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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죄가 없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오빠 수난 시대’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 등장한 ‘오빠’ 단어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브로커의 전화에 오빠가 나서서 정상 절차로는 어렵던 신약 허가 기간을 확 줄여준 사실이 드러나며 온 국민이 도대체 어떤 ‘오빠-동생’ 사이인지 지켜보게 만들고 있다.
되돌아 보면 일상의 호칭인 오빠가 정치 스캔들이나 권력 남용, 불미스러운 성희롱 사건에 얽혀 수난을 겪은 사례가 한두 차례가 아니다. 오빠는 시대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무대 위 스타를 지칭하는 ‘애정의 단어’였다가 ‘정치 거래의 언어’로, 때론 ‘위력 행사의 폭력’으로 변모했다. 오빠의 변천사를 한 번 돌아봤다.
청춘의 우상이자 낭만의 대명사
오빠는 남매 사이에, 연령 차가 있는 남녀 사이에, 때로는 연인 사이에 쓰이는 친근함과 친밀감 담은 호칭이다. ‘동네 오빠’ ‘선배 오빠’ ‘옆집 오빠’ ‘교회 오빠’, 온갖 오빠가 있다. 관계와 상황, 어조에 따라 오빠 호칭에 담긴 감정도 다양했다. 서울 가면 비단 구두 사다 줄 것만 같던 전통적 의미의 오빠에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미를 더한 것은 대중문화였다.
1960~70년대 ‘원조 오빠’ 남진·나훈아를 거쳐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 인기를 끌면서 오빠는 대중문화 전면에 등장했다. 얼마나 오빠가 편했던지 리처드 클리프 같은 외국인도 ‘오빠’였다. 공연장에서 터지던 오빠 함성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눌려 있던 여성들이 열정과 애정을 발산하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언어였다.
스포츠에도 오빠가 생겨났다. 대략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스타들이 등장했을 때다. 농구장을 가득 메우던 ‘오빠 부대’를 향한 우려 섞인 시선도 없진 않았지만 순수한 팬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대중문화 산업도 오랜 기간 스타를 친근하고 보호받고 싶은 오빠로 인식하게 하는 데 성공, 유대감과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들어 냈다.
정치에 입성한 ‘오빠’, 팬덤을 만들다
이 낭만적인 단어가 정치와 결합하면서 의미 분화가 이뤄졌다. 정치에서 오빠 단어 효과를 본 정치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꼽힌다.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선 과정에서 세를 불려나가면서 열혈 지지자를 비판하는 ‘노빠’(노무현 오빠 부대) 용어가 나왔다. 하지만 노사모 회원들은 스스로 노빠를 자처하면서 긍정적 의미로 바꿔냈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빠’가 자연스러워졌다.
수긍이 쉽게 안 가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오빠’ 수혜자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 대통령 지지자들은 ‘경제 먼저, 오빠 먼저’ 플래카드를 들고 지지 활동을 펼쳤다.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와 대비시키고, 경제 대통령과 오빠 이미지를 앞세워 지지세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때도 트로트곡 ‘오빠만 믿어’를 개사한 ‘명박만 믿어’를 로고송으로 쓴 사실을 보면 오빠 마케팅 효과가 없진 않았나 보다. 이때만 해도 정치권에서도 ‘오빠’ 호칭은 정치 팬덤을 지칭하거나 지지를 유도하는 친근함의 의미가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빠의 추락’…공사 경계를 넘다
오빠 호칭에 부정적 의미가 강화된 것은 오빠를 앞세워 공적·사적 영역이 허물어지는 일이 터지면서다. 2007년 신정아 씨 사건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을 가리킨 ‘예일대 오빠’라는 표현이나,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윤관석 전 의원과의 통화 중 “거기 해야 돼 오빠”라고 말한 녹취록이 대표적이다. 공식 호칭 대신 오빠라는 사적 호칭이 사용된 정치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오빠는 공적 권력과 은밀한 청탁을 뒤섞는 매개로 조금씩 자리 잡게 됐다. 부당한 뒷거래가 있는 것처럼 비쳤고, 때론 정권에 부담이 가기도 했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불거진 ‘오빠 로비’ 의혹도 국민에게 유사한 인식을 부르며 연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후보자와 사적 친분이 있는 브로커가 오빠라고 부르며 이권 청탁을 시도했고, 김 후보자가 그 청탁을 적극적으로 들어줬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오빠-동생’이라는 사적 소통 구조가 권력의 그늘에서 작동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 국민 공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공적인 검증과 권한 행사가 핵심인 법무부 장관 수장에 적합하냐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오빠’ 오남용, 부메랑이 되다
정치인 스스로 부적절한 ‘오빠’ 표현을 써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2002년 여성단체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발 당하자 “오빠 동생 하는 사이였다”는 황당한 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반발을 불렀다. 우 전 지사는 추후 대법원으로부터 성추행 최종 판결을 받았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오빠 오남용 사례도 있다. 2019년 이 의원이 단식투쟁을 벌이던 황교안 당시 대표를 풍자하는 과정에서 오빠를 잘못 끌어다 쓴 일이다. 이 의원은 황 대표를 비판한다면서 나경원 의원의 이름을 빌려 ‘황교안 오빠, 나경원 올림’ 이란 가상 편지를 써 SNS에 올렸고, 성희롱성 지적에 부랴부랴 글을 수정했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 총선 때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하정우 후보 지원 유세 현장에서 초등학생에게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유도해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다. 이 사태에 국립국어원까지 나서서 초면에 나이 차이가 40세 이상 나는 연상의 남성에게 오빠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답변까지 내놨다.
정치 무대에서 오빠가 등장할 때마다 예외 없이 불거지는 ‘오빠 게이트’, 혹은 ‘오빠의 정치학’은 이제 한국 정치가 넘어야 할 음습한 유산이 돼가고 있다.
권력 가리는 ‘오빠’의 일상화
“교수라 부르면 F학점, 오빠라고 부르면 A학점을 주겠다” “‘오빠, 오빠’하며 술을 따라야 한다” “탄탄대로 걷게 해 줄게. 오빠만 믿어” “오빠들 만나러 가려면 수업 빠져도 돼”…. 쉽게 안 믿기겠지만 최근 수년간 실제로 쓰여져 피해자까지 만들어 낸 말들이다.
오빠를 교묘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쓰는 일은 영역이 따로 없다. 교단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스스럼없이 내뱉는가 하면, 공직 사회나 민간 기업에서 상급자가 동료 직원들에게 위력을 행사할 때 오빠라는 가면으로 가렸다. 위계가 분명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성추행과 성희롱은 피해자가 상하관계 때문에 문제 제기를 못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렸다는 점에서 비겁하기까지 하다.
공적 권력과 사적 친밀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력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오용된 오빠라는 호칭. 공과 사의 경계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한때 정겹고 낭만적이던 이 단어가 예전의 순수함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6-09-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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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가
전쟁은 엄청난 비극이다. 막대한 인명 피해는 물론 공들여 구축한 문명 시설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났듯이 그 잔인하고 참혹한 행태로 인한 후유증은 세대를 넘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다. 더욱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에 해당 국가 경제도 큰 위기에 처한다. 고가의 최첨단 무기 의존도가 높은 현대전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정치,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현대전은 단기간에 종료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요즘 전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최근 발발한 전쟁마다 장기화 양상으로 흐르면서 최근엔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하는 국가들마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 당초 손쉽게 전쟁을 끝낼 것으로 점쳐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인가.
■ 딜레마 빠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종전 중재 시도가 이어졌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사가 두 나라를 방문해 전쟁 종식을 위한 회담 재개를 중재했다. 하지만 미국 특사단이 떠나자마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상대방 거점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난타전을 재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양측이 타협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협할 만한 절박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양측이 모두 자신들이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조금 더 싸우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도 “조금 더 버티면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 다시 말해 양측 모두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현재 타협 비용이 전쟁을 계속하는 비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는 역설에 빠져 있다는 설명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상대방이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주된 이유로 꼽힌다. 러시아는 NATO가 동쪽으로 확대돼 우크라이나가 서방 안보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자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NATO 등 서방과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양측이 엄청난 희생을 치른 데 따른 매몰 비용과 국내 정치 부담 문제도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자국 내에서 큰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정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양측 모두 자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승리’와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니 현재는 평화협정 체결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양측을 효과적으로 중재할 강력한 국제기구가 없다는 점, 전쟁 장기화로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길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 등도 전쟁 장기화 이유로 꼽힌다. 결국 이 전쟁은 ‘소모전의 역설’에 빠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오늘 협상하는 것보다 내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고 있다 보니 평화협정을 서두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전쟁이 끝나려면 양측이 모두 “앞으로 더 싸워도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서로가 극도로 고통스러운 교착상태에 봉착할 때 평화협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1953년 6·25 한국전쟁 휴전 협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 아직까지 이런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계속 힘을 얻고 있다.
