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철의 사리 분별] 국가 책무 된 학생 독서 교육
책 외면 늘면서 문해력 저하 등 부작용
정부 '독서 활성화 책임' 법에 명시키로
정교한 정책 구상·전담 인력 확보 과제
시대 변화 감안 AI 등 활용 융합 교육을
독서는 개인 행복·국가 경쟁력과 직결
향후 전 국민 지원 프로젝트로 확대하길
인류는 과거 대부분 시간을 책 없이 보냈다. 인류 역사는 대략 350만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책의 역사는 50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책은 문명사적으로 볼 때 엄청난 발명품이다. 책을 만들려면 기록할 수 있는 문자는 물론 책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도 있어야 한다. 인류가 초기 문명을 일군 시점에 도달해서야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식을 말로 전달하던 인류가 굳이 책을 발명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문명을 이루고 집단 규모가 커지면서 구전만으로는 갈수록 방대해지는 정보를 전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초기의 책은 인간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단순한 ‘외부 기억장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간이 지나 각종 궁금증에 대한 탐구 활동이 이어지면서 책은 문명사회가 축적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힘을 가진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처럼 놀라운 산업과 지식의 시대에 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책이 단순한 지식 전달 수단이 아니라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이유일까. 독서는 궁극적으로 세상과 인간의 작동 원리와 방식을 탐구하는 행위이다. 탐구 범위도 과거와 현재, 미래는 물론 인간 내면 등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와 너, 우리가 누구인지 등 원초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자신과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등의 통찰도 얻는다. 즉, 독서는 단편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을 확장시켜 인간을 성장시키는 고도의 지적 활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심연을 응시, 우울과 불안 등에서 벗어나는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돕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책은 외면받고 있다. 1년 동안 일반도서를 한 권 이상 읽은 사람 비율을 나타내는 연간 독서율이 2025년 성인의 경우 38.5%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청소년층의 독서 외면에 따른 문해력 부족도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학생들이 긴 문장을 끝까지 읽지 못한다거나 어휘력이 부족하고 은유 등 문학적인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등의 지적이 이어진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학교 독서 교육 활성화 방안’을 통해 교육기본법을 개정해 독서 교육을 통한 문해력 향상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명시키로 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국가가 책임지고 모든 학생에 대한 체계적 독서 교육에 나서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독서 교육을 전 과목으로 확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책 읽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전자책 무료 대여 지원, 독서 이력 학교생활기록부 입력, 학교 도서관 전담 인력 증원 등도 추진한다.
독서 교육을 국가 책무로 규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무척 바람직하다. 하지만 독서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책과 담을 쌓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포기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학생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하려면 한층 정교한 정책 구상과 노력이 필요하다. 독서를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교사도 더 많아져야 한다. 호기심을 일깨워 자발적 독서에 나서도록 하는 세심한 멘토링이 요구된다. 특히 시대 변화를 감안해 AI(인공지능)와 유튜브, 인터넷 등을 보조 도구로 적극 활용하는 새로운 융합식 독서 교육에 대한 모델 구축이 절실하다.
나아가 학생뿐만 아니라 아동과 성인에 대한 독서 지원 확대 방안도 절실하다. 독서가 평생 공부로 이어지도록 각 직군에 대한 지원 대책을 한층 다양화해야 한다. 생업에 쫓기는 노동자들은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고사 위기에 내몰린 출판업계에 대한 지원 확대도 절실하다. 결국 책 읽는 학교를 넘어 책 읽는 국가를 만들려면 노동 환경 등 거의 모든 현재 정책에 대한 손질이 시급하다. 정권 교체 등에 흔들리지 않고 초장기적인 관점으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필요하다.
이미 프랑스와 일본, 대만 등은 독서를 교육과 문화 정책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독서가 학생 개인에게 맡겨두는 선택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독서를 문화적 기본권으로 간주, 민주주의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책을 읽는 깨어있는 국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은 학생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독서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다. 이들 나라는 독서가 개인의 행복은 물론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벌써부터 갖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한 독서 교육을 한층 발 빠르게 진행하길 기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