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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철에서 피어난 꽃 - 스텔라의 '아마벨'과 자크 데리다의 해체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 꽃 모양의 거대한 철 구조물. 미국 현대미술가 프랑크 스텔라의 조각 ‘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 1997)이다. 높이 약 9m의 이 대형 공공조각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비행기 파편을 연상시키는 금속 부품을 용접해 만든 복합 구조 조각이다. 이 작품은 추락한 비행기 잔해처럼 기괴하고 낯선 형상으로 논란이 되었다.
스텔라는 미니멀리즘 회화의 대표적 작가로서 초기 작품은 대개 화면을 가득 채운 줄무늬 구조로 환영적 공간이나 상징적 서사를 제거한 극도로 절제된 회화였다. 그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말을 통해 회화를 상징이나 서사의 그릇이 아니라, 눈앞의 선과 색, 형태의 실제 구조로만 보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미니멀한 평면 회화를 넘어, 1960년대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을 통해 회화의 물리적 구조 자체를 조형의 요소로 확장했다. 이후 더 복잡한 곡선 구조와 색채의 역동성과 함께, 1970년대 이후 등장한 그의 부조와 조각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적 조형 실험이었다.
‘아마벨’은 이러한 조형적 진화의 한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이 조각은 전통 조각이 지녀 온 단일 형상과 의미 중심의 조형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을 특정하기 어렵고, 형태는 사방으로 확장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데리다의 ‘해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기존 구조와 의미 체계의 위계를 흔드는 철학적 작업이다. 고정된 중심이 해체되고, 의미의 확정이 끊임없이 지연되고(差延), 분산된다.
‘아마벨’의 조형 구조는 바로 이러한 해체적 특성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이 작품 앞에서 어떤 정면을 찾기 어렵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파편은 날개처럼 보이기도, 꽃잎처럼 보이기도, 폭발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미는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관람자의 이동과 함께 계속 미끄러진다. ‘아마벨’은 ‘구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정된 구조가 아니라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금속 부품들은 분해된 기계의 파편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들어낸다.
‘아마벨’은 산업 재료와 복잡한 구조를 통해 현대 미술과 현대 조각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조각의 형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구조와 질서는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아마벨’의 꽃은 아름답고 온전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파편과 충돌, 산업적 잔해와 도시의 소음 속에서 피어나는 해체된 꽃이다. ‘아마벨’은 도시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금속 조각이면서 동시에 현대 미학의 사유를 환기하는 하나의 철학적 장면을 이룬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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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민주주의의 군중 - 안토니 곰리와 도시의 감각
39년 전 1987년 6월 10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생과 노동자, 회사원과 시민들, 이름 없는 군중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군중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시각화한 동시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안토니 곰리다. 곰리의 조각은 전통적 기념비 조각과 다르다. 그는 영웅이나 지도자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 곳곳에 익명의 인간 몸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그의 인체들은 특정 개인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몸’,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특히 그의 ‘여전히 존재하는 몸들, Still Being/Corpos Presentes’(2012)는 각 4~40㎝ 크기, 2만 4000여 개의 테라코타 인물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은 말과 행위의 근본 조건이며, 그것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동일성을 강요하는 체제가 아니라, 차이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견디며 공존하는 형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쳐 전 세계의 사상, 문화, 예술을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는 보편성과 동일성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21세기 동시대에서 차이는 점점 공존이 아니라 분열로 변하고, 공동체는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들로 해체된다. 모두가 자신의 진실만을 주장하는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양성의 존중’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디우는 차이와 상대성만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유를 비판한다. 그는 차이의 상대주의를 넘어 공통의 보편성을 다시 제기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단순한 차이의 승인만으로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타자의 존중’만으로 정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란 어떤 ‘사건’ 이후, 사람들이 기존의 이해관계를 넘어 새로운 보편성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사건’이란 기존 질서가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순간이다. 68혁명, 파리 코뮌, 사랑의 만남, 혁신적 예술뿐 아니라, 우리로 말한다면 ‘87년 6월 항쟁’, ‘빛의 혁명’ 등이 그것이 될 수 있다.
