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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당신의 추억을 현상수배합니다
80년대 ‘국민학교’ 시절, 신학기만 되면 어김없이 치렀던 희한한 통과의례가 있었다. 바로 ‘가정생활조사’다. 담임은 호구 조사표를 들고 흑백·컬러 텔레비전, 전화, 비디오가 있는지 물었다. 텔레비전이야 다들 손을 들었지만, 비디오나 전화에서 손을 드는 급우는 손에 꼽혔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집에서 신문 받아보는 사람?”
40명쯤 되는 반에서 10여 명의 손이 비장하게 올라갔다. 당시 어린 눈에 신문을 본다는 건, 집에 비디오나 전화가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오라(aura)’로 다가왔다. 신문을 구독하는 집은 왠지 모르게 고상한 지성인이 살 것 같았고, 식구들은 만물박사이자 걸어 다니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일 것만 같았다. 어린 마음엔 자못 신성시되기까지 했다.
그저 신문을 구독하는 것만으로도 대접(?)받던 시절이었으니, 지면에 얼굴과 이름이 찍혀 나오는 건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대박 사건이었다. 각종 체육대회 메달, 백일장 수상, 발명대회 입상 소식이 신문에 실리면 그 주인공은 학교의 희망이자 지역의 앞날을 짊어질 꿈나무로 신분이 ‘떡상’했다. 본인의 미래는 장밋빛이요, 가문의 영광이었다. 당시 달달 외우던 국민교육헌장 첫 구절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모범 어린이의 완성이었다.
어디 사람뿐이었을까. 영세한 맛집이 신문에 소개되면 손님이 물밀듯이 찾아왔고, 조그만 철강공장은 불티나게 주문이 밀려들어 급기야 군수·시장의 포상까지 받았다. 독자 투고라도 게재되면 전도유망한 ‘문재’로 칭송받았다. 모두 신문에 난 덕이었다.
대통령이나 장차관, 대기업 사장, 스포츠 스타, 연예인만 실리는 줄 알았던 신문에 내 이름 한 줄이 찍히는 것. 그건 장삼이사들에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이생흥(이번 생은 흥했다)’으로 뒤집는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새삼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부산일보가 벌이는 창간 80주년 기념사업 때문이다. 1946년 9월 10일 창간한 부산일보가 곧 팔순이 된다. 부산일보는 해방 뒤 혼란기, 한국전쟁 피란 수도 시절을 지나 산업화 정보화 민주화 시대를 850만 부산 울산 경남 지역민과 함께 지나왔다. 지역 목소리의 대변인으로 때로는 시대의 기록자로 독자·지역민과 울고 웃었다.
굵직한 사건사고와 정치·역사적 서사들은 신문 1면에 두꺼운 검정 헤드라인으로 기록됐다. 하나 그 세월의 나이테를 톺아보면 서사의 주인공은 비단 정치인 경제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뿐만 아니라 독자·지역민도 포함된다. 독자들의 눈물과 땀, 일상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80년 부산일보의 거대한 서사가 가능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해 ‘창간 80주년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흔히 언론사들의 창간 행사는 기념식과 기념품, 난다 긴다는 셀럽들의 축사들로 채워진다. 위원회는 다시 못 올 80이 주는 의미를 새겨 이번에는 ‘우리만의 잔치’여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역신문이 80년 성상을 맞는 데는 무엇보다 독자·지역민의 땀과 눈물이 보태어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온 게 ‘독자 추억 공모전’이다. 80년간 우리를 애독·애정한 독자와 지역민들이 가진 ‘부산일보와 나’의 얘기를 찾는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자는 반짝 이벤트가 아니다. 80년간 언론과 독자 지역민이 엮은 사실관계와 추억을 복원하는 뜻 있는 과업이다.
공모전 자문·심사단에 부산도서관, 재야 역사학자, 기록연구사(기록관리 전문요원)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지역 대표 금융기관인 BNK부산은행도 힘을 보탰다. 공모전이 끝나면 작품을 심사해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해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사료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은 부산도서관과 협력해 소중한 디지털 역사·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참가하려면 공모전 홈페이지(80.busan.com)에 접속해 글과 사진을 올리면 된다. 자문단 심사와 부산닷컴 회원들의 ‘좋아요♥’ 개수를 반영해 수상작을 뽑는다. 대상 격인 ‘최고의 추억: 골든아카이브상’(상금 200만 원), 감동상, 인기상 수상자에게 상금이 지급된다. 상품을 받는 참여상도 있다. 오는 8월 21일 마감한다.
신문은 매일 아침 발행되는 ‘지역의 가장 따끈따끈한 역사서’라고 한다. 부산일보라는 80년 치 역사책의 행간을 채워준 ‘찐’ 주인공은 바로 독자와 지역민, 당신이었다.
