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소중함과 불안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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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
경쟁에서 살아남게 해야 한다는 강박
소중함과 불안함 사이의 이중 잣대

예능계의 인류학자로 일컬어지는 코미디언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을 가끔 본다.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디테일에 빠져들어 피식피식 웃다보면 어느 순간 현실의 희비극이 겹쳐진다. 최근에는 유치원 교사의 고된 현실에 대한 영상이 이슈였다. 물론 대사나 연기에 극적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상황 자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유치원 교사로 분한 그녀가 야외 수업 중 아이들에게 달리기를 시키는데, 도착점에 가장 먼저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두 번째로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결국 “모두가 1등!”이라며 아이들에게 칭찬 세례를 퍼붓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원에서는요, 학부모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정서 돌봄이에요. 그래서 정서 보호 차원에서, 승패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우승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요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경기의 승패를 가르지 않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점수나 등수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고 경쟁을 최소화하며 모두가 잘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과거의 지나친 경쟁적 분위기와 서열적 평가로 인한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안겨 주지 않고 모두의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의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 경기에서 패배를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정서를 위한 일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달리기에서 등수를 감추고 모두가 1등이라고 말해주면 순간적인 속상함이나 좌절감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도, 부정적 감정을 견뎌내며 건강하게 털어내는 경험도 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생에서 커다란 역경이나 비극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 자체에 압도되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오히려 배우고 성장하며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겪어가며 이를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키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은 실패나 패배의 경험 없이 무균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좌절이 입시나 취업, 혹은 중요한 인간관계에서의 문제 등 중대한 일들이라면 아이들은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힘을 기르기도 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아이들의 정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운동 경기에서의 패배 같은 작은 좌절의 경험마저 회피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도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처럼 공교육에서는 비교 자체를 터부시하면서 사교육에서는 정반대의 논리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레벨 테스트로 반이 나뉘고, 점수에 따라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학부모들은 이와 같은 구조를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경쟁적 분위기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이는 위선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밀려날까봐 두려운 것이고, 그 밀려남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시장 경쟁에서는 살아남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한국의 부모들에게 이중 잣대를 가지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1등이다.’라는 현실 부정도, 미래의 경쟁에서 어떻게든 패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물밑 작전도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경쟁과 실패 경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승패와 무관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는 능력, 그런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달리기에서 등수를 지우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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