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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사람은 왜 두 번 죽는가?
붉은 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오타 치하루(1972년~)는 일본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2025년 뉴욕 재팬 소사이어티의 ‘두 개의 고향’에서 선보인 ‘일기’라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뻗은 수천 가닥의 실은 혈관 같기도 하고 신경망 같기도 하다. 그 사이에 책상과 의자, 편지와 일기, 신발과 열쇠, 여행 가방이 매달려 있다.
실 속의 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병사들의 기록과 전후 독일 민간인들의 일기다. 데리다의 ‘흔적’과 ‘대리보충’을 떠올리게 하듯, 이 사물들은 부재한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동시에 그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오타에게 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하나의 실은 약하지만 수많은 실이 얽히면 거대한 공간이 된다. 기억도 그렇다. 다른 기억과 만나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면서 개인의 기억은 공동의 기억이 된다.
시오타의 기억 작업은 이제 개인의 부재를 넘어 전쟁의 기억으로 나아간다. 붉은 실은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시간을 한 공간에 엮어 놓는다. 여기서 전쟁은 국가 간의 승패가 아니라, 어느 병사의 두려움과 가족의 기다림, 살아남은 사람의 하루로 돌아온다. 일본과 독일이라는 작가의 ‘두 고향’도 이 기억 속에서 만난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했다. 대량 학살 이후에도 예술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훗날 〈부정변증법〉에서 지속되는 고통에는 표현될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대량 학살 이후에 예술이 타인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감동으로 소비하고, 쉽게 화해시킬 수는 없다는 데 있었다.
여기서 예술의 윤리가 시작된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사라진 사람의 흔적을 현재에 붙들어 놓는다. 관객은 그 실 사이를 걸으며 타인의 기억을 몸으로 통과한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손안의 열쇠’ 이후, 그가 21세기 설치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잡은 까닭도 여기 있다. 기억과 부재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실과 사물, 공간이라는 물질적 경험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을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예술이 세계의 전쟁을 멈출 수는 없다. 폭격을 막을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오늘날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와 이란을 하나의 기억 공간 안에 놓는다. 사람은 죽음으로 한 번 죽지만, 망각 속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시오타의 붉은 실은 그 두 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기억의 선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9-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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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예술이 테러를 대하는 방식-게르하르트 리히터의 '9월'
2001년 9월 11일, 여객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고, 이날 테러로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9·11은 테러인 동시에 ‘이미지의 사건’이었다. 우리는 사건 자체만큼이나 반복 재생된 그 이미지를 기억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테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960년대 지그마어 폴케 등과 함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운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는 ‘사진-회화’를 통해 사진 이미지를 회화로 옮긴 후, 그것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한다. 이 흐림은 기술적 효과가 아니라, 사진이 지닌 객관성의 신화를 붕괴시키는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캔버스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리히터가 2005년 그린 ‘9월’(September)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한 것으로 52.1×71.8㎝의 작은 유화다. 화면에는 푸른 하늘과 쌍둥이 빌딩, 검은 연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는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뒤 화면을 긁고 문질러 형상을 흐리게 처리했다. 세계가 선명하게 보았던 장면을 그는 오히려 흐릿하게 되돌려놓는다. 리히터에게 ‘흐리기’는 오래된 회화적 방법이다. 그는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믿음을 의심했다.
9·11 이후 충돌과 붕괴의 장면은 이미 수없이 소비되었다. 리히터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태는 대신, 우리가 보았다고 쉽게 믿었던 사건을 다시 낯설게 만든다. 그의 흐릿한 화면은 테러의 잔혹성을 지우거나 가해와 피해의 차이를 흐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테러 직후 형성된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에 머물지 않고, 그 이후 이어진 보복과 전쟁, 적과 동지의 구분이 만들어낸 또 다른 폭력까지 돌아보게 한다. 흐림은 판단의 포기가 아니라, 너무 빠른 판단을 멈추게 하는 각성의 장치다.
9·11 석 달 뒤, 위르겐 하버마스는 지오반나 보라도리와의 대담에서 테러를 근본주의와 폭력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했다. 리히터의 그림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와 만난다. 테러는 우리에게 즉각 적과 친구, 선과 악을 나누라고 요구한다. 충격적인 이미지 역시 판단의 속도를 재촉한다. 그러나 ‘9월’은 그 속도를 늦춘다. 흐림은 망각이 아니라 성급한 확신의 유보다.
