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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까지 핵 시대의 동시대 미술
2026년 8월 6일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81주년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다시 핵발전에 기대려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히로시마와 후쿠시마의 기억은 더욱 불편하고 절박한 질문이 된다.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냉전 시기 1980년대 영국 핵무기 반대 의료인 캠페인(MCANW)이 제작한 포스터 ‘이것이 적이다’는 ‘적’의 얼굴을 인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 자체로 돌려놓았다.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이 이미지는 오늘날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핵무기는 위험하지만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이분법은 핵기술의 연속성과 폭력성을 가린다.
더 나아가 클레이 립스키는 핵의 공포가 소비되고 은폐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그는 2012년 사진 연작 ‘아토믹 오버룩’에서 해변이나 전망대 등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사진에 과거 핵실험의 버섯구름을 합성했다. 이 연작은 관광지의 장관이나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핵폭발이라는 재난 앞에서조차 구경꾼으로 남는 우리의 시선을 겨냥한다.
2015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출입 금지구역 내부에 설치된 프로젝트 ‘바람을 따라가지 마 Don’t Follow the Wind’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한다. 작품은 존재하지만 관객은 방사능 때문에 들어가 볼 수 없다. 전시는 열렸지만 관람할 수 없다. 이 역설은 핵 재난이 폭발의 순간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간임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두 작품은 재난 이후의 시간과 부재를 특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태린 사이먼의 ‘마지막 사진들’은 주민들이 피난 직전 남긴 일상의 사진을 모아 출입 금지구역 안의 태양광 서버에서 외부로 전송한다. 고이즈미 메이로의 ‘집’에서는 피난민이 언젠가 고향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나누게 될 가상의 대화가 빈집 안에서 반복된다. 사진과 목소리는 주민들이 떠난 자리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적이다’가 핵의 위험을 한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제시하고, ‘아토믹 오버룩’이 그 이미지의 스펙터클화를 비판한다면, ‘바람을 따라가지 마’는 보이지 않는 재난의 시간을 전시한다. 하나는 핵의 공포를 직접 경고하고, 하나는 그것을 소비하는 시선을 폭로하며, 다른 하나는 끝내 볼 수 없는 장소 앞에 관객을 세운다.
핵 재난은 물질과 몸, 장소와 기억 속에 남아 세대를 건너 지속된다. 사용후핵연료, 오염된 토양,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해체되지 않는 원자로 등, 핵발전은 재난의 가능성과 폐기물의 시간을 미래 세대에 넘기는 체제다. 예술은 바로 그 은폐를 걷어내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핵 재난을 지나간 한 장면과 화면 속 볼거리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핵발전을 다시 구원의 기술로 호명하는 오늘의 세계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핵 시대의 일부로 마주할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8-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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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격동의 시대에 산을 그린다는 것-유영국과 예술의 자율성
올해는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유영국의 산 연작은 얼핏 세잔을 떠올리게 한다. 세잔이 자연의 구체적 외양을 걷어내고 사물의 덩어리와 구조를 근원적 형태로 환원했다면, 유영국은 선명한 색면과 기하학적 선·면으로 산의 형상을 해체하고, 그것을 내면화된 기억과 조형적 질서로 다시 세웠다. 세잔에게 생트빅투아르 산이 자연을 회화의 구조로 바꾸는 실험장이었다면, 유영국에게 산은 고향 울진의 자연과 기억을 점·선·면·색의 추상적 구조로 응축하는 장소였다.
그의 산은 때로는 검고, 때로는 붉고, 때로는 푸르다. 산의 능선은 삼각형과 사선으로 바뀌고, 바위와 골짜기는 어두운 색면의 깊이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눈앞의 자연을 모사한 그림이 아니라, 자연이 몸과 기억 속에 남긴 힘을 회화의 구조로 바꾼 그림이다.
유영국은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추상미술 실험을 시작했고, 평생의 화업으로 전개했다.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의 중심에는 1949년 출범한 ‘국전’이 있었다. 국전은 일제강점기 ‘선전’의 관전 체제와 관행을 상당 부분 이어받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화단의 제도와 권위는 과거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유영국은 국전을 넘어서 한국 회화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흐름은 195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추상미술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新象會) 등은 국전 중심의 사실주의와 관전적 권위에 맞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실험한 장이었다. 추상미술은 기성 화단의 바깥에서 출발해 점차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 언어가 되었다. 유영국은 그 변화의 초입에서 산을 점·선·면·색의 질서로 바꾸며 한국 모더니즘의 한 축을 세웠다. 1987년의 ‘Work’에서 산은 붉은 하늘, 파란 띠, 검은 삼각형과 녹색 삼각형의 질서로 바뀌며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기억의 구조가 된다.
