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 교육의 '벡터'를 탈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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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전 서울 신림중학교 교장 현 고등학교 통합과학 교사

최근 과학 탐구 수업 시간, 기괴한 풍경을 목격했다. 주제 발표를 준비한 두 팀의 논리 구조와 문장, 심지어 오타의 위치까지 판박이었다. 생성형 A(인공지능)I가 뱉어낸 결괏값을 여과 없이 옮겨 적은 탓이다. 앞 조의 발표가 끝나자 뒷 조 아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알고리즘이 제조한 ‘쌍둥이 정답’ 앞에서 개별 사유는 질식했고, 교실은 무력감에 점령당했다.

학교 현장에는 사유(思惟)의 통제권을 헌납하는 ‘인지적 파산’의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IT 비평가 ‘니콜라스 카’가 경고했듯, 디지털 기기는 지성의 확장이 아닌 ‘지적 외주화’를 통해 사유 근육을 퇴화시킨다. 편리함이라는 독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클릭 한 번에 정지되는 데이터 파편으로 전락시켰다.

필자는 수업을 멈추고 스마트 패드를 가방에 넣게 했다. 빈 종이에 투박한 자기 문장을 채우는 ‘아날로그적 응전’을 선택한 것이다. 알고리즘의 앵무새를 더는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8년 AI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앞두고 수조 원을 투입한다지만, 시급한 것은 기계에 저당 잡힌 생각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일이다. 특히 서울 중심의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표준이 된다면, 부산의 아이들은 고유한 서사를 잃고 획일화된 사고 체계에 강제 정렬될 위험이 크다. 이는 지역 정체성과 인적 자산이 증발하는 문명사적 위기다.

이러한 사유의 힘은 오직 인간적 관계라는 정서적 토대 위에서만 길러진다. 물리학적으로 외부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은 고립계(Isolated System)의 엔트로피는 필연적으로 파국적 무질서를 향한다. 공감과 지지라는 인간적 에너지가 사라진 디지털 교실에서 아이들의 내면이 붕괴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계가 교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술 만능주의적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정작 필요한 투자는 기기 보급이 아니라,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내면의 무질서를 정돈할 ‘공감의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교육 패러다임 역시 숫자만 나타내는 ‘스칼라(Scalar)’적 성취에서, 방향이 살아있는 ‘벡터(Vector)’적 지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단순히 속력(스칼라)만 높이는 줄서기는 AI 시대에 가장 비효율적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항로를 개척해 온 부산의 생존력은 알고리즘에 갇힐 수 없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역동성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독보적인 벡터다. 부산의 인재들이 서울을 향한 ‘지적 해바라기’를 넘어 세계로 자기 궤적을 그리게 하는 것이 지역 소멸 시대의 본질적 전략이다.

AI 시대, 교육의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들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지 않도록, 결정론적 알고리즘의 틈새에서 창의적인 불확정성의 질문을 던지는 주체로 키우는 것이다. 생각의 주인으로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 수익률(ROI)이다. 비에 젖지 않는 거대한 바다처럼, 기계의 예속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궤적을 그려내는 ‘사유의 주인’들, 이들이 개척할 당당한 항로야말로 부산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최후의 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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