9·11 이후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테러와 전쟁, 보복과 증오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테러는 세계를 둘로 가른다. 예술은 그 사이에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폭력에 폭력으로 답하지 않는 길은 가능한가? 리히터는 ‘9월’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그 흐릿한 화면 속에, 폭력으로 단절된 대화가 시작될 작은 틈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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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신학철의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대지진이 일본의 관동 지역을 덮쳤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폭동을 일으킨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고, 군경과 자경단은 조선인을 색출해 살해했다. 조선인에 대한 오래된 차별과 공포를 일본의 공권력이 확산시키거나 묵인하면서 단순 자연재해가 국가적·집단적 폭력으로 변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민중미술가 신학철은 사건 100주년을 맞아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2023)을 완성했다. 세로 1.6m, 가로 9m의 대형 화면에는 살해된 조선인들의 몸이 화면 가득 이어진다. 그는 1979년 〈사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에서 관동대학살 사진을 처음 접한 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유해를 발굴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역사 속에 묻힌 죽음을 불러내는 초혼의 회화다. 화면 중앙 하얀 실루엣의 인물은 이름 없이 사라진 희생자들의 부재를 환기한다.
신학철은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 연작에서 몽타주 기법으로 사진과 신문 자료를 해체하고 재결합해 왔다.
그의 몽타주는 과거를 완전하게 복원하기보다, 벤야민이 말한 ‘변증법적 이미지’처럼 과거의 파편을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폭력의 역사를 드러낸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장에서 시신 처리를 강요당했던 유대인 수감자 조직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가 목숨을 걸고 남긴 네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디디-위베르만은 참혹한 역사를 완전하게 재현할 수 없다고 해서 이미지의 증언 가능성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과 불완전함을 통해 지워지려 했던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언한다.
신학철의 장대한 그림 역시 학살의 전모를 완전하게 복원하려는 것은 아니다. 관람자는 한눈에 포착할 수 없는 긴 화면을 따라 움직이며 겹쳐진 몸들을 마주하지만, 사건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 ‘볼 수 없음’은 작품의 결함이 아니라, 기록되지 못한 죽음과 기억의 공백을 드러내는 형식이다. 이때 이미지는 사라진 흔적을 징후처럼 드러낸다. 또한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시선의 방향은 뒤집힌다. 화면 속 죽은 자들은 말하지 않지만, 훼손된 몸과 침묵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아도르노가 고통의 미적 소비를 경계했듯, 신학철은 희생자를 영웅화하거나 비극을 숭고하게 꾸미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일본 국가가 외면해 온 죽음을 다시 역사의 한복판에 세운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학살을 조사하고 희생자를 추모해 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신학철의 그림이 증언하는 관동대학살은 결코 끝난 과거가 아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9-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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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안창홍의 '박제' 연작과 응시의 윤리
오는 9월 5일부터 12월 6일까지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게 되는 안창홍의 전시 제목은 ‘안창홍-눈물: 망각된 자들이 우리의 시선을 되돌릴 때’이다. ‘박제’와 ‘실명’ 등으로 구성되는 이 전시는 그가 평생 그려온 망각된 인간과 비인간 생명을 한자리로 불러낸다.
몇 년 전 경기도 외곽의 폐공장 문을 연 순간, 안창홍은 생지옥 같은 광경을 마주했다.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 사슴과 여우, 너구리와 새들이 자빠지고 포개져 있었다. 굵은 밧줄에 감긴 타조는 목과 다리가 부러지고 눈알마저 빠져 있었다. 안창홍은 이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세 번 죽었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죽음, 내장을 들어내고 방부 처리해 전시물로 만든 박제화의 죽음, 상품과 표본으로서의 가치마저 잃은 뒤 폐기된 죽음이 그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의 박제는 연구와 교육의 표본이었지만, 다른 한편 자연을 포획하고 분류하며 소유하려는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자 인간 문명의 잔혹한 자기 초상이다. 안창홍은 폐공장에서 버려진 동물 박제를 사진으로 찍은 뒤, 출력된 사진 위에 물감을 흘리고 뿌리며 붓질을 더했다. 박제의 눈에는 눈물을, 주변에는 노란 나비를 그려 넣었다. 죽어서도 울지 못하는 동물에게 눈물을 돌려주고, 갇힌 영혼을 풀어주는 일종의 제의다.
그의 ‘가족사진’과 ‘아리랑’ 연작에서 이어져 온 ‘사진-회화’가 여기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의 ‘미메시스’는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개념적 인식을 넘어 주체가 객체에 동화되고자 하는 행동양식으로 확장된다. 안창홍의 ‘박제’ 연작에서 사진 위의 드리핑과 피눈물은 죽은 생명의 고통을 작품의 형식 안으로 받아들이는 미메시스적 행위다. 이로써 다시 살아나는 동물들은 기억되지 못한 존재자에 대한 미학적 환기이자 윤리적 책임의 기호가 된다.
처음에는 우리가 박제를 바라보지만, 어느 순간 박제된 동물이 우리를 되돌아본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관점에서 보자면, 보는 행위는 대상의 되돌아오는 시선에 의해 흔들리고 분열된다. 안창홍의 이번 전시 제목은 그의 예술이 요구하는 ‘보는 행위의 책임’을 정확히 드러내며, 관람자를 윤리적 응시의 자리로 불러낸다.
