 바다를 막고 모래를 날라 정화해 만든 인공 해수욕장이기 때문이다. 반면 부산과 남해안의 푸른 바다는 사시사철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바다 전망을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다. 이런 부산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문화·영상도시로서의 경쟁력까지 고려해보면, 현재의 오시리아는 관광단지가 갖추어야 할 통합성과 정체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도로는 차량 통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시설 간 연계가 약하고, 곳곳에 공실 상가가 늘어나는 등 체류형 관광단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본래 관광단지는 ‘운영형 모델’이 기본이다. 싱가포르 센토사는 섬 전체를 하나의 운영 시스템으로 묶어 입장료형 관광기여금으로 운영되고, 두바이 글로벌빌리지 또한 도시형 관광지임에도 일정한 입장료가 있다. 이는 경관·안전·문화 유지에 쓰이는 운영기여금에 가깝다. 핵심은 ‘통합 운영’이다. 해외 관광단지에는 상징 게이트가 있고, 내부는 보행 중심 구조에 트램·셔틀 등 관광 모빌리티가 운영된다. 숙박·쇼핑·문화가 하나의 브랜드 아래 연결되고, 데이터 기반 관광관리 시스템이 구축된다. 반면 국내 관광단지는 개발과 분양에만 집중되고 운영은 민간 각자에 맡겨져 있어, 콘텐츠 융합과 디지털 관광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관광산업은 결국 ‘사람의 산업’이다. 도시도 사람이 먼저다. 오시리아의 도로, 건물, 상가는 지금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관광도시 부산답게 오시리아는 ‘운영형 관광단지 모델’로 전환하면 어떨까? 이는 세계형 모델로 국내 여타 관광단지와 차별화될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시민의 자부심 고양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몇 가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오시리아의 범위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상징 게이트라도 설치해 보자. 둘째, 장기적으로 차량 중심 구조를 보행 중심으로 전환하고, 통과 차량은 지하화하거나 우회시키며 지상에는 보행축과 관광 모빌리티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시대에 맞춰 블록체인·AI 기반 관광운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면 방문객 데이터·동선 관리·결제·정산·시민 할인·기여금 운영이 하나로 연결되는 미래형 관광 시스템이 된다. 넷째, 관광운영기여금, 즉 입장료형 관광패스 제도 도입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시민 합의와 정책만 마련된다면 빠르게 실현할 수 있다. 부산시 통계에 따르면 오시리아 방문객은 연 1500만~2000만 명에 이른다. 차량 1대당 2명 기준 3000원을 부과하면 연 225억~300억 원의 운영재원이 마련된다. 광고·전시·야간경관·행사 등 다양한 부대수익원도 함께 창출될 수 있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이 다시 운영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오시리아의 매력은 한층 더해지고 세계인이 찾는 관광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도시의 변화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에서 시작된다. 보행이 중심이 되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오시리아를 함께 그려본다면 그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만 된다면 오시리아는 미래세대에 남길 부산의 새로운 유산이 될 것이다.
