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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항만공사 '4+1 통합'이어야 한다
최근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의 4개 항만공사를 통합하는 방안이 발표되면서 해당 지역과 항만공사 구성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통합안에 의하면 기존 항만공사는 한국항만공사의 지사들이 된다. 독자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지는 법인격이 없게 되므로 각 항만이 오랫동안 축적한 전문성과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다.
이번 공공기관 개편에서는 발전 5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발전 5사는 동일한 발전사업을 수행해 온 한전 자회사들이다. 그래서 조직을 줄이기 위한 통합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은 각기 다른 지역경제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화물과 산업을 담당하면서 성장해 온 항만이다. 발전 5사의 통합 논리를 항만공사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항만공사 통합의 명분을 세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필자는 모 항만공사 항만위원으로 재직했다. 당시 미국 항만의 컨테이너 터미널에 투자하는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다. 우리 선사와 화주에게 안정적인 해외 물류거점을 제공하고 우리의 공급망과 물류영토를 해외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개별 항만공사의 규모와 투자 여력에 한계가 있었다. 싱가포르의 PSA나 두바이의 DP World처럼 세계 주요 항만과 터미널에 진출하는 글로벌 항만기업과 경쟁하려면 충분한 자본력과 전문성을 갖춘 국가 차원의 항만기업이 필요함을 느꼈다. 세계 항만에 투자할 수 있는 규모 있는 국가 항만기업이 필요하다.
둘째, 국내 항만 간 경쟁을 넘어 국가 차원의 협력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각 항만공사는 관리하는 항만의 발전과 물동량 확대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항만끼리 화물을 놓고 경쟁하기보다 각 항만의 장점을 살려 역할을 분담하고 공동으로 해외 항만과 경쟁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항만기업은 공동투자와 해외진출, 대규모 국제사업 등 개별 항만공사를 넘어서는 분야에서 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셋째, 항만공사가 없는 주요 국가항만에도 기업적 경영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포항은 우리 철강산업의 핵심 항만이며 앞으로 이차전지 소재, 동해안 에너지산업, 북극항로 등 새로운 물류사업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포항항의 개발과 항만시설 투자는 정부가 담당한다. 그러나 포항항에는 항만을 하나의 사업체로 보고 새로운 물류사업을 발굴하고, 화물과 선사를 유치하며, 민간투자를 끌어들이는 기업적 기능을 전담하는 항만공사가 없다.
필자는 기존 4개 항만공사를 없애지 않고 그 위에 국가 차원의 ‘한국항만공사’를 두는 모·자회사형 통합을 제안한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항만공사는 각각 별도의 법인으로 존속시키고 한국항만공사의 자회사로 두는 것이다. 기존 항만공사의 사장과 조직, 항만위원회를 유지하여 각 항만의 전문성과 자율경영을 최대한 보장한다. 실제 항만 경영과 사업의 주체는 지금처럼 법인격을 가지는 지역 항만공사들이 된다.
한국항만공사는 해외 항만·터미널 투자, 대규모 공동 사업, 항만 간 전략적 조정 등 개별 항만공사가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국가적 사업을 담당해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항만공사가 없는 국가전략항만을 새로운 지역 항만공사로 키우는 역할이다. 포항과 같은 주요 항만에서는 처음에는 한국항만공사가 직접 사업주체가 되어 새로운 물류 사업을 발굴하고 화물과 선사를 유치하며 민간투자를 끌어들이도록 한다. 이후 물동량과 사업 규모가 커지고 독립적인 경영 기반이 갖춰지면 포항항만공사와 같은 새로운 지역 항만공사를 설립하여 한국항만공사의 자회사로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4+1’ 체제이지만 장기적으로는 ‘5+1’ 체제로 발전할 수 있다. 통합이 조직을 줄이는 수단이 아니라 대한민국 항만산업을 확대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만공사법을 개정하여 한국항만공사를 모회사로 하고 지역 항만공사를 자회사로 두는 지배구조와 사업 범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해수부는 국가 항만정책, 항만기본계획, 법령과 감독 및 공공적인 항만개발을 담당하고, 항만공사는 그 정책에 따라 항만을 경영하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는 사업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없애는 통합이 아니라 더하는 통합이어야 한다. 기존 4개 항만공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은 살리면서 이들이 힘을 합쳐 세계 주요 항만과 터미널에 진출하도록 하자. 동시에 포항과 같이 항만공사가 없는 주요 국가항만도 새로운 지역 항만공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자. 국내에서는 항만산업의 저변을 넓히고,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의 물류영토를 확대하는 것. 그것이 항만공사 통합의 명분이 되어야 한다.
2026-09-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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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에 필요한 건 '더 긴 여름'이 아니다
9월이 되면 바다는 다시 고요해진다. 한여름 내내 해변을 뜨겁게 달구던 파라솔이 한 켠으로 치워지고, 해변 가득 모였던 피서객들이 하나둘 떠나간 부산의 바다는 비로소 제 얼굴을 되찾는다. 여름의 부산은 그 어떤 도시보다 젊고 역동적이다. 전국의 청년들이 부산 바다와 거리로 쉴 새 없이 몰려들고, 그 뜨거운 열기와 활력으로 밤 늦게까지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9월이 오면 그 눈부신 에너지는 바닷물 빠지듯 도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 계절의 격차는 오늘날 부산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몸소 체감하고, 느끼는 도시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젊은이들이 부산을 떠나는 이유는 결코 이 도시에 매력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여름마다 전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기꺼이 부산을 찾아오는 것만 봐도 부산에 매력이 없다는 진단은 틀렸다. 문제는 매력보다 ‘기회’다. 젊은이에게는 좋은 풍경만큼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어제보다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필요하다.
활력 넘치던 바다, 9월 되면 고요해져
기회 찾아 청년 떠나는 부산과 닮아
도전·성장할 수 있는 기회 부족 때문
사계절 새로운 가치 만드는 도시 돼야
우리는 그동안 청년들에게 왜 부산을 떠나느냐 묻고, 지역에 남아 달라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하지만 청년들의 발길을 억지로 붙잡는다고 해서 청년들이 이 도시를 떠나가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청년들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도시가 해야 할 일은 떠나는 청년을 탓하거나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떠난 사람에게도 언젠가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오랫동안 송정의 바다에서 선수들과 서퍼들, 젊은이들을 지켜본 필자에게 부산의 계절 변화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여름이면 전국에서 젊은 서퍼들이 송정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만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파도 위에서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바다에서 시작된 관계가 다시 도시의 카페와 거리로 이어진다. 작은 해변 하나가 거대한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순간, 그 활기도 함께 줄어든다. 부산이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여름에 불러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에너지를 어떻게 가을과 겨울까지 이어갈 것인가다.