곰리의 테라코타 군중, ‘광장’을 가득 메운 익명의 몸들은 모두 다른 얼굴과 자세를 지니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그의 군중은 단순한 인파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가 생성되는 순간의 ‘감각적 형상화’로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광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곰리의 군중은 그 불안하고도 위대한 가능성의 형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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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아이 웨이웨이와 민주주의의 기억
1989년 6월 4일 새벽,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탱크와 장갑차가 들이닥쳤다. 민주화,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은 군대의 무력 진압 속에 쓰러졌다. 수백~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당국은 이 사건을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하고 검열을 통해 공적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러한 억압된 기억을 끈질기게 호출해 온 작가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감추고 삭제하려는 사건과 이름들을 예술 속에서 다시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아름다운 형식 이전에 기억의 복원에 가깝다. 특히 그의 설치 작품 ‘Remembering’(2009)은 천안문을 직접 재현한 작품은 아니지만, 천안문 이후의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부실 공사로 무너진 학교 건물 아래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이름을 직접 조사하고 기록했다. 그는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파사드를 9000개의 어린이 배낭으로 장식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들이 어린 학생들의 배낭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푸른색 바탕에 빨강, 노랑, 녹색의 글자들이 반복 배치됨으로써 색면의 공간성이 강조된다.
이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개인의 존엄을 의미한다. 작품 속에 배낭으로 따로 새겨진, “그녀는 이 세상에서 7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문장은 설치미술의 몸 감각으로 연결된다. 이 문장은 당시 희생된 한 소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다. 한 아이의 짧은 삶을 기억하려는 사적인 문장이 작품 속에서 국가적 재난의 책임 문제를 고발하는 정치적 언어가 되었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은 망각에 맞서는 일종의 ‘기억 투쟁’이다. 기억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권력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구성된다. 권력은 언제나 불편한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기억을 다시 공적 공간으로 불러낸다.
6·3 지방선거 또한 단순한 행정 권력의 교체만은 아닐 것이다. 선거의 밑바닥에는 어떤 사회를 기억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감각이 흐르고 있다. 4·19, 부마항쟁과 5·18, 6월 항쟁의 기억 역시 끊임없이 다시 말해지고 다시 해석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회는 쉽게 권위주의로 되돌아간다.
아이 웨이웨이가 걸어둔 9000개의 어린이 배낭은 추모의 오브제를 넘어, 서로 다른 기억들이 충돌하는 공적 공간에서 국가가 지우려 한 이름들을 다시 공동체의 기억 속에 새겨 넣으려는 몸짓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역시 결국 이러한 기억의 축적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회의 감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0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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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에밀리 데이비슨과 여성의 참정권
선거를 앞두고, 1913년 6월 4일의 사건을 떠올린다. 런던 근교 엠섬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더비 경마대회’에서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은 여성 참정권을 부르짖으며, 국왕 조지 5세 소유의 말 ‘엔머’(Anmer)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말발굽에 밟히는 중상을 입고,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국 내 여성 참정권 운동이 더 격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영국 정치권은 1918년,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1928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보통선거권을 인정했다.
미국 역시 오랜 여성운동 끝에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했다. 프랑스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나라’ 스위스조차 무려 1971년에 연방 차원의 여성 선거권을 허용했다.
한편 한국 여성은 1948년 제헌헌법과 함께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여성들이 수십 년 동안 거리 시위와 투옥, 단식투쟁 등을 거치며 쟁취한 권리와는 다소 달랐다. 근우회나 여성 계몽운동 등 중요한 여성운동이 있었지만, 서구의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처럼 여성 참정권 자체가 사회 전체의 거대한 정치적 갈등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여성의 정치적 권리가 법적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인정되었음에도, 그것이 사회적 감각과 문화 속에 충분히 내면화되는 과정은 더뎠다. 오늘날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언어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스트리트 아티스트 제롬 데이븐포트(예명 Ketones6000)는 런던 동부 보우(Bow)의 동네 펍 ‘로드 머페스’(Lord Morpeth)의 외벽에 스프러제트 운동가 실비아 팽크허스트를 그렸다. 거대한 얼굴은 도시의 벽면을 점유하며, 주변부에 존재하던 여성들의 정치적 존재를 다시 거리의 중심으로 호출한다. 이 작품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집단적 기억과 노동계급 여성들의 정치적 각성을 담은 공공미술에 가깝다.
