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동굴에서 동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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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동굴 아닌 것이 없다
자궁이라는 동굴에서 태어나
무덤이라는 동굴로 돌아간다

선뜻 동굴로 가는 길은 나오지 않는다. 자신 있게 찾을 줄만 알았는데 이리저리 곱창 골목만 배회하고 있다. 한때 인기 있던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던 덕분인지 어느 곱창집 간판에도 그 유명한 영화 제목이 당당히 얹혀 있다. 처음 왔을 때의 섬뜩한 기운과 습하고 어두운 그늘과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물소리조차 거대한 소음으로 들렸던 분위기가 남아 있을까. 구부러진 곱창 골목길과 주택 사이에 자그마한 산언덕이 끼어 있었으며 동굴 인근 몇 발자국 전부터 서늘한 기운이 휘돌았는데.

움집 이전에 인간이 거처한 최초의 집은 동굴이었을 터. 터널 같은 깜깜한 세상이 이어지던 원시시대에도 인간은 굴을 파고 그곳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아 길렀으리라. 원시인들에게 동굴은 단테의 지옥편이 상징하는 것처럼 천벌을 받은 인간이나 사탄이 머무르는 부정적인 장소가 아닐 것이며, 내가 기억하는 고립과 고독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며, 결코 괴괴하거나 침침한 터널로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몽환의 장소, 아침이면 멀리서 하얀 섬광이 들어오고 밤이면 흥건히 달빛이 내려앉는 자리. 계절마다 꽃바람과 풀 향이 골바람을 타고 와서 온몸을 적시는 곳. 그들에게 동굴은 아늑하고 안전한, 그리고 창조의 신비가 시작되는 가장 거룩한 성소였을 테다.

세계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도 동굴이 등장하지 않는가. 우리의 건국신화에도 입굴백일의 주문을 받고 곰이 인고의 시간을 보낸 곳이며, 부안군의 적벽강 절벽 위에서 칠산바다를 지킨다는 대모신 개양할미 역시 동굴에서 나왔고, 원효가 해골 물을 마신 곳도 바위굴로 전해진다. 그런데 나는 왜 그동안 동굴 속이 눅눅하고 어둡다고만 생각한 것일까. 웨딩아치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꽃 터널과 나무 터널도 많았는데. 벚꽃 터널, 동백 터널, 장미 터널, 이팝꽃 터널도 걸어보았고 산비탈의 무성한 녹음 터널도 올려보았으며, 단풍 터널의 계절을 지나 설국의 황홀한 눈 터널도 만나보았다. 오랫동안 갇히고 싶은, 벗어나고 싶지 않은 눈부신 동굴들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동굴 아닌 것이 없다. 주꾸미는 소라껍질 동굴에서 살고, 꺽지와 버들치는 강이라는 수굴에서, 문어와 개복치는 해저의 굴에서 숨 쉬며, 지렁이는 땅굴을 파고, 펭귄은 모래 굴 속에서, 참새와 개똥지빠귀는 허공이라는 굴에 산다. 직장인들은 사무실이라는 동굴 문을 열고, 드라이버들은 승용차라는 굴속으로, 반지하 세입자들은 폭우도 막지 못하는 지하동굴에 파묻힌다. 럭키아파트, 벽산아파트, 푸르지오, 무슨 무슨 팰리스에 사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엘리베이터라는 수직 동굴에 갇혔다가, 현관문을 지나 중문을 닫고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앉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자궁이라는 동굴에서 태어나서 무덤이라는 동굴로 돌아간다. 물론 일부는 불의 동굴을 거쳐 수목이나 심해 동굴로 침잠하지만, 한번 갇힌 죽음이라는 터널을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내 안의 동굴은 어떠한가. 안전한지, 혹시 침수나 낙석의 위험은 없는지. 굴을 파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깊게 만드는 일인 것을. 아직도 나는 내 굴의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은 섬광 같은 푸른 빛에 눈을 떨기도 하고 정신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맑은 종소리 같은 것을 듣기도 한다. 그것이 헛것이나 환청이라 할지라도 내가 존재하는 한 내 굴을 보듬을 수밖에 없다.

주위가 서늘해졌다. 분명 동굴이다. 그때처럼 입구는 여전히 자물쇠로 채워졌으니 깨금발하고 동굴 속을 들여다본다. 검은 동굴 하나가 구불구불 몸을 펼쳐낸다. 다행히 떨어지는 물소리 청량하다.

김정화, 수필가. 부산일보DB 김정화, 수필가.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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