한편 유영국이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분단, 독재와 산업화의 격랑으로 요동친 시대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좀처럼 그 시대의 상처와 갈등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산이 있다. 붉고 푸른 산, 검고 깊은 산, 점과 선과 면으로 해체되고 강렬한 색채로 다시 세워진 산이다. 그렇다면 격동의 시대에 산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이 시대에 응답하는 방식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예술은 거리의 구호가 되고, 어떤 예술은 고통의 증언이 되며, 어떤 예술은 낡은 형식과 제도에 맞서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세운다. 유영국의 추상은 세 번째 경우에 가깝다. 그는 시대의 고통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예술이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산처럼 단단하게 남겼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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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거장과 폭력의 공간-김수근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설
대한민국 현대건축의 대부, 김수근은 공간사옥, 경동교회, 국립진주박물관 등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건축 전문지 <공간>을 창간했고, 수많은 예술가와 문화인을 후원했다. 또한 승효상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 건축가를 배출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의 건축 인생에는 쉬이 말하기 어려운 역설이 있다. 한쪽에는 공간사옥 지하의 문화공간 ‘공간사랑’이 있다. 1977년 개관한 150석 규모의 이 소극장은 1970~80년대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 연극인들이 모여든 자유로운 문화공간이었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첫 공연이 이루어졌고, 공옥진·홍신자·이매방 같은 예인들의 무대와 함께 황병기·김영동 등 전통음악과 창작 음악의 실험적 공연, 현대무용, 실내악, 재즈, 시 낭송, 건축 세미나 등이 이어졌다.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공간사랑은 새로운 예술적 상상력의 피난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다. 1976년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발주로 착공해 이듬해 준공된 이 건물은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조사와 고문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김근태가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고, 박종철 열사는 여기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국가 폭력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근대 권력은 감옥과 병원, 학교 같은 공간의 배치를 통해 인간을 감시하고 규율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그러한 권력의 건축이었다. 실제 이 건물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피의자를 끌고 가려고 오른쪽 측면 깊숙이 배치한 출입구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1층에서 5층 조사실로 직접 이어지는 원형 계단은 끌려온 사람의 방향감각을 흐리게 만든다. 5층의 극히 좁은 창문은 바깥 풍경을 차단하고, 조사실은 문이 열려도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배치되었다. 이렇게 건축은 단순한 수용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장치가 되었다. 그것이 설계자의 의도였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건축이 국가 폭력의 수행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사람을 가두고 고립시켰고,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이곳에서 건축은 미적 형식을 넘어 권력의 기술로 작동했다.
김수근의 공간사랑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 건축가의 모순을 넘어, 권위주의 시대에 예술과 권력이 맺었던 불편한 관계를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자유를 위한 공간이, 다른 한쪽에서는 통제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간은 사람을 해방할 수도 있고 억압할 수도 있다. 건축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물어야 한다. 한때 공간사랑에서는 자유를 노래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남영동에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역사는 더 오래 남는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026-07-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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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헌법의 장조, 예술의 단조-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In Minor Keys'
7월 17일 제헌절. 헌법은 한 나라가 어떤 원리 위에 서 있는지를 밝히는 가장 장엄한 문장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처럼 헌법은 밝고 단호한 ‘장조’의 언어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노래한다. 그러나 현실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장조로만 연주되지 않는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인 마이너 키즈’(In Minor Keys)이다. 직역하면 ‘여러 단조로’쯤 되겠지만, 의미를 살린다면 ‘낮은 음조로’가 더 낫겠다. 음악에서 장조가 밝음, 확신, 전진, 승리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면, 단조는 슬픔, 애도, 그리움, 상처, 내면의 떨림을 품는다. 따라서 이 전시 제목은 오늘의 세계를 더 이상 승리의 서사로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전쟁과 학살, 이주와 난민, 생태 위기와 식민주의의 후유증, 인종과 젠더의 불평등 속에서 오늘의 동시대 미술은 거대한 승리의 몸짓보다 낮고 깊은 울림을 선택한다. 비엔날레의 공식 소개문 역시 이 전시를 ‘낮은 주파수에 귀 기울이는 전시’로 설명한다.
