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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지미 배우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정부가 지난 7일 미국에서 별세한 고 김지미 배우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분야의 정부 포상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영예다.
1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이날 오후 2시 고인의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를 찾아 조문하고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덕성여자고등학교 재학 시절 서울 명동에서 김 감독의 눈에 띄어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데뷔 이듬해 멜로드라마 ‘별아 내 가슴에’(1958)를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1960~7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으며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다. ‘길소뜸’ ‘춘희’ ‘토지’ ‘을화’ 등 1990년대까지 작품 700여 편에 출연했다.
1980년대엔 영화사 지미필름을 차려 ‘티켓’ ‘길소뜸’을 제작하는 등 제작자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7편의 영화를 제작한 뒤에는 영화 정책과 관련된 활동에도 참여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서 거주해 왔다.
문체부는 고 김지미 배우에 대해 “한국영화의 성장기를 이끈 배우”라며 “특히 여성 중심 서사가 제한적이던 시기에도 폭넓은 역할을 소화하며 한국영화 속 여성 인물상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한 시대의 영화 문화를 상징하는 배우로 평가받아 왔다”면서 “영화 제작 기반 확충과 산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한국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추서 이유를 밝혔다.
2025-12-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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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AI 발전 속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종말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더 나은 진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2023년 제32회 부산무용제 대상·안무상(‘페르소나’)에 이어 그해 열린 전국무용제에서 같은 작품으로 금상·안무상·무대예술상을 수상한 손영일무용단의 손영일 안무가가 2년 만에 개인 공연을 마련한다. 17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무대에 오를 현대무용 작품 ‘종말인가 진화인가’이다.
이번 공연은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에 따라 파괴와 재생, 소멸과 부활을 반복하는 경계에서 춤이 하는 질문이다. 손 안무가는 이번 무대가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밝혔다.
작품은 △소실: 인간이 사라지고 변형되는 과정 △결실: 잃고, 잊히는 자신의 찾으려는 과정 △탐색: 숨어 있던 미래의 자신을 탐색하며 내면의 여정에 나서는 과정을 거쳐 △수용: 받아들임으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손 안무가는 강조한다. “AI가 인간의 여러 영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춤과 같은 예술 형태에서는 그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AI가 아직 이해하거나 구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성, 창의력, 그리고 예술성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안무 방식에도 약간의 변화를 줬다. 손 안무가는 솔로, 듀엣, 트리오 등으로 춤 구성을 잘 구분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9명의 무용수가 전체가 추는 군무만큼이나 각 무용수 움직임에 신경 썼다. 출연진은 손영일, 이종윤, 서건혁, 이원재, 이지혜, 하주은, 황해림, 장진솔, 김수민(이상 무용수), 특별출연 배우 이대희·손미리, 마술사 임태홍 등이다. 공연 시간은 60분.
음악(작곡·편곡)은 안무가 이진우가 이끄는 우지코브 사운드(USICOVE)가 맡았다. 힙합과 무용 감각을 결합한 독특한 사운드로 주목받는 우지코브는 움직이는 사운드를 통해 신체와 음악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부분 ‘페르소나’ 때 함께했던 이들이다. 티켓 전석 3만 원. 문의 010-3581-2156.
2025-12-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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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오늘의 작가상’ 김용철·이원숙 선정
부산미술협회는 제25회 ‘오늘의 작가상’ 본상 수상자로 김용철(59·공예), 청년작가상에 이원숙(49·판화)을 선정했다.
오늘의 작가상은 매년 투철한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부산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지역 미술 분야 발전과 활성화에 기여한 미술인에게 주는 상이다. 올해는 지난 10일 부산 남구 부산예술회관 4층 회의실에서 심사위원회를 개최했다. 송대호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7명이 참석했다. 이들 심사위원은 본상 후보에 11명, 청년작가상 후보에 7명 등 총 18명이 제출한 증빙서류를 바탕으로 작가의 최근 3년간 작품 발표(개인전·그룹전) 실적과 작가로서의 역량과 작품성 등을 평가해 최종 수상자를 선정했다.
송대호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에서 “제25회 오늘의 작가상 심사는 부산 미술계의 현재 좌표와 동시대적 감수성을 살펴보고, 응모 작가 각자가 지닌 조형 언어가 얼마나 깊이 있는 성찰과 확장성을 보여주는지에 중점을 두고 심사를 했다”며 “각 심사위원은 △작품 세계의 완성도 및 창의성 △작품성의 동시대성 영향력 △오늘의 작가상 목적의 부합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송 심사위원장은 또 “11명이 응모한 ‘본상’은 꾸준한 활동 성과와 창의성이 두루 돋보인 김용철 작가가 무난히 선정된 반면, 7명이 응모한 ‘청년작가상’은 새로운 시각과 동시대 현상에 대한 감수성이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근소한 차이로 이원숙 작가가 선정되었다”면서도 “두 작가 모두 그동안의 왕성한 활동 성과와 자신만의 시각적 문법을 체계화해 조화롭게 형상화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김용철 작가는 40여 년간 목공예 분야에 헌신해 온 명인으로, 자연이 건네는 재료와 오랜 시간 마주하며 기물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탐구해 왔다. 그는 공예의 본질인 ‘쓰임’과 ‘미감’을 조화롭게 확장하며, 한국 현대 목칠공예의 새로움과 예술적 가치를 한층 심화한 작업 세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작가는 제20회 국제종합예술대전 종합대상(국회의장상), 제15회 대한민국관광기념품공모전 금상(국무총리상), 제22회 부산산업디자인전람회 금상(산업자원부 장관상) 수상하며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전문성과 조형성을 공고히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사)한국예술문화명인(목칠공예)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전통미술․공예 부문(국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초대작가 등을 역임하며 공예계 현장에서 폭넓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원숙 작가는 판화의 구조적 매력에 주목하며,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독특한 질감이 어우러진 화면 구성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경성대 예술학부 회화과, 홍익대 미술대학 판화과 석사 및 일본 다마미술대학 대학원 회화전공 판화연구 박사를 수료한 이 작가는 국제무대에서도 전문성을 견고히 갖춰오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25 제7회 아와가미 국제 미니프린트 대상, 2021 노보시비스크 국제 현대 그래픽아트 트리엔날 전통판화부문 특별상, 2019 제16회 미나미시마하라 세미나리요현대판화전 대상(세미나리요상) 등 굵직한 수상 경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2일 오후 3시 부산 남구 부산예술회관 1층 공연장에서 열리는 부산미술협회 2026년도 정기총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내년 7월 금련산역갤러리에서 열릴 수상 기념전 전시 지원금 일부가 지원된다.
