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당신의 추억을 현상수배합니다
디지털국장
신문에 이름 한 줄 얼굴 나면
경천동지 가문의 영광이던 시절
오는 9월 10일 팔순 맞는 부산일보
부울경 80년 역사의 진짜 주인공인
독자·지역민 소중한 추억 모아
빛나는 디지털 기록물로 남기려
80년대 ‘국민학교’ 시절, 신학기만 되면 어김없이 치렀던 희한한 통과의례가 있었다. 바로 ‘가정생활조사’다. 담임은 호구 조사표를 들고 흑백·컬러 텔레비전, 전화, 비디오가 있는지 물었다. 텔레비전이야 다들 손을 들었지만, 비디오나 전화에서 손을 드는 급우는 손에 꼽혔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집에서 신문 받아보는 사람?”
40명쯤 되는 반에서 10여 명의 손이 비장하게 올라갔다. 당시 어린 눈에 신문을 본다는 건, 집에 비디오나 전화가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오라(aura)’로 다가왔다. 신문을 구독하는 집은 왠지 모르게 고상한 지성인이 살 것 같았고, 식구들은 만물박사이자 걸어 다니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일 것만 같았다. 어린 마음엔 자못 신성시되기까지 했다.
그저 신문을 구독하는 것만으로도 대접(?)받던 시절이었으니, 지면에 얼굴과 이름이 찍혀 나오는 건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대박 사건이었다. 각종 체육대회 메달, 백일장 수상, 발명대회 입상 소식이 신문에 실리면 그 주인공은 학교의 희망이자 지역의 앞날을 짊어질 꿈나무로 신분이 ‘떡상’했다. 본인의 미래는 장밋빛이요, 가문의 영광이었다. 당시 달달 외우던 국민교육헌장 첫 구절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모범 어린이의 완성이었다.
어디 사람뿐이었을까. 영세한 맛집이 신문에 소개되면 손님이 물밀듯이 찾아왔고, 조그만 철강공장은 불티나게 주문이 밀려들어 급기야 군수·시장의 포상까지 받았다. 독자 투고라도 게재되면 전도유망한 ‘문재’로 칭송받았다. 모두 신문에 난 덕이었다.
대통령이나 장차관, 대기업 사장, 스포츠 스타, 연예인만 실리는 줄 알았던 신문에 내 이름 한 줄이 찍히는 것. 그건 장삼이사들에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이생흥(이번 생은 흥했다)’으로 뒤집는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새삼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부산일보가 벌이는 창간 80주년 기념사업 때문이다. 1946년 9월 10일 창간한 부산일보가 곧 팔순이 된다. 부산일보는 해방 뒤 혼란기, 한국전쟁 피란 수도 시절을 지나 산업화 정보화 민주화 시대를 850만 부산 울산 경남 지역민과 함께 지나왔다. 지역 목소리의 대변인으로 때로는 시대의 기록자로 독자·지역민과 울고 웃었다.
굵직한 사건사고와 정치·역사적 서사들은 신문 1면에 두꺼운 검정 헤드라인으로 기록됐다. 하나 그 세월의 나이테를 톺아보면 서사의 주인공은 비단 정치인 경제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뿐만 아니라 독자·지역민도 포함된다. 독자들의 눈물과 땀, 일상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80년 부산일보의 거대한 서사가 가능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해 ‘창간 80주년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흔히 언론사들의 창간 행사는 기념식과 기념품, 난다 긴다는 셀럽들의 축사들로 채워진다. 위원회는 다시 못 올 80이 주는 의미를 새겨 이번에는 ‘우리만의 잔치’여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역신문이 80년 성상을 맞는 데는 무엇보다 독자·지역민의 땀과 눈물이 보태어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온 게 ‘독자 추억 공모전’이다. 80년간 우리를 애독·애정한 독자와 지역민들이 가진 ‘부산일보와 나’의 얘기를 찾는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자는 반짝 이벤트가 아니다. 80년간 언론과 독자 지역민이 엮은 사실관계와 추억을 복원하는 뜻 있는 과업이다.
공모전 자문·심사단에 부산도서관, 재야 역사학자, 기록연구사(기록관리 전문요원)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지역 대표 금융기관인 BNK부산은행도 힘을 보탰다. 공모전이 끝나면 작품을 심사해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해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사료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은 부산도서관과 협력해 소중한 디지털 역사·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참가하려면 공모전 홈페이지(80.busan.com)에 접속해 글과 사진을 올리면 된다. 자문단 심사와 부산닷컴 회원들의 ‘좋아요♥’ 개수를 반영해 수상작을 뽑는다. 대상 격인 ‘최고의 추억: 골든아카이브상’(상금 200만 원), 감동상, 인기상 수상자에게 상금이 지급된다. 상품을 받는 참여상도 있다. 오는 8월 21일 마감한다.
신문은 매일 아침 발행되는 ‘지역의 가장 따끈따끈한 역사서’라고 한다. 부산일보라는 80년 치 역사책의 행간을 채워준 ‘찐’ 주인공은 바로 독자와 지역민, 당신이었다.
소설가 이병주는 “햇빛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설했다. 지난 80년, 부울경을 밝힌 건 독자 여러분이 보태준 ‘삶의 빛’이었다. 당신의 소중한 추억이 ‘공모전에 물들면’ 우리와 지역이 기억할 빛나는 디지털 기록물(아카이브)이 될 것이다. 하여, 장롱 서랍 진열장 기사스크랩 컴퓨터에 가두어 두었던 빛바랜 추억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시길 바란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