이 전시를 구상한 코요 쿠오는 카메룬 태생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세계 미술계를 넘나든 큐레이터였다. 그녀는 ‘디아스포라’와 주변부의 예술적 목소리를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로 불러냈다. 가장 오래된 국제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낮은 음조로’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은 중심의 장대한 목소리보다 주변의 낮은 울림에 귀 기울이겠다는 선언이다. 세계의 역사를 승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패배한 자들, 떠도는 자들, 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의 음역에서 다시 듣겠다는 태도이다.
발터 벤야민에게 역사는 승자의 행진이 아니었다. 문명의 기념비마다 그 아래에는 희생과 야만의 흔적이 묻혀 있다. 그래서 기억은 기념비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그 그늘에 묻힌 파편과 잔해를 다시 읽는 일이다. 이번 전시의 여러 작품은 이 ‘단조’의 감각을 구체적인 형식으로 보여준다.
가자 출신 모하메드 조하의 ‘노 쉘터’(No Shelter)는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낮은 음조’를 가장 절실하게 들려주는 작품이다. 2025년 두바이 자위예 갤러리(Zawyeh Gallery)에서 선보인 ‘하우스리스’(Houseless) 연작은 ‘노 쉘터’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종이, 판지, 천 같은 버려진 재료를 겹쳐 붙인 콜라주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해 온 가자 지구의 삶을 닮아 있다. 가자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폐허 위에 남은 마지막 빛처럼 불안하게 떨린다. ‘노 쉘터’, 곧 ‘피난처 없음’이라는 제목은 집을 잃은 상태를 넘어, 인간이 몸을 의탁할 세계 자체가 무너진 시대의 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조하의 작품은 단순한 절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생명, 돌봄, 꿋꿋함에 바치는 낮은 진혼곡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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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메리 앤 베키오의 절규와 다시 불타는 가자
수잔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속 ‘플라톤의 동굴’에서 열두 살 때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사진을 보았고, 그 사진들이 “나를 날카롭게, 깊게, 순식간에 베었다”라고 말한다. 제롬 보이드 마운셀은 손택의 이 말이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을 구분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파악한다.
1970년 5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학에서 베트남전 확대에 반대하던 학생 시위 현장에 주방위군이 발포했고, 네 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스무 살 대학생 제프리 밀러가 포장도로 위에 쓰러져 있고, 그 곁에서 열네 살 소녀 메리 앤 베키오가 두 팔을 벌린 채 절규하고 있다. 존 필로의 이 사진은 이후 ‘켄트주립대의 피에타’라 불리며 반전 사진의 상징이 되었다.
7월 8일은 가자지구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참혹한 날짜다. 2014년 7월 8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보호선 작전’을 시작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그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2251명이 사망했고, 그중 1462명이 민간인, 551명이 어린이였다고 기록했다. 더 나아가 오늘의 가자는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라는 말로 고발하기 시작한 참혹한 폭력의 현장이 되었다.
스투디움은 사진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게 하는 이해의 영역이고, 푼크툼은 관람자의 주관적 기억과 경험을 건드리며 예기치 않게 감정의 상처를 남기는 세부다. 이 사진에서 스투디움은 분명하다. 베트남전과 닉슨의 캄보디아 확전, 미국 대학가의 반전 시위, 그리고 자국의 청년들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의 역사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사진은 사건 기록을 넘어 전쟁에 의해 파괴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정치적 이미지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우리를 베고 찌르는 것은 베키오의 벌어진 입, 하늘을 향해 펼친 두 팔, 죽은 청년 곁에서 터져 나온 통제 불가능한 절규다. 이것이 푼크툼이다. 푼크툼은 설명보다 먼저 온다. 우리는 이 사진의 역사적 맥락을 알기 전에 이미 그 소녀의 몸짓에 찔린다. 죽은 자의 침묵과 산 자의 비명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는 순간, 사진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상처의 사건이 된다.
사진의 푼크툼은 과거의 고통을 봉인하지 않고, 현재의 폭력 앞에서 다시 열리는 기억이다. 오늘 우리는 이 절규를 가자지구에서도 듣는다. 무너진 건물, 흰 천에 싸인 아이의 몸, 병원 복도에서 울부짖는 부모의 얼굴은 모두 다른 시대의 푼크툼이다. 권력은 폭력을 자신의 언어로 정당화하지만, 사진은 그 추상적 언어 속 폭력을 한 사람의 얼굴과 몸을 통해 폭로한다. 사진은 죽은 이를 살릴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이를 잊히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메리 앤 베키오의 절규는 반세기를 넘어 오늘도 우리를 찌른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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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철학과 파트리샤 피치니니
1996년 7월 5일,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Dolly)가 태어났다. 이는 인간이 생명의 설계와 복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명의 신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고, 윤리와 생명에 대한 경외는 뒤로 밀려났다.
