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마지막 기회
성장억제정책과 IT 전환에 경제 활력 잃어
3대 메가 프로젝트·지방 주도 성장은 기회
도시공간 전략과 동남권 공동 대응 힘써야
부산 경제를 말할 때 결정적인 두 가지 장면이 있다. 1982년 정부의 대도시 성장억제정책과 1990년대 말 시작된 디지털 대전환이다. 처음에는 도시 성장의 흐름이 꺾였고, 두 번째는 악순환에 빠져 침체가 심화됐다.
부산은 박정희 시대에 수출 주도형 산업화 전략에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러다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서울과 함께 성장관리도시로 지정됐다. 많은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이고 신규 공장이나 창업 기업에는 중과세가 부과됐다. 제조업 기업들이 부산을 떠나 역외로 이전했다. 대기업 없는 부산의 시작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정보화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등장했고, 정부 정책 방향과 민간 투자 모두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중심에서 디지털과 벤처산업 육성으로 이동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거치며 서울 개발을 억제하는 정책은 고삐가 풀린 상태였다. IT 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자본을 따라 수도권에 쏠렸다. 부산은 첨단산업을 키우지도 데려오지도 못했다.
두 장면 모두 중앙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제대로 계획하고 이행하지 못한 책임이 크지만, 지방정부도 산업과 정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기업 생태계와 인재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투자나 연구개발보다 전통 서비스업에만 의존했고, 기존 제조업을 혁신하고 사업을 재편하는 데도 더뎠다. 그 결과 부산은 경제 성장의 주도권을 놓쳤고, 기업과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 세 번째 장면이 펼쳐질 참이다.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정부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의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국가 발전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방 주도 성장이라는 방법론도 함께 내놓고 호남권, 충청권, 영남권에서 보고회도 열었다. 권역별로 주력 분야에서 대기업 투자와 정부 집중 지원을 결합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권역별로 투자 규모를 줄세우는 건 의미 없지만, 영남권은 기존 사업을 재탕하는 수준이고 구체성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당장 원전 추가 건설을 말하는 건 우려스럽다. 이미 원전 10기가 운영 또는 계획 중인 동남권에 원전을 더 지을 수 있다는 당국자 발언이 어떤 논의나 합의 과정도 없이 흘러나온다. 이미 위험을 감수하면서 원전을 이고 사는 지역 주민들은 아랑곳없다.
그럼에도 세 번째 장면을 부산 경제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지방정부가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하고 실행을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영남권 312조 원, 도합 1600조 원이라는 선뜻 와닿지 않는 목표가 아니라 부산시의 치밀한 전략과 적극적인 노력이 ‘3대 메가 프로젝트’와 ‘지방 주도 성장’의 과실을 결정한다.
부산시는 대규모 투자를 마중물 삼아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기존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과 다양한 분야의 부품·기자재산업, 그리고 숙련된 현장 인력들의 암묵지는 AI가 디지털 공간을 넘어 물리적 환경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구현하는 데 최적의 자산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첨단사업 전략과 도시공간 전략은 함께 가야 한다. 국토의 균형발전만큼이나 부산의 균형발전도 시급하다. 핵심 공약에 포함된 권역별 AI 전략은 기대할 만하다. 북항과 원도심은 글로벌 AI 혁신 거점, 서부산과 에코델타시티는 제조업 AX와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거점, 센텀지구를 포함한 동부산은 문화콘텐츠 AI 거점으로 조성하는 구상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동남권 공동 대응은 필수다. 동남권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성장축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부산과 울산, 경남이 서로 경쟁해서는 답이 없다. 부·울·경은 조선과 우주항공 분야는 물론이고, 국가전략기술 지정이 유력한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도 이미 산업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부터 힘을 모아야 같이 강해질 수 있다.
부산은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앞서 이미 해양수산부와 HMM 이전이라는 상징적인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부산시장’ 전재수의 시정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시는 중앙정부의 ‘지방 주도 성장’이 기득권을 가진 수도권의 반발과 재정을 가진 정부 부처의 어깃장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더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고 때로는 맞서야 한다.
세 번째 장면은 부산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고, 청년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디지털 대전환이 그랬듯 AI 대전환의 흐름은 가차가 없고, 그 파급력은 더욱 클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최혜규 경제부 부장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