안창홍은 전쟁과 독재, 산업화와 소비자본주의 속에서 희생된 이름 없는 인간들을 그려왔다. ‘박제’에서 그 시선은 인간에게 착취되고 억압받고 폐기된 비인간 생명으로 확장된다. 그렇지만 안창홍의 ‘박제’ 연작은 동물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나 생태적 메시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박제된 존재를 응시함으로써 인간의 폭력과 문명의 어두운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미학적 고발이자, 억압당하고 배제되고 소외된 모든 생명에 대한 윤리적 애도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8-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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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숲에서 물로 내려간 절 - 죽림정사와 안도 다다오 '물의 절'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숲과 물이 어떻게 깨달음의 공간이 되는지를 다시 묻는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수도 라자그리하(오늘날 비하르주 라지기르) 인근의 대나무 숲을 붓다와 승가에 보시했다. 그곳이 바로 산스크리트어로 베누바나 비하라(Venuvana-vihara), 한역으로 죽림정사(竹林精舍), 곧 ‘대나무 숲의 수행처’이다.
이곳은 불교 최초의 사원으로 일컬어진다. 이곳에는 장엄한 지붕도, 불상을 모신 거대한 법당도 없었다. 대나무 숲과 수행자들을 위한 소박한 처소, 그리고 붓다의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빈터가 있었을 뿐이다. 죽림정사의 중심은 건축물이 아니라 숲이었다. 대나무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 대나무를 스쳐 지나는 바람, 땅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새소리가 모두 어우러져 수행의 공간을 이루었다. 여기서 자연은 건축물 바깥의 풍경이 아니라 수행자를 감싸는 벽이자 지붕이었다.
그로부터 2500여 년 뒤, 안도 다다오는 일본 아와지섬 혼푸쿠지(本福寺)의 수어당(水御堂), 곧 ‘물의 절’에서 불교의 원초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다시 묻는다. 그는 목조 기둥과 기와지붕이라는 전통 사원의 형식을 과감히 뒤집었다. 방문객이 먼저 마주하는 것은 웅장한 법당이 아니라 매끈한 콘크리트 벽과 하늘을 비추는 타원형 연못이다.
법당은 보이지 않고, 수면 위에는 계절에 따라 연꽃과 수련이 피어난다. 방문객은 보통의 절과 달리, 연못 한가운데를 가르는 좁은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하늘과 연꽃을 비추던 수면이 머리 위로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몸을 에워싼다.
안도에게 콘크리트는 자연을 차단하는 물질이 아니라, 물과 빛의 변화를 더욱 예민하게 감지하게 만드는 감각의 경계다.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빛으로 물든 법당에 이른다. 서쪽 햇빛이 붉은 격자를 통과해 내부로 스며들면, 법당은 마치 거대한 연꽃의 내부처럼 변한다.
‘염화미소’의 일화처럼,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깨달음과 말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심전심의 상징이다. 방문객은 연꽃이 덮인 물 아래로 들어가 그 내부에서 빛을 마주한다. 죽림정사와 물의 절은 외형적으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두 공간은 자연을 장식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만난다.
죽림정사에서는 숲 자체가 수행자를 감싸는 건축물이 되었고, 물의 절에서는 물과 연꽃과 햇빛이 법당의 지붕과 벽, 내부의 빛이 된다. 안도가 되살린 것은 불교 건축의 옛 형식이 아니다. 그는 자연 속에 자리를 내어주고 인간의 감각을 고요하게 만드는 불교 공간의 정신을 되살렸다. 어쩌면 깨달음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연꽃이 떠 있는 물 아래로 몸을 낮추어 천천히 내려갈 때 마음속 어느 공간에서 열리는 것은 아닐까 묻게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8-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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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해방은 여성에게도 왔는가 - 나혜석과 미완의 광복
어두운 배경 속 한 여성이 앉아 있다. 눈은 관람객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화면 밖 어딘가를 향한다. 오른쪽 어깨는 아래로 약간 처져 있고, 얼굴에서도 오른쪽 눈이 미세하게 내려앉아 있다. 나혜석의 ‘자화상’이다. 좌우가 어긋난 눈과 기울어진 얼굴, 각진 윤곽에서는 자연주의적 재현에서 벗어난 입체파와 표현주의적 변형이 연상된다. 본격적인 입체주의나 표현주의 작품은 아니지만, 외형의 닮음보다 내면의 긴장과 정신을 드러내려는 근대적 표현 의지는 분명하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관습적 여성 초상과 달리, 나혜석은 자신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기운 어깨와 비껴간 눈빛은 내면의 불안과 상처를 드러낸다. 여기서 얼굴은 외모를 기록하는 표면이 아니라 시대와 충돌한 정신이 나타나는 장소다.
