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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정치인의 SNS
22대 총선이 불과 2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거가 임박한 지난주 두 거대 정당이 지역구 후보 3명의 공천을 취소했습니다. 민심의 요동을 두 정당이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만큼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공천이 취소된 후보 3명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겨진 발언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다가 링에 오르려는 후보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자신의 유튜브에서 발언한 국민의힘 대구 중·남구 도태우 후보, ‘난교’ 발언 외에도 페이스북에 동물 병원을 폭파하고 싶다거나 서울과 부산의 시민 의식 수준을 비하하는 글을 남긴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장예찬 후보, 발목 지뢰 밟은 사람에게 목발을 경품으로 준다는 발언을 자신의 유튜브에서 했던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정봉주 후보.
유권자로서는 ‘거대 정당 공관위가 후보들의 과거 SNS 발언을 검증하는 것은 기본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본선에서 치열하게 득표전을 벌이다 보면 서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게 분명하니까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법 위반 이외에 후보자의 디지털 족적도 엄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도리이자 자당 후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일 텐데, 무성의든 무능이든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언론은 이번 공천 취소 사례를 대부분 ‘막말 파문’으로 보도했습니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그저 실수로 잘못 뱉은 말일 뿐일까요?
국민의힘 공관위에 따르면 도태우 후보는 2차례 사과를 하고도 추가로 문제성 발언을 했고 공천 취소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장예찬 후보도 공천 취소 결정 1주일 전까지 자신의 SNS를 뒤져보라며 자신만만해했고, 역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과거 발언이 드러난 이후 이들의 태도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근신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정봉주 후보의 경우도 우리 장병이 피해를 당한 불행한 사건을 농담 소재로 삼은 것은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과거에도 인사청문회나 선거에서 SNS에 남겨진 말이 낙마와 패배, 탈락의 빌미가 된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공직 후보자의 SNS는 그 자체가 그의 세계관과 됨됨이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말은 한 사람이 역사와 사회,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체계의 산물입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말을 넘어, 국민의 마음을 얻어 정치인이 되려는 이의 말은 그 무게가 더합니다.
‘권위주의자의 실패는 힘을 잘못 사용하는 데서 비롯되고, 민주주의자의 실패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는 말의 힘과 설득의 방법이 우선인 체제이자 시민의 적극적 동의를 기반으로 삼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이자 정치발전소 학교장으로 일하는 박상훈 박사는 저서 〈정치적 말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민 동의를 얻는 방법도, 동료 정치인과 정부 기관을 설득하는 방법도 모두 말과 글에 기반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계적 균형이라도 지키는 전통 미디어보다, 봤던 뉴스(영상)와 비슷한 콘텐츠만 계속 띄워주는 알고리즘이 거의 모든 SNS와 플랫폼에 장착되었습니다. 진영 논리가 극심해지는 이면에 이런 기술이 작동하고, 전반적인 정치 혐오와 무관심이 커지면서 투표율이 낮아지자, 충성도 높은 소수의 지지층만 모아도 당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 11월 복수전을 벼르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거 성공시켰던 전략입니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나라의 안녕, 경제의 성쇠를 결정한다는 것을 체감한 덕분인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 투표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2000년(57.2%), 2004년(60.6%) 상승하던 투표율은 2008년(46.1%) 급감한 뒤 다시 서서히 올라 2020년에는 66.2%를 기록했습니다. 해외 일부 사례와 달리 국내에서는 극성 지지층만 모아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SNS는 개인의 생각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후과도 큽니다. 어디론가 퍼 날라진 글을 모두 찾아내 지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민의의 대변자를 자처한다면 홀로 있을 때조차 전전긍긍하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는 <중용>의 군자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SNS에 남기는 글이 건전한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지 정도는 스스로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범부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에도 언제나 책임은 따르니 말입니다.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2024-03-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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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정보 민주화와 신냉전
열흘 뒤 24일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이 됩니다. 지난 2년 우리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곡물과 에너지에서 비롯된 공급망 변화는 팬데믹 시기 세계 각국이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린 영향과 맞물려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다가왔습니다.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져 빚진 서민들이 쓸 돈은 줄었습니다. 소득 대부분을 생활비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서민층의 늘어난 이자 부담은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의 비명으로 이어지고, 지역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지구촌 시대, 머나먼 유럽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국지전의 여파가 이렇게 우리 생활에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설 연휴 중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습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미국 방송사 폭스 출신 언론인 터커 칼슨의 단독 인터뷰인데, 개전 2년을 맞는 전쟁 당사국의 지도자 인터뷰라는 점을 비롯해 정보 유통 플랫폼 변화까지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습니다.