부산의 바다와 도시는 여름 두 달만 쓰이고 닫히는 단기 위락시설이 아니다. 바다는 전국의 누구나 언제든 찾아와 쉬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사계절 ‘도시의 거실’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해변과 연안 공간은 수많은 청년들이 문화와 스포츠, 창업과 기술, 해양산업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려면 행정과 지역 사회의 관점부터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성수기에 관광객 숫자를 얼마나 늘리느냐에 집중하기보다는 청년들이 부산을 찾아 사계절 일하고, 즐기고,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여름에 몰린 각종 문화와 축제, 스포츠 행사를 비수기로 확장하고, 대학과 기업, 창업공간과 해변을 연결하며, 가을과 겨울의 해안 공간도 청년들의 실험과 도전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열어야 한다. 서울을 닮은 부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 가진 바다와 도시의 장점을 연결해 부산에서만 가능한 기회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다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파도를 만들어 내듯 도시 역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도전이 지속해서 이어지는 곳으로 바뀌어야 늙지 않는다. 수십 년간 매년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부산의 여름은 이미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고,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이 부산을 싫어하는 것도, 부산이 젊고 역동적인 도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부산의 가능성을 아직 여름이라는 한 계절에 가둬두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제 부산에 필요한 것은 더 긴 여름이 아니다. 여름이 만들어 낸 에너지가 가을과 겨울, 그리고 다음 해 봄에도 계속 흐를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느냐다. 이 도시를 떠나려는 청년들에게 부산에 남으라고 말하기 전에, 9월에도 이 도시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여름이면 잠깐 젊어졌다가 가을이면 다시 늙어가는 도시가 아니라, 사계절 내내 새로운 사람이 오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도시. 파도가 물러간 9월의 해변에서, 우리는 이제 부산의 진짜 사계절을 준비해야 한다.
2026-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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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이젠 체류형 크루즈가 답이다
지난주 필자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미국 마이애미에 이어 프랑스 마르세유와 모나코 등 세계 정상급 크루즈 선사와 항만을 방문하고 주요 인사를 만났다.
릭 사소 MSC 크루즈 미주법인 회장은 셀러브리티 크루즈 사장과 세계크루즈선사협회(CLIA) 의장을 지낸, 50년 경력을 지닌 업계의 산증인이다. 이어 만난 후안 커릴라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라인 홀딩스 수석부사장은 세계 최대 크루즈항인 마이애미항 CEO를 지낸 뒤 지금은 그룹의 항만·터미널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최근 부산항의 성장에 관심을 표명하며, 기항지에서 모항으로 도약하려면 승객·수하물 처리 시스템과 체류형 관광 콘텐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이애미항이 연간 수백만 명을 실어 나르는 비결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부산항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되짚어 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부산항의 크루즈 실적은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203항차, 25만 7000명이던 크루즈 입항이 올해 상반기에만 219항차 32만 명으로 지난해 실적을 훌쩍 넘어섰으며 연말까지 408항차, 65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불과 1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급증의 배경은 주변국 정세 변화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크루즈 시장이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특히 아시아 시장은 지난해 15% 성장하며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로, 이제 동북아 물류 허브를 넘어 크루즈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날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 부산항을 찾는 크루즈 대부분은 10시간 남짓 머물다 떠나는 단순 기항이었다. 도심 관광과 쇼핑 몇 군데를 한 뒤 곧바로 출항하는 구조로는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다. 관광객을 부산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 즉 ‘기항’에서 ‘체류’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모항의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 롯데관광·팬스타는 코스타 크루즈를, 두원크루즈페리는 이스턴비너스호를 각각 전세 내어 국내 크루즈 저변을 넓히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에 힘입어 부산항의 모항 시도는 올해 98항차에서 내년 111항차로 늘어날 전망이며, 부산항만공사는 이러한 경험을 발판으로 해서 로열캐러비안, 아도라 크루즈 등 대형 글로벌 선사로 참여 폭을 넓혀갈 방침이다.
다음은 준모항 확대다. 준모항은 모항에서 정원을 다 채우지 않고 출발해 중간 기항지에서 새 승객을 태우는 방식이다. 올해 MSC 벨리시마호가 부산항 준모항 운영을 본격화했고, 시장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올해 18항차에서 내년 20항차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다음은 1박 2일 이상 머무르는 오버나잇의 확대다. 지난 2월 노르웨이지안 크루즈 리가타호 입항을 계기로 부산항은 국내 항만 최초로 터미널을 24시간 개방해 그동안 형식적이던 1박 2일 기항을 제대로 된 체류형 관광으로 바꿔냈다. 이에 힘입어 부산항 오버나잇 크루즈는 올해 7항차로 시작해 내년에도 확대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항공·철도 연계 크루즈다. 올해 3월 프랑스 럭셔리 선사 포낭은 부산과 오사카를 잇는 크루즈 노선에 항공·철도를 연계하는 혁신적인 상품을 도입했다. 승객들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여 서울을 관광하고 KTX를 통해 부산 이동 후 관광을 마치고 부산항에서 오사카까지 크루즈 여행을 하는 방식이다. 포낭은 올해 4항차에서 내년 6항차, 내후년 9항차로 늘리고 부산↔도쿄·마닐라 등으로 노선도 다양화할 예정이다. 부산항만공사는 부산시·부산관광공사와 체류형 콘텐츠를 발굴해 실버씨 등 다른 선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러한 체류형 크루즈 유치를 위해서는 글로벌 선사 마케팅과 함께 개별 관광상륙허가제·크루즈 전용 인프라 확충 등 관광객이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부산항만공사는 지난 6월 말 CIQ 시설 확충과 크루즈 전용 터미널 증·신축을 골자로 한 ‘2030 부산항 크루즈산업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고, 7월에는 크루즈 선사 대리점 업계가 주축이 된 부산크루즈산업협회가 ‘K-크루즈 2030비전’을 선포하며 힘을 보탰다.
크루즈 황금시장이 열리고 있다. 최근 관광객 SNS에는 부산 여행 인증사진과 후기가 쏟아지며 ‘부산앓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 열기를 스쳐 가는 유행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아시아 크루즈 시장의 급성장과 한류 그리고 부산앓이 열풍까지, 크루즈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 경제와 항만이 함께 성장할 기회가 왔다. 이제 부산항은 동북아 크루즈 허브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2026-09-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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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상 공급망 안정성 담보하려면
글로벌 공급망은 하나의 위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위기가 겹쳐지는 복합위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과 홍해의 선박 공격은 에너지와 컨테이너 항로를 흔들고, 파나마 운하의 가뭄은 총성 없이 선박의 통항량과 적재량을 줄인다.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 기후변화, 사이버 위협, 물류노조의 대규모 파업까지 더해지면서 과거처럼 운임과 물동량만으로 시장을 설명하기도 어려워졌다. 이제 해상 공급망의 안정성은 가장 짧고 저렴한 항로를 찾는 능력보다, 위기 때 다른 항로와 선복을 선택하고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해상 통제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통제권은 바다를 물리적으로 지배하거나 민간의 의사 결정을 정부가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 화물의 위치와 이동을 파악하고, 필요한 선복과 항만·배후거점을 확보하며, 특정 해협이나 운하가 막힐 때 대체경로를 신속히 선택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말한다. 지정학·기상·선박자동식별장치(AIS)·항만·운임·보험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는 조기경보체계, 국적선사의 전략선복, 전쟁보험과 긴급금융, 해외 터미널과 물류시설 등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통제력이 생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재 대응체계가 기능별·기관별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항로와 선복은 해운정책, 해외 항만개발과 투자는 항만정책, 에너지와 원자재는 산업정책, 위기 정보는 외교·안보 영역에서 각각 다뤄진다. 