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밤이 켜졌다
이문재(1959~)
보름달 떴다고
나가서 보름달 보라고
남쪽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 들고 밖으로 나갔더니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 밤하늘
샛노란 밤의 눈동자
보름달 보이지?
그래, 보여!
그렇구나, 우리 눈빛이
지금 저 달에서 만나는 거로구나
푹푹 찌는 열대야 심야
밤이 켜졌다, 밤이 꺼졌다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2026)
같은 대상,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한 시공간에 있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아무리 멀리 있다 할지라도 거기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달을 같이 보자고 전화하는 친구와, 바라보고 있는 달에서 친구를 만나는 시인과, 이 시를 읽고 있는 사람이 밤의 눈동자 속에서 함께 만나고 있다는 것, 열대야보다 힘 있는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이 깨달음은 점점 소원해지고 있는 정서적 합일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달이 있어 어둡지 않은 밤, 마음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인 것입니다. 오늘 밤하늘 같이 바라보자 전화하는 친구가 되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