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까지 핵 시대의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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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적이다', 영국 MCANW 반핵 포스터, 1980년대. Wellcome Collection, CC BY 4.0. '이것이 적이다', 영국 MCANW 반핵 포스터, 1980년대. Wellcome Collection, CC BY 4.0.

2026년 8월 6일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81주년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다시 핵발전에 기대려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히로시마와 후쿠시마의 기억은 더욱 불편하고 절박한 질문이 된다.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냉전 시기 1980년대 영국 핵무기 반대 의료인 캠페인(MCANW)이 제작한 포스터 ‘이것이 적이다’는 ‘적’의 얼굴을 인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 자체로 돌려놓았다.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이 이미지는 오늘날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핵무기는 위험하지만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이분법은 핵기술의 연속성과 폭력성을 가린다.

더 나아가 클레이 립스키는 핵의 공포가 소비되고 은폐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그는 2012년 사진 연작 ‘아토믹 오버룩’에서 해변이나 전망대 등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사진에 과거 핵실험의 버섯구름을 합성했다. 이 연작은 관광지의 장관이나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핵폭발이라는 재난 앞에서조차 구경꾼으로 남는 우리의 시선을 겨냥한다.

2015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출입 금지구역 내부에 설치된 프로젝트 ‘바람을 따라가지 마 Don’t Follow the Wind’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한다. 작품은 존재하지만 관객은 방사능 때문에 들어가 볼 수 없다. 전시는 열렸지만 관람할 수 없다. 이 역설은 핵 재난이 폭발의 순간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간임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두 작품은 재난 이후의 시간과 부재를 특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태린 사이먼의 ‘마지막 사진들’은 주민들이 피난 직전 남긴 일상의 사진을 모아 출입 금지구역 안의 태양광 서버에서 외부로 전송한다. 고이즈미 메이로의 ‘집’에서는 피난민이 언젠가 고향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나누게 될 가상의 대화가 빈집 안에서 반복된다. 사진과 목소리는 주민들이 떠난 자리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적이다’가 핵의 위험을 한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제시하고, ‘아토믹 오버룩’이 그 이미지의 스펙터클화를 비판한다면, ‘바람을 따라가지 마’는 보이지 않는 재난의 시간을 전시한다. 하나는 핵의 공포를 직접 경고하고, 하나는 그것을 소비하는 시선을 폭로하며, 다른 하나는 끝내 볼 수 없는 장소 앞에 관객을 세운다.

핵 재난은 물질과 몸, 장소와 기억 속에 남아 세대를 건너 지속된다. 사용후핵연료, 오염된 토양,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해체되지 않는 원자로 등, 핵발전은 재난의 가능성과 폐기물의 시간을 미래 세대에 넘기는 체제다. 예술은 바로 그 은폐를 걷어내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핵 재난을 지나간 한 장면과 화면 속 볼거리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핵발전을 다시 구원의 기술로 호명하는 오늘의 세계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핵 시대의 일부로 마주할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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