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철에서 피어난 꽃 - 스텔라의 '아마벨'과 자크 데리다의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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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스텔라, 꽃피는 구조물-아마벨, 1997. 고소미 제공 프랑크 스텔라, 꽃피는 구조물-아마벨, 1997. 고소미 제공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 꽃 모양의 거대한 철 구조물. 미국 현대미술가 프랑크 스텔라의 조각 ‘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 1997)이다. 높이 약 9m의 이 대형 공공조각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비행기 파편을 연상시키는 금속 부품을 용접해 만든 복합 구조 조각이다. 이 작품은 추락한 비행기 잔해처럼 기괴하고 낯선 형상으로 논란이 되었다.

스텔라는 미니멀리즘 회화의 대표적 작가로서 초기 작품은 대개 화면을 가득 채운 줄무늬 구조로 환영적 공간이나 상징적 서사를 제거한 극도로 절제된 회화였다. 그는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말을 통해 회화를 상징이나 서사의 그릇이 아니라, 눈앞의 선과 색, 형태의 실제 구조로만 보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미니멀한 평면 회화를 넘어, 1960년대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을 통해 회화의 물리적 구조 자체를 조형의 요소로 확장했다. 이후 더 복잡한 곡선 구조와 색채의 역동성과 함께, 1970년대 이후 등장한 그의 부조와 조각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적 조형 실험이었다.

‘아마벨’은 이러한 조형적 진화의 한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이 조각은 전통 조각이 지녀 온 단일 형상과 의미 중심의 조형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을 특정하기 어렵고, 형태는 사방으로 확장되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데리다의 ‘해체’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기존 구조와 의미 체계의 위계를 흔드는 철학적 작업이다. 고정된 중심이 해체되고, 의미의 확정이 끊임없이 지연되고(差延), 분산된다.

‘아마벨’의 조형 구조는 바로 이러한 해체적 특성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이 작품 앞에서 어떤 정면을 찾기 어렵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파편은 날개처럼 보이기도, 꽃잎처럼 보이기도, 폭발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미는 한 지점에 고정되지 않고 관람자의 이동과 함께 계속 미끄러진다. ‘아마벨’은 ‘구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안정된 구조가 아니라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금속 부품들은 분해된 기계의 파편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들어낸다.

‘아마벨’은 산업 재료와 복잡한 구조를 통해 현대 미술과 현대 조각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조각의 형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구조와 질서는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아마벨’의 꽃은 아름답고 온전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파편과 충돌, 산업적 잔해와 도시의 소음 속에서 피어나는 해체된 꽃이다. ‘아마벨’은 도시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금속 조각이면서 동시에 현대 미학의 사유를 환기하는 하나의 철학적 장면을 이룬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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