평시에는 전문성을 높이는 분업이지만 복합위기에서는 판단과 실행의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정부가 모든 업무를 한 기관으로 모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위기 정보를 한 화면에서 공유하고 관계부처·항만공사·국적선사·화주가 공동으로 대응 시나리오를 가동하는 상설 거버넌스는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해상공급망 컨트롤타워와 실무 플랫폼을 함께 두고, 평시에는 해상공급망 실시간 모니터링과 경보시스템을, 위기 시에는 선복 배분, 대체 항로·내륙물류망, 보험, 금융 지원 등을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최근 거론되는 항만공사 통합 역시 같은 기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통합 자체가 목표가 되면 조직과 권한의 재배치에 머물 수 있다. 부산·인천·여수광양·울산항은 화물구조와 지역산업, 재무여건이 서로 다른 만큼 항만별 전문성과 책임성도 존중돼야 한다. 통합의 실익은 국내 항만시설을 한 조직이 관리하는 데서가 아니라, 분산된 자본과 인력, 데이터를 결합해 해외 물류망을 확보하고 국가 해상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싱가포르 PSA가 참고가 될 수 있다. PSA는 싱가포르항 운영에 머물지 않고 세계 여러 지역의 항만과 철도·내륙터미널, 해운지원 서비스와 디지털 플랫폼을 연결해 글로벌 공급망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국내 항만공사들도 단순한 항만시설 개발·임대기관을 넘어 해외 터미널 투자, 현지 내륙물류거점 확보, 국적선사·화주와의 공동사업, 디지털 공급망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주체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항만공사의 통합 여부에 앞서 해외투자 권한과 위험관리 기준, 전문인력, 민관 공동투자 구조, 항만 간 데이터 연계부터 설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동 지주 또는 해외사업 전담 플랫폼을 먼저 구축하고 성과를 검증한 뒤 조직 개편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해상공급망 통제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박과 항만 같은 자산뿐 아니라 정보, 계약, 네트워크, 전문인력과 위기대응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저빈도와 고충격 위험을 분담하고, 여러 주체가 공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도와 플랫폼을 마련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항만공사의 통합문제도, 지정학 리스크가 산재한 북극항로의 상용화도 이 큰 틀 안에서 추진될 때 서로 분리된 사업이 아니라 국가 해상공급망 역량을 높이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평상시 얼마나 많은 화물을 처리했는가만으로 평가되기 어려울 것이다.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대만 해협, 말라카 해협, 바브엘델만 해협, 호르무즈 해협 등에서 동시에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기업의 공급망과 국민을 위한 에너지·식량자원 공급망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강한 구호가 아니라 정보를 함께 보고, 선택을 함께 결정하며, 그 선택을 실행할 선복과 물류거점을 갖추는 일이다. 복합위기가 상존하게 될 바다에서 해상 공급망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차분히 준비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2026-08-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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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심해저에 등장한 두 개의 시계
지난 7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국제해저기구(ISA) 제31차 회기 두 번째 이사회가 열렸다. 십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심해저 광물 자원 개발 규칙 제정 협상이었다. 세 번째 수정된 개발 규칙 초안을 놓고 주요 쟁점별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교섭하였으나 이번에도 규칙은 완성되지 못하였다. 개발 규칙 이행에 필요한 표준과 지침도 상당수가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바다의 헌법이라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은 국가 관할권 밖의 해저와 하층토를 심해저로 정의하고, 심해저와 그 자원을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선언한다. 어느 국가도 이를 독점할 수 없고 개발은 오직 ISA의 규칙과 절차로만 가능하다. 문제는 탐사 규칙은 마련되어 있으나 실제로 광물을 캐내는 단계에 적용할 개발 규칙이 아직 없다는 점이다. 원칙은 선언되어 있는데 그 원칙을 작동시킬 절차가 비어 있는 상태다.
협상이 이어지는 사이 바깥에서는 다른 시계가 돌고 있다. 지난 8월 19일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태평양 바닷속 망간 단괴를 탐사하고 상업적으로 채광하겠다는 신청서가 접수된 사실을 연방 관보에 실었다. 신청자는 캐나다 기업 더 메탈스 컴퍼니(TMC)가 미국에 세운 자회사 TMC USA다. 미국 심해저광물자원개발법에 따른 법정 절차로, 오는 10월 13일 공청회와 10월 19일까지의 의견 수렴이 예정되었음을 공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TMC USA가 탐사와 개발을 하겠다고 신청한 곳은 어느 나라의 바다도 아닌 심해저다. 또한,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이 아니다. TMC는 나오에로와 통가에 세운 자회사를 통하여 ISA와 탐사 계약을 이행하는 한편, 개발 규칙 제정이 늦어지자 미국 자회사를 통하여 미국 국내법에 따른 개발을 준비하는 이중 전략을 취한 것이다. 다자 체제를 우회하는 이 길이 열린 것을 개발 규칙의 공백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 공백이 명분을 얹어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같은 달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해저분쟁재판부가 나오에로와 통가에 설립된 TMC 자회사들이 각각 ISA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에서 잠정 조치를 명령하였다. 계약자와 ISA 간 첫 사건이었다. 재판부는 본안 판결에 앞서, 만장일치로 ISA가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탐사 계약 의무의 잠재적 위반 혐의 조사를 계속할 것, 조사 내용을 계약자에게 명확히 알려 합리적 기간 안에 실질적으로 답변할 수 있도록 할 것, 양측 모두 분쟁을 악화시킬 조치를 삼가라고 명령하였다. 이사회는 조사가 진행 중인 그 계약자의 탐사 계약 연장을 승인하였다.
이 장면들은 곱씹어 볼 만하다. 다자 체제를 우회하는 경로를 택한 기업의 자회사가, 정작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 다자 체제가 만든 법정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심해저에 관한 한 협약과 ISA라는 다자 체제밖에 기댈 규범이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동시에 이 사건은 ISA에도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규칙을 집행하려는 기구라면 그 절차부터 법의 지배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규범의 권위는 절차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심해 생태계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고, 인간 활동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나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심해저 자원 개발의 유예나 금지를 지지하는 국가가 이번 회기를 거치며 46개국으로 늘어났다. 주목할 것은 이 국가들 역시 협약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방적 개발에는 반대한다는 점이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에 앞서, 이러한 결정이 ISA 안에서 내려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미 합의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ISA를 통하여 심해저에 세 개의 탐사 광구를 확보한 국가이자 개발 규칙 협상에 참여하는 이사국이다. 또한 국내 기업이 TMC의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다른 나라 기업의 일이지만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개발 규칙이 끝내 표류하고 일방주의가 표준이 되어 버리면, 협약을 지키며 준비해 온 쪽이 뒤로 밀리는 역설이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심해저 개발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를 다자 체제 속에서 정할 수 있도록 협상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협약에 합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채광된 광물이 우리 관할권 안에서 거래되지 않도록 국내 법제를 정비하는 일이다. 또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개발 규칙의 완성은 심해저 개발의 시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심해저 개발은 개시될 수 없다는 원칙이 개발 규칙을 관통해야 한다. 심해저는 인류의 공동 유산이다. 이 원칙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규칙과 절차가 제때 작동하여야 한다.
2026-08-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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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지속 가능한 선박 금융 생태계가 필요하다
해운업은 B2B 산업이기에 국민에게 친숙한 분야는 아니다. 가끔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있는데, 한진해운 파산이나 코로나 팬데믹 때 선박 부족으로 아우성치거나 최근 이란 전쟁으로 바닷길이 막힐 때다. 2025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은 약 72%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일본의 약 33%와 비교해도 두 배에 달한다. 극단적인 개방경제 국가이자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인 바닷길 확보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해운업을 포함한 물류산업을 제조업 등 다른 산업에 종속된 산업으로 보거나 비용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한진해운 파산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됐을 뿐 아니라 많은 중소 수출기업이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등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 등 예상 밖의 대외 여건까지 맞물리면서 해운업의 위상은 어느 정도 회복됐다.
