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격동의 시대에 산을 그린다는 것-유영국과 예술의 자율성
유영국, Work, 1987.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이미지 제공: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올해는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유영국의 산 연작은 얼핏 세잔을 떠올리게 한다. 세잔이 자연의 구체적 외양을 걷어내고 사물의 덩어리와 구조를 근원적 형태로 환원했다면, 유영국은 선명한 색면과 기하학적 선·면으로 산의 형상을 해체하고, 그것을 내면화된 기억과 조형적 질서로 다시 세웠다. 세잔에게 생트빅투아르 산이 자연을 회화의 구조로 바꾸는 실험장이었다면, 유영국에게 산은 고향 울진의 자연과 기억을 점·선·면·색의 추상적 구조로 응축하는 장소였다.
그의 산은 때로는 검고, 때로는 붉고, 때로는 푸르다. 산의 능선은 삼각형과 사선으로 바뀌고, 바위와 골짜기는 어두운 색면의 깊이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눈앞의 자연을 모사한 그림이 아니라, 자연이 몸과 기억 속에 남긴 힘을 회화의 구조로 바꾼 그림이다.
유영국은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추상미술 실험을 시작했고, 평생의 화업으로 전개했다.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의 중심에는 1949년 출범한 ‘국전’이 있었다. 국전은 일제강점기 ‘선전’의 관전 체제와 관행을 상당 부분 이어받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화단의 제도와 권위는 과거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유영국은 국전을 넘어서 한국 회화의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흐름은 195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추상미술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新象會) 등은 국전 중심의 사실주의와 관전적 권위에 맞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실험한 장이었다. 추상미술은 기성 화단의 바깥에서 출발해 점차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 언어가 되었다. 유영국은 그 변화의 초입에서 산을 점·선·면·색의 질서로 바꾸며 한국 모더니즘의 한 축을 세웠다. 1987년의 ‘Work’에서 산은 붉은 하늘, 파란 띠, 검은 삼각형과 녹색 삼각형의 질서로 바뀌며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기억의 구조가 된다.
한편 유영국이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분단, 독재와 산업화의 격랑으로 요동친 시대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좀처럼 그 시대의 상처와 갈등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산이 있다. 붉고 푸른 산, 검고 깊은 산, 점과 선과 면으로 해체되고 강렬한 색채로 다시 세워진 산이다. 그렇다면 격동의 시대에 산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이 시대에 응답하는 방식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예술은 거리의 구호가 되고, 어떤 예술은 고통의 증언이 되며, 어떤 예술은 낡은 형식과 제도에 맞서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세운다. 유영국의 추상은 세 번째 경우에 가깝다. 그는 시대의 고통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예술이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산처럼 단단하게 남겼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