2025-12-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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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바다미술제 작품의 후속 여정
부산의 대표적인 격년제 미술제 중 하나인 ‘바다미술제’는 전시가 끝나면 작품이 철거되거나 작가에게 반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품이 해변에 설치돼 바닷바람이나 염분 등 환경적 제약이 크고, 대부분이 기간 한정의 설치 미술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달 2일 37일간의 항해를 끝내고 막을 내린 올해 2025바다미술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17개국 23팀 38명의 작가가 총 46점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 중 4점이 작가에게 돌아갔고, 1점은 기증 의사를 밝혔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폐기됐다.
바다미술제 작품 기증 소식은 꽤 오랜만이어서 눈길이 갔다. 다대포해수욕장 서측에 설치돼 있던 김상돈 작가의 ‘알 그리고 등대’가 그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바깥에 오래 둘 수 없어 가급적 실내로 가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사하구는 기증 의사를 구두로 승인하고, 현재 적정한 설치 장소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설치가 완료되면 정식으로 서류 절차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설치 장소 물색이 다소 길어지고 있다. 바다미술제가 끝난 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이전 장소를 확정 짓지 못해 해수욕장에 그대로 있다. 급하게 서둘 일도 아니지만 차일피일 미룰 일도 아닌 것 같아서 결과를 지켜볼 뿐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영부영하다 언젠가처럼 다른 지역 미술관으로 기증 작품을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또 바다미술제 종료 후에도 두 곳에서 연장 전시가 열리며, 작품이 해변을 넘어 도시 전체의 공공 자산처럼 기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작품의 영구 설치나 소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미술제가 남긴 예술 경험을 도시 공간으로 확장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BNK부산은행은 다대포해수욕장역에 설치되었던 이진 작가의 ‘물결의 되울림’을 은행 본점 1층으로 옮겨 연장 전시해 직원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바다미술제 주요 협찬사가 전시 작품을 이어서 보여줌으로써, 기업 공간을 시민을 위한 문화 향유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스위스 출신 안나 안데렉이 부산에 와서 지역 여성들과 작업한 ‘실버 붐’을 퍼포먼스 중심으로 재편집해 광안역과 범내골역 도시철도 역사 내 LED 스크린으로 상영하고 있다. 공식 협찬사는 아니지만, 지역의 큰 예술 행사 작품을 시민과 공유함으로써 대중교통 공간을 문화 공공재의 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번 칼럼에서 논할 계제는 아니지만 폐기되는 작품이 많은 현실과 이를 줄이기 위한 논의도 언젠가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25-12-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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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오늘의 운세] 12월 15일 월요일(음력 10월 26일)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박청화 철학원
(음력10월26일) 051-863-8306
◎-大吉 ○-吉 △-平 X-凶
쥐
96년생 친구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면 뜻밖의 수확을. 84년생 새로운 요소를 불러들여 활성화를 꾀함이 좋을 듯. 72년생 다툼 수가 있으니 인간 관계를 신중히. 60년생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드러나게 될지도. 48년생 불평하기 전에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봄이. 36년생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바깥 외출은 자제하는 것이.
금전-△ 애정-○ 건강-○
소
97년생 깊이 빠지지 말고 어느 정도 선에서 물러나야. 85년생 평가절하되는 일이 있어도 오히려 실속이 있을 듯. 73년생 내 능력으로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61년생 모든 것을 최소화하여 자중해야 될 때. 49년생 시간이 갈수록 컨디션이 회복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37년생 변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기는 것이.
금전-○ 애정-○ 건강-○
범
98년생 중도에 포기하면 손해가 커질 수 있다. 86년생 의욕이 왕성하지만 확신이 있는 일에만 실력을 발휘함이. 74년생 신중하게 행동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62년생 진행을 서두르거나 지레짐작으로 나가지 말아야. 50년생 눈치 볼 것 없이 계획한 대로 진행함이 중요. 38년생 유연한 태도로 나가면 한결 수월할 듯.
금전-○ 애정-△ 건강-○
토끼
99년생 지금의 투자가 내일을 만드는 법이니 두려워 말고 도전을. 87년생 단발성에 그치는 계획보다는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워봄이. 75년생 방관적인 자세로는 실수하기 쉬울 듯. 63년생 때로는 멈추어 서서 현실을 살피는 여유를. 51년생 무엇이든 쉽게 생각하고 대처하라. 39년생 분별을 잘해야 손해가 없을 듯.
금전-△ 애정-○ 건강-△
용
00년생 상승을 위한 자기 계발에 힘쓰면 좋을 듯. 88년생 매사 계산이 앞서면 계산대로 되기가 쉽지 않으니 주의. 76년생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될 수도. 64년생 초조해하지 말고 상황의 변화를 기다림이. 52년생 인정받고 주위의 신망이 두터워진다. 40년생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돋보이는 하루.
금전-△ 애정-△ 건강-△
뱀
01년생 손쉽게 선택한 일이 발을 빼기 힘들듯. 89년생 잘만 선택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77년생 말없이 실행하여 주위를 감동시켜 보는 것도 좋을 듯. 65년생 길흉이 상반되어 오니 자신에게 달렸다. 53년생 손실수가 있으니 금전에 신경 써라. 41년생 반전이 있는 날이니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다 생길 듯.