2024년 기준 국적선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외항선대는 약 1억 톤으로 중국, 그리스,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이며, HMM은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 세계 8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적선사들 각고의 노력은 물론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독자적인 정책 금융기관 신설과 톤세제 연장 등 정부 정책이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특히 2021년 코로나 팬데믹 특수 이후 지난해까지 유례없는 해운업 호황이 이어지면서 국적선사들은 과거의 부실을 털어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해운업도 호황 뒤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호황기에 발주된 신조선의 인도가 지난해부터 본격화하고 있고 운임 수준도 하향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국적선사들의 영업이익률 하락 등으로 장기 투자 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국제해사기구(IMO)의 탈탄소화 규제 강화와 자율운항선박 도입 본격화 등 중장기 투자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국적선의 친환경 선박 전환을 위해서만 2050년까지 약 7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선사의 자금력과 운송계약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선박 건조 시 자기자금 비율은 최저 10%에 머무는 등 안정적인 선대 확충을 위해서는 건전한 선박금융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다. 반면 2000년대 후반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해운업 장기 불황으로 우리나라의 선박금융 생태계는 매우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책 금융기관의 비중이 3분의 1 이상에 달하고 민간 금융의 참여는 매우 미미한 반면, 외국계 자금 비중은 6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운업 호황이 유지되고 국제 환경이 우호적일 때는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지만 향후 큰 위기로 부각될 수 있다. 특히 선사의 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선박의 비용 효율성과 규모에 좌우되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선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지속 가능하고 대외 의존도가 낮은 선박금융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른바 선박 투자에 대한 ‘조세리스’ 제도를 전향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조세리스’는 산업자본 등을 선박 건조에 유치하고 해당 선박의 조기 감가상각을 인정해 투자기업에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필자는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형 조세리스 도입을 위해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해양수산부는 친환경 선박 등으로 투자처를 좀 더 제한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 재추진했으나 역시 세제 당국의 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하고 관련 비용을 손비 처리하는 법인세의 대원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세제 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해운업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기 시 국적선대의 역할을 좀 더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
해운 당국과 해운업계도 세제 당국에 대한 설득과 조선업계 등 관련 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해 정책 타당성을 더욱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현 정부의 ‘해양수도권 정책’, 해운업계의 ‘전략상선대’ 등 다른 정책과의 연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부산 지역에 선박 특구를 신설하고 특구 등록 선박에 한해 조세리스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전략상선대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해운 정책을 담당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책의 핵심 3대 요소는 선대 확보, 인력 양성, 국제 규제 대응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선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해운 당국과 해운업계, 부산 지역의 적극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추진력을 기대한다.
2026-08-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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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상속 포기가 불가능한 기후부채
이번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과 유럽도 예외 없이 극심한 더위로 재난 상태에 빠져 있다. 바닷가에 위치해 비교적 시원하다고 알려졌던 부산과 인근 지역에서도 요즘 태어나 처음 겪는 더위 속에 놓여 있다. 이 정도면 이상 기후가 아니라 괴상 기후로 불러야 할 듯하다. 진짜 문제는 이 괴상한 기후 현상이 해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지구로부터 빌려 쓴 탄소의 상환 청구서와 같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빌린 탄소를 쓰면서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탄소 빚에는 한도와 만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제대로 갚은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기후부채에 한도와 만기가 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기온이 오르는 육지뿐만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도 심각하게 날아들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수년간이 관측 이래 가장 높은 해수 온도를 기록했고 아시아 평균 해수면 높이는 1999년 위성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해양은 이미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30% 이상과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초과 열의 90% 이상을 흡수해 왔다. 만약 바다가 더 이상 탄소와 열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금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이 현재 예측보다 수 ℃ 더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빙하기와 현재의 지구 평균기온 차이가 불과 약 5℃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다가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기후 보증인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기 중으로 방출된 열과 탄소의 증가에 따른 해양 변화로 인해 바다도 서서히 한계에 이르고 있다. 해수 온도와 해수면의 상승은 이제 구조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어패류와 해조류, 산호 등과 같은 해양 생물의 서식지는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다. 어종 이동은 국가 간, 지역 간 어업 질서를 흔들고, 수산 경제를 요동치게 하고 있으며 연안 재해는 해안 도시의 안전을 위협한다. 바다는 막대한 열과 탄소를 대기로부터 흡수한 대가로 산성화와 생태계 악화라는 비용을 치르고 있으며, 이제 그 청구서를 인류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에서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않으면 연체 이자가 붙는다. 기후변화도 다르지 않다. 오늘 줄이지 못한 탄소는 내일 더 강한 해양 폭염과 태풍, 갯녹음, 수산 자원 감소라는 더 큰 피해로 되돌아온다. 우리가 미뤄온 기후부채의 연체 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기후부채를 갚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새로운 빚을 만들지 않고, 훼손된 자연을 복원해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래야 바다는 다시 기후 균형을 지탱하는 완충 장치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바다는 지구 최대의 탄소 흡수원이며 특히 해조류 숲과 잘피, 갯벌, 염습지, 맹그로브 등 블루카본 생태계는 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고 저장할 뿐 아니라 해양 생물의 산란장과 서식지를 제공하며 연안 재해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갯벌을 보전하고 바다숲을 조성하며 갯녹음을 복원하는 일은 기후부채의 원금을 갚으면서 수산 자원과 해양 환경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미래 세대의 부채를 줄이는 것이며 해양국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지키는 보험이다.
부모가 남긴 빚이 너무 크면 자녀는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 기업은 회생절차를 통해 채무를 조정받고, 국가는 채무를 탕감받거나 만기를 연장하기도 한다. 금융에는 감면도, 유예도, 파산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지구로부터 빌린 가장 거대한 빚인 기후부채에는 이러한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기후부채는 상속 포기도, 탕감도, 채무 조정도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은 자산을 물려주는 것을 좋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갚지 못할 빚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갚지 않은 기후부채는 말할 것도 없이 후손들에게 더 큰 상환 부담과 더 무거운 이자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인류의 가장 큰 탄소 보증인이 되어준 바다에 대한 직접적인 회복 조치가 꼭 필요하다. 바다숲 조성, 갯녹음 복원, 갯벌과 연안 습지 보전 등이 해양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다를 다시 지구의 가장 든든한 완충 장치로 되돌리고, 미래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 되리라 본다.
2026-08-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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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의 요트에 K컬처를 싣다
지난 6월 12일과 13일, 세계의 시선이 부산으로 향했다. BTS의 월드투어 ‘아리랑’ 부산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아미’가 부산을 찾았다. 이틀간 공연장을 채운 관객은 수만 명에 달했고, 외국인 관람객이 몰리면서 법무부가 별도의 출입국 대책까지 마련했다. 부산역과 해운대, 광안리 등 도시 곳곳에 마련된 이벤트 공간을 찾은 인파는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광안대교와 누리마루까지 앨범의 상징색으로 빛나면서 부산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이 되었다.
