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전남광주와 부산
이우영 서울정치부 기자
전남광주 원도심을 서울 성수동보다 좋아한다. 한옥과 서양식 건축물이 공존하는 남구 양림동엔 고즈넉한 카페와 미술관 등이 꽤 많다. 선교사 사택이 보이는 한 카페는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여기에 인접한 동구 동명동도 색깔이 뚜렷하다. 젊은 감각이 묻어난 식당과 술집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도심에 멋이 가득한 전남광주지만, 수도권보다 부족한 부분은 명확하다. 기업은 턱없이 적고, 산업 생태계는 열악하고, 젊은 세대는 떠난다. 통합특별시로 거듭나도 당장 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동차 공장에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봐도 쇠퇴하는 도시에서 탈피하긴 역부족이었다. ‘제2의 도시’ 부산 등 여타 비수도권 지역처럼 소멸에 대비할 처지에 놓인 게 현실이다.
지난달 정부와 대기업이 제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지역의 암울한 현실에 큰 희망을 던졌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산업 육성을 위해 비수도권에 수천조 원대 투자를 예고했다. 특히 전남광주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80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 4기를 짓기로 했다. 실현만 되면 지역 경제와 인프라 강화로 일자리는 늘고 청년 유출은 줄어들 테다. 특색 있는 원도심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질 거라 확신한다.
정부는 이번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호남권 등 특정 지역에 ‘장밋빛 청사진’을 내밀었다. 망국적 ‘수도권 일극주의’에 균열을 내고, 실질적 ‘지역 균형 발전’ 의지를 담은 듯하다. 정부가 ‘5극 3특’ 중 호남권에 힘을 주려는 뜻이라면 어떻게든 확실히 성장 궤도에 올리는 게 필요하다. 다극 체제로 나아가려면 한 권역에 특정 산업을 집중 투자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부산·울산·경남(PK) 등 다른 지역에도 그만큼 신경을 쏟을진 미지수다. 5극 중 수도권을 제외한 동남권·중부권·대경권과 3특인 제주·강원·전북에도 호남권만큼 대전환을 이끌 획기적 방안을 제시할진 의문이다. 당장 ‘3대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PK 등에선 기존 정책을 재탕하거나 지원 규모만 늘렸단 비판이 나오곤 했다. 호남권 신규 지원을 발표하며 다른 지역은 ‘구색 갖추기’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PK는 제대로 된 투자를 받는다면 지역 균형 발전을 선도할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인구가 320만여 명인 부산을 중심으로 PK가 체계적으로 성장하면 그나마 수도권에 대응할 축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특히 “마지막 가능성이 남은 지역”이란 진단도 있다. 조선·자동차 등 기존 산업을 기반으로 울산·경남과 부산이 시너지를 내면 ‘서울-경기도’가 빨아들인 자본과 인재를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단 기대가 크다.
부산은 그동안 추진한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마저 단번에 동력을 상실한 실정이다. 6·3 지방선거 전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위한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언급한 직후였다. 특별법을 재설계한다던 여당은 발을 뺀 듯한 모습이다. 글로벌법에 ‘할 수 있다’는 문구로나마 새 길을 개척하려던 부산의 꿈은 멈춘 상태다.
정부·여당은 일단 전남광주가 중심인 메가프로젝트라도 차질없이 수행하는 모습을 증명해야 할 테다. 무엇보다 PK 등 다른 지역에 ‘5극 3특’ 시대에 걸맞은 가시적 대안을 내놓는지도 지켜보려 한다. 각종 선거와 수도권 저항 등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지역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면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