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과 임금의 미래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집트 피라미드가 채찍과 몽둥이로 건설됐다고 여긴다면 오해다. 다수의 숙련된 장인들이 활약한 덕분에 고도로 정교한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어떤 보상이 주어졌을까. 파피루스나 점토판에 하루 지급품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빵 10개와 맥주 3~4L, 그리고 양파와 마늘, 생선, 곡물…. 화폐가 생기기도 전이었지만 숙련 노동의 대가에는 엄정한 셈법이 적용됐다.
조선 숙종 대에 부산 금정산성을 지을 때는 노역에 동원된 장정들에게 끼니와는 별도로 막걸리를 지급했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오늘날 산성 막걸리의 기원이다. 일꾼을 후하게 대접해 일의 능률과 완성도를 높이려는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날 노동의 대가는 임금이다. 사용자는 안정적인 기본급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 보상책도 제공한다. 이 제도의 원형은 미국 포드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제조사 포드는 1914년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해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했는데, 낯선 기계에 적응하지 못한 저숙련 노동자들의 높은 이직률에 발목이 잡혔다. 생산 차질까지 빚자 회사는 인력 확보를 위한 묘안을 내놨다.
포드는 ‘하루 5달러( a day)’ 구호를 내걸고 일당 2.34달러를 배 이상 올렸다. 또 고임금의 대가로 무단결근, 음주, 도박을 금지하는 등 사생활까지 통제했다.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직장에서 일도 잘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회부(Sociological Department)를 신설하고 가정 방문을 통해 결혼과 가족 부양, 저축 여부를 일일이 조사했다. 직원이 방탕한 생활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가차 없이 해고했다. 포드주의를 ‘가족임금(family wage)’의 제도화로 부르는 이유다.
이후 산업사회는 포드식 가족임금제가 중심축이 됐다. 임금은 개인에 대한 보상에 그치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를 부양하는 가족 생활비 개념으로 확장됐다. 기업들은 가족수당, 사택과 주택담보 대출, 자녀 학자금, 배우자 건강검진, 경조사 지원 같은 복지 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국가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와 유족연금, 산재보상 같은 사회보험 체계로 이를 뒷받침했다. 기업과 국가는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을 위해 핵가족 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은 주가 상승으로 코스피 지수 신기록 경신을 주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도 포드주의 기반 위에 산업화를 이뤘다. 한국의 노사는 격렬하게 충돌해 왔지만 동요 ‘아빠 힘내세요’로 상징되는 ‘가장의 생계 책임’만큼은 공유한다. 노조의 쟁의 행위에 일정한 동정 여론이 형성되는 이유도 임금이 가족 생계를 지키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가족임금’은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의 분담을 전제하고 있다. 노동은 경기 변동과 기업 리스크로부터 보호받되, 기업과 주주는 투자 판단, 이익 처분, 실패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회사는 직원 가족의 생계가 걸린 기본급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사회적 비난과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최저임금 보장, 해고 제한, 퇴직보험과 고용보험 등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 안정성은 보장하되, 기업 이익의 처분은 경영진의 판단 영역에 두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한 199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혁명과 스타트업 붐은 포드주의 임금 체계에 변형을 일으켰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창의적 인재를 붙잡기 위해 월급을 넘어선 대안을 찾았다. 스톡옵션이나 성과조건부주식(RSU, Restricted Stock Units)은 회사 성장에 따라 주가가 오르면 직원이 주식을 받거나 싼값에 살 수 있도록 한 보상 제도다. 이 방식은 한국 IT 업계와 스타트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다만 포드주의식 단체협상과 달리 실리콘밸리식 보상 체계는 개별 계약과 성과 연동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익을 나누는 권한이 경영진에 있다는 점만큼은 포드주의와 다르지 않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가 역대급 영업이익의 일률적 분배를 요구하며 쟁의에 나선 것은 포드주의와 실리콘밸리식 보상 체계의 경계를 흔드는 움직임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연봉의 50%로 제한된 성과급 상한 폐지를 목표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회사의 이익 중 일정 비율을 노동의 몫으로 공식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요구가 실현되면 직원 1인당 3년간 26억 원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의 요구는 초과 실적을 성과급 형태로 지급하는 이익공유제(PS, Profit Sharing)와 비슷해 보인다. 다만 기존 PS가 경영진이 설계한 성과 공유 체계라면,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노동 몫으로 공식화하자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 사측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Over Profit Incentive)을 유지하면서 실적이 개선되면 특별 보상을 추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회사가 잘되면 더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성과급 액수보다 누가 배분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충돌이다.
이 쟁점에 노사 모두 양보하지 않을 태세여서 물리적 대결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노조 홈페이지 ‘파업.com’은 21일로 예고된 파업 동참 노조원 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노동위원회 중재가 결렬된 뒤 5000여 명이 늘었다.
삼성 노조의 파업 참여 인원과 투쟁 지침을 알리는 홈페이지 ‘파업.com’ 초기 화면.
삼성전자는 창업 때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면서 업계 최고의 임금과 복지를 제공한다는 서사를 쌓았다. 한국에서 가장 전형적인 ‘가족임금’을 실천한 회사로 손색이 없다. 그런 회사에서 그 틀을 깨는 단체행동이 시작된 것은 역설적이다. 성과 배분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부족해 불신이 누적됐다는 지적을 삼성전자는 곱씹어봐야 한다.
노조의 요구가 경계선을 넘었다고 해서 ‘귀족 노조’로 비판만 하면 해결책과 멀어진다. 실제 임금과 성과 배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족임금’의 취지가 퇴색되는 과정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삼성전자와 같은 성공 모델이 존재하기 위한 밑바탕이 되는 우리 사회 내부의 균형 감각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3%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 대다수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경영 성과에 대한 노사의 책임 경계가 흐려질 경우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만약 사용자가 ‘영업 이익이 나면 추가로 가져가되, 손실이 날 때는 기본급에서 공제하자’고 요구하면 어떻게 방어할 수 있나. 경영 실패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임금’의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 약자들이 아직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훗날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이 한국 노동 체제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노동의 양극화와 사회적 균형이라는 더 무거운 질문도 함께 봐야 한다. 삼성전자 노조가 기업 초과 이익의 배분을 요구하는 지금도 대다수 노동자는 노조의 보호 밖에서 불안정한 고용과 임금을 걱정하고 있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