오늘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가장 강렬하고도 낯설게 시각화해 온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호주의 동시대 미술가 파트리샤 피치니니이다. 대표작 ‘The Young Family’(2002)는 처음 보는 순간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사람 같기도 하고 돼지 같기도 한 하이브리드 생명체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품고 누워 있다. 축 처진 살갗과 주름, 동물적인 육체는 기괴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조금 더 바라보면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새끼들을 품은 어미의 몸에서는 낯선 따뜻함과 보호 본능이 느껴진다. 혐오와 연민, 공포와 애정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탈리아 철학자 로시 브라이도티는 21세기 ‘포스트휴먼’(posthuman) 철학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다. 브라이도티는 근대 인문주의가 상정했던 ‘보편적 인간’ 개념을 비판한다. 서구 근대가 말한 인간은 실제로는 백인, 남성, 이성 중심적 주체를 보편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브라이도티의 철학은 데리다의 해체주의 이후 등장한 새로운 철학 흐름과도 연결된다. 그녀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동물, 기술, 환경, 기계가 서로 얽혀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브라이도티는 해체 이후에 되찾아야 할 인간 내부의 공통적 보편성보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생태적 공동성을 사유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단순한 기술철학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와 감수성의 철학이기도 하다. 피치니니의 조각은 바로 이러한 시대의 감각을 구현한다. 그의 작품 속 존재들은 인간도 동물도 아닌 혼종적 생명체들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그림을 그리고,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조직하며, 유전자 기술은 생명의 구조를 수정하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피치니니의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윤리로 비인간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녀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윤리를 느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생명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7-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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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집을 걷다 - 서도호와 떠도는 기억의 미학
서도호는 서울, 뉴욕, 런던 등 자신이 살아온 집을 반투명한 천으로 다시 만든다. 그의 집은 보통의 단단한 건축물이 아니라, 접히고, 펼쳐지고, 옮겨지고, 다시 세워지는 집이다. 테이트 모던 2025년 전시 제목 ‘집을 걷다’(Walk the House)는 “집 안을 걷는다”는 뜻에 머물지 않고, 이사할 때 집을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세운다는 오래된 한국적 기억, 곧 집 자체가 이동한다는 감각도 담겨 있다.
그의 반투명 집은 기억의 비물질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그 집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슬프다. 천으로 된 벽과 공간, 문손잡이, 전등 스위치, 못과 나사의 흔적까지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집의 실체라기보다 ‘피부’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고, 존재하지만 단단하지 않다. 따라서 기억은 붙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잊었다고 생각하면 문득 되돌아온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어린 시절의 집이 우리의 기억과 몽상 속에 계속 되돌아온다고 말한다. 그에게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유와 기억과 꿈을 한데 묶어주는 내밀한 장소다. 구석은 몸을 숨기고 몽상에 잠기는 자리이며, 서랍은 비밀을 간직하는 공간이고, 장롱은 물건과 함께 내밀한 기억이 접혀 있는 장소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집은 몽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 우리 내면의 풍경을 이룬다. 집은 기억의 저장고이자 몽상의 원천이며, 인간이 세계와 만나기 전에 먼저 안온함과 보호를 배우는 첫 우주다.
서도호는 자신이 떠나온 집들을 반투명한 천으로 다시 세운다. 이때 집은 기억과 감정의 ‘피부’가 된다. 그의 작품은 바슐라르가 말한 기억 속의 집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다시 세운다. 그러나 그의 집은 바슐라르의 시적이고 내밀한 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 뉴욕, 런던으로 옮겨 다닌 한 개인의 집이면서, 동시에 전쟁과 이주, 유학과 노동,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해 온 한국인의 집이기도 하다. 개인의 기억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의 폭력과 이동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정치적 흔적을 품는다.
