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누군가 나에게 몰래 마약을 투여한다면…
마약류는 통상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로 크게 분류된다. 마약은 천연 마약(양귀비와 코카엽)과 천연 마약에서 추출물(모르핀, 헤로인, 코데인), 합성마약(펜타닐, 메타돈, 옥시코돈)으로 분류된다. 합성마약 중에서도 펜타닐 남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펜타닐 효력은 모르핀보다 최대 100배, 헤로인보다 50배가량 강력하다. 1959년 벨기에 과학자 폴 얀센이 발명했다. 암 환자 등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는 용도로 인기를 모았다. 양귀비 등 비싼 천연 재료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1981년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서 펜타닐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들이 급증했다. 문제는 수요가 늘면서 불법 제조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당초 목적인 진통 용도가 아니라 환각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등 현재 지구촌은 펜타닐 등 합성마약류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펜타닐의 분자 구조를 조금씩 변경한 펜타닐 유사체, 저가 합성마약 플래카(Flakka), 합성대마(K2, 스파이스), 사탕과 초콜릿처럼 포장한 이색 마약 식품 등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철저한 대응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강력한 합성 마약 등에 노출될 우려가 매우 높은 만큼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검찰이 압수한 불법 유통 전문의약품. 부산일보DB
■ 급증하는 마약범죄… 청소년·청년이 위험하다
펜타닐은 뇌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직접 결합해 통증을 없앤다. 도파민을 분출시켜 몽롱하면서도 편안한 상태로 진정시킨다. 하지만 강력한 신체적, 정신적 의존 상태를 유발한다. 펜타닐의 가장 무서운 점은 한 번만 접해도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1% 분량인 2mg 정도만 복용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는 ‘좀비 도시’로 불린다. 켄팅턴 거리 등 도시 곳곳에서 펜타닐 투여 후유증 때문에 근육이 경직되면서 좀비를 닮은 기이한 모습으로 멈춰 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10만 명 이상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그중 70% 이상이 펜타닐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마약사범도 폭증했다. 대검찰청이 마약사범 통계를 처음 시작한 1985년에는 1190명이 단속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1999년 1만 589명으로 처음 1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23년에는 2만 7611명으로 2만 명을 처음으로 상회했다. 2024년에도 2만 3022명에 달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마약류 유통이 늘어나면서 20~30대 마약류 사범이 크게 늘고 있다. 전체 마약사범 가운데 20~30대 비중은 2022년 1만 507명(57.2%), 2023년 1만 5051명(54.5%), 2024년 1만 3996명(60.8%)에 달했다. 10대 마약사범도 증가하고 있다. 2005년 30명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역대 최대인 1477명을 기록했다. 이런 통계들은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청소년과 청년층이 마약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방증한다.
2024년 6월 26일 세계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부산도시철도 1호선 양정역 일대에서 열린 마약류 퇴치 대시민 홍보 캠페인 장면. 부산일보DB
■ 비자발적 마약 투여 범죄 확산 우려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와 부산시약사회 마약류 및 약물중독예방센터 등의 전문가들은 마약류가 단속, 검거 통계 수치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펜타닐 성분을 함유한 젤리와 사탕, 에너지 드링크에 혼합한 마약 음료, 대마 성분을 주입한 마약 초콜릿, 합성대마 오일을 넣은 마약 전자담배 등 일상용품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마약류들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마약 유통업자들은 중독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수익을 남긴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마약류를 구입할 때 최초 1회는 무료로 제공한다는 등의 마케팅 전략으로 구매자를 확보하기도 한다. 마약류를 집중력을 높이는 보조제라고 속여 중독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SNS로 접촉해 텔레그램으로 거래한 뒤 암호화폐로 대금을 주고받고 퀵 서비스나 택배, 우편물로 배송하는 비대면 거래가 지난해 60%를 넘어선 상황이다.
특히 갈수록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 2023년 4월 서울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발생한 사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당시 4인조 일당들은 시음 행사로 위장해 학생들에게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음료”라며 필로폰과 엑스터시 성분을 섞은 음료를 마시도록 유인했고, 6명의 학생이 피해를 입었다. 범인들은 학생들을 마약사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학부모들을 협박, 돈을 뜯어내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방영 중인 넷플릭스의 ‘사냥개2’에서는 몰래 투여된 약물이 섞인 술 한 잔을 마신 극중 인물이 쓰러지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2022년 방영된 ‘약한영웅 클래스1’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다른 학생의 시험을 망치기 위해 펜타닐 패치를 몰래 붙이는 장면이 나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약 밀반입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호두 속에 숨겨 들어오다 적발된 마약류. 부산일보DB
■ ‘마약류 대응 습관’이 필요한 시대
전문가들은 유사 범죄 발생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카페 등에서 음료를 마시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누군가가 몰래 마약류를 음료 컵에 혼합하는 범죄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강남구 학원가 사건처럼 차후에 협박을 받는다면 금품을 뜯기는 것은 물론 본의 아니게 중독의 길로 빠질 수 있다. 더욱이 펜타닐 등 강력한 합성마약을 자신도 모르게 투입 당했을 경우 중독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마약 유통 조직의 고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젤리와 초콜릿 등을 누군가가 선심성으로 포장해 권할 경우에도 무심코 섭취했다가는 원인도 모른 채 중독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펜타닐 등의 강력한 마약류를 범죄 도구로 악용, 누군가의 삶을 망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마약 관련 기관들은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마약류 범죄에 대응하려면 몇 가지를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 모르거나 의심스러운 타인이 제공하는 음료와 음식물 등을 절대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 공중장소인 카페 등에서 자리를 비울 경우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행 모두가 같이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다. 또 비자발적으로 마약류를 접했거나 협박을 받았을 경우에는 즉시 관련 기관에 연락해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주변 지인이나 가족 등이 평소와 다른 이상 행동을 할 때도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강력한 합성마약이 판치면서 한 번만 접해도 중독을 피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번은 괜찮겠지, 극히 소량인데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 등 안일한 생각과 마약에 대한 상식 부족 때문에 소중한 삶을 파괴 당하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한다. 마약류에 대한 상시적 대응 습관을 숙지하길 당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