현대의 거리미술 작업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민주주의 문제로 다시 환기한다. 이들의 중요한 미학적 의미는, 박물관에 박제된 역사를 거리와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서프러제트 벽화는 역사 삽화를 넘어, 도시의 벽을 공적 기억 장소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이미지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한때 거리 시위와 행진, 체포와 투옥 속에서 이루어졌듯, 오늘날의 거리미술 역시 제도권 밖의 목소리를 공적 공간에 다시 출현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때 예술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잊힌 존재들을 현재의 감각 속으로 다시 소환하는 기억의 실천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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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팔만대장경, 차이와 반복이 만들어낸 미학적 형식
5월 24일,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는다.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등 불교의 핵심 경전이 집대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불교 경전의 보고(寶庫).
그러나 이 거대한 유산에서 미학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따로 있다. 무엇이 새겨져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새겨졌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팔만대장경의 또 다른 감동은 바로 텍스트 이전의 형식에, 의미 이전의 감각에 있다. 팔만대장경은 정확히 8만 1258판의 목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슷한 크기, 엄정한 배열, 끝없이 이어지는 문자들.
그것은 완벽한 동일성의 세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그 질서는 조용히 흔들린다. 여기서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떠오른다. 반복은 동일성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생성하는 사건이다. 나뭇결은 저마다 다르고, 칼끝의 떨림도 다르다. 새겨진 획의 깊이와 번짐, 글자의 미세한 균형 또한 조금씩 다르다. 각각의 목판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대장경의 장엄함은 이 무수한 차이가 거대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내는 질서에 있다.
수백 년 전 몽골 침입 이후 국가적 위기 속, 장인의 손끝에 일었을 망설임, 한 자를 완성하고 다시 다음 글자 앞에 앉았을 그 인내와 집중. 그 마음은 나라의 안녕을 비는 서원,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구도적 염원,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장경의 숭고함은 단지 규모에서 오지 않는다. 그 위대함은 내용만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다.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 끝없는 손길의 염원, 바로 그것이 숭고를 만들어낸다. 자연통풍과 습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읽기보다 먼저 멈추게 된다. 끝없이 이어진 목판 서가는 그 자체로 거대한 설치 미술이라 하겠다. 오래된 나무 향은 서늘한 공기와 섞여 천천히 코끝에 스미고, 낮게 스며든 빛은 목판 위를 고요히 흐른다. 발걸음은 느려지고, 말소리는 낮아진다. 생각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바빴던 시간, 흔들리던 생각들, 쉬이 지치던 날들이 잠시 멈춘다.
판각을 새기는 수백 년 전 장인들의 모습, 한 자 한 자 새기며 붙들었던 집중과 인내 속의 그 염원이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문득 반가사유상의 고요한 미소가 떠오른다. 팔만대장경은 단지 경전을 새긴 목판이 아니다. 인간의 기다림과 기도, 그리고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마음을 나무 위에 새긴 시간의 숲이다. 초파일을 앞두고 다시 생각한다. 수없이 반복된 손길이 어떻게 아름다움이 되는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위대한 미학적 형식이 되는지를.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2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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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죽음도 상품이 되는 시대 - 데이미언 허스트와 자본주의적 숭고
1990년대 영국 미술계를 흔든 ‘영국 청년 작가들’(YBAs) 중 가장 큰 명성과 논란을 함께 얻은 인물은 단연 데이미언 허스트이다. 그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상어, 소, 양 등의 사체를 보존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가 회피해 온 죽음의 물리적 실재를 전시장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직접 대면한 ‘살아 있는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서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에서 상어는 여전히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위협은 이미 무력화되어 있다.
칸트적 의미에서 숭고는 인간의 표상 능력을 넘어서는 거대함이나 압도적 힘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와 두려움을 전제로 했다. 동시에 인간은 그러한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사유하고 견뎌낼 수 있는 자신의 이성 능력을 자각하면서 숭고를 경험한다. 다시 말해 숭고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공포를 넘어서는 정신의 자각이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숭고를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시 해석하며, 재현 불가능한 것을 묘사하고자 할 때, 다시 말해 이미지와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균열과 부재의 감각에서 숭고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는 18세기 인간 두개골을 본뜬 백금 캐스트 위에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 실제 사람의 치아, 이마에 52캐럿의 대형 핑크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작품이다. 여기서 죽음은 혐오나 공포를 넘어 최고급 사치품처럼 제시되며, ‘숭고’는 더 이상 인간을 초월로 이끄는 감정이 아니라, 통제되고 연출된 충격, 혹은 자본의 규모와 욕망을 체감하게 하는 시각적 효과로 전환된다. 허스트의 해골은 죽음을 보여주지만, 정작 죽음 자체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허스트의 죽음 이미지는 화려한 표면 아래 결코 완전히 재현되거나 소유될 수 없는 죽음의 공백을 남긴다는 점에서, 리오타르가 말한 포스트모던 숭고의 흔적 또한 드러낸다.