이 지점에서 서도호의 작품은 6·25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공간 감각과 깊이 만난다. 전쟁을 직접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집은 전쟁 이후 피란, 이주, 분단의 감각을 조용히 환기한다. 6·25는 수많은 사람에게 집을 잃게 한 사건이었다. 고향을 잃고, 가족과 헤어지고, 피란길에 오르고, 낯선 도시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했던 사건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집은 때로 주소가 아니라 상처다. 때로 머무는 곳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우리를 따라오는 유령이다. 서도호의 집은 바로 그 유령을 아름답고도 아프게 보여준다. 그의 집은 걷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집을 따라 기억의 복도를 걷는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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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철에서 피어난 꽃 - 스텔라의 '아마벨'과 자크 데리다의 해체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 꽃 모양의 거대한 철 구조물. 미국 현대미술가 프랑크 스텔라의 조각 ‘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 1997)이다. 높이 약 9m의 이 대형 공공조각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비행기 파편을 연상시키는 금속 부품을 용접해 만든 복합 구조 조각이다. 이 작품은 추락한 비행기 잔해처럼 기괴하고 낯선 형상으로 논란이 되었다.
스텔라는 미니멀리즘 회화의 대표적 작가로서 초기 작품은 대개 화면을 가득 채운 줄무늬 구조로 환영적 공간이나 상징적 서사를 제거한 극도로 절제된 회화였다. 그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말을 통해 회화를 상징이나 서사의 그릇이 아니라, 눈앞의 선과 색, 형태의 실제 구조로만 보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미니멀한 평면 회화를 넘어, 1960년대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을 통해 회화의 물리적 구조 자체를 조형의 요소로 확장했다. 이후 더 복잡한 곡선 구조와 색채의 역동성과 함께, 1970년대 이후 등장한 그의 부조와 조각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적 조형 실험이었다.
‘아마벨’은 이러한 조형적 진화의 한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이 조각은 전통 조각이 지녀 온 단일 형상과 의미 중심의 조형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을 특정하기 어렵고, 형태는 사방으로 확장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데리다의 ‘해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기존 구조와 의미 체계의 위계를 흔드는 철학적 작업이다. 고정된 중심이 해체되고, 의미의 확정이 끊임없이 지연되고(差延), 분산된다.
‘아마벨’의 조형 구조는 바로 이러한 해체적 특성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이 작품 앞에서 어떤 정면을 찾기 어렵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파편은 날개처럼 보이기도, 꽃잎처럼 보이기도, 폭발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미는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관람자의 이동과 함께 계속 미끄러진다. ‘아마벨’은 ‘구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정된 구조가 아니라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금속 부품들은 분해된 기계의 파편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들어낸다.
‘아마벨’은 산업 재료와 복잡한 구조를 통해 현대 미술과 현대 조각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조각의 형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구조와 질서는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아마벨’의 꽃은 아름답고 온전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파편과 충돌, 산업적 잔해와 도시의 소음 속에서 피어나는 해체된 꽃이다. ‘아마벨’은 도시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금속 조각이면서 동시에 현대 미학의 사유를 환기하는 하나의 철학적 장면을 이룬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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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민주주의의 군중 - 안토니 곰리와 도시의 감각
39년 전 1987년 6월 10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생과 노동자, 회사원과 시민들, 이름 없는 군중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군중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시각화한 동시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안토니 곰리다. 곰리의 조각은 전통적 기념비 조각과 다르다. 그는 영웅이나 지도자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 곳곳에 익명의 인간 몸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그의 인체들은 특정 개인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몸’,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특히 그의 ‘여전히 존재하는 몸들, Still Being/Corpos Presentes’(2012)는 각 4~40㎝ 크기, 2만 4000여 개의 테라코타 인물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은 말과 행위의 근본 조건이며, 그것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동일성을 강요하는 체제가 아니라, 차이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견디며 공존하는 형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쳐 전 세계의 사상, 문화, 예술을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는 보편성과 동일성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21세기 동시대에서 차이는 점점 공존이 아니라 분열로 변하고, 공동체는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들로 해체된다. 모두가 자신의 진실만을 주장하는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양성의 존중’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디우는 차이와 상대성만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유를 비판한다. 그는 차이의 상대주의를 넘어 공통의 보편성을 다시 제기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단순한 차이의 승인만으로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타자의 존중’만으로 정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란 어떤 ‘사건’ 이후, 사람들이 기존의 이해관계를 넘어 새로운 보편성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사건’이란 기존 질서가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순간이다. 68혁명, 파리 코뮌, 사랑의 만남, 혁신적 예술뿐 아니라, 우리로 말한다면 ‘87년 6월 항쟁’, ‘빛의 혁명’ 등이 그것이 될 수 있다.