이 열기 속에서 요트계류장을 직접 운영하는 해운대 더베이101에도 기획사가 마련한 ‘아미마당’이 들어섰다. 더베이101은 행사 공간을 대관하는 역할이었지만 공간 제공에 따른 수익 대신 직접 운영하는 요트에 BTS의 수록곡 ‘스윔(Swim)’의 이야기를 입히고, 팬들이 음악을 들으며 부산 바다를 항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여러 차례 기획사와 협의한 끝에 ‘스윔 요트’가 실현됐다. 사흘 동안 700명 가까운 팬이 이 요트에 올랐다. 팬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들으며 부산 바다를 바라보고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같은 곡이라도 공연장이나 휴대전화로 듣는 것과 바다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듣는 경험은 분명 달랐다.
아미들이 부산을 찾은 첫 번째 이유는 바다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그런데 그 음악의 한 장면을 바다 위로 옮겨 놓자 요트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의 세계를 직접 살아보는 무대가 된 것이다. 아미들이 탄 것은 요트였지만, 그들이 마음에 담아간 것은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설렘과 기억이었다.
이번 경험은 부산 해양관광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해양레저의 경쟁력은 요트와 계류장을 얼마나 많이 갖췄느냐만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같은 배와 같은 바다라도 무엇을 싣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느냐에 따라 관광객이 가져가는 기억은 전혀 달라진다. 부산에 부족했던 것은 시설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꺼이 배에 오르게 할 이유, 바다 위의 몇십 분을 잊지 못할 경험으로 바꾸는 이야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부산의 요트 투어는 이미 대표적인 여행 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상당수 상품은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야경을 배경으로 한 번 타보는 체험에 머물러 있다. 부산 바다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경관만으로 다른 도시와 지속해서 차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윔 요트는 요트가 단순한 이동수단이나 레저시설을 넘어 음악과 공간, 팬의 감정을 연결하는 문화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부산은 최근 K팝과 연계한 공연장과 체험 공간을 여러 곳에서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공연을 관람하고 사진을 찍거나 굿즈를 구입하는 공간에 그친다면 방문객은 짧게 소비하고 떠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음악의 이야기와 K컬처를 부산의 바다, 요트, 서핑, 마리나 체험으로 연결하면 관광객은 그 문화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바람과 파도, 음악이 함께 남긴 기억은 사진 한 장보다 오래간다. 부산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도 그런 기억에서 생긴다.
부산에는 BTS 공연뿐 아니라 다양한 국제행사와 축제가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영화의 도시를 항해하는 시네마 요트를 운영할 수 있다. 부산불꽃축제도 불꽃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과 야경, 이야기가 어우러진 선상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부산의 음식과 원도심 역사, 해양생태와 지역 예술가의 작품 역시 바다 위에서 새로운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 K팝을 넘어 영화와 드라마, 미식과 예술까지 요트에 싣는다면 K컬처는 부산 바다를 세계인에게 소개하는 강력한 언어가 될 것이다.
이를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으려면 준비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부산에서 큰 공연이나 축제가 열릴 때 행사장 안의 프로그램만 마련해서는 아쉽다. 행사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문화기획자와 관광업계, 해양레저 사업자가 함께 만나 그 이야기를 부산의 바다까지 확장해야 한다. 관광객이 공연을 보고 곧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 그 여운을 이어가고 식사와 숙박, 지역 관광까지 즐길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한다.
해양수도의 경쟁력은 요트가 몇 척인지, 마리나가 얼마나 큰지만으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관광객이 왜 그 요트를 타야 하는지, 그 경험이 부산에서의 체류와 소비, 재방문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스윔 요트가 보여준 답은 분명했다. K컬처가 공연장과 전시장을 넘어 부산의 바다와 만날 때 관광객은 구경하는 사람에서 직접 경험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부산에는 이미 아름다운 바다와 요트가 있다. 이제 그 위에 세계인이 기꺼이 배에 오를 이유, 부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실어야 한다.
2026-08-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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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북극항로가 우리를 부른다
국제 해상 물류망이 흔들리고 있다. 호르무즈해협과 홍해에 긴장이 높아지면서 세계 경제 동맥인 주요 해상 교통로가 위협받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관문이고, 홍해와 수에즈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대표적 물류 통로다. 이들 항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면 운항 기간은 훨씬 길어지고 연료비와 보험료는 치솟는다. 상황이 악화되면 해운업뿐 아니라 제조업과 국가 물류망, 에너지 안보까지 흔들린다. 수출로 먹고 살아온 대한민국에는 대체 수단 마련이 절실하다.
대안으로 북극항로가 주목받고 있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해상 루트로, 500년 이상 탐험과 개척의 역사가 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북극해를 탐험했고, 20세기 들어 러시아는 시베리아 광물과 에너지 자원 수송을 위해 항로 개발을 추진했다. 1932년 쇄빙선 ‘시비랴코프호’의 항해 성공, 세계 최초 원자력 쇄빙선 ‘레닌호’의 등장은 북극항로 개척사의 중요한 이정표다. 최근엔 북극 해빙이 감소하면서 상업적 가능성이 높아졌고, 중국이 2017년 빙상실크로드(Polar Silk Road, 북극항로) 개발에 뛰어들었고 다음 달 상업운항에 돌입한다.
북극항로의 매력은 거리와 시간 단축으로 설명된다. 부산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항로는 약 2만 1000km에 달한다. 희망봉을 경유하면 2만 7000km에 육박한다. 반면 북극항로는 약 1만 3000~1만 4000km다. 수에즈 항로 대비 최대 30~40%의 거리 단축 효과가 기대된다.
북극항로의 경제적 효과는 운송비 절감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이를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로 설명하는데,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석탄 사용 효율이 높아지면 석탄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를 물류에 적용하면, 북극항로가 운송 기간과 물류비를 크게 낮출 때 비용 절감 뿐 아니라 새로운 교역 수요와 물동량이 창출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극항로 가치는 단순한 대체 항로를 넘어 새로운 경제권과 물류 생태계를 형성한다.
북극해는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바다로 알려졌다. 겨울철 결빙과 유빙 이동, 예측하기 힘든 기상, 안개와 화이트아웃 현상은 일반 항로와 비교할 수 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 러시아 영해 통과 문제, 국제 제재, 높은 보험료 등도 해결 과제다.
내달로 예정된 시범운항에서 연료 소모량이 얼마나 될지, 쇄빙 비용과 보험료는 어느 수준일지, 화물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지, 정시성은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필수적이다. ‘시장성이 없다’ ‘경험이 없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의 모든 혁신이 비슷한 평가를 처음에 받았다.
1950년대까지 항만에는 수많은 인부들이 화물을 하나씩 선박에 싣고 내렸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파손과 도난 위험도 컸다. 당시 등장한 컨테이너는 비현실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위대한 물류 혁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세계 경제와 전자상거래, 글로벌 제조업 기반도 컨테이너 혁명 위에서 성장했다.
정작 그 혁명을 일으킨 기업 미국 시랜드(Sea-Land)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컨테이너라는 혁신 자체보다 혁신 이후의 생태계 구축과 국가적 지원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북극항로도 마찬가지다. 항로 하나를 개척한다고 완성되진 않는다. 내빙 선박을 건조할 조선산업이 필요하고, 극지용 기자재 산업이 따라와야 한다. 해빙 예측 기술과 위성통신 체계가 구축돼야 하며, 금융과 보험, 법률 서비스도 발전해야 한다. 북극항로 개척이 국가 프로젝트인 이유다.
일본은 2022년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해 반도체와 에너지, 통신, 항만, 선박 장비 등 국가 경쟁력과 관련된 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경제 안보 분야에는 정부가 위험을 일부 부담하고 산업 지속성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대한민국도 비슷한 관점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이 도전하되, 국가가 제도와 금융, 정보, 외교 분야를 책임져야 한다.