■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 분쟁 치닫나
2026년 2월 말 본격화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도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양측 모두 먼저 양보해야 할 만큼 결정적인 패배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즉,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이란의 군사, 핵 시설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지만 이란 정권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이란 역시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능력은 부족하지만 미군 기지와 함정, 걸프 지역 동맹국, 유조선 등을 위협하면서 전쟁 비용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이길 수는 있어도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없고, 이란은 이길 수는 없어도 패배하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는 비대칭적 교착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세계 에너지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다. 미국이 이란 군사시설을 파괴하더라도 광범위한 호르무즈 해안 지역에 분산된 이란의 군사력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해협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면 미국은 현재보다 훨씬 광범위한 군사력과 지상군까지 투입해야 하는 데 정치·군사적 부담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대안으로 경제 제재와 해상 봉쇄를 통해 이란의 원유 수출과 경제 활동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란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란 지도부가 장기전을 포기할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이란의 경우 타협 조건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이란 핵프로그램 제한과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항행, 제재를 완화한 뒤 이란이 핵 개발이나 지역 군사활동을 재개하지 않을 것 등을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전, 자국의 핵 권리와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양측은 서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형국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이란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이란을 완전히 점령하거나 체제를 붕괴시키려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미국 내 전쟁 반대 여론과 11월 중간선거 등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지상군 투입 등 확전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과 이란 전쟁은 초강대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가 반드시 일방적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지는 상황으로 치닫기보다는 제한적 공격과 보복, 경제제재, 협상이 반복되는 장기분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끝나지 않는 전쟁…징병제·무력 충돌 불감증 급증
냉전 종식 뒤 상당수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했다.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이후 징병제를 폐지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규모 지상군 병력보다는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를 갖춘 군대가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징병제 폐지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장기화된 전쟁 양상은 현대전에서도 결국 대규모 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러시아 인근에 위치한 크로아티아가 2025년 징병제 부활을 결정한 데 이어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이 남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도 2010년 징병제를 사실상 중단했으나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면서 2017년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특이한 점은 남녀 모두가 징병 대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을 군대에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신체조건·적성·동기·군의 필요 등을 종합해 필요한 인원만 선발하는 선택적 징병제를 도입했다. 덴마크도 여성을 의무복무 대상에 포함시켜 성중립적 징병제로 전환했다. 2011년 징병제를 중단했던 독일은 조건부 징병제를 도입했다. 자원병을 우선 모집한 뒤 필요한 병력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안보상황이 악화되면 징병제를 발동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나긴 전쟁에 이어 미국과 이란 전쟁까지 장기전 양상을 띄면서 각 국가들이 과거 징병제로 회귀하는 등 지구촌 안보 상황마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좀처럼 끝나지 못하는 요즘의 전쟁들이 무력 충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른바 ‘전쟁 불감증’을 확산시키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6-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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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만큼 두려운 게 온다[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난치병에 걸린 50대 초반의 가장이 있다. 치료하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는 병이어서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으나 다행히 최근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돼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문제는 이 치료법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계의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거액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이 가장은 과연 치료를 받으려 할 것인가.
이 사례는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자주 제기하는 딜레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 병자에겐 세계 최악의 지옥이라 불리는 이유로도 자주 꼽히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에서 출발한 논의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이 같은 구멍을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곧잘 발전한다. 국가가 담당하는 필수 서비스의 강화로 개인의 막대한 부담을 막아야 한다는 이 논리는 의료 민영화 시도도 곧잘 제동을 걸어 왔다.
■또 다른 민영화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구조적으로 평행을 이루는 존재가 있다. 바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된 형사소송법 개정 내용이다.
의료 민영화 비판의 핵심은 국가가 담당하던 필수 서비스를 개인이 시장에서 스스로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서 써야 하는 구조로 전환된다는 데 집중된다. 이런 논리를 이번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소법 개정에 적용해 보면 구조적 평행이 드러난다.
바뀐 형소법에 따라 종전에 검사로 대표되는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던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 작업을 이제는 피해자가 자비로 변호사를 고용해 해결해야 할 판이 됐다. 공적인 의료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던 병원 치료를 사보험과 자비 부담으로 넘기는 것이 의료 민영화라면 사법 시스템의 이 같은 변화도 ‘사법 민영화’ 혹은 ‘검찰 민영화’가 아니라 하기 어렵다.
■누가 비용을 치르나
의료 민영화에 빗댄 사법 민영화가 비유로서 성립하는 이유는 지불하는 비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앞서 난치병에 걸린 50대 가장의 사례에서는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만 살 수 있다면 과연 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지가 딜레마였다. 마찬가지로 거액의 변호사비를 부담해야만 제대로 된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면 피해자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가장 큰 문제는 비용 부담 능력이 없거나 모자란 계층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국가 몫이 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의료 민영화가 되어도 기존 의료보험으로 어느 정도는 치료비 감당이 가능하다. 경제적 약자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보호 제도 같은 것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법의 민영화 이후로도 공적 제공 영역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민주당 내 강경파들이 주장한 것처럼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이 그에 해당할 터이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 국선 변호사 선임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국선 변호사를 무한정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한다던 유럽 어느 나라에서 병자가 치료에 돈이 안 드는 대신 의사를 만나보려고 기다리다 죽었다는 우스개처럼 국선 변호사를 기다리다 사건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민영화가 아니라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조치를 사법의 민영화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그 조치가 의료 민영화처럼 민간시장으로 서비스를 완전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서 경찰로 국가 기관의 기능을 재배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남아있는 한 피해자의 자비 변호사 선임 시나리오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보완 설명'도 곁들여진다.
이 같은 주장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소법 개정이 사법의 민영화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으려면 논의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경찰을 사법 서비스의 공적인 대체 공급자로 인정할 경우 그동안 검사가 무상으로 제공하던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을 경찰이 균질하게 제공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 논의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한다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소법 개정을 향한 사법의 민영화라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시스템을 방치하는 대한민국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2026-08-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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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에게 날씨 걱정을 다 듣다니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잠드는 순간까지 ‘덥다’ 소리를 되뇌던 여름도 사그라들고 있다.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그늘에 들면 더위도 견딜만해졌다. 역시 지구가 도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돌아보면 올여름 부산·울산·경남 사람들 삶은 간단치 않았다. 물론 날씨 때문이다. 장마철이라더니 비 구경하기 힘들었고, 보통 여름이겠거니 만만히 여기다 큰코다쳤다. 2026년 부울경 여름은 ‘더웠다’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국내 기상 관측 역사를 새로 쓰며 우리를 멘붕에 빠트린 부울경 올여름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
여름 맞아? 방심하다 당했다
장마철이 됐지만 부산·울산·경남엔 비는커녕 햇빛만 쨍쨍했다. 장마도 6월 30일 시작돼 평년보다 7일이나 늦게 ‘지각 개장’했다. 하지만 기온은 평년 수준이었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때만 해도 흔한 여름 수준이 예상됐다. 기상청이 올해 처음 도입한 폭염중대경보 첫 발령 지역이 경북 포항과 경산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2일이었다. 관계부처에 비상이 걸렸지만 이때만 해도 ‘그 지역들이야 원래 더운 곳이니’ 했다.
하지만 7월 하순, 부울경 날씨가 심상찮아졌다. 7월 28~31일 경남 일최고기온이 4일 연속 역대 1위를 찍은 것. 이름도 생소한 ‘티베트고기압’ 용어도 이 즈음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7월 말 밀양, 부산, 거창, 진주가 연이어 일최고기온 신기록을 세우며 평년과 다른 판도를 예고했다.
‘대프리카’ 넘어버린 ‘양프리카’
올여름 주인공은 단연 양산이었다. 8월 2일 오후 1시 26분, 무려 42.5도를 찍으며 122년 대한민국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 챔피언을 차지해버렸다. 2018년 강원 홍천(41도) 기록을 7년 만에 갈아치웠다. 양산은 7월 29일 이후 닷새 연속 40도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록도 역대 처음이다.
덕분에 역대 최고기온 기록 1~3위 자리를 양산이 싹쓸이했다. 2위는 41.6도(8월 1일), 3위는 41.4도(7월 31일)이다. SNS에는 ‘양산 다녀온 옥수수가 팝콘이 아니라 숯으로 연성됐다’는 짤이 밈으로 떠돌았다. 당연히 ‘양프리카’ 수식어도 물려받았다.
양산의 미친 더위는 기온 상승 최적 조건이 두루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중 고기압이 대기를 짓누르며 기온을 올렸고, 고온다습한 서·북풍이 영남알프스를 넘으며 푄현상을 불렀다. 양산은 분지 지형이라 열기가 잘 빠져나가지도 않았고, 바싹 마른 땅도 한몫했다.
더위야, 잠은 좀 자자
입추(지난 7일)가 지나고도 부울경은 밤낮 없이 뜨거웠다. 역시 양산이었다. 양산은 7월 17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25일간 열대야 행진을 이어 갔다. 양산 지역 역대 최장 기록이다. 부산도 7~8월에 걸쳐 22일간 이어진 ‘열대야 챌린지’에 성공했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현상이다. 창원 북부와 거제는 숨은 ‘열대야 피해 지역’이었다. 두 곳은 7~8월 두 달간 30일 넘게 열대야에 시달렸다.
사악한 밤더위는 8월 11일 상층 티베트고기압이 북쪽으로 물러나며 겨우 끝났다. 밤까지 이어지는 열섬 현상이 사그라들었고, 공기에 습도도 줄었다. 하지만 양산은 역대 부울경 열대야 순위에서는 1위 달성에 실패(?)했다. 1994년 29일간 열대야를 이어간 창원이 1위 자리를 지켰다. 부산도 2024년 26일간 열대야를 기록했다.
서울 사람이 부산 날씨 걱정
올여름 날씨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지역 양극화’였다. 7월 폭염일수가 15일을 넘은 곳은 모두 국토 남쪽에 몰려 있다. 대구(22일), 의성(20일), 밀양(20일) 등이 특히 심했다. 반면 7월 서울(2일), 인천(1일)은 상대적으로 쾌적했다.
지역 간 차이를 만든 건 비였다. 비가 중부만 골라 내리며 더위를 눌렀기 때문이다. 반면 남부에서는 비 구경이 힘들었고, 폭염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서울도 8월 들어 34~3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덮쳤다. 지난 7일엔 38도를 찍으며 “죽겠다” 소리가 나왔지만, 비슷한 시기 40도를 오르내린 부울경에 댈 정도는 아니었다. 이즈음 서울 사는 친척이나 지인에게서 “아직 살아 있냐”는 안부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밀양에서 횡성·의왕 소방차 구경
폭염에 가뭄까지 덮치자 “해도 너무 한다” 소리가 나왔다. 농업 비중이 큰 경남 물 부족이 특히 극심했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가뭄이 두 달째 이어졌고, 7월 경남 강수량은 68.0mm로 평년(304.7mm)의 21.9% 수준에 불과했다. 이 역시 역대 가장 적은 기록. 김해 북창원 양산 의령 함양 밀양 등이 7월 역대 최소 강수량 기록을 새로 썼다. 7월 울산에도 고작 28.0mm의 비가 내렸다.
