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리더십 부재 속 날아든 관세 청구서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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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경제부장

머뭇대다 ‘최악’ 받아 든 정부
기업은 각자도생 처량한 신세

‘맞불’ ‘협력’ 기조 먼저 정하고
협상 테이블 앉는 타국과 대비

차기 정부 들어서기 전 두 달
새 국제 질서 대비책 세워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탄핵의 강’을 건너야 했던 국민들은 동시에 미국발 무역 질서 재편을 불안한 심경으로 지켜봐야 했다. 리더십 공백이 커진 사이 정부가 어쩔 줄 모른 채 허둥대자, 기업들은 저마다 도생을 꾀해야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필품과 서비스 가격도 뛰기 시작하면서 서민 지갑도 닫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혔다고는 하나, 한국 경제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수출’이 ‘국가 생존’과 동의어인 한국에 미국이 던진 관세 폭탄의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둔 중국이나 침체 속 30년을 버틴 ‘저력’을 지닌 일본과는 압박의 강도 자체가 다르다.

몇몇 장면만 추려도 정부와 기업 모두에서 대응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법이나 자국법 조문 등에 전혀 개의치 않고 속전속결로 관세 부과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위기는 아니지만 협상 상대국에 대응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태세인데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경제부처가 머리를 맞댔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실무진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와 물밑 협상을 벌였다고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과 지난달, 두 차례 방미길에 올랐다. 하지만 탄핵 사태로 대통령 직무 정지가 된 탓에 정부는 트럼프와 전화통화 한 통 못한 채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최종적으로 지난 3일(한국 시간) 미국 정부는 한국에 25%라는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율을 매겼다. 앞으로 미국과의 개별 협상에 따라 결과는 바뀔 수 있다고 해도 정부의 ‘물밑 노력’은 얻어낸 것이 없다는 평가가 따른다. 정부 인사들은 “계엄으로 인한 리더십 공백” 탓을 했다.

기업들도 허둥대긴 마찬가지였다. 현대자동차는 선제적으로 미국 현지에 31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선 회장을 백악관까지 불러 ‘모범 사례’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한동안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가는 현대차 차량들은 25% 관세를 물고 미국차와 경쟁해야 한다. 미국에 모든 협조를 한 현대차가 미국 측으로부터 모종의 ‘감사 표시’를 받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상당한 관세 부과가 확정적인 반도체 부문 대표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시기 중국과 일본에 다가섰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곽노정SK하이닉스 사장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BMW, 메르세데스-벤츠, 퀄컴, 페덱스, 화이자 등 글로벌 CEO들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 자리였다. 시 주석이 “중국은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외국 기업인들에게 이상적이고 안전하며 유망한 투자처”라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두 기업은 미중 양국 눈치를 부지런히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대기업의 경우 ‘관세 25%를 무느냐’ ‘미국의 높은 생산 비용을 감당하느냐’ 사이에 선택지라도 있다. 대기업에 기대는 하청 중소·중견기업 처지는 더 암울하다. 해외 생산기지를 갖출 여력이 없어 기업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곳이 대다수다. 낮은 인건비를 찾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국에 있느니만 못하게 됐다.

가계 부문에는 머지 않아 인플레이션 폭탄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소비 여력마저 줄었는데, 물가상승 압박이 더해지는 형국이다.

조기 대선으로 두 달 후 새로운 리더십이 탄생하지만 그동안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정을 책임지는 불완전한 혼란기를 보내야 한다. 준비 안 된 대선이다 보니 새 대통령은 인선, 정부 조직 개편, 국가 전략 수립 등을 마치고 완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늦어지면 올해 하반기까지 우리 경제는 외부 위기에 노출된 채로 견디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관세 전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횡포’만이 아닌, 장기간 세계 무역을 이끌 새로운 질서가 정해지는 주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최강국 미국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첫발을 뗐지만 각국은 앞으로 자국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보호무역 전쟁에 속속 가세할 것이 틀림없다. 대응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미국의 ‘품’에 안길 자세고, 중국은 ‘마이 웨이’ 외에 방법이 없다.

한국 경제는 막대한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고 그에 따른 경제 침체를 감내해야 할 처지다. 서두른다고 능사는 아니니 차분히, 무엇보다 세심하게 우리의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마지막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차기 리더십이 들어서기까지 두 달간 온 지혜와 역량을 모아 가능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 경제 전쟁을 수행할 역량을 지닌 지도자를 뽑는 국민 지혜가 더 중요해진 시기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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