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거장과 폭력의 공간-김수근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민주화운동기념관(김수근 설계, 옛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제공
대한민국 현대건축의 대부, 김수근은 공간사옥, 경동교회, 국립진주박물관 등을 설계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건축 전문지 <공간>을 창간했고, 수많은 예술가와 문화인을 후원했다. 또한 승효상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 건축가를 배출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의 건축 인생에는 쉬이 말하기 어려운 역설이 있다. 한쪽에는 공간사옥 지하의 문화공간 ‘공간사랑’이 있다. 1977년 개관한 150석 규모의 이 소극장은 1970~80년대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 연극인들이 모여든 자유로운 문화공간이었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첫 공연이 이루어졌고, 공옥진·홍신자·이매방 같은 예인들의 무대와 함께 황병기·김영동 등 전통음악과 창작 음악의 실험적 공연, 현대무용, 실내악, 재즈, 시 낭송, 건축 세미나 등이 이어졌다.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공간사랑은 새로운 예술적 상상력의 피난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다. 1976년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발주로 착공해 이듬해 준공된 이 건물은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조사와 고문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김근태가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고, 박종철 열사는 여기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국가 폭력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근대 권력은 감옥과 병원, 학교 같은 공간의 배치를 통해 인간을 감시하고 규율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그러한 권력의 건축이었다. 실제 이 건물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피의자를 끌고 가려고 오른쪽 측면 깊숙이 배치한 출입구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1층에서 5층 조사실로 직접 이어지는 원형 계단은 끌려온 사람의 방향감각을 흐리게 만든다. 5층의 극히 좁은 창문은 바깥 풍경을 차단하고, 조사실은 문이 열려도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배치되었다. 이렇게 건축은 단순한 수용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장치가 되었다. 그것이 설계자의 의도였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건축이 국가 폭력의 수행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사람을 가두고 고립시켰고,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이곳에서 건축은 미적 형식을 넘어 권력의 기술로 작동했다.
김수근의 공간사랑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 건축가의 모순을 넘어, 권위주의 시대에 예술과 권력이 맺었던 불편한 관계를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자유를 위한 공간이, 다른 한쪽에서는 통제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공간은 사람을 해방할 수도 있고 억압할 수도 있다. 건축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물어야 한다. 한때 공간사랑에서는 자유를 노래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남영동에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역사는 더 오래 남는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