우리가 국내 언론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외신 뉴스는 미국과 유럽, 일본 언론에서 제공됩니다. ‘신냉전’이 공공연한 현실이고 보면 과거 제1세계 언론이 주된 창구입니다. 러시아나 중국 등 제2세계나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신흥국 소식도 해당 국가 언론을 직접 접하기보다는 제1세계 언론의 필터를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골치 아파하는 전쟁 당사자인 푸틴을, 미국 언론인이 인터뷰해, 기존 방송 채널이 아닌 독립적인 플랫폼으로 유통한 것은 주목을 끌 만했습니다. 지난 9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13일 현재 조회수 1550만 건, 댓글 27만 건을 넘겼습니다. 지루한 인터뷰 영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취재원(source)과 뉴스 수용자가 곧바로 만나는 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에서 활발히 펼쳐져 왔는데, 이런 뉴스 유통의 전통 미디어 대체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푸틴 인터뷰에 대한 세계인의 높은 관심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장장 2시간이 넘는 지루한 인터뷰 영상에 사람들은 왜 주목했을까요?
걸핏하면 사망설과 대역설이 떠도는 푸틴이 긴 인터뷰에 대본 없이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은 우리가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과 이미지가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는 러시아~독일 해저 천연가스관(노르드스트림) 폭발 사고가 사실은 미국의 소행이었다는 그의 말도 단순한 주장으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1년 전 미국 탐사보도 언론인 세이무어 허쉬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미국의 노르드스트림 폭파 작전 내용을 아는 익명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 해군 잠수부들이 폭발 3개월 전 가스관에 원격 작동 폭탄을 설치했다”고 작전 내용을 매우 상세히 보도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 발생 1년 반이 되도록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자 서방의 진상 조사 의지도 의심받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에서 접하지 못한 정보,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낯선 제2세계 국가 지도자의 언행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인터뷰 영상의 조회수를 끌어 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의 근원적 책임은 큽니다.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 암살설, 반체제 인사 탄압 등 해명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는 데에는 국제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연대의 함수가 작용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언론의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봐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번 푸틴 인터뷰를 통해 서방 시민들도 조금은 느꼈을지 모릅니다.
지난 연말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목표를 ‘완전한 승리’에서 ‘협상 우위 확보’로 낮춰 잡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전황이 유리하지 않지만 올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는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우크라이나를 간접 지원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패전의 멍에를 지는 것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전장에서 또 1년 가까이 아까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게 생겼습니다.
21세기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은 개발도상국까지 퍼졌는데, 세계 정세는 패권국의 이익에 따라 양분·삼분되는 현실에서 현기증을 느낍니다. 희망이 하나 있다면 냉전 장벽을 쌓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의 퇴행을 막는 데 가감 없는 정보의 차별 없는 유통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전통 언론의 반성과 혁신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테지요.
2024-02-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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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AI 기상도 보여주는 CES
‘All Together, All One.’