소설가 이병주는 “햇빛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설했다. 지난 80년, 부울경을 밝힌 건 독자 여러분이 보태준 ‘삶의 빛’이었다. 당신의 소중한 추억이 ‘공모전에 물들면’ 우리와 지역이 기억할 빛나는 디지털 기록물(아카이브)이 될 것이다. 하여, 장롱 서랍 진열장 기사스크랩 컴퓨터에 가두어 두었던 빛바랜 추억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시길 바란다.
2026-07-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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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어린이신문 16만 부를 찍는 이유
올해 2월 말 디지털국을 맡았다. 〈부산일보〉 홈페이지 부산닷컴에서 지면용 기사를 관리하고, 포털용 기사를 생산·유통하는 게 주 업무다. 독자를 위한 영화·야구 관람권 이벤트, 창간 80주년 기념 ‘독자 추억 공모전’, 지난해 1만 3000명가량이 참가한 ‘국립공원 금정산 챌린지 인증 사업’도 우리 소관이다. 종이신문이 사양산업을 지나 이제는 ‘야광(夜光)산업’으로 불리는 시대, 우리 국의 미션은 지면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와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4월부터는 부산시가 주관하는 ‘빅아이 도란도란 어린이신문’ 제작과 어린이 기자 314명이 포진한 꼬마부산기자단(이하 ‘꼬부기’) 운영도 맡았다. 지난해 첫발을 뗀 이 사업엔 큰 포부가 담겼다. 꼬부기가 쓴 기사를 또래 초등학생들이 함께 읽으며, 부산의 역사·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당찬 시민'으로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를 함께 사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겠다는 뜻도 녹아 있다.
본보의 슬로건은 ‘80년을 담다, 100년을 열다’이다. 지면부터 디지털, 유튜브, 인공지능(AI)까지 미디어 플랫폼과 기술이 복잡다단해져도 결국 그 안을 채우는 건 사람과 콘텐츠다. 다음 세대 독자들에게 활자의 힘과 매력을 경험케 하는 건, 굳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디지털·AI 시대에도 변치 않는 언론의 소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부산일보〉가 어린이신문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과업은 만만치 않았다. 문장 교정·교열, 기사 첨삭, 현장 방문 취재, 신문 배부까지 챙길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쓴 기사를 읽을 때면 참신한 관점과 취재 열정에 놀라며, 20여 년 전 수습기자 때 초심을 새삼 떠올리기도 했다.
‘신박한’ 경험도 있었다. 지난 5일 어린이날 큰잔치가 열린 부산 영화의전당. 꼬부기 기자 15명이 출동했다. 취재에 앞서 기자 활동 기본 요령을 설명하는데 어찌나 열심히 듣던지 예정 교육 시간을 훌쩍 넘겼다. ‘육하원칙이 뭐예요’ 등 질문 세례에 식은땀은 났지만, 꼬부기의 진지한 모습에 흐뭇했다.
경쟁 논란과 민원 탓에 운동회도 사라지고 현장학습도 힘들다는 요즘이다. 그 빈틈을 학원과 사교육이 채운다. 성평등가족부의 ‘2026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84.4%가 사교육을 받고, 하루 여가시간은 1~2시간에 불과하다. 그마저 유튜브나 게임이 차지하고 10명 중 7명은 생성형 AI를 다루며 보낸다. 놀 시간은 부족하고 디지털 유혹은 넘쳐나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펜을 쥐고 발로 뛰며 기사를 써낸다는 건 놀랍고 대견한 일이다.
도란도란 신문은 부산 지역 전체 초등학교와 공공도서관 어린이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 등 450여 곳에 배포된다. 지난해 11만 부(8면)에서 올해 16만 부, 12면으로 늘어났다. 신문을 받아본 학교와 초등학생·학부모의 반응이 꽤 좋다고 한다. 지역 서점에 비치한 신문이 금세 동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난 4월 30일 발간된 봄호는 표지부터 파격이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표지를 1면에 전면 배치했다. 2면부터는 지역 곳곳을 누빈 현장·미션 취재 결과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부산시 매거진운영팀과 디지털국 기자들이 가려낸 알토란 같은 기사들이다. 시교육청의 신문활용교육 콘텐츠, 부산외국어대 웹툰학과에서 그린 웹툰은 읽을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선물을 주는 낱말 퀴즈도 있다. 무엇보다 무료라는 게 제일 큰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신문은 단순한 종이 신문을 넘어 지역 행정·교육·언론이 협업한 ‘하이브리드 매체’인 셈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명언이 ‘미디어 마을’로 구현되었다고 하면 다소 과한 해석일까?