금전-△ 애정-○ 건강-○
말
02년생 근성만으로는 희망을 달성하기 힘들 수도. 90년생 가능하면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듯. 78년생 자기보다 남을 위해 힘써라. 66년생 쉽게만 보고 있다가 예상 밖의 곳에서 손실이 있을 수도. 54년생 까다롭게 하면 구설이 따를 수도. 42년생 여기저기 벌이지 말고 기다리는 자세를 취해봄이.
금전-○ 애정-△ 건강-○
양
03년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많이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91년생 매사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마무리 지어야. 79년생 말과 몸짓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생길 듯. 67년생 다툼 수 있으니 조심하라. 55년생 분위기를 단란하게 꾸미면 모든 일이 원만히 흘러갈 수도. 43년생 진실을 담아 솔직함이 최선의 방법일 수도.
금전-○ 애정-○ 건강-△
원숭이
04년생 환경을 탓하기 전에 능력을 키워라. 92년생 남들과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듯. 80년생 세상에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을 듯. 68년생 너무 자만해도 뒤집어지기 쉬우니 고개를 숙여야. 56년생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리면 전화위복이 될 듯. 44년생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보는 것도.
금전-△ 애정-○ 건강-△
닭
05년생 의욕이 넘쳐도 무리하지 말 것. 93년생 정성과 노력으로 하면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운. 81년생 지혜를 발휘하여 마음을 다스려 갈등을 해소하라. 69년생 부드러운 얼굴로 밝게 대화하면 복이 찾아올 듯. 57년생 고립되지 않도록 감각을 길러봄이. 45년생 기대하지 않은 일에서 좋은 결과가.
금전-○ 애정-○ 건강-◎
개
06년생 불만이 따르기 쉬우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라. 94년생 눈앞의 이익을 놓칠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마라. 82년생 경솔한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상처 낼 수도. 70년생 옛것에 얽매여 있으면 새로운 길은 열리지 않을 듯. 58년생 정세에 맞추어 완급을 조절한다면 잘 마무리될 듯. 46년생 귀인의 도움이 있으니.
금전-△ 애정-△ 건강-○
돼지
95년생 상황만 모면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83년생 많이 시달릴 수 있으니 피곤해질 수도. 71년생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먼저 잃고 나중에 얻을 수도. 59년생 마음이 분산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으니 집중함이. 47년생 가는 곳마다 인기를 얻으니 즐거움도 함께. 35년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봄이.
금전-△ 애정-○ 건강-△
2025-12-1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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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故 김지미 금관문화훈장 추서…"영화 문화 상징하는 배우"
정부가 지난 7일 미국에서 별세한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휘영 장관이 14일 오후 2시 고(故) 김지미의 추모 공간이 마련된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를 찾아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고인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한 시대의 영화 문화를 상징하는 배우였다"며 "한국 영화 제작 기반 확충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 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김지미는 지난 2016년 10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별세한 고(故) 이순재 배우에게도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외에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배우로는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가 있다.
김지미는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로 데뷔해 700여편의 작품을 남긴 한국 영화계 대표 스타 배우다. '토지'(1974), '길소뜸'(1985) 등으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또 1972년엔 김수용 감독의 ‘옥합을 깨뜨릴 때’로 제15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부산과도 인연이 깊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고인은 영화 제작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뒤 ‘티켓’(1986·임권택)을 비롯해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고인은 2019년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올림픽을 앞두고 굳이 한국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야 하느냐”라는 정부 당국의 견제로 ‘티켓’ 제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인은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영화 행정가와 활동가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는 ‘김지미를 아시나요’라는 타이틀로 김지미 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김지미는 “두 딸을 내가 키우지 못한 것이 늘 미안했다”라며 “(데뷔 전인)17세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화배우는 안 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2025-12-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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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간 단단히 잡아 줄 철학 치료서
‘왜 나는 모든 것이 불안한가?’ ‘왜 나는 타인을 위해 살고 있는가?’ ‘삶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참고 버티면 언젠가 나아질까?’ ‘내면의 부를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다섯 가지 질문>이라는 책 제목에 나오는 질문들이다. 정말 평범한 내용이다. 단어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대다수 사람이 생각했을 것 같다. 흔한 질문들이라 이 질문에 대한 모범 답도 사실 꽤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특별할 것 같지 않고 흥미를 끌 요소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을 대하는 태도, 존재의 가치, 인간관계와 행복을 알려주는 책은 출판가에 정말 많다. 거의 매달 이런 분야의 책이 신간으로 여러 권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질문에 관한 답을 12명의 동서양 철학자의 언어에서 찾았다. 2400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관통하는 철학의 언어가 이 같은 고민의 치료제라고 말한다.
막연한 불안감, 마음 한구석의 헛헛함, 이유 없는 쓸쓸함은 사실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위로는 한순간일 뿐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다가온다.
책에선 50개의 일화와 거기서 찾아낸 50개의 인생 명언이 소개된다. 50개 중 각자의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났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움직인 몇 개의 일화를 소개해 본다.
‘왜 나는 늘 같은 이유로 아파하는가’라는 질문에 플라톤은 자기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소음과 자극으로 가득 찬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과 단절되었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의 진정한 의미는 자기의 무지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돌봄’이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확장한다.
플라톤은 몸을 가꾸거나 재물을 쌓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영혼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돌보는 일이다. 오랜 시간 방치한 상처 입은 '내면 아이'가 내뱉는 목소리는 실제 내 능력과 상관없이 나 자신을 실패자이고 무능한 존재로 만든다. 결국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작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이 목소리는 더 커지고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내면 아이가 듣지 못했던 위로의 말을 지금 건네는 것이 바로 자기 돌봄의 시작이다. 자기돌봄은 단순히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문장마다 실제로 고민을 치유하는 구체적인 실천 지침도 덧붙이고 있다.
현재의 의미를 소개하는 장도 인상적이다. ‘미래만 주시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결과에 따라 현재의 의미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라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시험의 합격이 목적이지 공부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만약 시험에 불합격한다면 그동안 준비한 과정이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시험 결과를 떠나 공부 자체를 자신을 성장시키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여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절망하지 않는다. 올해 ‘불수능’으로 인해 수시 최저 등급을 충족하지 못해 좌절하는 학생들, 기대보다 못한 수능 성적으로 인해 올해 1년은 완전히 버렸다고 생각하는 응시생들에겐 러셀의 이야기가 좀 더 의미 있게 다가갈 듯싶다.
