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생맥주 한 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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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기다림과 충족감이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서정아 소설가 서정아 소설가

요즘 같은 날씨에는 한낮에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흐르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정수리에선 압력밥솥의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에어컨의 시원한 냉기가 절실하다. 당장 실내로 들어갈 수 없을 경우 주위에 나무 그늘 하나라도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차가운 잔에 가득 담긴 생맥주 한 잔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잔은 손잡이가 없이 슬림한 형태여서 내 손바닥으로 감싸쥘 수 있는 것이 좋고, 맥주를 따르기 직전까지 냉장고에 넣어놓아서 잔의 겉면에 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어야 하며, 맥주의 윗면에는 생크림을 얹은 것처럼 부드럽고 하얀 거품이 적당한 두께로 올라가 있어야 한다. 회식이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가끔 술을 마실 일이 생기기는 하지만 병맥주는 생맥주에 비해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술자리가 이어질 경우 2차로 생맥주집에 가기도 하는데, 그 때는 이미 생맥주에 대한 갈급함이 가라앉았을 시점이라 그렇게까지 감동이 없다.

한여름에 내가 갈망하는 술이란, 불볕더위가 나의 온 몸을 습격한 최고조의 순간에 최상의 시원함으로 무장한 생맥주를 안주 없이 단숨에 들이키는 것이다. 한낮에 길을 걷다 지치면 별 고민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수혈하는 것처럼 아이스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해 그 자리에서 빠르게 마시고 힘을 내서 목적지까지 즐겁게 당도한다는 상상. 숙취도 후회도 없이 깔끔하고 정갈한 한 잔일 것이다. 물론 얼굴은 더 빨갛게 달아오르겠지만.

이렇게 상상을 하고 문장으로 묘사를 하다 보니, 시원한 실내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도 생맥주에 대한 갈망이 샘솟는다. 어디서 보니까 갈망은 중독이나 의존의 증거라던데. 투명한 맥주잔을 통해 그대로 보이는 연갈색 액체 속 동그란 탄산방울들, 첫 한 모금을 들이켰을 때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갑고 청량한 느낌, 그런 감각의 기억들이 갈망을 부추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갈망은 술이라는 물질 자체에 대한 걸까, 아니면 한여름 생맥주를 마시던 순간의 경험과 감각에 대한 그리움일까. 물론 물질이 있어야 경험과 감각도 생기는 것이니 그 둘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과거 어떤 경험의 기쁨, 그 좋았던 순간의 신체적 감각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그 순간의 재현을 기대하며 고조되는 감정, 그것을 간단히 말해버리자면 중독이나 의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가. 물론 그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의존이라는 말에는 부정적 평가가 내포되어 있는 느낌이지만 실상 우리는 때때로 어딘가에 기대어 살아가지 않나. 누군가는 생맥주 한 잔에, 누군가는 커피 한 잔에, 또 누군가는 책에, 운동에, 종교에, 사람에 기대어 고된 하루를 버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싶기까지 하다. 의존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지,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는, 즉 사유의 회피 아닐까.

우리는 어떤 것을 반복적으로 원하고, 그 욕망과 해소의 충족감 속에서 작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것을 단순히 ‘의존’이라는 어휘 하나로만 뭉뚱그릴 수는 없다. 욕망과 기다림과 충족감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듣고 싶고, 바쁜 와중에도 책을 다시 꺼내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기쁨의 순간을 다시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 중요한 것은 반복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반복을 선택하는 태도에 있다. 그러니 시원한 생맥주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 기쁨에 잠시 기댄다면 이 뜨거운 여름 더위도 제법 견뎌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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