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의 지금이곳] '800조 투자'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광주·전남 행정통합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양 시도민 의견 수렴과 광역의회 동의, 특별법 제정을 거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반년 남짓이다. 국내 첫 광역 행정통합에 성공한 보상은 컸다. 800조 규모의 프로젝트, 20조 원의 재정 지원 등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통합 선물’이 쏟아졌다. 민형배 특별시장은 국가 최고의결기구인 국무회의 일원이 됐다. 그동안 서울시장에게만 주어진 자격이었다. ‘기한’ 내 통합에 도달 못 한 타 지자체로서는 부럽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선 통합특별시민들이 넘어야 할 ‘진짜 통합’의 시간도 찾아왔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선 후폭풍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주 청사와 특별시의회 청사 소재지, 국립의과대학 입지, 공공기관 통폐합, 교통 등 생활 체계 통합 등이 동시다발로 터져나왔다. 앞으로도 문제다. 특별법이 부여한 여러 인허가권과 개발 권한은 도리어 특별시 내 지역 간 쟁탈전과 환경 갈등을 부추기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외형만 합쳤을 뿐, 내부의 화학적 결합은 이제 시작이다. 비슷한 시기, 속전속결 행정통합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2010년 7월 출범한 창원특례시가 16년이 지난 지금 ‘통합 유지냐, 분리냐’ 기로에 섰다. 지난 지방선거 때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강기윤 창원시장이 통합 창원시를 마산·창원·진해 3개 시로 되돌리거나 5개 행정구를 자치구로 전환하자고 밝힌 것이다. 현 특례시 구조가 시민 목소리를 충분히 담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과거 마창진 통합을 주도한 박 지사가 통합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한 모양새다. 당시 주민 동의도 없이 10개월 만에 밀어붙인 정치적 통합이 16년이 지나도록 소외감과 갈등을 키워온 셈이다. 정부 인센티브와 정치권 욕심에 서둘러 덩치만 키운 결과다. 그럼에도 온 나라가 서남권 ‘800조 충격’에 휩싸여 통합 속도전에 나서는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장기 로드맵 마련이나 주민 공감대 형성이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미룬 채 ‘시험만 통과하면 큰 보상이 기다린다’는 식으로 내달리는 형국이다. ‘통합이 곧 정부 지원’ 논리는 공고하다. 실제 지난 1일부터 ‘지방자치분권 및 균형성장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행정통합 지자체 말고도 특별지자체 등 비통합 권역도 초광역 단위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지원 통로가 넓어진 셈이다. 통합 대상 지자체들 움직임도 제각각이다. 국회 문턱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가 막혀 좌절한 대구·경북은 민선 9기 들어 통합 논의를 재개하는 분위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추경호 대구시장도 조만간 만나 논의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양 시도는 여전히 행정통합에 무게추를 두고 있다. 충청권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대전·충남은 속도전 대신 신중론을 펴고 있다. 충북은 일단 강한 충북 만들기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배경에는 2년 전 충남·북과 대전, 세종이 참여해 구성한 특별지자체 ‘충청광역연합’을 통해 정부 메가 프로젝트, 공공기관 이전 등 현안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다. 안타깝지만 부산·울산·경남의 광역 통합 논의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지방선거로 세 지역 리더십에 큰 변화가 온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전재수 부산시장과 김상욱 울산시장은 특별연합(메가시티)을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2028년 행정통합’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부산·울산이 먼저 특별연합을 이루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광역의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별연합 구성에는 광역의회 동의가 필수인데 두 도시 모두 국민의힘이 광역의회 주도권을 쥐고 있어 설득이 어려워 보인다. 2024년 발족했다 허무하게 사라진 부울경 특별연합을 형식적으로라도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의 지방 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인 ‘5극3특’ 전략과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올해 내 구체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두 사안 모두 두 개 이상 지자체가 손을 잡은 초광역 단위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실질적인 자치 권한과 재정 능력을 확보한 진정한 통합이 필요하지만 당장 지자체들로서는 정부 인센티브와 지원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5극3특 트랙에 올라타거나 2차 공공기관 이전 기회를 잡으려면 부울경이 먼저 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야를 떠나 부울경이 한 몸이 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는 만큼 양보와 타협의 묘를 발휘하지 못할 것도 없다. 3개 시도 단체장이 하루빨리 한자리에 앉아 ‘행정통합이냐, 특별연합이냐’ 방향부터 잡아 주길 기대한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2026-07-1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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