곰리의 테라코타 군중, ‘광장’을 가득 메운 익명의 몸들은 모두 다른 얼굴과 자세를 지니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그의 군중은 단순한 인파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가 생성되는 순간의 ‘감각적 형상화’로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광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곰리의 군중은 그 불안하고도 위대한 가능성의 형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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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아이 웨이웨이와 민주주의의 기억
1989년 6월 4일 새벽,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탱크와 장갑차가 들이닥쳤다. 민주화,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은 군대의 무력 진압 속에 쓰러졌다. 수백~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당국은 이 사건을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하고 검열을 통해 공적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러한 억압된 기억을 끈질기게 호출해 온 작가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감추고 삭제하려는 사건과 이름들을 예술 속에서 다시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아름다운 형식 이전에 기억의 복원에 가깝다. 특히 그의 설치 작품 ‘Remembering’(2009)은 천안문을 직접 재현한 작품은 아니지만, 천안문 이후의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부실 공사로 무너진 학교 건물 아래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이름을 직접 조사하고 기록했다. 그는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파사드를 9000개의 어린이 배낭으로 장식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들이 어린 학생들의 배낭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푸른색 바탕에 빨강, 노랑, 녹색의 글자들이 반복 배치됨으로써 색면의 공간성이 강조된다.
이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개인의 존엄을 의미한다. 작품 속에 배낭으로 따로 새겨진, “그녀는 이 세상에서 7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문장은 설치미술의 몸 감각으로 연결된다. 이 문장은 당시 희생된 한 소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다. 한 아이의 짧은 삶을 기억하려는 사적인 문장이 작품 속에서 국가적 재난의 책임 문제를 고발하는 정치적 언어가 되었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은 망각에 맞서는 일종의 ‘기억 투쟁’이다. 기억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권력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구성된다. 권력은 언제나 불편한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기억을 다시 공적 공간으로 불러낸다.
6·3 지방선거 또한 단순한 행정 권력의 교체만은 아닐 것이다. 선거의 밑바닥에는 어떤 사회를 기억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감각이 흐르고 있다. 4·19, 부마항쟁과 5·18, 6월 항쟁의 기억 역시 끊임없이 다시 말해지고 다시 해석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회는 쉽게 권위주의로 되돌아간다.
아이 웨이웨이가 걸어둔 9000개의 어린이 배낭은 추모의 오브제를 넘어, 서로 다른 기억들이 충돌하는 공적 공간에서 국가가 지우려 한 이름들을 다시 공동체의 기억 속에 새겨 넣으려는 몸짓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역시 결국 이러한 기억의 축적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회의 감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6-0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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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에밀리 데이비슨과 여성의 참정권
선거를 앞두고, 1913년 6월 4일의 사건을 떠올린다. 런던 근교 엠섬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더비 경마대회’에서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은 여성 참정권을 부르짖으며, 국왕 조지 5세 소유의 말 ‘엔머’(Anmer)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말발굽에 밟히는 중상을 입고,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국 내 여성 참정권 운동이 더 격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영국 정치권은 1918년,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1928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보통선거권을 인정했다.
미국 역시 오랜 여성운동 끝에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했다. 프랑스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나라’ 스위스조차 무려 1971년에 연방 차원의 여성 선거권을 허용했다.
한편 한국 여성은 1948년 제헌헌법과 함께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여성들이 수십 년 동안 거리 시위와 투옥, 단식투쟁 등을 거치며 쟁취한 권리와는 다소 달랐다. 근우회나 여성 계몽운동 등 중요한 여성운동이 있었지만, 서구의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처럼 여성 참정권 자체가 사회 전체의 거대한 정치적 갈등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여성의 정치적 권리가 법적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인정되었음에도, 그것이 사회적 감각과 문화 속에 충분히 내면화되는 과정은 더뎠다. 오늘날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언어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스트리트 아티스트 제롬 데이븐포트(예명 Ketones6000)는 런던 동부 보우(Bow)의 동네 펍 ‘로드 머페스’(Lord Morpeth)의 외벽에 스프러제트 운동가 실비아 팽크허스트를 그렸다. 거대한 얼굴은 도시의 벽면을 점유하며, 주변부에 존재하던 여성들의 정치적 존재를 다시 거리의 중심으로 호출한다. 이 작품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집단적 기억과 노동계급 여성들의 정치적 각성을 담은 공공미술에 가깝다.
현대의 거리미술 작업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민주주의 문제로 다시 환기한다. 이들의 중요한 미학적 의미는, 박물관에 박제된 역사를 거리와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서프러제트 벽화는 역사 삽화를 넘어, 도시의 벽을 공적 기억 장소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이미지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한때 거리 시위와 행진, 체포와 투옥 속에서 이루어졌듯, 오늘날의 거리미술 역시 제도권 밖의 목소리를 공적 공간에 다시 출현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때 예술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잊힌 존재들을 현재의 감각 속으로 다시 소환하는 기억의 실천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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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팔만대장경, 차이와 반복이 만들어낸 미학적 형식
5월 24일,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는다.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등 불교의 핵심 경전이 집대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불교 경전의 보고(寶庫).