저수지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니 더 지켜볼 수 없었다. 급기야 나라가 나섰다. 전국에서 소방물탱크차 200대와 소방관 400명이 경남으로 출동하는 국가소방동원령이 떨어졌다. 폭염에 따른 국가소방동원령 발령은 지난해 강원 강릉에 이어 사상 두 번째다. 올해 부울경은 폭염과 가뭄이 서로를 강화하며 발생한 복합재난 지역이 됐다.
저 푸른, 아니 ‘초록초록한’ 낙동강
더위와 가뭄의 시간이 지속되자 낙동강과 그 지류를 녹조가 뒤덮었다. 6월 22일 낙동강 물금·매리 지점과 칠서 지점에 내려진 조류 경보 ‘경계’ 단계는 한 달가량 지속됐다. 상황이 좀 나아지나 싶더니 8월 10일 두 지점에 다시 경계 경보가 내려졌다.
소동도 잇따랐다. 창원에선 수돗물에 냄새 물질이 검출됐고, 양산 논과 밭에도 녹조가 밀려들었다. 낙동강 유역 주민 소변에서 유해 남세균이 만드는 독소가 검출됐다는 환경단체 고발도 이어졌다.
환경당국이 녹조를 줄이겠다고 낙동강 하류 보를 열었더니 오히려 남조류가 11배나 폭증하는 ‘레전드 역효과’가 났다. 상류 녹조를 하류로 몰았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더위가 태풍도 막았다?
얼마나 더웠던지 부울경 사람들은 “태풍 안 오느냐” 넋두리도 자주 내뱉았다. 하지만 올해 태풍들은 한반도 고기압 ‘포스’에 기가 죽었는지 모두 한반도를 비껴갔다. 올해 8월 22일 현재 발생한 태풍은 18개. 모두 올라오기도 전에 소멸하거나 한반도 대신 중국·일본으로 향했다.
더위가 태풍을 막은 것 아니냐고?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여름철 태풍은 보통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데 올해는 고기압 세력권이 한반도 주변까지 확장하며 태풍 이동 경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국내외 기상 소식을 종합하면 올해 강한 엘니뇨로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 태풍 활동이 활발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과거 피해 사례를 보면 늦은 태풍일수록 피해가 컸다. 좋은 것도 있었다. 워낙 더워 모기 활동이 잠잠했다.
‘살고 보자’…야구도 축제도 스톱
더위는 프로스포츠와 축제도 멈춰 세웠다. 한국야구위원회는 8월 들어 폭염으로 프로야구 전 경기를 한동안 취소하는 역대급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취소된 경기가 30개쯤 된다. 프로 축구에서는 경기를 봄과 가을에 여는 ‘추춘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름 축제들도 휘청였다. 지난 1일 경남 거제시 사등해수욕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해변문화축제가 취소됐고, 에덴밸리 리조트 루지장을 오르는 이색 스포츠 행사인 ‘2026 양산 어필(UP-HILL) 레이스’도 취소됐다. 밀양시는 극한 가뭄에도 지난 7~9일 사흘간 물 900t이 들어가는 ‘밀양수페스티벌’을 강행했다 빈축을 샀다.
2026-08-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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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2030 뿔난 민심, 왜?
2030세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청년들의 민심에 이상 신호가 켜진 셈이다. 증시 급락, 부동산 정책 등 청년층과 직결된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불만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가 안전 문제를 중시하는 2030 여성들의 실망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시와 부동산, 청년 실업, 형사사법 체계 개편 등 서로 다른 정책 영역에서 청년들의 불만이 동시에 쌓이는 상황이다.
■ 청년층 지지율 하락 뚜렷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정부에 대한 2030 청년세대의 지지율 하락이 뚜렷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0~12일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3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49%로 집계됐다. 40대와 50대에서 긍정 평가가 절반을 넘었지만, 20대 이하는 31%, 30대는 40%에 그쳤다. 60대 45%, 70대 이상 44%보다도 낮은 수치다. 또 여론조사 회사 리얼미터가 지난 3~7일 전국 25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43.4%로, 취임 후 최저였다. 특히 20대에서는 27.9%, 30대에서 33.2%로 다른 연령대보다 크게는 20%포인트 이상 낮았다. 특히 20대에서 부정적 평가는 67.5%에 달했다.
■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2030의 분노가 크다. 핵심은 집값은 잡히지 않는데 대출·청약·전세 제도만 조여져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끊겼다는 인식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부동산 거래 방식과 정치권의 청년 주거 대안이 ‘내로남불’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비치면서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강남을 비롯해 서울과 경기 대부분이 올랐다. 또 전세 품귀에 월세도 치솟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강화해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주택 공급과 전월세가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청년층의 불만이 커지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제안한 ‘폐버스 청년 주택’ 아이디어는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삽시간에 온라인에 퍼지며 “한남더휠(고가 아파트인 서울 한남더힐에 차 바퀴의 영어 단어인 휠을 합친 말)에 살라는 것이냐”며 조롱과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황 의원은 곧바로 사과했지만, 청년 주거난을 대하는 집권 여당의 한심한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
청년들의 민심 악화가 우려되자 정부는 13일 부동산 공급 대책을 발표하며 ‘청년 주거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내년 1월부터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선보이는 것이다. 만 39세 이하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청년을 대상으로 연간 3조 원 규모로 2년간 한시 공급한다. 대상 주택은 4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비아파트다. 1인 가구와 사회 초년생 등이 월세를 내는 대신 주택을 매입할 수 있도록 월세 수준의 원리금 상환 구조를 적용하고, 생애 최초 LTV 우대 혜택도 유지한다. 다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높아진 상황에서 4억 원 이하라는 가격 기준에 비아파트라는 조건까지 더해지면 대상 주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ISA 계좌 개편안에도 반발
최근 증시 하락 상황은 2030 민심 이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출범 이후 증시에 대한 기대를 갖고 투자에 뛰어든 청년들이 적지 않았지만, 레버리지 ETF 출시 후 변동성이 심해진 국내 증시에서 실제 수익을 본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포함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도 청년층의 반발을 불렀다. 이자·배당소득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ISA는 자산 형성 기회가 부족한 청년층의 대표적인 절세 및 자산 증식 수단이다. 그러나 정부 개편안은 투자 대상을 국내로 한정한 ‘생산적 금융 ISA’를 신설하면서 기존 ISA에 대해선 만기 연장을 제한하고 납입 한도 이월을 폐지하는 등 혜택을 축소했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가입자는 만기마다 세금을 정산하고 재가입해야 해 장기 절세 혜택이 끊기고, 목돈이 생겼을 때 한꺼번에 납입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특히 소득이 불규칙한 사회 초년생들은 자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시장에 미칠 파장과 국민의 수용 가능성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정책의 혼선만 빚은 셈이다. 반발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ISA 개편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 보완수사권 폐지 여성 민심 이반
더 심각한 것은 이 대통령과 여권의 주요 지지 기반이던 2030 여성층의 민심 이반이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월별 여론조사 통계표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후 1년 사이 20대와 30대 여성의 국정 지지율은 평균치보다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해 7월 61%였던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지난 7월 45%로 16%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30대 여성의 지지율은 69%에서 47%로 22%포인트 떨어졌다. 이 기간 전체 지지율이 64%에서 53%로 11%포인트 하락한 것에 비해 하락 폭이 더 컸다.
젊은 여성 지지층 이탈엔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를 여권이 밀어붙인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광주 ‘장윤기 사건’에서 경찰이 놓쳤던 중대 혐의를 검찰이 보완수사로 밝혀내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 여론이 높았다. 이들은 두 사건을 생명·안전 이슈로 받아들이며 문제 제기에 나섰지만, 이 같은 목소리가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법안 처리 이후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행보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김용민 의원은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대통령님 ‘야~ 기분 좋다~!’라고 하고 계시지요”라고 SNS에 적었다. 이에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는 “지옥에나 가세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 청년 현안 해결에 진성성 가져야
정부와 여당은 일자리·주거·자산 형성·안전 보장 등 청년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현안 해결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청년에게 외면받는 실책이 이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청년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공감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여러 정책 영역에서 축적된 청년들의 구조적 불만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민심 이반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2026-08-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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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자퇴 증가, 내신 리셋 때문?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지난해 자퇴한 일반계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원인을 두고 추측이 분분하다. 일부 사교육 현장에서는 내신 5등급제 도입에 따라 대입에서 내신 성적 영향력이 커진 것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더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해 자퇴와 재입학을 거쳐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니는 이른바 '내신 리셋’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 반면 교육당국은 내신 5등급제 때문에 자퇴가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엇갈린 반응이다.
■ 자퇴 원인은 내신 리셋?
전국 일반계 고교 1학년 자퇴생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교육정보시스템(NEIS) 학적변동 통계 등에 따르면 2021년 6112명, 2022년 7880명, 2023년 9373명, 2024년 9346명을 기록했다가 지난해엔 1만 6명을 기록했다. 이 현상을 두고 일부 사교육 현장에서는 내신 리셋의 영향이 크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고교 내신 등급제는 2025학년도부터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전환됐다. 2028년도 대입부터 5등급제를 적용한다. 9등급제는 1등급 상위 4%, 2등급 누적 11%, 3등급 누적 23%, 4등급 누적 40% 등으로 나뉜다. 5등급제는 1등급 10%, 2등급 24%, 3등급 32%, 4등급 24%, 5등급 10%로 나뉜다. 1등급 비율이 4%에서 10%로 늘었지만 2등급 이하로 떨어지면 서울권 대학 진학이나 의대 진학을 할 수 없을 우려가 커졌다는 게 일부 입시학원 등의 입장이다. 9등급제 체제에서는 내신 2등급대도 서울 중하위권 대학을 노려볼 수 있었으나 5등급제 전환으로 합격 가능성이 훨씬 낮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3학년 1학기까지의 고교 성적을 반영하는 대입 내신의 경우 고1 내신을 망칠 경우 치명적이다. 남은 3학기 동안 내신을 만족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학년 내신을 망쳤을 경우엔 불안감 때문에 내신 리셋 결정을 내리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치열한 성적 경쟁 폐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도입한 5등급제가 다시 다른 폐단을 낳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 자퇴 부추기는 ‘사교육 불안 마케팅’?