50개의 인생철학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다 보면 어느새 나 스스로 묻고 답하게 된다. 철학자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길을 만들고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자신을 단단하게 세워주는 자신만의 철학이 완성된다.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휘둘리고, 떠밀리고, 넘어져 지쳐도 사색하는 시간과 나만의 인생철학만 있다면 힘든 오늘을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고민과 불안이 많은 이들에게 “걱정하지 마라. 잘할 수 있다”라는 응원을 보내는 책이다. 장재형 지음/타인의취향/288쪽/1만 8800원.
2025-1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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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어렵고 팔다리 저린데 중풍도, 목 디스크도 아니라면?
갑자기 젓가락질이 어려워지고 양쪽 팔다리가 저리다면? 경추척수증을 의심해볼 만하다. 뇌졸중(중풍)이나 추간판 탈출증(목 디스크)으로 혼동하기 쉬워 초기 대응이 중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경추척수증은 경추 부위에서 척수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압박되면서 발생하는 척수 손상을 일컫는다.
경추는 총 7개 척추뼈로 구성돼 있는데 머리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회전, 굴곡·신전 등 다양한 방향으로 머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팔·어깨·손으로 내려가는 말초신경의 분지 경로 역할도 하며, 경추 내부의 척추관을 통해 지나가는 척수와 신경 구조물을 보호하기도 한다. 척수는 중추신경계의 핵심 구조로, 뇌에서 시작해 경추·흉추·요추를 따라 내려가는 길고 연속된 신경 조직이다. 척수는 뇌의 명령을 근육으로 전달하는 운동 신경 경로, 감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감각 신경 경로, 그리고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도록 하는 반사 작용의 중추 역할을 수행한다.
척추의 뼈와 뼈 사이에서 충격 흡수 역할을 하는 추간판이 여러 요인으로 탈출해 척수를 직접 압박하는 목 디스크와 척추체 뒤쪽에서 척추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후종인대가 두툼해지거나 골화돼 척수 공간을 좁히는 후종인대 골화증, 척추 후궁을 연결하는 황색인대가 두꺼워지거나 골화돼 후방에서 척수를 압박하는 황색인대 골화증 등이 경추척수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목, 어깨, 손, 팔에 통증이나 저림 증상이 나타나면서 목 디스크와 혼동될 수 있다. 척수 압박이 심해지면 손의 미세운동 장애가 나타나면서 젓가락질을 비롯해 필기 능력이 저하되고, 단추를 채우기나 물건을 잡는 정교한 손동작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보행이 불안정해지고 균형 잡기가 어려워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경우도 발생한다.
이뿐만 아니다. 주먹을 빠르게 쥐었다 펴는 동작을 10초 동안 20회를 하지 못하거나 양쪽 팔·다리가 저리고 손가락 끝이 저리거나 시큰한 경우엔 가까운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노화와 퇴행성 변화가 진행되는 50대 이상부터는 정기적인 척추 평가가 권장된다.
진단은 신체검사 및 MRI, CT, X-Ray 등을 통해 척수 압박 정도, 디스크 변화, 척추 정렬 상태를 확인하며, 필요에 따라 신경학적 검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약물, 물리치료 등 보존적 치료가 우선되지만 척수 압박이 심하거나 진행성 신경학적 결손이 있을 경우엔 수술적 치료가 요구된다.
경추척수증 예방을 위해서는 컴퓨터·스마트폰을 쓰거나 운전할 때 척추 정렬에 맞는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칭과 목·어깨·등 근육 강화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며, 적정 체중 관리를 통해 척추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대동병원 척추센터 정동문(신경외과 전문의) 진료부장은 “손놀림이 부자연스럽고 보행이 불안정한 증상은 뇌졸중과 유사해 조기 진단이 늦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이미 손상된 신경 기능은 회복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2025-12-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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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괴로워하는 자기에게 집중할 때 ‘치유’의 시작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에 마음 아픈 이들이 기댈 곳은 실상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동아대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철권 박사는 개인 병원을 열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회복에 전념하기 하고 있습니다. 이메일(gomin119@busan.com)을 통해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Q. 어머니는 안중에 첫째 뿐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어머니가 저의 진가를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가족에게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던 것도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장기 기증한 뒤 가족들은 나몰라라 했습니다. 이유 모를 고통을 호소하면 생색내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바랐던 가족의 사랑이었건만…. 제가 먼저 가족과 연을 끊었다고 해서 연락조차 없는 그들은, 남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불쑥 치미는 화 때문에 가끔은 일상생활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장기 기증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여전히 후회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이번 사례는 두 가지 매듭으로 꼬여있습니다. 하나는 가족 간의 장기 기증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의 인정 욕망 문제입니다. 가족 간의 장기 기증은 타인 간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심리적 문제를 초래합니다. 가깝고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기증자는 대부분, 자기 신체 일부를 병든 가족에게 조건 없이 제공함으로써 아픈 가족 구성원이 회복되고 그로 인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을 상상합니다. 기증 전에는 가족 모두 기증자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갈등은 대부분 기증자나 수혜자의 건강이 악화될 때 생깁니다. 장기 기증 후 건강이 악화되면 기증자는 자기 보존 본능이 작동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혜자가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기대했던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 못할 때도 기증자는 괜히 기증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장기 이식은 기증자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성사됩니다. 가족 구성원에게 자기의 장기를 주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기증자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주는 것입니다. 기증한 후에 기증자의 마음은 사랑에서 욕망으로 바뀝니다. 욕망은 가지는 것입니다. 내 몸의 일부를 주었으니 당신도 그에 맞는 소중한 것을 나에게 달라는 마음이 싹틉니다. 그래서 기증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혜자와 가족 구성원 모두로부터 보상을 받기를 원합니다. 돈과 같은 물질이든, 아니면 감사와 칭찬과 존경과 고마움의 표시와 같은 비 물질이든 간에 자기 몸의 일부를 내어준 대가를 원합니다. 그것도 계속, 지속적으로 받기를 욕망합니다. 기증자의 보상 심리와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기증자는 후회와 배신감, 우울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입니다. 모든 인간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고 사회는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한 여자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신성하고 위대합니다. 아무나 ‘어머니’의 이름을 달고 어머니의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없다면 아기는 태어날 수 없고 태어난 후 생존할 수 없기에 어머니는 아기 생명의 모든 것입니다.