1896년 태어난 나혜석은 화가이자 소설가, 여행가이며 여성운동가였다. 일본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의 새로움은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있지 않다. 그는 여성을 아내나 어머니가 아니라, 생각하고 욕망하며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독립된 인간으로 보았다.
1918년의 소설 ‘경희’에서도 주인공은 결혼과 순종을 요구하는 현실에 맞서 교육과 노동, 자립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자각은 당시에는 가부장적 질서를 뒤흔드는 선언이었다. 나혜석에게 글쓰기와 그림은 분리되지 않았다. 글이 여성에게 강요된 제도와 윤리를 비판하는 무기였다면, 회화는 여성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시화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예술보다 사생활에 더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이혼 이후 나혜석은 1934년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서’에서 남성 중심의 정조 관념과 결혼 제도의 위선을 비판했다. 남성의 외도에는 관대하면서 왜 여성에게만 순결과 희생을 요구하는가? 사회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를 조롱하고 추방했다. 사람들은 화가와 작가 나혜석보다 ‘이혼한 여자’를 먼저 보았다.
나혜석의 삶에서 1945년 광복은 온전한 해방을 뜻하지 않았다. 민족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여성은 여전히 가부장제와 성적 이중 규범 속에 묶여 있었고, 국가는 해방되었으나 여성의 삶은 해방되지 않았다. 그는 광복 3년 뒤인 1948년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나혜석의 ‘자화상’을 다시 바라본다. 관람객과 마주치지 않는 눈, 한쪽으로 처진 어깨와 비대칭의 얼굴은 한 시대를 견뎌낸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자신을 억압한 세계 너머의 삶을 바라보려는 의지도 남아 있다.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상처 입은 내면을 그린 그의 자화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모두 해방되었는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8-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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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까지 핵 시대의 동시대 미술
2026년 8월 6일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81주년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다시 핵발전에 기대려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히로시마와 후쿠시마의 기억은 더욱 불편하고 절박한 질문이 된다.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냉전 시기 1980년대 영국 핵무기 반대 의료인 캠페인(MCANW)이 제작한 포스터 ‘이것이 적이다’는 ‘적’의 얼굴을 인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 자체로 돌려놓았다.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이 이미지는 오늘날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핵무기는 위험하지만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이분법은 핵기술의 연속성과 폭력성을 가린다.
더 나아가 클레이 립스키는 핵의 공포가 소비되고 은폐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그는 2012년 사진 연작 ‘아토믹 오버룩’에서 해변이나 전망대 등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사진에 과거 핵실험의 버섯구름을 합성했다. 이 연작은 관광지의 장관이나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핵폭발이라는 재난 앞에서조차 구경꾼으로 남는 우리의 시선을 겨냥한다.
2015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출입 금지구역 내부에 설치된 프로젝트 ‘바람을 따라가지 마 Don’t Follow the Wind’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한다. 작품은 존재하지만 관객은 방사능 때문에 들어가 볼 수 없다. 전시는 열렸지만 관람할 수 없다. 이 역설은 핵 재난이 폭발의 순간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간임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두 작품은 재난 이후의 시간과 부재를 특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태린 사이먼의 ‘마지막 사진들’은 주민들이 피난 직전 남긴 일상의 사진을 모아 출입 금지구역 안의 태양광 서버에서 외부로 전송한다. 고이즈미 메이로의 ‘집’에서는 피난민이 언젠가 고향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나누게 될 가상의 대화가 빈집 안에서 반복된다. 사진과 목소리는 주민들이 떠난 자리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적이다’가 핵의 위험을 한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제시하고, ‘아토믹 오버룩’이 그 이미지의 스펙터클화를 비판한다면, ‘바람을 따라가지 마’는 보이지 않는 재난의 시간을 전시한다. 하나는 핵의 공포를 직접 경고하고, 하나는 그것을 소비하는 시선을 폭로하며, 다른 하나는 끝내 볼 수 없는 장소 앞에 관객을 세운다.
핵 재난은 물질과 몸, 장소와 기억 속에 남아 세대를 건너 지속된다. 사용후핵연료, 오염된 토양,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해체되지 않는 원자로 등, 핵발전은 재난의 가능성과 폐기물의 시간을 미래 세대에 넘기는 체제다. 예술은 바로 그 은폐를 걷어내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핵 재난을 지나간 한 장면과 화면 속 볼거리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핵발전을 다시 구원의 기술로 호명하는 오늘의 세계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핵 시대의 일부로 마주할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8-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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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격동의 시대에 산을 그린다는 것-유영국과 예술의 자율성
올해는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유영국의 산 연작은 얼핏 세잔을 떠올리게 한다. 세잔이 자연의 구체적 외양을 걷어내고 사물의 덩어리와 구조를 근원적 형태로 환원했다면, 유영국은 선명한 색면과 기하학적 선·면으로 산의 형상을 해체하고, 그것을 내면화된 기억과 조형적 질서로 다시 세웠다. 세잔에게 생트빅투아르 산이 자연을 회화의 구조로 바꾸는 실험장이었다면, 유영국에게 산은 고향 울진의 자연과 기억을 점·선·면·색의 추상적 구조로 응축하는 장소였다.