교육당국은 내신 5등급제가 도입된 2025학년도 고교 자퇴생 수가 유의미할 정도로 급증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2025학년도에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2026학년도에 다시 입학하거나 재·편입학 규모도 전년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재입학 이유도 질병 치료와 가정 사정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신 리셋을 위한 재입학이 증가했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고 한다. 또 전 과목 1등급을 받지 않으면 서울권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주장은 사교육 현장의 불안 마케팅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2025학년도 고교 1학년 1·2학기 전 과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 수는 4659명(1.08%)으로 1학기 대비 38% 감소했다. 3년 동안 모두 1등급을 받는 학생 수는 갈수록 더 줄어드는 구조라는 것. 따라서 전 과목 1등급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너무 큰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2025년 고교 1학년 자퇴생들의 평균 등급은 5등급제 기준 3.7등급, 9등급제로 환산하면 6.7등급에 해당한다고 한다. 1학년 자퇴생 중 내신 하위 등급 학생이 많은 것으로 확인된 것도 내신 리셋으로 인한 자퇴 증가의 반박 증거로 제시된다.
■ 증가하는 학교 밖 청소년
고교생 학업중단엔 대인관계 및 심리·정서적 요인에 의한 학교생활의 어려움, 해외 출국, 질병 등 복합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자퇴, 퇴학, 무단 결석 등 학업중단을 부른 사유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부족하다. 현재로서는 원인을 특정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신 리셋을 위한 자퇴와 재입학, 검정고시 응시를 위한 자퇴 등 다양한 원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일반계 고교뿐만 아니라 특성화고 등의 학업중단 사유도 한층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학령기 학교 밖 청소년(6~17세)은 2024년 기준 17만 3800명으로 추산됐다. 학업중단 학생 통계는 있지만 학교 밖 청소년 규모에 대한 정확한 자료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고립과 은둔에 빠지기도 한다. 정부와 광역지자체 교육청 등의 정확한 실태조사와 맞춤형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 청소년 자퇴를 자발적 학업 중단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개선되어야 한다. 자퇴 증가는 우리 사회의 입시 중심 교육제도 등이 초래한 비자발적 선택의 증가로 봐야 한다. 1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일반계 고교 1학년이 학교를 떠났다는 절망적 통계 앞에서 그 원인이 내신 리셋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학업을 중단한 그들의 상당수가 학교 밖 청소년으로 방치될 우려가 높아진 현실 자체가 이미 너무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과 보완정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공감대 확산이 필요할 뿐이다.
2026-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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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구의 연합, 반도체에 갈라지나[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기부 대 양여’라는 개념이 있다.
군사시설을 이전할 때 지자체가 대체 부지에 새로운 군사시설을 만들어 국가(국방부)에 기부하면 국가가 기존 군사시설 부지를 지자체에 양여하는 방식을 뜻한다. 군사시설의 이전 비용은 지자체가 양여받은 부지를 개발해 회수하게 된다.
2010년대 경남 창원 정중앙 노른자위 땅에 들어서 있던 39사단을 경남 함안으로 옮길 때, 전북 전주 북부에 있던 35사단을 전북 임실로 옮길 때 등 전국의 모든 군사시설 이전에는 예외 없이 기부 대 양여 방식이 적용돼 왔다. 심지어 창원 39사단 이전은 사단 부지 개발이 부동산 호황과 맞물려 성공적으로 끝나 민간사업자가 막대한 개발 이익을 남기면서 창원시와 민간사업자 사이에 초과 이익 환수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질 정도였다.
■광주와 대구
최근 들어 이 기부 대 양여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심에 위치한 군공항의 이전이 신공항 개발을 둘러싸고 이슈화하면서다. 대표적인 지역이 광주와 대구다.
광주는 광주 도심 군공항을 전남 무주 등 타지역으로 이전해 광주·전남 통합 신공항을 만드는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군공항 이전에는 약 10조 원 규모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이 비용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광주의 지방 재정이 열악한 데다 군공항 부지 개발의 사업성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대구도 대구 도심의 군공항을 경북 군위 등으로 옮겨 TK신공항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대구에서도 군공항 이전에는 10조 원이 넘는 수준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역시나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는 군공항 이전을 통한 신공항 건립 비용 마련이 어려워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반도체 변수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이재명 정부가 갑자기 호남권 800조 원 규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전공정 공장 설립 추진 발표 직후 정부는 열흘도 되지 않아 광주 군공항 부지를 반도체 공장 부지로 확정했다. 당초 첨단3지구와 빛그린 산업단지 등 후보지 3~4곳이 거론됐으나 정부는 이미 평평한 대형 부지가 확보돼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군공항 부지를 쾌속 낙점했다.
이로써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는 글로벌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부지 구매 및 개발자로 나설 수 있게 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부지 매각을 통한 군공항 이전 비용 회수라는 기부 대 양여의 가장 큰 난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있어서다. 기껏해야 민간 아파트 분양에 기대는 수준이었던 현실이 초대형 투자자 등장으로 180도 바뀐 것이다.
■기부 대 양여 공식
250만 평에 달하는 광주 군공항 부지는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전력·용수·교통 등 핵심 인프라를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혀 부지 개발 원가의 절감 폭이 매우 커질 전망이다. 그만큼 사업 진행은 수월해지고 군공항 이전에 따른 비용 회수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향후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의 집중까지 바라볼 수 있다. 공장 외곽에 조성될 주거·상업·업무 용지 등도 분양 성공률은 급격히 올라간다. 무안 등 공항 이전 예비 후보지와의 합의를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는지 정도의 과제만 남았을 뿐 신공항 조성을 통한 군공항 기부와 기존 군공항 부지의 지자체 양여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형평성 논란
광주 군공항이 반도체 공장 투자로 기부 대 양여의 물꼬가 트일 수 있게 된 것과는 달리 대구는 도심 군공항 부지 개발 여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대구 정치권은 광주 정치권과 손을 잡고 군공항 이전 문제를 국가 예산 투입 재정사업으로 진행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연합전선을 펼쳐 왔다. 하지만 광주 군공항 문제가 반도체 공장 투자로 풀릴 수 있게 됨으로써 두 도시 정치권이 이전처럼 보조를 맞추게 될지가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대구에서만 군사시설 이전 문제를 재정사업으로 진행할 경우 그동안 숱하게 진행된 바 있는 전국 기부 대 양여 사례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이는 향후 군사시설 이전 때에도 국가 예산을 넣을 것인지 여부와도 관련이 있는 문제여서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공항 속도전
광주 군공항 이전으로 광주·전남 신공항 조성에 속도가 붙을 경우 그 여파는 신공항 추진이 답보상태에 놓인 대구뿐만이 아니라 부산에도 미칠 공산이 크다. 이미 20년 가까이 추진 과정을 반복하며 이제야 연내 공사를 위한 첫 삽을 뜨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덕신공항의 건립도 입길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쪽은 반도체 대기업의 천문학적 투자로 인해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도 신공항 조성이 급물살을 타는 듯한 반면 다른 쪽은 국가의 공항 정책에 따라 국가 예산으로 신공항을 만들면서도 지지부진한 상태여서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예측조차 불가능했던 이 같은 속도전을 지켜보는 해당 지역민들의 다양한 시각은 앞으로 사업이 진행될수록 더욱 복잡해질 듯하다.
2026-08-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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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캠핑, 단속과 관광의 차이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차박으로 춘향제 추억을 만드세요.’ 선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이 홍보 문구에 이끌려 지난 4월 30일~5월 6일 전북 남원시에서 열린 제96회 춘향제를 찾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남원 시민들이 성춘향의 절개와 민족의 자긍심을 기리려 자발적으로 시작한 춘향제는 100주년을 앞둔 국내 최장수 지역 축제다. 전통 축제가 차박이라는 새로운 여행 방식을 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숙박난이나 교통 혼잡 우려로 부산에서 차를 몰고 출발할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지만, 남원시는 사전 신청자에게 공공시설 주차장을 무료 배정하고 화장실과 샤워장, 행사장 순환 셔틀버스까지 제공했다. 남원종합스포츠타운, 함파우 소리체험관, 요천생태공원 등 여섯 곳에 340대를 수용한 것이다. 차박을 축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골칫거리로만 보지 않고, 원거리 방문객의 체류를 유도하는 장치로 활용한 셈이다. 차박 수요를 방치하면 민원이 되지만, 정책적으로 관리하면 관광객 유치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 준 사례다.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캠핑장 사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경기관광공사는 이곳의 카라반·글램핑 시설과 DMZ(비무장지대) 관광 자원을 활용해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제3땅굴, 도라전망대를 돌고 파주 전통시장 로컬 맛집 방문에 이어 저녁에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여행 상품을 여행사와 공동 개발했다. 외국인들이 캠핑장을 문자 그대로 ‘베이스캠프’ 삼아 지역의 자연, 역사, 음식, 야간 경관을 즐기게 만든 전략이다.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캠핑 장비를 갖고 올 수 없으니 카라반·글램핑 숙박은 당연한 수순.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비무장지대 인근 숙박’이라는 반전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덕분에 2024년 1200명을 유치한 데 힘입어 올해는 25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편의점 로손의 주차장 유료 숙박 시도도 흥미롭다. 로손은 여유 주차 용지를 유료로 제공하는 ‘차중박’(車中泊·차박의 일본어 표현) 서비스를 17일부터 확대해 연내 약 70개 점포 규모로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여름 7곳에서 시범 도입했는데 연휴 기간 평균 가동률이 90%를 넘으면서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단순히 주차면을 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용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결제(1박 2500엔)하면 주차면 2개와 전기 사용, 화장실 이용, 쓰레기 배출 편의까지 제공된다.