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에는 자기와 어머니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나인줄 압니다.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아이는 오랜 기간 어머니를 욕망하는 심리적 일체감을 가집니다. 그러다가 사회 규범을 받아들여 비로소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접고 독립합니다.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분리된 후에도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그 포근함과 안락함과 안정감은 모든 인간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실제 자기 어머니가 그런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라는 말이 주는 상징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아프지 않던 손이 소금물에 넣었을 때 어느 부위가 쓰리고 아프다면 분명 그 부위에 상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사례에서 장기 기증은 삶에서 소금물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간은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취약성을 발견하게 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에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바로 그때가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순간입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치유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 시작됩니다. 상처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상처는 아물어 삶의 무늬가 되고 당신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어야 크고 작은 시련에 인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2025-12-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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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황홀지경 신라 금관 여섯 점…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겨울방학이 눈앞이다. 신나게 방학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그래서 당일치기로 경북 경주시에 다녀왔다. 이번 행선지는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 인기 높은 야외 명소가 아니라 어린 자녀들과 함께 따뜻한 실내에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신라 금관전’이 열리고 월지관이 재개관한 국립경주박물관, 최근 신라를 주제로 문을 연 ‘플래시백 계림’ 그리고 겨울에 꼭 가볼 만한 동궁원 버드파크가 바로 그곳이다.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두 가지를 기념하기 위해 신라역사관 3a실에서 특별전시회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을 열고 있다. ‘APEC 2025 정상회의’와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이 그것이다. 신라 금관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 104년 만에 교동, 황남대총 북분,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여섯 점이 사상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여서 큰 기대를 모았다. 초기 양식의 교동 금관부터 완성형이라는 천마총 금관까지 제작 시기에 따른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그야말로 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황금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달까지만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일반 관람객이 쇄도하자 전시 기간을 내년 2월 22일까지로 연장했다. 무료입장권은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거나 박물관 정문에서 나눠 받으면 된다. 물론 입장권 구하기가 쉬운일은 아니다. 다행히 홈페이지 예약에 성공해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하루에 총 17차례, 30분마다 매회 150명이 특별전에 입장할 수 있다. 사실 특별전 전시실은 ‘신의 금관’이라는 주제에 비해서는 매우 좁다. 그래서 전시실 내부는 매우 붐비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도 모든 입장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대감에 들뜬 모습이다. 언제 다시 신라 금관 여섯 점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 않은가.
전시실은 중앙에 ‘신성한 나무와 새 그리고 황금빛 세상’이라는 독특한 사각형 구조물이 서 있고, 구조물 뒤에 금관총 금관 그리고 주변 벽을 따라 다른 금관들이 전시된 형태로 구성됐다. 곳곳에 신라 금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어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을 미리 관람하면 여섯 금관을 직접 볼 때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사전 지식을 갖고 신라 금관 여섯 점을 한꺼번에 살펴보니 모두 다른 형태에 다른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장 원초적 형태를 가진 교동금관에는 사슴뿔 장식이 없는 반면 서봉총 금관에는 새 모양 장식이 있다.
‘신라 금관’ 특별전 외에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장기간 보수를 거쳐 지난 10월 재개관한 월지관이다. 통일신라 왕실의 별궁이자 연못이었던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 중 1100여 점이 전시된 곳이다. 무엇보다 널찍하게 펼쳐진 박물관 내부 구성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박물관 한가운데에는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배 한 척이 놓여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느낌을 준다. 배를 중심으로 왕의 연회와 음악, 꽃과 새가 어우러진 정원 문화, 수중 장식물 등 통일신라의 생활 미학이 전시품으로 펼쳐진다. 주사위인 상아 주령구와 금박무늬 뼈 장식, 연꽃 문양 도자편 등은 처음 공개되는 희귀 유물이라고 한다.
물론 ‘신라의 금관’ 특별전을 둘러본 뒤 같은 건물인 신라역사관도 빼먹을 수 없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당연히 벽에 걸린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전시품이다. 그 앞에 서서 한동안 넋 빠진 표정을 하고 있으면 수막새가 정말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착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불교미술을 볼 수 있는 신라미술관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그곳의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못지 않게 환상적이다. 금강역사, 사천왕, 팔부중 등 다양한 신장상의 강력한 표정과 역동적 자세는 잊지 못할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불교 조각 3실’에서 만난 약사여래는 무더위와 일상에 지친 관람객에게 위로와 안식을 준다.
■플래시백 계림
요즘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 개인 시설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아트, 즉 특수 영상이 인기다. 빛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장치다. 경주에는 최근 신라 시대 계림을 주제로 만든 히스토리텔링 미디어아트 시설인 ‘플래시백 계림’이 문을 열었다.
전시 공간은 총 13개의 주제로 이뤄진다. 신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시작점부터 신라 건국 설화, 신화 속 신, 고대 유물, 신라 왕국의 대서사시가 차례로 펼쳐진다.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이색적인 주제인 데다 화려한 영상을 보면서 독특한 사진을 찍기에도 좋아 경주에 간다면 한번쯤 둘러볼 만한 시설이다.
플래시백 계림의 시작은 홍살문을 표현한 ‘붉은 문’이다. 거울에 끝없이 비친 홍살문은 여행의 시작을 의미한다. 신라를 지킨 수호신인 골화, 계신 등을 표현한 ‘수호자’가 이어진다. 벽에 붙은 거대한 부조처럼 표현된 신들의 모습은 무섭기도 하면서 재미있기도 하다. 부조를 보고 서면 뒤쪽에서 나온 빛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데 특이하게도 도깨비, 귀신 등의 형상을 연출한다. 움직임에 따라 빛은 계속 모양을 바꾸는 게 상당히 이색적이고 재미있다.
