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SNS 시대의 쿠데타
쿠데타 이후 유튜브 시청 급증
당일 시민 국회 집결도 SNS덕
대통령은 선거 부정 망상 ‘허덕’
알고리즘 탓 확증편향·인지부조화
다양한 뉴스 접촉·분석해 극복
지독한 비현실·역사 퇴행 막아야
이번 달 3일 밤부터 14일 저녁까지 열흘 넘도록 틈만 나면 유튜브를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철들고 처음 겪는 비상계엄의 충격도 잠시, 이후 대통령 탄핵 투표가 2주간 펼쳐지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회와 수사 당국 상황, 경제 파장, 해외 반응 등 실시간 뉴스를 가장 신속히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유튜브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변 동료들도 유튜브 시청 시간이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비상계엄 선포일인 3일 이후 5일간 1인당 하루 유튜브 시청 시간이 126분에서 149분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한국의 유튜브 일간 총사용 시간이 1000만 시간이나 늘었다고 합니다(모바일인덱스 12월 16일 발표).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들어 군인들의 국회 침탈을 막고, 국회의원들을 담장 너머로 밀어 올려 계엄 해제 투표가 성립되도록 한 데에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용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튜브와 SNS가 정보 민주화를 이끌어, 실제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에도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새 기술은 양날의 칼입니다. 이용자가 즐겨 보는 콘텐츠와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 때문에 특정 주장에 휩쓸리기 십상입니다. 그 콘텐츠를 함께 소비하는 사람들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면서 자신의 성향이 더 강화되고, 끼리끼리만 모이게 됩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심화됩니다.
직무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담화에서 밝힌 선거부정 의혹이 대표적인 폐해 사례입니다. 일부 극우 유튜브에서 꾸준히 논란을 확산시켜온 선거부정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회보다 더 빨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보냈던 것입니다. 선관위는 13일 보도자료를 내 “지난해 선거정보시스템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보안점검을 받은 결과 해킹 흔적은 없었고, 일부 취약점에 대한 보안 강화 조치를 올 4월 22대 총선 이전 완료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기표용지를 수작업 방식으로 개표·집계하는 우리나라에서 선거정보시스템은 보조 수단에 불과하고, 개표 결과는 언제든 검증할 수 있습니다. 부정선거론은 망상에 기반한 음모론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담화를 통해 유추해 보면 윤 대통령은 예산과 인사, 정책 등 상당수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거대 야당이 출현한 22대 총선 결과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선관위가 지적하듯, 같은 시스템에서 불과 2년 반 전 당선된 자신의 선거 결과도 부정하는 일입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거대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상대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배척하면서 스스로 정치적 입지를 좁히다 온갖 음모론이 창궐하는 극우 유튜브의 솔깃한 가짜뉴스에 중독된 것으로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나이 들수록 그동안 자신이 쌓은 지식과 경험에 반하는 정보를 수용하기 어려워지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의학적으로도 40대부터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가장 먼저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알코올 섭취나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손상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노화뿐 아니라 조직에서 권한이 많은 자리로 갈수록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충고나 조언을 듣기 싫어하게 되기도 합니다. 권력 중독에 의한 인지부조화입니다. 그동안 대통령 ‘격노’ 뉴스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비상계엄 이후 그의 두 차례 담화에서 왜 반성과 사과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 비상계엄 포고령은 44년 전 전두환의 5·17 계엄 포고령과 판박이입니다. 군에서 계엄에 대비해 참고했다는 문건도 45년 전 10·26 사태 당시에 작성된 것이라 합니다. 지금은 시민 누구나 텍스트, 음성, 영상을 실시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절입니다. 왕조, 혹은 군부 독재 시대에나 있던 친위 쿠데타를, 철 지난 방식으로 일으켜 성공하리라 믿은 그 심리는 시대착오라는 말로는 부족한, 지독한 비현실입니다.
이런 비현실이 가능한 토대를 줄여가야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선동이 판치는 가상 현실에서 편리하게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추천 콘텐츠의 바다에서만 허우적대지 말고 자유의지를 발휘해 ‘종횡무진’해야 합니다. 뉴스를 접하는 플랫폼과 생산자를 다각화해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편리함에 젖어들면 건강을 망치듯, 쪼그라드는 전두엽에도 건전한 자극과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호진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