무질서·알 박기·오물 투기 등 민폐가 될 수 있는 차박을 합법적이고 위생적인 숙박 거점으로 바꾼 결과 지방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숙박비 상승과 고령자 차량 여행 증가로 편의점 차박 이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다양한 캠핑과 차박 유형이 등장하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료 공영주차장과 공원, 노지가 ‘차박 명당’ ‘캠핑 성지’로 좌표가 찍히고 나면 몸살을 앓기 쉽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 천성동 천성항 일대와 기장군 해안은 고질적이다. ‘장박 텐트’나 무개념 차박족 탓에 미관을 해치고 주민 생업에까지 불편을 주면서 철거 행정대집행이 반복되고 있다.
민폐 차박, 진상 캠핑은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한때 무료 노지 캠핑객들이 전국에서 몰려 부작용이 커지자, 지자체가 유료 캠핑장으로 정비한 뒤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충북 충주시 목계솔밭캠핑장이 좋은 사례다. ‘남한강 차박의 성지’를 내걸고 168곳의 야영 사이트를 갖춘 정식 캠핑장으로 2023년 개장한 뒤 월 평균 7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것이다.
“캠핑 수요는 이미 글램핑, 카라반, 돔하우스, 차박, 체험형 상품으로 옮겨 가고 있는데 관련 제도는 여전히 ‘천막’ 기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3일 김용태 의원실 등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K-캠핑 관광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는 관광 자원으로 키우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천막 이외 다양해진 야영 시설의 법적 지위, 건축면적 기준, 미등록 시설 정비, 외국인 수용 태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도 이 문제의식에서 비껴갈 수 없다. 올해 1~5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93만 657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0% 늘었다. 전국 평균(21%)의 두 배에 가까운 성장세로 그야말로 ‘글로벌 핫플’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대형 공연이나 국제행사가 열릴 때마다 숙소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BTS 부산 공연 때 터무니없는 숙박 요금이 기승을 부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숙박 시설의 공급도 늘어나야 하겠지만 성수기와 축제, 공연 기간의 숙박 수요를 분산시키는 보완 장치도 필요하다. 캠핑과 차박이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데, 야외라는 특성상 부산만의 특색이 있는 관광 콘셉트를 구현할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체류형 도시 관광, 지역 상권의 활성화 고민은 부산만의 것이 아니다. 서울시가 8월 한 달간 여의도·뚝섬 한강공원에서 운영하는 임시 야영장 ‘한강 밤핑’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서울시는 사전 예약 방식으로 텐트 200동 규모의 임시 야영장을 조성하고, 시범사업 기간 장소 이용료를 무료로 했다. 또 야간 디제잉·영화 상영 같은 행사와 배달 할인 혜택을 묶고 한강버스·자전거·수영장까지 연계해서 ‘24시간 체류하는 한강’ 모델을 시도한다. 강변 캠핑을 방치하거나 단속하는 대신, 도심 관광 자원으로 관리하면서 인근 21개 전통시장·골목상권 활성화까지 노린다는 대목이 부산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산은 강과 산, 바다를 모두 가진 도시다. 낙동강 하구의 생태 자원, 금정산과 기장 산지, 가덕도와 기장 해안, 영도와 북항의 항만 야경은 다른 지역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관광 자산이다. 이 자원을 무질서한 노지 차박·캠핑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아웃도어 여행 수요는 이미 우리 곁에 실재하는 흐름이다. 방치하면 민원을 낳고, 배척하면 갈등을 부르지만 활용하면 관광 수요가 된다. 이용 규칙과 적정 이용료를 마련하고, 안전과 환경 기준을 세우고, 지역 상권과 연결하면 체류형 관광이 될 수 있다. 캠핑을 불청객 취급할 것인지, 해양도시 부산의 새로운 관광 유입 자원으로 설계할 것인지가 단속과 관광의 차이다.
2026-07-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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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왜 술과 헤어질 결심?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대학가나 직장 내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음주량이 줄어들고,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 문화가 많이 사라진 여파다. 2030 세대에서는 ‘갓생’(부지런하고 계획적으로 생산적인 일상을 사는 것)의 일환으로 술 안 마시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 ‘주당의 나라’는 이젠 옛말
2030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술을 즐기지 않는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20대(만 19세 포함)의 하루 평균 주류 섭취량은 64.8g으로, 1년 전 95.5g에서 30% 이상 급감했다. 이는 60대의 하루 평균 섭취량인 66.8g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또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응한 19∼29세 중 아예 술을 마시지 않거나, 마시더라도 월 1회 이하라는 응답 비율은 2024년 기준 56.0%를 차지했다. 조사가 시작된 2005년 37.9% 이후 최고치다. NH농협은행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0대의 주점 소비 금액은 전년 대비 20.9% 급감했다. 30대 역시 15.5% 감소했다.
2030 세대의 주류 기피 문화로 이제 ‘주당의 나라’도 옛말이 됐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5년 407만 3615KL로 정점을 찍은 뒤 2025년 298만 7726KL로 10년새 26.7%나 급감했다. 2020년대 들어 전체 주류 출고량은 2020년 321만 4807KL, 2021년 309만 9828KL, 2022년 326만 8623KL, 2023년 323만 7036KL, 2024년 315만 1371KL, 2025년 298만7726KL을 기록했는데, 2022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 젊은 층, 술 왜 안 마실까?
젊은 층의 술 소비 감소 원인으로는 음주를 절제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현상이 꼽힌다. 소버 큐리어스는 술에 ‘취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소버(Sober)와 ‘호기심이 많은’을 뜻하는 큐리어스(Curious)가 결합한 용어다. ‘마시는 것이 당연한’ 술 중심 문화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해 알코올 섭취를 멀리하고, 맑은 정신을 지향하는 문화적 흐름이다. 특히 20대는 술자리의 분위기보다 다음 날의 컨디션을, 취하는 즐거움보다 자기관리와 건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시간 대비 만족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시성비’ 가치관은 술자리에 쓰는 시간과 다음 날 숙취까지도 하나의 비용으로 인식한다. 술값을 ‘매몰 비용’으로 생각하다 보니 회수 불가능한 경제적 비용이 아닌 건강이나 취미 활동 등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2030 세대가 술 없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점도 한 요인이다. 러닝 크루, 독서, OTT, 소모임 등 취미 활동이 생겨나면서 회식이나 술자리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던 문화는 점점 밀려나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에 맞춘 새로운 공간도 등장하는 추세다. 최근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서울 성수, 홍대 등 지역을 중심으로 ‘논알코올 편집숍’이나 ‘논알콜 바’ 문화가 확산한 것이 대표적이다. ‘논알코올 편집숍’은 전 세계 수십 종의 논알코올 맥주와 와인, 칵테일을 판매한다. ‘논알코올 바’에서는 먼데이 진 토닉, 정산소종 밀크셰이크 등 다양한 논알코올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또 젊은 층은 술을 마시더라도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저도수 주류를 선호하거나, 비교적 건강에 해롭지 않은 제로슈거·저칼로리 주류를 찾는다.
소주, 맥주 위주의 일률적 음주 문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료를 경험하는 소버 큐리어스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젊은 세대가 술을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걸 근사한 라이프스타일로 생각하는 추세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비주류’에 맞서는 주류업계
술 안 마시는 신인류의 등장에 주류 업계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제조사들은 주류 시장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제품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과거에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인기 제품이 주력이었다. 주류업체는 무알코올, 저도주 등 제품을 선보이며 ‘비주류’(非酒類) 흐름에 대응하고 있다. ‘독주’로 승부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맛과 부드러움, 저당 등을 강조하는 추세다.
2000년대 초만 해도 25도를 넘나들었던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16도 이하가 ‘뉴노멀’이 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7월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5도에서 16도로 낮춘 데 이어, 올들어 제로 슈거 소주 ‘새로’도 16도에서 15.7도로 조정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2024년 ‘참이슬 후레쉬’를 16도까지 낮췄다.
맥주 시장도 변신 중이다. 무알코올과 비알코올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하이트제로 0.00’과 ‘하이트 논알콜릭 0.7%’를 판매 중이다.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 논알콜릭’을 내놨다. 이 회사는 최근 클라우드 광고에서 ‘이 좋은 맥주에 소주를 왜 섞어’라는 문구를 내세워 ‘소맥과의 작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오비맥주는 ‘카스 0.0’ ‘호가든 제로’ ‘버드와이저 제로’ 등 무알코올 맥주 6종을 보유하고 있다. 건강을 중시하는 웰니스 문화로 인해 국내 무알콜·논알콜 맥주 시장 규모는 2025년 704억 원에서 2027년 946억 원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삶을 고단함을 잠시 잊기 위해 술을 선택하는 문화는 서서히 위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도 술 대신 식사와 대화, 취미를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무알코올 음료를 제공하거나 음주 여부를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술이 술이 아닌 시대’가 이제 대세가 되는 걸까. 기성세대가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2026-07-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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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성격 나왔다…부울경 단체장 3인 3색 행보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1일 취임한 부산·울산·경남 광역단체장 3명이 각각의 색깔로 시·도정을 이끌면서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요란한 취임식 대신 민생부터 챙긴 전재수 부산시장, 연일 SNS로 시청 내부 회의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김상욱 울산시장, 직원들과 손 잡고 경남 대도약을 선언한 박완수 경남도지사.
관심과 기대가 큰 때문인지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신선한 변화들이 많다’는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룬다. 특히 부산과 울산 단체장 2명의 행보를 유심히 본다는 시민이 많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매력과 능력이 단체장이 되면서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흘 남짓 짧은 기간에 쏟아진 변화들을 접한 시민들은 부울경 단체장들의 3인 3색 스타일을 지켜보며 리더십 변화를 체감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극한 여야 대립에 허니문 기간도 없어졌는지 ‘보여주기 행정’ 등 비난도 없진 않다. 기대와 관심 속에 4년 여정을 시작한 부울경 단체장 3인의 초반 레이스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취임식, 간소화하거나 현장으로
부울경 단체장 3인의 취임식 승자는 전 시장이 아닐까 한다. ‘떠들썩한 취임식 자제’. 민선 9기 단체장 취임식의 특징이다. 전 시장은 아예 취임식을 생략해 그중 도드라졌다. 그는 지난 1일 간단한 취임 절차만 밟고는 곧바로 부산 ‘민생 100일 비상조치 대책 회의’를 주재했다. 하지 않고도 얻을 건 다 얻었다.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메시지는 확실히 던지고 민생 행정 의지도 알렸다. 전날 시장 인수위원회가 부산시 순세계잉여금이 80억 원뿐이라고 한 발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순세계잉여금은 살림하고 남은 돈이다. 덤으로 언론 주목도 한껏 받았다.