플래시백 계림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사진 찍기에 훌륭한 공간은 ‘신단수’다.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나무 신단수를 주제로 한 넓은 공간인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상과 색채가 화려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문무왕의 대왕을 주제로 삼은 ‘용이 지키는 바다’는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표현했다. 바다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 사진을 찍으면 정말 동해 겨울바다에 다녀온 것처럼 훌륭한 한 컷이 된다.
‘용이 지키는 바다’에 이어 신라인들의 문양인 ‘보상화’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인 ‘빛의 회랑’가 나온다. 햇빛이 잘 비치는 쪽에 마련된 시설이어서 정말 밝아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다. 마지막 공간은 금관, 상감유리 목걸이 등 신라의 각종 보물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영상이다.
■동궁원 버드파크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 동궁과 월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다고 한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2013년 보문단지에 동궁원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시설은 버드파크다. 다양한 새를 살펴보거나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시설이다. 물론 새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
버드바크 안에 들어가자마자 다양한 새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뱀과 거북이 잠을 자는 시설을 지나면 수생플라이트장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데, 새 소리는 이곳에서 흘러나온다. 태양황금앵무, 흰올빼미 등이 소리를 지르는 ‘범인’들이다. 어린이 두 명이 태양황금앵무 두 마리를 손바닥에 앉혀 모이를 준다. 새들은 익숙한 듯 얌전하게 먹이만 골라 먹는다.
새로운 관람객이 들어오자 새들은 더 소란스러워진다. 먹이를 달라면서 주변을 맴돌며 소리를 지른다. 사람 머리에 앉은 새가 있는가 하면 바닥에 앉아 사람 얼굴만 쳐다보는 새도 있다.
수생플라이트를 나오면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청금강앵무를 만날 수 있는 새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안전을 고려해 직원이 안내한다. 청금강앵무는 부리가 날카로운 탓인지 먹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
제2관에는 사랑앵무장이 있다. 잉꼬앵무새들의 재촉을 들으며 먹이를 주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잉꼬앵무새가 여러 마리가 바로 날아온다. 머리에 앉아 재롱을 떠는 새도 있다. 손바닥을 펼치자 여러 마리가 날아와 앉더니 먹이를 달라면서 짹짹거린다. 새들은 노래하고 사람들은 신나게 웃으면서 그야말로 합창을 한다.
2025-12-1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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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부일시네마…봉준호 세 번 울린 ‘행복한 라짜로’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일보> 독자를 극장으로 초대하는 BNK부산은행과 함께하는 부일시네마(이하 ‘부일시네마’)가 오는 30일 시즌2 여덟 번째 상영회를 개최한다.
부일시네마는 전문가가 엄선한 숨은 명작을 매달 함께 관람하고 감상을 공유하는 행사다. 시즌2의 올해 마지막 상영작은 제71회 칸 영화제 각본상의 주인공 ‘행복한 라짜로’(2019)이다.
이탈리아 거장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연출한 ‘행복한 라짜로’는 시골 마을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가 자유를 갈망하는 친구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의 납치 자작극을 돕다가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작품이다.
지난 3일 멀티플렉스 등을 통해 국내에 재개봉하기도 한 이 영화는 영화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화제작이다. 뉴욕타임스(NYT) 영화비평가 마놀라 다기스가 2018년 최고의 영화 5위로 선정했고, 봉준호 감독은 2010년대 최고의 영화 2위로 꼽았다. 특히 봉 감독은 2019년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올해 본 최고의 외국영화”라며 “이 영화를 보고 세 번 울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많은 부분을 성경에서 따왔다. 주인공의 이름 라짜로도 성경의 나사로에서 가져왔다. 영화 속 은유적 요소들은 라짜로를 예수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라짜로가 사는 이탈리아 마을 인비올레타는 현대판 노예제를 운영한다. 알폰시나 후작 부인의 담배 농장에서 소작농 50여 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를 당하며 일한다. 그 소작농들이 부려 먹는 순수한 청년이 라짜로다. 바보 같을 정도로 순박한 라짜로는 부당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지낸다.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들도 순순히 들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가 마을을 찾아오고,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된다. 자유를 갈망하는 탄크레디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납치 자작극을 계획하고, 라짜로는 그를 돕는다.
납치 신고를 받고 마을을 찾아온 경찰은 후작 부인이 마을 사람들을 노예로 부린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라짜로는 홀로 남게 된다.
영화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연말에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라짜로 역을 맡은 배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그의 순수한 얼굴과 표정 연기를 보고 나면 캐스팅 이유를 절로 납득하게 된다.
한편 부일시네마에선 영화 상영 뒤에 관람객들끼리 감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시네마’가 이어진다. 모더레이터로는 ‘덕화명란’ 장종수 대표를 초청했다.
12월 부일시네마 상영회는 오는 30일 오후 7시 부산 중구 신창동 모퉁이극장에서 열린다. 부산닷컴 문화 이벤트 공간인 ‘해피존플러스’(hzplus.busan.com)에 접속해 회원 가입을 한 뒤 응모하면 매달 50명을 추첨해 영화관람권(1인 2장)을 증정한다. 응모기간은 오는 23일까지이며, 당첨자는 24일 추첨으로 발표된다.
BNK부산은행이 후원하는 부일시네마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오후 7시 모퉁이극장에서 열린다. 부일시네마 시즌2는 앞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크레센도’(2023) △‘타인의 삶’(2007) △‘너와 나’(2023) △‘퍼펙트 데이즈’(2024)가 상영될 예정이다.
2025-12-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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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골에서 농사 짓는 한국인 소믈리에
프랑스에서 직접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드는 한국인이 있다. ‘사부아(Savoie) 농부’ 하석환 씨다. 하 씨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잘나가는 소믈리에였다.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소믈리에라고 부르는 게 거북해서 이처럼 자신을 농부로 소개한다. 그가 만든 브랜드 ‘도멘 아쉬(Domaine H)’는 이미 국내외 애호가 사이에서 주목받는 와인이 되었다.
