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동남권 순환철도, 또 전철 밟나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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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부울경 광역철도 닮은 예타
결과 발표 지연, 커진 우려
시민이 나서는 국가 사업
균형발전은 국가의 '책임'

“지방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시민들이 서명운동에 나서고 정치권은 정부를 찾아다니며 사업 필요성을 읍소해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입니까?”


최근 경남 양산의 한 기업가에게서 들은 푸념이다. 그는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이하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통과를 위해 직원들에게 서명지를 나눠주며 참여를 독려했다고 한다. 회사 경영에 전념해야 할 기업인마저 국가사업의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서명운동에 나서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양산을 시작으로 울산과 김해, 창원까지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통과를 촉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지자체와 정치권, 경제계도 한목소리로 예타 통과를 촉구한다. 정치권은 정부 여러 부처를 찾아 사업 필요성을 설명하고, 시민들은 서명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지방의회도 가세했다. 최근 경남도의회는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통과와 적기 개통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지난해에 이어 다시 발의했다. 예타의 조속한 통과는 물론 기본계획 수립과 안정적인 재원 확보까지 정부에 요구했다. 지방의회마저 같은 사업을 두고 거듭 정부에 건의해야 하는 현실은 국가균형발전 추진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불과 1년 전 부울경 광역철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당시 부울경 지역 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한국개발연구원을 잇달아 찾아 사업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경제계와 지역 언론도 힘을 보탰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사전타당성조사(사타)에서 사업성을 인정받았지만, 예타 과정에서 사업비가 크게 늘면서 경제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 발표도 1년 넘게 미뤄졌고, 노선 축소와 사업 무산설까지 나돌았다. 결국 경제성뿐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적 가치(?)가 반영되면서 예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부울경 광역철도에 이어 동남권 광역철도도 예타 문턱에 서 있다. 동남권 광역철도는 울산 KTX역과 양산 북정, 김해 진영을 연결하는 총연장 54.6km, 사업비 3조 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이다. 부산~양산 웅상~울산 광역철도와 부전~마산 복선전철, 양산도시철도를 잇는 마지막 순환축으로 ‘부울경 1시간 생활권’을 완성할 핵심 교통망이다.

특히 양산에는 의미가 크다. 오는 12월 양산도시철도가 개통하고, 앞으로 부울경 광역철도와 동남권 광역철도까지 연결되면 부산과 울산, 김해를 연결하는 동남권 광역 교통의 중심축으로 도약하게 된다. 산업과 물류, 관광은 물론 정주 여건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부울경은 하나의 생활권으로 재편되고 있다. 시민들은 도시 경계를 넘어 출퇴근하고 기업들은 행정구역이 아닌 교통 접근성을 기준으로 투자와 입지를 결정한다. 반면 철도망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광역철도는 주민 편의를 넘어 지역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 기반 시설이다.

그러나 상황은 또다시 부울경 광역철도를 떠올리게 한다. 동남권 광역철도 역시 사타에서 부울경 광역철도보다 높은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사비 상승 등으로 예타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반기로 예정됐던 결과 발표도 연말로 미뤄졌다. 결국 시민들은 서명에 나서고 지자체는 캠페인을 벌인다. 지방의회는 거듭 정부에 건의하고 정치권은 또다시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부울경 광역철도가 겪었던 과정이 동남권 광역철도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예타 제도다. 경제성만으로 국가 기반 시설을 평가한다면 수도권은 더 성장하고 지방은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세운 ‘5극 3특’ 국가균형발전도 이를 뒷받침할 광역 교통망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동남권 광역철도는 단순히 철도를 놓는 사업이 아니다. 부울경 800만 시도민을 하나의 생활권과 경제권으로 연결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드는 국가 기간 교통망이다.

예타는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과제는 부울경 광역철도 때처럼 시민들이 나서고 지방의회가 건의하고, 정치권이 정부를 설득해야만 국가사업이 추진되는 구조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역 발전은 정부의 ‘배려’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정부는 답해야 한다. 동남권 광역철도 역시 부울경 광역철도의 전철을 밟게 할 것인가. 국가균형발전은 지역의 절박한 호소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 있는 결정으로 완성된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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