그의 산은 때로는 검고, 때로는 붉고, 때로는 푸르다. 산의 능선은 삼각형과 사선으로 바뀌고, 바위와 골짜기는 어두운 색면의 깊이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눈앞의 자연을 모사한 그림이 아니라, 자연이 몸과 기억 속에 남긴 힘을 회화의 구조로 바꾼 그림이다.
유영국은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추상미술 실험을 시작했고, 평생의 화업으로 전개했다.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의 중심에는 1949년 출범한 ‘국전’이 있었다. 국전은 일제강점기 ‘선전’의 관전 체제와 관행을 상당 부분 이어받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화단의 제도와 권위는 과거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유영국은 국전을 넘어서 한국 회화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흐름은 195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추상미술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新象會) 등은 국전 중심의 사실주의와 관전적 권위에 맞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실험한 장이었다. 추상미술은 기성 화단의 바깥에서 출발해 점차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 언어가 되었다. 유영국은 그 변화의 초입에서 산을 점·선·면·색의 질서로 바꾸며 한국 모더니즘의 한 축을 세웠다. 1987년의 ‘Work’에서 산은 붉은 하늘, 파란 띠, 검은 삼각형과 녹색 삼각형의 질서로 바뀌며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기억의 구조가 된다.
한편 유영국이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분단, 독재와 산업화의 격랑으로 요동친 시대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좀처럼 그 시대의 상처와 갈등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산이 있다. 붉고 푸른 산, 검고 깊은 산, 점과 선과 면으로 해체되고 강렬한 색채로 다시 세워진 산이다. 그렇다면 격동의 시대에 산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이 시대에 응답하는 방식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예술은 거리의 구호가 되고, 어떤 예술은 고통의 증언이 되며, 어떤 예술은 낡은 형식과 제도에 맞서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세운다. 유영국의 추상은 세 번째 경우에 가깝다. 그는 시대의 고통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예술이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산처럼 단단하게 남겼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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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거장과 폭력의 공간-김수근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설
대한민국 현대건축의 대부, 김수근은 공간사옥, 경동교회, 국립진주박물관 등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건축 전문지 <공간>을 창간했고, 수많은 예술가와 문화인을 후원했다. 또한 승효상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 건축가를 배출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의 건축 인생에는 쉬이 말하기 어려운 역설이 있다. 한쪽에는 공간사옥 지하의 문화공간 ‘공간사랑’이 있다. 1977년 개관한 150석 규모의 이 소극장은 1970~80년대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 연극인들이 모여든 자유로운 문화공간이었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첫 공연이 이루어졌고, 공옥진·홍신자·이매방 같은 예인들의 무대와 함께 황병기·김영동 등 전통음악과 창작 음악의 실험적 공연, 현대무용, 실내악, 재즈, 시 낭송, 건축 세미나 등이 이어졌다.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공간사랑은 새로운 예술적 상상력의 피난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다. 1976년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발주로 착공해 이듬해 준공된 이 건물은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조사와 고문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김근태가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고, 박종철 열사는 여기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국가 폭력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근대 권력은 감옥과 병원, 학교 같은 공간의 배치를 통해 인간을 감시하고 규율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그러한 권력의 건축이었다. 실제 이 건물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피의자를 끌고 가려고 오른쪽 측면 깊숙이 배치한 출입구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1층에서 5층 조사실로 직접 이어지는 원형 계단은 끌려온 사람의 방향감각을 흐리게 만든다. 5층의 극히 좁은 창문은 바깥 풍경을 차단하고, 조사실은 문이 열려도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배치되었다. 이렇게 건축은 단순한 수용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장치가 되었다. 그것이 설계자의 의도였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건축이 국가 폭력의 수행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사람을 가두고 고립시켰고,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이곳에서 건축은 미적 형식을 넘어 권력의 기술로 작동했다.