한편, 해골의 과도한 치장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화폐의 물신성(物神性)’을 드러내려는 허스트의 전략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소비 자본주의의 논리에 깊숙이 편입된다는 점에서 역설을 드러낸다. 허스트는 2008년,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던 관행을 깨고, 신작 작품들을 곧바로 소더비 경매에 출품하면서 예술가가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 자체를 작품처럼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능숙하게 희소성, 화제성, 고가 판매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 미술 시장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그는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체제와 공모하는 작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지점에서 허스트는 예술이 위안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야 한다는 YBAs의 태도를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죽음을 장식한 것은 해골이 아니라 욕망이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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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헌법에 새겨야 할 이름 - 기억은 어떻게 국가의 형식이 되는가
부마와 5·18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질문이다. 국가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헌법에 새길 것인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울려 퍼진 ‘유신 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시민의 각성이었고, 자크 랑시에르의 말처럼 권력에 의해 가려지고 말해지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의 전환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를 종식하는 거대한 불꽃이 되었고, 그 불꽃은 80년 5·18 민주화운동과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헌법은 모든 법 위에 서서 국가의 근본 가치와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한계를 규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또한 헌법전문은 그 정당성이 어떤 역사와 희생 위에서 세워졌는지를 드러내는 정신적 선언이며, 국민이 공유하는 기억의 형식이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비워두는가에 따라, 국가는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부마민주항쟁은 ‘군부독재’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린 최초의 시민 항쟁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지켜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그 윤리적 기준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헌법전문 밖에 머물러 있다. 이 공백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서사의 단절이며, 국가 기억의 불균형이다.
홍성담의 판화는 그 공백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검은 선으로 깊게 파인 화면 속에서, 광주의 거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장면으로 솟아오른다. 불길과 연기, 무너진 차량, 그리고 무엇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몸짓, 이 이미지는 어떤 특정한 순간을 재현한다기보다, 국가 폭력과 시민의 저항이 충돌하던 감각의 총체를 우리 앞에 다시 펼쳐 놓는다. 판화 속 인물들은 공포 속에서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이들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말하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통의 감각과 행동을 통해 연대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형성되는 ‘다중’이다. 이 다중은 공통의 분노와 존엄의 감각을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었다. 홍성담의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적 주체가 형성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최근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2016년의 ‘촛불 항쟁’과 2024-25년의 ‘빛의 혁명’은 국민주권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경험은 헌법이 아직 완결된 기억의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제 국회와 국민은 이 역사적 공백에 응답해야 한다. 헌법전문은 법이 아니라 기억이다. 부마와 5·18을 (그리고 추후 6·10항쟁까지) 헌법전문에 새겨 그 기억을 완성하는 것, 이야말로 이 시대가 감당해야 할 헌정사적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재의 과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0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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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공휴일이 된 노동절 이후, 노동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26년, 노동절(5월1일)이 공식 공휴일이 되었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그의 희생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또한 70년대 노동과 민주화운동의 주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결합하며, 거리와 공장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노동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시민권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세계적으로도 노동은 구조적 변화를 겪어 왔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물리적 생산과 결합돼 있었고, 20세기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일정한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다시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은 축소되고, 비정규직과 플랫폼노동이 확산되었다. 배달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은 채 일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며, 돌봄 노동은 여전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노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노동의 역사는 끊임없는 확장의 역사였다.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만이 노동자로 인정되었지만, 이후 여성 노동, 서비스 노동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경계에 서 있다. 데이터 생산, 감정 노동, 돌봄 노동과 같은 영역을 보호받아야 할 노동으로 포함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노동운동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노동운동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는 것. 둘째, 노동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 셋째, 노동을 인간의 존엄과 다시 연결하는 것. 이 지점에서 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장치였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미얼 리더먼 유켈리스(1939년생)는 유지(management)와 돌봄(care)을 예술로 끌어들인다. “나는 유지·관리 노동을 예술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녀는 청소 노동자와 함께 작업하며, 청소, 돌봄, 유지 등 사회를 유지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통해 뉴욕의 환경미화원 8500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그들의 노동을 예술로 만들었다.