지난달 28일 부산 해운대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 ‘율링’ 스페셜 디너에서 그를 만났다. 율링 측은 일찌감치 그의 와이너리에 다녀간 뒤, 사람들에게 도멘 아쉬 와인을 추천해 온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날은 2024년 빈티지 새 와인과 그의 와인 병 레이블에 작품을 올린 부산의 김무디 작가를 동시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알고 보니 부산과의 인연은 오래되고 깊었다. 부산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하다 부산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프랑스 리옹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었다. 지금도 처가는 부산에 있다. 프랑스에서 직접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든 이와 이날 그 와인을 함께 마셨다. 마치 만화 ‘신의 물방울’처럼 눈앞에 드넓은 프랑스의 넓은 포도밭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포도 수확 중에 비가 와서 철수하기도 했고, 비가 예보되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속이 타기도 했다. 비를 한두 번 맞더니 포도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멘탈이 털린 적도 있었다. 와인을 만들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했다. 실수도 많았지만, 다행히 좋은 포도로 잘 자라줘서 뿌듯하다.” “처음 만든 와인을 들고 해산물로 유명한 프랑스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그곳 대표와 소믈리에가 나를 와인 생산자로서 진심을 다해 존중해 주는 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나는 이름 없는 지역에서 와인을 막 만들기 시작한 동양의 꼬마로 보였을 텐데…. 내가 소믈리에로 일할 때가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하 씨가 자신의 SNS에 일기처럼 올린 글에는 초보 농사꾼이자 신생 와인 생산자로서의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사부아는 알프스 산맥 서부에 자리잡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등 세계적인 와인 산지에 비하면 덜 알려졌지만 프랑스의 포도밭으로 유명하다. 에비앙 생수가 여기서 생산되니 물 맛 또한 짐작이 된다. 사부아(Savoie)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사보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있는 ‘사보이 호텔’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도멘 아쉬’ 와인을 만드는 하 씨의 포도밭 면적은 3만 3000평에 달한다. 국제 규격 축구장으로 따지면 15개에 달하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다. 하 씨는 평생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늘 정장 차림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빙만 하다가 대체 어쩌다 프랑스에서 농부가 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
하 씨는 고교 시절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어린 나이에 다큐멘터리에 빠져,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막상 가 보니 프랑스에서는 가장 싼 술도 와인이었다.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프랑스어를 생각보다 빨리 익혀, 영화 학교 입학 전에 보르도에 있는 일 년짜리 소믈리에 과정에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
현장 실습을 위해 와이너리에 갔다가 “당신은 소믈리에를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와이너리에서 일하면 어떻겠느냐”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와인 관련해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을 때였는데, 와인은 운명이었을까? 와인 공부는 소믈리에 일 년 과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다음 해에는 부르고뉴에 가서 소믈리에 과정에 다시 등록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자 운 좋게도(?) 와인의 길이 열렸고, 지금까지 와인 관련해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에서 일하며 만났던 윤화영 셰프가 부산에 메르씨엘 레스토랑을 열면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한 덕분이었다.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2년 가까이 메르씨엘 소믈리에로 일하며 너무 좋은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부산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큰 소득을 거뒀다. 서울보다 더 좋았고, 언젠가 한국에 다시 들어가면 부산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부산에서 전문적인 소믈리에보다 지배인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프랑스에서 소믈리에 생활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은 한국인 이영훈 셰프가 운영하는 ‘르 파스탕’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조그맣게 시작해 프랑스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는 처음으로 미슐랭 원 스타를 받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 누렸다. 대신 아이들을 비롯해 가족들이 힘들어 했다. 소믈리에 일의 특성상 맨날 집에 밤늦게 들어온 탓이었다. 소믈리에 일이 좋고, 잘했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10월 소믈리에를 그만뒀고, 그 이듬해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르고뉴에 있는 일 년짜리 와인 경영자 과정에 들어갔다. 실제로 와이너리를 하려는 사람들만 듣는 수업이었다. 와이너리는 농사만 지어서도 안 되고, 양조만 해서도 안 되었다. 와인병과 코르크 마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소믈리에로 일하다가 왜 갑자기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사실 와인 종주국 프랑스에서도 소믈리에 출신 생산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와인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은 쉽게 꾸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 씨 역시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걱정과 고민을 한다. 다른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내가 잃을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을 자주 되뇌는 것이다.
집이 있는 리옹에서 사부아까지 차로 1시간 거리라 바쁘지 않을 때는 출퇴근을 한다. 요즘처럼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겨울철에는 와이너리에 매트리스를 깔아 두고 잔다. 수확 철에도 한두 달은 그렇게 지내니, 일 년에 절반은 와이너리에서 사는 셈이다. 포도 농사를 짓다 보니 기후 위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프랑스의 각 지역에서는 그 기후에 어울리는 포도 품종을 생산해 왔지만 너무 더워지면서 맞지 않아졌다. 프랑스 포도 농가마다 새롭게 품종을 바꾸기 위한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뒤늦게 농사를 시작한 그 역시 포도밭에 다른 종류의 나무와 식물을 함께 심어 균형 잡힌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도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자연을 유지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3년 첫 빈티지는 5개국에 수출했다. 2024년 두 번째 빈티지는 프랑스, 한국. 스페인, 중국 등 10개국에 나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멘 아쉬(Domaine H)라는 이름과 레이블을 보고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명품보다 편하게 즐기면서 더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는 태국 방콕에 처음 갔다가 부산이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방콕에는 전 세계에서 좋다는 호텔은 다 들어와 있었고,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방콕이 그 정도로 외국인이 몰려들만한 곳일까? 방콕과 비교해 보니 부산은 훨씬 더 매력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방콕은 어딜 가도 예약 사이트가 영어로 잘 만들어져 있고, 매장에도 영어 하는 직원이 있다. 방콕의 타깃은 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다이닝하는 친구들은 부산 경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제는 눈을 돌려 K컬처 바람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에게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음식도 맛있어야 하지만 외국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편하게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산에 있는 레스토랑들은 아직 외국인에게 많이 친절한 것 같지 않다.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인이 부산에 오면 돼지국밥에 소주도 먹어 보고 싶지만, 하루쯤은 와인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매력적인 도시 부산이 그런 쪽에 더 신경 쓴다면 시장이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와인의 매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와인을 다 마셔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매년 새로운 가치를 들고 와인을 만드는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앞으로 새로운 땅에 포도밭을 일궈 와인을 만드는 한국인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상떼!