김수근의 공간사랑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 건축가의 모순을 넘어, 권위주의 시대에 예술과 권력이 맺었던 불편한 관계를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자유를 위한 공간이, 다른 한쪽에서는 통제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간은 사람을 해방할 수도 있고 억압할 수도 있다. 건축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물어야 한다. 한때 공간사랑에서는 자유를 노래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남영동에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역사는 더 오래 남는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026-07-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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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헌법의 장조, 예술의 단조-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In Minor Keys'
7월 17일 제헌절. 헌법은 한 나라가 어떤 원리 위에 서 있는지를 밝히는 가장 장엄한 문장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처럼 헌법은 밝고 단호한 ‘장조’의 언어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노래한다. 그러나 현실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장조로만 연주되지 않는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인 마이너 키즈’(In Minor Keys)이다. 직역하면 ‘여러 단조로’쯤 되겠지만, 의미를 살린다면 ‘낮은 음조로’가 더 낫겠다. 음악에서 장조가 밝음, 확신, 전진, 승리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면, 단조는 슬픔, 애도, 그리움, 상처, 내면의 떨림을 품는다. 따라서 이 전시 제목은 오늘의 세계를 더 이상 승리의 서사로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전쟁과 학살, 이주와 난민, 생태 위기와 식민주의의 후유증, 인종과 젠더의 불평등 속에서 오늘의 동시대 미술은 거대한 승리의 몸짓보다 낮고 깊은 울림을 선택한다. 비엔날레의 공식 소개문 역시 이 전시를 ‘낮은 주파수에 귀 기울이는 전시’로 설명한다.
이 전시를 구상한 코요 쿠오는 카메룬 태생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세계 미술계를 넘나든 큐레이터였다. 그녀는 ‘디아스포라’와 주변부의 예술적 목소리를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로 불러냈다. 가장 오래된 국제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낮은 음조로’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은 중심의 장대한 목소리보다 주변의 낮은 울림에 귀 기울이겠다는 선언이다. 세계의 역사를 승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패배한 자들, 떠도는 자들, 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의 음역에서 다시 듣겠다는 태도이다.
발터 벤야민에게 역사는 승자의 행진이 아니었다. 문명의 기념비마다 그 아래에는 희생과 야만의 흔적이 묻혀 있다. 그래서 기억은 기념비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그 그늘에 묻힌 파편과 잔해를 다시 읽는 일이다. 이번 전시의 여러 작품은 이 ‘단조’의 감각을 구체적인 형식으로 보여준다.
가자 출신 모하메드 조하의 ‘노 쉘터’(No Shelter)는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낮은 음조’를 가장 절실하게 들려주는 작품이다. 2025년 두바이 자위예 갤러리(Zawyeh Gallery)에서 선보인 ‘하우스리스’(Houseless) 연작은 ‘노 쉘터’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종이, 판지, 천 같은 버려진 재료를 겹쳐 붙인 콜라주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해 온 가자 지구의 삶을 닮아 있다. 가자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폐허 위에 남은 마지막 빛처럼 불안하게 떨린다. ‘노 쉘터’, 곧 ‘피난처 없음’이라는 제목은 집을 잃은 상태를 넘어, 인간이 몸을 의탁할 세계 자체가 무너진 시대의 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조하의 작품은 단순한 절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생명, 돌봄, 꿋꿋함에 바치는 낮은 진혼곡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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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메리 앤 베키오의 절규와 다시 불타는 가자
수잔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속 ‘플라톤의 동굴’에서 열두 살 때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사진을 보았고, 그 사진들이 “나를 날카롭게, 깊게, 순식간에 베었다”라고 말한다. 제롬 보이드 마운셀은 손택의 이 말이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을 구분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파악한다.
1970년 5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학에서 베트남전 확대에 반대하던 학생 시위 현장에 주방위군이 발포했고, 네 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스무 살 대학생 제프리 밀러가 포장도로 위에 쓰러져 있고, 그 곁에서 열네 살 소녀 메리 앤 베키오가 두 팔을 벌린 채 절규하고 있다. 존 필로의 이 사진은 이후 ‘켄트주립대의 피에타’라 불리며 반전 사진의 상징이 되었다.
7월 8일은 가자지구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참혹한 날짜다. 2014년 7월 8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보호선 작전’을 시작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그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2251명이 사망했고, 그중 1462명이 민간인, 551명이 어린이였다고 기록했다. 더 나아가 오늘의 가자는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라는 말로 고발하기 시작한 참혹한 폭력의 현장이 되었다.
스투디움은 사진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게 하는 이해의 영역이고, 푼크툼은 관람자의 주관적 기억과 경험을 건드리며 예기치 않게 감정의 상처를 남기는 세부다. 이 사진에서 스투디움은 분명하다. 베트남전과 닉슨의 캄보디아 확전, 미국 대학가의 반전 시위, 그리고 자국의 청년들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의 역사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사진은 사건 기록을 넘어 전쟁에 의해 파괴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정치적 이미지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우리를 베고 찌르는 것은 베키오의 벌어진 입, 하늘을 향해 펼친 두 팔, 죽은 청년 곁에서 터져 나온 통제 불가능한 절규다. 이것이 푼크툼이다. 푼크툼은 설명보다 먼저 온다. 우리는 이 사진의 역사적 맥락을 알기 전에 이미 그 소녀의 몸짓에 찔린다. 죽은 자의 침묵과 산 자의 비명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는 순간, 사진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상처의 사건이 된다.