전태일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우리는 더 이상 그가 살았던 시대의 노동 조건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다시 묻는 순간, 노동절은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정치적 시간으로 변한다. 유켈리스의 작업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유켈리스는 퍼포먼스를 통해 말하는 대신 몸으로 인사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이름 있는 개인으로, 존엄한 인간으로 호출하는 행위였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4-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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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보이지 않는 폭력이 보이는 순간 - 한강의 <채식주의자>
평범한 아내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세계는 그녀를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회인인 남편은 그녀를 정신병자로 취급하여 이혼을 택하며,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권위적인 가부장제의 대표로 묘사되는 아버지는 그녀를 폭력으로 교정하려 한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 근대 사회의 억압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유지된다. 정상의 경계에서 벗어나는 개인은 곧바로 병리의 대상으로 분류된다. 권력은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성을 만들어낸다.
정상적인 식사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은 보이지 않도록 조직된다. 우리는 고기를 먹지만, 그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영혜에게 고기는 더 이상 음식이 아니라 죽음으로 보이고, 가족은 더 이상 보호가 아니라 폭력의 공간으로 드러난다. 프로이트가 말한 ‘운하임리히(Unheimlich/uncanny)’, 즉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불안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가족의 식사 장면에서 아버지는 영혜의 입에 고기를 억지로 밀어 넣고 거부하는 그녀의 뺨을 거세게 갈긴다. 설득은 강제로, 강제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은 낯설지만 익숙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질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작품을 떠올린다. 1964년 카롤리 슈니먼의 퍼포먼스 ‘Meat Joy, 환희의 육체’이다. 신체를 예술의 재료로 사용하는 퍼포먼스 예술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사람들은 날고기와 생선, 생닭을 몸에 문지르며 뒤엉킨다. 그것은 육체의 해방이자 동시에 산 육체와 죽은 고깃덩이가 하나임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음식과 생명, 쾌락과 폭력의 경계가 무너진다. 슈니먼은 폭력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감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그 순간 해방과 폭력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쾌락을 추구하는 일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련된 문명 뒤에 숨겨진 육체적 고통과 죽음,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해지는 근원적 폭력을 직면하게 한다.
〈채식주의자〉 역시 마찬가지다. 영혜는 숨겨진 폭력을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는 위험하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보다 폭력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인혜는 자신 역시 같은 질서 속에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정말 정상인가?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그 정상성을 찢어놓는다. 영혜가 위험한 이유는 폭력을 숨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폭력을 드러내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이 만연하고, 그 폭력에 감각이 무뎌진 세계에서 채식주의자 영혜는 우리가 보지 않기로 한 것을 끝내 보이게 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4-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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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노란 리본, 사라지지 않는 봄-세월호와 감각의 정치
2014년 4월 16일, 바다는 아이들을 삼켰다. ‘전원 구조.’ TV에서 반복적으로 송출된 그 말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의 작동이었다. 자크 랑시에르에 따르면, ‘치안’은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통치 활동, 사회적 몫을 분배할 때 발생하는 불평등을 확정하는 통치 과정이다.
이에 반해 ‘정치’는 치안이 만든 특정한 분할선에 의해 나누어지고 할당된 기존의 불평등한 질서, 지각 양식의 질서를 다시 나누고 할당하려는 행위이다. 세월호는 바로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치안’이 확립해 놓은 감각적인 것의 분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술은 그것을 재배치하고자 한다. 이때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개입한다. 그것은 설명하지 않고, 대신 감각을 되살린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하고, 어떤 고통이 말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홍성담의 ‘세월오월’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홍성담 개인의 작업이지만, 형식적으로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걸개그림 전통을 호출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표현을 넘어 사건을 ‘집단의 기억’으로 확장하는 장치다. 이 그림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읽히는 구조를 가지며, 사건의 인과와 권력의 작동을 직조하듯 드러낸다. 그의 세월호 연작 중 ‘친구와 마지막 셀카’(2016)는 세월호에서 숨져간 아이들이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들과 마지막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권력을 탓하지 않는다.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를 할 뿐이다. 그림은 그 지워진 목소리를 ‘다시 들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이 지점에서 BTS의 ‘봄날’을 함께 떠올린다. 이 노래는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더 깊이 도달한다.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이 문장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다. 부재를 현재로 끌어오는 감각의 언어다. ‘봄날’의 시간은 도착하지 않는다. 눈꽃은 떨어지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이다.