다행히 부산·울산·경남은 세계 최고 조선산업과 항만, 해운 역량을 갖췄다. 부산항은 선박 정비와 친환경 연료 공급, 해운금융과 해사법률 서비스가 집적된 북극항로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섣부른 낙관도, 무조건적인 비관도 아닌, 오로지 ‘철저한 검증’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정주영 회장의 울산조선소 건설에서 우리는 그 중요한 사실을 이미 충분히 배웠다.
옛 시인들은 먼바다로 떠나는 항해자를 운명에 맞서는 영웅으로 묘사했다. 북극항로 개척 역사도 그렇게 씌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2026-07-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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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바다의 세금, 바다 인재에게 돌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운국가다. 세계 6위권의 국적선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을 바다를 통해 운송한다. 그러나 진정한 해운강국은 많은 선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박을 운항하는 우수한 해기사와 해운산업을 이끌 글로벌 해운비즈니스 전문가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제 세계 해운의 경쟁은 선박 확보 경쟁에서 인재 확보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여 년간 톤세제를 통해 해운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뒷받침해 왔다. 톤세제는 실제 영업이익이 아니라 선박의 순톤수와 운항일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국제 경쟁에 노출된 해운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 국적선대를 유지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조세지원 제도다.
최근 정부는 톤세제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중요한 변화를 추진했다. 정부는 톤세제 적용기한을 5년 연장하면서 톤세 절감액이 선박 재투자와 사회공헌 등 제도 취지에 맞게 활용되는지를 해양수산부가 철저히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톤세 적용기업이 투자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제도를 개선했으며, 내년부터는 선원 양성, 친환경선 도입, 국적선대 확충 등 절감액 규모에 상응하는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해야 한다.
이는 톤세제가 단순한 감세제도에서 국가가 요구하는 정책목표를 함께 실현하는 책임 있는 지원제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투자계획서의 형식이 아니라 어디에 투자해야 대한민국 해운의 미래 경쟁력이 가장 크게 높아질 것인가이다.
그 답은 분명하다. 사람에 대한 투자다.
우리나라는 부산해사고등학교와 인천해사고등학교, 국립한국해양대학교와 국립목포해양대학교를 중심으로 해기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들 교육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대한민국 상선대를 책임질 해기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해운기업은 국가가 투자한 교육시스템을 통해 검증된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으며, 자체 교육훈련 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 해운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해기사만이 아니다. 국제 경쟁력은 우수한 선장을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박금융을 설계하는 금융전문가, 국제 해사분쟁을 해결하는 해사법 전문가, 선박관리와 해상보험 전문가, 항만물류와 공급망 전문가, 친환경 선박과 해양 AI를 이끌 디지털 전문가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글로벌 해운강국이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해양전략도 결국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북극항로 시대를 대비한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부산을 세계적인 해양수도로 육성하고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해양수도권 조성을 국가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항만과 선박, 물류시설만으로 북극항로 시대를 선도할 수는 없다. 북극항로를 운영할 선사 경영인, 국제 해사법과 북극항로 규범을 이해하는 전문가, 해운금융과 해상보험 전문가, 스마트항만과 디지털 공급망 전문가가 함께 성장해야 국가전략도 성공할 수 있다.
결국 북극항로와 해양수도 부산의 경쟁력도 사람의 경쟁력이다.
따라서 해양수산부가 심사하는 톤세 투자계획에는 ‘해양전문인력 양성’을 핵심 투자항목으로 명확히 포함할 필요가 있다. 선원 양성뿐 아니라 해양대학교의 해운경영, 선박금융, 해사법, 선박관리, 해상보험, 항만물류, 친환경 선박, 해양 AI 분야 교육과 연구를 공식적인 투자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해운협회, 해운기업, 국립한국해양대학교와 국립목포해양대학교가 공동으로 ‘해양미래인재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해운기업은 톤세 절감액의 일정 부분을 출연하고, 정부는 세제와 정책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대학 장학금, 승선실습 지원, 실습선 운영, 첨단 시뮬레이터 구축, 계약학과 운영, 해양 AI와 북극항로 전문인력 양성사업 등을 투자 실적으로 인정한다면 톤세제의 정책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다.
이는 대학을 지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운산업의 미래 경쟁력에 투자하자는 제안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이며, 국가가 지원한 톤세제의 정책효과를 가장 크게 만드는 투자이기도 하다.
톤세 절감액은 선박을 위한 투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제는 대한민국 해양의 미래를 이끌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톤세기금의 해양대학교 지원은 대학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북극항로 시대와 해양수도 부산, 그리고 대한민국 해양강국의 미래를 위한 국가 전략투자다.
2026-07-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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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북극항로 시대, 선박관리업·선주업 키우자
최근 우리 해운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북극항로 개척과 전쟁 위험에 대한 대비이다. 정부는 2030년을 목표로 북극항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가 필수 물자의 안정적 수송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한 국가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모두 장기적인 투자와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은 당장 비용 절감이나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사업이 아니다. 시범운항, 쇄빙선 확보, 항만 인프라 구축, 항해 안전기술 개발 등 막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쟁 위험에 대한 대비도 마찬가지이다. 유사시 국가 필수 물자를 수송할 선박을 확보해야 하고, 전쟁보험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전시 상황에서도 운항을 담당해야 하는 선원들에 대한 선원연금이나 특별보상제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국가 재정의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반면 코로나19 이후 우리 해운산업의 재무구조는 과거보다 훨씬 건전해졌다. 많은 선사들이 선박금융 의존도를 크게 낮추었으며, 톤세제도 도입 이후 상당한 유보자금도 축적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장기적인 국가 전략사업과 함께 단기적 수익 창출 사업을 병행하여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선박관리업과 선주업이다.
선박관리업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이다. 선박관리회사는 선원의 모집과 교육, 선박의 안전관리, 정비와 수리 등을 담당한다. 세계적으로는 500척 이상의 선박을 관리하는 대형 제3자형 선박관리회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해외에 선원교육기관까지 설립하여 직접 선원을 교육하고 고용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과 우수한 선원교육기관, 그리고 풍부한 해기사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선박관리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부울경 지역은 조선소와 해양기자재 산업, 수리업체, 선원단체와 교육기관이 밀집해 있어 세계 어느 지역보다 선박관리산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이제 선박관리업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선박은 위성을 통해 육상과 상시 연결되어 있으며, 조선소는 건조 단계부터 선박의 모든 운항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는 원격 진단과 예측 정비, AI 기반의 안전 관리와 연료 효율 관리가 일상화 된다. 기존 선박관리회사들은 이러한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경쟁력을 가지는 우리 조선소와 협력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현재 선박소유자가 국내 관리회사에 선박관리를 위탁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상 도급인 형사책임 문제로 인해 법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반면 외국의 독립적인 제3자형 선박관리회사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선원의 고용과 선박관리 책임이 관리회사로 이전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라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차이가 계속되면 국내 선주들은 해외 선박관리회사를 선택하게 되고 국내 산업은 성장 기회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선박관리업 특성을 고려한 중대재해처벌법 제도 개선과 기타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
선주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선주업은 선박을 보유하여 이를 해운회사에 임대하고 안정적인 용선료 수입을 얻는 사업이다. 북극항로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와 달리 선박을 확보하는 순간부터 현금 흐름이 발생하는 산업이다.