사진의 푼크툼은 과거의 고통을 봉인하지 않고, 현재의 폭력 앞에서 다시 열리는 기억이다. 오늘 우리는 이 절규를 가자지구에서도 듣는다. 무너진 건물, 흰 천에 싸인 아이의 몸, 병원 복도에서 울부짖는 부모의 얼굴은 모두 다른 시대의 푼크툼이다. 권력은 폭력을 자신의 언어로 정당화하지만, 사진은 그 추상적 언어 속 폭력을 한 사람의 얼굴과 몸을 통해 폭로한다. 사진은 죽은 이를 살릴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이를 잊히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메리 앤 베키오의 절규는 반세기를 넘어 오늘도 우리를 찌른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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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철학과 파트리샤 피치니니
1996년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Dolly)가 태어났다. 이는 인간이 생명의 설계와 복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명의 신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고, 윤리와 생명에 대한 경외는 뒤로 밀려났다.
오늘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가장 강렬하고도 낯설게 시각화해 온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호주의 동시대 미술가 파트리샤 피치니니이다. 대표작 ‘The Young Family’(2002)는 처음 보는 순간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사람 같기도 하고 돼지 같기도 한 하이브리드 생명체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품고 누워 있다. 축 처진 살갗과 주름, 동물적인 육체는 기괴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조금 더 바라보면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새끼들을 품은 어미의 몸에서는 낯선 따뜻함과 보호 본능이 느껴진다. 혐오와 연민, 공포와 애정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로시 브라이도티는 21세기 ‘포스트휴먼’(posthuman) 철학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다. 브라이도티는 근대 인문주의가 상정했던 ‘보편적 인간’ 개념을 비판한다. 서구 근대가 말한 인간은 실제로는 백인, 남성, 이성 중심적 주체를 보편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브라이도티의 철학은 데리다의 해체주의 이후 등장한 새로운 철학 흐름과도 연결된다. 그녀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동물, 기술, 환경, 기계가 서로 얽혀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브라이도티는 해체 이후에 되찾아야 할 인간 내부의 공통적 보편성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생태적 공동성을 사유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단순한 기술철학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와 감수성의 철학이기도 하다. 피치니니의 조각은 바로 이러한 시대의 감각을 구현한다. 그의 작품 속 존재들은 인간도 동물도 아닌 혼종적 생명체들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그림을 그리고,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조직하며, 유전자 기술은 생명의 구조를 수정하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피치니니의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윤리로 비인간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녀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윤리를 느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생명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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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집을 걷다 - 서도호와 떠도는 기억의 미학
서도호는 서울, 뉴욕, 런던 등 자신이 살아온 집을 반투명한 천으로 다시 만든다. 그의 집은 보통의 단단한 건축물이 아니라, 접히고, 펼쳐지고, 옮겨지고, 다시 세워지는 집이다. 테이트 모던 2025년 전시 제목 ‘집을 걷다’(Walk the House)는 “집 안을 걷는다”는 뜻에 머물지 않고, 이사할 때 집을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세운다는 오래된 한국적 기억, 곧 집 자체가 이동한다는 감각도 담겨 있다.
그의 반투명 집은 기억의 비물질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그 집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슬프다. 천으로 된 벽과 공간, 문손잡이, 전등 스위치, 못과 나사의 흔적까지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집의 실체라기보다 ‘피부’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고, 존재하지만 단단하지 않다. 따라서 기억은 붙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잊었다고 생각하면 문득 되돌아온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어린 시절의 집이 우리의 기억과 몽상 속에 계속 되돌아온다고 말한다. 그에게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유와 기억과 꿈을 한데 묶어주는 내밀한 장소다. 구석은 몸을 숨기고 몽상에 잠기는 자리이며, 서랍은 비밀을 간직하는 공간이고, 장롱은 물건과 함께 내밀한 기억이 접혀 있는 장소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집은 몽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 우리 내면의 풍경을 이룬다. 집은 기억의 저장고이자 몽상의 원천이며, 인간이 세계와 만나기 전에 먼저 안온함과 보호를 배우는 첫 우주다.
서도호는 자신이 떠나온 집들을 반투명한 천으로 다시 세운다. 이때 집은 기억과 감정의 ‘피부’가 된다. 그의 작품은 바슐라르가 말한 기억 속의 집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다시 세운다. 그러나 그의 집은 바슐라르의 시적이고 내밀한 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 뉴욕, 런던으로 옮겨 다닌 한 개인의 집이면서, 동시에 전쟁과 이주, 유학과 노동,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해 온 한국인의 집이기도 하다. 개인의 기억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의 폭력과 이동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정치적 흔적을 품는다.