홍성담의 그림이 사건을 ‘집단적 기억’으로 붙잡아 두었다면, ‘봄날’은 그것을 ‘감각의 지속’으로 남긴다. 하나는 보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사라지지 않게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끝까지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는 끝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감각’이다. 노란 리본은 지워지지 않는 감각의 매듭이며, 보이지 않게 하려는 힘에 대한 조용하고도 강한 저항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4-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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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권력 이미지와 예술의 저항-본회퍼와 '네오-아방가르드' 한스 하케
1945년 4월 9일, 목사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39세에 히틀러 암살 시도를 포함한 반나치 저항 운동의 죄목으로 독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21세에 신학 박사가 된 그는 미국 뉴욕 할렘의 흑인 교회를 경험하며, 신학이 현실의 고통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렘의 예배는 자크 랑시에르의 의미에서 보자면, 억압에 저항하여 ‘감각의 분할’을 재배치하는 실천이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고통을 말하는 목소리의 형식을 배웠다.
오늘날 회자되는 “침묵은 악이다”라는 말은 그의 사상을 단순화하여 재구성한 말이다. 그러나 그 문장은 정치 윤리와 동시에 예술의 윤리도 건드린다. 권력의 폭력 앞에서 예술은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발언해야 하는가? 독일의 개념 미술가 한스 하케의 작업은 이에 대답한다. 말하자면, 예술은 권력이 숨기려는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하케의 작품은 흔히 ‘정치적 미술’로 불린다. 그는 예술과 삶의 분리를 거부했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문제의식을 제도 비판을 통해 재연하는 ‘네오-아방가르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현재의 제도와 구조 속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나치의 유산을 드러낸다. 2000년 독일 국회 의사당에는 ‘거주민에게’라는 제목의 그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의사당 중정(中庭)에 설치된 네온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말은 의사당 정문의 ‘독일 민족에게’(Dem deutschen Volke)라는 구절을 대체하는 것이다. 나치 시대에 ‘민족’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민족 공동체의 이름이 아니라, 특정 집단들을 배제하고 그 배제를 폭력으로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거주민에게’라는 구절은 ‘민족’을 넘어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독일 사회의 주민임을 드러낸다. 하케의 작업은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는 누구의 이름으로 말하는가. 이 질문은 본회퍼가 던졌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회퍼의 시대에는 권력이 군대와 경찰, 선전과 검열을 통해 작동했다. 그러나 오늘날 권력은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디어, 자본, 이미지, 문화 산업이 서로 얽혀 새로운 형태의 권력 구조를 만들어낸다. 21세기 동시대 미술에서 한스 하케의 작업은 네오-아방가르드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급진적 형식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 뒤에 숨을 수 없다. 중립이라는 말은 교묘한 권력의 언어이기도 하다. 4월 9일 본회퍼가 처형된 날, 우리는 깨닫는다. 침묵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잘 장식된 또 다른 권력일 뿐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4-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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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동백은 왜 통째로 떨어지는가 -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
4월 3일. 이날은 아직 과거가 아니다. 1948년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랫동안 ‘사건’으로조차 존재하지 못했다. 말해질 수 없었고, 기록될 수 없었으며, 공적인 기억으로 승인되지 못했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은 말하고 행위함으로써 공적 세계에 출현한다. 그러나 4·3은 사람들이 말하고 행위하며 서로에게 출현할 수 있었던 공적 세계 자체를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는 이 말해질 수 없었던 사건을 그린다.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을 ‘보이게’ 한다. 화면 오른쪽, 전경에 한 송이 동백이 통째로 떨어지고 있다. 화가는 꽃이 아직 땅에 닿지 않은 채, 공중에서 멈춰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만든다. 왼쪽 후경에는 나무들 사이로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꽃의 붉음과 피의 붉음이 같은 색으로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중심이 아니다. 대신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떨어지고 있는 그 한 송이 꽃이다.
