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피해자에게 뭘 더 하라고 하지 말라
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피해자의 고립·소외 불러서야
수사·기소 분리 방향 옳더라도
공백 있다면 메울 방안 찾아야
피해자 구제 빠진 형사 사법에
개혁이라는 이름 붙이지 말길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자리에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해고노동자의 부인은 담담히 답했다.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김애란 작가는 이 대답을 듣고, 자신이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녀의 말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발견한다. 세상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서 철저히 혼자 버려진 느낌을 받을 때, 그 시간에 잠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라고 했다.
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고립감은 이와 비슷했다. 피해 자체가 세상이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일상의 회복과 세상과의 연결이 아닌, 더 큰 고립감 속으로 피해자를 던져놓는 것일 때가 있다. 젠더폭력처럼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때문에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 방식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피해자에게 더 노력하라는 말을 하면서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사건의 현장에서 고민되어야 할 보완수사권 존폐 문제가 국회로 넘어가 개혁의 언어가 된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논란 끝에 더불어민주당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대신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중수청에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피해자 측의 이의신청권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피해자의 이의제기권 신설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국 피해자가 더 애쓰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당연히 수긍할 수 있다. 검찰이 독점기소권을 악용해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설령 분리의 방향이 옳다 해도,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그간 법조계와 인권단체에서는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범죄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직접 나서서 보완수사권이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로서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인과 약자 변호에 힘써 온 김예원 변호사 역시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건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지금의 방침은 그 공백을 피해자 본인의 노력으로 메우라는 것에 가깝다.
이미 여성단체와 법조인들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진행된 지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과 부실 수사 문제가 더 심화했다고 본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이 경찰에 집중되었으나, 인력과 조직 정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고 수사 역량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경찰의 수사 역량 자체는 결코 낮지 않다. 문제는 수사 역량이 아니라 사법 시스템이며, 보완수사권은 그러한 맥락에서 범죄 피해 수사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제공하는 구조적 수단이 되어 왔다. 피해자의 접근권과 절차적 참여권 보장은 사법시스템 개혁의 핵심적인 사안이지만 이것이 수사 오류의 공백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가정폭력 피해자 중 0.8%, 성폭력 피해자 중 1.8%만이 신고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려한다. 피해자가 겨우 용기를 내 신고하는 것만으로 수사에 커다란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용기 다음에 또 다른 절차적 부담을 얹는 것이 지금의 개편안이다. 이의제기권을 신설하여 마치 권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원래 있어야 했던 보호를 피해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경찰 단계의 이의신청권조차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후의 수사에서도 이의를 제기해야 수사가 겨우 진척되는 구조라면 국가는 형사사법 피해를 구제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애초 형사사법 시스템은 무고하게 피해를 본 이들을 위한 것이다. 형사사법 개혁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거대한 원칙의 문제이기 이전에, 피해자 구제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하는 문제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은 결국 국가의 형사사법 체계가 피해자 구제에 얼마나 적절한지의 문제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니 제발 피해자보고 뭘 더 하라고 하지 마라. 피해자가 더 애쓰고 뭔가를 더 해야만 바뀌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그것에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