[기고] 부산항 위상에 걸맞은 면세연료 관리 체계 구축을
최근 외국무역선에 공급되는 면세연료 불법 유통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뒷물’로 불리는 관행은 단순한 현장 일탈을 넘어, 부산항의 국제적 신뢰도와 항만 행정 공신력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대응은 단속과 처벌, 종사자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 그쳤다. 이런 접근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부산항이 명실상부한 동북아 물류 허브로 도약하려면 항만 인프라 확충만큼이나 면세유 유통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면세유 불법 유통은 단순한 조세 포탈을 넘어 국가 재정을 잠식하고 해상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 범죄다. 항만 경쟁력이 신뢰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에 면세연료 관리 허점은 부산항 평판 리스크에 직결된다. 문제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는 수익 구조가 제공하는 강력한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관리 체계 허점이다. 외항선에 공급되는 면세유는 시중 경유보다 40~50% 저렴해, 불법 유통 시 막대한 시세 차익이 발생한다. 이 가격 격차는 범죄 조직뿐 아니라 현장 종사자에게도 지속적인 유혹으로 작용한다. 반면 감시 시스템은 여전히 낡은 방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급유량 측정 과정의 오차 범위를 악용하거나, 서류상으로만 공급된 것처럼 꾸미는 이른바 ‘가짜 급유’를 실시간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부산항처럼 선박 입출항이 빈번한 큰 항만에서는 인력 중심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제는 불법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항만·통관 시스템의 취약성과 제도적 공백을 직시해야 한다. 상하이, 로테르담, 싱가포르 등 주요 글로벌 항만들은 이미 정밀 유량계와 실시간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를 도입해 유류 공급 전체 과정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 이전에, 불법 개입 여지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이 핵심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시스템은 대략 다음 요소를 갖출 필요가 있다. 첫째, 디지털 추적 시스템(IoT) 도입 의무화다. 서류 검증을 넘어 급유선과 수급 선박의 유류 탱크에 실시간 잔량 측정이 가능한 IoT 센서를 설치하고, 급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유량 데이터를 관세청과 해양경찰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연동해야 한다.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기름’은 원천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둘째, 면세유 유통 전 과정에 대한 통합 관리 체계 구축이다. 반출부터 최종 소비까지를 블록체인 기반 이력 관리 시스템으로 연결하고, 유류 식별제 강화를 통해 시중 주유소나 건설 현장에서 단속할 때 해당 유류가 면세유인지 즉각 판별할 수 있도록 현장 분석 장비 보급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처벌 실효성을 높이고 면허 취소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현행 벌금형 위주 처벌은 범죄 수익에 비해 억지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불법 유통에 가담한 업체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 업계에서 영구 퇴출시키고, 불법 수익에 대해서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해 ‘걸리면 망한다’는 인식을 각인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미적재 잔존 면세연료를 음성적 영역에 방치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출구를 마련하는 일이다. 잔존 연료에 대해 세관 신고를 의무화하되 절차는 합리적으로 간소화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한 중고연료 사업자에게 통관을 전제로 한 합법적 유통을 허용하는 방안은 충분히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불법 유통을 억제하는 동시에 자원의 경제적 가치를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부정과 음성적 관행을 근절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부산항이 세계 최고 수준의 항만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다. 규제와 처벌 강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스템 현대화와 제도적 보완을 통해 투명성이 작동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지금 부산항에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황석영은 왜 챗GPT로 소설 썼나?
최근 ‘한국 문학의 거장’ 황석영 작가가 신작 소설 <할매> 집필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80대 노장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기술을 창작 도구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문학 영역도 AI(인공지능)의 자장으로 들어왔다는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드라마, 미술 장르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판도를 빠르게 바꿔 왔지만, 문학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늦었다. 