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양 지식 요람, 세계해양도서관을 상상하며
김종덕 한국수산자원공단 이사장
고대 세계 최고 해양도시 알렉산드리아
해상 교역 수익, 지식 허브 구축에 투자
미래 바다 선도하려는 부산이 가야 할 길
도시는 건물과 도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과 물자가 모여야 도시가 움직이고, 그 위에 지식과 문화가 축적되어야 비로소 그 도시는 시대를 이끄는 힘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해양도시로는 지중해를 밝힌 파로스 등대로 유명한 고대 알렉산드리아가 있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 북부 지중해 연안의 라코티스 일대에 새로운 도시 건설을 명령했고 이름을 알렉산드리아로 하였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곳을 수도로 삼고 항만과 행정 시설, 왕궁, 학술 기관을 집적해 고대 세계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로 성장시켰다. 지중해와 나일강을 연결하고, 내륙의 생산과 국제 교역을 결합하며, 정치·경제·학문을 하나의 도시 안에 통합하려 한 매우 혁신적인 도전이었으며 로마제국의 가장 중요한 물자 공급 항구로 발전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는 항구를 통해 드나드는 선박으로부터 문헌, 기술과 사상을 무모하리만큼 적극적으로 흡수했다. 도시 중심에는 무세이온(Mouseion)이라 불린 연구 공동체와 이를 뒷받침하는 도서관이 조성되었다. 오늘날의 대학과 연구소, 지식센터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던 공간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또한 교역으로 벌어들인 부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여 많은 문헌을 수집하고 복제해 도서관에 축적하려 했으며, 수십만 점의 파피루스 문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지식 허브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문헌의 수집을 넘어 분류와 해석, 번역과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칼리마코스가 작성한 ‘피나케스’는 세계 최초의 체계적 도서 목록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에라토스테네스는 이곳에서 연구하며 지구 둘레를 정교하게 계산했고,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체계를 정리했다. 알렉산드리아는 물류와 교통의 관문인 항구와 문명과 학문의 관문인 도서관이 결합하면서 고대 세계 최고의 해양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파로스 등대가 물류의 길을 밝혔다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지혜의 길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그 후에 번영한 해양도시들에서도 표준 모델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교역과 금융, 예술을 결합했고, 암스테르담은 항만과 자본, 기술을 연결했으며, 런던은 해운과 보험, 대학을 중심으로 하였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물류 역량 위에 금융과 데이터, 교육과 기술을 더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고, 물자가 흐르고, 자본이 축적되고 지식에 재투자해 온 해양도시가 늘 시대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고 본다. 1970년대 이후 원양산업이 한국경제의 기틀을 열었던 수산의 시간, 1980년대 이후 수출산업의 기적을 실현했던 항만의 시간, 1990년대 이후 해양수산부 출범으로 이어진 통합 행정의 시간, 그리고 21세기 북극항로 시대가 열어갈 새로운 해양경제의 시간이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 이에 더해 해양수산 관련 유수한 대학과 연구기관,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이 모여 있거나 모이고 있고 더 모이게 될 것이다. 해양 지식 도시라는 새로운 비전을 통해 해양수산업과 물류, 금융, 교육, 연구, 문화와 이를 통섭하고 연결하고 혁신하는 지식 생태계가 함께 성장한다면 해양수도의 길은 더욱 빨라지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부산이 가진 해양수산 지식기반을 통합하고 지식 문화를 이끌 수 있는 상징적인 인프라로 ‘세계해양도서관’ 구상을 제안한다. 세계적으로 아직 다양한 해양 지식이 하나로 통합되어 집적된 도서관은 없다. ‘세계해양도서관’은 전 세계 해양·수산·항만·물류·기후·해양과학 자료와 정책, 역사와 데이터가 모이고 연결되는 플랫폼이고, 연구자와 학생, 산업계와 시민, 청년과 세계의 석학이 함께 모여 새로운 해양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문화로 발전시키는 네트워크이자 공간이 될 것이다.
2026년은 부산의 해양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부산항 근대 개항 150주년, 해양수산부 출범 30주년, 부산항 신항 개항 20주년, 그리고 해양수산 통합 행정의 부산 시대가 시작되는 대전환의 시간이다. 부산 앞바다가 보이는 ‘세계해양도서관’에서 부산을 비롯한 전 세계 청소년들이 해양 비즈니스의 꿈을 키우고, 세계의 해양 관련 연구자들이 지속 가능한 바다를 논의하며, 그것이 새로운 해양 문명으로 이곳 부산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시작된 중심 해양도시의 역사가 알려주는 것은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 경제와 새로운 지식과 혁신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의 결과이다. 그것은 아마 다음 세기의 바다를 선도하고자 하는 도시 역시 가야 할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