동백은 꽃잎이 흩어지면서 지지 않는다. 통째로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떨어진다. 그 낙하는 자연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끊어진 시간, 중단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 불리지 못한 이름들, 끝내 기록되지 못한 삶의 형상이다. 전경의 동백은 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한꺼번에 사라진 삶들, 제주라는 섬 전체를 뒤덮은 죽음의 시간이다. 이 그림에서 동백은 ‘지금’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과거가 아니다. 죽음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이때 제주는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곳은 기억이 쌓이고 시간이 스며든 땅, 죽음이 흩어지지 않고 머무는 세계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현실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데 집중했다면, 강요배의 회화는 그다음의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는 묻는다. 폭력은 끝났는가, 아니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이 그림에서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상태다.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태. 폭력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며, 떨어지고 있는 동백꽃처럼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앞에서 예술가의 책무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진실을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다. 역사를 정리하는 데에도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그 흔적을 감각 속에 남겨두는 데 있다. 강요배의 동백꽃은 설명되지 않는 죽음이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동백꽃은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깨닫는다.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이름들을 다시 불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 이름들을 충분히 불렀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4-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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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천재의 얼굴, 숭고에서 상품으로
3월 26일, 1827년. 이날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가장 잘 알려진 베토벤의 얼굴은 요제프 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이다. 이 초상은 단순한 인물화를 넘어, 낭만주의가 발명한 ‘천재 예술가’의 시각적 원형을 확립한 결정적 이미지다.
헝클어진 머리, 붉은 스카프, 손에 쥔 ‘미사 솔렘니스’(장엄 미사) 악보, 내면을 응시하는 시선. 슈틸러의 ‘베토벤’은 고독한 창조자이며, 초상은 외모의 기록을 넘어 ‘창조하는 정신’으로 형상화된다. 여기서 예술가는 장인을 넘어 시대와 불화하는 천재로 재정의된다. 낭만주의의 ‘숭고’는 이렇게 한 얼굴 속에 응축되었다. 160여 년 뒤, 이 얼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1987년, 앤디 워홀은 ‘베토벤’ 연작을 제작한다. 고독한 천재의 얼굴은 실크스크린으로 반복 인쇄돼 대량 복제의 표면 위에 놓인다. 슈틸러의 ‘베토벤’이 ‘내면의 깊이’를 드러낸다면, 워홀의 ‘베토벤’은 그 깊이를 없애고 ‘표면’만을 남긴다. 워홀은 낭만주의가 강조한 창조적 고통과 숭고를 형광색의 평면 속에서 차갑게 평준화한다.
칸트 이후 낭만주의가 말한 숭고는 인간이 자연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연을 초월하는 정신의 위엄을 자각하는 데 있었다. 슈틸러의 베토벤은 그러한 숭고를 응시와 표정, 고립된 분위기로 구현했다. 반면 워홀은 숭고를 해체한다. 반복과 색채 변형은 원본의 아우라를 약화시키고, 천재의 얼굴을 이미지의 네트워크 속으로 분산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떠올릴 수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는 원본 예술 작품이 지닌 ‘지금-여기’의 아우라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을 특정한 장소와 권위로부터 해방시켜 더 많은 대중이 쉬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대중들의 감식력과 비판력이 성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워홀의 실크스크린 복제 이미지는 벤야민의 논지와 접점을 가진다.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원본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무화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이미지를 더 널리 각인시킨다.
낭만주의는 예술가를 초월적 존재로 신화화했다. 반면, 워홀은 그 신화를 복제하고 반복함으로써 그 아우라를 훼손하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천재의 얼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로써 워홀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보다 그 작동 방식을 극도로 투명하게 드러낸다. 반복은 그저 미학적 전략인 것이 아니라, 욕망이 끊임없이 복제되는 체제의 은유다. 결국 워홀은 천재를 신화화한 낭만주의의 이상을 무너뜨리면서도, 자본주의가 그 신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증식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숭고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이미지를 소비하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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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봄의 문턱, 보는 방식의 재탄생: 세잔을 생각하다
3월 19일. 성모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양부.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침묵’의 성인, 그는 목수였다. 성 요셉의 축일에 폴 세잔을 떠올린다.