이미 그리스와 일본은 세계적인 선주 국가로 성장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민간 선주업은 높은 금융 비용과 차입 의존 때문에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해운회사와 화주 자금 여력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고, 자기자본 중심의 선박 투자도 가능해졌다.
특히 대형 해운회사들이 자회사 형태의 선주사를 설립하여 부울경에 배치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해양산업 집적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해운회사의 영업 기능은 서울에 남기더라도 선박 관리와 기술 지원, 선주 업무는 자연스럽게 부울경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 개척과 전쟁 위험 대비는 우리 해운산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투자만으로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장기적인 전략사업과 함께 현실적인 수익 기반을 확대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북극항로 개척과 전쟁 위험 대비는 국가적 과제이다. 그러나 미래 투자와 함께 현실적인 수익 기반도 필요하다. 선박관리업과 선주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해운산업과 부울경 해양경제의 도약을 이끌어 해양수도를 완성해야 한다.
2026-07-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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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디지털 노마드가 꿈꾸는 부산
7월의 부산 바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파라솔 행렬과 해변을 가득 메운 인파는 해양도시 부산의 살아있는 활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름 풍경이다. 해운대와 광안리, 송정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도시는 활기를 띠고, 지역의 골목 상권도 모처럼 따뜻한 특수를 누린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업무차 방문했던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변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짱구(Canggu)와 울루와투(Uluwatu)의 해변 카페 곳곳에는 서핑보드 옆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단순히 파도를 즐기러 온 일회성 여행자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들이었다. 오전에는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삶의 에너지를 얻고, 오후에는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카페에서 화상회의를 하거나 각자의 업무를 이어간다. 저녁에는 코워킹 스페이스나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해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논의한다. 발리가 전 세계 젊은 인재들의 성지가 된 이유는 단순히 좋은 파도 때문만이 아니다. 파도 바로 옆에서 일할 수 있는 인프라 환경과 글로벌 커뮤니티가 결합된 ‘일하는 해변’(Workable Beach)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7월의 부산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매년 부산을 찾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다시 오고 싶은 도시’, 더 나아가 ‘정착해서 살고 싶은 도시’로 기억할까.
지금까지 부산의 여름 경제는 파라솔 대여나 숙박, 음식 소비와 같은 단기 관광 수익을 올리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 물론 이러한 직관적인 관광 소비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며칠 머물다 떠나며,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해변 상권의 활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시대를 맞아 이제는 바다를 대하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관광객, 즉 떠나는 사람을 관계인구, 즉 머무는 사람으로 전환하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부산의 바다가 관광객들이 잠시 찾는 단순한 관광지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창의적인 ‘오피스’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실제로 송정과 광안리 일대에서는 서핑과 원격근무를 유기적으로 병행하는 청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아직 전체적인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는 부산이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임에 분명하다. 부산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대도시의 편리한 생활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동시에 도심에서 불과 10~20분 차로 이동하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조건을 동시에 갖춘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드물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국제항만도시의 정체성과 풍부한 문화 콘텐츠, 우수한 의료·교통 인프라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바다를 활용하는 새로운 행정적 상상력이다. 멋진 워케이션 센터 건물을 보여주기식으로 하나 더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해변 전체를 일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해변 카페가 공유 오피스가 되고, 서핑숍과 마리나가 글로벌 네트워크의 거점이 되며, 장기 체류자들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튼튼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해안가 카페들을 업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감한 규제 완화와 해외 청년들이 마음껏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해변 공공 와이파이 확대, 특구 지정, 멤버십 도입과 같은 창의적인 정책을 적극 발굴하고, 검토할 시점이다. 더 나아가 영어 기반 행정 서비스와 글로벌 국제 창업 커뮤니티 지원, 다양한 장기 체류 프로그램 등도 서둘러 마련해 세계의 젊은 인재들이 부산으로 찾아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서핑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필자가 꿈꾸는 부산의 여름은 더 이상 파라솔 개수로 경쟁하는 정적인 도시가 아니다. 송정에서 파도를 탄 청년이 광안리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영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세계의 젊은 인재들이 해양환경 문제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도시다. 바다가 청년들의 꿈과 도전을 실현하는 플랫폼이 될 때 부산은 인구 감소의 위기를 넘어 ‘늙지 않는 해양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파도를 기다리는 도시를 넘어, 파도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 부산의 다음 여름은 그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26-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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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항의 미래는 친환경·탈탄소에 달려 있다
2018년 4월 13일은 특별한 날로 기억된다. 런던에 소재한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최초로 ‘국제 해운의 온실가스 감축 초기 전략’을 채택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 이상 감축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그 당시 필자는 IMO 본회의장에서 우리 정부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EU 등 선진국의 움직임과 이를 늦추려는 사우디, 이란 등 산유국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 중견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회의 마지막 날 극적으로 타협하는 순간을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제 조선·해운 산업의 국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잘 나가던 우리 조선 산업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글로벌 해운 불경기의 영향으로 2018년 무렵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으나, IMO발 친환경 국제 규제로 다시 한번 되살아나는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2023년 IMO는 한 발 더 나아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 목표에 합의했다. 감축 초기 전략 채택 이후 8년이 지난 현재 우리 조선 산업은 친환경 선박 등의 발주량 증대로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친환경·탈탄소로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은 항만도 예외가 아니다. 녹색 해운 항로(Green Shipping Corridor) 구축에서 볼 수 있듯이 탄소중립의 가치는 선박뿐 아니라 항만에서 뒷받침될 때 그 효과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항만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허브 구축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로테르담항은 수소와 암모니아 기반 에너지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항만이 화물 처리 공간을 넘어 미래 에너지 산업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도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탈탄소와 에너지 자립 항만’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지속 가능한 항만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는 친환경 선박 연료 벙커링 인프라 구축이다. 부산항을 찾는 친환경 선박은 2020년 9척에서 지난해 315척으로 불과 5년 만에 35배가 늘었고, 2030년 800척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항만공사는 신항 남컨 배후 단지에 LNG·메탄올 벙커링 터미널 구축을 통해, 동북아를 대표하는 친환경 연료 공급 거점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둘째는 육상 전원설비(AMP) 구축이다. 선박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동안 엔진을 가동하면 대기 오염 물질과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이 기간 동안 선내 엔진을 가동하지 않고 육상 전력을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현재 11개 선석에 설치된 AMP 시설을 2032년까지 32개 전 선석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셋째는 재생에너지 도입이다. 부산항만공사는 항만 유휴 부지와 시설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부산항 인근에 해상 풍력 발전도 구상 중에 있다. 이렇게 생산한 에너지를 항만 운영에 직접 활용하여 탄소 감축과 함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친환경 항만 구현에 속도를 내고자 한다.
넷째는 친환경 장비 전환 사업이다. 기존 화석 연료 기반의 야드 트랙터 등 항만 장비를 전기와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장비로 단계적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하역 장비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이 항만 전체 배출량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이 전환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과제다. 이는 항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는 동시에 운영 효율성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환경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국제 규제 강화에 대응하고 부산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이다. 친환경 연료 공급, 정박 선박의 탄소 배출 저감, 재생에너지 생산, 친환경 하역 장비 전환. 이것이 부산항이 준비하는 ‘2050 탄소중립’의 로드맵이다.
개항 이후 150년 동안 부산항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관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탈탄소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정부와 지역사회, 해운·항만 업계와 긴밀히 협력하며 부산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친환경 항만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부산항이 세계가 주목하는 지속 가능한 항만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탈탄소 전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겠다.