울산시장 취임식도 간소하게 치러졌다. 취임식을 마친 김 시장은 직원들과 오찬을 마친 후 덕하 공영차고지에서 126번 시내버스를 타고 시민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취임사 핵심인 ‘시민 주권 시정’에 맞춘 행보다. 126번 버스는 2024년 시내버스 노선 개편 때 폐지됐는데 김 시장이 취임 첫날 즉시 복원해 다시 달리게 됐다.
재선 단체장이 된 박 지사는 각계 인사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취임식에서 도민과 함께 경남 대도약을 이루겠다고 선포했다.
소통, 소통, 또 소통
민선 9기 들어 부울경 시·도민은 시청이나 도청에서 벌어지는 일을 휴대폰으로 확인할 기회가 부쩍 많아졌다. 1980년생으로 40대인 김 시장의 SNS 활용법은 전국적으로도 화제다. 김 시장은 시장직 인수위 출범 후부터 모든 회의를 유튜브 ‘김상욱TV’로 실시간 중계했고, 취임하고는 업무 시작 전에 ‘신문 읽어주는 시장’ 코너를 운영하며 시민과 실시간 소통하고 있다. 실국장 회의도 울산시청 TV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시정 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자연스럽게 공론화를 이끌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이 대통령도 “요즘 김 당선자의 공개회의 볼만합니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전 시장도 부산시 유튜브 채널 ‘부산튜브’와 개인 계정을 모두 활용한다. 전 시장은 취임 첫날 ‘민생 100일 비상조치 대책회의’부터 부산튜브로 생중계했다. 이 자리에서 “모든 회의 공개” 원칙을 밝혔는데, 지난 9일 첫 확대간부회의, 뒤이은 실·국 업무보고도 부산시 홈페이지와 청내방송으로 공개하고 있다.
척 하면 척 vs 아직 낯선 그대
4년은 짧지 않다. 20대부터 공직을 경험한 ‘행정 달인’ 박 지사는 첫 임기 때 경남도 공무원을 충분히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사 보고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해야 한다는 직원들도 박 지사 스타일에 익숙해졌다. 박 지사 재선 취임식 때 흥미로운 일도 있었다. 경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이 박 지사에게 ‘동주공제’(同舟共濟)라고 적힌 서예작품을 선물한 것이다.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의미. 도정 운영 과정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참여형 노사협력 체계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뜻을 담았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울산시청 직원 대부분에게 김 시장은 아직 낯설다. “저한테는 협박으로 들립니다.” 첫인상부터 강했다. 인수위 시절 한 부서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들은 김 시장 반응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 긴장과 부담이 감돌았다. 영상에는 해당 공무원을 향한 비난 댓글도 잇따랐다. 김 시장은 ‘김상욱TV’ 등을 통해 공사 구분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시그널도 수시로 내비친다. 업무 시간 후 이동을 위해 개인 차량을 구매하고, 개인 유튜브 채널도 혼자 진행한다.
전 시장을 그냥 ‘재수’로 칭하는 사람이 많다. 예의 없는 게 아니다. 부산에선 성 빼고 이름만 부르면 친근감의 표현이다. 특히 정치인에겐 큰 장점이다. 부산 북구에선 국민의힘 사람들도 전 시장과 잘 지낸다고 얘기할 정도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성품 덕이다. 얼마 전 출근하던 부산시 공무원들이 낯선 상황을 마주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 시장이 공무원들을 맞이한 것이다. 하루는 저층부 엘리베이터, 다음 날은 고층부 엘리베이터 앞에서였다. 하지만 전 시장과 시 공무원들은 아직 서로 ‘탐색 중’이다. 이런 상황은 첫 직원 인사에서도 슬쩍 확인된다. 이번 시 고위직 인사 때 전 시장은 전임 시장 측근 기용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냉정하게 보면 전 시장 측이 아직 시청 내 피아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도 보인다.
‘원점 재검토’ ‘정중동’ ‘한걸음 더’
부울경 단체장 3인의 가장 두드러진 차별점은 업무 스타일이다. 김 시장 행보 하나하나에 연일 울산이 들썩이고 있다. 시내버스 개편, 트램 재검토, 시 금고 문제…. 저 일이 뒤집어질 일인가 의구심도 들지만, 어찌보면 울산을 진짜 바꾸고 싶은 모양이다. 트램 문제는 단박에 전문가와 주민 간 의견이 엇갈리는 핫 이슈가 됐다. 2029년 개통 목표로 차량 계약까지 진행된 상황인데 ‘재검토 카드’를 내밀었으니 그럴 수밖에. ‘교통대란, 사업비 증가, 운영 적자 등 시민 불편이 뻔한데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게 김 시장 입장이다. 향후 경과가 주목된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전 시장의 첫출발은 노련해 보인다.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부산이 소외됐다는 비판은 아픈 지점일 수 있다. 하지만 전 시장은 “와 우리는 안 주노 해버리면 답이 없다. 부산은 이미 해양중심도시로 방향이 정해졌고, 여러 가지를 받았다’’고 유연하게 넘긴다. 그럴 땐 특유의 진지함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북항돔구장, 라스칼라 공연, 퐁피두 등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이나 전임 시장 사업들에 대해서는 한걸음 물러나기도 한다. 전 시장은 “전임 시장이 했기 때문에 무조건 백지화시키는 일은 없다”고 수차례 얘기했다.
3대 메가 프로젝트 영남권 투자 규모 312조 가운데 알짜는 경남이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지사도 “정부의 이번 투자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는 옳지 않다”고 평가한다. 이번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이 이미 경남과 관련이 있는 만큼 실제 투자 실행률은 경남이 가장 높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부울경 통합 관련해서도 박 지사가 키를 쥐고 있다. 그는 마창진 통합을 주도한 인물로 통합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평소 부울경이 완전히 하나의 지자체가 되는 행정통합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전 시장과 김 시장은 기존 지자체를 두고 별도 기구인 특별연합을 이루는 메가시티를 주장하고 있다.
2026-07-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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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하는 무빈소 장례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무빈소 장례가 늘고 있다. 무빈소 장례는 말 그대로 조문객을 맞이하는 빈소를 마련하지 않고 치르는 장례를 뜻한다. 입관과 발인, 화장 등 필수 절차는 그대로 진행하지만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지 않다 보니 외부 조문을 받지 않는다. 무빈소 장례가 증가하면서 장례식장 등 장의업계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만 무빈소 장례 열풍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평가다. 전통적인 장례 방식인 3일장 문화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 무빈소 장례 늘어난 이유는
장례업계 등은 최근 무빈소 장례 비중이 20%를 상회 5곳 중 1곳이 빈소 없이 장례를 치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무빈소 장례가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적 문제, 실용주의 문화 확산 등이 꼽힌다. 상조업계에 따르면 3일장을 치를 경우 조문객 150명을 기준으로 한 장례비용은 1000만~2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조문객을 맞이하지 않을 경우 빈소 대여비와 각종 식사와 음료, 인건비, 주류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등을 거치면서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 장례식 조문객들이 줄어든 것도 큰 이유로 꼽힌다. 예전에는 부의금으로 장례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으나 요즘엔 유족 부담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무빈소 장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엔 2일장 등 장례 기간을 줄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가족들만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장도 증가하고 있다. 굳이 전통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사정에 맞춰 장례를 치르는 실용주의와 간소화 선호 추세가 결합하면서 무빈소 장례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다가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가족, 지인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1인 가구들이 늘면서 장례문화까지 급속히 바꿨다는 분석이다.
■ 무빈소 장례 더 증가할 듯
예전엔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고인의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들을 맞는 방식으로 고인과의 이별을 애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무빈소 장례는 큰 불효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전국 만 19~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빈소 장례 관련 소비자 태도’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무빈소 장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 장례를 무빈소 방식으로 치를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71.8%에 달한 것이다. 연령별 무빈소 장례 의향은 20대 57%, 40대 76%, 50대 80%, 60대 79.5%로 집계됐다. 장례를 직접 준비하거나 경험한 연령층일수록 훨씬 무빈소 장례에 대해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전통적인 장례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특히 무빈소 장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응답은 80.3%에 달해 사회적 공감대가 예상보다 훨씬 큰 것으로 풀이됐다.
■ 무빈소 장례 서비스도 등장
무빈소 장례 선호도가 증가하면서 장례식장 등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충남 천안의료원 추모관(장례식장)은 유족의 경제 부담을 줄이면서도 고인을 제대로 추모할 수 있도록 무빈소 장례 서비스 도입에 나섰다. 이런 추세는 현재 전국적으로 급격히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 업체들이 빈소 중심으로 장례식장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무빈소, 가족장 등 맞춤형 장례 서비스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 등에서는 관련 장례업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조업체는 고민이 깊다. 상조는 가입자들이 부모 등의 임종에 대비해 매월 납입금을 내며 미래의 장례에 대비하는 상품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무빈소 장례가 늘어나면 상조업체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무빈소 패키지를 내놓고 있으나 무빈소 장례를 염두에 두고 상조에 가입하는 경우는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조업체들은 장례 간소화 분위기 확산에 대비해 기존의 단순 장례 대행에서 탈피, 가입자가 납입한 선수금을 결혼식과 여행, 가전제품 구입 등에도 전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돌파구를 찾고 있다. 무빈소 장례 증가가 전통적인 장례산업의 모습까지 급격하게 변화시켜 가고 있는 셈이다.