2025-1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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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중국 와인 뜨는데 한국 와인은 아직 먼 길
하석환 씨는 최근 프랑스에서 일본 와인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와인 시상식인 영국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드(DWWA)’에서 최고상은 일본의 산토리가 만든 ‘도미 고슈(登美甲州) 2022’에 돌아갔다. 포도 재배에서 양조까지 100% 일본에서 생산한 와인이 이 시상식 최고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일본 와인은 주로 지구온난화 영향을 덜 받는 야마나시현 고슈시(市) 고유종 포도 ‘고슈’로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하 씨는 또 “이번에 상하이에서 중국 와인을 마셔 보니 10년 전에 비해 너무 좋아졌다. 심지어 중국 와인이 일본보다 더 좋다고 느낄 정도였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와인 소비국 이미지를 탈피해 닝샤나 윈난 등 주요 산지를 중심으로 와인의 품질을 끌어올리며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른 수상과 수출로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주요 와인 생산국 순위에 들어 있지 않다. 그는 “한국의 생산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세계와 차이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한국의 와인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25-1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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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새 책] 내란의 밤, 시민의 기록 外
■내란의 밤, 시민의 기록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비상계엄 선포”라는 한 문장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그날 밤 국회로 달려가 내란 군을 막아 낸 시민 313명의 증언을 기록한 책이다. ‘진실의 힘’이 2025년 2월부터 7월까지 313명을 면담하고 A4 용지 1만여 장의 녹취록을 분석해 만든 최초의 시민 역사책이다. 강문민서, 송소연, 조용환 지음/진실의힘/448쪽/2만 2000원.
■폭군
어떻게 미치광이 통치자는 권력을 장악하고 나라를 집어삼키는가. 우리는 왜 뻔뻔하고 이기적인 지도자에게 끌리는가. 오늘날 가장 저명한 셰익스피어 연구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저자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폭군의 정체를 해부한다. 셰익스피어의 예리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김한영 옮김/까치/256쪽/1만 8000원.
■나의 물맷돌은 다윗의 그것이니
호세 마르티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 지성이다. 사망 100주년이 되는 1995년 유네스코는 ‘호세 마르티 국제상’을 제정했고, 평생 디아스포라로 살며 길 위에서 쓴 시와 산문, 연설, 번역 등 그가 남긴 모든 기록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의 산문선 집이다. 호세 마르티 지음·김수우 옮김/글누림/304쪽/2만 원.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70세에 졸혼 선언, 시골집에 10년 칩거, 6권의 제인 오스틴 작품 다시 읽기, 88세에 박사학위, 90세에 책 출간. 이 책은 제인 오스틴 소설 다시 읽기를 통해 자기 삶을 되찾은 90세 여성의 독서 회고록이다. 저자는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하는 치유법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선택했다. 루스 윌슨 지음·이승민 옮김/북하우스/416쪽/1만 9800원.
■우리는 왜 가짜 정의에 열광하는가
개인의 심리 문제와 한국 사회의 인과관계를 밝히고 주류 심리학의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한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이 이번에는 ‘정의’를 주제로 한국 사회의 마음을 진단한다. 한국 사회에 범람하는 다양한 정의론의 배경과 지향점, 비판점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정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 제시한다. 김태형 지음/갈매나무/272쪽/1만 9000원.
■건축 너머 비평 너머
저자는 유명한 건축 비평가이다. 건축의 역할과 가치에 관한 질문을 전면에 두고, 한국 현대 건축의 다양성과 건강함을 펼쳐 보인다. 역사성과 현장성을 녹여낸 비평, 130여 컷의 이미지와 도면, 논리적 이해를 이끌면서도 정서적 공감을 일으키는 서술을 통해 한국 현대 건축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다. 배형민 지음/한밤의빛/356쪽/2만 4000원.
2025-12-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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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읽기] 일곱 도시 미술관의 그림 이야기
여행지에서 만나는 미술관은 어떤 의미일까.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출장이나 여행 중에 그 도시를, 그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에 발길을 멈춘다. 아예 미술관에 가기 위해 여행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미술관의 작품들은 한 도시가 지나온 역사와 사건부터 당시의 사회상과 트렌드, 작가의 인생과 철학까지 여러 겹으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오그림은 자신이 운영하는 아트살롱 오그림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서 ‘세계의 미술관과 아트페어 현장에서 작품 너머의 이야기를 꺼내며 예술을 통해 삶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의 카이로와 룩소르에서 시작해 르네상스의 심장인 이탈리아 피렌체, 예술의 수도인 프랑스 파리, 제국의 황금빛 흔적을 품은 오스트리아 빈, 서양 예술을 수집하고 재해석해 낸 일본 도쿄, 현대미술의 중심지 미국 뉴욕을 직접 여행하며 느낀 감상과 유명 작품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고대미술부터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미술까지 훑어 냈다.
특별한 점은 개별 작품이나 사조를 해설하는 딱딱하고 단편적인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이 놓인 장소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비롯해 당시 사람들의 경험이나 소망,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예술가가 겪은 사건 등을 잘 버무렸다는 데 있다. 마치 전문 도슨트가 옆에서 조곤조곤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 만약 그림이 여전히 어렵고 미술관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있다면, 이 책과 함께 유명한 예술도시를 여행하며, 미술관과 작품에 담긴 이야기에 보다 편안하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예술을 통해 도시를 읽고, 도시를 통해 역사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고, 언젠가는 그곳으로 떠나야겠다는 계획을 품게 될지도…. 오그림 지음/크레타/416쪽/2만 2000원.
2025-12-11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