9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4’의 슬로건입니다. 주관 단체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 슬로건에 대해 “모든 기술과 산업이 힘을 모아 세계가 직면한 큰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소개합니다. CES는 익히 알려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입니다. 특히 올해는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호각지세를 보이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분위기입니다. 참가 기업 수로 보면 미국(1201개)과 중국(1115개)이 비슷하고, 그다음이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한 한국(784개)입니다. 더 뿌듯한 소식은 지난 7일까지 CTA로부터 ‘CES 2024 혁신상’ 수상 대상으로 선정된 313개 기업 379개 제품 가운데 한국이 기업은 42.8%(134개), 제품은 41.7%(158개)나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 벤처·창업기업이 116곳이나 된다고 하니 더욱 반갑습니다. 부산시도 올해 처음으로 행사장 내에 ‘부산관’을 열어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인 에코델타시티를 알리고, 지역 강소기업들도 다수 참여해 기술 홍보와 동향 파악에 나선다고 합니다.
올해 CES의 화두는 모두의 예상대로 인공지능(AI)입니다. ‘오픈AI’의 챗GPT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AI혁명 원년’ 2023년을 지나며 관련 업계는 자신들의 제품에 AI를 녹여 넣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번 CES에서는 AI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나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 탑재한 AI시스템을 이용하는 ‘온디바이스 AI’가 대거 선보인다고 합니다. 다음 주 삼성전자가 갤럭시S24에 온디바이스 AI를 세계 최초로 장착해 출시한다니, 일상과 AI의 접점은 비약적으로 넓어질 전망입니다.
챗GPT의 파괴력은 일반 시민이 일상적인 대화로 AI의 유용성을 경험하게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AI가 실험실 바깥으로 나온 데에는 인간이 구사하는 자연어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학습한 초거대언어모델(LLM) 등장이 있었고,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지금도 엄청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챗GPT 3.5의 매개변수(파라미터) 수가 1750억 개였는데, 1년도 되지 않아 내놓은 4.0 버전에서는 10배인 1조 7000억 개에 이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합니다.
기술 수준도 수준이지만, 규모의 경제를 따라잡기 어려운 후발 주자들이 택한 전략은 특정 분야에 특화한 AI입니다. 의료, 법률, 주식 등 특정 분야에 한정된 정보만 충분히 학습시켜 해당 분야에서는 충분히 전문적인 조언을 내놓고, 투자 비용은 훨씬 절감할 수 있는 소규모언어모델(sLLM) 방식입니다. 국내 업계에서도 작게는 60억 개의 파라미터부터 학습시키는 sLLM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각국에서 소규모 핵 개발에 나섰던 상황과 sLLM 개발 열풍이 비슷하다고 지적합니다. 적정 수준만 투자해, 옮기기 쉽고 관리하기도 편한 소형 핵무기를 만드는 경쟁이 일어났던 일과 sLLM 개발 경쟁이 닮았다는 겁니다.
물리학과 전쟁의 기묘한 인연으로 태어난 핵무기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며 방향을 돌린 것이 발전산업이었습니다. 에너지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 번 불붙으면 무엇으로도 끌 수 없고, 폐기물을 영원히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도 찾지 못한 것이 핵입니다. AI도 결국, 그 기술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인류의 편리와 이익을 넘어 너무 급속히 발전하는 AI 기술이 일자리에서부터 인간을 대체하고, 언젠가는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무리는 아닙니다. 기술 공유를 모토로 출범한 오픈AI를 이끄는 CEO 자리에서 해고됐다 돌아온 샘 올트먼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일반인공지능(AGI) 개발을 목표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올해 내놓을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AI가 인간과 같거나 그 수준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미래학자 커즈와일의 예상인 2045년보다 20년 이상 빨라지는 셈입니다. CES만큼이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기술, 인류의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기술의 역할에 관한 진지한 공론을 모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꼭 1년 전 미국핵과학자회보는 ‘지구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까지 90초밖에 남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 화약고에도 불이 붙은 올해는 남은 시간이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올해 CES 슬로건처럼 지구가 닥친 위기 앞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머리를 맞댈 기회는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2024-01-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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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웹 시장에서 더 중요한 '신뢰'
올해 마지막 달, 남은 달력 한 장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2년 가까이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응원했던 부울경 시민들의 마음은 이미 넘겨진 달력만큼이나 무겁기만 합니다.