2026-07-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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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만 있으면 참정권 보장되나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절묘한 견제구를 날렸다. 오만에 빠진 집권세력과 '윤 어게인' 환상에 빠진 야권 모두에 경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 같은 선거 결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욱 국민적 관심을 끈 것은 역시나 선관위의 무능 혹은 부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참정권 침해 논란이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빚어진 참정권 침해 논란은 유권자들의 다양한 참정권 침해 우려로 확산하는 중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렇게 끝이 났으나 우리에겐 아직도 많은 선거가 남아 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도입하고 그것을 신줏단지처럼 신봉하고 사는 게 우리 사회인 이상 선거를 피할 도리는 없다. 하지만 선거라는 것은 투표장에 나가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만 하고 끝내는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니다. 유권자가 하는 그 간단한 기표행위의 결과로 나의, 가족의, 지역사회의,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기표행위는 우리가 가진 참정권 즉,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정말 보장해 주는 것인가.
■기표의 곤란함
선거철만 되면 온갖 매체가 일제히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 반복된다. 유권자들은 선거 공보에 드러난 얄팍한 정보와 각종 구호, 이미지 같은 것들 외에는 후보에 대해 깊이 알 수 없음에도 막무가내로 올바른 선택을 강요당한다. 이런 일에 신물이 났는지 영국의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는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다. “차라리 아인슈타인이 대수 계산을 제대로 했는지 전 국민 투표를 실시하거나, 비행기 조종사가 어느 활주로에 착륙해야 할지 승객들이 투표하게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기표행위를 유권자들은 척척 해내고 선거 결과가 나오면 현명한 선택이 이뤄졌다며 선출권력을 무소불위인 것처럼 휘두르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다.
■후보의 적절성
유권자의 기표행위가 있으려면 당연히 선거에 나오는 후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선거라는 제도의 본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는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공당의 공천이 대세를 이루지만 그 과정조차 당원이 아닌 이상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설령 당원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후보가 공천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유권자는 선거에서 자신이 찍을만한 후보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엔 정말 선택지가 없는 것일까.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거 참여를 포기하는 건 주권을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이 참여한 선거에서 가장 덜 부적합해 보이거나 차악이라고 생각하는 후보만 선택해야 하는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객관식 문항 선택하듯 선택한 결과가 스스로 최상위 권력이라 일컫는 선출 권력이 되는 것이 진정한 참정권 행사라 할 수 있는가.
■거부권의 필요
최근 관련 학계에서는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하거나 차악 혹은 덜 부적합 후보에 기표하는 방법 밖에 택할 수 없는 것은 선택 강요에 의한 참정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짚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도 후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진정한 참정권이 실현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외대 법학연구소의 문재완 교수가 이 같은 ‘후보자 거부권’을 내세우는 대표주자다.
후보자 거부권은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밝히는 정치적 의사표현에 해당한다. 출마한 후보자 가운데 유권자가 적절한 후보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 출마자 모두를 거부하는 방법이다. 투표지에 출마 후보 이름만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거부란을 별도로 둠으로써 유권자가 거기에도 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방식은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이에 따른 의무투표제 도입 필요성 주장 등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의무투표를 법에 명시한다고 해도 유권자가 반드시 특정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후보에게도 기표하지 않는 무효표를 던지는 것과는 또 다르다. 무효표가 주권의 포기에 가깝다면 후보자 거부권 행사는 아주 적극적인 주권의 행사여서다.
■운영의 어려움
그렇게 후보자 거부권을 도입하자는 여론이 모아진다고 해도 현실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은 적지 않다. 우선 후보자 거부권 보장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투표용지에 정당과 후보자의 게재 순위 등을 규정해 놓은 선거법을 개정해 후보자 거부권 행사를 위한 ‘아무도 지지하지 않음’ 등의 기표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표 과정에서 후보자 거부권 기표가 최다일 경우의 처리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일단은 재선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려면 선거비용 증가와 당선자 처리 지연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문재완 교수는 후보자 거부권 기표가 과반 혹은 최다일지라도 당선인을 결정하고 후보자 거부권 다수표 여론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거론한다.
지금처럼 차악이나 덜 부적합한 후보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선거 시스템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한시라도 빨리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후보자 거부권은 이 같은 논의의 촉발제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뽑을 만한 후보가 없을 때 모든 후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유권자에게 허하라!
2026-06-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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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는 응징, 참교육 될 수 있나[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제도는 무력하고, 정의는 지연되기 일쑤다. 하소연할 곳 없는 약자들은 해결사가 나타나길 꿈꾼다. 복수 대행이 유행을 타는 배경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은 먼 나라 일이 아니다. 가차 없는 마피아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빈센조’, 가톨릭 신부가 맨주먹으로 범죄 집단을 무너뜨리는 ‘열혈사제’, 피해자들이 의기투합해 힘없이 당하는 서민을 구제하는 ‘모범택시’.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한 장르를 형성한 응보주의(應報主義)는 법보다 빠른 응징을 갈망하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는 극적 카타르시스를 강조하기 위해 가해자의 서사를 생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그런 악행에 이르렀는지, 그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는 무엇인지, 교화 가능성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건너뛴다. 반면 현실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해 사적 처벌의 정당성을 구축한다. 악행의 교정, 교화라는 교과서적 해법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응분의 죗값을 받는 것을 넘어서 ‘쓰레기’는 사회와 영구 격리해야 한다는 위험한 메시지까지 발신한다. ‘모범택시’에서 등장하는 사설 감옥이 극단적인 사례다. 공권력과 제도의 신뢰가 실추된 현실이 응보주의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양산한 토대라는 점은 무참한 대목이다.
이 응징 서사가 마침내 교실로 들어왔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이다. ‘참교육’은 가상의 교육부 소속 교권보호국을 내세워 무너진 교육 현실을 바로잡는 이야기를 그렸다. 특전사 출신으로 교권보호국 감독관이 된 나화진(김무열)과 임한림(진기주)은 학교 정상화에 필요하다면 물리력을 동원해도 된다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받는다. “말로 해서 듣는 놈은 말로, 때려서 듣는 놈은 때려서라도 가르친다.” 나화진의 선언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며 행동으로 옮겨진다.
드라마는 불편한 학교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학교 폭력에 신음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마약·도박 위험에 노출된 교육 현장,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교권 침해 등 학교 안팎의 문제를 체벌과 폭력을 동원해 단죄하는 것이 줄거리다. 학교판 ‘모범택시’로 비유하자면 구원자 역할의 택시 회사 ‘무지개운수’가 ‘교권보호국’으로 바뀐 셈이다.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은 학교가 하지 못한 일을 즉각 해결한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세상은 망하는 겁니다.” 기성세대가 쉬쉬했던 병폐 척결에 과감히 나서는데, 절차보다 결과가 빠르고 설득보다 제압이 확실하다. 인간 병기 수준의 활극으로 악행을 처단하는 장면은 통쾌하다.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드라마 속 소재가 허구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울림이 크다. 매회 등장하는 에피소드마다 초등 교사 자살, 여고 시험지 유출 등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할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 폭력과 수업 방해,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교사의 무력감, 그 와중에 침해되는 다수 학생의 학습권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참교육’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의 공감까지 끌어냈다.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전 세계 48개국 상위 10위권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배경이다.
현실에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는 ‘참교육’은 앞서 인기를 끌었던 사적 복수극 계열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결이 드러난다. 선을 넘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일탈을 처벌하면서도 학교라는 공간의 복잡성을 외면하지 않으려 장치를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통쾌함보다 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반성과 교화 없이 응징만으로 학교 현장이 바로잡힐 수 있는가.
2화에서 조폭을 추종하던 폭력 고교생들이 제압된다. 그런데 시리즈 다른 회차에서 이들은 개과천선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깜짝 등장한다. 문제 학생도 변화할 수 있다는 교화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의도다. 4화 시험지 유출 사건 말미에서는 3화 가짜 미투 사건의 가해자 한예리를 다시 불러낸다. 감독관은 성적 조작을 주도한 교사에게 한 학생의 인생을 망가뜨린 책임을 물으며 한예리를 데려와 마주 앉힌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가해자로 보였던 학생이 과거에는 또 다른 피해자였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설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은 현실을 상기시킨다.
문제 학생의 변화 가능성과 가해자의 피해자성을 함께 보여 주는 설정은 기존 보복 대행 드라마와 분명 구별되는 문법이다. 학생을 제압하는 것과 학생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바로 그 차이에 오늘날 학교 현장의 고민이 묻어난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드라마의 관심은 결국 구조보다 개인에게 머문다. 입시 경쟁과 교육 격차, 가정 해체와 정서적 방임, 학벌 중심 사회가 어떻게 또 다른 문제 학생을 만들어 내는지까지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무책임한 어른을 심판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왜 그런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 시청자들이 교권보호국의 활약에 통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씁쓸함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교권보호국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교육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가칭 ‘교육활동보호국’ 신설 구상과 함께 토론회를 제안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교권보호국을 “파시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교권은 폭력이 아닌 교육적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접근법은 대립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실은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원칙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 수는 있으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학생들을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교권보호국은 드라마 속 판타지일 뿐이며, 폭력적 권한은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참교육’의 흥행 성공은 학교가 제 기능을 잃고 있다는 사회적 불안의 반증이라는 점에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폭력을 내세운 교권보호국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교권보호국이라는 판타지를 소환한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반성 없는 응징을 참교육이라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 역시 교육일 수 없다. 학생 인권과 교권,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생활 지도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응징과 방임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 그것이 드라마 ‘참교육’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이제 답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몫이다.
2026-06-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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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번 월드컵 우승국이 스페인이라고?
인류는 오래전부터 미래를 알고 싶어했다. 내일 비가 올지, 농사가 풍년일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러한 욕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철이면 여론조사에 귀 기울이고, 경제 전망에 귀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만 과거에는 점성술과 주술에 의존했다면, 오늘날에는 통계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스포츠는 인간의 예측 본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영역 중 하나다. 무릇 승부의 향방이 안갯속에 가려져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결과를 점친다. 특히 FIFA 월드컵은 전 세계가 참여하는 거대한 예측 실험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국을 맞히려는 전문가와 팬들의 경쟁은 때로는 그라운드 위 승부 못지않게 관심을 끌어모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막을 올린 지금, 팬들의 시선은 이미 결승전과 우승 트로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개막 전부터 전 세계에서는 우승 후보를 둘러싼 각종 예측과 베팅이 뜨겁게 이어졌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저마다의 전망과 분석이 쏟아졌다. 과연 AI와 빅데이터는 축구의 불확실성마저 읽어낼 수 있을까.
