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빙글빙글 옥상 아마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임성용 소설가

소설가 두 마리 고양이 일곱 마리
너는 토마토가 되어라
언젠가 우리도 아마존이 되겠지

임성용 소설가 임성용 소설가

어느 날, 소설가 두 마리가 만나 같이 살게 되었다. 소설가 한 마리가 시집오면서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다른 소설가 한 마리도 장가오면서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리하여, 소설가 두 마리와 늙은 고양이 두 마리가 같이 살게 되었다.


몇 해 지나, 그 네 마리는 아파트 생활을 접고 산 아래 주택으로 이사했다. 주택으로 이사 온 기념으로 옥상에 밭을 만들었다. 물탱크 잘라 만들고 시멘트 벽돌 쌓아 만들고 자잘한 화분을 모아 만들었다. 소설가 한 마리는 태생이 시골이라, 풀 키우는 흉내는 얼추 낼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첫해에 마사토에 배양토를 섞어 만든 밭은 도통 땅심이 없었다. 부랴부랴 시골 사는 지인 밭에 가서 흙 몇 부대 파오고, 한적한 국도변의 빈 땅에서 몇 부대 퍼와서 섞었다. 음식 찌꺼기와 쌀뜨물도 계속 넣었다. 한 해 지나, 흙 따라온 지렁이가 많이 늘고 흙에 찰기가 생겼다. 찰기가 생기자 풀이 잘 자라기 시작했다.

그해 봄부터 볕 드는 자리 따라 모종을 심었다. 꽃샘추위를 견디는 감자, 상추, 케일, 쑥갓, 방풍 심고, 보름 지나 청명(淸明) 즈음에 토마토와 고추, 들깨, 가지 심었다. 다시 보름 지나 곡우(穀雨)쯤에 오이와 호박 바질 방아 심고, 입하(立夏) 즈음 수박 심으면 옥상이 가득 찼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사실이지만, 가끔은 안 심어도 났다. 흙 따라 바람 따라 굴러온 결명자가 자라고 댑싸리가 자랐다. 도마뱀이 자라고 박각시나방 호랑나비 애벌레가 자랐다. 자라면 자라게 두었다.

풀들이 잘 자라기 시작하자, 식구가 늘었다. 옥상 댁이라고, 동네에서 인기가 채털리 부인(1928년 작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주인공) 급이었던 암컷 고양이가 있었다. 그 옥상 댁이 두 해에 걸쳐 옥상 밭에 새끼를 심어 놓고 사라졌다. 새끼들은 밭에서 똥 누고 오줌 누다가 자리 잡았다. 첫해에 거둔 놈들이 세 놈이다. 둘째 해에 거둔 놈들이 두 놈이다. 그리하여, 소설가 두 마리와 늙고 젊은 고양이 일곱 마리가 같이 살게 되었다. 그 아홉 마리가 같이 살게 되자, 바람 잘 날이 없기 시작했다.

젊은 고양이 다섯 마리가 무럭무럭 자라나자, 사냥이 시작되었다. 뒷산 가서 개구리 들쥐 새 도마뱀 매미 나비 나방 풍뎅이 잠자리 잡아 왔다. 죽여서 잡아 오고 살려서도 잡아 왔다. 완전 아마존이다. 다리 떼어낸 메뚜기같이, 꼬리 떼어낸 잠자리같이, 함부로 먹고 함부로 먹혔다. 생명을 먹고 가지고 놀고 선물도 했다.

그때마다 소설가 두 마리는 난감했다. 산 것들은 뒷산으로 돌려보내고, 죽은 것들은 옥상 밭에 심었다. 그냥 심기 미안해서 제문처럼 웅얼웅얼 읊으며 심었다. 너는 토마토가 되어라. 너는 오디가, 대추가, 호박이, 다래가, 살구나무가, 복숭아나무가, 유자나무가 되어라. 그러면 신기하게도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흙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소설가 두 마리가 먹었다. 토마토를 따 먹으며, 오디를 대추를 호박을 다래를 먹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도 아마존이 되겠지. 다리 떨어진 메뚜기같이 꼬리 떨어진 도마뱀같이 좋은 거름 되어야지. 봄에는 보리가 되어야지, 연초록 들판으로 바람 따라 흔들거려야지. 오월에는 잘 생긴 오동나무 되어야지. 보라색 꽃도 피워야지. 여름엔 수박이 되어야지. 자외선 듬뿍 먹고 달달하게 익어야지. 가을엔 감나무 되어야지. 가지 끝에 달린 빨간 홍시 되어야지. 그 홍시 먹은 까치 되어 깍깍거리며 가을 하늘 날아 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지구가 빙글빙글 돌아 다음 계절로 간다. 매년 간다. 뽀글뽀글 파마에 동그란 선글라스 쓰고 빙글빙글 노래하던 나미(1967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한 대중가요 가수) 누님처럼 간다.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