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당 태종의 거울, 새 부산시정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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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실패한 정치, 문화 공동화 초래
예술 생태계 지탱하는 행정 기대
건강한 목소리 듣는 열린 구조를

7월의 태양이 솟아오르며 새로운 부산시정의 출범을 알렸다. 격렬했던 선거의 소용돌이를 넘어, 시정을 이끌 전재수 시장은 이제 신중히 부산의 미래로 발걸음을 떼야 할 때다. 승리의 환호에서 한 걸음 물러나, 행정의 무게를 차분히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찬양의 목소리다. 시간이 언제나 승자 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선거의 시간은 짧지만, 시정의 시간은 길다. 그리고 문화의 시간은 그보다 더 오래 남는다.


권력이 교체된 직후의 정치는 종종 자기도취의 거울 앞에 선다. 공약집의 매끄러운 문장, 개발 조감도의 화려한 색채, 대중의 기대와 박수는 도시가 벌써 새로워진 듯한 환상을 낳는다. 그러나 문화는 찬란한 청사진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대형 축제와 국제행사, 외부 브랜드 유치와 거대한 시설이 도시의 얼굴을 잠시 빛나게 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지역 예술인의 창작 환경이 개선되고 시민의 문화적 소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문화도시는 건물의 높이나 행사의 규모로 증명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배제되어 온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조선 후기 문신 허목은 일찍이 〈악설〉에서 예술을 정치의 장식이 아니라, 잘 다스려진 세상의 질서를 비추는 거울로 보았다. 그에게 음악은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예민한 징후였다. 허목은 통치자가 오만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으면 음악은 원망과 혼탁으로 기울고, 공동체의 질서 또한 무너진다고 경계했다. 이는 오늘의 문화정책에도 유효하다. 문화예술은 권력의 성과를 포장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도시가 어떤 삶을 존중하는지를 증명하는 윤리적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을 행사의 배경음악이나 정치적 치장의 수단으로만 소비한다면,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룬 당 태종은 나라를 다스리며 세 가지 거울을 곁에 두었다. 첫 번째는 자기 매무새를 바로잡는 ‘구리거울’이다. 새 부산시정 역시 문화예술 정책의 겉모양보다 그 안의 질서부터 살펴야 한다. 눈에 띄는 전시성 사업을 서둘러 내세우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초 행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창작 지원의 기준, 예술인의 안전망, 공공 공연장의 운영 원칙, 문화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시민의 생활문화 접근권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문화도시가 공허한 수사로 전락하지 않게 된다. 문화도시는 거창한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절차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한 구조 속에서 그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부산이 지나온 과오와 도시정책의 한계를 냉정히 분별하는 ‘역사의 거울’ 또한 필요하다. 건물 중심의 문화 인프라 구축,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축제 행정, 중앙과 외부 브랜드의 이름값에 기대는 문화적 의존은 반복하지 말아야 할 과거의 그림자다.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 청년 예술인의 이탈과 문화 소비의 양극화가 중첩된 지금, 부산의 문화정책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정책에 머물 수 없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은 전임 시정을 비난하는 정쟁이 아니라, 도시가 축적하지 못한 시간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성찰이다. 역사의 거울을 잃어버린 정치는 실패를 답습하고, 그 대가는 결국 도시의 ‘문화적 공동화’로 돌아올 뿐이다.

새 시정의 성패는 ‘사람의 거울’에도 달려있다.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에서 참패하자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이번 출정을 막았을 것”이라 탄식했다. 위징은 군주의 실책을 서슴없이 간언하던 강직한 신하였다. 권력 곁에는 오랜 기간 주변을 맴돌았던 익숙한 인맥이 아니라, 현장의 언어를 알고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와 시민들이 있어야 한다. 시장은 이들의 비판적 조언을 형식적으로 듣는 데 그치지 말고, 정책 결정 구조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권력의 품격은 박수보다 반론을 견디는 힘에서 드러난다. 진짜 쇄신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고, 건강한 목소리가 제도화되는 열린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중앙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변방이 아니었다. 복천동의 독자적인 철기 문화가 그랬다. 피란수도 시절에는 전국의 예인들이 모여 한국 현대문화의 원형질을 발아시킨 도시였다. 바다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먼저 받아들이고, 부산의 방식으로 재창조했던 문화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새로 돛을 올린 전재수 시정은 바른 행정, 역사, 사람이라는 세 개의 거울 앞에 엄숙히 서야 한다. 새 부산시정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은 남의 이름을 빌린 위성도시가 아니라, 문화분권을 실현하고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며 세계로 나아가는 도시를 여는 것이다. 진정한 해양 문화 수도의 원년을 열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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