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메리 앤 베키오의 절규와 다시 불타는 가자
존 필로, '켄트주립대 총격 사건 이후 메리 앤 베키오와 제프리 밀러'(1970). ⓒJohn Paul Filo/Nalley Daily. 비평 목적 저해상도 인용.
수잔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속 ‘플라톤의 동굴’에서 열두 살 때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사진을 보았고, 그 사진들이 “나를 날카롭게, 깊게, 순식간에 베었다”라고 말한다. 제롬 보이드 마운셀은 손택의 이 말이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을 구분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파악한다.
1970년 5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학에서 베트남전 확대에 반대하던 학생 시위 현장에 주방위군이 발포했고, 네 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스무 살 대학생 제프리 밀러가 포장도로 위에 쓰러져 있고, 그 곁에서 열네 살 소녀 메리 앤 베키오가 두 팔을 벌린 채 절규하고 있다. 존 필로의 이 사진은 이후 ‘켄트주립대의 피에타’라 불리며 반전 사진의 상징이 되었다.
7월 8일은 가자지구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참혹한 날짜다. 2014년 7월 8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보호선 작전’을 시작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그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2251명이 사망했고, 그중 1462명이 민간인, 551명이 어린이였다고 기록했다. 더 나아가 오늘의 가자는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라는 말로 고발하기 시작한 참혹한 폭력의 현장이 되었다.
스투디움은 사진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읽게 하는 이해의 영역이고, 푼크툼은 관람자의 주관적 기억과 경험을 건드리며 예기치 않게 감정의 상처를 남기는 세부다. 이 사진에서 스투디움은 분명하다. 베트남전과 닉슨의 캄보디아 확전, 미국 대학가의 반전 시위, 그리고 자국의 청년들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의 역사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사진은 사건 기록을 넘어 전쟁에 의해 파괴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정치적 이미지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우리를 베고 찌르는 것은 베키오의 벌어진 입, 하늘을 향해 펼친 두 팔, 죽은 청년 곁에서 터져 나온 통제 불가능한 절규다. 이것이 푼크툼이다. 푼크툼은 설명보다 먼저 온다. 우리는 이 사진의 역사적 맥락을 알기 전에 이미 그 소녀의 몸짓에 찔린다. 죽은 자의 침묵과 산 자의 비명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는 순간, 사진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상처의 사건이 된다.
사진의 푼크툼은 과거의 고통을 봉인하지 않고, 현재의 폭력 앞에서 다시 열리는 기억이다. 오늘 우리는 이 절규를 가자지구에서도 듣는다. 무너진 건물, 흰 천에 싸인 아이의 몸, 병원 복도에서 울부짖는 부모의 얼굴은 모두 다른 시대의 푼크툼이다. 권력은 폭력을 자신의 언어로 정당화하지만, 사진은 그 추상적 언어 속 폭력을 한 사람의 얼굴과 몸을 통해 폭로한다. 사진은 죽은 이를 살릴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이를 잊히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메리 앤 베키오의 절규는 반세기를 넘어 오늘도 우리를 찌른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