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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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 편집부 차장

최근 나홍진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선보인 신작 ‘호프’(HOPE)가 던진 화두는 묵직하다. 바로 ‘폭력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이다. 나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나온 이야기”라며, 전작 ‘곡성’이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틀 안에서 폭력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외계인과 우주라는 미지의 존재를 통해 그 근원을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 세계와 인문학적 시선을 교차해 보면, 그 답은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불안’과 연결되지 않을까?

인간은 늘 불완전하다. 거대한 자연과 알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미르차 엘리아데는 그의 저서 ‘신화와 현실’에서 인간은 초자연적인 존재 앞에서 느끼는 근원적 공포와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종교적 절대성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나 감독의 전작 ‘곡성’은 이러한 인간의 취약성을 노골적으로 파고든다. 마을 사람들은 산속에 사는 외지인이라는 ‘불확실한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원시적인 무속 신앙을 끌어들이고, 자신들만의 편협한 잣대로 상대를 악마화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결국 폭력으로 폭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도 닮아 있다.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이웃 ‘부 래들리’의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 주민들은 스스로 불안해하고 억측을 키우며, 끝내 뜬금없는 괴담과 거짓을 만들어내 상대를 고립시킨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이해의 손을 내밀기보다 먼저 방어기제로서의 폭력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철학자 한병철이 저서 ‘폭력의 위상학’에서 밝힌 통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폭력이란 본질적으로 ‘이질성’(나와 완전히 다른 성질이나 존재)과 ‘타자성’(나와 구별되는 외부의 힘)에 대한 거부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 혹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극심한 내면적 불안을 겪는다. 그리고 그 불안과 걱정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때,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자를 파괴하려는 공격성을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이 폭력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무기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비극은 우리의 현실과 일상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사회 구조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 원인을 직시하고 연대하여 해결하려 하기보다, 내 불안을 촉발한 ‘만만한 타자’를 찾아내 분노를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소외된 이웃, 이주민, 직장 동료, 가족, 자신과 신념이 다른 상대방 등을 향한 혐오와 묻지마 폭력은 결국 내면의 불안이 임계점을 넘어 터져 나온 일그러진 방어기제다.

결국 폭력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 그리고 미지의 것을 통제하려는 과도한 불안에서 싹튼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 안의 불안을 응시하는 용기, 그리고 내가 모르는 타자를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성숙함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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