현대 회화의 개척자 세잔 역시 격렬한 선언도, 급진적 이론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당시 화단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 대신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묵묵한 노동처럼 같은 산과 사과와 탁자를 수없이 다시 그렸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말처럼, 마네가 회화의 ‘평면성’을 선언하면서 현대 회화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면, 세잔은 재현을 구조의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이후 탈재현적 실험의 길을 열었다. 그전까지 회화의 과제는 캔버스 위의 대상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잔은 실제의 외형이 아니라, 실제가 지각 속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그리고자 했다.
예컨대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를 그리는 정물화에서 실제 우리 눈은 식탁과 그 위의 사물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없다. 왼쪽을 주목하면 다른 쪽은 보이지 않고, 또 과일 바구니 안쪽을 보려면 과일 바구니에 가까이 가서 위에서 보아야 한다. 세잔의 정물화는 이렇게 위치 이동을 통해 ‘다시점’에서 포착된 대상을 한 캔버스에 모아둔 것이다.
회화의 목적은 더 이상 모방이 아니다. 자연은 모사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이 형성되는 장이 된다. 철학적으로 이 변화를 가장 섬세하게 읽어낸 이는 메를로-퐁티였다. 그는 〈세잔의 회의(의혹)〉에서 세잔의 회화를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지각의 현상학’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세계를 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세계를 끊임없이 구성한다. 세잔의 화면은 그 구성의 과정을 드러낸다.
세잔의 그림은 완성된 사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보는 중인 상태’를 남겨 둔다. 흔들리는 윤곽, 불안정한 원근, 색의 긴장 속에서, 관람자는 실제처럼 보이는 캔버스를 소비하는 대신 지각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회화는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보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게 만드는 장이 된다. 그래서 세잔 이후의 회화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은 더 이상 외부에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가 만나는 지각의 구조 속에서 생성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재현 회화의 화면이 세계를 하나의 중심 시점에 고정시켰다면, 세잔의 구조적 화면은 세계가 지각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그의 위대함은 격정이 아니라 반복에 있고, 영감이 아니라 구축에 있다. 그는 자연을 모방하지 않았다. 대신 자연을 보는 방식을 해부했다.
3월 19일, 성 요셉의 침묵을 떠올리며 세잔을 생각한다. 그가 남긴 ‘보는 방식의 변화’는 현대미술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현대 회화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오늘 우리가 세잔을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 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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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세계 여성의 날, 기억의 기념비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날은 1908년 뉴욕에서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근로조건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을 국제적 의제로 끌어올린 인물이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다. 그녀는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국제 여성의 날’을 제안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의 여성 노동자들은 ‘빵과 평화’를 외치며 대규모 파업 시위를 벌였다. 시위 4일 만에 차르가 폐위되었고, 여성들은 임시 정부로부터 투표권을 얻어냈다. 당시 시위가 시작된 날이 율리우스력으로 2월 23일(일)이었는데, 이날이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3월 8일이었다. 이후 3월 8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성의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종종 여성의 날을 꽃과 축하의 이미지로 소비한다. 그러나 그 기원은 축제가 아니라 거리 행진, 구호, 피켓, 체포, 해고 등으로 점철된 투쟁이었다. 이처럼 여성의 권리는 인권과 마찬가지로 선물처럼 주어진 적이 없다. 그것은 끈질긴 집단적 행동의 결과였다.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 계보로 작성한 기념비적 설치 작품이다.
거대한 삼각 테이블 위에는 39인의 여성을 위한 식탁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999명의 여성 이름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39인의 여성은 신화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여성 문명의 계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로부터 흑인 여성 노예해방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를 거쳐, 화가 조지아 오키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이 포함된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역사 서술의 중심에서는 종종 밀려나 있었던 ‘여성’들이다. 그리고 바닥에 새겨진 999명의 여성 이름은 역사 속에서 업적을 남겼지만,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거나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을 상징한다.
이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지워진 역사를 복권하는 작업이다. 시카고는 왕이나 장군, 남성 영웅을 내세우는 기념비의 형식을 전복시켜 식탁을 기념비로 만들었다. 권력의 동상이 아니라, 공동의 식사 자리를 통해 여성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였다. 또한 자수, 도자기, 직물처럼 ‘여성 공예’로 폄하되던 매체를 대형 설치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렇듯 ‘디너 파티’는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들의 ‘이름과 기억’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서구 중심적 여성 역사를 서술하는 1970년대 페미니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 이름을 복권한 최초의 기념비적 시도였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3-11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