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아이 웨이웨이와 민주주의의 기억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아이 웨이웨이 'Remembering'(2009) 뮌헨 Haus der Kunst 설치 전경. 사진 Ai Weiwei Studio. CC BY-ND 2.0. 비평 및 교육 목적 인용. 아이 웨이웨이 'Remembering'(2009) 뮌헨 Haus der Kunst 설치 전경. 사진 Ai Weiwei Studio. CC BY-ND 2.0. 비평 및 교육 목적 인용.

1989년 6월 4일 새벽,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탱크와 장갑차가 들이닥쳤다. 민주화,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은 군대의 무력 진압 속에 쓰러졌다. 수백~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당국은 이 사건을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하고 검열을 통해 공적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러한 억압된 기억을 끈질기게 호출해 온 작가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감추고 삭제하려는 사건과 이름들을 예술 속에서 다시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아름다운 형식 이전에 기억의 복원에 가깝다. 특히 그의 설치 작품 ‘Remembering’(2009)은 천안문을 직접 재현한 작품은 아니지만, 천안문 이후의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부실 공사로 무너진 학교 건물 아래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이름을 직접 조사하고 기록했다. 그는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파사드를 9000개의 어린이 배낭으로 장식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들이 어린 학생들의 배낭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푸른색 바탕에 빨강, 노랑, 녹색의 글자들이 반복 배치됨으로써 색면의 공간성이 강조된다.

이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개인의 존엄을 의미한다. 작품 속에 배낭으로 따로 새겨진, “그녀는 이 세상에서 7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문장은 설치미술의 몸 감각으로 연결된다. 이 문장은 당시 희생된 한 소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다. 한 아이의 짧은 삶을 기억하려는 사적인 문장이 작품 속에서 국가적 재난의 책임 문제를 고발하는 정치적 언어가 되었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은 망각에 맞서는 일종의 ‘기억 투쟁’이다. 기억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권력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구성된다. 권력은 언제나 불편한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기억을 다시 공적 공간으로 불러낸다.

6·3 지방선거 또한 단순한 행정 권력의 교체만은 아닐 것이다. 선거의 밑바닥에는 어떤 사회를 기억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감각이 흐르고 있다. 4·19, 부마항쟁과 5·18, 6월 항쟁의 기억 역시 끊임없이 다시 말해지고 다시 해석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회는 쉽게 권위주의로 되돌아간다.

아이 웨이웨이가 걸어둔 9000개의 어린이 배낭은 추모의 오브제를 넘어, 서로 다른 기억들이 충돌하는 공적 공간에서 국가가 지우려 한 이름들을 다시 공동체의 기억 속에 새겨 넣으려는 몸짓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역시 결국 이러한 기억의 축적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사회의 감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