2026-06-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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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AI시대 성장축, 동남권이 돼야 하는 이유
최근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데이터는 석유를 대체하는 새로운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국가 경쟁력이 항만, 공항, 철도, 도로 등 물류 인프라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데이터센터, 해저케이블, 클라우드 네트워크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디지털 인프라 정책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전력 부족, 부지 확보 난항, 주민 민원 증가, 네트워크 과부하 등의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에 국가의 모든 디지털 인프라를 집중하는 방식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한계에 도달했고 국가 안보와 재난 대응 측면에서도 상당한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국토 균형발전과 국가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을 글로벌 공급망 데이터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 동남권은 수도권이 갖지 못한 세 가지 결정적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첫째,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공항이 만들어내는 방대한 물류 데이터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환적항이자 대한민국 최대 무역 관문이다. 진해신항과 가덕신공항이 완성되면 동남권은 항만·공항·철도가 연계된 세계적인 트라이포트 체계를 갖추게 된다. 항만과 공항은 단순한 물류 거점이 아니다. 선박과 화물, 컨테이너, 차량, 항공기, 창고, 통관 등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데이터의 보고다. 미래의 스마트 항만과 스마트 물류는 결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AI가 선석 배정과 화물처리 계획을 수립하고, 디지털 트윈이 물류 흐름을 예측하며, 자율주행 장비가 항만을 운영하는 시대에는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다.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최대의 물류 데이터 생산지이며 앞으로는 글로벌 물류 데이터의 중심지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둘째, 동남권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데이터 관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연결된 국제 해저 케이블 9개 중 7개가 부산과 동남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항만이 세계 물류가 모이는 관문이었다면 해저 케이블은 세계 정보가 모이는 디지털 항만이다. 글로벌 인터넷 트래픽의 95% 이상이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최대의 국제 데이터 게이트웨이인 셈이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의 데이터 허브가 된 이유 역시 해저 케이블과 항만이 결합된 전략적 위치 덕분이다.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와 같은 글로벌 허브 도시들은 모두 물류와 데이터가 동시에 집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부산 역시 동북아 물류 허브에 더해 글로벌 데이터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데이터의 이동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과 AI 기업들이 해저케이블 인근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은 이미 그 입지적 조건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와 지원뿐이다.
셋째, 동남권은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입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 역시 전력 공급 능력이다. 동남권은 원전과 LNG 발전소,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수도권이 전력 부족과 송전망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과 달리 동남권은 대규모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존재한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바다를 활용한 냉각 시스템이다. 데이터센터 운영비의 상당 부분은 서버 냉각 비용이 차지한다. 부산과 동남권은 풍부한 해수를 활용한 냉각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해수 냉각은 일반 공조 방식보다 전력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으며 탄소배출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운영비 절감뿐 아니라 ESG 경영과 탄소중립 시대에도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결국 동남권은 물류 데이터, 글로벌 네트워크, 에너지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보유한 대한민국 유일의 지역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부산만의 발전 전략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성장 한계와 지역 소멸이라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가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동남권의 데이터 허브 전략은 국토 균형발전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성장축이 경부축이었다면 AI 시대의 성장축은 데이터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이 있어야 한다.
2026-06-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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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심해저 '경배 지역' 새로운 권익과 그 한계
해양에 관한 국제법의 탄생에는 오래된 두 명제의 대립이 있었다.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명제와 바다도 영토처럼 차지할 수 있다는 명제다. 이 두 명제의 치열한 다툼의 산물로 오늘날 국제법은 바다의 일정 부분은 한 국가가 영토처럼 관할하도록 인정하면서도, 다른 부분은 어느 한 국가의 영유권도 허용하지 않고 모두에게 열어 둔다. 후자가 국가의 관할권 밖에 있는 지역에 해당하는 공해와 심해저다. 그런데 지금, 가장 멀고 깊은 바다에서 새로운 권익과 주체가 떠오르고 있다.
올해 3월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심해저 광물 자원 개발 규칙을 제정하기 위한 국제해저기구(ISA) 제31차 이사회가 개최되었다. 전기차 배터리와 첨단 산업에 쓰이는 금속 수요가 늘고 심해저 해양환경 보전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심해저는 새로운 자원 개발 경쟁의 현장이자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중요 대상으로 떠오른 터다. 이 협상장에서 소수 민족을 대표해 발언권을 얻은 한 옵서버 대표가 조상의 혼을 기리는 전통 민요를 불렀다. 하와이 원주민의 조상이 깃든 심해 평원과 해산이 자신들에게는 신성한 장소, ‘경배 지역(venerated site)’이니 심해저 자원 개발로 그 정신적 연계를 훼손하지 말라는 호소의 서곡이었다.
‘경배 지역’은 새로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2001년 채택된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 보호협약의 부속 규칙은 유해나 ‘경배 지역’에 대한 불필요한 교란을 피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비극적 사건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수중의 장소나 역사적·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장소를 무분별한 발굴과 탐사로부터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다만, 이 협약의 ‘경배 지역’은 난파선과 같은 물리적 대상이나 역사적·종교적 유물이나 유적을 전제한다. 반면, 옵서버가 말하는 ‘경배 지역’은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 연계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이러한 주장은 더 큰 국제 규범의 흐름 위에 있다. 바로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다. 오랜 차별과 소외의 역사를 지닌 이들을 국제 사회가 특별히 보호해 온 것은 정당하며, 이들은 이제 국제법의 당당한 권익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최근 발효한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 해양생물다양성 협정(BBNJ 협정)도 공해와 심해저에 관한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전통 지식의 존재와 그 존중을 규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BBNJ 협정이 규정하는 것은 이들이 ‘가지는 지식’이다. 지식은 공동체가 지닌 무형의 자산으로 인정될 수 있다. 반면, 심해저에서 ‘경배 지역’ 주장은 인류 공동 유산으로 지정된 심해저의 특정 장소에 특별한 보호 이익을 설정하는 행위다. 그들이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지역에 말이다. 지식의 존중과 장소에 대한 권리 주장은 결코 같은 차원의 일이 아니다.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의 전통 지식도 존중해 주니 ‘경배 지역’ 주장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경계되어야 한다.
따져 봐야 할 문제는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경배 지역’에 대한 권리를 부정할 것인지가 아니다. 바다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은 심해저를 인류 공동 유산으로 정한다.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가보지 않은 미지의 심해저에 조상과의 정신적 연계를 이유로 특정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독점적 점유를 부정하는 인류 공동 유산 개념과 조화될 수 있는지. ‘경배 지역’의 존재와 가치는 누가 인정하며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경배 지역’이 취지가 좋으니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ISA를 통하여 심해저 세 곳에서 자원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심해저 개발로부터 보호해야 할 범주가 어떤 형태로 정해지는지는 우리나라 개발 주체의 미래와 직결된다. 핵심은 ‘경배 지역’을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범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다. ‘경배 지역’이 자칫 광범위한 지역의 심해저 채광을 막는 도구로 쓰일 여지는 없는지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무형의 정신적 연계가 장소에 대한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하면, 이 논리는 다른 영역에서 확장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계(儆戒)는 부정이 아니다. 어떤 권리든 한계가 분명해야 비로소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검토 없이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심해저 탐사권을 가진 국가로서 이 논의를 회피하지 않고 ‘경배 지역’ 범위 설정을 위한 균형 잡힌 기준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2026-06-14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