언어와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문학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격 도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황석영 작가처럼 문학계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시도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83세 거장과 챗GPT의 만남 황석영 작가의 소설 <할매>는 금강 하구 전북 군산시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를 중심축으로 삼아,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생명·생태의 관점에서 다시 엮어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새의 뱃속에 있던 씨앗이 서해 갯벌에 내려앉고, 그 씨앗이 600년을 버틴 팽나무 ‘할매’로 자라난다. <할매>는 인간 종(種)의 역사를 넘어 ‘생명 전체의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팽나무 한 그루에 600년의 세월을 실어 ‘삶·죽음·문명·순환’이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황 작가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 ‘이혜성의 1% 북클럽’에 출연해 <할매>를 AI의 도움을 받아 썼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유튜브에서 챗GPT를 조수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소설의 구성 방법, 시대 배경, 글쓰기 형식 등 대여섯 개의 요소를 입력해 놓고 인공지능(AI)과 대화를 나누며 논문을 쓸 정도로 풍부한 자료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특히 하이데거의 난해한 저서 <존재와 시간>의 핵심 개념, 불교의 시간적·관념적 배경을 놓고 AI와 문답을 주고받으며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불교적 요소인 석가모니의 ‘연기론’(緣起論)이 묻어 나온다. 죽은 개똥지빠귀의 몸속에 있던 팽나무 열매 씨앗이 팽나무가 되어 자라고, 팽나무에 다시 개똥지빠귀들이 날아와서 열매를 먹는 장면이 그러하다. 모든 존재와 현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조건(인연)에 의지해 서로 연결되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녹아 있다. 작가는 ‘무명’(어리석음)에서 시작해 ‘노사’(늙고 죽음)에 이르는 12가지 고리로 윤회의 과정을 설명한다. ■ AI를 생산적으로 활용한 거장 황 작가는 유튜브에서 인공지능과의 협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갖고 준비해야 한다. 준비 없이 (AI에게) 해보라고 해서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의 결점을 지녀 질문자 성향을 파악해서 그대로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질문의 품질이 우수할수록 수준 높은 답변이 나온다는 사실을 간파한 셈이다. 황 작가는 챗GPT가 문학작품이나 그림을 만든다면, 서툴고 투박했던 인간의 손길이 사라지고 매끈함만 남아 굉장히 어색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AI의 부족한 측면이며 오히려 못 그린 것 같은 인간의 면모가 더 강조되고 오래갈 것이라고 본다. 그는 챗GPT로 추리 소설은 가능할지라도 본격적인 문학작품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문학작품은 훨씬 복잡한 상상력의 세계를 넘나들어야 하고, 문학이 가진 가장 큰 특성인 독자가 상상하는 여백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황 작가는 <할매>를 창작하면서 챗GPT를 썼는데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필, 볼펜, 붓, 타이프라이터로 넘어가는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 작가는 ‘얼리 어답터’다. 전동 타자기, 워드프로세서, 매킨토시 등 글쓰기 도구를 빨리 습득했고, 소설 <개밥바라기별>을 인터넷에 연재할 정도였다. 트위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시인들에게 트위터 시를 빨리 쓰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황 작가는 상상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로 AI를 현명하게 사용한 사례다. AI가 창작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폭을 넓히고 서사 구조를 점검하는 도구로 쓴 것이다. 창작의 주체로서 AI 기술을 생산적 방식으로 활용한 셈이다. ■ 젊은 작가, AI와 문학 접목 시도 그동안 국내에서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AI와 문학을 접목하는 시도가 있었다. 2023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인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가 대표적이다. 책에 수록된 박 시인의 시 ‘디펜스’(Defense)는 영어 원문, 챗GPT가 번역한 한국어 문장, 시인이 의도한 내용을 담은 한국어 시를 교차 배열했다. 단순 번역을 넘어 AI가 생성한 문장을 시의 일부로 수용한 실험으로 AI와 문학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부 젊은 작가들은 챗GPT를 활용해 초고를 구성하거나 스토리 전개를 점검하는 등 ‘AI와의 공저’ 형태를 모색했다. 윤여경 작가 등 7명은 챗GPT와 함께 쓴 소설집 <매니페스토>를 출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협업이 문학 실험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작가 구단 리에가 대표적인 사례다. 구단은 “소설의 약 5%를 챗GPT 문장으로 채웠다”고 밝히며 주목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완성도가 높고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 “아쿠타가와 수상작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라고 심사평을 했다. 구단은 2025년에는 AI로 소설의 95%를 집필한 신작 <그림자 비>를 발표했다. ■ AI 시대 작가의 역할은 AI 활용이 문학계로 확장하면서 AI 시대 작가의 역할이 조명받는다. 작가는 AI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결정하고, 결과물 중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문학적 완성도를 구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AI를 인간의 상상과 서사를 담아낸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AI를 완성품을 던져주는 ‘자판기’ 같은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일본 작가 구단 리에는 “AI는 무난한 대답을 내놓는 데 능숙한 도구일 뿐 도구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며 “창작 영역에서도 예술의 영향력은 기술이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작가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은 달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본질적 목표는 같다. AI를 개성 있고 현명하게 다루는 작가일수록 더 큰 창의성과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AI 기술을 얼마나 비판적이고 지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AI로 검색한 개별 정보들의 의미를 해석하고 가치 판단을 하고, 이를 활용해 더 풍부한 문학적 표현을 이뤄내는 것이 과제가 됐다.