그러나 이 거대한 유산에서 미학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따로 있다. 무엇이 새겨져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새겨졌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팔만대장경의 또 다른 감동은 바로 텍스트 이전의 형식에, 의미 이전의 감각에 있다. 팔만대장경은 정확히 8만 1258판의 목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슷한 크기, 엄정한 배열, 끝없이 이어지는 문자들.
그것은 완벽한 동일성의 세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그 질서는 조용히 흔들린다. 여기서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떠오른다. 반복은 동일성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생성하는 사건이다. 나뭇결은 저마다 다르고, 칼끝의 떨림도 다르다. 새겨진 획의 깊이와 번짐, 글자의 미세한 균형 또한 조금씩 다르다. 각각의 목판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대장경의 장엄함은 이 무수한 차이가 거대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내는 질서에 있다.
수백 년 전 몽골 침입 이후 국가적 위기 속, 장인의 손끝에 일었을 망설임, 한 자를 완성하고 다시 다음 글자 앞에 앉았을 그 인내와 집중. 그 마음은 나라의 안녕을 비는 서원,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구도적 염원,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장경의 숭고함은 단지 규모에서 오지 않는다. 그 위대함은 내용만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다.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 끝없는 손길의 염원, 바로 그것이 숭고를 만들어낸다. 자연통풍과 습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읽기보다 먼저 멈추게 된다. 끝없이 이어진 목판 서가는 그 자체로 거대한 설치 미술이라 하겠다. 오래된 나무 향은 서늘한 공기와 섞여 천천히 코끝에 스미고, 낮게 스며든 빛은 목판 위를 고요히 흐른다. 발걸음은 느려지고, 말소리는 낮아진다. 생각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바빴던 시간, 흔들리던 생각들, 쉬이 지치던 날들이 잠시 멈춘다.
판각을 새기는 수백 년 전 장인들의 모습, 한 자 한 자 새기며 붙들었던 집중과 인내 속의 그 염원이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문득 반가사유상의 고요한 미소가 떠오른다. 팔만대장경은 단지 경전을 새긴 목판이 아니다. 인간의 기다림과 기도, 그리고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마음을 나무 위에 새긴 시간의 숲이다. 초파일을 앞두고 다시 생각한다. 수없이 반복된 손길이 어떻게 아름다움이 되는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위대한 미학적 형식이 되는지를.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2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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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죽음도 상품이 되는 시대 - 데이미언 허스트와 자본주의적 숭고
1990년대 영국 미술계를 흔든 ‘영국 청년 작가들’(YBAs) 중 가장 큰 명성과 논란을 함께 얻은 인물은 단연 데이미언 허스트이다. 그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상어, 소, 양 등의 사체를 보존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가 회피해 온 죽음의 물리적 실재를 전시장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직접 대면한 ‘살아 있는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서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에서 상어는 여전히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위협은 이미 무력화되어 있다.
칸트적 의미에서 숭고는 인간의 표상 능력을 넘어서는 거대함이나 압도적 힘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와 두려움을 전제로 했다. 동시에 인간은 그러한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사유하고 견뎌낼 수 있는 자신의 이성 능력을 자각하면서 숭고를 경험한다. 다시 말해 숭고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공포를 넘어서는 정신의 자각이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숭고를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시 해석하며, 재현 불가능한 것을 묘사하고자 할 때, 다시 말해 이미지와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균열과 부재의 감각에서 숭고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는 18세기 인간 두개골을 본뜬 백금 캐스트 위에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 실제 사람의 치아, 이마에 52캐럿의 대형 핑크 다이아몬드를 장식한 작품이다. 여기서 죽음은 혐오나 공포를 넘어 최고급 사치품처럼 제시되며, ‘숭고’는 더 이상 인간을 초월로 이끄는 감정이 아니라, 통제되고 연출된 충격, 혹은 자본의 규모와 욕망을 체감하게 하는 시각적 효과로 전환된다. 허스트의 해골은 죽음을 보여주지만, 정작 죽음 자체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와 같이 허스트의 죽음 이미지는 화려한 표면 아래 결코 완전히 재현되거나 소유될 수 없는 죽음의 공백을 남긴다는 점에서, 리오타르가 말한 포스트모던 숭고의 흔적 또한 드러낸다.