■스페인·프랑스… 엇갈리는 우승국 전망
월드컵 예측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는 단연 독일의 문어 ‘폴(Paul)’이다. 독일의 한 해양생물관에 살던 폴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 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 결승전 결과 등을 잇달아 맞혀 대회 기간 내내 화제가 됐다. 폴의 예언 방식은 단순했다. 경기를 앞둔 두 나라의 국기가 붙은 유리 상자에 홍합을 넣어두고, 폴이 먼저 선택한 상자의 국가가 승리한다고 보는 것이었다. 과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적중이 거듭되자 사람들은 폴의 선택에 열광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우승국 예측 경쟁도 뜨겁다. 독일 경제학자 요아힘 클레멘트는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국을 연속으로 맞힌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이번 대회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한 국가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다. 클레멘트는 월드컵 준우승만 세 차례 경험한 네덜란드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일본이 32강에서 브라질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고, 한국은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스페인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다. 체스의 순위 평가 방식인 '엘로(Elo) 평점'에 공격력과 최근 경기력, 지리적 요인 등을 결합한 분석 모델에서 스페인의 우승 확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스포츠 데이터 분석업체 옵타의 슈퍼컴퓨터 역시 스페인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했으며,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도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영국 레딩대학교 경제학자 제임스 리드 연구팀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예측도 있다. 2010년 스페인, 2014년 독일, 2018년 프랑스의 우승을 맞히며 '족집게 예언가'로 불린 브라질 출신 마이클 브루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은 프랑스를 우승 후보국으로 꼽았다.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몰락을 일찍부터 예상했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프랑스를 우승국으로 뽑아 맞춘 바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도 옴바페의 프랑스를 우승 후보국 1위에 올려놓았다. 영국이나 브라질을 우승 후보국으로 꼽는 축구 전문가들도 있다. 이처럼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기관, 심지어 예언가들까지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축구공은 둥글다”… 예측 장담 못 해
이런 데이터도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열린 11차례 월드컵 가운데 10번은 유럽 국가가 우승했고, 미주 대륙에서 개최된 8차례 대회에서는 7번이나 남미 국가가 정상에 올랐다. 개최 대륙과 우승국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런 통계는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전통의 강호 브라질에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과연 이번 대회에서도 이런 ‘대륙의 법칙’이 통할까.
물론 예측이 항상 적중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국을 연속으로 맞혀 주목받았던 마이클 브루노조차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의 우승을 예상했다가 아르헨티나가 정상에 오르면서 예측이 빗나간 바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2014년과 2018년 월드컵에서 예측 모델을 가동했지만, 2018년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다가 8강 탈락이라는 결과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부상, 감독의 전술, 경기 당일의 흐름 같은 변수까지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온라인 베팅 시장처럼 수많은 참가자의 정보와 판단이 집약된 예측이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우승국 예측이 아니라도 월드컵 역사는 예측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가득하다. 1954년 서독은 ‘무적 함대’로 불리던 헝가리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 한국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4강 신화를 썼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훗날 우승팀이 된 아르헨티나를 2-1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데이터와 통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축구는 수많은 기록보다 경기 당일 선수들의 투지와 몸 상태, 예상치 못한 변수 등이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다. 데이터는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독일의 명장 제프 헤르베르거는 “축구공은 둥글다”고 말했다. 우승 후보가 반드시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약체가 끝까지 약체로 남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월드컵은 늘 흥미롭다. 어쩌면 사람들은 결과를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능성을 꿈꾸기 위해 예측하는지도 모른다.
북중미 월드컵은 이제 막 시작됐다. 스페인이든, 네덜란드든, 프랑스든, 아르헨티나든 지금 이 순간 우승팀을 100%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한국 대표팀이 다시 한번 기적 같은 여정을 써 내려가는 일이다. 우승국 예측은 전문가와 AI에게 맡겨두자. 한국의 16강, 나아가 8강 진출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6월이다.
2026-06-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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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한국판 스페이스X ’가능할까?
요즘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에 쏠려 있다. 이 기업이 오는 12일(현지시간) 나스닥 시장에 등판하기 때문이다. 기업공개(IPO) 규모는 역대 최대인 750억~800억 달러로 전망된다. 기존 최대 기록인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공모 규모 294억 달러를 배 이상 넘어선 수치다. 스페이스X를 신호탄으로 하반기 오픈AI, 앤트로픽 등 초대형 비상장 테크 기업들이 연이어 등판하는 ‘IPO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 세계 증시의 구도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 세 기업이 조달하려는 자금만 약 2000억 달러, 합산 기업가치는 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 ‘스페이스X 상장’ 증시 블랙홀 되나
스페이스X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업가치가 높은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다. 실질적 수익 기반을 갖춘 우주 사업 포트폴리오가 이 같은 기업가치의 배경으로 꼽힌다.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위성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며 민간 우주산업 판도를 바꿨다. 현재 전 세계 상업용 우주 발사 서비스 분야에서 6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 재사용 로켓과 스타링크, 스타십을 기반으로 우주 사업 분야에서 수익성을 확보했다. 재사용 발사체 팰컨9는 발사한 1단 로켓을 지상으로 회수한 뒤 재사용하는 방식이라 총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였다. 2018년 첫 출시 이후 현재까지 각국의 위성 발사와 스페이스X 주력 위성인 스타링크 발사에 활용되고 있다. 일회용 발사체와 달리 수십 회 이상 반복 사용이 가능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았다.
업계에선 기업 공개 흥행 여부에 따라 스페이스X 시총이 1조 7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현실화할 경우 세계 시가총액 톱10에 진입한다. 스페이스X는 4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투자자 대상 로드쇼를 통해 자금 조달 규모와 최종 공모가, 기업가치 등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당장 이목이 쏠리는 것은 스페이스X가 기존 인공지능(AI) 성장주에 퍼져있는 자금을 얼마나 흡수할지다. 스페이스X가 상장되면 기존 성장주 비중을 줄이고 이동할 가능성이 있어 주가에 미래 성장 가치가 선반영돼 상승세가 가팔랐던 종목이 우선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최근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외국인 순매도가 늘어난 것 역시 스페이스X 상장에 따른 포트폴리오 재조정 압력이 일부 선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스페이스X가 투자 자금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될지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 민간 주도 우주산업 시대 가속
스페이스X의 상장은 글로벌 우주산업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발사체와 위성 개발을 국가가 직접 주도하던 시대를 넘어, 민간 기업이 기술 혁신과 사업화를 이끌고 정부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뉴스페이스’ 체제가 가속하는 것이다.
2000년대 미국은 정부 주도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올드 스페이스 체제’에서 벗어나 경제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뉴스페이스’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과거처럼 발사체를 직접 개발하는 대신 스페이스X의 발사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바꿨다. 스페이스X는 이를 기반으로 발사체 재사용 기술과 같은 혁신을 이뤄냈고, 이후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등 독자적 수익 모델까지 구축하며 세계 최대 우주기업으로 성장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유럽의 자존심 아리안스페이스 등 추격자들의 도전도 매섭다. 이처럼 우주 전장은 이미 민간 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됐다.
■ 국내도 뉴스페이스 전환 속도
항공우주 5대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우리나라도 우주항공청 출범, 누리호 민간 이전,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을 통해 뉴스페이스 시대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대 들어 민간 중심 우주산업 육성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정부는 기존 국가 주도 개발 체계를 민관 협력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다. 정부 주도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는 반복 발사하는 고도화사업을 통해 기술 이전이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 기업이 발사 서비스를 주도하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지난달 발사된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 역시 정부가 개발한 위성 플랫폼을 민간에 이전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2024년 출범한 우주항공청 예산은 올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고, 민간 투자를 지원할 뉴스페이스 펀드에도 올해부터 연간 1000억 원 이상 국비가 투입된다. 지역별 강점을 살리는 육성 정책도 이어진다. 정부는 경남을 위성 특화지구, 전남을 발사체 특화지구, 대전을 연구·인재 특화지구로 두는 우주산업 클러스터 사업에 2030년까지 3808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주항공 육성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우주항공의 또 다른 주역은 민간과 지방”이라고 강조하며 “한국판 스페이스X가 탄생할 수 있도록 민관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전남과 경남 등 핵심 인프라를 갖춘 남부지방을 우주항공 종합 벨트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해야
뉴스페이스 시대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민간 우주 항공 산업이 아직 뉴스페이스 선도국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국내 우주산업은 국가 연구개발(R&D)이 70~80%를 지탱할 정도로 공공 수요 비중이 절대적이다. 시장 규모와 민간 사업화 기반도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이 진정한 뉴스페이스 국가로 도약하려면 정부 지원을 넘어 민간 기업이 독자적인 시장과 수익 모델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산업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전략적 제휴는 의미 있는 행보다. 우주발사체부터 관측·통신 위성, 탐사에 이르는 한화의 ‘우주 밸류체인’과 KAI가 가진 ‘중대형 위성 개발 및 탐사선’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저궤도 위성통신부터 우주 탐사까지 아우르는 종합 우주 패키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이 있는 경남 창원과 KAI 본사가 있는 사천을 잇는 우주항공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경남~전남(고흥 우주센터·순천)~제주(한화우주센터)를 잇는 남부 우주산업 벨트로 확장될 수 있다. 한화와 KAI의 종합 역량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시도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판 스페이스X’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민간 수요 확대, 스타트업 육성,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등을 통해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KAI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의 매각 의지, 정부 승인, 노조 반발, 독과점 논란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반도체 이후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글로벌 우주산업 전쟁에 당당하게 참전할 수 있는 ‘한국판 스페이스X’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2026-06-06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