전문 인력과 값비싼 장비를 보유한 미디어 기업이 정보소스를 독점하며 수용자에게 뉴스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던 ‘매스미디어 시대’도 이미 저물고 있습니다. 온종일 우리 손에서 떠날 줄 모르는 스마트폰이 ‘1인 미디어 시대’를 열었고, 정보의 흐름은 쌍방향에서 시작해 매우 다양한 창작자와 수용자 관계로 얽히고설킵니다. 거의 모든 데이터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유통·축적됩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세상에 처음 선보인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대화형 서비스, 챗GPT는 1년 만에 세상에 큰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장에 이은 제3의 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영상을 만들고, 자막과 내레이션을 입히는 일 전반에 생성형 AI가 적용되면서 콘텐츠 제작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줄이고 품질은 높일 수 있게 됐습니다. 콘텐츠를 만들어 영상 플랫폼으로 유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개인을 크리에이터라 부르는데, 그들이 만드는 세계 시장 규모(325조 원)가 지난해 이미 세계 극장가 매출(32.8조 원)의 10배에 이르렀을 정도입니다. 이 시장 규모는 매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물론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올 5월 미국 국방부 건물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진과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져 언론까지 인용 보도하면서, 미국 증시가 출렁인 사례가 있습니다. 폭발 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진과 펜타곤을 합성한 사진이었는데 오전 9시30분 개장하는 미국 증시의 S&P 500지수는 0.3%까지 떨어졌다가 버지니아주 소방당국이 ‘사실무근’을 확인해주고서야 회복했습니다.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체포되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러시아에 항복 선언하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동영상처럼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잠시나마 속았던 시민들로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형국입니다.
비대면 거래와 화상·음성·문자를 통한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입니다. 진위를 의심할 여지없는 대면 소통이 대부분이던 과거에 비해 신뢰 확보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다루는 미디어로서는 사실 확인을 엄밀하게 거쳐 정제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받아쓰기·따옴표 저널리즘’의 편리함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콘텐츠 제작·유통에 스며들기 시작한 AI 기술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내부 지침을 제정·시행해야 합니다. 아직은 국내 언론 가운데 AI 관련 지침을 제정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콘텐츠 이용자도 SNS나 특정 매체의 보도를 맹신하기보다는 다른 매체나 소식통의 발표·보도를 비교해가며 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급류에 휩쓸려 떠밀려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붙잡고 팔다리를 힘껏 저어야 하듯, 정보 홍수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민에게는 비교·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30세계박람회 유치 추진 과정을 보도한 국내 대다수 언론의 태도는 시민 신뢰를 얻기에 부족했다는 점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표 결과를 놓고 보면, 추진 주체인 대통령실·정부·부산시 관계자의 엄밀한 분석 없는, 희망 가득한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는 데 그쳤던 것 아닌지 돌아봅니다. 우리 언론이 중립적인 해외 언론이나 경쟁국 동향을 냉철하게 교차 점검했었다면 어땠을까요. 추진 주체 측을 각성시켜 최소한 ‘졌잘싸’는 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언론보도를 믿은 시민들에게 이런 참담한 낭패감을 안기진 않았을 것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의 발언이 큰 따옴표에 포장돼 여론 시장을 또 흩트릴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믿음 없이는 나라도 사회도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옛말처럼, 디지털 세상에서나 현실 세계에서나 신뢰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정치도 자기 진영만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혐오와 배제를 내세워 자기편만 결집시키는 진영정치가 득세할 우려가 큽니다.
약 4개월 뒤면 총선입니다. 신뢰도 최하위의 국회를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손해를 감수하며 포용과 화해를 앞세우고 갈등 조정에 나서는 정치, 국민과의 약속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정치는 결국 현명한 국민의 선택으로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쉬운 욕지거리 대신, 보기 싫은 뉴스도 찾아 읽어가며 귀찮은 비교·분석을 기꺼이 해내는 여러분의 한 표로 말입니다.
2023-12-05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