이 지점에서 서도호의 작품은 6·25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공간 감각과 깊이 만난다. 전쟁을 직접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집은 전쟁 이후 피란, 이주, 분단의 감각을 조용히 환기한다. 6·25는 수많은 사람에게 집을 잃게 한 사건이었다. 고향을 잃고, 가족과 헤어지고, 피란길에 오르고, 낯선 도시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했던 사건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집은 때로 주소가 아니라 상처다. 때로 머무는 곳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우리를 따라오는 유령이다. 서도호의 집은 바로 그 유령을 아름답고도 아프게 보여준다. 그의 집은 걷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집을 따라 기억의 복도를 걷는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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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철에서 피어난 꽃 - 스텔라의 '아마벨'과 자크 데리다의 해체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 꽃 모양의 거대한 철 구조물. 미국 현대미술가 프랑크 스텔라의 조각 ‘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 1997)이다. 높이 약 9m의 이 대형 공공조각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비행기 파편을 연상시키는 금속 부품을 용접해 만든 복합 구조 조각이다. 이 작품은 추락한 비행기 잔해처럼 기괴하고 낯선 형상으로 논란이 되었다.
스텔라는 미니멀리즘 회화의 대표적 작가로서 초기 작품은 대개 화면을 가득 채운 줄무늬 구조로 환영적 공간이나 상징적 서사를 제거한 극도로 절제된 회화였다. 그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말을 통해 회화를 상징이나 서사의 그릇이 아니라, 눈앞의 선과 색, 형태의 실제 구조로만 보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미니멀한 평면 회화를 넘어, 1960년대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을 통해 회화의 물리적 구조 자체를 조형의 요소로 확장했다. 이후 더 복잡한 곡선 구조와 색채의 역동성과 함께, 1970년대 이후 등장한 그의 부조와 조각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적 조형 실험이었다.
‘아마벨’은 이러한 조형적 진화의 한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이 조각은 전통 조각이 지녀 온 단일 형상과 의미 중심의 조형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을 특정하기 어렵고, 형태는 사방으로 확장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데리다의 ‘해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기존 구조와 의미 체계의 위계를 흔드는 철학적 작업이다. 고정된 중심이 해체되고, 의미의 확정이 끊임없이 지연되고(差延), 분산된다.
‘아마벨’의 조형 구조는 바로 이러한 해체적 특성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이 작품 앞에서 어떤 정면을 찾기 어렵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파편은 날개처럼 보이기도, 꽃잎처럼 보이기도, 폭발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미는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관람자의 이동과 함께 계속 미끄러진다. ‘아마벨’은 ‘구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정된 구조가 아니라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금속 부품들은 분해된 기계의 파편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들어낸다.
‘아마벨’은 산업 재료와 복잡한 구조를 통해 현대 미술과 현대 조각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조각의 형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구조와 질서는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아마벨’의 꽃은 아름답고 온전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파편과 충돌, 산업적 잔해와 도시의 소음 속에서 피어나는 해체된 꽃이다. ‘아마벨’은 도시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금속 조각이면서 동시에 현대 미학의 사유를 환기하는 하나의 철학적 장면을 이룬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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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민주주의의 군중 - 안토니 곰리와 도시의 감각
39년 전 1987년 6월 10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생과 노동자, 회사원과 시민들, 이름 없는 군중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군중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시각화한 동시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안토니 곰리다. 곰리의 조각은 전통적 기념비 조각과 다르다. 그는 영웅이나 지도자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 곳곳에 익명의 인간 몸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그의 인체들은 특정 개인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몸’,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특히 그의 ‘여전히 존재하는 몸들, Still Being/Corpos Presentes’(2012)는 각 4~40㎝ 크기, 2만 4000여 개의 테라코타 인물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은 말과 행위의 근본 조건이며, 그것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동일성을 강요하는 체제가 아니라, 차이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견디며 공존하는 형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쳐 전 세계의 사상, 문화, 예술을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는 보편성과 동일성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21세기 동시대에서 차이는 점점 공존이 아니라 분열로 변하고, 공동체는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들로 해체된다. 모두가 자신의 진실만을 주장하는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양성의 존중’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디우는 차이와 상대성만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유를 비판한다. 그는 차이의 상대주의를 넘어 공통의 보편성을 다시 제기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단순한 차이의 승인만으로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타자의 존중’만으로 정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란 어떤 ‘사건’ 이후, 사람들이 기존의 이해관계를 넘어 새로운 보편성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사건’이란 기존 질서가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순간이다. 68혁명, 파리 코뮌, 사랑의 만남, 혁신적 예술뿐 아니라, 우리로 말한다면 ‘87년 6월 항쟁’, ‘빛의 혁명’ 등이 그것이 될 수 있다.
곰리의 테라코타 군중, ‘광장’을 가득 메운 익명의 몸들은 모두 다른 얼굴과 자세를 지니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그의 군중은 단순한 인파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가 생성되는 순간의 ‘감각적 형상화’로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광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곰리의 군중은 그 불안하고도 위대한 가능성의 형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10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