앞으로 〈부산일보〉는 꼬부기들이 세상과 지역을 향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펜을 쥐여주는 멘토가 될 것이다. 다만, 신문 16만 부가 단순한 종이 뭉치로 남지 않으려면 ‘마을 어른들’의 각별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일러주고 공론장을 제공하는 것은 지역 사회의 미래를 향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어린이신문이 일회성 이벤트나 단순한 실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공의 지원과 공익적 관심이 필수적이다. 지방정부의 예산·행정 지원, 지방의회의 입법 노력에다 지역 기업들의 후원 등 제도적 지지와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어린이 기자들이 씩씩하게 써 내려갈 부산의 내일을 위해, 진정으로 ‘온 마을’이 나서야 할 때다.
전대식 디지털국장 pro@busan.com
2026-05-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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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AI 파고,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2006년 3월의 기억이다. 부산일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터넷뉴스부가 닻을 올렸다. 종이 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위기감이 신문사마다 팽배하던 시절, 인터넷 뉴스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다. 마침 미디어 산업의 기술 혁신을 향한 정부의 지원이 맞물렸다. 그 지원금으로 산 것이 소니사의 캠코더 PD170이었다. 흔히 신문기자는 ‘펜 기자’로 불리며 취재수첩을 쥐고 현장을 누빈다. 그 무렵의 기자는 펜 대신 디지털카메라와 묵직한 캠코더를 어깨에 멨다. PD170은 이제 중고 장터에서도 자취를 감춘 유물이 되었지만, 당시 기자에겐 전장을 누비는 군인의 K2 소총과도 같은 존재였다. 기자회견과 선거 유세장, 각종 집회와 스포츠 경기장은 물론이고 금정산의 험한 등산로나 낙동강의 물줄기까지, 말 그대로 산과 들을 종횡무진했다. 동료들이 키보드로 기사를 써 내려갈 때, 영상 편집 프로그램 앞에 앉아 원본 영상을 자르고 붙이며 자막을 입혔다. 조회수나 ‘좋아요’ 같은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면의 한계를 벗어나 생생하게 움직이는 동영상 기사는 그 자체로 신문사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다.
3G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교체되던 시기는 또 다른 분기점이었다. 굳이 무거운 PD170을 들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고화질 영상을 담아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신문사는 텍스트 기사 외에도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동영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사만 쓰던 기자는 이제 사진도 찍고 영상도 챙겨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멀티 저널리즘’ 혹은 ‘백팩 저널리즘’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분석하곤 했다. 물리적인 노동 강도는 몇 배로 늘어났고 어깨는 늘 무거웠지만, 미디어 격변기를 헤쳐 나가는 첨병이라는 자부심으로 고단함을 견뎌냈다.
2010년 1월, 멀티뉴스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개별 신문사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두고 방문하던 ‘닷컴 시대’가 저물고, 네이버를 필두로 한 포털의 위세가 나날이 강해지던 때였다. 포털의 검색창 아래에 자사의 기사를 한 줄이라도 더 걸기 위해 언론사들은 이른바 ‘실시간 검색(실검)’ 기사를 쏟아냈다. 매일 아침 기사 트래픽 성과가 사내 게시판에 공지되었고, 기자의 이름은 조회수에 따라 내림차순으로 호명됐다. 지면에 실린 공들인 기사보다 실검 기사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기자 사회 내부에서도 고민과 갈등이 깊어졌다. 트래픽과 클릭으로 상징되는 ‘포털 저널리즘’은 정통 저널리즘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미디어 업계는 이를 ‘불가항력적인 대세’로 받아들였고, 언론 학계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수년간 인터넷·멀티 뉴스 업무를 떠났다가 디지털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포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관전평과 포털의 기침 한 번에 언론사가 앓아눕는 증세가 공존했다. 그 간극 사이로 유튜브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저널리즘’의 완장을 차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기술 혁신이라는 파도가 덮칠 때마다 저널리즘은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응전해 왔다.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파고에 무릎 꿇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지금 마주한 AI 저널리즘은 이전의 변화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AI는 법정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출퇴근도 없으며, 시간외수당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신문기자들만의 안식일인 ‘신문의 날’이나 노동자의 기념일인 ‘노동절’에도 쉬지 않는다. 제목을 뽑고 기사의 뼈대를 잡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취재 아이템까지 제안한다. 언론사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선을 긋고 있지만, AI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아득히 앞질러 간다.
관망하는 시선 속에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곳곳에서 나타난다. AI기술 도입에 따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든 미국 영화 작가와 배우들,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일방적인 작업 투입을 경계하는 노조의 목소리.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도구로 변질된 AI 기술을 비판하며 연대하는 개발자들의 소식 또한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넘어 ‘로봇 칼라’라는 조어가 등장한 지금, 사람이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AI가 사람을 활용하는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인간 사이의 연대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기자의 체온과 현장의 숨소리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저널리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했듯, 거친 기술의 파고 앞에서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각자도생의 AI 시대, 다시 인간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
2026-03-2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