[천영철의 사리 분별] 잔혹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것이다.’ 세계 최초 공산국가 소비에트 연방 수립을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비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1924년 그가 사망한 뒤 100여 년이 흘렀다. 인류는 그가 언급한 미래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체제에 사는가를 떠나서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가. 자유와 평등, 다양성 개념이 확장되고 기대 수명과 교육 기회가 늘어난 것은 물론 산업화로 평균적 경제 여건이 개선된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선뜻 행복하다고 단언키 어렵다. 인류의 행복 체감도가 여전히 낮은 근본 원인은 공동체와 리더들의 궁극적인 작동 방식이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레닌의 묘비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잔혹한 일들은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다.’ 무장봉기로 기존 체제를 뒤엎은 볼셰비키 혁명과 그 이후 소련 사회주의 정권 유지 과정에서 수많은 숙청 등 피바람이 몰아쳤다. 결국 레닌의 묘비 글귀는 과거 잔혹한 일들은 후인들의 행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레닌 묘비명을 통해 현재를 반추해 보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인류가 고안한 각종 제도와 체제 간의 우월성 여부를 따지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잔혹함의 원인에 대한 것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과 혁명, 작용과 반작용, 도전과 응징 등 힘의 논리에 근거한 끔찍한 야만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 참담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법과 관습 등 다양한 규율을 토대로 문명을 일구고 지성의 힘을 길러왔다. 엄청난 비극인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다원주의, 평등, 인도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정립하는 귀중한 성과도 이뤄냈다. 그러나 야만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인간 내면에 도사린 권력과 욕망을 향한 이기적 본능은 언제나 틀을 깨고 튀어나오려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도 야만으로 회귀하려는 죄의식 없는 시도들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특히 그 시도들의 기저엔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존 질서와 약속을 파괴하는 잔혹한 행동은 불가피하다’는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공연한 오만함을 보면서 인류가 지성적 성숙 단계에 접어들기엔 근대 문명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현재 국제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돈로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식적 국제질서 파괴 행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임박한 것으로 예측되는 이란과 미국과의 전면전 위기, 가자지구 사태, 무역전쟁, 일본의 전쟁 가능 국가 추진과 군수공장 국유화 검토 등 지구촌 전체가 대혼란기에 접어든 듯하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뼈아픈 교훈은 온데간데없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자국 이기주의가 판치는 모양새다. 미국 등 강대국들은 자국 이기주의가 타국엔 잔혹할지는 몰라도 자국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레닌의 소련이 1991년 결국 막을 내렸듯이 기존 질서를 본능적 야만의 힘으로 짓누른 잔혹 행위들은 또 다른 반작용에 의해 결국 불행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야가 증오와 조롱의 말을 서로 퍼붓는 잔혹한 장면을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 일상화된 정치 실종은 우리 사회의 집단·개인 이기주의, 편가르기도 심화시켰다. 급기야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까지 발생했다. 443일이 흐른 19일 1심 법원은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런 와중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정 마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고도의 통치행위였다며 비상계엄 불가피론을 되뇌었다. 그를 통해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라는 오만함을 다시 대면한다. 이 오만함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한 잔혹한 지도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가 미래의 토양인 점을 감안할 때 잔혹한 역사, 즉 야만 회귀 시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인류나 공동체 구성원을 불행하게 만드는 참담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잔혹함이 이해되거나 변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잔혹함이 설령 미래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의도였다고 미화되더라도 결코 면책 사유로 용인해선 안 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반지성적 리더와 선동자들의 잔혹한 부추김에 현혹되거나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문명의 근간을 흔드는 잔혹한 반지성 행위를 근절하려면 그 야만을 제대로 청산하는 필사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판결은 잔혹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는 우리 사회의 큰 이정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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