한편, 해골의 과도한 치장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 ‘화폐의 물신성(物神性)’을 드러내려는 허스트의 전략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소비 자본주의의 논리에 깊숙이 편입된다는 점에서 역설을 드러낸다. 허스트는 2008년,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던 관행을 깨고, 신작 작품들을 곧바로 소더비 경매에 출품하면서 예술가가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 자체를 작품처럼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능숙하게 희소성, 화제성, 고가 판매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 미술 시장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그는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체제와 공모하는 작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지점에서 허스트는 예술이 위안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야 한다는 YBAs의 태도를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죽음을 장식한 것은 해골이 아니라 욕망이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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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헌법에 새겨야 할 이름 - 기억은 어떻게 국가의 형식이 되는가
부마와 5·18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질문이다. 국가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헌법에 새길 것인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울려 퍼진 ‘유신 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시민의 각성이었고, 자크 랑시에르의 말처럼 권력에 의해 가려지고 말해지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의 전환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를 종식하는 거대한 불꽃이 되었고, 그 불꽃은 80년 5·18 민주화운동과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헌법은 모든 법 위에 서서 국가의 근본 가치와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한계를 규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또한 헌법전문은 그 정당성이 어떤 역사와 희생 위에서 세워졌는지를 드러내는 정신적 선언이며, 국민이 공유하는 기억의 형식이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비워두는가에 따라, 국가는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부마민주항쟁은 ‘군부독재’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린 최초의 시민 항쟁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지켜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그 윤리적 기준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헌법전문 밖에 머물러 있다. 이 공백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서사의 단절이며, 국가 기억의 불균형이다.
홍성담의 판화는 그 공백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검은 선으로 깊게 파인 화면 속에서, 광주의 거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장면으로 솟아오른다. 불길과 연기, 무너진 차량, 그리고 무엇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몸짓, 이 이미지는 어떤 특정한 순간을 재현한다기보다, 국가 폭력과 시민의 저항이 충돌하던 감각의 총체를 우리 앞에 다시 펼쳐 놓는다. 판화 속 인물들은 공포 속에서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이들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말하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통의 감각과 행동을 통해 연대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형성되는 ‘다중’이다. 이 다중은 공통의 분노와 존엄의 감각을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었다. 홍성담의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적 주체가 형성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최근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2016년의 ‘촛불 항쟁’과 2024-25년의 ‘빛의 혁명’은 국민주권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경험은 헌법이 아직 완결된 기억의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제 국회와 국민은 이 역사적 공백에 응답해야 한다. 헌법전문은 법이 아니라 기억이다. 부마와 5·18을 (그리고 추후 6·10항쟁까지) 헌법전문에 새겨 그 기억을 완성하는 것, 이야말로 이 시대가 감당해야 할 헌정사적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재의 과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5-0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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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공휴일이 된 노동절 이후, 노동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26년, 노동절(5월1일)이 공식 공휴일이 되었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그의 희생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또한 70년대 노동과 민주화운동의 주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결합하며, 거리와 공장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노동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시민권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세계적으로도 노동은 구조적 변화를 겪어 왔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물리적 생산과 결합돼 있었고, 20세기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일정한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다시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은 축소되고, 비정규직과 플랫폼노동이 확산되었다. 배달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은 채 일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며, 돌봄 노동은 여전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노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노동의 역사는 끊임없는 확장의 역사였다.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만이 노동자로 인정되었지만, 이후 여성 노동, 서비스 노동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경계에 서 있다. 데이터 생산, 감정 노동, 돌봄 노동과 같은 영역을 보호받아야 할 노동으로 포함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노동운동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노동운동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는 것. 둘째, 노동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 셋째, 노동을 인간의 존엄과 다시 연결하는 것. 이 지점에서 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장치였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미얼 리더먼 유켈리스(1939년생)는 유지(management)와 돌봄(care)을 예술로 끌어들인다. “나는 유지·관리 노동을 예술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녀는 청소 노동자와 함께 작업하며, 청소, 돌봄, 유지 등 사회를 유지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통해 뉴욕의 환경미화원 8500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그들의 노동을 예술로 만들었다.
전태일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우리는 더 이상 그가 살았던 시대의 노동 조건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을 다시 묻는 순간, 노동절은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정치적 시간으로 변한다. 유켈리스의 작업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유켈리스는 퍼포먼스를 통해 말하는 대신 몸으로 인사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이름 있는 개인으로, 존엄한 인간으로 호출하는 행위였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6-04-29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