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헌법의 장조, 예술의 단조-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In Minor Keys'
모하메드 조하, Houseless No 12, 2025. 출처 Open Space, 비평·교육 목적 인용.
7월 17일 제헌절. 헌법은 한 나라가 어떤 원리 위에 서 있는지를 밝히는 가장 장엄한 문장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처럼 헌법은 밝고 단호한 ‘장조’의 언어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노래한다. 그러나 현실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장조로만 연주되지 않는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인 마이너 키즈’(In Minor Keys)이다. 직역하면 ‘여러 단조로’쯤 되겠지만, 의미를 살린다면 ‘낮은 음조로’가 더 낫겠다. 음악에서 장조가 밝음, 확신, 전진, 승리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면, 단조는 슬픔, 애도, 그리움, 상처, 내면의 떨림을 품는다. 따라서 이 전시 제목은 오늘의 세계를 더 이상 승리의 서사로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전쟁과 학살, 이주와 난민, 생태 위기와 식민주의의 후유증, 인종과 젠더의 불평등 속에서 오늘의 동시대 미술은 거대한 승리의 몸짓보다 낮고 깊은 울림을 선택한다. 비엔날레의 공식 소개문 역시 이 전시를 ‘낮은 주파수에 귀 기울이는 전시’로 설명한다.
이 전시를 구상한 코요 쿠오는 카메룬 태생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세계 미술계를 넘나든 큐레이터였다. 그녀는 ‘디아스포라’와 주변부의 예술적 목소리를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로 불러냈다. 가장 오래된 국제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낮은 음조로’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은 중심의 장대한 목소리보다 주변의 낮은 울림에 귀 기울이겠다는 선언이다. 세계의 역사를 승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패배한 자들, 떠도는 자들, 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의 음역에서 다시 듣겠다는 태도이다.
발터 벤야민에게 역사는 승자의 행진이 아니었다. 문명의 기념비마다 그 아래에는 희생과 야만의 흔적이 묻혀 있다. 그래서 기억은 기념비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그 그늘에 묻힌 파편과 잔해를 다시 읽는 일이다. 이번 전시의 여러 작품은 이 ‘단조’의 감각을 구체적인 형식으로 보여준다.
가자 출신 모하메드 조하의 ‘노 쉘터’(No Shelter)는 2026 베니스 비엔날레의 ‘낮은 음조’를 가장 절실하게 들려주는 작품이다. 2025년 두바이 자위예 갤러리(Zawyeh Gallery)에서 선보인 ‘하우스리스’(Houseless) 연작은 ‘노 쉘터’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종이, 판지, 천 같은 버려진 재료를 겹쳐 붙인 콜라주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해 온 가자 지구의 삶을 닮아 있다. 가자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폐허 위에 남은 마지막 빛처럼 불안하게 떨린다. ‘노 쉘터’, 곧 ‘피난처 없음’이라는 제목은 집을 잃은 상태를 넘어, 인간이 몸을 의탁할 세계 자체가 무너진 시대의 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조하의 작품은 단순한 절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생명, 돌봄, 꿋꿋함에 바치는 낮은 진혼곡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